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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T Disney


<스탭>

◈ 감독/각본: 크리스 벅(Chris Buck), 제니퍼 리(Jennifer Lee)
◈ 원작: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 제작 총지휘: 존 라세터(John Lasseter)
◈ 제작: 월트 디즈니 픽쳐스/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줄거리> 

아렌델 왕국의 첫째 공주 엘사는 태어났을 때부터 눈과 얼음을 다룰 수 있는 신비한 마법을 쓸 수 있다. 마법을 이용하여 동생인 둘째 공주 안나와 함께 눈 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타며 즐겁게 보내던 어느날 밤, 그만 실수로 엘사의 마법이 안나를 다치게 하고 만다.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안나를 구하기 위해 왕과 왕비는 숲속의 요정들인 트롤을 찾아나서게 되고, 안나를 고쳐주며 트롤은 왕에게 주의를 준다, 심장이 얼었다면 안나를 고칠 수 없었다며, 엘사가 마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 조심하라고.

엘사 공주의 마법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왕은 궁 안의 시종 수를 줄이고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뒤 엘사를 칩거시킨다. 심지어 안나마저도 엘사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리자, 트롤들에 의해 언니의 마법에 대한 기억이 지워져 버린 안나는 갑자기 자신을 멀리하고 혼자 지내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

그렇게 세월이 흘러,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나고 엘사가 여왕에 등극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마침내 닫혀있던 아렌델의 성문이 열리고,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들떠 하는 안나와 달리 아직도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엘사는 이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하다. 엘사는 대관식을 무사히 마치고 여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그리고 안나는 그토록 바라던 운명의 사랑을 만나 답답한 아렌델을 떠날 수 있을까.


라푼젤의 뒤를 잇는 디즈니 스타일의 화려한 귀환

'어공주(1989)'를 시작으로 전세계를 강타했던 디즈니의 르네상스는 '라이온 킹(1994)'에서 정점을 찍은 뒤, '포카혼타스(1995)'부터 서서히 사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디즈니 르네상스의 쇠락과 함께 픽사가 선보인 3D 애니메이션은 점점 그 입지를 굳혀가 21세기부터는 픽사와 드림웍스의 투톱으로 디즈니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버리고 말았죠. 2006년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디즈니=픽사'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화영화 팬들에게는 이제 디즈니 스타일은 과거이고, 픽사가 창조해 낸 스타일이 현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3D 애니메이션이 전세계적인 추세가 되기는 했지만, 사실 3D가 셀 애니메이션이 가진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는 디즈니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일본산 셀 애니메이션의 것이 되지요. 물론 이들조차 디즈니가 해외배급을 맡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 승자는 디즈니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디즈니가 보여주었던 그들만의 만화영화는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디즈니의 르네상스를 화려하게 열었던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과거의 전설로만 사람들에게 회자되어집니다.

'겨울왕국(2013)'은 과거 디즈니 만화영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성공적인 부활을 알린 작품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에 있어 인어공주와 버금가는 위치에 오를만한 작품인 셈이죠. 오히려 근래의 폭발적인 흥행열풍은 인어공주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실제 겨울왕국의 흥행성적은 라이온 킹에 이어 역대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2위로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지요. 그렇다면 과연 이 만화영화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명작일까요?

사실, 디즈니가 '타잔(1999)' 이후로 한동안 봉인시켜왔던 디즈니 스타일의 부활을 시도한 것은 겨울왕국이 처음은 아닙니다. 인어공주의 두 감독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를 기용하여 '공주와 개구리(2009)'를 제작한 것이 첫 번째 시도였었죠. 한국에서의 흥행은 신통치 않았지만, 공주와 개구리는 영미권에서 꽤 인상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흑인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참신함이 돋보이는 이 작품에 하나의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트렌드에서 벗어난 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는 정도일까요. 하지만, 디즈니는 이 작품에서 디즈니 스타일이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듯 합니다. 그리고, '라푼젤(2010)'로 다시 한 번 그 가능성을 타진하게 되지요.

사실, 라푼젤은 가능성을 타진했다기 보다는 디즈니가 승부수를 띄운 작품입니다. 2억6천만 달러의 제작비(디즈니 만화영화는 '노틀담의 꼽추(1996)'에서 처음으로 1억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투입합니다)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디즈니 역사상 기록적인 제작비였었죠. 주목할 것은 라푼젤이 디즈니의 장점인 뮤지컬 애니메이션과 픽사가 발전시켜온 3D 애니메이션을 조합한 작품이었다는 점입니다. 픽사의 수장 존 라세터가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라푼젤은 비로서 디즈니와 픽사의 장점을 제대로 융합해 냅니다. 그것은 존 라세터가 프로듀싱한 이번 겨울왕국도 마찬가지죠.


겨울왕국은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을 통해 자신들의 스타일, 그리고 만화영화 팬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조합점을 찾아낸 디즈니의 최종(?)결과물인 셈입니다. 3D 애니메이션이라는 트렌드를 가져오되, 디즈니가 선보였던 셀 애니메이션의 서정성을 살릴 수 있는 세심한 터치가 이루어졌으며, 뮤지컬 애니메이션과 코미디의 환상적인 조합이 특징인 과거 디즈니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죠. 핵심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트렌드에 맞는 세련된 스타일을 가미한 이 방식은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겨울왕국의 흥행돌풍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오히려 개봉 시기와 음악에 더 공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겨울왕국의 이야기는 공주와 개구리나 라푼젤에 비해서 단선적이라 다소 싱거운 느낌입니다. 무언가 얘기가 진행되는 듯 하더니 그대로 결말에 이르렀다고나 할까요. 눈사람 올라프는 인어공주의 세바스찬이나 알라딘의 지니와 같은 디즈니의 대표적인 감초 캐릭터의 뒤를 이을만큼 인상적이지만, 트롤과 같은 다른 캐릭터들의 활용은 다소 아쉽습니다. 캐릭터들도 엄밀히 말해 이제가지의 디즈니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캐릭터의 입체감보다는 캐릭터들이 이끌어내는 이야기의 방향성이 이제까지 디즈니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기 때문입니다. 언니와의 행복한 시간을 그리워하는 안나는 이제까지 디즈니의 여주인공처럼 밝고 건강하며 사랑스럽지만, 남자에게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나아가려 하지요. 언니인 엘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강대한 마력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워하는 소심한 여인이면서도 얼음궁전을 만들어낼 때는 누구보다 진취적이고 강렬한 매력을 뿜어내지요. 겨울왕국은 이 두 자매의 매력과 가족애가 멋진 앙상블을 보여줍니다.

압도적인 얼음궁전의 위용과 함께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엘사의 'Let it Go'로 대표되는 겨울왕국의 OST는 마치 마법과 같이 영화팬들을 스크린으로 빨려들게 합니다. 초반부에 나오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엘사의 이 씬은 겨울왕국 중 가장 인상적이기까지 하지요. 오리지널판의 엘사역을 맡은 이디나 멘젤의 음색도 훌륭하지만, 한국어 더빙판에서 엘사의 노래파트를 맡은 뮤지컬 배우 박혜나의 목소리도 이에 견줄만 합니다. 디즈니 측의 철저한 시스템 덕에 검증된 성우들이 기용되어 겨울왕국의 더빙판은 오리지널판 못지 않게 훌륭합니다.

크리스마스, 연말과 어우러진 개봉 역시 흥행에 큰 일조를 하지 않았나 합니다. 실제로 북미에서 11월에 개봉한 겨울왕국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특수를 등에 업고 다시금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르게 되지요. 한국에서는 늦게 개봉한 것이 오히려 여타 경쟁작들을 피하는 결과를 가져와 흥행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나 하는 예상도 되구요. 결국 이런 안팎의 요소들이 겨울왕국의 기록적인 흥행에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때를 잘만난 셈이죠.

겨울왕국은 디즈니를 대표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성공적인 부활을 알렸다는 점만으르도 디즈니 만화영화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 구성이 조금만 더 밀도가 있었다면 좋았을테지만, 사랑스러운 엘사와 안나로 대표되는 캐릭터들을 3D로 성공적으로 이식한 점이나 가슴을 울리는 OST 등 겨울왕국이 보여준 여러가지 클리셰들은 과거 디즈니의 전성기를 연상시킬만큼 인상적입니다. 물론, 이 성공으로 디즈니가 두번째 르네상스에 접어들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앞으로도 계속 제작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것은 사실입니다. 겨울왕국은 디즈니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 오랜만의 작품입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LT Disney에게 있습니다.



겨울왕국 (2014)

Frozen 
8.4
감독
크리스 벅, 제니퍼 리
출연
박지윤, 소연, 박혜나, 최원형, 윤승욱
정보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가족 | 미국 | 108 분 | 2014-01-16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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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는 TV 시리즈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야마토.

ⓒ 宇宙戦艦ヤマト2199 製作委員会



2009년과 2010년, 각각 극장 아니메와 실사판 극장영화로 화려하게 부활을 시도한 니시자키 요시노부(西崎義展) ·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우주전함 야마토'. 생각보다는 그리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두면서 2부작으로 기획되었던 극장 아니메는 후속편 제작이 불투명해졌고, 원작자이자 프로듀서였던 희대의 풍운아 니시자키 요시노부가 자신의 배 '야마토'에서 실족사하면서 2010년을 마지막으로 야마토의 시계는 멈춰지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 이 오래된 구식 우주전함은 다시 한 번 새로운 승무원들과 함께 우주로 향하는 또다른 항해에 오르게 되니 '우주전함 야마토 2199(2012)'가 바로 그것입니다.

☞ 야마토 2199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새로운 항해라 하지만, 야마토 2199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스토리는 74년 TV 시리즈를 다시 리메이크한 것인데요. 이는 키무라 타쿠야 주연의 2010년 실사영화와 동일한 전개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보다 늦게 개봉했지만 실제 이 야마토 2199는 이미 수차례의 제작시도를 거쳐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기획이 진행되어 왔다고 합니다. 원작자인 니시자키와 원작 만화가인 레이지의 길고긴 법정 다툼 끝에 2009년 극장판 부활편은 니시자키가 레이지와 그의 캐릭터 디자인을 모조리 들어내고 새로운 캐릭터로 승부를 걸었었는데요. 그렇다면 이 새로운 TV 시리즈는 아마도 니시자키가 아닌 레이지의 영향 하에서 진행되었던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야마토 2199에 그의 캐릭터 디자인이 베이스가 된 걸 보면 말이죠)

캐릭터 디자인은 레이지의 캐릭터 디자인을 계승하기는 했지만 상당히 현대적인 컨셉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다만, 시리즈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오키타 쥬죠 함장의 경우는 원안 거의 그대로 그려지고 있구요. 이 밖에도 기관장인 토쿠가와, 군의관인 사도 선생과 같은 인물들도 원안에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묘하게도 나이를 먹은 중장년급 캐릭터들은 원안 그대로, 신세대라 할 수 있는 청년 캐릭터들은 새로운 터치로 그려지면서 신구세대 간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드팬들을 위해서 오키타 함장과 같은 캐릭터는 원안을 그대로 유지하되 신세대 팬들을 위해서 청년 캐릭터들은 요즘 추세에 맞는 터치로 그렸다고 봐야겠지요. 특히, 모리 유키 외에는 전부 남성으로 채워졌던 야마토의 남성중심적 세계관이 신 TV 시리즈에서는 변화를 맞이하여 유키 외에도 무려 4명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게 되는데요. 이는 근래의 미소녀 위주의 아니메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제작사가 XEBEC과 AIC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럴 것이라는 예상도 되구요)

캐릭터 디자인은 이미 '우주해적 캡틴 하록 Endless Odyssey(2003)'에서 레이지의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재해석한 유키 노부테루(結城信輝)가 맡았는데요. 그 때와 달리 이번에는 레이지의 느낌보다는 좀 더 요즘의 취향에 맞추려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기획 단계에 그런 식의 주문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만, 그로 인해 특색은 사라진 다소 밋밋한 캐릭터가 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까지 유키의 필모그라피와 비교하면 그다지 인상적인 느낌이 아닙니다만, 그래도 유키가 그려서 이 정도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다만 안타깝게도 실제 아니메에서는 작화감독이 다른 이유로 유키의 스타일이 그나마 더 반감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감독을 맡은 이즈부치 유타카(出渕裕)는 아시다시피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1988)' '기동경찰 패트레이버(1988)' 등으로 잘 알려진 일류 메카닉 디자이너입니다. 그는 이미 '라제폰(2002)'으로 제법 인상적인 연출 데뷔를 한 적이 있지요. 위키 재팬에 따르면 감독으로 추천받은 그는 자신보다는 안노 히데아키(이즈부치나 안노 모두 야마토의 열혈팬)를 감독으로 앉히고 자신은 그를 보조하는 역할로 머물기를 원했습니다만, 때마침 시작된 에반게리온 극장판 프로젝트 때문에 결국은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합니다. 그는 총감독으로서 시리즈 구성과 메카닉 디자인에도 관여했는데요. 스토리보드와 연출 쪽은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2007)', '투러브루(2008)' 등에서 연출 스탭으로 활약한 에노모토 아키히로(榎本明弘)나 가이낙스 출신으로 특촬물과 실사영화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히구치 신지(樋口真嗣) 등이 이즈부치를 보좌하고 있습니다. 

메카닉 디자인은 이즈부치 외에도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 '카우보이 비밥(1998)' 등으로 유명한 야마네 키미토시(山根公利)가 참여하고 있으며, '기동전사 Z 건담(1985)', '기동전사 ZZ 건담(1986)'의 메카닉 디자이너 였던 코바야시 마코토(小林誠)와 사야마 요시노리(佐山善則)도  디자인 스탭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함대전은 3D로 연출되고 있는데, 이 3D는 '기동전사 건담 MS IGLOO(2004)'를 연출했던 이마니시 타카시(今西隆志)가 담당하고 있군요. 음악은 오리지널 야마토의 음악을 맡았던 미야가와 히로시의 아들 미야가와 아키라(宮川彬良). 보시다시피 주요 스탭진의 면모는 꽤 비중있는 편입니다만, 이들 대부분이 야마토를 보고 자란 아니메 1세대에 해당하는 인물임을 볼 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완벽히 새로운 세대에 의해 야마토가 다시 부활하는 셈인 것이죠. 아, 주제가 만큼은 사사키 이사오(ささきいさお)가 그대로 불러주시는군요. 하긴 일본의 올드팬들에게 이 부분은 꽤 크리티컬 부분일지도.

아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토의 구시대적인 내러티브는 야마토 2199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군국주의의 상징적 골동품 같은 야마토야 그렇다치더라도 민족주의적 정서가 깊게 베인 시놉시스, 과도한 비장미, 시대를 벗어난 장렬함, 카미카제식 희생에 대한 미화 등, 야마토가 간직하고 있는 부정적인 정서들은 사실 글로벌한 감성과는 거리가 멀 뿐더러 일본의 신시대들에게도 그다지 먹히지 않는 테마입니다. 과연 이러한 고정관념을 야마토가 얼마나 극복해낼지는 미지수, 아니 부정적으로 보이는군요. 오리지널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면서 원작이 내포하고 있던 몇가지 모순점을 조정하고 스토리 템포를 변화시킨 것이 이번 야마토 2199의 큰 구성이기에 이러한 예상은 거의 틀리지 않을 듯 합니다. (실사판 야마토에서 보여준 전혀 공감되지 않는 비장미가 아니메에서는 그나마 덜 거슬리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좋아질 것 같지도 않을 듯)

야마토 2199는 3화까지를 극장을 통해 선행방송 형태로 상영한 후, 2013년부터 TV 시리즈로 방영을 한다고 합니다. 1화가 이미 4월에 개봉을 했고, 5월에 블루레이와 DVD로 릴리즈가 되었지요. 2화는 6월 30일에 개봉예정에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2008년 극장 아니메에 비해서는 나아진 모습으로 평가도 좋은 듯 싶은데요. 근래 들어 다시금 시작되는 아니메 마스터피스들의 부활 프로젝트가 일견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소재 고갈로 인해 한계에 다다른 아니메의 현실을 대변하는 듯도 합니다. 야마토가 부활을 했고, 건담도 부활 예정이니 다음에는 또 어떤 마스터피스가 부활 티켓을 예매할지 기대가 되는군요.

☞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보러가기)

ⓒ 宇宙戦艦ヤマト2199 製作委員会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宇宙戦艦ヤマト2199 製作委員会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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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 이후 12년... 오키우라 히로유키의 두번째 연출작.

ⓒ 2012『ももへの手紙』製作委員会



'랑(2000)'을 통해 극사실적인 작화와 스토리를 선보이며, 일약 오시이 마모루의 후계자로 일컬어지던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 인랑 이후 본업인 원화 쪽에 전념(이 기간 중 그가 연출한 씬은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2001)'의 인상적인 오프닝 영상 밖에 없었음)하던 그가 무려 12년 만에 다시 연출자로서 우리들 앞에 다시 섰습니다. 시골로 이사온 도시손녀와 사고뭉치 요괴 3인방의 이야기를 그린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모모에게 온 편지, 2012)'가 바로 그 작품입니다.

☞ 모모에게 온 편지 공식 사이트(바로가기)

도시소녀와 요괴와의 만남이라... 굳이 아니메 팬이 아니더라도 이 시놉시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1988)'와 꽤나 비슷함을 느끼실 겁니다. 이는 이 작품 역시 포스트 미야자키를 노리는 근 몇년 간의 작품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포스터나 트레일러의 영상을 보면 이러한 추측은 더더욱 사실로 굳어지는데요. 정감어린 인물묘사와 사실적이고 서정적인 배경 등 이 영화 곳곳에서는 미야자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잔상이 깊게 베여져 있습니다.

☞ 한국어판 트레일러, 네이버 영화 (보러가기)

이러한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게 하는 것은 이 작품에서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은 안도 마사시(安藤雅司)가 스튜디오 지브리 출신의 애니메이터이기 때문입니다. 'On Your Mark(1995)', '원령공주(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등 미야자키의 대표작에서 작화감독을 맡아온 안도 마사시는 2003년 부터는 프리랜서로 독립하여 콘 사토시 감독의 '동경대부(2003)',  '망상대리인(2004)', '파프리카(2006)'에서도 작화감독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오키우라 감독과는 망상대리인에서 서로 작업을 한 적이 있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의 스타일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감성적인 캐릭터와 매드하우스 계열의 극화적인 인물 묘사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배경미술 감독인 오오노 코지(大野広司) 역시 아니메 미술계의 거장 고바야시 시치로의 제자로서 '마녀배달부 키키(1989)'를 통해 스튜디오 지브리와 작업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AKIRA(1988)', 인랑 등 뛰어난 미술 디자인을 선보인 일련의 아니메 마스터피스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미술감독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스탭들 덕분에 모모에게 온 편지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면모와 매드하우스나 프로덕션 I.G 계열의 작품들이 선보이는 극사실적인 스타일을 공유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오키우라 히로유키는 본 작품에서 감독 뿐만 아니라 원안, 각본, 스토리보드에 캐릭터 디자인에까지 참여하는 등 원맨쇼를 펼치고 있는데 오키우라의 이러한 다방면성은 미야자키 감독과 같은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반면, 그의 첫 작품인 인랑과는 너무 다른 작품의 분위기로 인해 과연 이 오키우라가 그 오키우라가 맞는가 싶은 의구심도 들 수가 있는데요. 사실, 인랑의 경우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오시이가 직접 각본을 쓰고 이를 오키우라가 연출한 케이스로, 그나마도 더 어둡고 메마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던 인랑에 남녀간의 멜로라인이 베이스로 깔린 것은 오키우라의 영향이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키우라의 첫 데뷔작이긴 했지만, 인랑은 오시이의 영향이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오시이표 아니메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은 포스트 미야자키를 노리는 제작의도도 있겠지만, 오키우라 감독의 성향에 좀 더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반드시 미야자키와 같은 스타일(오히려 이 스타일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의 호소다 마모루가 더 어울릴 듯)은 아니겠지만, 오키우라의 극화적인 감성은 오시이와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어쩌면 매드하우스 계열의 극화적인 작품 내지는, 다카하타 이사오 적인 감성에 좀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콘 사토시라는 거장을 잃은 일본 아니메계에 있어서 오키우라의 재등장은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몹시 반갑습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그가 좀 더 적극적으로 연출계에 뛰어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네요.

다만, 몹시도 토토로스러운 본 작품이 얼마나 다른 차별점을 보여줄지는 두고 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완성도 높은 영상미는 크게 나무랄 데가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그것이 작품의 완성도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겠지요. 또한 오키우라의 진정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본 작품의 성공여하에 따라 오키우라의 차기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한국에서는 다음 달인 7월 5일 개봉 예정에 있는데요.(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작으로도 공개된 바 있지요.) 이제까지 그랬듯 전문 성우보다는 인기 개그맨들을 캐스팅하여 더빙했습니다. 요괴들의 목소리를 맡은 김준현, 양상국, 안윤상의 목소리가 생각보다는 작품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네요.(게다가 외모까지 비슷. 이거 설마 노리고 한 것?) 모모 역을 맡은 일본의 배우 미야마 카렌은 과거 한국 드라마 '아이리스(2009)'에 출연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아이유 같은 느낌(?)의 소녀네요.

ⓒ 2012『ももへの手紙』製作委員会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2『ももへの手紙』製作委員会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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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izzard Entertainment


피터 정의 다이나믹한 콘티가 인상적인 디아블로의 과거 이야기

과 6일 앞으로 다가온 디아블로 3 서비스 시작에 앞서 5월 9일, 디아블로 3의 세계관을 담은 한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블리자드에 의해 공개되었습니다. 한국계 애니메이터로 미국에서 이름 높은 피터 정이 감독과 스토리보드를 맡은 이 단편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Wrath(분노)'. 태초에 인간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 천사와 악마들의 전쟁에서 일어났던 한 에피소드를 다룬 일종의 디아블로 프리퀄입니다.

디아블로의 세계관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기에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디아블로의 세상에서는 태초에 세계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아누(Anu)라는 존재와 그에게서 분리된 사악함이 실체화된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용 타타멧(Thathamet)이 있다고 합니다. 그 둘은 결국 영원한 싸움을 계속했고, 마지막 싸움에서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면서 세상이 태어나게 됩니다. 아누의 부서진 몸에서 새로운 세상과 천사들이 태어나고, 파괴된 타챠메트의 몸에서는 악마와 괴물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이때부터 다시 천사와 악마들의 끝없는 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디아블로 세계에서 '영원한 분쟁(Eternal Conflict)'이라 불리는 전쟁입니다.

아누의 몸에서 태어난 천사들 중 가장 명성높은 다섯의 천사들, 즉 용기의 임페리우스(Imperius), 정의의 티리엘(Tyrael), 희망의 아우리엘(Auriel), 지혜의 말티엘(Malthael), 운명의 이테리엘(Itherael)과 조언자 이나리우스(Inarius)로 구성된 앙기리스 의회가 천상을 이끌게 되고, 타챠메트의 일곱 머리에서 태어난 7대 악마들, 즉 증오의 메피스토(Mephisto), 파괴의 바알(Baal), 공포의 디아블로(Diablo), 죄악의 아즈모단(Azmodan), 거짓의 벨리알(Belial), 고통의 두리엘(Duriel), 고뇌의 안다리엘(Andariel)이 악마들의 군주로 군림하게 됩니다.(7대 악마 군주는 최신 설정에서 바뀐 부분입니다) 이들 여섯천사들과 일곱악마들이 이끄는 천사와 악마들의 전쟁이 디아블로 세계관의 서장이 되겠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단편 애니메이션 분노는 이들이 벌이는 영원한 분쟁 중에 벌어진 에피소드로 보여집니다. 이는 이제까지 디아블로 세계관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에피소드로 추측되는데, 이번에 공개된 정황으로 보아 디아블로 3의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게 될 일종의 복선이 아닌가 싶네요. 애니메이션은 디아블로의 본거지로 다섯 천사들이 이끄는 천사대군이 쳐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디아블로가 인간계가 아닌 자신의 본거지에 있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것이 영원한 분쟁 중에 벌어진 일임을 짐작케 합니다(물론, 데커드 케인이 영상의 서두에서 지나가듯 그런 언급을 합니다만). 그렇다면, 인간계와 인간이 아직 세상에 등장하기 이전의 이야기인 셈이죠. 엔딩의 장면으로 미루어보아 이는 디아블로 2에서 플레이어들에게 파괴된 디아블로의 귀환과 임페리우스에 얽힌 비밀을 위한 단서가 되리라 예상됩니다.


