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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란다스의 개 (1975), フランダースの犬 / Dog of Flanders


ⓒ NIPPON ANIMATION Co. Ltd.


<정보>

◈ 원작: 마리 루이사 드 라 라메
◈ 감독: 쿠로다 요시오
◈ 각본: 안도 토요히로, 유키무로 슌이치, 이토 츠네히사 外
◈ 스토리보드: 쿠로다 요시오, 타카하타 이사오, 요코타 카즈요시 外
◈ 캐릭터 디자인: 모리 야스지
◈ 작화감독: 모리 야스지, 하네 요시유키 外
◈ 미술감독: 이토 카즈오
◈ 음악: 와타나베 타케오
◈ 주요 애니메이터: 무쿠오 다카무라 (배경미술),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 제작: 닛폰 애니메이션, 즈이요 영상, 후지 TV (방영)
◈ 저작권: ⓒ NIPPON ANIMATION Co. Ltd.
◈ 일자: 1975.01.05
◈ 장르: 드라마, 세계명작
◈ 구분/등급: TVA (52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벨기에의 북서부 지역 플란다스에서 우유배달을 하는 할아버지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소년 네로.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착한 마음씨를 잃지 않고 있는 네로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 그리고 안트워프 성당에 전시된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다. 어느날 철물점에서 혹사 당하는 개를 본 네로는 주인이 내버린 개를 집으로 데리고 와 정성껏 간호해준다. 네로는 파트라슈라는 이름을 개에게 지어주고, 우유수레를 끌 돈도 없이 할아버지와 힘들게 우유배달을 하는 네로를 본 파트라슈는 마치 자신이 도와주겠다는 듯이 우유수레를 끌려고 한다. 가난하고 고단한 네로와 할아버지의 생활 속에 어느덧 파트라슈는 믿음직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안트워프 지역의 유지 코제트의 딸인 아로아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소년 네로와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엄격한 코제트는 네로와 어울리는 딸 아로아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파트라슈의 원래 주인이었던 철물점 상인이 파트라슈가 자신의 소유라며 다시 끌고 가려하고, 코제트가 영국의 기숙학교로 아로아를 보내려 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하던 네로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데...

<소개>

'칼피스 어린이 극장'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알프스 소녀 하이디(1974)'의 성공으로, 과거 도에이 A형 극장판의 유지를 이어온 세계명작 극장 시리즈가 마침내 본격적인 발돋움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명작 극장'으로 타이틀을 바꾼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자 30년을 훨씬 넘긴 지금에서도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슬픔과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 바로 이 플란다스의 개이다. 

영국의 작가 마리 루이사 드 라 라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 보여주었던 전원적이고 이국적인 유럽의 정취와 생활이 여전히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가운데, 네로와 파트라슈, 그리고 아로아의 우정을 서정적인 터치로 그려내고 있다. 계속되는 네로의 불행한 삶, 그리고 파트라슈와 함께하는 비극적인 결말은 지금도 아니메 사에 한 획을 그은 엔딩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는데, 당시 이 라스트 에피소드의 시청률은 30%를 넘은 것으로 기록되며, 세계명작 극장 시리즈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다. 평균 시청률은 20%를 넘었었다.

라스트에 등장하는 아기 천사들의 모습은 스폰서였던 칼피스의 사장 土倉冨士雄의 아이디어로 그려진 장면이라고 한다. 그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서 이런 장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4] 참조),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루벤스의 그림 '성모승천'과 함께 작품의 종교적 색체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작품 내내 슬픈 오해와 불운 속에 좌절하다가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되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이야기는 세계명작 극장 중에서 유일하게 비극적인 엔딩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남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어떤 리메이크 작도 능가하지 못할 것 같은 작품 중 하나.

플란다스의 개, 나의 파트라슈 (1992)


ⓒ TMS · NTV

<정보>

◈ 감독: 코다마 켄지
◈ 각본: 시마다 미치루, 야마자키 하루야
◈ 캐릭터 디자인: 세키 준이치, 히라야마 사토시
◈ 미술감독: 오노 히로시
◈ 음악: 마루야 하루히코
◈ 제작: 도쿄 무비 신사
◈ 저작권: ⓒ TMS · NTV
◈ 일자: 1992.10.10
◈ 장르: 드라마, 세계명작
◈ 구분/등급: TVA (24화) / 전연령가 (G)

<소개>

세계명작 극장 시리즈와는 별개로 도쿄 무비 신사에서 기획한 작품. 명탐정 코난 시리즈로 유명한 코다마 켄지가 감독을 맡았다. 오랜 인지도를 가진 세계명작 극장 시리즈에 비교하여 낮은 지명도와 홍보부족 등으로 인해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세계명작 극장 시리즈의 파트라슈(세인트 버나드 종)와는 다른 견종으로 이질감을 주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이 파트라슈가 원작의 견종과 같은 부비에 데 플랑데르라고 한다. 세계명작 극장 시리즈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세인트 버나드로 견종을 교체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털이 북실북실한 개를 그닥 안좋아하는지라. 물론, 파트라슈의 세인트 버나드는 실제 모델에 비해 너무 미형화된 측면이 있다. 그 때부터 이미 캐릭터의 미형화가 동물에게도 시도되고 있었단 말인가.

 플란다스의 개 (1997)


ⓒ NIPPON ANIMATION Co. Ltd.

<정보>

◈ 감독: 쿠로다 요시오
◈ 각본: 마루오 미호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사토 요시하루
◈ 미술감독: 이시바시 켄이치
◈ 미술설정: 이토 카즈오
◈ 제작: 닛폰 애니메이션, 쇼치쿠 필름
◈ 저작권: ⓒ NIPPON ANIMATION Co. Ltd.
◈ 일자: 1997.03.15
◈ 장르: 드라마, 세계명작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22년만에 극장판으로 제작된 리메이크 버전. 아로아가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전작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새로운 작화로 그려졌지만, 작화 퀄리티 자체는 이전작과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96년 '명견 래시'와 '집 없는 아이 래미'의 연이은 실패와 그에 따른 세계명작 극장 시리즈의 종결에 따른 영향 때문이었는지 극장판 역시 큰 주목을 끌지 못하고 조용하게 막을 내린다.

ⓒ NIPPON ANIMATION Co. Ltd.


<참고 사이트>

[1] Dog of Flanders (TV), Anime News Network
[2] Flanders no Inu, Boku no Patrasche (TV), Anime News Network
[3] Dog of Flanders (movie), Anime News Network
[4] フランダースの犬_(アニメ), Wikipedia Japan
[5] フランダースの犬_ぼくのパトラッシュ,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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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트에서는 2007년 본즈에서 제작한 극장용 아니메인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의 한국판 DVD를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라제폰, 강철의 연금술사 등으로 알려진 일본의 아니메 제작사 본즈의 극장판 아니메로 국내에서는 SICAFF나 전주국제영화제 등을 통하여 상영이 되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스토리보다는 아니메의 장점을 잘 살린 스피디하고 다이나믹한 사무라이 액션을 장점으로 내세운 작품이죠. 
 
생각 외로 극장판 아니메 제작편수가 많지 않은 본즈의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라제폰 다원 변주곡, 강철의 연금술사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에 이어) 4번째 극장 아니메입니다.


