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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X3 아이즈 (1991), 삼지안 / サザンアイズ / 3X3 Eyes


ⓒ 高田裕三/講談社


<정보>

◈ 원작: 타카다 유조(高田裕三)
◈ 감독: 니시오 다이스케(西尾大介)
◈ 각본: 엔도 아키노리(遠藤明範)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아라이 코이치(新井浩一)
◈ 미술감독: 사누키 토시카츠(佐貫利勝), 타니구치 준이치(谷口淳一)
◈ 음악: 와다 카오루(和田薫)
◈ 제작사: 도에이 동화, TAVAC / 반다이 비주얼, 강담사, 킹 레코드
◈ 저작권: ⓒ 高田裕三/講談社 ・ バンダイビジュアル ・ キングレコード
◈ 일자: 1991.?.?
◈ 장르: 액션, 판타지, 호러
◈ 구분/등급: OVA(4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줄거리>

가족을 돌보지 않고 삼지안 운가라의 전설을 쫓아 세계를 방랑하는 후지이 교수의 아들 후지이 야크모. 가족을 소홀히 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혼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던 야크모는 어느날 길에서 우연치 않게 외국인 소녀를 스쿠터로 치일 뻔 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소녀는 야크모를 찾아서 티벳에서부터 일본까지 온 파이라는 인물로, 후지이 교수의 유골과 그가 남긴 편지를 야크모에게 건낸다. 


편지에는 파이가 후지이 교수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삼지안 운가라족의 생존자라는 것, 그리고 그녀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삼지안은 인간과는 다른 요괴 종족으로 신비한 힘을 쓸 수 있는 종족이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파이를 위해 후지이 교수는 야크모에게 파이를 도와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는데...


<소개>

타카다 유조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4부작 OVA 아니메. 원작은 코단샤(강담사)의 월간지 '영 매거진 증간해적판'에서 1987년 12월부터 연재를 시작하여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1989년부터는 본지인 주간 영매거진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총 40권의 단행본으로 연재를 마감하였는데, 아시아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국적인 세계관과 설정, 그리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로 90년대 아니메의 판타지 부흥에 일조한 작품이기도 하다.

3X3 아이즈는 세 개의 눈을 가진 전설의 종족인 삼지안 운가라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인 파이와, 얼떨결에 그녀의 모험에 휘말려 인간이 아닌 불사의 몸이 되어버린 야크모가 파이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떠나는 긴 여정이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이다. 여행 중에 등장하는 수많은 요물들과 맞서는 파이와 야크모의 싸움은 상당히 처절하고 강렬한 묘사가 인상적이며, 고어적인 묘사와 상반되는 천진한 소녀 파이의 매력과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던지는 야크모의 멜로 라인이 작품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인도, 티벳 등 아시아 권에서도 다소 생소한 지역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적 설정은 3X3 아이즈의 인기를 뒷받침하는 신선한 시도다. 타카다 유조 특유의 정교한 설정 능력이 더해져 3X3 아이즈의 세계관은 일본의 코믹스 중에서도 꽤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자랑하고 있다. 이는 오컬트적인 설정과 일본의 전통 설화 등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세계관을 구축했던 '공작왕'과 비교할만하다. 다만, 초반부의 매력적인 스토리 텔링과 설정은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액션에 치중하면서 그 힘을 잃고 만다. 좋은 평을 들었던 초중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이야기들은 팬들에게도 많은 질타를 받았으며, 작가 자신도 이를 순순히 인정하고 있는 듯 하다. (다만, 이러한 아쉬움은 비슷한 장르의 공작왕이나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드래곤 볼에서조차도 어느정도 보여졌던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메는 반다이 비주얼과 도에이 등이 주축이 되어 OVA 4부작으로 제작되었다. 코믹스의 1부격인 성마편을 다룬 OVA는 '드래곤 볼'의 TV 시리즈와 극장 아니메를 연출해온 니시오 다이스케가 감독으로 낙점되었다. 3X3 아이즈는 다소 어둡고 칙칙한 컬러로 원작의 오컬트 적인 느낌을 재현하려고 했는데, 이는 니시오 감독의 이전 연출작인 '크라잉 프리맨' OVA와 다소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다만, 이러한 선택이 오히려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리지는 못한 듯 싶으며 같은 측면에서 캐릭터도 원작의 매력을 잘 살리지는 못했는데,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아라이 코이치 역시 크라잉 프리맨 OVA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3X3 아이즈 성마전설 (1995), サザンアイズ 聖魔伝説


ⓒ 高田裕三/講談社 ・ バンダイビジュアル ・ キングレコード


<정보>

◈ 감독: 타케노우치 카즈히사(竹之内和久)
◈ 각본: 타카다 유조, 타케노우치 카즈히사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쿠마가이 테츠야(熊谷哲矢)
◈ 미술감독: 히로시 카토(加藤浩)
◈ 음악: 와다 카오루
◈ 제작사: TAVAC, 스튜디오 쥬니오
◈ 저작권: ⓒ 高田裕三/講談社 ・ バンダイビジュアル ・ キングレコード
◈ 일자: 1995.07.25
◈ 장르: 액션, 판타지, 호러
◈ 구분/등급: OVA(3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코믹스의 2편 격인 성마전설 편을 원작으로 한 OVA. 제작은 도에이 동화가 아닌 도에이 동화의 하청 작업을 주로 했던 스튜디오 쥬니오(여러가지 제작 실패를 겪으며 현재는 실제 애니메이션 제작이 아닌 저작권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에서 맡았다. 기억을 잃고 평범한 여고생으로 살아가는 파이와 그녀를 찾아 정처없는 여행을 떠난 야크모의 재회와 모험을 그리고 있다. '말예의 장', '열쇠의 장', '귀환의 장' 총 3부로 제작되었으며, 코믹스 중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참고 사이트>

[1] 3×3 EYES, Wikipedia Japan
[2] 3×3_EYES(1991), allcinema.net
[3] 3×3_EYES ~聖魔伝説~(1995), allcinema.net
[4] 3×3 EYES, 엔하위키 미러
[5] 3×3 아이즈, 베스트아니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高田裕三/講談社 ・ バンダイビジュアル ・ キングレコード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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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루스란 전기 I, II (1991, 1992), アルスラーン戦記 / The Heroic Legend of Arslan


ⓒ 田中芳樹 · 角川書店 · MOVIC · Sony Music Entertainment



<정보>

◈ 원작: 다나카 요시키(田中芳樹)
◈ 감독: 하마츠 마모루(浜津守)
◈ 각본: 미야시타 토모야(宮下知也), 타카다 카오리(高田かおり) - 1편 / 스기하라 메구미(杉原めぐみ) - 2편
◈ 스토리보드: 하마츠 마모루
◈ 캐릭터 디자인: 카미무라 사치코(神村幸子)
◈ 작화감독: 키세 카즈치카(黄瀬和哉) - 1편 / 나카타 마사오(中田雅夫) - 2편
◈ 미술감독: 이케다 유우지(池田祐二) - 1편 / 키노시타 카즈히로(木下和宏) - 2편
◈ 음악/노래: 츠루 노리히로(都留教博) / 유사 미모리(遊佐未森) - 1편, 타니무라 유미(谷村有美) - 2편
◈ 제작: 카도카와 하루키(角川春樹), 마츠오 슈우고(松尾修吾), 다카하시 유타카(高橋豊)
◈ 제작사: 애니메이터 필름(1편), 아우벳쿠(2편) / 무빅,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도큐 에이전시, IMAGICA, 카도카와 서점
◈ 저작권: ⓒ 田中芳樹 · 角川書店 · MOVIC · Sony Music Entertainment
◈ 일자: 1991.08.17 - 1편 / 1992.07.18 - 2편
◈ 장르: 드라마, 전쟁,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중학생 이상 관람가(PG-13)


<줄거리>

파르스력 320년, 대륙 공로의 중심에 위치한 강대한 파르스 왕국에 이웃 국가인 루시타니아 왕국이 침공을 개시했다. 파르스의 왕인 안드라고라스 3세는 친히 대군을 이끌고 루시타니아군이 진을 친 아트로파테네 계곡으로 나서게 되는데, 역전의 용사들이 가세한 강대한 파르스 군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하지만 파르스의 황태자로 이번 전쟁에 참여하게 된 아루스란은 아트로파테네 전역에 깔린 자욱한 안개를 보고 불안감을 느낀다. 루시타니아 군의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아루스란과 파르스군에서도 10명 밖에 없는 마르즈반의 칭호를 얻고 있는 젊은 장군 다륜은 안드라고라스 3세에게 잠시 후퇴할 것을 청하지만, 후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안드라고라스 3세는 다륜의 간언을 물리치고 대군을 움직여 루시타니아 군에게로 돌진한다.


그러나 우려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안개 속에서 방심한 파르스의 기병들은 루시타니아 군이 설치한 기름 함정에 빠져 불길에 휩싸이고, 설상가상으로 파르스의 마르즈반 중 한 명인 카란이 파르스 군을 배신하면서 파르스의 대군은 혼란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루시타니아군에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륜은 전세가 기울었음을 판단하고 아루스란에게로 향하고 아루스란과 다륜은 단신으로 전장을 빠져나오게 된다. 파르스 군은 전멸하고 안드라고라스 3세마저 루시타니아 군을 이끄는 정체불명의 은가면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파르스 왕국, 아루스란은 다륜과 함께 다륜의 친구이자 전 궁정 서기관이었던 나르사스의 은신처로 향하게 되는데...


<소개>

'은하영웅전설'의 작가 다나카 요시키의 장편 대하 소설(물론 정통소설이라기 보다는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한 극장판 아니메. 원작은 은하영웅전설의 집필이 완료되어가던 1986년부터 카도카와 서점을 통해 발간되기 시작하여 2008년에 이르는 현재까지도 완결이 되지 않고 있다.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 중 완간된 작품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며, 1990년까지 발간된 7권까지를 1부, 그리고 8권 이후부터를 2부로 나누고 있다. 2008년에 13권이 발행된 이후로는 아직까지 후속작에 대한 소식은 없으며, 한국에서는 1999년 정식 번역된 서울문화사 판 문고가 있는데 아쉽게도 2부는 한국에 발간되지 못했다. 서울문화사 판은 현재 절판된 상태다. (코믹스도 한국에 발간되었으나 역시 절판)


가상의 세계를 다룬 이야기이지만, 이야기의 주무대가 되는 파르스 왕국은 국가의 명칭이나 설정 등으로 미루어볼 때 중세 페르시아 제국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중간중간 마법, 사왕과 같은 상상적인 설정이 등장하기는 하나 판타지라기보다는 정통 전쟁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작품. 나라를 빼앗기고 유랑길에 오른 왕태자 아루스란이 다륜과 나르사스, 파랑기스와 같은 충신들과 힘을 모아 나라를 되찾는 영웅 서사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은하영웅전설과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모두 젊은 영웅들이라는 점에서 은영전의 라인하라트와 그 휘하의 젊은 장군들을 연상시키게 한다.


원작소설의 1부가 완료된 시점에서 카도카와 서점은 극장용 아니메의 기획을 추진하게 된다. 극장 아니메는 총 2부작으로 기획되어 1부가 비슷한 시기에 기획중이었던 '사일런트 뫼비우스' 극장 아니메 1부와 함께 동시상영으로 극장에 걸리게 된다. 80년대 대작 극장 영화와 아니메를 연이어 쏟아내던 카도카와의 모습에 비춰보면 소심한 모습이었는데, 이는 직전년도에 무려 50억엔을 쏟아부은 초대작 극장영화 '하늘과 땅과'의 개봉, 그리고 수년전부터 시작되어온 카도카와 형제 간의 불화에 따른 그룹 내 내흥 등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 1993년 카도카와 하루키가 사장에서 해임된 후, 카도카와의 아니메 사업은 이전보다 축소되어 직접 제작이 아닌 제작 컨소시엄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아루스란 전기와 사일런트 뫼비우스는 그런 면에서 카도카와 아니메의 과도기에 있었던 작품인 셈이다.


ⓒ 田中芳樹·角川書店·MOVIC·Sony Music Entertainment (좌) / ⓒ Studio TRON·角川書店 (우)



비록 위세가 약해진 시기에 등장한 작품이지만 카미무라 사치코와 키세 카즈치카로 이어지는 극장판 1부의 작화 라인업은 극장용 아니메에 어울리는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시티헌터' 시리즈, '비너스 전기(1989)' 등에서 활약한 카미무라는 소설의 삽화 일러스트를 맡았던 아마노 요시타카의 캐릭터의 연장선상에서 아니메 캐릭터로의 전환을 멋지게 해내었으며(특히, 파랑기스는 몽환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100% 살려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 '패트레이버' 극장판 시리즈의 작화감독으로 사실적인 극화풍의 작화가 인상적인 키세 카즈치카의 해석력이 더해져 나무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좀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었다면 그야말로 놀라운 비주얼로 탄생할 수도 있었으나 90년대 들어 많은 힘을 잃은 일본 극장 아니메의 현실에 비춰보면 이는 무리일지도.


대작 극장 아니메로 탄생하지 못하면서 전쟁 드라마에 어울리는 스케일을 그려내지 못하는 제약이 있었지만, 깔끔한 작화와 멋스러운 화면 구성 등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의 작품이다. 다만, 초반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극적인 재미가 높지 않고, 여기에 1시간 분량의 반쪽짜리 아니메로 만들어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다루지 못함은 아쉬운 점, 안타깝게도 1년여 뒤에 개봉된 2부 극장판은 작화진이 교체되면서 전반적으로 1부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지며, 1, 2부 극장판을 다 합쳐도 이야기는 프롤로그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소설의 맛을 잘 살려내지는 못한 셈이다. 2부의 엔딩 테마인 타니무라 마미의 '설레임을 Believe'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극장 아니메보다 더 유명세를 타게 된다.



아루스란 전기 III, IV, V, VI (1993, 1995)


ⓒ 田中芳樹 · 角川書店 · MOVIC · Sony Music Entertainment


<정보>

◈ 감독: 아미노 테츠로(アミノ テツロー) - 3,4편 / 하마츠 마모루 - 5,6편
◈ 각본: 스기하라 메구미
◈ 캐릭터 디자인: 카미무라 사치코(神村幸子)
◈ 작화감독: 오치 신지(越智信次) - 3,4편 / 나카무라 사토루(中村悟) - 5편 / 시노 마사노리(筱雅律) - 6편
◈ 미술감독: 카나무라 카츠요시(金村勝義) - 3편 / 니시쿠라 치카라(西倉力) - 4편 / 쿠시다 타쯔야(串田達也) - 5편 / 네자키 치에코(根崎知恵子) - 6편
◈ 음악/노래: 츠루 노리히로(都留教博) / 스즈키 쇼코(鈴木祥子)
◈ 제작사: 애니메이터 필름 / 무빅,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카도카와 서점
◈ 저작권: ⓒ 田中芳樹 · 角川書店 · MOVIC · Sony Music Entertainment
◈ 일자: 1993.?.? - 3,4편 / 1995.?.? - 5,6편
◈ 장르: 드라마, 전쟁, 판타지
◈ 구분/등급: OVA (4화) / 중학생 이상 관람가(PG-13)


<소개>

극장판에서 미쳐 못다한 이야기는 이듬해 OVA로 그려지게 된다. 원작 4권 한혈공로에 해당하는 내용이 OVA 3부와 4부로 만들어지고, 2년 후인 1995년 5권인 정마고영 편이 OVA 5부와 6부로 만들어진다. 각 편마다 작화 스탭진이 다른데, 3부와 4부보다는 5부와 6부의 작화 퀄리티가 상대적으로 높다. 1부의 유려함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5부와 6부의 퀄리티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편이다. 원작의 1부도 체 완결짖지 못한 체 OVA는 6부작을 끝으로 제작이 중단된다.


<참고 사이트>

[1] アルスラーン戦記, Wikipedia Japan
[2] アルスラーン戦記(1991), allcinema.net
[3] 아루스란 전기, 엔하위키 미러
[4] 아루스란 전기, 베스트 아니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田中芳樹 · 角川書店 · MOVIC · Sony Music Entertainment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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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섬의 전기 (1990), ロードス島戦記 / Recorde of Lodoss War


ⓒ 水野良 · Group SNE · 角川書店 · 丸紅 · テレビ東京


<정보>

◈ 원작: 미즈노 료(水野良), 야스다 히토시(安田均)
◈ 총감독: 나가오카 아키노리(永丘昭典)
◈ 시리즈 구성/각본: 와타나베 마미(渡辺麻実)
◈ 스토리보드/연출: 야마다 카즈히사(山田勝久)
◈ 캐릭터 디자인 원안: 이즈부치 유타카(出渕裕)
◈ 캐릭터 디자인/서브 캐릭터: 유키 노부테루(結城信輝) / 미노와 유타카(箕輪豊)
◈ 총 작화감독: 유키 노부테루
◈ 미술감독: 카네코 히데토시(金子英俊)
◈ 음악/노래: 하기타 미츠오(萩田光男) / Sherry(加藤いづみ)
◈ 프로듀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正雄), 이케다 노리아키(池田憲章)
◈ 제작총지휘: 카도카와 츠쿠히토(角川歴彦)
◈ 제작사: 매드하우스
◈ 저작권: ⓒ 水野良 · Group SNE · 角川書店 · 丸紅 · テレビ東京
◈ 일자: 1990.06.30 ~ 1991.11.20
◈ 장르: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OVA(13화) / 중학생 이상 관람가(PG-13)


<줄거리>

마신 전쟁으로 인해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거대한 섬 로도스. 과거 마신전쟁 6 영웅 중의 한 명인 마모 왕 베르도가 마모를 통일하고 로도스 정복 전쟁을 일으키면서, 세상은 다시 거대한 어둠의 소용돌이에 파묻히게 된다. 성기사였던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고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성기사가 되고자 하는 소년 판은, 우연하게 만난 신비한 엘프 소녀 디드리트와 마법사 슬레인, 드워프 전사 김, 사제 에토, 도적 우드척 등과 함께 로도스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전쟁의 원흉이라고 생각되는 회색의 마녀 카라를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소개>

TRPG의 원조라 할 수 있는 'D&D(Dungeons & Dragon)'의 설정을 기반으로 일본식 TRPG를 만들기 위해 결성된 크리에이터 집단 그룹 SNE의 첫번째 TRPG 세계관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OVA 아니메. 그룹 SNE의 멤버인 미즈노 료가 구상한 이 세계관은 85년 PC 잡지에 연재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 단행본으로 발간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소설은 총 7권으로 93년에 연재가 완료되며 2005년까지 누계 발행부수 1,000만부를 넘긴 판타지 라이트 노벨계의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로 군림하고 있다.

정통 RPG 세계관을 적절하게 일본식 테이스트로 변주해 낸 미즈노 료의 로도스 섬의 전기는 단순한 히트를 넘어서 후대의 일본산 RPG와 일본식 중세 판타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이나 D&D가 보여주었던 복잡한 판타지 세계관을 단순화하고 일본식으로 정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엘프와 같은 크리쳐들에 대한 전형적인 외모 역시 제시하게 된다.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판타지 아니메의 엘프나 다크 엘프들의 모습이 이 로도스 섬의 전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크다 하겠다.

88년부터 카도카와 서점을 통해 단행본으로 발간되던 로도스 섬의 전기는 90년에 이르러서 매드하우스를 통해 OVA 아니메로 등장하게 된다. 다만, 단행본의 연재 도중에 OVA가 출시되면서 실제 소설의 이야기와 OVA의 이야기 사이에는 꽤 많은 내용상의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미즈노 료가 OVA 시나리오에 관여하였기에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어느 정도 따르고 있지만, 13화라는  길이의 제약상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OVA에 등장하지 못한 점은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OVA 1화와 2화를 묶어 극장용 아니메로 공개되기도 했다.

소설이 보여준 스토리의 백미를 100% 살려내지 못한 OVA 히트의 일등공신은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으로 맹활약한 유키 노부테루이다. 80년대부터 범상치 않은 필력으로 업계에서 조금씩 주목을 받던 그는 '파이브스타 스토리(1989)'를 시점으로 서서히 캐릭터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 로도스 섬의 전기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다만, 실제 캐릭터 원안이자 소설의 삽화 일러스트를 메카닉 디자이너로 더 유명한 이즈부치 유타카가 담당했다는 것이 의외. 토끼 귀처럼 기다린 엘프의 귀를 가진 디드릿트나 수많은 로도스의 캐릭터들은 유키가 아닌 이즈부치가 창조해낸 것이며, 유키는 이즈부치의 원안을 바탕으로 아니메에 어울리는 미형 캐릭터로 새로이 스타일링 한 것이다. 이즈부치의 삽화는 별도의 일러스트 집으로 발매되기도 했는데, 메카닉 디자이너 출신이다보니 캐릭터는 메카닉만큼 디테일하지는 못한 편이다.

소설의 내용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OVA로서의 이야기 구성은 그런대로 준수하다. 디드릿트, 카슈, 베르도, 아슈람 등 몇몇 등장인물들은 원작 소설과 견줄 만큼 매력적이며, 특히 용병왕 카슈나 흑기사 아슈람은 유키의 필력과 어우러지며 주인공 판을 능가하는 매력과 아우라를 보여준다. 하이엘프인 디드릿트의 경우는 아니메의 엘프 캐릭터의 대명사로 현재까지도 그 자리를 어떤 캐릭터에도 내주지 않고 있는데, 사실상 로도스 전기 이후 엘프 캐릭터로서 성공한 예는 디드릿트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 다크 엘프인 필로테스의 경우도 디드릿트 만큼은 아니었으나 특유의 뇌쇄적인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로 인해 OVA의 오리지널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재 중이던 원작 소설에까지 등장하게 된다. 반면 주인공 판의 경우 평범한 시골청년에서 로도스를 구하는 성기사로서 성장하는 입지전적인 캐릭터이지만 OVA에서는 이야기가 축약되면서 그의 성장 과정이 대거 삭제, 소설보다는 그 매력이 많이 반감되고 만다.

몽환적인 로도스의 세계를 잘 표현해낸 Sherry의 'Adesso e Fortuna ~ 불꽃과 영원' 역시 오랫동안 사랑받는 오프닝 테마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의 일본산 판타지 아니메들이 가볍고 캐주얼한 내용으로 대게 흘러가게 되지만, 로도스 섬의 전기는 일본적인 재해석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본연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중후한 매력을 보여준 작품으로서 판타지 아니메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원작 소설이 '마계마인전'이라는 희한한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후 한국 판타지 소설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OVA는 비디오로 출시된 뒤 나중에는 투니버스에서도 방영된다. 



로도스 섬의 전기 - 영웅기사전 (1998)


ⓒ 水野良 · Group SNE · ロードス島戦記 Project · テレビ東京


<정보>

◈ 감독: 타카모토 요시히로(高本宣弘)
◈ 시리즈 구성/각본: 하세가와 카츠미(長谷川勝己) / 쿠보타 마사시(久保田雅史) 외
◈ 스토리보드/연출: 마츠이 히토유키(まついひとゆき)
◈ 캐릭터 원안/캐릭터 디자인: 나츠모토 마사토(夏元雅人) / 소에다 카즈히로(そえたかずひろ)
◈ 미술감독: 코야마 토시히사(小山俊久)
◈ 음악/노래: 와다 카오루(和田薫) / 사카모토 마야(坂本真綾)
◈ 프로듀서: 이와타 마키코(岩田牧子)
◈ 제작사: AIC
◈ 저작권: ⓒ 水野良 · Group SNE · 夏元雅人 · 百やしきれい / ロードス島戦記 Project
◈ 일자: 1998.04.01~1998.09.30
◈ 장르: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TVA(27화) / 중학생 이상 관람가(PG-13)


<소개>

로도스 섬의 전기를 원작으로 TV 시리즈 아니메. 미즈노 료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영웅기사전은 카도카와 코믹스 에이스에서 발간된  나츠모토 마사토의 6권짜리 코믹스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OVA에서는 미처 등장하지 못했던 원작 소설 후반부의 주인공 스파크와 니스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이지만, 판과 디드리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3권 '화룡산의 마룡' 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으며 원작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는 작품이 되었다.

다만, 기대 이하의 작화 퀄리티와 평이한 연출로 인해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몹시 낮은 편. 로도스의 팬들에게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칸노 요코-사카마토 마야 콤비의 오프닝 '기적의 바다'는 낮은 완성도의 본편과는 달리 인상적이다.


어서오세요, 로도스에 (1998)



<정보>

◈ 감독: 치기라 코이치(千明考一)
◈ 각색: 하세가와 카츠미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우사미 코이치(宇佐美 皓一) / 코바야시 아케미(小林明美)
◈ 제작사: AIC
◈ 저작권: ⓒ 水野良 · Group SNE · 夏元雅人 · 百やしきれい / ロードス島戦記 Project
◈ 일자: 1998.04.25
◈ 장르: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초등생 이상 관람가(PG)


<소개>

레이 햐쿠야시키의 4컷 만화를 베이스로 만든 단편 아니메. 로도스 섬의 전기 영웅기사전 방영 중간 단편으로 방영되었으며, 극장에서도 상영된다. 원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내용은 원작과는 다른 오리지널 스토리. SD 캐릭터 답게 코믹한 전개의 작품이다.


<참고 사이트>

[1] ロードス島戦記, Wikipedia Japan
[2] ロードス島戦記-英雄騎士伝-, Wikipedia Japan
[3] ロードス島戦記 (1990), allcinema.net
[4] ロードス島戦記-英雄騎士伝- (1998), allcinema.net
[5] ようこそロードス島へ!(1998), allcinema.net
[6] 로도스 섬의 전기, 엔하위키 미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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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1989), Little Mermaid 


ⓒ WALT DISNEY


<정보>

◈ 원작: 한스 크리스챤 안델센의 '인어공주'
◈ 감독/각본: 론 클레멘츠(Ron Clements), 존 머스커(John Musker)
◈ 캐릭터 디자인/애니메이션 감독: 글렌 킨(Glen Keane) / 던칸 마저리뱅크스(Duncan Marjoribanks), 글렌 킨
◈ 아트디렉터: 마이클 A. 페라자 쥬니어(Michael A. Peraza Jr.)
◈ 음악: 알란 멘켄(Alan Menken), 하워드 애쉬먼(Howard Ashman) - 작사
◈ 기획/제작: 하워드 애쉬먼, 존 머스커
◈ 제작사/배급사: 월트 디즈니, 실버 스크린 파트너스 IV / 월트 디즈니, 부에나 비스타
◈ 저작권: ⓒ WALT DISNEY
◈ 일자: 1989.11.14
◈ 장르: 드라마, 로맨스, 뮤지컬, 세계명작,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G)


<캐스트>

◈ 인어공주 아리엘(Ariel): 조디 벤슨(Jodi Benson)
◈ 에릭 왕자(Eric): 크리스토퍼 다니엘 반스(Christopher Daniel Barnes)
◈ 세바스챤(Sebastian): 사무엘 E. 롸이트(Samuel E. Wright)
◈ 스커틀(Scuttle): 버디 해켓(Buddy Hacjett)
◈ 플라운더(Flounder): 제이슨 마린(Jason Marin)
◈ 우슬라(Ursula): 팻 케롤(Pat Carroll)
◈ 트리톤 왕(Triton): 케네스 마스(Kenneth Mars)


<시놉시스>

깊은 바다 속 왕국의 인어공주 에리얼은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16살의 소녀로, 바다 속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간 세상을 동경하고 있다. 에리얼의 아버지이자 바다왕국의 왕 트라이톤은 지상의 인간들과 바다 속 인어들의 접촉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에리얼의 마음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어느날 밤, 친구 플라운더와 신하 세바스챤을 데리고 수면으로 나온 에리얼은 인간 왕국의 왕자 에릭을 멀리서 보고 사랑에 빠지고 만다. 때마침 불어닥친 폭풍에 에릭 왕자의 배는 좌초되고,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에릭을 에리얼이 구해내게 된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왕자에게 노래를 부르는 에리얼, 그녀의 목소리에 에릭은 정신을 되찾고, 에리얼은 황급히 자리를 뜨고 만다. 에릭은 비록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구해준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잊지 못하게 된다.

한편, 딸의 행동을 눈치 챈 트라이톤 왕은 격노하게 되고, 에리얼은 에릭을 향한 마음으로 크게 낙담하고 만다. 이 때, 한쌍의 뱀장어가 에리얼에게 접근한다. 플롯섬과 젯섬이라 불리는 이 장어들은 그녀에게 지상의 왕자와 함께 하고 싶다면 마녀 어슐라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하게 되는데...


<소개>

1966년 디즈니의 창립자인 월트 디즈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시 공교롭게도 추락의 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회사의 정신적인 지주를 잃었으니 제 아무리 디즈니 왕국이라도 흔들렸을 수 있겠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5)' 이래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1977)', 리챠드 도너의 '슈퍼맨(1978)', 그리고 스필버그의 'E.T(1982)'로 이어지는 일련의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의 등장은 영화계나 만화영화계나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디즈니는 그러한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뒤쳐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해야 했으나 디즈니는 이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셈이다.

70년대 들어 큰 히트작을 내지 못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암흑기는 80년대 들어서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새로운 시대에 맞춰 디즈니도 SF 영화 '트론(1982)'과 같은 디즈니 답지 않은(?) 실사영화(디즈니는 50년대부터 실사영화를 만들어 왔으며, 6~70년대 들어서는 그 비중이 더더욱 커지게 된다. 단, 주목할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듯. 트론의 경우 천7백만 달러의 거대한 제작비를 들여 3천3백만 달러의 괜찮은 흥행성적을 거둬들였지만, 82년 최대의 히트작인 E.T라는 거대한 벽을 넘을 수는 없었으니 안타까운 비운의 작품인 셈이다.)를 들고 승부수를 던졌지만, 디즈니의 원동력인 애니메이션의 불빛이 사그러든 상태에서 시도한 실사영화로의 도전은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야 되는 비즈니스의 기본 원칙에 충실히 하지 못한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이후로도 디즈니의 실사영화는 대체적으로 범작에 그치는 결과를 보여주는데, 이는 2003년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계속된다.)

80년대 초반까지 만화영화보다는 실사영화에 치중하던 디즈니는 85년도부터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만화영화로의 회귀가 그것이었는데, 1984년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 그리고 제프리 카첸버그 모션 픽쳐스 그룹 책임자의 부임부터 시작된 이 디즈니의 부활 프로젝트는 비록 '블랙 칼드론(1985)'에서 천문학적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도 넘치 못하는 참패를 거두긴 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만화영화의 투자를 계속하였고, 그로부터 4년 뒤 디즈니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드는 작품을 만들어 내게 되니, 이것이 바로 디즈니 부흥의 신호탄을 알린 동시에 디즈니 제2의 황금기를 열어준 기념비적인 작품 '인어공주(1989)'인 것이다.

ⓒ WALT DISNEY



한스 크리스챤 안델센의 대표적인 동화를 각색한 인어공주는 분명 이전까지 디즈니가 선보였던 일련의 세계명작동화 스타일의 만화영화와 같은 성격을 가진, 말하자면 고전적인 테마를 공유하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인어공주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1937)' 이후 기획되었던 후속 프로젝트 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제작이 중단되었던 작품이었다. 60년대 이후로 디즈니 내에서도 거의 흔적이 사라진 이 세계명작동화 스타일은 오히려 90년대를 맞이하는 시점에서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좋은 소재였던 셈이었다.  

다만, 고전적인 소재를 다시 부활시키는데 있어서 디즈니는 새로운 몇가지 시도를 행하게 되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컴퓨터 그래픽의 도입이었다. 레이아웃을 컴퓨터로 그린 뒤, 이를 셀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채색하는 작업은 지금의 Full CG와는 다른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된 방식이었으나 셀 애니메이션이 가진 서정성과 감성을 유지하면서 CG의 부드러움과 선명함을 더하면서 기존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새로운 영상적 완성도를 이룩하게 되었다.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바다를 누비는 인어들과 바다생물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으며, 생동감이 넘치는 영상미로 관객들을 사로잡게 된다.

다른 하나의 시도는 뮤지컬의 접목이었다. 이미 디즈니의 전작 '올리버와 친구들(1988)'에서 선보인 바 있는 이 뮤지컬 드라마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또다른 서정성과 감동을 부여하게 되었으니, 아름다운 색체와 미려한 움직임에 더해진 뮤지컬적 시퀀스는 때로는 한편의 로맨틱한 드라마를, 때로는 한편의 코미디를 극적으로 스크린 위에 표현하게 된다. 이를 위해 뮤지컬계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던 알란 멘켄을 데려온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고의 선택 중 하나로, 멘켄 자신도 디즈니와의 작업을 통해 오스카 8회 수상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서로가 상부상조하게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전적인 소재의 현대적인 각색도 이야기의 흥미를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해낸다. 비극적인 이야기였던 원작의 시놉시스를 밝고 희망찬 이야기로 각색한 것은 확실히 전연령가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보인다. 여기에 바닷가재 세바스챤과 같은 개그 캐릭터를 창조하여 자칫 지루하게 흘러갈지도 모를 이야기를 중간중간 튀어오르게 만든 것은 분명 인어공주의 최고의 선택 중 하나가 아닐까. 세바스챤은 단순한 감초 역할에 그치지 않고 인어공주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인 'Kiss the Girl'에서 사실상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캐릭터로 맹활약하게 된다.

또한, 달라진 시대만큼 달라진 여성상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와 같이 수동적이고 고전적인 여성주인공에서 지상을 동경하여 스스로 사랑을 찾아 모험을 행하는 에리얼의 모습은 분명 고전적인 동화의 여주인공과는 사뭇 다른 현대적인 여성상의 표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는 보수적인 가치를 대변하던 과거의 디즈니와도 역시 상반되는 부분으로, '미녀의 야수(1991)'의 벨, '알라딘(1992)'의 쟈스민, '뮬란(1998)'의 뮬란 등으로 재생산되면서 디즈니의 또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하게 된다.

인어공주는 디즈니 만화영화 사상 역대 최고인 4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여된 작품이었다. 이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되었던 85년 블랙 칼드론의 2천 5백만 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액수로, 지난 이십년간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에서 그리 괄목할만한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감안할 때 디즈니의 자존심을 건 승부사이자 회심의 일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침체기를 한방에 날리는 멋진 카운터 펀치가 되었다. CG와 뮤지컬, 코미디와 신세대 여성상이 어우러진 이 한편의 드라마틱한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의 침체기를 벗어나 이후 픽사의 '토이 스토리(1995)'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전까지 디즈니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명작으로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인어공주2, 바다로의 귀환 (2000),Little Mermaid II, Return to the Sea


ⓒ WALT DISNEY


<정보>

◈ 감독: 짐 캐머러드(Jim Kammerud), 브라이언 스미스(Brian Smith)
◈ 각본: 엘리자베스 앤더슨(Elizabeth Anderson) 外
◈ 음악: 대니 트룹(Danny Troob)
◈ 제작: 레슬리 휴(Leslie Hough), 데이빗 러브그렌(David Lovegren)
◈ 제작사/배급사: 월트 디즈니 / 부에나 비스타
◈ 저작권: ⓒ WALT DISNEY
◈ 일자: 2000.09.19
◈ 장르: 드라마, 로맨스, 뮤지컬, 세계명작, 판타지
◈ 구분/등급: 비디오 / 전연령가(G)


<소개>

에리얼과 에릭의 딸 멜로디를 주인공으로 한 인어공주의 시퀄. 지상을 동경한 에리얼과 달리 딸인 멜로디는 바다를 동경하게 된다나 뭐라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아닌 비디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극장에서 개봉된 작품은 아니다.


인어공주, 아리엘의 시작 (2008),Little Mermaid, Ariel's Beginning


ⓒ WALT DISNEY


<정보>

◈ 감독: 페기 홈스(Peggy Holmes)
◈ 각본: 로버트 리스(Robert Reece) 外
◈ 음악: 제임스 둘리(James Dooley)
◈ 제작: 켄드라 홀랜드(Kendra Halland)
◈ 제작사/배급사: 월트 디즈니
◈ 저작권: ⓒ WALT DISNEY
◈ 일자: 2008.08.26
◈ 장르: 드라마, 로맨스, 뮤지컬, 세계명작, 판타지
◈ 구분/등급: 비디오 / 전연령가(G)


<소개>

두번째 후속편은 당연스럽게도 프리퀄이 되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시점보다 이전 시점의 이야기로 트라이튼 왕이 인간들을 싫어하게 된 이유와 에리얼의 첫 모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역시 극장용이 아닌 비디오용 애니메이션.


