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 만화영화와 함께 하는 잠깐의 휴식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물론, 얼마전의 기록적인 폭우와 피해로 슬픔을 겪은 많은 분들에게는 경황이 없는 나날이기도 하겠지만요. 게다가 날씨마저 우중충하니 모처럼의 휴가철에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예전같지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밤은 또 잠못드는 열대야가 계속될 수도 있구요.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현실을 벗어나 휴양지에서 보내는 일상에서의 탈출, 이것이 휴가의 목적 중 하나라면 궂은 날씨로 인해 야외로의 탈출이 여의치 않은 날에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취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렇다면 뭐니뭐니 해도 그 대안은 영화 감상과 독서가 가장 제격이 아닌가 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양한 시공간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영화감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유희 중에서도 참으로 매력적인 유희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번 여름을 맞이하여 별바다의 서고에서도 여름철 휴가 중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만화영화를 몇 편 소개코자 합니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여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배경이나 여름에 보았으면 좋을 법한 작품들로 제가 몇 개 추려낸 작품들입니다. 될 수 있는데로 현재 DVD나 블루레이 타이틀로 출시된 작품들로 골라 보았는데요, 이는 기왕이면 불법 다운로드보다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화영화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보통의 감상자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나름 유명한 작품들이 선정되면서 리스트가 다소 평이해진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다만, 이 작품들은 한 번 이상은 다시 봐도 괜찮을 작품들인지라 이번 기회에 다시 찬찬히 감상해보시는 것도 전과 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구요. 실제로 제 경우 이 작품들 대부분이 서너번 씩은 감상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무더운 여름밤을 함께 할 만화영화들을 만나러 출발하실까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십니까(1984) / 마크로스 제로(2002)
ⓒ BIG WEST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렵사리 구한 마크로스 극장판 오리지널 비디오 테입을 한 친구의 집에서 전축과 연결하여 나름 스테레오 스피커 시스템을 구축하고 방안의 불을 끈 뒤 소규모 극장처럼 감상하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아니메를 본격적으로 감상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 하구요. 민메이의 애절한 발라드와 인류의 존망을 건 거대한 우주전쟁이 벌어지는 클라이막스를 지나, 평온한 엔딩 뒤 조명이 꺼지는 무대에 서있던 민메이의 힘찬 '원,투'와 함께 경쾌한 엔딩 크레딧으로 연결되는 마지막은 여전히 아니메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DVD로는 절판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극장판 정도의 감동은 아니지만, CG를 통해 놀랍도록 정교한 디테일과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준 OVA '마크로스 제로(2002)'도 한 여름밤의 킬링타임용으로는 적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붉은 돼지(1992)
ⓒ 1992 Nibariki · GNN
그러나, 굳이 한 작품을 고르라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이 작품 '붉은 돼지(1992)'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여름과 잘 어울리는 동시에 미야자키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소년과 소녀를 주인공으로 했던 대부분의 미야자키 작품과는 달리, 붉은 돼지는 이탈리아 공군 파일럿이었던 한 사내가 전쟁과 인간에 혐오를 느끼고 스스로가 돼지가 되어 살아가는 어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야기는 꿈과 희망보다는 향수와 낭만을 이야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지요.
지중해의 멋진 배경과 어우러지는 한 돼지의 모험과 사랑,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유럽 영화를 보듯 여유롭고 부드러우면서도 익살스럽고 신명납니다. 여름밤을 수놓는 낭만적인 돼지의 모험, 몇 번을 맛봐도 질리지 않는 초특급 파스타와 같은 맛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귀를 기울이면(1995)
ⓒ 柊あおい/集英社・二馬力・GNH
섬세한 십대 소녀의 감성을 지브리 특유의 세심한 묘사와 서정적인 전개로 풀어내면서 잔잔하고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 작품인데요.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지목받기도 했던 콘도지만 실상 귀를 기울이면에서 보여준 그의 스타일은 미야자키와 같은 스케일 큰 어드벤쳐보다는 좀 더 소소하고 현실적인 드라마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하겠습니다. 물론, 이 한 작품으로 그의 작품 스타일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요.
