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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 영상미학의 대가와 초특급 판타지 소설, 그리고 3D의 하모니.

ⓒ 2010 Warner Bros. Entertainmnet Inc


'300', '왓치맨' 등을 통해 특유의 감각적이고 고어적인 성인취향의 액션 판타지를 선보인 헐리우드의 기대주 잭 스나이더 감독. 얼마전 엘로스의 블로그에서도 2011년 봄 상영예정에 있는 그의 신작 '서커 펀치'를 소개한 바 있는데요.(서커펀치 소개 포스트 보러가기) 그보다 앞서 잭 스나이더의 특급 프로젝트가 베일을 벗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개봉되었으며, 한국에서도 10월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그의 신작은 3D 판타지 대서사 애니메이션 '가디언의 전설'.

캐쓰린 래스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미국에서만 500만부 이상 팔린 특급 베스트셀러로서, 올빼미를 주인공으로 한 서사 판타지 대작입니다. 워너 브라더스가 배급을 맡아 지난 9월 24일 미국에서 개봉되어 주말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며, 평단과 관객에게 열렬한 찬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 아바타 이후 최고의 3D by 곽명동 기자, 데일리 포커스 (기사 보러가기

이미 앞선 여러 작품들을 통해 영상미에 있어서만큼은 A급에 올랐다고 생각되는 잭 스나이더의 연출에,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장대한 서사시가 가미되면서 그 구성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입니다. 하늘을 나는 올빼미들의 모험이다보니 속도감과 역동성이 비주얼의 중요한 이슈일텐데, 3D로 제작되면서 이러한 속도감과 역동성을 100% 살려주었을 듯 하구요. 게다가 이 속도감과 역동성이 3D의 묘미를 살려주면서 서로 상부상조하는 형세가 된 듯 하네요. 미국 평단에서 아바타 이후 최고의 3D라는 찬사가 나올만하다는 수긍이 갑니다. 아바타 이후 이제까지의 3D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이 트렌드에 편승한 작품들로, 3D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던 작품들도 대부분이었거든요.

아직 작품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만, 이번 가디언의 전설은 판타지 장르에서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도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성인취향의 작품, 그것도 역동적이고 극사실주의적 영상미를 선보였던 잭 스나이더가 메가폰을 잡았기에 픽사나 드림웍스의 말랑말랑한 작품들에 비해 좀 더 파워풀하고 실사영화적인 비주얼을 선보일 것 같다는 점에서 그런데요. 마치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을 연출하면서 성인층도 충분히 공감하고 즐길만한 판타지 영화를 보여준 것처럼, 가디언의 전설 역시 잭 스나이더를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보다는 보다 높은 연령대의 관객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영상과 드라마를 선보이리라 기대합니다. 

과연 가디언의 전설이 2010년 하반기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을까요. 올 한해 헐리우드의 화제작이 그다지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가디언의 전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요. 올 여름 헐리우드 최고 히트작인 '인셉션'과의 비교는 아직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놀랄만한 영상미와 장대한 판타지 서사시의 결합이 결코 허언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2010 Warner Bros. Entertainmnet Inc

ⓒ 2010 Warner Bros. Entertainmnet Inc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0 Warner Bros. Entertainmnet Inc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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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메의 철학자와 전대물의 원조 히어로가 조우하다.

ⓒ Ishimori Productions


2010년 10월 5일부터 8일까지 일본 시바시의 전시장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리는 2010 CEATEC Japan 쇼의 파나소닉 부스에서, 파나소닉이 스폰서를 맡고, 프로덕션 I.G가 제작을 맡은 Full HD 3D 애니메이션 '사이보그 009'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연출을 맡은 이는 무려 오시이 마모루 감독.

☞「009」3D立体視アニメ公開 押井守が映像制作, AnimeAnime (보러가기)
☞ Mamoru Oshii, Production I.G Make 3D Cyborg 009 Anime, Anime News Network (보러가기)

현재 4분 45초 정도 길이의 영상으로 제작되어 전시회 내에서만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것만 보아서는 파나소닉의 3D 기술력을 홍보하기 위한 홍보영상 수준이라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홍보영상인데도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 카와이 켄지 음악감독까지 가세했으니 스탭진의 네임밸류는 막강하네요. 오시이 감독이 이런 작업도 하나요? 의외입니다.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는 극장용 아니메의 일부분을 공개하는 줄 알고 무척 흥분했는데, 현재로서는 극장 아니메로 제작을 기획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네요. 아쉽군요.

하지만, 전시회에서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라면 파나소닉이 극장 아니메 스폰서를 자처하지도 않을까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다시 연출을 맡는다면, 상당히 난해난 사이보그 009가 될런지도 모르겠네요.

ⓒ Ishimori Productions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Ishimori Production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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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畑事務所・TNHG


<스탭>

◈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 원작: 타카하타 이사오
◈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시놉시스> 

마지역에서 다카가 숲과 스즈카 숲으로 나뉘어 살던 너구리들은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점차 숲이 없어지면서 존속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들 너구리들은 사람들이 안보일 때는 두발로 서서 다니며, 변신술과 같은 도술을 부릴 수 있는 이들이었지만, 자연을 바꿔버리는 인간들의 힘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평성 31년(평성, 일어로 헤이세이는 현재 일왕의 연호로 1988년부터 시작함. 평성 31년이면 서기로 2019년을 의미), 너구리들은 인간들에게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기로 한다. 인간들에 맞서기 위해 너구리 장로들이 내놓은 계획은 바로 오랫동안 금지되어 있던 변신술의 부활과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이었는데...


지브리의 또하나의 심장, 다카하타 이사오의 걸작 판타지

튜디오 지브리하면 대게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들은 세심한 설정, 아름다운 배경, 서정적인 음악, 거대한 스케일, 신나는 모험, 반전의식과 환경주의가 담긴 메시지, 하늘을 향한 로망, 그리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등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소재들로 가득하지요. 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에는 미야자키에 버금가는 또하나의 거장이 자리하고 있음을 아니메를 많이 보아온 팬들이라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일본 아니메史를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감독 중의 한명, 다카하타 이사오가 있음을 말입니다.

사실, 다카하타 이사오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세워진 직후에는 연출이라는 자신의 본업보다는 제작 쪽에 주로 몸을 담으면서 지브리의 안살림을 챙겨왔습니다. 그러나 다카하타와 미야자키가 처음 조우한 60년대의 도에이 동화 시절을 지나 세계명작동화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 닛폰 애니메이션 시절까지는 오히려 다카하타가 연출을 맡았고, 후배인 미야자키는 그를 도와 설정 등에 관여했던 적이 더 많았지요. 이 때까지 그가 연출했던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모험(1968)', '팬더와 아기팬더(1972)',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1974)', '엄마찾아 삼만리(1976)', '빨간머리 앤(1979)', '첼리스트 고슈(1982)' 등 주옥같은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흥행적인 면에서 미야자키가 앞서 있다고 하지만 작품의 네임밸류만 놓고 보자면 둘은 거의 쌍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이런 그가 스튜디오 지브리에 안착하면서부터는 자신의 작품 활동 수를 줄이고 후배인 미야자키를 전면에 내세운 체 자신은 스튜디오 내의 궂은 일을 도맡게 됩니다. 그의 필모그라피가 상당부분 세계명작동화에 기반한 현실적이고 소소한 드라마(물론, 데뷔작인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모험은 상당한 스케일의 판타지 드라마입니다만)였던 반면, 미야자키의 작품들은 대게 판타지적이고 모험이 가득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은 둘의 스타일이 같은 소스(세계 명작동화 스타일)에서 기반하고 있지만,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지브리에서 연출한 전작 '반딧불의 묘(1988)'와 '추억은 방울방울(1991)'은 이러한 현실주의적인 성격에 더해 그동안 선보였던 유럽식 배경을 벗어나 일본적인 색체를 물씬 풍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미야자키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이국의 모험'을 그린다면, 다카하타 감독은 '현실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드라마'에 능숙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둘의 성격적 차이는 지브리의 작품 스펙트럼을 폭넓게 하는 하나의 강점이라고 할 수도 있구요.

그런 그가 94년 변신술을 사용하는 너구리가 주택개발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험에 처하자 인간에 맞서 싸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일상의 모험'을 다룬 재미있는 작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바로 이번에 소개할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이하 폼포코)'입니다.

ⓒ 畑事務所・TNHG



인간을 풍자하는 재주많고 유쾌한 너구리들의 생활

야기는 동경의 타마지역 신도시 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주택공급 사업의 일환으로 산을 깎아 계단형태로 아파트 단지를 세우려는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두 무리로 나뉘어 서로 다투던 너구리 무리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너구리들은 두발로 서서 걸어다닐 수 있으며, 사람처럼 말도 하고, 심지어는 도술을 사용하여 자유자재로도 변신할 수 있는 영험한 동물이라는 것인데요. 이들은 인간들의 도시개발계획에 맞서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내고자 인간들을 파악하기 위한 인간연구계획과 한동안 금기시 해왔던 변신술을 부활시켜 인간들에 맞서기로 결정합니다. 실로 너구리들의 반란, 아니 너구리들의 역습인 것이죠.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너구리들이 절대 인간처럼 사악하거나 계산적이지 않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며 놀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평화가 빼앗길 위기에 처한 너구리들이지만, 심각한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인간들을 향한 대응방식이 결정되자 바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처럼 기뻐하는 너구리들의 모습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만, 천진스럽고 낙천적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누구를 해코지하거나 다치게 하려는 공격적인 방식보다는 '원만하게 잘 해결되면 그걸로 좋지 아니한가'라는 순진한 너구리들의 방식은 자신들에게 닥친 위기상황을 실로 유쾌하게 희화화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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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들 무리중에도 강경파가 있어 공사장에 진입하는 트럭을 도랑으로 떨어뜨리고 운전을 방해하여 절벽에 추락시키는 것과 같은 과격한 행동을 일삼지만, 이마저 낙천적인 그들의 성격 때문에 유야무야 되어버리고 맙니다. 인간들을 아예 멸망시켜버리자는 초강수를 계획하다가도 햄버거 때문에 인간들 일부는 살려둬야 한다며 웃음으로 마무리 지어버리는 너구리들의 모습은 가벼운 미소를 짓게 만들죠.

특히, 초반에 변신술을 익히는 그들의 일상은 타카하타 감독의 숨겨진 개그가 빛을 발하는 대목인데요. 변신술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해 하반신이나 상반신은 그대로 너구리인체로 변신하거나 아예 변신술을 하지 못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선생님 앞을 지나가는 어설픈 너구리들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너구리들의 변신술은 게다가 한계가 있는데요. 막대한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변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태미너 드링크를 수시로 복용해야 한다는 재미있는 제한까지 둡니다. 인간으로 변신한 뒤 한계가 다다른 너구리들은 눈밑에 진한 다크써클이 생기면서 점차 지쳐가다가 체력이 다하면 너구리로 변하고 맙니다. 이러한 설정은 실로 디테일함과 재기가 넘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로 다채로운 너구리들의 매력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너구리들의 모습으로 또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동물 너구리의 모습으로, 너구리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처럼 웃고 떠들고 걸어다니는 환상 속 너구리로, 패기를 잃어버린 비관적인 모습일 때는 더더욱 만화적인 형태의 너구리(기획단계에서 논의되었던 스기우리 시게루의 만화 '백팔백 너구리'의 너구리를 컨셉으로 한 것)로 변하면서 상황에 따라 다채롭게 변모하게 되는데요. 너구리들을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이러한 연출방식은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오고가는 이 작품의 성격과도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고 하겠습니다.

ⓒ 畑事務所・TNHG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한 너구리들의 특훈장면. 미숙한 너구리들의 변신장면은 기발한 웃음을 선사한다.


개발 지상주의를 향한 비판, 현실주의가 살아있는 동화

포코가 코믹 판타지의 형태를 띄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 돋보이는 것은 지브리의 테마인 환경주의를 보다 더 사실주의적인 관점에서 묘사했다는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거대한 판타지의 세상 속에서 환경주의를 묘사했던 미야자키와는 달리, 다카하타 이사오는 변신 너구리들의 판타지스러운 세상을 사실주의가 가득한 인간의 세상 한 가운데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보다 더 이 메시지를 피부에 와닿게 하는 수법을 보이고 있는데요. 덕분에 이 작품은 판타지적인 연출이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물과 기름처럼 판타지와 사실주의가 양립하는 기묘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이 변신 너구리들의 생활이 삭제된 체 인간의 관점에서 진행되었다면,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피폐해지는 자연의 모습과 이로 인해 살곳을 잃고 인간세상으로 먹을 것을 찾아나온 야생 너구리들의 이야기라는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인 이야기가 되었을 겁니다. 이 얼개를 유지하면서 여기에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적인 너구리들을 등장시켜 다큐와 동화가 공존하는 보기드문 스타일의 풍자 판타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상반된 두 스타일을 한 작품에 융화시키는 것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로 두 가지 장르에 모두 정통한 연출가만이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모습일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타카하타 감독이기에 가능한 모습인 것이구요.

덕분에 지브리 작품의 거의 공통적인 테마라 할 수 있는 환경주의는 더더욱 설득력있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결말 역시 현실과 동화의 오묘한 결합을 보여주고 있지요. 결국, 너구리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만, 그것은 배드 엔딩이라고 볼 수 많은 없습니다. 너구리들은 인간들로 변신하여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지요. 변신하지 못하는 너구리들은 그들대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쓰레기통을 뒤지고, 인간들에게 음식을 구걸하는 비참한 신세로 변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식의 결말은 낭만주의적인 미야자키의 스타일에 비해서는 굉장히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카하타의 작품은 미야자키의 작품에 비해 더 성숙한 느낌이 묻어나지요. 성숙함은 동심의 결여를 의미하지만, 폼포코에서는 유쾌한 너구리들로 인해 마냥 현실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현실적인 드라마라는 레시피에 판타지라는 소스를 뿌린 맛나는 요리처럼 폼포코는 담백한 현실과 달콤한 판타지가 공존하며 인간(현실)과 자연(판타지)가 상생하기 위한 물음을 던집니다.

ⓒ 畑事務所・TNHG

지브리 작품 최초로 실사장면이 삽입된 컷. 맛있는 튀김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타카하타 감독이 직접 지시를 한 장면으로, 촬영 후 튀김은 모두 스탭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후문이...

ⓒ 畑事務所・TNHG

지브리 작품 최초로 CG를 도입한 도서관 장면. 이 장면은 작품 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짧은 컷이었지만, 이를 위해 CG 경험이 전무한 지브리는 외주로 이 장면을 구현했다고 한다. 지브리에서 CG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작품은 3년후에 제작된 '원령공주(1997)'.
 

소소하고 잔잔한 서민적인 이야기 

포코는 다카하타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재기발랄함과 독특함이 넘쳐나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웃의 야마다 군(1999)'과 같은 작품에서 다카하타 감독은 지브리적 스타일을 버리고 또다른 변신을 시도했지만, 사회성과 오락성을 절묘하게 조합시킨 본 작품의 매력은 역시 다카하타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브리로 옮겨와 연출한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친화도를 갖고 있기도 하구요. 한국의 극장에서 상영된 그의 유일한 작품으로, 반응도 좋았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일본적이면서도 향토적인 느낌을 가져다주는 굉장히 서민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왜색이라는 부정적인 시각과 맞물릴 수도 있지만, 유쾌하고 우화적이면서 소시민적인 취향에 잘맞는 이 작품의 느낌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더 많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작품의 결말은 유쾌하면서도 해피엔딩이 아니며, 실패했음에도 슬픈 엔딩이 아닌 여운이 남는 결말을 보여주었지만, 전형적인 결말이었기에 해학적이면서도 기발했던 시작에 비해서는 김이 빠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이 굉장히 뚜렷한 드라마틱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소소하고 잔잔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도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과 대비되는 타카하타 감독만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는 드라마틱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영화같은 드라마틱함이 아닌 잔잔한 물결과 같은 선택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미야자키 감독보다도 6살 연상인 타카하타 감독의 신작을 이제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일 겁니다. 미야자키의 대를 이을 인재가 없는 것 역시 아쉬운 일이지만, 잔잔하고 서민적인 휴머니스트 거장의 대를 이을 전수자가 없다는 것 역시 지금의 아니메에서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 畑事務所・TNHG

클라이막스의 요괴대작전에는 지브리의 인기 캐릭터들인 토토로와 키키, 붉은 돼지가 특별출연 해주셨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타카하타 감독의 서비스라고나 할까.


<참고 사이트>

[1]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1994) by 엘로스
[2] 비극적인 환경파괴의 연대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by 김봉석, 씨네21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畑事務所・TNHG에게 있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애니메이션 영화 리뷰 모아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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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bariki · TNDG


<목차>



<서문>

타지 아니메 연대기 1부에서는 유럽식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일본 스타일로 변주한 아니메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일본 아니메에서 중세 판타지는 80년대 아니메 전성기 시절에 이르러 다양한 소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제작되기 시작했지만, 전반적으로는 SF 아니메의 위세에 눌려 그다지 큰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게임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RPG가 성장하고, 그로 인한 미디어 믹스가 전개되면서 역으로 이러한 소재들이 아니메 쪽으로 흘러들어 오기 시작하게 되지요.

이후 90년대 들어서는 로도스 섬의 전기를 시작으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베스트 셀러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를 미디어 믹스하는 과정에서 판타지 아니메들이 속속 화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중세 판타지 아니메는 몇몇 히트작을 제외하고는 주로 작품에서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 못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로봇물의 배경으로 사용되면서 퓨전 형태의 판타지로 변형되거나, 코미디 혹은 연애물의 배경으로 사용되어 색다른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지요. 정통 스타일의 판타지 아니메가 그닥 없음은 엘로스의 시각에서는 좀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러한 중세 판타지와는 어떤 면에서 평행선에 위치하는 동양적인 판타지, 즉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리엔탈 판타지로 시작된 상업용 만화영화 시대

시다시피 상업용 일본 만화영화의 시초는 1958년에 도에이에서 제작한 '백사전'이라는 극장용 만화영화였습니다.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 만화영화는 아니메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아니메라는 표현이 고유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74년 발표된 '우주전함 야마토'가 사회적 현상이 되고난 후였지요.) 작품의 시놉시스는 중국의 고전인 전등신화를 바탕으로 수천년동안 도를 닦은 백사(하얀뱀) 백소정과 선비 허 선의 러브스토리인데요, 실로 로맨틱하고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세계사에 최초의 장편 (컬러) 만화영화로 인식되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1937)'가 아름다운 공주와 마법을 사용하는 사악한 여왕, 그리고 정의로운 왕자가 등장하는 지극히 중세유럽의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였던 것에 비해 아시아 권에서 가장 최초의 컬러 장편 만화영화였던 백사전이 중국의 설화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였다는 것은 만화영화와 판타지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사전의 성공에 크게 고무된 도에이는 연이어 극장용 만화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디즈니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에 이어 '신데렐라(195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51)', '피터팬(1953)', '잠자는 숲속의 미녀(1959)'와 같은 서양식 판타지 세계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처럼 도에이 쪽도 판타지적인 성격의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하게 되지요. 일본 만화영화의 초창기의 관람층은 어린이들을 위주로 한 전연령가의 성격이었기에 성인 취향의 판타지라기보다는, 모험적이고 교훈적인 소재를 가진 동화적인 판타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후일 5부에서 이야기하게 될 동화 판타지에 더 부합되는 소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초반부의 애니메이션들은 동화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동양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화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오리엔탈 판타지에 포함된다고 하겠습니다. '소년 사루토비 사스케(1959)', '서유기(1960)', '안쥬와 즈시오마루(1961)', '신밧드의 모험(1962)', '개구리 왕자의 왕뱀퇴치(1963)', '멍멍 충신장(1963)' 등 초창기 일본 극장 만화영화는 모두 동양적 판타지 세계관을 가진 동화적 감성의 만화영화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요. 

ⓒ Toei Animation

초창기 일본 만화영화를 장식한 도에이의 작품들은 상당수가 동양적 배경에 판타지가 가미된 모습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서양적 동화를 다룬 디즈니와 대비되는, 즉 디즈니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차별화 전략인 듯 싶다.

이렇게 초창기 만화영화의 절대적인 소재였던 오리엔탈 판타지는 테즈카 오사무나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같은 일본적인 색체를 가진 스타 만화가들의 등장으로 일대 국면을 맞게 됩니다. 특히, 이들은 동화적이거나 판타지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SF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일본 최초의 TV 시리즈 만화영화이자 현재까지도 일본 만화영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메김한 테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1963)'의 등장, 당대 최고의 만화영화 제작 스튜디오였던 도에이로 하여금 디즈니를 지향하는 풀 애니메이션 기반의 'A형 극장판 만화영화'에서 탈피하여 일본의 오리지널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저예산의 'B형 극장판 만화영화'로 방향을 돌리게 한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의 '사이보그 009(1966)' 등의 등장은 그때까지 이어져오던 오리엔탈 판타지의 기세를 잠재워 버리게 됩니다. 
 
일본적 감성을 지닌 새로운 작품의 등장은 만화영화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전의 A형 극장판의 비중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판타지 장르 역시 축소되었고, 특히 초반 만화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던 오리엔탈 판타지는 그 비중이 크게 줄어들게 되지요. 오리지널 스토리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고전설화나 세계명작 등을 기본으로 한 판타지 장르는 어차피 제한된 소재로 인해 한계가 존재하고 있었는데다가 아톰이나 사이보그 009같은 SF에 기반한 창작 캐릭터의 등장이 퇴장속도를 가속화 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절한 교체 타이밍에 등장한 셈이랄까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의미있는 시도가 있었는데요. 테즈카 오사무가 설립한 무시 프로덕션에서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 만화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제작된 아니메라마 1탄 '천일야화(1969)'의 경우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소재로 몽환적인 영상과 에로틱한 표현을 통해 당대의 만화영화와 그 방향을 달리한 성인취향의 스타일로 큰 호평을 얻기에 이르릅니다. 이 작품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범세계적으로 알려진 오리엔탈 판타지 '아라비안 나이트'를 소재로 삼았는데, 아라비안 나이트는 이 후에도 '알리바바와 40마리의 도적(1971)'이나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진 TV 시리즈 '아라비안 나이트 신밧드의 모험(1975)', '알라딘과 마법램프(1982)'(역시 한국 TV에서 명절특선으로 몇 차례 방영)에서도 쓰이면서 초창기 오리엔탈 판타지의 소재로 크게 각광받게 됩니다. 아니메라마 시리즈는 이후에도 두 작품이 더 발표됩니다만, 이후의 시리즈는 판타지보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로 전환되면서 사실적이고 예술적인 방향의 작품들을 선보이게 되지요. 

ⓒ Tezuka Production (좌측) / ⓒ Toei Animation (중간) / ⓒ Nippon Animation (우측)

아라비안 나이트는 특히 초창기 오리엔탈 판타지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는데,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재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각광을 받은 듯 싶다.


아니메의 본격적인 시작, SF의 성장과 판타지의 쇠퇴

렇게 시작된 70년대 일본 만화영화 시대는 판타지에 있어서는 암흑기와도 같았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일본 만화영화의 아이덴티티가 거의 성립되는 단계로 볼 수 있는데, 로봇물, 히어로물, 마법소녀물이라는 독특한 일본 만화영화 장르가 이 때에 와서 자리를 잡게 되고, 그 외에도 세계 명작동화와 같은 장르 등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판타지가 설 자리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겠습니다. 오리엔탈 판타지이건, 서양 판타지이건 간에 모두 기존의 유명한 전설이나 설화, 동화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작품들인지라 이미 한번씩 사용된 소재이다보니 신작을 만들기에도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구요.

그러나, 78년 마침내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의 한 획을 그을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니 그것이 바로 故 테즈카 오사무 필생의 역작 불새 시리즈의 첫 작품인 '불새 - 여명편'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체적인 시리즈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오리엔탈 판타지로 규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시공의 이야기는 어느 때는 판타지였다가 어느 때는 SF적인 세계관으로 바뀌기도 하지요. 게다가 이 여명편의 경우에는 만화영화라고 보기보다는 당시 특수효과 기술로는 재현이 불가능했던 불새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 합성한 실사영화의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불새 시리즈는 풀 애니메이션 SF 판타지 성격을 지닌 테즈카 오사무 본인의 연출작 '불새 2772 - 사랑의 코스모스존(1980)'을 거쳐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 린 타로 감독의 '불새 - 봉황편(1986)'에 이르러 진정한 오리엔탈 판타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87년도에는 OVA '불새 - 야마토 편'이 출시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70년대부터 이어져온 오리엔탈 판타지의 약세는 80년대에 들어와서도 그 사정이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중세 판타지가 로봇물과 결합되거나 RPG의 공식을 따르면서 변형된 형식으로 계속 이어져나간 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일본적인 색체를 지닌 시대물과 겹쳐지면서 동일한 색체로 인해 그 독특함을 잃어버렸고, 판타지의 또 하나의 소재라 할 수 있는 무협 요소 역시 사무라이물이나 '북두의 권'과 같은 근미래적 세계관의 액션무협 작품들과 중첩되면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지요. SF/로봇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 틈새를 공략하는 다양한 장르들에게마저 밀려버린 오리엔탈 판타지는, 같은 색체를 지닌 시대물이나 사무라이 물에게까지 자리를 내주면서 불새 이외에는 뚜렷할만한 작품을 보여주지 못하고 시들해져 버리게 됩니다.

ⓒ Tezuka Production

시공을 넘나들며, SF와 판타지를 오가는 대작 '불새'는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들인 린 타로, 히라타 토시오, 카와지리 요시아키, 다카하시 료스케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소재의 고갈, 판타지를 부활시키다

80년대 후반부에 시작된 아니메의 침체기는 90년도에 이르러서도 좀체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메를 이끌고 있던 거대한 축이었던 SF/로봇 장르가 몰락하면서 다음 아니메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한 아니메는 복고주의 작품들과 리메이크들이 양산되면서 그럭저럭 명맥을 이어가게 되는데요. 이 시기에 중세 판타지가 판타지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게 제작되었던 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오히려 이시기에 이르러 변형된 모습과 색다른 시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타장르와의 퓨전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죠.

89년도에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 제작된 '천공전기 슈라토'는 이런 면에서 오리엔탈 판타지의 컨셉을 가미한 독특한 히어로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소재 또한 익숙한 일본이나 중국의 판타지가 아닌, 인도의 힌두교 신화나 불교적인 소재를 모티브로 삼는 파격을 보여주었지요. 이 독특한 소재는 슈라토에만 그치지 않고,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체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CLAMP의 '성전(RG Veda)'에도 사용되는데요. 성전 역시 아수라나 야차와 같은 불교적 소재가 가미된 오리엔탈 판타지 스타일의 작품이지만, CLAMP 특유의 순정만화적인 스타일과 이국적인 캐릭터 디자인으로 오리엔탈 판타지의 느낌이 그닥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원작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낮은 완성도의 아니메 퀄리티도 크게 한몫을 했지요.

ⓒ Sotsu · Tatsunoko Pro (좌측) / ⓒ Clamp · Shinshokan


힌두교/불교적인 소재는 극동 아시아나 중동의 소재에 비해서는 신선하지만, 이를 모티브로 한 위의 두 작품은 타장르와의 퓨전이 이루어지면서 변형된 일본적 색체가 가미되어 원래의 느낌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무국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작 자체도 소재에 대해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기보다는 모티브만을 가져와 자신만의 색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구요.

이와는 별개로, 다카다 유조의 히트 코믹스로 원작으로 한 OVA '3X3 아이즈(1991)'는 티벳 밀교라는 독특한 소재 바탕으로 요괴와의 하드코어한 액션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다카다 유조의 데생 스타일은 앞선 두 작품에 비해서 보다 더 오리엔탈 판타지의 느낌에 가까운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요사스러운 디자인과 잔인한 묘사 등은 오리엔탈 판타지인 동시에 호러 액션물에 가까운 모양새를 보여줍니다. 역시 오리엔탈 판타지를 바탕으로 일본식 변형이 가해진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호러 액션과 오리엔탈 판타지의 결합은 3X3 Eyes 외에도 오기노 마코토의 빅히트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OVA '공작왕 시리즈(1988~1994)'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오리엔탈 판타지의 변신은 이렇게 히어로물부터 호러액션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타장르와의 혼합을 시도하게 됩니다. 95년부터 방영되며 큰 인기를 얻었으며 투니버스를 통해 방영되어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후시기 유우기(국내 방영제목 환상게임)'에 이르르면, 순정멜로물과 오리엔탈 판타지를 혼합한 또다른 형태의 모습으로도 거듭나게 되지요. 이러한 현상은 소재 고갈에 허덕이던 아니메가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지 않았던 오리엔탈 판타지의 도움을 받은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물이나 순정멜로와 같은 아니메 특유의 장르에 이러한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를 가미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려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혼합 장르들은 인기의 흐름을 이어갔다기 보다는 소재의 다양화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측면에서 단발성에 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중세 판타지 스타일의 '로도스 섬의 전(1990)'나 '슬레이어즈 시리즈' 등이 어느 정도 인기몰이를 했던 것에 비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체 어느 덧 시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 Takada Yujo · Kodansha (좌측) / ⓒ Ogino Makoto · Shueisha (우측)

이 시기의 오리엔탈 판타지는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힌두교나 밀교, 퇴마술과 같은 독특한 소재가 사용되었지만, 정통적인 스타일에 멀어지며 다른 장르와 혼합을 시도하게 된다.


동양적 소재,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 

반게리온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아니메는 다시 새로운 추진력을 얻고 도약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는 한동안 부진했던 해외 시장의 공략 역시 공격적으로 이뤄지게 되는데요. 바로 이 시기에 마스터피스라고 불릴 수 있는 세 작품이 일본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커다란 호평을 얻게 됩니다. 먼저, 아니메의 철학자이자 사실주의자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사이버펑크 걸작 '공각기동대 극장판(1995)'가 일본 내에서의 참패와는 정반대로 세계시장에서 극찬을 얻게 되구요. '아키라(1988)'로 과거 세계시장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던 오토모 가츠히로 또한 옴니버스 극장판 '메모리즈(1995)'로 역시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바로 이 때, 한 편의 오리엔탈 판타지 걸작이 이 두 작품과 함께 아니메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작품을 통해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동안의 무국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일본의 설화를 바탕으로 연출한 판타지 모험극 '원령공주(1997)'는, '아니메의 세계화'라는 추세에 발맞추어 자국인 일본의 색체를 물씬 풍기는 설정과 일본의 고유 민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스러운 모험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원령공주는 한동안 아니메에서는 그 자취를 볼 수 없었던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의 모습이었으며, 그 완성도 또한 명불허전의 것이었죠. 디즈니의 배급망을 통해 개봉된 원령공주는 미국시장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었고, 4년 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통해서 일본 내의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울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한동안 별주목을 얻지 못했던 오리엔탈 판타지는 세계화에 추세와 함께 거장의 힘을 빌려 일본 아니메 史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 역대 영화 흥행수입 1위 센과 치히로 행방불명, 3위는 원령공주)

ⓒ Nibariki · TNDG (좌측) / ⓒ Nibariki · TGNDDTM (우측)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와 동화적인 오리엔탈 판타지가 일본영화 역대 흥행순위 1,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미야자키+판타지의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과시했다. 게다가 흥행순위 2위는 서양식 판타지와 멜로물을 결합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극장가에서 큰 성공을 거둔 오리엔탈 판타지의 위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시리즈에서는 지지부진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미소녀와 개그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혼합된 학원로맨스물과, 하렘물들이 큰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하는데, 중세 판타지의 경우에는 몇몇 작품이 이 흐름에 편승하여 그 소재로써 사용되지만, 오리엔탈 판타지의 경우는 좀처럼 그렇지 못했지요. 하지만, 2002년 실로 오랜만에 오리엔탈 판타지가 TV 시리즈로 등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후유미 오노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 대하서사극 '십이국기(2002)'인 것입니다.

공포소설로 일가견이 있는 후유미 오노가 치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 소설은, 여성 작가로서는 드물게 거대한 스케일이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장기인 호러틱한 분위기와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 인기는 시리어스하고 지루한 대하 서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십이국기를 장편 TV 아니메로 제작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는데요. 실제로 이 작품은 그 전개가 장중하고 서사적인지라 오락적인 측면에서는 매력이 없는 작품입니다만, 원작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며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의 참맛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유럽식 판타지가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톨킨의 세계관에 기반한 이야기와, 동화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로 나뉘어 지는 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각 국의 설화와 전설에 기반한 동화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십이국기와 같이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의 등장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라고 하겠지요.

이후 오리엔탈 판타지는 보다 더 시리어스한 내용을 가진 작품들로 성인층을 공략하게 됩니다. 특히 이 작품들 중에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며 오리엔탈 판타지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우루시바라 유키의 동명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독특한 판타지 미스테리 '충사(2005)'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자연현상을 벌레라는 단어로 칭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기현상을 해결하며 떠도는 충사 깅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오리엔탈 판타지인데요. 현대적인 복장을 한 깅코와 근대화 이전의 일본의 시골을 연상시키는 배경이 혼합되어 시간 배경마저 모호하며, 거기에 이상한 자연현상이 겹치면서 실로 동양적인 판타지의 신비로움이 잘 살아난 걸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완성도 면에서도 부족한 퀄리티로 아쉬움을 남겼던 십이국기에 비해 애니메이션 자체의 완성도 역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두루 갖추어 실사영화로도까지 제작되기도 했으니, 21세기 들어 오리엔탈 판타지의 의미있는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 Huyumi Ono·Kodansha (좌측) / ⓒ Urushibara Yuki/ Kodansha·Mushishi Partnership (우측)

개인적으로 몹시 좋아하는 두 작품으로 십이국기는 중국을, 충사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용면에서는 전자는 대하 서사시를, 후자는 미스테리 드라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흡입력있는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충사 뿐만 아니라 뛰어난 완성도의 오리엔탈 판타지들이 계속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선라이즈에서 분사한 제작사 BONES는 '천보이문 아야카시 아야시(2006)'을 통해 일본적 색체가 강한 판타지 작품을 선보입니다. 시대물스러운 배경 위에 퇴마라는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를 접목시켜 본즈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어 냈지요. BONES에 버금가는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프로덕션 I.G는 우에하시 나오코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정령의 수호자(2007)'로 역시 정통 판타지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작품들은 뛰어난 완성도와 안정적인 스토리텔링에 비해서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데는 실패하게 됩니다. 이후 오리엔탈 판타지는 두각을 나타낼만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체 다시금 정체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아니메의 세계화 추세를 맞이하여 옛 일본 시대를 컨셉으로 한 시대물과 판타지물의 등장은 어찌보면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한 듯도 싶습니다. 안정적인 스토리텔링과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끌기에는 역부족인 셈이죠.