ⓒ Blizzard Entertainment


다이나믹하고 박진감 넘치게 펼쳐지는 천사와 악마들의 전쟁씬은 피터 정이 직접 스토리보드로 그려낸 결과물입니다. 비록 작화 퀄리티가 최상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A급 대작 애니메이션이 아닌, 프로모션용 서비스 애니메이션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볼만하고 멋진 영상미를 선보이고 있죠. 다만, 디아블로나 일부 악마들의 디테일이 실제 게임 상의 아트웍에 비해 단순화되면서 그로테스크함이나 공포스러움이 상쇄된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이는 리소스의 한계상 작화 상의 부담을 줄여야 하는 제작 여건상의 문제로 보입니다. 즉, 못그려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분노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는 디아블로의 세계관 총괄담당하고 있는 블리자드의 크리스 멧젠(Chris Metzen) 부사장과 블리자드의 수석 스토리 개발자인 제임스 와흐(James Waugh)가 담당했습니다. 디아블로 세계관과의 연계는 무리가 없는 셈이죠. 캐릭터 디자인은 감독인 피터 정과 함께 한국 애니메이터인 원성구씨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원성구 씨는 '알렉산더(1998)', '애니매트릭스(2003)'에서 피터 정과 함께 작업을 한 경력이 있으며, '누들누드(1997)', '원더풀 데이즈(1999)', '아치와 씨팍(2002)' 등에서 레이아웃, 캐릭터 디자인 등을 맡아온 베테랑 애니메이터입니다.

☞ 정글 매거진에 소개된 원성구씨 프로필 (바로가기)

원성구 씨 외에도 DNA 프로덕션과 스튜디오 고인돌이 참여하는 등, 한국 스탭 등이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컨셉 디자인과 아트웍은 블리자드의 스탭들이 담당하거나 이미 그려낸 것들을 사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피터 정과 원성구 애니메이터 등이 콘티와 디자인을 완성한 뒤,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작화를 그리고, 음향과 더빙, 음악을 미국 스탭들이 입히는 형태로 애니메이션이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군요. 한미 합작 작품이라고 불러야 겠습니다.

게임 상에 등장하는 시네마틱 트레일러도 그렇고, 이번 단편 애니메이션도 그렇고, 블리자드의 컨텐츠들은 한편의 이야기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영화화가 이야기되어왔던 워크래프트(그런데 도대체 언제 등장할런지...)와 함께 이번 분노를 통해 디아블로도 영상 컨텐츠로 매력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증명한 셈인데요. 과연 디아블로는 영상화의 가능성이 있을까요. 이번 피터 정의 참여로 인해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추가로 보여준 셈입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Blizzard Entertainment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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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SF 아니메의 한획을 그었던 거장에게 조의를 표하며...


'주전함 야마토' 시리즈에서 연출과 작화감독을 맡은 후,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 '초시공세기 오거스(1983)', '메가존 23 Part I,II(1985,1986)', '은하영웅전설(1988)' 등 아니메 역사의 한획을 그어왔던 굵직한 SF 대작을 연출해온 이시구로 노보루씨가 2012년 3월 20일 타계했습니다. 항년 73세.

☞ 아사히 신문의 부고 기사 (보러가기)
☞ Anime News Network의 기사 (보러가기)

'철완 아톰(1963)'에서 원화를 담당한 후 '괴물군(1968)'을 통해 연출가의 수업을 쌓아온 그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프로듀서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눈에 들게 되어 마츠모토 레이지를 보좌하여 야마토 시리즈의 연출가, 작화감독, 테크니컬 디렉터 등으로 맹활약 하게 됩니다. 야마토를 제작하면서 쌓아온 다양한 경험은 후일 신참 애니메이터들이 주축을 이룬 마크로스의 제작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겠습니다. 70년대를 대표하는 SF 명작 아니메와 80년대를 대표하는 SF 명작 아니메 모두가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인 셈입니다.


애니메이터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데, 야마토 시리즈에서 보여준 우주공간에서의 폭발효과는 그가 창조해낸 것으로 통칭 '불가사리 효과'로 불리며 이시구로 감독만의 전매효과로 자리잡게 됩니다. SF 지식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그이기에 단순한 작화에 그치지 않고 테크니컬 디렉터라는 직함으로 작품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작사 아트랜드를 설립하여 직접 제작에도 손을 대는 등 연출, 작화, 제작 등 다방면에서 훌륭한 역량을 보여준 명감독이었지요.

최근까지도 활발할 활동을 보여온 아니메 1세대 노장의 죽음은 이제 일본 만화영화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시구로 노보루의 대표작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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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ive Studio, EBS, Dream Seach C&C


<스탭>

◈ 감독: 한상호
◈ 각본: 이용규, 한상호
◈ 제작: (주)올리브 스튜디오, (주)드림써치 C&C


<시놉시스> 

타르보사우르스 가족의 막내로 태어난 점박이. 엄마와 형, 그리고 누나 둘을 가족으로 둔 점박이는 든든한 가족들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서 큰 상처를 입고 쫓겨난 티라노사우르스 애꾸눈이 그들의 뒤를 노리고 있었으니... 점박이가 첫 사냥을 나서던 그날, 애꾸눈의 갑작스런 습격으로 점박이의 가족은 점박이만을 남겨놓은 체 모두 세상을 뜨고 만다. 아직 어린 공룡 점박이는 이제 혼자서 약육강식의 공룡세계를 헤쳐나가야만 하는데...


세계수준의 3D CG 애니메이션이 돋보인 에듀테인먼트

2008년 EBS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을 토대로 극장용 CG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된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이하 점박이)'를 이번 월요일 시사회를 통하여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이웃 블로거이시자 본 작품의 프로듀서로 참여하신 캅셀(송락현)님께서 잊지 않고 불러주시는 덕에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 캅셀님께 먼저 격려의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영화만 보고 냅다 집으로 돌아가서 죄송해요. ^^;)

☞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 한국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도전 by 캅셀 (보러가기)

방송으로 보셨던 분들이면 아시겠지만, 당시 EBS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은 TV 다큐멘터리로서는 꽤 높은 수준의 CG로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물론, 리소스 투입대비라는 수식어가 선행되어야 겠지만, 헐리우드의 각종 CG 영화로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는 성에 안찰지는 몰라도 한반도의 공룡은 비주얼에서 분명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완성도 만큼 중요한 것은 시도인데요. 당장 눈에 차지 않는 완성도라고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발전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뛰어난 작품도 한 번에 나오지는 않지요. 여러번의 시도와 도전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분명 한반도의 공룡은 의미있는 시도이자 결과물이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번 점박이는 EBS 다큐멘터리의 완성도보다 한차원 높아진 영상미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어설픈 헐리우드 3D 실사 영화보다 나은 입체감을 보여주더군요. 링크를 건 캅셀님의 포스트에서도 언급이 되어 있지만, 지금의 기술수준에서는 실사 영화보다 애니메이션 쪽이 훨씬 더 완성도 높은 3D 영상미를 보여줄 수 있기에, 그런 점에서 확실히 점박이의 3D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물론 100점 만점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대 이하라든지 평균 이하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뉴질랜드 로케를 통해 촬영한 멋진 배경들도 큰 몫을 한 듯 싶구요. 이 때문에 한반도의 공룡에서는 CG라는 것이 눈에 확 띄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점박이는 배경과 크리쳐가 하나의 장면으로서 잘 융화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예고편의 영상을 보았을 때는 조금 우려스러웠습니다. 배경과 크리쳐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주었거든요. 하지만 실제 극장에서 접한 점박이는 예고편의 느낌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습니다. 공룡의 피부 질감은 꽤나 훌륭하여 공룡 CG만 놓고 볼 때는 거의 월드 클래스 수준이 아닌가 싶네요. 공룡들의 움직임도 매우 자연스러워 실사같은 느낌을 줍니다. CG는 올리브 스튜디오가 맡았는데요. 올리브 스튜디오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냉장고 나라 코코몽'으로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제작 스튜디오이기도 합니다. 

점박이는 애꾸눈 티라노사우르스에게서 가족을 잃은 타르보사우르스 점박이가 역경을 헤치고 성장하여 가족들을 지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어떤 면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는데요. 다만, 다큐멘터리 연출가 출신인 한상호 감독의 성향 탓인지 영화의 흐름은 전반적으로 다큐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공식보도자료에서도 언급된 '에듀테인먼트'라는 작품의 방향성 때문일 수도 있겠는데요. 물론, 다큐와 영화를 혼합한 다른 작품(예를 들면 장 쟈크 아노 감독의 '베어(1988)'와 같은...)들을 연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무언가 에피소드 단위로 영화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그닥 원활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점박이가 홀로 되는 초반부부터 점박이의 성장을 다루는 중반부까지의 흐름은 다소 몰입감이 떨어지지 않나 싶군요.

이는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진 아기공룡이 늠름하게 성장한다는 본작의 시놉시스가 이미 많은 작품에서 다루어졌던 상투적인 소재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바꿔 말하면 이제는 꽤나 흔해진 이 테마를 좀 더 몰입감 있는 이야기로 구성해내지 못한 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구요. 또한 이는 다큐적인 속성을 갖는 점박이의 정체성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는 구성 상의 문제가 극의 몰입을 방해하면서 생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야기가 종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을 회복한다는 점입니다. 이야기의 흡입력은 다소 약했지만, 기승전결은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확실히 이야기했다고 생각됩니다.

ⓒ Olive Studio, EBS, Dream Seach C&C

한마디로 점박이는 다소 정직한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종반부에 펼쳐지는 애꾸눈과 점박이의 사투는 피터 잭슨의 '킹콩(2005)'과는 비슷한 수준의 CG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나 액션 씨퀀스에서 다소 밋밋함이 느껴지는데요. 물론, 현실적인 공룡들의 싸움이라는 점에서는 점박이 쪽이 훨씬 이를 잘 지켜낸 작품이긴 합니다. 다만 킹콩에서 보여진 킹콩과 티라노사우르스의 허무맹랑한 대결 같은 장면을 극적인 효과를 위해 점박이에서도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비슷한 공룡영화 '쥬라기 공원' 시리즈와 비교하면 확실히 이 영화의 다큐적인 취향이 도드라집니다. 한마디로 긴장감이나 스릴이 부족한 것인데요. 물론, 이를 위해 이야기를 과장스럽게 그려내는 것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관객들에게 좀 더 어필하기 위한 차원에서 약간의 변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정직함은 점박이의 장점이자 단점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박이의 라스트는 제법 스펙터클하고 스릴이 있습니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점박이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집에 있는 4살짜리 아들이 생각나더군요.(아들한테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아서 시사회에 데리고 오지는 않았습니다만) 시사회 직전 한상호 감독이 가족애를 되새기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분명 이 작품은 가족애를 테마로 한 괜찮은 입체 애니메이션이었다 생각됩니다. 가족단위 영화로 점박이는 제법 괜찮은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Olive Studio, EBS, Dream Seach C&C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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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야마 켄지의 사이보그 009가 기대되는 이유

ⓒ Production I.G / ⓒ ISHIMORI PRODUCTION INC


년 이맘때쯤 2010 CEATEC Japana 쇼의 파나소닉 부스에서 오시이 마모루의 사이보그 009 프로모션 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오시이 감독의 사이보그 009를 위한 일종의 프로모션 영상이 아닌가하는 기대를 갖기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 파나소닉 프로모션용 영상에 불과했었는데요.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사이보그 009의 최신 시리즈가 아니메 팬들에게 전모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공각기동대 SAC' TV 시리즈와 '정령의 수호자(2007)', '동쪽의 에덴(2009)' 시리즈를 통해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카미야마 켄지(神山健治) 감독의 '009 RE: CYBORG(2012)'가 바로 그것.

☞ 부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사이보그 009 3D (바로가기)

2012년 가을에 극장 아니메로 개봉 예정인 신작 사이보그 009는 2001년 TV 시리즈로 제작된 '사이보그 009 The Cyborg Soldier(2001)' 이후로 11년만의 작품이며, 동시에 '사이보그 009 초은하전설(1980)' 이후로는 32년만의 사이보그 009 시리즈의 극장 아니메가 되겠습니다. 일본 히어로물과 전대물의 방향성을 제시한 이 작품이 세월을 뛰어넘어 새로운 감성으로 리메이크 되는 모습은 올드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벅찬 감동과 추억을 느끼게 하는 기회가 될 듯 싶군요.

☞ 만화영화 연대기: 사이보그 009 시리즈 (1966~2001) (바로가기)

뭐랄까,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 시리즈를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뉘앙스로 재해석했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1995)'와 달리, 범죄수사물과 블레이드 런너 스타일의 싸이버펑크 장르를 적절히 혼합하여 인상적인 성인용 엔터테인먼트 물로 완벽하게 해석해내었던 카미야마 켄지의 감성이 고전적인 히어로물로서의 정체성이 깊이 배어있는 이번 사이보그 009의 리메이크에서도 크게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고 한다면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요. 그만큼, 켄지 감독에게 거는 기대는 개인적으로 무척 큰 편입니다. 공각기동대 TV 시리즈에서부터 정령의 수호자, 동쪽의 에덴에 이르기까지 켄지 감독은 항상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와 엔터테인먼트의 절묘한 앙상블...이라고 감히 이야기 하고 싶군요.

그렇다면, 이번 사이보그 009에서도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카미야마 켄지만의 스타일, 즉 스토리가 확실히 살아있는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 물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에 저는 긍정적인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공각기동대와 정령의 수호자를 지나 동쪽의 에덴에서 그는 연출가로서의 자질 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질도 범상치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의 (스토리 텔러로서의) 첫번째 도전이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기에 이번 새로운 사이보그 009의 이야기 역시 기대를 가질 수 밖에 없군요. 게다가 인간과 로봇의 경계선에 위치한 사이보그라는 설정은 그가 일류 연출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공각기동대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즉, 이번 사이보그 009는 원작자인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창안해낸 사이보그의 정체성에 켄지 감독이 경험했던 공각기동대의 전뇌화된 사이보그의 개념이 조합된 모습을 취할 것 같은 예감도 든다 하겠습니다. 그가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익숙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창조작업이라면 좀 더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할 법하다는 추측이 드는군요. 

☞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 Production I.G / ⓒ ISHIMORI PRODUCTION INC


이번 작품의 스탭은 그의 전작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요. 우선 캐릭터 디자인은 정령의 수호자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아소 가토우(麻生我等)가 참여하고 있으며, '강철의 연금술사 극장판(2005)'에서 3D 감독을, 그리고,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 시리즈에서 CGI 감독과, CG 감수를 맡았으며, 최신작 '타이거 & 버니(2011)'에서 CG를 맡았던 CG 전문회사 산지겐(삼차원) 출신의 스즈키 다이스케(鈴木大輔)가 작화감독을 맡아 이전과는 다른 켄지 스타일의 CG 아니메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확실히 예고편 영상으로 본 이번 사이보그 009는 켄지 감독의 작품에서 익히 볼 수 있는 극화풍의 캐릭터에 툰 쉐이딩 기법을 연상시키는 CG와 셀 애니메이션의 조화로 인해 기존의 아니메와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타케다 유스케(미술감독), 카와이 켄지(음악 담당) 등 켄지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인물들이 그 뒤를 받쳐주고 있어 비주얼에서만큼은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다만, 꽤나 묵직한 스타일의 실사영화에 가까운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켄지 감독의 화법이 캐주얼한 아니메 팬들에게는 어떤식으로 다가올지가 관건이라 하겠으며, 동시에 그만의 해석으로 전혀 새롭게 그려진 사이보그 009가 올드팬들에게도 어떤 형태로 받아들여질지는 본 작품의 상업적 성공을 좌우하는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동쪽의 에덴의 경우에는 우미노 치카의 샤방샤방한(?) 캐릭터로 인해 켄지 감독의 무거운 화법이 다소 상쇄된 부분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캐릭터에서도 그러한 타협점을 찾기가 힘들어 보이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극화풍의 캐릭터가 나름 맘에 드는 편입니다만, 원작의 사이보그들의 매력을 중요시 하는 분들에게는 과연 잘 먹힐까 궁금한 부분도 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불고 있는 히어로 코믹스의 인기에 못지않게 일본 아니메도 작금의 이슈는 히어로 물인 듯 합니다. 선라이즈는 '타이거 & 버니'와 '세이크리드 세븐'으로 히어로 아니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본즈 또한 '히어로맨'에 이어 '토와노 쿠온'을 선보이며, 그들만의 히어로 아니메를 만들어 나가고 있죠. 여기에 전통의 제작사 매드하우스는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을 아니메 식으로 재해석한 '울버린', '엑스맨', '블레이드' 등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 프로덕션 I.G까지 사이보그 009를 리메이크하여 가세하게 되는군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작금의 비주얼 엔터테인먼트 이슈는 슈퍼 히어로가 아닌가 합니다.

ⓒ Production I.G / ⓒ ISHIMORI PRODUCTION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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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편과 성상편의 후루하시 카즈히로가 연출하는 또 한편의 사무라이 드라마

ⓒ 和月伸宏/集英社・Fuji TV・ANIPLEX


츠키 노부히로의 대표작으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코믹스 '바람의 검심'의 신작 OVA가 올 2011년 겨울 다시 한 번 아니메 팬들을 찾아올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시리즈의 부제는 신교토편. 원작의 교토편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의미인 듯 싶은데요. 원작의 교토편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악역의 대명사 시시오 마코토와 그 휘하의 절세고수 집단인 십본도와 벌이는 사투가 이번 신작의 메인 테마가 되겠습니다.

☞ 바람의 검심, 신교토편 웹 페이지 (보러가기)

이번 신작은 '바람의 검심, 추억편(1999)'과 '바람의 검심, 성상편(2001)'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해석을 보여주었던 후루하시 카즈히로(古橋一浩)가 감독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현재 후루하시 감독은 '기동전사 건담 UC(2010)'로도 맹활약 중인데요. 1년에 두 편 정도 출시되는 건담 UC의 스케줄 덕분에 이번 켄신의 신작에 참여할 여유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추억편에서 보여준 그의 드라마 중심의 구조를 좋게 보고 있기에 감독은 더없이 적합한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루하시 감독은 추억편 외에도 '빙쵸탄(2006)', '슈발리에(2006)', 'RD 잠뇌조사실(2008)' 등에서도 완성도 높은 연출력을 보여왔었죠. 무엇보다 트렌드에 영합하지 않는 뚝심있는 전개로 인해 이번 신작 OVA도 재미와는 상관없이 분명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을 보여주리라 기대됩니다.

시리즈 구성은 '트루 티어즈(2008)', '토라도라(2008)', 'CANAAN(2009)' 등으로 잘 알려진 오카다 마리(岡田麿里). 멜로 드라마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여준 그녀가 어떤 형태로 켄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할지도 포인트가 되겠군요. '바질리스크, 코우카인법첩(2005)'이나 'Fate/Stay Night(2006)' 등에서 각본 작업을 한 경험이 있기에 이들 작품을 떠올리면서 비교해보는 것도 어떨까 싶군요. 캐릭터 디자인은 하기와라 히로미츠(萩原弘光)로, '세인트 비스트 ~수천의 낮과 밤~(2005)' OVA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기 전까지는 원화와 에피소드 작화감독을 주로 맡아온 인물입니다. TV 시리즈나 OVA와는 어떻게 다른 비주얼을 보여줄지도 궁금하군요. 제작 스튜디오는 TV 시리즈와 추억편, 성상편 등을 제작해온 스튜디오 딘이 맡았으며, 기획과 제작은 ANIPLEX가 맡았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신작의 한 컷으로 추정되는 스틸샷. ⓒ 和月伸宏/集英社・Fuji TV・ANIPLEX

신작은 일단 전편과 후편의 2부작 OVA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생각보다는 러닝타임이 길지 않기에 과연 교토편을 어떻게 각색해내어 두편에 알맞은 이야기로 보여줄지가 관건이겠군요. 전편이 2011년 12월 극장에서 선행공개된 다음,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가 될 예정이구요. 원작에서 닌자조직 어정번중의 일원인 소녀닌자 마키마치 미사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 된다고 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이번 신작의 것으로 추정되는 스틸샷이 하나 올라와 있어 포스팅에 삽입해 보았습니다. 앞선 시리즈에 비해 좀 더 미형으로 디자인된 신작이 과연 진지한 드라마를 보여주는 감독과 만나 어떤 형태의 결과를 보여줄까 기대해 봅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和月伸宏/集英社・Fuji TV・ANIPLEX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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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필름 · 오돌또기


<스탭>

◈ 감독: 오성윤
◈ 원작: 황선미
◈ 제작: 명필름, 오돌또기


<시놉시스> 

양계장 속에 갇혀 사는 암탉 잎싹. 양계장 밖 마당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스스로 알을 품어 병아리를 낳고 싶었던 잎싹은 양계장을 빠져나오기 위해 며칠동안 굶고 탈진상태가 되어 혼절한다. 잎싹이 죽었다고 생각한 양계장 주인은 그녀를 밖으로 내다 버리고 때마침 먹이를 찾던 족제비에게 발견되어 위기에 처한 찰나, 한 청둥오리의 도움으로 잎싹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마당으로 돌아온 잎싹이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수탉과 오리들의 차가운 냉대뿐. 결국 잎싹은 양계장을 떠나 야생에서의 생활을 결심하게 된다.

낙관적인 잎싹이었지만 숲에서의 생활은 양계장에서 자라온 암탉에게는 막막하기만 했다. 얼마전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청둥오리(잎싹은 그를 나그네라 부른다)의 도움으로 잎싹은 숲의 리빙 컨설턴트 수달(잎싹은 달수라 부른다)을 만나 거처를 얻게 되고, 나그네는 근처에서 자신의 부인과 신방을 차리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평화로운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그네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둥지를 습격한 족제비에 의해 나그네의 부인이 끌려가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족제비에게 끌려가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나그네는 필사적으로 쫓아가지만, 예전에 한쪽 날개가 부러진 그는 결국 그녀를 구하지 못한 채 오열하고 만다.

족제비가 어지럽힌 나그네의 신방. 잎싹은 그 둥지 속에서 오리알을 발견하고 알을 정성스레 품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의 평생의 소원이기도 했었는데... 과연, 잎싹은 청둥오리의 알을 잘 품어낼 수 있을까.


반세기 한국 만화영화사를 다시 쓸지도 모를 대작 애니메이션

8월 6일 현재 누적관객 78만명을 넘어선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은 이제 한국 만화영화의 역사를 새로이 쓸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 만화영화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 않았던 크리에이터들의 땀과 눈물이 과연 마당을 나온 암탉을 기점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작품을 통해 한국 만화영화의 수준이 더 이상 2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증명해준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확신합니다.

40년 가까이 만화영화를 사랑하고 미국와 일본의 걸작 만화영화를 부러워하면서 보아온 엘로스에게도, 마당을 나온 암탉은 분명 기대 이상의 완성도였고, 외국의 탑 클래스 애니메이션과 비교했을 때도 손색이 없는 경쟁력을 갖춘 작품이었습니다.  단순한 작화적 완성도를 벗어나 6년의 시간이 걸린(어쩌면 여기에는 피치 못할 지연요소도 있었겠지만) 치밀한 프리 프로덕션, 배경이 된 우포 늪에 대한 철저한 사전답사, 선녹음 후작화의 프리스코어링 방식, 이미 검증된 베스트 셀러를 기반으로 한 완성도 높은 각색, 아름다운 음악과 주연 연기자들의 맛깔나는 연기력(물론, 이 부분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등 본 작품은 단순히 재미있고 그림 좋은 만화영화를 벗어나 제작단계에서부터 한국 만화영화의 일보전진을 향한 의미있는 시도들이 행해졌다 하겠습니다.

