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증정받기는 했으나 딱히 리뷰 요청을 받고 쓰는 서평은 아닙니다. 

아니메 60년사를 덕력 만렙의 시점으로 바라본 바이블

ⓒ 만보 · 스튜디오 본프리

년 8월 즈음에 지인이신 캅셀(CAPSULE 블로그)님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안부 인사를 가장한 한 가지 부탁이었는데요. 무려, 만보(Habest Days)님과 함께 진행 중이신 애니메이션 입문 서적에서 소개할 작품 리스트의 선정에 제 의견을 물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좁은 소견을 적어 보냈으나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도 들리지 않더군요. 그렇게 저도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 그 때의 일은 완전히 잊어버린체 지내다가 무려 1년 2개월 만에 캅셀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어졌던 책이 마침내 출간을 앞두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작품 리스트에 뭔가 의견을 드렸다는 기억이 스물스물...

이렇게 잊고 지내던 만보님의 신간 <애니 보기의 정석>이 2015년 12월 8일 마침내 발간되었습니다. 캅셀님께서 제게 추천사를 써달라고까지 하셔서 염치불구하고 몇 자 적었는데. 특히 이 바닥에서 나름의 포스를 갖추신 분들의 추천사와 함께 제 글이 실린 기분이란 뭐랄까...

이 책 애니 보기의 정석 표지에서도 언급되는 덕력에 있어서 사실 저는 추천사를 쓰신 분들이나 저자분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많이 모자란 블로거입니다. 만화영화 블로거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 블로그의 글들은 제가 이제까지 쌓아온 덕력의 흔적이 아닌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 조사하고 정리한 발자취입니다. 저 자신이 한국의 아니메 1세대(그냥 무늬만)로서 오랫동안 만화영화를 보아왔고, 실제로 제 친구들 중에는 제법 깊은 덕력을 가진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는 저만의 기준(?)에 의해 일반인의 시점을 유지하면서 마니아적인 취미를 즐겨왔었지요.


그래서랄까, 책의 서두에 등장하는 덕력 테스트에서 제 덕력은 상급에 못미치는 중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보님의 말마따나 오덕인과 취미인의 경계에 선 셈인데요. 이런 이유로 제가 이 책의 출간 초기 추천했던 작품 리스트나, 이제부터 이야기할 이 책에 대한 감상평은 모두 이 취미인과 오덕인의 경계에서의 관점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애니 보기의 정석의 구성은 일단 독특합니다. 표지부터 뭔가 수험서나 참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인데, 기획 자체가 만렙 덕력의 고수가 오덕후에 입문하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족집게 강의를 컨셉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책 서두에 등장하는 덕력 레벨 테스트도 그러한 기획의도의 하나이겠죠. 참고서 컨셉 외에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컨셉은 모바일 세대를 타겟으로 삼은 태블릿 스타일의 페이지 디자인입니다. 마치 태블릿 PC에서 일본 아니메 입문을 위한 전자책을 보는 듯한 컨셉이 애니 보기 정석의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eBook으로 출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특색보다 이 책을 더 특색있게 보이게 하는 것은 책의 내용 입니다. 특히, 선별된 작품 리스트가 그러한데요. 우리가 흔히들 명작 아니메로 많이 알고 있는 작품 외에도 상당히 레어한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으며,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아온 스테디 셀러가 등장하지만 최신 아니메들도 그에 못지 않은 비중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보통 아니메 관련 책이 나온다면 소개하는 작품들은 명작 아니메나 스테디 셀러,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 일반적인데, 이 책은 한정된 페이지 속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독자들을 압도합니다. 이는 저자의 아니메 감상폭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각 작품에 대한 저자의 소개는 한마디로 DVD나 블루레이 타이틀의 작품 소개를 연상시킵니다. 즉, 평론가가 한 작품에 대한 소개를 팬들에게 들려주는 형태라고 할까요. 이런 점에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작품조차 좀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묘미가 있습니다. 반면, 처음 아니메의 세계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난해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니 보기의 정석은 아니메의 세계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 포커싱이 맞춰져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선정에 대한 시각도 독특합니다. 예를 들어 건담 하면 다들 떠올릴만한 79년작 <기동전사 건담>이나 85년작 <기동전사 제타 건담>, 2002년작 <기동전사 건담 SEED>와 같은 작품들이 아닌, <기동전사 건담 포켓 속의 전쟁>이나 <턴 에이 건담>을 소개한 점은 그 시리즈만으로도 책 몇 권을 쓸 수 있는 방대한 건담 월드에서 이미 많이들 알고 있는 작품보다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작품들을 언급함으로써 이 책만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래서랄까 애니 보기의 정석은 아니메 좀 본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리스트가 가득합니다. 올드 팬들에게는 처음 접하는 신기한 신작들이, 신규 팬들에게는 듣도 보도 못했던 과거의 명작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죠. (초창기 선정된 작품 리스트에는 레어한 작품들이 더 많았었던 것 같은데 그나마 많이 완화된 것 같네요)

책에서 볼 수 없는 작품의 스틸을 QR 코드를 통해 동영상 소개로 대체한 것은 독자들을 감안한 저자와 출판사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작품의 스틸을 책에 넣었더라면 지면의 증가와 제작비 상승 등 여러 제작 상의 난항이 있었겠죠. 텍스트 만으로도 500페이지가 넘는 책에 부여되는 부담을 모바일 세대의 취향에 맞는 방법으로 풀어낸 부분은 나쁜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과거의 세대보다 지금의 세대는 분명 일본 문화나 아니메에 개방적입니다. 10대의 경우 저희 때보다 훨씬 많은 아니메들을 감상하고, 그 문화를 적극 수용하면서 살고 있지요. 아마 이 책은 그런 이들에게 꽤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거의 모든 아니메를 망라해온 저자의 노하우가 책에 스며들어 작품을 고르는 혜안을 키우는데 이만한 책은 없을 것 같군요. 책을 정독하겠다는 자세보다는 틈틈히 골라서 챙겨보는 것이 이 책을 대하는 더 올바른 자세일 것 같습니다. 애니 보기의 정석은 교과서보다는 레퍼런스에 가까운 책이니까요.

☞ 취미지만 취미이니까 재미있게 by 만보
☞ 오덕후라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 애니 보기의 정석(만보) by 캅셀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만보 · 스튜디오 본프리에게 있습니다.

애니 보기의 정석 - 8점
만보 지음/스튜디오본프리


반응형
반응형

라이벌 구도로 다룬 흥미로운 영화사, 그 끝이 아쉽다.


'문의 불여일견'이라는 고언처럼 글자로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그림으로서 전달하는 시각적 접근방식이 보다 이해하기 쉽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들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과학이나 역사와 같은 학문들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만화를 그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글쓴이의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만화를 통해 과학과 역사 등을 접하여 흥미를 키웠던 적이 있었다.

시대가 흘러갔지만 그러한 접근방식은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유효하다.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이는 유효한 접근방식인데, 특히나 방대한 역사를 갖고 있는 분야의 지식을 쉽게 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화라는 수단은 정말이지 유용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120년에 이르는 방대한 영화의 역사를 만화책 한권으로 풀어낸 황희연, 남무성의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는 그런 면에서 그 시도가 의미있는 책이다.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 자체로도 영화시장은 나날이 커지고 대중의 영화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 점점 커져가는 상황에서 영화의 역사를 한번쯤 되짚어 보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무려 120년 동안 축척된 방대한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영화를 있게 한 기라성 같은 감독들과 배우들,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세계 영화의 상업적 시스템이 구축되어온 뒷 이야기, SFX 등 특수촬영 기법의 발전사 등 영화는 각 분야별로도 엄청난 규모의 이야기들을 쌓아왔다. 정석으로 영화사를 보려한다면 왠만한 전공 분야를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터. 영화사 개론이야 이미 많은 좋은 책들이 시중에 나와있지만, 그마저도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는 다소 어렵고 지루한 것 역시 사실이기도 하다.

그 장대한 역사를 만화책 한권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릴 수록 그것에 담길 많은 이야기를 정리하고 추상화하는 작업은 독자들이 읽기 쉬운 것에 정 반비례로 고난한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의 노력과 결과는 박수를 칠만큼 훌륭한 편에 속한다. 특히, 시대별 대표 영화인들을 라이벌 구도로 잡아서 이야기를 풀어간 것은 본서의 백미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비록 많은 것들을 다루지 못하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화사의 흐름을 비교적 명확하고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도 불과 몇시간 만에.



다만, 남무성 작가의 전작 'Jazz it Up'이나 'Paint it Rock'에 비교하면 이 책이 비교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많은 독자들의 이야기는 아쉽지만 사실인 듯 싶다. 차라리 단행본이 아닌 시리즈로 엮어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만큼 영화사의 이야기에는 음악사와 버금가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인물들이 있는데, 이를 한권의 책으로 그려내면서 글쓴이나 그림을 그린 이나 모두 책을 완성하기 위해 커다란 어려움을 겪은 듯 싶다. 특히, 현대 영화사로 넘어가는 마지막 챕터는 그전까지 깔끔하고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는 본서의 말미를 그다지 훌륭하게 마무리하지는 못한 듯 하여 못내 아쉽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1960년때까지를 1부로, 블록버스터와 SF가 태동하는 1970년대부터를 2부로 하여 2권 정도로만 만들었어도 보다 더 멋진 책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히치콕이나 웰스, 큐브릭과 코폴라 등 과거의 명장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도 보고 싶고, 그들과 시대를 같이 했던 또다른 명장들과 명배우들의 이야기도 같이 읽고 싶으며, 최근의 거장들의 행적도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뇌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찌보면 그만큼 이 책이 펼쳐내는 영화사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저자들이 이 책을 시작으로 영화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또다른 이야기도 그려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영화사와 인물들 똑같은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라는 것은 비단 글쓴이 뿐만은 아니리라.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 6점
남무성 그림.각색, 황희연 글/오픈하우스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저자
남무성 지음
출판사
오픈하우스 | 2013-02-26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영화의 역사를 만화로 만나다!『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라이벌...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반응형
반응형

부끄러운 역사도 기록하고 되새길 때 비로소 훌륭한 지침이 된다.


문 중에서 무엇이 으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학입시에 편중된 한국의 교육세테를 감안하면 국어, 영어, 수학인걸까요. 하이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과학과 수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여겨야 할까요.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경제학과 경영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할까요. 아니면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본질적인 탐구를 위해서 철학을 맨 앞머리에 두어야 할까요.

학문에 서열을 두는 것은 사실 어리석은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으뜸으로 삼았으면 하는 학문이 무엇이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주저없이 역사학을 꼽고 싶습니다.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 한 나라의 흥망성쇄, 한 조직의 성공신화 혹은 실패담, 한 인간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 하나의 학문 또는 예술이 이룩해온 것들 ... 이 모두를 기록하는 역사는 모든 분야에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기록입니다. 이 기록을 통해 인류는 수많은 노하우를 축적하여 지금의 문명을 이룩할 수가 있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혹은 역사를 잊어버렸다면 인류의 문명은 분명히 지금보다 수세기는 후퇴되어 있었을 겁니다. 

'한국 슈퍼로봇 열전'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짧은 지식으로 무려 역사학의 의의를 주절거린 것은, 바로 한국 만화영화에는 한국 만화영화사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의미있는 시도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1998년 만화영화 채널 투니버스에서 방영했던 '한국 만화영화 40년사'는 한국 근대사 만큼 많은 굴곡을 짊어져야 했던 한국 만화영화의 역사를 최초로 다룬 방송으로, 한국 만화영화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긴 다큐멘터리 방송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시도와 결과물이 다른 학문이나 다른 대중예술 장르와 비교하여 수적으로 너무 열세라는 것입니다. 소위 '흑역사'로 치부되어진 한국 만화영화의 이야기를 용기있게 꺼내는 이들은 안타깝게도 많지 않았습니다.

이 포스팅에서 다룰 페니웨이 저, lennono 일러스트의 한국 슈퍼로봇 열전은 그래서 그 가치가 더더욱 빛이 납니다. 남들이 좀처럼 시도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한국 만화영화사라는 점에서 이 책은 그 발간 자체만으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흑역사로 치부하는 한국 만화영화사는 군사독재와 냉전시대라는 어두운 한국의 근대사와 그 발자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시대와, 열악한 대중문화관을 갖고 있던 시대 속에서 고군분투한 그 시절 애니메이터들의 애환도 같이 그 속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 책은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객관적인 시점이 이 책의 두번째 의의이기도 합니다.


