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tions/Theme Review 2010.08.24 15:31



<목차>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든 소년 소녀들

'무로 레이는 연방군의 기술자인 아버지 템 레이의 극비 프로젝트를 위해 어머니와 헤어지고 지구를 떠나 스페이스 콜로니 사이드 7으로 이주한 평범하고 내성적인 소년이다. 타인과의 교류에 익숙하지 않은 아무로는 연방군의 비밀병기 개발을 위해 항상 집을 비운 아버지 덕에 항상 혼자 지내며 메카닉을 만지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지낸다. 옆집에 사는 소녀 후라우와 스스로 설계한 애완용 로봇 하로만이 친하게 지내는 유일한 친구들.

한편, 지온군이 연방군의 신무기 개발계획을 탐색하기 위해 사이드7에 침투하면서 아무로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전화에 휩싸이고 만다. 피난 중에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본 아무로는, 충동적으로 운반중이던 연방군의 비밀병기 모빌슈트 건담에 탑승하여 익숙하지 않은 조종술로 지온군의 모빌슈트에 맞서게 된다.
'

건담의 첫 스타트는 이전까지의 로봇 아니메들과는 다른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내성적이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소년 주인공 아무로 레이, 게다가 그는 어머니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으며, 일에만 매달리는 아버지 때문에 항상 외톨이인 체로 옆집 소녀만이 유일한 친구인 소년이다. 이런 주인공의 설정은 이제까지 우연하든 우연하지 않든 간에 로봇을 타게 되면서 사명감을 갖게 되는 다른 소년 히어로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주역로봇인 건담 역시 한 과학자의 노력의 결실로 태어난 사유물이나 특정 연구소 혹은 특수부대의 소유물, 또는 미지의 세계나 과거에서 온 불가사의한 유산이었던 그제까지의 로봇들과는 달리 전쟁을 위해 개발한 군의 소유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 군용병기를 우연한 사고로 인해 한 소년이 조종한다는 시작과 그로 인해 소년이 원치않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적군의 습격으로 인해 대다수의 군인들이 죽거나 다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소년들이 전쟁에 가담하는 상황은 아니메로서는 몹시도 현실적인 것이었다. 비록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영화였지만, 그 전개는 이제까지의 로봇 아니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드라마틱하고 현실적인 설정이었던 것이다.

건담이 군 프로젝트의 결과물이고 주인공인 아무로의 아버지가 건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엔지니어라는 사실은 마징가 Z에서 이어져온 '아버지(혹은 할아버지)가 만든 로봇, 조상들의 유산인 로봇을 타고 악과 맞서 싸운다.'라는 설정의 연장인 듯 싶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내포된 의미도 더 있지 않을까 싶은데, '자식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매진한 부모가 만든 로봇을 우연치 않게 그 자식이 조종하면서 스스로 성장의 도구로 삼는다.'라는 것으로,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심을 품은 체 기성 사회에 뛰어든 젊은이가 마침내 그 안에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찾아낸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다. 이러한 전개는 후일 건담의 후속작인 '기동전사 Z 건담(1985)'에도 그대로 사용되는 설정이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든 건담 MK II에서 자신이 직접 아이디어를 낸 제타 건담으로 옮겨타는 카미유나 아버지가 만든 건담에서 후일 자신이 직접 설계한 뉴 건담을 타게 되는 아무로의 모습은 성장과 독립이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마침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아무로를 포함한 소년과 소녀들은 전쟁의 참상과, 기성 세대들의 불합리함 속에서 갈등하고 성장하게 된다. 내성적인 소년 아무로는 스스로의 처지를 가엽게 여기고 곧잘 신경질을 부리지만, 그것이 곧 어리광이라는 것을 깨달아가기 시작하며, 막 소위에 임관한 새파란 청년 브라이트도 함장이라는 중책 속에서 소년들을 다독이며 혹독한 전투를 수행해가는 과정 속에서 어리숙함을 벗고 어른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아무로를 보살피는 다정한 소녀 프라우나 얌전한 명문가의 영애 미라이, 지온공국 창시자의 딸로 공국의 반란 속에 신분을 숨긴 체 살아가는 세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조용하지만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뺀질거리는 카이와 성실한 하야토 등 다양한 인물군상은 작품의 드라마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간의 갈등과 화해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의 교감, 나아가서 적과의 교감을 통해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아무로의 경우는 동경하던 여인 마틸다 중위의 희생, 전우이자 든든한 형이었던 류 호세이의 죽음, 거기에 자신의 인생에 크나큰 전기를 마련하는 적장 란바랄의 장렬한 전사, 라이벌인 샤아의 연인이자 같은 뉴타입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했던 라라아의 죽음 등 셀 수 없는 전우들과 적군의 죽음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 과정은 '우주전함 야마토(1974)'나 '은하철도 999(1978)' 등에서 볼 수 있었던 타인의 희생을 통한 삶의 성찰이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건담에서는 이러한 죽음이 교훈을 주는 장치라기보다는 비정한 현실을 깨닫게 하는 장차라는데에서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좀 더 높은 연령층을 상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건담이라는 작품의 세계에서 그려지는 어른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삐뚤어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마치 방황하는 사춘기의 소년이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과도 같았다. 즉, 교훈을 일깨워주는 과거의 아동용 아니메에서 독립적인 개성과 가치관을 가지려는 청소년들의 생각을 대변한 시각의 전환이 작품에서 행해진 것이다. 죽음과 희생, 그리고 이기적인 어른들의 틈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현실을 깨닫고 일어서게 된다.