패키지 리뷰

번 한국판 DVD는 아트서비스에서 제작 판매하는 타이틀로 역시 아니메 타이틀 중에서는 상급의 패키지를 보여주는 타이틀 입니다. 처음 DVD를 살 때만 해도 패키지 구성보다는 싼 가격만 보고 산 타이틀이 좀 있었는데, 컬렉션으로서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역시 좋은 패키지를 갖춘 타이틀이 정답이겠죠.


하드커버로 제작된 외장 패키지의 모습입니다. 흑백 일러스트의 심플하면서도 멋스러운 패키지입니다. 한국판 만화영화 패키지도 이만하면 수준급이지 않나 싶네요. 비록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많이 망가져 있는 한국 DVD 시장이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의 수요가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단, 뒷면에 써져 있는 '공각기동대 제작진이 선사하는...'이라는 광고문구는 약간 어폐가 있습니다. 비록 공각기동대의 제작사인 프로덕션 I.G가 제작지원을 하고 있고, 감독인 안도 마사히로 씨나 작화감독인 이토 요시유키 씨 등이 공각기동대 원화맨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긴 합니다만, 공각기동대의 핵심 제작진이 이 작품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내부 구성은 디지팩 패키지 2장 그리고 북클릿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디지팩 팩키지에는 각각 한장의 디스크가 포함되어 있는데요. 본편 디스크와 셔플먼트 디스크의 표준적인 2장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정도의 타이틀은 2장 이상으로 구성하는 것도 오버스러운 감이 있죠. 그런 면에서 딱 좋은 구성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본편 디스크 패키지의 커버 디자인, 두번째 사진은 안쪽 디자인입니다. 주인공인 나나시(오른쪽)과 맞수인 라로우(왼쪽)의 결투 장면을 앞쪽과 뒤쪽의 일러스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컷은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 씬에서 보여지는 컷입니다. 


셔플먼트 패키지입니다. 커버 일러스트는 전체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캐릭터 디자인은 사이토 츠네노리가 맡고 있습니다. 


북클릿은 '달인의 서'라는 재미있는 제목이 붙여져 있는데요, 바람의 장, 물결의 장, 꿈의 장, 이야기의 장으로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람의 장에서는 캐릭터 설정자료가, 물결의 장에서는 액션 원화, 꿈의 장에서는 작화감독이 수정한 원화 컷들, 그리고 이야기의 장에서는 짧은 커멘터리가 실려 있습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상당히 알찬 구성입니다. 캐릭터 설정집도 좋았지만, 액션 원화집의 경우에는 꽤 괜찮은 내용이지 않나 싶군요. 요즘 몇몇 타이틀에서 작품에 사용된 콘티를 통채로 북클릿으로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던데, 그에 비해서 한글어 해설이 들어가 있는 일부 원화소개가 한국팬들에게는 더 낳은 것 같네요. 콘티집이 통채로 실려있는 것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아무래도 이쪽이 일반인들에게 더 친절한 구성이지 않나 합니다.

작화감독이 수정한 원화컷들도 색다른 느낌입니다. 보통 만화영화는 콘티를 기본으로 원화맨들이 원화를 그리면 작화감독의 수정을 받게 되는데요. 이렇게 수정을 거친 원하는 다시 동화작업을 통해 채색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 실린 컷들은 바로 원화작업 후 작감들의 수정을 거친 컷들입니다.

마지막 장인 이야기의 장에는 안도 마사히로 감독가 각본가인 타카야마 후미코의 커멘터리가 짧게 실려 있습니다. 두 스탭들이 밝혔듯이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B급 액션물이라는 생각을 갖고 사무라이 액션연출을 극대화하는 느낌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그로 인해 작품에서 보여지는 사무라이들의 검술 액션은 만화영화 특유의 다이나믹함과 스피디한 연출이 극화적인 스타일의 작화와 어울려 만화에 비해서는 현실적이고 영화에 비해서는 비현실적인 다이나믹한 액션이 일품인 작품입니다. 

B급의 팝콘 무비수준의 이야기이지만, 짜임새 있는 전개와 앞서 설명된 다이나믹한 액션 연출로 인해 별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지 않나 싶네요.


DVD 리뷰

대물, 그리고 동양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보니 타이틀 메뉴의 구성도 동양적인 느낌이 살아 있는 색감과 일러스트가 구성된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묵화스러운 느낌의 일러스트들이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피가 난무하는 사무라이 액션작품을 표현하기 위해 핏자욱의 느낌을 준 것도 독특한 느낌을 주는군요. 그러고보니 한국어 타이틀 디자인도 꽤 괜찮은 것 같은데, 패키지에는 이례적으로 일본어 타이틀만이 사용되었군요. 사무라이 액션물이라 그랬으려나요.

셔플먼트 디스크의 메뉴는 본편과는 달리 밝은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도 마사히로 감독의 커멘터리, 그리고 본 작품이 제작되기 전에 만들어졌던 무황인담의 파일럿 필름, 시사회 현장과 주인공들의 성우를 맡은 유명배우 나가세 토모야와 신예 치넨 유리의 인터뷰 영상, 예고편 등이 실려 있습니다. 셔플먼트의 구성도 모범적이고 깔끔하군요.


화질은 무리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루레이 타이틀이 나온 이상 비교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만족스러운 화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질의 경우는 역시나 부실한 스피커 시스템으로 인하여 생략을. 리뷰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구성과 디자인을 보여준 상급의 애니메이션 패키지입니다. 난해하지 않은 화끈한 재미와 멋진 작화 완성도에 버금가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사무라이 액션물로서 그 맛을 100% 살린 멋진 작품입니다. 비록, 카무이의 검이나 수병위인풍첩과 같이 아니메 史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의 네임밸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웰메이드'라는 표현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감독 스스로도 B급 액션물을 지향했다고 했듯이 스토리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구요. 상당히 하드한 액션이 보여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10대 후반의 청소년들부터 볼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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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버스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


ⓒ 2010 SPACE BATTLESHIP ヤマト製作委員会


 우주전함 야마토 (1974), 宇宙戦艦ヤマト / Space Battleship Yamato


ⓒ 1974 東北新社

<정보>

◈ 원작: 니시자키 요시노부, 마츠모토 레이지
◈ 감독: 마츠모토 레이지
◈ 연출: 이시구로 노보루
◈ 구성: 니시자키 요시노부, 마츠다 토시오, 야마모토 에이치
◈ SF 설정: 도요타 아리츠네
◈ 스토리보드: 야스히코 요시카즈, 토미노 요시유키 (4화 스토리보드만 참여)
◈ 캐릭터 디자인: 오카사코 츠네히로
◈ 작화감독: 아시다 토오요, 고이즈미 겐조 外
◈ 음악/주제가: 미야가와 히로시 / 사사키 이사오
◈ 기획: 니시자키 요시노부
◈ 제작: 오피스 아카데미, 요미우리 TV
◈ 저작권: ⓒ 1974 東北新社
◈ 방영일자: 1974.10.06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TVA (26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시놉시스>

서기 2199년 지구는 외계침공군인 가미라스 제국의 공격을 받았다. 명왕성에 전진기지를 설치하고 유성 미사일로 지구에 무차별 공격을 시작한 가미라스 군. 유성 미사일의 공격으로 지상은 초토화되고 방사능으로 인해 지구의 자연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기에 이른다. 살아남은 지구인들은 지하에 도시를 건설하여 가미라스 군에 맞서지만, 압도적인 과학력을 가진 가미라스 제국의 힘 앞에 패퇴를 거듭한다.