작품에는 콘도의 멜로 드라마와 함께 주인공 시즈쿠의 소설 속 등장인물인 고양이 남작 바론의 에피소드도 별도의 이야기로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본 작품에서 각본과 스토리보드, 그리고 프로듀서를 담당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것이라고 하는군요. 한 여름밤,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퍼펙트 블루(1997)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아이돌 가수에서 연기자로의 변신을 꾀하는 미마와, 그런 미마를 위협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광적인 스토커 팬. 미마는 쉽지 않은 변신의 길목에서 갈등하면서 동시에 정체불명의 스토커로 인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서서히 벌어지는 살인사건, 스스로도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는지 확신이 안서는 기억의 혼란과, 환영 속에 이야기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현실과 환상을 적절하게 섞어내어 주인공의 혼란을 묘사하는 콘 사토시의 연출력은 독보적이면서도 매력적이지요.
이제는 고인이 되어 그 매력적인 연출을 더는 볼 수 없겠지만, 여름 밤을 식혀줄 스릴러물로 퍼펙트 블루는 분명 괜찮은 선택이지 않나 싶습니다. 콘 사토시의 TV 시리즈 '망상대리인(2004)'도 비슷한 구성을 가진 미스테리라는 점에서 한번 쯤 도전해보아도 좋을 듯 하네요.
☞ 퍼펙트 블루, 故 콘 사토시의 전율의 미스테리 스릴러 (보러가기)
청의 6호(1998)
ⓒ 小澤さとる / バンダイビジュアル ・ EMIミュージックジャパン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환경문제와 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음모에 맞서는 잠수함 승무원들의 모험과 액션을 그린 청의 6호는 오다와 사토루의 1967년작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해양 SF 어드벤처 물입니다. 3D CG를 이용한 잠수함과 잠수정의 묘사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퀄리티를 선사했으며, 토이 스토리와는 다른 사실적인 묘사로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CG 아니메에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스토리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지만,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양 SF 어드벤쳐라는 점에서 여름밤 감상용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니모를 찾아서(2003)
ⓒ WALT DISNEY / PIXAR
소심한 말린과 나사빠진 도리의 바다 속 모험도 흥미롭지만, 치과 수족관 속에 갇혀 바다로 탈출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니모와 수족간 물고기들의 이야기도 또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니모가 다른 집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수족관을 탈출해야 하는 긴박감은 만화영화치고는 상당한 긴장감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상어와 고래, 그리고 인간들의 위협을 피해 시드니까지 먼 여행을 떠나는 말린과 도리의 스케일 큰 모험 이야기와 니모가 바다로 탈출하기까지의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는 여름철의 더위를 날려줄 만큼 재미있고 좋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굳이 당신이 만화영화를 즐겨보지 않더라도 니모를 찾아서는 여름밤 영화 감상으로는 믿을만한 선택일 겁니다.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03)
ⓒ 茄子 アンダルシアの夏 製作委員会
세계명작동화에서부터 이어져온 듯한 유럽적인 배경와 일상의 묘사는 매드 하우스의 작품이면서도 마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별볼일 없는 싸이클 선수 페페 베넨헤리가, 그의 형과 그의 옛 연인이 결혼식을 벌이는 고향 안달루시아를 지나는 싸이클 경기에 참가하여 보여주는 집념의 레이스는 무척이나 실감나면서도 만화영화적 재치가 넘치는 매력적인 스토리 텔링을 보여줍니다. 어떤 거대한 스케일이나 파격적인 갈등이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정말 소소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유쾌합니다. 뒷맛도 개운한 것이, 마치 한 여름밤에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가슴에 큰 울림을 주지는 않지만, 소소한 재미와 드라마를 선사하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 2006 TOKIKAKE Film Partners
우연하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게 된 소녀가 이를 활용해 자신의 소소한 바램을 이루어가는 유쾌한 능력 남용하기는 적절한 웃음과 적절한 긴장감, 적절한 슬픔과 적절한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보통 소녀의 소박한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서스펜스마저 느껴지는 능숙함을 보여줍니다.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전개는 마치 시원하고 달콤한 팥빙수를 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요.
