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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스탭>
◈ 감독: 故 콘 사토시
◈ 원작: 타케우치 요시카즈
◈ 제작: 매드하우스
<시놉시스>
여성 3인조 아이돌 그룹 챰(Cham). 팬들이 모인 야외 콘서트 장에서 인기곡을 부르고 난 후, 리더이자 팀내 최고의 인기인인 키리고에 미마가 팬들 앞에서 챰을 나와 독립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소속사 사장인 타도코로로부터 수명이 짧은 아이돌 가수에서 생명력이 긴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제안받았기 때문이다. 챰의 매니저로 한 때 가수 출신이기도 했던 루미는 이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지만, 미마는 이미 연기자로의 전업을 결심한 상태이다.
비록 인기 아이돌 가수라고는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변신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몇 마디 대사가 고작인 미니 시리즈의 역할은 기대 이하로 미미했고, 연기자 변신을 시도한 그녀에 대한 팬들의 원망인 듯 팩스를 통해 저주를 퍼붓는 문구가 보내지더니, 급기야 화약이 담긴 팬레터가 보내져와 소속사 사장이 부상을 입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팬들이 자주 언급하는 미마의 방이 궁금했던 미마는 그것이 팬 사이트의 이름인 것을 알고 루미의 도움을 받아 익숙하지 않은 솜씨로 컴퓨터를 사용해 미마의 방에 접속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팬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안 미마는 신기해 하지만, 이내 사이트에 쓰여진 일기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심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쉽지 않은 연기자의 길, 팬들의 원성과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 속에 점점 멀어지는 아이돌의 과거, 누군가 자신을 엿보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 조금씩 한계에 다다르던 어느날 미마에게 수정된 시나리오가 도착한다. 그것은 그녀의 강간 장면이 추가된 새로운 대본이었는데...
'퍼펙트 블루(1998)'는 2010년 8월 24일 췌장암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세상을 하직한 故 콘 사토시 감독의 유작이자 그의 첫번째 감독 연출작이기도 한 작품입니다. 첫 연출작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출과 섬세한 묘사, 그리고 완성도 높은 비주얼로 인해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불안정한 주인공의 심리와 더불어 펼쳐지는 현실과 환상의 중첩은 오로지 콘 사토시만이 해낼 수 있는 전매특허로, 아니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지요.
애초에 실사영화로 제작을 모색하고 있던 타케우치 요시카즈의 소설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중도에 아니메로 제작방향을 선회하게 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사이코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의 소재가 실사영화에서는 식상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 소재이지만, 만화영화에서는 거의 전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은 기회와 위기를 모두 지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었는데요. 아무도 해본 적이 없기에 독창적이고 독특한 작품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아니메 팬들에게는 생소한 이 장르가 과연 얼마나 어필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니메로 사이코 스릴러를 얼마만큼 실감나게 표현할 것인지가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매드하우스(애니메이션 제작)와 오토모 가츠히로(스페셜 어드바이저)가 힘을 실어주면서 작품은 서서히 구색을 갖춰가기 시작합니다. 감독으로는 당시 연출경력이 전무한 콘 사토시가 선임되는데요, 콘 사토시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코믹스를 연재하던 중 매드하우스에 입사하여 '노인 Z(1991)', '패트레이버 2(1993)'를 거쳐 '메모리즈(1995)'의 첫번째 에피소드 '마그네틱 로즈'에서 각본과 배경미술감독을 역임하면서 이제 막 주목받는 애니메이터로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이 모험적인 프로젝트에 연출 새내기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이 작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기존의 감독이 아닌 참신한 새 인물을 물색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작품 개봉 후 성공적인 결정이었음이 밝혀지게 됩니다. 콘 사토시는 원작을 넘어서는 완성도로 그 기대와 도전에 부응하게 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인기 아이돌에서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꾀하는 주인공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토커 팬에 의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낱낱이 노출되고, 아이돌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노출씬을 찍으면서 정체성에 방황하게 되는 와중에 벌어지는 주변인물들의 연쇄살인은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해보았을 때도 알 수 있듯이 평범하고 단선적인 전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수없는 실사영화를 통해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가 다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외국의 드라마에서도 몇번은 다루어졌을 법한 소재이기도 하지요. 