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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en of the East Production Committee

마전, 후지 TV의 애니메이션 전문 방영 시간대인 노이타미나를 통해 방영되며, 좋은 반응을 얻었던 카미야마 켄지 감독의 작품 동쪽의 에덴.

2010년이라는 비슷한 시간대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세계관을 다룬 이 작품은, 미스터 아웃사이드라는 정체불명의 인물로부터 특수한 휴대폰을 통해 100억엔의 전자화폐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쥬이스라는 정체불명의 여성 비서를 통해 어떤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12인의 세레손들이 일본을 구하기 위한 구세주가 되어야 한다는 다소 황당무게한 임무를 부여받은 상황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세레손 중의 한명인 타키자와 아키라가 모리미 사키라는 평범한 취업준비 중인 대학생 아가씨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미스테리하면서도 다소 가볍고 코믹한 터치로 다루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10발의 미사일이 떨어진 일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평온한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요. 그런 평온함 속에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체 직업에 대한 의지도 없어져 버린 수많은 NEET 족들이 범람하는 일본의 사회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자금과 힘을 얻게 된 세레손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진 자의 의무)'라는 명제 속에서 어떤 식으로 세상을 구하려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작품 속에서 하나의 사회 문제로 대두된 NEET 족, 그리고 스스로 기억을 지운 체 이 모든 위험을 헤쳐나가는 주인공 타키자와 아키라의 이야기는 오랜만에 온전히 스토리에 포커스를 맞춰 아니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너무 짧아서 조금 스토리가 급진행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사키 일행들이 개발한 화상 검색엔진인 동쪽의 에덴은 휴대폰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촬영(내지는 보여지고 있는) 영상을 웹 상에 실시간으로 올려 그 검색결과를 휴대폰의 화면에 오버래핑 시킴으로써, 굉장히 진보된 개념의 모바일 검색 엔진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이 기술이 단지 만화영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기술이 아닌 실제 구현이 가능한 단계까지 와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흥미를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바로 동쪽의 에덴에서 등장했던 화상 검색엔진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는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술을 아니메와 함께 이야기 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물론, 아주 디테일한 기술적 레벨까지 다루는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수준 정도로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자료를 본 게 몇 개 안되는지라...)


증강현실, 모바일 아니 모든 IT 기기의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될 것인가.

가상현실이라는 단어는 굳이 해당 기술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우리에게 널리 퍼진 개념입니다. 가상의 입체공간에 현실감을 불어 넣어 사용자들이 마치 실제 현실 속에서 행동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의미하는 것이죠. 궁극적으로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진 것과 같이 가상인지 현실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시각 뿐만 아닌 모든 감각기관에 자극을 주는 것이겠지만, 현재로서는 상당히 현실과 가깝게 묘사된 온라인 게임 속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이용하여 역할을 수행하거나, 비행기 조종 시뮬레이터를 통해 실제와 똑같은 환경으로 비행조종 연습을 할 수 있는 등의 범위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상현실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증강현실은 조금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가상현실이 인간을 가상공간에 초대하는 형태라면, 증강현실은 가상의 인터페이스와 가상의 객체를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로 끌고 나온, 어떻게 보면 가상현실과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갖고 있는 개념인 것이죠. 자신이 어떤 사물을 눈으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가상의 캐릭터가 등장하여 보고 있는 사물의 명칭, 용도, 가격, 제품라인, 판매처 등에 대한 정보를 음성이나 팝업 메시지로 알려준다면 어떨까요? 바로 이것이 증강현실의 궁극적인 완성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 가상의 캐릭터와 가상의 사물이 등장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개발초기부터 이러한 형태로의 개발은 분명 불가능한 이야기였기에 현실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증강현실을 제공하게 됩니다. 가상현실이 오감 자체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기술적 수준이 아직 미비했기에 컴퓨터와 같은 IT 기기를 이용한 것처럼, 증강현실은 이러한 가상의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바로 이 기기를 사용하게 됩니다. 모바일 기기, 즉 휴대폰인 것이지요.

초기 증강현실 장비인 MARS(좌)와 DWARF(우) (from 모바일 증강시스템에 대한 연구동향, 광주과학기술원)


물론, 애초부터 증강현실이 휴대폰에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증강현실의 개념이 등장하던 당시에는 휴대폰에 카메라가 부착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증강현실을 위해 필수적으로 구비되어야할 이미지 인식, 3D 처리와 같은 고성능의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이미지 처리 작업을 해낼 수 있는 휴대폰이란 것은 상당히 요원한 이야기였지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노트북을 등에 매고, 고성능 카메라를 어깨나 머리에 매단 체, 특수 고글을 쓰고 처리된 영상을 고글에 투사하는 형태의,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증강현실이 구현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하여 카메라 폰, 그것도 몇백만 화소급의 고성능 카메라가 휴대폰에 내장되고, 고화질의 영상을 쉽사리 재생할 수 있는 고성능의 CPU와 고화질의 LCD가 속속 휴대폰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증강현실이 모바일 기기에 적용될 수 있는 여건이 조금씩 조성되기 시작한 것 입니다. PC에서 점차 휴대 IT 기기로 그 흐름이 바뀌면서 증강현실 기술은 좀 더 빠르고 쉬운 형태의 인터페이스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증강현실의 다양한 사용예 (image from flickr.com)

증강현실의 기술을 적용하면 거리에서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통해 각 건물에 입점해 있는 상점과 식당들의 정보(메뉴, 가격, 인테리어 및 사람들의 평가 등등), 지나가는 자동차의 성능, 행인들의 옷이나 악세사리에 대한 가격과 판매처, 유서깊은 관광명소에 대한 간단한 정보 등을 휴대폰의 LCD 화면을 통해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용 모바일 기기가 장착된 고글을 쓰고 의사가 수술에 임하면 고글에서 각종 수술에 관련된 정보와 그래픽 영상이 나타나 수술에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의료분야 뿐만 아니라, 교육분야에서도 이러한 증강현실을 이용한 다양한 시청각 교육이 가능합니다. 특수 고글을 쓰고 빈 공간을 바라보면 천체가 입체적으로 디스플레이 됩니다. 선생님이 그 중에서 은하계를 클릭하면 줌인을 통해 은하계의 구조가 학생들에게 확대되어 보여지게 되겠죠. 화성을 클릭하면, 다시금 줌인을 통해 화성의 확대된 모습과 위성들의 모습이 디스플레이됩니다. 이처럼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닌, 터치 센서 등의 활용을 통해 증강현실은 인터랙티브하게 활용될 수도 있지요.

그 밖에도 자동차나 비행기 등의 전면 유리에 HUD(Head Up Display) 등과 연계하면, 3차원 캐릭터들에 의한 내비게이션 및 각종 상태 정보의 확인이 가능할 겁니다. 또한, 공업 디자인이나 제품 설계시 증강현실을 활용하여 3차원적인 설계가 가능할 수도 있겠구요. 이러한 예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아이언 맨' 등의 3차원 인터페이스의 컴퓨터 등에서 그 모습을 잠깐 엿볼 수가 있습니다.


동쪽의 에덴에 등장한 화상 검색엔진을 구축하기 위해 놓여진 난제들

자, 이러한 증강현실 기술이 접목된 동쪽의 에덴의 화상 검색엔진을 구현할 때 어떤 과제와 문제점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을까요. (아차, 텍스트만 나열된다고 동쪽의 에덴의 화상 검색엔진이 증강현실이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시지는 마시길. 실제 현실의 영상과 가상의 텍스트/이미지 등이 결합된다는 점에서는 증강현실의 한 예라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3D 그래픽 효과만이 빠졌을 뿐.)

일단, 엄청난 성능상의 발전을 이루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폰 카메라의 성능상의 한계가 큰 걸림돌 중 하나일 겁니다. 화소수는 높다하더라도 CMOS 센서의 특성상 어두운 곳에서의 화질 저하가 심하기 때문에 과연 정확한 영상인식과 처리가 가능할지가 관건일 테니까요. 그것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악천후의 날씨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영상인식이 잘못되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표시되는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있어야 할 겁니다.

동쪽의 에덴에서 사용된, 모바일 증강현실을 활용한 화상 검색엔진의 예. (ⓒ Eden of the East Production Committee)

 
영상 인식의 처리엔진을 휴대폰에 실을 것인지, 아니면 서버 쪽에 실은 것인지도 화두가 될 수 있습니다. 고성능의 휴대폰이라 하더라도 높은 프로세싱 능력을 필요로 하는 영상 처리는 머신에 부담을 주고 결과적으로 제품의 가격상승을 유발할테니까요. 촬영한 이미지를 서버에 보내면 서버가 이를 영상처리를 통해 분석하여 결과 정보를 보낸다면, 휴대폰의 하드웨어적 부담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서버에서 이를 처리할 경우에는 서버 측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에, 서버를 분산하여 운용하는 시스템적 고려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속도를 감안하면 초창기에는 서버에서 영상 처리를 하다가 후에 휴대폰 쪽으로 이를 옮기는 순서로 갈 수도 있구요.

또한, 사용자가 현재 있는 위치를 측정하기 위한 GPS의 도입 역시 필요할 겁니다. 현재 있는 위치정보를 통해 좀 더 정확하고 빠르게 사용자가 보낸 영상 정보를 분석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현재 각광 받기 시작하는 LBS(Location-Based System: 위치기반 시스템)가 모바일에 적용되면 증강현실과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을 찍어 보낸 다음 그에 대한 검색 결과를 받을 수도 있지만,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는 영상에 대한 검색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더 적합한 구현일 겁니다, 바로 동쪽의 에덴의 시스템처럼 말이죠. 이는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3G 영상통화보다 더 고화질의 영상 데이터를 전송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에 따른 통신속도 및 대역폭의 확보와 일반인들이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는 요금제의 마련 역시 중요한 이슈가 되겠지요. 어쩌면 이것이 가장 관건이 될 문제일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기껏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요금제가 너무 비싸 이용하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안될테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영상 인식을 통한 해당 사물에 대한 검색 정보를 제공해야할 서버와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역시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기존의 검색엔진과의 연동만으로는 사용자들이 찍은 사진과의 비교 분석이 원활하지 않을테니까요. 같은 사물을 찍어도 모두 제각각의 각도와 밝기, 전혀 다른 환경에서 촬영할 수 있기에 그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좀 더 확장된 개념의 데이터베이스가 구비되어 있어야 할 겁니다.

물론, 이 모든 정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시스템을 특정 업체나 특정 컨소시엄의 구성을 통해서 제공한다는 것은 무리이겠지요. 이를 위해 사용자들이 찍은 영상 정보를 네티즌들과 모바일 유저들이 공유할 수 있는 모바일 웹 포탈이 구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유저들이 커멘트를 달면 그것이 영상을 찍은 사용자에게 피드백이 되어야 겠지요. 이것은 동쪽의 에덴의 시스템이 활용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즉,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오픈 시스템의 형태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오픈 시스템의 도입에 따른 개인정보의 유출과 초상권 침해와 같은 문제들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일 겁니다. 누군가 몰래 자신을 도촬하여 이를 증강현실 시스템을 통해 악용하거나 놀림거리로 삼는다면, 이 역시 또다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증강현실. 그 새로운 가능성의 탐색

증강현실은 아직 상용화 단계라기보다는 여러 기업과 연구소에서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풍부하며, 제대로 실현된다면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양방향성과 오감을 자극하는 인터페이스는 분명 우리의 세상을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꾸며낼 테니까요. 자신의 옆에 자신을 보좌하는 아바타 비서가 같이 걸어다니면서 정보를 제공하는 그런 세상은 상상만 해도 굉장히 특이한 경험이 될 듯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인터페이스는 자칫 인간끼리의 소통에 점점 어려움을 느껴가는 현대인들의 습성을 더더욱 가속화시킬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기술의 발전을 위한 인간의 행보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겁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려와 걱정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세상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갈 방법과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겠지요.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전자두뇌와 사이보그 장기를 통해 가상현실(좌)와 증강현실(우)의 궁극적 진화형태를 보여주었던 공각기동대 S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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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의 30주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건담 관련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일본에서 또다른 빅 뉴스가 있습니다.

 

토미노 요시유키 옹의 신작 건담?


일단 건담 BIG EXPO에서 이벤트 형태의 단편으로 상영된 이 작품은 현재 "Ring of Gundam"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현재 방영 형태나 방영시기 등에 대해서 정확히 정해진 바는 없는 듯 하구요. 제작 스튜디오 역시 선라이즈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로봇' 아니메 스튜디오(카토 쿠니오 감독의 단편작 La Maison en Petits Cubes나, TV 시리즈 나나미 짱 등을 제작한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아 3D 애니메이션과 셀 애니메이션이 혼합된 형태로 제작될 듯 합니다. 메카닉 디자인은 역시나 원년 멤버인 오카와라 쿠니오가, 그리고 음악은 칸노 요코가 맡아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새로운 건담 시리즈에 큰 힘을 실어줄 듯 합니다.

 

일단 배경은 우주세기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가 될 듯 하구요. 달 궤도에 지름 600Km에 육박하는 거대한 링 모양의 인공 구조물이 떠있는 지구권이 그 배경인 듯 합니다. 주인공인 에이지가 'Beauty Memory'라는 것을 지구의 어느 산 속에서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이 'Beauty Memory'라는 것이 건담 시리즈의 첫 주인공이었더 아무로 레이와 관련이 있는 물건이라고 하는군요.

 

이번 30주년 기념의 실사모형 건담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건담에 대한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벗어버린 듯한 토미노 옹이 만든 신작이니만큼 어떤 형태로 전개가 될지 궁금합니다. 또한, 턴에이 건담에서 보여준 탈 건담적인 모습이나 제타 건담 극장판에서 보여준 좀 더 희망적인 메시지들로 보아 이번 건담 시리즈 역시 확실히 그가 전성기를 누리던 70~80년대와는 분명 다른 모습을 띌 것 같군요.

 

이제 초로의 노인이 된 '몰살의 토미노'가 '희망의 토미노'가 되어 보여주는 건담의 세계가 자못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세대에게 공감을 얻기는 아무래도 어려워 보이지만 말입니다.)

 

마이니치 신문의 기사: ガンダム,30周年作品の映像公開 富野由悠季原作・総監督で制作

Animation News Network의 기사: Part of Yoshiyuki Tomino's 'Ring of Gundam' Previewed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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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TSU · SUNRISE (captured from Gundam UC Homepage)


제작 발표 후 한동안 잠잠하던 기동전사 건담 UC가 홈페이지 개편과 함께 새로운 소식을 올렸습니다.

 

기동전사 건담 UC 홈페이지 바로가기

 

일본어 페이지 뿐만 아니라 영문 페이지 역시 만들어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글로벌한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군요. 확실히 21세기 들어 일본 아니메의 화두는 세계화인 듯 합니다. 공식적으로 외국인을 위한 홍보활동을 벌이지 않았던 건담 시리즈 조차도 이렇게 영문 페이지로 홍보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일단 최신 뉴스 측은 일본어 홈페이지만 업데이트 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8월 22일자로 새로이 제작중인 건담 UC 아니메에 관한 소식이 업데이트 되었군요.


우주세기를 배경으로 한, 역습의 샤아 편으로부터 3년 뒤의 이야기인 건담 UC 아니메는 2010년 봄, OVA 형태로 발매될 예정인 듯 합니다. 총 6부작으로 제작된다고 하는군요. 1화는 50분이라고 합니다. 아마 2~6화는 30분 정도의 일반 OVA 분량 정도일 듯 하네요. OVA 발매가 완료된 이후에는 아마도 총집편 형태의 극장판으로 개봉될 듯 합니다.

 

자, 과연 새로운 우주세기의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자못 궁금하군요. 이제 이쯤되면 건담 시리즈도 어떻게 국내에서 DVD 정도로 정발 좀 되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이번 UC가 그 물고를 터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세계 동시 발매라는데, 한국은 제외되겠군요.)


ⓒSOTSU · SUNRISE (captured from Gundam UC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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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Imagi Crystal Limited / Original Manga ⓒTezuka Production Co., Ltd.


일본 아니메의 상징, 철완 아톰이 헐리우드에 의해 3D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합니다. 2009년 10월 23일 개봉예정.

 

서양권의 소재 고갈로 인해 일본 아니메를 원작으로 삼은 헐리우드의 영화들이 한참 제작 러쉬 중인 요즈음, 이 아스트로 보이는 이례적으로 영화가 아닌 만화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만화영화의 종주국인 미국이 만화영화의 소재를 아니메에서 가져오는 현실은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황은 정반대였는데 말입니다. (일본에게는 무척이나 문화적 자긍심을 느끼는 상황이겠죠.)

 

개인적으로 이번 아스트로 보이의 3D 애니메이션 이식은 꽤 성공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일찌감치 3D 에니메이션으로의 이전을 통해 풍부한 노하우를 축적한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가 트랜스포머 외에는 실사영화로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일본 아니메를 그 소재로 택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의 맛을 십분 살린 훌륭한 퓨전요리가 탄생될 듯한 예감이랄까요.

 

트레일러의 영상으로 본 미국식 아스트로 보이의 모습은 완전히 미국적 가치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만, 아톰이 가진 외향적 특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체, 원작보다는 훨씬 활기차고 개구장이스러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실사영화로의 이식보다는 확실히 성공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그대로 아스트로 보이의 외향적인 컵셉을 그대로 간직한 체,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스타일로 뒤바뀐 것이죠.

 

얼마전 개봉하여 쓰디쓴 혹평과 참패를 기록했던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경우도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면, 훨씬 원작과의 높은 싱크로와 애니메이션만의 맛을 100%  살리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스케일 큰 드래곤볼의 황당무게한 액션연출이 3D 애니메이션과 접목되었다면, 훨씬 제대로 된 맛을 보여주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 이번 아스트로 보이의 국내 더빙판에서 아스트로 보이의 성우를 무려 유승호 군이 맡았다고 합니다. 설마 유승호의 목소리를 들으러 수많은 누님팬들이 아스트로 보이를 관람하러 오시지는 않으시겠죠?