저자인 페니웨이님은 이 객관적인 이야기를 위해서 만화영화 책으로서는 보기 드문 치밀한 사전조사와 자료 수집을 선행했습니다.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자세를 지켰다는 점에서 이는 높이 평가할만한 일입니다. 그 결과 이 책은 과거의 한국 만화영화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슈퍼로봇들을 열거하고 이 추억을 아름답게 부풀리기만 하는 자의식 가득한 책과는 태생부터 다릅니다. 한국 로봇만화영화에서 저질러졌던 표절과 도용의 증거, 그리고 이 작품이 보여주었던 독창적인 부분을 저자는 작품마다 최대한 자세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 작품이 생겨난 시기의 사회적인 상황을 설명해주는 저자의 스토리텔링은 한 분야의 역사 이야기로서는 최고의 구성입니다. 

또한, 부연적인 설명을 위해 각 페이지마다 삽입되는 자세한 주석, 그 시절의 신문광고용 포스터, 대본 이미지, 표절했던 일본 아니메 포스터와 같은 자세한 사진들의 게재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의 사실성을 뒷받침하는 멋진 장치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우리들에게 만화영화에 대한 역사서도 이렇게 쓰면 다른 분야의 역사서 못지 않음을 한국 슈퍼로봇 열전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치밀한 조사와 출처가 분명한 인용, 그리고 사진들은 이 책의 세번째 의의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만화영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한국 만화영화를 다룰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글을 쓰기 위한 각종 자료들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고 중도에 중단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이 치밀한 자료수집과 조사가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네요.)


lennono님의 일러스트는 이 책에 발견할 수 있는 또다른 매력거리입니다. 비록 표절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의 슈퍼로봇들이지만, lennono님의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그려진 일러스트들은 한국 슈퍼로봇 열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하나의 심볼입니다. 과거의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현재 우리가 나아가는 길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자는 이 책의 취지에 맡게 과거의 디자인 표절 혹은 도용의 흔적을 그대로 재현하되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비록 표절 논란에 휘말린 로봇들이지만 이 일러스트를 보고 있자니 잠시 추억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랄까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 끝에 그려진 이 한장의 일러스트는 마치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현실에 쓰라린 마음을 달래는 휴게소와도 같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저는 과거 한국 로봇만화영화를 만들어온 애니메이터들에게 동정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당시의 한국은 요즘과 비교하자면 민주화 항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아프리카 또는 중동의 군사독재 국가들과 별 다를바 없었던 때였습니다. 군인이 대통령이 되고 헌법을 뜯어고쳐가면서 장기집권을 시도했으며, 두번째 군사정권의 대통령은 부정축재와 시민학살이라는 파렴치한 만행을 저질렀던 인물입니다. 게다가 1970~80년대는 지금처럼 세계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고 인터넷으로 가까워진 시대가 아닙니다. 미국의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기 위해서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고, 일본의 대중문화는 완벽하게 수입이 금지된 체 일부 방송사가 한국판으로 둔갑시켜 아무런 언급도 없이 버젓이 공중파 방송에 올려놓던 시절입니다. 당연히 대중문화에 대한 수준은 낮았고,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었으며, 이를 위한 전문 인력이 사회전반에 걸쳐 전무했었구요.

정부의 통제와 감시 속에서 체계적인 능력없이 무작정 뛰어든 한국 만화영화계에 있어서 표절과 도용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수순이었을 겁니다. 일본의 경우 비록 2차 대전으로 패망했다고 하지만,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2차 대전 중 이미 세계 열강의 끝자리에 위치하던 나라였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군사독재 정권도 아니었으며, 부흥 후 만화영화를 중요한 프로젝트로 주도하는 등 만화영화에 대한 자세도 틀렸지요. 하지만, 한국은 조선제국의 몰락 이후 일본에 합병되어 사회, 정치, 문화 시스템이 모두 일본에 의해 통제되었고, 해방 후 6.25 전쟁으로 모든 사회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던 나라였습니다. 망했던 선진국의 부흥이 아닌, 아무것도 안가진 후진국의 부흥은 분명 출발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안타깝게도 선진국의 제품과 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모방과 도용하면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던 것입니다.


만화영화 역시 0에서 시작했습니다. 0에서 시작한 한국의 슈퍼로봇, 게다가 슈퍼로봇 자체가 일본 만화영화가 유일하게 만들어낸(게다가 그 일본조차도 체 10년이 안된) 개념이었고, 때마침 일본의 대중문화는 한국에서 수입이 철저히 금지되었으며, 여기에 인터넷이 아닌 편지와 전보가 일상이던 당시를 감안한다면, 저 표절과 도용은 파렴치한 상술, 도덕적 해이보다는 저작권에 대한 무지, 디자인 능력의 전무, 인력과 시간의 절대적인 부족이 더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비록 책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기형적인 완구 스폰서 시스템이 80년대 한국 로봇 만화영화의 제작 시스템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도를 넘은 표절작과 졸작들의 범람으로 한국 만화영화가 스스로 공멸을 불러왔지만, 현재의 결과적인 관점만으로 당시의 역사를 모조리 평가절하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자세는 아닐 겁니다. 우리의 잘못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차갑고 냉정한 것은 아닐까요. 이는 마치 죄많은 부모를 냉정하게 외면하는 자식들의 모습처럼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70년대에서부터 21세기까지 한국사회가 너무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시스템이 바뀌면서 벌어진 엄청난 세대간 인식과 가치관의 차이는 우리 만화영화사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 슈퍼로봇 열전은 그 의의가 남다릅니다. 부디 이를 기점으로 한국 만화영화사를 제대로 바라보고 평가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과거 이현세 화백 원작의 '아마게돈'이 극장 만화영화로 만들어 졌으나 흥행에 참패했을 때, 제작진들은 그 실패가 후대에도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과정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하나의 백서로 제작했다고 합니다(<올드보이>가 탄생하기까지, <올드보이 BOOK>, 씨네21). 실패를 되돌아보고 이를 기록하여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을 줄이는 작업, 즉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부디 이 책의 가치가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이고,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독창적인 로봇 만화영화, 혹은 SF 만화영화가 만들어져 대중들에게 정당한 인정을 받는 날이 오기를 그려봅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페니웨이 · 한스미디어에게 있습니다.



한국 슈퍼 로봇 열전 (초판 한정: 대형 브로마이드 + SD캐릭터 스티커 증정) - 10점
페니웨이 지음, lennono 그림/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반응형
반응형

☞ 본 리뷰는 라이온북스의 이벤트 '따뜻한 카리스마, 정철상 그는 누구인가?'를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 (바로가기)

보통사람들의 피부에 좀 더 와닿을 보통사람의 자기계발서

ⓒ 라이온 북스

러분의 지금 모습은 어떠한가. 번듯한 대학교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집 걱정 교육 걱정없이 휴가철마다 해외여행을 갖다오는 그런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그런 중소 기업에서 그저 그런 연봉을 받고, 결혼할 때가 되어 은행 대출로 전세집을 마련하여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고 그런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는가.

변변치 못한 가정사정과 변변치 못한 학력으로 직장마저 만족스럽지 못한 곳을 다니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혼 적령기가 다가왔어도 쉽사리 결혼할 엄두도 못내고 속만 끓이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내면서 막상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업의 문이 너무도 좁아 매번 그 문턱에서 미끄러지면서 불안감과 야속함으로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은 오로지 태어난 배경과 사회적 지위, 소위 말해서 부모를 잘 만나야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천지개벽해야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소위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IMF를 전후로 십수년간 무수한 자기계발서들이 자신과 현실을 바꾸려 하는 많은 이들에게 읽혀 왔다. 아마 우리도 모두 그러한 책들을 적어도 한 두권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삶은 바뀌지 않은 것일까.우리는 자신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올바른 방법을 사용한 것이 맞는 것일까.

정철상 교수의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는 이제까지 등장한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해온 이론과 방법론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는 자기계발서 모두가 갖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결국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물론, 공력이 높은 저자의 경우는 좀 더 깊이 있거나 독창적인 것들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것이 저자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 살아 있는 지침으로써 독자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 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정철상 교수의 이야기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만 한데, 그것은 바로 이 책이 자서전의 성격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직접 체득한 삶의 진리, 이것은 이론적인 가이드라인에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 넣어 준다. 물론, 다른 자기계발서에도 이렇게 스스로가 직접 체득하거나 타인의 생생한 성공담이 실려 있기는 하다.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해야할 포인트는, 이 책이 대단한 성공과 커리어를 구축한 명사의 성공 스토리나 인생 철학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저자는 중산층보다 좀 더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다른 이들이 말하는 소위 대단한 스펙을 갖지 못했으며, 취업에도 번번이 실패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스스로가 부족한 이었다고 회고하는 저자는 이제 타인의 진로를 코치하고 컨설팅하는 커리어 전문가가 되어 있다. 거기에 셀 수 없이 많은 강의도 하는 제법 성공한 전문가이다. 대단한 성공담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라. 오히려 그로 인해 그가 걸어온 길과 그의 성공방식은 우리들에게 좀 더 피부로 가까이 와닿고 있다. 유명한 인물이 아니라 그저 남 부럽지 않을 정도로만 살고 싶은 우리네 소시민들에게는 오히려 대단한 석학이나 대단한 기업가의 드라마틱한 성공 스토리보다 이 쪽이 더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도 언급했듯이 '그저 살만큼' 이라는 명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요즘의 세상은 꽤 빠듯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인한 사회 불안, 이전에 비해 더 커진 빈부의 격차, 그리고 소득 불균형 등이 야기하고 있는 사회구조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바람에 비해 획득하는 양은 항상 적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의 진리임을 생각할 때 무조건 더러운 세상 탓만으로는 돌릴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잘 살고 싶으면 목표를 크게 잡아야 한다. 비록 그만큼 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큰 목표를 향해 매진했기에 낮은 목표를 잡았을 때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가 있다. 이것은 윌리엄 클라크의 명언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 소년 뿐만 아니라 인간은 희망과 야망이라는 긍정적인 목표를 갖고 그것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 꼭 대단치 않아도 좋다. 다만 그 분야에서만큼은 최고를 목표로 하라.

저자는 목표를 향한 열정과 노력만큼이나 현재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이해하라고 강조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를 알아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 답이 나올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자각한 다음, 스스로가 관심을 가질만한 일을 찾아 스스로가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매진하는 것, 단순하면서도 힘든 이 과정은 꼭 대단한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가만히 앉아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영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뛰고 또 뛰는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가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의 내가 생각이 났다. 선배들과 벤처기업을 창업하여 우리 제품을 만들고 우리가 직접 이끌어 가는 회사를 만들겠다던 야심차지만 부족했던 그날의 다짐은 폐업이라는 쓰디쓴 실패라는 결과로 돌아왔지만, 많은 교훈을 내게 주었고 그로 인해 많은 내적 성장을 할 수는 기회를 주었다. 다소 비관론자였던 나는 그 실패로 인해 오히려 낙관론자가 되었고, 그만큼 더 치밀해졌다. 아직 더 많은 실패가 내 앞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실수를 나는 하겠지만 그날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더 이상 좌절하지 않을 것이며, 좌절한다고 해도 다시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을 얻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자의 책은 대단한 성공을 위한 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나은 자신을 꿈꾸고 있다면, 이 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또한, 당신이 삶의 추진력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면 다시금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을 통해 찾아 보라. 이 책으로 인해 나는 그 사이 조금 느슨해진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덧붙임) 책에서 저자가 언급한 드러커 교수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나도 수년전에 탐독했던 책이다. 다 까먹고 살았는데, 이 책으로 인해 다시금 생각났다. 이 책을 끝내면 다시금 드러커 교수의 책을 집어들어야 겠다. 두번째는 좀 더 피부에 와닿을 듯 하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라이온북스에게 있습니다.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 8점
정철상 지음/라이온북스

반응형
반응형

상상이 아닌 실제로 벌어질 수일 후부터 수십억년 후의 이야기

의 이야기에 앞서 질문으로 서두를 시작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책을 주로 읽고 있는가. 소설인가 아니면 시집, 또는 수필인가, 경제서나 인문서, 아니면 과학서적인가, 그것도 아니면 잡지나 만화책인가. 만약, 소설이라면 연애소설인가, 추리소설인가, 아니면 대하소설인가. 인문서라면 문학개론인가 철학서인가 아니면 역사서인가.