실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미마가 출연하는 미니 시리즈 역시 이러한 사이코 스릴러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도 왠지 모를 소재의 평범함을 느끼게 해주는 측면도 있습니다. 통속극에서조차 자주 쓰이는 소재, 그러나 이 평범한 소재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극의 초반은 연기자로 노선을 변경한 아이돌 미마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서서히 현실의 무게를 느끼는 미마, 그리고 그로 인해 조금씩 스트레스와 신경쇠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은 앞으로 벌어질 파국의 전조를 알리고 있지요. 게다가 발단을 지나 전개 부분에 이르르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이 낱낱이 드러나는 팬 사이트 '미마의 방'의 등장으로 인해 불안감이 더더욱 가중됩니다. 98년도에는 아무래도 인터넷의 보급이 지금만큼 활성화 되어있지 않은 시대, 이러한 시대에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연예인의 인신공격이나 악성댓글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꽤 선구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마의 방의 등장으로 인해 그녀의 불안감이 고조되었을 무렵, 마침내 위기가 시작됩니다. 아이돌인 그녀를 이용해 시청률을 높여볼 심산으로 극본가가 강간 장면을 극에 넣게 되는 것이죠. 거기에 사진가에 의해 전라 누드 촬영까지 강요당하면서, 그녀의 혼란은 극에 달하고 그와 함께 그녀를 괴롭히는 스토커의 분노 역시 극한을 치닫게 됩니다. 비로소 시작된 연쇄살인, 사이코 스릴러 치고는 느즈막히 첫번째 사건이 발발하는 이 작품은 이렇게 초반에는 미마의 심리묘사와 주변상황의 전달에 상당히 치중하는 편입니다. 극 초반부터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강렬한 자극을 주는 여타의 사이코 스릴러에 비해서는 상당히 드라마적인 전개이기도 한데요. 그러나, 이러한 심도 있는 심리묘사를 통해 이 작품은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사영화를 넘어서는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리무중의 연쇄 살인사건은 미마의 환상 속에서도 벌어집니다. 환상이 깨어나면 똑같은 사건이 현실에서 발생하는 것이죠. 게다가 극의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미마의 흉내를 내기 시작합니다. 미마는 환각에 빠진 상태에서 살인을 벌인 것일까요? 그렇다면 미마를 괴롭히는 그 스토커와 팬 사이트 미마의 방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게다가 미마의 흉내를 내는 정체불명의 또다른 미마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이 인물이 과연 현실의 인물인지 아니면 미마의 환상인지에 대한 인물인지에 대한 미스테리까지 끼어듭니다. 위기를 지나 절정으로 흘러갈수록 이야기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수수께끼는 또다른 수수께끼를 낳게 됩니다.
이 작품이 단선적인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복잡다단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콘 사토시의 전매특허라고 부를 수 있는 현실과 환상의 교차편집에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환상인지를 관객 뿐만 아니라 주인공마저도 혼란스럽게 해버림으로써 이야기 내내 관객은 이 복잡한 이야기의 실타래가 어디서 풀어질까하는 궁금증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것은 극도의 혼란한 정신세계에 빠진 미마 역시 마찬가지지요. 미마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가중될수록 현실과 환상은 더더욱 농밀하게 서로 얽히기 시작합니다.
또한, 극중에서 미마가 출연하게 되는 사이코 스릴러 드라마 '더블 바인드'마저 스토리의 전개가 미마의 현실과 유사해지면서 환상과 현실 속에서 혼란해하는 미마의 모습과 드라마 속에서의 미마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뒤섞인 절묘한 오버래핑을 보여줍니다. 마치 세 개의 이야기가 서로 물리고 물리는 뱀과 같은 형상, 이 현실과 환상의 이중 삼중 구조는 얼마전 극장 개봉을 시작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2010)'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는데요. 물론, 그동안 다양한 아니메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고가는 이야기와 연출이 선보인 것이 사실입니다만,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이 정신을 차리면 현실 속, 정신을 들고 보니 꿈 속 혹은 드라마 촬영 속이라는 퍼펙트 블루의 이야기 전개는 확실히 인셉션의 그것과도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교차편집은 후일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천년여우(2001)'에서는 더더욱 능숙해지고 복잡해지며, TV 시리즈인 '망상대리인(2004)'에서는 더더욱 난해하게 얽히고 섥히게 됩니다만, 그 정도면에 있어서는 퍼펙트 블루가 적당하다고 보여지며, 천년여우가 가장 최적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망상대리인이나 파프리카에 이르르면 식상해짐과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복잡한 교차 편집에 살짝 거부감을 느낄 정도랄까요.