 

아스트로 보이 공식 홈페이지 (트레일러, 스틸샷 출처)

ⓒ2009 Imagi Crystal Limited / Original Manga ⓒTezuka Production Co., Ltd.



ⓒ2009 Imagi Crystal Limited | Original Manga ⓒTezuka Production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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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엔이 미디어 제작

크라잉 프리맨 디지팩 패키지 한정판 (이미지 출처: 알라딘)

 
이케가미 료이치(그림), 코이케 카즈오(글)의 전설적인 성인극화 코믹스 '크라잉 프리맨'의 OVA가 이제서야 정식 DVD로 한국을 찾아오는군요.
 
80년대 당시 VHS 비디오 타이틀의 서두에 항상 등장하는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음란물과 폭력 영상물에 대한 위험성을 설명하는 공익광고의 배경 씬으로 사용되면서, 많은 이들이 그 제목은 몰라도 그 장면만큼은 모두 어렴풋이 기억하는, 어찌보면 일본 성인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짧은 컷이나마 시청하지 않았나 싶은 크라잉 프리맨은, 일본 성인만화계의 거성 이케가미 료이치의 신필에 의해 탄생한 살인을 하면 눈물을 흘리는 독특한 매력의 주인공으로 인해 아니메는 물론 헐리우드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던 이케가미 료이치 최대의 히트작이기도 합니다.
 
80년대 한국의 무판권 성인만화계를 선도하던 구호 성인만화에 의해 소개(당시 제목은 '자유인'인가 그랬는데... 원제를 번역한 울부짖는 자유인은 어감이 이상해서인지 제목을 짧게 하려함인지 그냥 자유인으로만 표기)되면서 국내에서도 이케가미 료이치의 작품은 당시 청소년들에게도 음성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지요. 이번에 DVD로 발매되는 크라잉 프리맨은 바로 이 코믹스를 원작으로 88년부터 94년까지 총 6부작으로 제작된 OVA 아니메입니다.

 

ⓒIkegami Ryoichi / Shogakukan

이 작품은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구호 성인만화를 통해 국내에 음성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씨티 헌터 등과 함께 당시 청소년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불건전 만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원래 일본에서도 성인극화 만화였던 이 작품을 국내에서 무판권으로 들여오면서 아무런 제약없이 청소년들이 접했기 때문인데요. LD를 비디오 테입으로 더빙하는 당시의 아날로그식 복사 배포(일부 레코드 가게에서 이 본사본을 판매)에 의해 당시 많은 아니메 매니아들이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면서, 그 존재를 영등위가 눈치챘는지 후에 등장하는 많은 비디오의 공익광고에 이 크라잉 프리맨의 OVA 2편 클라이막스 씬이 그대로 인용되게 됩니다.
 
하여간에 어린 시절의 아련하면서도 18금스러운 기억들과 맞닿아 있는 작품인지라 DVD 발매 소식을 들으니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불과 십 수년전만해도 공익광고에까지 사용되면서 폭력적이고 음란한 영상물의 상징으로 치부되던 이 작품이 이렇게 정식으로 국내에 DVD로 발매되다니, 정말 너털웃음이 나오는 일이군요.
 
총 6부작의 OVA는 각 작품마다 스탭진이 조금씩 다릅니다. 성인작품보다는 아동용 전연령가 작품을 주로 만드는 도에이가 의외로 제작을 맡아(그만큼 이 작품의 흥행 가능성이 뛰어났다는 반증이겠지만) 상당수의 스탭진이 도에에 동화 출신의 인물들인데요. 먼저 1편은 드래곤 볼 시리즈와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 3X3 Eyes의 감독으로 유명한 니시오 다이스케가, 2편은 은하철도 999 TV 시리즈와 천년여왕 TV 시리즈로 유명한 노장 니시자와 노부타카가 맡았습니다. 이 두 편은 모두 아라이 코이치가 작화감독을 맡으면서 가장 원작과의 싱크로가 높은 비쥬얼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3편과 4편에 이르러서는 주요 스탭진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드래곤 볼, 그랑조트, LAIN 등에서 연출 등을 맡아온 죠헤이 마츠우라가 3편을, 역시 다수의 드래곤 볼 시리즈에서 연출을 맡아왔고 성투사 성시의 감독으로 알려진 야마우치 시게야스가 4편의 감독을 맡았는데요. 특히 이 두 시리즈는 우루시하라 사토시가 작화를 맡으면서 기존의 이케가미 료이치의 스타일과는 그다지 융합이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적어도 비주얼에 있어서는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많은 이질감을 주었다고 기억이 됩니다.
 
5편과 6편은 야마우치 시게야스가 쭉 감독을 맡았습니다. 디지몬 시리즈나 강철의 연금술사 극장판, 시간을 달리는 소녀, 퍼팩트 블루 등에서 원화스탭으로 참여한 신예 야마시타 타카아키가 작화감독을 맡았는데요. 1편이나 2편에 비해서는 동화적인 연출보다는 정적인 연출에 치중한 느낌이지만, 3편이나 4편에 비해서는 원작의 그림체와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합니다.
 
무삭제판으로 원화집이나 포스터와 같은 부록 등도 제공한다니 부실한 내용의 북미판보다 훨씬 좋은 패키지일 듯 하군요. 이제와서 잊혀져버린 이 작품, 그것도 매니악한 취향의 성인물이 이 정도 퀄리티의 패키지로 출시된다는 것이 조금 의문이긴 합니다만, 올드 팬으로서는 꽤나 기대가 되는 타이틀이 아닐 수 없습니다. 8월 14일 출시 예정.

크라잉 프리맨의 실사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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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 / CJ 엔터테인먼트 배급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검색)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2007년 큰 호응을 얻었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2년만에 다시 새로운 작품을 들고 여름 극장가를 찾아왔습니다. 여름에 딱 어울리는 그 제목은 '썸머 워즈(Summer Wars)'.
 
일본에서는 8월 1일에 개봉을 했고, 국내에서는 오는 8월 13일 개봉예정이라는군요. 이전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이하 시달녀)'가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소규모로 개봉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썸머 워즈는 확실히 규모도 커지고 프로모션도 전에 비할 바가 아닌 듯 합니다. 호소다 마모루와 그의 작품의 입지가 이제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군요.
 
주요 스탭들은 전작인 시달녀와 거의 동일합니다. 특히나, 캐릭터 디자인을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다시 맡아, 호소다 마모루-사다모토 요시유키의 특급 듀오가 이번에도 큰일을 낼 것 같은 포스를 뿜어주고 있군요. 각본의 오쿠데라 사토코, 작화감독인 아오야마 히로유키도 모두 시달녀에 참여했던 이들이죠. 야마모토 니죠 대신 미술을 맡은 다케시게 유우지 배경감독 역시 시달녀에서 배경미술스탭으로 참여하였으며, 액션 작화감독인 니시다 타쯔죠 역시 시달녀의 원화스탭이었습니다. 제작사 또한 시달녀의 제작을 맡았던 전통의 명문 제작사 매드 하우스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달녀에서부터 이번 썸머워즈에 이르기까지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느낌은 지브리 특유의 풍부한 감성과 아기자기함이랄 수도 있겠는데요. 이러한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두 작품의 배경미술이 철저히 지브리적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듯 합니다. 시달녀의 배경미술 감독이었던 야마모토 니죠와 이번 썸머워즈의 배경미술 감독인 다케시게 유우지가 모두 지브리 소속의 대표적인 배경미술 감독이기 때문인데요. 거기에 가이낙스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인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캐릭터가 움직이면서 시달녀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꽤나 상큼하면서도 풍부한 느낌이 가득한 작품이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더불어 펼쳐지는 가상현실과 CG의 독특한 영상미가 풍성하면서도 색다른 맛을 보여줄 듯 하군요.
 
사실 이 스탭진의 구성은 참 재미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가이낙스의 대표주자인 사다모토 요시유키와, 도에이 동화 출신의 감독으로 한 때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미야자키의 후계자 중 하나로 지목되기까지 했던 호소다 마모루, 그리고 도에이 A 스튜디오와 일본 애니메이터의 아버지 모리 야스지의 스타일을 이어가는 스튜디오 지브리와, 데즈카 오사무와 무시 프로덕션의 유지를 가장 많이 이어받은 매드 하우스... 신구의 조합과 라이벌 간의 합심은 이제 일본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에 천작하기 보다는 글로벌한 관점에서 모든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일본 스타일 아니메를 만들어가보고자 하는 그들의 시도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썸머 워즈가 이번에도 큰 성공을 거둔다면, 호소다 마모루의 입지는 얼마만큼 커질까요. 과거 그를 내쳤던 스튜디오 지브리는 땅을 치고 울까요? 호소다 마모루식 스타일의 아니메는 과거 미야자키의 그것과는 다른 스타일이지만, 보편적인 감성의 테두리 안에서 재미와 감동을 간직하고 풍부한 미술과 색감으로 일본 아니메만의 맛을 낸다는 점에서 미야자키의 뒤를 이을만 해보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미야자키 만큼의 스케일과 디테일함을 겸비하지 못했지만, 아니 미야자키의 스타일을 어느 한명이 모두 이어가기는 이제 불가능할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미야자키 스타일을 이어갈 수 있는 많은 후배 애니메이터들 중에서 호소다 마모루의 존재감은 이번 썸머 워즈를 기점으로 더더욱 커질런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 / CJ 엔터테인먼트 배급 (이미지 출처: 썸머워즈 한국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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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Moon/Fate Project

Fate/Stay Night 극장판 공식 홈페이지 (출처: 공식 홈페이지)


극장판 Fate/Stay Night이 내년 초인 2010년 1월 23일 개봉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해당 기사의 원문.
 
 
도쿄 시네마 필름 이케부쿠로를 포함 최소 11개 개봉관에서 상영예정이라고 하는군요. 이번 극장판은 Fate의 주요 스토리라인인 Unlimited Blade Works를 포함하여 독자적인 스토리로 구현될 것 같습니다. Fate의 팬들이라면 잘 아실 Unlimited Blade Works는 스토리라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린의 서번트인 아쳐의 궁극의 기술이기도 하지요. TV 시리즈에서도 헤라클레스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예의 그 장엄한 주문영창과 함께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스튜디오 딘에서 제작을 맡고 야마구치 유지 감독, 사토 타쿠야 각본, 이시하라 메구미 캐릭터 디자인/총작화감독 등 주요 스탭진은 TV 시리즈의 스탭들이 그대로 계승할 예정이군요. 개인적으로는 움직임이 많아야할 장면에서 정적인 컷 씬으로 대부분을 처리했던 Fate TV 시리즈에 대해서 일말의 실망감도 갖고 있었던지라, 이번 극장판은 좀 더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모습으로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현재로서는 TV 시리즈를 압도할 정도의 퀄리티는 아닐꺼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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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 '벼랑 위의 포뇨'가 북미에서 개봉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비록, 이전에 비해 기력이 쇠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2008년작인 이 작품의 이번 북미 개봉은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거의 디지털 3D로 넘어가버린 북미의 만화영화 시장에 아날로그식 셀 애니메이션에 기반한 미야자키 하야오식 스타일이 과연 어떤 반응을 얻어낼까 하는 것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군요.
 
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2002년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아카데미 상을 수상했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과연 이번에도 포뇨로 또다시 만화영화 왕국의 심장부에 회심의 카운터 펀치를 날릴지도 역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포뇨의 북미 배급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토록 추구해오던 풀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자랑했던 월트 디즈니라는 것인데요. 픽사와 드림웍스 등에 의해 이미 만화영화 시장에서 상당한 입지를 잃어버린 디즈니가 자신들이 버렸던 셀 애니메이션을 여전히 추구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이번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 들고 온 사실은 꽤나 관객으로서도 남다른 느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래의 영상은 공식 트레일러를 캡쳐한 것인데요. 트레일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어 더빙이 의외로 어색하지 않고 좋은 싱크로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미야자키의 스타일에는 옛 디즈니의 흔적들이 조금씩 묻어나 있기에 그런 것일까요. 더불어 성우 캐스팅도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데요. '반지의 제왕'의 갈라드리엘 역부터 'I'm Not There'의 쥬드 퀸, '인디아나 존스 4편'의 이리나 스팔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데이시까지 블록버스터와 작가주의 작품을 아우르며 현재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케이트 블랑쉐, '제이슨 본' 시리즈로 역시 흥행과 연기력을 모두 겸비한 배우 매트 데이먼, 쉰들러 리스트'의 리암 니슨 등 흥행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압도적인 캐스팅 파워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14일 개봉 예정.

ⓒ 2009 NIBARIKI - GNDHDDT


공식 트레일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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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ion I.G가 제작 중인 '망각의 섬, 하루카와 마법의 거울(ホッタラケの島, 遥と魔法の鏡, 이하 망각의 섬)이 올 여름 극장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 2009 Fuji TV / Production I.G / 電通

그림 1. 망각의 섬 공식 홈페이지 (출처: 망각의 섬 공식 홈페이지)
 
보시다시피 후지 TV 개국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후지 TV에서 기획하고 Production I.G가 제작을 맡은 3D 애니메이션입니다. Production I.G는 근래 동쪽의 에덴부터 전국 바사라, 도서관 전쟁, R.D 잠뇌 조사실, 신령사냥 고스트 하운드, 정령의 수호자, 공각기동대 TV 시리즈 등, 셀화 기반의 2D 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어 왔습니다만, 사실 3D를 주축으로 한 CG 분야에도 조예가 깊은 제작사입니다.(언급한 위의 작품들에도 음으로 양으로 많은 CG가 사용되었지요.) 이번 '망각의 섬'은 Production I.G의 오랜만의 Full 3D 극장판 영화로서, 그간 절제하고 있던 그들의 3D 기술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이야기 구조는 공식 홈페이지의 메인과 제목만으로도 쉬이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루카라는 소녀가 망각의 섬이라는 신비로운 곳에서 벌이는 모험 이야기이죠. 아마도 중요한 키 아이템은 마법의 거울일 듯 합니다. 꼬마 돼지처럼 생긴 귀여운 생물이 그녀의 모험의 동반자가 되겠군요. 전형적인 전연령가 아동용 작품을 위한 이야기로, 큰 복선이나 갈등구조 없이 단선적이면서도 보기 편한 전개가 되리라 예상됩니다. 결국, 얼마만큼 신나고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할 것이냐가 관건이 되겠군요.

감독은 특이하게도 애니메이션 연출가 출신이 아닌, CF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이력을 쌓았으며, 2003년 '프린세스 블레이드'로 영화계에 데뷔한 신예 사토 신스케가 되겠습니다. 각본은 만화 고쓰(GOTH)의 원작자인 아다치 히로타카(펜네임: 오츠이치)가 사토 신스케와 공동으로 맡았으며, 연출은 '도쿄 마블 초콜릿(2007)'의 감독 시오타니 나오요시가 맡아 애니메이션적 노하우를 보태주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22일 일본 개봉예정.

© 2009 Fuji TV / Production I.G / 電通

그림 2. 트레일러 스틸샷. (출처: 망각의 섬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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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의 '라스트 유니콘 (1982), 독특한 매력의 이국적 판타지'를 수정하여 옮긴 글입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inherited from ITC Entertainment)


<스탭>

◈ 감독: 아써 랜킨 쥬니어 (Arthur Rankin Jr.), 쥴스 배스 (Jules Bass)
◈ 원작/각본: 피터.S.비글 (Peter.S.Beagle)
◈ 제작: ITC Entertaiment, Rankin/Bass Production, Topcraft Studio


<시놉시스>

'라스트 유니콘 (1982)'을 참고하세요.


1. 동서양이 합작한 환상적이고 고풍스러운 모험 이야기

'Last Unicorn(이하 라스트 유니콘)'은 동서양의 제작진들이 힘을 합쳐 만든 다국적 작품으로, 감독과 원작/각본과 같은 핵심 스탭진은 모두 미국에서, 그리고 스폰서는 영국의 ITC Entertainment가 맡았으며, 원화와 동화는 일본의 소규모 스튜디오인 Topcraft가 맡았습니다. 특히 이 Topcraft의 참여야말로 이 작품을 다른 영미권 작품과 차별화 시켜주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선녹음 후작화' 방식으로 제작되던 미국식 만화영화 제작 스타일과 '선작화 후녹음' 방식의 스타일로 제작되어오던 일본식 제작 방식과의 조우과 과연 어떤 형식의 작품으로 표현될지가 흥미로운 부분인 것이죠.
 
기실 Topcraft는 이 라스트 유니콘에 있어서는 하청 제작업체내지는 용역업체와 비슷한 위치(감독, 각본 등 핵심 스탭진이 모두 미국인, 비즈니스적으로는 '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라고 볼 수 있기에 실제 제작방식은 거의 미국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미국식 제작방식을 일본의 스튜디오가 얼마만큼 잘 소화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비 디즈니 계열의 극장판 만화영화로서는 꽤나 높은 완성도로 탄생되지 않았나 싶은데, 물론 디즈니라든지 일본의 탑 클래스(그러니까, 풀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제작할 수 있었던 초창기 도에이 스탭진들 같은...)의 극장판 만화영화에 비해서 객관적으로 캐릭터의 동화적 표현 등은 떨어지긴 합니다만, 동양권의 작화방식이 서양방식의 표현 스타일과 맞물려서 이루어낸 듯한 미묘한 특이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시각적 경험이기도 합니다.
 