글쓴이의 경우, 7~8년전부터 독서 취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 사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부끄럽게도 일년에 열권이 체 안되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실 우습기는 하다. 하여간에 -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해주는 책에 더 손이 가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요근래에 와서는 마케팅 개론 같은 경제서나 가벼이 읽을 수 있는 다소 라이트한 인문학 서적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 - 이 블로그의 Book Cafe 카테고리를 보면 리뷰한 책은 얼마 없지만 대충 주인장의 독서 취향을 아실 수 있으리라 - 마음을 움직이고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수필이나 소설들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책들이라 주로 일컬어지지만, 이렇게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책 역시 독자들에게 지적인 감동을 선사하지 않나 생각된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감동... 이라면 좀 우스운 표현일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이야기할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은 독자들에게 높은 지적 감동을 선사하는 책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한국어판 책의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 비슷한 데자뷰가 느껴진다. 바로 책이 발간되었던 2007년에 한국에서 개봉되었던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2007)'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이다. 영화는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의 인간이 사라져버린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바이러스에 의해 좀비가 되어버린 인간들과 주인공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특히, 이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이 사라져 버려 그 기능이 정지된 체 수년이 지난 도시의 풍경을 실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는데, 바로 이 영화 속 도시의 모습이 이 책, 인간없는 세상에서는 더욱 세밀하고 자세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장면과의 절묘한 오버래핑은 책에 대한 흥미와 몰입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하겠다.

책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한다. 우선 어느날 갑자기 온 인류가 지상에서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을 경우, 인간이 남긴 수많은 유산들과 도시가 과연 어떤 식으로 변해가고 사라져가는지를 통해 인류가 남긴 모든 것들의 덧없음을 이야기 하게 된다. 또 하나는 바로 환경주의적인 접근으로, 우리 인류가 무심코 버리고 있는 많은 것들과 별 생각없이 행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종국에는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인류가 만들어낸 합성재질 플라스틱은 강력한 자연의 정화능력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동안 지구 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방사능은 그것을 관리할 인류가 사라진 뒤, 지구의 새로운 재앙으로 등장하여 남아있는 많은 생명들을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주의적론적인 저자의 접근은 어떤 면에서는 다소 과감한 부분도 있다. 인류가 좀 줄어들어야 지구가 숨통이 트인다는 것이 그것인데, 저자는 이를 '자발적 인류멸종 운동'이라는 독특한 문구로 정의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와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많은 나라들의 출산장려정책과는 반대되는, 저자의 생각은 확실히 인간보다는 자연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 싶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현재의 지구는 수십억의 인류가 살아가기에는 포화상태에 직면했는지도 모른다. 우주로의 진출 등 SF 소설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현실화 될 때 쯤에야 지구는 숨을 쉴 수 있을까. 어쩌면 현재의 고령화 사회가 십수년 쯤 이어지면 자연스레 인류는 예전에 비해 감소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책의 내용과 함께 글쓴이를 감동시킨 것은 바로 저명한 저널리스트라는 저자의 명성에 어울리는 필력과 치밀한 사전조사라 하겠다. 단 하나의 내용도 단순한 추측과 상상으로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한 사실과 근거를 스스로 조사하고 정리한 뒤 이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저자의 문체는 간결하고 논리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형태의 글쓰기와 태도를 본받고 싶어하기에 읽는 내내 상당한 감명을 받기도 했다. 특히 블로거나 기존의 언론인들의 경우, 정확한 사실 근거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한 체 추측만을 갖고 글을 쓰고 이를 사실인냥 하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는데, 이는 분명 지양해야할 자세라 여겨진다. 

책에서는 한국의 비무장지대도 잠시 등장한다. 인간이 사라진지 반세기가 넘게 지난 이곳 비무장지대는 말 그대로 저자가 언급한 인간이 사라진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곳에서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만약, 통일이 된다면 이곳은 또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이 없어진 세상의 모습을 이 책에서 보았다면, 이제 우리는 인간이 없어야 제대로 숨쉴 수 있는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는가.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Alan Weisman / ⓒ 랜덤하우스 코리아 (한국어판)에게 있습니다.

인간 없는 세상 - 10점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반응형
반응형

기본 지침과 실전 노하우가 골고루 실린 A to Z 가이드라인

워 블로그. 블로그를 시작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려보았을 그 매력적인 타이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스스로를 인터넷 상에서 존경받는 존재, 인기있는 인물로 만들어 주며 생각지도 못한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말 그대로 부와 명예를 가져다 주는 타이틀이다. 물론, 인터넷 문화의 변화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블로고스피어가 눈에 띄게 약화되면서 파워 블로그는 예전과 같은 부와 명예의 상징이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파워 블로그는 매력적인 목표이고, 그만큼 쉽게 얻어지는 타이틀도 아니다.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멋진 아이템과 타이틀을 가진 만렙을 달성하는 것과 같은 성취감을 주는 파워 블로그는 과연 어떻게 해서 되는 것일까?

그동안 많은 파워 블로거들이 스스로의 노하우를 적극 공개하면서 사실 파워 블로거가 되기 위한 노하우들은 이미 인터넷 상에 여러가지 형태로 공개가 된 상태이다. 또한, 블로그가 한참 활성화되던 몇 년 전에서부터 블로그를 만들기 위한 지침서나 관련 서적들이 출판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이미 약세로 돌아선 블로그 생태계와, 인터넷 상에 공개된 파워 블로거 만의 노하우를 볼 때 파워 블로그를 만드는 노하우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이슈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작금의 대세는 소셜 미디어, 마이크로 블로그가 아닌가.

이 책 '100만 방문자와 소통하는 파워블로그 만들기'는 비슷한 주제로 등장한 다른 블로그 관련 서적에 비해 실전과 이론이 조화를 이룬 책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블로그의 기원과 역사를 이야기하며 심도있는 블로그의 이론과 의의를 이야기하는 책보다는 보다 더 실전서에 가깝다. 블로그를 시작하기 위한 이들에게 어떻게 블로그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블로그를 어떤 형태로 운영해가야 하는지, 좋은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 자신의 블로그를 알리기 위해서는 뭘 해야하는지를 좁은 지면 안에 효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대로, 이제까지 나온 수많은 블로그 지침서, 실전 블로그 매뉴얼과 달리 이 책은 보다 심도 깊은 책이다. 이 역시 무슨 의미이냐 하면, 단순히 블로그를 개설하고, 스킨을 꾸미고, 메뉴를 만들고, 위젯을 달고, 광고창을 설치하는 블로그 매뉴얼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목표와 주제를 담은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블로그를 꾸려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다른 국내 블로그 지침서와 의의를 달리하는 이 책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책의 정체성은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블로그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적합하지 않은 책이며,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다른 블로그 지침서와 별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국내 블로그 지침서들이 블로그를 통한 마케팅과 돈벌기라는 경제적인 이슈에 주로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이 책은 진정한 파워 블로그, 즉 수익이나 방문자보다는 보다 더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블로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파워 블로그를 만들기 위한 실전 노하우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반갑기도 하다. 수익을 목적으로 한 블로그가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수익형 블로그의 난립으로 인해 현재 블로그 생태계는 지나친 쏠림 현상을 겪고 있으며 동시에 균형잡히지 못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는 돈이 된다, 인기가 싶으면 너도나도 모두 한곳에 집중하는 개발도상국 시절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구시대적 행태의 폐해이기도 하다.

이 책 100만 방문자와 소통하는 파워블로그 만들기가 의미있는 또다른 이유는, 현재 인터넷 상에서 꽤 인지도가 높은 다섯명의 파워 블로거들의 실전 노하우와 블로그 철학이 작품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전체적인 형세는 개론보다는 실전 가이드라인에 가깝지만, 군데군데 자신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철학이나 자세가 녹아져 있어 천편일률적이고 무미건조한 여타의 실전 가이드라인에 비해 의외로 놓치지 말아야할 구절들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다. 또한 예를 위해 든 수많은 양질의 파워블로그들을 통해 책에서 미처 설명하지 못하는 실전 노하우를 그곳에 가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책의 출간에 다섯 명의 파워블로거들 뿐만 아니라 한국 블로그 산업협회나 한국 블로그 미디어의 메카 TNM과 같은 단체가 힘을 실어준 것도 이 책의 공신력을 높여주는 또다른 숨겨진 힘이다. 수많은 IT 서적을 출간해온 한빛 미디어의 편집은 이 가이드라인에 최적이라 생각될 정도로 깔끔하다. 생각지도 않았던 공개강의 DVD가 담겨져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여기에서는 이 책에서 미처 언급되지 않은 블로그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이야기를 세명의 파워 블로거의 명강(?)으로 접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의 내용보다 먼저 접해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외국의 파워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한국의 블로그 서비스를 받는 블로그 중 파워블로그가 되기 위한 가이드라인의 범주 내에서 이 내용은 사족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외국의 파워 블로그 사례와 그들의 운영방식이 별도의 챕터로 들어가 있었다면 이 보다 더 두꺼운 분량과 가격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책을 구입했을 것 같다. 물론, 글쓴이 만의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많은 블로그 사례를 드는 과정에서 송구하게도 본인의 블로그를 언급해주신 저자 중 한 분인 페니웨이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사실 여전히 미약한 블로그 인지라 저 책에 들어간 '별바다의 서고' 블로그의 이미지와 관련 커멘트를 보는 순간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그런 이유(별바다의 서고가 책에 언급되었다는 이유)로 이 책을 과대평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의 가치가 떨어졌으면 모를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100만 방문자와 소통하는 파워블로그 만들기 - 8점
윤상진 외 지음/한빛미디어

반응형
반응형

 소셜 네트워크, 마케팅 3.0의 진화를 주도하다.

 

ⓒ PRENTICE HALL / ⓒ HANBIT Media (for Korea Edition)

2004년 개설된 페이스북 이래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와 소셜 서비스(Social Service)는 이제 우리 생활전반을 변화시킬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기치 아래 PC, 인터넷, 휴대폰과 무선통신이 시대의 새롭게 역사를 써내려 왔지만, 이제까지의 파급효과는 디지털 세대에 한정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컴퓨팅 환경에 익숙하지 못했던 기성세대와 인터넷의 힘을 우습게 보았던 아날로그적 가치관 속에 디지털 혁명은 한 때 추진력을 잃고 밑바닥까지 추락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시스템의 변화를 두려워한 보수적인 가치관과 신시대를 향한 미숙한 발걸음에 의한 공동의 결과이긴 했지만, 0과 1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다소 낙관적이고 안이한 디지털적 생각이 스스로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한때 무너졌던 디지털의 신화는 이제 검색엔진과 광고 시스템을 기반으로 온세상을 지배하려는 구글과,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통해 기존의 컴퓨팅 환경을 뒤바꿔버린 애플 등에 의해 다시금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디지털 혁명이 그저 무늬만 그럴듯한, 마치 모 경제학자가 언급한 세탁기가 우리 시대에 가져다 준 변화보다 미미한 변화를 가져온 것에 불과했다면, 이제부터 시작될 디지털 혁명은 그동안 미미했던 평가를 뒤엎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혁명의 최전선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웹 2.0, 그리고 휴대용 컴퓨팅 환경과 같은 최첨단 디지털 총아들을 능가하는 새로운 개념의 시스템이 진두지휘를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소셜 네트워크이다.