ⓒ SUNRISE · SOTSU Agency

건담 시리즈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바로 여성이다. 그 어느 로봇물보다 여성에 대한 비중이 컸던 이 작품은 주인공이 끊임없이 여성을 동경하고 여성에 의지한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외로운 십대의 모성결핍증에서 비롯된 것 같은 이 모습은 이후 토미노 감독의 작품에서 하나의 테마로 자리잡게 된다.


더이상 들러리가 아닌 살아있는 적의 등장, 붉은 혜성

담의 이야기에서 또다른 중요한 또다른 관점은 주인공들이 속해 있는 지구연방군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적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온공국의 이야기 역시 비슷한 무게를 두고 진행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로봇물이 주인공측의 인물들의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두면서 상대편 측의 이야기에는 소홀했던 반면, 건담은 지온공국의 이야기에 상당한 비중을 쏟으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상대적인 시각을 제공하게 된다.

에피소드 상에서 지온공국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이전처럼 주인공들이 악당을 쳐부수는 로봇물에서의 흔한 전개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갈등 속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의미하고 있었다. 1화에서 사이드 7에 침투한 자쿠의 조종사들이 건담을 탈취하기 위한 호승심을 부리는 것이나 건담의 성능을 보고 경악에 떠는 것 같은 모습은 개성없는 악당 엑스트라가 아닌 하나의 인간적인 모습인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작품 내내 계속되는데, 지온군이든 연방군이든 이렇게 두려움이나 분노와 같은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확실히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건담에서 그 누구보다 인상깊은 상대편 캐릭터는 바로 붉은 혜성이라 불리는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미남자라고 할 수 있다.

지온공국의 창시자의 아들이었으나 측근인 데긴 소드 쟈비의 배신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집안이 몰락하고 신분을 숨긴체 살아야 했던 캬스발 램 다이쿤(샤아 아즈나블)은 복수를 위해 신분을 숨기고 지온공국의 촉망받는 에이스 파일럿으로 살아간다. 이처럼 주인공과 반대편에 서는 인물의 숨겨진 사연과 내제된 갈등은 작품의 관점을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친구이자 원수의 아들인 가르마 쟈비를 함정에 빠뜨려 아무로들의 손에 의해 죽게 만들 때 샤아가 보여준 음흉함과 복수의 감정은 오히려 아무로들을 조연급으로 전락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며, 거기에 가르마를 죽게한 원수를 화이트베이스와 건담의 탓이라 생각한 가르마의 약혼녀 이세리아가 아무로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내용 역시 주인공 위주의 에피소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방향 전개였던 것이다.