이제는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가 일본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더 다채로워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비록 잠깐에 그쳤지만, 인도나 티벳 등의 소재를 사용하려 한 시도는 참신한 것이었죠. 가까운 한국의 소재에도 눈을 돌렸으면 싶지만 아직 여러모로 여의치는 않는 듯 싶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스스로도 세계에 내세울만한 전설이나 설화의 발굴에 부족했다는 생각인데요. 삼국지나 서유기, 수호지와 같이 중국에는 세계에 내세울만한 고전문학이 존재하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측면에서는 여러 좋은 컨텐츠를 제대로 세계에 소개하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 會川昇·BONES/MBS·ANX·Dentsu(좌측) / ⓒ 上橋菜穂子·偕成社·精靈の守り人 製作委員会 (우측)

성인취향의 시리어스한 작품을 주로 제작하는 본즈와 프로덕션 I.G의 오리엔탈 판타지는 월등한 완성도와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끄는 것에 실패한 비운의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꼭 한국인만이 한국의 설화와 전설을 소재로 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구미호와 같은 소재는 만화영화나 영화로서도 꽤 매력적인 소재라고 보이는데, 이런 컨텐츠들을 선진국들이 가져다 쓸 수 있는 길이 더 열렸으면 싶구요. 실례로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한국의 설화를 소재로 '레이디 인 더 워터'를 연출하기도 했지요. (완성도는 안습이었습니다만.) 그외에도 한미 합작 애니메이션 '아앙의 전설(역시 샤말란 감독이 실사화 하면서 안습의 완성도로 탄생)'은 오리엔탈 판타지의 성격을 띈 보기드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적인 컨텐츠가 세계시장에서 각광을 받는다면,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없을지 몰라도 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으며, 여러 관광 컨텐츠나 캐릭터 사업을 열 수 있는 간접적인 경제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메에서도 이처럼 한국적인 소재가 쓰인 오리엔탈 판타지가 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2부 끝. 3부에서 계속)

덧붙임) 아, 그러고보니 95년도에 한일합작으로 홍길동을 소재로 한 '돌아온 홍길동'이라는 작품이 제작된 적이 있긴 했습니다. 신동헌 감독의 고전 홍길동을 다시 이어보자는 기획의도였지만, 전형적인 일본식 히어로물로 변질되어버린 데다가 완성도까지 안습이었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만...


<참고 사이트>

[1] 백사전(白蛇傳) 1958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2] 불새-여명편(火の鳥 · 黎明編) 1978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불새-봉황편(火の鳥 · 鳳凰編)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火の鳥 (漫画), Wikipedia Japan
[5] 3×3 EYES, Wikipedia Japan
[6] もののけ姫,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프레스블로그 MP(Monthly Posting)2010년 10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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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었던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1): 일본식 중세 판타지'를 기본으로 하여 새로이 내용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 Group SNE/KADOKAWA/MARUBENI/TOKYO Broadcasting (Illustrated by Yuki Nobuteru)


<목차>



<서문>

타지라는 장르는 굉장히 포괄적인 장르입니다. 마법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이야기의 소재나 배경으로 사용되는 장르를 판타지라고 쉽게 정의할 수도 있지만, 성격에 따라서는 동화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조금은 무섭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마법이 등장한다면 얼핏 고대나 중세유럽이 시대 배경이 되어야할 것 같지만 현재에 벌어지는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요. 흔히들 말하는 톨킨의 세계관이나 RPG(Role Playing Game)의 토대가 되는 포가튼 렐름(Forgotten Realm)과 같은 서양 문명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동양의 신화나 전설, 그리고 무협소설의 이야기도 훌륭한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라는 별에 한정될 수도 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지구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구요.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될 수 있는 판타지는 그 성격상 만화영화와 상당히 궁합이 잘맞는 소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생활하는 만화영화의 표현 자체가 판타지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과거 디즈니의 수많은 명작 만화영화들의 소재는 대부분 세계명작 동화를 토대로 한 것이었으며, 동화는 당연하게도 판타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타지에서 선보이는 여러 초자연적인 현상의 표현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실사영상으로 재현하기 위한 기술적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만화영화와 더 밀접한 관련을 맺기도 했지요.

이 글은 바로 이렇게 판타지와 좋은 궁합을 선보이는 만화영화 중 일본 만화영화, 즉 아니메에 한정하여 판타지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이들 판타지 아니메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이야기 해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사실, 이 글은 이미 2년 전에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포스팅된 바가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작품의 소개에 너무 치중하여 전체적인 흐름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번 포스트를 통해 새롭게 리뉴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당시 글을 다시 보니 여러 오류들이 있어서 정정차원의 글이기도 합니다)

글은 총 5부작으로 구성됩니다. 판타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 톨킨 교수가 창조해냈던 중간계의 세계관이나, 아더왕의 전설, 북유럽의 신화, 그리스 신화 등을 기본으로 한 서양 판타지 중에서 특히, 일본식 재해석이 주로 이루어졌던 중세 판타지를 다룬 아니메를 시작으로, 동양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오리엔탈 판타지, SF와 같은 타장르와의 혼합이 인상적인 퓨전 판타지, 호러틱한 소재와 표현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호러 판타지, 마지막으로 동화적인 세계관과 이야기를 선보인 동화 판타지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법소녀물도 판타지물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일단 마법소녀물을 제외시켰습니다.)

본 글에서 정의한 판타지 아니메의 다섯가지 분류는 오로지 글쓴 이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결과로, 공식적인 명칭과는 무관한 것이오니 읽으시면서 착오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어디가서 판타지 만화영화가 제가 말한 것처럼 다섯 종류로 나뉜다고 말씀하시다가 망신 당하시는 일이 없으시길 빌면서...


중세 판타지, 아니메의 외면을 받다(?)

세 판타지 세계관(본 글에서는 표기상의 편의를 위해 톨킨의 중간계 세계관, 북유럽 신화, 그리스 신화, 포가틀 렐름의 세계관과 같은 서양식 판타지 세계관을 통틀어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라고 명명하도록 하겠습니다.)이 아니메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58년 '백사전'으로 상업 만화영화의 시대를 연 일본 만화영화사에서도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명작동화 스타일을 추구하던 당시의 아니메가 자국의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아니메들의 공세에 밀리게 되는, 즉 '세계적인 것의 추구'에서 '일본적인 것의 추구'로 전체적인 아니메의 방향이 선회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후 슈퍼로봇, 마법소녀, 전대물/히어로물, 레이지버스, 리얼로봇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은 중세 판타지라는 서양식 소재가 아니메에 끼어들 틈을 거의 주지 않았다고 봐야 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트렌드가 막 틀을 잡아가던 70년대 후반 경에 중세 판타지를 소재로 한 아니메가 하나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아더왕의 전설을 소재로 한 '원탁의 기사 이야기, 불타올라라 아서(한국방영제목 '원탁의 기사'. 이하 원탁의 기사)'가 그것입니다.

'원탁의 기사 불타올라라 아서'의 주인공 아서왕.

어찌보면 이 원탁의 기사는 중세 판타지를 아니메의 소재로 쓰고자 했던 의도라기보다는 제작사인 도에이 동화가 이전에 선보였던 세계 명작동화 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이 방영을 시작한 79년도는 슈퍼로봇의 전성기가 정점을 거쳐 서서히 내리막을 걷던 시기이며, 기동전사 건담이 방영을 시작하며 리얼로봇 신화의 태동을 알리던 시점이기도 했는데요.

이것은 그동안 로봇 아니메를 이끌어 오던 도에이 동화가 선라이즈에게 그 바톤을 거의 넘겨줘 버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도에이 동화가 자신의 옛 레퍼토리인 세계명작동화들을 다시 끄집어 내는 과정에서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아더왕의 전설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원탁의 기사는 1기와 2기(2기 제목은 원탁의 기사가 아닌, 백마의 왕자로 바뀝니다.)로 나뉘어 방영됩니다. 1기가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던 탓에 작품의 진행노선에 변화를 주기 위해 불가피하게 1기와 2기로 구분되었다 보여지는데요. 전통적인 아서왕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지 못하자 도에이 동화측에서 히어로물의 컨셉을 이 원탁의 기사에 적용하게 되었고, 바로 이 2기의 변화는 앞으로 이야기할 일본식 중세 판타지 아니메의 방향성에 대해 모종의 단서를 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국을 떠나 잠행을 시작한 아서왕이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자 갑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엑스칼리버와 빛의 방패(?)를 들고 나타나는 모습은 영락없는 일본식 히어로의 모습 그것입니다. 갑옷의 모습 또한 중세의 무거운 풀 플레이트(Full Plate) 갑옷이 아닌 가벼운 전투복 같아서 마치 전년도에 방영했던 'SF 서유기 스타징가(1978)'에 등장하는 손오공들의 코스튬 디자인을 연상시켰구요. 게다가 종반부에는 하늘을 나르는 배까지 등장하는 등([1] 참조), 거의 완벽하게 아서왕의 전설을 재구성하여 일본산 히어로물로 탈바꿈시키게 됩니다.

비록, 원탁의 기사는 일본 내에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만, 이 아서왕 이야기의 파격적인 원작 파괴는 앞으로 중세 판타지 소재의 아니메가 가야할 어떤 방향을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극장판과 OVA로 방향선회, 그리고 RPG의 시동

79년 원탁의 기사를 끝으로 한동안 일본 아니메는 로봇 아니메, 특히 건담으로 대표되는 리얼로봇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렸고, 그와 함께 판타지라는 소재는 아니메에서 한동안 눈에 띄지 못하게 됩니다. 리얼로봇으로 인해 사실주의가 아니메의 대세가 되면서 SF 아니메가 다른 아니메들의 영향력을 앞질러 버리는 전개가 계속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SF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판타지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여집니다. (판타지의 약세는 리얼로봇으로 SF의 붐을 몰고 온 장본인 토미노 감독이 83년도에 판타지와 로봇이라는 요소를 결합시킨 독특한 작품 '성전사 단바인'을 제작하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합니다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3부에서 다루도록 하구요.)

TV 아니메가 SF와 리얼로봇의 흐름에 휩쓸리고 있을 무렵, 극장용 아니메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경제의 전성기가 계속되면서 극장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카토카와 서점의 극장시장 가세로 대작 극장판 영화와 아니메가 속속 만들어지던 무렵, 카토카와 서점의 견제를 위해 미야자키 하야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로 성공을 거둔 도쿠마 서점이 미야자키 하야오에 이은 제2의 거장을 극장 아니메 시장에 진출시키려한 것이죠. 그 제2의 거장이란 다름 아닌 바로 야스히코 요시카즈였습니다.

선라이즈의 캐릭터 디자이너 겸 작화감독으로,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로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고 있던 그는, 토미노 요시유키의 그늘을 벗어나 크리에이터로서 일보 진화하려 하던 참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만화잡지 '류'에 '아리온'이라는 판타지 배경의 코믹스를 연재중이었고([2] 참조), 업계와 야스히코 본인의 의지가 맞물려 이 아리온이 마침내 극장 아니메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야스히코 요시카즈라는 네임 밸류와, 도쿠마 서점의 공격적인 제작의지가 맞물려 아리온은 대작 아니메로서의 위용을 어김없이 보여주게 됩니다. 특히, 그리스 신화라는 중세 판타지 소재의 단골 메뉴가 이 작품의 배경이 됨으로써 중세 판타지의 소재가 다시금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는 OVA 베스트셀러인 유야마 쿠니히코(요술공주 밍키 감독)와 초미형 캐릭터 디자이너 이노마타 무츠미의 '환몽전기 레다(1985)'나, 역시 이 두 콤비의 극장판 아니메인  '윈다리아(1986)', 그리고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환상적인 캐릭터를 톱 클래스의 작화가 아라키 신고/히메노 미치 부부가 멋지게 해석해낸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의 '아몬 사가(1986)'와 같은 걸출한 작품들이 등장하며 판타지의 흐름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레다나 윈다리아 등의 작품들은 모두 정통 판타지의 형식 위에 여러가지 독자적인 설정이 가미된 변형된 판타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아리온 이하 이 작품들이 아니메에서 판타지의 흐름을 주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동전사 Z 건담(1985)'을 정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리얼로봇 아니메는 87년도의 '기갑전기 드라고나'를 끝으로 사실상의 여정을 마치고 있던 참이었으며, 그러한 공백기를 틈타서 중세 판타지는 아니메가 아닌 컴퓨터 게임시장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스퀘어社의 RPG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 에닉스社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후일, 스퀘어는 에닉스에 합병되어 스퀘어 에닉스로 사명 변경)는 일본 게임시장에 RPG라는 장르의 성공적인 안착을 가져온 타이틀로서, 그 영향력은 게임 시장을 막 넘어설 기세였습니다. 미디어 믹스의 소재로서도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던 이 시리즈들은 코믹스를 거쳐 마침내 아니메 시장에 입성하게 되었고, 이들 중 가장 먼저 아니메化 된 것이 바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였던 것입니다.

'드래곤 볼'이라는 희대의 히트작을 만들어낸 토리야마 아키라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그는 드래곤 퀘스트 게임에서 이미 캐릭터 디자인을 맡고 있었는데) '드래곤 퀘스트 - 아벨탐험대(1989~1990)'는 본방의 시청률 면에서는 그닥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했으나, RPG의 공식을 코믹스를 거쳐 아니메로 옮겨놓았다는 점에 있어서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아벨 탐험대 이후에도 코믹스로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던 '드래곤 퀘스트 - 다이의 대모험(1991~1992)'을 연이어 선보이게 되지요. (세번째 시리즈인 '로토의 문장'은 TV 시리즈가 아닌 극장판으로 제작됩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의의는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 아니메에 사용되었다는 것 외에도, 중세 판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게임을 통해 완벽하게 일본식 스타일로 재구성된 중세 판타지가 아니메의 소재로 쓰였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중세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실제 그 모습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철저히 바뀌어진 설정이었던 것입니다. 게임에서 사용되었던 각종 마법과 공격기술, 파티 캐릭터들의 구성 등은 중세 판타지를 토대로 RPG를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설정이었으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더 강력한 보스와 만나게 되는 설정 역시 RPG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RPG의 모습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로봇물과 판타지를 결합한 퓨전 스타일의 '마신영웅전 와타루(1988)' 등과 함께, 아니메에서의 중세 판타지를 출신불명의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자리매김 시키게 됩니다.

파이널 판타지와 함께 일본 RPG의 양대산맥을 구축한 드래곤 퀘스트. 코믹스와 아니메로 미디어믹스되며 저력을 과시한다.



전통과 변칙의 조화, 소설을 원동력으로 삼다

서 언급했듯이 RPG 게임에서 비롯된 중세 판타지의 세계관은 아니메에서도 게임 스타일에 더 정형화된 모습으로 주로 등장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들은 주 시청타깃층이 어린이들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통 판타지를 지향하기보다는 그들의 취향에 맞는 변형된 일본식 중세 판타지로의 접근이 더 맞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일본 내 대중성을 고려하면서 판타지는 완벽히 일본식 입맛으로 길들여집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판타지 아니메는 몇몇 기본 뼈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변형된 일본식 스타일을 따르게 되지요.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 흐름은 한방향으로만 고정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작가의 판타지 소설로 인해 판타지 아니메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여 날개를 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미즈노 료 원작의 판타지 대하소설 '로도스 섬의 전기'인 것입니다.

이 소설은 이제까지의 판타지 아니메들이 그러했듯이 아동층을 타깃으로 하여 PRG의 공식을 대입한 변형된 일본식 판타지가 아닌 판타지의 전통적 아이템인 TRPG(Table Talk RPG)를 바탕으로, 중세 판타지 세계관에 충실한 설정과 매력적인 세계관, 살아 움직이는 신화속 캐릭터들로 인해 일본에서도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소설 뿐만 아니라 PC 게임, 카드 게임을 거쳐 TV 아니메이션과 OVA 등 수많은 형태의 미디어 믹스가 전개된 가히 일본 중세 판타지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겠죠. 

특히, OVA로 제작된 13화 완결의 아니메 '로도스 섬의 전기(1990)'는 90년대 들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작화감독 유키 노부테루의 미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캐릭터로 인해 아니메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정통 판타지의 의미있는 일격을 날리게 됩니다. 이전까지의 판타지 아니메가 거의 대부분 정통 스타일을 버리고 일본식 변주를 보여주었던 것에 비하여 이 작품은 원작에 충실한 구성과 시리어스한 내용 전개로 인하여 판타지의 붐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도스 전기를 시작으로 '은하영웅전설'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다나카 요시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아슬란 전기(1991)'와, 타게가와 세이의 라이트 노벨을 극장판 아니메화하고 세기의 미형 캐릭터 디자이너 이노마타 무츠미와 유키 노부테루가 동시에 참여한 '바람의 대륙(1992)' 등이 로도스 섬의 전기가 다시 불러 일으킨 정통 판타지의 바람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정통 판타지의 공식을 따르거나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화된 작품들이었다. 80년대 중반의 판타지 아니메 스타일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높은 완성도나 걸출한 작화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이 정통 판타지 스타일의 아니메들은 그 인기의 흐름을 이끌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뒤의 두 작품들은 모두 카도카와 서점의 작품들이었는데, 당시 카도카와 서점이 기업경영을 둘러싸고 벌어진 내흥으로 인해 그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군요. 이후에 등장한 판타지 소설들은 정통 판타지의 공식을 바탕으로 일본식 스타일에 맞춰진 새로운 흐름으로 전개되기 시작했고, 특히 젊은 작가층이 많이 포진된 판타지 소설의 속성 상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라이트노벨 계열에서 주 소재로 쓰여지기 시작하면서 좀 더 아니메로의 전환이 용이한 코믹적인 요소나 만화적인 설정이 적극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RPG에 길들여진 신세대적 감각과 라이트노벨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의 결합으로 인해 추후의 판타지 아니메의 노선은 보다 더 가벼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판타지 장르의 기념비적인 빅히트작이 마침내 아니메로 등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칸자카 하지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코믹 판타지 아니메 '슬레이어즈(1995~2009)'였던 것입니다.

슬레이어즈 시리즈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은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나 '
기동전함 나데시코(1996)'과 같은 메가톤급 히트작이 줄을 이으면서 아니메의 새로운 시동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는데요. 이 시기에 이들 레전드급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 슬레이어즈의 등장은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일본식 판타지 아니메의 밝은 앞날을 말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슬레이어즈 시리는 2009년까지 총 5기의 TV 시리즈와 5편의 극장판, 2편의 OVA 뿐만 아니라 각종 게임 타이틀과 코믹스 등의 성공적인 미디어 믹스로 판타지 아니메의 레전더리로 남게 되며, 슬레이어즈의 성공은 이후 정통 스타일의 판타지보다는 코믹과 개그가 가미된 보다 더 라이트한 형태의 판타지 아니메들이 생산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슬레이어즈 이후 판타지는 다시 시리어스에서 코믹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다만, 이번에는 성적인 코드가 삽입된 작품이 왕왕 눈에 띄었다.



퓨전의 홍수 속에 정통 판타지를 그리워하다

타지 아니메는 로봇 장르나 마법소녀물과 같이 아니메에 있어서 하나의 장르로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시대를 거쳐오면서 몇몇 걸출한 작품들이 아니메의 일부 흐름을 판타지 아니메 쪽으로 잠시 돌린 적은 있지만, 대게는 그 생명력이 얼마 가지 못했지요. 특히 아니메에서 배경과 소재로 숱하게 사용되었으면서도 정통 스타일보다는 수많은 변주와 변화가 가해진 장르가 바로 중세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자기식으로의 개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스타일 덕분인지 일본 아니메에서 정통 판타지를 만나기란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세 판타지나 혹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코믹 장르이건 시리어스한 드라마이건, 모에물이건 간에 상관없이 자주 등장하는 편입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열풍 이후로 잠시동안 판타지 장르가 전세계(정확히 말하면 헐리우드)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던 당시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싶기도 하구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장르의 아니메들이 선보이면서 판타지 역시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보이는 듯 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모에나 개그와 같은 가벼운 성격을 가진 작품들의 영향 탓인지 큰 스케일의 작품이 나타나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곤조의 2007년 극장 아니메 '브레이브 스토리'나 지브리의 차세대 기대주(?) 미야자키 고로의 '게드전기(2007)'는 모두 흥행에 있어서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만, 획을 긋기에는 역부족이었지요. 게드전기의 경우에는 흥행에 비해 평단과 관객의 평가는 비참할 정도이기까지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판타지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요. 작품의 메인 소재라기보다는 극의 설정과 같이 서브 테마로 자주 사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로봇 아니메 또는 SF 아니메와의 결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3부인 퓨전 판타지 파트에서 좀 더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에물과 같이 최근 제작편수가 눈에 띄게 많은 장르에서도 단순 배경으로 자주 사용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퀸즈 블레이드'와 같은 노골적인 아니메에도 중세 판타지는 변형된 소재로서 등장하지요.)

하지만, 정통 판타지에 대한 흐름이 끊긴 부분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퓨전 요리와 신개념의 레시피가 많을수록 원래의 맛, 정통 맛에 대한 그리움 역시 커지는 법이 아닐까요. 일본식으로 변주된 작품들 뿐만 아니라 좀 더 정통적인 스타일에 기반한 드라마틱하고 큰 스케일의 작품도 가끔은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1부 끝. 2부에서 계속)


<참고 사이트>

[1] <원탁의 기사>(円卓の騎士物語)(1979): 불타올라라 아서(燃えろアーサー), by Kewell, Kewell's Factory about
 Something 
[2] 아리온(アリオン)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ロードス島戦記, Wikipedia Japan
[4] スレイヤーズ, Wikipedia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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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FOCUS Films LLC.


<스탭>

◈ 감독: 쉐인 에이커
◈ 원작: 쉐인 에이커
◈ 제작: 포커스 필름


<시놉시스> 

기계문명이 극한으로 치달은 인간세상은, 자아를 갖고 폭주한 기계에 의해 전화의 불길에 휩싸인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모두 몰살당하고, 인간들이 사라진 세상은 음산하고 황량한 폐허로 변하고... 전화의 불길이 극한에 다다를 무렵, 한 과학자가 손수 만든 헝겊인형에 자신의 영혼을 나누기 시작한다. 과학자의 영혼을 나누어 받은 헝겊인형들은 생명을 부여 받고 각자의 개성을 지닌 개체로 다시 태어난다. 마지막 헝겊인형에 혼을 불어넣고 마침내 숨을 거두는 과학자. 깨어난 인형은 처음 보는 세상에 당황하게 된다. 과연 무엇을 위해 이들은 태어난 것인가. 마지막 헝겊 인형의 등에는 나인(9)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재능있는 젊은 감독의 경이롭고 창의적인 비주얼

독 쉐인 에이커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장편화한 '나인(9)'은, 2005년도 오스카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작품을 독특한 감성의 소유자 팀 버튼 감독과, '원티드'를 통해 홍콩 느와르 이상의 화려한 액션연출을 선보인 티무르 베르맘베토프가 제작을 지원하여 장편애니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난 작품입니다. 이 라인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젊은 신예감독의 독창적인 비주얼과, 괴기스럽고 동화적인 팀 버튼의 감성, 그리고 티무르 베르맘베토프의 스타일리쉬함이 가미된 멋진 작품이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실제로 트레일러로 보았던 나인(9)은 단편영화의 괴이하고 독특한 비주얼에 더하여 스케일과 다이나믹함, 그리고 디스토피아스러운 배경을 잘 살린 멋진 미술로 전세계 영화팬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지요. 

특히, 나인(9)의 세계는 그 독특함이나 기묘함에 있어서 제작자로 나선 팀 버튼의 컬러와 상당히 궁합이 잘맞는 느낌입니다. 괴기스러우면서도 동화적인 느낌을 즐겨 보여주는 독특한 감성의 소유자 팀 버튼은 자신만의 컬러가 너무나 확고하기에 타인의 작품과 어울리기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나인(9)에서 둘의 궁합만큼은 정말 훌륭하지 않나 싶군요. 실제로 팀 버튼은 쉐인 에이커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정말 그의 취향에 딱 맞는 스타일인 것 같긴 합니다.

거친 헝겊조각을 꿰메고 엮어서 만든 나인(9)의 인형들은 괴기스럽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인형과는 다른 투박하고 요상한 외모로 인해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주기도 합니다. 특히, CG의 세밀하고 차가운 질감으로 인해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데요. 이 작품은 이런 괴상한 비주얼로 인해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연령가(G)가 아닌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PG) 등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황량하게 변해버린 세상과 폐허가 된 도시, 헝겊인형들을 습격하는 각종 기계 등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갖추었을 뿐 그 외형은 성인영화에 가까운 비주얼과 형식을 취하고 있죠.

티무르 베르맘베토프가 자칫 지루하고 거북할 수 있는 이 괴상한 동화이야기에 스타일을 부여해준 것도 큰 힘이 아니었나 합니다. 특히 뮤직비디오의 화려함을 연상시키는 영상미학이 이 독특한 작품에 가미되면서 이야기는 활극 형태의 모양새를 갖춰갑니다. 원티드에서도 이미 보여주었던 긴박한 액션 시퀀스 사이 사이에 펼쳐지는 슬로비디오 모션이 이번 나인(9)에서도 등장해주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역시 티무르 감독이 조언을 해주었으리라 짐작이 되는 대목이지요. 덕분에 일부 액션 시퀀스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박진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 손만한 크기의 인형들과 기계들의 전투가 이토록 큰 스케일일지는 미쳐 몰랐다고나 할까요.

ⓒ 2009 FOCUS Films LLC.



인류멸망의 근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9개의 작은 인형들

야기는 모든 인류가 멸망한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지막 생존자인 과학자가 자신의 영혼을 헝겊인형에 나누어주고는 숨이 끊어지는 에필로그를 지나 마침내 9번째 헝겊인형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나인(9)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지요. 나인(9)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낯선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자신에게 무슨 사명이 있는지, 무슨 일이 앞으로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말이죠. 유약하지만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나인(9)의 목소리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 역할을 맡았던 일라이저 우드가 맡았습니다. 프로도 역시 평범한 호빗으로 거대한 난관을 뚫고 중간계를 세상에서 구해내게 되는데, 이런 전작의 캐릭터는 이 나인(9)과도 잘 맞는 느낌입니다. 단, 나인(9)의 경우에는 짧은 러닝타임 내에 유약한 모습을 벗어나 인류를 멸망시킨 기계와 대적해야한다는 시간 상의 제약이 따르는데요. 결국 이 러닝타임의 차이로 인해 주인공의 심경변화나 영웅적인 모습이 작품에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되고 맙니다.

이 작품은 나인(9)외에도 1번부터 8번까지의 8개의 헝겊인형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두 각자의 특색과 성격을 지닌 인형들이죠. 고지식한 리더 원(1), 진실을 따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혁신적인 2인자 투(2), 쌍동이 학자들로 귀여운 아이들을 연상시키는 쓰리(3)와 포(4), 투(2)를 따르는 소심하지만 따뜻한 기술자 파이브(5),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매번 같은 모양의 괴상한 그림만을 그리는 식스(6), 빠르고 강한 여전사 세븐(7), 힘 좋고 충직한 원(1)의 보디가드(8) 등 다채로운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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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9)을 구하려다 투(2)가 기계 괴물에게 끌려가면서 이야기는 마침내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원(1)의 고지식함에 투(2)를 구하기 위해 파이브(5)와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나인(9), 때마침 등장한 세븐(7)의 도움으로 투(2)를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실수로 잠들어 있던 인류멸망의 원인인 기계가 깨어납니다. 투(2)의 영혼을 흡수하는 거대한 기계, 다시 재앙은 시작되었고, 나인(9)은 세븐(7)들과 함께 자신들이 태어난 이유와 기계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기계가 깨어나면서부터 작품의 호흡은 가빠지기 시작합니다. 이제까지는 정적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화려한 CG 액션이 등장하면서 동적으로 변하게 되지요. 결국 이야기는 저 거대한 기계에 맞서 싸우는 자그마한 인형들의 사투로 귀결됩니다.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에서 절대악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지만 특이하게 생긴 작은 인형들이 그 주인공으로 나서면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창조적인 디자인과 멋진 미술은 이 색다름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지요. 굉장히 황폐한 느낌의 세상이지만 한차원 높은 비주얼로 인해 세련된 느낌마저 듭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멋진 비주얼에 비해 스토리는 밀도가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세상을 멸망시킨 거대한 기계와의 사투가 80분 남짓한 러닝타임에 모두 펼쳐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세계관도 설명해야 하고 평범한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각성할 시간도 필요한데다가 지루함을 상쇄시키기 위한 멋진 액션장면들도 들어가야 하니까요. 시리즈물로 나가거나 최소 2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제작되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도 있습니다.

ⓒ 2009 FOCUS Films LLC.



경이로운 비주얼과 평이한 줄거리 사이에서 범작으로 그친 작품

국, 이 스토리의 미흡함은 작품의 발목을 잡아 당초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작품을 완결 짓습니다. 아,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입니다.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평이하다고 느껴지지요. 경이로운 비주얼에 걸맞지 않은 너무 평범한 이야기는 작품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악재로 작용합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의 러닝타임이 좀 더 길었더라면,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거리가 첨가되었다면 이 아쉬운 감정은 놀라운 감동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 장편을 연출해본 경험이 없는 신예 감독이기에 아무래도 (걸출한 제작자들 사이에서) 휘둘린 감이 있지 않나 추측도 해보는데요. 오히려 모든 스토리를 완결 지으려는 욕심을 벌이고 구상한 얘기의 일부분만을 이야기하는 선에서 끝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납치당한 투(2)를 구출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극적으로 그를 구해내면서 그동안에 겪는 갖가지 모험들과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정도까지만 말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분명 그 재기넘치고 신선했던 원래 단편 정도의 감흥은 못주었더라도 애니메이션으로서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경이로운 비주얼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과할지는 몰라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비주얼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지요. 비록 미흡한 스토리이지만 비주얼의 가치를 완벽히 훼손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009 FOCUS Films LLC.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09 FOCUS Films LLC.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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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이저 X (1976), グロイザーX / Gloizer X


ⓒ Ota Gosaku · Knack

 
<정보>

◈ 원작: 오우타 고사쿠
◈ 총감독: 타이센지 히로시
◈ 감수: 나가이 고
◈ 시리즈 구성: 안도 토요히로
◈ 캐릭터 디자인: 스즈키 타카오
◈ 작화감독: 다나카 에이지, 長谷川憲生
◈ 음악: 가와치 쿠니 (OP,ED 작곡) / 이케다 코우 (노래)
◈ 제작: Knack, 동경12채널
◈ 저작권: ⓒ Ota Gosaku · Knack
◈ 일자: 1976.07.01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39화) / 전체연령가 (G)


<시놉시스>

북극에 전진기지를 갖춘 이성인 가이라 제국이 겔돈 제왕의 명에 따라 지구 침공을 계시한다. 반전파인 가이라별의 천재과학자 얀박사는 자신이 만든 공폭로봇인 그로이저 X에 딸인 리타를 태워 가이라 제국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로이저 X와 딸인 리타만이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지구로 불시착한 리타는 토비시마 박사의 민간 항공사에 의해 구조되고, 가이라 제국의 침략을 전해들은 토비시마 박사는 팀의 에이스 파일럿인 카이사카 죠를 리타와 함께 그로이저 X에 태워 가이라 제국의 침략에 맞서게 한다.


<소개>

'아스트로 강가(1972)'에 이은 Knack의 두번째 로봇 아니메. 다이나믹 프로 출신으로 나가이 고의 어시스턴트이기도 했던 오우타 코사쿠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Knack의 첫번째 로봇 아니메였던 아스트로 강가는 TV 시리즈 최초의 로봇 아니메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두 달 뒤에 방영된 나가이 고의 '마징가 Z(1972)'의 폭발적인 인기에 밀려 잊혀졌던 일화가 있다는 것. 일본판 위키에는 나가이 고가 감수를 맡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묘사되어 있는데, 오우타 코사쿠가 다이나믹 프로 출신임을 감안하면, 비공식적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을 받지 않았나 싶다. 당대 로봇 아니메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던 나가이 고였기에 제작진 측에서도 그 이름을 빌리는 것이 시청률에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에서 넣지 않았나 싶은 추측도 해볼 수 있다.

외계인이 만든 최고의 로봇이 외계인을 배신하고 지구인의 편에서 싸운다는 설정은 Knack의 이전 작인 아스트로 강가의 컨셉과 비슷하면서 동시에 나가이 고의 'UFO 로봇 그렌다이저(1975)'와도 유사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설정은 당시 아동물에서 상당히 극적인 요소를 부여하기에 자주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비행기에서 로봇으로 변신한다는 그로이저 X의 공폭(공중폭격기)로보의 개념은 UFO에서 로봇으로 분리되는 그렌다이저와도 비교되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다만, 동시기에 등장한 '초전자 로봇 콤배틀러 V(1976)'에 비하여 조악한 변신 메커니즘이나 부족한 드라마 등 여러 면에서 콤배틀러 V에 비교되면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컨셉 자체가 마징가 Z에서 이어져온 작품인지라 컴배틀러 V로 인해 높아진 아이들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던 셈이다. 어찌보면 다이나믹 프로 계열의 작품과 선라이즈 계열의 작품이 맞부딛힌 결과로 볼 수 있는데, 76년이 로봇 아니메의 트렌드가 변화하는 길목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2009년 이마가와 야스히로의 최신 마징가 시리즈 '진 마징가, 충격의 Z편(2009)'에서 기계수 중 하나로 그로이저 X가 잠시 등장하기도 하는데, 오우타 코이치와 나가이 고, 그리고 다이나믹 프로와의 관계를 알고 나면 납득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진 마징가에서 그로이저 X를 보고 깜짝 놀라신 분들 당시에 많았다고 전해진다. 눈썰미가 없는 엘로스는 눈치도 못챘지만.)

유럽에 출시된 그로이저 X DVD 커버. 나가이 고와 마징가의 유명세를 이어가기 위해 마징거 X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아차, 빼먹은 거 한가지. 그로이저 X의 남자 주인공 성우는 후루야 토오루(건담의 아무로 레이 성우)가 맡으셨다는.


<참고 사이트>

[1] グロイザーX, Wikipedia Japan
[2] Gloizer X, Wikipedia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Ota Gosaku · Knack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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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방송으로 부활하는 하얀 거인, 진가를 드러내고 

금에 와서 건담의 첫 방송이 저조했던 원인을 되짚어보면 작품의 완성도면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의 시청층에 대해서 제작진 측이 잘못 판단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싶다. 애초에 드라마틱한 설정과 복잡한 갈등관계가 자리하면서 로봇 액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아진 것은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했음이 분명하다. '우주전함 야마토(1974)' 이후에 고연령층의 아니메 팬 층이 존한다는 것을 인식한 제작진과 토미노 감독은 이들을 타깃으로 삼고 작품을 만들었지만, 문제는 로봇물의 정체성이 원래 저연령층의 전유물이었기에 방영을 시작한 건담을 보고 고연령층의 시청자들은 분명 아동용 로봇물일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방영을 거부했을 듯 싶다.