이렇게 적당한 현실과 환상의 혼합은 작품의 단조로움을 복잡하고 치밀한 스릴러로 탈바꿈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와 맞물려 실사영화 이상의 미스테리함을 관객에게 선사하게 되는 것이죠.
퍼펙트 블루는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와 감정 표현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만화영화의 형태를 빌린 실사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동안 수많은 성인용 만화영화(물론, 야하다는 의미가 아닌 진정한 성인용이라는 의미에서, 물론 이 작품에서는 강간장면이나 누드씬과 같은 에로틱한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가 아니메에 등장해 왔지만, 이토록 완벽한 성인 만화영화는 몇몇 감독의 만들어내는 작품 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토록 사실적인 만화영화를 만들면서 만화영화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환상적인 묘사를 기가 막히게 혼합시킴으로써 작품의 단조로움과 식상함을 극적으로 상쇄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만화적인 묘사가 만화영화다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몽환적이고 미스테리한 느낌만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여타의 만화영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만화영화적인 상상력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표현되지만 리얼리티와 현실감이 사그라들지 않는 콘 감독의 스타일은 이후에도 그의 작품에서 여러번 보여지게 되지요.
비록 콘 사토시 감독의 새로운 작품을 더는 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분명 퍼펙트 블루는 다양한 작품들이 넘쳐나는 아니메 속에서도 기억될만한 독특한 작품일 것입니다. 독창적인 이 연출 스타일이 그만의 스타일로 끝나버린 것이 아쉽기만 할 뿐이네요.
<참고 사이트>
[1] 퍼펙트 블루, 베스트 아니메
[2] パーフェクトブルー,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에게 있습니다.
◈ 감독: 故 콘 사토시
◈ 원작: 타케우치 요시카즈
◈ 제작: 매드하우스
<시놉시스>
여성 3인조 아이돌 그룹 챰(Cham). 팬들이 모인 야외 콘서트 장에서 인기곡을 부르고 난 후, 리더이자 팀내 최고의 인기인인 키리고에 미마가 팬들 앞에서 챰을 나와 독립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소속사 사장인 타도코로로부터 수명이 짧은 아이돌 가수에서 생명력이 긴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제안받았기 때문이다. 챰의 매니저로 한 때 가수 출신이기도 했던 루미는 이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지만, 미마는 이미 연기자로의 전업을 결심한 상태이다.
비록 인기 아이돌 가수라고는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변신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몇 마디 대사가 고작인 미니 시리즈의 역할은 기대 이하로 미미했고, 연기자 변신을 시도한 그녀에 대한 팬들의 원망인 듯 팩스를 통해 저주를 퍼붓는 문구가 보내지더니, 급기야 화약이 담긴 팬레터가 보내져와 소속사 사장이 부상을 입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팬들이 자주 언급하는 미마의 방이 궁금했던 미마는 그것이 팬 사이트의 이름인 것을 알고 루미의 도움을 받아 익숙하지 않은 솜씨로 컴퓨터를 사용해 미마의 방에 접속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팬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안 미마는 신기해 하지만, 이내 사이트에 쓰여진 일기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심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쉽지 않은 연기자의 길, 팬들의 원성과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 속에 점점 멀어지는 아이돌의 과거, 누군가 자신을 엿보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 조금씩 한계에 다다르던 어느날 미마에게 수정된 시나리오가 도착한다. 그것은 그녀의 강간 장면이 추가된 새로운 대본이었는데...
새내기 감독의 새내기 답지 않은 작품
'퍼펙트 블루(1998)'는 2010년 8월 24일 췌장암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세상을 하직한 故 콘 사토시 감독의 유작이자 그의 첫번째 감독 연출작이기도 한 작품입니다. 첫 연출작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출과 섬세한 묘사, 그리고 완성도 높은 비주얼로 인해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불안정한 주인공의 심리와 더불어 펼쳐지는 현실과 환상의 중첩은 오로지 콘 사토시만이 해낼 수 있는 전매특허로, 아니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지요.
