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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작성했던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쿠로미짱 (2001), 웃음 속에 담겨진 애니메이터들의 꿈과 애환'을 티스토리 블로그로 옮기면서 내용과 구성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스탭>
◈ 감독/스토리보드: 다이치 아키타로
◈ 제작: 유메타 컴퍼니
<시놉시스>
고교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 '루이몬드 3세'에 감명 받아 애니메이터의 길로 들어서 오오구로 미키코(이하 쿠로미). 애니메이션 학교를 졸업하고 소원하던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제작부 직원으로 입사한다. 두근거리는 첫출근, 회사에는 아무도 안보이고... 갑자기 나타난 선임자는 현재 방송예정인 '타임 져니스' 2화의 원화작업이 거의 진행이 안되어 펑크 위기에 처해 있다는 다급한 말을 남긴 체 병원으로 실려간다.
이제 제작부원은 쿠로미 하나뿐... 보이지도 않는 애니메이터들과 코 앞까지 닥친 마감시간... 쿠로미는 과연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제작해낼 수 있을 것인가.
1. 개그물의 대가, 다이치 아키타로가 만들다!
'원츄!'라는 초 유행어를 탄생시킨 엽기 아니메 '멋지다 마사루(1998)'. 작품을 보신 분은 없으시더라도 인터넷 상에서 덧글로 한번쯤 '원츄'를 써보신 분들은 많이 있으실 겁니다. 우스다 쿄스케의 동명만화인 '멋지다 마사루'를 멋지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냈던 희대(?)의 연출가는 바로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이라는 인물인데요. 이번에 리뷰할 작품은 바로 이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의 OVA 아니메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쿠로미짱(이하 쿠로미짱)'이 되겠습니다.
다이치 아키타로, 일본 아니메 감독 중에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구사하는 감독이 있을까요.(사실 꽤 있기는 한데, 강조 차원에서...) '리리카 SOS(1995)'과 같은 미소녀 변신물에서부터 '멋지다 마사루(1998)', '괴짜가족(1998)'과 같은 초엽기 개그물을 거쳐 '지금 거기에 있는 나(1999)'와 같은 진지하고 어두운 작품을 넘어 '후르츠 바스켓(2001)'과 같은 순정 멜로물까지. 그가 연출을 맡은 장르는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연출을 맡은 작품들을 모두 자신의 독특한 연출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역량은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아키타로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메이저 아니메 감독은 아닙니다만, 그만의 특색이자 장기인 탁월한 개그 연출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순정물, 시대물에서부터 진지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작품에 걸맞는 연출을 해낸다는 점에서 저는 그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대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급의 작품을 제작하는 감독이라기 보다는 저예산의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는 작품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감독이라고나 할까요.
이 작품 '쿠로미짱' 역시 그런 아키타로 감독의 역량을 십분 살려 그의 전매특허인 정신산란하면서도 변화무쌍한 개그를 작품 전반에 걸친 메인 소스로 곁들이면서 그 내용물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드라마로 조리해냄으로써,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보기드문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포복절도할 개그와 잔잔한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이러한 그의 연출은 같은 해 제작된 순정물 '후르츠 바스켓'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2. 개그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다채롭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이야기
숨쉴 틈 없이 변화하는 작화(물론 작화붕괴가 아닙니다.)와 정신 사납도록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작품의 분위기를 갑자기 끌어올렸다가 느닷없이 내리깔았다 하면서 시종일관 시청자들의 정신을 어지럽게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지러움이 어지러움에 끝나지 않고 폭소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 어지러움이 감독의 연출방식으로 일정한 스타일과 리듬감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진지한 씬에서는 진지한 극화체로 묘사되다가 순식간에 개그적인 상황과 엽기스러운 캐릭터로 변모하는 장면전환과 작화변신은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말처럼 시시각각 자유자재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변화하는 것에 그치지고 않고 그 순간순간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해 줍니다.
©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 캐릭터들의 얼굴. 아키타로 감독에게 걸리면 제 아무리 초절정 미녀라도 엽기괴물로 성형된다.
거기에 제각각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점 또한 이 작품을 왁자지껄하면서도 이야기거리가 많은 작품으로 만들어 줍니다. 신입사원으로 세상의 찌든 때가 덜 묻은 순수하고 의욕이 넘치는 주인공 쿠로미, 업계의 생리에 길들여져 관조적이었으나 쿠로미의 생기에 서서히 동화되어가는 작화감독 하마코(엄청난 애연가), 그리고 각각의 독특한 개성들로 똘똘 뭉친 여러 원화맨들까지... 시종일관 이 시끄럽고 부조화스러운 캐릭터들의 일상과 에피소드는 보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콘서트처럼 펼쳐집니다.
'쿠로미짱'이 만화영화를 제작하는 애니메이터들의 생활상을 얘기하는지라, 작품에 등장하는 제작사 '스튜디오 쁘띠(petit. '작은, 소규모의'란 뜻으로 이 스튜디오가 영세하고 작은 스튜디오라는 것을 암시)'의 작품들도 중간중간 화면에 펼쳐집니다. 만화영화 내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의 여러 만화영화들(루이몬드 3세, 타임 쟈니스 외에 여러가지 작품들)이 등장하는 방식은 위에서 말한 개성 넘치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함께 작품을 더욱 더 다양한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 줍니다. 마치 백화점 같이 말입니다.
©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작품 속에서 스튜디오 쁘띠가 제작하는 다양한 애니메이션들. 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다.