특히, 샤아의 경우는 단순하게 쓰러뜨려야할 적으로서 아무로와 대립하는 것 뿐만 아니라, 파일럿으로서의 개인적인 라이벌 의식(비록 주인공이었지만 일개 파일럿에 불과했던 아무로를 샤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한 설정이다.), 연인 라라아를 사이에 둔 연적(정확히는 같은 뉴타입으로서 라라아와 공명하는 아무로에 대한 질투)으로서의 갈등처럼 여러 측면에서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게 된다. 즉, 아무로가 샤아의 계속적인 방해 속에 적개심을 키우는 것처럼 샤아 역시 아무로에 의해 여러차례 좌절을 거듭하면서 적의를 키워가는 상대적인 갈등의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둘의 갈등은 모빌슈트의 격전 중에 아무로에게 당할 위기에 처한 샤아를 대신해 건담의 빔 세이버를 맞고 산화해버리는 라라아의 죽음에 이르러 최고조를 이루게 된다. 아무로가 정의의 편이고 항상 샤아에 의해 좌절과 아픔을 겪는 것 뿐만 아니라 샤아 역시 아무로에 의해 좌절과 슬픔을 겪으면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해를 끼치면서 벌어지는 복잡한 은원관계는 후일 제타 건담의 카미유와 제리드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아니메의 영원한 페르소나 샤아 아즈나블 (보러가기)

전장이라는 상황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와 아픔을 안겨주는 상황은 아무로와 샤아의 관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화이트베이스를 이탈하여 방황하던 아무로가 지구에서 만난 적장 란 바랄과 그의 부인 하몬 랄의 경우에도 이러한 안타까운 인과관계를 볼 수 있는데, 비록 적장이지만 그에게서 큰 영감을 얻은 아무로가 결국 전장에서 란 바랄을 쓰러뜨리면서 슬픔과 죄책감 속에 한차원 더 성장하는 장면은 드라마틱한 동시에 란 바랄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무로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고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으로 화이트베이스에 특공을 시도하는 하몬과 화이트베이스와 건담을 구하기 위해 부상을 입은 몸으로 하몬을 막고 스스로를 희생한 류 호세이의 이야기는 가슴 아픈 전장속에서 벌어지는 엇갈리는 인간의 운명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란 바랄과 하몬의 인물구도는 후일 여러 작품에서 오마쥬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선라이즈에서 분사한 본즈의 작품 '교향시편 에우레카 7'에서의 챨스와 레이의 모습을 들 수 있다.)

더이상 적은 생명이나 사고가 없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갈등하고 화를 내고 겁을 내는 인간인 것이다.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건담의 이야기는 분명히 로봇물, 아니 아니메를 성숙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 SUNRISE · SOTSU Agency

전장을 가로지르는 엇갈린 운명의 실타래는 만화영화치고는 복잡한 은원관계와 인과관계를 형성하며, 각각의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병기와 로봇 사이의 딜레마

렇게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인 이야기와 실로 수많은 사람들의 에피소드와 갈등이 접목되면서 아동 만화영화의 범주를 탈피한 건담이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슈퍼로봇의 잔재는 여러 면에서 작품의 정체성을 방황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토미노 감독 스스로는 이 작품을 제대로 된 SF 만화영화로 만들고 싶었기에 원래 로봇의 등장 자체를 고려하지 않고 있었지만, 로봇 완구를 판매해야하는 스폰서의 입장에서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기도 했다. 결국 스폰서와 스탭 간의 조율 끝에 탄생한 모빌슈트였지만, 표현 상에서 리얼리티의 파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최초로 이러한 장르(이 당시에는 건담을 리얼로봇이라 부르지 않았다)를 시도한 건담이었기에 참고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로봇물일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슈퍼로봇스러운 연출을 보여줄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빔 라이플과 바주카포와 같은 총기류로 전투를 수행하는 모빌슈트는 일보 진전한 설정이었지만, 건담이 장비한 빔 세이버의 경우에는 명백히 스타워즈의 영향을 받은 설정으로, 병기로서의 로봇과는 거리가 먼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애당초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인 이 빔 세이버 자체가 제대로 된 SF를 표방한 건담과는 맞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당시 SF에 대한 개념이 그 정도 밖에 발전하지 못했던 환경 탓도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스타워즈의 영향력이 강했음을 입증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특히, 스타워즈와 블레이드 런너, 그리고 에일리언 시리즈는 일본의 SF 아니메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들로, 수많은 아니메가 이 작품들의 설정을 빌려오기도 했었다.)