마지막 지구방위 함대가 가미라스 군에 전멸되던 즈음, 정체불명의 외계 우주선이 화성에 불시착하게 된다. 불시착한 우주선에는 통신캡슐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가미라스 군에게 멸망 당한 이스칸달 행성의 지도자 스타샤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었다. 스타샤는 지구의 자연을 되돌릴 수 있는 방사능 제거장치 코스모 클리너 D를 받기 위해 지구인들이 이스칸달로 올 것을 부탁하며, 이스칸달까지 항해가 가능한 파동엔진 장치의 설계도면을 캡슐에 실어보낸다. 

이스칸달 행성과 지구와의 거리는 14만 8천광년, 지구의 자연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는 시간은 앞으로 1년 밖에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1년 안에 코스모 클리너 D를 전달받아 지구로 돌아와야만 한다. 지구군은 극비리에 제조중이던 우주전함 야마토에 파동엔진을 탑재하고 선발된 요원들에게 지구를 살리기 위한 이 막중한 임무를 부여하게 된다.

이스칸달 별과 지구의 사이에는 수많은 가미라스의 함대들이 포진하고 있을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실은 야마토는 과연 가미라스군의 추격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5] 참조)


<소개>

아니메의 1세대 붐을 일으키며, 아동용으로만 머물러 있던 아니메의 시청층을 10대 후반의 청소년층에게까지 확대시킨 일본 아니메의 기념비적인 작품.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아니메라는 용어와 1세대 마니아들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들 중 상당수가 훗날 일본의 아니메를 책임지는 애니메이터들로 성장하게 된다.

프로듀서 출신의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주도로 탄생된 이 작품은, 기획단계에서는 메이저 제작사들의 외면을 받은 관계로 난항을 겪지만, 니시나키 요시노부가 독자적으로 제작사를 구축하고, 각 분야의 인재를 끌어모으며 어렵사리 제작을 시작하게 된다. 제작 단계에서 당시 신예 만화가였던 마츠모토 레이지가 참여하게 되고, 후일 '기동전사 건담(1979)'의 캐릭터 디자이너를 맡게 되는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콘티를,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1982)'의 감독인 이시구로 노보루가 참여하는 등, 후일 레전드급으로 성장하는 애니메이터들이 대거 참여한다.

첫방송은 요미우리 TV를 통하여 방송되었으나, 후지 TV의 히트작 '알프소 소녀 하이디(1974)' 등 강력한 경쟁작으로 인해 첫방영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재방송을 통해 작품의 평가는 달라지게 된다. 재방송의 호조는 전국채널로 이어지게 되면서 많은 팬들을 양산해내게 되고, 77년에 제작된 총집편 극장판은 일본 영화계 사상 최초로 영화관람을 위해 철야를 하면서 줄을 선 팬들의 모습으로 인해 일본 사회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1], [5] 참조)

전후의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막 성장을 시작하던 당시의 일본에 있어서 제국주의 시절의 잔재인 전함 야마토를 우주전함으로 변모시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은,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던 당시의 일본 청소년들에게 어필했으며, 동시에 과거의 패배의식을 미래의 긍정적인 희망으로 승화화는 측면에서 주효했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아니메의 수준을 한차원 높인 SF 설정과, 높아진 청소년들의 눈높이를 맞춘 드라마적 전개는 어려서 아니메를 보고 자라온 십대들의 입맛에 맞는 모습이었다.

이전까지의 일본 아니메의 개념을 뒤엎으며 기동전사 건담과 같은 작품이 태어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도 평가 받고 있으며, (실제 건담의 기획단계에서 컨셉은 야마토 스타일을 참고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전히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터들이 손가락에 꼽는 작품으로 일본 만화영화의 르네상스를 연 작품이기도 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일본 아니메의 써드 임팩트라고 할 때, 기동전사 건담이 세컨드 임팩트, 야마토가 퍼스트 임팩트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적 성향의 니시자키 요시노부, 그리고 SF 설정에 관여한 작가 도요타 아리츠네 등에 의해 야마토라는 주요 소재 외에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과거 군국주의의 향수나 미화를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70년대 후반 한국에서 우주전함 V호라는 제목으로 방영되면서, 당시 한국의 아이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으나 그 정체를 알고 난 뒤 많은 충격을 받기도 했던 작품으로, (글쓴 이도 그중 하나) 어찌보면 한국의 1세대 아니메 팬들에게 있어서도 여러모로 애증이 얽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전함 야마토 (1977)


ⓒ 1977 東北新社

<정보>

◈ 감독: 마츠다 토시오
◈ 각본: 야마모토 에이치, 후지카와 케이스케
◈ 미술/설정: 마츠모토 레이지
◈ 총작화감독: 이시구로 노보루
◈ 작화감독: 아시다 토오요 外
◈ 음악/주제가: 미야가와 히로시 / 사사키 이사오
◈ 기획/원안: 니시자키 요시노부
◈ 제작: 오피스 아카데미
◈ 저작권: ⓒ 1977 東北新社
◈ 방영일자: 1977.08.06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TV 시리즈의 일부 에피소드를 모아 새로이 편집한 극장판 아니메. 위에서 전술한 것처럼 관람을 위해 밤을 세워 줄을 서는 관객들이 생겨나면서 1세대 아니메 붐의 신호탄을 알린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 영화사상 전무했던 일이라고 하며,([5] 참조) 이는 1년 뒤의 두번째 극장판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게 된다. 후일 아니메 신세기 선언을 알리는 기동전사 건담의 극장판 개봉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데자뷰가 보여졌으며, 야마토로부터 약 20여년 뒤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이 세 작품 모두가 아니메의 역사적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는 공통점과 함께, 토미노 요시유키, 야스히코 요시카즈를 자신의 작품에 기용했던 니시자키 요시노부, 그리고 야마토와 건담을 동경하여 애니메이터에 길에 들어선 안노 히데아키, 토미노 감독과 갈등을 빚었던 안노 감독의 관계와 같이 여러가지 인과관계에 얽혀있는 점은 흥미롭다.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야마토 기획안이 흥행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를 거부했던 도에이 동화는 당시 소수의 개봉관으로 개봉했던 이 극장판의 파급력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자신들의 배급망으로 전국에 상영하게 된다. 이를 통해 약 9억엔의 배급 수입을 거둬들이게 된다. ([5] 참조)


 안녕,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 (1978) 


ⓒ 1978 東北新社

<정보>

◈ 감독: 마츠모토 레이지, 마츠다 토시오
◈ 각본: 야마모토 에이치, 후지카와 케이스케
◈ 미술/설정: 마츠모토 레이지
◈ 총 작화감독: 카츠마타 토모하루
◈ 테크니컬 감독: 이시구로 노보루
◈ 작화감독: 아시다 토오요, 아라키 신고 外
◈ 주요 애니메이터: 야스히코 요시카즈, 카나다 요시노리, 히메노 미치
◈ 공동 디자인: 스튜디오 누에
◈ 음악/주제가: 미야가와 히로시 / 사사키 이사오
◈ 기획/원안: 니시자키 요시노부
◈ 제작: 오피스 아카데미, 도에이 동화 (제작협력)
◈ 저작권: ⓒ 1978 東北新社
◈ 방영일자: 1978.08.05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전국적인 배급망을 갖춘 도에이 동화가 제작에 가세하면서 야마토의 인기는 더더욱 확산된다. 이번 극장판에는 카츠마타 토모하루 (마징가 Z 감독), 이시구로 노보루(초시공요새 마크로스 감독)가 합세하여 마츠모토 레이지의 뒤를 받쳐주고, 아시다 토요오(북두의 권 감독), 아라키 신고(베르사이유이 장미 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기동전사 건담 작화감독), 카나다 요시노리(스페셜 애니메이터. 카나다 버스라는 작화기술의 창시자), 히메노 미치(세인트 세이야 캐릭터 디자인) 등 당대의 핵심 애니메이터들이 대거 참여한 무게감 있는 애니메이터의 진용을 보여주고 있다.

