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미야자키 하야오의 극장 아니메 시리즈>

1.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1979)
2.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1984)
3. 명탐정 홈즈 (1984)
4.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5. 이웃집 토토로 (1988)
6.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7. 붉은 돼지 (1992)
8. 원령공주 (1997)
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10.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11. 벼랑위의 포뇨 (2008)
12. 바람이 분다 (2013)

이웃집 토토로 (1988), となりのトトロ / My Neighborhood Totoro


ⓒ 二馬力 · 徳間書店


<정보>

◈ 원작/감독/각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 작화감독: 사토 요시하루(佐藤好春)
◈ 미술감독: 오가 카즈오(男鹿和雄)
◈ 원화: 단나이 츠카사(丹内司), 오츠카 신지(大塚伸治), 카나다 요시노리(金田伊功), 콘도 카즈야(近藤勝也)
◈ 음악/노래: 히사이시 조(久石譲) / 이노우에 아즈미(井上あずみ)
◈ 기획/제작: 야마시타 타츠미(山下辰巳), 오카다 히데오(尾形英夫) / 도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
◈ 프로듀서: 하라 토오루(原徹)
◈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도쿠마 서점
◈ 저작권: ⓒ 二馬力 · 徳間書店
◈ 일자: 1988.04.16
◈ 장르: 드라마, 모험,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G)


<시놉시스>

때는 1950년대의 일본,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대신하여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의젓한 소학교 6학년 소녀 쿠사가베 사츠키는 호기심 많은 동생 메이와 고고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곧 퇴원할 엄마를 위해 물 맑고 공기 좋은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사짐과 함께 털털 거리며 굴러가는 작은 고물 삼륜차에 몸을 싣고 꼬불꼬불한 논길을 거쳐 다다른 시골. 나무들이 우거진 터널 같은 계단을 지나 넓은 언덕 위에 새로운 집이 사츠키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들떠하는 사츠키와 메이.

근처의 거대한 녹나무가 보이는 뜰과 동화속 존재인 마쿠로쿠로스케가 존재하는 듯한 시골집은 전원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정취를 풍기고 있어 사츠키와 메이에게는 따사로우면서도 왠지 모를 위화감이 으스스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사츠키가 학교에 가고, 아빠가 일을 하고 있는 어느 화창한 오후, 혼자서 집주변을 살펴보며 자연과 벗삼아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던 메이는 생전 처음보는 희한한 모양의 동물(?)을 발견하고 뒤를 쫓던 도중 녹나무 밑의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마는데...


<소개>

스튜디오 지브리의 두번째 극장 아니메(동시 상영으로 제작된 '반딧불의 묘(1988)'가 있으니 둘 다 지브리의 두번째 극장 아니메라 보면 될 듯. 지금에서야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지브리 아니메로 여기지만, 원래 나우시카는 지브리가 창립하기 전 탑 크래프트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지브리의 탄생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네번째 극장 아니메. 이제는 지브리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이자 하나의 정체성으로 여겨지는, 일본 아니메의 대표적인 캐릭터이자 아이콘인 토토로를 주인공로 한 작품으로, 상영 당시만 하더라도 그 파급력은 미비했었다. 지브리 사상 최저 흥행성적을 거둬들인 '천공의 성 라퓨타(1986)'보다 살짝 앞선 약 5.9억엔의 수입(라퓨타는 약 5.8억엔)과 8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니 지금의 네임밸류에 비하면 무척 초라한 성적을 거둔 셈.

토토로의 기원은 사실 197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에이 동화를 떠나 A 프로덕션(現 신에이 동화)에 입사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A 프로덕션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도쿄무비신사의 극장 아니메를 하청받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아기 팬더와 아빠 팬더가 등장하는 작품을 생각해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토토로의 원형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 당시 제작된 도쿄무비신사의 '팬더와 아기팬더(1972)'의 팬더는 생김새나 표정 등이 토토로와 무척 흡사하였으며 주인공 여자아이인 미미코는 토토로의 주인공인 사츠키와 메이를 섞어 놓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 팬더와 아기팬더(パンダコパンダ) 1972 1972 by 캅셀 (보러가기)

토토로의 초기 기획서가 미야자키에 의해 스폰서인 도쿠마 서점에 제출될 때만 하더라도 도쿠마 서점은 이 기획안을 그다지 마뜩치 않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시대 배경도 너무 오래된 옛날인데다가 스케일이나 드라마성이 전작인 나우시카나 라퓨타에 비해 너무 소박하고 밋밋해서 흥행하기에는 뭔가 한 방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기획된 작품의 러닝타임도 6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단독 상영으로는 다소 어정쩡한 길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 물꼬는 의외의 방향에서 터졌다. 당시 지브리에서 기획 중이던 또다른 극장 아니메 반딧불의 묘 역시 60분 정도 밖에 안되는 러닝 타임이었기에 이 두 작품을 동시상영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이로 인해 극적으로 토토로는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다만 후일 제작 과정 중에서 반딧불의 묘나 토토로나 모두 9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가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태어나게 된다.