라스트 유니콘은 성우 캐스팅에서 놀라울 정도의 호화 캐스팅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주인공인 유니콘 역에는 존 패로우 감독의 딸이자 우디 알렌 감독의 전부인이기도 한 연기파 배우 미아 패로우(물론, 지금 들어보면 유니콘 목소리치고는 아줌마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어설픈 마법사 슈멘드릭 역에 뉴욕 비평가 협회 남우조연상, 아카데미 남주조연상 등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 알란 아킨, 흥행성과 연기성을 골고루 갖춘 배우 제프 브리지스가 리르 왕자, '반지의 제왕' 사루만과 '스타워즈 에피소드'의 두쿠 백작으로 잘 알려진 크리스토퍼 리가 해거드 왕 등으로 캐스팅 되어 지금의 미국산 대작 만화영화의 스타 배우 캐스팅과 견주어도 그다지 밀릴 것 같지 않은 높은 네임밸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니콘과 숲의 장면 장면이 움직이는 동화에서 태피스트리(벽걸이용 융단) 형태로 변모하면서 마치 동화 속의 환상이 벽화로 재현되는 듯한 오프닝은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옛스럽고 엔틱합니다.(이 태피스트리는 '유니콘의 사냥'이라는 실제 작품에서 모티브를 받은 듯 싶습니다.) 배경으로 흐르던 서정적인 오프닝곡은 그룹 아메리카가 불렀는데요, 후에 케니 로긴스나 In-Mood 같은 그룹에 의해 몇 번 리메이크될 정도로 인기도 있었지요. 특히, 이 고풍스러운 벽화와 서정적인 테마로 특징 지워지는 영상은 왠지 낯설지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니메 팬들 중에서는 기억하시는 분도 많으리라 봅니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초창기 작품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번째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에서는 메인 테마와 함께 화면을 장식한 고풍스러운 벽화 스타일의 오프닝이 등장합니다. 다음 작품인 '천공의 성 라퓨타(1986)'의 오프닝 또한 이 나우시카의 오프닝처럼 벽화 스타일과 유사한 고풍스러운 연출을 보여주고 있지요. 짐작하셨겠지만, 이 라스트 유니콘의 만화영화 제작진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진은 동일한 제작진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창설 당시 Topcraft의 인재들이 흡수된지라 초창기 지브리 작품의 오프닝은 우연치 않게도 라스트 유니콘의 그것과 유사한 느낌을 줍니다.  
 

Last Unicorn,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Nausica of the Valley of Wind, © 1984 Tokuma Shoten

그림 1. Last Unicorn의 오프닝(위)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오프닝(아래) 화면.


2. 꿈의 마지막 단편을 쫓아 삐뚤어진 현실 속을 여행하는 유니콘의 이야기

라스트 유니콘의 각본은 원작자 본인인 Peter.S.Beagle이 맡았습니다. 보통은 원작자가 아닌 전문 각본가가 각본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Beagle 선생의 경우는 이미 78년에 '반지의 제왕' 만화영화의 각본을 맡았기에 (여담으로 어린시절 이 만화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던 유명인 중의 한 명이 바로 20여년 뒤 '반지의 제왕' 3부작 시리즈로 전세계적 명성을 얻은 피터 잭슨 감독이기도 합니다.) 각본가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춘 상태였고, 그로 인해 각본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자가 각본을 쓴지라 작품의 이야기 전개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만화영화를 위해 잘 안배되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스토리의 뛰어난 이식성은 이 작품의 가치를 현재까지도 이어주는 중요한 포석이 되고 있습니다.
 
초반의 이야기는 환상 속의 동물인 유니콘이 어느날 자신의 동족이 한 명(아, 아니 한마리)도 없음을 인지하고는 동족을 찾기 위해 숲을 떠나 세상을 여행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녀(성우가 여성분이니까 그녀가 맞겠죠.)는 한 정신 나간 나비(말 그대로 횡설수설합니다.)와의 만남을 통해 동족의 행방이 한 붉은 황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붉은 황소를 찾아나서게 되는데요. 정신 나간 나비의 말 이외에는 정보를 얻을 곳이 없는 유니콘의 현실이 왠지 그녀, 즉 꿈과 추억이 현실과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다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싶습니다.
 
(꿈과 동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유니콘을 백마로 착각합니다.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이들이 순수와 꿈의 상징인 유니콘의 뿔을 보지 못하는 모습은 현대인을 빗댄 은유이기도 하지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유니콘을 사악한 마법사 포르투나는 한 눈에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법사에게 있어 유니콘은 순수와 꿈의 상징이 아닌 한낱 돈벌이의 도구일 뿐입니다. 마법사는 유니콘을 붙잡아 그녀에게 가짜 뿔을 씌우고 사람들에게 유니콘이라고 속여 보여줍니다. 진짜 뿔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유니콘은 가짜 뿔이 씌워져 가짜 유니콘으로 보여지는 서글픈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순수와 꿈을 잃어버리고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군상 역시 오버랩됩니다. 초반부의 유니콘이 처한 상황은 동화적인 표현이 돋보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비유적으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니콘의 고난은 한 견습 마법사의 도움으로 인해 또다른 전개를 맞게 됩니다. 이 마법사는 자신을 슈멘드릭이라고 소개하는데요, 우스운 것은 슈멘드릭이라는 이름이 이디시어(블로그지기 주: 독일어에 슬라브어와 히브리어가 섞인 말)로는 '바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슈멘드릭은 제대로 된 마법은 구사할 줄 모르는데다가 상황판단력이 좀 뒤쳐지는 어리숙한 인물로 나옵니다.(물론, 동시에 정의감과 순수함 역시 갖고 있지만.) 유니콘의 본 모습을 알아본 그는 유니콘을 탈출시키기 위해 도움을 자처하게 됩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그림 2. 사계절 동안 동족을 찾아 헤매는 유니콘.

마법사에게서 탈출한 유니콘과 슈멘드릭은 정처없는 여행 도중 숲에서 한무리의 부랑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로빈 훗의 망령에 사로잡혀 사는 캡틴 컬리의 일당들이었는데요, 유니콘의 마법(그러나 슈멘드릭은 자신이 한 것인 줄로 착각)으로 로빈 훗과 메리언의 망령을 본 이들은 감격에 겨워합니다. 몽상에 빠진 체 현실을 거부하는 이들의 모습은 바로 이전 에피소드에서 유니콘의 진짜 뿔을 알아보지 못하고 가짜 뿔에 현혹된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과 함께 인간을 향한 또다른 풍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 속에서 유니콘은 순수와 꿈을 간직한 또다른 동료(내지는 하녀?) 몰리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든든한(?) 동료들을 얻은 유니콘의 여정은 어두운 현실이 맞닥뜨리면서 급반전됩니다. 세상의 모든 유니콘들 잡아 해거드 왕에게 바친 붉은 황소가 등장한 것입니다. 붉은 황소에 엄청난 위압감에 유니콘 일행은 두려움에 떨고... 숲에서의 마법(로빈 훗과 메리언의 환영을 캡틴 컬리에게 보여준 것)이 자신이 한 것이라 착각한 슈멘드릭은 당당하게 마법의 주문을 읊지만 엉뚱한 결과를 가져와 유니콘을 아리따운 아가씨로 변신시키고 맙니다.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는 유니콘(슈멘드릭의 실력을 감안했을 때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두꺼비나 생쥐가 아닌게 어디랍니까.)을 진정시키면서 우여곡절 끝에 해거드 왕을 찾아낸 유니콘 일행, 슈멘드릭은 얼떨결에 유니콘을 '아말띠아'라는 이름으로 해거드 왕에게 소개시키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말띠아'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이름으로, 염소와 비슷한 모습으로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데, 뿔 하나에는 술이 가득 차 있고, 다른 하나에는 음식이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제우스가 뿔 하나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아말띠아는 하나의 뿔을 갖고 있게 되며, 흰 몸과 하나의 뿔 덕에 많은 이들이 유니콘으로 오인하고 있다고도 하는군요. 바로 이 유니콘으로 오인되는 아말띠아의 이름이 인간의 껍질을 쓰고 있는 유니콘의 이름으로 사용되며, 또다시 작품은 진정한 사실을 외면한 체 허상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비유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런 유니콘, 아니 유니콘의 인간 모습을 해거드 왕의 의붓아들 리르 왕자가 사랑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좀 더 미묘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죠.
 
유니콘은 해거드 왕에게 사로잡힌 자신의 동족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요. 리르 왕자와의 사랑은, 그리고 해거드 왕과 붉은 황소와의 결말은 어찌 될까요. 그녀는 과연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허상과 위선을 벗고 진실과 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한가닥 희망인 순수와 꿈을 찾아내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그림 3. 마녀 포르투나(좌측 상단), 슈멘드릭(우측 상단), 캡틴 컬리(좌측 하단), 그리고 붉은 황소(우측 하단).


3.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랑받는 유니콘, 그녀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3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이 작품은 서구권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국내에서는 80년대 들어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해준 적이 있었지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서 100만장 이상의 DVD 판매량을 올린 것이 그것인데요. 유니콘이 갖고 있는 특유의 깨끗하고 투명한 느낌의 환상성은 순수함이라는 테마에 가장 잘 부합하는 소재로, 어두움과 공포의 대명사 용과 함께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재생산 되는 판타지적 소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유니콘을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는 꽤나 독특하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양의 작화와 서양의 연출이 어우러져 다른 작품과는 다른 독특한 맛을 주는 이 작품은, 특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유니콘의 색다른 아름다움이 유니콘의 본 모습이 아닌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본 모습 이상의 아우라를 뿜어낸 아이러니함 역시 갖고 있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명작을 만들어낸 원작자 Beagle 선생이 저작권료를 제대로 못받아 2000년대에 들어 제작사 측과 법적 분쟁까지 갔다는 사실은 꿈과 망상,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극중 인물들의 모습처럼 왠지 모를 쓸씀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작자의 아픈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화면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유니콘의 눈부신 흰색은 인간의 영원한 동경, 노스텔지어를 연상케 하는 또다른 상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그림 4. 해거드 왕(우측 상단)과 리르 왕자(좌측 상단), 그리고 인간으로 변한 유니콘 아말띠아(하단).

☞ 아,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라스트 씬에서 파도에 갇혀있던 유니콘들이 탈출하여 해변을 뒤덮는 장관은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에서 아르웬이 나즈굴을 물리치기 위해 강물에 걸었던 마법과도 오버랩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작자 Beagle 선생은 이미 78년 '반지의 제왕' 만화영화 각본을 맡은 적이 있다는 것. (물론, 톨킨 선생의 '반지의 제왕' 원작에 이미 묘사가 된 장면이지만 말입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주의 영화리뷰 2009년 7월 3주차에 선정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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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マグニチュード8.0製作委員会

노이타미나(noitaminA. Animation을 거꾸로 나열한 단어로, 후지 TV의 심야 아니메 방송시간대를 총칭하는 명칭이다. 말그대로 애니메이션의 발상을 뒤집은 시험성있는 작품들과 높은 완성도의 작품들이 방영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참조)에서 얼마전 많은 관심을 끌며 화제와 아쉬움 속에 짧은 방영을 마쳤던 '동쪽의 에덴'에 이어 다시금 새로운 충격파가 몰려온 듯 합니다. 이름하여 도쿄 매그니튜드 8.0 (동경 진도 8.0).

영화에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장르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재난 아니메라고 표현해도 될 듯 합니다. 제목 그대로 동경에 발생한 진도 8.0의 지진 속에 주인공이 겪는 휴먼 드라마가 그 중심 스토리라고 할 수 있을 듯 하군요. 사실 영화적으로야 익히 보아오던 시놉시스입니다만, 이것이 아니메로 이식되었다는 점에서 지극히 이례적이고 특색있는 일이 될 듯 합니다.

1화는 주인공인 중학생 소녀 오노자와 미라이의 평범한 사춘기 일상에서 출발하여 라스트의 극적인 지진 발생으로 이후의 흥미로운 전개를 예고하며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일상의 묘사가 자못 디테일하고 훌륭하여 이후의 전개에 있어서 몹시도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의미없는 일상 속에 길들여진 부모와 환경 속에 권태와 짜증으로 가득하던 한 중학생 소녀가 어머니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초등생인 남동생을 데리고 오다이바의 로봇 전시회에 다녀오는 일상은 지극히 리얼리티가 넘쳐납니다.
 
아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은 사춘기 소녀의 마음과 일에 묶여 자식들에게 소홀한 부모를 향한 실망감, 그리고 그런 마음들 때문에 일상 속에서 짜증을 부리는 자신이 한심스러운 한 소녀는 휴대폰을 향해 끊임없이 세상을 향한 불만을 토로합니다. 잠시 화장실에 들린 동생을 기다리며 '세상이 이대로 부셔졌으면 좋겠어'라는 문장을 휴대폰에 입력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부서지기 시작하는 세상.

아마도 이후의 전개는 이 거짓말 같은 현실 속에서 수많은 난관을 거쳐가며 성장하는 소녀와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아니메로서는 너무도 드라마적인 전개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탄탄한 완성도의 작품을 보여주었던 본즈의 제작진이 가세한 작품이기에 기대 역시 몹시 큽니다.

사실, 실제 이 작품은 그동안의 본즈의 작품과는 방향성이 나름 틀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리어스하지만 항상 환상적인 세계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일련의 본즈의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인데요. 감독인 타치바나 마사키의 이력을 살펴보니 '느와르', '공각기동대 SAC', '정령의 수호자', '에반게리온 2.0 극장판 서' 등에서 스토리보드나 연출을 담당한 신예 감독입니다. 확실히 연출에서는 본즈스러움이 많이 배제된 느낌일 수 밖에 없겠군요.

역시 시나리오도 '암굴왕' 등 비 본즈 계열의 아니메에서 활약해온 타카하시 나츠코가 맡았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이나 세트 디자인, 미술 디자인 등 주요 스탭들의 상당수가 본즈 출신의 애니메이터가 아니라는 점에서 확실히 본즈의 색깔과는 많이 다른 전개가 될 듯하군요. 공동제작을 한 키네마 시트러스의 경우는 금번 본즈의 '에우레카 세븐 극장판'에서 본즈와 호흡을 맞추었던 바, 본즈와의 연관관계 역시 자못 궁금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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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의 '아톰 vs 아틀라스, 순수함을 지키려는 아이와 순수함을 잃어버린 아이의 대결'을 옮긴 것입니다.


철완 아톰은 아시다시피 일본 만화영화의 대부 데즈카 오사무의 필생의 역작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일본 만화영화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의 하나입니다. 저와 비슷한 세대의 분들(그러니까, 80년대에 초등학생 또는 10대 초중반이었던 분들)은 아마도 63년도 TV 시리즈보다는 국내에도 방영 되었던 82년도 리메이크 TV 시리즈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할 듯 싶군요. (아마도 당시 방영제목이 '돌아온 아톰'인가 '돌아온 우주소년 아톰'인가 했을 텐데, 기억에는 86년도인가 87년도에 방영하지 않았나 싶군요.)

철완 아톰은 소년 만화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70년대의 '개구리 왕눈이'나 '은하철도 999' 등이 그러했듯) 꽤 심오한 주제와 이야기 전개를 작품 속에 내포하고 있었는데, 감정을 가진 로봇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이기심과 편견의식을 비판하고, 동시에 그런 인간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톰을 통해 비로소 인간들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본연의 선한 마음을 되찾아간다는 주제를 매회 에피소드마다 다른 형태로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그 전개에 있어서는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흥미 넘치는 액션과 모험이 공존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52화라는 긴 흐름 속에서 이런 하나의 주제만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만이 아닌, 각 에피소드의 등장인물을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성장과 휴먼 드라마를 한 화 내지는 두 화 단위로 풀어가면서 아톰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아톰 자신도 하나의 배움을 얻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었다는 점 역시 아톰 시리즈가 가진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머니로 알고 자라온 로봇의 두뇌를 이식한 레이싱 머신 백색혜성호를 타고 사투를 벌이던 한 레이서의 에피소드는 여전히 이 시리즈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 중의 하나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런 아톰에서 가장 돋보였던 에피소드이자 주메뉴는 아톰의 라이벌이자 호적수였던 아틀라스와의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아톰과 같은 컨셉으로 태어난 아틀라스는, 아톰과는 달리 선한 양심을 가지지 못한 체, 오로지 투쟁의식에 가득찬 전투기계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아톰이 인간과의 생활 속에서 갈등과 화해를 겪으면서 인간들의 삐뚤어진 모습을 부드러운 터치로 비판했다면, 아틀라스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적극적으로 들어낸 체 그들을 단죄하려는 모습으로 묘사됨으로써, 인간들의 삐뚤어진 모습을 직설적인 형태로 투영했다는 점에서 아톰 시리즈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반대편 격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톰과는 달리 아틀라스에게는 오메가 인자라는 것이 이식되었기 때문입니다만.)

© Tezuk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그림 1. 치켜올려진 강렬한 눈썹과 강렬한 눈장식에서 아틀라스의 성격이 아톰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강력한 군주가 되기 위해 어려서부터 엄격하고 피눈물나는 교육을 받아 동심을 잃은 어린 왕자의 모습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러나, 중반부에 이르러 아틀라스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여 시리즈의 긴장감을 다시 팽팽하게 당겨주는 비중있는 조연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냅니다.

시리즈 초반 아톰과 같은 형태의 모습에 이집트의 파라오를 연상시키는 머리형과 금빛으로 치장한 아틀라스는 아톰의 소년스러운 모습과 극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작품의 흥미를 고조시켰지만, 초반에 반짝 등장 이후 스토리 상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에피소드 등장인물 정도로 끝났던 터라 사실 이후의 등장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습니다.(어쩌면, 기억이 가물가물하기에, 복선이 있었음에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 Tezuk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그림 2. 돌아온 아틀라스는 여전히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눈과 함께 한층 더 위압적이면서도 고결한 모습으로 아톰 앞에 나타났다. 고대 이집트의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파라오에 비유할 수 있을 듯.