비디오 레인져 007(1984)’이라는 희대의 셀 도용작을 극장에서 관람한 뒤 한국 극장 만화영화에 깊은 실망감을 느낀지 어언 27년 만에 처음으로 극장의 스크린을 통해서 만나게 된 이 한국 만화영화는 실로 그간의 아쉬움과 무관심을 모두 만회시킬 만큼의 역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라스트에서 힘차게 하늘을 나는 청둥오리 초록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눈부신 조화, 선녹음 후작화의 유려한 움직임

프닝부터 시작되는 유려한 수채화 풍의 배경은 이 작품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초입니다. 동화가 원작인 이 작품은 실로 동화속의 모습을 그대로 동영상으로 옮긴 듯 서정적이고 포근합니다. CG 애니메이션과 비교하여 다소 두루뭉실한 수채화의 느낌은 CG 처리된 선명한 동물 캐릭터들로 인해 조화를 이룹니다. 부드러운 배경과 선명한 캐릭터의 조합은 확실히 이 작품을 일본의 아니메나 북미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한국 만화영화만의 독특함으로 승화시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비주얼은 대중적이라기보다는 다소 마니악한 축에 속합니다만, 대중성에 대한 고려도 어느 정도 고민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주연급 동물 캐릭터들의 경우 캐릭터 상품화 했을 때도 나름의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대중성을 고려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을까요.

선작화 후녹음으로 제작된 일본 아니메의 영향을 받아온 그동안의 한국 만화영화와는 달리, 마당을 나온 암탉은 전통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인 선녹음 후작화 방식, 즉 프리스코어링 제작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제작비와 제작 일정 등 제작 전반의 리소스 투입 비용은 상승했겠지만 비디오와 오디오의 조화는 매우 뛰어나며, 이것이 작품의 품격을 높였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겁니다. 여기에 잎싹이나 나그네, 초록, 달수 등 주요 캐릭터들은 목소리 연기를 맡은 문소리, 최민식, 유승호, 박철민의 모습을 감안하여 디자인하였기에 더더욱 감정이입이 훌륭합니다. 많은 관객들이 극중 동물 캐릭터와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들과의 유사함을 느끼셨던 것은 이 때문일 겁니다.

전반적으로 북미의 풀 프레임 애니메이션 기법을 기반으로 제작된 작품이지만, 군데군데 일본 리미티드 아니메의 기법 또한 절묘하게 녹아져 있습니다. 공식 블로그에서 언급한 투과광 기법은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로 리미티드 아니메 기법에 있어서 입신의 경지에 오른 린 타로 감독이 즐겨 사용하던 연출 기법이구요. 하모니 기법의 경우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역시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로 린 타로 감독과 같이 리미티드 아니메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리웠던 故 데자키 오사무 감독이 즐겨 사용하던 연출기법입니다. 이 기법은 클라이막스에서 펼쳐지는 청둥오리들의 레이스 씬 중 결승점을 향한 두 오리의 긴박감 넘치는 역주에서 거친 펜터치를 그대로 화면에 묘사하여 역동성을 강조하게 되는데요. 이는 일본의 대표 아니메 스튜디오 매드하우스가 제작한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03)'의 라스트에서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외에도 달수의 나그네 회상장면에서는 디지털 컷 아웃 기법이라 불리는 연출기법이 적용되었는데 이는 '쿵푸 팬더(2008)'의 서두에서 포의 꿈 속을 묘사한 연출기법과 동일한 방식이라 하겠습니다. 동서양 애니메이션 기법의 절묘한 조화, 이는 단순한 적용 이상의 의미도 담겨 있다 하겠습니다. 북미와 일본의 하청작업을 통해 얻은 다양한 노하우를 완벽하게 습득하여 우리의 오리지널 작품에 적절하게 활용할 정도로 연출 수준이 향상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을 말입니다. 

ⓒ 명필름 · 오돌또기



모성애와 독립을 테마로 한 암탉과 오리의 성장 드라마

로 놀라운 연출기법과 매력적인 영상미를 보여준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한국 만화영화사를 다시 쓸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원동력은 비단 이 연출기법만이 아닌, 매력적이면서도 울림이 있는 이야기 구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과거 김문생 감독의 '원더풀 데이즈(2003)'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되어 놀라울 만큼 멋진 영상미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완성도의 이야기와 흡입력이 떨어지는 캐릭터들로 인해 재앙에 가까운 실패를 보여준 사례가 있었는데요. 마당을 나온 암탉은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서 치밀한 준비를 통해 선배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황선미 작가의 동명 베스트 셀러를 원작으로 삼은 것도 그러하지만, 이를 만화영화로 옮겨오는 과정에 있어서 보여준 각색 능력은 분명 놀라운 비주얼에 버금가는 완성도라 하겠지요. 시나리오 작업에만 3년의 시간이 걸린 것은 각본의 중요성을 제작진이 이해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독립과 성장, 그리고 모성애를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양계장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당 밖의 삶을 꿈꾸는 잎싹은 다른 닭들과 달리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온 뒤 주변 야생동물의 편견어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려 하지요.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다소 주책맞은 그녀의 모습으로 인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는 몰라도 남들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가 정한 길에 매진하는 우직한 노력가의 자세를 연상시킵니다. 이는 성장통을 겪은 뒤 청둥오리의 파수꾼으로 거듭나는 그녀의 오리 아들 초록의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엄마가 되면서 잎싹도 성장하고, 초록도 성장합니다. 그리고 성장은 다시 독립이라는 테마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구요. 비록 동화가 원작인 작품이지만 이러한 주제의식은 상당히 깊이가 있습니다.

독립과 성장 못지않게 이 작품의 이야기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은 바로 모성애 입니다. 너무 신파적이지 않게 적절한 슬픔의 한계선을 지킨 작품 속의 모성애는 너무도 애틋하여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그것은 엔딩에서 보여진 여운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애틋한 모성애가 작품의 기저에 계속 깔려 있기에 마당을 나온 암탉은 달수의 센스 넘치는 유머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슬픔의 한자락이 계속 꼬리처럼 매달려 있는 느낌을 줍니다. 모성애는 잎싹과 초록의 평생의 적인 족제비에게도 예외는 아니지요. 약육강식이라는 비정한 동물의 세계 속에 그려진 이 모성애는 마치 비정한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듯 저릿저릿합니다. 그리고 모성애의 종결은 다시금 새로운 생명의 성장과 탄생의 밑거름이 됩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동화라는 한계 속에서도 삶의 진리를 제법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애틋한 모성애와 더불어 이 쉬우면서도 깊은 뜻이 담긴 인생의 진리 덕에 이 작품은 아동용이면서도 달콤함보다는 오랜 세월 묵혀온 깊은 풍미가 느껴집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준 가족애보다 좀 더 애잔한 느낌의 무엇... 그리고 그것이 이 만화영화가 한국 만화영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크나큰 힘이 되어준 원동력은 아닐까 합니다.


이 눈부신 감동을 이어갈 또다른 한국 만화영화의 탄생을 기원하며...

작품은 서두에서 말했듯이 꼭 한국 만화영화가 아니더라도 무척 인상깊은 작품입니다. 물론 다소의 아쉬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스토리보드의 경우는 아직도 몇몇 부분에서 매끄럽지 못한 장면이 눈에 띄었는데요. 마치 연극의 막이 전환되듯 갑작스레 장면 전환이 일어나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삐걱거림은 다소 이 작품의 마감이 완벽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좀 더 많은 제작경험을 통해 보완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성우 연기에서는 사실 많은 분들이 아쉬움을 지적하셨습니다. 초록이 역을 맡은 유승호 군에 대한 아쉬움이 대부분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유승호 군의 팬은 아니지만, 제 감상은 거슬린 건 사실이지만 극의 흐름을 깨버릴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반면, 문소리 씨나 박철민 씨의 연기는 무척이나 훌륭했으며, 제가 아는 한 한국 연기자의 더빙 연기 중에서는 발군의 싱크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감정 표현에 익숙한 서양의 배우에 비해 한국은 배우들조차 감정의 과잉표현에 익숙치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마치 현대극 연기는 잘하는데 사극 연기는 영 어설픈 배우마냥, 만화영화의 경우는 그 성격상 과장된 연기가 필수인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전문성우에 비해 연기자 더빙의 경우가 대부분 완성도가 좋지 못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번 두 연기자의 연기는 그 자체로도 어떤 이정표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짦은 등장이었지만 박쥐 역을 맡은 성우 홍범기씨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본 작품에 있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배경이 된 우포 늪을 사전답사를 통해 완벽하게 화면에 재현해낸 점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프리 프로덕션이 한국 만화영화에서 이루어졌다니... 이는 이 작품이 얼마나 치밀한 준비와 계획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인지를 실감케 하는 부분이지 않나 합니다. 또한, 롯데와 같은 대기업의 투자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부분도 고무적입니다. 이로 인해 한국 만화영화의 투자여건은 분명히 전보다 나아질 테고 보다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오는 밑거름이 되리라 봅니다.

라스트에서 새로운 터전을 향해 앞장서서 날아간 초록의 힘찬 날개짓처럼 이제 한국 만화영화도 새로운 터전을 향해 날아갈 때가 왔나 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작품의 탄생을 위해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만화영화의 꿈을 버리지 않은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일겁니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초록을 위해 모든 것을 다바친 잎싹일지도 모르니까요. 이제 한국 만화영화는 다시 떨어진다 해도 날아오를 수 있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마당을 나온 암탉은 태권 브이를 대신하는 한국 만화영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리라 봅니다.

ⓒ 명필름 · 오돌또기



<참고 사이트>

[1] 마당을 나온 암탉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2] 마당을 나온 암탉 공식 블로그 (바로가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명필름 · 오돌또기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 달의 영화 리뷰 2011년 8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블루레이] 마당을 나온 암탉 - 8점
오성윤 감독, 문소리 외 목소리/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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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 만화영화와 함께 하는 잠깐의 휴식


격적인 휴가철입니다. 물론, 얼마전의 기록적인 폭우와 피해로 슬픔을 겪은 많은 분들에게는 경황이 없는 나날이기도 하겠지만요. 게다가 날씨마저 우중충하니 모처럼의 휴가철에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예전같지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밤은 또 잠못드는 열대야가 계속될 수도 있구요.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현실을 벗어나 휴양지에서 보내는 일상에서의 탈출, 이것이 휴가의 목적 중 하나라면 궂은 날씨로 인해 야외로의 탈출이 여의치 않은 날에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취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렇다면 뭐니뭐니 해도 그 대안은 영화 감상과 독서가 가장 제격이 아닌가 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양한 시공간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영화감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유희 중에서도 참으로 매력적인 유희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번 여름을 맞이하여 별바다의 서고에서도 여름철 휴가 중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만화영화를 몇 편 소개코자 합니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여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배경이나 여름에 보았으면 좋을 법한 작품들로 제가 몇 개 추려낸 작품들입니다. 될 수 있는데로 현재 DVD나 블루레이 타이틀로 출시된 작품들로 골라 보았는데요, 이는 기왕이면 불법 다운로드보다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화영화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보통의 감상자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나름 유명한 작품들이 선정되면서 리스트가 다소 평이해진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다만, 이 작품들은 한 번 이상은 다시 봐도 괜찮을 작품들인지라 이번 기회에 다시 찬찬히 감상해보시는 것도 전과 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구요. 실제로 제 경우 이 작품들 대부분이 서너번 씩은 감상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무더운 여름밤을 함께 할 만화영화들을 만나러 출발하실까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십니까(1984) / 마크로스 제로(2002)

ⓒ BIG WEST

84년도 마크로스 극장판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십니까(1984)'는 그해 여름에 일본 극장가에 개봉되어 커다란 호평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거대한 스케일의 SF 우주전쟁과 남녀간의 로맨스를 멋지게 버무려낸 맛깔스러움은 아직까지도 그 신선도가 유지되고 있을 정도로 생생하구요. 여기에 당시 아니메의 수준을 넘어선 초특급의 작화 퀄리티는 CG로 그려진 근래의 아니메와 비교해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놀라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극중 민메이가 부르는 주옥같은 JPOP들은 여전히 작품과의 뛰어난 매치를 보여주고 있지요.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렵사리 구한 마크로스 극장판 오리지널 비디오 테입을 한 친구의 집에서 전축과 연결하여 나름 스테레오 스피커 시스템을 구축하고 방안의 불을 끈 뒤 소규모 극장처럼 감상하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아니메를 본격적으로 감상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 하구요. 민메이의 애절한 발라드와 인류의 존망을 건 거대한 우주전쟁이 벌어지는 클라이막스를 지나, 평온한 엔딩 뒤 조명이 꺼지는 무대에 서있던 민메이의 힘찬 '원,투'와 함께 경쾌한 엔딩 크레딧으로 연결되는 마지막은 여전히 아니메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DVD로는 절판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극장판 정도의 감동은 아니지만, CG를 통해 놀랍도록 정교한 디테일과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준 OVA '마크로스 제로(2002)'도 한 여름밤의 킬링타임용으로는 적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붉은 돼지(1992)

ⓒ 1992 Nibariki · GNN

실, 미야자키 감독이 만든 대부분의 극장 아니메들이 여름 극장가를 통해 개봉되었기에 미야자키의 작품들은 거의 다 여름과 어울린다 하겠습니다. 멋진 모험과 액션을 선사한 '천공의 성 라퓨타(1986)'도 그러하고, 일본의 전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웃집 토토로(1988)'도 그러하며, 마녀 배달부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마녀배달부 키키(1989)' 역시 여름과 잘 어울리지요. '원령공주(1997)'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그의 최근작인 '벼랑 위의 포뇨(2007)'도 모두 여름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 하겠구요.

그러나, 굳이 한 작품을 고르라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이 작품 '붉은 돼지(1992)'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여름과 잘 어울리는 동시에 미야자키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소년과 소녀를 주인공으로 했던 대부분의 미야자키 작품과는 달리, 붉은 돼지는 이탈리아 공군 파일럿이었던 한 사내가 전쟁과 인간에 혐오를 느끼고 스스로가 돼지가 되어 살아가는 어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야기는 꿈과 희망보다는 향수와 낭만을 이야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지요.

지중해의 멋진 배경과 어우러지는 한 돼지의 모험과 사랑,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유럽 영화를 보듯 여유롭고 부드러우면서도 익살스럽고 신명납니다. 여름밤을 수놓는 낭만적인 돼지의 모험, 몇 번을 맛봐도 질리지 않는 초특급 파스타와 같은 맛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귀를 기울이면(1995)

ⓒ 柊あおい/集英社・二馬力・GNH

양적인 풍취와 유럽적인 내음이 잘 조화를 이룬 청춘물 '귀를 기울이면(1995)'은 큰 고저가 없는 평온한 드라마 속에서 소소한 일상의 재미가 돋보이는 보기드문 수작입니다. 도에이 동화 닛폰 애니메이션을 거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의 작품들에서 애니메이션을 담당해온 지브리의 고참 작화가 콘도 요시후미의 데뷔작(이자 유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오랫동안 미야자키와 타카하타의 작품들 속에서 그 내공을 쌓아온 콘도의 재능이 멋지게 개화한 한 편의 청춘 멜로 드라마라 하겠습니다.

섬세한 십대 소녀의 감성을 지브리 특유의 세심한 묘사와 서정적인 전개로 풀어내면서 잔잔하고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 작품인데요.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지목받기도 했던 콘도지만 실상 귀를 기울이면에서 보여준 그의 스타일은 미야자키와 같은 스케일 큰 어드벤쳐보다는 좀 더 소소하고 현실적인 드라마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하겠습니다. 물론, 이 한 작품으로 그의 작품 스타일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요. 

작품에는 콘도의 멜로 드라마와 함께 주인공 시즈쿠의 소설 속 등장인물인 고양이 남작 바론의 에피소드도 별도의 이야기로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본 작품에서 각본과 스토리보드, 그리고 프로듀서를 담당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것이라고 하는군요. 한 여름밤,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퍼펙트 블루(1997)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때 폴 버호벤의 '원초적 본능(1992)'을 시작으로 에로틱 스릴러물이 극장가에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 에로티시즘과 미스테리 스릴러를 적절하게 혼합하여 긴장감과 흥분감을 높인 이들 작품은 이후 비슷비슷한 작품들의 난립과 완성도 낮은 졸작들의 범람으로 인해 스스로가 자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지만, 지금도 가끔 한 여름밤의 열기를 식혀줄 킬링 타임용으로도 여전히 괜찮은 장르인 것도 사실이 아닐까 하는데요. 콘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1995)'는 이러한 에로틱 미스테리 스릴러 물의 공식을 취하고 있으되 왠만한 실사 영화를 능가하는 서스펜스와 긴장감, 그리고 매력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감히 단정하고 싶습니다.

아이돌 가수에서 연기자로의 변신을 꾀하는 미마와, 그런 미마를 위협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광적인 스토커 팬. 미마는 쉽지 않은 변신의 길목에서 갈등하면서 동시에 정체불명의 스토커로 인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서서히 벌어지는 살인사건, 스스로도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는지 확신이 안서는 기억의 혼란과, 환영 속에 이야기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현실과 환상을 적절하게 섞어내어 주인공의 혼란을 묘사하는 콘 사토시의 연출력은 독보적이면서도 매력적이지요.

이제는 고인이 되어 그 매력적인 연출을 더는 볼 수 없겠지만, 여름 밤을 식혀줄 스릴러물로 퍼펙트 블루는 분명 괜찮은 선택이지 않나 싶습니다. 콘 사토시의 TV 시리즈 '망상대리인(2004)'도 비슷한 구성을 가진 미스테리라는 점에서 한번 쯤 도전해보아도 좋을 듯 하네요.

☞ 퍼펙트 블루, 故 콘 사토시의 전율의 미스테리 스릴러 (보러가기)


청의 6호(1998)

ⓒ 小澤さとる / バンダイビジュアル ・ EMIミュージックジャパン

계 최초의 Full CG 장편 애니메이션이 '토이 스토리(1995)'라면, 세계 최초의 Full CG 비디오 애니메이션은 바로 마에다 마히로 감독의 '청의 6호(1998)'입니다. 일본 아니메로서는 가장 최초로 Full CG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이기도 하지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환경문제와 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음모에 맞서는 잠수함 승무원들의 모험과 액션을 그린 청의 6호는 오다와 사토루의 1967년작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해양 SF 어드벤처 물입니다. 3D CG를 이용한 잠수함과 잠수정의 묘사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퀄리티를 선사했으며, 토이 스토리와는 다른 사실적인 묘사로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CG 아니메에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스토리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지만,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양 SF 어드벤쳐라는 점에서 여름밤 감상용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니모를 찾아서(2003)

ⓒ WALT DISNEY / PIXAR

양 어드벤쳐 애니메이션으로 이 작품을 최고로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이 최고의 해양 어드벤쳐 애니메이션 중 하나라는데는 이견을 보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자식사랑이 지극한 조그만 클라운 피쉬(흰동가리) 말린이 그의 아들 니모가 인간들에게 납치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머나먼 바다를 건너 호주의 시드니 항으로 찾아가는 모험 이야기는 버라이어티한 모험과 신비한 바다의 경관이 멋진 조화를 이룬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입니다. 픽사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걸작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소심한 말린과 나사빠진 도리의 바다 속 모험도 흥미롭지만, 치과 수족관 속에 갇혀 바다로 탈출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니모와 수족간 물고기들의 이야기도 또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니모가 다른 집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수족관을 탈출해야 하는 긴박감은 만화영화치고는 상당한 긴장감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상어와 고래, 그리고 인간들의 위협을 피해 시드니까지 먼 여행을 떠나는 말린과 도리의 스케일 큰 모험 이야기와 니모가 바다로 탈출하기까지의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는 여름철의 더위를 날려줄 만큼 재미있고 좋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굳이 당신이 만화영화를 즐겨보지 않더라도 니모를 찾아서는 여름밤 영화 감상으로는 믿을만한 선택일 겁니다.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03)

ⓒ 茄子 アンダルシアの夏 製作委員会

브리의 중견 애니메이터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수많은 작품에서 작화를 맡아온 미완의 대기 코우사카 키타로의 첫 연출작. 본인 스스로가 사이클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쿠로다 이오의 단편만화집을 원작으로 한편의 매력적인 싸이클 아니메를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찌는 듯한 스페인의 싸이클 로드레이스 '부에나 아 에스파냐'를 무대로 한 단편 아니메,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03)'입니다.

세계명작동화에서부터 이어져온 듯한 유럽적인 배경와 일상의 묘사는 매드 하우스의 작품이면서도 마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별볼일 없는 싸이클 선수 페페 베넨헤리가, 그의 형과 그의 옛 연인이 결혼식을 벌이는 고향 안달루시아를 지나는 싸이클 경기에 참가하여 보여주는 집념의 레이스는 무척이나 실감나면서도 만화영화적 재치가 넘치는 매력적인 스토리 텔링을 보여줍니다. 어떤 거대한 스케일이나 파격적인 갈등이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정말 소소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유쾌합니다. 뒷맛도 개운한 것이, 마치 한 여름밤에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가슴에 큰 울림을 주지는 않지만, 소소한 재미와 드라마를 선사하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 2006 TOKIKAKE Film Partners

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는 근래의 일본 아니메 중에서도 가장 여름과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재미와 드라마적 완성도를 고루 갖춘 이 작품은 그전까지 디지몬 어드벤쳐와 같은 아동용 극장 아니메를 연출해온 신예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좋은 호흡과 느낌을 주고 있는데요. 미야자키 하야오 외에 근래 극장 아니메에서 모든 이들의 입맛에 맞을 만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가 그리 없음을 감안할 때 이는 놀라운 발견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연하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게 된 소녀가 이를 활용해 자신의 소소한 바램을 이루어가는 유쾌한 능력 남용하기는 적절한 웃음과 적절한 긴장감, 적절한 슬픔과 적절한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보통 소녀의 소박한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서스펜스마저 느껴지는 능숙함을 보여줍니다.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전개는 마치 시원하고 달콤한 팥빙수를 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요.

특히, 몇 번을 보아도 그리 줄어들지 않는 극적 재미는 이 작품의 완성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까 합니다.

☞ 시간을 달리는 소녀,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을 깨달아가는 소녀의 이야기 (바로가기)



피아노의 숲(2007)

ⓒ 一色まこと · ピアノの森 製作委員会

'다메 칸타빌레(2001)'나 '베토벤 바이러스(2008)'와 같이 클래식과 트렌디 드라마의 접목으로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 작품들이 있다면, '피아노의 숲(2007)'은 보다 더 정통 음악 드라마적에 가까운 만화영화라 하겠습니다. 체계적인 음악적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천재 음악 소년과, 부유한 가정에서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고 자란 음악 수재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불우한 천재 소년의 성장 드라마인 것입니다.

잇시키 마코토가 1998년부터 연재한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후일 어른으로 성장하는 주인공 카이의 이야기까지는 다루지 못하고, 초등학교 5학년으로 첫 콩쿨에 참가하게 되는 초반부의 에피소드까지만을 다루고 있지만, 발단부의 이야기만으로도 꽤 멋진 드라마를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이 주는 깊이와 서정성이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소년의 감성과 맞물려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자못 따뜻하고 매력적이라 할 수 있지요.

숲 속 깊이 버려진 한 피아노. 보통 사람은 소리를 낼 수 없는 기이한 그 피아노를 통해 사람을 마음을 벅차게 하는 연주를 해내는 천재 소년의 이야기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여 쟁쟁한 수재들을 물리치고 정상의 자리에 등극하는 인간 드라마의 매력을 잘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격조 있는 클래식 음악과 아름다운 숲의 배경이 어우러져 시원한 그늘과 서늘한 바람이 부는 여름 숲을 연상시키게 하는데요. 감상하시는 분들에게 청량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샐러드와 같은 맛을 선사하지 않을까 합니다.