가미라스 제국의 멸망 이후, 새로이 등장한 백색혜성 제국에 맞서 이제는 구식이 된 전함 야마토를 이끌고 외로이 맞서 싸우는 야마토와 승무원들의 모습은 비장함이 넘쳐 흐른다. 지금 보면 다소 신파적이고 구시대적인 내러티브지만, 당시에 있어서는 정말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모습으로 팬들을 자극하며, 기록적인 흥행을 일구어내게 된다. 야마토가 보여준 비장미와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 등은 일본의 옛 사무라이 정신을 떠올리게 하며, 가미가제 특공과 같은 군국주의적 향취가 물씬 풍겨나는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겠다. 한편, 전편에 등장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데스라 총통의 특별출연 등 야마토의 팬들에게는 여러모로 인상적인 작품인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성향과 별개로 작품의 완성도는 분명 일본 아니메 역사의 한획을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관객 400만명, 흥행수입 43억엔, 배급수익 21.2억엔이라는 숫자는 당시 전세계적으로 히트했던 조지 루카스의 대작 스타워즈의 일본내 배급수익(43억엔)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일본산 영화들을 모두 누르고 달성한 이례적인 흥행기록이었다. 야마토가 세운 배급수익은 후일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배달부 키키(1989)'가 21.7억엔을 기록할 때까지 11년 동안 깨지지 않았으며, 동원관객은 '도라에몽, 노비타의 일본탄생(1989)'이 42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울 때까지 11년 동안 깨지지 않은 기록이 되었다. ([6] 참조) 당시 일본에서 개봉되었던 스타워즈와 함께 일본 SF의 붐을 일으킨 중요한 작품이다.


 우주전함 야마토 2 (1978)


ⓒ 1978 東北新社

<정보>

◈ 감독: 마츠모토 레이지
◈ 원안: 니시자키 요시노부, 마츠다 토시오, 마츠모토 레이지
◈ 애니메이션 디렉터: 이시구로 노보루
◈ 총작화감독: 고이즈미 겐조
◈ 설정협력: 이타바시 카즈미
◈ 공동 디자인: 스튜디오 누에
◈ 음악: 미야가와 히로시
◈ 기획: 니시자키 요시노부
◈ 제작: 아카데미 프로덕션, 요미우리 TV (방송)
◈ 저작권: ⓒ 1978 東北新社
◈ 방영일자: 1978.10.14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TVA (26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극장판 '안녕,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1978)'에서 많은 주조연급들이 줄줄이 사망하면서 끝을 맺었던 야마토는 이번 TV 시리즈에서는 멀쩡히 살아있는 체로 다시 등장한다. 일설에는 마츠모토 레이지가 극장판의 결말에 대해 납득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하는데([10] 참조), 결과적으로 이 작품에 의해 극장판은 스핀오프 형태의 작품이 되어버리게 된다. 후일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들과 그 세계관을 총칭하는 레이지버스의 경우에도 이런 식으로 극장판과 TV 시리즈, 전작과 후속편간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것은 이미 야마토에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극장판에서 대적했던 백색혜성 제국과 싸움을 TV 시리즈의 줄거리로 삼고 있다.


 우주전함 야마토, 새로운 여행 (1979)


ⓒ 1979 東北新社

<정보>

◈ 제작 총지휘/총감독: 니시자키 요시노부
◈ 총 구성/총 감수: 마츠모토 레이지
◈ 감수: 마츠다 토시오
◈ SF 원안: 도요타 아리츠네
◈ 각본: 야마모토 히데아키
◈ 스토리보드: 야스히코 요시카즈
◈ 테크니컬 디렉터: 이시구로 노보루
◈ 총작화감독: 고이즈미 겐조
◈ 메카닉 설정: 나카무라 미츠키, 이타바시 카즈미
◈ 음악: 미야가와 히로시
◈ 제작: 아카데미 프로덕션, 후지 TV (방송)
◈ 저작권: ⓒ 1979 東北新社
◈ 방영일자: 1979.07.31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TVA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TV 시리즈인 우주전함 야마토 2의 후속으로 제작된 TV 스페셜. 요미우리 TV가 아닌 후지 TV 계열의 전파를 타고 방송되었다. 새로운 적인 암흑성단 제국과의 사투를 그리고 있으며, 전편의 숙적이었던 데스라 총통이 야마토 대원들의 동료로 같이 싸우게 된다. 81년에는 극장에서 개봉되기도 하였다. ([12] 참조)


 야마토여 영원히 (1980)


ⓒ 1980 東北新社

<정보>

◈ 감독/총설정: 마츠모토 레이지
◈ 제작 총지휘: 니시자키 요시노부
◈ 감독: 마츠다 토시오
◈ 각본: 야마모토 히데아키 外
◈ 치프 디렉터: 카츠마타 토모하루
◈ 캐릭터 디자인/총작화감독: 우다가와 카즈히코
◈ 메카닉 디자인: 츠지 타다나오, 이타바시 카즈미
◈ 음악/주제가: 미야가와 히로시 / 사사키 이사오
◈ 제작: 아카데미 프로덕션, 도에이 동화
◈ 저작권: ⓒ 1980 東北新社
◈ 방영일자: 1980.08.02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우주전함 야마토의 세번째 극장판. TV 시리즈 3기인 우주전함 야마토 III의 재편집판으로, '야마토여 영원하라'라는 제목은 TV 시리즈의 홀수화에 사용된 엔딩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2], [7] 참조)  우주전함 야마토, 새로운 여행에 등장했던 암흑성단 제국과의 전투를 그리고 있다. 시리즈에서 단골 카메오(?)로 출연하던 데스라 총통이 처음으로 출연하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초반부에는 기존의 비스타비젼 화면비율(1:1.85)로 상영되다가 야마토가 이중 은하로 빠져드는 순간부터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율(1:2.35)로 바뀌면서 극적인 효과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효과를 '워프 디멘젼' 방식이라 불렀다고 한다. ([2], [7] 참조)


 우주전함 야마토 III (1980)


ⓒ 1980 東北新社

<정보>

◈ 기획/제작/총지휘: 니시자키 요시노부
◈ 감독/총 설정: 마츠모토 레이지
◈ 감독: 야마모토 에이치
◈ SF 설정협력: 도요타 아리츠네 外
◈ 총작화감독: 고이즈미 겐조
◈ 메카닉 디자인: 이타바시 카즈미, 서브마린
◈ 주요 애니메이터: 카나다 요시노리
◈ 음악: 미야가와 히로시
◈ 제작: 아카데미 프로덕션, 후지 TV (방송)
◈ 저작권: ⓒ 1980 東北新社
◈ 방영일자: 1980.10.11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TVA (25화)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우주전함 야마토의 세번째 정식 TV 시리즈이자 마지막 TV 시리즈. 볼라연합과 갈만제국과의 전쟁 중, 태양으로 행성파괴 미사일이 발사되면서 태양계 전체가 붕괴의 위험에 처하자, 야마토가 지구인이 살 수 있는 새로운 별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 4쿨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시청률 부진으로 인해 25화를 끝으로 종영된다.