다시 돌아온 아틀라스의 모습은 더이상 아톰과 같은 소년의 그것이 아닌, 완벽하게 육체적인 성장을 이룬 성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강렬한 인상과 근육질의 몸, 그리고 온몸을 뒤덮은 황금색과 검은 망토는 금빛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마치 이집트의 어린 왕자가 장성한 파라오로 돌아온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아마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제게 있어서 일본 만화영화 중 가장 강렬한 카리스마의 악역 캐릭터는 이 아틀라스가 아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그의 정신은 소년기의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사랑과 우정, 따스한 인정을 겪지 못한체 성장한 한마리의 늑대와 같은 것이었는데, 그런 그의 증오와 적개심은 오롯이 인간으로 향했고, 그렇기에 그와는 형제와도 같은 존재이면서, 그와는 달리 인간을 지키려 하고 인간처럼 살고 싶어하는 아톰을 극렬하게 증오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대결구도는 단순 선악의 대결구도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따스함을 알고 살아간 아이과 그러한 따스함을 느끼지 못한체 살아왔던 아이와의 대립이기도 했으며, 순수함을 잃지 않은 아이와 순수함을 잃어버린체 잔혹한 현실에 내팽겨쳐진 아이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제작진은 거기에다 돌아온 아틀라스를 성장한 어른의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아톰을 위협하는 거대한 적으로서의 위압감과 더불어, 시청하는 아이들로 하여금 주인공과의 교감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게 해주는 플러스 효과를 주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그들의 대결을 통해 사랑과 정의, 우정과 용기 같은 소년 만화의 테마는 훌륭하게 표현되고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 Tezuk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그림 3. 아틀라스의 주무기인 번개검은 아톰의 가장 큰 개성인 엉덩이의 기관총과 좋은 대비를 보여준다. 생김새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무기들도 아톰과 대비를 이루면서 이집트 전사로서의 이미지를 십분 살려주었다고 할 수 있을 듯. 날이 갈라지면서 번개를 내뿜는 검은 아틀라스만의 강렬한 퍼스널리티를 상징하는 아이템이었다.


아틀라스는 재등장 이후, 가끔씩 에피소드에 등장하면서 그 강렬한 카리스마와 함께 극의 분위기를 주도했었습니다. 덕분에 아틀라스가 등장하지 않는 에피소드는 오히려 김이 빠진 느낌마저 들 정도였죠. 그의 존재감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아틀라스가 결국 인간에 대한 증오를 허물고 아톰과 화해를 한 후,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생명체들을 자신의 모선 수정궁과 함께 블랙홀로 끌고 사라지는 에피소드는 당시 아톰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종 에피소드인양 깊은 여운을 남겼더랬습니다. 덕분에 이후의 시리즈는 주인공 아톰을 밝게 비추어주던 강렬한 그림자의 퇴장으로 꽤나 오랫동안 싱거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기억에는 아틀라스의 최후 에피소드 직후 등장했던 에피소드의 작화는 왠지 모르게 이전에 비해 퀄리티가 급격히 떨어져 이러한 싱거운 전개에 더욱 불을 지폈던 듯 싶기도 하군요.)

아틀라스는 소년 만화영화에 있어서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인물구도를 선보였던 기동전사 건담의 붉은 혜성 샤아와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주인공의 성장을 유도하는, 그리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라이벌이자 반대편 격의 주인공... 이러한 라이벌 구도는 샤아 이후로 일본 만화영화에 있어서 하나의 테마처럼 자리잡고 있었고, 그러한 테마와 상통하는  강렬한 카리스마의 금빛 아틀라스는 마치 3년 후 '기동전사 Z 건담(1985)'에서 금빛 모빌슈트 백식을 타고 등장하는 샤아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틀라스에 대한 저의 애정이 남다른 것도 어쩌면 그러한 연유일런지도 모르겠군요.

그러한 지난 날의 추억 때문인지 사실 2003년도에 리메이크되었던 아톰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아톰보다 아틀라스를 더 기대하기도 했었는데, 이전의 강렬한 카리스마의 아틀라스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해서 악동같은 모습으로 새로 태어난 아틀라스에게는 오히려 감정이입이 쉽게 되지 않더군요. (시간 상의 이유로 한 두화 밖에 감상하지 못했기에 결과적으로 새로운 아틀라스를 이전의 아틀라스와 비교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만.)

©2003 Tezuka Productions / Sony Pictures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그림 4. 그동안 먹고 살기 힘들어서 몸에 발랐던 금 다 띄어다 팔았는데... 이렇게시세 오를 줄 알았으면 좀 더 두었다가 팔 걸!


덧붙여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지난날 꼬박꼬박 비디오 테잎에 녹화해 두었던 아톰 TV 시리즈인데요. 아틀라스의 최후가 나왔던 에피소드 이후 비록 시들해지긴 했지만, 52화 중 대부분을 다 녹화해두었을 정도로 당시 제게 있어서는 꽤 애지중지하던 자료였는데, 그것이 후에 '전격 Z 작전'(올드팬들은 다 아시는 명작 미·드라는...) 녹화를 위한 비디오 테잎이 부족한 나머지 조금씩 아톰의 녹화 비디오 테잎을 가져다 쓰기 시작한 다음, 미니시리즈 '브이'에 'A 특공대'까지 녹화하는 바람에 결국 모두 남김없이 덮어서 녹화를 해버렸던 것이었죠. (비디오 테잎을 더 샀으면 되지 않았냐고 생각하신다면... 더 살 돈이 없었으니까라고 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아마 52화를 모두 녹화하지 못했던 이유도 지금 생각해보니 저 비디오 테잎의 부족도 한몫을 한 듯 싶군요. 뭐, 저기에다가 에어울프랑 맥가이버까지 있었으니 모두 선녹화 후감상 후 소장가치를 못느낀 시리즈는 다시 덮어서 다른 프로 녹화라는 궁여지책을 썼더라는... )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면서 유튜브에서 발견한 아톰의 영상이 참으로 반갑고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82년작 철완 아톰의 북미판 오프닝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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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의 '슈발리에, Le Chevalier Deon (2006)'을 수정하여 옮긴 글입니다.

© TOW UBUKATA • Production I.G/Project Chevalier 2006


<스탭>

◈ 감독/스토리보드: 후루카시 카즈히로
◈ 원안/시리즈 구성/각본: 우부카타 토우
◈ 제작: 슈발리에 제작위원회 / Production I.G


<시놉시스>

격동과 혼란의 18세기 프랑스. 기밀국의 일원으로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고 있던 여기사 리아 드 보몽의 시신이 세느강가에서 발견된다. 리아의 쌍동이 동생인 데온 드 보몽은 누이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기밀국에 몸을 담게 되고, 누이의 죽음과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여인들의 연쇄 실종사건이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진실에 다가서려는 순간, 괴물로 변한 사람들의 습격을 받게 된 데온.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절체절명의 순간, 갑작스레 그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1. 일본식 양념이 제거된 프랑스식 정통 퓨전 요리같은 작품

슈발리에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말의 유럽은 산업혁명을 통한 농업중심의 사회에서 산업주의 사회로의 이전, 신분제, 봉건제의 붕괴에 따른 계급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사회로의 이전 등 서구 유럽사회에서 르네상스 혁명 이후로 가장 엄청난 변화들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슈발리에는 그러한 시대의 변화의 직전에 놓여있던 프랑스 왕정의 말기를 기점으로 하여, 시편과 그에 얽힌 왕가의 미스테리,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등장인물들의 모험과 드라마를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을지는 모르지만) 프랑스라는 어감에서 느낄 수 있는 고급스럽고 낭만적인 이미지로 묘사해냈습니다.

© TOW UBUKATA • Production I.G/Project Chevalier 2006

그림 1. 주인공 데온 드 보몽의 모습(좌). 남자가 되었다가 여자가 되었다가 하는 란마...는 아니고 성정체성을 잃어버린 미청년. 데온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3인의 총사 듀란, 테라고리, 로빈(중).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력구성을 보여준다. 데옹과 그의 약혼녀 안나(우). 주인공의 약혼녀지만, 기존의 아니메와는 달리 평범한 스타일이 오히려 더 특색이 있다.

근래의 아니메에서 유럽 또는 서양의 모습이란 일반적으로 그 겉모습과 형식만 빌려왔을 뿐, 작품 속 등장인물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은 언제나 일본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겉모습만 유럽식이었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모습들은 중세시대의 세계관을 기본으로 한 일본식 판타지 아니메에서 많이 보여졌는데요, 이런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증이 부족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베르사이유의 장미(1979), '엠마:영국식 사랑이야기(2005,2007)' 등과 같이 시대적 배경을 잘 살려낸 작품들도 있습니다만.
 
물론, 이런 현상(고증이 부족한 작품)은 아니메에서만 있는 일은 아닙니다만, 고증이 부족한 작품들이 많아질수록 상대적으로 고증이 철저한, 즉 리얼리티가 뛰어난 작품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일겁니다. 그런 면에서 슈발리에는 18세기 말의 프랑스를 만화영화치고는 정말 멋지게 재현에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부카타 토우'라는 촉망받는 젊은 작가의 원작에, '공각기동대 SAC(2002,2004)', '정령의 수호자(2007)' 등 고품격 성인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Production I.G의 제작 매치업은 훌륭하기 그지 없는 투톱이군요.
 
마치 본고장의 프랑스 요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본고장의 맛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맛을 지닌 프랑스식 퓨전요리... 라면 그 표현이 정확할까요. 그림체 또한 기존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형식에서 탈피한, 작화/극화와도 같은 그림체를 보여주어 더더욱 유럽 스타일의 맛을 살리고 있으며, 배경 또한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도시들을 훌륭하게 묘사해내었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마치 일본의 아니메가 아닌, 유럽이나 서구권의 만화영화와의 기시감을 느낀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아무래도 이러한 작화 스타일은 제작진의 의도가 십분 반영된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 TOW UBUKATA • Production I.G/Project Chevalier 2006

그림 2. 혁명교단의 일원들인 로렌챠, 칼리오스트로, 막시밀리앙(좌), 엘리자베타 여제와 데온 (중),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그 남자, 데옹(우). 의상 디자인에 있어서도 상당히 심혈을 들였음을 느낄 수 있다.


2. 리얼리티 vs 판타지, 미스테리 퓨전 시대극의 진수를 보여주다.

슈발리에의 등장인물들은 상당수 실존인물들을 포진시켜 그 리얼리티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왕인 루이 15세,16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루이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 오를레앙 공작,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와 에카테리나 여제 등이 모두 실존 인물들이며, 주인공 데온 드 보몽 또한 실제 여장 기사이자 비밀공작원으로 유명했던 인물이기도 하지요.
 
데온 드 보몽은 실제로 여장했을 때의 이름이 리아 드 보몽이었는데요, 이 이름은 작품에서 데온의 친누이이자, 사건의 모든 시작을 알려주는 리아에게 그대로 쓰여집니다. 실존 인물들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실제 역사와는 많이 틀리지만, 사치와 향락을 좋아하는 루이 15세나,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퐁파두르 백작 부인 등 그 성격적 배경은 실존인물에서 상당한 모티브를 가져온 듯도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존인물의 등장은 자칫 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는 실존인물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소지도 있습니다. 작품 방영시 자막 정도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의 모습은 작품을 위하여 가공되거나 지어진 것입니다.' 정도의 문구가 들어갔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드는군요. (근자의 한국 사극들의 경우도 이러한 부분에서 조금은 아쉬운 감이 있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리얼리티에 충실한 드라마적인 전개는 24화로 구성된 이 TV 시리즈, 특히나 만화영화로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지루함을 주기도 합니다. 실제, 이야기가 전개되는 5화 부터 10화 정도까지는 지루한 전개로 인해 저 또한 1년 가까이 감상을 중지했다가 나중에 보았을 정도이니까요.

© TOW UBUKATA • Production I.G/Project Chevalier 2006

그림 3. 과거 기밀국의 동료들이었던 막시밀리앙, 듀란, 리아(좌). 샤프한 모습의 듀란이 여기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리아와 영국의 메어리 왕비의 다정한 모습(중)이 막시밀리앙과 데쉬우드 주교의 어색한 모습(우)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일단 그 전개가 끝나는 순간 이 작품은 엄청난 흡인력으로 시청자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개, 끝까지 그 진위를 파악하기 힘든 잘 짜여진 미스테리, 그리고 반전.... 기존의 만화영화에서와 같은 해피엔딩이 아닌, 그렇다고 슬픈 엔딩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긴 여운을 남기는 엔딩은 지루하고 긴 산책로를 지나 아름다운 정원으로 우리를 이끄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거대한 음모와 야망과 배신으로 얽힌 미스테리에 가미된 판타지적 요소들은 이 작품의 미스테리를 좀 더 미스테리답게 하는 소스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서의 인용구를 사용한 마법의 영창은 시를 외우듯이 주문을 외움으로써, 기존의 판타지에서 보여주는 주문 영창과는 다른 좀 더 고급스럽고 우아한, 그러면서도 박진감이 넘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주인공 데온의 몸에 빙의된 누이의 영혼은 단순히 주인공이 강력한 힘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로 변신한다는 개념이 아닌 주인공의 비극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시의 힘으로 가고일로 변한 사람들의 모습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지만, 납의 피를 흩뿌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서 섬뜩함과 함께 애절함이 느껴지기까지 하지요.
 
흔히 봐왔던 아니메였다면, 끔찍한 괴물로 변한 사람들을 주인공이 멋진 여성 전사로 변신하여 무찌른다...는 지독히 아니메스럽고 유치한 설정이었을테지만, 슈발리에에서는 이런 전형적인 설정을 적절히 변형하여 전혀 다른 느낌의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인테리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3.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기존과 다른 성인 아니메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

슈발리에는 액션물이나 코믹물이 아닌지라, 재미나 스트레스 해소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그닥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엔딩 또한 그리 상쾌한 편은 아닌지라, 끝나고 나서의 찜찜함도 보는 이에 따라서는 클 수도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전개 부분이 지루하고, 그림체가 기존 아니메의 귀엽고 에쁜 스타일과는 상반되는 극화풍인지라,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서구권의 애니메이션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이시라면 더 하시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련됨과 미스테리한 이야기는 아니메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함과 고급스러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마치, 중세나 중세 말을 배경으로 한 기존의 미스테리 영화들에서는 느꼈을 법한 전개라고 할까요. 숀 코네리 주연의 "장미의 이름"이나, 사무엘 르 비앙, 뱅상 카셀, 모니카 벨루치가 출연한 "늑대의 후예들" 등이 비슷한 느낌의 영화일 수도 있겠군요. 이런 영화들의 스타일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슈발리에는 꽤나 좋은 느낌을 선사해주리라 봅니다.

© TOW UBUKATA • Production I.G/Project Chevalier 2006

그림 4. 4명의 총사들 로빈, 데온, 테라고리, 듀란 (좌). 그들의 운명은 처음은 함께였으나 끝으로 갈수록 궤적을 달리한다. 마리 왕비, 루이 15세 그리고 루이 15세의 정부인 퐁퐈두르 부인(중). 셋의 기묘한 관계가 왠지 잘 표현된 일러스트인 듯 싶다. 막시밀리앙와 리아(우). 리아는 이 작품의 열쇠이자 모든 사건의 교집합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애니메이션 영화 리뷰 모아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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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이지만, 흥행 감독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항상 철학적인 사색, 그리고 관객들과의 고도의 지적인 대화를 즐겨하는 편인데요. 그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다준 95년도 작품 '공각기동대' 역시 난해하고 논술적인 대사들, 아름답고 세밀하지만 메마른 배경, 격한 액션장면에서조차 정적감을 느끼게 하는 기묘한 긴장감 등으로 사실 편하게 보기가 힘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속편격인 '이노센스(2004)'에 와서는 이러한 사색적 표현이 실험적인 영상미와 어우러져 한편의 추상화를 접하는 듯한 기묘한 불편함을 선사하기도 했죠. 그래도 전체적인 스토리가 가는 길을 놓치지 않는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여러모로 관객들에게는 어려움 역시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4년만에 새로운 작품을 들고 왔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스카이 크롤러(2008)'가 되겠습니다.

오시이 감독들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철학적이고 난해하다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한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표현이 있는데요, 그것은 '불안한 편안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편할 정도로 느릿느릿한 등장인물들의 반응과 하나하나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조용하면서도 확실한 몸짓들... 그것은 대부분 침묵 속에서, 또는 느릿한 테마와 어우러져 묘한 침묵을 관객들에게 안겨줍니다. 스카이 크롤러 역시 이런 기묘한 정적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작품입니다. 조용한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하는 편안함 속에서 밀려오는 왠지 모를 불안감 가득한 오후... 라면 좀 어울리는 표현일까요. 탁 트인 우리스 기지와 높고 푸른 하늘의 배경조차도 주인공들의 삶의 무게가 얹혀져 왠지 모를 슬픔을 안겨주는 듯 합니다.

 

스카이 크롤러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남녀 간의 감정선이 묘하게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전체적인 불안한 편안함 속에서 오시이 감독의 작품답게 격한 감정의 표현이 드러나지 않기에 수면에서 뜨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부표와 같은 희미한 느낌입니다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느낌이 십분 살아나기도 합니다. 물론, 메인 테마는 등장하는 피터팬과 같은 소년,소녀들인 킬드레의 자아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비행전투씬은 3D 연출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하우를 자랑하는 Production I.G와, 역시 그 난해하고 복잡한 스토리만큼이나 영상미에 있어서도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오시이 마모루의 조합으로, 과연이라는 소리를 낼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오시이 마모루의 스승으로 일찌기 '에어리어 88(1985)'에서 희대의 비행전투씬을 연출해냈던 故 토리미우미 히사유키 감독의 편린이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그의 직계제자라 할 수 있는 오시이 감독이 처음으로 하늘을 무대로 한 작품을 통해 스승처럼 멋진 비행전투씬을 표현해냈다는 것도 스카이 크롤러의 하나의 의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음악들이 너무도 마음에 드는데요. 카와이 켄지의 메인 테마도 메인 테마지만, 엔딩에 흐르는 주제가, 아야카의 '오늘 밤도 별에 안겨서'는 본편 내내 막혀 있던 절제된 슬픔과 감정들이 마치 스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자막과 함께 흘러나와 개인적으로는 꽤나 감정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듣자 마자 홀딱 반해버렸네요.)