<참고 사이트>

[1] The Little Mermaid (1989 film), Wikipedia
[2] Walt Disney Pictures, Wikipedia
[3] Walt Disney Animation Studios, Wikipedia
[4] The Little Mermaid, Disney Wiki
[5] 인어공주, 네이버 영화
[6] 인어공주, 엔하위키 미러
[7] 디즈니 애니의 20세기, 그리고 21세기,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LT DISNEY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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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극장 아니메 시리즈>

1.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1979)
2.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1984)
3. 명탐정 홈즈 (1984)
4.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5. 이웃집 토토로 (1988)
6.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7. 붉은 돼지 (1992)
8. 원령공주 (1997)
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10.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11. 벼랑위의 포뇨 (2008)
12. 바람이 분다 (2013)

마녀의 택급편 (1989), 魔女の宅急便 / Kiki's Delivery Service


ⓒ 角野栄子 • 二馬力 • 徳間書店


<정보>

◈ 원작: 카도노 에이코(角野栄子)
◈ 감독/각본/프로듀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 콘티: 미야자키 하야오, 콘도 요시후미(近藤喜文)
◈ 캐릭터 디자인: 콘도 카츠야(近藤勝也)
◈ 작화감독: 오오츠카 신지(大塚伸治), 콘도 카츠야, 콘도 요시후미
◈ 미술감독/배경: 오오노 코지(大野広司) / 오가 카즈오(男鹿和雄)
◈ 음악감독: 타카하타 이사오(高畑勲)
◈ 음악/노래: 히사이시 조(久石譲) / 아라이 유미(荒井由実)
◈ 연출보조: 카타부치 스나오(片渕須直)
◈ 기획/제작: 야마시타 타츠미(山下辰巳) 外 / 토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
◈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鈴木敏夫)
◈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 저작권: ⓒ 角野栄子 • 二馬力 • 徳間書店
◈ 일자: 1989.07.29
◈ 장르: 드라마,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G)


<시놉시스>

한적한 어느 시골마을, 한 소녀가 풀밭 위에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다. 뉴스를 듣던 소녀는 날씨 예보를 듣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다. 보름달이 뜨는 오늘 출발하겠다는 소녀. 엄마는 소녀를 말리려 하지만 소녀는 이미 마음을 결정한 뒤다. 소녀의 이름은 키키, 마녀인 엄마와 평범한 인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키키는 오래된 마녀의 관습에 따라 13살이 되는 해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마녀수행을 떠나려 하고 있다. 마녀가 인간의 삶 속에서 사는 것이 익숙한 시대, 하지만 마녀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세상은 산업화의 시대를 걷고 있는 중이다. 점점 예전의 것을 잃어가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서 꼬마 마녀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그녀의 말하는 고양이 친구 지지와 함께 빗자루에 몸을 싣고 하늘로 향하는데...


<소개>

카도노 에이코의 6권 짜리 소설 중 1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극장용 만화영화.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히트작으로 '안녕,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1978)'이 세운 극장용 아니메의 일본내 흥행기록을 11년만에 경신한 작품이다. 이제까지의 작품들이 모두 비평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장개봉시 시원치 않은 성적을 기록했었기에 본 작품은 어떤 면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에 대한 평가를 새로이 하는 일종의 터닝 포인트와 같은 작품이 된 것이다. 오늘날 미야자키 하야오를 보면 당연시 하게 되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갖춘 명감독이라는 이미지 역시 본 작품부터 시작되기에 이른다. (이전까지 하야오가 연출했던 극장용 아니메는 모두 주옥같은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흥행에서는 모두 실패를 거두었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2)' 이후 오리지널 작품으로만 승부해오던 미야자키가 연출한 첫번째 지브리표 소설 원작 작품이다. (지브리의 첫번째 소설 원작 작품은 타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1988)'이다.) 그로 인해 이전까지의 미야자키 작품에 담겨져 있던 환경주의적 메시지는 본 작품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마녀라는 환상적인 소재와 19세기 유럽을 연상시키는 배경요소는 분명 미야자키의 작품세계와도 접점이 닿아 있다. 이는 후일 미야자키가 연출하게 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과도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마술이라는 판타지스러운 소재, 유럽적인 배경, 비환경주의적 메시지의 채택, 타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미야자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둘은 확실히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여기에 또하나 키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또다른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애초에 이 작품이 미야자키의 연출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카도노의 작품을 아니메화할 것을 결정한 후 지브리는 후계자 양성차원에서 연출은 새로운 인물에게 맡기고 미야자키는 프로듀서를 맡아 후방을 지원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인물은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도큐무비신사 산하의 해외합작 애니메이션 제작용 하청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도 예전에 몸을 담았던 곳) 시절부터 미야자키나 타카하타 이사오 등과 작업을 해왔던 30살의 신예 가타부치 스나오. 하지만, 제작이 진행되면서 각본과 콘티 등에 미야자키의 손길이 가해지면서 작품의 스케일이 애초 기획단계보다 커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스폰서들이 네임밸류가 있는 감독을 원하면서 결국 가타부치는 감독에서 연출보조로 물러나게 된다.

가타부치의 연출보조 격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감독으로 내정되었다가 도쿠마 서점의 의사에 의해 조기 강판당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가타부치는 후일 스튜디오4℃를 거쳐 매드하우스로 자리를 옮겨, '블랙 라군(2006~2010)' 시리즈로 아니메 팬들에게 그 이름을 알리게 되는데,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버림받은 뒤 매드하우스에서 연출가로 대성하는 점 역시 호소다 마모루의 궤적과 같음을 알 수 있다. 키키가 제작되던 시점부터 이미 지브리의 구조는 미야자키나 타카하타 이외의 연출가가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였는지도 모른다.

키키에는 한가지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일본판 원제인 마녀 택급편에서 택급편이라는 명칭이 당시 일본의 운수회사인 야마토 운수의 등록상표였던 점. 이는 원작자인 카도노가 택급편이 등록상표인줄 모르고 제목에 사용하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으나 이 실수로 인해 본 작품은 야마토 운수가 결국 스폰서로 참가하게 되며, 나중에는 야마토 운수가 역으로 작품을 자사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 본 작품의 히트 이후 야마토 운수는 자사의 CF에 키키의 컷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여기에 야마토 운수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고양이가 우연치 않게 이야기에 등장하는 등, 본 작품은 카도노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게 야마토 운수와 여러 면에서 얽혀 있는 부분이 있다. 
 
거대한 스케일과 화끈한 모험은 없었지만, 아기자기하고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점은 흥행에 큰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직전 작품인 '이웃의 토토로(1988)'와 다를바 없었지만, 오리지널 작품이었던 토토로에 비해 키키는 유명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어느 정도의 네임밸류를 확보하고 있었고, 여기에 야마토 운수와 니혼 TV와 같은 거대 스폰서의 참여로 홍보면에서도 전작에 비할 바 없이 큰 물량이 투입되었다. 이는 결국 많은 이들을 극장으로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막상 극장에서 접한 미야자키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매력적인 경험을 선사하게 된다. 이는 제대로 된 홍보전략이 있었다면 앞선 작품들 역시 키키 못지 않은 흥행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추측을 가능케하는 대목으로, 실제 미야자키의 작품들이 지금도 지속적인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또한, 본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프로듀서로 참가하게 되는 스즈키 토시오의 등장이다. 미야자키가 스튜디오 지브리에 참가하게 되는 데 있어서 일익을 담당한 스즈키는 1989년 도쿠마 서점에서 스튜디오 지브리로 자리를 옮긴 후 키키의 프로듀서로서 지브리 아니메에 처음 참여하게 되는데, 니혼 TV 제휴와 같은 적절한 전략으로 작품의 흥행에 있어서 크나큰 역할을 해내기에 이른다. 키키를 시작으로 '미야자키-스즈키'라는 극장 아니메 시장의 미다스의 듀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참고 사이트>

[1] 魔女の宅急便_(スタジオジブリ作品), Wikipedia Japan
[2] 魔女の宅急便 (1989), allcinema.net
[3] Kiki's Delivery Service (movie), ANN
[4] 마녀배달부 키키, 엔하위키 미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角野栄子 • 二馬力 • 徳間書店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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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도시 (1988), 魔界都市 <新宿> / Demon City Shinjuku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刊 · JAP Home Video


<정보>

◈ 원작: 키쿠치 히데유키(菊地秀行)
◈ 감독/캐릭터 디자인: 카와지리 요시아키(川尻善昭)
◈ 각본: 오카무라 카오리(岡村香織)
◈ 작화감독: 온다 나오유키(思田尚之)
◈ 미술감독: 이케다 유우지(池田祐二)
◈ 음악: 시노다 모도카즈(篠田元一)
◈ 기획/제작: 쿠리 코스케(久里耕介) / 쿠라타 켄지(倉田研次)
◈ 제작사: 매드하우스, 재팬 홈비디오
◈ 저작권: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刊 · JAP Home Video
◈ 일자: 1988.10.25
◈ 장르: 액션, 판타지, 호러
◈ 구분/등급: OVA /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R)


<시놉시스>

어둠을 가르며 두 남자가 검을 맞댄 채 생사를 건 결투를 벌이고 있다. 한때 동문이기도 했던 레비라와 겐이치로. 레비라가 어둠의 힘을 손에 넣어 신주쿠를 마계의 도시로 만들려 하자 겐이치로가 이를 저지하려 맞선 것이다. 호각의 싸움을 벌이던 중 레비라가 마계의 힘을 사용하자 거대한 균열과 함께 신주쿠가 둘로 갈라진다. 겐이치로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레비라의 가슴을 꿰뚫지만 순식간에 원래대로 복구되는 레비라의 몸. 마계의 힘을 받아들인 레비라는 결국 겐이치로를 살해하고, 레비라를 관통한 겐이치로의 목검은 푸른 빛을 뿜은 체 갈라진 신주쿠의 깊은 균열 틈으로 모습을 감추고 만다. 

마계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10년여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레비라의 힘으로 신주쿠는 엄청난 타격을 입지만 주변지역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 이 신비한 지진은 사람들로부터 '데빌퀘이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날...


<소개>

1982년에 쓰여진 키쿠치 히데유키의 데뷔작이기도 한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OVA 아니메. 작품의 타이틀인 '마계도시 신주쿠'는 키쿠치 히데유키의 작품 대부분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단어로, 마계도시 신주쿠 외에도 그의 소설 '마계도시 블루스(1986)', '마계의사 메피스토(1988)', '마계도시 느와르(19??)', '마궁바빌론(19??)' 등 키쿠치 소설의 대부분에 등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키쿠치의 마계도시 사랑(?)으로 인해 일부 동료에게선 '마계도시 선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1] 참조)

그의 또다른 작품 '어둠 가드'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요수도시(1987)'가 대성공을 거둔 뒤 제작된 작품으로, 키쿠치 원작의 아니메 중에서는 세번째로 제작된 작품이며 동시에 키쿠치와 카와지리의 두번째 콤비작이기도 하다. 제작 스튜디오도 매드하우스로 동일하며, 전체적으로 펼쳐지는 블루톤과 블랙의 조화 역시 요수도시와 비슷한 느낌. 요수도시보다 먼저 쓰여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만화영화로서는 요수도시의 후속처럼 느껴진다 하겠다. 요사스러운 느낌은 요수도시에 비해 많이 감쇄되었으며, 동시 에로티시즘의 표현도 거의 상쇄되어 있다.(이 부분은 너무 아쉽...에헴) 요수도시보다 좀 더 넓은 관객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으로 기획되었던 듯 싶다.

아니메에서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캐릭터 디자인이라 하겠는데,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만들어 낸 캐릭터를 스튜디오 비보 출신의 온다 나오유키가 재해석하면서 요수도시에 비해 보다 더 미형의 캐릭터들로 그려졌다 하겠다. 온다 나오유키는 '기동전사 제타 건담(1985)'나 '기동전사 더블제타 건담(1987)',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1988)' 등의 작품에서 작화 스탭으로 활약한 인물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그 재능은 같은 비보 출신의 키타즈메 히로유키의 그늘에 가려져 그저 키타즈메의 아류 저도로 인식되고 있던 참이었다. 개성은 다소 부족했지만 그래도 온다의 그림체는 상당한 미형에 샤프한 라인을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부분이 마계도시의 괴기적인 캐릭터와 만나 상당히 멋진 앙상블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특히 히로인인 사야카는 요염함이 숨겨진 청순함으로, 평면적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멋진 광원 효과와 감각적인 장면구성은 요수도시에 이어 이번에도 유효하다. 목검에 기를 실어 상대방을 베어버리는 주인공 카츠야의 모습은 흡사 카와지리의 93년작 '수병위인풍첩(1983)'의 쥬베이를 연상시킨다. 괴력의 거대한 거미 인간과, 뱀의 형상을 한 여인, 거기에 환술을 쓰는 캐릭터까지 마도사 리베라의 수하들로 등장하는 이들 셋은 왠지 카와지리의 2000년작 '뱀파이어 헌터 D 블러드러스트(2000)'의 삼인중과 닮아 있다.(물론, 시간 상으로 봤을 때는 뱀파이어 헌터 D가 마계도시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마찬가지로 최후의 적이자 마도사인 리베라는 '뱀파이어 헌터 D(1985)'의 뱀파이어 귀족 리 백작을 떠올리게 하는 등, 여러 면에서 카와지리의 다른 작품 캐릭터들과 오버래핑되는 느낌을 준다 하겠다. 이는 이들 작품이 키쿠치의 작품이기에 서로가 비슷한 컨셉을 공유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괴력의 마인, 요사스러운 마녀, 환술을 사용하는 요괴 등 키쿠치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대게 비슷한 특색으로 구분지어져 있다.)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이야기 구조는 느슨하고 긴장감도 떨어진다. 같은 80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스와 호러틱한 분위기를 잘 살렸던 요수도시에 비해 확실히 싱거운 느낌을 준다고 할까. 카츠야와 사야카가 마계도시로 들어가게 되는 도입부도 그렇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으며, 마계도시에서 펼쳐지는 둘의 모험도 어딘지 모르게 싱겁다. 밀도가 느슨한데다가 액션도 심심한 편이라서 전체적으로 요수도시처럼 큰 임팩트를 주는 작품은 아닐 수도 있다.

작품에서는 수수께끼의 인물 메피스토가 나와 주인공 일행을 도와준다. 정체불명의 이 남자는 사실 키쿠치의 또다른 소설 마계의사 메피스토의 주인공 메피스토를 모델로 한 인물. 다만 소설의 캐릭터와 OVA의 캐릭터는 실제 설정상으로는 차이가 존재하는 듯 하다. 다소 밋밋한 구성과 재미에도 불구하고 만화영화적 완성도는 뛰어나며 퀄리티 역시 요수도시에 밀리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제5회 일본 아니메 대상 오리지널 비디오 소프트 최우수 작품상 수상.


<참고 사이트>

[1] 魔界都市 <新宿>, Wikipedia Japan
[2] 魔界都市 <新宿> (1988), allcinema.net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刊 · JAP Home Video
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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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왕 귀환제 (1988), 孔雀王 鬼還祭 / Spirit Warrior


ⓒ 荻野真 · 集英社 · AIC (?)


<정보>

◈ 원작: 오기노 마코토(荻野真)
◈ 감독: 아키야마 카즈히토(秋山勝仁)
◈ 각본: 아이카와 쇼(会川昇)
◈ 캐릭터 디자인: 오치 히로유키(越智博之)
◈ 크리쳐 디자인: 와타나베 쥰이치(わたなべぢゅんいち)
◈ 작화감독: 오오모리 히데토시(大森英敏)
◈ 미술감독: 난고 요이치(南郷洋一)
◈ 음악/노래: YAS-KAZ / SPLASH
◈ 기획/프로듀서: 아베 타카히사(阿部高久), 요시다 나오타카(吉田尚剛), 마루야마 히사토시(丸山寿敏) / 노무라 카즈후미(野村和史)
◈ 제작사: AIC
◈ 저작권: ⓒ 荻野真 · 集英社 · AIC (?)
◈ 일자: 1988.04.29
◈ 장르: 호러,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OVA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시놉시스>

흥복사의 지하 보관실에 모셔져있던 8부상 중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 아슈라상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물샐 틈도 없는 최첨단 경비 시스템이 설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쪽같이 사라진 아슈라상. 일반 사람이 아닌 마물의 짓이라 생각한 주지는 공작명왕의 현신으로 불리는 밀교의 퇴마사 공작왕을 부른다. 

사건을 조사하려는 찰나 요기를 느낀 공작, 요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금강저를 던지자 벽속에서 시키귀신이 뛰쳐나온다. 순식간에 거대한 몸집으로 변하는 시키 귀신. 시키 귀신의 공격을 피하면서 귀신의 눈에 금강저를 꽂은 공작이 곧바로 밀교의 인법을 읊기 시작한다.

'임,병,투,자,개,진,열,재,전!'  .


<소개>

오기노 마코토의 동명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OVA. 퇴마와 오컬트라는 소재를 코믹스와 아니메에 널리 퍼뜨린 장본인격인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그 가치와 완성도는 비슷한 류의 작품들을 능가하는 아우라를 갖고 있다. 1985년부터 89년까지 슈에이샤(집영사)의 '주간 영 점프'를 통해 연재되었으며, 단행본으로 17권까지 발행되었다. 이후 1990년부터 92년까지는 '공작왕 퇴마성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어 총 11권의 단행본이 발매되었으며, 2006년부터 다시 '공작왕 곡신기'라는 제목으로 2010년까지 연재되는 등([1] 참조), 최근까지도 연재될 정도로 시리즈는 장기화되었었지만,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첫 시리즈에 비해 퇴마성전과 곡신기의 평가는 좋지 않은 편이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밀교의 주술과 퇴마술, 여기에 오컬트적인 요소와 호러장르를 접목시킨 스타일은 상당히 신선한 시도였으며, 80년대에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성인용 코믹스의 전개에 발맞춰 마니악한 소재의 선정에도 불구하고 인기는 상당했다. 소재의 신선함도 신선함이지만, 각종 오컬트적인 소재와 종교적 소재를 갖고 상당히 설득력있게 구성한 설정 역시 본 작품의 인기의 견인차가 되었다 하겠다. 불교와 도교, 인도와 중국의 신화적 요소에 일본의 전승설화와 민속신앙, 여기에 기독교적 세계관까지 크로스오버시킨 본작의 세계관은 실로 감탄스러울 정도로, 어떤 것이든 자신들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재해석하고 재가공하는 일본만의 특징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공작왕 실사영화 일본버전의 포스터.

아니메는 OVA 시장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AIC에 의해 제작되었다. 다소 하드고어하고 괴기스러운 원작의 스타일에 비해 아니메는 예상보다 훨씬 순화된 수위로 묘사되고 있다. 각본은 같은 시기에 유사한 호러 스타일의 작품들을 많이 써온 아이카와 쇼가 맡았으며, 일본 헤이안 시대의 실존인물로 알려진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를 모델로 하여 쓰여진 오리지널 스토리이다. '아미테이지' 시리즈와 '솔비앙카(1999)'의 감독을 맡는 오치 히로유키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고, 오오모리 히데토시가 작화를 맡는 등, 코가와 토모노리가 이끄는 작화 스튜디오 비보 출신의 인물들이 작화를 도맡고 있다. 다만, 애초에 그다지 많은 리소스가 투입된 작품은 아니었는지 비슷한 시기에 이들이 그려냈던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힘이 빠져있는 느낌. 전반적으로 볼 때 평범한 모습을 보여준 작품으로, 원작의 아우라나 스탭진의 네임밸류에 비하면 그리 임팩트가 있는 작품은 아니라 하겠다.

OVA 출시 후 불과 반년이 안되서는 실사영화로도 등장한다. 후지 TV와 홍콩의 영화 제작사인 골든 하베스트가 합작하고 베테랑 액션배우 원표가 공작왕을 연기했으며, 당대 청춘스타로 떠오르던 글로리아 입이 아슈라를 맡아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다만, 일본판 공작왕의 경우는 주연을 맡은 원표와 글로리아 입이 조연으로 등장하고 홍콩판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일본 배우 미카미 히로시와 히다카 노리코가 공작과 아슈라를 맡아 연기한다. 90년에 '공작왕 아슈라 전설'로 속편이 제작되며 주요스탭과 캐스팅은 1편과 거의 동일하나 일본판 공작왕은 아베 히로시가 맡게 된다.


공작왕 2 환영성 (1989), 孔雀王2 幻影城


ⓒ 荻野真 · 集英社 · 創映新士 · ボニ―キャニオン

<정보>

◈ 감독: 이타노 이치로(板野一郎)
◈ 각본: 아이카와 쇼
◈ 작화감독: 후지카와 후도시(藤川太)
◈ 미술: 카네무라 카즈요시(金村勝義)
◈ 음악: YAS-KAZ
◈ 기획/프로듀서: 아베 타카히사, 요시다 나오타카, 마루야마 히사토시 / 노무라 카즈후미
◈ 제작사: 스튜디오 88, AIC
◈ 저작권: ⓒ 荻野真 · 集英社 · 創映新士 · ボニ―キャニオン
◈ 일자: 1989.07.01
◈ 장르: 호러,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OVA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이타노 써커스'로 유명한 일본 최고의 액션 작화가 중 한명인 이타노 이치로의 연출작. '메가존 23 파트 2 (1985)' 이후 그의 네번째 감독작으로, 전반적으로 하드고어에 가까운 그의 연출취향이 원작과는 괜찮은 궁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오리지널 에피소드가 아닌 원작의 에피소드를 각색하여 사용하였으며, 왕인환(오니마루) 외에 또 한명의 사이드킥 황해봉(코우 카이호)도 등장하여 흥미를 더한다. 다소 밋밋한 느낌을 주었던 1편과 달리 액션에서만큼은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기대 이하의 작화 퀄리티로 인해 그러한 부분이 그다지 잘 살아나지는 못했다. 오치 히로유키나 오오모리 히데토시가 그렸던 극화풍의 1편 캐릭터에 비해 눈 크고 코 작은 전형적인 아니메 스타일의 캐릭터로 돌아선 부분도 퇴마 호러물이라는 본작의 성격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다.

1편의 음양사 세이메이에 이어 2편은 전국시대의 유명한 무장인 오다 노부나가를 소재로 하였다. 과거의 전설적인 인물을 부활시키려는 무리들이 있고, 부활한 전설의 인물들은 대개 인간을 초월한 능력자들로 세계의 멸망이나 정복을 꿈꾸는 인물들이다라는 시놉시스는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미이라'와 같은 헐리웃 어드벤쳐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소재라 하겠다.


공작왕 앵화풍양 (1991), 孔雀王3 櫻花豊穣


荻野真 · 集英社 · AIC (?)

<정보>

◈ 감독: 아키야마 카즈히토
◈ 각본: 나츠키 레오(夏木玲生)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키시다 타카히로(岸田隆宏)
◈ 미술감독: 난고 요이치
◈ 제작사: AIC
◈ 저작권: ⓒ
◈ 일자: 1991.9.21
◈ 장르: 호러,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OVA / 미성년자 관람불가(NC-17)


<소개>

공작왕의 세번째 OVA는 1편의 감독 아키야마 카즈히토가 다시 맡았다. 작화나 미술은 2편에 비해 안정된 수준으로 돌아섰지만, 스토리와 더불어 좋은 퀄리티라기보다는 그냥 무난한 수준의 비주얼이라 하겠다. 전편들에 비해 조금 더 노골적인 정사장면이 묘사되는 등, 수위는 다소 높아졌으나 호러물로서의 느낌은 그다지 나아진 점이 없어 보인다. 원작의 에피소드를 각색하였으나 각색이 좋지 못했던 관계로 스토리텔링 역시 몰입도가 높지 않다.


진 공작왕 (1994), 真・孔雀王


ⓒ 荻野真 · 集英社 · MADHOUSE (?)


<정보>

◈ 감독: 린 타로(りんたろう)
◈ 각본: 우라하다 타츠히코(浦畑達彦), 이나바 카즈히로(稲葉一広)
◈ 캐릭터 디자인: 아베 히사시(阿部恒), 코이케 타카시(小池健)
◈ 작화감독: 아베 히사시
◈ 미술감독: 히라키 노리히로(平城徳浩)
◈ 음악: 혼다 토시유키(本多俊之)
◈ 기획/제작총지휘: 이시자키 쿠니히코(石崎邦彦), 아오키 마사미(青木雅美) / 마루야마 마사오(丸山正雄)
◈ 제작사: 매드하우스
◈ 저작권: ⓒ 荻野真 · 集英社 · MADHOUSE (?)
◈ 일자: 1994.06.17
◈ 장르: 호러,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OVA(2화) / 미성년자 관람불가(NC-17)


<소개>

공작왕의 네번째 아니메 프로젝트는 AIC의 손을 떠나 전통의 명가 매드하우스와 거장 린타로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로 인해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난 퀄리티와 완성도로 태어난 작품이 되었다. 아무래도 눈길을 끄는 것은 극장 아니메의 수준에 버금가는 작화와 미술이라 하겠는데, '폭렬헌터(1995)', '펫숍 오브 호러즈(1999)', '쵸빗츠(2002)'와 같은 TV 시리즈 부터 '뱀파이어 헌터 D 블러드러스트(2000)', '하이랜더: 원수를 찾아서(2007)' 등 내노라하는 작품들에서 활약한 매드하우스의 A급 작화가 아베 히사시가 참여하여 뛰어난 퀄리티로 재탄생되었다. 각본에는 역시 매드하우스 소속으로 '마스터 키튼(1988)', '몬스터(2004)', '딸기100%(2005)', '건슬링거 걸 IL TEATRINO(2008)', '라이브 온 CARDLIVER조(2009)'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한 우라하다 타츠히코가 참여하고, '버블검 크라이시스 8편(1991)', '사일런트 뫼비우스(1991,1992)'에서 미술을 담당한 히라키 노리히로가 미술을 맡는 등, 전반적으로 평범한 OVA의 수준을 넘어서는 스탭진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공작의 누나로, 공작의 수호신인 공작명왕과 함께 최강의 마신으로 손꼽히는 천사왕의 현신 토모코가 등장하는 공작왕 최후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린타로 감독만의 독자적인 재해석이 들어갔다. 원작의 하드고어함과 강렬한 액션보다는 이야기에 중점을 둔 작품으로 거듭났으며, 여기에 용배라 불리는 아티팩트를 손에 넣기 위한 나치잔당, 밀법승과 중국의 선도까지 가세하여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특히, 용배를 찾는 나치 잔당의 모습은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을 연상시키며, 도입부에서 용배를 탈취하는 나치의 수하는 인디아나 존스 1편인 '레이더스 오브 더 로스트 아크(1981)'에서 로널드 레이시가 분한 나치 장교 토트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는 다소 부족한 작품이었지만 영상미나 드라마 등 공작왕의 라스트를 장식하는데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는 수준급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사이트>

[1] 孔雀王, Wikipedia Japan
[2] 孔雀王 鬼還祭 (1988), allcinema.net
[3] 孔雀王2 幻影城 (1989), allcinema.net
[4] 孔雀王3 櫻花豊穣 (1991), allcinema.net
[5] 真・孔雀王 (1994), allcinema.net
[6] 공작왕, 엔하위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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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극장 아니메 시리즈>

1.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1979)
2.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1984)
3. 명탐정 홈즈 (1984)
4.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5. 이웃집 토토로 (1988)
6.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7. 붉은 돼지 (1992)
8. 원령공주 (1997)
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10.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11. 벼랑위의 포뇨 (2008)
12. 바람이 분다 (2013)

이웃집 토토로 (1988), となりのトトロ / My Neighborhood Totoro


ⓒ 二馬力 · 徳間書店


<정보>

◈ 원작/감독/각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 작화감독: 사토 요시하루(佐藤好春)
◈ 미술감독: 오가 카즈오(男鹿和雄)
◈ 원화: 단나이 츠카사(丹内司), 오츠카 신지(大塚伸治), 카나다 요시노리(金田伊功), 콘도 카즈야(近藤勝也)
◈ 음악/노래: 히사이시 조(久石譲) / 이노우에 아즈미(井上あずみ)
◈ 기획/제작: 야마시타 타츠미(山下辰巳), 오카다 히데오(尾形英夫) / 도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
◈ 프로듀서: 하라 토오루(原徹)
◈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도쿠마 서점
◈ 저작권: ⓒ 二馬力 · 徳間書店
◈ 일자: 1988.04.16
◈ 장르: 드라마, 모험,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G)


<시놉시스>

때는 1950년대의 일본,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대신하여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의젓한 소학교 6학년 소녀 쿠사가베 사츠키는 호기심 많은 동생 메이와 고고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곧 퇴원할 엄마를 위해 물 맑고 공기 좋은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사짐과 함께 털털 거리며 굴러가는 작은 고물 삼륜차에 몸을 싣고 꼬불꼬불한 논길을 거쳐 다다른 시골. 나무들이 우거진 터널 같은 계단을 지나 넓은 언덕 위에 새로운 집이 사츠키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들떠하는 사츠키와 메이.

근처의 거대한 녹나무가 보이는 뜰과 동화속 존재인 마쿠로쿠로스케가 존재하는 듯한 시골집은 전원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정취를 풍기고 있어 사츠키와 메이에게는 따사로우면서도 왠지 모를 위화감이 으스스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사츠키가 학교에 가고, 아빠가 일을 하고 있는 어느 화창한 오후, 혼자서 집주변을 살펴보며 자연과 벗삼아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던 메이는 생전 처음보는 희한한 모양의 동물(?)을 발견하고 뒤를 쫓던 도중 녹나무 밑의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마는데...


<소개>

스튜디오 지브리의 두번째 극장 아니메(동시 상영으로 제작된 '반딧불의 묘(1988)'가 있으니 둘 다 지브리의 두번째 극장 아니메라 보면 될 듯. 지금에서야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지브리 아니메로 여기지만, 원래 나우시카는 지브리가 창립하기 전 탑 크래프트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지브리의 탄생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네번째 극장 아니메. 이제는 지브리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이자 하나의 정체성으로 여겨지는, 일본 아니메의 대표적인 캐릭터이자 아이콘인 토토로를 주인공로 한 작품으로, 상영 당시만 하더라도 그 파급력은 미비했었다. 지브리 사상 최저 흥행성적을 거둬들인 '천공의 성 라퓨타(1986)'보다 살짝 앞선 약 5.9억엔의 수입(라퓨타는 약 5.8억엔)과 8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니 지금의 네임밸류에 비하면 무척 초라한 성적을 거둔 셈.

토토로의 기원은 사실 197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에이 동화를 떠나 A 프로덕션(現 신에이 동화)에 입사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A 프로덕션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도쿄무비신사의 극장 아니메를 하청받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아기 팬더와 아빠 팬더가 등장하는 작품을 생각해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토토로의 원형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 당시 제작된 도쿄무비신사의 '팬더와 아기팬더(1972)'의 팬더는 생김새나 표정 등이 토토로와 무척 흡사하였으며 주인공 여자아이인 미미코는 토토로의 주인공인 사츠키와 메이를 섞어 놓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 팬더와 아기팬더(パンダコパンダ) 1972 1972 by 캅셀 (보러가기)

토토로의 초기 기획서가 미야자키에 의해 스폰서인 도쿠마 서점에 제출될 때만 하더라도 도쿠마 서점은 이 기획안을 그다지 마뜩치 않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시대 배경도 너무 오래된 옛날인데다가 스케일이나 드라마성이 전작인 나우시카나 라퓨타에 비해 너무 소박하고 밋밋해서 흥행하기에는 뭔가 한 방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기획된 작품의 러닝타임도 6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단독 상영으로는 다소 어정쩡한 길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 물꼬는 의외의 방향에서 터졌다. 당시 지브리에서 기획 중이던 또다른 극장 아니메 반딧불의 묘 역시 60분 정도 밖에 안되는 러닝 타임이었기에 이 두 작품을 동시상영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이로 인해 극적으로 토토로는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다만 후일 제작 과정 중에서 반딧불의 묘나 토토로나 모두 9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가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태어나게 된다.

반딧불의 묘에 지브리의 A급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한데다가 스튜디오마저 이들이 쓰고 있었기에 토토로의 제작은 신설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으며, 스탭 역시 반딧불의 묘에 비해서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인재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본 작품을 통해 지브리와 첫 만남을 갖게 된 미술감독 오가 카즈오의 경우는 일본 아니메 양대 거장 미술감독으로 불리는 코바야시 시치로와 무쿠오 다카무라 둘 모두를 스승으로 모셨던 인물로서, 그 천부적인 감각으로 인해 완벽주의자인 미야자키에게마저 극찬을 받기 이른다. 실제 토토로에서 보여준 카즈오의 미술은 20여년 전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푸르렀으며, 그때까지 지브리의 미술을 이끌고 있던 야마모토 니죠(당시에는 반딧불의 묘에서 미술감독을 역임)와 비교했을 때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반딧불의 묘에 비해 애니메이터의 진용이 다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토토로의 미술적 가치는 지브리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겠다.

50년대 일본의 농촌생활을 묘사한 작품의 디테일은 역시 미야자키답게 명불허전이다. 상당히 세심한 디테일까지 신경을 쓴 결과 도저히 아동용 만화영화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한 느낌이 전달되는 것은 이제까지도 유효한 지브리의 대표적인 스타일이다. 특히, 그 때까지만 해도 주로 유럽의 전원적 정취를 묘사하면서 일부 팬들로부터 백인우월주의자라는 편견을 들어왔던 미야자키가 일본의 전통적인 생활상이 물씬 풍기는 작품을 연출함으로써 그러한 일각의 편견을 일축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연출한 작품 중 일본적 배경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나 '원령공주(1997)'가 역대 극장 아니메 랭킹 1위와 3위에 올라있는 것은 미야자키가 동양적이고 일본적인 가치관의 표현에 있어서도 높은 내공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살던 주인공 소녀가 시골로 이사를 와 신비한 현상을 겪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 전개는 후일 미야자키 최고의 히트작 센과 치히로...와 동일한 스타트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사츠키와 메이, 그리고 잔잔한 극의 분위기는 다소 어둡고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여었던 센과 치히로...에 비해 낙관적이고 유아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삼륜차나 수도 펌프 등은 과거 한국에서도 70년대까지는 볼 수 있었던 것들로, 우리의 역사 중 일부가 일본과 좋지 않은 형태로 얽혀 있던 지난 시절의 잔재를 느낄 수 있다 하겠다. 다만 동시 상영으로 방영되었던 반딧불의 묘가 태평양 전쟁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국내 팬들에게 반일 감정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토토로의 경우는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아이템과 소소한 생활 스타일을 제외하고는 민족주의적 편향이나 왜곡된 역사적 관점을 거의 느낄 수가 없는 소박한 작품이기에 이러한 역사적 유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편이다.

극장에서는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지만 TV 방영시에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기록했다. 방송 때마다 시청률은 20% 안팎을 기록할 정도로, 이는 전작인 라퓨타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일어났던 현상이기도 하다. 토토로의 봉제인형도 큰 인기를 끌어 1991년 당시 판매 개수는 약 210만개에 이르기도 했는데([1], [3] 참조) 이는 지브리의 캐릭터가 시장에서 통한 최초의 사례로, 토토로에 이르러 캐릭터 사업이 지브리의 고정적인 수입원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비디오나 DVD로도 쾌조의 순항을 지속하였으며, 모 공원에서는 작품에 등장하였던 사츠키와 메이의 시골집이 실제로 재현되기에까지 이른다. 명실공히 지브리와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평단의 찬사도 줄을 이었다 방영해인 1988년 일본의 저명한 영화잡지 키네마준보 베스트 10에서 일본영화 베스트 10 1위를 차지했으며, 독자선정 일본 영화 베스트 1위, 독자선정 일본영화 감독상 등 그해의 일본 실사영화들을 모두 제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또한 마이니치 영화콩쿨 일본영화 대상, 제6회 일본 애니메이션 대상·아톰상 최우수 작품상/각본부분 최우수상/미술부문 최우수상/주제가부문최우수상, 제20회 성운상 미디어부분 수상 등 수상경력 역시 화려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계속적인 극장흥행 부진은 지브리와 미야자키의 불안요인이기도 했다. 나우시카를 통해 뭔가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건만 흥행은 계속 저조한 상황에 흐르고 있었고, 지브리에게는 무언가 결정적으로 큰 한방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 二馬力 · 徳間書店


<참고 사이트>

[1] となりのトトロ, Wikipedia Japan
[2] となりのトトロ, allcinema.net
[3] 이웃집 토토로, 위키피디아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二馬力 · 徳間書店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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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수도시 (1987), 妖獣都市 / Wicked City


ⓒ 菊地秀行 · 徳間書店 · ビデオアート · JAP Home Video


<정보>

◈ 원작: 키쿠치 히데유키(菊地秀行)
◈ 감독/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카와지리 요시아키(川尻善昭)
◈ 각본: 쵸우 키세이(長希星)
◈ 설정: 마루야마 마사오(丸山正雄)
◈ 미술감독: 오가 카즈오(男鹿和雄)
◈ 음악/노래: 쇼지 오사무(東海林修) / 토야마 히토미(当山ひとみ)
◈ 제작/프로듀서: 스미 즈타다오(升水惟雄), 쿠리 고스케(久里耕介) / 쿠라타 켄지(倉田研次), 세야 진(瀬谷慎)
◈ 제작사: 매드하우스, 재팬 홈비디오, 조이파크 필름(극장 배급)
◈ 저작권: ⓒ 菊地秀行 · 徳間書店 · ビデオアート · JAP Home Video
◈ 일자: 1987.04.25
◈ 장르: 고어, 성인, 액션, 판타지, 호러
◈ 구분/등급: OVA, 극장판 / 미성년자 관람불가 (NC-17)


<시놉시스>

인간들이 사는 인간계와 마족이 사는 마계가 공존하는 세상,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고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기로 한 인간계와 마계는 500년마다 이 조약을 갱신하고 있다. 올해가 바로 그 500년의 주기가 돌아오는 해. 인간계의 A클래스 어둠의 경호원 타키 렌자부로는 오랫동안의 노력 끝에 미모의 바텐더 카나코를 유혹하여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타키와 카나코의 정사가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갑자기 요기를 띄며 타키를 공격하는 카나코. 그녀의 정체는 카나코가 아니라 카나코의 모습을 한 마계의 암살자였다. 500년 동안의 평화를 무시하는 듯 등장한 마계의 암살자, 타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타키에게 마계와의 평화조약을 위해 바티칸에서 파견된 마도사 쥬세페를 경호하라는 임무가 내려진다. 공항으로 쥬세페를 마중 나간 타키에게 이번에도 마계의 암살자들이 기습공격을 가해오고 위기일발의 순간, 미모의 여성 경호원이 나타나 타키를 도와준다. 그녀의 이름은 마키에, 쥬세페의 경호를 위해 마계에서 파견된 어둠의 경호원이다. 타키와 마키에는 이 일련의 사건들이 평화조약의 핵심인물인 쥬세페를 해하려는 음모로 단정짓게 되는데...