게다가 원 로봇의 시청층인 아이들은 으례 그렇듯 새로운 로봇물이구나 하고 TV 앞에 모여 앉았는데, 왠 사교성 부족하고 멋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찌질한 소년 주인공이 등장하는데다가 시도 때도 없이 로봇 조종 안하겠다고 응석을 부리고 앉았으니 매회 '합체-전투-위기-필살기-격파'를 반복해오던 당대의 로봇물과는 너무도 다른 흐름에 애시당초 채널을 돌렸을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꾸준히 보아온 일부 고연령대 시청자들과,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미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로봇물임에도 불구하고 열렬한 팬이 되어버린 소녀들은 건담의 종영과 더불어 방송국과 제작사측에 재방송을 강렬히 요청하게 된다. 첫 방영부터가 아닌 방영 중에서야 비로소 건담의 진가를 파악하게 되어 뒤늦게 시청층에 합류한 이들의 경우는 더더욱 재방송을 원했을 터이고, 오프라인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던 당시의 아니메 마니아(요즘같은 인터넷이라는 이기를 꿈도 꿀 수 없었던 당시였다)들은 입소문으로 작품의 진가를 타인에게 전파하며 앞다투어 재방송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다 죽어가던 불씨에 다시금 불이 붙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재방송의 시청층은 바로 토미노 감독과 제작진 측이 애초부터 상정하고 있던 바로 그 연령대의 시청층이었다. 제대로 된 타깃층을 항하여 전파를 탄 건담의 반응은 어떠했겠는가. 그것은 말 그대로 폭발적인 것이었다. 첫 방송 당시 한자리수 시청률에 그쳤던 건담은 첫번째 재방송에서는 10%를 넘기며 뒤늦은 인기를 증명하였고, 완전하게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은 82년도의 재방송에서는 2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80년 1월 건담의 첫방송이 종영되자마자 서둘러 2월에 '무적로보 트라이더 G7(1980)'을 방영하며, 건담의 실패를 덮어버리려 했던 선라이즈에게도 이것은 분명 예상치 못햇던 일이었을 것이다. 부진을 거듭하다가 예상된 방영횟수도 못채우고 조기종영된 이 괴작(당시의 관점에서는 괴작이었을지도 모른다)이 강렬한 후폭풍을 일으킬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은 반년 뒤의 프라모델 열풍과 맞물려 사회적인 현상으로 번지며 마침내 81년 방영된 극장판을 통해 그 진정한 시작을 알리게 된다.

동경에 위치한 반다이 본사 (출처: 위키피디아 재팬)

프라모델, 또다른 신회를 만들어내다

1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건담의 스폰서는 완구업체 크로바(클로버)였다. 당시 로봇 아니메는 완구회사와 함께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사가 아니메를 만드는 동안, 완구회사는 주역 로봇의 완구를 제작하여 작품의 방영과 함께 로봇 완구를 시장에 내놓는 형태의 시스템을 취하고 있었다. 아니메의 제작비는 스폰서인 완구업체에서 대는 것이었으며, 그에 대한 투자 수익은 판권을 독점한 완구업체의 완구판매를 통해 이루어지는 형태인 것이다. 지금과 같이 DVD부터 각종 캐릭터 상품과 코믹스, 소설과 같은 미디어 믹스의 전개로 상품 루트가 다변화된 것과는 달리 당시의 상품화는 완구업체에 집중되는 단선적인 루트를 갖고 있었고, 때문에 완구업체로서는 시청률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완구의 판매가 중요했다. 실제로 시청률은 저조했으되 완구판매에서는 기대이상의 수익을 올린 작품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건담은 시청률에도, 완구판매도 모두 실패한 비운의 작품이었다. 콤배틀러 V 이후 정교한 변신 합체 완구로 인해 눈높이가 높아진 아이들에게 별다른 메커니즘이 내장되지 않은 건담 완구는 밋밋하기 그지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끼워넣은 코어파이터 합체 메커니즘 역시 이전까지의 변신합체 로봇에 비하면 턱없이 심심한 것이었다. 비록 G 아머 시스템에 DX 합체세트까지 등장하면서 조금씩 부진을 만회하기는 했지만, 스폰서 입장에서 건담 완구는 저주에 가까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작품이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던 중, 선라이즈는 완구판매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건담을 완구가 아닌 프라모델로서 머천다이징하는 방안을 크로바측에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제안은 크로바에 의해 간단히 거절당하고 만다. 상품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모델을 다른 제품으로 상용화한다는 것이 수지가 맞지않는 비즈니스라고 판단한 듯 싶은데, 이것이 미래의 비즈니스 명운을 좌지우지할 중대한 선택이었음을 그 때의 크로바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건담의 에이전시 업체였던 創通(창통, 일본어로 소츄) 에이전시는 선라이즈와 함께 건담의 저작권을 갖고 있었는데, 선라이즈의 이 사업안을 들고 여러 프라모델 업체에 상품화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로봇완구는 프라모델과는 다른 타깃 시장의 제품으로, 프라모델이 어린이들이 아닌 청소년 이상의 고연령층을 위한 상품이었고, 로봇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상품화 역시 당연히 완구형태로 생각되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던 건담이기에 상품화 역시 어쩌면 프라모델이 더 적합했을지도 모른다. 뒤늦게서야 선라이즈는 그 사실을 눈치챘던 것일까. 

여러 업체와의 미팅 끝에 마침내 최종 사업자는 우주전함 야마토를 프라모델로 상품화하면서 이제 조금씩 프라모델 업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프라모델 업체 반다이 모형에게로 낙찰되었다. 그리고 건담의 종영 후 반년 정도 지난 후에 마침내 첫번째 건담 프라모델이 시장에 나오게 되니, 재방송으로 인한 뒤늦은 인기와 맞물려 프라모델, 아니 건프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당대 굴지의 완구회사 크로바와 후발주자 반다이의 운명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크로바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선라이즈 작품의 로봇들을 완구화하게 되지만, 83년 성전사 단바인의 완구를 끝으로 파산하게 된다)

건담의 뒤늦은 인기점화와 프라모델의 붐 뒤에는 야마토 이후 활성화되기 시작한 아니메 전문잡지들과 일부 마니아들의 힘을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월간 OUT에서 출간한 무크지 '건담 센츄리'는 건담 월드에 대대한 세세한 소개와 스탭들과의 인터뷰, 거기에 아니메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은 각종 설정에 대한 설득력있는 설명으로 마니아들에게 커다란 호평을 얻었으니 그 디테일한 설정은 후일 선라이즈에서조차 이를 인정하고 인용할 정도로 치밀한 것이었다.(모빌슈트의 자세제어 시스템인 AMBAC과 같은 개념이 건담 센츄리에서 등장하게 된다) 건담 센츄리의 발간과 함께 건담의 세계관은 아니메에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설정과 설명이 가해지면서 더더욱 풍성해지고 다양하게 변한다.

거기에 프라모델 라인업의 다양화를 위해 기획된 MSV(모빌슈츠 배리에이션)는 작품에 등장하지 않은 프로토타입의 MS들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세세한 설정과 함께 MS 존재의 타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통해 작품의 종영 이후에도 건담의 인기를 (작품과는 별개로) 관성적으로 이어가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MSV를 기반으로 추가 건프라들이 제작되면서 건프라의 생명력은 연장되었고, 팬들은 건담에서 못다한 뒷 이야기의 조각들을 MSV에서 찾아내며 더더욱 건담의 세계에 심취하게 된다. 특히, 일부 파워 모델러들의 경우에는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어 프라모델을 개조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능동적인 참여는 건담 월드를 더더욱 풍성하고 복잡하며, 거대하게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 SUNRISE · SOTSU Agency


아니메 신세기 선언, 마침내 시작된 아니메 세컨드 임팩트

80년에 시작된 엄청난 건담의 인기 후폭풍은 아니메와 아니메 관련 산업 전반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파급력이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아니메의 시청층이 아이들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만큼 성숙하고 치밀한 작품관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 SF 로봇 아니메의 머천다이징 방식이 로봇 완구에만 있지 않다는 여러가지 숙제들이 관계자들에게 주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토미노 감독 이하 스탭진들이 애초부터 상업적인 고려없이 오로지 제대로 된 SF 아니메를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임했던 작품이 이제와서는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케이스와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시키는 아니메가 되었다는 점이다.

마침내 81년 3월 14일(하얀색의 건담을 위한 것인지 날짜도 화이트데이), TV 시리즈의 초반부를 재편집한 극장판 1부, '기동전사 건담'이 개봉되었다. 특히, 이 극장판의 의의는 이보다 앞선 2월 22일 극장 개봉을 기념하여 개최된 '애니메이션 신세기 선언'에 있었는데, 당시 이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관중의 수는 약 1만 5천명으로, 단순 이벤트 수준의 행사에 이토록 많은 인원이 결집한 것은 마치 5년여전 야마토 극장판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 앞에서 길게 줄을 섰던 당시의 상황과 유사한 것이었다. 신세기 선언은 또한 건담의 테마였던 뉴타입처럼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의미하고 있었다. 즉, 당대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그들만의 문화와 아이콘을 갖고 있으며, 그 중의 하나가 아이들의 전유물일 것만 같은 아니메였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건담이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자리였던 것이다.

극장판 3부작은 대성공이었다. 특히 마지막 3부인 해후의 우주편은 TV 시리즈 후반기에 급작스런 병으로 일선에서 떠났던 불세출의 작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돌아와 거의 모든 컷을 다시금 수정하여 신작화로 그려냄으로써 TV 시리즈를 감상하고 극장을 찾았던 수많은 건담 팬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으며, 극장 아니메의 대표적인 캐쉬 카우라 할 수 있는 도라에몽 극장판 시리즈를 뛰어 넘어 82년도 아니메 흥행랭킹 1위, 전체 극장 흥행랭킹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아니메 신세기 선언을 통해 그 존재를 보여준 거대한 팬층(마니아, 혹은 좀더 일본적으로 오타쿠)의 등장은 이후의 아니메가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프라모델을 위시한 다양한 아니메 비즈니스 수단의 등장과 함께 우주전함 야마토 이후 일본 아니메 史를 송두리채 흔들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었다. 후일 역시 90년대 아니메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에서 등장한 거대한 지각변동을 의미하는 임팩트(Impact)라는 현상은 야마토와 에반게리온과 더불어 바로 건담에게 부여하면 가장 적합한 호칭일지도 모른다. 아니메 세컨드 임팩트, 그렇다. 건담에 의해 아니메는 두번째 변혁을 맞이하고 있었다.

ⓒ SUNRISE · SOTSU Agency


에필로그 - 아직도 계속되는 건담의 신화

약, 건담이 재방송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혁신적인 모습과 깊이있는 내러티브에도 불구하고 첫방송에 실패한 이 작품이 그대로 묻혔다면, 아마도 로봇 아니메의 성장은 지금보다는 더디었을 것이다. 로봇물은 여전히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내용으로 제작되고, 80년대 SF 아니메의 폭발적인 성장은 분명히 한템포가 더 늦었을지도 모른다. 불멸의 리얼로봇 아니메로 젊은 아니메 세대가 애니메이터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조차 건담이 없었으면 태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르며, 마크로스의 소식을 듣고 대학을 중퇴하고 상경한 안노 히데아키 이하 가이낙스의 핵심인물들도 역시 애니메이터가 되지 않았거나 늦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토미노 감독은 '전설거신 이데온(1980)'의 제작을 포기했을 테고, 그로 인해 90년대 아니메의 또다른 부흥을 일으켰던 에반게리온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건프라는 상품화되지 못했을테고, 반다이는 지금처럼 거대한 회사로 성장하지 못한체 그저 그런 회사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건담이 모든 아니메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건담이 사회적 현상으로 떠오르지 못했더라면 아니메는 그만큼 지금보다는 퇴보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작품 자체적인 가치와 의의를 넘어서 건담이라는 작품이 후대 아니메와 관련 비즈니스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은 일개 작품의 레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반면, 건담이 가져온 혁신은 또다른 편향적인 시각과 가치관을 가져오게 된다. 먼저 SF, 그것도 로봇을 중심으로 80년대 아니메가 과도하게 방향 선회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SF를 향한 아니메의 일관된 사랑으로 인해 수많은 걸작 아니메가 탄생한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었지만, 소재의 다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체 SF로 고정된 시각은 결국, 소재고갈과 함께 훗날 아니메의 쇠퇴를 가속화하게 된다. 물론, 중간중간 여러가지 다양한 소재도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건담으로 인해 시작된 과열된 SF 로봇 아니메의 열기는 이러한 의미 있는 시도들을 크게 부각시키지는 못했다.

프라모델이라는 새로운 상품의 등장으로 인해 건담의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것 역시 내재된 위험요소였다. 분명, 당시의 시점에서는 새롭고 참신한 아이템이었던 로봇 프라모델은 이후 건담 외에는 큰 히트를 일으킬만한 원동력을 찾지 못한 체 건담에게 지나치리만큼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반다이가 건담의 속편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물론, 현재의 반다이는 다양한 수익 다변화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건담의 의존도를 많이 줄였긴 하지만, 80년대 당시 건담은 반다이에게 있어서 하나뿐인 젖줄이었다.)

건담에 지나치리만큼 심취해버린 오타쿠들 역시 건담의 지루한 재생산에 큰 일조를 하게 된다. 특히, 건담에 대한 과도한 애정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에 입맛에 맞는 이야기 전개를 제작진 측에 요구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그들만의 건담 월드를 만들고 싶어했다. 혁신과 개방의 개념으로 시작했던 건담은 서서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모했고, 스폰서와 팬들의 과도한 간섭에 의해 크리에이터인 토미노 감독이 자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영광과 오욕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건담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상업적인 사정과 과도한 팬덤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우주세기에 안주하지 않은 체 건담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간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창조자라 할 수 있는 토미노 감독의 손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젊은 세대들에 의해 새로운 항해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오한 드라마를 버리고 미소녀들이 잔뜩 등장하는 모에 아니메로 변모했다 하더라도, 로봇 아니메를 정통 SF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 했던 성숙한 시도를 져버리고 슈퍼로봇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변화하고 있는 아니메 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변모하고 있는 건담은 신인류라 불리는 뉴타입처럼 진화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혁신의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훗날 건담의 시계가 멈춘다고 하더라도 그 오랜 시간동안의 변혁의 과정을 통해 만화영화는 새로운 틀을 구축하고 발전하리라 기원해본다.


('기동전사 건담(3부) - 부활하는 하얀 거인. 발동, 아니메 세컨드 임팩트!' 끝)

ⓒ SUNRISE · SOTSU Agency


<참고 사이트>

[1] 機動戦士ガンダム, Wikipedia Japan
[2] モビルスーツバリエーション, Wikipedia Japan
[3] ガンダムセンチュリー,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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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자로보 콤배틀러 V (1976), 超電磁ロボ コンバトラーV / Combattler V


ⓒ TOEI · TV ASAHI


<정보>

◈ 원안: 얏테 사부로 (도에이 영상본부 TV 프로듀서 공동필명)
◈ 감독: 나가하마 타다오
◈ 각본: 츠지 마사키, 후지카와 케이스케 外
◈ 스토리보드: 야스히코 요시카즈, 이시구로 노보루, 타카하시 료스케, 토미노 요시유키 外
◈ 캐릭터 디자인: 야스히코 요시카즈
◈ 메카닉 디자인: 스튜디오 누에 (미야타케 카즈타카)
◈ 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 外
◈ 미술감독: 미야노 타카시
◈ 오프닝 애니메이션: 카나다 요시노리
◈ 음악/주제가: 쯔즈이 히로시 / 미즈키 이치로 (주제가)
◈ 제작: 도에이 동화, TV 아사히 (방송), 선라이즈, 스튜디오 누에, 스튜디오 딘, 토후쿠 신사 (제작협력)
◈ 저작권: ⓒ TOEI · TV ASAHI
◈ 일자: 1976.04.17
◈ 장르: SF, 드라마,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54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오랜 세월 동안 지구의 지하에 터전을 잡고 지구 정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캠벨 성인들, 이들의 존재를 눈치 챈 난바라 박사는 캠벨 성인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5대의 메카가 합체하여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는 콤배틀러 V를 완성하고 이를 조정할 5명의 용사를 일본 각지에서 선출한다. 팀내 리더로 스피드광이자 열혈소년인 아오이 효마, 냉철한 사격의 달인인 나니와 쥬죠, 여유로운 성격의 유도 달인인 니시카와 다이사쿠, 천재소년으로 초등학생의 나이에 미국 명문대에 재학중인 키타 코스케, 그리고 난바라 박사의 손녀로 박학다식하고 다재다능한 소녀 난바라 치즈루까지... 마침내 캠벨 성인들의 지구 침공이 시작되고, 콤배틀러 팀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소개>

1976년도의 도에이의 로봇 애니메이션 스케줄은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대공마룡 가이킹(1976)'이 후지 TV에서 4월 1일 방영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초전자로보 콤배틀러 V(1976)'가 불과 2주 정도 후에 아사히 TV를 통해 방영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나자 '마그네로보 가킨(1976)'이 아사히 TV에서 일요일에 방영을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지금 소개할 콤배틀러 V는 슈퍼로봇 아니메의 역사를 새로 썼으며, 도에이의 로봇 전성기의 정점을 찍고 동시에 도에이 로봇 아니메 몰락의 전조가 되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기억될만한 걸작 로봇 아니메이다.

애초에 이 작품은 도에이 애니메이션이 아닌 도에이 본사 측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원작을 맡은 야츠데 사부로는 특정인물이 아닌 도에이 영상본부의 PD들의 공동필명으로, 이들이 로봇 아니메를 기획하여 도에이 애니메이션측으로 위탁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도에이는 가이킹을 제작하고 있던 와중이었기에 도에이 본사의 기획은 결국 외주 제작 형태로 처리하는 것으로 내부결정이 난 듯 싶다. 그리고 여기서 슈퍼로봇 제작의 판도를 바꾸게 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로봇 아니메의 제작에 있어서 압도적인 파워를 갖고 있던 도에이 외에 아니메를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으로는 나가이 고와 다이나믹 프로가 있었으나 이들은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창작집단으로 아니메 제작능력이 전무했었다. 그 외에 토호쿠 신사 측에서 75년 소에이샤라는 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통해서 '용자 라이딘(1975)'을 제작한 전례가 있었을 뿐이다. (토호쿠 신사는 76년 당시 에이켄이라는 제작사와 함께 'UFO 로봇 다이아포론'을 제작, 방영중에 있었다.) 용자 라이딘은 시청률에서도 생각 이상의 선전을 보였던 바, 외주제작은 결국 이 용자 라이딘 팀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라이딘의 속편을 기획하고 있던 감독 나가하마 타다오 이하 쇼에이샤의 제작팀들은 급거 차기 프로젝트를 접고 바로 도에이의 외주제작건에 돌입하게 된다. 시간이 무척 촉박했던 관계로 제작진은 상당한 고충을 겪었다고 전해지지만, 스폰서의 요청을 십분 반영한 완벽한 합체로봇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라이딘에서 그 실력을 선보인 작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를 캐릭터 디자인으로 고용하여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창조해냈으며, 드라마에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 나가하마 타다오가 총지휘를 맡은 콤배틀러 V는 기대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내며 일약 로봇 아니메의 초인기작으로 탄생하게 된다.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한차원 일보진전한 합체 시스템은 그때까지의 어떤 로봇보다도 현실적인 합체씬을 선보이며, 완구와의 싱크로를 100% 이룩해내었다. 게다가 제작팀에 고안해낸 각종 무기 시스템은 로켓펀치나 미사일, 레이저 광선에 한정된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신개념이었다. 갓챠맨의 5인 전대를 매력적으로 이식한 캐릭터 설정, 라이딘부터 시작된 미형의 악역 캐릭터의 등장과 악역치고는 너무도 드라마틱한 설정의 부여, 단순한 로봇 아니메 이상의 에피소드와 사연이 실린, 실로 70년대 로봇 아니메의 궁극의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토미노 요시유키, 야스히코 요시카즈, 이시구로 노보루, 타카하시 료스케 등으로 이루어지는 연출가 집단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이 모두 후일 리얼로봇 아니메의 거장들이 된다는 점에서도 콤배틀러 V의 완성도는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동시에 이 정도의 인력들이 도에이가 아닌 소에이샤에 몰려 있다는 것은 훗날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다이나믹 프로의 기획력과 도에이의 제작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도에이의 로봇 천하를 끝낼 새로운 뉴페이스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 TOEI · TV ASAHI


☞ 콤배틀러 V의 괜찮은 리뷰 보러가기: <초전자로보 콤바트라 V>(1976) 낭만로봇 시리즈, 서장을 장식하다 by 키웰
☞ 콤배틀러 V의 괜찮은 리뷰 하나 더 보러가기: 아니메 집중분석 21 [초전자로보 콤바트라 V] by 바이칸


<참고 사이트>

[1] Cho Denji Robo Combattler V (TV), Anime News Network
[2] 超電磁ロボ コン・バトラーV,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 · TV ASAHI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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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마룡 가이킹 (1976), 大空魔竜ガイキング / Gaiking


ⓒ 1976 Toei Animation


<정보>

◈ 원안: 스기노 아키오, 나카타니 쿠니오 外
◈ 연출: 카츠마타 토모하루 外
◈ 시리즈 구성: 마루야마 마사오
◈ 캐릭터 디자인: 타케시 시라도
◈ 작화감독: 타케시 시라토, 스기노 아키오 外
◈ 미술감독: 우치카와 후미히로 (内川文広)
◈ 음악/주제가: 키쿠치 슌스케 / 사사키 이사오
◈ 제작: 도에이 동화, 후지 TV, 다이나믹 프로 (제작협력)
◈ 저작권: ⓒ 1976 Toei Animation
◈ 일자: 1976.04.01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44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블랙홀에 의해 멸망의 위기에 처한 제라별 사람들은 거대한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들어 멸망을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자아를 가진 컴퓨터는 스스로를 다리우스 대제라 칭하고 제라성인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 제라성인들을 개조하여 암흑호러 군단을 결성한 다리우스 대제는 제라성인들이 이주할 땅이라는 명목하에 지구 침공을 명한다.

한편, 제라성인들의 침략을 예상하고 있던 다이몬지 박사(한자로 쓰면 대문자 박사, 작명 센스 대~박)는 거대요새 대공마룡과 로봇 가이킹을 만들어 그들에 맞설 준비를 하고, 야구선수인 츠와부키 산시로 등 특수한 능력을 지닌 소년, 소녀들이 다리우스 대제와 암흑호러 군단에 대적할 전사로 선택된다. (베스트 아니메, 위키피디아 재팬 참조)


<소개>

'그레이트 마징가(1974)'와 'UFO 로봇 그렌다이저(1975)' 등을 통해 원작자인 나가이 고와 다이나믹 프로와 손을 잡고 일하면서도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견제해왔던 도에이 동화였지만 여전히 딜레마는 존재하고 있었다. 당대 로봇 아니메 장르를 석권하고 있었지만, 막상 로봇 아니메를 기획해낼 기획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나가이 고나 다이나믹 프로 역시 비슷한 처지였는데, 로봇 아니메에 대한 기획력은 당대 최고였으나 막상 이것을 아니메로 제작할 노하우를 갖춘 곳은 당시에는 도에이 동화가 유일했었다. 결국 이러한 둘의 딜레마는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여전히 손을 잡게 하는 상황을 제공했는데, 그렌다이저와 동시기에 방영된 '강철로봇 지그(1975)' 역시 그런 맥락에서 둘이 합작한 결과로 보면 어떨까 싶다.

하지만, 이듬해에 이르러 도에이는 마침내 모험을 단행하기로 한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단독으로 로봇 아니메를 제작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도에이 최초의 단독 로봇 아니메 '대공마룡 가이킹'이었다. 부족한 기획력을 커버하기 위해서 무시 프로출신의 스기노 아키오와 마루야마 마사오 등이 이 기획에 투입된다. 데즈카 오사무와 과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온 도에이의 입장에서 데즈카 오사무의 후학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제작에 포함시킨 것 역시 나가이 고의 영향력을 떨쳐내기 위한 의지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스탭진 목록에 다이나믹 프로가 제작협력으로 포함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독자적인 프로젝트에도 나가이 고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듯 싶다. 실제로 가이킹을 포함하여 후일 '마그네 로봇' 시리즈라고 일컬어 지는 일련의 작품들에서 로봇의 각 파츠가 자력으로 결합되는 설정은 분명 강철로봇 지그에서 시작된 컨셉(사실 이 자석 합체의 컨셉은 나가이 고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스폰서인 타카라 완구 측에서 고안한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이를 갖고 작품을 기획한 것은 나가이 고와 다이나믹 프로이다)이었는데, 이로 인해 마그네 로봇 시리즈에 지그가 포함되느냐 아니냐(또는 가이킹이 마그네 로봇 시리즈냐 아니냐)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와 함께 기획 과정에서 나가이 고를 배제시키면서 나가이 고와 도에이 동화의 사이가 더 악화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나가이 고를 자의든 타의든 실제 기획에서 배제시킨 도에이 측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괴수적인 컨셉의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대공마룡이라 불리는 공룡형태의 요새와, 해골 형상의 대공마룡 머리와 각 파츠가 결합하여 가슴에 거대한 공룡의 머리를 달고 있는 가이킹의 디자인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괴기적인 것이었다. 직전년도의 지그, 그리고 다음에 제작되는 '마그네로보 가킨(1976)' 등과 함께 이 일련의 기괴한 로봇 디자인은 마징가를 벗어나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비록 몇 주의 시간차를 두고 방영된 도에이의 또다른 마스터피스 '콤배틀러 V(1976)'(도에이의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나가하마 타다오와 선라이즈의 결과물)와 비교되면서 실패의 쓴잔을 맛보긴 했지만, 나가이 고라는 당대 최고의 로봇 크리에이터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단독으로 작품을 제작했다는 데에서 이 작품은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가이킹은 2005년 리메이크 아니메를 거쳐 현재 2012년에 개봉을 목표로 현재 미국에서 실사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2010년 도쿄 아니메 페어에서 CG로 제작된 박진감 넘치는 티져 영상이 공개되어 지대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 1976 Toei Animation


☞ 가이킹에 대한 괜찮은 리뷰 보러가기: <대공마룡 가이킹>(大空魔竜ガイキング)(1976) 도에이의 슈퍼로봇 홀로서기 by 키웰


가이킹, Legend of Daiku-Maryu (2005)


ⓒ 2005 Toei Animation · TV Asahi


<정보>

◈ 감독: 호소다 마사히로
◈ 원안: MK 기획
◈ 각본: 산죠 리쿠
◈ 캐릭터 디자인: 야마자키 켄지, 야마자키 노리요시
◈ 메카닉 디자인: 오츠카 켄, 사토 겐
◈ 미술감독: 나카무라 미츠키
◈ 음악: 테즈카 리치
◈ 키 애니메이터: 오바리 마사미, 이마이시 히로유키, 하마수 히데키, 하세가와 신야 
◈ 제작: 도에이 동화, TV 아사히
◈ 저작권: ⓒ 2005 Toei Animation · TV Asahi
◈ 일자: 2005.11.12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39화) / 전연령가 (G)


<소개>

과거 슈퍼로봇 아니메들의 리메이크 붐을 타고 가이킹 또한 2005년 새로운 시리즈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새로운 신예 애니메이터들이 주축이 된 스탭진의 구성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육감적인 메카닉 디자인으로 80년대를 풍미했던 오바리 마사미와,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1992)'부터 '소녀혁명 우테나(1997)'의 오프닝,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의 오프닝 등에서 절정의 작화력을 뽐냈던 하세가와 신야, '천원돌파 그렌라간(2007)'으로 후일 연출가로서도 범상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 이마이시 히로유키, '퍼펙트 블루(1998)'부터 콘 사토시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작화감독으로 맹활약하게 되는 하마수 히데키 등 걸출한 애니메이터들이 원화맨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스토리 전개도 작금의 미소녀, 모에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가기보다는 오히려 주인공의 연령대를 낮추어 아이들에 눈높이에 맞는 로봇물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과거 슈퍼로봇물의 정취를 그대로 느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주었다고 하겠다. 다만, 홍보에 있어서 큰 힘을 쏟지 않았기에 초기 반응이 대단치 못했고, 초기에는 스폰서마저 제대로 구하지 못하여 작화 퀄리티가 최악으로 치닫는 등 30여년 전과 다름없이 도에이 자체 제작 로봇물의 한계(?)를 보여준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참고 사이트>

[1] Daikuu Maryuu Gaiking (TV), Anime News Network
[2] Gaiking: Legend of Daikû-maryû (TV 2/2005), Anime News Network
[3] Gaiking, Wikipedia
[4] 大空魔竜ガイキング, Wikipedia Japan
[5] ガイキング LEGEND OF DAIKU-MARYU, Wikipedia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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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마침내 우주인과 조우하다.


11월 18일에 개봉예정으로 조금씩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극장판 건담 더블오 'A Wakening of the Trailblazer'의 일부 내용이 공개되었습니다. 8월 31일자 닛칸 스포츠 21면에 자그맣게 그 내용이 실렸다고 하더군요.

☞ Gundam vs Alien? by Ngee Khiong (클릭)

제목 그대로 우주인과의 전쟁이 다루어질 것 같습니다. 드디어 건담의 세계에 우주인이 등장하는군요, 허허.

벌써부터 올드팬들은 이런 더블오의 전개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봇과 우주인의 대결하면 슈퍼로봇 아니메에서 익히 사용된 장르이기에 이 상태로라면 리얼로봇이라는 껍데기만 쓰고 있던 요즘의 건담 시리즈들이 본격적으로 슈퍼로봇 장르로 넘어갈 것 같은 모양새라 그런 것 같은데요. 하지만 잘 만들면 황당하지 않은 전개로 기존의 드라마틱한 얼개를 유지하면서 극을 이끌어 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형태의 이야기는 이미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에서 증명된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우주인은 많은 SF 아니메에서 그러했듯이 인간형의 우주인이 아닌 자유자재로 형상을 바꿀 수 있는 생명체로 묘사될 것 같습니다. 이 외계생명체가 과연 침략의 목적으로 태양계에 발을 들이고 이를 맞이하여 지구인들이 힘을 합쳐 싸우다가 전력의 열세를 느끼는 순간, 솔레스탈 비잉이 구세주처럼 등장한다... 뭐, 이런 전형적인 시퀀스가 될 지, 아니면 건담 시리즈의 특성답게 좀 더 입체적인 이야기로 전개될지는 두고보아야 하겠습니다.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금속 생명체라는 외계인의 특징으로 미루어보아 이들이 모빌슈츠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어 싸울 것 같은 예감도 드는군요.

사실, 이제 인간과 인간의 대립과 갈등을 다루는 건담의 이야기는 꽤 많이 식상해진 느낌입니다. 뉴타입에서 시드로, 다시 이노베이터로 명칭만 바꾸어 등장하는 신인류들의 모습도 그렇고,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반목을 거듭하는 구태의연한 대립관계도 그렇고 말이죠. 원래 더블오 TV 시리즈가 등장했을 때는 뭔가 더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어찌보면 극장판에서야 기존 건담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군요. 차라리 마크로스와 비슷한 이야기로 애초부터 외계인과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UNRISE · SOTSU Agency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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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스탭>

◈ 감독: 故 콘 사토시
◈ 원작: 타케우치 요시카즈
◈ 제작: 매드하우스


<시놉시스> 

여성 3인조 아이돌 그룹 챰(Cham). 팬들이 모인 야외 콘서트 장에서 인기곡을 부르고 난 후, 리더이자 팀내 최고의 인기인인 키리고에 미마가 팬들 앞에서 챰을 나와 독립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소속사 사장인 타도코로로부터 수명이 짧은 아이돌 가수에서 생명력이 긴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제안받았기 때문이다. 챰의 매니저로 한 때 가수 출신이기도 했던 루미는 이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지만, 미마는 이미 연기자로의 전업을 결심한 상태이다.

비록 인기 아이돌 가수라고는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변신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몇 마디 대사가 고작인 미니 시리즈의 역할은 기대 이하로 미미했고, 연기자 변신을 시도한 그녀에 대한 팬들의 원망인 듯 팩스를 통해 저주를 퍼붓는 문구가 보내지더니, 급기야 화약이 담긴 팬레터가 보내져와 소속사 사장이 부상을 입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팬들이 자주 언급하는 미마의 방이 궁금했던 미마는 그것이 팬 사이트의 이름인 것을 알고 루미의 도움을 받아 익숙하지 않은 솜씨로 컴퓨터를 사용해 미마의 방에 접속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팬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안 미마는 신기해 하지만, 이내 사이트에 쓰여진 일기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심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쉽지 않은 연기자의 길, 팬들의 원성과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 속에 점점 멀어지는 아이돌의 과거, 누군가 자신을 엿보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 조금씩 한계에 다다르던 어느날 미마에게 수정된 시나리오가 도착한다. 그것은 그녀의 강간 장면이 추가된 새로운 대본이었는데...


새내기 감독의 새내기 답지 않은 작품

'펙트 블루(1998)'는 2010년 8월 24일 췌장암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세상을 하직한 故 콘 사토시 감독의 유작이자 그의 첫번째 감독 연출작이기도 한 작품입니다. 첫 연출작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출과 섬세한 묘사, 그리고 완성도 높은 비주얼로 인해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불안정한 주인공의 심리와 더불어 펼쳐지는 현실과 환상의 중첩은 오로지 콘 사토시만이 해낼 수 있는 전매특허로, 아니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지요.

애초에 실사영화로 제작을 모색하고 있던 타케우치 요시카즈의 소설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중도에 아니메로 제작방향을 선회하게 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사이코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의 소재가 실사영화에서는 식상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 소재이지만, 만화영화에서는 거의 전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은 기회와 위기를 모두 지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었는데요. 아무도 해본 적이 없기에 독창적이고 독특한 작품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아니메 팬들에게는 생소한 이 장르가 과연 얼마나 어필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니메로 사이코 스릴러를 얼마만큼 실감나게 표현할 것인지가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매드하우스(애니메이션 제작)와 오토모 가츠히로(스페셜 어드바이저)가 힘을 실어주면서 작품은 서서히 구색을 갖춰가기 시작합니다. 감독으로는 당시 연출경력이 전무한 콘 사토시가 선임되는데요, 콘 사토시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코믹스를 연재하던 중 매드하우스에 입사하여 '노인 Z(1991)', '패트레이버 2(1993)'를 거쳐 '메모리즈(1995)'의 첫번째 에피소드 '마그네틱 로즈'에서 각본과 배경미술감독을 역임하면서 이제 막 주목받는 애니메이터로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이 모험적인 프로젝트에 연출 새내기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이 작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기존의 감독이 아닌 참신한 새 인물을 물색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작품 개봉 후 성공적인 결정이었음이 밝혀지게 됩니다. 콘 사토시는 원작을 넘어서는 완성도로 그 기대와 도전에 부응하게 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스토커와 연쇄살인, 평범한 소재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기 아이돌에서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꾀하는 주인공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토커 팬에 의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낱낱이 노출되고, 아이돌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노출씬을 찍으면서 정체성에 방황하게 되는 와중에 벌어지는 주변인물들의 연쇄살인은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해보았을 때도 알 수 있듯이 평범하고 단선적인 전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수없는 실사영화를 통해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가 다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외국의 드라마에서도 몇번은 다루어졌을 법한 소재이기도 하지요. 실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미마가 출연하는 미니 시리즈 역시 이러한 사이코 스릴러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도 왠지 모를 소재의 평범함을 느끼게 해주는 측면도 있습니다. 통속극에서조차 자주 쓰이는 소재, 그러나 이 평범한 소재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극의 초반은 연기자로 노선을 변경한 아이돌 미마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서서히 현실의 무게를 느끼는 미마, 그리고 그로 인해 조금씩 스트레스와 신경쇠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은 앞으로 벌어질 파국의 전조를 알리고 있지요. 게다가 발단을 지나 전개 부분에 이르르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이 낱낱이 드러나는 팬 사이트 '미마의 방'의 등장으로 인해 불안감이 더더욱 가중됩니다. 98년도에는 아무래도 인터넷의 보급이 지금만큼 활성화 되어있지 않은 시대, 이러한 시대에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연예인의 인신공격이나 악성댓글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꽤 선구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마의 방의 등장으로 인해 그녀의 불안감이 고조되었을 무렵, 마침내 위기가 시작됩니다. 아이돌인 그녀를 이용해 시청률을 높여볼 심산으로 극본가가 강간 장면을 극에 넣게 되는 것이죠. 거기에 사진가에 의해 전라 누드 촬영까지 강요당하면서, 그녀의 혼란은 극에 달하고 그와 함께 그녀를 괴롭히는 스토커의 분노 역시 극한을 치닫게 됩니다. 비로소 시작된 연쇄살인, 사이코 스릴러 치고는 느즈막히 첫번째 사건이 발발하는 이 작품은 이렇게 초반에는 미마의 심리묘사와 주변상황의 전달에 상당히 치중하는 편입니다. 극 초반부터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강렬한 자극을 주는 여타의 사이코 스릴러에 비해서는 상당히 드라마적인 전개이기도 한데요. 그러나, 이러한 심도 있는 심리묘사를 통해 이 작품은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사영화를 넘어서는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리무중의 연쇄 살인사건은 미마의 환상 속에서도 벌어집니다. 환상이 깨어나면 똑같은 사건이 현실에서 발생하는 것이죠. 게다가 극의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미마의 흉내를 내기 시작합니다. 미마는 환각에 빠진 상태에서 살인을 벌인 것일까요? 그렇다면 미마를 괴롭히는 그 스토커와 팬 사이트 미마의 방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게다가 미마의 흉내를 내는 정체불명의 또다른 미마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이 인물이 과연 현실의 인물인지 아니면 미마의 환상인지에 대한 인물인지에 대한 미스테리까지 끼어듭니다. 위기를 지나 절정으로 흘러갈수록 이야기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수수께끼는 또다른 수수께끼를 낳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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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의 혼란스러운 중첩, 방황하는 주인공과 빠져드는 관객

작품이 단선적인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복잡다단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콘 사토시의 전매특허라고 부를 수 있는 현실과 환상의 교차편집에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환상인지를 관객 뿐만 아니라 주인공마저도 혼란스럽게 해버림으로써 이야기 내내 관객은 이 복잡한 이야기의 실타래가 어디서 풀어질까하는 궁금증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것은 극도의 혼란한 정신세계에 빠진 미마 역시 마찬가지지요. 미마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가중될수록 현실과 환상은 더더욱 농밀하게 서로 얽히기 시작합니다.