 우주전함 야마토 완결편 (1983)


ⓒ 1983 東北新社

<정보>

◈ 기획/제작/총지휘: 니시자키 요시노부
◈ 감독: 니시자키 요시노부, 카츠마타 토모하루
◈ 원안/설정/감수: 마츠모토 레이지
◈ 총감수: 마츠다 토시오
◈ 각본: 니시자키 요시노부, 마츠다 토시오, 야마모토 에이치, 야마모토 히데아키
◈ 캐릭터 디자인/총작화감독: 우다가와 카즈히코
◈ 메카닉 디자인: 츠지 타다나오, 이즈부치 유타카
◈ 주요 애니메이터: 고이즈미 겐조, 야스히코 요시카즈, 츠노다 코이치, 카나다 요시노리, 코가와 토모노리
◈ 음악: 미야가와 히로시, 하네다 켄타로
◈ 제작: 도에이 동화, 웨스트케이프 Corporation
◈ 저작권: ⓒ 1983 東北新社
◈ 방영일자: 1983.03.19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시리즈의 완결을 표방한 극장판. TV 시리즈 3기의 시작연대가 2205년인 것에 비하여 이번 극장판은 2203년으로 설정되어 역시 전작과의 설정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후일, 시리즈의 연계를 위해 TV 시리즈 3기의 연대는 2203년으로 고쳐지게 된다. 원 시리즈에서 야마토의 함장을 맡아 장렬히 전사했던 오키타 함장이 뇌사상태에서 다시 살아 돌아와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다. (조금 억지스런 이 설정은 일부 팬들에게 원성을 듣기도 한다.)

완결편이라고는 하지만 85년부터 시작될 '야마토 부활 3개년 계획'이라는 거대 프로젝트가 니시자키 요시노부에 의해 추진중이었다. 하지만, 이 3부작은 완결편보다 앞의 시간을 다룬 이야기인지라, 완결편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야마토 이야기 상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이긴 했다. 

그러나,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이 원대한 계획은 시작도 되기 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캅셀님의 포스트([3])를 참고하시길.

☞ 우주전햠 야마토 - 완결편(宇宙戦艦ヤマト・完結編)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보러가기)


 YAMATO 2520 (1994)


<정보>

◈ 기획/제작/총지휘: 니시자키 요시노부
◈ 감독: 니시자키 요시노부, 카게야마 시게노리
◈ 감수: 마츠다 토시오
◈ 각본: 니시자키 요시노부, 야마모토 에이치, 히라노 야스시
◈ 스토리보드: 마에다 마히로, 카게야마 시게노리
◈ 퓨쳐컨셉 디자인: 시드 미드
◈ 캐릭터 디자인: 쿠부오카 토시유키, 키타즈메 히로유키 外
◈ 메카닉 디자인: 고바야시 마코토, 타케우치 아츠시,
◈ 음악: 하네다 켄타로
◈ 제작: 스튜디오 테이크오프, 스튜디오 야마토
◈ 방영일자: 1994.11.21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OVA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캅셀님의 포스트 [3]에서의 이야기대로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제작 컨소시엄의 도산으로 물거품이 되었던 야마토 프로젝트는 완결편으로부터 11년 뒤 다시 재개되었다.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로, 블레이드 런너, 스타트렉, 에일리언 등에 참여했던 시드미드가 퓨처 컨셉 디자인으로, 기동전사 더블제타 건담과 역습의 샤아로 80년대를 풍미했던 기타즈메 히로유키가 참여하며, 전작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바뀐 스탭과 함께 시대설정 역시 300년 뒤인 2520년으로, 등장인물도 모두 새로운 인물들로 설정되었다. 역습의 샤아 이후 오랫동안 부진의 터널을 걷고 있던 기타즈메 히로유키의 간만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도 기대를 모았으나, 역시 [3]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자금란과 비디오 매상부진으로 결국 완결을 보지 못하고 3부에서 멈추게 된다. 제작 스튜디오는 97년 파산하게 된다.


 우주전함 야마토 부활편 (2009)


ⓒ 2009 ヤマトスタジオ/「宇宙戦艦ヤマト 復活篇」製作委員会

<정보>

◈ 기획/제작/총지휘/감독: 니시자키 요시노부
◈ 원안: 이시하라 신타로
◈ 각본: 니시자키 요시노부, 이시하라 불, 토미오카 아츠히로
◈ 캐릭터 디자인/총작화감독: 코가와 토모노리
◈ 메카닉 디자인: 코바야시 마코토
◈ 메카닉 작화: 하바라 노부요시
◈ 음악: 미야가와 히로시, 하네다 켄타로
◈ 제작: 야마토 스튜디오
◈ 저작권: ⓒ 2009 ヤマトスタジオ/「宇宙戦艦ヤマト 復活篇」製作委員会
◈ 방영일자: 2009.12.12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소개>

긴 옥중생활과 마츠모토 레이지와의 길고 긴 저작권 분쟁 등으로, 바람잘날 없던 니시자키 요시노부는 마침내 2008년 7월 31일 부활편의 제작을 공식발표하게 된다. 마츠모토 레이지와 사실상 갈라진 이상, 이번 시리즈 역시 이전의 OVA에 이어 새로운 캐릭터 디자이너가 등장하게 된다. 놀랍게도 캐릭터 디자인은 코가와 토모노리인데, 80년대 야스히코 요시카즈와 함께 선라이즈의 작화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야마토 완결편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OVA 야마토 2520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기타즈메 히로유키의 스승이기도 하다.

코가와 토모노리라는 거장의 참여 외에 신기술인 CG를 사용한 메카닉 연출은 이번 작품의 백미일 듯 싶다. 저명한 정치가(작가 겸 영화감독, 배우출신. 망언제조기로 한국에서는 더 유명) 출신의 이시하라 신타로가 각본을 맡은 것도 큰 화제 중 하나. 하지만, 마츠모토 레이지라는 야마토의 한축을 잃어버린 이번 작품의 캐릭터 디자인은 분명 올드 팬들과 레이지버스의 팬들에게는 그닥 어필하지 못한 듯 싶다. 캐릭터 디자인이라는 외향 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전개나 연출에 있어서도 확실히 신규 팬의 눈길을 사로잡기에는 부족했던 듯 흥행에는 참패하게 된다. 레이지버스의 다른 작품들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 모두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Space Battleship 야마토 (2010)


ⓒ 2010 SPACE BATTLESHIP ヤマト製作委員会

<정보>

◈ 감독: 야마자키 타카시
◈ 각본: 사토 시마코
◈ 음악: 사토 나오키
◈ 캐스트: 키무라 다쿠야, 쿠로키 메이사, 야마자키 츠토무 外
◈ 제작: TBS Production Company
◈ 저작권: ⓒ 2010 SPACE BATTLESHIP ヤマト製作委員会
◈ 일자: 2010.12.01


<소개>

야마토 실사판의 계획은 TBS가 세우고,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동의하에 2009년 10월 3일 공식 제작발표를 했다. 쥬브나일로 유명한 야마자키 타카시가 감독을 맡고 SMAP의 키무라 타쿠야가 주인공 고다이 스스무를 맡아 열연한다. 고다이의 연인인 유키 모리의 경우에는 에리카 사와지리가 물망에 올랐으나, 메이사 쿠로키로 나중에 대체되었다. 메이사 쿠로키는 극장 아니메 벡실의 여주인공 목소리를 맡은 적도 있으며,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2009년 실사영화 어썰트 걸에 출연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CG의 완성도는 훌륭하다. 아시아 권에서는 탑 클래스의 수준이며 북미의 영화들과 비교해서도 어느정도 경쟁력을 확보한 듯. 단, 꽤 훌륭한 CG에 비해 함선 내부의 세트 디자인은 기대 이하의 수준으로, 실사영화보다는 TV 시리즈나 특촬물의 그것보다 좀 나은 정도에 그친다. 스토리는 원작의 스토리를 압축하여 각색하였는데, 전개상 큰 무리가 없긴 하지만, 과도한 비장미와 납득하기 어려운 감정적 신파로 극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한마디로 글로벌한 감성에는 크게 모자른 일본인만을 위한 SF 영화가 아닐까나. 그런 면에서는 중화주의로 가득한 중국 본토의 무술영화들이나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2011)' 같은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할만 하다.