<소개>

'하드 고어 아니메의 대가', '폭력미학의 귀재', '아니메의 쿠엔틴 타란티노(는 엘로스가 붙인 별명)' 카와지리 요시아키의 첫번째 히트작. 수위 높은 폭력씬과 에로티시즘이 가미된 OVA로, 극장시장이 아닌 비디오 시장을 노린 B급 호러 판타지 액션물이었지만, B급을 뛰어넘는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력으로 인해 극장에서까지 상영되며 카와지리 요시아키를 일약 떠오르는 아니메의 신예 연출가로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무시 프로덕션과 매드하우스를 중심으로 '만화일본 옛날이야기(1975)', '에니메이션 기행 마르코폴로의 모험(1979)', '유니코(1981)', '유니코 마법의 섬에(1983)', '환마대전(1982)' 등의 작품에 참여해오던 카와지리는 1984년 CG 애니메이션 'SF 신세기 렌즈맨(1984)'을 통해 연출가로 뒤늦은 신고식을 올리게 되었으나, 기대 이하의 흥행으로 인해 큰 좌절을 겪게 된다. 그것은 당시 렌즈맨이라는 작품에 애초부터 카와지리가 감독으로 내정된 것이 아니라 제작 사정으로 인해 뒤늦게 연출로 참여한데다가 공동감독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에 그만의 스타일을 발휘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하겠다.

렌즈맨으로부터 3년 뒤 카와지리는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한편의 작품에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공포소설의 대가 키쿠치 히데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요수도시(1987)'이다. 작품의 전반적인 배경은 키쿠치 히데유키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러브 크래프트의 세계관을 토대로 한 기괴하고 요사스러운 색체를 띄고 있다. 뇌쇄적이 미녀가 일순간에 징그럽고 흉측한 거미로 변한다든지, 사람의 피부가 벗겨지며 본색을 드러내는 요괴, 잘려진 머리가 괴물로 변하는 시퀀스 등은 실로 만화영화의 상상력을 어두운 방향으로 최대한 발휘해낸 기기묘묘한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카와지리 특유의 요사스러운 캐릭터 디자인이 가해져 작품의 전반적인 느낌은 음산하고 징그러우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공포스러운 괴물들의 묘사도 그렇지만, 이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연출력도 발군이다. 그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리미티드 아니메의 대가 린 타로로부터 배운 듯한 적절한 광원효과의 사용으로, 작품의 긴장감이나 서스펜스를 배가시켰으며, 슬로우 모션과 줌인/아웃 등의 기법으로 다이나믹함을 극대화한 액션연출은 세밀한 움직임 묘사가 부족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극복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묘사를 화면에 수놓고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블랙컬러를 사용하여 어두운 작품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상황에 따라 하드한 액션이 펼쳐지는 부분에서는 블루톤으로, 에로티시즘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레드톤으로 분위기를 표현하는 등, 색체 설계에 있어서도 기존의 아니메와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

ⓒ 菊地秀行 · 徳間書店 · ビデオアート · JAP Home Video

폭력과 선정성이라는 만화영화로서는 금기사항에 가까운 두가지 요소를 사용한 B급 호러 판타지 액션물임에도 불구하고 연출과 미술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완성도와 퀄리티를 자랑하는 이 작품은 이후에도 카와지리 요시아키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되며, 이후 '키쿠치 히데유키-카와지리 요시아키'라는 황금콤비의 결성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단, 이 강렬한 카와지리/키쿠치 식 호러판타지는 이후 카와지리 감독의 일종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뛰어난 영상미에 비해 단순명료한 스토리, 폭력과 에로티시즘으로만 카와지리를 평가하게 되는 편협된 선입견의 제공 등 비슷한 연배의 오시이 마모루, 오토모 가츠히로와 함께 해외에서도 이름 높은 아니메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세계는 앞선 두 감독의 작품에 비해 아무래도 저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제5회 일본 아니메 대상OVA 부분 작품상, 연출상 수상작. 1992년에는 당시 홍콩 최고의 흥행감독이던 서극 감독에 의해 실사영화로도 제작된다.


<참고 사이트>

[1] 妖獣都市, Wikipedia Japan
[2] 妖獣都市(1987), allcinema.net
[2] 요수도시(妖獣都市) 1987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菊地秀行 · 徳間書店 · ビデオアート · JAP Home Video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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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극장 아니메 시리즈>

1.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1979)
2.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1984)
3. 명탐정 홈즈 (1984)
4.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5. 이웃집 토토로 (1988)
6.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7. 붉은 돼지 (1992)
8. 원령공주 (1997)
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10.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11. 벼랑위의 포뇨 (2008)
12. 바람이 분다 (2013)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天空の城ラピュタ / Castle in the Sky 


ⓒ 二馬力 · 徳間書店


<정보>

◈ 원작/감독/각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 작화감독: 탄나이 츠카사(丹内司)
◈ 미술감독: 야마모토 니죠(山本二三), 노자키 토시로(野崎俊郎)
◈ 원화두목: 카나다 요시노리(金田伊功)
◈ 원화: 마에다 마히로(前田真宏), 코사카 키타로(高坂希太郎), 콘도 카츠야(近藤勝也), 나쿠라 야스히로(名倉靖博)
◈ 음악/노래: 히사이시 조(久石譲) / 이노우에 마즈미(井上杏美)
◈ 프로듀서: 타카하타 이사오(高畑勲)
◈ 기획/제작: 야마시타 타츠미(山下辰巳), 오가타 히데오(尾形英夫) / 토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
◈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 저작권: ⓒ 二馬力 · 徳間書店
◈ 일자: 1986.08.02
◈ 장르: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시놉시스>

어두운 밤 한 척의 비행선이 하늘을 날고 있다. 정부 비밀조사단 소속의 이 비행선에는 묘령의 소녀가 갖혀 있었는데, 조사단 소속의 한 남자에게 무언가를 말하라는 위협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이 비행선을 공적(하늘의 도적) 도라 일당이 습격한다. 이들의 목적은 예의 그 소녀. 혼란을 틈타 소녀는 자신을 위협하던 그 남자의 옷주머니에서 펜던트를 빼앗은 뒤 비행선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해적과 조사단의 사이에서 위태하게 비행선 벽에 매달려 있던 소녀는 발을 헏디디는 바람에 그만 비행선에서 떨어져 지상으로 추락하고...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는 소녀는 이내 정신을 잃고 말지만,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만다. 소녀의 목에 걸린 펜던트가 강렬하도록 눈부신 푸른 빛을 내뿜자 소녀는 이내 그 빛에 감싸이면서 낙하하는 속도가 줄어들어 마치 깃털이 땅위로 내려앉듯 천천히 하강하게 된 것이다.

한편, 광산마을에서 견습기계공으로 사는 씩씩한 고아소년 파즈는 저녁 야식을 준비하러 바깥에 나오는 순간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하늘에서 왠 푸른 빛에 감싸인 무언가가 내려오는 것을 본 것이다. 푸른 빛에 다가간 파즈는 이내 그것이 한 소녀임을 알아보게 된다. 떨어지는 소녀를 붙잡은 파즈. 펜던트의 빛이 서서히 꺼지자 깃털처럼 가볍던 소녀가 갑자기 본래의 무게를 되찾고 만다. 가까스로 소녀를 구한 파즈. 과연 이 소녀는 누구이며, 펜던트가 가진 비밀은 무엇일까.


<소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에 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번째 극장 아니메. 토쿠마 서점의 출자로, 85년 6월에 창립된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번째 극장 아니메로써, 후일 지브리의 신화의 서막을 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늘에 떠있는 신비의 도시 라퓨타를 무대로 하여 판타지와 스팀펑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세계가 일품이며, 하늘을 향한 동경, 기술 문명주의에 대한 경고, 유럽식 목가생활의 정겨운 묘사, 페미니스트적인 캐릭터 설정 등 나우시카에 이어 미야자키식 스타일을 다시 한 번 정립한 작품이다. 다만, 메시지에 좀 더 치중했던 나우시카와 달리 라퓨타는 어드벤쳐에 중점을 둔 미야자키식 오락물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작품으로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토쿠마 서점의 기획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를 모델로 하고 있으나, 하늘을 나는 섬이라는 컨셉 외에는 걸리버 여행기와 큰 유사한 점은 없다. 오히려 캐릭터나 일부 전개는 미야자키의 전작 '미래소년 코난(1978)'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라퓨타로 가는 열쇠와 그 비밀을 간직한 소녀 시타는 태양 에너지의 비밀을 알고 있는 라오 박사의 손녀 라나를 연상시키며, 시타와 함께 험난한 모험에 뛰어든 소년 파즈는 역시 라나를 지켜주는 괴력의 소년 코난을 생각나게 한다. 여기에 라퓨타를 손에 넣으려하는 무스카는 인더스트리아의 행정국장 레프카를, 공적인 도라 일당은 다이스 선장과 바라쿠다호의 선원들과 비교된다. 라스트에 라퓨타를 손에 넣은 무스카에 대항하여 맨몸으로 싸우는 파즈의 모습은 거대 비행선 기간트를 손에 넣은 무스카와 기간트에게 맨몸으로 대적하는 코난과 유사하다.

어드벤쳐로서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다. 스팀펑크적인 설정들이 적용된 도라 일당의 비행기와 비행선 타이거모스는 이전까지 보여준 미야자키의 메카닉과는 또다른 서민적인(?) 맛이 살아 있는데, 특히 겉으로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적이지만 실상은 비행선 안에서 빨래하고 요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적이면서도 코믹한 매력이 있다. 타이거모스의 여자두목 도라의 경우는 미야자키의 모친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후일 이들 공적의 모습은 미야자키의 '붉은 돼지(1992)'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할 뿐만 아니라 '라스트 엑자일(2003)', '교향시편 에우레카 7(2005)', '망념의 잠드(2008)' 등을 통해 다른 형태로 여러번 오마쥬되기도 한다. 

☞ 하늘의 로망 공적, 그 흔적을 찾아서 (바로가기)

히로인인 시타는 나우시카와는 달리 좀 더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는 전작 코난의 라나나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의 클라리스로 이어지는 미야자키식 히로인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본작에서 어린 소녀인 시타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는 공적들의 모습에서는 왠지 모르게 미야자키의 로리타적 취향이 느낄 수 있다고 하겠다. 이와 함께 라스트에 펼쳐지는 무차별한 인명살상 장면 역시 전 연령가 가족 만화영화로서는 다소 적절치 못한 장면이 아닌가 싶은데, 직접적인 살상장면의 묘사는 없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대량살상 장면은 후일 미야자키가 감독한 뮤직비디오 'On Your Mark(1995)'에서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다.

고대 초문명의 비밀을 간직한 소녀, 그리고 그녀를 도와주는 정의감 넘치는 소년, 그들을 쫓는 비밀 조직 등 라퓨타의 일련의 테마는 안노 히데아키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1990)'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는 애초에 TV 시리즈로 제작할 목적으로 미야자키가 NHK에 제출했던 기획안이 실현되지 못하자 이를 미야자키가 라퓨타의 스토리 원안으로 가져다 쓴 것을 십수년이 흐른 뒤 자사에 남아있던 미야자키의 기획안을 바탕으로 NHK가 가이낙스에게 작품을 의뢰했기 때문이었다. 

ⓒ 二馬力 · 徳間書店

엔터테인먼트와 교훈적 측면에서 적절한 밸런스를 갖춘 수작이지만 흥행은 기대 이하로 저조했다. 라퓨타가 벌어들인 흥행수익 5.83억엔([4] 참조)는 지브리 역대 흥행성적 중 가장 낮은 것이기도. 이는 당시 미야자키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네임밸류가 그만큼 대중들에게는 생소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낮은 흥행성적과는 달리 애프터 마켓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는데, 1988년의 니혼 TV 방송에서는 12.2%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1989년의 금요 로드쇼에서는 22.6%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TV 재방송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비디오 소프트 시장에서도 선전하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 셀러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여기에 제41회 마이니치 영화 콩쿨 오후지 노부로 상, 제9회 월간 아니메쥬 아니메 그랑프리 작품상, 제4회 일본 아니메 페스티벌 아니메 대상/아톰상/미술부분 최우수 상 등 86년도의 숱한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나우시카에 이어 다시 한 번 작품성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여기에 키네마 준보 86년도 베스트 10 일본 영화 8위/독자선정 일본영화 2위에 오르는 등, 저조한 흥행성적과 달리 평단과 관객은 라퓨타의 진가를 인정해준 셈이었다.([1] 참조)

일본 내에서의 극찬을 받으며 89년에는 스트림라인 픽쳐스를 통해 영국에서, 2003년에는 디즈니를 통해 미국에서 개봉되었다. 미국 개봉당시에는 원제인 라퓨타가 스페인어로 창녀를 의미한다는 지적이 있어 'Castle in the Sky'로 제목이 변경된다. 2004년 4월30일에는 CJ를 통해 한국에서도 개봉되었으나 흥행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못했다. 영화의 완성도나 모든 면에서 탑클래스의 수작임에는 분명하지만 왠지 모르게 극장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 사이트>

[1] 天空の城ラピュタ, Wikipedia
[2] 天空の城ラピュタ(1986), allcinema.net
[3] 천공의 성 라퓨타, 엔하위키 미러
[4]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二馬力 · 徳間書店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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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다리아 (1986), 童話めいた戦史 ウインダリア / Windaria


ⓒ あいどる · カナメプロダクション


<정보>

◈ 원작/각본: 후지카와 케이스케(藤川桂介)
◈ 감독: 유야마 쿠니히코(湯山邦彦)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이노마타 무츠미(いのまたむつみ)
◈ 메카닉 디자인: 코하라 쇼헤이(小原渉平), 토요마스 타카히로(豊増隆寛), 사토 토모히코(佐藤智彦)
◈ 애니메이션 코디네이터: 카게야마 시게노리(影山楙倫)
◈ 미술감독: 카츠마타 게키(勝又激)
◈ 레이아웃: 하야시 타카푸미(林隆文), 모우리 카즈아키(毛利和昭)
◈ 메인 애니메이터: 이노마타 무츠미, 카게야마 시게노리, 모우리 카즈아키, 무라나카 히로미, 고바야시 토시미츠, 고다 히로아키 外
◈ 음악/노래: 유키 사토시(門倉聡) / 아라이 아키노(新居昭乃)
◈ 기획/제작: 오노데라 슈이치(小野寺脩一), 나가오 아키히로(長尾聡浩)
◈ 제작사: 카나메 프로덕션(カナメプロダクション), Idol(あいどる)
◈ 저작권: ⓒ あいどる · カナメプロダクション
◈ 일자: 1986.07.19
◈ 장르: 드라마, 로맨스,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중학생 이상 관람가 (PG-13)


<시놉시스>

북쪽의 왕국 파로와 남쪽의 왕국 이사의 중간에 위치한 작은 마을 윈다리아. 이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붉은 빛을 발하는 새가 되어 하늘로 승천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즈는 심성이 고운 아내 마린과 함께 윈다리아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으나, 파로와 이사의 전쟁이 발발하자 마린의 근심을 뒤로 한 체 출세를 위해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게 된다.

한편, 파로의 왕자 지르와 이사의 공주 아사나는 서로가 깊이 사랑하는 사이. 둘은 양국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동분서주하지만, 운명을 결국 둘을 전쟁터로 이끌게 된다. 전장에서 서로가 적으로 만나는 지르와 아사나. 한편, 이사의 편에서 싸우던 이즈는 출세와 탐욕에 눈이 멀어 파로의 스파이가 되고 만다. 마린은 잊어버린체 사치와 향락에 젖어버린 이즈. 그러나 그의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소개>

일본을 대표하는 미형 캐릭터 디자이너 이노마타 무츠미의 아름다운 캐릭터가 빛을 발한 작품으로, 카나메 프로덕션의 첫번째 극장 아니메가 되겠다. 카나메 프로덕션의 'BIRTH(1983)'는 극장 개봉작이긴 하지만, 이는 OVA로 제작된 작품을 극장에서 개봉한 사례(이런 사례 중에서는 BIRTH가 첫번째에 해당)인지라 온전한 극장용 아니메로는 윈다리아가 그들의 첫 작품인 셈이다. '환몽전기 레다(1985)'를 통해 유명세를 탄 이노마타 무츠미의 캐릭터는 윈다리아에 이르러 더더욱 세련되고 미형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전형적인 눈 크고 입 작은 일본식 미형 캐릭터지만, 무츠미의 캐릭터는 그렇고 그런 여느 아니메 캐릭터의 수준을 넘어서는 미학적인 포스가 느껴진다. 동시대에 그 정도의 아우라를 지닌 캐릭터를 그릴 수 있는 여성 디자이너는 '오렌지로드(1987)'의 다카타 아케미 정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둘 모두 소설 삽화와 일러스트로도큰 인지도를 얻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한다 하겠다.)

TV 시리즈 한 편과 서너 편의 OVA가 고작인 소규모 제작사 카나메 프로덕션으로서 당시 극장용 아니메의 도전은 상당한 모험이 뒤따르는 것이었다. 극장 아니메 제작을 위해 카나메 프로덕션은 '마징가 Z(1972)'부터 '우주전함 야마토(1974)', '은하철도 999(1978)' 등 숱한 히트 아니메의 각본을 집필해온 소설가 겸 방송작가인 후지카와 케이스케에게 각본을 부탁했으며, 그로 인해 중세 유럽 판타지 풍의 배경 위에 스팀펑크 적인 메카닉이 등장하는 신비로운 세상과, 엇갈리는 두 쌍의 남녀 커플 간의 애틋한 사랑, 그리고 비극적인 드라마가 조합된 한 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다.

ⓒ あいどる · カナメプロダクション

애초에 윈다리아는 3편의 옴니버스 형태로 카나메 프로덕션 내에서 3개의 팀으로 나뉘어 각 에피소드를 담당하는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1] 참조), 결국에는 1편의 극장용 아니메로 완성된다. 윈다리아는 바로 이 3개의 에피소드 중 세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감독은 유야마 쿠니히코로 이노마타 무츠미와의 세번째 감독&작화감독 콤비작이기도 하다.(물론, 이전 아시 프로덕션 때의 몇몇 작품에서도 같이 작품에 참여한 적은 있다.) 이미 '요술 공주 밍키(1982)'를 통해 드라마틱한 결말을 보여주었던 유야마 감독은 본작에서 또 한번 드라마틱하면서도 비극적인 로맨스를 연출하게 된다. 여기에 무츠미의 아름다운 캐릭터가 더해져 감정의 이입이 더더욱 극대화되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비극적인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마니아적인 색체를 갖고 있는 카나메 프로덕션의 취향은 완전히 억제되지 않아, 중간중간 등장하는 독특한 형태의 메카닉에서 이러한 욕구들이 분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내용 전개와는 큰 상관이 없는 이러한 메카닉 소품의 등장은 역시 제작사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 이즈 역은 아무로 레이의 성우 후루야 토오루가 맡았는데, 후일 이노마타 무츠미가 삽화를 맡은 후지카와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우주황자(1989)' 극장 아니메에서도 다시 한 번 주인공 역으로 캐스팅 되기도 한다. 80년대를 대표하는 완성도 높은 극장 아니메를 만들면서 위상을 드높인 카나메 프로덕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몇 년 뒤 역사 속으로 묻히고 만다.


<참고 사이트>

[1] ウインダリア, Wikipedia Japan
[2] ウインダリア, allcinema.net
[3] 윈다리아, 엔하위키 미러
[4] 윈다리아(ウインダリア)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あいどる · カナメプロダクション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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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온 (1986), アリオン / Arion


ⓒ 安彦良和 · THMS


<정보>

◈ 원작/감독/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 (安彦良和)
◈ 각본: 야스히코 요시카즈, 타나카 아키코 (田中晶子)
◈ 미술감독: 카네코 히데토시 (金子英俊)
◈ 디자인 협력: 야마기시 료코 (山岸凉子)
◈ 작화감독 보좌: 타카하시 쿠미코 (高橋久美子), 오오하시 요시미츠 (大橋誉志光)
◈ 원화: 시오야마 노리오 (塩山紀生), 카미무라 사치코 (神村幸子), 카나야마 아키히로 (金山明博), 치기라 코이치 (千明孝一), 토키테 츠카사 (土器手司) 外  
◈ 음악/노래: 히사이시 조 (久石譲) / 고토 쿄코 (後藤恭子)
◈ 구성: 카와마타 치아키 (川又千秋)
◈ 기획/제작: 토쿠마 서점 (徳間書店), 선라이즈 / 오가타 히데오 (尾形英夫), 나카가와 히로노리 (中川宏徳), 야마다 테츠히사 (山田哲久)
◈ 제작사: 선라이즈, 토호 (배급)
◈ 저작권: ⓒ 安彦良和 · THMS
◈ 일자: 1986.03.15
◈ 장르: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중학생 이상 관람가 (PG-13)


<시놉시스>

앞을 못보는 어머니 데메테르와 함께 살고 있는 밝고 명랑한 소년 아리온. 사실 아리온은 풍요의 여신으로 불리웠던 어머니 데메테르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모종의 이유로 두 모자는 제우스의 감시 아래 인간 세상과 떨어져 신계(神界)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날 무섭게 생긴 한 사나이가 아리온과 데메테르를 찾아온다. 데메테르에게 세상으로 나올 것을 권유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데메테르는 단호하게 이를 거절하지만, 사나이는 데메테르의 눈을 낫게 해주는 약초를 찾자며 아리온을 속여 인간계로 도망친다. 이 사나이의 정체는 하데스. 제우스의 형으로 동생 제우스와 포세이돈에게 하늘과 바다를 빼앗기고 저승을 다스리는 신세로 전락한 하데스는 이에 앙심을 품고 포세이돈의 아들인 아리온을 이용해 제우스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소개>

토쿠마 서점의 만화잡지 '류'에서 연재되고 있던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 '크러셔 죠(1983)'에 이은 야스히코의 두번째 극장 아니메이며, TV 시리즈 '거신 고그(1984)'를 포함하면 그가 세번째로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앞선 두 작품에 이어 이번에도 원작과 감독, 각본,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에 이르는 원맨쇼를 펼친 작품이다. 당시의 애니메이터, 아니 현재까지 일본의 모든 애니메이터를 통틀어 이 정도의 원맨쇼를 펼칠 수 있는 인물은 야스히코 외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신카이 마코토가 유일하며,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한정하면 미야자키와 야스히코가 유일하다.

당시 카도카와 서점과 극장 아니메 시장에서 격돌하고 있던 도쿠마 서점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통해 미야자키의 잠재력을 깨달은 뒤 85년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해 미야자키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카도카와와 맞서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는지 또 한명의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할 계획을 세우는데, 그가 바로 야스히코 요시카즈인 것이다. 야스히코는 83년 크러셔 죠를 통해 카도카와가 제작한 '환마대전(1983)'과 극장시장에서 맡붙은 경험이 있었다.(결과는 환마대전의 승리) 이로 인해 도쿠마 서점은 미야자키와 야스히코라는 최고의 원투펀치를 갖추게 된 셈이다. (물론, 당시 미야자키의 네임밸류는 야스히코만큼이 아니었다. 야스히코가 스타 작화가였다면 미야자키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린 중고 신인이라고나 할까)

다만 이미 선라이즈에 둥지를 튼 야스히코이기에 애니메이션 제작은 선라이즈가 담당하게 되었고, 야스히코의 대작 극장 아니메 제작을 위해 선라이즈 유수의 애니메이터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다. 작화감독 보좌를 맡은 타카하시 쿠미코는 '기동전사 건담 UC(2010)'의 캐릭터 디자이너 겸 작화감독으로 현재까지도 야스히코와 인연을 맺고 있으며, '태양의 송곳니 다그람(1981)'과 '장갑기병 보톰즈(1983)' 등에서 총작화감독을 맡은 시오야마 노리오, '시티 헌터'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게 되는 카미무라 사치코, '무적로보 트라이더 G7(1980)', '최강로보 다이오쟈(1981)'의 총작화감독 카나야마 아키히로, 후일 '라스트 엑자일(2003)'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치기라 코이치, '더티 페어'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이너 토키테 츠카사 등 한 작품의 작화감독 급 인재들이 대거 원화맨으로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후일 '카우보이 비밥' 시리즈를 통해 아니메 일류 캐릭터 디자이너로 성장하게 되는 카와모토 토시히로가 동화 파트에 이름을 올리는 등([3] 참조), 스탭 구성은 엄청난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모두 야스히코 요시카즈라는 당대 최고의 작화가의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애니메이터들의 바람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 安彦良和 · THMS

극장 아니메의 영상미는 당대 톱클래스에 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리온 극장판의 퀄리티는 지금의 아니메와 견주어도 크게 손색이 없으며, 일부 컷은 오히려 능가하기까지 한다. 야스히코가 직접 캐릭터 디자인에 관여했기에 원작의 캐릭터는 완벽하게 스크린에 이식되었으며, 장면구성은 부드럽고 유려하다. 이 모든 것을 혼자해낸 것 만으로도 야스히코의 필력은 당대 최고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다만, 뛰어난 영상미에 비해 스토리는 흡입력이 떨어진다. 그리스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신화적 대서사시이지만 일부 이야기 흐름은 매끄럽지 못하고 갑작스런 전개들이 눈에 띈다. 신화 속 영웅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영웅으로서의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특히 하데스의 경우에는 저승의 왕이라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모양새로 신화적 품격이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일본 내 흥행수익은 총 5억 5천만엔으로 그해 영화랭킹 20위([3] 참조)에 위치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아리온과 대적하는 아폴론은 건담 시리즈에서 브라이트 노아의 성우를 맡았던 스즈오키 히로타카가, 아폴론의 누이 아테나는 제타 건담의 레코아 론드를 맡았던 카츠키 마사코, 헤라클레스는 도즐 자비 역을 맡았던 고우리 다이스케가 캐스팅 되는 등, 건담 시리즈의 목소리와 비교되는 부분은 건담의 팬들에게는 나름의 즐거움을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히사이시 조의 장엄한 음악이 멋진 비주얼과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는데, 히사이시 조가 미야자키의 작품의 단골 음악감독이기에 음악을 접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미야자키의 작품이 연상되는 데자뷰를 느낄 수도 있다. 일주일 먼저 개봉된 '세기말 구세주 전설 북두의 권(1986)' 극장판에는 주인공 아리온이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하는데, 이는 두 작품이 같은 배급사인 토호를 통해 상영되면서 제작진의 센스가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북두의 권 극장판에는 '뱀파이어 헌터 D(1985)'의 주인공 D도 까메오로 등장한다.)

아리온은 야스히코 자신에게 있어서도 그가 직접 원작을 맡고 작화를 그린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스스로 원작 코믹스를 집필하고 이를 극장 아니메로 만들어 직접 감독에 각본과 같은 여러 주요작업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아리온은 미야자키의 나우시카와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사이트>

[1] アリオン, Wikipedia Japan
[2] ネオ・ヒロイック・ファンタジア アリオン, allcinema.net
[3] 아리온(アリオン)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安彦良和 · THM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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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알 (1985), 天使のたまご / Angel's Egg



<정보>

◈ 원안: 오시이 마모루 (押井守), 아마노 요시타카 (天野喜孝)
◈ 감독/각본: 오시이 마모루
◈ 캐릭터 디자인/미술설정 (아트 디렉션): 아마노 요시타카
◈ 작화감독: 나쿠라 야스히로 (名倉靖博)
◈ 미술감독/레이아웃 감수: 고바야시 시치로 (小林七郎)
◈ 음악: 칸노 요시히로 (菅野由弘)
◈ 기획/제작: 야마시타 타츠미 (山下辰巳), 오가타 히데오 (尾形英夫) / 도쿠마 야스요시 (徳間康快)
◈ 제작사: 스튜디오 딘
◈ 저작권: ⓒ 현재 저작권 불명
◈ 일자: 1985.12.22
◈ 장르: 컬트, 판타지
◈ 구분/등급: OVA, 극장판 / 고교생 이상 관람가 (R)


<시놉시스>

기묘한 기계구조물과 체스판처럼 생긴 대지 위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긴 기계장치를 짊어진 한 남자가 서있다. 저 멀리 거대한 구모양의 구조체가 땅으로 착지하려 한다. 요란한 기적 소리를 내뿜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상을 가진 거대한 구조체는 커다란 굉음과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땅에 내린다. 가운데에 빛나는 푸른 색의 반원이 마치 거대한 눈과도 같다.

한 소녀가 눈을 뜬다.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걸어가는 소녀. 소녀가 일어나자 이불 속에 감춰진 거대한 타조알 크기의 알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깥의 경치를 감상하던 소녀는 이내 옷을 챙겨입고, 침대 위의 알을 소중하게 안은 체 길을 떠난다. 소녀가 떠난 언덕 위에 거대한 방주 모양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소녀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그리고 소녀가 품고 있는 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소개>

후일 '아니메의 철학자'라 불리게 되는 오시이 마모루의 네번째 연출작이자 그가 연출한 최초의 OVA인 '달로스(1983)'에 이은 자신의 두번째 OVA. 아니메의 철학자라 불리는 그의 별명에 가장 걸맞는 작품 중의 하나로, 초현실적인 작품세계와 몽환적인 영상, 모호한 주제의식 등으로 지금까지도 문제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이다. '시끌별 녀석들 2 Beautiful Dreamer (1984)'에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던 오시이의 철학적 사색은 이 작품에서 폭발되었으며, 이후 다시 현실과의 접점을 찾은 듯한 모습이다.(물론, 현실과의 접점을 찾은 뒤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난해하고 사색적이다.)

사실 천사의 알은 초현실적인 컬트 장르의 작품이 아닌, 코믹하고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천사의 알을 위해 오시이는 타츠노코 프로 시절 같이 일해왔으며,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를 떠나 있던 아마노 요시타카를 영입하게 되는데, 그가 그려온 캐릭터 디자인을 본 순간 오시이는 자신의 기획안을 수정하기로 맘먹게 된다. 애니메이터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그의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오시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어떤 것을 꿈틀거리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폰서인 도쿠마 서점으로서는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다행히도(?) 그들은 애니메이션 제작 당시에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당시 아마노는 자신이 삽화 일러스트를 했던 키쿠치 히데유키의 '뱀파이어 헌터 D(1985)' OVA 쪽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뱀파이어 헌터 D의 제작난항으로 인해 천사의 알에 올인하게 된다. 덕분에 뱀파이어 헌터 D는 영상미 쪽에서는 아쉬운 작품이 되었지만.

초현실적이고 컬트적인 오시이의 작품세계를 완성시키는 작품의 비주얼리스트들은 단연 아니메 업계 최강의 아티스트들로 구성되었다. 작품의 방향성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준 아마노 요시타카가 캐릭터 디자인을 포함한 아트 디렉션을, '고깔모자의 메모루(1984)'에서 귀여우면서도 서정적인 캐릭터들을 선보였던 나쿠라 야스히로가 작화를, 여기에 아니메 최고의 미술감독 고바야시 시치로가 미술을 담당한 천사의 알은 단연 아니메 중에서 독창적인 비주얼을 선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작품세계에 어울리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안노 히데아키 역시 이 작품에 참여했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량에 기겁하여 얼마 안가 뛰쳐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2] 참조)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대사들을 엄청나게 읊어대는 근래의 오시이 작품에 비해 성우들의 대사량은 아니메 최고 수준으로 적다. 초반부와 종반부에는 거의 대사가 없다시피하며, 소녀와 정체모를 청년 둘이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만 대사가 나오는데, 이마저도 무척 짧은 편이다. 여기에다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숨막힐 정도로 긴 일부 롱테이크 샷,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전개는 무척이나 불편하다.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 오시이 감독의 작품 성향 그 극단에 다다른 작품이라 하겠다. (어제 밤에 보다가 몇 번을 졸았는지 모른다.)

노아의 방주, 타천사 루시퍼, 천사와 악마의 대화를 연상시키는 시퀀스는 기독교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나 주제의식 자체는 종교적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어려우며, 주제의식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작품이다. 애초에 오시이 감독 역시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가보다는 알 속에 무엇이 있었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는데([1] 참조), 그 역시 어떤 답안이 있다기 보다는 그저 관객의 상상과 사색에 맡기려한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라 하겠다. 

불친절하고 지나치게 사색적인 작품색깔 덕에 오시이 감독에게 한동안 감독 제의가 들어오지 않게 한 원인을 제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오시이 본인의 의지이기도 했지만, 캐릭터 디자인 하나로 감독의 작품 기획안을 바꿔버리게 했다는 점에서 아마노의 일러스트가 가진 포스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참고 사이트>

[1] 天使のたまご. Wikipedia Japan
[2] 押井守, Wikipedia Japan
[3] 天使のたまご (1985), allcinema.net
[4] 천사의 알(天使のたまご)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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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몽전기 레다 (1985), 幻夢戦記 レダ / Fantastic Adventure of Yohko


ⓒ 1985 TOHO · KANAME Production


<정보>

◈ 원안: 카나메 프로덕션 (カナメプロダクション)
◈ 감독: 유야마 쿠니히코 (湯山邦彦)
◈ 각본: 타케가미 쥰키 (武上純希), 유야마 쿠니히코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메인 애니메이터: 이노마타 무츠미 (いのまたむつみ)
◈ 메카닉 디자인: 토요마스 타카히로 (豊増隆寛)
◈ 미술감독: 시모카와 타다미 (下川忠海)
◈ 음악/노래: 사기쓰 시로 (鷺巣詩郎), 마카이노 코지 (馬飼野康二) / 아키모토 리오 (秋本理央)
◈ 기획/프로듀서: 후지와라 마사미치 (藤原正道), 카나메 프로덕션 / 나가오 아키히로 (長尾聡浩)
◈ 제작사: 카나메 프로덕션
◈ 저작권: ⓒ TOHO · KANAME Production
◈ 일자: 1985.12.21 (극장개봉일)
◈ 장르: SF,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OVA, 극장판 / 중학생 이상 관람가 (PG-13)


<시놉시스>

평범한 여고생 아사기리 요코는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피아노 곡을 완성한 그녀는 카셋트 테잎에 그 음악을 녹음하여 워크맨으로 들으면서 그에게 다가가지만, 용기가 없어 결국 그냥 그를 지나치고 만다. 그 순간, 갑작스레 이상한 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린 요코.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요코는 레다의 심장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남자의 추적을 따돌리고 가까스로 지상에 도착한다. 본적이 없는 이상한 생물들이 돌아다니는 세상. 요코는 이곳에서 말하는 개 린감을 만나 이곳이 지구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 아샨티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던 요코는 순간적으로 다시 원 세계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워크맨의 음악을 듣는 것을 멈추자 다시 아샨티로 돌아온 요코.

음악이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갑작스레 들이닥친 기계병사들에게 워크맨을 빼앗기고 만다. 이들은 바로 일전에 레다의 심장을 노리고 그녀를 붙잡으려했던 제르의 수하들. 쫓기는 요코와 린감은 마침내 제르의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맡는다. 뒷걸음 치다가 우연하게도 거대한 꽃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요코. 순간 기묘한 빛이 꽃을 감싸고 요코는 비키니 갑옷을 입은 여전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소개>

토호가 제작비를 담당하고 소규모 제작사 카나메 프로덕션이 제작한 OVA 아니메. 카나메 프로덕션은 아시 프로덕션의 젊은 애니메이터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제작사로, '프라레스 산시로(1983)', 'BIRTH(1984)' 등을 제작한 신예 제작사이다. 환몽전기 레다는 프라레스 산시로에서 함께 작업한 아시 프로덕션의 유야마 쿠니히코가 감독을 맡았고 여기에 카나메 프로덕션의 멤버 이노마타 무츠미가 산시로에 이어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담당했다. 여성 캐릭터 디자이너로서는 이례적으로 남성 아니메 마니아들의 취향에 잘 어울리는 그림체를 선보였는데, 이는 무츠미가 '우주전사 발디오스(1980)', '전국마신 고쇼군(1981)', '마경전설 아크로펀치(1982)'와 같은 일련의 로봇 아니메에서 작화를 맡아왔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순정만화스러운 크고 아름다운 눈과 미형의 얼굴, 적당히 선정적이고 세련된 의상 디자인 등, 무츠미의 캐릭터는 이후 수많은 아니메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보여주게 된다.
 