또한, 극중에서 미마가 출연하게 되는 사이코 스릴러 드라마 '더블 바인드'마저 스토리의 전개가 미마의 현실과 유사해지면서 환상과 현실 속에서 혼란해하는 미마의 모습과 드라마 속에서의 미마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뒤섞인 절묘한 오버래핑을 보여줍니다. 마치 세 개의 이야기가 서로 물리고 물리는 뱀과 같은 형상, 이 현실과 환상의 이중 삼중 구조는 얼마전 극장 개봉을 시작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2010)'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는데요. 물론, 그동안 다양한 아니메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고가는 이야기와 연출이 선보인 것이 사실입니다만,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이 정신을 차리면 현실 속, 정신을 들고 보니 꿈 속 혹은 드라마 촬영 속이라는 퍼펙트 블루의 이야기 전개는 확실히 인셉션의 그것과도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교차편집은 후일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천년여우(2001)'에서는 더더욱 능숙해지고 복잡해지며, TV 시리즈인 '망상대리인(2004)'에서는 더더욱 난해하게 얽히고 섥히게 됩니다만, 그 정도면에 있어서는 퍼펙트 블루가 적당하다고 보여지며, 천년여우가 가장 최적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망상대리인이나 파프리카에 이르르면 식상해짐과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복잡한 교차 편집에 살짝 거부감을 느낄 정도랄까요.

이렇게 적당한 현실과 환상의 혼합은 작품의 단조로움을 복잡하고 치밀한 스릴러로 탈바꿈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와 맞물려 실사영화 이상의 미스테리함을 관객에게 선사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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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의 사실감과 만화영화의 상상력을 성공적으로 융합한 작품

펙트 블루는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와 감정 표현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만화영화의 형태를 빌린 실사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동안 수많은 성인용 만화영화(물론, 야하다는 의미가 아닌 진정한 성인용이라는 의미에서, 물론 이 작품에서는 강간장면이나 누드씬과 같은 에로틱한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가 아니메에 등장해 왔지만, 이토록 완벽한 성인 만화영화는 몇몇 감독의 만들어내는 작품 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토록 사실적인 만화영화를 만들면서 만화영화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환상적인 묘사를 기가 막히게 혼합시킴으로써 작품의 단조로움과 식상함을 극적으로 상쇄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만화적인 묘사가 만화영화다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몽환적이고 미스테리한 느낌만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여타의 만화영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만화영화적인 상상력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표현되지만 리얼리티와 현실감이 사그라들지 않는 콘 감독의 스타일은 이후에도 그의 작품에서 여러번 보여지게 되지요.

비록 콘 사토시 감독의 새로운 작품을 더는 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분명 퍼펙트 블루는 다양한 작품들이 넘쳐나는 아니메 속에서도 기억될만한 독특한 작품일 것입니다. 독창적인 이 연출 스타일이 그만의 스타일로 끝나버린 것이 아쉽기만 할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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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1] 퍼펙트 블루, 베스트 아니메
[2] パーフェクトブルー,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달의 TTB 리뷰 2010년 9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퍼펙트 블루 : 아웃케이스 없음 - 10점
곤 사토시 감독/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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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든 소년 소녀들

'무로 레이는 연방군의 기술자인 아버지 템 레이의 극비 프로젝트를 위해 어머니와 헤어지고 지구를 떠나 스페이스 콜로니 사이드 7으로 이주한 평범하고 내성적인 소년이다. 타인과의 교류에 익숙하지 않은 아무로는 연방군의 비밀병기 개발을 위해 항상 집을 비운 아버지 덕에 항상 혼자 지내며 메카닉을 만지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지낸다. 옆집에 사는 소녀 후라우와 스스로 설계한 애완용 로봇 하로만이 친하게 지내는 유일한 친구들.

한편, 지온군이 연방군의 신무기 개발계획을 탐색하기 위해 사이드7에 침투하면서 아무로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전화에 휩싸이고 만다. 피난 중에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본 아무로는, 충동적으로 운반중이던 연방군의 비밀병기 모빌슈트 건담에 탑승하여 익숙하지 않은 조종술로 지온군의 모빌슈트에 맞서게 된다.
'

건담의 첫 스타트는 이전까지의 로봇 아니메들과는 다른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내성적이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소년 주인공 아무로 레이, 게다가 그는 어머니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으며, 일에만 매달리는 아버지 때문에 항상 외톨이인 체로 옆집 소녀만이 유일한 친구인 소년이다. 이런 주인공의 설정은 이제까지 우연하든 우연하지 않든 간에 로봇을 타게 되면서 사명감을 갖게 되는 다른 소년 히어로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주역로봇인 건담 역시 한 과학자의 노력의 결실로 태어난 사유물이나 특정 연구소 혹은 특수부대의 소유물, 또는 미지의 세계나 과거에서 온 불가사의한 유산이었던 그제까지의 로봇들과는 달리 전쟁을 위해 개발한 군의 소유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 군용병기를 우연한 사고로 인해 한 소년이 조종한다는 시작과 그로 인해 소년이 원치않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적군의 습격으로 인해 대다수의 군인들이 죽거나 다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소년들이 전쟁에 가담하는 상황은 아니메로서는 몹시도 현실적인 것이었다. 비록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영화였지만, 그 전개는 이제까지의 로봇 아니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드라마틱하고 현실적인 설정이었던 것이다.

건담이 군 프로젝트의 결과물이고 주인공인 아무로의 아버지가 건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엔지니어라는 사실은 마징가 Z에서 이어져온 '아버지(혹은 할아버지)가 만든 로봇, 조상들의 유산인 로봇을 타고 악과 맞서 싸운다.'라는 설정의 연장인 듯 싶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내포된 의미도 더 있지 않을까 싶은데, '자식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매진한 부모가 만든 로봇을 우연치 않게 그 자식이 조종하면서 스스로 성장의 도구로 삼는다.'라는 것으로,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심을 품은 체 기성 사회에 뛰어든 젊은이가 마침내 그 안에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찾아낸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다. 이러한 전개는 후일 건담의 후속작인 '기동전사 Z 건담(1985)'에도 그대로 사용되는 설정이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든 건담 MK II에서 자신이 직접 아이디어를 낸 제타 건담으로 옮겨타는 카미유나 아버지가 만든 건담에서 후일 자신이 직접 설계한 뉴 건담을 타게 되는 아무로의 모습은 성장과 독립이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마침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아무로를 포함한 소년과 소녀들은 전쟁의 참상과, 기성 세대들의 불합리함 속에서 갈등하고 성장하게 된다. 내성적인 소년 아무로는 스스로의 처지를 가엽게 여기고 곧잘 신경질을 부리지만, 그것이 곧 어리광이라는 것을 깨달아가기 시작하며, 막 소위에 임관한 새파란 청년 브라이트도 함장이라는 중책 속에서 소년들을 다독이며 혹독한 전투를 수행해가는 과정 속에서 어리숙함을 벗고 어른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아무로를 보살피는 다정한 소녀 프라우나 얌전한 명문가의 영애 미라이, 지온공국 창시자의 딸로 공국의 반란 속에 신분을 숨긴 체 살아가는 세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조용하지만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뺀질거리는 카이와 성실한 하야토 등 다양한 인물군상은 작품의 드라마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간의 갈등과 화해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의 교감, 나아가서 적과의 교감을 통해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아무로의 경우는 동경하던 여인 마틸다 중위의 희생, 전우이자 든든한 형이었던 류 호세이의 죽음, 거기에 자신의 인생에 크나큰 전기를 마련하는 적장 란바랄의 장렬한 전사, 라이벌인 샤아의 연인이자 같은 뉴타입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했던 라라아의 죽음 등 셀 수 없는 전우들과 적군의 죽음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 과정은 '우주전함 야마토(1974)'나 '은하철도 999(1978)' 등에서 볼 수 있었던 타인의 희생을 통한 삶의 성찰이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건담에서는 이러한 죽음이 교훈을 주는 장치라기보다는 비정한 현실을 깨닫게 하는 장차라는데에서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좀 더 높은 연령층을 상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건담이라는 작품의 세계에서 그려지는 어른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삐뚤어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마치 방황하는 사춘기의 소년이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과도 같았다. 즉, 교훈을 일깨워주는 과거의 아동용 아니메에서 독립적인 개성과 가치관을 가지려는 청소년들의 생각을 대변한 시각의 전환이 작품에서 행해진 것이다. 죽음과 희생, 그리고 이기적인 어른들의 틈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현실을 깨닫고 일어서게 된다.

ⓒ SUNRISE · SOTSU Agency

건담 시리즈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바로 여성이다. 그 어느 로봇물보다 여성에 대한 비중이 컸던 이 작품은 주인공이 끊임없이 여성을 동경하고 여성에 의지한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외로운 십대의 모성결핍증에서 비롯된 것 같은 이 모습은 이후 토미노 감독의 작품에서 하나의 테마로 자리잡게 된다.


더이상 들러리가 아닌 살아있는 적의 등장, 붉은 혜성

담의 이야기에서 또다른 중요한 또다른 관점은 주인공들이 속해 있는 지구연방군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적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온공국의 이야기 역시 비슷한 무게를 두고 진행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로봇물이 주인공측의 인물들의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두면서 상대편 측의 이야기에는 소홀했던 반면, 건담은 지온공국의 이야기에 상당한 비중을 쏟으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상대적인 시각을 제공하게 된다.

에피소드 상에서 지온공국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이전처럼 주인공들이 악당을 쳐부수는 로봇물에서의 흔한 전개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갈등 속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의미하고 있었다. 1화에서 사이드 7에 침투한 자쿠의 조종사들이 건담을 탈취하기 위한 호승심을 부리는 것이나 건담의 성능을 보고 경악에 떠는 것 같은 모습은 개성없는 악당 엑스트라가 아닌 하나의 인간적인 모습인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작품 내내 계속되는데, 지온군이든 연방군이든 이렇게 두려움이나 분노와 같은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확실히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건담에서 그 누구보다 인상깊은 상대편 캐릭터는 바로 붉은 혜성이라 불리는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미남자라고 할 수 있다.

지온공국의 창시자의 아들이었으나 측근인 데긴 소드 쟈비의 배신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집안이 몰락하고 신분을 숨긴체 살아야 했던 캬스발 램 다이쿤(샤아 아즈나블)은 복수를 위해 신분을 숨기고 지온공국의 촉망받는 에이스 파일럿으로 살아간다. 이처럼 주인공과 반대편에 서는 인물의 숨겨진 사연과 내제된 갈등은 작품의 관점을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친구이자 원수의 아들인 가르마 쟈비를 함정에 빠뜨려 아무로들의 손에 의해 죽게 만들 때 샤아가 보여준 음흉함과 복수의 감정은 오히려 아무로들을 조연급으로 전락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며, 거기에 가르마를 죽게한 원수를 화이트베이스와 건담의 탓이라 생각한 가르마의 약혼녀 이세리아가 아무로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내용 역시 주인공 위주의 에피소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방향 전개였던 것이다.

특히, 샤아의 경우는 단순하게 쓰러뜨려야할 적으로서 아무로와 대립하는 것 뿐만 아니라, 파일럿으로서의 개인적인 라이벌 의식(비록 주인공이었지만 일개 파일럿에 불과했던 아무로를 샤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한 설정이다.), 연인 라라아를 사이에 둔 연적(정확히는 같은 뉴타입으로서 라라아와 공명하는 아무로에 대한 질투)으로서의 갈등처럼 여러 측면에서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게 된다. 즉, 아무로가 샤아의 계속적인 방해 속에 적개심을 키우는 것처럼 샤아 역시 아무로에 의해 여러차례 좌절을 거듭하면서 적의를 키워가는 상대적인 갈등의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둘의 갈등은 모빌슈트의 격전 중에 아무로에게 당할 위기에 처한 샤아를 대신해 건담의 빔 세이버를 맞고 산화해버리는 라라아의 죽음에 이르러 최고조를 이루게 된다. 아무로가 정의의 편이고 항상 샤아에 의해 좌절과 아픔을 겪는 것 뿐만 아니라 샤아 역시 아무로에 의해 좌절과 슬픔을 겪으면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해를 끼치면서 벌어지는 복잡한 은원관계는 후일 제타 건담의 카미유와 제리드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아니메의 영원한 페르소나 샤아 아즈나블 (보러가기)

전장이라는 상황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와 아픔을 안겨주는 상황은 아무로와 샤아의 관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화이트베이스를 이탈하여 방황하던 아무로가 지구에서 만난 적장 란 바랄과 그의 부인 하몬 랄의 경우에도 이러한 안타까운 인과관계를 볼 수 있는데, 비록 적장이지만 그에게서 큰 영감을 얻은 아무로가 결국 전장에서 란 바랄을 쓰러뜨리면서 슬픔과 죄책감 속에 한차원 더 성장하는 장면은 드라마틱한 동시에 란 바랄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무로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고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으로 화이트베이스에 특공을 시도하는 하몬과 화이트베이스와 건담을 구하기 위해 부상을 입은 몸으로 하몬을 막고 스스로를 희생한 류 호세이의 이야기는 가슴 아픈 전장속에서 벌어지는 엇갈리는 인간의 운명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란 바랄과 하몬의 인물구도는 후일 여러 작품에서 오마쥬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선라이즈에서 분사한 본즈의 작품 '교향시편 에우레카 7'에서의 챨스와 레이의 모습을 들 수 있다.)

더이상 적은 생명이나 사고가 없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갈등하고 화를 내고 겁을 내는 인간인 것이다.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건담의 이야기는 분명히 로봇물, 아니 아니메를 성숙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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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을 가로지르는 엇갈린 운명의 실타래는 만화영화치고는 복잡한 은원관계와 인과관계를 형성하며, 각각의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병기와 로봇 사이의 딜레마

렇게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인 이야기와 실로 수많은 사람들의 에피소드와 갈등이 접목되면서 아동 만화영화의 범주를 탈피한 건담이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슈퍼로봇의 잔재는 여러 면에서 작품의 정체성을 방황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토미노 감독 스스로는 이 작품을 제대로 된 SF 만화영화로 만들고 싶었기에 원래 로봇의 등장 자체를 고려하지 않고 있었지만, 로봇 완구를 판매해야하는 스폰서의 입장에서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기도 했다. 결국 스폰서와 스탭 간의 조율 끝에 탄생한 모빌슈트였지만, 표현 상에서 리얼리티의 파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최초로 이러한 장르(이 당시에는 건담을 리얼로봇이라 부르지 않았다)를 시도한 건담이었기에 참고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로봇물일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슈퍼로봇스러운 연출을 보여줄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빔 라이플과 바주카포와 같은 총기류로 전투를 수행하는 모빌슈트는 일보 진전한 설정이었지만, 건담이 장비한 빔 세이버의 경우에는 명백히 스타워즈의 영향을 받은 설정으로, 병기로서의 로봇과는 거리가 먼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애당초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인 이 빔 세이버 자체가 제대로 된 SF를 표방한 건담과는 맞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당시 SF에 대한 개념이 그 정도 밖에 발전하지 못했던 환경 탓도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스타워즈의 영향력이 강했음을 입증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특히, 스타워즈와 블레이드 런너, 그리고 에일리언 시리즈는 일본의 SF 아니메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들로, 수많은 아니메가 이 작품들의 설정을 빌려오기도 했었다.)

애초에 지온공국의 주력기로 등장한 모빌슈트 자쿠는 거의 전 시리즈를 거쳐 아무로와 건담이 상대해야할 모빌슈트로 기획되었지만,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추락하자 다양한 적의 등장으로 극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모빌슈트가 등장한 것 역시 슈퍼로봇 장르로의 일부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없었던 모빌슈트를 급작스럽게 디자인하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모빌슈트, 또는 병기의 의미가 퇴색된 (슈퍼로봇에서나 봄직스러운) 디자인들이 일부 등장하는 것은 디자인인 측면에서도 슈퍼로봇의 잔재를 떨어내지 못하는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MS들은 후일 수많은 팬들에 의해 제품 형식번호와 설계 배경과 같은 여러가지 의미가 추가되면서 병기로서의 존재의의를 부여받기는 하지만, 일부 모빌아머의 경우는 스토리에 집어넣기 위해 무성의하게 그려진 모습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했다. (특히 기이한 형상을 한 자쿠레로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건담이 사회적 현상이 되고난 후에는 이러한 레어한 모빌아머들은 일부 하드코어 마니아들에게 나름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병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절구동부 측면에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메커니즘과 구도를 보여준 것 역시 지금에 와서 보면 리얼로봇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었지만, 당대의 현실적인 작화기술을 감안했을 때 79년에 제작된 이 작품에 그 정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무리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 외에도 무중력의 우주공간에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MS에 대한 이론적인 뒷받침 역시 당시로서는 전무했으며, 이러한 여러 부족함은 후일 제타 건담에 이르러 대부분의 현실성을 확보하게 되기도 한다.

스폰서인 완구업체 크로바의 압박도 병기로서의 로봇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주역메카로서 상품화를 고려하고 있던 건담에 대한 스폰서의 요구사항은 당시 인기를 끌고 있었던 변신 합체로봇으로서의 기능이었다. 변신 합체라는 컨셉자체가 현실적인 병기의 이미지와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고, 그 때문에 고연령대의 작품을 만들고 싶던 토미노 감독이 애초에 배제한 컨셉이었지만, 첫방의 시청률 추락과 완구판매의 부진이 겹치면서 다급해진 크로바의 압력은 건담에게 이러한 슈퍼로봇의 아이덴티티를 부여시키게 한다. 건담에게 도입되는 코어파이터 시스템은 완구에 변신합체 시스템을 부여하고자 한 스폰서의 아이디어였으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G 아머 시스템을 도입하여 전차나 우주선의 형태로 건담의 일부 파츠를 활용하는 아이디어 등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짜맞추기식 변신합체 컨셉은 당연히 아이들에게는 먹혀들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콤배틀러 V나 볼테스 V에서처럼 각 파츠가 또다른 변형을 통해 완벽한 로봇으로 변신합체하는 모습이 아닌, 건담과 G아머의 밋밋한 합체 시스템은 완구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형세였던 것이다.

저연령대를 위한 로봇물을 기대하던 스폰서와 고연령대를 위한 SF 드라마를 상정하던 토미노 감독간의 갈등과 견해차이는 건담에게 있어서 여러 측면에서 기존 로봇물의 범주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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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입의 등장, 그리고 건담의 참패

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던 시청률의 저하와 스폰서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슈퍼로봇의 잔재는 계속적으로 건담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었다. 특히, 야심차게 등장했던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의 경우에는 이러한 시청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르마 사후에 등장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실제,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샤아를 시리즈에서 배재하고자 하는 논의가 오고가던 중이었지만, 예상 외로 샤아의 퇴장을 반대하는 수많은 팬레터(대부분이 여성팬)가 도착하면서 시리즈 중반에 극적으로 복귀하기도 한다. (이것을 가르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좌천되었다가 다시 복귀하는 형태로 극의 전개를 부드럽게 이어가게 한 것은 스탭진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샤아의 좌천은 캐릭터의 베이스가 되는 '용자 라이딘(1975)'의 샤킨 왕자의 시리즈 중반 퇴장과 비슷한 원인 때문이었지만, 팬레터의 힘으로 다행히 샤킨의 전철을 밟지는 않았는데, 극중에서나 실제적으로나 건담의 주연급 남자 캐릭터들은 여성들의 비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었다.

시청률의 저하를 막기 위해 병기로서의 로봇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면서 다양한 로봇을 출격시켰던 시도 외에 행해졌던 또다른 시도는 바로 뉴타입이라 불리는 신인류의 등장이었다.

극 중에서 이 뉴타입은 보통의 인간이 느낄 수 없는 지각의 한계를 넘어선 인지능력으로 통상보다 빠른 대처력을 보여주는 일종의 초능력이었는데, 이 지각의 한계를 넘어선 이들은 별도의 통신장비 없이도 마치 텔레파시를 주고받듯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비록 일면이지만 다가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찌보면 뉴타입의 등장은 빔 세이버와 함께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제다이의 능력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즈음의 일본은 초능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였던터라 이러한 뉴타입의 등장에는 아무래도 여러가지 현실적인 사정이 고려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비록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등장한 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뉴타입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드라마와 새로운 주제를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기존의 올드타입인 인류가 가진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뉴타입의 존재는 '기성세대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되어라'는 청소년들을 향한 토미노 감독의 메시지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바로 새시대의 주인공인 너희들이 뉴타입이다라는 의미와 같았던 것이다. 또한, 뉴타입으로서 서로 공명하고 시공간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은 전쟁과 미움으로 얼룩진 우주세기의 시대에 있어서 한줄기 광명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뉴타입인 아무로와 끝까지 맞서는 붉은 혜성 샤아 역시 극의 종반에 이르러 뉴타입으로서의 자질을 보이며, 그 역시도 성장하게 되는 점 또한 의미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뉴타입의 이야기는 제타 건담에 이르러서는 강화인간과 그들의 비극으로 진화하며 또다시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양분이 되기도 한다. (뉴타입의 의미와 그들의 비극은 '기동전사 건담 UC' 1화에서 비스트 재단의 당주인 카디아스 비스트가 소데츠키의 군인인 스베로아 진네만에게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제껏 당연하듯이 TV 앞에 앉아서 멋진 로봇의 출격을 기다리고 있던 소년들에게 적군을 맞아 멋지게 출격하기는 커녕, 로봇에 안타겠다고 신경질을 부리는 주인공과 얼떨결에 강습용 우주전함의 승조원이 되어버린 어린 소년 소녀들의 모습은 분명 흥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전쟁 드라마적인 전개는 그 때까지의 로봇물이 매회마다 보여주었던 '주인공들의 일상→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의 음모→음모를 막기 위해 출격한 주인공과 로봇→악당 로봇과의 사투 그리고 위기→필살기로 마침내 악당을 격파'로 이어지는 로봇물의 공식을 벗어나며 시청자들에게 큰 이질감을 느끼게 하였다. 물론, 요즈음에서야 건담의 전개가 익숙한 이야기 구조일지는 몰라도, 저연령대의 시청자의 비중이 더 높던 당시 아니메의 상황에서는 그 이질감이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아닌,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비록 뉴타입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향한 청소년의 희망을 제시했지만, 전쟁의 참상과 상처뿐인 승리가 이탈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붙잡지는 못했다. 이 와중에 작화감독으로서 작품을 상당 부분을 지탱해가던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병으로 인해 시리즈 후반부터 스탭진에서 제외된 점 역시 라스트 클라이막스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대내외적인 악조건 속에 스토리는 축소되고 결국 아바오아쿠에서의 결전을 마지막으로 토미노 감독이 표방한 제대로된 SF 아니메를 향한 야심찬 시도는 상처뿐인 실패를 맞이한다. 시청률 참패, 완구판매 부진 등 건담의 끝에는 참담한 결과만이 남게된 것이다. 로봇물에서 SF를 가정한 현실적인 접근, 복잡한 인과관계와 치밀한 세계관이 적용된 전쟁 드라마, 그리고 새시대의 희망과 비전을 제시한 뉴타입의 이야기는 바야흐로 역사 속으로 서서히 묻혀가고 있었다.

('기동전사 건담(2부) - SF 로봇 전쟁 드라마의 서막' 끝.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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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1] 機動戦士ガンダム, Wikipedia Japan
[2] 기동전사 건담 - 제1화 건담 대지에 서다! 外 by 디제,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UNRISE · SOTSU Agency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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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화신은 고양이 - 80일간의 세계일주 (1976), 長靴をはいた猫, 80日間世界一周


ⓒ TOEI Animation


<정보>


◈ 감독: 시다라 히로시
◈ 작화감독: 쯔노다 코이치
◈ 제작: 도에이 동화
◈ 저작권: ⓒ TOEI Animation
◈ 일자: 1976.03.20
◈ 장르: 모험, 우화, 코미디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샤를 페로의 소설에 등장하는 장화신은 고양이를 모티브로 하여 1969년에 제작되었던 장화신은 고양이의 세번째 시리즈. 물론, 장화신은 고양이는 샤를 페로의 소설 이전에도 여러 형태로 구전되거나 판본으로도 등장해주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샤를 페로의 것으로, 아니메의 장화신은 고양이 '페로' 역시 샤를 페로의 작품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양이의 이름은 원작자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2004년 드림웍스의 '슈렉 2'에 등장하는 장화신은 고양이 역시 샤를 페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69년 개봉된 1편과 72년 개봉된 2탄에 이어 제작된 3편은 도에이 동화 창립 20주년을 기념한 작품으로 그 스케일이나 완성도 면에서 확실히 20주년 기념작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태어... 난 것으로 기억된다. 감상한지 이제 30년이 다되어가는 작품이다보니 뭐....

'알리바바와 40마리의 도적(1971)'부터 '캔디캔디(1976)', '꽃의 아이 룬룬(1979)', '마법소녀 라라벨(1980)'과 같은 소녀물을 연출하게 되는 시다라 히로시가 감독을 맡았으며, 마징가 Z 시리즈에서 작화감독을 맡았던 쯔노타 코이치가 작화감독을 맡고 있다. 이 시기는 장화신은 고양이를 디자인했던 애니메이터들의 대부 모리 야스지나 다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 오츠카 야스오 같은 도에이의 인재들이 대거 이탈하여 닛폰 애니메이션으로 터전을 옮긴 뒤라 풀 애니메이션 쪽의 완성도가 이전만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으나, 우려와는 달리 완성도는 뛰어나다.

스토리의 원작이 되는 쥴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워낙 흥미로운 어드벤쳐인지라 스토리의 재미는 이미 어느 정도 보장된 셈이었지만, 잠수함이나 비행기, 자동차를 타고 벌이는 페로 일행과 악당들의 흥미로운 추격전은 원작보다 업그레이드된 재미를 선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형태의 이야기 전개(독특한 메카닉을 타고 주인공을 방해하는 악당과 이를 물리치는 주인공 일행)는 후일 미야자키 하야오가 유럽의 만화영화 제작사들과 합작으로 제작하게 되는 '명탐정 번개(1984)'나 '몬타나존스(1994)'의 설정과도 유사한 느낌을 준다. 도에이 동화나 미야자키 하야오들의 출발점이 같았음을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이 페로는 도에이 동화의 마스코트로 사용되면서 특별한 대표 캐릭터나 작품이 의외로 없는 (정확히 말하면 너무 많아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라이즈 하면 리얼로봇, 타츠노코 하면 히어로의 본가라고 인식하는 것과 같은 심볼이 도에이 동화에게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도에이 동화의 마스코트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참, 80일간의 세계일주는 86년 11월 21일 패미컴 게임으로도 나와주셨다고 한다.

☞ [FC]長靴をはいた猫 世界一周80日大冒険 (장화신은 고양이 세계일주 80일 대모험) by 적묘, 적묘의 게임과 추억 (보러가기)

ⓒ TOEI Animation



<참고 사이트>

[1] 장화신은 고양이(長靴をはいた猫) 1969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2] 장화삼총사(ながぐつ三銃士) 1972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80일간의 세계일주(80日間世界一周) 197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 Anima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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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찾아 삼천리 (1976), 母をたずねて三千里 / 3000 Leagues in Search of Mother


ⓒ NIPPON ANIMATION Co. Ltd.


<정보>

◈ 원작: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
◈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 각본: 후카자와 카즈오
◈ 스토리보드: 타카하타 이사오, 토미노 요시유키, 오쿠다 세이지, 쿠로다 요시오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코타베 요이치
◈ 장면설계/레이아웃: 미야자키 하야오
◈ 미술감독: 무쿠오 타카무라
◈ 음악/주제가: 사카다 코이치 / 오오스기 쿠미코 (노래)
◈ 기획/제작: 닛폰 애니메이션 / 모토하시 코이치
◈ 제작사: 닛폰 애니메이션, 후지 TV
◈ 저작권: ⓒ NIPPON ANIMATION Co. Ltd.
◈ 일자: 1976.01.04
◈ 장르: 드라마, 세계명작
◈ 구분/등급: TVA (52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19세기말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제노바. 진료소를 운영하는 가난한 가족의 둘째 아들인 마르코 롯시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9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품팔이로 집안일을 돕는 성실한 소년이다. 하나 뿐인 형 토니오는 기관사가 되기 위해 철도학교에 입학하여 집을 떠나있고, 엄마인 안나마저도 돈을 벌기 위해 대서양 건너 멀리 떨어진 남미의 나라 아르헨티나로 떠가게 되었다. 언제나 어머니가 보내오는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르코이지만, 왠일인지 이번에는 기다리던 어머니의 편지가 오지 않고, 매번 어머니가 보내주던 생활비마저도 끊기게 된다.

어머니가 그리운 소년 마르코는 마침내 머나먼 아르헨티나로 직접 어머니를 찾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때마침 마을에 공연을 온 펩피노 인형극단이 아르헨티나로 공연을 가게 된다는 소식을 들은 마르코는 펩피노 인형극단에 숨어 아르헨티나로 가는 배에 밀항을 시도하게 되는데...


<소개>

ⓒ NIPPON ANIMATION Co. Ltd.

'플란다스의 개(1975)'에 이은 세계명작극장 시리즈 제2탄.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에 삽입된 짧은 에피소드를 모티브 삼아 새로운 캐릭터들과 이야기거리를 집어넣어 오리지널리티가 강화된 새로운 명작극장 시리즈가 되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1974)'로 세계명작극장 탄생의 신호탄을 알린 타카하타 이사오가 연출을 맡았으며, 역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서 알프스의 느낌을 실감나게 재현해낸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시금 레이아웃을 맡아 멋진 세계를 구축해내었다. 또한, 코바야시 시치로와 함께 일본 만화영화의 양대 미술감독으로 추앙받는 무쿠오 타카무라가 플란다스의 개에 이어 이번에는 미술감독으로 참여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더더욱 높여주었다.  특히, 이 작품의 콘티에는 방랑의 콘티맨으로 명성 높던 젊은 날의 토미노 요시유키도 참여하게 되는데, 그의 작품 세계가 SF 로봇물에만 한정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존재인 엄마가 멀리 떠나 그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자 주인공 소년이 스스로 어머니를 찾아 머나먼 여정에 오른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를 다시금 일깨워준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애절한 주제가와 함께 매번 엄마의 흔적을 찾아 안타까운 여행길에 오르는 소년 마르코의 여정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강한 감정이입과 동질감을 주는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지중해 유럽과 중남미를 완벽하게 이식한 모습으로 서정성과 함께 이국적인 정취가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 되었다. 클라이막스에 엄마와 재회하는 모습은 안방극장을 눈물바다에 빠지게 하였다.

극중 마르코의 고향인 제노바와 마르코의 엄마가 일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1만1천Km 정도 되는데, 이를 한국의 1리(약 400m)로 계산하면 대략 3만리에 가깝다. 하지만, 일본의 1리는 우리의 1리에 약 10배에 달하는 길이이기 때문에 삼천리가 원 제목인 것. 이것이 국내에 방영되면서 일본의 거리단위를 한국의 거리단위로 수정하는 과정에서 삼만리가 되었다. 당시 국내에 방영된 일본 만화영화의 완벽한 한글화의 하나의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오오스기 쿠미코의 애절한 주제가는 한국에서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이지혜 양이 불렀는데, 쿠미코의 필링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정말 소녀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듯한 애절한 창법으로 인해 역시 원곡의 아우라를 뛰어넘는 번안 주제가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확실히 창법이나 표현력에 있어서만큼은 한국 가수들이 우위가 아닌가 싶다. 이지혜 씨는 전작인 플란다스의 개의 한국방영판 주제가도 불렀다.

4년 뒤인 1980년에는 TV 시리즈를 재편집한 100여분 길이의 극장판으로 제작되어 개봉되기도 하였으며, 81년에는 정수용 감독연출, 선우 프로덕션 제작의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정수용 감독의 작품의 경우에는 전쟁통에 헤어진 엄마를 찾아나서는 소년 준호의 모험이야기로, 닛폰 애니메이션의 엄마찾아 삼만리와는 내용과 전개 등이 다른 이야기이다. 또한, 1999년에 다시 한번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극장판으로 제작되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세계명작극장 시리즈 중 하나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한국판 엄마찾아 삼만리 (ⓒ 선우프로덕션)


<참고 사이트>

[1] 母をたずねて三千里, Wikipedia Japan
[2] 엄마찾아 삼천리(母をたずねて三千里) 1980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From the Apennines to the Andes (TV), 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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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


<스탭>

◈ 감독: 호소다 마모루
◈ 각본: 오쿠데라 사토코
◈ 제작: 매드하우스


<시놉시스> 

학 올림피아드에 나갈 뻔(?)할 정도로 발군의 수학 실력을 가지고 있는 코이소 켄지는 고교 2년생으로, 동급생인 사쿠마와 함께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아르바이트에 한창이다. 그 아르바이트란, 요즘 일상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각광받고 있는 가상현실 시스템인 OZ의 시스템 유지보수에 관계된 일이다. 컴퓨터로 한창 작업 중이던 어느날, 같은 학교의 히로인이자 교내 남학생들의 우상인 나츠키 선배가 찾아와 한가지 아르바이를 제안한다. 그 아르바이트란 다름이 아니라 나츠키와 함께 시골에 있는 그녀의 외증조 할머니 댁에 내려갔다 오는 것.