애초에 지온공국의 주력기로 등장한 모빌슈트 자쿠는 거의 전 시리즈를 거쳐 아무로와 건담이 상대해야할 모빌슈트로 기획되었지만,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추락하자 다양한 적의 등장으로 극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모빌슈트가 등장한 것 역시 슈퍼로봇 장르로의 일부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없었던 모빌슈트를 급작스럽게 디자인하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모빌슈트, 또는 병기의 의미가 퇴색된 (슈퍼로봇에서나 봄직스러운) 디자인들이 일부 등장하는 것은 디자인인 측면에서도 슈퍼로봇의 잔재를 떨어내지 못하는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MS들은 후일 수많은 팬들에 의해 제품 형식번호와 설계 배경과 같은 여러가지 의미가 추가되면서 병기로서의 존재의의를 부여받기는 하지만, 일부 모빌아머의 경우는 스토리에 집어넣기 위해 무성의하게 그려진 모습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했다. (특히 기이한 형상을 한 자쿠레로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건담이 사회적 현상이 되고난 후에는 이러한 레어한 모빌아머들은 일부 하드코어 마니아들에게 나름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병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절구동부 측면에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메커니즘과 구도를 보여준 것 역시 지금에 와서 보면 리얼로봇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었지만, 당대의 현실적인 작화기술을 감안했을 때 79년에 제작된 이 작품에 그 정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무리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 외에도 무중력의 우주공간에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MS에 대한 이론적인 뒷받침 역시 당시로서는 전무했으며, 이러한 여러 부족함은 후일 제타 건담에 이르러 대부분의 현실성을 확보하게 되기도 한다.

스폰서인 완구업체 크로바의 압박도 병기로서의 로봇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주역메카로서 상품화를 고려하고 있던 건담에 대한 스폰서의 요구사항은 당시 인기를 끌고 있었던 변신 합체로봇으로서의 기능이었다. 변신 합체라는 컨셉자체가 현실적인 병기의 이미지와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고, 그 때문에 고연령대의 작품을 만들고 싶던 토미노 감독이 애초에 배제한 컨셉이었지만, 첫방의 시청률 추락과 완구판매의 부진이 겹치면서 다급해진 크로바의 압력은 건담에게 이러한 슈퍼로봇의 아이덴티티를 부여시키게 한다. 건담에게 도입되는 코어파이터 시스템은 완구에 변신합체 시스템을 부여하고자 한 스폰서의 아이디어였으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G 아머 시스템을 도입하여 전차나 우주선의 형태로 건담의 일부 파츠를 활용하는 아이디어 등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짜맞추기식 변신합체 컨셉은 당연히 아이들에게는 먹혀들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콤배틀러 V나 볼테스 V에서처럼 각 파츠가 또다른 변형을 통해 완벽한 로봇으로 변신합체하는 모습이 아닌, 건담과 G아머의 밋밋한 합체 시스템은 완구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형세였던 것이다.