애초에 실사영화로 제작을 모색하고 있던 타케우치 요시카즈의 소설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중도에 아니메로 제작방향을 선회하게 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사이코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의 소재가 실사영화에서는 식상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 소재이지만, 만화영화에서는 거의 전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은 기회와 위기를 모두 지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었는데요. 아무도 해본 적이 없기에 독창적이고 독특한 작품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아니메 팬들에게는 생소한 이 장르가 과연 얼마나 어필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니메로 사이코 스릴러를 얼마만큼 실감나게 표현할 것인지가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매드하우스(애니메이션 제작)와 오토모 가츠히로(스페셜 어드바이저)가 힘을 실어주면서 작품은 서서히 구색을 갖춰가기 시작합니다. 감독으로는 당시 연출경력이 전무한 콘 사토시가 선임되는데요, 콘 사토시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코믹스를 연재하던 중 매드하우스에 입사하여 '노인 Z(1991)', '패트레이버 2(1993)'를 거쳐 '메모리즈(1995)'의 첫번째 에피소드 '마그네틱 로즈'에서 각본과 배경미술감독을 역임하면서 이제 막 주목받는 애니메이터로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이 모험적인 프로젝트에 연출 새내기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이 작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기존의 감독이 아닌 참신한 새 인물을 물색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작품 개봉 후 성공적인 결정이었음이 밝혀지게 됩니다. 콘 사토시는 원작을 넘어서는 완성도로 그 기대와 도전에 부응하게 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스토커와 연쇄살인, 평범한 소재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인기 아이돌에서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꾀하는 주인공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토커 팬에 의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낱낱이 노출되고, 아이돌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노출씬을 찍으면서 정체성에 방황하게 되는 와중에 벌어지는 주변인물들의 연쇄살인은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해보았을 때도 알 수 있듯이 평범하고 단선적인 전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수없는 실사영화를 통해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가 다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외국의 드라마에서도 몇번은 다루어졌을 법한 소재이기도 하지요. 실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미마가 출연하는 미니 시리즈 역시 이러한 사이코 스릴러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도 왠지 모를 소재의 평범함을 느끼게 해주는 측면도 있습니다. 통속극에서조차 자주 쓰이는 소재, 그러나 이 평범한 소재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극의 초반은 연기자로 노선을 변경한 아이돌 미마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서서히 현실의 무게를 느끼는 미마, 그리고 그로 인해 조금씩 스트레스와 신경쇠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은 앞으로 벌어질 파국의 전조를 알리고 있지요. 게다가 발단을 지나 전개 부분에 이르르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이 낱낱이 드러나는 팬 사이트 '미마의 방'의 등장으로 인해 불안감이 더더욱 가중됩니다. 98년도에는 아무래도 인터넷의 보급이 지금만큼 활성화 되어있지 않은 시대, 이러한 시대에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연예인의 인신공격이나 악성댓글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꽤 선구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마의 방의 등장으로 인해 그녀의 불안감이 고조되었을 무렵, 마침내 위기가 시작됩니다. 아이돌인 그녀를 이용해 시청률을 높여볼 심산으로 극본가가 강간 장면을 극에 넣게 되는 것이죠. 거기에 사진가에 의해 전라 누드 촬영까지 강요당하면서, 그녀의 혼란은 극에 달하고 그와 함께 그녀를 괴롭히는 스토커의 분노 역시 극한을 치닫게 됩니다. 비로소 시작된 연쇄살인, 사이코 스릴러 치고는 느즈막히 첫번째 사건이 발발하는 이 작품은 이렇게 초반에는 미마의 심리묘사와 주변상황의 전달에 상당히 치중하는 편입니다. 극 초반부터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강렬한 자극을 주는 여타의 사이코 스릴러에 비해서는 상당히 드라마적인 전개이기도 한데요. 그러나, 이러한 심도 있는 심리묘사를 통해 이 작품은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사영화를 넘어서는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리무중의 연쇄 살인사건은 미마의 환상 속에서도 벌어집니다. 환상이 깨어나면 똑같은 사건이 현실에서 발생하는 것이죠. 게다가 극의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미마의 흉내를 내기 시작합니다. 미마는 환각에 빠진 상태에서 살인을 벌인 것일까요? 그렇다면 미마를 괴롭히는 그 스토커와 팬 사이트 미마의 방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게다가 미마의 흉내를 내는 정체불명의 또다른 미마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이 인물이 과연 현실의 인물인지 아니면 미마의 환상인지에 대한 인물인지에 대한 미스테리까지 끼어듭니다. 위기를 지나 절정으로 흘러갈수록 이야기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수수께끼는 또다른 수수께끼를 낳게 됩니다.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환상과 현실의 혼란스러운 중첩, 방황하는 주인공과 빠져드는 관객
이 작품이 단선적인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복잡다단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콘 사토시의 전매특허라고 부를 수 있는 현실과 환상의 교차편집에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환상인지를 관객 뿐만 아니라 주인공마저도 혼란스럽게 해버림으로써 이야기 내내 관객은 이 복잡한 이야기의 실타래가 어디서 풀어질까하는 궁금증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것은 극도의 혼란한 정신세계에 빠진 미마 역시 마찬가지지요. 미마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가중될수록 현실과 환상은 더더욱 농밀하게 서로 얽히기 시작합니다.