이제까지의 디지털 시대는 데이터에 의해 좌우되었다. 데이터를 가진 자들이 승자였고, 승자만이 데이터를 갖고 있었다. 많은 사용자들은 오로지 승자들이 갖고 있는 데이터의 일부분을 갖기 위해 앞 다투어 인터넷의 바다에서 허우적댔다. 데이터의 독점은 개방형 환경이 자리잡기 시작하고, 구글(Google)로 대표되는 강력한 검색엔진의 등장과 함께 사용자에게 더 많이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변화를 맞이하였다. 여기에 프로슈머의 기치 아래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자 인터넷은 단번에 일부 데이터 독점권자들의 독재 시스템이 아닌 민주주의의 시스템으로 전이되었다. 데이터를 가진 독점자들에게 몰리던 인터넷의 단방향적 흐름은 이제 사용자들이 집중한 곳으로 흐르는 다방향적 흐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디지털 시대에 부족한 것은 데이터가 실시간성과 상호작용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같은 데이터라 할지라도 사용자의 쓰임새와 반응에 따라 데이터는 다른 형태로 변화할 수 있다. 게다가 데이터 역시 시시각각 새로운 상황정보를 취합하여 또다른 형태로 변화하거나 성장할 여지가 있다. 데이터의 흐름만을 바꿔서는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기에는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Facebook)이라 불리는 소셜 네트워크의 등장과 함께 디지털 시대는 변화를 넘어 진화를 시작했다.

사용자의 감성과 감정이 이입된 소셜 네트워크는 이제까지의 데이터 중심의 인터넷 네트워크와는 다르다. 사용자의 생각과 감정이 다른 사용자들의 그것과 상호작용하며 데이터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데이터와 새로운 사실들을 만들어 낸다. 이 새로운 네트워킹 트렌드에 의해 이제 디지털 시대는 진정한 혁명의 진가를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웹 2.0과 함께 시작된 개방형 컴퓨팅 환경,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휴대용 컴퓨팅 환경, 모든 것이 네트워크를 통해 행해지는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 모두 이 소셜 네트워킹을 통해 보다 더 진화된 모습으로 발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환경과 마케팅 전략도 변화의 시점에 와있다.

페이스북 시대
국내도서>컴퓨터/인터넷
저자 : 클라라 샤이(Clara Shih) / 전성민역
출판 : 한빛미디어 2010.11.29
상세보기

클라라 샤이의 '페이스북 시대(Facebook Era)'는 바로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이 마케팅 전반에 가져온 변화의 물결, 그리고 그 사례를 구체적이고 전략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책 표지에 씌여져 있는 14편의 사례분석에서 보듯이 페이스북을 통한 마케팅 전략은 이미 구체화되어 실용 단계에 들어서 있다. 이를 위한 어플리케이션과 시스템도 다방면으로 구현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페이스북의 시대에 돌입했는지도 모른다.

다소 도발적인 타이틀인 페이스북 시대는 고대, 근대, 현대와 같이 이 소셜 네트워크가 가져온 변혁이 굉장히 거대함을 강조하는 작가의 언어적 제스쳐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이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을 업계 전문가가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는 검색을 구글링(Googling)이라는 단어로 부르기도 한다. 검색이 구글로 대표되듯,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으로 대표될 정도로 막강한 파급력을 지닌 것이다.

페이스북 시대의 마케팅은 이제까지의 마케팅 방식과는 다른 상호작용성과 실시간성, 거기에 진실함이라는 감성적 요소까지 포함된다. 고객 서비스 페이지의 FAQ처럼 일반화된 기계적 답변이나 고객 서비스 센터의 복잡한 통화과정은 이제 회사 이미지 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마이너스가 되었으면 되었지 플러스 요인이 되지 않는다. 고객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이해해서 최적인 답변을 제시간에 줄 수 있는 신뢰도 높은 고객 서비스를 원한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고객 서비스는 분명 기존의 시스템보다 더 높은 성취도를 보일 수 있으며, 또 이미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감성적 요소의 필요성은 마치 필립 코틀러 교수가 정의한 마케팅 3.0의 영성 마케팅(Spiritual Marketing)의 개념을 일부 포함하고 있는 듯도 하다. 코틀러 교수가 이야기한 영적 감동을 주는 마케팅 3.0이 올바른 마케팅의 길이라면, 분명 소셜 네트워크가 가져온 마케팅의 흐름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는 아닐까.

A/S 측면에서만 소셜 네트워크가 매력적인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에 있어서도 소셜 네트워크의 마케팅은 보다 세분화된 타겟시장으로의 접근이 가능한 하이퍼타겟팅(Hypertargeting)을 가능하게 한다. 이전까지의 마케팅 방식에서는 이렇게 전문화된 타겟시장의 소비자에게로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DSLR 마니아들을 위한 최신형 DSLR 카메라 광고를 위해서는 DSLR 카페나 사진 전문 블로거 등을 활용한 광고를 해야 하는데, 이들 모두 카페나 블로그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필요로 했으며, 그나마도 산재되어 있는 각종 카페와 수많은 블로그에 대한 마케팅 관리라는 어려움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로 접속된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작성한 프로필에 맞춘 타켓 마케팅이 가능하다. 이것은 5억명이라는 사용자를 확보하며 그 어떤 포털 서비스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사용자를 거느리는 페이스 북같은 소셜 네트워크의 규모와 사용자들의 자발적 참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 거대한 사람들의 집합체를 무시한다면, 미래의 비즈니스는 분명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마케팅의 최종 단계에서만 소셜 네트워크가 파워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낮아진 고객과의 장벽, 그리고 고객과의 보다 더 적극적인 피드백이 가능해진 이 시스템에서 우리는 초창기 고객의 니즈를 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그리고 이러한 니즈가 얼마만큼의 공감을 얻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일부러 고객 홈페이지에 들려 글을 남기는 충성도 높은(혹은 무지 열받은) 일부 고객들의 트래픽에 비할 바가 아니다. 회사와 직접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소극적인 고객부터, 기업 모르게 여기저기서 기업의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 질나쁜(?) 고객까지 소셜 네트워크는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기업은 이전보다 더 그들과의 접촉에 용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취합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은 새로운 제품의 기획과 개발에 초반부터 보다 더 구체화된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 내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고객의 충성도를 더더욱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인재채용, 조직원 관리, 제품개발, 마케팅, A/S에 이르기까지 소셜 네트워크의 힘은 이제까지 산재되어 있던 웹 서비스와 그룹웨어, 그리고 각종 기업용 비즈니스 툴의 영역을 커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소셜 네트워크에서 이러한 힘들이 응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소셜 네트워크 기반에서 동작하는 전용 API의 개발을 필요로 한다. 이미 저자의 회사인 히어세이랩스 이하 수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API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API의 개발은 새로운 트렌드를 찾고자 하는 한국의 중소 IT 기업에 있어서도 눈여겨 봐야할 분야가 아닌가 싶다.

다소 긴 분량의 내용이지만, 기업의 창의적 마케팅 종사자부터 소셜 네트워크와 관련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까지 읽고 공부할 수 있는 내용과 사례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마케팅 실전 전략 메뉴얼에 가깝다. 소셜 네트워크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셈이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기회의 바다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 책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이제 사람에게 마케팅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사람사이의 관계가 부각된 디지털 시대에서는 사람 사이에서 마케팅을 해야한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PRENTICE HALL / ⓒ HANBIT Media (for Korea Edition)에게 있습니다.


페이스북 시대 - 8점
클라라 샤이 지음, 전성민 옮김, 유병준 감수/한빛미디어

반응형
반응형

마켓의 미래를 예측한 것이 아니라 정의하다.


ⓒ 2010 Philip Kotler, Hermawan Kartajaya, Iwan Setiawan / ⓒ 2010 Time Books (한국어판)

'수기 광고에서 막 임신을 한 신혼부부의 행복한 모습이 나온다. 그들은 광고에서 아기를 낳고, 광고에서 애기의 100일 잔치를 한다. 이 행복한 순간에 정수기의 헤드카피가 오버래핑된다. 다음 편 광고에서는 하천을 살리는 정수기 회사의 노력이 전파를 타고 방송된다. 하천은 살아나고 역시 드라마틱한 연출과 함께 정수기의 헤드카피가 오버래핑된다.'

가장 좋은 제품으로 승부하던 마케팅의 시대가 지나자 기업들은 고객들의 감성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길을 끌 디자인과 그들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서비스로 고객들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가 시작되었다. 시대는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맞이하여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일부만의 전유물이었던 고급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다수에게 공유되었고, 더 많은 정보를 통해 더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기업들의 광고보다는 개개인이 형성한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정보로 제품을 선택하고 서비스를 평가했다. 그렇다면 마케팅은 어떠한가, 과연 마케팅은 이러한 시대 속에서 불변의 법칙과 이론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서두에서 언급한 정수기 광고는 이제 마케팅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 중 한 예이다. 하천의 오염을 복구하는 작업에 기업이 앞장서는 광고를 통해 우리는 기업이 행하는 사회적 활동, 그리고 기업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제품과 디자인, 그리고 서비스를 넘어서 기업의 문화와 기업의 철학, 그리고 기업이 자신들의 기업이익을 어떤 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지에 대한 도덕적인 척도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마치, 아무리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는 정치가일지라도 그의 사생활이 비리와 연루되었다면 곧바로 지지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이제 기업 또한 자신의 도덕적 잣대와 사회적 활동을 고객들에게 시험받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필립 코틀러의 마켓 3.0(원제는 마케팅 3.0)은 바로 이러한 시대의 변화, 고객의 달라진 관점 하에서 앞으로 기업이 행해야할 마케팅의 새로운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故 피터 드러커 교수, GE의 전회장 잭 웰치,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회장 빌 게이츠와 함께 세계 4대 경제 구루(Guru)라 불리는 코틀러 교수답게 책의 내용은 뜬구름 잡기에 그치지 않고 학술적이면서도 글쓴이 같은 비전문가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의 마켓 3.0의 개념 설명에서는 사실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지성에 호소하던 마켓 1.0의 시대에서 감성에 호소하는 마켓 2.0의 시대를 지나 영성(Spirit), 즉 영혼에 호소하라는 마켓 3.0의 개념은 얼핏 들어서는 마케팅과의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 영혼에 호소하라니... 과연 무슨 뜻이란 말인가. 하지만, 서두에서 이야기한 정수기 광고를 통해 영성에 호소한다는 개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그러한 선행, 그리고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기업의 이미지가 향상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기업의 선호도와 비즈니스에까지 직결된다는 영성 마케팅은 분명 사람들의 달라진 모습을 볼 때 정확한 예측이 아닌가 싶다.

마켓 3.0 (양장)(사인본)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상세보기

당장, 가슴에 와닿는 예시는 근래 한국의 TV 연예프로들의 모습이다. KBS의 예능프로 남자의 자격에서 선보이는 합창단 에피소드나, MBC 무한도전에서 등장한 프로레슬링 에피소드 등, 이들의 진솔한 감동 스토리가 프로그램의 호감도를 상승시키고 시청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전개는 과거 단순히 웃기고 즐겁기만 하던 예능 방송에서 솔직하고 가식없는 리얼 방송을 지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가져다 주는 예능으로 변모하고 있다. 마켓 역시 현재 이러한 성장의 과정에 있는 것이라면 적당한 비유가 될까?

비록 기업들이 이전부터 많은 사회적 활동이나 공익광고들을 해오긴 했지만, 광고와는 달리 실제 기업활동에 있어서는 소비자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일원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켓 3.0을 이해하지 못한 피상적인 액션일 뿐이다. 진정한 마켓 3.0은 고객 뿐만 아니라 고용인들, 그리고 주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솔하고 진지한 모습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돈 얼마 기부하고 가끔 봉사활동 참여한다고 기업의 이미지가 상승하고 그것이 매출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사례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은 완전한 마켓 3.0으로 이행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일부 시장은 마켓 1.0에서 머무르고 있으며,  마켓 2.0의 시장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양새에 일부에서는 마켓 3.0이 다른 시장과 혼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아직 시장은 과도기이다. 하지만, 제품과 디자인, 서비스 이상을 보려하는 고객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마켓 3.0으로의 진화를 예견할 수 있다.