카나메 프로덕션의 전작인 BIRTH에 참여한 일본 애니메이터계의 대부 카나다 요시노리의 영향 탓인지 이 작품에서도 '카나다버스'라 불리는 카나다 특유의 역동적인 작화구도가 종종 선보인다. 다만, 전반적으로 액션의 비중의 그리 큰 작품은 아니라 몇 장면에 그치고 있다. 짧은 러닝 타임 덕에 작품의 서사는 깊이가 떨어지고, 드라마틱한 클라이막스나 강렬한 액션도 부족한 편. 다만, 미소녀, 메카, 판타지로 이어지는 오타쿠적 코드의 적절한 조합으로 인해 반응은 무척 좋았다. 초창기 OVA 중에서 손에 꼽히는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아니메 자체의 매력보다는 히로인 요코의 매력이 크게 어필한 작품이라 하겠다.

OVA 제작과 동시에 미디어 믹스의 일환으로 소설판도 동시에 등장한다. 소설은 인기 호러 소설가 키쿠치 히데유키에게 맡기게 되는데, 이 결과 키쿠치 히데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뱀파이어 헌터 D(1985)' OVA의 극장개봉시 동시 상영되기도. 소설판의 일러스트는 역시 이노마타 무츠미가 맡았다. 또한 동시기의 베스트셀러 OVA인 '메가존 23(1985)'에서 인상적인 음악을 선보인 사기쓰 시로가 이 작품에서도 음악을 맡아 초창기 양대 베스트셀러 OVA의 음악을 모두 제작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레다의 인기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후속 아류작들의 탄생을 부추긴다. 카나메 프로 스스로도 곧바로 '꿈차원 헌터 판도라(1985)'를 제작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작품들이 나오지만 결국 레다만큼의 인지도는 얻지 못한체 조용히 잊혀져 버린다. 후속편에 대한 팬들의 염원으로 속편 제작을 발표했던 카나메 프로덕션은 OVA 시장의 포화로 인해 경영난을 겪다가 1988년 결국 부도를 냈고, 이로 인해 후속 프로젝트는 백지화되고 만다.

ⓒ TOHO · KANAME Production



<참고 사이트>

[1] 幻夢戦記レダ, Wikipedia Japan
[2] 幻夢戦記レダ (1985), allcinema.net
[3] Leda - The Fantastic Adventure Of Yohko (OAV), ANN
[4] 환몽전기 레다(幻夢戦記レダ)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HO · KANAME Produc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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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헌터 D (1985), 吸血鬼ハンターD / Vampire Hunter D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정보>

◈ 원작: 키쿠치 히데유키 (菊地秀行)
◈ 감독: 아시다 토요오 (芦田豊雄)
◈ 각본: 히라노 야스시 (平野靖士)
◈ 캐릭터 디자인 원안: 아마노 요시타카 (天野喜孝) 
◈ 캐릭터 디자인인도리 코야 (いんどり小屋, 스튜디오 라이브 공동 팬네임)
◈ 작화감독
: 마쯔시다 하루미 (松下浩美)
◈ 미술감독: 마쯔다이라 사토시 (松平聡)
◈ 음악/노래: 코무로 테쯔야 (小室哲哉) / TM Network
◈ 제작: 사토 토시히코 (佐藤俊彦)
◈ 제작사: 아시 프로덕션 (葦プロダクション)
◈ 저작권: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일자: 1985.12.21 (극장개봉일)
◈ 장르: 액션, 판타지, 호러
◈ 구분/등급: OVA / 고교생 이상 관람가 (R)


<시놉시스>

먼 미래인 서기 12,090년, 핵전쟁이 휩쓸고 간 세계는 귀족이라 불리는 뱀파이어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인간들은 그저 귀족들의 먹을거리로 전락하고 수많은 괴물들과 악마들이 지상 위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불멸의 존재로, 강대한 과학력까지 손에 넣은 뱀파이어들은 나날이 번창해가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그들은 서서히 타락하고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들 밑에서 노예로 살아오던 인간들의 힘은 다시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반격에 의해 귀족의 힘은 현저히 약해졌고, 그 세력이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닌 귀족은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귀족들을 물리치기 위해 사람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뱀파이어 헌터를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귀족과 인간의 혼혈인 담피르(Dhampir: 뱀파이어남자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을 일컫는 단어.)는 귀족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그 몸에 흐르는 귀족의 피 덕분에 같은 편인 인간들에게도 경멸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리스는 남동생과 단둘이서 국경도시 근처에서 농장일을 하며 살고 있는 강인한 소녀. 어느날 괴물을 사냥하던 도중 도시 일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귀족 리 백작의 눈에 띄어 백작의 신부의 낙인이 찍히고 만다. 누구도 그녀를 도와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도리스는 결국 귀족과 인간의 혼혈인 담피르 헌터를 고용하여 리 백작을 처단하기로 맘 먹는다. 그녀의 의뢰로 담피르 헌터 중 한명인 D가 도시로 찾아오게 되는데...


<소개>

1983년 1월부터 아사히 신문출판을 통해 발간된 키쿠치 히데유키의 장편 호러소설을 원작으로 한 OVA 아니메. 현대 호러문학을 정립한 하워드 필립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후대의 작가들이 정립한 크툴후 신화(Cthulhu Mythos)를 기반으로 한 작품(키쿠치 본인도 러브크래프트의 열렬한 팬이다.)으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족인 담피르의 숙명을 갖고 태어난 인물 D의 활약을 소재로한 다크 히어로 판타지 액션물이다. 서기 10,000년대라는 먼 미래를 시간대로 하고 있으나 배경묘사는 20세기 초반에 가까워 보이며, 스파게티 웨스턴(비슷한 표현인 마카로니 웨스턴은 일본에서 유례한 단어)적인 묘사가 많다.

원작은 키쿠치 히데유키의 히트 소설로서도 유명하지만 동시에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로 더 큰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기도하다. 타츠노코 프로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아마노는 82년 타츠노코를 독립하여 애니메이터가 아닌 일러스트레이터로 변신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작품이 바로 이 뱀파이어 헌터 D인 것이다. 만화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마치 정통미술을 배운 미술학도의 삽화인 듯 고급스럽고 몽환적이며, 괴기스러우면서도 탐미적인 그의 일러스트는 커다란 인기를 끌며 이 작품을 베스트셀러 소설의 반열에 올리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아니메의 기획은 생각보다 난항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아시 프로덕션이 아니메 의사를 키쿠치에게 전했지만, 로봇물과 마법소녀물 등으로 이름이 난 아시 프로덕션이 자신의 호러 판타지를 아니메로 만들기에는 적합치 않다는 생각을 가진 키쿠치가 좀처럼 제작허가를 내주지 않은 까닭이었다. 결국, 감독으로 내정되었던 아시다 토요오가 파일럿 필름까지 만들어가는 열정을 보인 덕분에 키쿠치는 어렵사리 제작을 허락하게 되지만, 그동안 제작 스케쥴이 변경되면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을 예정이었던 아마노 요시타카가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3] 참조)

원작이 된 1권의 소설표지.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그로 인해 캐릭터 디자인은 아시다 감독의 스튜디오 라이브 작화팀에게 돌아가게 된다. 인도리 코야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스튜디오 라이브의 작화팀은 아마노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캐릭터를 디자인하였는데, 일부 캐릭터들은 아시다 토요오나 스튜디오 라이브가 참여했던 일련의 작품들인 '은하표류 바이팜(1983)'이나 '초수기신 단쿠가(1985)' 등의 캐릭터와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인기 캐릭터 디자이너로 알려진 아시다 토요오는 84년 '북두의 권(1984)' TV 시리즈를 통해 이전까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하드하고 고어스러운 작품을 연출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직후에 감독으로 참여한 이 뱀파이어 헌터 D OVA는 많은 컷에서 북두의 권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드러나기도 한다. 호러 판타지적인 분위기에 북두의 권의 영향을 받은 고어 액션이 첨가되면서 본 작품은 상당히 하드한 액션이 돋보이는 다이나믹한 작품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아시다 감독은 북두의 권의 주인공인 켄시로를 엑스트라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서비스도 선보이는데,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눈 앞에 둔 '북두의 권(1986)' 극장판에서는 반대로 D를 엑스트라 캐릭터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화끈한 액션 덕분이었는지 연말 OVA 판매랭킹에서는 2위를 차지하기도. 북미 시장에서는 일본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원작 소설과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 역시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TM Network 소속으로, 후일 일본 JPOP계의 거물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24살의 젊은 코무로 테쯔야가 처음으로 음악감독을 담당한 작품으로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을 필두로 TM Network의 아니메 히트송 행진이 이어지게 되기도. 전반적으로 흥미진진한 호러 판타지 작품이지만, 아마노가 하차한 덕분에 생긴 캐릭터 디자인의 이질감으로 인해 아시다 토요오의 뱀파이어 헌터 D라는 인상이 더 강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2000) 

ⓒ 2001 FILMLINK International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バンパイアハンターD製作委員会


<정보>

◈ 감독/각본/콘티: 카와지리 요시아키 (川尻善昭)
◈ 캐릭터 디자인: 미노와 유타카 (箕輪豊)
◈ 작화감독: 미노와 유타카, 아베 히사시 (阿部恒), 하마사키 히로츠구 (浜崎博嗣)
◈ 미술감독: 이케하타 유우지 (池畑祐治)
◈ CG 테크니컬 감독: 마에다 츠네오 (前田庸生)
◈ 음악: 마르코 드 암브로시오
◈ 제작/프로듀서: 야마모토 마타이치로 (山本又一朗) / 마루야마 마사오 (丸山正雄) 外
◈ 제작사: 매드하우스, 필름링크 인터내셔널, DR MOVIE
◈ 저작권: ⓒ 2001 FILMLINK International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バンパイアハンターD製作委員会
◈ 일자: 2000.08.25
◈ 장르: 액션, 판타지, 호러
◈ 구분/등급: 극장판 / 중학생 이상 관람가 (PG-13)


<소개>

원작의 된 4권의 소설표지.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원작자인 키쿠치 히데유키의 절친으로, 다수의 키쿠치의 소설을 아니메로 만들었던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감독한 극장용 아니메. 당시 카와지리는 북미 시장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북미에서 인기가 높은 뱀파이어 헌터 D와, 마찬가지로 북미에서 인지도가 높은 아니메 감독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몹시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북미시장을 목표로 한 작품으로, 최초 녹음에 외국인 성우가 기용되는 등 미일 합작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북미에서 먼저 개봉한 작품이기도 하다.

85년도 OVA와는 달리 카와지리 요시아키 특유의 스타일과 아마노의 미학적인 감각을 잘 살려낸 캐릭터 디자인이 일품이다. 중성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미남자 D의 모습을 잘 살려낸 디자인으로, OVA의 D가 황야의 무법자에 가까운 코스튬이었다면, 극장판의 D는 미래지향적인 코스튬이 인상적이다. 이는 '수병위인풍첩(1993)'부터 카와지리 작품에 참여해온 미노와 유타카의 결과물이다. 이야기는 원작의 3부에 해당하는 妖殺行편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데,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직접 감독에 각본, 콘티까지 1인 3역을 수행하고 있다.

미학적으로는 OVA보다 한단계 상승했으며, 카와지리 요시아키 작품다운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었으나, 특유의 요사스러움이라든지 클라이막스의 스케일은 전작만 못한 편이다. 하드고어의 대가로 이름 높은 카와지리의 작품인데, 이제까지 중 가장 보기 무난한 작품이라 할까. 이는 아무래도 미일 합작 애니메이션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하면서 로컬라이징을 염두에 둔 미국 제작진 측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아니메 특유의 스타일이 약화되고 북미 애니메이션의 성격이 강해진 것이다. 다만, 원작의 스파게티 웨스턴적인 배경묘사는 이러한 취지에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겠다.

☞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2000), 돌아온 전설의 뱀파이어 헌터 (클릭)


<참고 사이트>

[1] 吸血鬼ハンターD, Wikipedia Japan
[2] 뱀파이어 헌터 D, 엔하위키 미러
[3] 뱀파이어 헌터 D(吸血鬼ハンターD)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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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모자의 메모루 (1984), とんがり帽子のメモル / Tongari Boshi no Memoru


ⓒ TOEI Animation


<정보>

◈ 총감독: 카사이 오사무
◈ 시리즈 구성/각본: 유키무로 슌이치 / 유키무로 슌이치, 아사쿠라 치후데 外
◈ 연출: 카사이 오사무, 카이자와 유키오, 사토 쥰이치 外
◈ 캐릭터 디자인 원안/캐릭터 디자인: 나쿠라 야스히로 / 스즈키 킨이치로
◈ 작화감독: 아오야마 미츠로, 오이카와 히로시, 코마츠바라 카즈오, 타다노 카즈코, 히메노 미치 外
◈ 미술감독: 츠치다 이사무
◈ 음악/노래: 아오키 노조무 / 야마노 사토코
◈ 프로듀서: 하타노 요시후미, 하기노 히로시, 鍋島進二
◈ 제작사: 도에이 동화, ADK, 아사히 방송
◈ 저작권: ⓒ TOEI Animation
◈ 일자: 1984.03.03 ~ 1985.03.03
◈ 장르: 동화, 드라마, 판타지
◈ 구분/등급: TVA (50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시놉시스>

중부 유럽,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의 마을 베레누에 위치한 호수 위에 인구 246 명의 작은 리루루 마을이 있다. 이곳은 10cm 정도의 키를 가진 자그마한 리루루 성인들이 우주선 사고로 지구에 불시착한 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곳. 리루루 마을의 소녀 메모루는 활기 넘치는 장난꾸러기 소녀로, 리루루 별로 돌아가는 그날을 꿈꾸며 포핏과 루팡, 피이 등과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날, 독수리에게 습격당한 새를 돕던 와중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먼 곳까지 오게 된 메모루,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메모루는 자신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수십배는 더 거대한 인간 소녀 마리엘을 발견하게 된다. 병약한 소녀 마리엘은 학교를 쉬고 현재 별장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친구가 없는 외로운 마리엘은 메모루를 만나 종족과 크기를 넘어선 우정을 나누게 되는데...


<소개>

주로 코믹스나 소설의 판권을 사들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오던 도에이 동화가 실로 오랜만에 제작해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도에이 동화의 애니메이터들의 숨겨진 아티스트적 역량을 보여준 작품이다. 세계명작동화와 같은 동화적인 터치와, 수려한 배경, 그리고 일본 아니메의 특유의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들이 조화를 이룬 메모루는 비슷한 스타일의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나 일련의 일본식 순정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색다른 스타일과 맛을 내는 작품이 되었다.

나쿠라 야스히로가 그린 리루루 성인들은 특유의 귀엽고 깜찍한 외모에 10cm도 안되는 작은 크기에, 고깔모자를 항상 쓰고 다니는 설정으로 인해 흡사 요정이나 스머프를 연상시키게 한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특유의 보호본능을 자극시켜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시키지 않나 싶다. 오프닝 애니메이션에서 뛰어노는 메모루의 모습은 마치 갓난아기의 재롱을 보는냥 흐뭇하기까지 한데, 츠치다 이사무의 수채화풍의 배경이 이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리루루 성인들의 이야기에 일종의 서정적인 필터링을 더해주는 듯 싶다. 그로 인해 작품의 분위기는 너무도 포근하고 따뜻하며, 마치 고향 혹은 어머니의 품에 있는 듯한 아늑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훌륭한 미술과 작화는 지금의 아니메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하겠다.

나쿠라 야스히로는 '천사의 알(1986)'에서는 아마노 요시타카의 몽환적인 그림체를 애니메이션에 이식시키는 등 범상치 않은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토베 얀손의 무민을 원작으로 한 '즐거운 무민 가족(1990)'을 통해 메모루와 유사한 동화적 캐릭터들을 그려내기도 하였다. 나쿠라 야스히로는 실제 무민의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자신도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고 있는데, 후일 '메트로폴리스(2001)'나 '괴 아야카시(2006)'을 통해 기존의 아니메와는 다른 스타일의 참신한 비주얼들을 계속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본작에서 연출을 맡은 사토 준이치는 후일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의 감독으로 큰 명성을 떨치게 되는데, 그런 연유에서인지 메모루의 수채화풍의 서정적인 배경은 세일러문 시리즈와 왠지 모를 유사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츠치다 이사무는 '하늘을 나는 유령선(1969)'과 같은 도에이의 초기작부터 '엄지공주(1978)', '캔디캔디 극장판(1978)', '파타리로 - 스타더스트 계획(1983)'과 같은 작품에서 활약해온 도에이의 베테랑 미술 감독이다.

85년 3월 16일 도에이 만화축제에서는 24화와 25화를 기본으로 한 편집 극장판으로 상영되었으며, 같은 해 7월에는 일부 에피소드를 재편집한 OVA로 발매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85년 KBS를 통해서 방영되기도 하였다.

ⓒ KADOKAWA Shoten



<참고 사이트>

[1] とんがり帽子のメモル, Wikipedia Japan
[2] 고깔모자 메모루(とんがり帽子のメモル)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워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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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맨과 우주의 지배자 (1983), He-Man and the Masters of the Univers 


ⓒ Filmation Associates


<정보>

◈ 원작: 마텔(Mattel)
◈ 감독: 할 서덜랜드(Hal Sutherland)
◈ 총괄 프로듀서: 로우 슈이머 (Lou Scheimer)
◈ 제작사: Filmation, Mattel
◈ 배급사: Group W Productions, CBS
◈ 저작권: ⓒ Filmation Associates
◈ 일자: 1983.09.05 ~ 1985.12.08
◈ 장르: SF,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TVA (130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시놉시스>

신화와 마법, 그리고 환상의 행성 이터니아. 이터니아에는 고대의 신비로운 그레이스컬 성이 있는데, 이곳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이는 이터니아를 손에 넣고 우주의 지배자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터니아의 지배자 란돌 왕과 말레나 여왕에게서 딸 아도라 공주를 빼앗은 이블 호드(Evil Horde)의 리더 호닥(Hordak)의 제자로, 스네이크 마운틴의 지배자 스켈레토는 호시탐탐 이 그레이스컬을 차지하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란돌 왕과 말레나 여왕 사이에는 아도라의 쌍동이 오빠인 아담 왕자가 있었다. 생김새와는 달리 겁쟁이에 게으르고 무책임한 아담에게는 주인과 마찬가지로 겁이 많은 애완 호랑이(?) 크린져가 늘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아담 왕자에게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그러나 시청자는 한눈에 알 수 있는) 한가지 비밀이 있다. 그레이스컬 성의 소서리스에게서 하사받은 신비한 마법검을 사용하여, 스켈레토의 음모와 위협이 닥칠 때 정의의 용사 히맨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레이스컬의 힘으로, 나에게는 전능한 힘이 있다! (By the power of the Grayskull, I have the power!)".


<소개>

완구회사 마텔(Mattel)의 미디어 프렌차이즈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탄생한 마스터 오브 더 유니버스(이하 MOTU)의 첫번째 TV 시리즈로, 북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히어로 액션물. 코난과 같은 바바리안 영웅의 이야기가 인기를 끌던 80년대 초반, 바바리안 전사와 판타지라는 테마 위에, 마법과 과학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세계 이터니아를 창조함으로써 히어로물과 판타지물을 성공적으로 조합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첫번째 시리즈는 2시즌으로 총 130화를 방영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속편과, 극장판, 스핀오프 시리즈, 그리고 실사영화로까지 확대되며 30년이 가깝게 꾸준하게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애초에 완구로 만들어진 시리즈였기에 최초의 시작은 완구 홍보를 위한 일종의 설정집에 가까운 미니코믹스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이것이 만화영화로 제작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MOTU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위해 보다 표현수위를 낮춘 얌전한(?) 히어로물로 탈바꿈하게 된다. 악당들은 사악한 외모와는 달리 서툴고 어리석어 말도 안되는 실수로 종종 자멸하고, 히맨 역시 악당들을 응징하지만 결코 그들을 죽이지는 않는다. 매회 스켈레토와 그의 부하들이 음모를 꾸미고, 히맨이 이를 물리치면 다음을 기약하며 스켈레토와 부하들이 패퇴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완구판매를 목적으로 했던 TV 시리즈이다보니 큰 자본이 투입되지 않아 역동적인 액션장면이나 뛰어난 영상미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반복적인 뱅크샷을 사용하는 등 저예산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을 듯. 시리즈의 제작여건은 예상 이상으로 열악했는지, 성우 한명이 여러 역할을 맡아서 더빙을 하면서 다양한 등장인물에 비해 실제 성우는 5~6명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히맨의 성우를 맡은 존 어윈 조차 히맨과 아담 왕자 외에 5명 이상의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하지만, 헤라클레스를 연상시키는 고대의 영웅과 다양한 매력의 주변인물들, 그리고 개성넘치는 악당들의 모습은 당시의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북미 만화영화에서는 처음 등장하는 근육질의 히어로라는 설정은 저예산의 만화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선했고, 소년들이 동경해마지 않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1990년 KBS 2TV를 통해 일요일 오전에 방영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너무 많은 일본 아니메를 접하면서 일본 아니메에 염증을 느끼던 시기여서 오히려 이런 미국적 취향(다른 말로 양키 센스)이 가득한 히맨에 예상 외의 신선함을 느끼기도. 여담으로, 히맨의 동료로 등장하는 호랑이 크린져의 경우는 후일 블리자드의 히트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얼라이언스 종족 나이트엘프가 타는 호랑이에게서 그 편린을 엿볼 수도 있다. 변신전과 변신 후의 얼굴이 완전히 똑같은 히맨의 변장센스도 주목할만한 점.


쉬라, 힘의 공주 (1985), She-Ra, Princess of Power 


ⓒ Filmation Associates


<정보>

◈ 총괄 프로듀서: 로우 슈이머 (Lou Scheimer)
◈ 제작사: Filmation, Mattel
◈ 배급사: Group W Productions, CBS
◈ 저작권: ⓒ Filmation Associates
◈ 일자: 1985.09.09 ~ 1987.12.05
◈ 장르: SF,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TVA (93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히맨의 쌍동이 여동생으로, 이블 호드의 군주 호닥에 의해 어렷을 적 부모와 생이별하고 그에 의해 호드의 대장으로 키워진 아도라 공주가 출생의 비밀을 깨닫고 정의의 여전사 쉬라가 되어 호닥의 군대와 싸운다는 MOTU의 스핀오프. 히맨의 성공으로 마텔은 두번째 시리즈로 그의 쌍둥이 여동생 쉬라의 이야기를 제작하게 된다. 이를 위해 그녀의 출생과 쉬라가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The Two Swords'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85년 3월 22일에 선행 공개되었다. 이 극장판은 TV 시리즈의 이야기를 극장판으로 편집한 버전이기도 하다.

히맨이 지닌 마법의 검과 똑같은 검을 발견한 그레이스컬의 소서리스가 검의 주인을 찾을 것을 히맨에게 부탁하고 검에 의해 열려진 차원으로 히맨이 여행을 떠나 악의 군대 호드의 대장이 된 자신의 여동생 아도라 공주와 만나는 도입부는 드라마틱하다. 악의 군대의 대장으로 살고 있던 아도라 공주가 히맨을 통해 자신이 믿어왔던 많은 것들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빛의 편으로 돌아서는 내용은 전작에 비해 드라마가 강조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완구판매를 위한 저예산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로 인해 이러한 부분이 심도있게 다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전작인 히맨과 마찬가지로 이후의 에피소드 전개는 거의 대동소이한 공식을 따르고 있다. 한 명의 성우가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례 역시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듯.

한국에서는 히맨보다 앞선 1987년 KBS2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쉬라가 인기를 끌면서 전작인 히맨을 뒤늦게 수입해서 방영한 사례라 하겠다. 


마스터 오브 더 유니버스 (1987) 


ⓒ CANNON Films · MGM


<정보>

◈ 감독: 게리 고다드
◈ 각본: 데이빗 오델, 스테판 톨킨
◈ 음악: 빌 콘티
◈ 캐스팅: 돌프 룬드그렌 (히맨), 프랭크 란젤라 (스켈레토), 안쏘니 드 롱 (블레이드), 코트니 콕스 (줄리)
◈ 제작: 메나햄 골란, 에드워드 R. 프레스맨, 요람 골버스
◈ 제작사: 캐논 필름, 워너 브러더스
◈ 저작권: ⓒ CANNON Films · MGM
◈ 일자: 1987.08.07
◈ 장르: SF,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실사영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록키4(1985)'를 통해 헐리웃에서 강한 인상을 선보인 돌프 룬드그렌이 첫 주연을 맡고, B급 액션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캐논 필름과 프로듀서 메나햄 골란이 제작을 맡은 MOTU의 첫 실사영화이다. 판타지와 SF가 공존하는 원작의 세계관을 제대로 구현하기에는 B급 제작사인 캐논으로서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는지, 데이빗 오델이 제안한 원작에 가까운 이야기는 반려되고, 히맨과 스켈레토가 차원을 넘어 지구로 와서 벌이는 액션 어드벤쳐로 각색되었다. 실사영화로 컨버전 된만큼 성인층의 눈높이에 맞춘 좀더 하드한 액션 판타지가 되었다면 더 좋았을 법 했지만, 흥행을 위해 관람등급을 PG 수준에 맞추면서 만화영화스러운 전개가 된 것 역시 아쉬운 점. 거기에 열악한 특수효과 상의 한계로 인해 초인적인 힘을 가진 히맨이 일개 전사 정도로 격하된 것은 여러모로 원작의 팬들에게도 어필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할 수 있다. 한편, 히맨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소녀 줄리는 후일 TV 시리즈 '프렌즈'와 영화 '스크림' 시리즈로 우리에게 익숙한 코트니 콕스가 맡아 예상 외(?)의 풋풋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돌프 룬드그렌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해서 였는지 '마스터 돌프'라는 타이틀로 개봉되었다. 특히, 이 영화 이후로 돌프 룬드그렌이 주연한 영화는 모두 B급 액션물에 그치며, 쟝 클로드 반담과 함께 8~90년대 B급 액션물을 양분하기도. 87년도에 제작한 '슈퍼맨 IV'과 함께 흥행에 실패한 MOTU 실사판은 캐논 그룹이 도산하게 되는 하나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으며, 속편까지 기획되었으나 결국 무산된 뒤 20여년이 흐른 21세기에 들어 다시금 리메이크 소식이 들리면서 팬들의 가슴을 들뜨게 하기도 하였다. 여러 제작사와 감독이 물망에 올랐으나 루머에 그치며 프로젝트는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현재는 소니에서 판권을 양도받아 새로운 각본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히맨의 새로운 모험 (1990), The New Adventure of He-Man 



<정보>

◈ 원작: 마텔, 도날드 F 글럿, 스티븐 J 피셔
◈ 각색: 잭 올레스커
◈ 총괄 프로듀서: 쟝 샬로핀
◈ 제작사: DIC Enterprise, Faso Film, Mattel
◈ 저작권: ⓒ DIC Enterprise
◈ 일자: 1990.09.10 ~ 1990.12.07
◈ 장르: SF,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TVA (65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마텔이 새로운 장난감 라인업을 발표하면서 새로이 시작된 히맨의 이야기. 이번 이야기는 이터니아가 아닌 미래의 행성 프리머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프리머스 행성의 부름을 받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떠난 히맨과 함께 그의 호적수 스켈레토 역시 등장하고 있다. MOTU라는 원제를 쓰지 않고 주인공 히맨을 전면의 타이틀로 내세운 것이 이채롭다. 이는 MOTU 시리즈를 히맨에게 집중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새로운 시리즈는 전작만큼 호평을 얻지 못했으며, 완구 판매 역시 저조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히맨과 우주의 마스터 (2002) 



<정보>

◈ 원작: 도날드 F 글럿
◈ 각색: 로져 스위트
◈ 총괄 프로듀서: 빌 슐츠
◈ 제작사: 마이크 영 프로덕션, 카툰 네트워크
◈ 저작권: ⓒ Mike Young Production
◈ 일자: 2002.08.16 ~ 2004.01.10
◈ 장르: SF,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TVA (39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90년도의 실패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히맨 라인업은 2002년 새롭게 다시 리부트되었다. 완구 디자인 역시 기존의 마텔 스탭이 아닌, Four Horsemen 스튜디오에게 디자인을 맡겨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히맨이 탄생하기 전, 히맨의 아버지 란돌과 스켈레토의 악연부터 히맨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프리퀄 형태의 작품이다. 캐릭터 디자인도 이전에 비해 좀 더 하드한 느낌으로 달라진 세대를 고려한 느낌이 든다.

액션에 있어서는 전작에 비해 월등하다. 저연령대를 감안하여 표현수위를 파격적으로 낮추었던 83년도 TV 시리즈에 비하여 히어로물 본연의 느낌을 살려 보다 더 스펙타클한 액션씬을 선보이며 재미 면에서는 보다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다. 스켈레토와의 결전 외에도 완구로만 존재했던 스네이크 맨이 등장하는 등 새로운 캐릭터도 눈에 띈다. 또한, 완구 라인업의 다양화를 위해 히맨의 코스튬도 후반부에 바뀌게 된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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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 and Ice (1983) 


ⓒ 2011 BAKSHI Productions


<정보>

◈ 감독: 랄프 박시 (Ralph Bakshi)
◈ 각본: 게리 콘웨이 (Gerry Conway), 로이 토마스 (Roy Thomas)
◈ 작화 감수: 마이클 스베이코 (Michael Svayko)
◈ 레이아웃: 존 스파레이 (John Sparey)
◈ 배경 레이아웃: 팀 칼라한 (Tim Callahan)
◈ 촬영감독/실사촬영: 프란시스 그럼맨 (Francis Grumman)
◈ 실사 제작 감수: 제프리 체르노프 (Jeffrey Chernov)
◈ 편집: A 데이빗 마샬 (A. David Marshall)
◈ 음악: 윌리엄 크래프트 (William Kraft)
◈ 제작: 랄프 박시, 프랭크 프라제타 (Frank Frazetta)
◈ 총괄 프로듀서: 리차드 세인트 존 (Richard St. John), 존 W 하이드 (John W. Hyde)
◈ 보조 프로듀서: 린느 벳 (Lynne Bett)
◈ 제작사: Producer Sales Organization, 20세기 폭스 (배급)
◈ 저작권: ⓒ 2011 BAKSHI Productions
◈ 일자: 1983.08.27
◈ 장르: 모험,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고교생 이상 관람가 (R)


<캐스트>

◈ 란: 랜디 노튼 (Randy Norton)
◈ 티그라: 씬시아 리크 (Cynthia Leake)
◈ 다크울프: 스티브 샌더 (Steve Sandor)
◈ 네크론: 션 한논 (Sean Hannon)
◈ 줄리아나 여왕: 에일린 오닐 (Eileen O'Neill)


<시놉시스>

아주 먼 옛날, 마지막 위대한 빙하시대. 북쪽에는 강대한 여왕 줄리아나가 있었다. 그녀의 야망은 자신의 왕국을 전세계로 뻗어나가게 하는 것. 줄리아나는 군대를 모으고, 자신의 아들 네크론에게 강력한 마법을 가르친다. 네크론의 힘에 의해 줄리아나의 얼음궁전 아이스피크(Icepeak)는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을 얼리면서 계속 확장하게 되고, 그 강대한 위력 앞에 주변의 마을과 땅은 얼음 속에 묻힌체 초토화된다. 줄리아나와 네크론의 군세는 파이어킵(Firekeep) 왕국까지 다다르게 되고, 네크론은 파이어킵의 왕 제롤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사신을 보내지만, 이는 줄리아나의 계략이었다. 사신들이 제롤왕의 시선을 끄는 동안 아이스피크의 원시인 병사들이 제롤의 딸 티그라 공주를 납치하고, 그녀를 인질로 삼아 파이어킵을 정복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병사들에게 끌려가던 티그라는 방심의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한다. 이제 낯선 원시의 땅에 홀로 남겨지게 된 티그라, 추적의 손길은 서서히 그녀에게 다가오고 티그라는 필사적으로 그들에게서 도망치게 된다. 한편, 네크론에 의해 멸망당한 북쪽 마을의 생존자 란 역시 홀로 낯선 땅을 방황하던 중 길을 잃고 방황하던 티그라를 만나게 되는데...


<소개>

1983년에 제작된 랄프 박시의 판타지 만화영화. 실사로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셀 애니메이션을 덧 그린 뒤 이를 촬영하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도입하여 실사에 가까운 부드러운 영상을 구현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직전년도에 그가 만든 '아메리칸 팝(1981)' 역시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기도. 랄프 박시는 '위자드(1977)'나 '반지의 제왕(1978)' 등 판타지 만화영화를 계속 만들어온 인물로, 반지의 제왕의 경우에는 '라스트 유니콘(1982)'의 원작자인 피터 S 비글이 각본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돈 코스카렐리 감독/마크 싱거(미니시리즈 V의 주인공) 주연의 '비스트마스터(1982)'나 존 밀리우스 감독/아놀드 슈왈체네거 주연의 '코난 더 바바리안(1982)' 등이 히트하면서 랄프 박시는 이러한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만화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친구이자 판타지/SF 일러스트레이터인 프랭크 프라제타가 랄프의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주고, 마블 코믹스의 코난 시리즈를 집필했던 게리 콘웨이와 로이 토마스가 각본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고대시대의 영웅들이 활약하는 판타지 만화영화를 위한 라인업이 구성된 셈이다. 실제로 작품의 분위기는 코난 시리즈의 그것과 거의 대동소이하며, 불과 며칠 뒤에 TV를 통해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게 되는 'He-Man and the Masters of the Univers(히맨, 1983)'의 비주얼과 상당부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로토스코핑 기법이 적용된 유려한 인체의 움직임은 단연코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부분이다.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그제까지의 만화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실감나는 액션이 가능하게 된 것. 특히, 검과 도끼를 사용하는 바바리안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묘사한 부분은 이 작품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세상을 지배하려는 얼음왕국의 네크론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마법과 원시시대의 신비로운 괴물들로 스케일 큰 판타지를 보여주었고, 육감적인 몸매를 보여주는 반라의 히어로와 히로인이 등장하는 등,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는 미국 만화영화로서는 드문 성인취향의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뛰어난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액션 어드벤쳐로서의 가치는 떨어지는 느낌이다. 전개가 길고 클라이막스까지의 구성은 엉성하여 오락영화로서의 매력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편. 애초에 오락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작품의 호흡이 느려지면서 안타깝게도 지루한 느낌을 주고 있다. 주인공 란보다는 그의 조력자인 다크 울프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해결사라는 점에서도 히어로와 히로인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크 울프가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문제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갑작스레 등장한 히어로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구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식의 이야기구조로, 성인풍의 작품으로서는 다소 동떨어지는 서사구조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당시 막 애니메이션계에 입문한 피터 정이 레이아웃 아티스트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거의 전 컷을 로토스코핑으로 제작해낸 집념의 작품이지만, 제작비의 절반을 겨우 넘어서는 흥행수익을 거두면서 사실상 흥행에서는 참패하게 된다.

주인공 란(좌)과 조력자 다크울프(우). 다크울프는 흡사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반오크/반오거인 렉사르를 연상시킨다. ⓒ 2011 BAKSHI Productions

네크론의 부하에게 잡혀가는 티그라 공주. 보기엔 아슬아슬하지만 의외로 질긴 소재다. 절대 벗겨지거나 찢어지지 않는다. ⓒ 2011 BAKSHI Productions



<참고 사이트>

[1] Fire and Ice, Ralph Bakshi / Films
[2] Fire and Ice (1983 film), Wikipedia
[3] Fire and Ice (1983), IMDB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BAKSHI Production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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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유니콘 (1982), Last Unicorn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정보>

◈ 원작/각본: 피터.S.비글 (Peter.S.Beagle) 
◈ 감독: 아써 랜킨 쥬니어 (Arthur Rankin Jr.), 쥴스 배스 (Jules Bass)
◈ 음악: 지미 웹 (Jimmy Webb)
◈ 애니메이션 제작: Topcraft Studio
◈ 제작사: ITC Entertaiment, Rankin/Bass Production
◈ 저작권: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inherited from ITC Entertainment)
◈ 일자: 1982.11.19
◈ 장르: 드라마, 모험,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캐스트>

◈ 유니콘 아말띠아(Amalthea): 미아 패로우(Mia Farrow)
◈ 마법사 슈멘드릭(Schmendrick): 알란 아킨(Alan Arkin)
◈ 리르(Lir) 왕자: 제프 브리지스(Jeff Bridges)
◈ 해거드(Haggard) 왕: 크리스토퍼 리(Christopher Lee)
◈ 몰리 그루(Molly Grue): 타미 그림스(Tammy Grimes)


<시놉시스>

숲 속에서 홀로 거닐던 유니콘은 어느 날, 자신이 마지막 유니콘이며 다른 유니콘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른 유니콘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숲을 나와 여행을 시작하는 유니콘. 정신나간 나비에게서 붉은 황소를 쫓아가라는 말을 듣고 인간세계로 나오지만 순수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유니콘의 뿔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녀(유니콘)를 단순히 백마로 착각한다. 유니콘을 알아본 마녀 포르투나에 의해 사로잡혀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린 유니콘은 슈멘드릭이라 불리는 젊은 마법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하여, 슈멘드릭과 여행 도중 만난 몰리와 함께 붉은 황소와 다른 유니콘들을 찾기 위한 여행을 계속하게 된다.