 

글쎄요, 오시이 감독이 말했듯이 이 작품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주는 소수의 관객들을 위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근래의 오시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는 꽤 대중적인 취향에 근접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작품에는 한가지 반전이 숨어 있는데요. 사실 작품 초반부에 이미 짐작을 해버린 터라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라는 점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군요.

 

기회가 되면 스카이 크롤러는 다시 한 번 자세한 리뷰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내 DVD 발매가 몹시 기대되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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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FOCUS Films LLC.


팀 버튼이 프로듀스하고 쉐인 에이커가 각본과 감독을 맡은 신작 애니메이션 9의 트레일러가 공개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아주 독특하고 이국적인 색감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요. 감독 쉐인 에이커의 단편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다시 장편으로 애니메이션화한 작품입니다. 단편은 2005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작품인데요.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라든지 어두운 느낌의 배경과 색감 등은 프로듀서인 팀 버튼과의 성향과도 어느 정도 같은 방향성을 갖고 있는 듯 싶습니다.

젊은 감독의 작품이다보니 그 느낌은 이전까지의 미국 만화영화와는 달리 상당히 이질적입니다. '원티드'에서 감각적인 홍콩 느와르식 액션 연출을 보여주었던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프가 프로듀서로 참여해서 였을까요, 트레일러의 보여진 액션 연출은 무척이나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덕분에 예술적인 면에서나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에서나 나름 만족할만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를 개인적으로는 하고 있습니다.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잘 살려낸 배경미술은 단연코 압권입니다. 굉장히 풍부한 색감과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 덕에 컴퓨터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호러틱한 동화적 이미지를 비교적 잘 살려내지 않나 싶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맘에 드는 모습이네요. 인간들이 사라진 황폐한 세상에서 영혼을 가진 넝마인형인 9과 그의 동료들이 넝마 인형들을 사냥하여 영혼을 흡수하는 기계짐승과의 사투가 줄거리입니다. 주인공 9 역에는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호빗소년 프로도 역을 맡았던 일라이자 우드가 맡은 듯 하네요. 영화 제목처럼 미국에서는 2009년 9월 9일 개봉예정입니다. 

ⓒ 2009 FOCUS Films LLC.


공식 트레일러 감상하기 (유튜브)
공식 트레일러 감상하기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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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Chika Umino


2002년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가 방영을 시작했을 때, 엘로스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시이 마모루에 의해 이미 완벽한 재해석이 이루어졌던 극장판이 TV 시리즈로 방영된다면, 그 난해했던 전작을 계승하면서 TV 시리즈로의 매력은 분명 반감되리라는 예상을 했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섣불리 가벼운 액션물로 바꾸는 것도 너무 큰 이질감을 줄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극장판에서 선보였던 그 절정의 영상미가 장편의 TV 시리즈로 이식된다면 퀄리티의 하강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우려 속에 시작한 첫 화의 감상에서 제가 느낀 것은 놀라움이었습니다. 가벼움으로 빠지지 않고, 그렇다고 난해한 철학의 천작하지도 않는 적정선의 깊이, 그것을 수사 드라마 형태로 풀어가면서 시청자들에게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이야기 전개의 묘미, 비록 극장판보다야 낮을지언정 일반적인 TV 시리즈의 퀄리티를 몇 단계 상회하는 디테일함, 이 모든 것이 너무도 강렬하게 와닿았던 것이죠.

초반의 단 몇 화만의 감상으로 이미 엘로스는 공각기동대 TV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시이 마모루가 연출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작품의 스탭롤에서 처음 보는 낯선 이름의 감독을 발견하는 순간, 단번에 그의 팬이 되기를 결심하게 됩니다.

'카미야마 켄지'

40년대생의 아니메 명장(미야자키 하야오, 린 타로, 토미노 요시유키, 데자키 오사무 등)들의 공력이 서서히 쇠하기 시작하고, 50년대생의 기수들인 오시이 마모루, 카와지리 요시아키, 오토모 가츠히로마저 주춤하는 와중에 60년대생 감독들의 활약이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60년대생 감독으로 주목할만한 이들은) 안노 히데아키와 카와모리 쇼지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등장한 이 낯선 이름은 아니메의 미래가 아직 밝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싶어 몹시나 반갑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물론, 퍼펙트 블루의 콘 사토시나, 울프스 레인의 오카무라 텐사이, 에스카플로네의 아카네 카즈키 등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만 말입니다.)

'정령의 수호자(2007)'를 통해 이미 또 한 번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그(물론, 시청률 면에서야 참패를 면치 못했지만, 그것은 작금의 아니메 조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지,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충분한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가 2년만에 들고온 또다른 작품이 바로 이 에덴의 동... 아 아니, '동쪽의 에덴(2009)'입니다.

시작부터 무슨 장르인지 정의를 내리기가 애매모호함으로 출발하는 작품이지만, 초반부터 카미야마 식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1류 감독의 필수 덕목으로 꼽히는 각본작업에 있어서도 카미야마는 원작/각본/감독의 1인 3역을 해내고 있기에, 역시 차세대를 짊어질 아니메 감독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더더욱 공고하게 하는군요.

ⓒ Eden of the East Production Committee

그림 1. 에덴의 동쪼.., 아 아니 동쪽의 에덴 스틸샷 (출처: 베스트 아니메)


일단, 요즘의 추세에 맞춰 치카 우미노(캐릭터 원안)/모리카와 사토코(본편 캐릭터 디자인)의 예쁘장한 캐릭터와, 자타가 공인하는 초일류의 비쥬얼을 선보이는 Production I.G의 정예들이 선보이는 깔끔한 비쥬얼도 작품의 매력을 배가시켜 줍니다. 카와이 켄지 음악감독은 이젠 뭐, 거의 Producion I.G의 전속 음악감독인 듯 싶구요. 한마디로 웰메이드 아니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에덴의 도, 험험... 동쪽의 에덴의 힘은 바로 이야기의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 이전작들에서 보여준 카미야마 켄지의 스토리 텔링은 믿음이 가기에 충분하지만, 앞선 두 작품들이 모두 원작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직접 원작을 담당한 이 작품의 완성도(흥행보다는 그 완성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군요.)의 향방이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를 가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일본만화의 신 故 데즈카 오사무가 말한 '만화영화의 중요한 요소는 첫째도 이야기, 둘째도 이야기, 셋째도 이야기'라는 이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번 작품을 통해 카미야마 감독이 다시 한 번 증명해주었으면 합니다. 라이트 노벨의 가벼움과 모에스러움에게 둘러쌓인 지금의 아니메는 이제 지나치게 단맛만 강하니까요.

☞ 아 참, 이 작품은 얼마전 종방한 송승헌 주연의 '에덴의 동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헛갈리지 마세요.  저도 쓰면서 자꾸 에덴의 동쪽으로 오타가 나와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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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永井豪 / ダイナミック企画 ・くろがね屋

열혈의 대명사, 슈퍼로봇의 레전드 마징가 Z가 드디어 TV 시리즈로 부활했습니다, '진 마징가-충격 Z 편'으로.

속속들이 옛 명작들이 리메이크되는 이 마당에 마징가 Z의 재림은 어찌보면 시간 문제였겠습니다. 더군다나 그 옛날 도에이 동화에 의해 처절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렸던 나가이 고의 마징가 Z이니만큼 어찌보면 원작자인 나가이 고의 원래 바램대로의 마징가 Z가 돌아온다는 것은 여타의 리메이크 작과는 또다른 감흥을 안겨주는 일이겠군요.

마징가 Z의 뒷 이야기에 대한 참고 포스트:

Ani Index: 마징가 Z (1972)
Ani Index: 그레이트 마징가 (1974)

이미 '마징카이져'를 통해 한바탕 마징가 월드를 뒤섞어 버린 상황에서 마징가의 이야기는 이전 도에이 동화의 작품과는 다른 전개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과연 어떤 마징가가 나타날 것인가가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전의 얌전한(?) 마징가와는 달리 나가이 고 선생의 작품 세계가 반영된 광기에 찬 마징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 예상을 조심스레 하던 찰나, 이 시리즈의 감독의 이름을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이마가와 야스히로.

이미 '자이언트 로보 - 지구가 정지하는 날(1991)'을 통하여 고전 슈퍼로봇의 멋진 재해석을 보여주었던 그가, '진 겟타로보 - 세계 최후의 날(1999)'에서 못다한 열혈파워의 모든 것을 이 새로운 마징가 시리즈에 쏟아부은 듯 합니다. (이마가와 야스히로는 진 켓타로보 연출 당시 제작진과의 마찰로 중도 하차한 불운을 겪었습니다.)

ⓒ 2009 永井豪 / ダイナミック企画 ・くろがね屋



뭐, 두말하면 서러울 정도의 광기와 뜨거움이 가득한, 열혈 그 자체의 첫 화였는데요. 그러다보니 대중적인 공감대를 자아내기에는 첫 화만로서는 조금 우려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은혼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타케우치 신지가 맡은 캐릭터 디자인도 현대적인 깔끔함보다는 투박한 옛스러움의 재현에 더 포커스를 맞춘 듯 싶은데, 이마가와 감독의 광기어린 연출에 의해 퀄리티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애매한 모습도 느껴지는군요. 게다가 첫 화는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와 다양한 시점, 그리고 다양한 시간축에서 동시다발적인 전개를 보여주어 스토리의 방향성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근래의 흥행 코드에 따르기 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뚝심있는 감독의 작품이기에 나름 기대도 큽니다. 자이언트 로보, 겟타로보(비록 하다가 말았지만), 철인 28호(2004년 작)에 이어 마징가까지 모두 이마가와 야스히로의 손에 의해 재탄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열혈 슈퍼로봇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인물로는 단연코 그를 꼽아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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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RIN SIN ⓒ 2009 HOBBY JAPAN / QUEEN'S BLADE Partners


뭐, 이 정도면 거의 아니메의 '아내의 유혹'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흔히들 일컫는 막장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판치라(여성의 속옷 노출을 극대화시킨 매니악, 아니 변태스러운 장르의 아니메)'의 수준을 넘어선 노출은 성애 묘사만 없을 뿐 거의 그에 준하지 않을까 싶군요. 여기서 조금만 선을 더 넘으면 흔히들 말하는 '18금 야애니'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비록 성인용 TV 시리즈라고 하더라도 그 표현수준의 과격함은 예상을 뛰어넘는 듯 합니다.

사실, 이미 '일기당천'과 같은 작품에서 이 수준에 준하는 노출씬이 선보였기에 어찌보면 그닥 놀라울 것도 없지 않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만, 1화에서 보여준 놀라운 작화 퀄리티와 맞물려 일기당천의 응큼함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킨 표현력이 아닌가 합니다. 캐릭터 디자이너겸 총작화감독은 '일기당천'에 이어 여전히 18금 아니메나 18금 게임에서 명성이 자자한 린신이 맡아 그 음흉함에 어쩔 수 없는 수긍이 가는데요. 이 퀸즈 블레이드의 진정한 놀라움은 엔딩 스탭롤의 원화스탭진을 보면서 였던 것입니다!

우메츠 야스오미, 우루시하라 사토시... 털썩.

Illustrated by Umetsu Yasuomi (left) and Satoshi Urushihara (right)

그림. 고품격 성인물의 진수를 보여준 '카이트(좌)'와 환상적인 바스트 모핑(?)을 선보인 '레므니아의 전설(우)'



이미 일기당천 2기 오프닝에서 린 신과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는 우루시하라 사토시나, 일기당천 3기 엔딩에서 역시 예의 초절정 작화를 보여준 우메즈 야스오미... 이 둘이 무려 이 퀸즈 블레이드의 원화진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 어쩐지 그 퀄리티가 심히 의심이 갈 정도로 놀랍더라니...

18금 쪽에 있어서는 모두 입신의 작화력을 보여주는 우루시하라 사토시나 우메츠 야스오미(물론, 이 양반은 그 수준을 한단계 더 상회하는 고수라고 할 수 있지만)가 모두 원화진에 참여하여 역시 동급 레벨의 린 신과 함께 작업을 했으니 그 엄청난 작화 퀄리티는 수긍이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만, 과연 이 양반들이 2화부터도 계속 퀸즈 블레이드의 작업에 참여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군요. 

일기당천 3기의 엔딩에서 우메츠 야스오미의 등장을 보고 '이 양반이 일기당천에 참여했으면, 진정한 일기당천의 팬이 될거야.'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어쩌면 퀸즈 블레이드, 눈여겨 봐야할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내용이 아니라 이 3인방의 작화 때문이지만요.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정상적인 전개를 기대한다면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 아, 참고로 하나 더, 감독/총 콘티/색체 설계를 맡은 요시모토 긴지는 이미 '레전드 오브 레무니아(1989)'와 '플라스틱 리틀(1994)'을 통해 우루시하라 사토시와 함께 응큼한(?) OVA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뭐, 다들 이미 서로들 잘 아는 사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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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작성한 '판타지 서사시: 단바인에서 에스카플로네까지 (下)'를 본 블로그로 옮기면서 편집과 구성을 수정한 포스트입니다.



아동용 판타지 물로의 변신, 그리고 다양한 시도

지난 번 상편의 후반부에서도 언급했듯이, 리얼로봇 장르의 쇠퇴는 평행우주 같은 장르였던 판타지 로봇장르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어,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동반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것은 리얼로봇 장르와 판타지 로봇 장르의 모두의 아버지 격인 토미노 감독의 연이은 건담 시리즈 제작으로 인한 극도의 피로감과 매너리즘에 따른 결과도 한몫을 했을 거라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만,  너무나 많은 리얼로봇 장르의 난립(특히나 건담 시리즈)에 시청자들도 식상함을 느꼈던 것도 또 하나의 이유는 아닐까 싶군요. 그리고 그것은 비슷한 스토리 전개를 보이던 판타지 로봇 장르에게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으리라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로봇물로 70년대 후반부터 큰 명성을 쌓고 있던 선라이즈는 88년, 판타지 로봇 장르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특유의 진지함과 세밀한 설정을 버리는 대신 코믹함, 그리고 아동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귀엽고 깜직한 캐릭터들과 메카닉(이른바 SD 로봇)으로 재단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마신 영웅전 와타루(1988, 이하 와타루)’였습니다.


1. 와타루의 대성공, 판타지 로봇 장르 제2의 전성기인가.

장르의 변신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리얼로봇 장르의 공식을 과감히 배제함으로써 기존의 수퍼로봇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어찌 보면 후일 인기를 얻게 되는 선라이즈의 용자 시리즈의 판타지 버전 쯤으로 보아도 무방한) 이 작품은 실로 공전의 대히트를 쳤던 것이죠. 90년과 97년에 각각 2기, 3기가 방영했고 각각의 편수도 모두 4쿨(1년치 방영 분)이나 되었다는 것은 이 작품의 인기를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와타루’의 성공에는 시청 계층의 변화도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것은 70년대의 슈퍼로봇물을 시청했던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10~20대에 들어 리얼로봇에 열광하게 되고, 그들이 성인이 되자 자연스레 그들을 타깃으로 했던 작품들 역시 설 자리를 잃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이죠. 바로 그 시기에 맞추어 그 당시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와타루’가 시의적절하게 등장한 것입니다.

그림 1. RPG 게임의 공식을 적용했던 '와타루'는 꺼져가던 판타지 로봇 장르를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시켰고, 이 흐름은 후일 선라이즈의 대표적인 용자 시리즈로 옮겨지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로붓물을 정착시키게 된다. 

이후부터는 ‘와타루’의 아류작들이 판타지 로봇 장르의 흐름을 이어가는 전개가 됩니다. ‘와타루’ 1기의 종영 후, 이듬해 등장한 ‘마동왕 그랑조트(1989, 이하 그랑조트)’는 언뜻 보기에도 ‘와타루’의 후속임을 알 수 있는 작품인데요. 물론, 1인 주인공 체재였던 와타루와는 달리 3인의 주인공이 등장하여 캐릭터 성이 더 강해졌고, 특히나 등장인물 중 한명인 ‘구리구리’가 부르는 당근 송은 당시 큰 인기를 끄는 등, 와타루와는 다른 특색있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만, 결국 와타루 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에서는 ‘그랑조트’가 ‘와타루’보다 먼저 ‘슈퍼 그랑조’라는 제목으로 91년도에 SBS에서 방영됨으로 인해‘그랑조트’의 인지도가 더 높았다는 사실입니다.(덕분에 후일 방송된 ‘와타루’를 ‘그랑조트’의 후속으로 아는 어린이들도 많았구요.) SBS의 대히트 덕에 ‘와타루’는 한참 후인 96년, 투니버스에서 1기와 2기가 방영된 후 99년 KBS를 통해 2기와 3기가 방영을 합니다.(투니버스 방영 당시는 ‘드래곤 파이터’로 방영되었으며, 후에 KBS에서 ‘우주용사 씽씽캅’이라는 전무후무한 네이밍 센스로 재방영했지요.) ‘와타루’와 ‘그랑조트’의 연이은 성공 이후, 선라이즈의 판타지 로봇물은 ‘패왕대계 류나이트(1994)’로 계속 바통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림 2. '그랑조트'는 일본 방영당시 '와타루'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해 이후 후속편의 제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와타루 2기, 3기와 같이 와타루의 후속작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판타지 로봇 장르가 선라이즈의 제작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판타지 로봇 장르를 포함한 전반적인 로봇물은 선라이즈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리얼로봇 장르의 쇠퇴와 함께 선라이즈에 대한 도전이 하나 둘 씩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96년 MBC에서도 ‘소년기사 라무’라는 제목으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NG 기사 라무네&40(1990, 이후 라무네)’입니다.