야마토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오키타 함장보다는 키무라 타쿠야 원톱 주연의 영화로 그려지면서 다소 호흡이 안좋다. 키무라 타쿠야의 스타일을 야마토에 맞추던지 야마토를 키무라 스타일에 맞춰 세련되게 바꾸던지 해야했는데, 이야기는 옛스럽고 주인공은 너무 스타일리쉬하니 궁합이 그리 좋지 않은 듯. 단, 일본에서의 흥행은 성공적이었다.


우주전함 야마토 2199 (2012)


ⓒ 宇宙戦艦ヤマト2199 製作委員会

<정보>

◈ 총감독/시리즈 구성: 이즈부치 유타카
◈ 연출/스토리보드: 에노모토 아키히로, 히구치 신지 外
◈ 캐릭터 디자인: 유키 노부테루
◈ 메카닉 디자인: 야마네 키미토시, 이즈부치 유타카
◈ 3D 연출: 이마니시 타카시
◈ 음악/노래: 미야가와 아키라 / 사사키 이사오
◈ 제작: XEBEC, AIC
◈ 저작권: ⓒ 宇宙戦艦ヤマト2199 製作委員会
◈ 일자: 2012.04.07 (극장판 1부), 2012.06.30 (극장판 2부) / 2013.?.?
◈ 장르: SF, 드라마,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3부), TV 시리즈(26화) / 중학생 이상 관람가 (PG-13)


<소개>

☞ 신세대 우주전함 야마토 2199, 극장 아니메로 새출발 (바로가기)


<참고 사이트>

[1]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戦艦ヤマト) 1977 1978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2] 야마토여 영원히(ヤマトよ永遠に) 1980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우주전햠 야마토 - 완결편(宇宙戦艦ヤマト・完結編)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Star Blazers: The Quest for Iscandar (TV). Anime News Network
[5] 宇宙戦艦ヤマト, Wikipedia Japan
[6] さらば宇宙戦艦ヤマト愛の戦士たち, Wikipedia Japan
[7] ヤマトよ永遠に, Wikipedia Japan
[8] 宇宙戦艦ヤマト完結編, Wikipedia Japan
[9] 宇宙戦艦ヤマト復活篇, Wikipedia Japan
[10] 宇宙戦艦ヤマト2, Wikipedia Japan
[11] 宇宙戦艦ヤマトIII, Wikipedia Japan
[12] 宇宙戦艦ヤマト新たなる旅立ち, Wikipedia Japan
[13] YAMATO2520, Wikipedia Japan
[14] Space Battleship Yamato, Wikipedia
[15] 宇宙戦艦ヤマト2199,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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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en of the East Production Committee / ⓒ 버즈픽쳐스 (한국판 DVD)

TV 시리즈가 DVD로 출시된지 체 얼마 되지도 않아 동쪽의 에덴 첫번째 극장판 'King of Eden'도 DVD로 6월 18일에 출시되었습니다. 오, 예상 외의 빠른 대응이로군요. TV 시리즈 출시 후 체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동쪽의 에덴은 TV 시리즈로 전 11화, 극장판으로 2부작으로 기획되어 있습니다. 별도의 스토리가 아닌, TV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극장판 2부작을 통해 비로소 완벽한 결말이 나는 작품입니다. TV 시리즈를 구하신 분이라면 당연히 같이 구비해야할 목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쉽게도 이번 극장판 DVD는 2부작이 모두 실린 DVD가 아닌, 극장판 1부만이 실린 패키지입니다. 디스크도 1장으로 구성되어 아쉬움이 있습니다. 셔플먼트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부족한 패키지일 것 같은데, 추후 출시될 극장판 2부 역시 디스크 1장으로 출시되겠군요. 조금 기다렸다가 1, 2부 통합 패키지로 출시해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아직 구입을 한 타이틀은 아닙니다만, 빠른 시일 내에 TV 시리즈와 극장판 DVD에 대한 리뷰로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지갑이 허락해준다면 말이죠, 흑.

극장판 DVD 역시 버즈 픽쳐스에서 출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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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TOKIKAKE Film Partners


<스탭>

◈ 감독: 호소다 마모루
◈ 원작: 쯔쯔이 야스타카의 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녀'
◈ 제작: 매드하우스


<시놉시스> 

고등학교 2학년의 명랑 여학생 콘노 마코토. 같은 반의 남학생 츠다 코스케, 마미야 치아키는 같이 야구를 즐기는 절친한 친구들이다. 두 명의 남자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고교생활을 보내는 그녀의 오늘 일진은 사고와 이변의 연속이다. 지친 마음으로 쪽지시험지를 선생님의 책상에 갖다놓으러 과학실을 들린 마코토, 칠판에 누군가가 쓴 'Time waits for no one'이라는 문구가 오늘따라 신경 쓰인다. 과학실에 시험지를 놓고 나가려는 찰나, 아무도 없던 실험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조심스레 과학실을 둘러보던 마코토는 무언가 자그마한 물체가 땅바닥에 굴러가는 것을 보게 된다. 떨어진 물건을 주우려는 찰나, 갑작스레 나타난 정체불명의 그림자에 놀란 마코토는 뒤로 넘어지게 되고, 그 순간 갑자기 주위가 돌변하면서 과학실은 순식간에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향하여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마코토는 이상한 나라로 빨려가는 것일까? 두려움과 놀라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찰나, 시간과 공간은 다시 과학실로 돌아오고 마코토는 땅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 쳐지고 마는데...