여행 도중 결국 붉은 황소와 맞닥뜨린 유니콘. 붉은 황소의 무시무시한 기세 앞에 그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다급한 상황에서 슈멘드릭이 읊은 마법주문은 예상 외의 결과를 낳아 유니콘을 아리따운 여인으로 변모시키게 되는데... 그녀는 과연 다시 본모습을 찾고, 그녀들의 동족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소개>

피터 S. 비글의 원작소설을 만화영화로 각색한 작품. 이미 78년도에 만화영화 '반지의 제왕(1978)'의 각본작업에 참여했던 미국의 소설가 비글과, 유럽의 여러 만화영화의 하청작업으로 경력을 쌓아가고 있던 일본의 소규모 제작사인 탑크래프트가 미국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Rankin/Bass 프로덕션의 지휘 아래 영국의 제작사인 ITC 엔터테인먼트의 제작지원을 받아 완성시킨 다국적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동서양의 느낌이 절묘하게 녹아들어가 있는 독특한 느낌의 작품이다. 탑크래프트는 이미 72년부터 Rankin/Bass 프로덕션의 하청을 받아 'Kid Power(1972)', 'Frosy's Winter Wonderland(1976)', 'The Hobbit(1977)', 'The Stingiest Man in Town(1978)', 'The Flight of Dragons(1982)'와 같이 일련의 유럽 TV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오게 되는데, 이러한 유럽 애니메이션에 대한 노하우는 후일 아니메史에서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성우진에서도 당대 톱클래스의 배우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 무게감에 있어서도 디즈니의 대작 만화영화에 비해 전혀 밀리는 감이 없다. 우디 알렌의 전부인이자 '악마의 씨(1968)', '위대한 게츠비(1974)', '한 여름밤의 섹스 코미디(1982)'의 명배우 미아 패로우, '캐치-22(1970)', '지참금 2백만불(1979)', '가위손(1990)'의 알란 아킨, 근래 들어서도 '아이언 맨(2008)'이나 '트론 레거시(2010)' 등으로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제프 브리지스, '반지의 제왕 3부작'의 백색 마법사 사루만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두크 백작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 등 쟁쟁한 캐스팅이 눈길을 끈다. 유니콘 역의 미아 패로우가 촬영당시 이미 37세의 비교적 높은 연령으로 순수하고 맑은 유니콘과는 괴리감이 있긴 하지만 감상에는 큰 무리가 없다 하겠다.

미국식 명쾌한 만화영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고전적인 전개와, 비글의 원작을 잘 살려낸 이국적인 탑 크래프트 애니메이터들의 캐릭터 디자인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독특한 아름다움과 추억을 팬들에게 선사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도 명절 특선으로 몇차례 방영되어 이질적이고 독특한 비주얼로 인해 강렬한 잔상을 남겨준 작품으로, 특히 작품의 주인공인 유니콘이 슈멘드릭의 실수(?)로 인하여 인간여성으로 변한 뒤의 모습은 왠만한 디즈니의 공주들을 능가하는 기품과 품격, 그리고 우아함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특히, 실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던 탑 크래프트 스튜디오는 후일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2)'의 핵심 제작진으로 미야자키의 무국적 세계관을 실로 완벽하게 화면으로 이식하면서 유럽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통해 갈고 닦은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게 되며, 바로 이들을 주축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탄생하게 됨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82년 극장개봉 이후 잊혀져 가던 이 작품은 유럽에서 DVD로 발매되면서 다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고 여세를 몰아 25주년 기념판으로 미국에서 다시금 DVD로 발매되어 좋은 평을 얻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원작자인 비글이 현 저작권자인 Granada International 측과 저작권료 문제로 법정싸움에 휘말려 있다는 점이다. 비글은 2000년도 이후, 이 작품의 DVD나 부가판권에 대한 일체의 수입을 Granada International 측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2008년까지도 해당 저작권 문제는 명쾌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 라스트 유니콘, 독특한 매력의 이국적 판타지 (바로가기)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참고 사이트>

[1] The Last Unicorn (film), Wikipedia
[2] トップクラフト,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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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EI Animation


<목차>



<서문>

번 시간은 판타지 연대기의 마지막인 동화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만화영화와 가장 훌륭한 궁합을 보여주었던 판타지는 사실 지금의 아니메에서는 과도한 변형과 일본식 재가공에 의해 그 본연의 맛을 살린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부터 4부까지 알아본 것처럼 수많은 판타지 장르의 작품들이 60년에 이르는 일본 아니메史의 한장을 당당히 장식할 정도로 음으로 양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지요. 한마디로 만화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하나의 배경으로서 비록 장르적 영향력은 감소했을지언정 꾸준히 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판타지 동화, 즉 동화라 일컫는 장르는 만화영화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가장 만화영화와 판타지에 잘 어울리는 소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의 만화영화는 (이전까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주었던, 물론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동화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들어내는데에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만화영화의 초창기는 동화가 소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만화영화에서는 판타지가 곧 동화이기도 했는데요. 이것은 디즈니 뿐만 아니라 일본 만화영화에서도 동일한 상황으로, 디즈니보다 후발주자였던 일본 만화영화는 초기에는 디즈니의 발자취를 쫓아 세계명작동화나 전설 등을 모티브로 한 전형적인 동화 판타지 형태의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60년대에 이르러 테즈카 오사무나 요코야마 미츠테루, 이시노모리 쇼타로 같은 인기 일본 만화가들의 등장으로 일대 전환점을 맡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까지의 세계명작동화와는 다른 자신만의 오리지널 스토리로 만화를 펴내어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결국 만화영화에까지 옮겨져 일본 만화영화가 디즈니의 스타일을 버리고 스스로의 색깔을 갖추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 시점부터 동화 판타지가 서서히 일본 만화영화계에서 힘을 잃기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 판타지는 여전히 판타지 세계를 대표하는, 그리고 만화영화를 대표하는 간판 장르이기도 합니다. 특히,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에 의해 동화 판타지는 자국 내에서의 이같은 트렌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 가장 큰 흥행기록을 세운 작품(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원령공주, 하울의 움직이는 성)들을 보유한 장르이기도 하지요. 뿐만 아니라 아니메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에서 상을 수상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아니메의 위상을 떨친 장르 역시 동화 판타지입니다. 60년이라는 일본 만화영화의 역사의 첫걸음부터 같이 걸어왔던 동화 판타지, 그 이야기를 끝으로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의 대단원을 내려보고자 합니다.


디즈니를 바라보았던 도에이의 꿈, 아니메로 바톤 터치되다.

본이 만화영화를 시작하던 1950년대 후반부의 세계 만화영화는 월트 디즈니가 석권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은 즉, 일본이 만화영화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기준점이자 레퍼런스로,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들이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인데요. 실제로 '일본 만화의 신'이자 '일본의 월트 디즈니'라는 칭송(물론,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을 듣게 되는 테즈카 오사무라든지, 일본 만화영화 감독으로 아카데미 상까지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한 당대의 일본 애니메이터들이 디즈니의 작품들을 흠모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결국, 초기 일본 만화영화의 스타일은 디즈니의 것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아직은 오리지널 창작 작품을 만들 여력이 없던 당시의 상황에서 만화영화는 자연스럽게 세계명작동화나 전래동화, 옛날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을 수 밖에 없었으며, 세분화된 만화영화 팬층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에 당연히 만화영화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전연령가 형태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동화 속의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동화 판타지들이 일본 만화영화의 서장을 수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2부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 이야기에서 소개된, 일본 최초의 상업용 극장 만화영화 '백사전(1958)'이라든지, 테즈카 오사무와 도에이 동화가 힘을 합친 '서유기(1960)', '신밧드의 모험(1962)', '개구쟁이 왕자의 왕뱀퇴치(1963)'와 같은 일련의 도에이 극장 만화영화는 모두 동화 판타지의 성격을 가진 작품입니다. 더군다나 신밧드의 모험과 같은 일부 작품들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는 등, 당시 일본 만화영화는 첫시작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저에는 자국의 제품이나 컨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려하는 일본인들의 민족주의적 태도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았나 싶군요.)

ⓒ TOEI Animation


그러나, 이런 동화 판타지의 약진은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자국의 오리지널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만화영화들이 인기를 끌면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즈음에 테즈카 오사무가 자신의 작품인 '철완 아톰(1963)'을 도에이 동화와 같은 거대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제작사를 차려 직접 제작하게 되는데요. 영세한 제작력과 부족한 인력을 가지고 있던 당시 테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은 이러한 인적자원으로 TV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리미티드 제작기법을 창안해내게 됩니다. 디즈니의 풀프레임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던 당시의 일본 아니메 업계에 편당 동화매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리미티드 아니메는 극장 아니메보다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TV 시장에서 큰 호평을 얻게 됩니다. 여러 면에서 디즈니에 비해 열악했던 당시의 일본 아니메 업계에 리미티드 기법은 분명 낮은 제작비로도 만화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죠.

물론, 후일 이러한 리미티드 제작기법의 도입은 일본 애니메이터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이끌어내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만, 일본 만화영화가 디즈니에 비해 열악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많은 수의 작품을 제작하게 되는 환경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부정과 긍정의 두가지 측면을 보유하게 됩니다. 한편, 리미티드 기법을 이용해서도 경쟁력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달은 도에이 동화는 이로 인해 풀 애니메이션과 세계명작동화로 대표되는 자사의 A 스튜디오의 폐쇄를 결정하고, 리미티드 제작기법과 일본 오리지널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는 B 스튜디오 극장 아니메를 주력으로 선택하게 되는데요. 바로 이 시기, 도에이 동화의 노조를 이끌던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A 스튜디오 폐쇄에 맞서 노조만의 힘으로 대작 판타지 동화 애니메이션을 완성시키게 되니 이것이 바로 저주받은 걸작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1968)'인 것입니다.

A 스튜디오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될 이 작품은 작화 매수 150,000매(상영시간 82분으로, 분당 1,830매, 초당 30여장이 사용된 진정한 풀 애니메이션. 보통 풀 프레임이라하면 1초에 24~30장이 사용되는 것을 말함)에 달하는 대작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풀 애니메이션의 정수를 담아낸 애니메이터들의 긍지의 작품이기도 했지만, 당시 불안정한 일본 사회분위기 속에서 홀로 극장가에 등장한 무리한 개봉일정은 풀애니메이션의 퇴장을 알리는 전조와도 같은 것이었고, 당연한 듯 이어진 흥행 대참패는 이후 수많은 인재들이 도에이 동화를 떠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1] 참조) 창작의지만이 작품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 속에 등장했던 이 작품의 몰락은, 자연스럽게 일본 만화영화계에서 동화 판타지의 퇴장을 예고하게 됩니다.

ⓒ TOEI Animation



타츠노코와 닛폰 애니메이션의 등장, 아직도 시들지 않은 동화 세상. 

'징가 Z(1972)'라는 희대의 작품의 등장과 함께 70년대 일본 만화영화는 TV 시리즈의 전성기로 접어듭니다. TV 시리즈의 등장은 여러모로 명작동화들을 모티브로 했던 극장용 만화영화의 축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극장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봐야하는 장소적 제약을 가진 극장 만화영화에 비해 TV용 만화영화는 (시청료는 내지만) 영화보다는 금전적 부담이 없고, 게다가 집에서 볼 수 있는 편리함까지 갖췄던 것이죠. 마징가 Z를 필두로 한 오리지널 만화영화의 등장과 함께 극장용 만화영화 역시 오리지널 작품 외에도 TV 시리즈를 편집하여 방영하는 추세가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TV 시리즈를 통하여 안정적인 고객층을 확보한 후, 이를 총집편 형태나 일부 에피소드를 극장용으로 편집하는 형태로 방영하여 제작비용 대비 흥행성과를 올리게 되는 것인데요. 이로 인해 극장상영으로만 선보이던 판타지 만화영화들은 어쩔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동화 판타지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작품들을 내놓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원작의 '바다의 트리톤(1972)'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생존자인 트리톤이 돌고래를 타고 포세이돈 족과의 대결하는 판타지적 색체가 강한 모험극으로, 건담의 아버지인 토미노 요시유키의 감독 데뷔작으로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이보다 앞서서는 천사의 실수로 왕자로 태어나야할 아이가 공주로 태어나면서 벌어지는 중세왕국 시대의 모험이야기를 다룬 테즈카 오사무 원작의 '사파이어 왕자(1967)'가 등장하여 순정만화의 효시가 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동화 판타지로서도 손색없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었지요. SF와 판타지를 가리지 않으며 넘나들었던 테즈카 오사무의 폭넓은 작품세계 덕분에 오리지널 아니메로 일본 만화영화 트렌드가 바뀌었음에도 이런 동화 판타지 작품들이 계속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만, 이는 이전의 풀 애니메이션 동화 판타지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일본 오리지널 동화 판타지의 새로운 탄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요시다 타츠오, 요시다 켄지, 쿠리 잇페이 삼형제가 설립한 타츠노코 프로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지 않은 오리지널 TV 만화영화를 만들어내면서 70년대 들어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개구리들이 사는 연못세상의 이야기를 현대사회에 대한 비유와 풍자를 섞어 만들어낸 명작 '개구리 왕눈이(1973)'나 4차원 세계의 대마왕에게 사로잡힌 여자친구를 구하는 소년의 모험 이야기를 다룬 '폴의 미라클 대작전(1976)'과 같은 매력적인 동화 판타지들은 바로 이 타츠노코의 작품이기도 하지요. 타츠노코에서 스튜디오 피에로로 이적한 토리우미 히사유키 역시 '닐스의 대모험(1980)'이라는 동화 판타지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타츠노코와 스튜디오 피에로는 오늘날 각각 히어로물의 본가와 마법소녀물의 본가라는 칭호를 듣는 제작사들로서, 동화 판타지와는 대치되는 일본 오리지널 만화영화 장르를 발전시킨 이들이라는 점에서 앞선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들처럼 새로운 일본식 동화 판타지를 보여준 사례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일본 오리지널 스타일의 동화 판타지들과 달리 과거 도에이 동화에서 명작동화 스타일의 만화영화를 만들었던 모리 야스지, 타카하타 이사오, 오츠카 야스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인물들은 도에이를 떠나 A 프로덕션을 거쳐 닛폰 애니메이션에 안착, 과거 도에이 동화 시절의 세계명작동화의 스타일을 발전시킨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선보이게 됩니다. 세계적인 명작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동화적 감성과 서정적인 터치를 펼쳐낸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는 비록 판타지와는 거리가 있는 장르였으나 일본 만화영화에 무국적 세계관의 동화라는 친근하면서도 독자적인 장르를 구축하며,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동화 판타지의 토양과 양분이 되지요. 뿐만 아니라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는 비즈니스적 사정에 의해 세계명작 창작을 중지했던 도에이 동화에도 영향을 주어 세계명작동화라 불리는 일련의 극장 만화영화 시리즈를 전개하는데 있어서도 음으로 양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70년대 들어 그 주도권을 빼앗기긴 했지만 동화 판타지는 특유의 서정성과 친근함을 바탕으로 꾸준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80년대까지 흐름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 TEZUKA Production (좌) / ⓒ TATSUNOKO Production (중) / ⓒ STUDIO PIERROT (우)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비로운 세계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성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오리지널 아니메는 완벽한 장르적 완성을 가져오게 됩니다. 특히, '우주전함 야마토(1974)', '기동전사 건담(1979)'을 보며 자라온 일본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아니메의 주요 소비자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작품의 눈높이도 덩달아 고연령대의 높이로 뛰어오르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80년대는 조숙한 만화영화들이 많았다고 해야할 만큼 동심과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보다는 치밀한 설정과 인간 드라마가 녹아들어간 작품들이 대거 제작되기에 이르릅니다. 물론, 이는 만화영화의 다양화 측면에서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낸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니메의 장르적 편중화 속에 동심을 자극하는 서정적 감성의 동화들이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른 장르의 판타지 작품과 마찬가지로 동화 판타지도 이 시기에는 암울한 암흑기를 거치게 됩니다. 이즈음 일본 최대의 캐릭터 메이커 산리오와 테즈카 오사무의 후예들인 매드하우스 제작진이 힘을 합쳐 제작한 '유니코(1981)'는 기존의 동화 판타지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로, 테즈카 오사무의 스타일과 매드하우스만의 감성이 녹아든 독특한 형태의 동화 판타지를 선보이는데요. 특히, 산리오 그룹은 '별의 오르페우스(1979)'나 '시리우스의 전설(1981)'과 같은 초대작 스페이스 판타지를 선보이며, 일본 아니메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지만, 완성도와는 달리 흥행에 연이어 실패하며 일본의 디즈니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게 되지요. 

세계명작동화 시리즈로 동화 판타지의 마지막 끈을 놓치 않았던 도에이 동화는 '백조의 호수(1981)', '알라딘과 마법램프(1982)', '만화이솝 이야기(1983)'로 그 흐름을 계속 이어가지만, 결국 흥행 부재라는 숙제를 안고 시리즈의 대단원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듬해 TV 시리즈로 선보인 '고깔모자 메모루(1984)'는 그동안 인기 원작만화의 판권을 사들여 작품을 제작했던 도에이가 선보인 이례적인 오리지널 아니메로서, 동화적인 비주얼과 귀여우면서도 일본적이지 않은 이국적인 캐릭터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작품이로 회자되기도 하지요.

ⓒ MADHOUSE (좌) / ⓒ TOEI Animation (중,우)


한편,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선보이며 무국적 세계관과 이국적 스타일을 완성시킨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첫 극장연출작인 '루팡 3세 -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를 바탕으로 극장 만화영화의 연출 노하우를 습득한 뒤, 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통하여 스타 연출가로서의 인상적인 데뷔를 하기에 이르릅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미야자키가 보여준 놀라운 세계관, 서정적이고 세심한 작화, 역동적히고 박진감 넘치는 컷, 아름다운 음악, 환경 메시지 등은 스케일과 엔터테인먼트, 재미와 감동을 모두 담은 완성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요. 이것은 테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요코야마 미츠테루, 나가이 고, 마츠모토 레이지로 이어져온 일본 오리지널 코믹스 기반의 아니메들과는 달리, 명작동화를 근간으로 했던 과거 도에이 A형 극장판에서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거쳐 진화해온 미야자키식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미야자키의 이러한 스타일은 리미티드 아니메 기법의 여느 일본 만화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풀 애니메이션 기반의 유려한 움직임은 디즈니의 감성을 담고 있지만, 유럽식 풍취를 완벽하게 이식한 설정은 미국식 느낌과는 또다른 고전적 정취를 느끼게 해주지요. 여기에 미야자키만의 독특한 판타지가 가미되면서 서양도 아니고 동양도 아닌 무국적 세계관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굳이 비중으로 놓고 보면 서양적 감성에 가깝긴 하지만 미야자키의 이 무국적 세계관은 앞으로 그가 창작해내는 많은 이야기들의 하나의 공통적 스타일로 자리하게 됩니다.

나우시카를 기점으로 하여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이후 걸리버 여행기 3부를 테마로 한 '천공의 성 라퓨타(1986)'로 모험가득한 스팀펑크 스타일의 판타지를 선사하게 되구요. '이웃의 토토로(1988)'에 이르르면 서양적 스타일이 아닌 동양적 감성이 물씬 살아나는 이야기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1989)'에 이르기까지 미야자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동화 판타지는 SF와 장르물이 장악한 일본 아니메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냅니다. 80년대 후반들어 일본 만화영화가 침체를 거듭하며 쇠락기에 접어들고 데자키 오사무, 토미노 요시유키, 야스히코 요시카즈와 같은 거장들이 차례로 실패의 쓴잔을 마시는 와중에서도 미야자키와 미야자키의 동화 판타지는 변하지 않는 티켓 파워를 보여주며 미야자키는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거장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 NIBARIKI・TOKUMA Shoten (좌,중) / ⓒ EIKO KADONO・NIBARIKI・TOKUMA Shoten (우)



노쇠하는 거장, 후계자가 없는 동화 세상의 미래는?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아니메의 침체기는 일본 아니메의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SF 장르의 몰락과 함께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깊이의 로봇 아니메가 사라지고, 용자 시리즈와 같이 다시 저연령대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로봇 아니메가 부활하여 새로운 시청층을 공략했고, 이제 성인이 된 과거의 아니메 팬들을 위해서인지 복고주의가 아니메 업계에 불어오게 되지요. 이즈음에는 중세 판타지와 같이 판타지 계열의 아니메들이 좀 더 활발히 제작됩니다만, 결국 정통 드라마 형태로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하자 코믹 요소를 적극 도입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개그 바람을 타고 만들어진 '빨간망토 챠챠(1994)'나 '마법진 구루구루(1994)'와 같은 작품들은 중세 판타지의 설정에 동화적 스타일을 갖고 개그 코드를 적극 도입한 이색적인 작품들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되지요. (물론, 구루구루의 경우에는 동화라기보다는 엽기 컬트적인 작품이라고 보는편이 맞겠습니다만)

또한, 90년대 말에 등장한 '포켓몬(1997)' 시리즈나 '디지몬 어드벤쳐(1999)'는 판타지에서 볼법한 환상의 동물들을 게임 대전 방식의 이야기의 소환수로 등장시키면서 동화 판타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물론, 캐릭터적 매력은 커졌지만 예전의 드라마성이 상실된, 그저 동화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단조로운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이러한 작품은 서서히 아니메의 트렌드가 인스턴트 스타일로 변질됨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정통 동화 판타지의 마지막 보루 스튜디오 지브리의 선전은 계속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붉은 돼지(1992)'를 통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지브리의 또 한명의 거장 타카하타 이사오가 선보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는 너구리를 소재로 한 일본적 색체가 강한 판타지물을 선보이게 되구요. 여기에 오랜 기다림 끝에 복귀한 미야자키의 '원령공주(1997)'가 글로벌한 성공을 거두면서 여전히 거장의 건재함을 과시하게 되지요. 닛폰 애니메이션의 세계명작극장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물론, 2000년 대 후반에 들어 극적으로 다시 부활), 아니메 업계가 오리지널 아니메보다는 인기 원작을 바탕으로 한 비슷비슷한 작품들의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의 존재는 일본 아니메와 동화 판타지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등대라 아니할 수 없던 것입니다.

ⓒ 彩花みん・集英社・テレビ東京・NAS (좌) / ⓒ 畑事務所・TNHG (중) / ⓒ 猫乃手堂・TGNDHMT (우)


후계자로 낙점받았던 콘도 요시후미의 사망으로 은퇴 선언 후 극적으로 복귀하여 만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통해 자신의 신화에 방점을 찍은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시금 은퇴를 고려하게 됩니다만, 동화 판타지를 거의 혼자서 이끌다시피한 그의 퇴장은 극장 아니메의 막강한 티켓 파워를 지닌 인물의 퇴장이라는 상업적 고려 속에 차일피일 그 일정이 미루어지게 됩니다. '고양이의 보은(2002)'으로 미야자키 외에도 뛰어난 인재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 지브리이지만, 미야자키만큼의 파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우려 속에 이들은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지요.

포켓몬 극장판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준 호소다 마모루를 영입했다가 작품 제작도중 강판시켜 버린 지브리의 스폰서 도쿠마 서점은 미야자키로 하여금 호소다 마모루가 작업했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을 마저 마무리 짓게 합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미야자키의 작품치고는 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큰 히트를 치면서 이러한 스폰서의 결정은 옳았던 것으로 증명되는 듯 싶었지만, 이로 인해 지브리는 후계자를 만들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았으며, 이후 이야기는 아시다시피 호소다 마모루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4)'로 평단과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반면, 미야자키의 아들이자 첫번째 후계자 후보(?)였던 미야자키 고로는 '게드전기(2007)'를 통해 평단과 관객의 혹독한 비평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아직까지 지브리는 확정적인 후계자를 구하지 못한체 '벼랑 위의 포뇨(2008)'로 미야자키가 다시 일선에 복귀하고, '마루 밑 아리에티(2010)'를 통해 미완의 대기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를 감독으로 기용하지만, 미야자키가 온전히 손을 떼고 작품을 맡기기에는 여전히 경험이나 역량면에서 많은 것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오히려 스튜디오 지브리와 오랜 라이벌 관계라 할 수 있는 매드하우스가 호소다 마모루나 코사카 키타로 같은 지브리의 인재들을 데려와 만족할 만한 완성도의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죠. 아직까지 동화 판타지를 표방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얼마전 매드하우스의 정신적 지주 린타로 감독이 '요나 요나 펭귄(2009)'이라는 동화 판타지 작품을 내놓는 등 미야자키의 공백을 메울 작품과 감독의 발굴에 적극적입니다. 여기에 동화 판타지와 전혀 관계없었던 Production I.G까지 '망각의 섬: 하루카와 마법의 거울(2009)'로 CG 스타일의 동화 판타지를 선보이게 됩니다.

ⓒ FUJI TV・Production I.G・電通 (좌) / ⓒ RINTAROU・MADHOUSE・YONA YONA PENGUIN Film Partners (중) / ⓒ GNDHDDTW (우)


아니메의 출발점이기도 했지만, 오리지널 아니메로 그 힘을 대부분 상실했던 동화 판타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의해 아니메의 대표적 작품이 되었고, 다시 미야자키의 노쇄와 함께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차세대 주자가 그 바톤을 이어받을 차례이지만, 과거 도에이 A형 극장판부터 세계명작극장 시리즈,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로 이어져온 아니메만의 동화 판타지 계보가 이 와중에 부디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디즈니가 과거의 명작 극장 애니메이션의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픽사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에 밀려버린 전철을 지브리가 똑같이 밟게 된다면, 먼훗날 미야자키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그저 과거의 명작으로만 우리에게 남아있게 될테니까요.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5부 끝)


<참고 사이트>

[1]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太陽の王子 ホルスの大冒険) 1968 by 캅셀, CAPSULE 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2] 유니코(ユニコ) 1981 1983 by 캅셀, CAPSULE 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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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호수 (1981), 世界名作童話 白鳥の湖 / Swan Lake


ⓒ TOEI Animation

<정보>

◈ 원작/각색: 중세 독일 전설, 러시아 민화 / 이가라시 유미코
◈ 감독: 야부키 키미로
◈ 각본: 후세 히로카즈
◈ 캐릭터 디자인: 이가라시 유미코
◈ 작화감독: 노다 타쿠오
◈ 미술감독: 츠지 타다나오
◈ 지휘/연주: 스테판 솔테츠 / 빈 교향악단
◈ 기획/제작: 아리가 켄 / 이마다 치아키
◈ 제작사: 도에이 동화
◈ 저작권: ⓒ TOEI Animation
◈ 일자: 1981.03.14
◈ 장르:  드라마, 세계명작,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너무도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울려퍼지면, 안개가 낀 숲 속의 호수에서 백조의 무리가 등장한다. 그 중에는 왕관을 머리에 쓴 신비로운 백조가 있었는데...

한편, 숲에서 말을 달리던 지크프리드 왕자와 그의 수하들은 호수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던 중 왕관을 쓴 신비로운 백조를 발견하게 된다. 많은 백조들이 왕관을 쓴 백조를 에워싸고 왕자는 백조의 신비로운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상한 올빼미가 나타나자 백조들은 겁에 질려 흩어지기 시작하고, 이 와중에 왕자의 부하가 그 백조에게 화살을 겨누는 순간 놀랍게도 부하는 돌로 변하고 만다.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지그프리드 왕자. 과연 신비로운 백조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편, 왕궁으로 돌아간 지크프리드 왕자는 22살의 생일을 맞아 결혼을 하라는 왕비의 강요를 받고 방황하게 되는데... 그의 머리속에는 아까의 백조가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소개>

'백조의 왕자(1977)', '엄지공주(1978)', '숲은 살아있다(1980)'에 이은 도에이 세계명작동화 시리즈 제4탄이자 도에이 동화 창립 25주년을 기념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전까지의 세계명작동화 시리즈와는 달리 '캔디 캔디(1976)'의 여류만화가 이가라시 유미코가 원작을 각색하였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작품의 비주얼이나 스토리 모두 세계명작동화이면서도 순정만화적 스타일이 도드라지는 작품이 되었다. 또한, 전작 숲은 살아있다의 레닌그라드 교향악단에 이어 이번에는 빈 교향악단이 연주를 맡아 차이코프스키의 동명 발레곡을 연주하여 작품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아름다운 원작의 이야기가 비교적 잘 극장판으로 각색되었지만, 짧은 상영시간과 아동 만화영화라는 한계 덕인지 지크프리드 왕자가 공주를 사랑하게 되는 초반의 전개가 너무 급하게 진행되어버리는 바람에 짜임새는 조금 헐거운 편이라고 하겠다. 거기에 비극적인 원작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바뀌면서 드라마적 구성은 좀 약해진 편이다. 세계명작동화 시리즈가 만약 90~100분 정도의 러닝타임만 갖고 있더라도 보다 더 밀도 있는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이런 부분은 아쉽다고 하겠다.

다람쥐 커플이 작품의 관찰자 시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는 부분은 디즈니적 설정으로 흥미로운 구성이기도 했지만, 반면에 짧은 러닝 타임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분량을 그만큼 줄인 사족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다람쥐 캐릭터의 등장은 작품의 관객층인 어린이들에게는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클리셰로 볼 수도 있지만, 결국 드라마 전체로는 이야기가 분산된 느낌이 든다. 물론, 아동 만화영화의 눈높이에서 이 작품은 당시로 따지면 훌륭한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순정만화풍의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역대 세계명작동화 시리즈 중 가장 미려한 캐릭터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소녀와 숙녀의 매력을 동시에 지닌 금발의 오데뜨 공주는 개인적으로 일본 아니메 여성 캐릭터 중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캐릭터이기도. 25주년 기념작이라는 의의에 걸맞게 일본 영화사상 최초의 PCM 디지털 녹음방식에, 당대 인기여우인 타케시타 케이코의 기용 등 여러가지 화제거리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봉 직전 제작한 셀화 3,000매가 도난 당하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하여 실제보다 개봉이 늦어지기도 하였다. ([2], [3] 참조)

ⓒ TOEI Animation



<참고 사이트>

[1] Swan Lake (movie), ANN
[2] 世界名作童話 白鳥の湖, Wikipedia Japan
[2] 백조의 호수(白鳥の湖) 1981 by 캅셀, CAPSULE 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 Anima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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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의 기사 이야기, 불타올라라 아서 (1979), 円卓の騎士物語 燃えろアーサー


ⓒ TOEI Animation

<정보>

◈ 원작: 토마스 맬로리 (아서왕의 죽음)
◈ 총감독: 아케히 마사유키
◈ 각본: 마지마 미츠루, 이토 츠네히사 外 
◈ 연출: 아케히 마사유키, 카츠마타 토모하루, 오치아이 마사무네, 후쿠시마 카즈미 外
◈ 캐릭터 디자인: 노다 타쿠오
◈ 작화감독: 노다 타쿠오, 스즈키 야스히코, 키쿠치 조지 外
◈ 원화: 카나다 요시노리, 김대중 外
◈ 미술감독: 츠지 타다나오
◈ 음악/노래: 타나베 신이치, 키쿠치 슌스케 (주제가) / 사사키 이사오 (오프닝), 호리에 미츠코 (엔딩)
◈ 기획: 벳쇼 타카하루, 카츠타 토시오, 春日東
◈ 제작사: 도에이 동화, ADK, 후지 TV, 대원동화 (협력)
◈ 저작권: ⓒ TOEI Animation
◈ 일자: 1979.09.09
◈ 장르: 모험, 시대물,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TVA (30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진 중세시대의 영국. 카멜롯의 우서왕은 야심가이자 사악한 라빅 왕의 습격으로 그만 목숨을 잃고 만다. 위기의 순간에 우서왕은 어린 아들 아서를 마법사 멀린에게 맡기게 되고, 라빅 왕의 마수를 피한 멀린은 아서를 그린우드 숲의 명망높은 기사 엑터에게 맡기게 된다. 엑터의 아들로서 자라게 된 아서는 영문도 모른체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15살의 건장한 소년이 되었다.

한편, 라빅 왕은 각지의 소국을 점령하면서 그 세력을 차츰 넓혀 마침내 전 영국의 왕이 될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켄터베리 사원에 모인 여러 왕들에게 자신이 왕이 되겠다 선언하는 라빅. 그러나, 대주교는 무쇠모루에 박혀 있는 신검 엑스칼리버를 뽑는 사람이 진정한 영국의 왕이 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리고, 각지에 엑스칼리버를 뽑아 영국의 왕이 될 인재를 모집하게 된다.

마침내 운명의 날, 라빅왕을 비롯한 많은 영국의 용사들이 이 신검을 뽑으려 도전했으나 모루에 깊게 박힌 신검은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그 자리에는 엑터와 아서도 있었으니, 엑터는 아서에게 신검을 한 번 뽑아보라고 하게 되고, 애송이 소년이 나서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라빅왕은 아서에게 신검을 뽑지 못할 경우, 엑터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협박을 한다. 검자루를 굳게 잡은 아서, 아버지의 생명이 달린 운명의 모루 앞에서 소년의 기합이 울려퍼지자 거짓말처럼 모루 속에 깊이 박힌 신검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 소년이야말로 영국의 진정한 왕이 될 남자다.


<소개>

나가하마 타다오와 선라이즈의 힘을 빌린 로봇 아니메 시리즈, 그리고 마츠모토 레이지와 매드하우스 인재들의 힘으로 만들어낸 SF 아니메 등으로 70년대 후반의 도에이는 아니메 업계에서 변치않는 아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도에이 동화 자체적인 창작물에 있어서는 눈에 띄게 그 힘이 약해진 상황이었다. 다이나믹 프로와 결별한 뒤 독자적으로 시작한 마그네 로보 시리즈는 3편인 '초인전대 바라타크(1977)'를 끝으로 그 추진력을 잃은 상황이었으며, 이후 도에이 독자적 로봇 만화영화가 등장하는 것은 '기갑함대 다이라가 XV(1982)'에 이르러서야 가능했지만, 이미 로봇 아니메의 바톤은 선라이즈에게로 넘어가고 난 뒤였다. 81년 토리야마 아키라 원작의 '닥터 슬럼프, 아라레 짱(1981)'로 다시 한 번 TV 시장을 석권하는 도에이였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들만의 오리지널 아니메의 부재 속에 도에이 동화의 실상은 '속빈 강정'과 같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특유의 제작력과 자금력으로 계속적으로 히트작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즈음 '인어공주(1975)'를 통해 자신들의 원점이었던 세계명작동화가 여전히 티겟팅 파워가 있음을 감지한 도에이는 그로부터 '세계명작동화 백조의 왕자(1977)'와 '엄지공주(1978)' 등을 연이어 극장판으로 제작하면서 다시금 세계명작동화의 불씨를 살리고 있던 중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도에이는 고전 명작 서유기를 모티브로 하여 마츠모토 레이지의 스타일링을 더한 'SF 서유기 스타징가(1978)'를 통해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본 도에이는, 연이어 세계명작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TV 만화영화를 제작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아서왕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원탁의 기사 이야기, 불타올라라 아서(1979)'인 것이다.

그동안 중세 기사문학이라는 소재가 아니메로 등장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아서왕의 이야기는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었다. 다만, 너무 서사적이고 비극적(?)이며, 종교적인 아서왕의 이야기는 그대로 만화영화할 경우, 아동 시청층을 끌어들이지 못할 것이라 판단, 원작의 이야기 대부분을 새로이 각색하여 아서왕 1인의 모험 이야기로 탈바꿈 시키게 된다. 세계명작동화의 형태를 띈 기사들의 모험 이야기가 된 셈이다.

아서왕의 친구이자 애증의 라이벌로서, 아서왕의 전설에서 아서왕보다 더 매력적인 모습을 보였던 호수의 기사 란슬롯은 우직하고 듬직한 아서왕의 절친한 동료라는 컨셉으로 한정되었고, 원작에서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던 기사 트리스탄을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꽃미남 기사로 탈바꿈 시켜 오히려 더 많은 인기를 얻어내게 된다. 여기에 거구의 기사 퍼시발과 소년 가라하드가 포함되어 마치, 5인 전대물을 연상시키는 캐릭터 라인을 구축하게 된다. 이들 5인이 라빅 왕과 마녀 모르가나에 맞서 성스러운 방패를 찾아내기 위한 여행을 떠나 마침내 방패를 들고 영국을 구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스토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칼과 활로 싸우는 중세 기사들의 모험 이야기가 어린 시청자들에게는 큰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검과 활을 사용하는 만큼 다이나믹한 움직임들이 구현되었으면 좋으련만, TV 시리즈라는 속성상 그렇게 많은 동화매수를 커버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따랐고, 결국, 각종 화려한 무기시스템으로 치장된 로봇물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싱거운 모험물이 되어버린 것을 아닌가 싶다. (기사문학을 좋아라 하는 엘로스로서는 어린 시절 무척이나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이지만 말이다.)