평소에 그녀를 흠모하고 있던 켄지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하지만, 이 아르바이트에는 한가지 숨겨진 내막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켄지가 나츠키의 약혼녀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동경대 출신의 유학생으로 위장을 해야 한단다. 신랑감을 데려오라는 엄격한 외증조 할머니의 엄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나츠키가 궁여지책 끝에 생각해낸 아이디어에 켄지는 울며 겨자먹기로 남친 행세를 하게 되고... 당황한 켄지를 그녀의 가족들이 따뜻하게 맞이해준다.

나츠키의 고향집에서의 정감 넘치는(?) 저녁이 끝난 어느날 밤, 잠을 못이루는 켄지에게 갑자기 문자메시지 하나가 전송된다.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엄청난 수의 배열을 본 켄지는 특유의 수학실력을 발휘하여 암호를 풀고, 답장을 날리게 된다. 뿌듯해하며 잠드는 켄지. 그러나, 그것은 거대한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는데...


호소다 마모루의 연타석 홈런, 시대가 바뀌기 시작하다

2007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 그의 등장은 단순하게 인기 감독 한명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섬세하고 감각있는 연출과 호소력 있는 드라마는 일본 아니메가 그토록 찾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그가 시달녀 연출 직전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출 중에 있었고, 도쿠마 서점의 경연진 교체와 함께 석연치 않은 강판을 당했으며, 시달녀를 통해 스튜디오 지브리와 '게드 전기'에 멋지게 한방(물론, 개봉관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게드 전기'가 흥행에 있어서는 훨씬 큰 수익을 거둬들였지만, 팬과 평단은 만장일치로 호소다 감독에게 손을 들어줌)을 먹였던 터인지라 그 의의는 남달랐다고 하겠습니다. 바로 미야자키의 바톤을 이어받은 새로운 후계자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 말입니다.

이러한 팬들의 과도한 기대 속에 그로부터 2년 뒤 호소다 마모루의 두번째 작품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여름 극장가에 잘 어울릴 것 같은 한여름의 전원을 배경으로 한 가족들의 이야기와,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휴대폰과 컴퓨터, 그리고 네트워크와 가상현실이 어우러진 디지털 세상 OZ를 결합한 새로운 이야기의 제목은 바로 '썸머 워즈' 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썸머 워즈는 다시금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연출력을 팬들에게 확인시키면서 그를 여름 극장가의 기대주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리를 메워줄 인물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확인시켜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섬세한 연출, 서정성과 어드벤쳐를 동시에 보여주는 다양한 재미는 확실히 미야자키의 전매특허 중 하나라고 하겠는데요. 과연 썸머워즈를 통해 그는 진정 아니메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떠오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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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어린 현실과 마법같은 가상현실을 오가는 두가지 맛의 이야기

교 2년생이며, 평범한 일본의 핵가족 환경 속에 살아오던 순진한 소년 켄지가 수많은 친족들이 한 집에 모인 나츠키의 외증조 할머니 사카에 여사댁으로 들어오는 여정은 그에게 있어서 문화적 충격입니다. 켄지는 아버지가 지방출장으로 집을 비우신데다가, 어머니마저 일에 바쁜 전형적인 맞벌이 가족의 외동 아들로, 이시대 청소년들의 외로움을 대변하고 있는 소년인데요. 그런 소년에게 있어서 수많은 친척들과 아이들이 모인 왁자지껄한 나츠키의 가족은 시끄럽지만 정신없고 어색하지만 한편으로는 푸근한 느낌입니다. 즉, 사람냄새가 난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푸근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은 켄지만이 아닙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나츠키네 식구들 역시 이 외증조 할머니 댁의 귀경을 통해 안식과 휴식을 얻는 셈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작품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새 잊고 사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의 소중함을 이 작품은 밑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에 큰 힘을 발휘하는 것 역시 바로 이 가족의 힘인 것이죠.

작품의 또다른 배경이자 가상현실 시스템인 OZ는 가족적인 현실의 분위기와는 또다른 세상입니다. 가상현실에 접속하여 일상생활에 관계된 모든 것을 해갈 수 있는 OZ 시스템은 미래의 편리한 세상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런 세상이 가져다 줄 몇 가지 부작용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보안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 속절없이 무너지는 시스템의 취약성은 네트워크 시스템의 크나큰 약점이기도 하지요. 특히, 근래 등장한 스마트폰과 함께 우리들 역시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으로의 진화를 꿈꾸고 있습니다만, 그와 동시에 보안이 뚫리는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수많은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심각한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아킬레스 건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디지털/네트워크라는 신기술에 대한 부작용을 이 작품에서는 또다른 이슈로 다루고 있지요.

이 작품은 이처럼 현대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생활패턴과 생활아이템이 자칫 위기에 닥쳤을 경우, 이것을 고전적인 가족간의 단합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해결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현실과 가상현실의 두 갈래 이야기로 나누어 진행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별개였던 두 이야기는 조금씩 같은 점을 향해 치닫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실 속의 대가족은 마침내 가상현실에서도 서로 힘을 합치게 됩니다. 마치 팀 플레이를 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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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드라마스러운 전개, 맛깔스럽되 특별하지는 않은 이야기

지의 실수로 인해 뚫린 보안시스템과 속칭 '러브머신'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해킹 프로그램이 전 세계의 시스템을 마비시키자, 이것은 곧 현실상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더불어 사카에 여사의 90세 생신을 준비하고 있는 나츠키 네 식구들에게는 또다른 문제가 닥치죠. 90세 생신 축하를 위해 많은 이벤트를 준비했건만 가문의 남자들이 OZ에서 기인한 각종 사회 기반 시설의 오동작으로 인해 회사를 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도 시스템이 마비되고, 곳곳에 교통 정체가 시작되며, 거짓 화제경보가 여기저기 발생합니다. 시스템의 거의 모든 것을 OZ에 맡기고 있는 작품의 세계에서 OZ의 이상은 곧 세계의 이상입니다.

게다가 이 '러브머신'이라 불리는 해킹 AI가 다름 아닌 나츠키네 가족들의 일원이면서도 식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불청객 와비스케란 인물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유서깊은 '진노우치 가문'인 나츠키의 가족들은 할머니의 생신잔치가 잘못되는 것 이상의 위기에 닥치게 됩니다. 할머니의 장녀이자 집안의 안주인이기도 한 마리코 여사만이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여전히 사카에 여사의 생신 준비가 차질이 생기는 것에 대한 걱정만 할 뿐이지요. 그러나, 할머니의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OZ에 연결한 건강상태 전송 시스템이 OZ의 고장과 더불어 이상 상황을 발생시키면서 할머니의 신변에도 위협이 닥치게 됩니다. 이제 OZ의 문제는 나츠키들에게도 커다란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죠.

OZ에서 벌어진 전 세계적인 위협과, 진노우치 가문에 닥친 가족적인 갈등은 결국 온 가족과 이방인이었던 켄지가 힘을 합쳐 해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묘사되는 가상현실의 방대한 모습과 컴퓨터 아바타 간의 힘있는 액션씬은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흥미로움을 보여줍니다. 스케일 큰 가상세계와 아바타들간의 격투 외에도 현실에서 나츠키 가족들이 보여주는 일상의 디테일도 역시 압권이죠. 이러한 것들이 아무래도 호소다 감독을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하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호소다 감독의 그것은 좀 더 코믹하고 젊은 세대다운 생명력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대미를 장식하는 인공위성 궤도 수정하기 씬은 상당한 긴박감을 선사하는데요. 이런 수준의 연출은 확실히 범상한 연출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갈등을 풀어나가는 모습과 결과는 시달녀에 비해 구태의연하고 여운이 없어 평범한 느낌을 줍니다. 가족 드라마로서 멋진 전개와 깔끔한 결말을 보여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 전형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



호소다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작품

실 속의 이야기와 가상현실의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가며 가족의 힘, 그리고 가치를 보여준 썸머워즈는 확실히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호소다 감독 역시 그저 그런 범재라고 할 수 없음은 확실한 것 같구요. 분명 앞으로의 여름 극장가를 책임질 차세대 주자인 동시에, 아니메를 이끌어갈 차세대 기대주 중 하나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듯 합니다. 능숙하고 세심한 디테일과 그 속에서 보여지는 개그는 몹시 만화적이면서도 인간적입니다. 그와 함께 CG를 통해 보여준 발군의 액션감각 역시 앞으로 연출할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을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하구요.

반면, 이번 썸머워즈는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 자체가 상당히 익숙한 전개인데다가 캐릭터의 매력 또한 시달녀만 못하여 전반적으로 임팩트가 그리 크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히로인인 나츠키의 경우는 클라이막스 이전까지 그닥 큰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구요. 켄지 역시 워낙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개성 넘치는 다양한 가족에게 둘러 쌓이면서 주인공임에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대가족 덕분에 캐릭터 별로 비중을 두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일까요. 비중을 떠나 주연급 캐릭터의 입체적인 성격 부족은 다소 진부한 극의 스토리를 더 평면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썸머워즈는 호소다 감독의 장기와 범상치 않은 연출가로서의 자질을 보여준 작품인 동시에 호소다 감독의 한계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연출가로서는 훌륭한 실력과 감각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스토리 텔링에서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고 할까나요. 하지만 아직 호소다 감독의 성장은 진행중이기에 여전히 우리는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다음에는 얼마만큼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까요?

ⓒ 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


아차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 이번 썸머워즈에 등장하는 가상현실 시스템인 OZ는 공교롭게도 현재 LG 텔레콤의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인 OZ와 같은 이름입니다. 둘다 모바일과 인터넷을 사용하여 현실에서 하던 여러가지 일을 대신해주는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군요.

근래 많은 아니메가 그러하듯 이번 썸머워즈에서도 다수의 한글이 작 중에 등장합니다. OZ의 시스템에서 등장하는 세계의 각종 언어에 한글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예전에 비해 한국에 대한 인식이 나아진 것일까요. 적어도 요즘의 아니메가 과거와는 달리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음은 분명한 듯 해보입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주의 TTB 리뷰 2010년 8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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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시리즈 목차>


 UFO 로봇 그렌다이저 (1975), UFO ロボ グレンダイザー / UFO Robo Grendizer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정보>

◈ 원안: 나가이 고, 다이나믹 프로
◈ 총감독: 카츠마타 토모하루
◈ 스토리보드: 카츠마타 토모하루, 이시구로 노부로
◈ 각본: 안도 토요히로, 후지카와 케이스케 外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아라키 신고, 코마츠바라 카즈오
◈ 미술감독: 츠지 타다나오
◈ 음악: 키쿠치 슌스케, 사사키 이사오 (주제가)
◈ 제작: 도에이 동화, 다이나믹 프로, 후지 TV
◈ 저작권: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 일자: 1975.10.05 ~ 1977.02.27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74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베가성(星)의 난폭한 정복왕 베가 대왕의 군대에 의해 처참히 짓밟힌 프리드성. 프리드성 최후의 생존자이자 왕족인 듀크 프리드 왕자는 프리드성과 베가성의 기술이 합쳐진 원반 로봇 그렌다이저를 탈취하여 극적으로 태양계로 탈출하게 된다. 일본 후지산에 불시착한 프리드 왕자는 우주 과학 연구소의 소장 우몬 박사에 의해 구조되고, 프리드 왕자의 사정을 들은(프리드 왕자는 지구에 불시착하는 과정에 인터넷의 일본어 교육 사이트에 접속하여 생활 일본어를 배웠다고 전해진다...쿨럭, 결제는?) 우몬 박사는 그렌다이저를 자신의 연구소에 숨기고 프리드 왕자를 자신의 양자로 삼게 된다. 지구에 (불법) 체류하게 된 프리드 왕자의 이름은 다이스케 우몬. (신분증이 없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다이스케는 연구소 근처의 단페이씨 농장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게 된다.

한편, 마징가 Z의 조종사로 질풍노도의 십대를 보냈던 카부토 코우지는 (그레이트 마징가에 의해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고는 쓸쓸히) 미국으로 건너가 NASA에서 UFO 연구를 하다가 자신이 직접 설계한 UFO인 'TFO'를 타고 일본으로 되돌아 온다. 때마침 프리드 왕자를 쫓아 수년간 우주를 헤매던 베가 대왕은 지구의 존재와 프리드 왕자의 행방을 알게 되고, 휘하의 군대에게 지구 침공을 명하게 된다. 블라키 장군과 간달 장군이 이끄는 베가성의 원반수가 지구로 침공을 계시하자 (몇 년 쉬는 바람에 감각이 무디어진) 코우지가 (스타일에 맞지 않게 대화로 해결하겠다며) TFO를 타고 맞이하러 나갔다가 원반수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코우지, 바로 그 때 오랜 세월 연구소 지하 속에서 잠자고 있던 원반로봇 그렌다이저가 듀크 프리드와 함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개>

'마징가 Z(1972)'와 '그레이트 마징가(1974)'를 통하여 몇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그레이트 마징가를 기점으로 도에이 동화에서 제작되는 마징가 시리즈는 나가이 고와 다이나믹 프로가 비록 원작을 맡았으되, 실제로는 스폰서인 포피와 도에이의 기획과 요청에 맞춰 나가이 고와 다이나믹 프로가 구상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싶다. 한마디로 나가이 고나 다이나믹 프로의 의지보다는 도에이 동화의 스타일이 더 강한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후의 작품들이 완성도나 흥행면에서 결격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슈퍼로봇 장르에서, 특히 마징가 시리즈에서 나가이 고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었다.

75년 3월, '이것이 UFO다! 하늘을 나는 비행접시'를 통하여 UFO에 대한 이야기로 프로모션을 시작한 UFO 로봇 그렌다이저는 마징가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UFO와 로봇 아니메를 결합한 이색적인 작품이었다. 마징가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그렌다이저의 컬러링이나 무기 시스템의 유사함을 제외하고는 디자인 적으로도 상당한 수정이 가해졌다. 오히려, 로봇의 디자인보다는 작품에서 조연격으로 출연하는 마징가 Z의 히어로 카부토 코우지의 존재가 마징가 시리즈와의 끈을 이어준다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후속작이라기보다는 스핀오프에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외계별에서 지구로 탈출한 왕자 지크프리드와 그렌다이저의 설정은 영화 '슈퍼맨'이나 72년도에 도에이에서 방영을 했던 '아스트로 강가(1972)'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또한 정체를 숨긴 체 숨어사는 망국의 외계인 왕자라는 로맨틱한 설정은 열혈소년인 카부토나 마초적인 테츠야에 비해 훨씬 여성들(이라 쓰고 여자아이들이라 읽는다)에게 어필할만한 모습이기도 했다.

원반 비행체와 합체된 형태로 운용되다가 원반에서 사출되어 로봇 형태로 싸우는 컨셉은 마징가 시리즈의 비행용 보조장비 스크란다 시스템에 비하여 일보 향상된 전투 시스템이며, 동시에 겟타로보 시리즈에 비해서 보다 더 현실적인 합체 방식이었다. 극 후반에는 원반 비행체 스페이자 외에도 더블 스페이자, 마린 스페이자, 드릴 스페이자 등 특정 환경에서 운용이 가능한 보조 무장의 등장으로 극의 흥미를 더했다.

특히, 이 그렌다이저의 의의는 해외에서 대성공한 최초의 로봇 아니메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골도락'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유럽에 수출되어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기록한 시청률 100%(믿거나 말거나)는 앞으로도 결코 나올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이다.

☞ 전유럽을 강타했던 그렌다이저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 위원회 (보러가기)

이탈리아에서는 팬 필름으로 3D 그렌다이저 영상이 제작되고 있으니 훗날 그렌다이저 실사영화가 나온다면 그것은 아마도 헐리웃이 아닌 유럽에서 일지도 모른다.

C4DTeam에서 제작한 그렌다이저, 아니 골도락 3D 필름.


물론, 한국에서도 그렌다이저에 대한 사랑은 각별(?) 했다. 비록 삐뚤어진 사랑이었지만.

☞ 괴작열전: 달려라 마징가 X - 표절만화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by 페니웨이™, 페니웨이™의 In This Film (보러가기)

마징가 시리즈라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일까? 그렌다이저의 표절작 마징가 X는 공교롭게도 마징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UFO 로봇 그렌다이저 대 그레이트 마징가 (1976)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정보>

◈ 감독: 카사이 오사무
◈ 각본: 후지카와 케이스케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
◈ 음악: 키쿠치 슌스케, 와타나베 츄메이, 사사키 이사오 (주제가)
◈ 제작: 도에이 동화, 다이나믹 프로
◈ 저작권: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 일자: 1976.03.20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TV 시리즈로 그렌다이저가 방영 중일 때 개봉한 극장판 로봇 대전 시리즈. 그렌다이저의 이야기에 그레이트 마징가가 등장하는 전개인지라 속편이라기보다는 스핀 오프에 가까운 작품이다. 지구로 침공한 베가군이 박물관에 전시된 그레이트 마징가를 이용하여 그렌다이저와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로, 전작의 주인공인 테츠야는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옆에 세워진 마징가 Z는 그냥 그대로 세워진 체로 끝난다는... 카부토, 뭐하는 것이냐!


 그렌다이저, 게타로보 G, 그레이트 마징가 · 결전! 대해수 (1976)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정보>

◈ 감독: 아케히 마사유키
◈ 각본: 타카히사 스스무
◈ 작화감독: 키노 타쓰지
◈ 미술감독: 츠지 타다나오
◈ 음악: 키쿠치 슌스케, 와타나베 츄메이, 사사키 이사오 (주제가)
◈ 제작: 도에이 동화, 다이나믹 프로, 후지 TV
◈ 저작권: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 일자: 1976.07.18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마징가 시리즈의 크로스오버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그레이트 마징가와 그렌다이저에 겟타로보까지 등장하여 극장을 찾은 어린이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특히, 각 작품의 주역 로봇 뿐만 아니라 조연급의 로봇들이 모두 등장하면서 작품 자체가 도에이 로봇 아니메의 거대한 축제 형태가 된다.

이제까지의 마징가 크로스오버 작품들이 그러하듯 서로 간의 대결이 아닌, 정체불명의 괴수에 맞서 모든 마징가 군단이 힘을 합쳐 싸운다는 내용으로 시리즈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참고 사이트>

[1] UFO Robo Grendizer (TV), Anime News Network
[2] UFO ロボ グレンダイザー, Wikipedia Japan
[3] Grendizer, Wikipedia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DYNAMIC Pro · TOEI Anima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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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스탭>

◈ 감독: 토미노 요시유키
◈ 원작: 토미노 요시유키, 야다테 하지메
◈ 제작: 선라이즈


<서문> 

2009년에 30주년을 맞이한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는 이제 아니메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로, 전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장르 문화로 성장했습니다. 아니메, 프라모델, 게임, 코믹스, 소설 등 다방면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 기나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이 시리즈는 반다이와 선라이즈에게 막대한 부가가치를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리한 시리즈 강행으로 인한 수차례의 실패, 크리에이터의 좌절, 팬들의 수많은 질책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지요. 시리즈 자체가 어떻게 보면 아니메의 한축을 지탱하는 역사이자, 작품을 창조해낸 스폰서 반다이, 제작사 선라이즈, 창조자 토미노 요시유키, 야스히코 요시카즈 등의 삶의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본 글은 이런 건담 시리즈의 전반적인 흐름을 연대기 형태로 이야기해보는 건담 연대기의 첫번째 시리즈로서, 퍼스트 건담의 등장배경(과거)과 그 전개(현재), 그리고 파급력(미래)에 대해서 글쓴이의 좁은 소견을 밝혀본 글이 되겠습니다.
 
해당 글을 쓰기에는 너무도 지식이 일천한 관계로 많은 분들의 포스팅과 웹 상의 자료를 참고로 하였으며, 이에 대해 레퍼런스 출처를 밝혔으니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해당 레퍼런스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은 연대기 형태의 글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경어체가 아닌 반어체로 내용이 진행되오니 읽으시는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레이지버스의 등장과 아니메 세대의 성장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아니메는 새로운 전기를 맞기 시작한다. 마츠모토 레이지와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SF 아니메 '우주전함 야마토(1974)'로부터 시작된 레이지버스(마츠모토 레이지가 창조해낸 세계관과 그 작품을 이르는 명칭)는 '은하철도 999(1978)'에 이르러 정점을 찍으며 아니메의 수준을 한단계 격상시키기에 이르른다. 작품 전반에 이르는 성숙해진 드라마적 전개는 아니메를 시청하던 어린이들이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시점에 발 맞추어 그 눈높이를 충족시키면서 상상력과 모험심, 교훈과 재미를 선사하는 아동 만화영화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성숙해진 드라마 외에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전까지의 만화영화에 비해 훨씬 더 치밀해진 설정과 고증이다. 당시의 SF 아니메는 '철인 28호(1963)'를 거쳐 '마징가 Z(1972)', '콤배틀러 V(1976)'로 대표되는 슈퍼로봇 아니메(글에서는 리얼로봇 아니메와의 구분을 위해 슈퍼로봇 아니메로 부르겠음)와 '사이보그 009(1966)'를 거쳐 '갓챠맨(1972)', '캐산(1973)'으로 이어지는 히어로물(여기에는 울트라맨, 가면라이더와 같은 특촬물도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았다)로 크게 나뉘어지고 있었는데, 이 모두 과학적인 논리보다는 만화영화적인 관점의 접근방식으로 과학적 근거라는 것이 큰 의의를 가지지 못했던 실정이었다.
 
그러나, 야마토에 이르러 등장한 우주함선이라는 설정은 이전의 SF 아니메가 보여주던 것에 비해 보다 더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성장한 청소년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함선 내부의 세심한 디테일, 다시 말해 함교, 조종석, 레이더 관제실, 함포실, 기관부, 의무실 등에 이르는 설정부터 함재기에 이르기까지... 비록 2차대전의 해군 전함이나 군용병기들을 모티브로 삼은 설정이었으나, 그 디테일과 실제성은 기존의 아니메와는 격을 달리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비록 은하철도 999에 이르러서는 기차가 우주를 여행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레이지버스의 등장은 확실히 기존의 아동용 만화영화보다는 한차원 높은 과학적 설정으로 마침내 '마니아'라는 단어를 아니메에 심어놓기 시작한다. (동시기에 등장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 역시 알렉산더 케이의 '살아남은 사람들'이란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훨씬 구체화되고 논리적인 미래세계와 미래 장비들을 그려냄으로써 성장한 아니메 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마니아는 단순한 팬을 넘어서 좀 더 해당 장르에 열정적으로 심취한 이들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열정은 대게 연령대가 높은 이들이 갖게 되는 속성이기도 하다. 즉, 마니아가 생겼다는 것은 아니메의 시청세대가 기존의 (10세 미만) 어린이를 넘어서 10대 청소년에게까지 넓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의 세대에서야 만화영화를 감상하는 청소년층, 청장년층이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일은 일본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60년대 후반부터 아니메를 보고 자라 아니메에 익숙해진 아니메 세대가 중,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니메를 시청하고 있었고, 레이지버스는 그들의 눈높이에도 맞는 드라마와 과학적 설정으로 마침내 그들을 작품의 마니아로 바꿔놓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마니아의 성장은 79년 방영을 시작하는 한편의 로봇 아니메가 화제작을 넘어 하나의 신세기를 열고, 마침내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잡게 하는 중요한 토양이 된다.

ⓒ 2010 SPACE BATTLESHIP ヤマト製作委員会

2010년에 예정된 야마토 실사 프로젝트 포스터. 아니메史에서 야마토의 위치는 SF 영화史에서 스타워즈에 비견될 만한 것으로, 이 작품을 통해 아니메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 - 로봇도 소년과 같이 성장하다

니메의 변화와 더불어 70년대 중반에 들어 로봇 아니메 장르 역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로봇 아니메의 전개란 지구를 정복하려는 사악한 악당에 맞서 정의로운 주인공과 그 동료들의 장렬한 전투를 그려낸,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단선적인 이야기 공식을 따르고 있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장르인 이상, 그 이상의 갈등 구조를 담아 극을 복잡하게 끌고 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에이와 선라이즈의 합작으로 태어난 '초전자로보 콤배틀러 V(1976)'에 이르러 이 공식은 조금씩 다변화되기 시작하였다.
 
'거인의 별(1968)'과 같은 스포츠 장르의 아니메에서 드라마틱한 연출을 선보였던 나가하마 타다오가 연출을 맡은 콤배틀러 V에서는 악역에게도 사연을 부연하는 좀 더 성숙해진 작품관이 도입된다. 거기에 이전까지의 로봇 아니메의 메카 액션을 한단계 진보시킨 합체 변신과정과 다양한 무기들의 등장으로 마징가를 보고 자랐던 어린이들은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이 작품에서 찾아내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과학적 논리에 맞지 않는 설정들이었으나 당시 이런 복잡한 무기 시스템은 실로 센세이셔널한 설정이었던 것이다. 이후 볼테스 V와 투장 다이모스로 이어지는 나가하마 감독의 소위 '낭만로봇 트릴로지'는 명실공히 로봇 아니메를 아니메 최고의 히트 장르로 올려놓기에 이른다.
 
한편, 야마토의 대성공으로 고무된 토에이는 마츠모토 레이지에게도 로봇 아니메를 의뢰하기에 이르는데(선라이즈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었을 듯 싶다.), 이렇게 하여 등장한  '혹성로봇 당가드 A(1977)'는 비록 레이지의 전작인 야마토나, 도에이의 다른 로봇 아니메에 비해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지만, 마츠모토 레이지의 스타일이 가미된 성숙하고 현실감 있는 전개(완벽한 조종술을 익히기 위해 훈련을 거듭하는 주인공의 일상과 갈등이 작품의 초반 에피소드를 차지)로 이전보다 훨씬 깊어진 로봇 아니메의 접근방식을 보여주었다.
 
반면, 콤배틀러 V보다 1년 먼저 '용자 라이딘(1975)'의 연출을 맡았으나 시청률 저하로 인해 나가하마 감독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보조 감독으로 격하되었던 토미노 요시유키 역시 절치부심하여 '무적초인 점보트 3(1977)'를 연출한다. 점보트 3는 이제까지 도에이와 선라이즈의 합작으로 태어난 로봇물과는 달리 선라이즈가 독자적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로봇 아니메의 주도권이 선라이즈로 넘어오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이 작품은 흔히들 슈퍼로봇 아니메와 리얼로봇 아니메의 가교역할을 해주는 작품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도무지 어린이들을 위한 로봇 아니메라고는 볼 수 없는 시리어스한 설정과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장렬한 전사로 인해 당시 팬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선사하기에 이른다.
 
주인공 급의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갓챠맨 1기의 콘돌 죠,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와 파트라슈, 그리고 야마토의 오오타 함장의 죽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으례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선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죽음에 성인들도 많은 감정이입이 되는데, 어린이들은 오죽했겠는가. 그것을 토미노는 한 작품에서 주인공을 제외한 다수의 등장인물들을 전사시켜 버리는 파격을 선보였으며, 점보트 3의 엔딩은 악당들을 모두 물리쳐 지구의 위기를 구해낸 주인공의 희열이 아닌, 동료들을 잃고 혼자서 살아남게 된 마지막 생환자의 처절한 슬픔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로봇 아니메라고 불리는 어린이들의 전유물일 것만 같은 작품에 사용되면서 점보트 3는 아이들로 하여금 사회와 현실, 그리고 슬픔과 아픔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충격요법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당시의 정서, 아니 지금의 정서에서 봐도 아동 로봇물에서의 대량학살은 충격요법으로 무마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내용이었다. 이건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죽을 때 느낄 수 있는 수준의 슬픔은 결단코 아니었으니까. 어찌보면 당시의 토미노는 로봇 아니메라는 작품을 통해 이미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구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 로봇을 조종하는 영웅으로 싸운다는 것이 반드시 멋지고 스릴있는 모험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순간, 어느덧 아이들은 성장해 있었고, 로봇 역시 성장해 가고 있었다.

ⓒ SUNRISE · SOTSU Agency

슈퍼로봇과 리얼로봇 사이의 가교 역할이자, '몰살의 토미노'의 전조를 알린 '무적초인 점보트 3'.


새로운 시도 - 병기로서의 로봇

보트 3에 이어 '무적강인 다이탄 3(1978)'까지 시청률 사냥에 성공(점보트 3가 성공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충격적인 전개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면, - 사실 항의는 많았었다고 전해진다 - 토미노의 재기는 꽤 어려웠을지도 모른다.)한 토미노 요시유키는 세번째 작품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작사인 선라이즈 측과 스폰서에게 요청하게 된다. ([3] 참조) 비록, 현재에 이르러서야 마케팅과의 성공적인 융합사례로 손꼽히는 건담 시리즈이지만 초기에는 단순한 크리에이터의 창작 의지가 시초가 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최근의 건담 시리즈와 초기 건담 시리즈의 태생적 차이점이 자리하게 된다.)
 
건담의 팬들이라면 이제야 많이들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건담의 초기 기획단계는 로봇 아니메가 아닌 SF 우주 전쟁을 테마로 하고 있었다. 그 근간에는 후일 리얼로봇의 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우주전함 야마토의 잔상이 자리하고 있었는데([1] 참조), 제작사 측에서도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야마토의 선례와 이를 통해 전면에 드러난 아니메 세대, 즉 고연령층 아니메 팬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그로 인해 자연스레 야마토의 컨셉이 기획 단계에서 논의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토미노 요시유키와 선라이즈의 기획팀 야다테 하지메는 이 컨셉을 바탕으로 소설 '15소년 표류기'의 이야기 구조를 대입하여 우주 전쟁 속에서 성장하는 소년 소녀들의 모험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우주 함선에서 프리덤 파이터라는 우주 비행기를 타고 나와 외계인과 싸운다.'라는 설정이 초기 기획안으로 자리잡고 있을 무렵, 스폰서를 맡고 있던 완구업체 클로버가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스폰서로서 획득한 판권으로 상품화한 로봇 완구의 매출을 비즈니스 로드맵으로 갖고 있던 클로버에게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투자였던 것이다.
 
로봇을 등장시키고자 하는 클로버의 요구에 대응하여 토미노와 기획팀은 로버트 A. 하인리히의 SF 소설 '우주전사'에 나오는 파워드 슈츠, 즉 장갑복을 입은 병사의 컨셉을 제시하게 된다. (이를 제시한 이는 당시 스튜디오 누에 출신의 SF 작가로 후일 '더티페어'와 '크러셔 죠'를 집필하는 타카치호 하루카였다. [1] 참조) 그러나, 두번째 아이디어도 역시 클로버의 반대에 부딪히고 만다. 파워드 슈츠 역시 그들의 생각하는 로봇과는 거리가 먼 개념으로, 당시 로봇 완구 사업에 편중되어 있던 클로버의 시선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파워드 슈츠와 거대 슈퍼로봇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의견 사이에서 찾아낸 타협점은 바로 모빌슈트(MS: Mobile Suit)였다. 즉, 기획팀이 제시한 현실적인 병기의 모습과, 스폰서측이 제안한 거대 로봇의 교집합으로 이제까지의 로봇에 비해 훨씬 크기가 작아진 20m가 체 되지 않는 로봇이 디자인된 것이다. 기획팀은 여기에 이르러 소형화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큰 이 로봇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설정으로 부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미노프스키 입자'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었는데, 이 입자는 레이더를 교란하여 전파병기와 전파기기의 사용을 무력화시키는 입자로 이것으로 인해 근거리에서 광학 센서와 육안에 의한 식별 전투가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우주시대를 설정한 것이다.
 
☞ 우주항모와 우주전투기로 외계인과 싸우는 설정이나 파워드 슈츠와 같은 초기 기획단계의 개념은 결국, 또다른 걸작 로봇 아니메에 이르러 만개하게 된다. 후일, 기동전사 건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작이 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의 설정으로. (물론,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는지의 여부는 글쓴이의 지식 밖의 이야기이다. 다만, 건담과 마크로스 이 두 작품에 모두 스튜디오 누에가 관여하고 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듯 싶다.)

미노프스키 입자의 설정은 건담이라 불리는 작품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 정체 불명의 입자에 대한 과학적 근거나 타당성이 아닌, 로봇 간의 전투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가 기획 단계에서 행해졌다는 것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이제까지의 SF 아니메와는 달리 '왜?'라는 질문에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는 증거였고, 이전까지의 로봇 아니메와 건담을 구별짓는 중요한 차별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MS 디자인은 점보트 3에서부터 선라이즈의 작품에 참여하게 된 타츠노코 프로 출신의 오카와라 쿠니오가 맡았다. 사실, 건담의 디자인은 바로 이 점보트 3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사무라이의 갑옷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나 라이플을 장비한 로봇이라는 개념은 점보트 3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오카와라는 점보트 3에 이어 무적강인 다이탄 3의 메카닉 디자인을 맡으면서 그 기량을 토미노 감독에게 인정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실제 병기에 가까운 이미지로서의 로봇 구현'이라는 토미노 감독이 준 명제가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은 당시의 그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메카닉 디자이너'라는 전문 분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최초의 메카닉 디자이너로서 많은 후배 애니메이터들과 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는 훗날의 모습을 말이다.

모빌슈트에 영감을 주었던 하인리히의 소설 우주의 전사는 97년 로보캅, 원초적 본능의 폴 버호벤 감독에 의해 SF 블록버스터 '스타쉽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로 재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파워드 슈츠의 개념은 폴 버호벤의 영화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블리자드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해병대에서 더 근접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건담 대지에 서다 - 어른들의 전쟁에 뛰어든 소년과 로봇

차례에 걸친 논의와 협의는 점점 합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우주전투기와 소년들의 전쟁 이야기를 그릴 이 작품의 가제인 '프리덤 파이터 건보이'는 모빌슈트의 등장으로 인하여 '건보이(Gunboy)+프리덤(Freedom)'의 합성인 건돔(Gundom)을 거쳐 당시 인기를 얻고 있던 남성용 화장품 브랜드 '맨담(Mendam)'의 담(dam)이 추가되어 건담(Gundam)이라는 최종 타이틀로 결정되었다. ([1], [2] 참조)
 
모빌슈트와 미노프스키 입자, 그리고 스페이스 콜로니와 같은 설정 못지 않게 중요했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이었다. 기획단계에서 논의되었던 15소년 표류기의 컨셉은 그다지 많은 손질이 가해지지 않은 체 작품에 대입되었다. 전쟁의 한가운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뛰어든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는 이제까지의 로봇 아니메와 같이 어느 한 집단이나 국가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집단의 공통된 목표인 적의 타도나 정의의 수호와 같은 목적이 아닌, 우연찮게 휘말린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주인공들의 삶과 성장의 이야기로 바뀐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전체적인 시점에 비해 상당히 개인적인 레벨의 시점으로 작품의 관점이 바뀌기기 시작하는 전조였는데, 패전 후 경제성장에만 매달리며 국가의 부흥이라는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왔던 기성세대 일본인들에 비해 풍요해진 삶으로 인해 개성을 갖게 된 신세대들의 등장과도 맞물리지 않을까 싶다. 동시에 이것은 군대의 상명하복 체제와 같은 기성세대의 보수적인 체제에 대항하는 신세대의 반항정신과 젊음이라는 테마와도 연결된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생생해진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심리와 갈등은 후일 이 작품이 '리얼 로봇'이라 불리게 되는데에 있어 또다른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즉, 리얼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병기로서의 로봇이 등장함을 의미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생생한 인간 드라마, 좀 더 현실에 가까운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이 작품 속에 드러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가하마 감독의 낭만 로봇 3부작에서도 이미 시도되었던 상대편의 인물에게도 사연과 당위성을 부여하는 입체적인 인물의 설정은 건담에 이르러서는 훨씬 더 진화된 모습으로 반영된다. 특히, 적국으로 설정된 지온 공국 창시자의 아들로, 아버지를 암살하고 지온 공국의 공왕이 된 데긴 자비와 그의 자식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신분을 숨긴체 공국의 에이스 파일럿으로 살아가는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미남자의 등장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악역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거기에 다양한 인물군상이 설정이 붉은 혜성이라는 하나의 인물에 국한되지 않고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많은 등장 인물들에 대입되어, 정말로 살아있는 세계와 같은 인간관계를 이끌어내게 된다. 비로소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사회가 완성된 것이다.
 