일본에서는 4쿨 예정이었으나 시청률 부진으로 3쿨로 종영이 되어 ‘와타루’나 ‘그랑조트’에 비해서는 인기가 떨어졌던 ‘라무네’는 국내에서는 어린이들 사이에 굉장히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저희 동네에서도 킹스카이언을 외치면서 골목길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기억나는군요.) 주인공 라무네의 ‘나는 지금 무지 ~하다!’라는 대사로 어린이들 사이에 신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지요.

그림 3. '라무네' 1기와 2기의 스틸샷, '세이버 마리오넷', '폭렬헌터'의 아카호리 사토루가 원작을 맡았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떠나 이러한 장르의 작품을 선라이즈가 아닌 다른 제작사(‘요술공주 밍키’나 ‘돈데기리기리 돈데크만’이라는 주문으로 유명한 ‘시간 탐험대’를 제작한 아시 프로덕션이 제작)가 만들었다는 것에도 큰 의의를 둘 수 있는 작품인데요. 이러한 다른 제작사의 모험적인 시도는 그 후 또 다른 형태의 판타지 로봇 장르를 세상에 내놓게 합니다.

그림 4. 선라이즈의 94년작 '패왕대계 류나이트'는 '와타루' 스타일의 판타지 로봇 장르로서는 가장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1쿨의 길이로 방영되었으나 흥행은 그다지 좋지 않았는지 선라이즈는 97년 와타루 3기를 방영하게 된다.

 
2. 순정물의 캐릭터와 스토리가 결합된 클램프의 판타지 로봇 레이어스

너무나 화려하고 탐미적인 그림체로 인해(?) 만화영화화 하는 작품마다 고배를 마셨던 클램프가 다시 한 번 절치부심하고, ‘파사대성 단가이오(1987)’로 리얼로봇 장르의 쇠퇴말기에 스타일리쉬한 슈퍼로봇물의 향수를 느끼게 했던 히라노 토시키 감독이 손을 잡은 ‘마법기사 레이어스(1994, 이하 레이어스)’는 오히려 판타지 로봇 장르가 아동취향으로 제작되는 당시의 추세와는 달리 ‘클램프’스러운 소녀 취향의 느낌과 비극적인 스토리 라인을 견지하며, 색다른 느낌의 작품으로 시청자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립니다.

클램프의 최초의 상업적 성공작이기도 했던 ‘레이어스’는 클램프만의 개성있는 그림체를 판타지 로봇 장르에 접목하는 시도가 참신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클램프'적인 감성으로 인해, 판타지 로봇 장르라고 보기에는 그 설정만 유사할 뿐, 오히려 소녀취향의 순정 액션물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선라이즈 류의 획일화된 흥행공식이 대입되어 있는 작품에 비해 동인출신인 그녀들의 작품답게 참신하다고 해야할까요. (그래서인지 동성애 코드도 나름 등장하기도 합니다.)

또, ‘단가이오’를 만든 히라노 토시키 감독의 연출 덕에 로봇물로서도 일정 수준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판타지적인 세계관은 중후한 멋 뿐만 아니라 환상적인 모습 또한 갖고 있기에 의외로 소녀취향의 스타일에도 잘 어울리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림 5. '레이어스'에서 보여진 클램프의 스타일은 판타지 로봇물을 순정물의 스타일로 풀어가면서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로봇물로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판타지 로봇 장르는 아동용 캐쥬얼 작품으로의 재탄생과 순정물과의 결합과 같은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정확히는 레이어스를 제외하고 모두 아동용 작품이었지만.) 그러나, 레이어스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요, 선라이즈 역시 96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게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도이면서 동시에 ‘과거로의 회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90년대의 아니메의 복고주의 조류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요. 토미노 감독이 이전에 창조했던 중후한 판타지 로봇 장르를 새로운 감각과 스타일로 다시 창조하는 듯한 느낌도 있겠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 이하 에스카플로네)’입니다.


3. 에스카플로네, 드디어 대지 위에 서다.

‘에스카플로네’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라기 보다는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과거의 스타일을 변형한 작품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 합니다. 그것은 (‘로도스 섬의 전기(1990)’부터 최근작 ‘지구로(2007)’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유키 노부테루가 캐릭터 디자이너로 참여하면서 겉모습부터 소녀취향적인 로맨틱한 외형으로 디자인 된 모습에서도 알 수 있는데, 추측으로는 2년 전 ‘레이어스’가 보여준 상업적 성공이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로맨틱한(어떻게 보면 상당히 독특하기도 한 캐릭터로, 유키 노부테루의 실험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캐릭터로 인해, ‘에스카플로네’는 이전의 선라이즈가 선보였던 토미노식 판타지 로봇물이 아닌 또 다른 느낌의 판타지 로봇물을 선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캐릭터 디자인 뿐만 아니라, 주인공을 에스카플로네를 조종하는 파넬리아 왕국의 왕자 반이 아닌 지구에서 우연하게 넘어온 여고생 히토미로 설정하여 그녀의 시선, 즉 여성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하는 것도 이 작품이 다른 로봇물에 비해 여성적인 느낌이나 로맨틱함에 시선을 맞춘 작품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개는 작품을 좀더 미려하고 고급스럽게 해주는 요소가 됩니다.

그와 함께 ‘마크로스’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천재 애니메이터 카와모리 쇼지가 원안과 설정을 맡고, ‘버블검 크라이시스 OVA 6~8 (1989~91)’의 메카닉을 디자인했던 야마네 키미토시가 메카닉 디자인을 맡은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나 할까요. 중세 기사를 연상시키는 거대로봇 ‘가이메르프’는 선라이즈의 이전작 ‘가리안’의 기갑병에 버금갈 정도로 고풍스럽고 육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오프닝부터 선보인 가이메르프 간의 전투 장면은 그간 선라이즈가 제작한 로봇물에 대한 노하우가 모두 녹아 있는 참으로 멋지고 웅장한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의 생체병기 에바의 움직임이 생체병기라는 설정에 어울리는 부드럽고 역동적인 살아있는 생물 같은 모습이었다면, ‘에스카플로네’의 가이메르프의 움직임은 마치 고대의 철갑옷을 두른 거인들의 움직임처럼 육중하고 둔탁하며, 기계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림 6. 가이메르프는 가리안 이후 가장 중세적 느낌을 잘살린 디자인이었다. 에스카플로네가 용으로 변신하는 설정은 변신 로봇은 판타지 로봇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속설을 깨버린 예 중 하나.


그림 7. 히토미와 반, 그리고 알렌의 삼각관계, 알렌과 말레네 공주, 그리고 밀레나 공주와의 삼각관계 등 작품에 등장하는 로맨스는 순정물의 그것과 동일한 구도와 복잡한 갈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로맨틱한 캐릭터와 고풍스러운 가이메르프의 모습을 칸노 요코의 멋지고 장엄한 음악들로 장식하여 아카네 카즈키 감독이 멋지게 지휘해낸 ‘에스카플로네’는 80년대 초반의 진지했던 판타지 로봇물에 비해 보다 부드럽고 미려한 영상과 함께, 순정물의 로맨틱한 느낌으로 판타지 로봇물을 표현해낸 보기 드문 수작 중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물론, 취향 차이로 인해 ‘에스카플로네’에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잘 만들어진 만화영화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에스카플로네'는 '에반게리온' 때문에 방영 당시 갖고 있는 퀄리티에 비해 비교적 덜 조명을 받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 진가가 알려져 2000년도에는 극장판으로 제작되기도 합니다. 극장판의 영상은 TV 시리즈에 비해 좀 더 남성적인 스타일로 변모했지만, 훨씬 업그레이드 된 퀄리티와 영상미를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TV 시리즈 전편의 내용을 하나의 극장판으로 압축함으로 인해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하고 TV 시리즈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합니다만, 기존의 중세 판타지 스타일에 사무라이적인 복식을 가미하여, 좀 더 동양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고, 무엇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가이메르프의 전투장면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림 8. 극장판 '에스카플로네'는 극장판에 어울리는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으나, TV 시리즈의 이야기를 2시간 안에 압축하면서 아쉽게도 스토리의 개연성은 떨어지고 내용도 그닥 참신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육중한 강철의 거신과 비행선이 날아다니는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 그것은 마치 19세기 말엽의 배경에 증기기관으로 극도로 발달된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스팀펑크적 세계관의 작품과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매력을 우리에게 주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에 비해 더욱 환상적인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과거의 판타지인 마법과 (이제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닐 수도 있지만) 미래의 판타지인 로봇의 만남은 앞으로도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좋은 소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에스카플로네’ 이후 아직 이렇다 할 멋진 작품이 나오고 있지 않음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오히려 이런 오랜 기다림 끝에 누군가가 또다시 만들어 낼 새로운 세계에서 등장할 거대한 철거인의 얘기는 분명 더더욱 멋지고 환상적인 모습일 거라는 기대 역시 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그림 9. 판타지 로봇 장르의 출발점인 '단바인'의 세계관을 계승한 토미노 감독의 신작 OVA '린의 날개(2005)'. 가장 최근에 제작된 판타지 로봇물이지만, 전체적인 로봇장르의 몰락과 이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할 수도 있는 토미노식 이야기 전개가 대중들에게 그다지 큰 어필을 하지는 못한 듯 싶다.


<참고 사이트>

[1] ‘거대로봇 연구서설 – 와타루&그랑조트 편’ by 백금기사, 백금기사의 기묘한 연구소 
[2] ‘거대로봇 연구서설 – 에스카플로네 편’ by 백금기사, 백금기사님의 기묘한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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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작성한 '판타지 서사시: 단바인에서 에스카플로네까지 (上)'를 본 블로그로 옮기면서 편집과 구성을 수정한 포스트입니다.


리얼로봇 장르의 평행우주, 그 탄생과 쇠퇴

96년 TV 시리즈로 방영된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 이하 에스카플로네)’는 비록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에 가려 기대만큼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도 판타지와 로봇장르를 멋지게 융합시킨 뛰어난 수작이라고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판타지 장르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지라 이 에스카플로네를 무척이나 아끼고 있습니다만, (게다가 단순 판타지 장르로만 좋아하기에는 에스카플로네에는 너무도 멋진 요소들이 많이 산재해 있었죠.) 그 덕분에 기억 한 켠에 먼지에 쌓인 체 잠들어가던 고대의 철거인들이 봉인을 풀고, 하나 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번 포스트는 특정 작품에 대한 리뷰라기 보다는 ‘성전사 단바인’을 시작으로 하여 ‘천공의 에스카플로네’까지 이어지는, 리얼로봇 장르의 패러랠 월드(Parallel World: 평행우주)라 할 수 있는 ‘판타지 로봇 장르’를 아우르는 대서사시를 한 번 펼쳐보고자 합니다.


1. 리얼로봇의 성공, 토미노 요시유키의 새로운 시도

거장 요코야마 미츠테루 원작의 ‘철인28호(1963)’에서 시작된 거대로봇의 개념은 나가이 고가 창조한 ‘마징가 Z(1972)’를 기점으로 ‘슈퍼로봇 장르’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아니메 史에 안착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70년대 슈퍼로봇 장르는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창조해낸 ‘기동전사 건담(1979, 이하 건담)’에 의해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리얼로봇 장르’라는 새로운 스타일에 바통을 넘겨주게 되죠. (물론,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슈퍼로봇 장르는 용자 시리즈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변모합니다만, 이는 본 글에서 다룰 내용의 경계선을 넘어가기에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일 것만 같던 로봇은 건담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현실적인 시점으로 전쟁을 바라보았고, 적과 감정의 교류 없는 비주얼적인 전투장면에 치중한 것이 아닌 生과 死를 통한 이념과 감정의 갈등과 대립을 보여 주었으며, 현실성 없던 로봇에 대한 치밀하고 밀리터리적인 설정을 가해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적극 부여하여,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헉헉...)

그로부터 시작되는 80년대는 리얼로봇장르의 전성기였음은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임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만, 건담을 창조한 토미노 요시유키는 그러한 리얼로봇장르의 전성기 즈음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리얼로봇 장르와 판타지와의 조우였습니다.

당시 이는 애니로서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부조화스러운 시도였습니다. 로봇은 SF의 정점에 올라서 있는 하이 테크놀로지의 상징물, 이를 검이나 마법이 등장하는 판타지의 한복판에 떨어뜨려 놓는다는 것은 잘 그려놓은 한 폭의 멋진 풍경화 위에 느닷없이 컴퓨터 사진을 붙여놓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도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리얼로봇 리그의 제 1 선발과 구단주 격인 토미노 감독과 선라이즈가 시도한다는 것은 자칫 지금까지 쌓아 올려온 명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모험이었을 것입니다.

일반적이라면, 건담의 후속 시리즈를 내는 것이 그 흥행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겠지만, 토미노 감독은 결국,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적인 시도를 펼칩니다. 그것이 바로 ‘성전사 단바인(1983, 이하 단바인)’인 것입니다.


2. 토미노 요시유키의 새로운 세상, 바이스톤 웰

ⓒ SOTSU · SUNRISE

‘지구가 있는 우리의 차원과 평행 우주로 존재하는 ‘바이스톤 웰’이라는 세계로 우연하게 빨려 들어간 주인공 ‘쇼 자마’는 드레이크 군과 반 드레이크 군과의 싸움에 휘말려 오라 배틀러인 단바인에 탑승하게 됩니다.(중략)

단바인은 오라력을 가진 바이스톤 웰이라는 판타지 세계와 곤충을 닮은 획기적인 디자인의 오라 배틀러, 그리고 리얼로봇장르의 전형인 진지한 현실적인 이해 갈등관계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멋진 라인업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전 작 ‘전설의 거신 이데온(1980)’에서 보여준 ‘몰살의 토미노’란 별명에 걸맞게 등장인물들이 마구 죽어 나가는 토미노 식 결말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지만) 이렇게 참신하고 멋진 설정을 가진 작품이 무려 20년이 지난 얘기란 것은 토미노 감독의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은 아닐까요.

토미노가 창조한 바이스톤 웰의 세계관은 그 이후에도 ‘바이스톤 웰 이야기-가제이의 날개(1986)’를 거쳐 ‘린의 날개(2005)’로 이어져 토미노의 남다른 바이스톤 웰 사랑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오히려 그에게 가장 큰 명성을 가져다 준 건담 시리즈가 선라이즈와 반다이의 압력 때문에 토미노 만의 세계를 펼쳐가기 어려운 작품이었던 것에 반해, 이 바이스톤 웰은 그의 생각이 더 자유스럽게 반영될 수 있었기에 실제 더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세계관도 건담이 아닌 바로 이 바이스톤 웰이라고 하는군요.

그리하여, 토미노 감독의 이런 모험은 리얼로봇 장르라는 뛰어난 직구 외에도 판타지 로봇 장르라는 새로운 변화구를 아니메(아니 선라이즈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에 부여하게 되고, 이 변화구는 이듬해 84년 ‘중전기 엘가임(1984, 이하 엘가임)’이라는 또 다른 명작으로 아니메 팬들의 가슴에 스트라이크로 꽂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80년대 초 중반이야말로 그야말로 토미노 감독의 최대의 전성기이자, 아니메의 제2의 르네상스였습니다.


ⓒ SOTSU Agency · SUNRISE

그림 1. 곤충을 모티브로 한 오라 배틀러의 디자인은 로봇 만화영화의 메카인 아니메에서도 단연 독특한 멋을 자랑한다.


3. 나가노 마모루가 창안한 헤비메탈의 세상

ⓒ SOTSU · SUNRISE


엘가임의 등장에 있어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듬해 85년도에는 바로 토미노 감독의 또 다른 명작 ‘기동전사 Z건담(1985, 이하 Z 건담)이 방영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81년부터 해마다 엄청난 작품들(‘전설거신 이데온(1981)’, ‘전투메카 자붕글(1982)’, ‘성전사 단바인(1983)’, ‘중전기 엘가임(1984)’까지…)을 만들어낸 토미노 감독이 연이어 Z 건담을 감독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임에는 분명했을 것입니다.([2] 참조) 그리고 그것은 스텝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었을 것이구요. 이에 토미노 감독은 판타지 로봇 장르라는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는 새로운 구원투수를 등장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Five Star Stories(이하 FSS)’를 창조해 낸 희대의 애니메이터 나가노 마모루였던 것입니다. (엘가임과 FSS는 나가노 마모루가 설정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패러랠 월드격의 작품이기에 본문에서는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할 일 많은 토미노 감독을 대신하여, 그가 전격적으로 기용한 신예 나가노 마모루는 지금까지 아니메에서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메카닉들과 캐릭터를 선보이며, 대서사시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매니아들을 단번에 사로잡아 버립니다. 그리하여 엘가임은 토미노 감독의 선발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노 마모루라는 구원투수의 이름을 세상에 더 널리 알리게 되는 것이죠.

어찌 보면, 이 엘가임이나 FSS는 판타지 로봇 장르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고풍스럽다기 보다는 독특하고 세련된 거대 로봇 ‘헤비 메탈’ 이외에도 헤비 메탈이 사용하는 거대한 광선포 버스터 런쳐, 하이테크의 상징인 광선검에 비행이 가능한 오토바이 형 탈 것 등은 오히려 '스타워즈'스러운 느낌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비단 등장하는 메카닉 뿐만 아니라, 인간형 안드로이드 파티마가 등장하는 발달된 과학력에 왕정정치가 이루어지는 작품의 배경적인 측면에서 말입니다.)