대가의 저서이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쉬운 문장과 이해하기 쉬운 구성, 게다가 이론을 도표로까지 도식화하여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다. 노쇄한 경제대가의 저서라기보다는 마치 이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는 젊은 경제학자의 저서인냥 싱싱한 느낌이다. 게다가 과거의 사례보다 가장 최근의 사례들, 즉 미국의 금융위기 사례, 애플과 아이폰의 등장, 구글 등의 사례가 다루어져 낡은 경제서보다 더 일반인에게 친숙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마켓 3.0, 마케팅의 미래를 예측한 것이 아니라 마케팅의 미래를 정의한 책이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0 Philip Kotler, Hermawan Kartajaya, Iwan Setiawan / ⓒ 2010 Time Books (한국어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제6회 알라딘 우수리뷰대회 도서별 1위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마켓 3.0 - 10점
필립 코틀러 지음, 안진환 옮김/타임비즈

반응형
반응형

ⓒ 2010 Timebooks, Inc. for Korean Edition / ⓒ 2009 Ken Auletta

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이들은 그것이 몰고올 혁명적인 변화를 예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실제로 그것은 IT의 폭발적인 성장과 전세계적인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에 불씨를 지폈고, 세상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인 21세기를 맞이하여 아날로그 시대의 종언을 예고하는 디지털 시대의 개막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수많은 호사가들의 예언처럼 바로 변하지는 않았다. 곧바로 이어진 닷컴의 붕괴는 인터넷이 가져올 장미빛 전망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무참하게 짖밟아버렸던 것이다. 야후를 제외한 많은 닷컴들, 실리콘 밸리의 IT 벤처들은 거품이 꺼진 IT의 현실 속에서 다시 허우적 거리기 시작했고, IT는 MS와 인텔, 시스코와 오라클 같은 몇몇 거대 IT 기업을 제외하고는 다시 그 힘과 희망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넷스케이프는 MS 익스플로어의 시장지배력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익사이트나 라이코스 등 많은 검색엔진 역시 수익모델의 부재 속에 IT의 바다 속에 좌초하고 말았다.
 
미국의 컨설팅 그룹인 미래연구소(Institute of the Future)의 컨설턴트였던 파울 사포(Paul Saffo)는 95년도 PBS 인터뷰에서 '거시적 근시(macromyopia)'라는 용어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예측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른 희망과 기대 그리고 두려움으로 인해 그 기술에 대해 단기적인 과대평가가 생겨나지만, 현실은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게 되고 그것은 다시 그 기술의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과소평가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그 기술의 장기적인 영향은 현재에 그 기술이 보여준 단기적인 영향을 상회하는 엄청난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포씨의 예언(?)처럼, 21세기초 무너졌던 인터넷과 웹에 대한 단기적인 과대평과, 그리고 그로 인한 장기적인 영향의 과소평가는 이제 잘못된 판단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이제 세상은 인터넷과 웹을 통하여 소통하고 교류하며 서로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컨텐츠와 지식을 생산하고 미디어를 통제하려 하며,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고 있다. 웹은 이제 컴퓨터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접속하는 가상 공간의 수준이 아니다. 웹이라는 세상과 사람들을 연결시켜주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컴퓨터가, 스마트 폰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의 중심에는 구글이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글쓴이는 구글의 잠재력과 구글의 가치에 대해 무지했었다. (물론, 글쓴이가 무슨 대단한 IT 전문가나 저널리스트는 아니지만) IT 업계에 몸담고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특히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는 입장에서 구글은 나와는 관계없는 세상, 관계없는 비즈니스 영역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주로 쓰던 야후, 익사이트 같은 검색엔진을 거쳐 엠파스를 거쳐 네이버에 이르는 국내 검색엔진에 길들여져 있던 내게, 구글이라는 존재는 그저 수많은 검색엔진의 한 종류였을 뿐이다. 특히, 아무런 배너 광고조차 달지 않은 너무도 심플한 구글의 첫 페이지는 이 책에서 몇번씩 등장하는 구글의 슬로건 '사악하게 행동하지 말자'라는 문구에 걸맞는 너무도 순진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내게 있어서도, 그리고 다른 IT 업계의 엔지니어에 있어서도 더이상 다른 영역의 존재가 아니다. 안드로이드 OS를 통해 구글은 모바일과 임베디드 영역으로 뛰어들었으며, 클라우드 컴퓨팅과 크롬 OS를 통해 MS를 위협하며 운영체제와 네트워킹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유튜브의 인수를 통해 기존 미디어 업계와의 협업을 넘어 그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전자책 시장으로 향하면서 전통적인 출판업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모든 곳에서 구글의 약진이 시작되고 있으며, 구글의 정복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IT 엔지니어들에게, 아니 많은 비즈니스 종사자들에게 구글은 그저 검색엔진 업체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구글은 경쟁자며, 협력자, 그리고 최대의 고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구글 관련 저서 중에서 단연코 돋보이고 빛나는 책이다. 그것은 저자가 구글의 성공 신화와 그들의 성공 요인을 예리하고 완벽하게 간파했기 때문이 아니다. 저자는 구글 속에 들어가 구글과 함께 생활하고 구글이 바라보는 것을 보았으되 구글의 관점이 아닌 관찰자 시점에서 구글과 변화되는 세상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것이 단순히 객관적인 시점에 그치지 않고, 더 폭넓은 변화의 흐름이라는 테마 속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이 책은 여타의 저서들에 비해 시점이 넓고 스케일이 커보인다, 마치 IT 대하소설처럼.
 
책장을 넘기는 내내 내게 있어서는 전율과 흥분의 연속이었다. 그들을 다른 영역의 존재라 여기며 과소평가했던 내 자신이 우스웠고, 한 때 벤처기업을 일으키려 했다가 실패라는 쓴 잔을 맛보았던 내 모습이 그들의 성공신화와 비견되어 쓴웃음이 났으며, 그들을 포함하여 그들과 같은 이들이 가져올 변화가 대다수의 산업 영역,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하니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듯 느껴졌다.
 
물론, 이 변화는 책에서 얘기하듯이 긍정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있다. 기존 미디어 업계, 출판업계 등과의 충돌과 갈등,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한 산업계의 지각변동과 기존 매체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해당 업계와 그 밑에 일하고 있는 많은 종사자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자동차가 등장하자 마차가 사라지고, 전화가 등장하여 편지가 몰락하고, TV가 등장하여 라디오가 몰락했듯이 이제 웹으로의 대이동은 기존의 TV, 신문, 책과 같은 미디어들의 몰락을 예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몰락의 전조 앞에서 불평하고 맞서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발빠른 생존전략에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것에 대한 미련이 앞서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도 이제는 휩쓸려 사장될 운명인 것이다. 이것은 지난 10년 동안 인터넷과 웹,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의 시대를 과소평가했던 이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런지도 모른다.
 
과연, 한국과 한국의 기업들은 구글이, 구글과 같은 이(페이스북은 이미 어떤 면에서 구글을 위협하고 있다)들이 가져오는 변화의 물결에 올라탈 준비가 되어 있을까? 단순히 웹 사이트를 열고, 모바일 앱을 만들며, 디지털 미디어들 만들면 끝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엔지니어들이 좌절하는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엔지니어들만으로 변화를 일구어 낸(물론, 따져보면 비즈니스맨들과 마케팅 전문가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긴 하지만, 구글에서 엔지니어의 비중은 그 어떤 기업보다도 막강하다.) 구글의 신화가, 아니 그보다 못하다 할지라도 그런 형태의 성공과 성장이 과연 가능할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여전히 하드웨어적 스펙에 의지하여 대응하려 하는 폰 제조업체(물론, 그들이 단순한 제조사 수준에 그치고 싶기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나, 수많은 개발자를 중소기업에서 빼내와 대거 채용함으로써 머리수만으로 메우려고 하는 한시적 대응 속에서 과연 한국의 IT는 살아날 수 있을까. 여전히, 과거의 잔영 속에 안주하며 컨텐츠를 독점하려 하는 국내 미디어, 언론들은 과연 구글의 강력한 파장을 얼마나 피해 숨어있을 수 있을까.
 
엘빈 토플러가 예견했던 프로슈머의 시대는 이제 구글의 여는 변화의 세상에 이르러 만개하고, 구글에 의해 조직화되고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제 정보와 지식은 몇몇 기업과 힘있는 이들의 것이 아니다. 구글이 생긴 순간, 정보와 지식의 창고는 이제 대중들에게 열려 인터넷의 바다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열려진 문을 부여 잡고 다시 잠그려는 일에만 집착한다면, 패배하고 사라질 것이다. '정보를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절대 원칙은 이제 '사람이 모이는 곳에 정보가 생기고 쌓인다.'라는 말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곳을 향하여 구글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진정한 시대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0 Timebooks, Inc. for Korean Edition  / ⓒ 2009 Ken Auletta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제6회 알라딘 우수리뷰대회 도서별 1위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구글드 Googled - 10점
켄 올레타 지음, 김우열 옮김/타임비즈

반응형
반응형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자유시장경제와 세계화를 되짚어 보다.

ⓒ Ha-Joon Chang / ⓒ Bookie (Korean Translation)

의 이야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엘로스는 얼마전까지만해도 보수적 관점을 가진 한국시민이었다. 부모님도 그러했고 전반적으로 유복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엘로스가 진보적 관점을 가지기에는 좀 어려운 여건이 있었다. 대학시절 학생 운동도 그저 모두가 참여하니까 몇 번 얼굴을 내밀었을 뿐 등록금 인상투쟁 외에는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는 것도 있었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던 중도성향에, 환경적인 영향으로 인해 보수에 가까운 가치관을 지닌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시민이었던 셈이다.

이런 엘로스의 가치관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작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엘로스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의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원제: The Conscience of  a Liberal)'을 읽기 시작하던 중이었는데,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나뉘어진 미국의 보수와 진보의 역사 속에서 경제는 어떤 형태로 변화되었고 중산층의 부흥과 몰락, 미국사회의 커다란 빈부격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를 놀라운 식견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깊이 있는 필력으로 써내려간 크루그먼 교수의 견해는 단 한권만으로 엘로스가 가지고 있던 허름한 가치관을 모두 허물고 새롭게 구축할 정도의 깊은 인상을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로 엘로스의 경제적, 정치적 식견이나 견해가 깊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2002년부터 약 3년간 벤처기업 창업멤버로서 실패의 쓴잔을 맛보면서 대기업 위주로 흘러가는 한국의 경제 시스템에 깊은 회의를 갖게 된 엘로스로서는 너무도 강렬하고 공감가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는 그런 면에서 크루그먼 교수가 주장하는 일련의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의 허점과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작은 정부, 감세정책, 공공기관의 민영화 같은 정책들의 이면에 놓인 여러가지 맹점들을 동일한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장교수는 진보주의자라는 정치적 관점보다는 경제학자로서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며, 저명한 학자라기보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려깊은 선생님의 눈높이로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크루그먼 교수의 저서에 비해 같은 가치관과 견해를 지닌 저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부담없이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서두에 장교수 본인이 직접 언급했듯이 난해한 경제학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이론적인 배경을 공고히 하는 전문가적 입장이 아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화법으로 어려운 경제학의 화두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짧은 페이지에 펼쳐낸 장교수의 이야기들은 입문서적이라는 작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예리하고 날카롭게 자유시장경제의 맹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위해 인용하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경제적 사례는 과연 이 정도 두께의 책에서 어떻게 다 인용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이다. 저명한 학자이면서도 장교수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라하면 좀 과장된 칭찬일까. 거기에 비록 자유시장경제의 맹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되 무조건적으로 그것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 이것은 잘못을 비난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는 보다 긍정적인 시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자유시장경제가 지향하는 또다른 이념인 세계화에 대한 장교수의 부정적 견해는 이채롭다. 게다가 책을 읽은 시점이 한국에서 G20이 열리던 전후이다보니 책을 읽는 내내 코엑스에서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는 세계정상들과 대기업가들의 모습이 세계화를 반대한 G20 반대시위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세계화라는 명목하에 선진국들의 편의대로 재편되는 경제 시스템과 정책들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죄고 있는 작금의 전세계적 금융위기(물론, 한풀 꺾이긴 했지만)는, 우리가 한 번쯤 이 시스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국내도서>경제경영
저자 : 장하준(Ha-Joon Chang) / 김희정,안세민역
출판 : 부키 2010.11.04
상세보기