레지던트 이블 디제너레이션(2008)

ⓒ CAPCOM Co, Ltd. / Resident Evil CG Film Partners

름철 영화하면 빠지지 않는 장르인 호러장르. 특히 근 몇년 사이에는 좀비물이 호러장르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좀비영화들이 극장가에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레지던트 이블은 96년 출시된 캡콤사의 바이오 하자드 세계관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4편의 실사영화를 통해 우리들에게 익숙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사영화 4부작은 나름 인상적이었던 첫 편에 비해 이후의 시리즈가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를 선보였던 실사영화 시리즈와는 달리, 원작의 캐릭터들을 그대로 등장시킨 별도의 CG 애니메이션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카미야 마코토의 장편 데뷔작 '레지던트 이블 디제너레이션(2008)'입니다.

사실,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이 작품은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전개도 뻔하고 어떤 흐름으로 흘러갈지, 다음 장면이 뭐가 나올지를 상상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고 그런 B급 좀비영화 수준과 비교해서 그리 나은 점을 찾아볼 수가 없는 작품인 셈입니다. 다만, 바이오 하자드의 팬들에게는 확실한 팬 서비스가 될 듯 하며, 초특급 퀄리티는 아니지만 제법 준수한 CG 완성도와 함께 펼쳐지는 액션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당합니다. 호러물이지만 호러물보다는 액션물에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호러물.



썸머워즈(2009)

ⓒ 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

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마찬가지로, 여름에 개봉된 호소다 마모루의 '썸머 워즈(2009)'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근래들어 가장 여름과 잘 어울리는 극장 아니메 중 한편이기도 합니다. 시원하면서도 서정적인 배경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이어 이번에도 여전히 친숙하게 우리를 맞이합니다. 그 푸르름은 마치 눈부시게 밝은 여름날 교외로 나들이 온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고나 할까요.

전작과는 달리 어드벤처 요소가 강화된 것도 특징입니다. 가상 모바일 네트워크인 오즈와 시골의 큰집이라는 전원적 요소는 의외로 서로가 잘 조화를 이루면서 극을 이끌어 갑니다. 여기에 시골의 대가족이라는 설정은 비록 우리네와는 조금 그 모양새가 다르지만, 여름을 맞이하여 고향집으로 휴가를 떠나는 우리게 가족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습니다.

비록 전작에 비히 이야기의 밀도나 가 그다지 농밀하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썸머워즈는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여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멋진 모험과 소소한 일상 속의 재미, 썸머워즈는 마치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과도 같은 맛을 보여주리라 생각됩니다.

☞ 썸머워즈, 여름을 습격한 현실과 가상의 흥미로운 이중주 (바로가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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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만으로도 기대되는 오랜만의 한국 애니메이션

ⓒ 명필름 · 오돌또기


'속(1997)', '해피엔드(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바람난 가족(2003)',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등 굵직굵직한 한국영화들을 제작해온 명필름의 첫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이 마침내 6년이라는 길고 긴 제작기간을 끝내고 스타트라인에 들어섰습니다. 프로듀서 출신의 오성윤 감독의 첫 감독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감독과 제작사 모두 생소한 경험이기도 했을 텐데요. 프로듀싱은 명필름이 맡았지만, 실제 애니메이션 제작은 소규모 제작사인 오돌또기가 맡아 기대를 넘어서는 멋진 완성도의 결과물을 보여준 듯 합니다. 오돌또기는 현재 오성윤 감독이 제작이사를, 이춘백 애니메이션 감독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는 군요.

☞ 마당을 나온 암탉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황선미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바깥세상을 동경한 암탉 잎싹(문소리 분)은 양계장을 탈출한 뒤 청둥오리 나그네(최민식 분)와 수달 달수(박철민 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야생 생활에 적응하게 됩니다. 우연치 않게 발견하게 된 부모없는 오리알, 잎싹은 오리알을 정성스레 품고 때마침 그녀를 공격한 애꾸눈 족제비를 막기 위해 나그네가 막아섰으나 그만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나그네가 목숨을 버리면서 지킨 오리알에서는 귀여운 아기오리가 태어나고, 초록(유승호 분)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아기 오리는 잎싹을 엄마로 여긴 채 자라나게 되지요.

이제까지 많은 이들과 지면을 통해 언급이 되었던 것이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였던 스토리의 문제를 이 작품은 드라마틱한 시놉시스를 가진 황선미 작가의 원작으로 극복해내게 됩니다. 동화의 레벨을 넘어선 이야기로 평가받는 원작으로 인해 이야기는 유쾌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서정적인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고무적인 현상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왜 진작 이런 멋진 이야기들을 가져다 쓰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스토리도 스토리이지만 프리프로덕션이나 제작방식에 있어서도 상당히 수준급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합니다. 우선 롯데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대기업의 스폰서를 받은 것은 6년이라는 긴 제작기간과 30억이라는 만만치 않은 제작비가 소요된 이 작품이 무사히 제작을 마무리하고 극장에 걸릴 수 있게 된 큰 원동력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본 작품의 배경이 되는 천연기념물 524호 우포늪의 철저한 사전답사와 같은, 진작에 시도되었어야 할 의미있는 사전제작 과정들이 충실히 반영된 것 역시 본 작품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드물게 선녹음 후작화 방식의 프리스코어링 기법을 도입한 것은 과거 일본 아니메의 영향을 받아온 여타 한국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전통적인 디즈니의 기법을 바탕으로 한 좋은 선택으로 판단됩니다. 이로 인해 배우들의 입모양이나 제스처 등이 캐릭터들에게 십분 반영되어 더더욱 감정이입을 높여주고 있지요. 서양화를 전공한 순수미술학도 출신의 감독이라서 그런지 비주얼은 더없이 선명하고 말끔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아름답습니다. 2D를 베이스로 여러가지 3D 기법의 합성으로 서정적인 셀 애니메이션의 느낌과 다이나믹한 CG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룬 멋진 비주얼이 만들어지게 되었죠. 단연코 이는 이제까지 만들어진 유수의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탑클래스의 비주얼을 보여준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 '마당을 나온 암탉'... 20년 인생 녹아있죠, 연합뉴스 (바로가기)
☞ 국내산 닭의 6년만의 비행, 씨네 21 (바로가기)

이제 남은 것은 대중적인 평가인데... 일단 시사회에서의 반응은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보이는 군요. 한국에서는 7월 27일부터 상영을 시작하여 롯데 시네마와 CGV 등 한국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많은 상영관 수를 확보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물론, 이는 롯데와 같은 대기업의 참여가 큰 힘이 되어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북미 만화영화를 제외하고 이런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외국에서도 상당히 공격적인 상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중국의 경우 약 1,00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여 8월에 개봉한다고 하니 부디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역사를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그리고 왠지 이 작품이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기대감이 들기까지 합니다. 힘차게 날개짓하는 오리들의 모습처럼 기분좋은 예감이랄까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명필름 · 오돌또기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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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4℃와 광전사의 조우. 총 3부작으로 제작 예정

ⓒ 三浦建太郎 · 白泉社 / BERSERK FILM PARTNERS


우라 켄타로 원작의 중세 호러 판타지 코믹스 '베르세르크(Berserk)'가 1997년의 TV 시리즈에 이어 두번째로 영상화 된다고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극장용 아니메로 제작되는 것으로, '메모리즈(1995)', '애니 매트릭스(2003)', '철콘 근크리트(2006)' 등 탈 아니메적 스타일과 완성도 높은 영상미를 선보여온 스튜디오4℃가 제작 스튜디오로 낙점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배급은 다름 아닌 워너 브라더스. 말 그대로 베르세르크는 월드 와이드한 배급망을 통해 전세계 관객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원작의 네임 밸류가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7월 15일 막 열린 이 홈페이지에는 아직까지 많은 정보가 올라와 있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관심을 끄는 스탭진 면면도 확인이 불가능하며, 단지 쿠보오카 토시유키(窪岡俊之)가 연출로 내정이 되어있다는 소식만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죠. 쿠보오카 토시유키는 코가와 토모노리가 설립한 스튜디오 비보 출신의 애니메이터로서, '성전사 단바인(1983)'이나 '중전기 엘가임(1984)' 등에서 원화를 그려오다가 가이낙스로 소속을 옮긴 뒤에는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1987)'의 작화감독 보좌, '톱을 노려라!(1988)'에서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아 이름을 알린 인물입니다. '자이언트 로보(1991)'에서 캐릭터 디자인 및 작화감독을 맡는 등 거의 작화 및 원화 스탭으로 활약해온 애니메이터 출신 감독인 셈이죠.

아케이드 게임 'THE IDOL MASTER(2005)'의 캐릭터 원안을 맡기도 했던 그는 스튜디오4℃의 옴니버스식 OVA '배트맨 고담 나이트(2008)'에서 에피소드 감독과 콘티를 맡아 데뷔전을 치른 뒤 이번 베르세르크의 감독으로 낙점받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경력에 비해서는 다소 늦은 감독 데뷔이긴 한데요. 과연 부족한 연출 내공을 어떤 식으로 보완해낼지, 그리고 얼마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줄지가 관심거리라 하겠습니다. 두번째 감독작으로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작품의 감독을 맡게 된 셈이군요.

베르세르크 극장판은 3부작으로 기획되어 코믹스의 2부이기도 했던 '황금시대'편의 이야기를 3부에 걸쳐 풀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가츠가 매의 단에 입단하여 그리피스와 우정을 쌓고 미들랜드의 영웅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영광의 길을 지나, 가츠가 매의 단을 탈퇴한 뒤 그리피스와 매의 단의 몰락, 가츠의 복귀와 그리피스 구출의 여정을 거쳐, 어둠의 천사들인 갓 핸드의 등장과 사도들의 무차별적인 살육, 그리고 갓핸드로 태어난 그리피스와 그를 증오하게 되는 가츠의 절규가 스크린에 그려질 예정인 것입니다. 이는 97년 TV 시리즈 역시 다루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베르세르크의 프롤로그 격인 이 초반부의 이야기는 코믹스의 범주를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기에 영상화에 대한 기대가 무척 큽니다. 특히, 리소스의 한계로 인해 동화 부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전 TV 시리즈에 비해 이번 극장 아니메는 워너 브라더스가 배급을 맡는 등, 제작 스케일도 큰데다가, CG와 셀 애니메이션을 적절히 믹스하여 동화 부분에 있어서도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바꿔 말하면, 휘몰아치는 가츠의 처절하고 실감 넘치는 검술 장면이 비로소 제대로 그려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는 소리라 하겠습니다. 

반면, 가츠가 사도 사냥이라는 방랑의 길에 들어선 '단죄'편 이후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뒤의 이야기를 그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요, 월드 와이드 배급망을 탔기에 베르세르크는 TV 시리즈와는 별개로 리부트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지 않았나 싶구요. 그렇다면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고편으로 보아온 스튜디오4℃의 비주얼은 몇몇 CG 장면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큰 불만이 없습니다만, 감독의 경력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과연 얼마만큼 맛깔나게 각색하고 연출해낼지가 아직은 판단이 되지 않는군요.

하지만, 만약 이번 3부작 극장 아니메가 성공적인 성적을 거둔다면 그 뒤의 이야기도 영상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베르세르크의 팬으로서는 이번 극장 아니메의 흥행을 기원하는 수 밖에는 없을 듯 하군요. 베르세르크가 한국에서는 개봉이 가능할까요? 어찌되었든 그 첫 포문을 열 1부 '패왕의 알'은 2012년 1월 그 첫선을 보일 예정이라 합니다.

ⓒ 三浦建太郎 · 白泉社 / BERSERK FILM PARTNERS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三浦建太郎 · 白泉社 / BERSERK FILM PARTNER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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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PPON ANIMATION Co. Ltd.

<스탭>

◈ 감독: 쿠로다 요시오
◈ 원작: 마리 루이사 드 라라메
◈ 제작: 닛폰 애니메이션, 즈이요 영상


<시놉시스> 

벨기에의 북서부 지역 플란다스에서 우유배달을 하는 할아버지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소년 네로.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착한 마음씨를 잃지 않고 있는 네로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 그리고 안트워프 성당에 전시된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다. 어느날 철물점에서 혹사 당하는 개를 본 네로는 주인이 내버린 개를 집으로 데리고 와 정성껏 간호해준다. 네로는 파트라슈라는 이름을 개에게 지어주고, 우유수레를 끌 돈도 없이 할아버지와 힘들게 우유배달을 하는 네로를 본 파트라슈는 마치 자신이 도와주겠다는 듯이 우유수레를 끌려고 한다. 가난하고 고단한 네로와 할아버지의 생활 속에 어느덧 파트라슈는 믿음직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안트워프 지역의 유지 코제트의 딸인 아로아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소년 네로와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엄격한 코제트는 네로와 어울리는 딸 아로아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파트라슈의 원래 주인이었던 철물점 상인이 파트라슈가 자신의 소유라며 다시 끌고 가려하고, 코제트가 영국의 기숙학교로 아로아를 보내려 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하던 네로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데...


기억의 서재 한켠에서 찾아낸 소박한 한 소년의 이야기

번 제5회 YES24 블로그 축제를 맞이하여 '나를 한뼘 키워준 책 영화 음악'이 주제로 선정되었을 때 의외의 고민으로 쉽사리 포스팅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막상 깊은 감명을 가져다 준 영화를 꼽으려 하니 좀처럼 하나를 고르기가 막막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글을 쓰기 위한 소재를 쉽사리 고르지 못하는 난감함도 난감함이지만, 스스로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 하나를 자신있게 골라내지 못하다니 왠지 블로거(그것도 자칭 영화/만화영화 블로거)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과연 감명을 준 영화를 하나 뽑아야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어린 시절 나를 성장하게 해준 멘토와도 같은 작품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으로 일주일을 보내던 어느날,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건 회사에서 일을 하던 도중에 떠오른 생각이었는데요. 바로 대상을 영화라는 범위에 한정시키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실사영화 뿐만 아니라 만화영화도 엄밀히 말하면 영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나에게 어린 시절 벅찬 감동을 선사한 만화영화를 골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의외로 문은 쉽게 열렸습니다. 만화영화로서 영화 이상의 감동과 슬픔을 주었던 추억 속의 작품, 한 소년의 고난스럽지만 밝은 삶 속에 빠져 행복한 웃음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그 작품, 바로 '플란다스의 개(1975)'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마법과도 같이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갔고, 어느새 눈 앞에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소박한 꿈을 가진 소년 네로와 네로의 곁을 항상 떠나지 않았던 충견 파트라슈가 언제나 그렇듯 우유배달차를 끌고 플란다스의 아침 길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불행 속에서도 끝까지 고결함을 잃지 않은 네로와 파트라슈

동안 불우한 어린이와 충직한 동물의 아름다운 드라마가 영화의 단골 소재로 꽤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기에 이제 네로와 파트라슈는 옛날처럼 우리를 눈물짓게 하는 단 하나의 소년과 동물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을 쭈욱 나열해도 유독 이 작품만큼은 마치 다른 색깔로 칠해진 듯 눈에 띕니다. 그 많은 작품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제목이 무엇인지 가물가물해지는 와중에도 유독 이 작품만큼은 수십년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 한켠에 고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마치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이 아름답고 슬픈 이 소년과 개의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는 뭉클한 낙인과도 같습니다.

가난하고 고된 나날 속에서도 자상하고 인자한 할아버지 밑에서 화가를 꿈꾸며 묵묵히 힘든 나날을 이겨내는 소년, 그런 소년에게 어느날 찾아온 한마리의 개. 소년과 할아버지는 개를 통해 정신적인 위안과 삶의 여유를 찾고, 학대당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개 역시 소년과 할아버지를 통해 안식처와 가족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따스하고 끈끈한 유대감은 곤궁한 삶과 집주인 한스의 인정머리 없는 처사를 견딜 수 있는 큰 힘이 되지요. 여기에 마을 유지의 딸 아로아와의 우정 역시 네로에게는 커다란 삶의 활력소이기도 합니다. 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그의 꿈을 응원하는 착한 소녀와 거칠지만 듬직한 안트워프 시의 친구들. 네로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주는 열쇠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편견의 늪에 빠뜨리는 지도요.

사람은 사람이 만들어낸 돈과 그 돈으로 인해 쌓아올린 사회적 지위로 자신이 속해 있을 곳을 정하고 그 아래의 사람들을 배척하는 우를 종종 저지르게 됩니다. 플란다스의 유지 코제트와 그의 마름인 한스가 그런 인물이라 하겠지요. 물론, 이 문제는 말처럼 쉽게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네 삶을 돌아만 봐도 평범한 중산층의 서민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못한 극빈층의 자녀들이 자신의 자녀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려하는 것을 왕왕 볼 수 있지요.(그리고 종종 우리 자신도요) 어찌보면 사람을 구분짓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인간의 어두운 심성의 하나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편견 속에서 소외받고 있는 이들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다소 납득하지 못할 설정일지는 몰라도, 또 동화적이고 단순한 전개일지는 몰라도 이 작품은 네로의 슬픔을 시청자들과 관객들에게 깊이 전달시켜 줍니다. 어린이용 만화영화로서는 꽤 깊은 감정이입으로 인해 단순명료한 진리는 깊이를 가진 휴먼 스토리로 보는 이들에게 전달됩니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순수한 우정에 삐뚤어진 편견을 보내는 어른들. 그 속에서도 꿋꿋이 꿈과 우정을 지키던 소년은 든든한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었던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무너져 내립니다. 마지막까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던 소년에게는 너무도 가혹할 정도의 시련이지요. 더이상 집세를 내지 못하자 살던 집에서조차 쫓겨날 신세에 처한 소년. 다가오는 추운 겨울 날씨조차 소년의 편은 아닙니다. 이제껏 그를 지탱해주었던 일말의 등불마저 꺼져버린체 네로와 파트라슈는 춥디 추운 시련의 밑바닥으로 미끄러져 가고 맙니다.

그 와중에도 꺼지지 않고 마지막 불꽃을 피우던 그림을 향한 네로의 마지막 희망마저 사그러 드는 순간, 모든 것은 끝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른 소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로아의 아버지가 잊어버린 전재산을 찾아서 돌려주지요.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아로아의 집을 빠져 나옵니다. 스프 한숟가락, 빵 한조각이라도 얻어먹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소년의 고귀함은 어떤 면에서는 고지식할 정도로 안타깝고 동시에 마치 마지막을 준비하는 순례자의 그것처럼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떠나버린 소년과 소년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 아로아의 아버지, 그리고 마치 이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 그의 평생의 꿈이었던 화가로의 길... 소년이 희망을 버린 순간, 그동안 소년 앞에서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희망이 얄밉게도 복권에 당첨된 것 마냥 밀려듭니다. 하지만 그 벅찬 희망의 파도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조용히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평생의 그의 동반자였던 파트라슈와 함께 말이죠.

종교적인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마지막은 소박하지만 장엄하고, 슬프지만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소년은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고귀함을 잃지 않았고, 마지막까지도 세상과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떠나갔습니다. 그의 마지막이 너무도 조용하기에 관객들은 더 슬퍼하고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소년의 죽음 뒤로 떠오르는 아련한 작품의 주제가가 더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먼 동이 터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

하늘과 잇닿은 이 길을.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슬픔과 감동

제가 '새벽녘의 길(よあけのみち)'은 경쾌한 멜로디의 일본판 주제가보다 서정적인 목소리가 매력적인 한국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대모 정여진씨의 주제가(물론 주제가를 불렀을 당시는 앳띈 소녀였지요)가 원작의 뉘앙스와 더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소녀의 앳띄고 맑은 목소리와 미들 템포의 상쾌한 느낌으로 아침을 연상시키는 주제가는 왠지 모를 슬픔의 한자락이 느껴지는데, 네로의 마지막과 함께 들으면 왜인지 슬프고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그건 어쩌면 소년의 슬픈 마지막에 너무 많은 감정이입이 되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52화의 TV 시리즈로 방영되었던 플란다스의 개는 1997년에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과거의 향수를 거의 그대로 간직한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비록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했던 75년작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었던 같습니다. 그 옛날 기억 속의 네로와 파트라슈를 그대로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사실 새로운 극장판의 네로는 이전의 네로에 비해 조금 더 성숙한 듯한 느낌이긴 합니다. 아로아도 마찬가지구요.

전원적이고 서정적이면서 가슴 시렸던 한 편의 드라마. 플란다스의 개는 당시 만화영화로서는 실사영화에 버금가는 감정이입을 보여준 작품으로,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메마른 어른들의 감성에도 촉촉한 눈물의 비를 내리게 했던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젖은 자국이 오랫동안 마음 한곳에 남아 있는 것은 단지 글쓴이 만의 느낌은 아닐겁니다. 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의 이야기는 이제서야 오랜만의 회상을 마치고 다시 기억의 한구석으로 돌아갔습니다. 소년과 충직한 소년의 개는 그후로도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을 겁니다. 세상의 각박함에 스스로가 너무도 익숙해졌음을 발견하게 되었을 어느날, 한번쯤은 소박하고 고귀한 삶을 살다간 소년과 개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完)

ⓒ NIPPON ANIMATION Co. Ltd.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NIPPON ANIMATION Co. Ltd.에게 있습니다.
플란다스의 개 - 10점
쿠로다 요시오 감독/플래닛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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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두번째 합작, 게드전기의 오명을 만회할 수 있을까.         

ⓒ 2011 高橋千鶴 · 佐山哲郎 · GNDHDDT


야마 테츠로(佐山哲郎)와 타카하시 치즈루(高橋千鶴)의 1980년작 순정만화 '코쿠리코 언덕에서(コクリコ坂から)'를 원작으로 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극장 아니메 '코쿠리코 언덕에서(2011)'가 이번 7월 16일 일본 여름 극장가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감독은 '게드전기(2006)'를 통해 아니메 감독으로 데뷔한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 게드전기에서 혹독한 감독 데뷔전을 치른 동시에, 팬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던 그가 다시 한 번 절치부심하여 연출한 자신의 두번째 극장 아니메입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1963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요코야마 항구 주변에 사는 평범한 여고생 코마츠자키 우미의 학창시절과 로맨스를 다룬 잔잔한 스토리의 이야기입니다. 지브리의 2010년작 '마루 밑 아리에티(2010)'처럼 잔잔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이는군요. 청춘 로맨스물이라는 점에서는 '귀를 기울이면(1995)'과 같은 드라마가 되리라 보입니다. 6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기에 뭐랄까...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도 꽤 있을 것 같고 순정만화가 원작이다보니 가슴을 적시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도 싶네요.

☞ 코쿠리코 언덕에서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게드전기를 통해 평단과 팬들로부터는 극악의 점수를 받았던 미야자키 고로, 첫 작품에서 감독과 각본을 겸임하여 아버지의 명성에 다가서고자 했지만, 애니메이션에 문외한인 그로서는 확실히 역량부족을 드러내며 실패하고 말았었는데요.(다만 흥행은 그럭저럭 성공... 이야말로 지브리의 네임밸류 덕이라 하겠지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하야오 감독은 아들인 고로가 아니메 연출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그렇게 시킬 생각도 없었던 듯 합니다. 다만, 당시 자신을 대신하여 게드 전기를 맡을만한 인재를 발굴해내지 못했고, 스즈키 토시오 사장과 고로의 의지가 강했던 탓에 반포기상태로 고로에게 게드전기를 맡겼던 것으로 회자되고 있는데요. 그로 인해 미야자키는 만화영화 연출가로서는 초보였던 아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던 듯 싶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각본과 인물 설정 등에서 한계를 드러낸 고로는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던 셈이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다릅니다. 일단 하야오 자신이 아들을 아니메 연출가로 인정, 혹은 연출가로 키울 것을 결심한 듯 보이는군요. 그것은 게드전기에서 원안만 던져주었던 것과 달리 이번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기획과 각본을 맡아 아들의 뒤를 받쳐주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가능합니다. 사실 완벽주의자에 잔소리꾼인 하야오 감독의 성격상, 자신의 제자 혹은 자신이 키우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거든요. 과거 하야오의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던 故 콘도 요시후미의 경우도 귀를 기울이면 제작 당시 이것저것 너무 많이 간섭하다가 둘이서 의견충돌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게드전기에서 원안만 맡았다는 것은 당시 고로에게 관심을 끊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고, 이번 작품에서 기획과 각본을 맡아 아들을 지원한다는 것은 한 번 연출가로 키워볼 마음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군요.