3. 웃음이라는 조미료로 간을 맞춘 애니메이터들의 생활상
'쿠로미짱'이 주는 웃음 외의 또다른 맛은 우리는 그저 재미있게 보기만 할 뿐인 만화영화의 제작현장과 그 속에서 울고 웃는애니메이터들의 꿈과 애환을 보여주는 것으로, 작품의 개그스러움에 묻혀 그 주제의식이 사라지지 우를 범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훌륭하게 주제의식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마감에 쫓겨 작화감독의 수정 없이 원화가 바로 동화로 넘어가는 모습은, 흔히들 우리가 '작붕(작화붕괴)'이라고 일컫는 만화영화의 제작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전 제작이 아닌 매주 다음 주 분량을 촬영하여 숨가쁘게 편집하기에 바쁜 한국의 드라마 제작현실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스튜디오의 매출을 위해 스탭들이 한꺼번에 다량의 작품들을 제작함으로써 일어나는 작품의 질적 저하라든지 스탭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방송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작품 자체의 질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제작진의 현실적 결정은 작품의 개그스러움과는 별개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작품속에 등장하는 애니 '루이몬드 3세'의 방영 비디오(좌)/리뉴얼 비디오(우). 이처럼 본방 때는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엉망으로 제작했다가 후에 비디오나 DVD 출시 때 다시 리뉴얼하여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흔히들 '데쓰 마치(죽음의 행진. 소프트웨어 공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드워드 요우든이 2003년에 쓴 책의 제목으로, 실패의 길로 접어든 프로젝트의 모습이 마치 죽음의 길로 행진하는 모습과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용어.)'라 불리는 이러한 잘못된 프로젝트의 운영과 프로젝트에 속한 구성원들의 고난은 바로 이 '쿠로미 짱'에서 애니메이터들이 겪는 말도 안되는 제작 스케줄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사회생활을 한 분들에게 있어 이 작품은 상당한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요소가 다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고됨과 괴로움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이 느끼는 좌절과 비애가 자신이 겪었던 괴로웠던 업무와 겹쳐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쿠로미 짱'은 성인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꿈을 꺾지 않고 도전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작품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 속으로 그들의 꿈이 실현되기를 응원하고, 그들의 꿈이 성취됨과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줌으로써 만화영화, 아니 모든 문화 컨텐츠의 본질적인 목표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감동, 그리고 마음의 정화'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문제해결과 목표달성의 이야기는 결국, 작품 내에서의 에피소드 하나에만 해당될 뿐, 그 뒤에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더 남아있음을 보여줍니다. OVA 1화에서는 방송펑크 직전의 '타임 져니스' 2화를 어떻게 제작하는 것이냐였고 결국 아슬아슬하게 제작을 완료하지만, 다음 화의 제작 스케줄이 다시 밀어닥치는 현실로 끝을 맺습니다. OVA 2화 역시 동시에 3개의 작품을 제작해야 하는 위기상황이 주어지고, 이 위기는 어떻게든 해결해 내지만 여전히 같은 스탭진으로 동시에 3개의 작품을 제작해야한다는 현실을 남겨둔체 끝나게 됩니다.
©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OVA 2화에서 동시에 세 작품의 진행을 위해 작화감독의 수정없이 원화맨들이 대충 그린 그림을 그대로 동화파트로 넘어가는 모습이 나온다. 동화파트는 일반적으로 외주를 주는데 예전에는 한국, 요즘은 중국에 많이 의뢰를 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위기상황을 타개하되, 절대 이상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고 현실을 계속 직시한 체 작품을 끝맺는 것은 자칫 이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해피 엔딩으로만 끝나지 않게 하는 제동 장치와 같은 역할을 해주어, '아직도 만화영화의 제작에는 이러한 난관들이 많이 남아 있다.'라는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선사해 주는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라고 한다면, '쿠로미 짱'은 그러한 명제를 충실하게 구현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블록버스터만이 재미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
'쿠로미짱'은 제가 보아온 아니메 중 그 임팩트가 강했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특히나, '원하던 꿈과 목표는 반드시 달콤하지만은 않고 쓴 맛도 갖고 있으며, 그러한 쓴 맛(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자신에게 채찍을 한다는 점'에서 있어서 이 작품에서 등장한 애니메이터라는 직업 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 개인사업자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큰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나 사회초년생들과 매너리즘에 빠진 중견 직장인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열심히 일하는 스튜디오 스텝들의 모습들. 무언가를 위해 정진하는 모습은 직업이 무엇이냐를 떠나서 항상 멋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작품 자체의 주제의식과는 별개로, '저예산과 그리 뛰어나지 않은 작화, 현실적이고 평범한 일상의 얘기로도 이렇게 멋지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스타 플레이어는 없어도 탄탄한 조직력과 치밀한 전략/전술,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1류의 팀을 누르는 2류의 팀이 있듯이 말이죠.
비록 2화의 짧은 OVA 였지만 쿠로미 짱과의 만남은 몹시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참에 쿠로미 짱을 만나고 오실런지요. (아차, 국내 정발된 DVD가 없는지라 그녀와의 만남이 그다지 쉽지는 않을 듯 하군요, 물론 정식 루트로 접한다고 했을 때만.)
©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뭐라고라고라~ 우리 DVD가 한국에 정발되지 못했다고!
<참고 사이트>
[1] Animation Runner Kuromi (OAV), Anime News Network
[2] Animation Runner Kuromi,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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