캐릭터 디자인은 이미 용자 라이딘부터 선라이즈의 작품들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온 불세출의 작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맡았다. 이러한 히스토리 덕분에 샤아의 디자인은 여러 면에서 라이딘의 프린스 샤킨과 유사한 느낌을 풍긴다. 특히, 젊은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야스히코의 전력은 기성 사회에 불만을 품은 주인공의 창조에 꽤 일조를 했다고 보이는데, 단순한 캐릭터 디자인 외에도 스토리 구성이나 콘티 등에도 재능을 보이던 야스히코 였기에 건담이라는 세계와 주인공의 창조에는 토미노 감독 외에 그의 생각도 비공식적으로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고 보인다. '토미노(연출, 스토리, 콘티)-야스히코(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오카와라(메카닉 디자인)'로 구성되는 3인 체제는 건담 월드의 창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라인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완성되자 마침내 소년이 일어설 차례가 되었다. 소년은 이제까지의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주어진 드라마 속에서 좌절하고 깨달으며, 반항하고 또 적응하며 성장해 갈 것이다. 그것은 주인공인 소년 아무로 레이뿐만이 아니라 그의 라이벌인 샤아, 아무로의 동료들인 전함 화이트베이스의 승무원들, 그리고 아무로가 탑승하게 되는, 이제 막 로봇사에 첫발을 내디딘 건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79년 4월 7일, 건담은 마침내 대지에 서게 된다.

('기동전사 건담(1부) - 건담, 대지에 서다' 끝. 2부에 계속)

ⓒ SUNRISE · SOTSU Agency



<참고 사이트>

[1] 機動戦士ガンダム, Wikipedia Japan
[2] Gundam, Wikipedia
[3] 기동전사 건담(機動?士ガンダム) 1981-1982,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UNRISE · SOTSU Agency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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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에 이야기해볼 타이틀은 일본 아니메를 대표하는 초인기작, 에반게리온 파 2.22입니다. 아시다시피 95년 방영을 했던 에반게리온을 재해석한 안노 감독의 신극장판 4부작 중 2부인 작품이죠. 15년 전보다 월등하게 향상된 비주얼 퀄리티는 CG의 도움으로 압도적이기까지 합니다. 특히, 다이나믹한 콘티를 즐겨 보여주는 가이낙스의 스탭진들이 참여했이기에 CG의 정교함과 더불어 로봇 아니메의 역동적인 영상미가 어우러져 멋진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죠.

게다가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닌, 완벽한 리빌드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극이 전개될 수록 원작과 달라지는 이야기 전개로 인해 팬들에게 또다른 기대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2.02버전을 건너뛰어 한국에서는 바로 2.22 버전이 발매되었네요.


패키지 리뷰


'반게리온 신극장판 2부 파(이하 에바 파)'는 1부에 이어 아인스엠엔엠(구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 및 발매되었습니다. 1.01 패지키를 구입하거나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거의 동일한 디자인의 패키지로 나왔지요. 물론, 1.11은 레이의 일러스트로 장식된 흰색의 패키지입니다만.

 
심플한 패키지 디자인은 1부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텍스트도 인쇄되지 않은 심플한 디자인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DVD의 관련정보는 보시는 것처럼 띄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구요. 


1.01 패키지와의 비교. 보시는 바와 같이 색상은 오렌지색에 더 가깝습니다. 붉은 색이었던 1편과 차이가 있는데요. 이것이 작품 내에서의 어떤 분위기나 4부작 각 편이 표현하는 어떤 의미를 담아내려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안노 감독이 이제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볼 때 뭔가의 의미가 담겨져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메탈 그레이에 가까운 속 커버 역시도 검은색이었던 1부의 속 커버에 비해 옅은 색으로 변했네요. 두께는 1.01버전에 비해서 얇습니다. 디스크 1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에바 서의 경우 1.01일 때는 디스크 두 장으로 나왔다가 1.11에서 디스크 1장으로 출시된 것처럼, 에바 파도 2.22 버전은 디스크 1장으로 나온 듯 합니다. 2.02가 아예 발매가 안된 한국에서는 2.02의 셔플먼트는 영영 볼 기회가 없을 것 같네요. 마리의 짧아진 스커트 길이(마리가 신지의 학교 옥상에 낙하하는 씬에서 힙을 완벽히 거렸던 마리의 스커트는 2.22버전에서는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수준으로 다시 그려집니다.)에 만족하고 셔플먼트 디스크는 포기해야할 듯 싶습니다. 


디지팩 패키지의 내부는 커버의 색과 같은 주홍색입니다. 디스크와 북클릿까지도 영롱한 주홍색으로 이루어져 상당히 강렬한 느낌을 주는군요. 하지만 아쉽게도 1.01처럼 북클릿 외에 추가 구성은 없었습니다. 역시 2.02가 나왔다면 포함되었으려나요. 2.02를 건너뛰고 2.22로 발매를 하니 이런 아쉬운 점이 있군요. 레이의 일러스트가 인쇄된 마우스패드로 만족을 해야할 듯. 


북클릿은 16장으로 구성되어 에바 파의 모든 것을 간략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북클릿의 내용 구성은 상당히 충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스크도 1장 뿐이고, 추가 구성도 없는 심심한 타이틀이긴 하지만 바로 이 알찬 북클릿이 모든 것을 상쇄해주는 듯. 캐릭터와 사도, 키워드에 대한 소개와 함께, DVD에 포함되어 있는 스페셜 피쳐(Special Feature)에 대한 간략한 개요, 챕터 리스트와 DVD 스탭롤, 그리고 에바 2.02 제작노트가 섹션별로 설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셔플먼트 디스크에 들어갈 내용을 충실히 북클릿으로 옮겨준 경우라 하겠군요.


DVD 리뷰

상비율은 1.85:1입니다. 요즘의 패키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돌비디지털 6.10EX와 2.0을 모두 지원하여 저사양의 구매자들을 고려하고 있구요. 


DVD 타이틀 메뉴는 햇빛이 내리쬐는 숲의 정경을 보여주다가 흑백 톤으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하단에 주홍색의 메인메뉴가 뜨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배경 선택도 제법 독특하지요. 보통은 작품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배경이미지가 사용되지만, 이번 에바 파 DVD에서는 나무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에바 서의 DVD 타이틀 배경이미지인 전신탑과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요. 특히, 서브 메뉴로 넘어가도 하단의 메인메뉴는 그대로 유지한 체, 메인메뉴 바로 위에 서브 메뉴를 위한 컨트롤 페이지바가 나타난 것도 일반적인 DVD 타이틀과는 차별화되는 구성입니다.


1장으로 구성된 타이틀이지만, 본편과 함께 추가되어 있는 스페셜 피쳐에서는 몇 가지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위의 그림과 같이 완성된 영상이 아닌, 콘티와 레이아웃, 원화와 CG 골격으로 구성된 편집된 장면인데요. 총 4장면으로 구성되어 어떤 장면이 본편에서 대체되고 삭제되었는지와 함께 완성된 영상과는 또다른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아니메 제작 과정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구요.


또한, 에바 서에 비해 이례적으로 많은 양의 CG 작업 할당된 이번 에바 파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위와 같이 스페셜 피쳐를 통해 CG 제작의 단계를 보여줌으로써 CG가 이번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 아니메 영상을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D 모델링으로 구축된 에바의 모형은 애플시드 극장판에서 보여줬던 툰쉐이딩과 같은 기법으로 CG이면서도 CG와는 다른 2D의 유려한 질감을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 과거 원작에 비해 훨씬 더 부드럽고 역동적인 모습을 갖춘 새로운 에바로 재탄생하게 되었지요.


에바 파의 작화 퀄리티는 전체적으로 원작을 압도하는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원작 자체도 당시 아니메의 평균적인 퀄리티를 몇 단계 상회하는 모습으로 화제가 되었는데요. 에바 신극장판은 결론적으로 그러한 원작의 비주얼을 몇 단계 더 상회하는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전보다 더 다이나믹해진 에바의 움직임은 이번 극장판의 최대 볼거리 중 하나. 압도적인 영상미와 완전히 새로운 재해석으로 인해 팬들에게 십년이 넘은 지금 다시금 에바에 열광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DVD의 퀄리티는 단연 국내 아니메 패키지 중에서는 최상급에 속하고 있습니다. 1장짜리 구성이지만, 어설픈 2장짜리 패키지를 능가하고 있군요. 게다가 워낙에 압도적이면서도 선명한 작화 덕에 화질에 있어서도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BD로 본다면 너무 선명해서 눈이 부실지도.(물론 농담입니다.)


에반게리온: 파(破) 2.22 - 10점
안노 히데아키 외 감독, 사카모토 마야 (Maaya Sakamoto 외 목소리/아인스엠앤엠(구 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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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던 안노 감독의 이력

안노 히데아키 감독. 생긴 것도 범상치(?) 않다.

마전 '마크로스와 에반게리온의 데자뷰... 반복된 선라이즈의 폭주'라는 포스트를 통해서 기동전사 건담으로 로봇 아니메의 전성기를 가져왔던 선라이즈에게 대항했던 걸출한 두 작품 마크로스와 에반게리온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두 작품 덕에 선라이즈는 각각 80년대 초중반과 90년대 중후반 두 차례에 걸쳐 엄청난 양의 수작들을 쏟아내는 이른바 대폭주를 시작하기에 이르렀었죠.

특히, 이 두 작품의 경우에는 당시 아니메를 이끌던 거장이 주축이 아닌, 젊은 신예 애니메이터들의 힘으로 일구어 낸 것이기에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는데요. 마치 기성세대의 아성을 뛰어넘은 신세대의 모습과도 같았던 이 두 명의 인물들이 바로, 현재에는 아니메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카와모리 쇼지(마크로스 원안/감독/메카닉 디자인. 연출가 겸 메카닉 디자이너)와 안노 히데아키(에반게리온 감독/각본/메카닉 디자인. 연출가 겸 애니메이터)인 것입니다.

특히, 안노 감독의 경우에는 젊은 애니메이터들의 손으로 만든 이 마크로스 TV 시리즈에 강렬한 공감대를 형성, 대학을 자퇴하고 상경하여 원화맨으로 참여하기까지 하는데요. 이렇게 안노 감독은 애니메이터로서 마크로스를, 그리고 연출가로서 먼 훗날 에반게리온을 만들게 되면서, 로봇 아니메의 철옹성 선라이즈가 깜짝 놀랄 정도의 걸작이었던 두 작품에 모두 참여하는 이력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마크로스 TV 시리즈 참여 당시의 안노 감독은 수많은 원화맨 중의 하나인 일개 애니메이터일 뿐이었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카와모리 쇼지는 그 재능을 인정받아 마크로스의 원안과 후일 극장 아니메의 공동연출, 그리고 메카닉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천재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지만, 보통 20대의 나이에 그런 식으로 아니메 업계에 입문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었고, 보통은 안노 감독처럼 이름없는 원화맨이나 동화맨으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죠.

그러나, 역시 인재는 인재였던 걸까요. 마크로스가 종영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제작되는 한 작품을 통해 안노 감독의 역량은 아니메 업계에서 인정을 받기에 이르릅니다. 그것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설의 시발점이 된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였습니다.

©1984 Nibariki · Tokuma Shoten · Hakuhodo


국내에 발매된 나우시카의 DVD 영상특전을 보게 되면, 당시 거의 무명이다시피했던(81년 DAICON 3라는 아마츄어팀의 프로젝트 영상을 제작한 것과 마크로스 TV 시리즈의 원화맨으로 참여한 것 외에는 이렇다할 이력이 없는) 안노 감독은 당시 자신이 그렸던 그림들을 들고 미야자키 감독에게 찾아가 막무가내로 들이밀었다고 회상하고 있는데요. 미야자키 감독은 그의 범상치 않은 실력을 알아보고 전격적으로 그를 기용하기에 이르릅니다. 그리고, 햇병아리 신예 애니메이터였던 안노 감독은 이 작품에서 아래와 같은 희대의 씬을 그려내게 되는 것이죠.

©1984 Nibariki · Tokuma Shoten · Hakuhodo


도르메키아 군의 공주 크샤나가 폭주상태로 바람계곡으로 질주하는 거대곤충 오무들의 진군을 막기 위해 부활시킨 거신병이 아직 불완전한 상태로 오무의 대군에게 빔병기를 뿜어내던 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거대한 스케일의 클라이막스 씬은 초짜 애니메이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박력과 퀄리티를 보여주며, 안노 히데아키를 주목받는 신예 애니메이터로 떠오르게 만듭니다.

당시 일본 최고의 액션작화가로, 스페셜 애니메이터로 추앙받고 있던 故 카나다 요시노리가 작품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라스트 씬을 일개 신참이었던 안노 감독이 그렸다는 사실은 굉장한 의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마도 이 씬을 연출할 당시 카나다 요시노리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더이상 나우시카의 작업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안노 감독의 이름을 아니메 업계에 결정적으로 각인시켜 주게 되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기회는 아니었을까 싶군요.

하여간에,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아니메 업계에 심어준 그가 참여했던 다음 작품이 바로 수개월 뒤 개봉하게 되는 마크로스 시리즈의 극장판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계십니까(1984)'였던 것입니다.

ⓒ Big West ⓒ 1985 Harmony Gold USA Inc / Tatsunoko


이미 TV 시리즈에서 원화맨으로 참여하면서 마크로스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던 안노 감독이었지만, 당시에는 이름도 없는 신참 애니메이터였던 그는 TV 시리즈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20여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인정해줄 수 밖에 없는 절정의 작화 퀄리티를 보여준 이 극장판에서 또 한 번 애니메이터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게 됩니다.

ⓒ Big West ⓒ 1985 Harmony Gold USA Inc / Tatsunoko


후일 '민메이 어택'이라 불리게 되는 히로인 민메이의 노래와 함께 이타노 이치로의 유명한 유도 미사일 씬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지면서 주인공 히카루의 발키리가 적의 심장부로 돌진하는 이 클라이막스 씬은 '이타노 써커스'라고 불리는 미사일 액션의 정수를 보여주었는데요. 그런데, 이 씬을 아주 자세하게(정말, 진짜로 엄청나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위의 스틸 샷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아주 진귀한 컷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수많은 미사일 세례 속에 갑자기 등장하는 '타코 파이(문어 파이?)' 자판기, 그리고 라스트를 장식하는 버드와이저 맥주 캔의 등장... 제가 이 극장판을 접했던 85년도 당시는 지금과 같은 디지털 매체가 아닌 VHS 비디오 같은 아날로그 매체가 주를 이루던 시대였는데, 마크로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제 친구가 이 장면에 흠뻑 빠져 슬로우 비디오로 몇 번씩이나 틀어보던 중 바로 이 엄청난 장면을 접하게 된 것이었죠. (여담이지만, 이 장면을 보려고 몇 번씩이나 비디오를 되감고 슬로비디오로 틀고 하는 통에 그 친구가 애지중지하던 마크로스 극장판 비디오는 결국 테이프가 늘어져버려 이 씬이 나오는 필름 부분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이 글을 쓰기 위해 DVD를 틀어놓고 캡쳐를 시도했는데,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통에 Power DVD의 슬로우 모션으로도 캡쳐가 용이하지 않았고, 곰 플레이어로 프레임 단위로 시도한 캡쳐도 정말 어렵게 캡쳐가 가능할 정도였으니, 당시 VHS 비디오로 이 장면을 발견한 그 친구의 열정에는 지금도 경의를 표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으면 말입니...

어쨋든 간에, 이 희대의 숨겨진 씬은 후에 아니메 잡지, 아니 아마 마크로스 설정집에서 완벽하게 캡쳐가 되어 팬들에게 공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타노 써커스라고 알려진 이 희대의 미사일 씬에서 저런 위트를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은 당시의 스탭 중에서는 아마 안노 감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죠. (어디선가 안노 감독이 이 장면을 그렸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는데, 정확한 증거 자료를 찾을 수가 없기에 일단 추측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두 작품에서 안노 감독이 보여준 인상적인 애니메이터로서의 기량을 보면서 우리는 국내의 모 애니메이션 전문가 분(굳이 언급하자면 송락현님)의 말마따나 그가 만약 감독을 하지 않고 애니메이터로의 길을 계속 갔더라면, 故 카나다 요시노리, 이타노 이치로의 뒤를 있는 스페셜 애니메이터로서 그 이름을 날렸으리라는 꽤 신빙성이 높은 상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노 감독은 그로부터 몇 년 뒤 정말 애니메이터로서의 절정의 기량을 입증하는 한 괴물같은 작품의 작화감독을 맡게 되는 것이죠.

ⓒ 1987 BANDAI VISUAL / GAINAX


그렇지만, 애니메이터로서의 역량 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의 역량에서도 그는 확실히 일본 아니메를 대표하는 인물임에는 분명한 사실인 듯 합니다. 저 이타노 이치로조차도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아직도 저평가 되고 있을 뿐더러 건담의 전설적인 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조차 감독을 맡았던 작품들의 연이은 실패로 이제는 만화가의 범주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을 보면, 그가 보여준 수어 편의 작품들은 분명 그가 단순한 애니메이터 이상의 재능을 가진 인물임을 증명하는 것이랄 수 있겠지요. (단, 좀 외도가 많아서 작품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랄까요.)

40년대 생 거장들이 서서히 저물어 가고 50년대 생 감독들조차 예전과 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하는 현 일본 아니메 업계는 이제 60년대 생 감독들에게 그 바톤이 넘어가고 있지 않나 합니다. 이런 시대에 60년대 생을 대표하는 그의 멋진 작품을 다시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아, 일단 에반게리온 리메이크는 잘 마무리 하시구요. 부디 토미노 감독처럼 자신의 창조한 작품의 무게에 짓눌려 방황하지는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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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에 대한 경쟁심, 또다른 명작의 탄생으로 이어지다.

ⓒ SUNRISE · SOTSU Agency


이들 아시다시피(아, 물론 일본 만화영화 팬들에게만 한정해서입니다만) 79년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과 선라이즈가 만들어낸 '기동전사 건담'은 첫방영시는 비록 저조했었지만, 재방송과 3부작 극장판 개봉 등을 통해 '리얼로봇'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로봇장르를 아니메史에 등장시키면서 일약 하나의 신드롬을 형성하기에 이르릅니다. 기동전사와 뉴타입의 포스가 어찌나 강력했던지 70년대 후반을 강타하며 아니메의 첫번째 르네상스를 가져오게 했던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야마토, 은하철도 999, 캡틴 하록, 천년여왕 등등)들을 완전히 잊혀져 버리게 할 정도의 위력이었던 것이죠.

게다가 당시 로봇 아니메에 있어서 토미노 감독에 버금, 아니 경험적인 면에서는 토미노 감독을 능가하고 있던 낭만로봇 3부작의 대가 나가하마 타다오 감독이 별세하면서 시대는 그야말로 리얼로봇의 시대로 접어들기 직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선라이즈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동시에 반다이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구요.) 하여간에, 선라이즈의 앞길에 회사 이름처럼 마냥 태양이 떠있을 것만 같았던 그즈음, 한 정체불명의 작품이 등장하는 것이었던 겁니다.

그것은 대파란이었습니다. 기동전사 건담을 뛰어넘는 보다 더 현실적이고 드라마틱한 설정, 즉 익히 알고 있는 전투기가 로봇으로 변형하는 현실적이면서도 놀라운 디자인 컨셉, 게다가 인간형, 이족보행형 전투기, 전투기의 3단 형태로 변신하는 완구로서의 매력적인 상업적 가치,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는 1200m급의 우주 항모와 멋드러진 SF 설정들, 발랄한 소녀가 아이돌 가수로 성장하는 성공 스토리를 담은 당시 아니메에서는 보기 드문 트렌디 드라마적 설정, 남자 주인공과 두 여자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삼각 로맨스까지...

선라이즈 외에 이 정도의 드라마틱하고 현실적인 모습의 SF 아니메를 만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즈음 태어난 이 작품은 바로 도에이 동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관록의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덕션의 지휘 하에, 기동전사 건담의 SF 설정에 일부 참여하면서 이미 아니메 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창작집단 스튜디오 누에와, 작품의 원안과 주역 메카인 발키리를 디자인해낸 신예 카와모리 쇼지(스토리 원안, 공동감독, 메카닉 디자인), 히라노 토시키(캐릭터 작화감독), 하루히코 미키모토(캐릭터 디자인), 이타노 이치로(액션 작화감독) 등 젊고 실력있는 신예 크리에이터들과 노장 이시구로 노부로 감독이 함께 만들어낸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 였습니다.

ⓒ Big West


이 작품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기동전사 건담 이후 리얼로봇의 흐름은 '전설거신 이데온(1980)', '태양의 어금니 더그람(1981)'과 같은 작품을 통해 선라이즈에서 계속되고 있긴 했으나, 여전히 로봇 아니메 전체적인 흐름을 좌지우지할 정도는 되지 못한 체 건담에만 머물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오히려 리얼로봇으로 인해 시작된 드라마틱하고 심도 있는 설정이 기존의 슈퍼로봇 아니메에 도입되며 전반적으로 로봇 아니메는 변화의 과도기에 서있었던 시기였었죠. 그러나, 이 마크로스로 인해 이제 흐름은 리얼로봇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건담에서 시작된(실제로는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지만) 리얼로봇의 도화선은 선라이즈의 작품이 아닌 이 마크로스로 인해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선라이즈 역시 큰 자극을 받았을 겁니다. 그로부터 마치 마크로스를 향한 반격이라도 하듯이 '전투메카 자붕글(1982)', '성전사 단바인(1983)', '장갑기병 보톰즈(1983)', '은하표류 바이팜(1983)', '중전기 엘가임(1984)', '거신 고그(1984)',  '기갑계 가리안(1984)', '기동전사 Z 건담(1985)', '푸른유성 SPT 레이즈너(1985)', '기동전사 ZZ 건담(1986)', '기갑전기 드라고나(1987)'에 이르는 그야말로 리얼로봇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이죠. ('전투메카 자붕글&태양의 어금니 더그람 1983' by 캡슐 참조) 거기에 리얼로봇물은 아니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더티페어(1985)'같은 SF 미소녀 액션물까지 포함하면 엄청날 따름입니다.

ⓒ SUNRISE · SOTSU Agency (일부는 틀릴 수도 있음)

82년부터 87년까지 시작된 선라이즈의 아니메 쓰나미

마크로스 방영 직후인 83년도와 84년도에 이 12개의 작품 중 무려 반 이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선라이즈의 마크로스 견제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들은 완성도 면에서도 모두 마크로스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선라이즈의 양적 질적 내공을 가늠할 수 있는 한 단면이기도 하구요.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선라이즈의 오버히트가 80년대 후반부 일본경제의 버블 붕괴와 그에 따른 아니메 침체기와 맞물려 리얼로봇 아니메의 생명이 사그러드는 결과를 가져온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하여간 엄청난 대공세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로봇 아니메의 메카 선라이즈를 향한 공세는 마크로스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80년대 후반부부터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낸 초대작 아니메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제작여건이 급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자 아니메 업계 역시 긴 침체의 늪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80년대의 거의 대부분의 흐름을 좌지우지 했던 SF 장르, 특히 로봇 장르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지요. 리얼로봇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토미노 감독의 차기 건담 시리즈가 모두 흥행에 참패하면서 리얼로봇과 로봇 아니메는 이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쓸쓸히 퇴장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95년, 또 하나의 괴물같은 작품이 등장하고야 맙니다. 케이블과 각종 장비를 통해 제한된 구역에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상태에서만 운용 가능한 거대 생체병기라는 적절한 리얼리티, 바이오메카니즘과 특촬물의 절묘한 결합,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내성적이고 소심하며 비관적인 소년이 조금씩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성장해 가는 드라마적 구도, 종교적 신비주의를 적절히 혼합시킨 거대한 스케일의 미스테리, 그리고 매력적이고 다양한 미소녀들의 등장...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복합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만들어진 이 기괴한 작품은 하나의 신드롬까지 형성시키면서 일본 만화영화계를 평정하고야 맙니다.

일개 오타쿠 집단에서 시작하여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1987)', '건버스터(1989)',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1990)'로 화제를 몰고 왔던 신생 제작사 가이낙스와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만들어낸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입니다.

© GAINAX / PROJECT EVA / TX


지속적인 건담 시리즈의 실패와 로봇 아니메의 침체기 속에서도 용자물 등으로 로봇 장르에서 여전히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선라이즈는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공식석상에서는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되었다'라는 신사적인 표현을 썼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아마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바로, 10여년전과 마찬가지로 선라이즈의 엄청난 역공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파상공세였습니다. '신기동전기 건담 윙(1995)', '기동신세기 건담 X(1996)', '기동전사 건담 MS 08소대 (1996)',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 '용자지령 다그온(1996)', '용자왕 가오가이가(1997)', '초마신영웅전 와타루(1997)', '사이버 포뮬러 사가/신(1996/1998)', '브레인 파워드(1998)', '카우보이 비밥(1998)', '가사라키(1998)', '턴에이 건담(1999)', '무한의 리바이어스(1999)', '빅오(1999)', '아르젠토 소마(2000)', '이누야샤(2000)'에 이르는(물론, 이 작품 외에도 좀 더 있습니다만... 일일이 쓰기에도 힘들 정도로 많네요.) 5년에 걸친 장대한 선라이즈 빅 웨이브가 만화영화계를 강타했던 것입니다.

ⓒ SUNRISE · SOTSU Agency (일부는 틀릴 수도 있음)

95년부터 2000년까지 시작된 선라이즈의 아니메 쓰나미


당시 방영되었던 선라이즈의 상당수 작품들은 10여년전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는데요. 안타까운 것은 이 파상공세와 함께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일련의 실험을 거친 선라이즈가 이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는지 이후에는 상업적 기획의도에 굉장히 충실한 작품들만 속속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선라이즈에서 일단의 크리에이터들이 '본즈'라는 제작사로 독립한 뒤에는 더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선라이즈의 파상공세와 함께 아니메 시장은 21세기 들어 양적으로 급격하게 팽창하게 됨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상업적 양산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기에 이르르지요.

물론 만화영화, 특히 일본 아니메에 있어서 반드시 로봇 아니메가 주도권을 쥐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로봇으로 인해 시작된 여러가지 가치 있는 상상들이 미래의 실현가능한 기술을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SF 혹은 로봇 아니메의 가치는 남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먼옛날의 전설처럼 되어버린 마크로스와 선라이즈의 파상공세, 그리고 에반게리온과 선라이즈의 역습과 같은 현상은 2000년대에 들어서는 아쉽게도 재현되지 못했지요. 물론,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가이낙스의 2007년작 '천원돌파 그렌라간'은 과거 로봇 아니메의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마크로스 탄생 25주년 기념작 마크로스 프론티어, 신세대 건담의 힘을 보여준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 시리즈와 건담 30주년을 기념한 기동전사 건담 UC의 시동,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여전히 로봇 아니메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기동전사 건담이나 마크로스, 그리고 에반게리온과 같이 아니메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마스터피스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기대감을 넘어 이제는 조금 안타까운 느낌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낼 걸작의 탄생은 아직 이른 이야기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로봇 아니메가 아닌 다른 새로운 장르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가 열린 지금, 새로운 아니메의 시대가 시작하기를 기대해 보아도 될까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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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6년작 '천공의 성 라퓨타(1986)'는 아시다시피 너무도 유명한 미야자키 감독의 대표작으로서, '미래소년 코난(1978)'이나 '루팡 3세-칼리오스토로 성(1979)'과 같은 작품에서 보여진 유쾌한 미야자키식 어드벤쳐와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이 가져다 주는 힘과 권력에 대한 인간들의 삐뚤어진 집착, 그리고 하늘을 향한 미야자키의 동경심을 스팀펑크 스타일의 색체로 풀어낸, 가히 미야자키식 엔터테인먼트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연령가의 작품치고는 후반부에 등장한 무차별 살상장면 등이 약간 씁쓸한 뒷맛을 안겨주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진가를 깎아내릴 만큼은 아니기도 하구요.

특히 이 라퓨타에 등장하는 스팀펑크 스타일의 비행정 타이거 모스(Tiger Moth; 한국어로 표현하면 호랑나방 정도?)는 미래소년 코난부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관통하는 미야자키식 메카닉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 타이거 모스에 탑승하여 모험과 약탈(?)을 즐기는 도라 일당의 모습은 또다른 미야자키식 로망의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증기기관과 같은 구식 동력원을 내장한 스팀펑크풍의 기계구조, 과거의 비행선을 모티브로 삼은 고풍스러운 외양... 그러나, 타이거 모스의 진정한 매력은 그 겉모습보다는 고정된 장소에 본거지를 두지 않고 비행선 자체를 거점으로 하여 하늘에서 생활하는 공적(하늘의 도적; 바다의 도적인 해적과 산의 도적인 산적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보시면 되겠네요)들의 삶의 방식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 Nibakiri · Tokuma Shoten


설거지거리와 빨래더미, 거기에 매번 고장 수리까지... 막상 이런 생활과 맞닥뜨린다면 매력적이기 보다는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겠지만, 스크린 앞에서는 한없이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여행자의 삶이 시원한 하늘의 정경과 어우러져 지극히 인간적인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것일까요. 모험의 무대가 되는 광활한 하늘과 지친 하루 일과를 끝내고 갑판 위에서 떠다니는 구름과 지는 저녁 노을을 보는 고즈넉함은 분명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는 한없는 로망을 안겨줍니다. 

자, 이렇게 타이거 모스의 로망을 오랜만에 보고 있자니 로망이 넘치는 공적들의 삶이 비단 이곳 라퓨타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하늘의 로망, 공적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여행을 한 번 떠나볼까 합니다. 아차, 여름 휴가를 다녀온지가 얼마 안됐는데, 또 여행을 떠나는군요. 그럼 일은 언제 하라고?
 
☞ '하늘의 로망과 디테일한 생활의 묘사가 돋보이는 미야자키 감독의 스타일'과 유사한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글인지라 이러한 미야자키 감독만의 작품 세계를 본 포스팅에서는 '미야자키 스타일'로 줄여서 총칭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망의 시작 - 바다를 품고 우주를 꿈꾸며 마침내 하늘을 날다

© TMS

쾌한 하늘에의 모험은 만화영화에서는 하늘이 그 출발점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스티븐슨의 원작 '보물섬'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보물섬(1978)'에서는 히스파니올라호에 올라타 보물섬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소년 짐 홉킨스와, 오랫동안 소년들의 가슴 속에 남을 카리스마 외다리 사나이 실버 선장의 낭만적인 바다의 모험을 보여줍니다. 해적들과 그들의 영원한 로망인 바다, 그리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가슴 떨리는 모험은 바로 공적들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바다의 로망과는 별개로 다른 한쪽에서는 색다른 모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그려낸 사나이들의 로망, '우주해적 캡틴 하록(1978)'은 정처없이 우주를 떠돌며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전설의 해적 캡틴 하록과 그의 영원한 동반자인 우주선 아르카디아호의 끝없는 모험을 선보이며, 바다가 아닌 우주를 무대로 한 무한한 로망을 선보입니다. 특히 일정한 거처없이 아르카디아호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선원들의 소박한 생활상은 라퓨타에서 보았던 공적들의 삶과도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다와 별바다(우주)의 로망을 자극하는 해적들의 모습은 8년여가 지나서야 진정한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때까지의 로망을 이끌던 레이지버스의 우주해적이 서서히 퇴장하고 우주를 가르는 전쟁의 포화 속에 소년, 소녀들의 우주모함 화이트 베이스의 이야기(기동전사 건담)가 리얼이라는 개념을 아니메에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로망은 만화영화의 한구석으로 조용히 자리를 양보했었는데요. 건담에서 촉발된 리얼 드라마가 정점을 달리던 8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라퓨타를 통해 공적이라는 모습으로 바다가 아닌 하늘의 로망으로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로망은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설거지, 빨래, 잠자리 등등)와 모험이 공존하는 장소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색적입니다. 몸을 싣고 있는 곳은 판타지이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현실적인 이들의 이야기는 보물섬이나 캡틴 하록과는 다른 느낌을 관객에게 선사했던 것이죠. 거기에 미야자키의 세심한 콘티와 설정은 공적의 이야기를 능숙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합니다.
 
낭만적인 공적들의 이야기는 '붉은 돼지(1992)'에 이르러서는 조금 다른 형태로 전개됩니다. 로망을 잃어버리고 빈곤한 현실에 찌들어 버린, 그러나 아직도 가슴 한켠에는 로망의 불씨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늙은 공적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앞선 라퓨타에서 보여진 공적들의 삶이 소년, 소녀들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라면, 붉은 돼지에서 보여진 공적들의 삶은 어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여전히 그 낭만의 한자락을 놓고 있지는 않은 체로 말입니다.

© Nibakiri · TNNG


라퓨타의 편린은 또다른 곳에서 새로운 형태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1990, 이하 나디아)'은 에초에 NHK에 남겨져 있던 라퓨타의 기획안이 시초가 되었던 작품으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해저 2만리'의 노틸러스 호의 컨셉을 이식하여 독특한 모험물로서 재창조시켜 낸 작품입니다. 공적의 로망이 잠수함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는 것이었는데요. 그러나, 노틸러스호의 승무원들의 모습은 미야자키 스타일의 계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안노가 어린 시절 감동 받았던 '우주전함 야마토(1974)'나, 그가 스탭으로 참여했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에서 묘사된 모습과 더 가까워 보인다는 점에서 미야자키보다는 안노의 취향이 더 많이 반영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망의 실종 - 로맨스와 코미디에서 느와르와 판타지까지

ⓒ NHK·Sogo Vision·TOHO

얼도 로망도 쇠퇴해버린 듯한 90년대에 이르자, 공적들의 로망이란 이제 붉은 돼지에서 보았던 그들의 노쇠한 모습처럼 향수와 추억이라는 이름 하에 다락방의 낡은 일기처럼 취급되어 버립니다. 싸우는 변신소녀와 변신합체 용자로봇들이 만화영화를 수놓고, 기괴하고도 독특한 매력의 생체병기가 찢어지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써드 임팩트를 터뜨리자 시대는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라퓨타를 기본으로 시작되었던 나디아에서도 그 로망의 편린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나디아가 라퓨타의 모든 것을 계승할 의무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지만 말입니다.)
 