작은 정부와 감세정책과 같은 자유시장 경제 시스템을 적극 추진하는 한국에 있어서도 장교수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지표는 나아졌지만, 실업률과 물가는 여전히 높은 한국의 현실은 바로 장교수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자유시장 경제의 맹점에 의한 현상들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시스템의 유지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존속하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 한국 경제 시스템에도 깊이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IT 분야에 종사하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인터넷이 세탁기보다 세상에 미친 영향이 더 적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비록 정보혁명이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모든 나라가 비슷한 수준의 경제 수준을 갖추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아직도 제조업이 더 절실한 국가가 많다는 현실은 우리가 미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아니, 당면한 한국의 현실을 봐도 그렇다. 젊은 세대들이 스마트폰이 가져온 새로운 혁명에 경탄하고 있을 때 여전히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극빈층이 존재하고 있으며, 디지털 방송의 탄생을 앞두고 HD를 이야기할 때 여전히 아날로그 브라운관 TV로 뉴스와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웃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불과 몇년 전 최진실씨의 사망을 통해 한국에 인터넷 실명제와 같은 인터넷 규제책이 나오면서 한국 사회가 떠들석했던 적이 있었다. 정부는 더이상 인터넷에서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불미스러운 일들을 막기 위해 이것을 규제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꽤 많이 가미된) 주장을 했고, 네티즌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역시 정치적 목적이 더 큰) 야당 정치인들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전근대적인 처사라며 이를 규탄했던 적이 있다. 인터넷의 규제를 외치던 이들은 경제 시스템에서는 오히려 시장의 논리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반대 논리를 펴고 있으며, 인터넷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의 대부분은 또 그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 책에서 과연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규제와 자율은 양립이 아니라 상호보완하는 개념은 아닐까. 시장에게 무조건 자유를 주는 것이 옳지 않다면, 인터넷의 자율 역시 적절한 규제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시장을 정부 뜻대로 컨트롤 하는 것이 기업의지를 위축시키는 것(그렇지만, 실제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도 엄연히 규제들은 존재하고 있다. 즉, 장교수의 말대로 완전한 의미의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이라면, 현재 우리들이 가장 큰 혁명이라 생각하는 인터넷(물론 장교수는 이것이 착각이라 책에서 언급했지만) 역시 규제에 의해 위축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보수적인 역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성립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세계화와 자유시장이라는 성공하고 선택된 이들을 위한 시스템은 이제 적어도 수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Ha-Joon Chang / ⓒ Bookie (Korean Translation)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위드블로그 캠페인 베스트 리뷰에 선정된 글입니다. 
    어쩌다보니까 반디&View 어워드 2010년 11월4주 수상작에도 선정된 글입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10점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반응형
반응형

 19세기 유럽의 사실적인 묘사와 미스터리한 탐정들과의 멋진 만남

ⓒ 2007 Guillermo Schavelzon & Asociados, Agencia Literaira / ⓒ 2010 Daekyo Publishing for Korean Translation


렷을 적 탐정을 향한 동경은 아이들(특히 소년들)의 단골 꿈 중의 하나였다. 코난 도일의 전설적인 명탐정 셔얼록 홈즈부터 모리스 르블랑의 신출귀몰한 괴도 아르센 뤼팡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유머스러운 땅딸보 탐정 에르큘 포와로, G.K.체스터튼의 온화하고 합리적인 브라운 신부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미스터리를 향한 그들의 모험 이야기는 언제나 아이들을 지적 만족감과 스릴넘치는 모험의 세계로 인도하곤 했다. 어린 시절 이들의 멋진 이야기에 매혹된 아이들 중 탐정을 꿈꾸지 않은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늘 이야기할 파블로 데 산체스의 또 하나의 미스터리 이야기 '파리의 수수께끼'는 바로 이러한 동경과 선망의 대상인 탐정의 이야기가 아닌, 그날의 우리들처럼 탐정을 동경하던 한 젊은 청년의 입장에서 바라본 미스터리 모험 이야기이다.

탐정의 관점이 아닌, 조수(여기서는 아들라테레라 부른다)의 관점으로 바라본 이 이야기는 얼핏 보았을 때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이야기라 하겠다. 탐정의 수사과정을 바라보는 그의 조수라는 점에서는 얼핏 코난 도일의 홈즈와 왓슨을 연상시키지만 실제로 주인공은 조수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구두가게 청년 시그문도 살바토리오인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중반부의 전개까지는 주인공 살바토리오가 탐정의 수사활동에 큰 도움을 미치는 비중있는 조역 정도가 아닐까 느껴진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우리의 예상이 거의 틀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결말은 드라마틱하게 흘러간다. 소설 속의 명탐정은 모두 이야기를 빛나게 하기 위한 조연에 불과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야기는 결말로 향하고, 살바트리오의 이야기도 예상치 못한 형태로 마무리 된다. 평범한 주인공이 그토록 바라던 탐정의 세계에 몸을 담게 되는 이야기는 이전까지의 미스테리와는 또 다른 맛을 독자에게 선사하게 된다. (사실, 이 결말은 서두에 살바트리오의 독백부분에서 어느 정도 암시되어 있기는 하다.)

살바트리오의 출신과 직업은 이 작품에서 나름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다. 애초에 미스터리라는 고도의 지적 모험에 평범한 구두수선공의 아들이라는 주인공의 정체성 그다지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주인공이 동경하던 탐정 크라이그의 조수 수련생 모집에 응시하는 서두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이 모험에 어울리는 인물로 성장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게 된다. 평범하고 소박한 청년에서 예리하고 날카로운 탐정의 아들라테레로의 성장을 말이다. 이러한 전개는 확실히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다른 모습이며, 동시에 참신한 매력을 부여한다. 언제나 완성된 존재인 탐정, 또는 탐정에 준하는 누군가가 완벽한 미스테리와 심오한 수수께끼에 직면하여 특유의 직감과 천재적인 사고력, 그리고 날카로운 관찰력과 천운으로 인해 사건을 해결하는 미스테리의 세계에서 성장 가능성을 내포한 주인공의 등장은 많은 기대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가져다 준다. 즉, 서툰 주인공의 행보가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파리의 수수께끼파블로 데 산티스(Pablo De Santis)
상세보기

그러나, 실상 이야기는 살바트리오의 활약상보다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십이탐정들과 그에 얽힌 미스테리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즉, 실제 이야기가 상에서는 살바트리오가 주인공이지만 사건을 풀어가고 해결하는 주체는 결국 십이탐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만큼 살바트리오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보다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약간 뒤쳐진 위치에서 움직이게 된다. 물론, 살바트리오의 독자적인 움직임과 시각이 이야기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서는 결국 십이탐정들에게로 관심이 쏠린다고나 할까. 특히, 작가가 창조해낸 이들 십이탐정의 설정은 상당히 매력적인 것으로, 유럽과 미국, 일본에 이르는 여러 나라의 명탐정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의 모습은 그들의 열렬한 팬이었던 살바트리오의 설레임만큼이나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매력을 선사해주고 있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벌어진 미스테리 연쇄 살인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하고 말이다.

명탐정들의 모임 속에는 연쇄 살인사건만큼이나 어둡고 묘한 긴장감과 적의가 내재하고 있다. 사실 초반부의 크라이그 탐정의 이야기부터 사건의 전조를 알리는 다르봉 탐정의 죽음과 사건을 뒤쫓는 아르자키 탐정들의 과거사, 서로에게 적의를 가진 로슨과 카스텔베티아 탐정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작품은 주 사건인 연쇄 살인사건 외에도 탐정들의 여러가지 에피소드와 갈등을 풀어놓고 있다. 꽤 산만할 법한 이 이야기가 중심을 잃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은 이야기가 연쇄살인 사건보다는 십이탐정과 그들 아들라테레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지만 연쇄 살인사건과 그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과정이 주요 테마가 아닌, 십이탐정과 아들라테레의 갈등과 숨겨진 이야기가 테마가 되고 있다.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탐정들의 과거와 현재에 얽힌 이야기라는 다소 드라마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은 흥미진진하고 궁금중을 유발한다. 이 점에서는 작가의 필력을 칭송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살인 사건보다도 주변 인물들 간의 얽혀진 과거와 관계가 살바트리오의 행보 중에 드러나는 이야기는 추리소설로는 색다른 형식과 매력을 보여준다.

에펠탑이 건축 중이던 19세기말엽의 프랑스와 만국박람회와 같은 당대의 이슈들을 완벽하게 묘사한 필력 역시 놀랍다. 미스테리이면서도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장면구성과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19세기 말의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 준다. 역자가 마치 백화점과 같은 구성이다고 표현한 이러한 작품에서 과연 사건의 추리라는 추리소설 본연의 테마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사건의 해결은 클라이막스에 극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마지막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해 낸다. 

물론, 사건의 복잡함은 다른 추리소설에 비하면 난해하지 않고 평이한 편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부분을 상쇄할만큼의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를 보여준다.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추리소설을 원한다면, 파리의 수수께끼는 기대 이상의 독특한 매력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07 Guillermo Schavelzon & Asociados, Agencia Literaira / ⓒ 2010 Daekyo Publishing for Korean Translation 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위드블로그 캠페인 우수 리뷰에 선정된 글입니다. 

 
파리의 수수께끼 - 8점
파블로 데 산티스 지음, 조일아 옮김/대교출판

반응형
반응형

ⓒ BBC Worldwide Limited / ⓒ Thinking Tree Publishing Co., Ltd. for Korean Edition

장의 미술작품은 사람을 압도하는 예술적 감동을 안겨주는 것부터 이해할 수 없을만큼의 난해함으로 작품세계로의 범접 자체를 거부하는 작품(물론, 실제로는 보는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일테지만)까지 다양하다. 물론 대게의 예술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에 정서적 감동을 주고 마음의 양식을 주는 것이지만, 언젠가부터 이들 예술작품은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들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교육을 받고 교양을 갖춘 상류층이나 예술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그 기회가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 예술작품들은 소위 있는 사람들이나 가방 끈이 긴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물론, 일부 그림들은 왕이나 귀족의 요청으로 인해 그려지고 그들의 개인 소유가 된 적도 있다.) 그것은 작가의 예술적 욕구로 인해 창조되고,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있었던 것이다. 예술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은 작가나 일부 소유욕이 강한 수집가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시대가 서서히 변화하면서 생겨난 결과였다.

값비싼 가치를 지닌 작품을 세상의 해로운 것들로부터 보존하기 위해서 예술 작품은 지속적으로 엄중한 관리와 감시를 받아야만 했고, 작품을 보기 위해서 비싼 대관료(물론, 일반인에게 저렴하게 공개되는 적도 있었지만)를 지불하게 되면서부터 서서히 대중과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누구와도 스스럼 없이 지내던 평범한 한 소녀가 만인이 사랑하는 스타가 되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자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관람의 장벽이 점점 높아지자, 작품이 지닌 가치만큼 작품을 보고자 하는 이들 역시 그에 걸맞는 수준 혹은 사회적 지위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 어느덧 순수 예술은 일반인들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는 대중예술이라는 상대적으로 관람장벽이 낮은 대안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모니카 봄 두첸의 '세계명화 비밀'은 이렇게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거리를 두면서 멀어져버린 순수 예술 작품 중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대부분 없으리라 여겨지는 8점의 걸작에 대한 숨겨진 뒷 이야기를 통해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명작 예술들과 일반인들의 거리를 좁히려 한 책이다.

그녀의 책을 여는 순간, 우리는 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또는 미술 전람회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받는다. 저자는 마치 예술품을 보러온 일반인들에게 예술품에 대한 가이드를 해주는 큐레이터처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딱딱한 예술적 가치와 작품의 해설에 치중하기 보다 그녀는 작품을 창조해낸 예술가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예술가들이 살았던 시대, 그 속에서 이 걸작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이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작품을 창조하는 중간과정과 만들어 지고 난 후 쏟아진 주변의 감탄 혹은 혹평. 어느 새 이야기는 작품 하나의 해설이 아닌,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그 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8점의 명작을 주제로 이야기가 이루어지지만, 그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동시대의 작품이나 그들이 창조했던 또다른 걸작들, 단순한 스케치나 소묘부터 그들이 영향을 준 후대작가의 그림까지, 전람회는 8점 밖에 전시되지 않았을거라 생각했던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로 가득한 풍성한 전람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하여 작품에 대한 해설이 이루어지지만, 수많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의 이야기 역시 인용되면서 작가의 이야기에 탄탄한 근거가 되어준다. 지금에 와서는 걸작이라는 칭송을 받는 이 작품들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노골적인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고호나 피카소, 잭슨 폴록과 같은 괴짜 화가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귀동냥으로 들어왔던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서는 구체적이고 생생하여 흥미롭기까지 하다.