각본은 하야오와 더불어 게드전기에서 고로와 같이 각본을 맡았던 니와 케이코(丹羽圭子)가 맡았는데요. 케이코 역시 게드 전기가 첫 각본이었기에 고로의 어시스턴트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픔이 있다 하겠습니다. 다만 아리에티에서 하야오와 공동 각본을 맡은 뒤 연타석으로 이번 코쿠리코 언덕에서도 하야오와 공동 각본을 맡는 것으로 보아 그녀 역시 하야오에게 뭔가 트레이닝을 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군요. 하야오는 이들 젊은 세대들에게 각각 연출과 각본 수업을 시키는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은 '마녀배달부 키키(1989)', '바다가 들린다(1993)' 등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콘도 카츠야(近藤勝也)가 맡았으며, 프로듀서는 스즈키 토시오(鈴木敏夫)입니다. 지브리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술 부분은 여기저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미술감독이 별도로 내정되지 않고 미술팀 자체가 미술을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가동될 것으로 보이는군요. 상당수의 지브리 작품들이 그동안 서너명의 미술감독이 선임되어 제작되었는지라 어찌보면 이제 지브리 미술은 감독이 따로 필요치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감독이 없어도 지브리의 미술은 여전히 훌륭하니까요. 적어도 이번 코쿠리코 언덕 역시 미술에서만큼은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일단 시사회의 반응은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6월 29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가 열렸던 것 같은데 대체적으로 호평일색인 것 같더군요. 일단,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작품이 게드전기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는 각본과 기획을 담당한 미야자키의 노련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풋내기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으로 볼 때 괜찮은 흐름이 아닐까 싶군요. 적어도 미야자키를 능가하지는 못하겠지만, 미야자키의 스타일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감독으로서 어쩌면 고로가 제격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앞으로 약 보름 뒤에 개봉될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직접 봐야지 판단할 수 있겠지만 말이죠.

☞ 유튜브 트레일러 영상 (보러가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高橋千鶴 · 佐山哲郎 · GNDHDDT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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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재해석한 오리지널 건담의 부활

ⓒ SOTSU · SUNRISE


'동전사 건담 AGE(2011)'에 이은 또 하나의 신 건담 시리즈는 놀랍게도 건담의 시초인 '기동전사 건담(1979)'을 새롭게 재해석한 코믹스 '건담 디 오리진(이하 오리진)'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건담팬들이 조심스럽게 그 가능성을 점쳐보거나 바라고 있었던 일이지만 막상 이렇게 현실화가 되니 놀랍기 그지 없네요. 많은 건담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Gundam The Origin Manga to Launch Anime Project, ANN (바로가기)

애니화 소식은 카도카와 서점의 건담 전문지 '월간 건담 에이스'를 통하여 발표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월간 건담 에이스는 바로 창간호부터 오리진을 연재해온 잡지이기도 한데요. 얼마전 반다이에서 6월 25일에 새로운 건담 시리즈를 발표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오리진을 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퍼스트 건담의 메카닉 디자이너 오카와라 쿠니오 역시 새로운 건담 시리즈에 대해 언젠가 잠깐 언급을 했던 적이 있었죠. 그때는 그것이 건담 AGE를 의미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이제보니 바로 이 오리진을 얘기하는 것이었나 봅니다. 

원작 코믹스는 79년작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자 작화감독으로, 아니메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작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거대 프로젝트입니다. 토미노 요시유키의 원작인 건담을 코믹스화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야스히코는 당사자인 토미노 감독의 격려로 어렵사리 펜을 잡았고 그로부터 10년 만인 올해 마침내 오리진의 완결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원작자인 토미노 만큼이나 건담에 큰 영향을 끼친 그이기에 이 오리진은 확실히 여타 건담 관련 소설이나 코믹스와는 격을 달리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반면, 원작 이후 급속도로 거대해진 우주세기의 세계관을 이 오리진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데요. 야스히코 본인은 오리진이 건담의 오리진이자 온리 원(Only One)이다라는 소신을 밝힌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 말 그대로 오리진은 퍼스트 건담의 리메이크일 뿐 우주세기 전체를 꿰뚫는 이야기는 아닌 셈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신 시리즈는 퍼스트 건담 이후 몸집이 불어난 우주세기의 많은 뒷 이야기나 설정을 커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MSV 등을 통해 등장한 조니 라이덴이나 신 마츠나가 같은 인기 캐릭터들을 보는 것 같은 소소한 재미가 이번 시리즈에서는 어려울 것이다라는 것이죠. 하지만, 단순히 코믹스의 내용을 그대로 만화영화로 만들 것이냐는 두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30년이 지난 구시대적 SF 설정은 요즘의 추세에 맞춰 바뀌겠지만, MS의 디자인을 포함하여 오리진이 내포한 구시대적 스타일과 가치관을 과연 얼마만큼 현대적인 형태로 각색해내느냐는 시리즈의 성패가 좌우할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모든 리메이크작들이 가진 숙명이기도 하지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오리진 프로젝트는 30여년전보다 압도적으로 세련되어진 신작화로 과거의 건담을 리메이크한다는 기본 뼈대 위에서 몇몇 변주가 가해진 작품으로 태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도 전체적인 느낌은 현재 연재중인 '기동전사 건담 UC(2010)'의 스타일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군요.(예를 들면 MS 전투장면과 같은 부분) 아직 연출가나 각본 스탭, 작화 스탭 등 핵심 제작진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오리진은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야스히코나 메카닉 디자이너였던 오카와라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여러가지 스타일링이 더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무엇보다 샤아 아즈나블이나 세일러 마스와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묘사될지, 급하게 투입되어 조악한 디자인으로 등장했던 모빌 아머 등은 어떻게 스타일링이 될지 등이 몹시 궁금하네요.

 

다만, 자쿠러님과 같은 분들이 언급했다시피 금번 오리진의 타겟 시청층 설정은 시리즈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올드 팬들을 겨냥하면 작품의 생명력이 짧을 터이고, 신세대 팬을 노리기에는 기본 컨셉 자체가 그들과 맞지 않은 것이 오리진의 난제라 하겠는데요. 여기에 50화에 가까웠던 79년 시리즈나, 코믹스로도 21권이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의 길이로 만들 것이냐 하는 것도 이번 시리즈의 이슈라 하겠습니다. 예전과 같은 50화의 대작 시리즈는 요즘 거의 보기 힘든지라 건담도 예외는 아닌데요. 그렇다고 무리하게 스토리를 줄여 편수를 줄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 건담 The ORIGIN 아니메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 (바로가기)

ⓒ SOTSU · SUNRISE

그렇다면 결론은 1쿨이나 2쿨 단위로 제작하여 시즌제로 방영하거나, 케이블 TV 등에서 PPV 방식으로 방영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퍼스트 건담의 리메이크라는 상징성을 가진 거대 프로젝트이니 시류를 따르기 보다는 뚝심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적어도 DVD 시장에서만큼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지 않을까 싶네요. 오리진을 기점으로 우주세기 프라모델들도 다시 새로운 스타일로 출시될 가능성도 있구요.

어찌되었건 이번 오리진 프로젝트는 전설적인 과거의 시리즈를 최신 작화로 볼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의미있는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제까지 많은 전설적인 명작들이 리메이크라는 명제를 통해 신작화로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만, 이번 건담 리메이크는 이제까지 리메이크되었던 작품들의 화제성을 훨씬 뛰어넘는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지요. 거기에 건담 에이스는 오리진 이후 후속 시리즈로, 키타즈메 히로유키의 '기동전사 제타 건담'을 연재할 예정이라고 하니, 자칫 하다가는 몇 년 뒤에 제타 건담을 리메이크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를 일이네요. 어찌되었건 건담의 팬으로서는 행복한 상상들인데요. 이번 오리진의 방영과 발맞춰 부디 한국에서도 영상매체로 건담이 발매되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OTSU · SUNRISE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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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신세대와의 조우를 꾀하다 

ⓒ 2011 SUNRISE


문으로 무성하던 새로운 건담 TV 시리즈가 그 실체를 드러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 후손으로 이어지는 건담의 이야기, 이제까지의 건담 시리즈와는 다른 성격의 작품으로 태어날 이 건담 시리즈의 타이틀은 '기동전사 건담 AGE'. 올 가을 방영을 목표로 현재 제작 중에 있다고 하는군요.

☞ Level 5 to Help Create Gundam AGE Anime This Fall (바로가기)

현재 일본의 각종 사이트들을 비롯, 한국에서도 신작 건담은 건담팬들에게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다만, 가존 건담 팬들에게는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요. 왜 그런지는 다음 링크에 걸린 소학관의 만화잡지 '코코로 코믹 매거진'의 해당 페이지를 찍은 사진을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超速報】新ガンダムのタイトルは「機動戦士ガンダムAGE」! (바로가기)
☞ 新ガンダム「機動戦士ガンダムAGE」、レベルファイブが全面協力でコロコロコミックと連動?情報がネット上に流出 (바로가기)

보시다시피 한눈에 봐도 건담 시리즈가 그동안 지향하고 있던 청소년 이상의 시청층이 아닌,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저연령가 애니메이션임을 짐작하실 수가 있을 겁니다. 본 시리즈의 원안과 기획은 게임 소프트 회사인 '레벨 파이브'가 맡고 있는데요. 레벨 파이브는 최근에 방영되는 TV 아니메 '골판지 전기(ダンボール戦機/2011)'의 원작사이며, 한국에서는 썬더 일레븐으로 유명한 어린이 축구 만화영화 '이나즈마 일레븐(2008)'의 원작을 맡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잡지에 실린 건담 AGE의 느낌은 척 봐도 이나즈마 일레븐과 골판지 전기의 뉘앙스가 골고루 풍겨나고 있다 하겠습니다. 시나리오는 레벨 파이브의 대표이사 겸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인 히노 아키히로(日野晃博)가 맡고 있군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 후손으로 이어지는 삼대에 걸친 이야기와 로봇 스스로 성장하는 AGE 시스템을 탑재한 건담이라는 두가지 소재는 조상의 유산을 이어받아 로봇을 단순한 기계가 아닌 동료 겸 친구로 여기고 함께 싸운다는, 소년만화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애초에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되었다면 이러한 전개가 당연하다 하겠는데요. 수수께끼의 에일리언 가프란과의 싸움을 그리는 점에서는 더블오 극장판 이후 두번째로 외계인과 조우하는 건담 시리즈가 되는 셈이기도 합니다. 물론, 스타일은 더블오와 상이하겠지만요. 아참, 루리웹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더블오 건담의 스탭들도 상당수 참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잡지사진에 모습을 드러낸 건담 AGE의 터치는 어딘지 모르게 더블오 건담의 느낌이 묻어난다 하겠습니다.

☞ [정보] 기동전사 건담 AGE와 관련된 간략 정보들 (바로가기)

개인적으로, 건담 시리즈가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다지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건담 시리즈가 만화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타파한 상징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번의 시리즈를 거치는 와중에 이제는 그 이상의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거든요. 헤이세이 3연작 중 '기동전사 건담 윙(1995)'부터는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얻는 시리즈로 거듭났으며(물론, 퍼스트 당시에도 여성팬은 꽤 있었지만), '턴에이 건담(1999)'과 같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SF로 그려지기도 했지요. 완성도만 보장된다면 사실 건담이 다양한 형태의 장르로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과거 우주세기의 팬들이라든지, 시드 이후 신 건담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이 건담 AGE는 만족스러운 카드는 아니겠지만요. 물론, 저 역시 이 작품을 볼 생각은 없습니다. 연령대가 너무 안맞아서 아무래도 접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얼마전에 시험삼아 골판지 전기를 몇 화 감상해 보았는데, CG를 활요한 깔끔한 작화는 그런대로 볼만했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서 저한테는 버겁더라구요.

다만, 한가지 맘에 안드는 것은 건담 AGE의 디자인입니다. 위의 링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놓고 퍼스트 건담을 모티브로 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요. 새로운 연령층을 공략하는 새로운 건담이니만큼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기대 이하의 모습이네요. 퍼스트 건담을 오마쥬하여 스타일링이 된 건담 AGE의 실루엣은 역시 퍼스트 건담의 오마쥬 디자인이기도 했던 더블오 시리즈의 O 건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번 건담 AGE의 디자인은 바로 퍼스트 건담을 창조한 오카와라 쿠니오 옹이 맡았다고 하는데요. 시드부터 계속적으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시는 오카와라 선생의 이번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제는 후학을 배출하는데 힘쓰셔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번 메카닉 디자인은 '기동전사 V 건담(1993)', '신기동전기 건담 W(1995)', '기동신세기 건담 X(1996)', '턴에이 건담(1999)' 등 후기 건담 시리즈의 메카닉 디자이너로 참여했으며, '마크로스 제로(2003)'의 메카닉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이시가키 쥰야(石垣純哉)를 필두로,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2007)', '기동전사 건프라 빌더즈 비기닝 G(2010)'의 에비카와 카네타케(海老川兼武), '코드기어스 반역의 를르슈(2006, 2008)',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2007)'의 테라오카 켄지(寺岡賢司) 등이 맡았다고 하는군요.

어찌되었건 더블오 시리즈의 스탭이 참가하여 외계인과 건담과의 시원스러운 대결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바, 액션연출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한 번쯤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SUNRISE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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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기대에 못미쳤던 철권 영상화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인가

ⓒ 2011 NAMCO BANDAI Games. Inc


다이 남코사의 히트 격투대전 게임 '철권'을 원작으로 한 3D 애니메이션 '철권: 피의 복수(Tekken: Blood Vengeance)'가 오는 2011년 7월 26일, 미국 전역의 375개 이상의 개봉관에서 일제 상영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영화 개봉에 맞춰 비디오 게임 타이틀도 같이 판매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 Tekken: Blood Vengeance to Run in U.S. Theaters in 3D (바로가기)

아시다시피 철권은 1994년 발매된 남코사의 대전 액션 게임으로, 3D 격투기 게임의 선구자인 버추어 파이터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타이틀입니다. 아케이드 버전으로 출시되어 오랫동안 오락실의 인기 타이틀로 국내에서 사랑받아 왔으며, 일본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으로 발매된 뒤에 유명해진 타이틀이기도 하지요. 2007년에 발매된 철권 6에 이어 2011년 9월에는 철권 태그 토너먼트 2가 아케이드 버전으로 출시 예정에 있습니다. 1998년에는 OVA 아니메로 제작되기도 하였으며, 불과 1년전인 2010년에는 '할로윈 4(1988)'이나 '래피드 파이어(1992)' 등을 연출한 드와이트 H. 리틀 감독에 의해 미국에서 실사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죠. 물론, 격투게임을 원작으로 한 대다수의 실사영화가 그러하듯 이 작품의 완성도는 최악이었고, 결국 극장에도 개봉되지 못한 체 DVD 시장으로 직행하고 말았습니다.

앞선 두 작품의 영상화가 기대 이하였던 반면 이번 3D 애니메이션 철권: 피의 복수 편은 무엇보다 원작게임과 완벽한 싱크로를 자랑하는 3D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가장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린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작품의 프로듀서는 원작 게임의 아트 디렉터이기도 한 미즈시마 요시나리가 맡았으며, 감독은 제작사인 디지털 프론티어 소속의 모우리 유이치(毛利陽一)로, '보노보노의 쿠모모 나무의 비밀(2002)'와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2006)'에서 CG 디렉터로 참여한 신예 연출가입니다. 각본은 '카우보이 비밥(1998)'이나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2002)', '울프스 레인(2003)',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2005)', '지구로(2007)', '동쪽의 에덴(2009)' 등 상당히 굵직굵직하고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을 맡은 A급 각본가 사토 다이(佐藤 大)가 맡았습니다. 

사토 다이가 각본을 맡았다는 사실은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상당히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 작품이 그저 격투장면에만 신경쓴 단조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이니까요. 디지털 프론티어는 이미 '애플시드(2004)', '애플시드 Ex Machina(2007)', '레지던트 이블: 디제너레이션(2008)' 등을 통해 풀 CG 애니메이션의 노하우가 풍부한 제작사라는 점도 완성도에 믿음을 줍니다. 문제는 결국 신예 연출가가 이러한 리소스를 얼마나 잘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내느냐 인데, 레지던트 이블: 디제너레이션의 경우가 본 작과 스탭진의 구도가 유사(연출은 초보, 각본가는 베테랑)했음을 감안할 때 적어도 레지던트 이블 정도의 수준은 나오지 않을까 예상이 되는군요. 물론, 사토 다이도 '캐산 실사판(2004)'와 같은 망작에 참여한 적이 있긴 한지라 안심은 이릅니다만.

영어버전의 트레일러는 기대 이상으로 싱크로가 높습니다. 성우들의 연기도 만족스러운 것으로 보이구요. 개인적으로는 일본어 버전보다는 영어 버전이 더 나은 듯 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일본식 표현이나 억양이 질리는 느낌이라서 그런걸까요. 반가운 캐릭터들과 강렬한 액션, 뛰어난 CG 퀄리티로 무장한 철권: 피의 복수편. 실사영화가 표현해내지 못했던 격투 액션의 참맛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NAMCO BANDAI Games. Inc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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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맨에 이은 본즈식 본격 히어로물

ⓒ BONES · トワノクオン製作委員会


'철의 연금술사(2003/2009)', '에우레카 세븐(2005)', '흑의 계약자(2007)', '망념의 잠드(2008)'로 아니메 팬들에게 웰메이드 스튜디오로 인정받고 있는 본즈(BONES)에서 6부작 극장 아니메로 기획된 '토와노 쿠온(2011)'을 올 6월 중순에 개봉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토와노 쿠온은 본즈의 전작인 '히어로 맨(2010)'이나 '스타 드라이버 빛의 타쿠토(2010)'에 이은 본즈식 히어로 액션물로서, 근래 일본 아니메의 유행코드 중 하나인 히어로 SF 액션물 중에는 첫번째로 극장 아니메로 등장하게 된 셈입니다. 본즈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선라이즈의 '타이거 앤 버니(2011)'나 '세이크리드 세븐(2011)', 전통의 명가 매드하우스의  '울버린(2011)', '엑스맨(2011)'과 좋은 비교가 될 듯 하네요.

☞ 세이크리드 세븐(Sacred Seven), 선라이즈의 달라지는 행보 (보러가기

감독은 이이다 우마노스케(飯田馬之介)로, 안타깝게도 작품을 한참 제작하던 지난 2010년 11월 말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마노스케 감독은 '기동전사 건담 08 MS 소대(1996)'을 연출하던 도중 세상을 떠난 칸다 다케유키 감독의 뒤를 이어 08 MS 소대를 7편부터 연출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그가 칸다 감독의 뒤를 따라 작품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아쉬운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마노스케 감독의 자리는 '비경탐험태 팜&일(1995)', '반드레드(2000)', '스트라토스4(2003)' 등 미소녀 액션물을 섭렵해온 모리 타케시(もりたけし)가 맡게 되었는데요. 타케시 감독은 본즈의 '스컬맨(2007)'을 통해 시리어스한 히어로 애니메이션을 인상적으로 연출했던 경력이 있기에 이번 작품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은 본즈를 대표하는 일류 작화가인 카와모토 토시히로(川元利浩)가 맡고 있습니다. '고식(2011)'에 이어 연달아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는데, 이 두 작품은 '천보이문 아야카시 아야시(2006)' 이후로 그의 5년만의 캐릭터 디자인 복귀작이기도 합니다. 고식이나 토와노쿠논이나 이전에 비해 좀더 미소녀적 취향으로 캐릭터 터치가 변한 듯 싶군요. 시리즈 구성은 사이조 네모토(根元歳三)로, 고식에도 각본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구로(2007)', '샹그리라(2009)' 등에 각본 스탭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본작의 주인공인 쿠온은 헤어스타일이나 헤어밴드에서 지구로의 두 히어로인 블루나 죠미를 연상시키는 군요.

이 밖에 컨셉 디자인에는 히어로맨에서 크리쳐 디자인을 맡았던 타케바 신고(武半慎吾)와 일류 메카닉 디자이너 이즈부치 유타카(出渕裕)가 가세하고 있으며, 작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이 발휘된 모습 '베스티아'의 디자인은 망념의 잠드에서 메카닉 디자인을 맡은 미즈하타 켄지(水畑健二)가 맡아 본즈만의 독특한 히어로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다른 본즈의 히어로 물에 비해서는 늦게 등장했지만 토와노 쿠온은 애초에 카와모토가 오리지널 아니메로 무려 4년전부터 기획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바, 오히려 본즈식 히어로 아니메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6부작 극장 아니메인만큼 퀄리티는 일반 TV 시리즈를 상회할 것으로 기대되는군요.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는 시리어스한 본즈식 히어로 아니메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망념의 잠드 이후 히어로 맨과 빛의 타쿠토에서 보여온 본즈의 제작 방향을 볼 때, 토와노 쿠온은 최신 흥행 트렌드와 본즈만의 스타일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한 작품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토와노 쿠온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 토와노 쿠온 프로모션 영상 (보러가기)

ⓒ BONES · トワノクオン製作委員会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BONES · トワノクオン製作委員会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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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에 선 스필버그의 신작

ⓒ 2011 Paramount Pictures


벨기에의 작가 죠르쥬 레미(Georges Rémi)가 에르제(Hergé)라는 펜네임으로 1929년 창조한 고전명작 '틴틴의 모험(혹은 땡땡의 모험)'이 블록버스터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반지의 제왕'의 명장 피터 잭슨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올해 최대의 기대작 중 하나가 될 이 작품 '틴틴의 모험(2011)'은 이번 겨울 블록버스터로 팬들을 만나게 될 예정이라는군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틴틴의 모험은 애초부터 3부작으로 기획된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입니다. 원작의 9편에 해당하는 '황금집게발을 가진 게'와 11편인 '유니콘의 비밀', 그리고 12편 '레드 라캄의 보물'을 베이스 스토리로 삼아 제작될 계획인 것 같네요. 아마 각 편마다 별도의 에피소드를 갖고 진행되는 이야기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깐 반지의 제왕 3부작처럼 연결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편이 끝나면 사건이 일단락 되는 형식의 전개가 될 것 같다는 의미죠.

사실 스필버그로서는 이번 틴틴의 모험은 꽤나 염원하던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가 루카스와 합작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바로 이 틴틴의 모험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영화이기도 하니까요. 원작의 빅팬이기도 한 그는 83년 에르제가 사망 직후 틴틴의 판권을 가져왔다고 합니다.(당시 에르제는 틴틴의 실사영화를 스필버그의 상의하려던 참이었지요) 그것은 언젠가는 이 작품을 반드시 영화화 하겠다는 생각이었다는 뜻인데요. 이러한 그의 의지는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지연과 난항을 거답하다가 결국 실사영화가 아닌 만화영화로 그 방향이 변경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방향전환이 괜찮다고 보입니다. 이런 고전 소년 모험물을 실사영화로 만들어낼 경우 자칫하면 너무 뻔한 전개가 될지도 모를테니까요.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의 방향성을 선회시킨 것은 프로듀서인 피터 잭슨이라고 전해집니다)

만화영화는 기존의 CG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형태로, 실사영화에 근접한 비주얼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퍼포먼스 캡쳐라 불리는 기법으로, 가깝게는 올초 디즈니가 제작한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2011)'가 있구요. 좀 멀리는 로버트 져메키스의 '폴라 익스프레스(2004)'와 '베오울프(2007)' 등이 있습니다. 이 세 작품 모두 로버트 져메키스가 세운 이미지무버스 필름의 퍼포먼스 캡쳐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요. 다만, 이미지무버스 디지털이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를 끝으로 문을 닫았기에 이번 틴틴의 모험에 사용된 퍼포먼스 캡쳐 기술은 이미지무버스의 것이 아닌,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피터 잭슨이 설립한 스튜디오 웨타 디지털이 맡은 것으로 보입니다.
 