하늘의 로망을 대신하여 등장한 것은 새로운 스타일의 SF 모험 이야기였습니다.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의 억세게 운좋은 우주전쟁 참전기를 다룬 '무책임함장 테일러(1993, 이하 테일러)'에서의 고물구축함 미풍호, 그리고 에반게리온의 써드 임팩트 속에서도 결코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항해를 해냈던 '기동전함 나데시코(1996, 이하 나데시코)'의 최신예 우주전함 나데시코의 생활상은, 코믹함과 시트콤스러운 모습으로 항상 시끌벅적합니다.

그러나, 테일러나 나데시코의 일반적인 생활상은 개그 쪽에 관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미야자키 스타일과는 거리가 멉니다. 특히 나데시코의 경우는 그들의 일상사가 로망보다는 로맨스에 초점이 더 치우친 전개인데요.

© Hitoshi Yoshioka/Kadokawa Shoten·Tylor Project.

이렇게 이들 작품에서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일상사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모험을 떠나는 이들의 뒷켠에 숨겨진 고충이나 현실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펼치는 휴먼 코미디와 아슬아슬한 사랑의 줄다리기라는 점에서 사실 미야자키의 스타일과의 접점을 찾으려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어찌보면 이 두 작품 모두 어떤 면에서는 나디아와 마찬가지로 미야자키 스타일보다는 레이지버스나 건담, 마크로스 등의 스타일을 계승하여 그 위에 로맨스와 코메디로 새롭게 재해석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곤조의 SF 로봇물이었던 '반드레드(2000)'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적으로 나누어져 싸워왔던 남녀들이 우주해적선 메제르 호에서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와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선 두 작품들과 비슷한 출발선상에 놓여져 있다고 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이러한 전개는 곤조의 다음 작품에 이르러서야 조금은 미야자키 스타일로 근접하는 양상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로맨스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90년대 하늘의 이야기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색다른 형태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년 반과 함께  이세계 가이아로 넘어온 평범한 여고생 히토미. 반과 함께 영문모를 모험 속에 빨려든 그녀는 천공의 기사 알렌 쉐자르의 비행선에 올라타 본격적인 모험의 로망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에 등장한 알렌 쉐자르 일당(?)의 비행선은 지금까지의 비행선과는 다른 형태로 운용됩니다. 바로 비행석이라 불리는 거대한 암석 두 개를 달고 프로펠러로 추진력을 내어 바람을 타고 비행을 하는 것이 그것인데요. 에스카플로네의 이 비행선은 현실도, SF도, 스팀펑크도 아닌 판타지의 세상에서 날아다니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줍니다. (기동전사 건담 이래 단바인, 바이팜, 레이즈너 등에서 선보였던) 거대한 배를 타고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는 소년, 소녀들의 리얼한 모험 이야기는, 판타지와 순정 로맨스와 합쳐지면서 색다른 형태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특히 이 비행석의 존재는 왠지 라퓨타에서 등장했던 비행석과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군요.

ⓒ Sunrise · Tokyo TV


리얼로봇의 메카인 선라이즈의 작품들은 사실상 로망이라는 요소를 아니메에서 밀어낸 장본인이기에 그 느낌이 더욱 남다른 감이 있습니다. 물론, 알렌 쉐자르의 비행선에서는 공적들이 선보인 아기자기한 스타일의 생활상은 펼쳐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건담의 화이트 베이스에서 이어져 온 스타일, 즉 모험의 베이스가 되는 움직이는 이동기지로서의 모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도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변모의 조짐은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로망은 그로부터 2년 뒤, 조금은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저마다의 빛바랜 과거를 숨기고 시니컬한 현재를 살아가는 무기력한 어른들의 집합소 비밥호의 현실적인 모습으로 말입니다.
 
'카우보이 비밥(1998)'의 비밥호에는 확실히 타이거 모스의 현실적인 생활상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밥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게다가 취미로 분재까지...) 제트의 모습과 밥 축내기에 바쁜 더부살이 식객들인 스파이크, 페이, 에드의 모습은 개그스러움이 넘쳐납니다. 그들의 모습은 일반적인 주인공들과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어른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형태의 현실스러움은 타이거 모스의 도라 일당에 비해서 더 비참하긴 하지만, 디테일함에 있어서는 엇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붉은 돼지에 등장한 옹색한 공적들마냥, 그들은 항상 배고픔에 굶주려 궁색함을 드러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시청자들의 시선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전까지의 선라이즈의 작품들이 보여준 모습과는 어떤 면에서 사뭇 다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상 큰 에피소드의 흐름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집중하던 이전의 리얼로봇 계열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우주선들의 생활상과는 다른, 아기자기함이 살아 있는 모습인 것이죠. 이런 아기자기한 생활상의 묘사는 그들의 모험을 더욱 더 맛깔스럽게 가꾸어 주는 에피타이저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미야자키 스타일과의 데자뷰를 느끼게 해줍니다.

ⓒ Sunrise



로망의 부활 - 레이지와 미야자키를 흠모하는가

우보이들의 궁색한 비행선이 위상차 게이트를 넘어 먼 여행을 떠나고, 뒤이어 등장한 '라스트 엑자일(2003)'의 용병함 '전멸의 실바나'는 스팀펑크적인 세계관으로 인해 확실히 시작부터 미야자키 스타일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풍스러운 비행함선 간의 포화 속에 검은색의 함체를 들어내며 압도적인 파괴력을 과시하는 알렉스 로우 함장의 실바나는 전멸이라는 별명답게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 냅니다. 어떤 면에서는 캡틴 하록과 아르카디아호의 재림이라도 되는 듯 하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거칠고 무자비한 사나이들만이 가득할 것 같은 실바나이지만, 그 내부로 들어가면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스팀펑크 스타일의 고풍스러운 함내 구조는 우주전함보다도 우리에게는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데요. 그와 함께 간간히 보여지는 승무원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전멸이라는 별명을 무색하게 하는 순수함과 익살스러움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바나와 그 내부의 모습은 미야자키 스타일을 이전까지의 90년대의 작품들과는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특히 라스트 엑자일의 이야기 전개는 라퓨타의 그것과 상당히 근접한 부분이 있어 그 친밀감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곤조의 이 시도는 1회성에 그쳤다는 점에서,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완성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름 큰 아쉬움을 느끼게도 합니다.

ⓒ Gonzo · Victor Entertainment


한편, 선라이즈가 잠깐 선보였던 미야자키 스타일의 편린은 몇 년 뒤, 선라이즈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개하기 시작합니다. 비밥의 프로듀서 미나미 마사히코 등이 분사하여 만든 제작사 본즈가 선라이즈 작품들의 한 테마라 할 수 있는 화이트 베이스식 이야기와 비밥에서 보였던 미장센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로망들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전함이 아닌, 화성의 드넓은 바다 속을 항해하는 잠수함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현란무답제 더 마즈 데이브레이크(2004)'에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본즈식 로망은 '교향시편 에우레카 7(2005)'에 이르러 미야자키 스타일에 가까운 형태로 거듭나게 됩니다.
 

ⓒ Bones · Project Eureka · MBS

에우레카의 하늘은 신세대 젊은이들의 로망을 담고 있습니다. 파도타기와 마찬가지로 서프 보드에 의지한 체 하늘을 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해적이 공적으로 진화하는 것과 같은 유사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여기에 월광호에 몸을 싣고 유랑의 길을 떠나는 홀랜드의 일행과 우연치 않게 월광호에 탑승하게 된 소년 렌톤의 모험 이야기는 확실히 라퓨타에서 보여졌던 전개와도 비슷합니다. 나디아가 안노만의 스타일이 돋보였다면, 에우레카의 경우는 디테일한 그들의 생활묘사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레 미야자키 스타일과 겹쳐지는 부분이 생깁니다. 그리하여 에우레카는 그들만의 새로운 스타일에 미야자키 스타일이 모두 혼재하는 형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물론, 에우레카에서 보여지는 미야자키 스타일의 편린은 난해한 전개와 힙합스러운 신세대식 스타일에 가리워져 희석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라스트 엑자일에서 번쉽을 타고 하늘을 가르던 스팀펑크적인 하늘의 로망처럼, 보드를 타고 하늘에 몸을 맡기는 신세대적 로망은 오래전 미야자키가 선보였던 하늘을 나는 공적의 로망과 같은 테마를 공유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에우레카의 로망은 본즈의 최신작 '망념의 잠드(2008)'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미야자키 스타일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미야자키가 선보였던 하늘의 로망은 마야자키 자신의 작품에서는 붉은 돼지 이후로 오히려 절제되는 양상입니다. 그러나, 하늘로 정처없이 사라져 버린 라퓨타의 한 부분처럼, '하늘에의 로망'이라는 이름의 이 보석은 하늘 높이 올라가 마침내 최고점에서 부서져 지상에 흩어져 아니메의 이곳저곳에 여러 형태의 태피스트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가이낙스와 곤조 등이 선보였던 감각적인 스타일이나 선라이즈와 본즈 등이 만들어낸 디테일한 묘사는 라퓨타의 조각들이 떨어지면서 피어난 또다른 형태의 로망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향한 로망이 또다시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난다면, 과연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까요. 일상의 아기자기함을 담은 잔잔한 로망일까요, 아니면 박력과 모험이 가득한 신나는 로망일까요.

ⓒ Bones · Sony Computer Entertainment Inc. · Ani 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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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봉예정일은 10월 30일

ⓒSOTSU · SUNRISE


피소드 2 첫번째 트레일러에 이어 두번째 트레일러가 오픈되었습니다. 이전 트레일러가 짧은 30초짜리 버전인 반면, 이번 두번째는 2분 정도의 긴 버전으로 에피소드 2편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트레일러입니다. 넬 아가마에 탑승하게 된 오드리와 바나지, 그리고 그들을 쫓는 샤아의 재래, 풀 프론탈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퍼스트 건담부터 많은 건담 시리즈에 등장했던 단골 전개이기도 한지라 얼마만큼 다이나믹한 추격씬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전편의 유니콘, 크샤트리아, 제간, 스타크 제간, 리젤, 기라 줄루, 로토에 이어 기라 줄루 안젤로 전용기와 마침내 등장하는 시난쥬까지 MS들이 줄줄이 등장하여 확실히 건담 팬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 같습니다. 트레일러 중간에 등장하는 풀 프론탈의 시난쥬는 넬 아가마 스탭의 '3배 빠른 속도로...'라는 너무도 유명한 대사만큼 놀라운 고성능을 보여줄 것 같군요. 설정상 유니콘과 동일한 사이코뮤 프레임을 쓰는 기체이기에 그 성능이야 두말할 나위는 없겠습니다만.

그 외에 풀 프론탈 친위대 소속의 안젤로 자우퍼와 그의 보라색 기라 줄루 커스텀 기체의 등장, 론도벨의 에이스 파일럿으로 1편에도 잠시 등장했던 리디 마세나스와 그의 애기 리젤의 활약도 기대가 되구요. 넬 아가마에 탑승한 오드리의 운명과 그녀를 구하기 위해 유니콘에 탑승했던 바나지의 이야기가 풀 프론탈과 대면하면서 새로운 전개를 맞이할 듯 싶습니다.

소설로서는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 못했던 유니콘의 이야기가 과연 아니메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이미 1편을 통해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한 터라, 올 가을 2편의 출시가 몹시도 기다려집니다. 에피소드 2편은 10월 30일 일본에서 개봉을 시작하며, 11월 12일에 DVD와 BD로 릴리즈될 예정입니다.

☞ 숏버전 트레일러 보러가기 (클릭)
☞ 롱버전 트레일러 보러가기 (클릭)

ⓒSOTSU · SUNRISE


☞ 얼마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건담 회고전이 열린데다가 토미노 감독까지 방한했고, 금주에는 건담 엑스포까지 열리는데, 이쯤에서 건담 UC도 DVD/BD로 국내에 출시 좀 해줬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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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리뷰할 타이틀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썸머워즈 DVD 입니다. 이 작품으로 호소다 감독은 이제 여름철 극장 아니메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듯 싶네요. 시달녀의 성공이 얻어걸린 것이 아니다라는 것 역시 이 작품으로 증명한 듯 싶구요. 물론,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전개는 구태의연한 측면이 있어서 아직 오리지널 아니메를 만들어내는 역량에는 의문점이 남긴 하지만 단연 현재 아니메에서는 떠오르는 기대주라 하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저같은 가난한 AV 마니아를 배려해서인지 블루레이로는 출시되지 않았나 봅니다, 믿거나 말거나.


패키지 리뷰

머워즈 DVD 역시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이어 CJ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제작과 공급을, 아트서비스 측에서 판매를 맡았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CJ가 만든 타이틀의 패키지는 깔끔하고 정갈합니다. 오랫동안 식품업계에서 비즈니스를 한 때문일까요... 네, 뭐... 그런데 꼭 뭔가가 하나 부족하다는 특징이 있네요. 시달녀에 이어 이번 썸머워즈도 한 두가지 아쉬운 점이 있군요.


익숙한 썸머워즈의 포스터 일러스트입니다. 본 편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그린 일러스트죠. 


뒷면에는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현실의 아바타 캐릭터들이 사다모토의 일러스트와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마다 마사루, 오카자키 미나, 아카자키 요시오(응? 둘이 형제나 부부려나요) 삼인의 캐릭터 디자인인데요.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작품처럼 DVD 타이틀도 앞뒤로 다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내부 케이스의 모습입니다. 쥬얼 케이스에 역시 깔끔한 사다모토의 일러스트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군요.


뒷면의 구성입니다. 캐스트와 스탭진 명단은 그대로 일어를 가져다 썼네요. 뭔가 시간에 쫓겨 대충한 듯한 느낌입니다. 몇 %가 부족한 고급스러움, CJ의 스타일인 것 같네요. 뒷면의 상영시간 표시에는 295분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오타이겠죠? 썸머워즈는 1쿨짜리 TV 아니메는 아닐테니 말입니다.


디스크는 총 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왠 걸. 북클릿이 빠져있네요. 한국에 출시되는 아니메 DVD의 경우 상당수가 북클릿이 빠져 있었습니다만, 좀 아쉽네요. 이정도 급의 타이틀이라면 단 몇장으로 구성된 북클릿이라도 갖춰주는 것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염가판도 아니고 재판본도 아닌 초판본인데 좀 아쉽습니다.


빠진 구성과 부실한 마감처리가 아쉬운 고급스러운 패키지 구성입니다, 흠흠.


패키지 리뷰

스크의 구성은 본편 디스크와 커멘터리 디스크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본편 디스크에는 다른 부가 영상이 실려 있지는 않은 대신, 호소다 감독과 캐스팅 성우들의 커멘터리를 작품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의 메뉴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이죠. (물론, 다른 DVD 타이틀에서도 이런 형식의 커멘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디오는 5.1채널과 2.0채널 사용자 모두를 위해서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지원하고 있습니다. 화면비율은 16:9이군요.


커멘터리 디스크에는 예고편 영상과 제작보고 무대인사 영상, 그리고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 참가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카미키 류노스케나 나나미 사쿠라바와 같은 신예 탤런트들을 기용했네요. 특히, 남자주인공인 카미키 류노스케는 여자애라고해도 믿을만큼 선이 곱군요. (반한 건 아닙니다.)

©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


화질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 합니다. AV 마니아라고 하기에는 너무 내공이 부족한 블로거인지라 언급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만, 적어도 노이즈나 인터레이스 같은 현상은 없는 듯 하군요. 단, HD 급에 서서히 길들여지기 시작하는 요즈음 SD급의 DVD 화질은 이제 서서히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인 듯 합니다.

전체적으로 좋은 패키지이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몇 가지 디테일에 있어서 부족함을 드러낸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감상 자체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말이죠. 아쉬운 것은 BD로는 출시가 안되어 블루레이로 수집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쉬움이 있을 듯 싶습니다. 전작인 시달녀의 경우도 DVD로만 출시되었기에 아마 이번 썸머워즈도 BD로의 출시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썸머워즈 (2Disc) - 8점
호소다 마모루 감독, 사쿠라바 나나미 외 목소리/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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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tsunoko Pro / Yomiuri TV


 날아라 태극호 (1975), 타임 보칸 / タイムボカン / Time Bokan


타임보칸 표지ⓒ Tatsunoko Pro.

<정보>

◈ 원작: 타츠노코 프로 기획실
◈ 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각본: 토리우미 진조, 코야마 타카오 外
◈ 에피소드 연출: 마시모 코이치, 하세가와 야스오, 누노나카 유지 外
◈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 음악: 야마모토 마사유키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75.10.04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TVA (61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키에다 박사. 그는 곤충 모양(정확히는 딱정벌레)을 한 이 타임머신의 안전성과 기능을 증명하기 위해 처녀비행에 들어가지만, 막상 타임머신이 돌아오고 난 후 조종실에 있던 것은 말하는 앵무새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세계 최고의 보석 다이나몬드 뿐이었다. 박사를 찾기 위해 그의 조수 단페이와 손녀인 준코는 타임 보칸에 올라 시간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다이나몬드를 노리는 악당 트리오 마죠 3인방은 그런 단페이들을 뒤쫓기 시작하는데... ([1], [13] 참조)


<소개>

75년 등장한 타츠노코 프로의 타임 보칸은 시간 여행을 테마로 삼아 주인공과 악당 3인조의 코믹한 모험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와, 악당이면서도 어리숙하고 유쾌한 3인조의 등장으로 단순이분법적인 선악 이야기를 벗어난 참신함을 선보였는데, 시공간 어딘가로 행방불명된 키에다 박사를 찾아 매회 시간여행을 떠나는 단페이 일행의 모습은 이듬해 타츠노코 프로의 또다른 히트작 '폴의 미라클 대작전(1976,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 대마왕에게 사로잡힌 니나를 찾아 차원여행을 떠나는 폴 일행의 모험과도 상당부분 일치하기도 한다.

특히, 딱정벌레처럼 생긴 타임머신 타임 보칸은 시간여행 외에도 갖가지 신기한 기능을 탑재하여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시리즈가 지속되면서 메뚜기 모양의 2호기와 사슴벌레 모양의 3호기가 등장하는 등, 메카닉 캐릭터 측면에서도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주면서 최고 시청률 26.3%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자랑하기도 했다. ([17] 참조)

갓챠맨이나 캐산같은 히어로물과 함께 타츠노코 프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하며 10년 가까이 시리즈로 지속되었으며, 2008년에 이르러 리메이크 판으로 재탄생 했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실사영화로까지 제작되기도 한다.


 이겨라 승리호 (1977), 얏타맨 / ヤッターマン / Yatterman


얏타맨 DVD Vol01 표지ⓒ Tatsunoko Pro

<정보>

◈ 원작: 타츠노코 프로 기획실
◈ 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각본: 토리우미 진조 外
◈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
◈ 음악: 신보 마사아키, 야마모토 마사유키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77.01.01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TVA (108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신비한 돌인 도쿠로 스톤. 이 돌은 지구상에 있는 금맥의 위치를 찾게 해주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도둑의 신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인물 도쿠로베는 도론보 3인조(도론죠, 보얏키, 톤즈라)에게 명령하여 이 도쿠로스톤을 찾을 것을 명령한다.

한편, 장난감 가게의 아들인 간은 여자친구 아이와 함께 거대한 개 모양의 로봇을 만들게 된다. 이 로봇을 정의로운 일에 사용하기로 마음 먹은 간과 아이는 얏타맨이라는 히어로가 되기로 마음먹고 로봇에게 얏타왕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도쿠로 스톤을 찾기 위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론보 일당, 마침내 그들의 앞에 마침내 정체불명의 히어로, 얏타맨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1], [14] 참조)


<소개>

'타임보칸'의 대성공에 이어 제작된 시리즈 2탄 '얏타맨'은 인물구도와 에피소드의 구조는 타임보칸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내용전개에 있어서는 타임보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도론보 3인조의 음모에 대적하는 얏타맨들의 모습은 '히어로물의 본가'라 불리는 타츠노코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한 히어로물의 뉘앙스를 물씬 풍기는 것이다. 타임보칸에서의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모험이야기와 히어로물의 공식이 접목되면서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되어 전작에 이어 이 작품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 시리즈에 비해 더 업그레이드 된 코믹하고 인간미 넘치는 3인조 악당 도론보 일당은 이러한 인기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었다.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에 의해 태어난 도론보 일당의 여성 리더인 도론죠의 경우에는 주인공인 얏타맨들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으며, 성우를 맡았던 오하라 노리코의 인기 역시 연일 상종가를 달렸으니 이는 당대 아니메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2] 참조)

매 회마다 얏타맨들에게 처참하게 당하고 타고 다니던 메카를 잃어버린체 3인용 자전거에 의지하여 쓸쓸히 퇴장하다가 보스 도쿠로베에게 갖은 벌칙을 받는 도론보 3인조의 모습은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주는 독특한 느낌으로 주인공보다 악역의 비중이 더 높아지는 효과(항상 엔딩을 그들이 장식했던 것으로 기억)를 주었다.

이러한 3인조의 독특한 매력은 후일 타츠노코의 작품이 아닌 여러 곳에서 사용되기에 이르는데, 국내에서는 '명탐정 번개'로 익히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의 TV 시리즈 '명탐정 셜록하운드(1984)'의 모리어티 교수와 그의 어리숙한 조수들인 토드와 스마일리는 바로 이러한 도론보 3인조의 매회마다의 실패를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안노 히데아키의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1990)'에 등장하는 그랑디스 3인조 역시 이 도론보 3인조를 모티브로 했다고 할 수 있다. 


 젠다맨 (1979), ゼンダマン / Zendaman


젠다맨 DVD Vol01 표지ⓒ Tatsunoko Pro

<정보>

◈ 원작: 타츠노코 프로 기획실
◈ 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각본: 코야마 타카오
◈ 연출: 오시이 마모루 外
◈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
◈ 음악: 신보 마사아키, 야마모토 마사유키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79.02.03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TVA (53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불로불사의 비밀을 밝혀줄 생명의 근원을 찾는 몬쟈 박사. 그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 터널을 발견하고 시간여행 머신 젠더라이온과, 그의 조수 테츠와 손녀인 사쿠라와 함께 생명의 근원을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한편, 아쿠다맨 3인조 역시 같은 이유로 생명의 근원을 찾으려 하는데, 몬쟈 박사 일행이 위기에 빠진 순간, 테츠야와 사쿠라는 아쿠다맨 일당의 음모를 분쇄하는 히어로 젠다맨으로 변신한다. ([1], [15] 참조)


<소개>

두 번의 연이은 시리즈 성공으로 말미암아 타임보칸 시리즈는 명실공히 타츠노코의 대표적인 시리즈로 자리메김한다. 이 즈음 창립자이자 요시다 3형제의 첫째로, 타츠노코의 수많은 명작들을 창조했던 요시다 타츠오가 별세(1932~1977)하고 만다. 젠다맨은 요시다 타츠오의 사후, 그의 동생인 요시다 켄지의 지휘로 제작된, 요시다 타츠오가 빠진 첫번째 타임보칸 시리즈이다. 첫번째 시리즈의 시간여행 테마가 다시 부활하고, 히어로물에서 가져온 설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시간여행 메카 젠더라이온은 직전작 얏타맨의 얏타왕의 디자인 컨셉이 계승된 형태로 보인다. 요시다 타츠오의 빈자리가 아쉬웠지만, 시리즈는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1980년에는 극장용 아니메인 '피라미드 상자의 비밀이야! 젠다맨'이 도에이 만화축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타임패트롤대 오타스케맨 (1980), タイムパトロール隊オタスケマン


오타스케맨 표지ⓒ Tatsunoko Pro

<정보>

◈ 원작: 타츠노코 프로 기획실
◈ 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각본: 야마모토 유, 코야마 타카오 外
◈ 연출: 시기노 아키라, 사이조 타카시 外
◈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
◈ 작화감독: 야마자키 카즈오, 사이조 타카시 外
◈ 음악: 신보 마사아키, 야마모토 마사유키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80.02.02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TVA (53화) / 전연령가 (G)


<소개>

타임 패트롤대라는 조직 내에 주인공 측(오타스케맨)과 악당 일행(오쟈마맨)이 모두 속해 있는 것과 지금까지 다이나몬드, 도쿠로 스톤, 생명의 근원으로 이어지는 특정 아이템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닌, 역사를 바꾸려는 오쟈마맨 일행과 이를 저지하려는 오타스케맨의 대립 구도로 작품이 전개되는 것이 이전 시리즈와는 달라진 점이다. ([19] 참조)


 얏토데타맨 (1981), ヤットデタマン


얏토데타맨 표지ⓒ Tatsunoko Pro

<정보>

◈ 원작: 타츠노코 프로 기획실
◈ 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각본: 코야마 타카오
◈ 연출: 이케가미 카즈히코 外
◈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
◈ 음악: 신보 마사아키, 야마모토 마사유키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81.02.07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TVA (52화) / 전연령가 (G)


<소개>

타임보칸 시리즈 최초로 인간형 로봇이 등장한 작품. 이 시리즈에 이르러서는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로봇 아니메의 특징을 대입하여 시간여행 + 히어로물 + 슈퍼로봇의 컨셉을 지닌 작품으로 진화했다. 로봇 자체는 상당한 인기를 끌어 완구의 경우에는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얏타맨 완구 다음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시절에 한국판 프라모델로 만들었던 기억이 아련한데, 켄타우로스 형태의 독특한 로봇 형태는 당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1], [20] 참조)

주인공 일행이 시간여행을 직접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부터 1000년 뒤의 후손인 카렌 공주가 타임머신을 타고 주인공들을 방문하여 도움을 청하는 전개로 진행된다. 이전까지 남녀 페어로 변신하던 스타일을 벗어나 남자 주인공이 혼자서 변신하는 등, 서서히 타임보칸 시리즈의 원래 성격이 옅어지고 히어로물과 SF 액션물의 성격을 띄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역전! 이파츠맨 (1982), 逆転イッパツマン


이파츠맨 DVD 박스 표지ⓒ Tatsunoko Pro

<정보>

◈ 원작: 타츠노코 프로 기획실
◈ 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각본: 코야마 타카오
◈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
◈ 음악: 신보 마사아키, 야마모토 마사유키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82.02.13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TVA (58화) / 전연령가 (G)


<소개>

직전 작인 '얏토데타맨'의 뒤를 이어 거대 인간형 로봇이 등장하는 타임보칸 시리즈의 6번째 작품. 여섯 번째 시리즈 정도 이어지면 시리즈가 매너리즘에 빠져 시청률이나 인기가 답보상태에 빠져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타임보칸 시리즈는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로 지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물론, 초기만큼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시리즈는 지금까지의 시리즈와는 다르게 소년이 아닌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타임보칸 시리즈를 보며 자란 팬들의 성장을 고려했다는 느낌이다. 주인공인 이파츠맨에게도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설정하여 시리즈 내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타임패트롤대(오타스케맨), 탐정사무소(얏토데타맨)에 이어 타임리스사라는 회사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시청연령의 향상을 고려한 설정인 듯 싶다. 그러나 시리즈 전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리더+남자 부하들(주로 3인조이나 오타스케맨에서는 4인조)이라는 악당의 설정은 여전히 변치 않는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얏토데타맨과 이파츠맨은 후일 선라이즈가 선보이는 용자 시리즈의 시발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타다키맨 (1984), イタダキマン


이타다키 맨 DVD 박스 표지ⓒ Tatsunoko Pro

<정보>

◈ 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각본: 사카이 아키요시
◈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
◈ 음악: 신보 마사아키, 야마모토 마사유키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84.04.09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TVA (20화) / 전연령가 (G)


<소개>

타임보칸 시리즈의 7번째 작품. 이타다키 맨은 지금까지 시리즈가 그래왔듯이 전작과는 다른 파격적인 시도가 돋보였지만, 그 반응은 이전작과는 전혀 다른 싸늘한 것이었다. 시리즈 내내 등장했던 메카 캐릭터가 사라진 대신 히어로인 주인공이 거대화되어 싸운다는 설정은 특촬물 '울트라맨' 시리즈의 편린도 어느 정도 보이며, 캐릭터의 경우는 서유기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항상 주인공과 반대편에 서있던 악당 트리오가 이번에는 주인공과 싸우는 요괴의 지원 캐릭터로 빠진 점은 아마도 이 작품의 최대의 미스가 아닐까 싶은데, 주인공들보다 오히려 더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던 악당 캐릭터들이 갈등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한발짝 뒤로 물러서면서 시리즈 무게중심 역시 크게 기우뚱 했다는 느낌이다.

평균시청률 9.4%는 시리즈 역대 최저의 시청률이었다. 저조한 시청률 덕분인지 이전 시리즈보다 훨씬 적은 분량인 20화로 종영되었으며, 그나마 마지막 화는 야구 중계로 인해 방영되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1] 참조)


 타임보칸 왕도복고 (1993), タイムボカン王道復古


타임보칸 왕도복고 DVD 표지ⓒ Tatsunoko Pro

<정보>

◈ 원작: 타츠노코 프로 기획실
◈ 감독: 시기노 아키라
◈ 감수: 사사가와 히로시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93.11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OVA (2화) / 전연령가 (G)


<소개>

타츠노코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OVA 작품으로, 타임보칸 시리즈의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타츠노코 프로가 제작한 아니메의 등장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팬 서비스적 성격이 강한 OVA 작품이다. 작품의 중심을 타임보칸 시리즈가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시리즈의 명성과 비중을 가늠해볼 수 있다. 


 타임보칸 2000 괴도 키라메키맨 (2000), タイムボカン2000 怪盗きらめきマン


키라메키맨 표지ⓒ Tatsunoko Pro

<정보>

◈ 총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감독: 우에다 히데히토
◈ 각본: 코야마 타카오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
◈ 음악: 신보 마사아키, 야마모토 마사유키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2000.04.05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TVA (26화) / 전연령가 (G)


<소개>

7번째 시리즈인 '이타다키 맨'에 이어 무려 17년만에 시작된 8번째 타임보칸 시리즈. 전작과는 또다른 변신을 선보인 이번 시리즈는 주인공 일행이 괴도로, 타임보칸 시리즈를 관통하는 악당 3인조가 경찰로 등장하는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줬지만, 이전과는 매우 달라진 아니메 트렌드의 탓인지 신통치 않은 반응에 그쳤다. 평균 시청률 3.6%라는, 이타다키 맨보다 더 저조한 시청률을 보여줬으나([1] 참조) 당시 TV 아니메가 70~80년대와는 달리 양적으로 매우 팽창했고, 채널 수도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단순한 수치 비교는 무리가 있을 듯 싶다. 하지만 시리즈의 명성을 감안하면 확실히 성공작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얏타맨 리메이크 (2008), ヤッターマン


얏타맨 리메이크 DVD 표지ⓒ Tatsunoko Pro / Yomiuri TV

<정보>

◈ 총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시리즈 구성: 타카하시 나츠코
◈ 각본: 타카하시 나츠코 外
◈ 캐릭터 디자인: 카미키타 후타고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
◈ 미술감독: 나카무라 미츠키
◈ 음악: 야마모토 마사유키
◈ 프로듀서: 수와 미치히코, 나가이 코지
◈ 제작: 타츠노코 프로
◈ 저작권: ⓒ Tatsunoko Pro / Yomiuri TV
◈ 일자: 2008.01.14
◈ 장르: SF, 모험, 코미디
◈ 구분/등급: TVA (60화) / 전연령가 (G)


<소개>

2008년, 시리즈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얏타맨이 리메이크 시리즈로 부활했다. 타임보칸 시리즈라는 부제가 생략되고 얏타맨 신시리즈라는 명칭으로 제작되어 이 작품의 변신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는 이전 시리즈의 구성과 스타일을 그대로 따르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화려해진 작화와 시대에 맞게 변모된 캐릭터의 성격 등 세세한 부분에서 현재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 2009년 3월까지 방영한 35화까지의 초기 시청률은 10%대의 시청률로 시작하여 전작인 키라메키맨에 비해서는 좋은 성적을 보여줬으나, 원 시리즈에 비해서는 여전히 미흡한 감이 있긴 하다.

2009년 8월 종영시기에 즈음하여 극장용 아니메 '얏타맨 신 얏타메카 대집합! 장난감 나라에서 대결전이다 결장!'이 제작되었다.


 얏타맨 - 실사영화 (2009), ヤッターマン


얏타맨 실사영화 포스터 #1

<정보>

◈ 감독: 미이케 다카시
◈ 각본: 소고 마사시
◈ 제작: 치바 요시노리
◈ 음악: 야마모토 마사유키 外
◈ 출연: 후카다 교코 (도론조 역), 사쿠라이 쇼 (간 역), 후쿠다 사키 (아이짱역)
◈ 일자: 2009.03.07


<소개>

극장용 아니메보다 앞서 2009년 3월 TV 시리즈가 방영 중에 개봉된 실사영화. 주인공보다는 오히려 도론보 일당의 리더인 도론죠의 캐스팅이 최대 관심사였는데, '음양사'나 '불량공주 모모코' 등에 출연했으며,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후카다 교코가 도론죠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발전된 3D 기술이 접목되어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했으며, 일본 개봉당시 260만명이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참고 사이트>

[1] 베스트 아니메
[2] 타임보칸(タイムボカン) 1980-2008,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Time Bokan (TV), Anime News Network
[4] Yatterman (TV), Anime News Network
[5] Zendaman (TV), Anime News Network
[6] Time Patrol-Tai Otasukeman (TV), Anime News Network
[7] Gyakuten Ippatsu-man (TV), Anime News Network
[8] Itadakiman (TV), Anime News Network
[9] Time Bokan (OAV), Anime News Network
[10] Kaitou Kiramekiman (TV), Anime News Network
[11] Yatterman (TV 2008), Anime News Network
[12] 이겨라 승리호, 네이버 영화
[13] Time Bokan, Wikipedia
[14] Yatterman, Wikipedia
[15] Zenderman, Wikipedia
[16] タイムボカンシリーズ, Wiki Japan
[17] タイムボカン, Wiki Japan
[18] ヤッターマン, Wiki Japan
[19] タイムパトロール隊オタスケマン, Wiki Japan
[20] ヤットデタマン, Wiki Japan
[21] 逆転イッパツマン, Wiki Japan
[22] イタダキマン, Wiki Japan
[23] ヤッターマン_(2008年のテレビアニメ), Wiki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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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P 해설집과 선착순으로 오리지널 포스터 증정

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이어 쿄토 애니메이션의 2009년 화제작 케이온도 한국에서 DVD로 정식발매된다고 합니다. 나름 의외의 소식인데요.

거의 사멸되었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DVD 시장, 그중에서도 아니메 시장에서 근래에 예상 외로 최신 타이틀들이 연이어 출시되는 기현상은 국내 아니메 팬들에게는 즐거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케이온의 경우에는 요즘의 10대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타이틀인지라 그 출시가 남다르지 않나 싶네요. 물론,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라는 대형 타이틀이 얼마전 출시된 상황인지라 충격파는 생각보다 적지만 말입니다.