저연령대를 위한 로봇물을 기대하던 스폰서와 고연령대를 위한 SF 드라마를 상정하던 토미노 감독간의 갈등과 견해차이는 건담에게 있어서 여러 측면에서 기존 로봇물의 범주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 SUNRISE · SOTSU Agency



뉴타입의 등장, 그리고 건담의 참패

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던 시청률의 저하와 스폰서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슈퍼로봇의 잔재는 계속적으로 건담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었다. 특히, 야심차게 등장했던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의 경우에는 이러한 시청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르마 사후에 등장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실제,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샤아를 시리즈에서 배재하고자 하는 논의가 오고가던 중이었지만, 예상 외로 샤아의 퇴장을 반대하는 수많은 팬레터(대부분이 여성팬)가 도착하면서 시리즈 중반에 극적으로 복귀하기도 한다. (이것을 가르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좌천되었다가 다시 복귀하는 형태로 극의 전개를 부드럽게 이어가게 한 것은 스탭진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샤아의 좌천은 캐릭터의 베이스가 되는 '용자 라이딘(1975)'의 샤킨 왕자의 시리즈 중반 퇴장과 비슷한 원인 때문이었지만, 팬레터의 힘으로 다행히 샤킨의 전철을 밟지는 않았는데, 극중에서나 실제적으로나 건담의 주연급 남자 캐릭터들은 여성들의 비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었다.

시청률의 저하를 막기 위해 병기로서의 로봇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면서 다양한 로봇을 출격시켰던 시도 외에 행해졌던 또다른 시도는 바로 뉴타입이라 불리는 신인류의 등장이었다.

극 중에서 이 뉴타입은 보통의 인간이 느낄 수 없는 지각의 한계를 넘어선 인지능력으로 통상보다 빠른 대처력을 보여주는 일종의 초능력이었는데, 이 지각의 한계를 넘어선 이들은 별도의 통신장비 없이도 마치 텔레파시를 주고받듯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비록 일면이지만 다가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찌보면 뉴타입의 등장은 빔 세이버와 함께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제다이의 능력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즈음의 일본은 초능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였던터라 이러한 뉴타입의 등장에는 아무래도 여러가지 현실적인 사정이 고려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비록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등장한 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뉴타입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드라마와 새로운 주제를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기존의 올드타입인 인류가 가진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뉴타입의 존재는 '기성세대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되어라'는 청소년들을 향한 토미노 감독의 메시지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바로 새시대의 주인공인 너희들이 뉴타입이다라는 의미와 같았던 것이다. 또한, 뉴타입으로서 서로 공명하고 시공간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은 전쟁과 미움으로 얼룩진 우주세기의 시대에 있어서 한줄기 광명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뉴타입인 아무로와 끝까지 맞서는 붉은 혜성 샤아 역시 극의 종반에 이르러 뉴타입으로서의 자질을 보이며, 그 역시도 성장하게 되는 점 또한 의미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뉴타입의 이야기는 제타 건담에 이르러서는 강화인간과 그들의 비극으로 진화하며 또다시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양분이 되기도 한다. (뉴타입의 의미와 그들의 비극은 '기동전사 건담 UC' 1화에서 비스트 재단의 당주인 카디아스 비스트가 소데츠키의 군인인 스베로아 진네만에게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제껏 당연하듯이 TV 앞에 앉아서 멋진 로봇의 출격을 기다리고 있던 소년들에게 적군을 맞아 멋지게 출격하기는 커녕, 로봇에 안타겠다고 신경질을 부리는 주인공과 얼떨결에 강습용 우주전함의 승조원이 되어버린 어린 소년 소녀들의 모습은 분명 흥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전쟁 드라마적인 전개는 그 때까지의 로봇물이 매회마다 보여주었던 '주인공들의 일상→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의 음모→음모를 막기 위해 출격한 주인공과 로봇→악당 로봇과의 사투 그리고 위기→필살기로 마침내 악당을 격파'로 이어지는 로봇물의 공식을 벗어나며 시청자들에게 큰 이질감을 느끼게 하였다. 물론, 요즈음에서야 건담의 전개가 익숙한 이야기 구조일지는 몰라도, 저연령대의 시청자의 비중이 더 높던 당시 아니메의 상황에서는 그 이질감이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아닌,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비록 뉴타입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향한 청소년의 희망을 제시했지만, 전쟁의 참상과 상처뿐인 승리가 이탈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붙잡지는 못했다. 이 와중에 작화감독으로서 작품을 상당 부분을 지탱해가던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병으로 인해 시리즈 후반부터 스탭진에서 제외된 점 역시 라스트 클라이막스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대내외적인 악조건 속에 스토리는 축소되고 결국 아바오아쿠에서의 결전을 마지막으로 토미노 감독이 표방한 제대로된 SF 아니메를 향한 야심찬 시도는 상처뿐인 실패를 맞이한다. 시청률 참패, 완구판매 부진 등 건담의 끝에는 참담한 결과만이 남게된 것이다. 로봇물에서 SF를 가정한 현실적인 접근, 복잡한 인과관계와 치밀한 세계관이 적용된 전쟁 드라마, 그리고 새시대의 희망과 비전을 제시한 뉴타입의 이야기는 바야흐로 역사 속으로 서서히 묻혀가고 있었다.