청춘의 시간을 소재로 한 발랄한 시간여행

2007년 여름 개봉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이하 시달녀)'는 많이들 아시다시피 1965년작인 쯔쯔이 야스타카의 동명 인기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로 수없이 리메이크 되어온 인기작이기도 한데요, 원작을 접해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시달녀의 극장판 아니메는 원작을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아닌 원작과는 다른 20년 뒤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스핀오프 작품이 되겠습니다.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카즈코는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 소녀인 콘노 마코토의 이모로서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군요. 원작의 팬들에게는 살짝 아쉬운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임 리프(Time leap), 즉 시간을 건너뛰는 능력을 가지게 된 한 소녀의 변해버린 일상과 변해가는 인간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갈등, 사춘기 소녀의 번민과 성장을 담은 이 작품은 10대 소년, 소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답게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느낌으로 진행됩니다. 방황하는 10대의 고뇌보다는 평범한 소녀가 얻게된 특별한 능력과 경험을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 시간과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러한 테마를 소녀 특유의 발랄함과 코믹함, 참신한 구도와 카메라 워크, 그리고 유려한 배경과 서정적인 음악으로 마무리해가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10대 소년, 소녀들 뿐만 아니라 온 가족들이 보기에도 무난한 가족 영화의 성격을 띈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 2006 TOKIKAKE Film Partners



코믹하고 능란한 화면연출, 호소다의 역습

연출을 맡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시달녀와 2009년 연출하게 되는 섬머워즈로 인해 이제는 여름 극장가의 차세대 기대주로 큰 명성을 얻고 있지만, 작품을 맡을 당시만 하더라도 디지몬 어드벤쳐 극장판과 원피스 극장판 등을 연출하면서 이제 막 연출계에 발을 내민 신예에 불과했더랬습니다. 그로서는 바로 이 시달녀를 통해 비로소 연출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특히, 그는 시달녀의 연출을 전후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차세대 기대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감독으로 파격 기용된 것이 그것이라 하겠는데요. 

'귀를 기울이면'을 통해 놀라운 역량을 보여주었던 지브리의 늦깍이 기대주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갑작스런 요절 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를 발굴하기 위해 애쓰던 스튜디오 지브리는 사내에서의 인재 발굴 외에 외부 인재의 영입 역시 고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호소다 감독이 그 기대주로 낙점되어 당시 스튜디오 지브리의 차기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연출을 담당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조롭던 호소다 감독의 앞날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폰서이기도 한 도쿠마 서점의 경영진 교체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새로운 경영진은 작업중이던 호소다 감독을 도중에 강판시키고 미야자키 감독을 내세우게 되는데요. 한마디로 호소다 감독은 새 경영진이 내세운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후, 프리랜서로 전전하던 그가 지브리의 라이벌 격이라 할 수 있는 매드하우스에서 맡게 된 작품이 바로 이 시달녀 인 것입니다. (당시 새로운 경영진은 검증이 안된 신인의 작품보다는 검증된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이 아무래도 비즈니스적으로 안전하다 판단한 것 같습니다. 대외적인 네임밸류도 있고 말이죠.)

호소다 감독을 버렸던 지브리의 선택은 이 시달녀를 통해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사실로 드러나게 됩니다. 섬세하고 사실적인 일상의 묘사와 잔잔하고 코믹넘치는 이야기들은 지브리가 이제껏 많은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서정적이고 세심한 묘사에 비견될 만큼 정교함을 자랑합니다. 게다가 굳이 아니메 팬이나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쉽고 재미있게 접할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대중적인 코드를 갖고 있구요. 아니메의 특징을 십분 살리되 모든 관객층에게 어필할 수 있으며, 잔잔한 감동마저 선사하는 이 작품은 미야자키의 스케일은 갖고 있지 못했지만, 섬세함과 서정성, 코믹과 감동을 모두 표현하면서 이제까지 지브리의 작품들이 보여주었던 스타일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배경미술로 참여한 야마모토 니죠와 오가 카즈오 등이 지브리의 수많은 작품에 참여한 베테랑 미술감독이었다는 점에서 지브리의 작품들과도 어느 정도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준 것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구요.)

비록 최초 개봉관 수가 일본에서도 다섯 군데 밖에 안되었던 지라 같은 시기에 개봉한 게드 전기에게 흥행성적에 있어서는 비록 밀렸지만, 평단과 관객의 호응은 게드 전기를 능가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호소다 감독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마침내 호소다의 역습이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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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리는 것의 무거움, 소녀의 성장

이야기는 시간을 건너뛰는 능력을 갖게 된 평범한 10대 소녀의 유쾌한 '능력 남용하기'로 시작됩니다. 우연치 않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여고생 마코토는 처음에는 난데없이 갖게 된 능력에 반신반의했으나, 곧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를 요긴(?)하게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먹고 싶은 요리를 먹고 다시 그 전으로 되돌아와 요리를 또 먹거나, 노래방에서 신나게 논 다음 시간을 되돌려 다시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는 등...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과 이를 악용하려는 악당들과의 쫓고 쫓기는 모험 정도로 진행되어도 좋을 법한 이 소재는 이렇게 평범하고 소박한 시간 되돌리기 놀이에 열중하는 소녀의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에게 잔잔한 재미와 웃음을 선사합니다. 매번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서 전력으로 뛰어 시간을 건넌 다음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는 마코토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 하는데요, (미리 겪었기에) 앞으로 닥칠 위험이나 사고를 예측하는 마코토의 한 발 앞선 행동은 이런 관객들의 웃음처럼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세상 사는 걱정은 이제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잘못되면 다시 시간을 되돌리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아무 문제도 없을 것만 같았던 그녀의 일상은 절친한 친구인 치아키의 사랑 고백으로 서서히 그늘이 지게 됩니다. 치아키의 고백이 부담스러운 그녀는 으례 그렇듯 시간을 되돌립니다. 그러나 되돌려도 되돌려도 치아키의 고백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요즘 방영하고 있는 KBS 2TV의 개그 콘서트의 한 프로처럼 말이죠. (어쩌면 이 프로가 시달녀에게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그녀는 아예 시간을 더 건너뛰어 그와의 자리를 피해버리고 맙니다.

피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시간을 되돌리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모인 카즈코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간을 되돌렸다면 누군가는 손해를 봤지 않았겠냐'는 말처럼 그녀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바꿔버린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상처입고, 누군가는 인생이 바뀌어 버리는 것을 그녀는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죠. 경험 속에서 성장해가는 우리들처럼 소녀는 조금씩 삶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게 됩니다.

치아키의 고백을 없던 것으로 하면서 쿄스케와 치아키, 그리고 마코토의 우정은 (그녀가 바랬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서먹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치아키는 같은 반에서 그를 짝사랑 해오던 마코토의 친구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쿄스케마저 흠모하는 여학생이 나타나게 되지요.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의 무게를 깨달은 마코토는 이번에는 친구인 쿄스케와 그를 짝사랑하는 후배 카호를 위해 시간을 되돌립니다, 그와 그녀가 잘되기 위해 몇번씩 몇번씩 말이죠. 그러나 그렇게 되돌린 시간마저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터지기 시작하는 비극, 소녀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마침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치아키의 고백을 피하던 자신과 멀어지는 치아키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진짜 마음 역시 알아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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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waits for no one...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코토가 시간을 건너뛰는 능력을 얻게 되는 과학실의 칠판에 써져 있던 이 문구는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를 표현하는 문구입니다. 아름답고 즐거웠던 누군가의 학창시절, 젊은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 뿐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중요성까지 의미합니다. 시간의 소중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다시 되돌려 느끼려 해도 느낄 수가 없는 인생의 한번 뿐인 경험인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처럼 되돌릴 수 있다해도 이제 다 알아버린 우리에게 시간은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습니다. 되돌아왔다 해도 과거의 시간은 우리를 떠나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우연하게 얻게 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과 그로 인한 사건 속에서 소녀는 (당연하게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성장하게 되지요. 작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젊은 시절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자신의 행동이 가져다 주는 결과의 무거움 역시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한 소녀의 미래를 기대하게 됩니다. 치아키와의 이별 후 새로운 친구들과의 야구 시합에서 보여준 달라진 그녀의 모습은 바로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 같기도 합니다.