예술가의 생활과, 작품이 제작되기까지의 비화, 그리고 예술사의 흐름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장단의 조절에 성공한 그녀의 필력은 예술작품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쉽고 또한 그 깊이가 훼손되지 않고 있다. 예술에 문외한인 내가 읽기에도 무난한 수준이었으니... 단지 여덟 작품에 대한 이야기 만으로 더 이상의 후속작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후속작들은 그녀의 저서와는 별개의 것들이다.

전시회나 순수예술이 자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생각했던 일반인들에게 예술의 참맛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해주는 멋진 시식회와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근래에 갈수록 높아지는 책 값을 고려할 때 엄청난 수의 예술작품의 컬러사진이 첨부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하다는 것 또한 예술로의 장벽을 낮춰주는 것 같은 모양새이다.

모니카 봄 두첸의 세계명화 비밀은 국내에서는 2002년에 초판되어 2006년 2월에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 이 포스트는 제4회 YES24 블로그 축제 티스토리 상에 어줍잖게 선정된 글입니다.


 

세계명화 비밀 - 10점
모니카 봄 두첸 지음, 김현우 옮김/생각의나무
반응형
반응형

공중그네 한국어판 표지

© 은행나무 (한국어판) / © Okuda Hideo for Japanes

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는 한마디로 유쾌합니다. 엽기적이고 반사회적인 정신과 의사 이라부 이치로와 간호사 마유미의 모습이 틀에 박힌 관습에 얽매인 현대인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유쾌하고, 각박한 현대 사회 속에서 마음이 병들게 된 등장인물들의 가식적인 모습이 의사 이라부와 마유미에 의해 낱낱이 벗겨지는 모습이 유쾌하며, 그랬던 그들이 마침내 이라부에 의해(아니, 정말 그가 치료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해결되는 모습이 유쾌합니다. 으례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유쾌함은 소설에 흡입력을 부여하여 독자들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게 만드는 매력을 부여합니다.

이 책은 활자 크기, 책의 두께와 같은 겉모습에서도 가벼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게 합니다. 그러나, 그 가벼움과 유쾌함, 그리고 이라부 박사의 엽기스러운 이면 속에 현대인의 고뇌와 그것을 해결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인 인간다움, 즉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잘 전달하고 있기에 한바탕 웃음 뒤에 살며시 스며드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또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이라부 박사의 정신과에는 다섯명의 환자들이 컨설팅을 받으러 옵니다. 야쿠자 중간보스, 서커스의 일류 공중그네 플라이어, 병원장을 장인으로 모시고 있는 정신과 의사, 프로팀의 주전 3루수, 통속소설을 쓰는 인기 여류작가. 그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 즉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인물들입니다. (야쿠자 보스나 공중그네 플라이어 둘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각자의 분야에서는 성공한 인물들이죠.) 그런 그들, 즉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그들이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체 오로지 자신의 길만 바라보며 세상에서 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이 작던 크던 느끼고 있는 일상의 스트레스와 접점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갖게 합니다.

첫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야쿠자 보스 세이지는 날카로운 것을 보면 질겁을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반대파의 중간보스의 '틱'이라는 정신병 증상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타인의 이해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는 인간적인 형태의 귀결을 보여줍니다. 그 말고도 매번 실수하는 공중그네 묘기가 자신을 제대로 서포트 하지 못하는 캐처(Catcher) 때문이라며 불안감에 떠는 일류 공중 그네 연기자 고헤이나, 병원장의 사위로 들어가 앞날을 보장받은 전도유망한 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류사회의 중압감에 시달리며, 매번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 정신과 의사 다쓰로, 신인 3루수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악송구를 거듭하는 주전 3루수 신이치, 통속 연애소설을 쓰는 인기작가지만, 지금 구상하는 이야기가 자신이 이전에 썼던 소설 속의 내용이 아닐까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여류작가 아키코 등 그들 모두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고쳐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정신과 의사 이라부는 그 엽기적인 모습과 행동을 통해 독자들에게는 웃음을, 환자들에게는 문제해결을 위한 단서를 제시하는 감초역할을 해내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이라부의 설정, 즉 척 보기에는 대책없고 무능한 인간이지만, 타인이 갖고 있지 못한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설정은 종종 일본의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항상 여자를 밝히고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지만 실력만은 일류이며, 위기 때는 항상 날카로운 판단력을 보여주는 츠카사 호조의 인기만화 '시티헌터'의 주인공 사에바 료나,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는 말썽장이 고등학생이지만 경찰들도 해결못하는 난해한 사건 앞에서는 신기의 추리력과 행동력을 보여주는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의 긴다이치 하지메(한국판 명칭: 김전일), 밝힘증에 관음증까지 가진 대책없는 노인네지만 실제로는 절륜한 무공의 소유자인 무천도사(물론, 뒤로 가면서 그냥 엑스타로 전락해 버리지만.), 씻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싫어하는 식탐주의자로 악보를 보지 못하는 엽기 음대생이지만 절대음감을 소유한 천재 음악소녀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 메구미 등, 일본 만화에서도 이라부 박사와 같은 이들은 자주 만나볼 수가 있죠. (일본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이런 설정의 인물들이 왕왕 보이는 듯 한데, 아마도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취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회인들, 혹은 자신의 분야에서 일류가 된 소위 어깨에 힘이 들어간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대책없고 무례하고 한심한 듯한 이라부 박사가 그들이 당연하듯이 여기고 있던 관습과 고정관념을 부수면서 그들은 자신이 속해있던 세상을, 사회를 그리고 그 속에 같이 사는 타인들을 이제까지 그들이 갖고 있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실 그것은 그들이 전에 갖고 있던 것이지만, 각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어느샌가 살며시 잊어버렸거나 스스로 버렸던 마음인 것이죠. 그러나, 사회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이라부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고, 자신들의 병마저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라부의 만화적인 모습 때문이었을까요. 공중그네는 2009년에는 만화영화로 제작되어 만화영화의 황금시간대인 노이타미나 시간대에 방영이 됩니다. 엽기적인 이라부 박사의 모습은 만화에서는 정말 만화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곰돌이 인형과 금발의 미소년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보여진다고 하는데요. 실사 배경과 인물을 만화영화와 겹쳐 사용하면서 독특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간호사인지 의심스러운 육감적인 마유미의 모습이 실사인물(모델 스기모토 유미 분) 형태로 등장하는 것만큼은 확실히 소설에 비해서는 크게 기대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남자들에게만.

공중그네 아니메 스틸1
공중그네 아니메 스틸2

© 空中ブランコ製作委員会(출처: 베스트 아니메)


공중그네 - 8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은행나무

반응형
반응형

ⓒ2009 Seoul Cultural Publishers, Inc.

가튼 렐름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 중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지도를 갖고 있는 R.A. 살바토레의 '아이스윈드데일' 트릴로지(3부작)가 마침내 한글판으로 번역되었습니다. 2년전 소설의 주인공인 드리즈트 도어덴의 성장기를 다루었던 '다크엘프' 3부작의 출간에 이어 번역된, 시리즈 중 가장 초기의 작품(소설의 시간대 상으로는 다크엘프 3부작에 이어 두번째 이지만)이자 가장 인지도가 높은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은 렐름에서 가장 매력적인 주인공 중 한명인 다크엘프(또는 드로우) 드리즈트 도어덴과 그의 절친한 동료들의 첫번째 모험담으로, 그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포가튼 렐름이라는 세상은 원래 TRPG(TableTalk RPG의 줄임말로, 주사위 보드게임 형태로 즐기는 롤플레잉게임을 이르는 말)의 세계관으로 사용되는 D&D(정확히는 후속편격인 AD&D)의 여러 세계관 중 하나로서, 아비어 토릴이라고 불리는 가상의 행성에서, 중세를 배경으로 다양한 환상 속의 종족, 천사와 악마, 요정과 괴물, 그리고 마법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드로우라 불리는 다크엘프는 원래 고귀한 요정족인 엘프족의 하나였으나, 지상의 엘프들과는 달리 지하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악하고 잔인한 검은 피부의 엘프들을 일컫고 있죠.

주인공 드리즈트 도어덴은 드로우로 태어나 드물게도 선한 마음과 정의감을 갖게 된 나머지 동족을 버리고 지상으로 올라온 유일한 인물입니다. 악의 인물이 선한 마음을 갖고 악당들과 싸운다는 시놉시스는 비슷한 류의 판타지 소설이나 코믹스 등에서 많이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흑요석에 비견될 정도로 새카만 피부와 눈부신 은발, 보랏빛의 눈동자를 지닌 이 미남 요정은 그 출신이나 그 외모만으로도 이미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요. 거기에 전광석화와 같이 빠르고 현란한 쌍검술, 항상 그를 도와주는 마법의 검은 표범 구웬휘바와 함께 한 그의 모습은 속된 말로 '그림이 된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R.A. 살바토레 소설의 매력은 드리즈트 도어덴의 비극적인 출신이나 매력적인 외모, 출중한 실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실제로 소설 속의 그는 뛰어난 전사이지만, 그에게 닥치는 시련은 언제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내야 할 정도로 절박하고 위험천만합니다. 아슬아슬한 위기를 겨우 극복할 만하면 또다른 위기상황이 숨쉴 틈 없이 몰아치며 독자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치 못하도록 합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의 빠른 검놀림처럼 위기와 극복, 모험과 전쟁은 3부작으로 이루어진 소설 내내 독자들을 열광시킵니다.

ⓒ Wizard of the Coast (Illustrated by Todd Lockwood)

아칼 케셀의 사악한 군대와 맞서 사투를 벌이는 드리즈트 일행들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강한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입니다만, 재미에 천작하여 소설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겐 생소한 렐름의 각 지역과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종족들의 생활방식의 묘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 환상의 세계를 마음 속으로 그려볼 수 있게 해주는 세심함은 재미를 주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묘사와 설명을 등한시하는 연륜이 짧은 판타지 작가들의 그것에 비해서는 확실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출신과 피부색 때문에 많은 렐름의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드리즈트의 모습, 그의 고독과 갈등, 그리고 친구들의 믿음과 우정과 같은 테마는 모험과 재미로만 흘러가는 이 소설의 중심을 잡아주는 훌륭한 테마입니다. 매 장마다 서두를 장식하는 드리즈트 본인의 회고록 또한 이 이야기의 현실성을 부여해주며, 동시에 들뜨는 분위기를 조용히 가라앉히는 역할을 훌륭히 해주고 있습니다.

시리즈가 오래 연재되면서 근래에 출간되는 드리즈트 도어덴의 이야기는 이러한 초심을 잃고 뻔한 흥미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은 그런 점에서 무게감이 잘 잡혀져 있는 대표적인 모험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Wizard of the Coast (Illustrated by Todd Lockwood)

미스랄 홀의 참상을 마주한 체 할아버지의 갑옷과 무기를 들고 복수를 다짐하는 브루노어 배틀해머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줄거리 역시 크게 3가지로 나뉘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1부 '마법의 크리스탈' 편은 사악한 힘을 지닌 유물 크렌쉬니본를 얻어 아이스윈드데일 지역의 텐타운을 정복하려는 사악한 마법사 아칼 케셀과 역시 크렌쉬니본을 노리는 악마 에르투, 그리고 드리즈트 도어덴과 그의 친구들인 드워프 브루노어, 바바리안 울프가, 하플링 레지스의 모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 '은색의 강' 편에 이르러서는 이야기가 전환되어 브루노어의 잊혀진 고향인 미스랄홀을 찾기 위해 아이스윈드데일을 떠나 렐름의 내륙으로 모험을 떠나는 드리즈트 일행과, 하플링 레지스의 뒤를 쫓는 드리즈트의 최대 라이벌, 암살자 엔트레리와의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3부 '하플링의 보석' 편은 엔트레리에게 납치당한 레지스를 구하기 위해 소드코스트 해안을 따라 최남단의 도시 칼림포트로 향하는 드리즈트와 울프가, 그리고 브루노어와 캐티브리의 모험을 이야기합니다.

환상의 모험이 가득한 세상,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은 오랜만에 일상의 반복된 생활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의 짜릿한 모험을 위한 훌륭한 여행권이 될 겁니다.