DVD 출시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이어 미라지 엔터테인먼트가 맡았습니다. 그동안 공각기동대 극장판 트릴로지나, 카라스, 은하철도 999 TV 박스세트, 교향시편 에우레카 극장판 등, 상당히 좋은 퀄리티의 패키지를 제작해온 회사이기에 이번 패키지 역시 기대에 부흥할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무판권의 수준낮은 패키지의 DVD가 넘쳐나던 국내 아니메 DVD 시장을 감안했을 때, 요즘의 페이스는 좋아보입니다. 아니메를 보던 청소년들이 성장하면서 구매력이 어느 정도 생기면서 수요가 발생해서 그런 걸까요.

폐부위기에 처한 경음악부(한국으로 치면 밴드부 정도)를 살리기 위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테마로 한 학원 코미디물인지라 학생들이나 라이트하고 이쁜 스타일을 좋아하는 아니메 팬들에게 적합할 것 같은 작품입니다. 주요스탭들이 여성들(감독, 각본, 캐릭터 디자인)인지라 여성적인 감성을 잘 살리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이번에 출시된 타이틀은 케이온 1기 전편으로, 총 7장의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16:9의 화면비율에 오디오는 아쉽게도 2.0채널만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7월 30일 발매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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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NES / STRANGERS 2007


<스탭>

◈ 감독: 안도 마사히로
◈ 원작: 본즈
◈ 제작: 본즈


<시놉시스> 

승려인 쇼안과 함께 명나라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고아 소년 코타로. 의지할 데라곤 명나라에서 자신을 거두어준 승려 쇼안과 애견 토비마루 밖에 없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코타로는 명나라에서부터 계속 정체불명의 무리들에게 쫓기게 되고 가까스로 탈출한 쇼안과 코타로는 만각사에서 만나자는 말과 함께 난리통에 헤어지고 만다.

한편, 정체불명의 일행들이 전란의 일본 중 지방의 소국인 이카이케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일본인 안내자들의 인도를 받는 그들은 대부분 중국인들로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무예를 지닌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무리의 산적들이 이 일행을 습격하지만 벽안의 검사 한 명에게 모두 처참하게 도륙되고 만다. 명나라 황제의 밀명을 받은 이들은 과연 이곳을 무슨 목적으로 방문한 것일까.

쇼안과 헤어져 만각사로 향하는 힘든 여정에 들어선 코타로는 이카이케 지방의 폐허가 된 절에서 숨어지내던 도중 한 떠돌이 무사와 만나게 된다. 그를 경계하는 코타로, 하지만 충견 토비마루는 그에게 경계심을 들어내기는 커녕 자신의 생선을 그에게 나눠주려 한다. 어색한 식사가 시작될 무렵, 갑작스레 영주의 군사들이 코타로를 습격하는데...


움직이는 그림의 장점을 십분 살린 하드 액션물

한칼에 생명을 거는 승부를 펼치는 사무라이 액션은 현란한 손기술과 발기술을 선보이는 중국의 무협과는 다르게 찰나에 승부가 정해지는 긴박함과 강렬한 스피드가 특징인 무협장르입니다. 영화와 드라마, 만화영화로 일본에서 숱하게 사용된 이 인기장르를 이번에는 장인정신으로 투철한 아니메 제작사 본즈에서 도전하게 되었는데요. 카우보이 비밥에서 스파이크가 보여준 부드러운 절권도 액션과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엘릭형제가 선보인 날랜 액션이 이번에는 사무라이와 중국무사들의 처절한 액션으로 변주되었습니다. 움직이는 역동적인 샷의 연출에 있어서 그동안 높은 완성도를 보여왔던 본즈의 작화진은 확실히 액션물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믿음직스러운 느낌입니다.

근래의 아니메들은 대부분 이쁘고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져 보기에는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움직임이 많은 컷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빈약해진 움직임을 커버하기 위해 다른 화면 효과나 뱅크샷을 부여하는 스타일이 많아진 편입니다. 이러한 작화 스타일은 이쁘장한 캐릭터 디자인과 함께 상당한 공을 들인 작화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주기가 그렇습니다. CG라도 쓰지 않는 이상에야 동화(움직이는 그림) 컷을 잘 사용하는 작품에 비하여 다이나믹한 씬의 구현도 완성도가 떨어지구요.

예전에 리미티드 아니메들이 풀 애니메이션에 비해 부족한 프레임 수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 퀄리티, 또는 부자연스런 움직임을 보였던 것처럼, 요즈음의 아니메들은 발달된 CG 기술과 이쁘장하고 깔끔한 그림체로 얼핏 보기에는 퀄리티가 높은 듯 싶지만, 이전의 리미티드 기법을 십분 활용한 아니메들이 보여줬던 다이나믹함이나 역동적인 화면구성에 있어서 만족할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작품의 소재가 학원 로맨스물 등에 편중되어 있는 장르적 한계에도 원인이 있긴 합니다만.)

이런 면에 이 작품 스트레인저는 아니메로 보여줄 수 있는 다이나믹한 화면구성과 움직임을 멋지게 살린 액션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BONES / STRANGERS 2007



쾌속의 액션, 검과 검이 부딪히는 BONES의 액션 집대성

앞서도 말했듯이 이 작품은 본즈의 스탭진들이 이전작에서 선보였던 완성도 높은 액션 연출을 십분 살린 작품입니다. 감독을 맡았던 안도 마사히로가 모 인터뷰에서 소회한 바와 같이 작품에 대해 굉장히 열정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본즈의 스탭진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작화감독인 이토 요시유키의 경우에는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의 어시스턴트 작화감독이나 강철의 연금술사의 작화감독 등을 맡았던 경험이 있는지라 액션 시퀀스나 장면 연출에서 앞의 두 작품과의 유사성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경우에는 애초에 프로듀서였던 미나미 마사히코나 감독인 안노 마사히로 등이 처음부터 칼싸움이라는 소재를 아니메에서 한 번 멋지게 재현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출발한 작품이었기에 액션의 묘사는 근래의 작품들 중에서도 발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진의 의도를 이미 여러 작품에서 멋진 액션씬을 구현해 낸 본즈의 스탭진들이 훌륭하게 구현해냈구요. 한국판 DVD 북클릿에 포함된 액션원화집에는 이들의 멋진 액션 작화가 만들어지는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움직임이 많은 액션작품이지만, 풀애니메이션이 아닌 리미티드 아니메의 특성을 십분 살린 작품입니다. 순식간에 결판이 나는 쾌속의 검투장면은 유려하고 부드러운 풀 프레임의 만화영화보다는 스피드함이 살아나는 리미티드 아니메 기법이 더 어울리는 것 같네요. 특히, 완급을 조절하면서 빠른 움직임과 정지 컷을 번갈아 배치하면서 적절하고 멋진 템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흩날리는 빗발이나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찰나에 승부가 결정되는 긴박하고 속도감 넘치는 칼싸움에서 멋진 소품으로서 작용하고 있구요. 검에 깊게 베여 피가 흩뿌려지는 씬 또한 강렬한 칼싸움의 여운을 화면 가득 진하게 베이게 합니다. 모든 배경과 소품이 마치 한몸이듯이 액션장면으로 승화되는 것 같군요.

흔히들 그렇듯 이러한 액션작품에서 주인공은 다수의 실력자들과 맞딱들이게 됩니다. 그것은 이번 스트레인저에서도 예외는 아니지요. 명나라에서 온 아홉명의 무사들이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 나나시가 맞서게 되는 최강의 실력자들입니다. 뻔하면서도 항상 긴장감을 갖게 하는 이 설정은 이번 작품에 이르러 몇가지 설정에 의해 긴장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어떠한 이유로 인하여 다시는 검을 뽑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과, 이들에게 잡혀간 또다른 주인공인 어린 소년 코타로는 당장 이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해져 있다는 것,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제약들은 주인공을 옥죄며,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립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최강의 실력자들과 맞서 나나시는 코타로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작품은 이러한 테마 속에서 검과 검이 부딛히는 사나이들의 쾌속의 액션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게 됩니다.

ⓒ BONES / STRANGERS 2007



스토리는 그저 거들 뿐. 액션물에 최적화된 단순한 스토리

사실, 이 작품의 기획의도 자체가 칼싸움이라는 소재를 아니메로 멋지게 표현해보자는 것이었던 것 만큼, 작품의 내용적 깊이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쫓기는 소년을 구해주고 그의 경호원이 되는 과거를 숨긴 사무라이와 명나라에서 넘어온 정체불명의 무인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무언가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지방영주와 그들의 부하는 상당히 전형적이고 단순하면서도 뻔한 구도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감독 자신이 B급이라고 밝힌 이 작품은 이런 단순한 구도를 액션이라는 장르에 최적화된 스토리텔링으로 승화시킵니다. 액션에 최적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의 부실함을 드러내며 낮은 완성도를 보여준 영화나 아니메들을 우리는 종종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확실히 그런 면에서 그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지요. 

영화로서는 시덥지 않은 각본이 아니메로 이식되면 종종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준 적이 있기도 한데요. 그것이 만화영화 특유의 판타지적인 연출이나 신기의 작화기술에 근거했음을 비춰볼 때, CG로 무장된 근래의 영화와 만화영화의 차이는 점점 좁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와는 별개로 이 작품의 이야기 구조는 아니메로 구현되든, 영화로 구현되든 액션연출의 완성도만 갖춰진다면 무난하게 전개될 구조이기도 하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이야기는 영화든 만화영화든 간에 큰 임팩트를 주기보다는 '괜찮네' 정도의 평범한 호응을 이끌어낼만한 작품이라는 소리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 정도의 호응을 주었다고 볼 수 있구요.

그러나, 평범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소년과 충견, 그리고 소년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뽑지 않았던 칼을 뽑고 실력자들과 맞서는 한 사나이이의 우정어린 이야기는 담백한 맛이 있습니다. 별 깊이는 없지만, 드라마틱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군요. 이러한 느낌은 야무지고 버릇 없지만 외로운 소년의 연기를 무난히 해낸 신예 치넨 유리와 조용하고 과묵한 사무라이의 연기를 잘 소화해낸 아이돌 가수 출신 겸 배우인 나가세 토모야 덕에 잘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명나라 무사들의 경우에도 중국어를 직접 구사하면서 좀 더 현실감이 느껴졌구요. 특히, 엄청난 실력을 가진 벽안의 무사 라로우를 연기한 야마데라 코이치의 경우에는 직접 중국어를 배워 대사를 연기하는 열성을 보여주며, 이야기에 많은 생명력을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몹시 빈약한 이 작품에서 영주의 딸인 공주로 잠깐 출연하는 성우는 사카마토 마야가 맡았군요. 안타깝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담겨진 노래를 들어볼 수는 없습니다.

ⓒ BONES / STRANGERS 2007



웰메이드 B급 액션물, 본즈가 만들면 다르다

보통 유명하지 않은 배우와 저예산의 제작비로 제작되는 메이저 영화가 아닌 소규모, 혹은 독립제작사들의 영화를 B급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본즈라는 제작사의 네임밸류와 캐스팅 등을 살펴볼 때 만화영화로서 이 작품을 B급이라고 불러야할지는 의문이 들기도 하네요. B급이라 불리기에는 여기저기에서 높은 완성도와 함께 능숙한 모습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물론 작화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톱클래스의 퀄리티를 보여주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조금 힘을 빼고 만든 듯한 느낌도 들구요.

하지만, 과거 사무라이 액션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영상미학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린 타로 감독의 85년작 카무이의 검이나 그의 제자로 사무라이 액션을 자신만의 미학적 스타일로 승화시킨 하드코어의 대가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93년작 수병위인풍첩이 갖고 있는 네임밸류 정도는 얻지 못하고 있는 작품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높은 완성도이지만, 명작이라고 불리기에는 여러 면에서 혁신적인 모습은 부족한 작품이기도 하지요. 웰메이드 B급이라고 한다면 괜찮을까요.

하지만, 근래처럼 CG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니메 제작현실에서 2D와 수작업을 통해 멋진 영상을 보여준 점에서 스트레인저가 가진 의의는 남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은 작품이라고 하고 싶군요. 다만, 모쪼록 이런 작품들의 계속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이 지속되기를 희망해 보기도 합니다. 본즈의 작품들이 줄줄이 시청률 잡기나 극장흥행에 성공적이지 못한 모습이나, 그와 비슷한 작품 성향을 추구하는 제작사들이 고전하는 모습은 아니메 팬으로서는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 BONES / STRANGERS 2007



<참고 사이트 및 자료>

[1] ストレンヂア 無皇刃譚, Wikipedia Japan
[2] 『ストレンヂア』安藤真裕監督インタビュー第1回 あんなぷるは野武士の集団に見えた, WEB アニメスタイル
[3] 한국판 DVD 커멘터리
[4] 한국판 DVD 북클릿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BONES/ストレンヂア製作委員会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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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버전 디지팩 케이스로 출시, 1.11과 동일한 디자인

침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 '에반게리온 2.22 You Can(not) Advance'가 국내에서도 블루레이와 DVD로 동시에 발매예정이라고 합니다.

1.01 버전 출시 이후 1.11 버전이 나왔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2.22 버전으로 바로 출시가 되는군요. 저처럼 1.01 버전 산 다음 1.11 출시에 땅을 쳤던 사람들에게는 이번 2.22 출시는 이전처럼 삽질할 수 있는 여지는 지워준 셈이 되겠습니다.

사실, 마니아의 입장에서라면 2.02 버전도 나름의 소장품이 될 수 있을텐데, 왠일인지 이번에는 2.22로 바로 점프하고 계십니다. 극장에서 상영된 버전이 2.02라면 일부 작화가 수정된 버전이 2.22인데요. 두 버전을 모두 구입할 정도의 마니아가 예상 외로 없어서 였는지 궁금하네요.

마니아층이 옅은 한국만의 경우라면 모를까, 일본에서도 2.02 버전은 출시가 안된 것 같더군요. 뭐, 하여간에 저같은 캐주얼 팬에게는 별 문제 없는 일이올습니다만.

이번 2.22의 패키징은 1.01 혹은 1.11과 동일한 스타일의 패키징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블루레이 버전의 경우에는 OST CD 합본팩도 출시된다고 하는군요. 비슷한 구성에 엽서와 스티커가 들어 있던 1.01 DVD SE 버전과 달리 DVD 2.22 버전에는 마우스패드가 포함될 모양인 것 같습니다. 이 구성은 블루레이 버전에서도 동일한 것 같군요.

전작의 스토리를 압축하고 재구성하고 뒤바꿔 버린 새로운 해석, 15년전에 정점에 달했던 작화 퀄리티를 압도하는 절정의 퀄리티와 박진감 넘치고 압도적인 비주얼, 아슬아슬한 각도로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을 담은 덕후적인 카메라 구도 등, 명실상부 새로운 에반게리온의 임팩트를 이번 DVD를 통해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월말부터 8월초 사이에 출시 예정이라고 합니다. DVD 출시는 아인스앰엔앰(구 태원 엔터테인먼트)에서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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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기사 테카맨 (1975), 宇宙の騎士テッカマン / Tekkaman The Space Knight


ⓒ タツノコ プロ


<정보>

◈ 원작: 타츠노코 프로 기획실
◈ 감독: 사사가와 히로시(笹川ひろし), 토리우미 히사유키(鳥海永行)
◈ 각본: 토리우미 진조(鳥海尽三) 외
◈ 연출: 사사가와 히로시, 토리우미 히사유키, 쿠리 잇페이(九里一平) 외
◈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天野嘉孝)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大河原邦男)
◈ SF 고증: 시게노 타쿠미(柴野拓美)
◈ 미술감독: 나카무라 미츠키(中村光毅)
◈ 음악/노래: 밥 사쿠마(ボブ佐久間) / 미즈키 이치로(水木一郎)
◈ 기획/제작: 토리우미 진조 / 요시다 타츠오(吉田竜夫)
◈ 프로듀서: 쿠리 잇페이, 미야자키 신이치(宮崎慎一)
◈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 NET 테레비
◈ 저작권: ⓒ タツノコ プロ
◈ 일자: 1975.07.02 ~ 1975.12.24
◈ 장르: SF, 액션, 히어로
◈ 구분/등급: TVA(26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PG)


<줄거리>

21세기를 맞이한 지구의 과학력은 태양계 저편에 우주 스테이션을 만드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지구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태양계를 넘어서까지 우주선을 보내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니 이는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인해 지구는 앞으로 3년이면 죽음의 별이 될 운명에 놓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류는 지구를 떠나 다른 천체로의 이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우주 탐사에 나선 스페이스 엔젤호가 돌연 정체불명의 비행체들에게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한다. 무차별적인 외계 비행체들의 공격으로 스페이스 엔젤호는 처참히 파괴되고 조지의 아버지인 미나미 선장도 이 습격으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우주인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던 조지는 우주 개발센터의 아마치 국장에게 이끌려 비밀 연구실로 향하게 되고, 여기서, 인간의 세포를 파워업하여 초인으로 변신시키는 테크 섹터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는 거대한 로봇 페가스를 만나게 되는데...


<소개>

'과학닌자대 갓챠맨(1972)', '신조인간 캐산(1973)', '하리켄 포리마(1974)'에 이은 타츠노코 SF 히어로물 제4탄. 갓챠맨이나 캐산에 비해 다소 가벼웠던 포리마의 분위기를 일신하여 지구의 멸망을 앞둔 상황에서 펼쳐지는 하드한 SF 액션물로 그려지고 있다. 감독은 캐산을 연출한 타츠노코의 대표 연출가인 사사가와 히로시로, 갓챠맨과 포리마를 토리우미 히사유키가 연출을 하고 캐산과 테카맨을 사사가와가 연출을 하는 등, 타츠노코의 초기 히어로물은 이 두 명의 감독이 번갈아 연출했다는 특징이 있다. 사사가와 감독은 테카맨 연출 도중 '타임 보칸(1976)'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자리를 토리우미 감독이 이어받게 되는데, 토리우미는 이미 연출 스탭으로 1화부터 참여하고 있었기에 신임 감독으로 자리를 이어받았다기 보다는 감독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는 것이 더 맞을 듯 싶다.


캐릭터 디자인은 아마노 요시타카가 맡고 있는데, 캐산을 거쳐 포리마와 테카맨에 이르기까지 이 약관(24살)의 애니메이터의 캐릭터는 이미 이 때 완성 단계에 이른 듯 싶다. 타츠노코 SF 히어로물에 있어서 아마노의 극화풍 캐릭터들은 타사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타츠노코의 작품들을 보다 더 어른스럽게(?) 보이게 하는 아우라가 있다고나 할까. 메카닉 디자인은 오카와라 쿠니오의 작품으로, 테카맨은 오카와라에게 있어서 타츠노코 소속 애니메이터로서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본 작품을 끝으로 오카와라는 타츠노코를 퇴사하게 된다.(하지만, 이후에도 오카와라는 외주로 타츠노코의 작품에 계속 참여하게 된)

테카맨은 사사가와 감독의 이전작 캐산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과 주인공이 특수한 무기보다는 육탄전으로 적들과 맞서는 점, 태양 에너지를 원천으로 하기에 흐린 날에는 힘을 쓰지 못하는 캐산처럼 활동시간에 제한이 있는 부분, 캐산의 로봇 동료인 프렌다와 같은 로봇 동료 페가스가 등장하는 등 여러 설정은 확실히 캐산과 닮은 부분이 있다. 우주판 갓챠맨이라는 의도도 있었다([1] 참조)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우주판 캐산이 더 맞지 않나 싶다. 또한, 적대적인 외계군단인 와르드스타의 비행선은 바이론 하스킨 감독의 SF 영화 '우주전쟁(1953)'에 등장하는 우주선과 거의 흡사하다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

갓챠맨이나 캐산 등과 비교하여 히어로와 사이드킥의 디자인은 다소 투박하고 거칠다. 호리호리했던 이전 타츠노코의 히어로들에 비해 프로 레슬러를 연상시키는 우람한 몸매의 테카맨은 의외이긴 하지만 오히려 본작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하드 SF액션 장르에는 잘 어울리는 모양새인 듯 싶다. 창을 들고 페가스 위에 올라타서 수많은 와르드스타의 우주선과 대치하는 테카맨의 모습은 흡사 'SF 서유기 스타징가(1978)'의 손오공과 같은 느낌이며(하얀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룬 코스튬 역시 미약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변신시 전해지는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며 제한 시간 안에 아슬아슬하게 우주인들을 물리치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남성미가 느껴지는 매력적인 설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인상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테카맨은 26화라는 짧은 방영횟수로 엔딩을 맞게 된다. 그것도 와르드스타의 대군에 홀로 맞선 테카맨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 한 체 다소 석연치 않는 결말을 맞이하는데, 이런 상황을 미루어 보아 스탭진에게도 이것은 갑작스러웠던 엔딩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4쿨까지 예정되어 있던 스토리의 대부분을 전하지 못한 체 황급히 마무리 되는데, 테카맨이 보여준 처절하고 드라마적인 구조가 당시의 아이들에게는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싶다.

전년도에 방영되어 역시 조기종영되었던 '우주전함 야마토(1974)' 역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하드한 SF 드라마로 그 진지함으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고 조기종영을 겪게 되는데, '기동전사 건담(1979)'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진지한 SF 드라마가 TV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한다는 당시 징크스를 테카맨도 결국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이후 사회적 현상으로 발전하는 야마토나 건담과는 달리 테카맨은 26화를 끝으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만다.

다만, 오프닝에서 사용되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스캐니메이트(Scanimate: 아날로그 컴퓨터 애니메이션 시스템을 이용한 첨단 영상기법)는 타츠노코의 차기작 타임 보칸에서 시간여행시 보여지는 특수기법으로 다시 한 번 사용되며 주목을 얻게 되며, 테카맨이 보여주었던 여러 매력적인 설정은 이후의 타츠노코 아니메에 음으로 양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 (1992), 宇宙の騎士テッカマンブレード / Tekkaman Blade


ⓒ 創通エージェンシー · タツノコ プロ


<정보>

◈ 감독: 네기시 히로시(根岸ひろし)
◈ 시리즈 구성: 세키지마 마요리(関島眞頼), 아카호리 사토루(あかほりさとる)
◈ 연출: 토노카츠 히데키(殿勝秀樹) 외
◈ 스토리보드: 네기시 히로시, 토노카츠 히데키, 사카타 쥰이치(坂田純一), 나카무라 류우타로(中村隆太郎) 외
◈ 캐릭터 디자인: 코가와 토모노리(TOIIIO, 湖川友謙), 사노 히로토시(佐野浩敏) - 원안 협력
◈ 메카닉 디자인: 사야마 요시노리(佐山善則), 나카하라 레이(中原れい)
◈ 작화 코디네이터: 코가와 토모노리
◈ 오프닝 애니메이션: 오바리 마사미(大張正己)
◈ 설정협력: 이즈부치 유타카(出渕裕), 키쿠타 히로키(結城二十六)
◈ 미술감독: 우미노 요시미(海野よしみ)
◈ 음악/노래: 와다 카오루(和田薫) / 코사카 유미코(小坂由美子)
◈ 제작 총지휘: 쿠리 잇페이
◈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 TV 도쿄, 소츠 에이전시
◈ 저작권: ⓒ 創通エージェンシー · タツノコ プロ
◈ 일자: 1992.02.18 ~ 1993.02.02
◈ 장르: SF, 액션, 히어로
◈ 구분/등급: TVA(49화) / 중학생 이상 관람가(PG-13)


<소개>

1991년 카키누마 히데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오바리 마사미의 3부작 OVA '데터네이터 오간(1991)' 1부가 비디오 시장에 출시된다. 지구를 침략하는 전투종족 이바류더 중에서도 이바류더의 돌격대장이기도 한 오간이 이바류더에 반기를 들고 단신으로 싸우다가 사망한 뒤, 그의 의지를 받아 지구에서 만들어낸 전투용 아머와 주인공 토모루가 합체하여 이바류더와 전투를 계속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인간형 아머를 장착한 주인공이 외계의 전투종족과 싸운다는 점과 오간의 디자인적인 측면(페이스 마스크와 채찍과 창을 쓰는 부분 등)에서 테카맨과 상당부분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

오간이 테카맨의 오마쥬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은 듯 싶다. 다만, 오간의 시놉시스가 테카맨의 정통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 '테카맨 블레이드(1992)'와 유사하다는 점은 특기할만 하다. 후속편이라고는 하지만 테카맨 블레이드의 상당 부분 설정은 오간의 그것과 비슷한데, 이를 통해 세 작품(테카맨→오간→테카맨 블레이드)이 어느 정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듯 싶다.

오간에서 감독을 맡았던 오바리 마사미가 본작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맡은 점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NG 기사 라무네&40(1990)'의 네기시 히로시와 아카호리 사토루의 참여 역시 의외인데, 보통 유쾌한 작품들을 연출하던 이 둘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는 상당히 암울하고 시리어스한 전개의 SF 액션 드라마로 그려지고 있다. 메카닉 디자인은 '패트레이버' 시리즈에 참여했던 사야마 요시노리. 이런 연유에서인지 테카맨들의 디자인은 어딘가 모르게 패트레이버의 레이버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설정에 이즈부치 유타카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패트레이버와의 연관성을 더 높이고 있다.

테카맨의 정식 후속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접점을 찾아볼 수 없다. 주역인 테카맨 역시 테크 섹터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외계 생명체라는 점은 오히려 오간과 유사한 부분. 비극의 히어로와 육탄전으로 적들과 맞서 싸우는 하드보일드 액션,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 등 많은 부분에서 원작의 장점을 계승발전시켰으나 작화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은 본작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특히 코가와 토모노리라는 걸출한 작화가가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디자인은 일관성이 떨어져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뛰어난 퀄리티의 작화와 수준낮은 작화가 병행되는 것으로 보아 제작상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 II (1994)


ⓒ 創通エージェンシー · タツノコ プロ


<정보>

◈ 감독: 토노카츠 히데키
◈ 각본: 카와사키 히로유키(川崎ヒロユキ)
◈ 캐릭터 디자인: 사노 히로토시
◈ 메카닉 디자인: 사야마 요시노리, 나카하라 레이
◈ 작화감독: 카노 아키라(加野晃), 나카무라 유타카(中村豊)
◈ 음악/노래: 쿠도 타카시 / 오쿠이 마사미(奥井雅美)
◈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 소추 에이전시
◈ 저작권: ⓒ 創通エージェンシー · タツノコ プロ
◈ 일자: 1994.07.21 ~ 1995.04.21
◈ 장르: SF, 액션, 히어로
◈ 구분/등급: OVA(6화) / 중학생 이상 관람가(PG-13)


<소개>

테카맨 블레이드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OVA. 전작의 남성적인 분위기를 일신하여 본 시리즈에서는 여자 캐릭터들이 극을 이끌고 있다.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면서 호불호도 갈리긴 했지만, 미소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주효한 듯 3부작으로 예정되었던 OVA는 6부까지 출시된다.


<참고 사이트>

[1] 宇宙の騎士テッカマン, Wikipedia Japan 
[5] 宇宙の騎士テッカマンブレード, allcinema.net
[6] 우주의 기사 테카맨, 엔하위키 미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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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자 라이딘 (1975), 勇者ライディーン / Brave Raideen


ⓒ 東北新社


<정보>

◈ 원작: 스즈키 요시타케
◈ 감독: 토미노 요시유키 (1~26화), 나가하마 타다오 (27~50화)
◈ 스토리보드: 토미노 요시유키 (전반부), 오노야 미노루 (후반부), 야스히코 요시카즈 外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
◈ 메카닉 디자인: 무라카미 코우지, 스튜디오 누에
◈ 음악: 코모리 아키히로
◈ 제작: 토호쿠 신사, 소에이샤 (선라이즈), NET TV (TV 아사히)
◈ 저작권: ⓒ 東北新社
◈ 일자: 1975.04.04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50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고대 무제국을 침략했던 요마제국은 무제국이 해저로 가라앉을 때 그 운명을 같이하며 12,000년의 긴 잠에 빠져들게 된다. 12,000년 후 긴 잠에서 깨어난 요마제국의 요제 바라오는 자신의 아들인 샤킨 왕자를 지휘관으로 내세워 지상침공을 개시하게 된다. 지구에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날, 아키라 히비키는 자신의 마음 속에 들리는 환청을 따라 나서게 된다. 신비한 목소리는 아키라에게 요마제국의 부활과 지구의 위기를 알려주며, 마침내 아키라를 고대 피라미드로 인도한다. 그곳에는 고대 무제국의 수호신이었던 신비한 거대로봇 라이딘이 잠들어 있었는데...


<소개>

마징가 Z와 겟타로보 시리즈로 당시 로봇 만화영화를 장악하고 있던 도에이 동화에 맞서 토호쿠 신사가 제작한 로봇 만화영화. 소에이샤라는 소규모 제작사에 실제 제작을 맡기고, 바다의 트리톤을 통해 연출가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신예감독 토미노 요시유키를 감독으로,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콘티를 맡았던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캐릭터 디자인을, 역시 우주전함 야마토를 통해 이름을 얻기 시직한 크리에이터 집단 '스튜디오 누에'를 메카닉 디자인에 참여시켜 마징가 Z에 맞서기 위한 진용을 구성한다.

특히, 마징가 Z에서 보여준 현대과학으로 만들어진 최첨단의 로봇이라는 설정과 반대로 라이딘은 고대 무제국이 만든 신비한 로봇이라는 설정과, 로켓 펀치나 레이저 광선과 같은 현대적 무기가 아닌, 화살과 부메랑, 그리고 갓버드 형태의 몸통 박치기와 같은 고전적인 무기를 통해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간결한 변신 형태는 완구제작시에도 쉽게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스폰서들이 만족스러워 하였고, 이집트의 파라오를 연상시키는 얼굴 디자인과 같은 디자인 역시 아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게 된다. (개인적으로 70년대 슈퍼로봇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 되신다.)

또한, 그동안의 악역들이 주인공과 대비되기 위해 추하고 사악한 모습으로 그려졌던 것에 비해 가면을 쓴 미남자가 적의 편으로 등장하는 설정은 당시 로봇만화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아시다시피 이 가면 쓴 미남자 프린스 샤킨은 후일 기동전사 건담의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의 모티브가 되는데, 덕분에 로봇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많은 여학생들 팬을 거느린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 역시 후일 기동전사 건담에서 나타나는 데자뷰이다.

참신한 설정 등으로 좋은 스타트를 끊었던 라이딘이지만, 속칭 오컬트라 불리던 라이딘의 설정(무제국이나 초능력의 등장과 같은)들이 제작을 담당했던 NET TV측에서 아이들의 교육에 이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으며 흔들리기 시작한다.([4] 참조) 이러한 외부에서의 압력은 당시 경험 부족이었던 토미노 감독이나 제작사인 소에이샤 측을 갈팡질팡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며, 시리즈의 분위기가 느닷없이 바뀌는 등 스토리 전개 상의 불협화음을 야기한다.

결국, 토미노 감독은 26화를 끝으로 물러나게 되고, 그 자리에는 '거인의 별' 등의 열혈 스포츠 애니메이션을 연출했던 베테랑 나가하마 타다오 감독이 교체 투입된다. 나가하마 감독의 대체 후 시리즈는 안정적으로 다시 순항하게 되는데, 감독에서 강판되어 연출가로 내려앉은 토미노 감독은 이런 나가하마 감독의 역량에 큰 감동을 받으며 그의 밑에서 로봇 아니메를 연출하기 위한 여러 노하우를 전수받게 된다.

도에이 동화가 주름잡던 70년대 로봇물에서 라이딘의 선전은 여러가지 면에서 큰 의의를 갖게 된다. 먼저, 나가하마 타다오라는 명감독이 70년대 후반의 로봇물을 주도하게 되는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 두번째로 토미노 요시유키라는 미완의 대기로 하여금 로봇 아니메의 귀중한 경험을 쌓게 하였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개 영세 제작사였던 소에이샤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로봇 아니메에 뛰어들어 마침내 도에이 동화를 뛰어넘는 거대한 제작사로 성장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소에이샤는 후일 로봇 아니메의 메카가 되는 제작사 선라이즈로 사명을 바꾸게 된다.

라이딘의 디자인 컨셉은 후일 선라이즈에서 분사한 제작사 BONES의 로봇물 라제폰의 디자인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이름이나 사용하는 무기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 東北新社



 초자 라이딘 (1996)


ⓒ SUNRISE, 東北新社

<정보>

◈ 감독: 카와세 토시후미
◈ 원안: 야다테 하지메
◈ 캐릭터 디자인: 타카야 히로토시
◈ 메카닉 디자인: 아오키 켄타, 야마네 마사히로
◈ 메카닉 컨셉: 오카와라 쿠니오
◈ 제작: 선라이즈, TV 도쿄
◈ 저작권: ⓒ SUNRISE, 東北新社
◈ 일자: 1996.10.02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38화) / 전연령가 (G)


<소개>

75년작 용자 라이딘을 모티브로 삼고 있지만, 이야기의 연결점도 없으며 더욱이 방향성 자체가 전혀 다른 노선의 작품이다.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팬 층을 노린 다수의 미형 남자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로봇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상과는 달리 좋은 반응을 얻어 2쿨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3쿨로 연장 방영되었다. 탑승시 남자 주인공들이 나체로 변한다는 점이 당시 여학팬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일까. 만화영화 주인공도 일단 몸 좋고 볼일이다.



 REIDEEN (2007)


ⓒ Production I.G, 東北新社

<정보>

◈ 감독/스토리보드: 혼고 미츠루
◈ 시리즈 구성: 혼고 미츠로, 요코타니 마사히로
◈ 각본: 요코타니 마사히로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사토 타쿠야
◈ 메카닉 디자인: 아라마키 신지, 타케우치 아츠시
◈ 음악: 이케 요시히로
◈ 제작: 프로덕션 I.G, TFC, Bee Train, WOWOW
◈ 저작권: ⓒ Production I.G, 東北新社
◈ 일자: 2007.01.26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26화) / 전연령가 (G)


<소개>

2000년대 라이딘의 후속 프로젝트는 특이하게도 선라이즈가 아닌 프로덕션 I.G에서 추진되었다. 3D 애니메이션 쪽에 조예가 있던 프로덕션 I.G는 역시 여신후보생이나 IGPX와 같이 3D 로봇 아니메를 감독했던 혼고 미츠루를 감독으로 기용하고, 기갑창세기 모스피다, 메가존 23, 버블검 크라이시스와 같은 80년대 명작 SF 아니메의 메카닉 디자인을 맡았으며, 애플시드 3D 극장 아니메의 감독을 맡으며 3D 기술에도 조예가 깊은 아라마키 신지를 메카닉 디자인으로 영입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라이딘의 디자인이나 3D 액션은 수준급이었다. TV 시리즈의 특성상 뱅크샷이 자주 사용된 단점이 있지만, 다채로운 라이딘의 병기 시스템이나 독특한 외계인의 메카들, 특히 라스트 엔딩의 우주 액션씬은 상당히 높은 퀄리티로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서 드라마적인 구성은 상당히 허술한 측면이 있어서 몰입감을 방해하고 있으며, 캐릭터의 설정도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한 듯 싶다. 주인공 준키가 나신으로 라이딘에 탑승하는 설정은 '초자 라이딘'과 비슷하지만, 아쉽게도 준키는 몸짱이 아니다. (응?)

ⓒ Production I.G, 東北新社

ⓒ Production I.G, 東北新社



<참고 사이트>

[1] Yuusha Raideen (TV), Anime News Network
[2] Chouja Reideen (TV), Anime News Network
[3] Reidden (TV), Anime News Network
[4] 勇者ライディーン, Wikipedia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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