특히, 몇 번을 보아도 그리 줄어들지 않는 극적 재미는 이 작품의 완성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까 합니다.
☞ 시간을 달리는 소녀,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을 깨달아가는 소녀의 이야기 (바로가기)
피아노의 숲(2007)
ⓒ 一色まこと · ピアノの森 製作委員会
잇시키 마코토가 1998년부터 연재한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후일 어른으로 성장하는 주인공 카이의 이야기까지는 다루지 못하고, 초등학교 5학년으로 첫 콩쿨에 참가하게 되는 초반부의 에피소드까지만을 다루고 있지만, 발단부의 이야기만으로도 꽤 멋진 드라마를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이 주는 깊이와 서정성이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소년의 감성과 맞물려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자못 따뜻하고 매력적이라 할 수 있지요.
숲 속 깊이 버려진 한 피아노. 보통 사람은 소리를 낼 수 없는 기이한 그 피아노를 통해 사람을 마음을 벅차게 하는 연주를 해내는 천재 소년의 이야기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여 쟁쟁한 수재들을 물리치고 정상의 자리에 등극하는 인간 드라마의 매력을 잘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격조 있는 클래식 음악과 아름다운 숲의 배경이 어우러져 시원한 그늘과 서늘한 바람이 부는 여름 숲을 연상시키게 하는데요. 감상하시는 분들에게 청량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샐러드와 같은 맛을 선사하지 않을까 합니다.
레지던트 이블 디제너레이션(2008)
ⓒ CAPCOM Co, Ltd. / Resident Evil CG Film Partners
하지만 실사영화 4부작은 나름 인상적이었던 첫 편에 비해 이후의 시리즈가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를 선보였던 실사영화 시리즈와는 달리, 원작의 캐릭터들을 그대로 등장시킨 별도의 CG 애니메이션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카미야 마코토의 장편 데뷔작 '레지던트 이블 디제너레이션(2008)'입니다.
사실,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이 작품은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전개도 뻔하고 어떤 흐름으로 흘러갈지, 다음 장면이 뭐가 나올지를 상상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고 그런 B급 좀비영화 수준과 비교해서 그리 나은 점을 찾아볼 수가 없는 작품인 셈입니다. 다만, 바이오 하자드의 팬들에게는 확실한 팬 서비스가 될 듯 하며, 초특급 퀄리티는 아니지만 제법 준수한 CG 완성도와 함께 펼쳐지는 액션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당합니다. 호러물이지만 호러물보다는 액션물에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호러물.
썸머워즈(2009)
ⓒ 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
전작과는 달리 어드벤처 요소가 강화된 것도 특징입니다. 가상 모바일 네트워크인 오즈와 시골의 큰집이라는 전원적 요소는 의외로 서로가 잘 조화를 이루면서 극을 이끌어 갑니다. 여기에 시골의 대가족이라는 설정은 비록 우리네와는 조금 그 모양새가 다르지만, 여름을 맞이하여 고향집으로 휴가를 떠나는 우리게 가족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습니다.
비록 전작에 비히 이야기의 밀도나 가 그다지 농밀하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썸머워즈는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여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멋진 모험과 소소한 일상 속의 재미, 썸머워즈는 마치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과도 같은 맛을 보여주리라 생각됩니다.
☞ 썸머워즈, 여름을 습격한 현실과 가상의 흥미로운 이중주 (바로가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반응형
'Animations > Feature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리스마스(혹은 겨울)에 보면 좋은 만화영화 (4) | 2010.12.25 |
---|---|
아니메로 만나는 전설의 랠리머신, 란치아 스트라토스 (3) | 2010.08.21 |
안노 히데아키, 애니메이터로서의 흔적을 찾아서 (8) | 2010.08.03 |
마크로스와 에반게리온의 데자뷰... 반복된 선라이즈의 폭주 (10) | 2010.08.01 |
하늘의 로망 공적, 그 흔적을 찾아서 (1) | 2010.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