ⓒ SOTSU Agency · SUNRISE

그림 2. 고풍스럽고 탐미적인 나가노 마모루의 헤비메탈은 단바인의 기괴한 오라 배틀러와는 또다른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배경은 중세 스타일 판타지와는 분명 다르지만, 미래적인 느낌이 강한 판타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 FSS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아마테라스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건국신화까지 녹아 들어간, 시대를 아우르는 퓨전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시대관과 배경이 반영된 FSS는 21세기를 넘어서 아직도 연재가 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20세기에서 21세기를 넘는 ‘시대를 넘어간’ 작품이라 불려도 괜찮을 듯 하군요.

엘가임은 그 이후 후속편이나 극장판의 제작 없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FSS(1989)’ 극장판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멋진 모터 헤드(엘가임에서는 헤비메탈로 명명)의 자태를 드러냅니다. 하이 퀄리티의 비쥬얼이 돋보이는 이 작품에서 펼쳐지는 아마테라스의 전용기 ‘나이트 오브 골드’의 자태는 너무나 눈부시고 우아했으며, 유키 노부테루가 선보인 캐릭터들은 나가노 마모루의 스타일을 잘 계승하면서도 미형 캐릭터로서의 기본적인 스타일이 잘 매치업된 미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 MCMLXXXVIII · KADOKAWA PICTURES

그림 3. 80년대 후반, 카도카와 서점에 선라이즈와 반다이까지 가세하여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되었던 대작 로봇 판타지 FSS. 단, 초반부의 에피소드만을 극장판으로 재구성하였기에 프롤로그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후속편의 가능성은 원작의 완결여부만큼이나 미지수.


4. 육중한 기갑병의 등장, 그리고 리얼로봇의 쇠퇴

ⓒ SUNRISE

83년과 84년 판타지 로봇장르로 연타석 삼진을 일궈낸 선라이즈는 이에 용기(?)를 얻어 84년 말에 다시금 세 번째 판타지 로봇장르의 작품을 내놓게 됩니다. 이제는 토미노 감독이 Z 건담에 집중할 시기였기에 선라이즈로서는 대안이 필요했던 시기, 때마침 선라이즈에는 또 다른 괴물 투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장갑기병 보톰즈(1983)’로 리얼로봇 장르에 있어서 토미노 감독 다음의 명장으로 불리는 다카하시 료스케 였습니다.(이니셜 D의 다카하시 료스케가 아닙니다, 물론.)

명장 다카하시 감독을 필두로, 건담을 만들어 낸 불세출의 메카닉 디자이너 오가와라 쿠니오(가리안만 디자인)와 단바인에서부터 이후 ‘패트레이버’ 시리즈의 메카닉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이즈부치 유타카가 합세한 ‘기갑계 가리안(1984, 이하 가리안)’은 단바인의 독특하고 생물학적인 디자인이나, 엘가임의 독창적이고 세련된 모습과는 또 다른 중세의 철갑옷을 연상시키는 듯한 육중한 디자인의 메카를 선보임으로써, 판타지 로봇 장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중세 스타일의 판타지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뛰어난 과학력으로 혹성 아스트를 정복한 마달에 의해 멸망한 보더 왕국의 왕자 조조가 지하에 잠들어 있던 가리안을 타고 마달의 기갑병들과 싸운다는 내용은 얼핏 들어도 히토미가 빠진 에스카플로네의 세계관이나 내용 전개와 유사하죠. 어떻게 보면 에스카플로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지구인인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로 소환되는 부분은 단바인의 설정과 유사한 부분입니다만.) 특히, 가리안의 기갑병들은 국내에서는 80년도 중반 프라모델로 출시되면서, 그 당시 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리안은 이전의 단바인이나 엘가임에 비해서 그리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하고 조기 종영되는 불운한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글쎄요,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가리안의 스폰서인 모 프라모델 업체(반다이가 아닌, 다카라라는 프라모델 업체가 스폰서입니다.)가 프라모델의 판매부진을 이유로 방영시간의 단축에 대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뒷 이야기가 있군요.([4] 참조) 거기에 나름대로의 원인을 짚어보자면, 85년도에 방영된 Z 건담의 영향도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선라이즈도 어서 빨리 Z 건담에 역량을 집중하고 싶었겠죠.)

ⓒ SUNRISE

그림 4. 중세 판타지에 잘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이야기와 멋진 기갑병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제작 여건상의 한계로 인해 가리안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버린 비운의 작품이 되었다.

덕분에 훌륭한 설정을 가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조기종영에 의해 전반부에는 무난히 흐르던 전개가 후반부에 이르러 놀라운 속도로 펼쳐져 이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떨어뜨리게 되어 버립니다. 결국, 선라이즈의 세 번째 변화구는 아쉽게도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로 판정이 나게 되는 것이죠. 멋진 작품의 불운한 결말에 대한 아쉬움인지, 아니면 OVA의 재발매를 통한 비디오 시장에서의 매출을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둘 다 였을 수도 있겠지만), 가리안은 이후 86년에 ‘대지의 장’, ‘천공의 장’, ‘철의 문장’의 3부작 OVA로 다시 제작되어 미진하나마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대지의 장’과 ‘천공의 장’은 TV 시리즈의 총집편이고, 온전히 새로 만든 작품은 ‘철의 문장’입니다.)

그리고, 89년에 등장했던 FSS 극장판을 끝으로 판타지 로봇 장르는 조용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추측해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러한 판타지 로봇 장르가 리얼로봇 장르를 이끌던 감독들이 만들어낸 것들이었기에 80년대 말의 리얼로봇 장르의 쇠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동반 몰락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나, 토미노 감독이나 다카하시 감독 모두 80년대 후반부터는 이렇다 할 화제작을 만들지 못했고, 판타지 로봇 장르를 만들었던 두 명장의 부진은 결국 리얼로봇과 판타지 장르를 융합시킨 이 일련의 거대한 실험에 마침표를 찍게 한 가장 큰 원인은 아닐까요.

다음 편에는 새로운 컨셉으로 다시 부활하는 판타지 로봇 장르의 뒷이야기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5. OVA 철의 문장에 등장하는 기갑병들의 피규어 모형.

OVA의 기갑병들은 이즈부치 유타카에 의해 좀더 고풍스럽고 육중한 철거인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TV 시리즈에서 변신 합체 기능의 추가로 인해 작품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주역메카 가리안(상단 좌측)의 경우는 변신합체 기능이 삭제된 원래 기갑병의 이미지에 걸맞는 모습으로 태어난다.
우측 하단의 비갑병은 새의 날개 깃털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후에 '건담 윙'의 날개 디자인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참고 사이트>

[1] ‘성전사 단바인’ by 만보, Harbest Days
[2] ‘<중전기 엘가임>과 <F.S.S (Five Start Stories)> by 만보, Harbest Days
[3] ‘파이브 스타 스토리’ by 만보, Harbest Days
[4] ‘기갑계 가리안’ by 만보, Harbest Days
[5] ‘중전기 엘가임’ by 액슬, Rocket Queen
[6] ‘성전사 단바인’ by 액슬, Rocket Queen
[7] ‘기갑계 가리안’ by 액슬, Rocket Queen
[8] ‘나가노 마모루’ by 니힐리스트, ARE U READY FOR GUNDAM?
[9] ‘이즈부치 유타카’ by 니힐리스트, ARE U READY FOR GUNDAM?
[10] ‘오가와라 쿠니오’ by 니힐리스트, ARE U READY FOR GUNDAM?
[11] ‘토미노 요시유키’ by 니힐리스트, ARE U READY FOR GUNDAM?
[12] ‘오가와라 쿠니오’ by 니힐리스트, ARE U READY FOR GUNDAM?
[13] ‘나가노 마모루’ by 니힐리스트, ARE U READY FOR GUN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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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FILMLINK International/HIDEYUKI KIKUCHI/ASAHI SONORAMA/VAMPIRE HUNTER D Production Commitee


<스탭>

◈ 감독: 카와지리 요시아키
◈ 원작: 기쿠치 히데유키
◈ 제작: 매드하우스. 필름링크 인터내셔널


<시놉시스>

핵전쟁 이후 뱀파이어들이 귀족이라 불리며 인간들 위에 군림하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한 A.D 12,090년. 자신의 딸 샬롯을 뱀파이어에게 납치당한 대부호 앨번은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이자 뱀파이어 헌터인 던필(이하 D)을 고용하여 백작 마이어로부터 그의 딸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의심 많은 대부호의 아들은 D 외에도 또다른 헌터집단 '마커스 형제'에게도 같은 의뢰를 맡기는데, 샬롯을 먼저 구출해야만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에 마커스 형제는 D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마커스 형제'의 일원인 여성헌터 레일라는 D에게 경계심과 동시에 호기심을 보이게 되고, 마이어 백작과의 첫 대면에서 D는 납치된 샬롯이 마이어를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이어 백작이 암살집단인 바르바로이 일족의 3인조를 고용하게 되면서 이제 D와 마커스 형제, 바르바로이 3인조까지 얽힌 복잡한 추격전이 시작되는데... 과연 마이어가 향하는 곳은 어디이며, 샬롯과 마이어의 관계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1. 기쿠치 히데유키의 소설, 아마노 요시타카의 날개를 달고 애니메이션계에 입성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기쿠치 히데유키 원작의 '뱀파이어 헌터 D(1983)'는 1983년 1월 처음 소설로 등장합니다. '마계도시 신주쿠(1982)'라는 소설로 공포 소설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기쿠치 히데유키는 후일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과 황금 콤비로 호러 판타지 계열의 아니메 수작을 연이어 등장시키며, 일약 '공포소설의 대가'라는 명성을 얻기에 이르르는데요. 이 뱀파이어 헌터 D는 바로 그의 작품 중에서 1번 타자로 애니메이션화된 작품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 20권이 발표되며 30년 가까이 연재를 계속하고 있는 이 장편의 판타지 공포소설도 초창기의 기쿠치 히데유키만의 네임 밸류만으로 애니메이션화 되기에는 버거웠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면에는 당시 삽화가로서 소설에 참여한 애니메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 때문인 것도 있으니까요.

70년대 타츠노코 프로에 10대의 나이로 입사하여 천재적인 애니메이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아마노 요시타카가 애니메이터로서의 범주에만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며, 소설 삽화에 과감히 도전했던 이 작품은 원작자인 기쿠치 히데유키보다 아마노 요시타카에게 더 큰 명성을 안겨주며, 그를 애니메이터가 아닌 특급 일러스트레이터의 반열로 격상시켜주는 중대한 모멘텀이 됩니다. 물론 이 영향은 뱀파이어 헌터 D에게도, 기쿠치 히데유키에게도 동반 상승효과를 가져옵니다. 환상적인 일러스트 덕에 책의 가치는 높아졌으며,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을 더욱 더 배가시킨 것입니다.

ⓒ YOSHITAKA AMANO / ASAHI SONORAMA

그림 1. 아마노 요시타카의 소설 삽화 일러스트 (출처: 베스트 아니메)


그 덕분일까요, 뱀파이어 헌터 D는 85년 마침내 기쿠치 히데유키의 작품으로서는 최초로 애니메이션화 되기에 이르릅니다. 감독은 '우주전함 야마토(1974)'의 작화감독에서부터 '요술공주 밍키모모(1982)'이나 '은하표류 바이팜(1983)' 등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널리 알려진 아시다 토요오가 맡았는데요. 당시 원작자인 기쿠치 히데유키가 뱀파이어 헌터 D의 제작의사를 밝혔던 아시 프로덕션의 스타일이 자신의 작품 성향과는 너무도 달라서 수차례 거절을 했었으나, 아시다 토요오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 아니메로의 제작이 가능했던 숨겨진 에피소드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1] 참조)

뱀파이어 헌터 D의 1권의 이야기를 80분짜리 OVA로 아니메화한 이 작품은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높은 작화 퀄리티의 작품이라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만,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의 배경과 뱀파이어라는 호러 판타지적 소재가 기묘하게 어울린 숨겨진 고전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후일 '북두의 권(1986)' 극장판을 통해 센세이셔널한 고어 액션씬을 훌륭하게 선보인 아시다 토요오 감독의 액션 연출은 이 작품에서도 그 흥미를 더하죠. 특히, 단순한 뱀파이어 헌터로만 여겨졌던 D가 클라이막스 씬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힘과 그 힘에 얽힌 출생의 비밀은 크나큰 흥미와 함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준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말 OVA 랭킹 2위에 오를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둔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을 내놓지 못하였고,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이 연출한 기쿠치 원작의 '요수도시(1987)'가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킨 뒤, 카와지리가 키쿠치의 작품을 연달아 아니메화하는 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북미시장에 진출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이 작품이 왜 후속 시리즈를 내지 않은 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것일까요. 의문점을 뒤로 한체 세월은 어느덧 15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HIDEYUKI KIKUCHI / ASAHI SONORAMA

그림 2. 85년도 OVA 트레일러 영상 스틸 컷. (출처: Youtube.com)


2. 동반자 카와지리 요시아키와의 만남... 예견된 D의 부활

'요수도시(1987)', '마계도시 신주쿠(1988)', '바람의 이름은 아무네지아(1990)' 등에서 연달아 호흡을 맞추면서 기쿠치 히데유키와 카와지리 요시아키는 황금 콤비이자 절친한 친구로 발전하게 됩니다. 스승 린 타로에게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의 정수를 물려받은 일본의 탑 클래스 애니메이션 연출가 카와지리 감독과 이제는 일본 공포소설을 대표하는 기쿠치 히데유키의 조합은 하드고어 쟝르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며 그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됩니다. 만약, 뱀파이어 헌터 D가 좀 더 늦게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카와지리 감독의 작품으로 등장했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요. 이러한 의문의 답은 비로소 2000년에 들어서야 그 해답을 보여주게 됩니다.

'수병위인풍첩(1993)'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카와지리는 90년대 말부터 서서히 해외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선배격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데자키 오사무 감독(데자키 오사무 감독은 카와지리의 스승인 린 타로 감독과 함께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였지요. 무협소설로 치면 사숙이라 할 수 있겠군요.)도 해외진출을 했었으나, 그것이 북미에서의 러브콜이 아닌 잇단 흥행실패로 인한 도미였던 것에 비해 카와지리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북미의 인지도가 꽤 높은 편이었지요. 그리고, 미일 합작 애니메이션의 감독으로 낙점되면서 그가 선택한 작품이 바로 뱀파이어 헌터 D인 것입니다. 북미에서 인기가 높았던 원작 소설과 북미에서 인기가 높은 아니메 감독의 만남, 거기에 원작자인 키쿠치와 절친한 친구라는 점에서 뱀파이어 헌터 D는 카와지리 감독의 북미권 데뷔로서는 더없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로 인해 수천년간 인간과 뱀파이어의 경계에서 고독한 방랑을 해온 사나이가 마침내 15년만에 스크린으로 부활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2000, 이하 블러드러스트)'인 것입니다.

소설 뱀파이어 헌터 D의 세번째 에피소드 '妖殺行(Demon Deathchase)'를 영화화한 블러드러스트는 기획 단계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했기에 보통의 아니메와는 달리 외국인 스탭들이 작품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그로 인해 성우 캐스팅에 애초부터 외국인이 기용되어 연기를 펼쳤다는 것이 이색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더빙판에 비해 성우들의 연기는 작품과 좋은 매치업을 보여줍니다. 이제까지의 영어 더빙판 아니메의 경우, 아무래도 성우들의 연기력이나 동화와의 동기화 부분에 있어서 원 성우에 비해서 그닥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는데요. 그에 비해서 이 작품에서의 성우들의 연기력은 합격점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일본어로 아니메를 계속 보아온 팬들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거슬리거나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북미 아니메 팬들에게는 이때까지의 더빙판에 비해서는 확실히 좋은 느낌을 주었을 듯 합니다. 다만, 일부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대사에서도 읊조리는 듯한 톤으로 연기를 하여 왠지 답답한 느낌이 드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수병위인풍첩부터 카와지리의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낸 미노와 유타카가 이번에는 카와지리식 스타일에 아마노 요시타카의 몽환적이면서도 탐미적인 D의 모습을 꽤나 훌륭하게 녹여낸 점은 이 작품의 백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뿐만 아니라 뱀파이어인 마이어나 카밀라의 귀족스러움과 괴기스러움이 혼재된 모습, 마커스 형제의 개성 넘치는 모습이나 바르바로이 일족의 흉측한 모습 등은 제각각 멋진 개성을 뽐내고 있죠. 스파게티 웨스턴과 고딕 스타일, SF와 판타지를 오가는 기묘한 크로스오버적인 배경의 묘사, OVA에 비해 격상된 퀄리티와 이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CG들, 그리고 이런 비쥬얼을 멋지게 살려주는 음악 등이 한데 어울린 블러드러스트는 하이 퀄리티의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 2001 FILMLINK International/HIDEYUKI KIKUCHI/ASAHI SONORAMA/VAMPIRE HUNTER D Production Commitee

그림 3.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스틸 컷.


3. 멋진 구성과 고급스러운 연출, 하지만 2% 부족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원작의 경우에는 마커스 형제에게 스토리의 중심이 가있는 상황에서 D가 해결사로서 역할을 하는 형태로 전개가 됩니다.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인 이번 편에서는 주인공 D가 조금 뒤로 물러가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극장판으로 이식되면서 스토리는 조금 수정이 가해지게 됩니다. 그 결과 D와 마커스 형제의 이야기가 비슷한 비중으로 맞춰지게 됩니다. 2시간 남짓한 이야기 길이 속에서 이 역할 분배는 나름 좋은 비율을 보여주는 듯 싶습니다. 역시 카와지리 감독이 톱 클래스의 연출가임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겠죠.