웨타 디지털은 '반지의 제왕' 3부작부터 '킹콩(2005)', 그리고 '아바타(2009)'에 이르는 2000년대 최고의 특수효과 영화들을 제작했으니 만큼 그 실력과 명성에 있어서는 져메키스의 이미지무버스 디지털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는데요. 다만 이번의 경우는 100% 퍼포먼스 캡쳐로 진행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그들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까지 100% 퍼포먼스 캡쳐의 영화들이 작품성에서는 인정을 받을지언정 대부분 흥행에서는 쓴잔을 마셨다는 점에서 틴틴의 모험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또한 '인디아나존스: 해골왕국의 비밀(2008)'에서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스 만큼이나 노쇄함을 보여주었던 스필버그의 엔터테인먼트 감각이 얼마나 빛을 발휘할지도 궁금하군요. 자칫 이전 스필버그식 가족 오락영화의 수준에 그친다면 작품의 볼거리는 잘 만들어진 CG 애니메이션 외에는 그닥 내세울게 없는 작품이 될지도 모릅니다. 뻔한 스토리를 갖고도 드라마틱하고 볼거리 넘치는 작품(구체적으로 아바타)을 탄생시켰던 제임스 카메론마냥 스필버그도 이번 작품에서 강한 임팩트를 선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클릭)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Paramount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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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니메 아티스트의 부고에 조의를 표하며...


'일의 죠(1972)', '에이스를 노려라(1973)', '보물섬(1978)', '베르사이유의 장미(1979)', '집없는 아이(1980)', '스페이스 코브라(1982)', '고르고13(1983)', '블랙잭(1996)', '백경전설(1997)' 등 숱한 명작 아니메를 만들어내었으며, 하모니 기법, 투과광/입사광 기법, 감각적인 화면분할과 반복연출을 통해 리미티드 아니메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했던 아니메의 거장 데자키 오사무가 4월 17일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했다고 합니다. 향년 68세.

테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에 입사하여 스기이 기사부로, 린 타로, 토미노 요시유키, 타카하시 료스케 등과 함께 테즈카 오사무의 대표적인 제자로 알려진 데자키 오사무 감독은 아니메 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낸 인물 중 하나입니다. 비록 83년 고르고 13의 흥행대참패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근래의 아니메 팬들에게는 생소하다시피한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위에서 언급한 테즈카 오사무의 다섯 제자들과 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를 더해 1세대 아니메 감독으로 아니메를 이끌어온 레전드 급의 연출가라 할 수 있습니다.

☞ 순간을 포착하는 영상아티스트 '데자키 오사무' by 캅셀 (바로가기)

제가 아니메를 보아온지가 마징가 Z를 시작으로 어언 36년 쯤 되어가는데, 그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최초로 아니메 연출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인물이 바로 데자키 오사무 감독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초창기 많은 아니메 팬들에게는 큰 영향력을 준 인물이라 할 수 있지요. 내일의 죠의 주인공 죠나, 보물섬의 실버선장,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 등 그가 그려낸 인물들은 원작 이상의 드라마틱함과 카리스마를 보유한 인물들로 승화되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만화영화일을 하던 당시 총감독을 맡았던 '바이오닉 식스(출동 바이오 용사, 1987)'는 예의 드라마틱함이 사라진 미국식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그 분에 대해 할 이야기는 많지만 일단 여기서 줄일까 합니다. 어제밤부터 몸살과 급체로 거의 14~5시간을 고생했더니 몸이 말이 아니네요. 회사도 출근 못하고 겨우 6시가 되어서야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거든요. 지금도 할말은 많은데 정신이 몽롱하고 손가락에는 힘이 풀려 도저히 글을 끝마칠 수가 없군요. 데자키 오사무 감독이 이렇게 떠나가다니 새삼 그와 비슷한 연배의 아니메 거장들의 건강도 염려스럽군요.


데자키 오사무의 대표 연출작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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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감상기에는 부득이하게 작품의 내용과 결말의 일부분이 이야기되고 있으니 작품의 결말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스탭>

◈ 감독: 신카이 마코토
◈ 원작: 신카이 마코토
◈ 제작: 코믹스 웨이브 필름


<시놉시스> 

초등학교 시절 단짝친구로 지내온 타카기와 아카리. 아카리가 갑작스레 동경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의 토치기로 전학가게 되면서 둘은 행복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뒤로 한 체 헤어지게 된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서로 편지로 안부를 주고 받던 둘이었으나, 고교진학을 앞두고 타카기마저 동경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의 카고시마로 전학을 가게 된다. 아카리와의 거리가 더더욱 멀어지는 것을 염려한 타카기는 이사를 떠나기 전 아카리를 만나기 위해 토치기로 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세심히 기차시간과 환승역을 살피고 7시에 아카리와 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뒤 역에 타카기는 기차에 오르지만 갑작스레 폭설이 내리면서 시간은 지체되기만 한다. 아카리가 상처받을 것이 걱정되는 타카기. 하지만 하늘은 이런 타카기의 초조함을 모르는지 연신 눈을 퍼붓고, 결국 열차는 선로 위에 멈춰서고 마는데...


우주에서 하늘로, 그리고 지상으로 옮겨져온 신카이식 사랑이야기

카이 마코토 감독의 '별의 목소리(2002)'부터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 그리고 이번 '초속 5cm(2007)'에 이르기까지 감독이 이야기하는 테마와 소재는 동일합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떨어지게 된 남녀의 애틋한 감정과 그리움, 그리고 그것을 통한 성장과 깨달음. 우주라는 머나먼 시공으로 인해 이별하게 된 남녀의 이야기에서부터 영문도 모른 체 혼수상태에 빠져 자신에게 연락을 하지못하는 그녀가 자신을 버린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지나 초속 5cm에서는 전학으로 인해 서로 멀리 떨어져 버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전작의 이야기들이 외계문명과 우주탐사대(별의 목소리)나 분단된 일본의 사이에 위치한 신비한 탑(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과 같은 판타지스러운 배경과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했던 반면, 이번 작품은 현실적인 배경을 소재로 한 이야기입니다. 판타지나 SF스러운 소재가 사라짐으로써 작품은 이전 작들에 비해 보다 더 이별과 그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스케일이 작아진만큼 이야기의 디테일은 더욱 농밀해졌으며, 등장인물들의 수가 적어진만큼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마음에 더 가까이 와닿습니다. 그로 인해 이제까지의 신카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관객에게 주는 인상은 깊습니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져왔던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과연 만화영화로 얼마나 설득력있게 그려질 수 있을까요. 이미 진부할대로 진부한 소재의 멜로 드라마가 과연 만화영화로 그려진다고 얼마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신카이 감독 자신 역시 이 비슷한 소재를 이미 세번이나 스크린에 그려왔기에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작품에 대한 선입견은 그다지 기대가 높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깊은 여운의 바다로, 그리움의 저편으로 관객들을 이끌어 가게 됩니다.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마음을 정화시키는 아름답고 깨끗한 미술

속 5cm의 매력을 몇 배로 끌어올려주는 힘은 바로 서정적이면서도 놀랍도록 세밀하고 선명한 배경미술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상당히 정적인 작품으로 장면과 장면간의 호흡이 긴 롱테이크도 많고 캐릭터들의 움직임도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지루한 작품입니다만, 아름다운 배경으로 인해 그러한 지루함은 오히려 아름다운 배경을 천천히 감상하는 여유로움으로 바뀝니다. 벚꽃이 만발한 도입부의 화사한 봄 배경은 마치 눈부신 봄햇살을 받으며 벚꽃구경을 나온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광원효과나 원근감을 부여한 것과 같은 각종 그래픽 효과는 서정적인 배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처음부터 풀 HD 구현을 목표로 했던 작품인지라 그 선명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합니다. 극장이나 블루레이로 감상한 관객들이라면 이야기에는 감동하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배경에는 만장일치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포토샵의 엄청난 힘을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아름답고 세밀한 것은 배경 뿐만 아니라 사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칠판을 지우는 모습이나 편지지에 글씨를 쓰는 장면, 열차표에 형광펜으로 노선을 따라 선을 긋는 장면 등에서부터 차창거울에 비춰지는 기차의 실내모습, 오래 써서 천이 헤진 기차 시트 등, 세심한 부분에까지 상당한 묘사가 수반되고 있습니다. 신카이 감독 본인은 이번 초속 5cm의 경우 전작인 구름의 저편... 에 비해 묘사의 밀도를 줄이고 단순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은 단순화했다고 언급하긴 했습니다만, 어지간히 주의깊게 보지 않고서야 두 작품 간의 밀도 차이를 느끼는 것은 힘들 듯 싶군요. 이것은 풀 HD로 제작된 선명한 화질도 한 몫을 하는 듯 싶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는 실제 일본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여 이 장소를 가본 일본 관객들에게는 친밀감을 주기도 합니다. 2화의 배경이 되는 다네가지마의 경우는 작품에서처럼 실제로 우주항공 관련 설비들이 위치하고 있다고 하지요. 초속 5cm는 이렇게 실제 세상과의 거리를 좁혀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살리려는 흔적이 엿보입니다. 다만 감독 본인도 이미 밝혔듯이 그런 구도와 조건 안에서 실제 작품은 상상력에 근거한 비주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한 여름에 로케한 이와후네 역이 작품에서는 눈덮인 한겨울로 묘사되는 부분 등이 바로 그러한 것으로, 현실적인 배경이면서도 초속 5cm의 세계는 왠지 모를 판타지의 한자락의 느껴진다 하겠습니다. 마치 추억 속에 기억되는 그 옛날의 어느 장소인 것처럼 말입니다.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사춘기의 사랑을 테마로 한 소년과 소녀의 성장이야기

학으로 인해 멀리 떨어지게된 초등학교 시절의 소꿉친구. 연인 사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이 둘의 이야기는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숱한 비련의 연인들에 비해 임팩트도 약하고 신선미도 떨어집니다. 사춘기 시절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간직하고 지내는 순정적인 남자 주인공의 인생 이야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 밋밋한 스토리가 생각 이상의 진한 여운을 가져다 주는 것은 드라마틱하지 않은 평이함으로 인해 전해지는 공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비슷한 상황 겪었을 듯한 그런 현실적인 상황, 그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평범한 진리로 인해 맺어지지 못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잔잔하고 긴 롱테이크와 세심한 감정 표현으로 고급스럽게 그려집니다. 평범한 사랑이야기는 아름다운 배경으로 인해 눈이 시리도록 절절하게 느껴지고, 서로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나약함은 관객들에게 그들과 같이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것은 절제된 감정을 배경과 상황으로 은유적으로 묘사해낸 연출의 힘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풋풋한 사랑을 간직한 체 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이 애틋한 감정이 추억으로 변해가는 성장이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비록 안타까운 그리움이 가득하지만 그 끝은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일말의 희망과 전진을 엿볼 수 있습니다. 2화에서 끝내 타카기에게 고백하지 못한 체 그와의 거리를 느끼고 절망한 카나에가 타카기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우주로 향해 쏘아올려진 로켓의 장관 역시 현재의 슬픔과 괴로움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긍정적인 가치관의 은유적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토록 답답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연애감정의 표현에 소극적인 일본적 감성의 표현이기도 한지라 우리의 관점에서 공감을 못하거나 답답해하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만.)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카기와 아카리의 풋풋한 헤어짐과 애틋한 재회, 타카기를 짝사랑하는 카나에의 슬픈 순애보, 타카기의 방황과 추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연작단편 형태로 구성한 것은 꽤 세련되고 멋진 전개가 아닌가 합니다. 각 편 사이에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새로운 에피소드의 시작으로 잘라낸 것은 마치 연극의 무대 전환과도 같은 여운을 안겨준다고 하겠는데요. 세심하고 아름다운 배경과 세련되면서도 절제된 이러한 연출방식으로 인해 초속 5cm는 평범한 소재를 고급스러운 드라마로 변주해내게 됩니다.  

정적이면서 절제된 이야기는 3화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면 갑자기 급반전하게 됩니다. 일본인들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흐르면서 이제까지의 고요한 전개와는 달리 뮤직비디오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을 빠른 속도로 화면에 풀어놓습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절제되어왔던 감정을 노래와 함께 쏟아내는 듯, 조용하면서도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합니다. 혹자에겐 다소 생뚱맞은 불친절한 전개가 아닌가 하는 불평도 들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라스트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설명 없이도 전해지는 그리움과 회한, 아쉬움과 애틋함이 녹아든 음악의 라스트에 이르러 그려진 극적인 조우와 신기루 같은 이별은 긴 여운을 남기며 마지막 엔딩을 향해 흐릅니다. 어찌보면 초속 5cm는 이 라스트의 드라마틱한 뮤직 비디오를 위한 한 편의 긴 프롤로그였는지도 모릅니다.

초속 5cm는 소심하면서도 평범했던 어느 남녀의 풋풋한 시절을 아름답고 정갈한 터치로 그려낸 미셀러니(경수필)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깊이 있는 메시지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추억을 생각하게 하는 공감과 평안함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당신이 언젠가 해보았음직한, 그리고 고단한 삶으로 인해 잊고 지내던 풋풋한 사랑의 추억. 그 여운은 초속 5cm의 느린 속도로 다가오지만 그 파문은 마음 속에서 오랜동안 물결치고 있을 겁니다.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 초속 5cm DVD 리뷰 (바로가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 달의 TTB 리뷰 2011년 4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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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물에서 히어로 물로 방향을 전환하는 전통의 로봇 아니메 제작사

ⓒ SUNRISE · PROJECT S7


2011년 4월 예정인 선라이즈의 히어로물 '타이거 & 버니(2011)'에 이어 또 한편의 선라이즈표 오리지널 히어로 아니메가 출격대기중에 있습니다. 타츠노코의 40주년 기념 히어로물 '카라스(2005)'를 집필한 요시다 신(吉田伸)이 시리즈 구성을 담당한 이 작품의 제목은 '세이크리드 세븐(2011)'. 원안은 선라이즈의 창작팀 야다테 하지메가 맡았습니다.

☞ 세이크리드 세븐 공식 홈페이지 (클릭)

예고편의 캐릭터 디자인을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으실 텐데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라이즈의 전작 '코드기어스' 시리즈와 상당히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하겠습니다. 다만, 키무라 타카히로가 디자인한 코드기어스의 캐릭터에 비해서는 좀 얌전한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요. 세이크리드 세븐의 캐릭터 디자인은 일단 원안을 이노마타 무츠미가 맡고 있습니다. 이노마타 무츠미(いのまた むつみ)는 일본을 대표하는 미형 캐릭터 디자이너로, '사이버 포뮬러' 시리즈나 '브레인 파워드(1998)'와 같은 선라이즈 작품들의 캐릭터 디자인 원안을 맡은 적이 있으며, 게임 타이틀 '테일즈...'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여성 디자이너죠.

이 때문에 육감적인 바디라인을 강조하던 키무라의 오덕스러운(?) 캐릭터 대신 단정하고 조숙하지만 보다 더 미형의 캐릭터로 그려졌다 하겠습니다. 대신 실제 작품에서는 무츠미의 원안을 바탕으로 치바 유리코(千羽由利子)와 나카타 에이지(中田栄治)가 캐릭터 디자인을 다시 하게 되지요. 이 둘이 모두 코드기어스 시리즈에서 작화감독을 맡았었기에 세이크리드 세븐의 캐릭터는 코드기어스와 유사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슈트 디자인은 교부 잇페이(形部一平)가 맡았습니다. 아니메 업계의 인물이 아니라 그래픽 아트 등으로 광고나 일러스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로, 아니메 작업은 이번 세이크리드 세븐이 처음인 것 같군요. 감독은 코드기어스 2기에서 연출을 맡았으며, '갤럭시 엔젤(2001)', '아쿠아리안 에이지(2002)', '위치블레이드(2006)' 등의 작품을 연출한 오오하시 요시미츠(大橋 誉志光). 히어로물과 학원물이 결합된 형태의 작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일단 트렌드를 따르는 작품이라 해야겠지요.

선라이즈의 타이거 & 버니와 세이크리드 세븐의 잇단 방영소식은 신작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코드기어스 시리즈나 건담 더블오를 통해서 여전히 로봇 아니메를 자사의 간판 작품으로 내세우던(좀 다른 전개이긴 했지만, 코드기어스도 엄연히 로봇이 등장하는 작품이죠) 선라이즈가 한 해에 잇달아 두 편의 히어로물을 내세운다는 것은 선라이즈 작품의 방향성에 뭔가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를 위해 타이거 & 버니에는 카라스의 감독 사토 케이이치와 디자이너 하야마 켄지를, 이번 세이크리드 세븐에는 카라스의 각본가 요시다 신을 영입하는 등 히어로물의 본가 타츠노코의 노하우 뿐만 아니라 특촬물의 노하우도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사토 케이이치나 요시다 신 등은 특촬물에서도 활약한 인재들이죠. 

당장 선라이즈의 주력 장르가 히어로물로 변화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로봇 장르의 한계나 자신들 스스로의 매너리즘에 대해서 선라이즈가 인식하고 이를 위해 변화를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이기에 앞으로의 결과가 주목된다 하겠네요. 로봇물과 특촬물의 노하우가 접목된 선라이즈표 히어로 아니메의 행보를 지켜보아야 겠습니다.

그러고보니 근래의 일본 아니메는 히어로물 붐이 일어나고 있는 듯 하네요. 선라이즈 뿐만 아니라 매드하우스도 '울버린(2011)', '엑스맨(2011)'을 방영중이거나 방영예정에 있으며, 선라이즈에서 분사한 본즈 역시 작년에 '히어로맨(2010)'을 방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아니메에 무언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만큼은 사실인 듯 합니다. 이것이 그저 한두번의 시도일지 아니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할지는 앞으로의 작품들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달려 있다 하겠습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UNRISE · PROJECT S7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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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스의 제작진과 선라이즈의 특이한 조우

ⓒ SUNRISE/T&B PARTNERS, MBS


어로 아니메의 본가 타츠노코 프로의 40주년 기념 다크 히어로 액션물 '카라스(2005)'의 제작진과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를 필두로 한 메카 액션물의 본가로 이름 높은 선라이즈가 조우하여 독특한 아니메가 탄생 예정에 있습니다. 스타일리쉬하면서도 독특한 감각이 빛나는, 마치 히어로물과 SF 버디 액션물을 결합한 듯한 이 작품의 제목은 '타이거&버니(2011)'.

☞ 타이거 & 버니 공식홈페이지 (바로가기)
 
대비되는 성격과 외모를 가진 두 명의 히어로 와일드 타이거와 바나비 브룩스 쥬니어의 활약 외에도 히로인 블루 로즈, 록 바이슨, 스카이 하이, 드래곤 키드, 오리가미 사이클론, 파이어 엠블렘 등 많은 히어로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HERO TV'라는 일종의 히어로들의 활약상을 전달해주고 그들에게 포인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스폰서를 서고, 자신이 스폰서를 서는 히어로에게 자사의 로고까지 붙이게 하는 등, 설정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마치 모터 스포츠와 같은 프로 스포츠의 시스템을 도입한 듯 싶네요.

ⓒ SUNRISE/T&B PARTNERS, MBS

일단, 전반적으로 작품의 모양새는 카라스의 스타일에 선라이즈의 아이디어가 가미된 듯한 느낌을 풍깁니다. 기획과 원작은 선라이즈가 맡고 있으며, 감독은 카라스를 연출한 사토 케이이치, 여기에 카라스에서 호흡을 맞춘 캐릭터 디자이너 하야마 켄지와 메카닉 디자이너 안도 켄지, 역시 카라스에서 음악을 맡았던 이케 요시히로 등 카라스 주요 스탭진들이 상당수 참여하고 있으며, 본즈의 최신 히어로 아니메 '히어로맨(2010)'의 CG를 맡았던 SANZIGEN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본 작품에서 CG를 맡고 있습니다. 여기에 캐릭터 디자인 원안은 무려 전영소녀의 원작자 카츠라 마사카즈. 각본은 이번이 첫 아니메 데뷔작인 영화, 드라마 각본가 니시다 마사푸미.

전반적으로 느낌은 카라스의 어두운 면을 걷어내고 보다 밝고 스타일리쉬한 모습으로 변모한 세련된 히어로 아니메가 될 것 같습니다. 히어로맨과 달리 좀 더 시청 연령대도 높을 듯 싶구요. 등장 히어로 중 파이어 엠블렘과 같은 인물은 타츠노코 프로의 간판 히어로 '독수리 5형제(1972)'의 오마쥬인 듯도 싶네요.

이번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3월 13일 예정되었던 페스티벌이 취소되고 3월 19일 방송예정이었던 사전특집 등도 취소되기는 하였습니다만, 방송은 큰 차질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모쪼록 좋은 퀄리티의 작품으로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음 싶군요. 방송예정일은 2011년 4월 2일. VizAnime(바로가기)를 통해 인터넷으로도 스트리밍 방송예정이라고 합니다.

☞ News: Viz Simulcasts Sunrise's Tiger & Bunny Superhero Anime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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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각기동대 Solid State Society 3D 극장판과 함께 상영예정

출처: XI Avant 공식 홈페이지 ⓒ KAMIYAMA KENJI / Production I.G


번 '공각기동대 SAC Solid State Society 3D' 극장개봉(개봉일은 3월 26일)에 발맞춰 카미야마 켄지가 새 애니메이션을 하나 선보인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신작 아니메가 아닌 NTT 도코모의 프로모션용 영상으로, 3분 30초짜리 단편 아니메라고 하는군요. 제목은 'XI Avant (크롯시이 아방)'.

NTT 도코모의 LTE(Long Term Evolution) 서비스인 XI 서비스의 프로모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근미래의 세계를 무대로 어떤 남자를 추적하는 임무를 받은 주인공 타카무라 카오루가 XI 휴대폰을 사용하여 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LTE 서비스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드리면, 3세대 이동통신의 핵심기술인 HSDPA(고속 하향 패킷 접속) 방식보다 향상된 무선데이터 패킷 통신 규격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4세대 이동통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는데요.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HD급 동영상의 실시간 재생 등을 위해 4세대 이동통신이 요즘 IT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며, XI Avant는 바로 이런 트렌드에 맞춰 NTT 도코모가 서비스하는 4세대 이동통신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아니메인 셈입니다.

작품에서 선보이는 XI 휴대폰. ⓒ KAMIYAMA KENJI / Production I.G

아마도 이는 카미야마 감독의 전작 '동쪽의 에덴(2009)'의 영향이 어느 정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동쪽의 에덴에서 카미야마 감독은 휴대폰을 사용하여 세상을 움직이는 '세레손'과 증강현실 화상검색 엔진 '동쪽의 에덴' 시스템을 선보이며, 다가올 스마트폰 시대의 모습을 아니메로 훌륭하게 묘사했던 적이 있었죠. 여기에 동쪽의 에덴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모리카와 사토코와 사사키 아츠코가 이번 XI Avant에서도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아, 영상을 접하는 순간 동쪽의 에덴의 기시감이 꽤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될 듯 합니다.