반딧불의 묘에 지브리의 A급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한데다가 스튜디오마저 이들이 쓰고 있었기에 토토로의 제작은 신설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으며, 스탭 역시 반딧불의 묘에 비해서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인재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본 작품을 통해 지브리와 첫 만남을 갖게 된 미술감독 오가 카즈오의 경우는 일본 아니메 양대 거장 미술감독으로 불리는 코바야시 시치로와 무쿠오 다카무라 둘 모두를 스승으로 모셨던 인물로서, 그 천부적인 감각으로 인해 완벽주의자인 미야자키에게마저 극찬을 받기 이른다. 실제 토토로에서 보여준 카즈오의 미술은 20여년 전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푸르렀으며, 그때까지 지브리의 미술을 이끌고 있던 야마모토 니죠(당시에는 반딧불의 묘에서 미술감독을 역임)와 비교했을 때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반딧불의 묘에 비해 애니메이터의 진용이 다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토토로의 미술적 가치는 지브리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겠다.

50년대 일본의 농촌생활을 묘사한 작품의 디테일은 역시 미야자키답게 명불허전이다. 상당히 세심한 디테일까지 신경을 쓴 결과 도저히 아동용 만화영화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한 느낌이 전달되는 것은 이제까지도 유효한 지브리의 대표적인 스타일이다. 특히, 그 때까지만 해도 주로 유럽의 전원적 정취를 묘사하면서 일부 팬들로부터 백인우월주의자라는 편견을 들어왔던 미야자키가 일본의 전통적인 생활상이 물씬 풍기는 작품을 연출함으로써 그러한 일각의 편견을 일축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연출한 작품 중 일본적 배경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나 '원령공주(1997)'가 역대 극장 아니메 랭킹 1위와 3위에 올라있는 것은 미야자키가 동양적이고 일본적인 가치관의 표현에 있어서도 높은 내공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살던 주인공 소녀가 시골로 이사를 와 신비한 현상을 겪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 전개는 후일 미야자키 최고의 히트작 센과 치히로...와 동일한 스타트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사츠키와 메이, 그리고 잔잔한 극의 분위기는 다소 어둡고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여었던 센과 치히로...에 비해 낙관적이고 유아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삼륜차나 수도 펌프 등은 과거 한국에서도 70년대까지는 볼 수 있었던 것들로, 우리의 역사 중 일부가 일본과 좋지 않은 형태로 얽혀 있던 지난 시절의 잔재를 느낄 수 있다 하겠다. 다만 동시 상영으로 방영되었던 반딧불의 묘가 태평양 전쟁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국내 팬들에게 반일 감정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토토로의 경우는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아이템과 소소한 생활 스타일을 제외하고는 민족주의적 편향이나 왜곡된 역사적 관점을 거의 느낄 수가 없는 소박한 작품이기에 이러한 역사적 유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편이다.

극장에서는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지만 TV 방영시에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기록했다. 방송 때마다 시청률은 20% 안팎을 기록할 정도로, 이는 전작인 라퓨타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일어났던 현상이기도 하다. 토토로의 봉제인형도 큰 인기를 끌어 1991년 당시 판매 개수는 약 210만개에 이르기도 했는데([1], [3] 참조) 이는 지브리의 캐릭터가 시장에서 통한 최초의 사례로, 토토로에 이르러 캐릭터 사업이 지브리의 고정적인 수입원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비디오나 DVD로도 쾌조의 순항을 지속하였으며, 모 공원에서는 작품에 등장하였던 사츠키와 메이의 시골집이 실제로 재현되기에까지 이른다. 명실공히 지브리와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평단의 찬사도 줄을 이었다 방영해인 1988년 일본의 저명한 영화잡지 키네마준보 베스트 10에서 일본영화 베스트 10 1위를 차지했으며, 독자선정 일본 영화 베스트 1위, 독자선정 일본영화 감독상 등 그해의 일본 실사영화들을 모두 제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또한 마이니치 영화콩쿨 일본영화 대상, 제6회 일본 애니메이션 대상·아톰상 최우수 작품상/각본부분 최우수상/미술부문 최우수상/주제가부문최우수상, 제20회 성운상 미디어부분 수상 등 수상경력 역시 화려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계속적인 극장흥행 부진은 지브리와 미야자키의 불안요인이기도 했다. 나우시카를 통해 뭔가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건만 흥행은 계속 저조한 상황에 흐르고 있었고, 지브리에게는 무언가 결정적으로 큰 한방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 二馬力 · 徳間書店


<참고 사이트>

[1] となりのトトロ, Wikipedia Japan
[2] となりのトトロ, allcinema.net
[3] 이웃집 토토로, 위키피디아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二馬力 · 徳間書店에게 있습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