그로 인해 일본 내에서는 큰 반향을 거두지 못한 체 1년이라는 방영분을 채우지 못하고 내용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도에이 동화는 여기서 한가지 대안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기사들의 이야기인 이 작품의 과감한 노선 변경이었다.


불타올라라 아서, 백마의 왕자 (1980), 燃えろアーサー_白馬の王子


ⓒ TOEI Animation

<정보>

◈ 주요 스탭진의 구성은 위와 거의 동일
◈ 노래: 미즈키 이치로 (오프닝), 오오스기 쿠미코 (엔딩)
◈ 제작사: 도에이 동화, ADK, 후지 TV
◈ 저작권: ⓒ TOEI Animation
◈ 일자: 1980.04.06
◈ 장르: 모험, 시대물, 액션, 판타지
◈ 구분/등급: TVA (22화) / 전연령가 (G)


<소개>

30화 정도에서 일단락 된 아서왕의 이야기는 '불타올라라 아서, 백마의 왕자'라는 새로운 부제를 달고 1기 종영 직후 바로 방영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카멜롯의 왕이 된 아서가 자신의 왕국을 평민으로 잠행하면서, 각지의 탐관오리들을 물리치는 암행어사식 이야기로 탈바꿈하게 된다.

2기에서의 중요한 변화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중세 기사물에서 판타지 물로 작품의 노선이 과감하게 변한 것을 들 수 있다. 광선검처럼 변하는 엑스칼리버나 신비한 광선을 뿜어내어 적들을 물리치는 성스러운 방패는 물론, 하늘을 날아다니는 배까지 등장하며, 과감한 원작파괴와 파격적인 내용변화를 꾀했다. 즉, 칼싸움만으로는 높아진 아이들의 눈높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모양새는 후일 판타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아니메식 컨셉을 대입하는 여러 판타지 아니메의 특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즉, 중세 판타지의 일본식 재해석이 이미 이 아서왕에서 행해진 것이라 보여진다.

☞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1부: 닛폰 스타일로 연주된 중세 판타지 아니메의 세계 (보러가기)

2기는 22화를 끝으로 종영되었다. 이러한 노선변화가 큰 시청률 상승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듯 싶으며, 결국 1기와 2기를 포함하여 1년이라는 예정된 방송분량을 마친체 원탁의 기사 이야기는 결국 쓸쓸한 결과만을 남긴체 TV에서 내려오게 된다. 또한, '마징가 Z(1972)' 이후 약 9년간 계속되던 도에이의 후지 TV 일요일 저녁 7:00 시간대 프로그램은 결국 이 아서왕의 이야기를 통해 마감되고 만다. ([1] 참조)

일본 내에서의 차가운 반응과 달리 아서왕의 이야기는 유럽과 한국 등에서는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특히, 1기의 경우는 한국의 대원동화가 하청을 맡아 김대중 감독과 같이 매드하우스 계열의 작품에서 활약한 인재들이 원화스탭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판 주제가는 창작곡으로 박우철씨가 불렀는데 원 주제가를 능가하는 포스로 박력이 넘치는 멜로디와 가사가 일품이다.

☞ 원탁의 기사 이야기에 관한 괜찮은 리뷰 보러가기: <원탁의 기사>(円卓の騎士物語 燃えろアーサー)(1979) by 키웰


<참고 사이트>

[1] 円卓の騎士物語 燃えろアーサー, Wikipedia Japan
[2] 円卓の騎士物語_燃えろアーサー, Toei Animation
[3] 燃えろアーサー 白馬の王子,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 Anima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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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왕자 (1977), 世界名作童話 白鳥の王子 / The Wild Swans  


ⓒ TOEI Animation

<정보>

◈ 원작: 안데르센 동화 '들판의 백조'
◈ 감독: 니시자와 노부타카
◈ 각색: 류 토모에
◈ 작화감독/작화감수: 츠노다 코이치 / 아베 타카시
◈ 미술감독: 치바 히데오
◈ 음악: 코모리 아키히로
◈ 기획/제작: 아리가 켄, 旗野義文 / 이마다 치아키
◈ 제작사: 도에이 동화
◈ 저작권: ⓒ TOEI Animation
◈ 일자: 1977.03.19
◈ 장르: 드라마, 세계명작동화,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사냥 중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왕은 길을 헤매던 중 한 마녀를 만나게 된다. 길을 빠져나오는 조건으로 마녀는 자신의 딸 그레타를 아내로 맞이할 것을 청하고, 마침 홀몸인 왕은 그레타를 데리고 숲을 빠져나오게 된다.

한편 왕에게는 6명의 왕자와 엘리사라는 1명의 공주가 있었다.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오직 요술 공만으로 찾아갈 수 있는 숲속 비밀의 집에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왕이 자신보다 아이들을 더 끔찍히 여기는 사실을 안 그레타는 질투심에 불타오른다.

모두가 잠든 밤, 요술의 공을 찾아낸 그녀는 이것을 사용하여 숲속 비밀의 집에 도착한다. 마법의 옷감을 던져 11명의 왕자를 백조로 만들어 버린 그레타. 절체절명의 순간, 백조로 변한 왕자가 엘리사에게 던진 그레타의 마법의 옷감을 가로채고, 엘리사는 숲속의 집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여 도망길에 오르게 된다. 오빠들을 그리워하며 정처없는 유랑의 길을 떠난 엘리사, 추운 겨울날 어느 동굴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빠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밤이면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가 해가 뜨면 다시 백조가 된다. 오빠들과 함께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엘리사. 

겨울이 끝나고 백조의 모습으로 먼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 오빠들은 자신들이 사람이 될 한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손에 닿기만 해도 따가울 정도의 가시나무 엉겅퀴를 짖이겨 그 실로 옷을 만들어 자신들에게 입히라는 것. 이 고통의 작업을 거쳐야만 오빠들을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는 엘리사.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조건이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조끼를 완성하여 오빠들에게 입힐 때까지 몇 년이 걸려도 절대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혹시라도 말을 하게 되면 오빠들은 모두 죽는다고 한다. 과연 그녀는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조건을 모두 지켜내고 오빠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소개>

안데르센 동화를 원작으로 새롭게 각색하여 만들어진 세계명작동화 1탄. 그림 형제의 '여섯마리의 백조'와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이 고전 전래동화가 새롭게 시작된 도에이 동화의 세계명작동화의 1번 타자로 선정되었다. 한동안 버려 두다시피 했던,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세계명작을 모티브로 한 극장판 만화영화가 '세계명작동화'라는 부제를 달고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도에이의 75년작 '인어공주(1975)'를 통해 세계명작동화도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로컬라이징을 통해 충분히 상업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인어공주(にんぎょ姫) 1975 by 캅셀 참조)

하지만, 그 외에도 당시 도에이 동화에서 A형 극장판을 주도하던 모리 야스지, 타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인재들이 대거 도에이 동화를 이탈하여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주도하며 인기를 이어간 것 역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은데, 특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엘리사의 어릴 적 모습이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1974)'의 주인공 하이디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한 점(헤어스타일부터 옷 스타일까지)이 이를 시사하지 않나 싶다.

못된 왕비에 쫓겨난 어여쁜 공주가 결국 고난을 이겨내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는 지극히 동화적이고 뻔한 결말의 작품이지만, 오빠들의 저주를 풀 수 있을 때까지 엉겅퀴 가시로 옷을 뜨면서 한마디도 말을 할 수 없는 엘리사의 설정은 꽤나 드라마틱하다. 시시각각 그녀에게 누명이 씌워지고 마녀로 몰려 화형장까지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도 묵묵히 오빠들을 위한 조끼를 짜는 그녀의 안타까운 장면에서부터 극적으로 조끼를 입고 인간으로 되돌아온 오빠들과의 감격적인 상봉까지 이르는 클라이막스는 멋진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 라스트 장면은 지금봐도 참으로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다만, 인트로의 비약이 너무 심해서 드라마적 완성도는 기대에 못미치지 않았나 싶다. 아동용을 타깃으로 한데다가 한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제작되다보니 아무래도 일부 내용을 불가피하게 삭제한 듯 싶다고 생각된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면서 엘리사의 비극적인 초반부가 축약된 것이나 그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슬픔 등이 그려지지 못한 부분도 아쉽다. 이러한 부분들이 살아 있었다면 보다 더 드라마틱한 작품이 되었겠지만, 이 정도로도 아동용 작품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겠다. 엘리사가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설정 덕분에 주인공 성우가 상당 기간 동안 입을 다물어야 하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 생겼는데, 한가지 의문은 도대체 왜 글자를 사용해 소통하지 않았냐는 것으로, 아마도 문자가 없는 나라거나 왕족이지만 불쌍하게도 문맹이거나 둘 중의 하나인가 싶다. 역시 애들에게는 엄마가 있어야... (실상은 동화인데 너무 따지는게 엘로스가 문제다)

한국에서도 명절특집으로 몇차례 방영되어 당시의 아이들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남긴 작품이다.


<참고 사이트>

[1] 세계명작동화 - 백조의 왕자 (世界名作童話 · 白鳥の王子) by 캅셀, CAPSULE: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2] 世界名作童話 白鳥の王子 (1977), allcinema.net
[3] The Wilde Swans, Wikipedia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 Anima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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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FILMLINK Int.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Vampire Hunger D Production Commitee


<목차>



<서문>

3부에서는 아니메 각 장르에 판타지를 대입한 새로운 형태의 퓨전 판타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부와 2부가 지역적인 관점에서 판타지 아니메를 나눈 것이었다면, 3부는 아니메를 통해 판타지가 새롭게 변형되어진 사례를 알아보았다고 해야겠지요. 이번 4부에는 SF와 다양한 설정으로 변형된 퓨전 판타지가 아니라, 고전적인 장르인 호러를 아니메에 대입하면서 판타지적인 설정이 부각된 속칭 '호러 판타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사실, 호러 장르에는 상상 속에 볼법한 기괴한 괴물들이 등장하고 있기에 이미 판타지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호러의 단골 소재인 드라큘라나 늑대인간, 구미호와 요괴, 도깨비는 모두 상상이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판타지 세계의 크리쳐들로, 이야기의 성격이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인데요. 이러한 판타지와 호러는 생각 외로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어렷을 적 보고 자란 동화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사악한 괴물이나 마법사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동화의 성격 탓에 이야기가 순화되었을 뿐 실제로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크리쳐나 현상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로, 이것만으로도 두 장르의 연관성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호러와 판타지는 어찌보면 같은 출발점을 가지고 있는 장르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판타지의 어두운 단면에는 공포와 어두움이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의 단골 악역인 악마와 마왕이 호러의 주테마인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실제로 호러적인 상상력과 연출방식은 판타지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판타지를 대표하는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한 필 잭슨 감독이 '데드 얼라이브'나 '프라이트너'와 같은 공포영화를 연출해왔던 인물이라는 점이나, '스파이더 맨' 시리즈로 잘 알려진 감독이자 실사영화판 '워크래프트'를 연출할 예정인 샘 레이미 감독이 공포영화 '이블 데드' 시리즈로 연출경력을 쌓아온 인물이라는 점은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도 있지요. 2부에서 언급한 오리엔탈 판타지 장르의 아니메 '십이국기'의 경우에도 원작자인 후유미 오노가 공포소설을 써온 여류작가라는 점도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상상의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호러는 마치 강한 맛을 내는 스파이스 소스같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이번 시간은 위에서 이야기한 판타지의 어두운 단면, 즉 다크 판타지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호러 판타지를 소재로 한 아니메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공포 장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분, 또는 노약자와 임신부는 살포시 뒤로 가기를 눌러 주....실 건 없군요. 무서운 장면 안나옵니다. 부담갖지 마시고 즐겨 주세요.


아이들의 만화영화에 귀신이야기를 접목시킨다면?

화영화가 비록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한정된 장르는 아니었으나, 만화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소재의 선택이나 사회적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적인 작품이 주로 만들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일본 만화영화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본 상업용 만화영화의 시작을 장식한 도에이 동화의 작품들 모두가 세계명작동화를 소재로 한 동화 판타지의 형태였었는데요. 이런 상황이다보니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는 호러와 같은 소재들이 만화영화에 등장하기에는 아무래도 여러가지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백사전(1958)'에 등장한 사람으로 둔갑하는 거대한 흰뱀이라든지, '소년 사루토비사스케(1959)'에 등장하는 여자요괴와 같은 설정이 어느 정도 호러라는 장르의 영향을 받았음을 감안한다면, 호러와 일본 만화영화는 먼 옛날부터 미약하지만 길고 긴 인연을 쌓아왔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디즈니의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사악한 마법사 여왕의 음침한 모습에서도 어느 정도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는데요. 물론, 이러한 것들은 공포심을 유발시키기 위한 소재이긴 했으나, 아이들이 보는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표현 수위와 같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호러의 특색이 거세된 것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 맞게 희석시킨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호러의 소재를 만화영화에 접목시키는 것이 부분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을 때, 한 편의 작품이 요괴라는 호러적 소재를 정면에 내세워 TV 시리즈 아니메로 성공적인 모습을 선보이게 되니 그것이 바로 일본 만화영화의 대표적 아이콘이자 국민 만화라 할 수 있는 미즈키 시게루의 '게게게의 키타로(1968)'인 것입니다.

그림 연극의 일러스트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묘지의 키타로'라는 원제에서 묘지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덕분에 작자 자신의 어린 시절의 별명(게게루)에서 변형된 무의미한 '게게게'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로 알 수 있듯이 당시 호러 장르가 만화영화로 표현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제약을 갖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는데요. 유령족의 마지막 일족 소년 키타로와 키타로의 아버지인 눈알 아저씨, 그리고 쥐 아저씨와 같은 요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일본의 오래된 전승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미스테리한 괴담의 형식을 띈 원작의 이야기는 만화영화로 이식되면서 요괴소년인 키타로와 그의 동료들이 악한 요괴들과 싸운다는 어린이판 다크 히어로물의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 ·

ⓒ 水木プロ · TOEI Animation (좌) / ⓒ 第一動画 (우)


그림연극과 만화를 거쳐오면서 이미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에게 익숙한 컨텐츠로 자리잡고 있던 키타로는 만화영화로서도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특히, 요괴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이지만 친숙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인기를 얻게 되는데요. 비록 여러가지 시대적인 여건에 의해 호러 판타지 본연의 색깔이 많이 탈색된 키타로였지만, 이런 소재가 대중적이고 스테디한 인기를 얻으면서 만화영화에 호러 장르가 인식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게 됩니다. 특히, 구전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괴의 수만도 엄청나게 많을 정도로 괴담을 즐기고 괴담에 익숙한 일본의 국민성을 고려할 때, 아니메에서 호러 장르가 앞으로 보다 더 자주 등장하리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사례라 하겠지요. 

키타로와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요괴인간 벰(1968)'의 경우는 키타로에 비해 보다 더 호러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사람이 되고 싶은 요괴인간 벰, 베라, 베로의 이야기는 역으로 인간들의 삐뚤어진 모습을 투영하는 등 작품 내적으로도 상당히 성숙한, 당시 TV 만화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전개이기도 했었는데요. 무엇보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내에서도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 세계에 큰 인기를 끌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키타로와 함께 60년대 호러 만화영화의 큰 획을 그은 작품이기도 하지요.

70년대를 넘어서는 나가이 고의 '데빌 맨(1972)'이 그 바톤을 이어받게 됩니다. 데빌맨은 앞선 두 이야기와 비슷하게 악마가 주인공인 다크 히어로적인 성격의 작품이지만, 울트라 맨과 같은 거대 히어로의 성격이 더해진 보다 하드한 액션이 볼거리인 장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판타지보다는 히어로 액션물에 더 어울리는 형태라고 할 수도 있지요. 이에 비해 비슷한 시기에 코믹스로 그려진 데빌맨은 실로 호러 판타지에 어울리는 충격적인 표현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묵시록적인 세계관은 평범한 히어로물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TV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나가이 고만의 어둡고 암울한 작품관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당시로서는 충격적이라 할 수 있을만큼 하드고어스러운 표현으로 호러 판타지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비록 이러한 비주얼과 이야기는 당시 만화영화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호러의 진행방향이 확실히 이전과는 달리 과격해지기 시작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지요. 특히 나가이 고의 하드고어적인 폭력성이나 묵시록적인 세계관, 거기에 가학적 에로티시즘은 후대의 작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후 나가이 고는 '도로롱 엔마군(1973)'과 같이 키타로의 영향을 받은 듯한 아동용 호러 판타지물을 선보이며, 호러 판타지의 끈을 놓치는 않습니다만, '마징가 Z(1972)'의 대히트로 인하여 본연의 정체성을 잠시 접어두고 로봇물의 활성화(?)에 앞정서게 됩니다. 70년대까지만해도 호러가 만화영화에서 제자리를 잡는 것은 순탄치는 않은 듯 싶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를 SF와 로봇들이 메꾸면서 호러( 판타지)는 봉인된 미이라처럼 만화영화의 심연으로 가라앉게 되고 잠시 동안의 동면에 들어갑니다.

ⓒ 永井豪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OVA의 탄생과 하드고어 호러 판타지의 대두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의 TV 아니메가 태동기에 등장하여 좋은 반응을 이끌었던 키타로와 요괴인간, 데빌맨 이후로 호러 판타지는 주목할만한 작품을 내놓치 못한 체 70년대를 지나 80년대로 들어서게 됩니다. 당시에 이와 같은 현상은 1부부터 3부까지 언급한 다른 판타지 장르도 비슷한 양상이었는데요. 82년도에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돈 드라큘라(1982)'가 스폰서의 자금사정으로 8화라는 초 단기연재를 끝으로 조기 종영(물론, 돈 드라큘라 역시 호러의 의미가 퇴색된 가족물의 형식을 보여준 작품이지만)하는 등 호러 판타지는 80년대 중반까지 뚜렷한 대표작을 내놓지 못한 체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SF/로봇물의 득세가 무엇보다 큰 요인이었지만, 점차적으로 감상 연령층이 높아지는 아니메에서 (고정팬층이 확보된 키타로를 제외한) 아동용 호러 아니메가 경쟁력을 상실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 보구요. 장르적 특성상 TV 시리즈로 나오기에는 표현의 제약이 따랐고, 극장용으로 만들어지기에는 성공가능성이 의심되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이무렵, 호러 판타지와 같은 마이너한 장르에 한가닥 희망을 던져준 일대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것이 바로 OVA(Original Video Animation)의 탄생이었습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달로스(1983)'를 시작으로 OVA는 TV와 극장으로 양분되어 있던 아니메 시장에서 서서히 그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당시에는 주력 영상매체인 VHS 비디오와 베타 비디오 외에 레이저 디스크까지 생겨나면서 일본 미디어 시장이 점차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영상 매체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자 마니아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안으로 OVA가 적격이었던 셈이지요. 장르나 표현수위가 TV 아니메나 극장용 아니메에 비해 훨씬 자유로웠던 OVA는 그동안 소외되던 장르를 위한 블루오션이었으며, 애니메이터들이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동안 소외받고 있던 호러 판타지 역시 새로운 추진력을 얻게 되니, 이 시기에 첫 테이프를 끊게 되는 작품이 바로 공포소설의 대가 키쿠치 히데유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시다 토요오 감독의 '뱀파이어 헌터 D(1985)'였던 것입니다.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좌) / ⓒ 西谷史 · ANIMATE Film (우)


뱀파이어라는 호러 장르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소재로, 인간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혼혈 뱀파이어 던필의 모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키쿠치 히데유키와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단연 호러 판타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작품이 아니메로 제작된다는 것은 OVA로 인해 가능해진 표현상의 자유와 장르의 다양화가 하나의 원인이라고 하겠는데요. 특히, 이 작품은 호러 판타지에 어울리는 고어스럽고 괴기적인 비주얼로 이전보다 더 공포스러운 느낌을 선사하게 됩니다. 이러한 노골적이고 잔인한 연출은 아시다 토요오의 차기작 '북두의 권(1987)' 극장판에서도 등장하며, OVA로 인해 촉발된 표현의 자유가 극장판 아니메에까지 옮겨지게하는 계기가 되지요.

OVA의 활성화와 함께 80년대 중후반에는 SF 장르가 몰락하면서 다른 장르가 조금씩 힘을 얻게 되는, 이른바 아니메의 춘추전국시대가 시작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발표된 몇몇 판타지 작품들 중에서도 호러 판타지의 활약상은 눈에 띄는 것으로, '기동전사 더블제타 건담(1987)'의 초절정 인기 애니메이터 키타즈메 히로유키가 캐릭터 디자인으로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던 '여신전생(1987)'의 경우는 평범한 학생이 악마를 소환하고 합체하는 다크 히어로 액션물로 비록 아니메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게임으로 큰 호평을 받으며 호러 판타지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87년, 마침내 호러 판타지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이변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리미티드 아니메 기법을 예술적인 경지까지 끌어올린 아니메의 영상 아티스트 린 타로 감독의 제자로서, 스승 못지 않은 기량을 갖추고 있던 카와지 요시아키가 후일 그의 절친한 친구가 되는 뱀파이어 헌터 D의 작가 키쿠치 히데유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호러 판타지 아니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걸작 OVA를 탄생시키게 되니 그것이 지금도 카와지리 요시아키의 걸작 필모그라피 맨 윗줄에 놓여있는 '요수도시(1987)'인 것입니다.

ⓒ 菊地秀行 · 徳間書店 · ビデオアート · JAP Home Video(좌) /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ビデオアート · JAP Home Video(우)


이 작품은 이제까지 선보였던 호러 판타지류의 작품들에 비해 호러스러운 분위기를 훨씬 더 실감나게 묘사했던 작품으로, 그동안 아니메에 있어서는 변방의 장르에 그쳤던 호러 판타지가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괴기적인 설정 뿐만 아니라, 폭력과 에로티시즘이라는 성인물의 코드를 아니메에 실로 완벽하게 이식해내면서도 작품의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며, 다크 히어로라는 우리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굴레를 벗어나 하드보일드 액션장르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단순히 말초적인 유혈장면이나 에로티시즘에 천작하지 않고, 다양한 연출기법과 뛰어난 영상미학, 그리고 독특한 설정과 디자인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주력한 것이 요수도시의 성공원인이라 하겠지요.

카와지리 요시아키는 이듬해에 '마계도시(1988)'에서도 요수도시의 스타일을 잇는 요사스럽고 박력있는 호러 판타지 액션을 선보이며, 아니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호러 판타지는 요수도시를 기점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닌자라는 사무라이 액션 소재와 요괴라는 장르를 혼합한 '전국기담 요도전(1987)'이나 코믹스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오기노 마코토 원작의 '공작왕 시리즈(1988~1994)', 카기노우치 나루미의 원작을 바탕으로 남편인 히라노 토시키가 연출한 '흡혈희 미유(1988)', 그리고 란마1/2와 메종일각으로 유명한 다카하시 루미코 '인어의 숲(1991)', '인어의 상처(1993)'과 같은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이제까지의 패턴을 벗어난 다양한 장르와의 접목을 통해 좋은 모습을 연이어 선보입니다. 특히, 흡혈희 미유나 인어의 숲 등은 액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드라마성을 강조하는 미스테리적 요소 역시 선보이면서 수년 뒤에는 TV 시리즈로까지 호러 판타지를 진출시키는 의미있는 시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 JVC (좌) / ⓒ 平野俊貴事務 · 所吸血姫 美夕 製作委員會 · TV 東京 (우)



18금 아니메에 의한 호러 판타지의 변질과 몰락

OVA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또 하나의 현상은 바로 본격적인 성인용 H(헨타이의 H를 이니셜로 하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변태라는 뜻. 변태의 원의미보다는 에로틱이라 용어를 대체하는 뜻으로 보면 될 듯) 아니메의 등장이었습니다. 84년 '크림레몬 - 아미'를 시작으로 성인 아니메는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호러 본연의 거부감 때문에 상업성을 위해 예로부터 B급 호러영화들에 숱하게 에로틱한 장면들이 등장했던 것처럼, 이러한 성인 아니메의 태동은 호러장르와의 피할 수 없는 조우를 예고하고 있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미 요수도시를 통해 호러 판타지와 에로티시즘의 궁합이 증명된 1987년, 요수도시보다 3개월 먼저 등장하여 H 아니메임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호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괴한 작품이 등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마에다 토시오의 원작을 기본으로 한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1987)'입니다. 초창기의 H 아니메는 크림레몬에서도 보여진 바와 같이 H 아니메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성이 강조된 작품이 많았었는데, 이 우로츠키 동자 역시 인간계와 마계, 그리고 반인반수의 수인계가 존재하는 세상에 3,000년에 한번 부활하여 세갈래로 나누어진 세계를 하나의 세상으로 만들어낸다는 초신이라는 존재가 벌이는 이야기를 보여주어, 시놉시스만으로 보았을 때는 장대한 판타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초신과 요괴들이 벌이는 하드고어적인 잔혹한 액션과 요사스러운 묘사 외에도 당시 아니메의 수준을 능가하는 과격한 정사씬으로 H 아니메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요. 특히 요괴가 자신의 촉수를 이용해 여성들을 능욕하는 이른바 '촉수물의 효시'라는 또다른 명성을 갖게 됩니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호러 판타지의 형식을 취하면서 그 표현수위에 있어서는 포르노그라피의 수준으로 당대의 H 아니메 중에서는 단연 두드러진 작품이라고 하겠는데요. 이러한 B급 포르노 아니메가 일본을 넘어 북미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아니메로서는 충격에 가까운 성애묘사도 묘사였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H 아니메로서는 보기드문 이야기의 완성도와 B급 아니메라고는 믿을 수 없는 뛰어난 작화 퀄리티를 그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실제 우로츠키 동자의 스토리텔링은 오히려 근래의 허접한 몇몇 TV 시리즈 아니메들보다도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성애묘사를 모두 삭제하거나 도입부만 보이도록 편집한 후에도 이야기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여타의 H 아니메들과는 차원을 달리했으며, 야마시타 아키히코, 오오모리 히데토시, 사토 케이이치, 고토 케이지, 야나기사와 테츠야, 코바야시 마코토 등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아니메의 작화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스탭진의 이름만으르도 그 완성도를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특히, 이 작품의 원작자인 마에다 토시오는 '음수학원(라 블루 걸, 1989)'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촉수물의 붐을 일으키게 하는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이러한 촉수물은 당시 OVA 시장에 붐을 일으키고 있던 하드고어와 호러액션 장르의 설정을 H 아니메로 가져와, 액션과 드라마의 비중을 줄이고 가학적인 성애묘사에 치중하는 기형적인 형태로의 변형을 시도하면서 호러 판타지의 타락을 일으키는 일등 공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됩니다. 90년대 중반까지 촉수물은 H 아니메의 가장 인기있는 소재로 자리잡게 되면서 과도한 폭주 끝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영향력을 거의 잃다시피 하였고, 일본의 삐뚤어진 성적 판타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질타를 받아오며 일본 아니메의 어두운 부분을 상징하는 하나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변질로 인해 그 가치가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촉수물은 호러 판타지의 또다른 모습이었으며 같은 핏줄을 가진 사생아라 할 수 있는 존재들로, 호러 판타지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존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 前田俊夫 · ???



호러 판타지가 TV를 만났을 때,

크 히어로 아니메의 굴레를 벗어나 하드고어라는 새로운 장르의 총아로 앞장서며 영상미학을 선도했던 호러 판타지는 폭력과 섹스라는 피할 수 없는 덫에 걸려 스스로 자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호러 판타지는 여러 장르와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변신을 모색하기도 하는데요. 2부에서 언급한 '3X3 아이즈(1991)'는 오리엔탈 판타지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호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후지타 카즈히로의 걸작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요괴소년 호야(우시오와 토라, 1992)' 역시 호러와 오리엔탈 판타지를 접목한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키아 아사미야의 88년도 빅히트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사일런트 뫼비우스(1991)'는 호러와 싸이버펑크를 조합한 퓨전 호러 판타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키아 아사미야의 매력적인 캐릭터와 함께 좋은 평을 이끌어 내게 되지요. 

반면, 이제까지의 우울하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마물헌터 요코(1990)'과 같이 미소녀와 코미디를 혼합한 밝은 형태의 장르와 같이 색다른 시도도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미소녀 장르와의 조합은 '환몽전기 레다(1985)' 이후로 이어져온 미소녀 판타지물의 코드를 계승한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90년대에 들어 개그와 미소녀를 조합하여 등장하는 여러 다른 판타지 장르와 같이 호러 판타지도 어느 정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이전의 요사스러운 느낌 외에 가벼운 장르와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 자체의 변화와 함께 90년대에는 또다른 중요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TV 아니메가 이전보다 더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관대해졌다는 것입니다.

ⓒ 麻宮騎亜 · 角川書店 (좌) / ⓒ NCS · TOHO (중) / ⓒ 平野耕太 · 少年画報社 · Hellsing製作委員会 (우)


90년대 중반에 생긴 이러한 변화는 호러 판타지가 TV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며, 이로 인해 흡혈희 미유나 사일런트 뫼비우스 같이 OVA로 제작되었던 호러 판타지들이 TV 시리즈로 제작되었고, 이러한 양상은 21세기에 들어서도 계속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이전에 비하여 확실히 호러라는 장르가 대중화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헬싱(2001)'과 같이 예전에는 TV 시리즈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나마 많이 순화된)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는 작품이 버젓이 공중파로 방영되었으며, '크르노 크루세이드(2003)', '트리니티 블러드(2005)', '블러드 플러스(2005)', '디 그레이 맨(2006)' 등 편수는 많지 않지만 호러 판타지가 꾸준히 TV 시리즈로 제작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호러 판타지는 이제 더이상 특정 마니아들의 전유물이라든지, 포르노그라피를 등에 업은 변태적 성인 아니메에서난 볼 수 있는 그런 장르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흡혈귀나 괴물들과 같은 소재가 이전에 비해 A급 작품에도 빈번하게 사용되는 당시의 영화계의 시류와도 맞아 떨어져 호러 판타지를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던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과 같은 경우는 친구인 키쿠치 히데유키의 뱀파이어 헌터 D를 다시 한 번 극장판으로 리메이크한 '뱀파이어 헌터 D 블러드러스트(2000)'로 세계시장에 진출하였으며, TV 시리즈 블러드 플러스와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2000)'과 같은 작품의 경우도 압도적인 영상미로 세계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으며 후일 실사영화로까지 제작되기에 이르르는 것이죠.

그 뿐만 아니라 호러 판타지는 미스테리와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변주 또한 선보이게 되는데, '펫숍 오브 호러즈(2000)'나 '지옥소녀(2005)', '신령수 고스트하운드(2007)'와 같은 작품들은 이제까지와의 호러와는 다른 형태의, 보다 더 호러 본연의 의미에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게 되며 '바케모노가타리(2009)'와 같은 작품에 이르러서는 독특한 연출스타일과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인하여 마이너한 미스테리 호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 地獄少女 プロジェクト · スカパーウェルシンク (좌) /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神霊狩 GHOST HOUND 製作委員会 (중) / ⓒ 西尾維新 · 講談社 · アニプレックス・シャフト


호러 장르는 근래 들어 영화에서도 단독적인 장르가 아닌, 장르를 더욱 돋보이기 위한 양념과 같은 요소로 사용되면서 전에 없는 인기를 누리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반지의 제왕 3부작 이후로 판타지가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닌 어른들도 즐길 수 있고 시장성도 있음이 증명된 이후에는 성인용 판타지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그 리얼리티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호러적인 설정을 빼놓을 수가 없는 듯 싶군요. 그것은 괴담과 기담에 익숙하며 오래 전부터 만화영화에 성인용의 표현수위를 적용시켜온 일본 아니메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괴한 괴물들과 공포심을 유발하는 크리쳐가 등장할 수록 극의 흥미는 더더욱 커질 터이니 말입니다.

다만, 호러 장르는 마치 그 단어의 어감처럼 빛과 어둠의 경계에 위치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을 자극할 여지도 있으며, 포르노와 같은 저질문화에 동화되어 타락할 여지도 가장 큰 소재인 것입니다. 이러한 양날의 검과 같은 호러를 잘 다루어 공포심과 상상력을 극대화하면서도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있어서 아낌없는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좋은 호러 판타지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바래봅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4부 끝. 5부에서 계속)


<참고사이트>

[1] ゲゲゲの鬼太郎, Wikipedia Japan
[2] 妖怪人間ベム, Wikipedia Japan
[3] デビルマン, Wikipedia Japan
[4] 뱀파이어 헌터 D(吸血鬼ハンターD )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5] 요수도시(妖獸都市) 1987 by 캅셀, CAPSULE 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6] 超神伝説うろつき童子, Wikipedia Japan
[7] Horror Party - 호러애니메이션 by 깅오바, 지나간 미래, 또는 다가올 과거를 기록하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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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미라클 대작전 (1976), ポールのミラクル大作戦 / Paul's Miraculous Adventure


ⓒ Tatsunoko Pro


<정보>

◈ 원작: 타츠노코 기획실
◈ 총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각본: 토리우미 진조, 야마모토 유우 外
◈ 캐릭터 디자인: 시모모토 아키코
◈ 작화감독: 하야오 노베, 후쿠야마 마사토시
◈ 미술감독: 나카무라 미츠키
◈ 음악/주제가: 키쿠치 슌스케 /  오오스기 쿠미코 (노래)
◈ 기획/제작: 토리우미 진조, 야나가와 시게루 / 요시다 타츠오
◈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덕션, 후지 TV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76.10.03
◈ 장르: 모험, 판타지
◈ 구분/등급: TVA (50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 폴. 10살 생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에게 봉제인형을 생일선물로 받는다. 생일선물에 기뻐하는 그날 밤, 갑자기 봉제 인형의 눈이 빛나더니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살아 움직이며 말까지 하는 봉제인형에게 놀라는 폴. 봉제 인형이 깨어남과 동시에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춰진다. 자신을 찌찌(파쿤)이라 소개한 인형은 함께 이상한 나라에 가지 않겠냐며 폴을 안내한다. 단짝 여자친구인 니나와 니나의 애견 삐삐(톳페)도 같이 여행에 따라나서게 된다.

찌찌가 들고 있는 뿅망치를 내리치자 공간이동이 가능한 통로가 생긴다. 통로를 통해 이상한 나라로 차원이동을 한 폴 일행들.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자 신기한 일들이 가득하다. 폴이 갖고 있는 장난감 자동차는 찌찌의 요술망치로 실제 크기의 만능 자동차로 변신하여 하늘을 날 수도 있다. 게다가 니나의 애견 삐삐는 커다란 귀로 하늘을 날 수도 있는데다가 말까지 가능하다니! 그러나 즐거운 시간도 잠시, 이상한 나라에 갑작스러운 암운이 닥친다. 바로 마왕 벨트사탄이 부활한 것이다. 2천년만에 부활한 벨트사탄은 도망치는 폴 일행에게서 니나를 납치하게 되고, 니나를 구하려 되돌아가려는 폴에게 더이상 이상한 나라에서 머물 시간이 없다며 그를 말리는 찌찌, 결국 통로가 닫히기 전에 폴 일행은 니나를 남겨둔 체 현실로 되돌아와야 했다.

이제 이상한 나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찌찌가 힘을 충전하여 다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는데... 과연 폴은 다시금 이상한 나라로 돌아가 니나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소개>

타츠노코의 76년도 히트 TV 시리즈. 이상한 세계로의 여행이라는 단골 판타지 소재에 타츠노코만의 감성과 아이디어가 더해져 멋진 판타지 모험극으로 태어났다. 찌찌의 힘에 의해 세계의 시간이 멈추고 요술 방망이를 두드려 차원의 문을 연 다음, 이상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이 이야기는 차원이동의 시간에 제한을 두고 매회 니나를 미쳐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남겨둔 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구성을 취하면서 연속극으로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이상한 나라로 차원이동을 하는 장면은 타츠노코의 전작 '타임보칸(1975)' 시리즈의 시간여행 방식과 동일한, 당시 만화영화에서는 꽤 독특한 연출방식이라고 하겠다.

특히, 이 이야기에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다채로운 아이템이 등장하게 되는데, 요요나 장난감 자동차 같은 평범한 장난감들이 찌찌의 요술방망이에 의해 환상의 무기로 변하는 설정은 다분히 판타지 히어로들의 전설적인 무기들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옮겨놓은 재미있는 설정이라 하겠다. 특히, 폴의 요요인 딱부리는 당시 아이들에게 요요붐을 일으키기도. 뿐만 아니라 장난감 요정인 찌찌나 삐삐, 가련한 여주인공 역할의 니나 등은 기존의 아니메와는 다른 서양적이고 동화적인 캐릭터로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시리즈의 최대 보스인 벨트사탄의 압도적인 아우라는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악역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연급 악역인 버섯요정 버섯돌이(카노피)의 매력 역시 오랫동안 회자되기도.