☞ XI Avant 프로젝트 페이지 (바로가기)

공식 홈페이지의 프로모션 영상은 깔끔하고 감각적인 카미야마/프로덕션 I.G 식 비주얼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 SAC부터 동쪽의 에덴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엠블렘이 등장하고 있군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어떤 주제의식이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작 TV 시리즈나 극장 아니메가 아니라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만, 카미야마 감독의 신작을 기대하고 있던 분들에게는 약간의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영상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접하기가 힘들 듯 합니다. XI Avant는 3월말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후, 공각기동대 SAC 3D 극장판 개봉시 선행영상으로 극장에서 상영될 것으로 보입니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기간은 4월 2일부터입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KAMIYAMA KENJI / Production I.G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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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스탭>

◈ 감독: 잭 스나이더
◈ 원작: 케쓰린 래스키
◈ 제작: 워너 브라더스


<시놉시스> 

가면 올빼미(타이토)인 소렌은 호기심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올빼미이다. 그의 아버지 녹투스가 들려준 가훌의 가디언의 전설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세상 어딘가에 있는 위대한 가훌의 나무에 사는 가디언들은 메탈비크가 이끄는 순수혈통의 올빼미들에 의해 올빼미 왕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 그들을 물리치고 올빼미 왕국을 구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올빼미 왕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예언과 함께 전설적인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가디언의 전설에 매혹당한 소렌과 여동생 에글렌틴과 달리, 맏형인 클러드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렌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어느 날 부모들이 집을 비운 사이, 나는 연습을 하던 소렌과 클러드는 익숙치 않은 날개짓으로 인해 그만 땅으로 떨어지게 된다. 높은 나무 위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들짐승들에게 습격당할 위기에 처한 그들. 필사적으로 날개짓을 하던 소렌과 클러드에게 사나운 테즈메이니아데빌이 갑자기 덥쳐든다. 절체 절명의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온 두 마리의 칡부엉이에 의해 납치된 소렌과 클러드. 그들은 소렌과 클러드를 위협하며 어디론가 그들을 끌고 간다. 하늘에서 만난 그들의 무리들은 모두 어린 올빼미와 부엉이를 납치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고, 무리 속에서 만난 엘프 올빼미 길피와 함께 소렌과 클러드는 먼 옛날 가디언들에게 패한 메탈 비크의 왕국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성인용 액션물의 귀재와 가족용 어드벤쳐 애니메이션의 조우

쓰린 래스키의 장편 판타지 소설 '가훌의 가디언'을 모티브로 한 가디언의 전설은 인간이 주인공이 아닌, 올빼미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전쟁과 모험을 판타지적인 터치로 그려낸 대하 판타지 영화입니다. 총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연재분량. 이는 원작소설의 방대한 스케일과 거대한 서사를 짐작케 하는 대목인데요. 이로 인해 이번 가디언의 전설은 전체 15권 중 1권부터 3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가져와 축약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향후 영화의 흥행여부에 따라 뒤의 이야기를 속편으로 제작하겠다는 암묵적인 기획도 있었을 듯 싶군요.

그동안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해리 포터'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판타지 영화는 트렌드인냥 단편이 아닌 2~3부작으로 많은 작품들이 기획되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1부가 막을 내린 시점에서 이미 실패작으로 판가름이 났고, 이후 후속 시리즈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되지요. 판타지 영화 중, 특히 PG급 판타지 영화로서 해리 포터 시리즈 이후 후속 시리즈가 등장한 작품은 '나니아 연대기'시리즈가 유일하며, PG-13 등급 판타지는 반지의 제왕 이후 제대로 된 작품을 꼽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후속작들의 연이은 실패 속에 어느덧 판타지 영화는 2000년대 초반의 화려한 시간을 뒤로 한 체 침체기에 접어들게 되지요.

자, 이런 즈음에 R 등급 성인 액션물에서 주목할만한 모습을 보여준 한 인물이 PG급 판타지 영화인 이 가디언의 전설의 감독으로 낙점되니 그가 바로 '300(2006)'과 '왓치맨(2009)'를 통해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쉬하면서도 고어적이고 만화영화적인 영상 씨퀀스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비주얼리스트 잭 스나이더 입니다. 사실, 잭 스나이더가 판타지 영화의 감독으로 내정된 시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기대를 표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은 아직 검증될 필요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말랑말랑한 오락영화보다는 색깔있는 성인용 오락물을 만든다는 점에서 보다 더 세련된 판타지 영화를 기대해봄직했었기 때문인데요. (물론, 이 초반의 판단미스는 가디언의 전설이 PG 등급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 원인도 되었습니다만)

과연 R등급 성인액션물의 비주얼리스트가 만든 대중적 판타지 영화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을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WARNER BROS



압도적인 디테일로 다가오는 CG와 특유의 영상미학

선 언급하고 넘어가야할 점은, 이 작품이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입니다.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CG와 압도적인 디테일로 인해 이 작품은 접하는 순간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요. 세심하게 표현된 올빼미들의 묘사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스피디한 비행장면, 그리고 실감넘치는 배경묘사는 실제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못하게 만드는 사실감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올빼미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아, 만화영화구나 라고 느낄 수 있다라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요. 올빼미의 섬세한 묘사는 현재의 CG 수준이 어디까지 도달해 있는지를 우리에게 인상적으로 각인시켜주고 있으며, 바람에 흩날리는 털의 세심한 변화라든지 새들끼리의 전투장면에서 사방으로 흩날리는 깃털의 묘사 등 자세한 곳에까지 현실적인 묘사를 놓치지 않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적절한 장면에서 슬로우 비디오로 극적인 연출효과를 부여하는 잭 스나이더 특유의 CF적 연출 스타일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인 묘사, CF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듯한 세련된 연출 등, 어떤 면에서 가디언의 전설은 PG 등급의 영화에는 그닥 많이 사용되지 않는 다양한 영상 기법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습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전작인 300과 왓치맨에서 보여준 영상기법이 거의 그대로 사용되는 셈인데요. 다만 다른 점이라면, 전작에서 보여준 고어적이고 선정정인 표현이 거세된 것이 유일하다 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잭 스나이더식 비주얼이 그 표현수위만 낮춘 셈이죠.

DVD로 감상을 한터라 3D로 제작된 가디언의 전설의 영상미를 직접 느낀대로 표현할 수 없음은 유감입니다. 다만, DVD의 SD급 화질로도 감탄할만한 영상미를 보여준 바, 블루레이나 3D 영상으로는 분명 그 이상의 시각적 유희를 느낄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몇몇 지인분들에 의하면 스피디한 비행씬이 많이 등장하는데다가 디테일이 너무 세밀하여 3D 영화로 감상했을 때 오히려 시각적 피로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디언의 전설은 '아바타(2009)' 이후 가장 완성도 높은 3D 영상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다만 실사와 CG가 혼합된 아바타와 달리, 가디언의 전설은 오로지 CG로만 제작된 애니메이션이고,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세밀한 묘사로 인해 그 시각적인 부담감은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큰 것 역시 사실이 아닐까 싶군요.

ⓒ WARNER BROS



뻔한 서사구조, 스토리와 비주얼의 부조화

점에 가까운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영화사에 한획을 긋는 데는 실패한 작품입니다. 사실 북미 흥행은 제작비의 절반수준을 약간 넘기면서 사실상 참패를 하게 되었는데요. (물론, 글로벌 수익으로는 1억4천만불을 벌어들이면서 어느 정도 명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영상미를 가진 이 감탄스러운 애니메이션이 기대 이하의 호응을 얻은 것은 영상미에 미치지 못하는 이야기의 완성도가 그 원인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그동안의 필모그라피에서 보여준 스토리텔러로서의 모습은 물음표라 하겠습니다. 전작인 300이나 왓치맨이 모두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거대한 서사를 가진 가훌의 가디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스토리 구성의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거든요. 게다가 그 스케일도 작았구요.

반면, 가훌의 가디언은 비록 첫 3권까지의 내용을 가져와 이야기로 구성한다고 해도 꽤 방대한 양에 해당합니다. 적어도 2시간에 가까운 분량으로 작업이 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를 이 장대한 이야기는 영화로 옮겨지면서 단 96분으로 이야기가 축소되게 됩니다. 판타지 영화의 성공작으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평균 180분 정도의 러닝타임(확장판에서는 200분을 넘어가는 쿨럭;)을, 해리 포터 시리즈가 평균 140~150분의 러닝타임을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무척 짧은 상영시간이라 할 수 있지요. 심지어 나니아 연대기 역시 2부가 110여분이고 1부와 3부는 140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원작인 가훌의 가디언의 이야기가 결코 이들 판타지 흥행 3대 시리즈의 원작과 비교하여 떨어지지 않는 스케일과 서사를 갖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는 명백히 스토리 구성 상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스토리텔러로서 아직 검증이 필요한 신예 감독에게 이처럼 거대한 서사를 갖고 있는 작품을 다른 판타지 영화들보다 적은 시간 안에 영화로 재구성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작업이었을 겁니다. (물론, 각본 작업은 스나이더 본인이 아닌 존 오로프와 존 콜리 등이 맡고 있습니다만) 이로 인해 원작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축소되고 각색되어 특색없는 뻔한 이야기로 다시 재탄생하게 됩니다. 러닝타임의 제약을 갖게 되면서 원작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올빼미의 생태구조에 대한 뛰어나고 사실적인 묘사 역시 거의 작품에서 표현되고 있지 않지요. 결국, 영화는 그저 압도적인 영상미를 감상하는 것 외에 뚜렷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가 힘든 작품이 되고 맙니다. '놀라우리만치 먹음직스러운 데코레이션에 감명 받아 한 스푼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맛은 있으되 눈으로 보고 기대했던 그 만큼은 아니라는 실망감이 드는 요리를 먹고 있는 심정'이 어쩌면 가디언의 전설을 감상하고 난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아닐까 싶군요.  

ⓒ WARNER BROS



스토리텔러로서의 한계를 보여준 잭 스나이더

PG 등급의 영화로서도 평이한 권선징악의 스토리 외에도 평이한 캐릭터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을 반감시킵니다. 짧은 러닝타임으로 인해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부분도 있는데다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올빼미들을 묘사하면서 PG 등급의 영화로서는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고 하겠군요. 즉, 너무 사실적인 올빼미라 귀엽다거나 이쁘다거나 이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습은 R등급에 가까운 비주얼인데, 내용은 PG등급의 이야기이니 사실적인 비주얼을 기대하고 간 성인관객들은 실망하고, 가족 판타지 오락영화로 생각하고 간 가족관객들은 기막히긴 하지만, 너무 사실적이어서 징그러운 비주얼에 쉬이 감정이입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R등급 비주얼리스트로서 잭 스나이더의 첫번째 도전이 실패로 끝났음을 보여주는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가디언의 전설은 로버트 져메키스 감독의 '베오울프(2007)'과 비교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흥행 감독 로버트 져메키스는 자신이 세운 이미지무버스 디지털 회사의 퍼포먼스 캡쳐 기술을 활용하여 실사에 가까운 CG와 성인등급의 표현묘사를 앞세운 R 등급 판타지 애니메이션 베오울프를 선보였으나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게 되지요. 만약, 베오울프의 이야기를 잭 스나이더가 연출하고, 가디언의 전설을 로버트 져메키스가 맡았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물론, 그저 추측과 상상에 불과할 뿐입니다만, 가디언의 전설은 확실히 스나이더와는 맞지 않는 궁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디언의 전설은 올빼미판 반지의 전쟁이라고 불릴만큼 판타지로서는 높은 수준의 비주얼로 인해 어느 정도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판타지 영화의 팬이라면 가디언의 전설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을 듯 싶군요. 다만, 여건이 되신다면 (블로그 이웃이신 영화 파워블로거 페니웨이님 말마따나) 블루레이급의 화질로 감상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분명 기대 이상의 감동을 얻으실 겁니다. 영화 결말 부분은 원작의 이야기 구조로 인해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모양새로 결말을 맺게 됩니다만, 속편을 볼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가 아닐까 싶군요.

ⓒ WARNER BROS


☞ 개인적으로 PG-13 등급에, 110분 정도만 러닝타임을 줬어도 이 작품은 꽤 괜찮은 애니메이션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쉐인 에커의 '나인(2009)'과 함께 그 스토리가 너무나 아쉬운 작품이네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RNER BROS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 달의 TTB 리뷰 2011년 3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가디언의 전설 - 6점
잭 스나이더 감독, 짐 스터게스 외 목소리/워너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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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필요한 화성인과 말하는 자동차 vs 뚱보 팬더와 느끼한 고양이

ⓒ DREAMWORKS


'이스토리3(2010)'(글로벌 수익: 약 10억6천만달러)과 '라푼젤(2010)'(글로벅 수익: 약 5억5천만달러)을 통해 작년 한해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2010)'(글로벌 수익: 약 4억9천만달러)와 '메가마인드(2010)'(글로벅 수익: 약 3억 2천만달러)에게 판정승을 거둔 디즈니/픽사. 조금씩 그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북미 애니메이션은 디즈니/픽사와 드림웍스의 양강구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도 그들의 한판승부는 계속 이어질 듯 하네요.

일단, 작년 이들 두 제작사의 간판 애니메이션의 북미 개봉일을 살펴보면,

드래곤 길들이기: 2010년 3월 26일
토이스토리: 2010년 6월 12일
메가마인드: 2010년 10월 28일
탱글드: 2010년 11월 24일

였는데요. 드림웍스 측에서 먼저 포문을 열고 디즈니/픽사가 이에 응사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 2011년 3월 11일 (개봉예정)
쿵푸팬더 2: 2011년 5월 26일 (개봉예정)
카 2: 2011년 6월 24일 (개봉예정)
장화신은 고양이: 2011년 11월 9일 (개봉예정)

로 디즈니가 선공을 하고 드림웍스가 역습을 하는 형태의 전개가 벌어질 듯 합니다.

ⓒ WALT DISNEY Pictures

먼저 디즈니가 선보이는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2011)'(원제: Mars Needs Moms)는 이제까지 선보인 디즈니의 CG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실사에 가까운 묘사가 수반된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입니다. 이는 제작에 로버트 져메키스와 그의 스튜디오 이미지무버스 디지털(ImageMovers Digital)이 참여했기 때문인데요. 져메키스와 이미지무버스 디지털은 디즈니 자회사로, '폴라 익스프레스(2004)' 등을 통해 본 작품과 비슷한 비주얼을 이미 선보인 바가 있지요. 이 기술은 퍼포먼스 캡쳐라 불리고 있는데요, 이번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는 아쉽게도 이미지무버스 디지털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특하고 사실적인 비주얼과 디즈니다운 어드벤쳐가 버무려진 이 작품이 과연 어린이들에게 얼마만큼 어필할지 궁금하군요.

☞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 (보러가기)

이에 맞서 드림웍스는 여름철 성수기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슈렉을 잇는 자사의 간판 캐릭터 포를 앞세운 '쿵푸 팬더 2(2011)'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선택받은 전사가 되기위해 요절복통 쿵푸 수련과정을 보여주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쿵푸 고수들의 습격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무적의 5인방과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꾸려진다 하는데요. 이미 쿵푸의 절대고수가 된만큼 전작보다는 훨씬 멀쩡해진(?) 포가 얼마만큼의 웃음을 줄지가 관건이라 하겠습니다. 일단 스케일과 액션 면에서는 전작을 능가하리라는 예상을 쉽게 하게 되는군요. 네임 밸류면에서 일단 올 상반기 대결에서는 드림웍스의 우세가 점쳐집니다만, 대부분의 속편이 전편을 능가하지 못해온 관례를 상기할 때, 쿵푸 팬더가 마냥 우세하리라고는 점칠 수 없다 하겠습니다. 더군다나 두 작품은 개봉시기에 2달 이상의 갭이 있기에 직접적인 대결도 아니구요. 아, 쿵푸 팬더 2는 한국계인 제니퍼 여 감독이 연출을 맡아 한국인으로서는 기대가 크기도 합니다. 

ⓒ WALT DISNEY Pictures

☞ 쿵푸팬더 2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 (보러가기)

오히려 쿵푸 팬더 2는 한달 뒤 블록버스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6월말에 디즈니가 개봉하는 '카(2006)'의 속편 '카 2(2011)'와 맞대결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작인 카가 성공적인 흥행을 거두긴 했지만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던 관계로 그 속편 역시 임팩트는 떨어지는 느낌이 있군요. 다만,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을 이끄는 명장 존 라세터가 전작 카 이후 5년만에 감독으로 복귀하는 작품인지라 그 무게감은 여타 애니메이션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다 하겠습니다. 라세터는 이 5년 동안 감독보다는 제작총지휘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었죠. 이번에도 감독과 제작 총지휘를 동시에 맡아 작품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듯 싶군요. 대신 브레드 루이스가 조감독으로 라세터의 뒤를 지원하게 됩니다.

☞ 카 2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 (보러가기)

11월에는 다시 드림웍스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놀랍게도 '슈렉' 시리즈에서 주인공 슈렉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장화신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장화신은 고양이(2011)'(원제: Puss in Boots)가 드림웍스의 히든카드가 된다고 하는군요. 느끼함과 깜찍함을 오가는 표정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번 신작은 슈렉의 스핀오프로서 그 기대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기름기 가득한 목소리에 '데스페라도(1995)',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2003)'를 통해 반데라스와 호흡을 맞춰온 히스패닉계의 섹시 여우 셀마 헤이엑도 캐스팅되었다고 하는군요. 감독인 크리스밀러는 '슈렉 3(2007)'와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2009)'을 감독한 인물로, 장화신은 고양이가 처음 등장하는 '슈렉 2(2004)'에서 각본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 장화신은 고양이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 (보러가기)

전반적으로 디즈니/픽사의 이번 신작들은 로버트 져메키스나 존 라세터와 같은 거물들이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는 반면, 드림웍스의 작품들은 신예 연출가를 기용하는 대신, 메가히트를 친 전작의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작품으로 대결을 펼치는 형세로 보입니다. 과연 올해 두 거물 제작사의 대결에서는 누가 판정승을 거두게 될까요.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의 개봉이 얼마 안남은 지금, 디즈니/픽사와 드림웍스의 1라운드는 이제 곧 시작됩니다.

ⓒ DREAMWORKS


☞ 제가 의도한 바대로, 이번 포스트는 다소 드림웍스의 작품들을 강조하는 형태로 흘러갔습니다. 사심 가득한 포스트, 부디 이해 바라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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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小学館 · KITTY FILM


<스탭>

◈ 원작: 하기오 모토
◈ 감독: 데자키 사토시, 토미나가 츠네오
◈ 제작: 키티 필름


<시놉시스> 

워프로 인해 먼 은하계까지 진출하게 된 인류는 수세기 사이에 수많은 혹성국가를 형성하며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사바계나 세글계와 같은 여러 이성인들과 조우하며 전쟁과 화해를 반복하던 은하계는 성간연맹의 형성과 함께 공존의 시대로 넘어갔으며, 우주시대를 짊어질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성간연맹이 창설한 코스모 아카데미도 어느덧 120년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스모 아카데미는 우주학의 모든 것을 가르치는 그야말로 우주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모든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코스모 아카데미의 졸업생은 우주의 엘리트로 그 어떤 은하계에서든 그 지위를 보장받게 된다. 3년마다 거행되는 코스모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에는 전우주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지원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테라계 시베리스 출신의 타다토스 렌(이하 타다)도 그들 중 하나.

1차 시험과 2차 시험을 통과한 타다는 이제 마지막 3차 시험만을 남겨놓고 있다 3차 시험은 10명씩 조를 이뤄 아카데미에서 지정한 우주선에서 치루어진다. 타다와 나머지 9명은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지정된 우주선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체 버려진 듯한 이 우주선의 이름은 에스페란자 호. 에스페란자호에 도착한 아카데미 응시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분명 10명이 이 우주선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도착하고보니 11명의 인원이 있는 것이다. 모두 자신들이 정당한 응시자들이라 주장하는 상황. 과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누구란 말인가. 3차 시험은 이 에스페란자호에서 53일간 생활하는 것이며,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선내의 붉은색 박스의 스크램블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는 외부와의 통신은 일절 불가능하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참여자 전원이 시험에서 탈락하게 된다. 타다 일행들은 53일 동안의 긴 시험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손님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순정만화의 새지평을 연 거장 하기오 모토의 SF 미스테리 스릴러

'구로(1977)'로 순정소녀만화에 SF라는 소재를 접목시켰던 거장 타케미야 케이코와 함께 로맨스에 국한되어 있던 순정만화의 장르를 확대시킨 거장 하기오 모토의 동명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11인이 있다'는 시놉시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정만화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긴장감 넘치는 서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범은하계로 삶의 영역을 확장한 인류, 그리고 이러한 은하계에서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명문 학교. 천문학적인 경쟁률을 뚫고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 모인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한 오래된 우주선 속에서 53일간의 생존 테스트를 받는 마지막 시험에 참여하고, 놀랍게도 이 폐쇄된 공간에 초대받지 않은 한명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동시에 타이틀이 등장하는 서두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심어줍니다. 그동안의 순정만화가 이쁘고 화사한 남녀들이 등장하여 청춘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패턴이었다면 이 작품은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패턴을 넘어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이 발간된지 무려 40년이 지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수많은 순정만화가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1인이 있다는 그 소재의 신선함과 구성에 있어서 결코 최근의 인기 순정만화에 뒤지지 않습니다. 순정만화의 범주로 한정하기에는 작품의 그릇이 커보이기까지 하는데요. 하기오 모토를 가리켜 '소녀만화의 신'이라 가리키는 것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걸작은 스크린으로 옮겨져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감독인 데자키 사토시는 아니메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인 데자키 오사무의 형으로, '거인의 별(1968)'이나 '어택 No.1(1969)', '캡틴(1980)'과 같은 스포츠 계열 작품에서 연출이나 각본을 맡아왔었는데요. 이번 작품에서는 후배인 토미나가 츠네오와 함께 공동으로 11인이 있다를 감독하게 됩니다. 비록 데자키 오사무와 같은 현란하고 실험적인 영상기법은 없습니다만, 11인이 있다는 원작의 매력을 스크린에 잘 옮겨놓은 수작입니다. 구성도 깔끔하며, 흡입력도 좋습니다. 거기에 동생 데자키 오사무의 작화 파트너인 스기노 아키오 작화감독이 참여한 작화라인은 하기오 모토의 스타일을 아니메에 성공적으로 이식하게 됩니다.

특히, 본 작품의 히로인(이랄까요. 왜 단정짓지 않는지는 스포일러임으로 본 리뷰에서는 밝히지 않겠습니다.)으로 등장하는 프롤베리체리 프롤은 보이시한 매력과 풍성한 금발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상큼한 미모로 이 어두운 작품에 한줄기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지요. 스기노의 캐릭터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화사함과 그로테스크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매력이 있는데요. 이러한 독특한 작풍은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좋은 상성을 보여주는 듯 싶습니다.   

순조롭게 우주선으로 항해하던 10명에서 갑자기 11명으로 늘어나는 장면. 하지만 이부분은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 萩尾望都 · 小学館 · KITTY FILM



수수께끼의 한명, 우주선에 감추어진 미스테리, 각자의 숨겨진 사연들

관력이라는 특출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 타다, 그런 그의 직관력으로도 나머지 10명은 전혀 거짓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스스로가 의심을 받게 되는 상황, 여기에 왠지 가면 갈수록 상황은 타다에게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거기에다가 직관력이라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음 방문한 이 에스페란자 호의 이곳저곳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타다. 다른 수험생들의 의심 속에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고장난 우주선은 궤도를 이탈하여 태양으로 접근합니다. 여기에 이 우주선이 과거 치료가 불가능한 전염병이 발병했던 곳임을 타다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되는 멤버들, 선내의 온도가 40도가 넘어가면 전염병의 병균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상황, 과연 이들은 시험을 포기하고 붉은색 박스의 버튼을 눌러 아카데미로부터 구조를 요청해야만 하는걸까요. 어떻게 해서든 이 난관을 극복하고, 불청객을 찾아내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난관이 속속 그들 앞에 등장하는 급박한 상황, 뭔가 머리속을 맴도는 타다의 이상한 기시감, 하나 둘씩 뭔가를 숨기고 있는 멤버들, 그리고 점점 의심의 눈초리는 타다로 향하고... 이 모든 것들은 서스펜스와 미스테리로서 작품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최고조로 이끌어 줍니다. 별다른 엔터테인먼트적인 장치나 연출이 없이, 화려한 영상 기법이 동원되지 않고서도 11인이 있다는 순전히 이야기의 힘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흡입력을 보여줍니다. 순정만화에 SF와 미스테리를 접목시켰다는 새로운 시도도 시도지만, 하기오 모토의 이 작품은 실로 스토리에 충실한, 기본기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높은 완성도의 기본기로 인해 별다른 장치 없이도 작품은 흥미롭고 인상적입니다.