ⓒ Wizard of the Coast (Illustrated by Todd Lockwood)

다른 차원인 타르테루스에서 데모단드와 사투를 벌이는 드리즈트 일행들


☞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은 시간 상으로는 다크엘프 3부작보다는 나중의 이야기이지만, 쓰여진 것은 먼저이기 때문에 드리즈트의 과거를 언급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크엘프 3부작과 모순되거나 안맞는 부분이 종종 있습니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듯.

☞ 드리즈트 도어덴의 이야기에는 그의 일행 말고도 렐름의 세계관에서 이름 높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미스트라 신의 힘을 이어받은 7명의 자매들인 세븐시스터즈는 미스트라에게 선택된 자들과 함께, 렐름의 세계관에서는 유명 인사이자 강대한 힘을 가진 이들인데요. 특히, 세븐시스터즈의 둘째인 실버리문의 여왕 알루스트리엘은 이 작품에서 드리즈트에게 연정을 품게 되는 설정으로 등장하시기도. 각종 렐름 팬 사이트에서 알루스트리엘이 드리즈트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글을 본적은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접하니 몹시 반가운 대목이었다는. 그런데 이분, 아들들이 꽤 많으시답니다. 선덕여왕의 미실과 비교할만한...

☞ 그외에 워터딥에서 잠시 대면한 켈벤은 바로 저 유명한 미스트라에게 선택된 자 블랙스태프 켈벤 아룬선이며, 그의 제자인 멜코어 할펠 역시 등장합니다. 다크엘프 3부작에서는 세븐시스터즈의 셋째인 도브 팔콘핸드가 지상에 처음 나온 드리즈트를 추적하는 레인저로 잠시 등장했지요.

마법의 크리스탈 - 10점
R. A. 살바토레 지음, 손원석 옮김/서울문화사

반응형
반응형

ⓒ1973 Ryoichi Yokomizo

본 추리소설의 거장 故 요코미죠 세이시 선생의 1951년작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라고는 하지만, 한 세기 전에 태어난 인물인지라 사실 국내에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인지도 자체는 그닥 높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른다 하더라도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탐정의 이름을 들어보면 어디선가 낯익은 느낌을 갖게 되는 분들도 있으리라 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추리만화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한국판 제목: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주인공인 김전일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명탐정이신 우리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의 바로 그 할아버지로,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해낸 희대의 명탐정이 바로 이 긴다이치 코스케인 것입니다. 실제 김전일이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긴다이치로 발음하며, 김전일의 원 일본이름은 긴다이치 하지메이죠.
 
일본 추리만화 초유의 베스트셀러에서 매번 거론되는 이 인물은 요코미조 선생과 그가 창안해 낸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에 대한 일종의 존경의 표현이며, 동시에 많은 일본 추리 매니아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고, 김전일(실제로는 긴다이치 하지메)은 그 이름으로 인해 긴다이치 코스케의 명성과 아우라를 어느 정도 등에 업고 작품을 이끌어 가는 것이기도 하구요.
 
자, 이 정도로 일본 내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이 작품 '악마과 와서 피리를 분다.'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77편의 에피소드들 중 15번째에 해당하는 비교적 초창기의 작품입니다. 초창기이다보니 당시 한참 전성기의 필력을 과시하던 요코미조 선생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실제로 당시 요코미조 선생은 이 작품을 포함하여 무려 세 편의 긴다이치 코스케 이야기를 집필 중이었다고 하는군요(시공사판 소설의 후기 참조).
 
비록, 영화로 대성공을 거두며 요코미조 선생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이누가미 일족'이나, '옥문도', '팔묘촌'과 같은 작품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긴다이치 코스케 팬들의 인기투표에서 당당히 3위에 올랐으며, 요코미조 본인은 베스트 7에 선정할 정도로, 이 작품의 완성도와 인지도는 높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로도 수차례 제작된 사례도 있지요.
 
 
기괴하고 미스테리한 몰락귀족의 가족사에 접근하는 명탐정의 여행기
 
작품의 전개는 밀실살인을 포함한 기묘하고 괴기스러운 살인 징후, 피해자와 주변인물들의 과거 속에 숨겨진 경악스러운 진실, 범인은 결국 주변인물들 중 하나라는 결과 등이 포함되어 있는 전형적인 요코미조식 추리 전개를 따르고 있습니다. 비록 요코미조 선생의 작품을 읽지 못한 이들이더라도 이러한 전개는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에서 익히 보아온 모습이기도 하지요. 정확히 말하면, 요코미조 선생의 스타일을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 스토리 작가들이 이어받았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요코미조 선생이 이전까지 그려왔던 피해자 가문에 얽혀 있는 낡고 고루한 인습과 삐뚤어진 과거에서 좀 더 나아가, 전후 몰락한 일본의 귀족제(일본에서는 화족제도)와 사회상이 반영되었단 점에서 이전 작품들과는 달라진 스타일을 보이고 있으며, 추리소설의 백미 중의 하나인 밀실살인이나 전혀 불가능 할 것 같은 범죄장면의 묘사보다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과거의 실마리를 하나둘 짜맞추어가는 이야기 전개에 그 비중이 더 맞추어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첫번째의 밀실사건이 발생한 후,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건 현장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보다는 이미 본편이 시작되기전 자살을 시도하면서 사건의 발단을 알린 피해자 가문의 가장 츠바키 자작의 행방을 쫓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30장에 이르는 본작의 구성에서 중반부는 바로 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츠바키 자작 행적 찾기에 할애되고 있지요. 이후 중후반부에 이루어지는 몇 건의 살인사건은 초반부의 밀실사건과 같은 불가능 범죄가 아닌, 일반적인 살인현장에 그치고 있어 상대적으로 살인사건 자체가 갖고 있는 미스테리함은 경미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작품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며, 세 건의 살인사건마다 축음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플루트 곡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의 기괴한 느낌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살한 츠바키 자작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 기괴한 플루트 곡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산한 츠바키 가문의 저택과, 몰락한 옛 귀족들의 음험한 과거, 그리고 피폐해진 패전 후의 일본(굳이 이 작품에서는 패전이라는 말보다는 전후로만 묘사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야 일본인이 쓴 이야기니만큼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치고)의 상황과 어울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몹시도 괴기스럽게 이끌어가고 있지요. 특히, 한국어판을 출간한 시공사가 자사의 블로그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이 기묘하게 음산한 플루트 곡을 들으면서 책을 읽어본다면 그 느낌은 확실히 평상시보다 강렬해질 듯 합니다.
 
 
깊은 풍미를 가진 고전적인 일본스러운 맛의 미스테리
 
전체적으로 작품의 흡입력은 강력합니다.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강렬하다고 할까요. 다만, 그 원동력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사건해결보다는 어둡고 사악한 악마의 과거가 숨겨진 귀족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긴다이치 코스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비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명탐정이 모든 사건에서 항상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에피소드 등에서도 몇 차례 보아온 모습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와 많은 동질감을 느끼는(물론, 김전일의 스토리 작가들이 요코미조 선생의 스타일을 답습한 것이지만) 전개 방식은 어떤 면에서는 친근감을 느끼게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식상함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작품 자체의 식상함이라기보다는 우연치 않게 비슷한 맛에 너무 길들여져 버린 독자들이 운이 없는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실제로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를 권당 2~30여번은 족히 보아왔던 제게 이 작품은 분명 멋지지만, '뭔가 예전에 한번은 먹어보았던 맛인데?'라는 느낌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익숙한 맛도 확실히 거장이 만들어 낸 맛인지라 식상함 속에서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의 작품이 몇 번씩이나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다시 김전일을 통해 비슷한 스타일로 미디어 믹스화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깊은 풍미에 대한 팬들의 욕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봅니다.
 
음산하고 음울하며 충격적인 귀족사에 얽힌 미스테리... 어쩌면 이 무덥고 습한 여름의 날씨에 제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렛츠리뷰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 10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반응형
반응형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 저/스튜디오 본프리 발행

본의 대표적인 건설기업 마에다 건설이 야심차게 시작한 황당무개 공상과학 현실화 프로젝트의 2탄 '은하철도 999 우주레일을 건설하라(마에다 건설 판타지 영업부 저 / 김영종 역 / 스튜디오 본프리 발행)'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저자인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이하 판타지 영업부)는 마에다 건설사가 건설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일반인들에게 마에다 건설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내에서 결성된 일종의 프로젝트 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판타지'라는 프로젝트 팀의 명칭처럼 그들의 방향성은 사뭇 환상적이고 현재로서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미지의 것들에 고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프로젝트 1탄이었던 마징가 Z 지하기지에 이어 이번에는 너무도 유명한 저 은하철도 999의 발차대인 우주레일의 건설을 그 목표로 하고 있군요. (아쉽게도 메텔은 여기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책 중의 등장인물인 B주임 말마따나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군요.)

 

판타지 영업부의 이 웅대무비(?)한 프로젝트는 사실상 그들의 브랜드/이미지 마케팅의 일환으로, 실제적인 건설 프로젝트라고 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습니다. 마에다 건설의 기업 이미지 개선과 홍보가 이 책을 펴낸 원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이 책의 또다른 의의는 브랜드/이미지 마케팅을 위한 홍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진지하고 열정적인 판타지 영업부의 프로젝트 수행자세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대충대충 우주레일 건설이라는 황당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려 하지 않습니다. 실제 건설에 필요한 여러가지 전문지식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그것을 우주레일이라는 상상 속의 건축물에 적용시키려 하지요. 현재의 기술력으로 가능한한 최선의 방법으로 우주레일 건설 프로젝트에 임하는 그들의 진지한 자세는 사뭇 놀랍기까지 합니다. 워낙에 꼼꼼하고 디테일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라지만, 이러한 판타지 영업부의 자세는 단순한 꼼꼼함을 넘어서 꿈을 향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비록 마케팅을 위한 홍보전략에서 시작했으나 그 과정은 홍보전략 이상의 열정을 품은 듯 느껴지는 것이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딱딱한 서술이 아닌, 판타지 영업부의 팀원들 간의 대화로 풀어나갑니다. 주축이 되는 A부장, B주임, C주임, D직원 외에도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알파벳 이니셜을 통해 등장하는데요. 이러한 이야기 스타일의 전개는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건설 프로젝트 미팅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단순히 건설 프로젝트 미팅에 대한 이야기만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은하철도 999 아니메에 관련된 각종 이야기들과 소소한 유머들을 곁들여 나름의 재미를 부여하려 합니다. 단, 그로 인해 좀 더 아니메 매니아적인 냄새가 풍겨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니메에 관한 관심이 그닥 없는 독자들에게는 그들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쉽사리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문적인 건설 지식도 깊진 않지만 꾸준히 등장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지만, 결국은 꽤 매니아적인 색체를 풍기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 저/스튜디오 본프리 발행

그러나, 언급하고 있는 아니메의 각종 장면이나 등장인물, 그리고 건축과 건설 등에 관한 각종 지식들을 주석과 그림으로 뒷받침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는 꽤 친절한 전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상 속의 건축물을 실제로 구현하려 하는 그들의 매니아적인 열정에 동참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굳이 아니메 매니아나 건설지식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읽는 시간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을 겁니다.

 

불가능한 꿈을 향한 인간들의 열정이 미래를 만들어 온 인간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분명 이 판타지 영업부의 프로젝트는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단순히 자신이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영화의 것들을 실제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취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정말로 현실로 만들어 보려하는 미래지향적인 열정에 대한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지요.

 

일본인들은 아톰과 건담 같은 로봇 아니메를 통해 로봇에 대한 꿈을 키워왔고, 세계 제일의 로봇 기술을 가진 나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워온 미국인들이 세계 제일의 우주항공 기술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물론, 미국인들의 이런 우주항공 기술은 냉전시대의 군사력 경쟁도 큰 몫을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한국 역시 이러한 상상력을 일깨울 수 있는 컨텐츠가 부족하다고 해서 꿈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잃어버려서는 안될 겁니다.

 

마징가 Z가 아니면 어떻고, 은하철도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무언가를 꿈을 꾸고 그 무언가를 현실화 하려한다는 의지와 도전정신이 있다면, 우리도 판타지 영업부처럼 비록 황당무개하더라도 언젠가는 이룰지도 모르는 꿈을 위해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은하철도999 우주레일을 건설하라! - 8점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 지음/스튜디오본프리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