('기동전사 건담(2부) - SF 로봇 전쟁 드라마의 서막' 끝. 3부에 계속)

ⓒ SUNRISE · SOTSU Agency



<참고 사이트>

[1] 機動戦士ガンダム, Wikipedia Japan
[2] 기동전사 건담 - 제1화 건담 대지에 서다! 外 by 디제,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UNRISE · SOTSU Agency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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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엘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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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찌보면 모든 건담 시리즈의 시적을 알린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2010.08.24 11: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건담 시리즈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니메의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기도 하죠. 물론,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만 ^^

      2010.08.24 15:29 신고 [ ADDR : EDIT/ DEL ]
  2. 쿠션배때지

    글을 맛깔스럽게 잘쓰시는듯..

    재밌게 보고 갑니다

    2010.08.24 17:58 [ ADDR : EDIT/ DEL : REPLY ]
  3. 너무나 좋아 했조. 건담...9살때부터니까 ..무려26년간...ㅎㅎ

    2010.08.24 19: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나이를 공개하셨군요... 저도... 한 30년 정도 좋아한 것 같습니다 ^^;;;

      2010.08.24 22:13 신고 [ ADDR : EDIT/ DEL ]
  4. 이것이 글을 읽는 재미!!!!

    2010.08.24 22:20 [ ADDR : EDIT/ DEL : REPLY ]
  5. 라라아슨

    듣기로는 라이벌 개념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그러더군요.
    안무호와 곽달호의 전설..

    2010.08.24 23:03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문호는 알고 있었는데, 곽달호는 오늘에서야 알게 되네요. 곽달호->크와트로를 말하는 것인가요? ㅎㅎ

      2010.08.24 23:31 신고 [ ADDR : EDIT/ DEL ]
  6. 나그네

    곽달호는 크와트로를 말하는것 맞습니다.
    강미윤..도 있죠..

    재미있는 글 잘 보고갑니다.

    2010.08.27 06:52 [ ADDR : EDIT/ DEL : REPLY ]
  7. 루시오라

    쓰시느라 고생하셧습니다.
    3부도 기대요.! ^^

    2010.08.28 20:58 [ ADDR : EDIT/ DEL : REPLY ]
  8. 체인 드라이브

    대단하시군요. ㅎㄷㄷ ;;; 읽다가 숨 넘어 갈 뻔 했습니다.<<<< 퍼~억!!!
    잘 쓰셨는데 글을 읽다가 도중에 틀린 것이 하나 있군요.
    지온공국의 창시자 지온 줌 다이쿤의 측근의 이름은 기렌 자비가 아니라
    데긴 소드 자비입니다. 기렌 자비는 데긴 소드 자비의 장남이죠.
    이름으로 인한 글 실수 하시고 말았습니다.^^;;

    덤으로
    샤아 아즈나블, 세이라 마스의 이름 변천사.(모르고 계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 샤아 아즈나블 -

    캬스발 렘 다이쿤(본명) -> 에드와우(에드워드) 마스(입양되면서 개명)
    -> 샤아 아즈나블(가명) -> 크와트로 버지나(가명)

    - 세이라 마스 -

    아르테이시아 솜 다이쿤(본명) -> 세이라 마스(입양되면서 개명)

    2010.10.03 23:3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