이듬해인 77년 KBS2 TV의 전신인 TBC를 통해 '이상한 나라의 삐삐'(초기 방영시에는 파쿤의 이름이 삐삐, 톳페의 이름이 찌찌였다. 친구인 별쥐옹의 댓글로 기억이 났는데... 조연 캐릭터가 제목에 사용되면서 주인공이 뒤로 밀리는 수모를...)로 방영되었으며, 3년 뒤인 1980년 KBS를 통해 재방영되기도 한다. 한참 후인 95년과 얼마전인 2009년 SBS와 EBS를 통해 각각 방영되면서 한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은 추억의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지혜 님이 부른 한국판 주제가는 일본 원 주제가에 비해서 오히려 멜로디 면에서는 앞서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 Tatsunoko Proⓒ Tatsunoko Pro


<참고 사이트>

[1] ポールのミラクル大作戦, Wikipedia Japan
[2] 이상한 나라의 폴, 위키피디아
[3] 이상한 나라의 폴, 베스트 아니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ATSUNOKO Pro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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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tsu · Sunrise


<목차>



<서문>

타지 아니메 연대기 1부와 2부를 통해 여러분은 아니메에 등장하는 두 종류의 판타지인 '서양 판타지(1부)'와 '동양 판타지(2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지역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판타지는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두 장르가 섞이거나 전혀 다른 세계관을 설계하여 지역적 구분이 모호해진 '무국적 판타지'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무국적 판타지를 지역적 관점이 아닌 장르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무국적 판타지라 분류하기에는 아니메가 너무도 다양한 장르와의 혼합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 과정 중에 어떤 작품은 서양 판타지와 로봇 아니메를, 어떤 장르는 동양 판타지와 히어로 액션물을 결합하는 것과 같이, 무국적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니메의 독창적인 장르들, 즉 로봇물, 히어로물, 마법소녀물과 같은 장르와 판타지의 결합(무국적 판타지를 포함하여)을 이번 3부에서는 '퓨전 판타지'로 명명하고자 합니다.

퓨전 판타지는 사실 판타지의 한 장르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몇 가지 판타지적 설정이 가미되었으나 실제 작품의 성격은 판타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작품들도 많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으로 '드래곤볼' 시리즈 같은 경우는 오리엔탈 판타지 서유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고 소원을 들어주는 용신이라는 판타지적 장치가 등장하고 있지만 전반부는 코믹액션물의, 후반부는 무협액션물의 성격이 짙습니다. 게다가 캡슐이나 우주선, 스카우터, 로봇 같은 SF 요소까지 등장하는 그야말로 백화점과 같은 설정의 작품이기도 하지요. 사실 드래곤 볼 쯤되면 판타지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데요. 다양한 장르에 판타지적 설정을 가미하여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낸 아니메의 특성상, 퓨전 판타지는 어찌보면 한 장르로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가장 광범위한 장르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1부나 2부에서 언급한 작품들 중 상당수도 정통 판타지라기보다는 일본적인 재해석이나 다른 장르 아니메와의 크로스오버가 시도된 퓨전 스타일의 작품들이죠.

따라서 이번 시간에는 이토록 광범위한 퓨전 판타지의 장르에 어떤 형태의 시도들이 있는지를 알아보며, 그중 대표적인 몇몇 작품만을 소개해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로봇, 판타지의 대지 위에 서다

2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판타지를 주소재로 하여 시작된 일본의 상업 극장 만화영화는 60년대 중반에 들어 일본산 오리지널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만화영화가 그 자리에 들어서면서 점차 인기를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테즈카 오사무나 이시노모리 쇼타로(혹은 이시모리 쇼타로), 나가이 고와 같이,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대형 만화가들의 작품들이 TV까지 진출하면서 아니메의 장르적 완성을 가져오게 되는데요. 로봇물, 히어로물(혹는 전대물), 마법소녀물과 같은 일본만의 오리지널리티가 가득한 만화영화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판타지는 주도권을 빼앗기고 아니메의 변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아니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로봇물은 '기동전사 건담(1979)'을 기점으로 고연령층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면서, 높아진 연령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전보다 더 드라마적인 요소가 더 강해졌으며, 정통 SF 스타일이 도입되면서 논리적인 설득력이 뒷받침하는 사실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게 됩니다. 80년대 중후반까지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자 판타지의 입지는 그다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요. 저연령대이건 고연령대이건 가리지 않고 SF와 로봇물이 범람하면서 판타지가 들어설 곳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판타지의 부활은 이런 SF/로봇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변방이 아닌 중심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당시 아니메의 흐름을 만들어낸 장본인 중 한명인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었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한데요. 이는 토미노 감독 스스로가 어느 한 장르에 안착하기보다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83년도에 선라이즈에서 제작된 판타지 로봇물 '성전사 단바(1983)'인 것입니다.

ⓒ Sotsu · Sunrise


다른 차원의 세계 바이스톤 웰로 불려온 소년 쇼 자마가 그곳에서 오라력이라는 기이한 힘으로 동작하는 곤충모양의 거대 인간병기 오라 배틀러에 탑승하여 성전사로 전쟁 속에 휘말리는 단바인의 이야기는 오라력으로 움직이는 기이한 거대 병기 외에는 중세유럽의 시대배경을 지닌 지극히 판타지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었는데요. 특히, 이 작품은 판타지의 세계관을 빌렸으되 그 성격은 이전의 판타지 만화영화와는 다른 성인취향의 시리어스하고 드라마틱한 설정을 보여줬고, 세계관이 바뀌었을 뿐 그 모습은 리얼로봇의 한 장르로 보아도 될 법한 설정들로 꾸며져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성전사 단바인은 당시 최고의 인기장르인 로봇물에 판타지를 가미한 색다른 맛을 보여주며, 일본 특유의 스타일과 세계적인 것과의 성공적인 융합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판타지와 로봇 아니메의 퓨전은 '중전기 엘가임(1984)'과 '기갑계 가리안(1985)'을 거치면서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장르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80년도 후반에 들어 로봇 아니메가 몰락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이러한 시도는 계속적으로 보여진다는 것으로, 리얼로봇에서 다시 아동용 로봇물로 방향을 선회한 선라이즈의 빅히트작 '마신영웅전 와타루(1988)'나 '마동왕 그랑조트(1989)', 그리고 '패왕대계 류나이트(1994)'에서도 판타지와 로봇을 혼합하면서 90년대 들어 부활한 판타지 아니메의 인기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특히,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에 이르러서는 높은 완성도의 드라마와 비주얼로 판타지와 로봇의 결합에 있어서 하나의 큰 획을 긋게 되지요.

로봇과 판타지를 결합한 판타지 로봇물은 퓨전 판타지 중에서는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동시에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카플로네 이후에는 크게 주목을 받은 작품은 비록 없었지만, 최근까지도 AIC가 제작을 맡은 '이세계의 성기사 이야기(2009)'(특히, 이 작품은 AIC의 전작 '엘 하자드'나 '천지무용'의 스타일에 판타지 로봇물이 더해진 형태를 보여주지요)와 XEBEC과 Production I.G의 '브레이크 블레이드(2010)'와 같은 굵직굵직한 작품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어느 정도 독립된 장르로도 자리를 잡지 않았나 생각도 되는군요. 특히, 근래의 작품들은 미소녀 + 러브코미디와 같은 흥행코드를 적극 채용하면서 예전의 시리어스했던 작품들에 비해 보다 더 상업적이면서 대중적인 취향을 고려한 흔적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 Sotsu · Sunrise (좌측) / ⓒ AIC · VAP (중간) / ⓒ 吉永裕ノ介 · Flex Comix · Break Balde 製作委員会 (우측)



장르의 다양화와 함께 시작된 판타지의 다채로운 변형

80년대 들어서는 비록 SF/로봇 아니메가 아니메의 전반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아니메 시장이 커지고, OVA 시장이 열리면서 다양하고 색다른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일본 경제의 호황과 맞물려 많은 자본이 유입되고, 아니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성인들도 아니메를 즐기는 등, 80년대는 그야말로 '아니메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었죠.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여 판타지도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여러가지 시도를 하게 되는데요. 정통 판타지보다는 다양한 아니메 장르에 배경으로 사용되거나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창작작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하고 색다른 시도를 합니다.

요술공주의 밍키로 유명한 감독 유야마 쿠니히코와 미형 캐릭터 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이노마타 무츠미의 '환몽전기 레다(1985)'는 유럽식 중세 판타지를 기본으로, 비키니 형태의 전투복을 입은 미소녀와 변신 메카가 등장하는 등 여러모로 장르의 퓨전화가 이루어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두 콤비의 차기작이자 극장판 대작 아니메인 '윈다리아(1986)'의 경우에는 이보다는 얌전했지만, 바이크 형태의 탈 것이나 총기류가 등장하는 등 역시 현대적인 아이템이 판타지 세계에서 사용되는 시간적 퓨전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특히 레다의 경우에는 나가이 고 원작의 '꿈차원 헌터 판도라(1986)'와 같은 일련의 아류작들이 양산되는 계기를 가져왔고, 우루시하라 사토시의 육감적인 캐릭터 디자인으로 유명한 '레무니아의 전설(1989)'에 이르르면 에로티시즘과의 결합을 시도하며 18금 장르로도 그 흐름이 이어지게 됩니다.

ⓒ TOHO·Kaname Pro (좌측) / ⓒ ヒロメディア·Kaname Pro·Dynamic Pro (중간) / ⓒ Urushihara Satoshi·AIC


유럽식 판타지의 배경에 현대적이거나 미래적인 소재가 등장하는 작품 외에도 아주 색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니메의 철학자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가 힘을 합친 '천사의 알(1985)'의 경우에는 시대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 그리고 공간적 배경조차 전혀 가늠할 수 기이한 세상에서 희한하게 생긴 총기류의 물건(이것조차 자세한 용도가 불명)을 든 정체불명의 사내와 역시 정체불명의 알을 품은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어떤 장르와도 연결시키기 어려운 난해한 이 작품은 실로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의 작품으로, 오히려 이런 정체불명의 성격 때문에 판타지로 분류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아마노 요시타카의 몽환적인 캐릭터 디자인은 이듬해인 86년도에는 정통 판타지에 보다 가까운 스타일의 작품 '아몬사가(1986)'나 뱀파이어 헌터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와 호러의 조합 '뱀파이어 헌터 D(1985)'에 사용되면서 아마노 특유의 몽환적인 캐릭터가 판타지와 멋진 궁합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이후, 아마노 요시타카는 RPG의 명작 타이틀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판타지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게 되지요.

80년대 아니메의 호황기와 함께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판타지와 타장르의 융합은, 타츠노코의 '천공전기 슈라토(1989)'에서는 일본식 전대 히어로물과 불교/힌두교 신화가 접목된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기고 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에는 오히려 이렇게 동양적인 판타지 소재가 아니메의 다른 장르들과 퓨전을 이루거나 직접적인 소재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았는데요. 이 시기에는 '로도스 전기(1990)'를 기점으로 정통 판타지 또한 심심치 않게 등장하여 전반적으로 판타지가 강세를 띄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슬레이어즈(1995)' 시리즈의 폭발적인 인기로 판타지는 90년대 들어서는 TV에서도 자주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시기에 방영된 '엘 하자드(1995)'의 경우에는 판타지 아니메에서 자주 사용되는 차원이동을 소재로 곤충군단과 마법이 등장하는 신비한 세상 엘 하자드에서 벌어지는 모험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중동의 아라비아 세계관을 도입했으나, 고대의 인간형 병기 이프리타의 등장과 물, 불, 바람을 다루는 대신관의 등장과 같이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혼합된 퓨전 판타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러브 코미디의 성격을 띄고 있어 판타지의 성격보다는 러브 코미디 장르에 더 어울리는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이렇게 슬레이어즈 시리즈 이후 판타지 장르는 시리어스함보다는 가벼운 코미디 위주의 성격을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아카호리 사토루의 응큼한 스타일과 개그가 혼합된 '폭렬헌터(1995)'나 독특한 개그를 선보였던 '엘프를 사냥하는 사람들(1996)'은 모두 판타지 세계관을 사용하면서도 다양한 설정과 장르적 특성을 부여하여 정통보다는 퓨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 AIC·Pioneer·El Hazard Project (좌측) / ⓒ Satoru Akahori·Rei Omishi·Media Works·Bakuretsu Project·TV Tokyo·Sotsu(중간) / ⓒ Yagami Yu·Media Works·Amuse·Sotsu (우측)



게임과 소설, 코믹스에 이르기까지, 그치지 않는 퓨전의 시도

와 같이 극동이나 중세 유럽 외에 인도나 중동의 소재까지 빌려오면서 다양화된 판타지는 90년대 들어서는 러브 코미디의 요소마저 합세하여 보다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사실 아니메에서 동양 판타지이나 서양 판타지나 모두 소수의 작품(대작 극장판이나 OVA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중성을 고려한 결과 일본 아니메의 특징적이 요소가 혼합되어 정통 스타일과는 다른 변질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70년대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OVA 등에서 주로 시도되었고, 90년대에 이르르면 TV 시리즈로 진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21세기에 들어서는 판타지가 보다 더 여러 장르에 변형된 모습으로 사용되면서 이전보다 더 대중화되고 접근이 쉬워졌다는 느낌입니다. RPG와 같은 게임의 활성화도 어느 정도 한몫을 한 것도 싶은데요. 특히 80년대부터 시작하여 90년대를 넘어서 장수 시리즈이자 일본 최고의 인기 타이틀로 자리잡은 RPG 파이널 판타지의 경우에는 곤조의 TV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언리미티드(2001)'를 비롯하여, 스퀘어 에닉스가 직접 제작한 '파이널 판타지 Advent Children(2005)' 등의 작품으로 좋은 반응을 얻게 됩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초창기에는 정통 판타지의 노선을 걷다가 7편에 이르러서부터는 현대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퓨전적인 배경을 보여주게 되지요. 특히, 이 시리즈는 아니메 외에도 게임 타이틀 자체에 삽입된 동영상을 통해 아니메에 근접하는 영상적 감동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게임을 소재로 한 아니메는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제작되는데, TYPE MOON의 비주얼 노벨 게임인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2006)'는 원작의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TV 시리즈 아니메로 제작된 사례로, 2010년에는 극장판으로도 제작되기에 이르릅니다. 전설의 영웅을 마법으로 소환하여 자신의 서번트로 삼아 성배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마법사들의 결투는 현대적인 배경 위에서 펼쳐지며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는데요. 게다가 소환한 영웅들이 동서양을 모두 망라하는 유명인사들로 채워져 있어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모두 혼합한 퓨전 판타지를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 Square Enix (좌측) / ⓒ TYPE-MOON · Fate-UBW Project (우측)


이외에도 독특한 세계관으로 눈길을 끈 작품도 있습니다. 본즈가 제작한 '울프스레인(2003)'의 경우가 바로 대표적인 예인데요. 현대적인 배경 속에 하늘을 나는 거대한 배를 소유한 특권층 귀족이 존재하고, 인간으로 둔갑하여 살아가는 늑대들과 그들을 인도하는 소녀의 형상을 한 꽃이라는 기이한 소재를 사용하여, 판타지와 정통 드라마를 혼합한 멋진 완성도를 보여주다 하겠습니다. 특히, 드라마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하기 시작한 최근의 아니메 트렌드와는 달리,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통 판타지는 아니었지만 정통적인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드라마를 강조하는 제작사 본즈는 이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판타지 작품을 몇 차례 선보이는데, '스크랩드 프린세스(2003)'는 서양식 판타지를 얼개로 하여 SF를 가미한 세계관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드라마와 코미디를 적절히 섞은 퓨전 판타지를 보여줍니다. 겉모습은 예전의 판타지 아니메에서 많이 보아온 모습이지만,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결말과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인해 다소 엉성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이기도 하지요.

또한 아라카와 히로무의 동명 인기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본즈의 또다른 히트작 '강철의 연금술사(2003)'는 20세기 초반의 유럽과 같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여 지구와는 거울처럼 대비되는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연금술사 엘릭 형제의 모험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기본적으로 소년 만화의 형식을 취하면서 연금술이라는 몹시 판타지스러운 소재를 사용하여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 작품입니다. 이렇게 근대적인 세계관에 판타지적인 소재를 등장시키거나, 판타지스러운 세계관에 SF 또는 현대적인 설정을 등장시키는 혼합방식은 위와 같이 본즈가 만들어 낸 일련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통해 90년대부터 시작된 러브 코미디 형식의 퓨전 판타지에 비해 보다 더 성숙해진 드라마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 Bones·Nobumoto Keiko·BV (좌측) / ⓒ Sakaki Ichiro·Kadokawa Shoten·Sutepri Project (중간) / ⓒ Arakawa Hiromu·Square Enix·Bones·MBS·ANX·Dentsu (우측)


지금까지 이야기한 작품들을 기본으로 요약하자면 퓨전 판타지라고 불리는 판타지를 가미한 복합적 장르의 아니메들은 다양한 세계관을 빌려와 일본의 입맛에 맞게 로컬라이징한 경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60년대의 정통파 풀 애니메이션을 거쳐 70년대의 일본식 오리지널 아니메를 지나 80년대의 장르적 완성을 거친 아니메는 이후부터는 다양한 장르와의 크로스오버와 소재의 혼합으로 작품의 매력을 더더욱 다양하게 만들고 있는데, 마치 정통 요리에서 퓨전 요리로 레시피를 다양하게 바꾼 레스토랑과도 흡사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중심에서 캐릭터 중심으로 아니메의 무게추가 기울어지면서 퓨전 판타지 역시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수단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볼거리(캐릭터)를 제공하기 위한 부차적인 소재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세계관의 깊이 있는 묘사보다는 그저 단순한 미장센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습니다. '퀸즈 블레이드(2009)'와 같은 여자 캐릭터의 노출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에서 판타지는 세심한 묘사나 디테일한 세계관의 구현이 필요치 않은 쉽사리 구현 가능한 세트 디자인일 뿐이데요. 꼭 판타지라는 소재를 깊이 있게 대입한 정통 스타일의 아니메만이 해답은 아니겠지만, 세심한 설정과 드라마가 돋보이는 판타지 작품들이 하나같이 외면받거나 제작 선호도에서 밀리는 현실은 아쉽기만 합니다. (퓨전 판타지는 아니지만,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던 '정령의 수호자(2007)'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상업적인 관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흥미 위주의 말초적인 작품들을 위한 부가적인 소재로서의 판타지가 아닌, 보다 더 깊이있는 설정과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의 소재로서 판타지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3부 끝. 4부에서 계속)

<참고 사이트>

[1] 판타지 로봇 서사시 - 단바인에서 에스카플로네까지 (上) by 엘로스, 별바다의 서고
[2] 판타지 로봇 서사시 - 단바인에서 에스카플로네까지 (下) by 엘로스, 별바다의 서고
[3] 환몽전기 레다(幻夢戦記レダ)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천사의 알(天使の卵)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프레스블로그 MP(Monthly Posting) 2010년 11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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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타지 아니메 연대기 1부에서는 유럽식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일본 스타일로 변주한 아니메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일본 아니메에서 중세 판타지는 80년대 아니메 전성기 시절에 이르러 다양한 소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제작되기 시작했지만, 전반적으로는 SF 아니메의 위세에 눌려 그다지 큰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게임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RPG가 성장하고, 그로 인한 미디어 믹스가 전개되면서 역으로 이러한 소재들이 아니메 쪽으로 흘러들어 오기 시작하게 되지요.

이후 90년대 들어서는 로도스 섬의 전기를 시작으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베스트 셀러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를 미디어 믹스하는 과정에서 판타지 아니메들이 속속 화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중세 판타지 아니메는 몇몇 히트작을 제외하고는 주로 작품에서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 못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로봇물의 배경으로 사용되면서 퓨전 형태의 판타지로 변형되거나, 코미디 혹은 연애물의 배경으로 사용되어 색다른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지요. 정통 스타일의 판타지 아니메가 그닥 없음은 엘로스의 시각에서는 좀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러한 중세 판타지와는 어떤 면에서 평행선에 위치하는 동양적인 판타지, 즉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리엔탈 판타지로 시작된 상업용 만화영화 시대

시다시피 상업용 일본 만화영화의 시초는 1958년에 도에이에서 제작한 '백사전'이라는 극장용 만화영화였습니다.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 만화영화는 아니메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아니메라는 표현이 고유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74년 발표된 '우주전함 야마토'가 사회적 현상이 되고난 후였지요.) 작품의 시놉시스는 중국의 고전인 전등신화를 바탕으로 수천년동안 도를 닦은 백사(하얀뱀) 백소정과 선비 허 선의 러브스토리인데요, 실로 로맨틱하고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세계사에 최초의 장편 (컬러) 만화영화로 인식되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1937)'가 아름다운 공주와 마법을 사용하는 사악한 여왕, 그리고 정의로운 왕자가 등장하는 지극히 중세유럽의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였던 것에 비해 아시아 권에서 가장 최초의 컬러 장편 만화영화였던 백사전이 중국의 설화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였다는 것은 만화영화와 판타지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사전의 성공에 크게 고무된 도에이는 연이어 극장용 만화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디즈니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에 이어 '신데렐라(195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51)', '피터팬(1953)', '잠자는 숲속의 미녀(1959)'와 같은 서양식 판타지 세계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처럼 도에이 쪽도 판타지적인 성격의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하게 되지요. 일본 만화영화의 초창기의 관람층은 어린이들을 위주로 한 전연령가의 성격이었기에 성인 취향의 판타지라기보다는, 모험적이고 교훈적인 소재를 가진 동화적인 판타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후일 5부에서 이야기하게 될 동화 판타지에 더 부합되는 소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초반부의 애니메이션들은 동화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동양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화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오리엔탈 판타지에 포함된다고 하겠습니다. '소년 사루토비 사스케(1959)', '서유기(1960)', '안쥬와 즈시오마루(1961)', '신밧드의 모험(1962)', '개구리 왕자의 왕뱀퇴치(1963)', '멍멍 충신장(1963)' 등 초창기 일본 극장 만화영화는 모두 동양적 판타지 세계관을 가진 동화적 감성의 만화영화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요. 

ⓒ Toei Animation

초창기 일본 만화영화를 장식한 도에이의 작품들은 상당수가 동양적 배경에 판타지가 가미된 모습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서양적 동화를 다룬 디즈니와 대비되는, 즉 디즈니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차별화 전략인 듯 싶다.

이렇게 초창기 만화영화의 절대적인 소재였던 오리엔탈 판타지는 테즈카 오사무나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같은 일본적인 색체를 가진 스타 만화가들의 등장으로 일대 국면을 맞게 됩니다. 특히, 이들은 동화적이거나 판타지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SF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일본 최초의 TV 시리즈 만화영화이자 현재까지도 일본 만화영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메김한 테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1963)'의 등장, 당대 최고의 만화영화 제작 스튜디오였던 도에이로 하여금 디즈니를 지향하는 풀 애니메이션 기반의 'A형 극장판 만화영화'에서 탈피하여 일본의 오리지널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저예산의 'B형 극장판 만화영화'로 방향을 돌리게 한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의 '사이보그 009(1966)' 등의 등장은 그때까지 이어져오던 오리엔탈 판타지의 기세를 잠재워 버리게 됩니다. 
 
일본적 감성을 지닌 새로운 작품의 등장은 만화영화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전의 A형 극장판의 비중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판타지 장르 역시 축소되었고, 특히 초반 만화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던 오리엔탈 판타지는 그 비중이 크게 줄어들게 되지요. 오리지널 스토리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고전설화나 세계명작 등을 기본으로 한 판타지 장르는 어차피 제한된 소재로 인해 한계가 존재하고 있었는데다가 아톰이나 사이보그 009같은 SF에 기반한 창작 캐릭터의 등장이 퇴장속도를 가속화 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절한 교체 타이밍에 등장한 셈이랄까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의미있는 시도가 있었는데요. 테즈카 오사무가 설립한 무시 프로덕션에서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 만화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제작된 아니메라마 1탄 '천일야화(1969)'의 경우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소재로 몽환적인 영상과 에로틱한 표현을 통해 당대의 만화영화와 그 방향을 달리한 성인취향의 스타일로 큰 호평을 얻기에 이르릅니다. 이 작품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범세계적으로 알려진 오리엔탈 판타지 '아라비안 나이트'를 소재로 삼았는데, 아라비안 나이트는 이 후에도 '알리바바와 40마리의 도적(1971)'이나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진 TV 시리즈 '아라비안 나이트 신밧드의 모험(1975)', '알라딘과 마법램프(1982)'(역시 한국 TV에서 명절특선으로 몇 차례 방영)에서도 쓰이면서 초창기 오리엔탈 판타지의 소재로 크게 각광받게 됩니다. 아니메라마 시리즈는 이후에도 두 작품이 더 발표됩니다만, 이후의 시리즈는 판타지보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로 전환되면서 사실적이고 예술적인 방향의 작품들을 선보이게 되지요. 

ⓒ Tezuka Production (좌측) / ⓒ Toei Animation (중간) / ⓒ Nippon Animation (우측)

아라비안 나이트는 특히 초창기 오리엔탈 판타지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는데,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재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각광을 받은 듯 싶다.


아니메의 본격적인 시작, SF의 성장과 판타지의 쇠퇴

렇게 시작된 70년대 일본 만화영화 시대는 판타지에 있어서는 암흑기와도 같았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일본 만화영화의 아이덴티티가 거의 성립되는 단계로 볼 수 있는데, 로봇물, 히어로물, 마법소녀물이라는 독특한 일본 만화영화 장르가 이 때에 와서 자리를 잡게 되고, 그 외에도 세계 명작동화와 같은 장르 등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판타지가 설 자리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겠습니다. 오리엔탈 판타지이건, 서양 판타지이건 간에 모두 기존의 유명한 전설이나 설화, 동화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작품들인지라 이미 한번씩 사용된 소재이다보니 신작을 만들기에도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구요.

그러나, 78년 마침내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의 한 획을 그을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니 그것이 바로 故 테즈카 오사무 필생의 역작 불새 시리즈의 첫 작품인 '불새 - 여명편'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체적인 시리즈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오리엔탈 판타지로 규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시공의 이야기는 어느 때는 판타지였다가 어느 때는 SF적인 세계관으로 바뀌기도 하지요. 게다가 이 여명편의 경우에는 만화영화라고 보기보다는 당시 특수효과 기술로는 재현이 불가능했던 불새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 합성한 실사영화의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불새 시리즈는 풀 애니메이션 SF 판타지 성격을 지닌 테즈카 오사무 본인의 연출작 '불새 2772 - 사랑의 코스모스존(1980)'을 거쳐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 린 타로 감독의 '불새 - 봉황편(1986)'에 이르러 진정한 오리엔탈 판타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87년도에는 OVA '불새 - 야마토 편'이 출시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70년대부터 이어져온 오리엔탈 판타지의 약세는 80년대에 들어와서도 그 사정이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중세 판타지가 로봇물과 결합되거나 RPG의 공식을 따르면서 변형된 형식으로 계속 이어져나간 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일본적인 색체를 지닌 시대물과 겹쳐지면서 동일한 색체로 인해 그 독특함을 잃어버렸고, 판타지의 또 하나의 소재라 할 수 있는 무협 요소 역시 사무라이물이나 '북두의 권'과 같은 근미래적 세계관의 액션무협 작품들과 중첩되면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지요. SF/로봇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 틈새를 공략하는 다양한 장르들에게마저 밀려버린 오리엔탈 판타지는, 같은 색체를 지닌 시대물이나 사무라이 물에게까지 자리를 내주면서 불새 이외에는 뚜렷할만한 작품을 보여주지 못하고 시들해져 버리게 됩니다.

ⓒ Tezuka Production

시공을 넘나들며, SF와 판타지를 오가는 대작 '불새'는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들인 린 타로, 히라타 토시오, 카와지리 요시아키, 다카하시 료스케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소재의 고갈, 판타지를 부활시키다

80년대 후반부에 시작된 아니메의 침체기는 90년도에 이르러서도 좀체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메를 이끌고 있던 거대한 축이었던 SF/로봇 장르가 몰락하면서 다음 아니메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한 아니메는 복고주의 작품들과 리메이크들이 양산되면서 그럭저럭 명맥을 이어가게 되는데요. 이 시기에 중세 판타지가 판타지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게 제작되었던 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오히려 이시기에 이르러 변형된 모습과 색다른 시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타장르와의 퓨전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죠.

89년도에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 제작된 '천공전기 슈라토'는 이런 면에서 오리엔탈 판타지의 컨셉을 가미한 독특한 히어로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소재 또한 익숙한 일본이나 중국의 판타지가 아닌, 인도의 힌두교 신화나 불교적인 소재를 모티브로 삼는 파격을 보여주었지요. 이 독특한 소재는 슈라토에만 그치지 않고,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체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CLAMP의 '성전(RG Veda)'에도 사용되는데요. 성전 역시 아수라나 야차와 같은 불교적 소재가 가미된 오리엔탈 판타지 스타일의 작품이지만, CLAMP 특유의 순정만화적인 스타일과 이국적인 캐릭터 디자인으로 오리엔탈 판타지의 느낌이 그닥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원작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낮은 완성도의 아니메 퀄리티도 크게 한몫을 했지요.

ⓒ Sotsu · Tatsunoko Pro (좌측) / ⓒ Clamp · Shinshokan


힌두교/불교적인 소재는 극동 아시아나 중동의 소재에 비해서는 신선하지만, 이를 모티브로 한 위의 두 작품은 타장르와의 퓨전이 이루어지면서 변형된 일본적 색체가 가미되어 원래의 느낌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무국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작 자체도 소재에 대해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기보다는 모티브만을 가져와 자신만의 색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구요.

이와는 별개로, 다카다 유조의 히트 코믹스로 원작으로 한 OVA '3X3 아이즈(1991)'는 티벳 밀교라는 독특한 소재 바탕으로 요괴와의 하드코어한 액션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다카다 유조의 데생 스타일은 앞선 두 작품에 비해서 보다 더 오리엔탈 판타지의 느낌에 가까운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요사스러운 디자인과 잔인한 묘사 등은 오리엔탈 판타지인 동시에 호러 액션물에 가까운 모양새를 보여줍니다. 역시 오리엔탈 판타지를 바탕으로 일본식 변형이 가해진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호러 액션과 오리엔탈 판타지의 결합은 3X3 Eyes 외에도 오기노 마코토의 빅히트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OVA '공작왕 시리즈(1988~1994)'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오리엔탈 판타지의 변신은 이렇게 히어로물부터 호러액션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타장르와의 혼합을 시도하게 됩니다. 95년부터 방영되며 큰 인기를 얻었으며 투니버스를 통해 방영되어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후시기 유우기(국내 방영제목 환상게임)'에 이르르면, 순정멜로물과 오리엔탈 판타지를 혼합한 또다른 형태의 모습으로도 거듭나게 되지요. 이러한 현상은 소재 고갈에 허덕이던 아니메가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지 않았던 오리엔탈 판타지의 도움을 받은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물이나 순정멜로와 같은 아니메 특유의 장르에 이러한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를 가미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려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혼합 장르들은 인기의 흐름을 이어갔다기 보다는 소재의 다양화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측면에서 단발성에 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중세 판타지 스타일의 '로도스 섬의 전(1990)'나 '슬레이어즈 시리즈' 등이 어느 정도 인기몰이를 했던 것에 비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체 어느 덧 시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 Takada Yujo · Kodansha (좌측) / ⓒ Ogino Makoto · Shueisha (우측)

이 시기의 오리엔탈 판타지는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힌두교나 밀교, 퇴마술과 같은 독특한 소재가 사용되었지만, 정통적인 스타일에 멀어지며 다른 장르와 혼합을 시도하게 된다.


동양적 소재,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 

반게리온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아니메는 다시 새로운 추진력을 얻고 도약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는 한동안 부진했던 해외 시장의 공략 역시 공격적으로 이뤄지게 되는데요. 바로 이 시기에 마스터피스라고 불릴 수 있는 세 작품이 일본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커다란 호평을 얻게 됩니다. 먼저, 아니메의 철학자이자 사실주의자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사이버펑크 걸작 '공각기동대 극장판(1995)'가 일본 내에서의 참패와는 정반대로 세계시장에서 극찬을 얻게 되구요. '아키라(1988)'로 과거 세계시장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던 오토모 가츠히로 또한 옴니버스 극장판 '메모리즈(1995)'로 역시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바로 이 때, 한 편의 오리엔탈 판타지 걸작이 이 두 작품과 함께 아니메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작품을 통해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동안의 무국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일본의 설화를 바탕으로 연출한 판타지 모험극 '원령공주(1997)'는, '아니메의 세계화'라는 추세에 발맞추어 자국인 일본의 색체를 물씬 풍기는 설정과 일본의 고유 민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스러운 모험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원령공주는 한동안 아니메에서는 그 자취를 볼 수 없었던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의 모습이었으며, 그 완성도 또한 명불허전의 것이었죠. 디즈니의 배급망을 통해 개봉된 원령공주는 미국시장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었고, 4년 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통해서 일본 내의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울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한동안 별주목을 얻지 못했던 오리엔탈 판타지는 세계화에 추세와 함께 거장의 힘을 빌려 일본 아니메 史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 역대 영화 흥행수입 1위 센과 치히로 행방불명, 3위는 원령공주)

ⓒ Nibariki · TNDG (좌측) / ⓒ Nibariki · TGNDDTM (우측)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와 동화적인 오리엔탈 판타지가 일본영화 역대 흥행순위 1,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미야자키+판타지의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과시했다. 게다가 흥행순위 2위는 서양식 판타지와 멜로물을 결합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극장가에서 큰 성공을 거둔 오리엔탈 판타지의 위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시리즈에서는 지지부진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미소녀와 개그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혼합된 학원로맨스물과, 하렘물들이 큰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하는데, 중세 판타지의 경우에는 몇몇 작품이 이 흐름에 편승하여 그 소재로써 사용되지만, 오리엔탈 판타지의 경우는 좀처럼 그렇지 못했지요. 하지만, 2002년 실로 오랜만에 오리엔탈 판타지가 TV 시리즈로 등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후유미 오노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 대하서사극 '십이국기(2002)'인 것입니다.

공포소설로 일가견이 있는 후유미 오노가 치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 소설은, 여성 작가로서는 드물게 거대한 스케일이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장기인 호러틱한 분위기와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 인기는 시리어스하고 지루한 대하 서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십이국기를 장편 TV 아니메로 제작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는데요. 실제로 이 작품은 그 전개가 장중하고 서사적인지라 오락적인 측면에서는 매력이 없는 작품입니다만, 원작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며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의 참맛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유럽식 판타지가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톨킨의 세계관에 기반한 이야기와, 동화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로 나뉘어 지는 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각 국의 설화와 전설에 기반한 동화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십이국기와 같이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의 등장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라고 하겠지요.

이후 오리엔탈 판타지는 보다 더 시리어스한 내용을 가진 작품들로 성인층을 공략하게 됩니다. 특히 이 작품들 중에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며 오리엔탈 판타지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우루시바라 유키의 동명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독특한 판타지 미스테리 '충사(2005)'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자연현상을 벌레라는 단어로 칭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기현상을 해결하며 떠도는 충사 깅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오리엔탈 판타지인데요. 현대적인 복장을 한 깅코와 근대화 이전의 일본의 시골을 연상시키는 배경이 혼합되어 시간 배경마저 모호하며, 거기에 이상한 자연현상이 겹치면서 실로 동양적인 판타지의 신비로움이 잘 살아난 걸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완성도 면에서도 부족한 퀄리티로 아쉬움을 남겼던 십이국기에 비해 애니메이션 자체의 완성도 역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두루 갖추어 실사영화로도까지 제작되기도 했으니, 21세기 들어 오리엔탈 판타지의 의미있는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 Huyumi Ono·Kodansha (좌측) / ⓒ Urushibara Yuki/ Kodansha·Mushishi Partnership (우측)

개인적으로 몹시 좋아하는 두 작품으로 십이국기는 중국을, 충사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용면에서는 전자는 대하 서사시를, 후자는 미스테리 드라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흡입력있는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충사 뿐만 아니라 뛰어난 완성도의 오리엔탈 판타지들이 계속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선라이즈에서 분사한 제작사 BONES는 '천보이문 아야카시 아야시(2006)'을 통해 일본적 색체가 강한 판타지 작품을 선보입니다. 시대물스러운 배경 위에 퇴마라는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를 접목시켜 본즈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어 냈지요. BONES에 버금가는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프로덕션 I.G는 우에하시 나오코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정령의 수호자(2007)'로 역시 정통 판타지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작품들은 뛰어난 완성도와 안정적인 스토리텔링에 비해서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데는 실패하게 됩니다. 이후 오리엔탈 판타지는 두각을 나타낼만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체 다시금 정체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아니메의 세계화 추세를 맞이하여 옛 일본 시대를 컨셉으로 한 시대물과 판타지물의 등장은 어찌보면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한 듯도 싶습니다. 안정적인 스토리텔링과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끌기에는 역부족인 셈이죠.