또한, 극중에서 미마가 출연하게 되는 사이코 스릴러 드라마 '더블 바인드'마저 스토리의 전개가 미마의 현실과 유사해지면서 환상과 현실 속에서 혼란해하는 미마의 모습과 드라마 속에서의 미마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뒤섞인 절묘한 오버래핑을 보여줍니다. 마치 세 개의 이야기가 서로 물리고 물리는 뱀과 같은 형상, 이 현실과 환상의 이중 삼중 구조는 얼마전 극장 개봉을 시작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2010)'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는데요. 물론, 그동안 다양한 아니메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고가는 이야기와 연출이 선보인 것이 사실입니다만,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이 정신을 차리면 현실 속, 정신을 들고 보니 꿈 속 혹은 드라마 촬영 속이라는 퍼펙트 블루의 이야기 전개는 확실히 인셉션의 그것과도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교차편집은 후일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천년여우(2001)'에서는 더더욱 능숙해지고 복잡해지며, TV 시리즈인 '망상대리인(2004)'에서는 더더욱 난해하게 얽히고 섥히게 됩니다만, 그 정도면에 있어서는 퍼펙트 블루가 적당하다고 보여지며, 천년여우가 가장 최적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망상대리인이나 파프리카에 이르르면 식상해짐과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복잡한 교차 편집에 살짝 거부감을 느낄 정도랄까요.
이렇게 적당한 현실과 환상의 혼합은 작품의 단조로움을 복잡하고 치밀한 스릴러로 탈바꿈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와 맞물려 실사영화 이상의 미스테리함을 관객에게 선사하게 되는 것이죠.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실사의 사실감과 만화영화의 상상력을 성공적으로 융합한 작품
퍼펙트 블루는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와 감정 표현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만화영화의 형태를 빌린 실사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동안 수많은 성인용 만화영화(물론, 야하다는 의미가 아닌 진정한 성인용이라는 의미에서, 물론 이 작품에서는 강간장면이나 누드씬과 같은 에로틱한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가 아니메에 등장해 왔지만, 이토록 완벽한 성인 만화영화는 몇몇 감독의 만들어내는 작품 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토록 사실적인 만화영화를 만들면서 만화영화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환상적인 묘사를 기가 막히게 혼합시킴으로써 작품의 단조로움과 식상함을 극적으로 상쇄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만화적인 묘사가 만화영화다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몽환적이고 미스테리한 느낌만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여타의 만화영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만화영화적인 상상력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표현되지만 리얼리티와 현실감이 사그라들지 않는 콘 감독의 스타일은 이후에도 그의 작품에서 여러번 보여지게 되지요.
비록 콘 사토시 감독의 새로운 작품을 더는 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분명 퍼펙트 블루는 다양한 작품들이 넘쳐나는 아니메 속에서도 기억될만한 독특한 작품일 것입니다. 독창적인 이 연출 스타일이 그만의 스타일로 끝나버린 것이 아쉽기만 할 뿐이네요.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참고 사이트>
[1] 퍼펙트 블루, 베스트 아니메
[2] パーフェクトブルー,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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