이전까지의 매니아적인 작품 색체(폭력미학의 대가라는 별명답게)는 북미시장을 공략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서 좀 더 대중적인 모습을 취할 수 밖에 없었기에 순화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많은 카와지리 감독의 팬들이 상당수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군요. 거기에 무언가 2% 부족한 액션 덕에 고급스럽고 멋진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조금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사실 스토리의 전체적인 균형적인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심심한 뒷맛은 카밀라와 D가 맞대결을 펼치는 클라이막스 씬까지 주욱 이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작품 내 액션 씬의 비중이 적었다기 보다는 액션 자체, 특히 주인공인 D의 액션 장면이 동적인 부분보다는 정적인 씬에 대부분 머물러 있던 결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D의 부족한 액션을 마커스 형제가 나누어서 담당하다보니 스토리의 균형과는 별개로 D의 역할은 더 축소되어 보이고 결과적으로 액션이 필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부족한 작품으로 인식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한정된 셀 안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특기로 삼았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액션 연출이 근래의 다이나믹한 액션씬에 비해 역동적인 맛을 못살리면서 생기는 아쉬움은 아닌가 합니다. 리미티드 기법의 대가답게 카와지리 감독 또한 정지영상 컷의 감각적인 배치나 광원 연출, 배경의 활용 등을 통해 멋진 액션 장면을 구현해 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고급스러운 연출 방식은 이 블러드러스트 내에서도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고 있구요. 하지만, 근래의 애니메이션 상당수가 상당히 역동적인 액션샷들을 구사하고 있기에 이러한 부분은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생각도 드는군요. 그래서인지 카와지리 감독의 신작 '하이랜더(2007)'의 경우는 블러드러스트보다 훨씬 역동적인 장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비주얼과 이야기가 보여준 블러드러스트의 멋과 완성도는 인상적입니다. OVA의 경우 D의 진정한 활약은 클라이막스에서나 펼쳐지며, 그의 출생에 얽힌 비밀까지 살짝 드러나 드라마틱한 클라이막스를 보여줍니다. 블러드러스트 역시 카밀라와의 대결에서 D의 출생의 비밀이 살짝 선보이며 드라마틱한 결말로 향하게 되는데요. 마이어 백작과 샬롯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작품의 메인 테마이기에 이번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D가 주인공이 아닌 마이어와 샬롯이 주인공인 이야기로 볼 수가 있겠습니다. 다만,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테마가 전반적으로 흡입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이는 소재 자체의 진부함도 있겠지만, 원체 스토리 자체가 애틋한 러브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깊이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군요.

ⓒ 2001 FILMLINK International/HIDEYUKI KIKUCHI/ASAHI SONORAMA/VAMPIRE HUNTER D Production Commitee

그림 4. 뱀파이어 헌터 D 스틸 컷.


4. 속편의 가능성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D가 TV 시리즈 형태의 장편으로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극장판으로서의 완성도는 물론 훌륭했지만, D의 출생의 비밀과 같은 부분이 좀 더 심도있게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단편으로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런 단편 에피소드 중의 하나로 이 블러드러스트가 아니메화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현재까지도 계속적인 연재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D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원작 자체의 고딕스럽고 웨스턴스러운 독특한 느낌, 그리고 아마노가 창안해낸 몽환적인 캐릭터가 기실 아니메로 제작하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작품일지도 모르겠군요. 카와지리 감독 정도의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섣부른 아니메 프로젝트는 오히려 D의 이미지를 망칠 우려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때문에 더 이상 후속 논의가 없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팬으로서 언젠가 다시 등장할 D의 속편은 꽤나 기대되는 기다림이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만들어진 두 편의 작품이 모두 조금씩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언젠가 등장할지 모르는 다음 속편은 부디 전보다는 더 나은 모습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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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2007년 12월 28일, 엘로스의 네이버 블로그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작성된 리뷰 "큐티 하니 vs 큐티 하니 vs 큐티 하니"를 본 블로그로 옮긴 글입니다.


ⓒ LATERNA·TOEI Video·GAINAX·TOWANI


<정보>

◈ 원작: 나가이 고
◈ 감독: 사타라 히로시/카츠마타 토모하루 (큐티 하니, 973년 TV 시리즈), 나가오카 야스치카 (신 큐티 하니,1994년 OVA), 사사키 노리요 (큐티 하니 플래쉬, 1997년 TV 시리즈), 안노 히데아키 (Re:큐티 하니, 2004년 OVA)



<시놉시스>

시스터 질이 이끄는 정체불명의 조직 팬더 크로(원작명칭: 판사 크로), 그들이 노리는 것은 키사라기 박사가 발명한 공중원소 고정장치(‘Re:큐티하니’에서는 I 시스템)로, 엄청난 파워를 갖고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꿈의 장치이다. 키사라기 박사는 팬더 크로에 의해 죽기 전 공중원소 고정장치를 자신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소녀 키사라기 하니에게 장착을 시키고 숨을 거둔다. 

키사라기 박사의 원수를 갚고 팬더 크로의 야망을 분쇄하기 위해 키사라기 하니는 사랑의 전사 큐티 하니로 변신하는데... (‘신 큐티하니’는 원작의 내용과는 다른 내용으로 진행되며, 다른 리메이크 작들도 원작의 내용에 각색을 가하여 조금씩 내용상의 차이가 있음.)


1. 시대를 앞서간 나가이 고의 섹시 코드, 등장하다.

큐티하니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삼십여 년 전 작품으로, '마징가Z', '그렌다이저', '겟타로보'와 같은 70년대 수퍼로봇물의 아버지인 나가이 고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가이 고, 70년대 유소년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준 만화가는 전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일본 만화영화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가지만, 원래 그의 작품은 유소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코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징가 Z와 같은 그의 인기작도 원작 자체는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잔혹하거나 성적인 코드들이 많이 등장하며(사실, 애니에서도 로봇의 입에서 피 같은 기름을 뿜어내거나 팔이 뜯겨지는 장면들은 대상이 인간이 아닐 뿐, 잔혹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데빌맨(1972)’이나 ‘바이올런스 잭(1988)’과 같은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만화영화들은 그야말로 잔인함과 선정적인 묘사의 극을 달리며, 그를 ‘하드고어 장르의 개척자’로 불리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해주고 있지요.

이번에 얘기할 작품 ‘큐티하니’는 3번의 리메이크, 1번의 실사영화화를 거쳐 일본에서 TV 드라마까지 방영되었으며, 주제가도 만화영화가 리메이크 될 때마다 리메이크 되더니 결국은 한국에서까지 가수 아유미 양이 리메이크 하는 등,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섹시 변신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합니다.(원작 만화는 섹시코드가 도를 지나쳤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이러한 그의 표현방식만으로 그의 작품을 평가절하할 의도는 없으니 오해 마시길.)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이런 전설적인 큐티 하니의 최초부터 현재까지를 조금씩 살펴보면서, 나가이 고 선생이 창조한 섹시 변신물의 전설이 어떻게 변천이 되어 왔는지를 한 번 살펴보려 합니다.
 
그림 1. 좌측부터 '아바시리 일가', '파렴치 학원', '큐티 하니', '바이올런스 잭'의 코믹스 표지.


2. 성인들을 위한 변신소녀물? 70년대의 문제 소녀 큐티 하니

‘파렴치 학원(1968)’ 같은 작품(코믹스. 애니메이션화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으로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마징가 Z (1972)’로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나가이 고의 변신소녀물 ‘큐티 하니’. 60~70년대의 변신소녀물이 ‘요술공주 샐리(1966)’ 시작으로 하여 액션성을 배제한 비폭력성과 소녀적 취향 및 감성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큐티 하니’는 최초로 변신소녀물에 액션장르를 결합한 작품입니다.(결국, 세일러 문의 할머니뻘 되는 셈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큐티 하니는 꽤 기념비적이고 선구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만, 나가이 고의 작품세계는 그것을 한 차원 뛰어넘은 것이었으니, 바로 선정적인 장면이 방영된 최초의 TV 시리즈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성적인 표현수준이 매우 높은 일본이지만,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표현방식은 TV에서는 허용되기 힘든 시절이었고, 이때 등장한 나가이 고의 ‘큐티 하니’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장면, 즉 여성의 가슴을 노출하거나, 옷이 벗겨지면서 변신하는 센세이션 한 장면 등을 보여줌으로써, 일대의 혁명을 일으킨 것입니다.(덕분에 시청자의 항의로 조기 종영되었다는 군요. 그래도 25화나 방영했답니다, 볼 거 다보고 종영한 셈이군요.)

게다가 그 표현 수준은 TV 방영을 위해 원작인 코믹스(전 4화 발간)에 비해 파격적으로 낮춘 것이라니 원작의 포스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만, 반사회적이거나 세기말적 요소를 담고 있는 기존의 나가이 고의 작품에 비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믹한 요소가 주를 이루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앞서간 작품 소재는 어지간한 명작 만화영화들도 두어 번 밖에 리메이크가 되지 않았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무려 5번이나 리메이크(영화, 드라마 포함) 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됩니다.(역시 선정성은 시대를 넘어서도 통용이 되는 것 일까요.)

ⓒ DYNAMIC Pro·TOEI Animation

그림 2. 73년작 큐티 하니 TV 시리즈의 장면. 70년대 TV 만화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다니...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


3. 소녀의 귀환, 글래머러스한 섹시미녀에서 꽃 같은 미소녀까지

수많은 화제를 뿌리고 전설의 작품이 되어버렸던 ‘큐티 하니’는 90년대 복고주의 열풍을 타고 다시 한 번 섹시한 바람을 몰고 옵니다. OVA로 재 제작된 94년작 ‘신 큐티하니’는 원작자 나가이 고가 캐릭터 원안에 참여하고 여전히 멋진(?) 변신장면을 앞세워 한껏 기대치를 올려주긴 했으나, 제작단계에서부터의 잘못된 기획으로 이야기 전개가 무너지면서 용두사미 격으로 끝나버리고 맙니다.(4화로 기획했으나 인기가 높자, 12화로 재기획했다가 판매율이 떨어지니 8화로 급히 마무리. 베스트 아니메 참조.)

스토리 라인은 지금까지 리메이크 된 작품 중에서는 가장 엉성합니다. 원작의 스토리가 아닌 오리지널 스토리로 진행하면서, 앞부분을 급격히 생략하고 갑자기 하니가 등장하여 원작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인물구도를 알지 못한 체 작품을 감상해야 하는 불편함을 주었고, 작화 퀄리티는 높아졌으나, 디자인(메카닉, 의상, 색감 등)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준 아쉬운 작품이었죠.(물론,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 평가하다 보니 지금의 관점이 선입견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 NAGAI GO/DYNAMIC Pro·TOEI Animation

그림 3. 94년작 '신: 큐티하니'의 오프닝 스틸컷. 개인적으로 네편의 큐티 하니 오프닝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오프닝.

그래도 희대의 변신씬이나 나가이 고 다운 장면들, 로켓펀치를 발사하는 응큼한 할아버지(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군요.)이나 데빌맨과 닮은 조연급 캐릭터의 등장은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만 했습니다. ‘복고주의의 조류 속에 원작의 포스를 등에 업고 재미 좀 보려 했던 작품’이라면 너무 혹독한 표현일까요. 오히려 전 원작의 흥행 포인트 중 하나인 선정적인 요소를 과감히 제거하고, 기존의 미소녀 변신물의 공식을 그대로 적용한 97년작 TV 시리즈 ‘큐티 하니 플래쉬’를 OVA보다는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물론, 제가 좋아라하며 본 것은 OVA 였습니다만, 쿨럭.)

물론, ‘왕자스러운 꽃미남 캐릭터와 그를 사모하는 여주인공’은 이미 너무 많이들 사용한 설정인데다가 90년대의 빅히트작 '세일러 문' 시리즈의 아류라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모습 등 그 발상은 참신하지 못했지만, 나가이 고 원작의 특징이었던 괴기스러운 캐릭터와 흥행 포인트였던 선정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주인공인 큐티 하니만을 가져와 변신소녀물의 원래 시청층이었던 소녀들의 취향에 맞는 마법소녀 스타일로 각색하여 나름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변신소녀물의 새장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지 못하고 결국은 아류작의 스타일로 재기하는 비운의 복귀. ‘큐티 하니’의 리메이크는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 했습니다.

ⓒ DYNAMIC Pro·IISAKA YUKAKO·TOEI Animation

그림 4. 97년작 '큐티 하니 플래쉬'의 오프닝 스틸컷. 소녀물로의 전환을 짐작할 수 있다.


4. 소녀, 패러디의 귀재 안노 히데아키와 조우하다.

‘왕년의 섹시 여가수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복귀를 시도했으나, 복귀앨범은 볼거리만 신경을 쓴 나머지 잠깐 반짝하다가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재차 내놓은 앨범은 흥행을 고려한 나머지 그녀만의 색깔을 잃고 말았죠. 그렇게 첫 번째 복귀에서 쓴 잔을 마셨던 그녀, 이번에는 흥행의 귀재라는 모 프로듀서와 함께 다시 전성기의 그녀를 연상시키는 듯한 섹시함과 함께 나이를 잊은 듯한 발랄함으로 돌아옵니다. (중략)’

큐티 하니와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의 만남을 ‘전설적인 섹시가수의 복귀 스토리’라는 소재로 바꿔서 기사를 쓴다면, 이런 전개가 될까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감성을 가진 안노 감독은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하니의 매력을 남김없이 모두 발산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에 맞는 발랄하고 정열적인 소녀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게 됩니다.

가이낙스만의 화려하고 현란한 비주얼은 특히나 ‘Re: 큐티 하니(2004)’에서는 원색적인 색감과 극단적인 만화적 연출력까지 곁들여져, 혹자가 말하듯 키치적인 요소를 화면 가득 페로몬처럼 뿌리고 다닙니다. 게다가, 나가이 고만의 괴기스러운 캐릭터는 이러한 키치적인 요소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찰떡 궁합을 선보였던 것이죠. 70년대의 문제작을 90년대의 문제아 감독이 복귀작으로 골라 21세기에 연출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을까요. 오타쿠의 정점에 올라 오타쿠의 문화를 정면으로 부정했던 안노 감독의 복귀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오타쿠적인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나 ‘톱을 노려라, 건 버스터’ 등에서 익히 보여준 그의 절묘한 패러디 연출력은 아예 리메이크 임을 대놓고 표명한 이 작품에서는 마치 물을 만난 고기 마냥 생동감 넘치는 꿈틀거림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안노 감독의 힘으로 인해 그녀는 30여 년이 지나 다시금 화려한 부활의 서곡을 알리게 됩니다.
 

ⓒ LATERNA·TOEI Video·GAINAX·TOWANI

그림 5. 2004년작 'Re:큐티 하니'의 오프닝 컷. 복고와 미국식 코믹스, 그리고 가이낙스 스타일의 집대성. 과장과 함축이라는 만화적 표현이 잘 살아 있는 스피디하고 경쾌한 오프닝.


5. 실사영화를 거쳐 TV 드라마까지... 그녀는 계속 변신한다.

하니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욕심 많은 안노감독은 그녀를 실사영화에까지 등장시키게 되죠. 그라비아 모델 출신의 사토 에리코를 주연으로 기용한 실사판 ‘큐티 하니’를 애니메이션과 함께 동시 제작하는 괴력을 보여준 안노 감독, 게다가 90년대 작품에서는 그저 그렇게 리메이크 되었던 주제가 ‘큐티 하니’ 역시 일본의 대표 섹시 여가수 ‘코다 쿠미’에 의해 멋지게 재탄생 하게 됩니다.(코다 쿠미의 리메이크 곡은 실사판과 애니메이션에 모두 사용됩니다.)

실사판에 대한 평가는 제가 앞머리 5분만 본 다음 후다닥 꺼버린 관계로 본문에서는 평을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만, 극도의 키치적인 설정이 실사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유치한 아동용 특촬물을 보는 듯한, 어떤 면에서는 괴작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주인공의 속옷씬이 자주 나오니 아동용은 물론 아니겠지만.) 마찬가지로 키치적인 느낌이 강렬했던 할리우드 영화 ‘오스틴 파워’ 시리즈와 비교해도 좋을 듯 하구요.

☞ 큐티 하니 실사판 리뷰: 괴작열전 No.55 큐티 하니 by 페니웨이, 페니웨이(TM)의 In This Film

그녀의 복귀는 이 정도로만 끝나지 않고 TV 드라마로까지 부활하며, 새로운 ‘큐티 하니’의 전성시대를 예고합니다. 이 기세라면 헐리우드의 러브 콜도 한 번 기대해봄직 하군요.(‘드래곤 볼’까지 실사영화로 리메이크되는 이 마당에 ‘큐티 하니’는 꽤나 구미가 당기는 소재임에는 분명합니다만.)

물론, 그녀의 계속적인 등장이 반드시 좋은 모습만을 보여 준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녀는 분명 좋은 의미보다는 안 좋은 의미에서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니까요. 그러나, 그녀가 30여 년 동안 등장한 오프닝에서 항상 읊어대던 그 대사 ‘かわるわよ(카와루와요: 바뀔 거예요)’처럼 앞으로도 계속 변신하는 그녀를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임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겁니다.

ⓒ GAINAX·WoWow (좌) / ⓒ NAGAI GO·ブロ―ドマ―クス·デイ―ブサイド·ハニ―製作委員會 (우)

그림 6. 큐티 하니 실사판(좌) 과 큐티 하니 드라마 DVD 커버(우)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애니메이션 영화 리뷰 모아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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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스가 감상한 만화영화에 대한 리뷰가 실리는 서고입니다. 하나의 작품에 대한 리뷰에서부터 여러 작품을 하나의 테마로 엮은 리뷰, 작품의 특정 부분이나 특정 캐릭터를 중심으로 작성한 리뷰 등 다양한 형식의 리뷰로 분류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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