이제는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가 일본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더 다채로워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비록 잠깐에 그쳤지만, 인도나 티벳 등의 소재를 사용하려 한 시도는 참신한 것이었죠. 가까운 한국의 소재에도 눈을 돌렸으면 싶지만 아직 여러모로 여의치는 않는 듯 싶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스스로도 세계에 내세울만한 전설이나 설화의 발굴에 부족했다는 생각인데요. 삼국지나 서유기, 수호지와 같이 중국에는 세계에 내세울만한 고전문학이 존재하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측면에서는 여러 좋은 컨텐츠를 제대로 세계에 소개하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 會川昇·BONES/MBS·ANX·Dentsu(좌측) / ⓒ 上橋菜穂子·偕成社·精靈の守り人 製作委員会 (우측)

성인취향의 시리어스한 작품을 주로 제작하는 본즈와 프로덕션 I.G의 오리엔탈 판타지는 월등한 완성도와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끄는 것에 실패한 비운의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꼭 한국인만이 한국의 설화와 전설을 소재로 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구미호와 같은 소재는 만화영화나 영화로서도 꽤 매력적인 소재라고 보이는데, 이런 컨텐츠들을 선진국들이 가져다 쓸 수 있는 길이 더 열렸으면 싶구요. 실례로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한국의 설화를 소재로 '레이디 인 더 워터'를 연출하기도 했지요. (완성도는 안습이었습니다만.) 그외에도 한미 합작 애니메이션 '아앙의 전설(역시 샤말란 감독이 실사화 하면서 안습의 완성도로 탄생)'은 오리엔탈 판타지의 성격을 띈 보기드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적인 컨텐츠가 세계시장에서 각광을 받는다면,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없을지 몰라도 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으며, 여러 관광 컨텐츠나 캐릭터 사업을 열 수 있는 간접적인 경제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메에서도 이처럼 한국적인 소재가 쓰인 오리엔탈 판타지가 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2부 끝. 3부에서 계속)

덧붙임) 아, 그러고보니 95년도에 한일합작으로 홍길동을 소재로 한 '돌아온 홍길동'이라는 작품이 제작된 적이 있긴 했습니다. 신동헌 감독의 고전 홍길동을 다시 이어보자는 기획의도였지만, 전형적인 일본식 히어로물로 변질되어버린 데다가 완성도까지 안습이었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만...


<참고 사이트>

[1] 백사전(白蛇傳) 1958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2] 불새-여명편(火の鳥 · 黎明編) 1978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불새-봉황편(火の鳥 · 鳳凰編)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火の鳥 (漫画), Wikipedia Japan
[5] 3×3 EYES, Wikipedia Japan
[6] もののけ姫,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프레스블로그 MP(Monthly Posting)2010년 10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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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었던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1): 일본식 중세 판타지'를 기본으로 하여 새로이 내용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 Group SNE/KADOKAWA/MARUBENI/TOKYO Broadcasting (Illustrated by Yuki Nobuteru)


<목차>



<서문>

타지라는 장르는 굉장히 포괄적인 장르입니다. 마법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이야기의 소재나 배경으로 사용되는 장르를 판타지라고 쉽게 정의할 수도 있지만, 성격에 따라서는 동화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조금은 무섭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마법이 등장한다면 얼핏 고대나 중세유럽이 시대 배경이 되어야할 것 같지만 현재에 벌어지는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요. 흔히들 말하는 톨킨의 세계관이나 RPG(Role Playing Game)의 토대가 되는 포가튼 렐름(Forgotten Realm)과 같은 서양 문명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동양의 신화나 전설, 그리고 무협소설의 이야기도 훌륭한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라는 별에 한정될 수도 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지구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구요.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될 수 있는 판타지는 그 성격상 만화영화와 상당히 궁합이 잘맞는 소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생활하는 만화영화의 표현 자체가 판타지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과거 디즈니의 수많은 명작 만화영화들의 소재는 대부분 세계명작 동화를 토대로 한 것이었으며, 동화는 당연하게도 판타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타지에서 선보이는 여러 초자연적인 현상의 표현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실사영상으로 재현하기 위한 기술적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만화영화와 더 밀접한 관련을 맺기도 했지요.

이 글은 바로 이렇게 판타지와 좋은 궁합을 선보이는 만화영화 중 일본 만화영화, 즉 아니메에 한정하여 판타지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이들 판타지 아니메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이야기 해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사실, 이 글은 이미 2년 전에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포스팅된 바가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작품의 소개에 너무 치중하여 전체적인 흐름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번 포스트를 통해 새롭게 리뉴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당시 글을 다시 보니 여러 오류들이 있어서 정정차원의 글이기도 합니다)

글은 총 5부작으로 구성됩니다. 판타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 톨킨 교수가 창조해냈던 중간계의 세계관이나, 아더왕의 전설, 북유럽의 신화, 그리스 신화 등을 기본으로 한 서양 판타지 중에서 특히, 일본식 재해석이 주로 이루어졌던 중세 판타지를 다룬 아니메를 시작으로, 동양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오리엔탈 판타지, SF와 같은 타장르와의 혼합이 인상적인 퓨전 판타지, 호러틱한 소재와 표현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호러 판타지, 마지막으로 동화적인 세계관과 이야기를 선보인 동화 판타지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법소녀물도 판타지물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일단 마법소녀물을 제외시켰습니다.)

본 글에서 정의한 판타지 아니메의 다섯가지 분류는 오로지 글쓴 이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결과로, 공식적인 명칭과는 무관한 것이오니 읽으시면서 착오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어디가서 판타지 만화영화가 제가 말한 것처럼 다섯 종류로 나뉜다고 말씀하시다가 망신 당하시는 일이 없으시길 빌면서...


중세 판타지, 아니메의 외면을 받다(?)

세 판타지 세계관(본 글에서는 표기상의 편의를 위해 톨킨의 중간계 세계관, 북유럽 신화, 그리스 신화, 포가틀 렐름의 세계관과 같은 서양식 판타지 세계관을 통틀어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라고 명명하도록 하겠습니다.)이 아니메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58년 '백사전'으로 상업 만화영화의 시대를 연 일본 만화영화사에서도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명작동화 스타일을 추구하던 당시의 아니메가 자국의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아니메들의 공세에 밀리게 되는, 즉 '세계적인 것의 추구'에서 '일본적인 것의 추구'로 전체적인 아니메의 방향이 선회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후 슈퍼로봇, 마법소녀, 전대물/히어로물, 레이지버스, 리얼로봇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은 중세 판타지라는 서양식 소재가 아니메에 끼어들 틈을 거의 주지 않았다고 봐야 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트렌드가 막 틀을 잡아가던 70년대 후반 경에 중세 판타지를 소재로 한 아니메가 하나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아더왕의 전설을 소재로 한 '원탁의 기사 이야기, 불타올라라 아서(한국방영제목 '원탁의 기사'. 이하 원탁의 기사)'가 그것입니다.

'원탁의 기사 불타올라라 아서'의 주인공 아서왕.

어찌보면 이 원탁의 기사는 중세 판타지를 아니메의 소재로 쓰고자 했던 의도라기보다는 제작사인 도에이 동화가 이전에 선보였던 세계 명작동화 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이 방영을 시작한 79년도는 슈퍼로봇의 전성기가 정점을 거쳐 서서히 내리막을 걷던 시기이며, 기동전사 건담이 방영을 시작하며 리얼로봇 신화의 태동을 알리던 시점이기도 했는데요.

이것은 그동안 로봇 아니메를 이끌어 오던 도에이 동화가 선라이즈에게 그 바톤을 거의 넘겨줘 버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도에이 동화가 자신의 옛 레퍼토리인 세계명작동화들을 다시 끄집어 내는 과정에서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아더왕의 전설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원탁의 기사는 1기와 2기(2기 제목은 원탁의 기사가 아닌, 백마의 왕자로 바뀝니다.)로 나뉘어 방영됩니다. 1기가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던 탓에 작품의 진행노선에 변화를 주기 위해 불가피하게 1기와 2기로 구분되었다 보여지는데요. 전통적인 아서왕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지 못하자 도에이 동화측에서 히어로물의 컨셉을 이 원탁의 기사에 적용하게 되었고, 바로 이 2기의 변화는 앞으로 이야기할 일본식 중세 판타지 아니메의 방향성에 대해 모종의 단서를 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국을 떠나 잠행을 시작한 아서왕이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자 갑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엑스칼리버와 빛의 방패(?)를 들고 나타나는 모습은 영락없는 일본식 히어로의 모습 그것입니다. 갑옷의 모습 또한 중세의 무거운 풀 플레이트(Full Plate) 갑옷이 아닌 가벼운 전투복 같아서 마치 전년도에 방영했던 'SF 서유기 스타징가(1978)'에 등장하는 손오공들의 코스튬 디자인을 연상시켰구요. 게다가 종반부에는 하늘을 나르는 배까지 등장하는 등([1] 참조), 거의 완벽하게 아서왕의 전설을 재구성하여 일본산 히어로물로 탈바꿈시키게 됩니다.

비록, 원탁의 기사는 일본 내에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만, 이 아서왕 이야기의 파격적인 원작 파괴는 앞으로 중세 판타지 소재의 아니메가 가야할 어떤 방향을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극장판과 OVA로 방향선회, 그리고 RPG의 시동

79년 원탁의 기사를 끝으로 한동안 일본 아니메는 로봇 아니메, 특히 건담으로 대표되는 리얼로봇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렸고, 그와 함께 판타지라는 소재는 아니메에서 한동안 눈에 띄지 못하게 됩니다. 리얼로봇으로 인해 사실주의가 아니메의 대세가 되면서 SF 아니메가 다른 아니메들의 영향력을 앞질러 버리는 전개가 계속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SF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판타지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여집니다. (판타지의 약세는 리얼로봇으로 SF의 붐을 몰고 온 장본인 토미노 감독이 83년도에 판타지와 로봇이라는 요소를 결합시킨 독특한 작품 '성전사 단바인'을 제작하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합니다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3부에서 다루도록 하구요.)

TV 아니메가 SF와 리얼로봇의 흐름에 휩쓸리고 있을 무렵, 극장용 아니메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경제의 전성기가 계속되면서 극장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카토카와 서점의 극장시장 가세로 대작 극장판 영화와 아니메가 속속 만들어지던 무렵, 카토카와 서점의 견제를 위해 미야자키 하야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로 성공을 거둔 도쿠마 서점이 미야자키 하야오에 이은 제2의 거장을 극장 아니메 시장에 진출시키려한 것이죠. 그 제2의 거장이란 다름 아닌 바로 야스히코 요시카즈였습니다.

선라이즈의 캐릭터 디자이너 겸 작화감독으로,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로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고 있던 그는, 토미노 요시유키의 그늘을 벗어나 크리에이터로서 일보 진화하려 하던 참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만화잡지 '류'에 '아리온'이라는 판타지 배경의 코믹스를 연재중이었고([2] 참조), 업계와 야스히코 본인의 의지가 맞물려 이 아리온이 마침내 극장 아니메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야스히코 요시카즈라는 네임 밸류와, 도쿠마 서점의 공격적인 제작의지가 맞물려 아리온은 대작 아니메로서의 위용을 어김없이 보여주게 됩니다. 특히, 그리스 신화라는 중세 판타지 소재의 단골 메뉴가 이 작품의 배경이 됨으로써 중세 판타지의 소재가 다시금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는 OVA 베스트셀러인 유야마 쿠니히코(요술공주 밍키 감독)와 초미형 캐릭터 디자이너 이노마타 무츠미의 '환몽전기 레다(1985)'나, 역시 이 두 콤비의 극장판 아니메인  '윈다리아(1986)', 그리고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환상적인 캐릭터를 톱 클래스의 작화가 아라키 신고/히메노 미치 부부가 멋지게 해석해낸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의 '아몬 사가(1986)'와 같은 걸출한 작품들이 등장하며 판타지의 흐름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레다나 윈다리아 등의 작품들은 모두 정통 판타지의 형식 위에 여러가지 독자적인 설정이 가미된 변형된 판타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아리온 이하 이 작품들이 아니메에서 판타지의 흐름을 주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동전사 Z 건담(1985)'을 정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리얼로봇 아니메는 87년도의 '기갑전기 드라고나'를 끝으로 사실상의 여정을 마치고 있던 참이었으며, 그러한 공백기를 틈타서 중세 판타지는 아니메가 아닌 컴퓨터 게임시장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스퀘어社의 RPG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 에닉스社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후일, 스퀘어는 에닉스에 합병되어 스퀘어 에닉스로 사명 변경)는 일본 게임시장에 RPG라는 장르의 성공적인 안착을 가져온 타이틀로서, 그 영향력은 게임 시장을 막 넘어설 기세였습니다. 미디어 믹스의 소재로서도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던 이 시리즈들은 코믹스를 거쳐 마침내 아니메 시장에 입성하게 되었고, 이들 중 가장 먼저 아니메化 된 것이 바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였던 것입니다.

'드래곤 볼'이라는 희대의 히트작을 만들어낸 토리야마 아키라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그는 드래곤 퀘스트 게임에서 이미 캐릭터 디자인을 맡고 있었는데) '드래곤 퀘스트 - 아벨탐험대(1989~1990)'는 본방의 시청률 면에서는 그닥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했으나, RPG의 공식을 코믹스를 거쳐 아니메로 옮겨놓았다는 점에 있어서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아벨 탐험대 이후에도 코믹스로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던 '드래곤 퀘스트 - 다이의 대모험(1991~1992)'을 연이어 선보이게 되지요. (세번째 시리즈인 '로토의 문장'은 TV 시리즈가 아닌 극장판으로 제작됩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의의는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 아니메에 사용되었다는 것 외에도, 중세 판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게임을 통해 완벽하게 일본식 스타일로 재구성된 중세 판타지가 아니메의 소재로 쓰였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중세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실제 그 모습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철저히 바뀌어진 설정이었던 것입니다. 게임에서 사용되었던 각종 마법과 공격기술, 파티 캐릭터들의 구성 등은 중세 판타지를 토대로 RPG를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설정이었으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더 강력한 보스와 만나게 되는 설정 역시 RPG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RPG의 모습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로봇물과 판타지를 결합한 퓨전 스타일의 '마신영웅전 와타루(1988)' 등과 함께, 아니메에서의 중세 판타지를 출신불명의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자리매김 시키게 됩니다.

파이널 판타지와 함께 일본 RPG의 양대산맥을 구축한 드래곤 퀘스트. 코믹스와 아니메로 미디어믹스되며 저력을 과시한다.



전통과 변칙의 조화, 소설을 원동력으로 삼다

서 언급했듯이 RPG 게임에서 비롯된 중세 판타지의 세계관은 아니메에서도 게임 스타일에 더 정형화된 모습으로 주로 등장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들은 주 시청타깃층이 어린이들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통 판타지를 지향하기보다는 그들의 취향에 맞는 변형된 일본식 중세 판타지로의 접근이 더 맞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일본 내 대중성을 고려하면서 판타지는 완벽히 일본식 입맛으로 길들여집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판타지 아니메는 몇몇 기본 뼈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변형된 일본식 스타일을 따르게 되지요.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 흐름은 한방향으로만 고정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작가의 판타지 소설로 인해 판타지 아니메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여 날개를 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미즈노 료 원작의 판타지 대하소설 '로도스 섬의 전기'인 것입니다.

이 소설은 이제까지의 판타지 아니메들이 그러했듯이 아동층을 타깃으로 하여 PRG의 공식을 대입한 변형된 일본식 판타지가 아닌 판타지의 전통적 아이템인 TRPG(Table Talk RPG)를 바탕으로, 중세 판타지 세계관에 충실한 설정과 매력적인 세계관, 살아 움직이는 신화속 캐릭터들로 인해 일본에서도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소설 뿐만 아니라 PC 게임, 카드 게임을 거쳐 TV 아니메이션과 OVA 등 수많은 형태의 미디어 믹스가 전개된 가히 일본 중세 판타지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겠죠. 

특히, OVA로 제작된 13화 완결의 아니메 '로도스 섬의 전기(1990)'는 90년대 들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작화감독 유키 노부테루의 미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캐릭터로 인해 아니메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정통 판타지의 의미있는 일격을 날리게 됩니다. 이전까지의 판타지 아니메가 거의 대부분 정통 스타일을 버리고 일본식 변주를 보여주었던 것에 비하여 이 작품은 원작에 충실한 구성과 시리어스한 내용 전개로 인하여 판타지의 붐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도스 전기를 시작으로 '은하영웅전설'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다나카 요시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아슬란 전기(1991)'와, 타게가와 세이의 라이트 노벨을 극장판 아니메화하고 세기의 미형 캐릭터 디자이너 이노마타 무츠미와 유키 노부테루가 동시에 참여한 '바람의 대륙(1992)' 등이 로도스 섬의 전기가 다시 불러 일으킨 정통 판타지의 바람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정통 판타지의 공식을 따르거나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화된 작품들이었다. 80년대 중반의 판타지 아니메 스타일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높은 완성도나 걸출한 작화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이 정통 판타지 스타일의 아니메들은 그 인기의 흐름을 이끌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뒤의 두 작품들은 모두 카도카와 서점의 작품들이었는데, 당시 카도카와 서점이 기업경영을 둘러싸고 벌어진 내흥으로 인해 그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군요. 이후에 등장한 판타지 소설들은 정통 판타지의 공식을 바탕으로 일본식 스타일에 맞춰진 새로운 흐름으로 전개되기 시작했고, 특히 젊은 작가층이 많이 포진된 판타지 소설의 속성 상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라이트노벨 계열에서 주 소재로 쓰여지기 시작하면서 좀 더 아니메로의 전환이 용이한 코믹적인 요소나 만화적인 설정이 적극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RPG에 길들여진 신세대적 감각과 라이트노벨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의 결합으로 인해 추후의 판타지 아니메의 노선은 보다 더 가벼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판타지 장르의 기념비적인 빅히트작이 마침내 아니메로 등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칸자카 하지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코믹 판타지 아니메 '슬레이어즈(1995~2009)'였던 것입니다.

슬레이어즈 시리즈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은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나 '
기동전함 나데시코(1996)'과 같은 메가톤급 히트작이 줄을 이으면서 아니메의 새로운 시동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는데요. 이 시기에 이들 레전드급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 슬레이어즈의 등장은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일본식 판타지 아니메의 밝은 앞날을 말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슬레이어즈 시리는 2009년까지 총 5기의 TV 시리즈와 5편의 극장판, 2편의 OVA 뿐만 아니라 각종 게임 타이틀과 코믹스 등의 성공적인 미디어 믹스로 판타지 아니메의 레전더리로 남게 되며, 슬레이어즈의 성공은 이후 정통 스타일의 판타지보다는 코믹과 개그가 가미된 보다 더 라이트한 형태의 판타지 아니메들이 생산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슬레이어즈 이후 판타지는 다시 시리어스에서 코믹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다만, 이번에는 성적인 코드가 삽입된 작품이 왕왕 눈에 띄었다.



퓨전의 홍수 속에 정통 판타지를 그리워하다

타지 아니메는 로봇 장르나 마법소녀물과 같이 아니메에 있어서 하나의 장르로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시대를 거쳐오면서 몇몇 걸출한 작품들이 아니메의 일부 흐름을 판타지 아니메 쪽으로 잠시 돌린 적은 있지만, 대게는 그 생명력이 얼마 가지 못했지요. 특히 아니메에서 배경과 소재로 숱하게 사용되었으면서도 정통 스타일보다는 수많은 변주와 변화가 가해진 장르가 바로 중세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자기식으로의 개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스타일 덕분인지 일본 아니메에서 정통 판타지를 만나기란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세 판타지나 혹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코믹 장르이건 시리어스한 드라마이건, 모에물이건 간에 상관없이 자주 등장하는 편입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열풍 이후로 잠시동안 판타지 장르가 전세계(정확히 말하면 헐리우드)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던 당시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싶기도 하구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장르의 아니메들이 선보이면서 판타지 역시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보이는 듯 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모에나 개그와 같은 가벼운 성격을 가진 작품들의 영향 탓인지 큰 스케일의 작품이 나타나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곤조의 2007년 극장 아니메 '브레이브 스토리'나 지브리의 차세대 기대주(?) 미야자키 고로의 '게드전기(2007)'는 모두 흥행에 있어서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만, 획을 긋기에는 역부족이었지요. 게드전기의 경우에는 흥행에 비해 평단과 관객의 평가는 비참할 정도이기까지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판타지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요. 작품의 메인 소재라기보다는 극의 설정과 같이 서브 테마로 자주 사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로봇 아니메 또는 SF 아니메와의 결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3부인 퓨전 판타지 파트에서 좀 더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에물과 같이 최근 제작편수가 눈에 띄게 많은 장르에서도 단순 배경으로 자주 사용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퀸즈 블레이드'와 같은 노골적인 아니메에도 중세 판타지는 변형된 소재로서 등장하지요.)

하지만, 정통 판타지에 대한 흐름이 끊긴 부분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퓨전 요리와 신개념의 레시피가 많을수록 원래의 맛, 정통 맛에 대한 그리움 역시 커지는 법이 아닐까요. 일본식으로 변주된 작품들 뿐만 아니라 좀 더 정통적인 스타일에 기반한 드라마틱하고 큰 스케일의 작품도 가끔은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1부 끝. 2부에서 계속)


<참고 사이트>

[1] <원탁의 기사>(円卓の騎士物語)(1979): 불타올라라 아서(燃えろアーサー), by Kewell, Kewell's Factory about
 Something 
[2] 아리온(アリオン)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ロードス島戦記, Wikipedia Japan
[4] スレイヤーズ,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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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려 있는 '정령의 수호자 (2007), 성장을 주제로 한 깊이 있는 동양 판타지'을 본 블로그에 옮긴 글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스탭>

◈ 감독: 카미야마 켄지
◈ 원작: 우에하시 나오코
◈ 제작: Production I.G


<시놉시스>

우연히 신요고황국의 둘째 황자를 구하게 된 호위무사 바르사. 둘째 황비의 초청으로 궁에 들어간 그녀는 황비로부터 둘째 황자를 호위해 이 나라에서 도망쳐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둘째 황자의 몸에 요괴가 붙어 있고, 이것이 황제의 신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둘째 황자는 암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8명의 목숨빚을 짊어지고 있던 바르사는 그 의뢰를 받아들여 둘째 황자와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둘째 황자의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요괴가 아닌 정령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넘어온 정령의 알이었는데...



등장인물



1. 십이국기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오리엔탈 판타지 대작 아니메

아시다시피 반지의 제왕에서 비롯된 서양의 판타지 세계관(편의상 유럽 판타지로 표기)은 21세기를 맞이하여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등 전반적인 문화산업 새로운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다 판타지 세계관을 쓰는 양상이 되었습니다.) 원래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삼시 세끼를 매 번 먹다보면 질리는 법. 그런 면에서 질리도록 소비되고 있는 서양 판타지에 대안으로 동양의 판타지 세계관(편의상 오리엔탈 판타지로 표기)은 그만큼 방대하고 다양한 소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몇 몇 컨텐츠 외에는 아직까지는 이를 훌륭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오리엔탈 판타지를 소재로 한 작품들. 좌측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십이국기(코바야시 츠네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천녀유혼(서극 감독)', '후시기 유우기(카메가키 하지메 감독)'.

이런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는 오히려 진부함을 벗기 위해 유럽 판타지에 곁들여진 양념마냥 작품에서 조금씩 사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TRPG의 세계관으로 유명한 '포가튼 렐름'의 세계관에는 일본의 도검을 모델로 한 카타나나 중국의 소림사 승려를 기본으로 한 몽크와 같은 소재와 캐릭터가 등장하고, 일본의 아니메나 RPG 게임에는 권법가나 사무라이와 같은 동양적이거나 일본적인 색체를 가진 캐릭터와 소재가 등장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컨텐츠 전체를 오리엔탈 판타지로 구성한 작품들은 아직도 유럽 판타지에 비해 그 수가 적고, 또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판타지를 소재로 컨텐츠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을 전제 하에서 이번에 얘기할 작품인 '정령의 수호자'는 오리엔탈 판타지를 상당히 고급스럽고 정갈하게 묘사해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2. 공각기동대 SAC의 스탭진들이 다시 뭉치다

감독과 각본은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로 떠오르는, 또한 개인적으로 상당히 팬이기도 한 카미야마 켄지 감독입니다. (정령의 수호자가 방영된 시점에서) 아직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 외에는 이렇다 할 필모그라피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만, 만들어낸 작품 대부분이 (흥행여부와는 관계없이)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들이기에 앞으로의 작품에 대한 기대치도 굉장히 높은 인물이라고나 할까요. 그의 데뷔작은 패트레이버의 외전격 단편인 '미니 파토(2002)'라는 작품으로 종이로 오려낸 캐릭터들을 실사로 촬영하는 독특한 영상기법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때부터 범상치 않은 그의 연출력은 빛을 발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미니 파토의 독특한 연출 방식은 그의 최신작 '동쪽의 에덴'의 엔딩 영상에서 다시 한 번 사용되기도 하지요.)

ⓒHEADGEAR / EMOTION / TFC

켄지 감독의 데뷔작인 미니파토. 종이인형을 이용한 특이한 연출과 특유의 개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패트레이버 세번째 극장판 DVD에 부록으로 들어가 있다. 공각기동대 DVD 부록인 '타치코마의 일상'과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講談社 · 攻殻機動隊製作委員会

정령의 수호자 스텝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 공각기동대 SAC TV 시리즈. 비록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지만,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극장판이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점에서 후속작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시작했음에도 불구, 극장판과는 또다른 매력을 선사하며 높은 완성도의 작품으로 새롭게 구성.

음악 역시 공각기동대 극장판 1편과 이노센스 등으로 유명한 일본 아니메의 대표적인 음악감독인 카와이 켄지씨가 만들어 작품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제가는 일본의 대표적인 인기 락 그룹 라르크엔시엘이 맡아 작품 초반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지요. 그외에 고토 타카유키 이하 여러 작화스탭들, 다케다 유스케 미술감독 등 많은 스탭진들은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에 참여한 Production I.G의 베테랑 스탭진들인지라 완성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줍니다.

캐릭터 디자인 원안을 맡은 아소 가토우씨는 18금 헨타이 코믹스 작품을 여럿 그려낸 꽤 재미있는 이력을 갖고 있는데요, 물론, 이 작품에서는 그의 이런 장기는 전혀 발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생각 외의 완성도를 보여준 듯 합니다. 작품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러스트가 아마 그의 일러스트가 아닐까 추정되는군요.

원작자인 소설가 우에하시 나오코씨는 정령의 수호자를 1부로 하여, 어둠의 수호자, 꿈의 수호자 등의 집필했으며,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챠그무가 주체가 되는 여행자 시리즈 또한 있다고 하니 소설로도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원작자체가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베스트셀로서, 우헤하시 나오코 본인이 아니메와 공각기동대의 열렬한 팬이라고도 하는군요.


3. 판타지라는 색상으로 훌륭하게 채색된 성장 드라마

오리엔탈 판타지를 그 외관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정령의 수호자는 액션이나 어드벤처보다는 드라마에 더 집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바르사와 바르사가 호위하게 된 정령의 알을 품은 어린 황자 챠그무, 이야기는 뜻하지 않은 대자연의 숙명을 짊어지게 된 아이가 그 숙명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한 인간으로,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커다란 나무에 자그마한 에피소드들이 나뭇잎처럼 붙어서 하나의 거대한 나무로 형성화하는 듯한 느낌을 보여줍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성장 드라마에 걸맞게 챠그무는 확실히 자라고 있다, 무럭무럭. 우리 아이가 26주만에 이렇게 컸어요.

성장 드라마는 아동과 청소년이 주시청 대상인 애니메이션, 특히나 아니메에 있어서는 거의 어느 장르에나 쓰여지는 하나의 테마입니다만, 정령의 수호자는 그 주인공을 이미 성장한, 그리고 챠그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자라난 바르사라는 인물로 상정한 다음, 그가 지켜야 하는 인물인 챠그무가 성장하는 모습을 제3자적인 입장에서 보여줌으로써, 청소년 층 뿐만 아니라, 성인층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거기에 판타지라면 의례 등장하는 마법이나 괴물과 같은 요소들이 이 작품에서는 주된 이야깃거리가 아닌(물론, 정령의 알이라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판타지 요소, 그 자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의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는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로 사용되면서, 흥미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성숙한 전개를 원하는 고연령대의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판타지 소재는 때로는 양념처럼, 때로는 메인 음식처럼 사용되어 결코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느낌이다.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그리고 작품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이러한 전개가 자칫 지루함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정령의 수호자는 지루할 수도 있는 이런 전개를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각본과 연출로 멋지게 풀어 나간다는 점에서 밀도있고 심도있는 재미를 선사하지 않나 싶습니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에 이어 켄지 감독은 상당히 영화적이고도 리얼한 연출방식으로 작품을 이끌어 나갑니다.


4. 세계관 속에 교묘하게 녹아든 일본과 중국의 문화

오리엔탈 판타지는 그리스/로마 신화, 북구신화, 이집트 신화 등으로 그 소재가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은 몇가지에 고정되어 있는 유럽 판타지와는 달리, 각 나라의 설화나 건국신화 등에 그 모티브를 두고 있어서 나라 별로 다양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인이 만든 정령의 수호자는 일본의 옛모습을 모티브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챠그무의 나라이자 이야기의 주된 배경인 신 요고황국은 그 복식, 병사들의 무장, 주민들의 생활방식, 황궁의 모습 등을 일본의 옛모습에서 모티브를 받았다는 것이 눈에 뜨일 정도이고, 바르사의 고향인 칸발은 마치 중국을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쉽게도 한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지만요.)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전체적인 복식이나 건축물, 생활상은 일본의 그것을 사용하고 있으나 간간히 외국의 것들도 등장하고 있다. 스틸 샷의 좌측 하단에 보이는 의상은 중앙 아시아나 러시아의 전통의상을 기본으로 한게 아닌가 하는 싶다. (실제로 등장인물도 파란 눈에 금발이다.)

특히, 이 작품에 바르사 일행과 대척하고 있는 요고황국의 황실무사들은 일본의 사무라이와 닌자를 연상시키는 듯한 복식과 행동으로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전설적인 작품 '7인의 사무라이'를 그 모티브로 삼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게 합니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7명이 아닌 8명이 나오니 거기까지는 억측일지도 모르겠군요.)


5. 쿠사나기 모토코의 환생? 강인한 여성상과 모성상을 동시에 보여준 바르사

정령의 수호자는 주인공의 한 명인 챠그무의 성장을 그 주제로 한 작품이지만, 그를 보살피고 인격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게 지켜주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바르사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작품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술의 달인으로 탁월한 임기응변과 대담함, 그리고 용의주도함을 갖춘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아니메 팬들은 어떤 여성 캐릭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바로 공각기동대 시리즈의 히로인 쿠사나키 모토코 소령말입니다.

물론, 쿠사나기 모토코가 바르사의 롤모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모토코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 원작이 공각기동대보다 먼저 나왔다고 하니 말이죠. (애니메이션보다 소설이 먼저 나왔다는 것이고, 실제 공각기동대 코믹스보다는 정령의 수호자 쪽이 나중에 출간됐습니다. 공각기동대 코믹스는 80년대 작품.) 아마, 감독 이하 공각기동대의 스탭진이 대거 투입되다보니 작화같은 부분에서부터 자연스레 비슷한 인상을 주지 않았나 싶군요. (제 경우에는 성우가 같다는 착각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바르사는 안도 마부키씨가, 모토코는 타나카 아츠코씨가 맡았습니다.) 그러나, 바르사는 모토코와 다른 점을 하나 갖고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이 작품에서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해줄지도 모르는 모성애가 아닐까 합니다.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講談社 · 攻殻機動隊製作委員会 (좌) /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우)

같은 스텝진이 그려낸지라 둘의 느낌은 외모 상으로도 상당히 비슷하다. 인조피부의 효과인가 화장술의 덕인가, 모토코 여사가 좀 더 뽀샤시 해보이는...

챠그무를 대하는 바르사의 모습은 단순한 호위무사 이상의, 챠그무를 강인한 인간으로 키우는 데 많은 역할이 할애되어 있고, 실제 중간의 전개과정은 그러한 바르사와 챠그무의 관계와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모성애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성애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앞에서는 엄하게, 뒤에서 따뜻하게 지켜보는 그런 모습은 확실히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운 모습이랄까요. 그것은 그녀가 어머니없이 먼 타국에서 외롭게 자란 탓에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린 것도 있겠지만, 지그로에게 맡겨져 길러져 온 탓에 지그로의 남성적인 육아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은 탓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여성인 이상, 그것은 부성애보다는 모성애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듯 합니다. 다만, 그 외향적 모습이 무뚝뚝하고 남성적일 뿐이겠지요.

어떤 분들께선 첫 도입부에서 보여준 바르사의 현란한 액션씬에 매료되어 이 작품을 보셨을 수도 있겠고, (물론, 이 현란한 액션 역시 정령의 수호자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중간 에피소드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액션 때문에 많은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바르사의 진정한 매력은 그 현란한 무예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강인한 모성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3화에 등장한 바르사와 황실 무사들의 액션장면. 이 씬 하나로 초반 이 작품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최고조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현란한 움직임을 스피디하게 표현해낸 것도 훌륭지만, 그 빠른 전개 중에 사이 사이 슬로우 모션으로 주인공의 위기 상황을 강조한 연출력은 애니메이션으로선 매우 높은 수준의 연출 중 하나일 듯. (특히 저 창의 끈이 격투 중간중간에 조금씩 풀리는 연출은 매우 감탄)


6. 수호자 시리즈의 연이은 애니화를 기대하면서...

정령의 알을 품은 탓에 나라의 재앙으로 오인받으며 죽음에 몰린 왕자를 맡아 도망길에 오르는 젊은 여자무사의 이야기는 최초에는 긴장감 넘치는 탈주극으로 우리를 이끈 연 후,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원치 않은 사명과 업을 짊어진 어린 왕자가 백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드라마적인 전개와 잔잔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다가 말미에 이르러서는 왕자가 품은 정령의 알을 빼앗기 위한 정령계의 괴물과, 시시각각 왕자를 쫓아오는 황국무사들의 추격, 그리고 정령의 알을 꺼내고 왕자를 구하기 위한 바르사 일행의 실마리 찾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로 다시 늦춰진 긴장감을 팽팽히 당겨줍니다.

특히 그 중간에 등장하는 바르사의 감춰진 과거, 지그로와의 추억 등은 이 이야기의 또다른 사이드 스토리로서의 흥미를 주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지요. 사실 원작 소설의 경우는 이 에피소드의 완결 이후, 바르사가 다시금 그녀의 고향인 칸발로 돌아가 지그로 등과 얽혀진 오랜 이야기를 해결해 나가는 원톱 주인공으로서의 바르사의 모험 이야기가 다루어 집니다만, 아쉽게도 정령의 수호자의 후속작이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듯 싶습니다. 

완성도 높은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저조했던 시청률 덕에 이 작품의 후속이 더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기도 합니다. 물론, 액션에 많은 관심을 두고 보신다면 지루한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 이런 진지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매일 자극적인 패스트푸드와 서양식 식단으로 지친 우리의 몸에 깔끔한 웰빙음식과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글쎄요,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니메 팬들의 입맛이 다시금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할 때는 바르사를 다시 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기약없는 바르사의 모험 이야기가 언제고 다시금 우리에게 들려올 날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시작은 또 다른 이야기의 결말. 끝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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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ion I.G가 제작 중인 '망각의 섬, 하루카와 마법의 거울(ホッタラケの島, 遥と魔法の鏡, 이하 망각의 섬)이 올 여름 극장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 2009 Fuji TV / Production I.G / 電通

그림 1. 망각의 섬 공식 홈페이지 (출처: 망각의 섬 공식 홈페이지)
 
보시다시피 후지 TV 개국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후지 TV에서 기획하고 Production I.G가 제작을 맡은 3D 애니메이션입니다. Production I.G는 근래 동쪽의 에덴부터 전국 바사라, 도서관 전쟁, R.D 잠뇌 조사실, 신령사냥 고스트 하운드, 정령의 수호자, 공각기동대 TV 시리즈 등, 셀화 기반의 2D 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어 왔습니다만, 사실 3D를 주축으로 한 CG 분야에도 조예가 깊은 제작사입니다.(언급한 위의 작품들에도 음으로 양으로 많은 CG가 사용되었지요.) 이번 '망각의 섬'은 Production I.G의 오랜만의 Full 3D 극장판 영화로서, 그간 절제하고 있던 그들의 3D 기술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이야기 구조는 공식 홈페이지의 메인과 제목만으로도 쉬이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루카라는 소녀가 망각의 섬이라는 신비로운 곳에서 벌이는 모험 이야기이죠. 아마도 중요한 키 아이템은 마법의 거울일 듯 합니다. 꼬마 돼지처럼 생긴 귀여운 생물이 그녀의 모험의 동반자가 되겠군요. 전형적인 전연령가 아동용 작품을 위한 이야기로, 큰 복선이나 갈등구조 없이 단선적이면서도 보기 편한 전개가 되리라 예상됩니다. 결국, 얼마만큼 신나고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할 것이냐가 관건이 되겠군요.

감독은 특이하게도 애니메이션 연출가 출신이 아닌, CF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이력을 쌓았으며, 2003년 '프린세스 블레이드'로 영화계에 데뷔한 신예 사토 신스케가 되겠습니다. 각본은 만화 고쓰(GOTH)의 원작자인 아다치 히로타카(펜네임: 오츠이치)가 사토 신스케와 공동으로 맡았으며, 연출은 '도쿄 마블 초콜릿(2007)'의 감독 시오타니 나오요시가 맡아 애니메이션적 노하우를 보태주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22일 일본 개봉예정.

© 2009 Fuji TV / Production I.G / 電通

그림 2. 트레일러 스틸샷. (출처: 망각의 섬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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