러닝타임이 다 끝나고 난 뒤에 '야, 좋은데?'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이것이 흠이면 흠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 진행 내내 등장인물들과 관객을 조여오는 서스펜스와 미스테리에 대한 해답이 결말부분에 너무도 말끔히 정리됩니다. 여운 없이 작품의 마무리는 정말 깔끔한데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보여지는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는 그래서 그 깔끔함 속에 약간의 여운을 남겨준다 하겠습니다.

과연 이 다양한 인물들 중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은 누구일까. ⓒ 萩尾望都 · 小学館 · KITTY FILM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작품

록 결말이 앞선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밝고 순정만화스러워서 조금 당혹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그로 인해 엔딩곡인 '나의 오네스티'의 감미로운 멜로디와는 오히려 잘 매칭되는 느낌입니다. 너무 깔끔하긴 하지만 이야기 전체의 흐름이 흐트러지지는 않는다고 할까요. 어두운 서스펜스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각자의 꿈을 가진 건전한 청년들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 속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느낌을 줍니다. 실제로 이들 11명은 불청객의 등장과 각종 돌발상황으로 날카로워진 상황에서도 식당에서 서로에게 음식과 소스를 던지고 뿌려대며 즐거운(?) 난동을 부리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보면서 음울한 결론과 밝은 결론의 두 가지를 예상하고 있었는데요. 결국 이야기는 제가 예상했던 두번째로 흘러가게 되어 예측이 맞은 즐거움도 함께 했던 감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만화영화치고는 꽤 잘짜여진 이야기 구조와 드라마로 인해 근래에 본 작품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라 할 수 있겠군요. 이야기의 힘, 11인이 있다는 그 기본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히로인(?)이 될지도 모르는 프롤의 눈부신 미소. ⓒ 萩尾望都 · 小学館 · KITTY FILM



<참고 사이트>

[1] 11人いる!, Wikipedia Japan
[2] 11인이 있다!(11人いる!)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萩尾望都 · 小学館 · KITTY FILM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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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徳間書店 / ⓒ 학산문화사 (한국어판)


<스탭>

◈ 글/그림: 미야자키 하야오
◈ 편집/발간: 도쿠마 서점
◈ 한국어판 편집/발간: (주) 학산문화사


<시놉시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 발생한 산업문명은 수백년 동안 전세계로 퍼져, 거대 산업사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대지의 비옥함을 앗아가고 공기를 더럽히며 생명체마저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는 거대 산업문명은 1,000년 후에 절정기에 이르렀다가 이윽고 급격한 쇠퇴를 맞게 되었다. '불의 7일간'이라 불리는 전쟁의 의해 도시는 유독물질을 뿌리며 붕괴했고, 복잡하고 고도화한 기술체계는 소실되었으며 지표의 대부분은 불모의 땅으로 변해버렸다. 그 후 산업문명은 재건되지 않았고, 인류는 영원한 황혼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다. (코믹스의 프롤로그 인용)


12년 동안의 연재 끝에 완성된 거대한 대하 SF 판타지

레콤 애니메이션에서 퇴사하면서 애니메이터가 아닌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82년에 연재를 시작하여 94년까지 무려 12년의 세월이 걸려 완성한 역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코믹스)는 그야말로 미야자키 월드의 시발점과 종착점을 동시에 보여준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과도한 기술문명에 대한 혐오감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가는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광활한 하늘에 대한 낭만적인 동경,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유럽적인 생활상과 아날로그적인 맛이 흠뻑 느껴지는 스팀펑크 적인 메카닉까지 실로 이제까지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아왔던 여러가지 주제와 상징, 그리고 스타일이 살아있는 작품인 것입니다.

애초에 애니메이션에 대한 고려 없이 연재되던 나우시카는, 토쿠마 서점이 발간하는 아니메 잡지 '아니메쥬'의 편집장 오쿠다 히데오의 권유로 인해 애니메이션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때 나우시카의 연재는 체 2권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부득이 하게 애니메이션은 나우시카의 초반부의 스토리를 갖고 미야자키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맞게 각색을 하는데요. 초반부의 프롤로그만을 가지고 훌륭한 기승전결을 만들어 낸 미야자키의 각색은 나무랄데 없이 훌륭했습니다만, 그로 인해 나우시카의 보다더 깊은 이야기와 메시지는 오히려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지 않았나 합니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보러가기)

나우시카 이후로 미야자키는 지브리의 창립멤버가 되어 숱한 명작 아니메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요. 이러한 창작의 강행군 속에서 자연스레 나우시카 코믹스에 할애할 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나우시카는 7권이라는 비교적 짧은 이야기를 완결시키는데 있어서 무려 12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요되고 맙니다. 그러나, 12년이라는 세월동안 숙성된 나우시카의 이야기는 깊은 풍미를 가진 맛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 그 깊이와 스케일은 만화영화의 그것을 뛰어넘고 있으며, 지면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마력 또한 미야자키의 아니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고 있습니다.
 

ⓒ 徳間書店 / ⓒ 학산문화사 (한국어판)



인류를 위협하는 곰팡이 숲 부해와 오무에 얽힌 충격적인 진실

믹스의 이야기는 만화영화와는 좀 다르게 전개됩니다. 사실 코믹스는 동쪽의 대국 토르메키아 왕국과 서쪽의 대국 도르크 제후국과의 거대한 전면전이 작품의 주된 갈등 구조 중 하나인데요. 이 거대한 이야기축이 작품에서 거세되면서 나우시카는 토르메키아 왕국과 변방의 소국 페지테의 갈등 구조로 축소됩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오무의 새끼를 페지테의 군인들이 납치하여 오무들의 분노를 유발, 이를 이용해 토르메키아 군을 모두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는데요, 이것 역시 원작에서는 도르크 제후국이 꾸민 사건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면서 각색된 설정이라 하겠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토르메키아의 군대를 강한 카리스마와 지략으로 이끄는 크샤나의 활약은 이로 인해 상당부분 극에서 축소됩니다. 실제 원작에서 크샤나의 역할은 이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나우시카가 선지자의 현인이라는 것을 눈치채는 이 또한 바람계곡의 점쟁이 노파가 아닌, 도르크 제후국의 고승입니다. 페지테의 아스벨은 부해 제일의 검사 유파와 동행하지만 애니메이션처럼 모든 사건이 일단락 된 후 같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닌, 도르크 제후국으로 떠난 나우시카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합류하게 되지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곰팡이 숲 부해를 둘러싼 숨겨진 진실은 아니메에서는 그야말로 맛만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실제로 부해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지, 그리고 오무와 곤충들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지에 얽힌 이야기들은 나우시카의 메인 테마이자 거대한 미스테리로서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요. 이러한 것이 상당부분 축소되면서 단순한 스토리텔링에 그쳤던 아니메와는 달리, 코믹스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적인 진실과 방대한 역사를 지닌 뒤엉킨 진실의 실타래를 나우시카가 그 여정 속에서 풀어가면서 독자에게 만화영화를 뛰어넘는 긴장과 몰입감을 선사하게 됩니다. 즉, 이야기는 토르메키아와 도르크간의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이 고대의 기술들을 전쟁에 사용하기 시작하고, 부해의 진실과 오무의 예언을 따라 세계를 구원하는 여행을 떠난 나우시카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려, 대하 서사극과 모험극이 어우러진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7권 밖에 안되는 짧은 길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우시카의 여정은 생각보다 장대합니다. 권당 130여 페이지 밖에 안되지만 정보량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 같은 느낌이네요. 여기에 투박한 펜터치에 의해 한 씬 한 씬을 파악하는 것은 예상 외로 오래 걸립니다. 사실 작화에 있어서 나우시카는 뛰어나다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모자란 것은 아닙니다만, 감독, 각본, 콘티, 디자인 등 다방면에 걸쳐서 걸출한 재주를 보여주었던 미야자키의 네임밸류에 비하면 기대만큼은 아닌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장면구성이나 컷 전환은 훌륭하며, 작화 역시 엄밀히 말하면 힘을 빼고 편안히 그린 듯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뛰어난 스토리텔링에 의해 기대치보다 떨어지는 작화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은 굉장한 작품입니다.

ⓒ 徳間書店 / ⓒ 학산문화사 (한국어판)



미야자키스러우면서도 미야자키스럽지 않은 무거운 스토리 텔링

우시카 코믹스는 미야자키의 모든 세계관과 주제의식, 스타일이 녹아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미야자키의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어두운 편입니다. 으례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지는 평화롭고 한가한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이 작품에서는 초반부 외에는 묘사되지 않고 있죠. 특히, 나우시카가 오무의 메시지를 쫓아 도르크 제후국으로 여행을 떠난 이후에는 피냄새가 진동하는 전장과 도르크의 신성황제가 일으키는 광기의 질주,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인간들의 절규가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마치 묵시록의 이야기처럼 나우시카 월드는 어둡고 절망적입니다. 

표현 수위에 있어서도 그동안 아니메로 보아왔던 미야자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수준입니다. '원령공주(1997)'에서 미야자키는 잠시 그동안 보여주었던 말랑말랑한 아니메와는 달리 비교적 잔혹하고 파격적인 표현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요. 나우시카 코믹스는 원령공주보다 더 과격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전쟁의 참상과 인류 멸망의 전조를 이야기하는 이 작품이 기존의 작품처럼 말랑말랑 하다면 설득력이 떨어지겠죠. 이런 면에서 나우시카 코믹스는 그동안 애니메이션에서 절제되어왔던 미야자키의 또다른 표현 욕구(?)를 맘껏 펼쳐낸 작품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일찌기 나우시카의 아니메를 향해 미야자키 하야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니메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는 군국주의적인 냄새가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매우 냉소적인 견해를 드러낸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엘로스는 과연 아니메 어디에서 이런 흔적이 드러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아래의 링크를 보면 이러한 오시이 마모루의 지적이 일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삐딱하게 보기 by 성은애, 근대 영문학과 분과 게시판 (보러가기)

여기에서 언급한, 핵무기라는 인류 스스로가 만들어낸 최고의 위협을 직접 경험한 일본인들의 트라우마나, 붉게 빛나는 동그란 눈동자로 맹진하는 오무 무리들이 욱일승천기를 앞에 든체 맹진하는 제국주의적 향수를 느끼게 하는 점, 압도적인 오무의 돌진을 온몸으로 막아낸 나우시카의 카미카제에 대한 무의식적인 오마쥬, 그리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토르메키아 왕국(미국)과 이에 대해 바람(카제)을 신(카미)처럼 받아들이는 바람계곡 부족민(일본)과 같은 일부 비유는 미야자키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심결에 표현된 형태라고 할까요. 그리고, 이것을 꼬집은 오시이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지 나우시카의 이야기는 이후 전혀 다른 형태로 흘러갑니다. 코믹스의 토르메키아 군은 미군처럼 바람계곡을 짓밟지 않고, 나우시카 역시 자신을 희생하여 오무의 진군을 막지는 않습니다. 

코믹스의 나우시카는 오히려 쟌다르크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나우시카의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묵시록의 세계에 한줄기 광명을 가져오는 종교적 구원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성과 인간성으로 인해 판단을 내리는 나우시카의 모습에서는 성녀보다는 오히려 영웅적인 면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 徳間書店 / ⓒ 학산문화사 (한국어판)



나우시카의 뒷 이야기는 만화영화 될 수 있을까.

대하고 드라마틱한 나우시카의 뒷 이야기는 이것이 만화영화로 만들어졌을 때의 감동을 상상하게끔 합니다. 과연 나우시카의 뒷 이야기를 우리는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을까요. 과거 나우시카의 속편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번 논의되어 왔고, 실제 나우시카 아니메의 원화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나우시카에 등장했던 토르메키아의 황녀 크샤나의 이야기를 다룬 나우시카 외전을 연출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모두 미야자키의 거부로 인해 진행되지는 않았는데요. 97년에 연출한 원령공주를 통해 미야자키는 나우시카의 속편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어느 정도 담아내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현재 지브리는 '붉은 돼지(1992)'의 속편을 준비 중이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올해 일흔 하나인 미야자키의 연령을 고려하면 갈수록 나우시카 속편을 미야자키가 연출한 확률은 줄어들고 있다는 소리인데요. 개인적으로는 나우시카 속편이 미야자키 생전에 제작되지 않는다해도 미야자키의 사후 지브리에서 어떤 형태로든 속편을 만들어내지는 않을까 예상해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나우시카는 미야자키의 모든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방대한 나우시카의 이야기를 감안하면, 어설픈 각색과 축약보다는 오히려 원작의 내용에 충실한 몇부작 형태의 이야기는 어떨까 싶습니다. 문제는 미야자키만큼 나우시카를 잘 영상화할 수 있는 감독의 선임이겠죠. 미야자키 월드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작품 나우시카, 코믹스에서만 접하기에 그 이야기는 너무 거대하고 매력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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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徳間書店 / ⓒ 학산문화사 (한국어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달의 TTB 리뷰 2011년 2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박스판 - 전7권 - 10점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학산문화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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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G와 셀 애니메이션의 조화, 푸우의 다섯번째 장편애니메이션.

ⓒ WALT DISNEY Pictures

 
1926년 발표된 앨런 알렉산더 밀른의 동화로서, 디즈니의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더 널리 알려진 '아기곰 푸우(또는 곰돌이 푸우, 원제는 위니 더 푸우, 영어로는 Winnie the Pooh. 요즘 표현으로 하면 하의실종 종결자 푸우... 풉.)'의 다섯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 올 여름 6월 북미 개봉예정에 있습니다. 꿀을 사랑하는 아기 곰 푸우와 활기찬 아기 호랑이 티거, 작고 내성적인 꼬마 돼지 피글렛, 우울한 당나귀 이요르 등 친근한 동물 캐릭터들을 주인공 삼아 그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동화 자체의 인지도 뿐만 아니라 캐릭터 사업과 영상물로서도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온 스테디 셀러이기도 합니다. 특히, 디즈니가 그려낸 푸우는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은 살아 있는 봉제인형의 모습으로 시각화 시켜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 시켰던 작품이죠. 이로 인해 푸우하면 으례 우리는 디즈니가 그려낸 캐릭터들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으로 대표되는 디즈니의 오리지널 캐릭터들과 함께, 푸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한축을 단단히 책임지고 있는 인기 캐릭터입니다. 같은 세계명작동화를 원작으로 한 아기사슴 밤비나 아기코끼리 덤보, 101마리의 달마시안들과 함께 수많은 어린이들의 유년시절을 함께 한 친근한 곰 푸우는 그동안 4번의 TV 시리즈와, 다섯번의 단편 극장 애니메이션, 그리고 4번의 장편 극장 애니메이션 및 수많은 TV 스페셜과 비디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왔는데요. 가장 최근의 극장 애니메이션이었던 'Pooh's Heffalump Movie(2005)'에 이어 6년만에 신작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이번에 우리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푸우 관련 영상 컨텐츠를 전부 통틀어서도 6년만의 신작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 푸우의 다섯번째 극장 애니메이션은 2009년에 개봉했던 '공주와 개구리(2009)'에 사용되어 셀 애니메이션과 최신 CG의 조화로운 비주얼을 선보였던 Toom Boom Animation의 소프트웨어가 쓰였다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CG의 부드럽고 세밀한 움직임과 선명한 색감, 그리고 셀 에니메이션의 서정적인 터치가 살아있는 작품이 될 듯 싶습니다. 감독은 장편 극장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이 첫 연출인 스테판 앤더슨과 돈 홀이 공동으로 맡았습니다.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진두지휘하는 존 라세타가 총괄제작을 맡았으며, 한스 짐머에 헨리 잭맨이 음악을 맡는 등, 스탭진 역시 녹록치 않습니다. 적어도 셀 애니메이션에 대한 디즈니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하네요.

푸우와 그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기에 사실 요즘의 코믹하고 다이나믹한 CG 애니메이션에 비해서는 지겨운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랜만에 순수한 아기 동물들과의 추억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듯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개봉소식을 못들었는데요. 만약 개봉하게 된다면 저도 아들 손 붙잡고 한 번 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 WALT DISNEY Pictures


☞ 예고편 보러가기 (유튜브)
☞ 예고편 보러가기 (애플 트레일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LT DISNEY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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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HOUSE


<스탭>

◈ 원작/감독/각본/캐릭터 디자인: 콘 사토시
◈ 제작: 매드 하우스


<시놉시스> 

도박으로 패가망신하고 거리로 나온 중년 아저씨 긴과, 중년 호모 하나, 그리고 가출 소녀 미유키는 집을 나와 하루하루를 밖에서 연명하는 홈리스(Homeless;노숙자)들이다. 여느 때와 같이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쓰레기를 뒤지던 셋은 바구니 안에 버려진 한 아기를 발견하게 된다. 평소에 엄마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하나는 아기를 키우겠다고 고집부리며 키요코라 이름을 붙여주지만, 귀찮은 일에 얽매이기 싫은 긴과 미유키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 박스로 만든 자신들의 거처에서 그렇게 티격태격 하루를 보낸 그들은 하나의 고집으로 키요코를 키우는 대신, 아기를 버린 부모를 찾아주기로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뜻밖에도 여러가지 모험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아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조명해보는 드라마

제가 동경대부인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막장 인생을 살아가던 3인의 노숙자들이 우연치 않게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서로 간의 애정을 확인하게 된다는 가족 드라마적인 전개를 만화영화적인 방식으로 풀어간 작품입니다. 많은 곳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이 작품은 존 포드 감독의 '3인의 대부(1948)'를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요. 웨스턴 무비였던 3인의 대부에 비해서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의 가족 코미디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1985)'와 오히려 더 가까운 느낌의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듯 세상과 담을 쌓은 3명의 주인공이 우연치 않게 발견한 아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전개는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진부한 소재인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전작인 '퍼펙트 블루(1998)'에서도 그러했듯이 콘 사토시는 이 진부한 가족 코미디스러운 소재를 가지고 실사 영화에 근접한 비주얼로 재현함 동시에, 만화영화적 상상력을 곁들이고 독특한 블랙 코미디와 미스테리적 구성을 더함으로써 진부한 레시피로 놀라울만치 맛깔스러운 식감을 연출해내는 신기를 선보이게 됩니다. 이리하여 콘 사토시의 장기라 할 수 있는 현실과 비현실의 절묘한 오버래핑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정직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콘 사토시의 필모그라피 중에서 단연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사실 다해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게 그의 필모그라피입니다만) 인상적인 작품이 된 것입니다.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중첩은 사라졌지만, 작품의 배경과 오프닝 스탭 타이틀을 중첩시키는 등, 특유의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다. ⓒ MADHOUSE



실사영화를 지향하는 정교한 만화영화적 표현

화영화는 전작에 이어서 여전히 실사영화에 근접하는, 아니 실사영화를 지향하는 세밀하고 디테일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도시의 밤거리와 겨울 정경의 실감나는 배경묘사는 퍼펙트 블루나 천년여우에 이어서도 여전한데요. 이는 미술감독으로 아니메 업계에 입문한 사토시 감독의 이력을 알게 되면 납득이 가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과도할 정도로 세밀한 배경의 묘사는 흡사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작품들이 선보인 그것과 동질의 느낌을 선사합니다. 이런 면에서 콘 사토시의 작품에서는 극사실주의적인 냄새가 풍기기도 합니다. (오토모 가츠히로는 사토시가 신인시절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한 인물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치밀할 정도의 세심한 배경과 사실적인 인물묘사를 지향하면서도 콘 사토시의 작품에서는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인 판타지가 살아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법한 일들이 태연스럽게 이 극사실적인 만화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이죠. 이는 현실과 환상을 오고 가는 그의 특색있는 연출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도 수시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극적인 치요코의 구출장면은 이 작품에서 애니메이션만의 장기를 살려낸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외에도 비탈길에서 자동차에 깔려 구조를 바라는 야쿠자 보스의 고군분투라든가, 실로 다양한 표정을 선보이는 여장남자 하나의 그로테스크한 표정들은 극사실주의라는 제한조건 속에서 만화영화의 장기를 십분 살리는 다양하고 코믹한 표현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실사영화를 지향하지만 발 하나는 애니메이션에 담근 체 완전하게 넘어가지 않는 듯한 사토시의 작품세계는 그로 인해 오히려 사실주의라는 껍데기를 쓴 낭만주의적 색체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우연적인 만남으로 인한 전개의 반전과 스토리의 진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데요. 폭설로 운행을 멈춘 전철에서 맞은 편 전철에 서있는 아빠를 마주하게 된 가출소녀 미유키나, 목숨을 구해준 야쿠자 보스를 따라간 보스의 딸 결혼식에서 자신을 도박에 빠뜨리게 한 원수(게다가 보스의 사위 될 인물)를 마주한 긴, 보스를 저격한 저격범에 의해 납치된 미유키를 구하기 위해 택시를 탔던 하나가 클라이막스에서 납치된 갓난아기 키요코를 되찾으려고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가 바로 미유키를 구할 때 탔던 택시라든지, 편의점에서 죽치고 있는 노숙자 트리오를 못마땅하게 여긴 취객과 싸움이 붙어 잠시 거리로 나왔는데, 그 사이 눈길에 미끄러진 구급차가 편의점을 들이받는 것과 같은 우연 등은 진부하면서도 작품의 재미를 살려주는 클리셰로써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됩니다.

뒷배경으로 등장하는 가게 유리창에 붙여진 메모리즈,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는 모두 사토시 감독의 전작이다. ⓒ MADHOUSE



진부한 가족영화를 재기 넘치는 드라마로 변주해낸 콘 사토시의 걸작

부한 가족 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던 이 작품을 아기를 키우는 세 노숙자의 이야기로 풀어가지 않고 아기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는 노숙자들의 로드 무비로 변주해낸 사토시 감독의 선택은 탁월했다 하겠습니다. 그로 인해 소재의 진부함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있지요. 사토시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 역시 이 작품을 맛깔스럽게 하는 요소입니다. '천년여우(2001)'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환각적이고 어두운 느낌을 선보인 사토시 감독이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그런 유머감각이 십분 살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토시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미스테리스러운 전개는 이 작품에서도 잠시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클라이막스를 둘러싸고 등장하는 갓난아기 치요코의 출생의 비밀이 잔잔하고 독특한 웃음을 주던 이 작품의 분위기를 갑작스레 다이나믹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그것인데요. 이런 가족 영화에서 라스트에 이르러 급박한 전개로 전환되는 것이 그다지 참신한 전개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작품은 그 부분에 있어서 능숙하고 세련됩니다. 추격씬 역시 적절한 코미디와 액션을 결합하여 사실주의의 한도 내에서 애니메이션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해주고 있지요. 

특히, 앞서도 언급했던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오버래핑이라는, 사토시만의 장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 오로지 드라마와 코미디라는 정공법만으로 이 정도의 완성도를 이끌어낸 사토시 감독의 저력은 실로 놀랍다 하겠습니다. 캐릭터나 자극적인 요소가 전혀 없이 평법하고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완성해낸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만화영화에서 스토리와 미술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 작품이라 하겠지요. 이 두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던 사토시 감독의 죽음은 그래서 더더욱 아쉽다 하겠습니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반가운(?) 삼계탕집의 모습. 특유의 극사실주의에 의해 만화영화를 넘어서는 표현력을 보여주는 사토시 작품만의 특색이 살아있다. ⓒ MADHOUSE



<참고 사이트>

[1] 東京ゴッドファーザーズ,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MADHOUSE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달의 영화 리뷰 2011년 2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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