친구라고만 생각해던 그의 고백을 피하기 위해 무의미하게 시간을 되돌리면서 시간의 무거움을 느낀 그녀는 동시에 치아키를 향한 자신의 마음 역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지우기 위해 시간을 되돌린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도 깨닫게 되지요. 시간을 되돌리기 전 자신에게 수줍게 고백하던 그 강가에서 그를 떠나보내며 우는 소녀의 대성통곡은 자신에 대한 회한과 그에 대한 애틋함이 뒤섞여 보는 사람을 짠하게 해줍니다. 소소한 소녀의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마코토와 마찬가지로 시간의 무게, 추억의 아름다움,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깊은 마음씨를 역시 깨닫게 되는 것이죠.

이 작품으로 호소다 감독의 장래를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섬머워즈를 통해 그 가능성이 단발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분명 이 작품은 수많은 일본 아니메 중에서도 자신만의 매력을 맘껏 보여준 맛깔스러운 작품인 것 만큼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그녀는, 제목과는 달리 더 이상 달리지 않을까요. 라스트에서 보여준 그녀의 전력질주처럼 아마도 그녀는 시간을 되돌리는 과거로의 질주가 아닌 미래를 향한 힘찬 스퍼트를 내딛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우리도.

ⓒ 2006 TOKIKAKE Film Partners



<참고 사이트>

[1] The Girl Who Leapt Through Time (movie), Anime News Network
[2] 時をかける少女_(アニメ映画), Wikipedia Japan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06 TOKIKAKE Film Partners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주의 영화리뷰 2010년 6월 3주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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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1 Pictures / 宇宙ショーへようこそ 제작위원회

그림을 누르시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어서옵쇼~ 해준답니다. (-0-;;;)

 
마스나리 코지, 쿠라타 히데유키, 이시하마 마사시, 오구라 카즈오 등 R.O.D 시리즈와 카미츄를 제작했던 핵심스탭들이 모여 제작한 극장 아니메 '우주쇼에 어서옵쇼', 아니 '우주쇼에 어서오세요'가 여름 극장가를 겨냥하여 2010년 6월 26일 개봉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영문판 트레일러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역시 글로벌한 시장을 겨냥한 듯한 느낌인데요. 주제가를 'Britain's Got Talent'의 스타 수잔 보일이 부르는 등, 이미 제작단계에서도 어느 정도 글로벌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애니플렉스 산하의 제작사 A-1 Pictures가 맡았구요. 특히, 이 작품의 원작자는 베사메 무초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올라가 있는데요, 실제 사람의 이름이 아닌, 감독 마스나리 코지와 작가 쿠라타 히데유키, 그리고 프로듀서 오치코시 토모노리 3인의 공동 필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이미 이 필명으로 카미츄의 원작을 담당한 바 있지요.

극장 아니메의 제작경험이 거의 없는 A-1 Pictures가 제작을 맡은데다가, 핵심 스탭들 역시 여름 극장가를 책임져왔던 A급 인력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일러로 본 작품의 완성도는 기대 이상입니다. 전형적인 가족 오락물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전원적인 시골의 여름과, 환상적인 우주에서의 모험이야기가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군요. 이러한 전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섬머워즈'와 같이 전형적인 여름 대작 극장 아니메의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심지어 위의 포스터조차 섬머워즈의 포스터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군요.

그닥 비중이 있어 보이지 않는 스탭진의 구성이지만, 생각보다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 이번 작품이 과연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거장들이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일본 아니메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아참, 이 작품은 제6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부문에 출품했다고 하는군요. 베사메무쵸 팀, 이 작품으로 극장 아니메의 기대주로 떠오르려나요? 물론, 흥행과 비평에 모두 성공했을 경우.

덧붙임) 작화감독을 맡은 이시하마 마사시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작화감독 스탭으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섬머워즈와 비슷한 이 작품의 포스터나 작품의 분위기는, 그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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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의 종영을 앞둔 제작사 본즈가 새로운 신작 아니메를 제작 중에 있다고 합니다. 신작의 제목은 '스타 드라이버, 빛나는 타쿠토'. 제목의 뉘앙스가 좀 키치적인데요. 타쿠토라는 소년 주인공이 입학한 고등학교에서의 학원생활과, 그들이 조종하는 로봇들의 액션을 테마로 한 학원 로봇물이 될 것 같습니다.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클릭)
 
위의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대강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먼저 카피문구로 사용된 '颯爽登場, 은하미소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미소년, 미소녀가 등장하는 제목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네요. 颯爽登場에서 앞 글자가 바람소리 삽(颯)과 시원할 상(爽)이니 '바람처럼 시원하게 등장한 은하미소년' 정도로 의역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소울이터를 연출했던 이가라시 타쿠야 감독이나, 소녀형멱 우테나, 다이버스터, 라제폰 등의 각본을 써온 에노키도 요지의 조합은 학원 코미디물과 정통로봇물의 적절한 교집합을 이루어줄 것이라 기대됩니다. 즉, 현재 아니메의 추세인 학원 코미디와 미소녀/소년물의 스타일을 따라가면서도 정통 로봇 아니메의 요소를 잃지 않은 전개가 되리라는 것이죠.

강철의 연금술사나 소울 이터, 스트레인저 무황인담과 같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준 작품에서 작화감독을 맡았던 이토 요시유키의 가세 또한, 자칫 이쁘장한 인물 표현에만 치중할 수 있는 학원 코미디물의 작화 스타일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종합하면, 비록 흔한 학원 로맨스 코미디물을 한축으로 삼고 있지만, 기존의 스타일과는 다른 본즈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주리라 기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단, 이런 학원 로맨스 물과 로봇 아니메의 조합이 굉장히 신선한 조합이나 시도라기보다는 본즈식의 시리어스한 작품들의 연이은 실패에 의한 노선변경의 느낌이 더 강한지라 과연 얼마만큼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우려가 드는군요. 가이낙스의 스타일과 본즈는 꽤 다른지라 다이버스터나 그렌라간과 같은 분위기의 연출은 어려울 듯 싶구요. 굳이 예를 든다면, 본즈의 친정이기도 한 선라이즈 스탭들의 작품인 마이 히메나 코드 기어스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맞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물론, 코드 기어스의 시리어스함과는 다른 모습이겠지만요.)

본즈로서는 라제폰 - 현란무답제 마스데이 브레이크 - 교향시편 에우레카 7 - 망념의 잠드에 이은 네번째 로봇물입니다. (요즘 방영중인 히어로맨은 일단 히어로물로 분류하여 논외로 하구요) 그동안 여러 번의 시도에서 작품성과는 별개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던 (사실, 성인취향의 로봇물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는 것 자체가 현재 트렌드에서는 무리라고는 보지만) 본즈가 그동안의 시리어스함을 얼마나 벗어내고 밝고 대중적인 느낌의 로봇물을 보여줄지 관심입니다.

그러나저러나, 로봇물임에도 불구하고 대표 스탭진에 메카닉 디자이너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고 있네요. 일단, 보기에는 상당히 특이한 느낌인데, 과연 누구의 작품일까요.

☞ 관련기사 보러가기: Bones Makes Star Driver Kagayaki no Takuto Robot TV An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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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출연작
  - 은하철도 999 (1978, TV): 니시자와 노부타카(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은하철도 999 (1979, Movie): 린 타로(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은하철도 999, 유리의 클레어 (1980, Movie): 니시자와 노부타카(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안녕, 은하철도 999 (1981, Movie): 린 타로(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은하철도 999, Eternal Fantasy (1998, Movie): 우다 코노스케(감독)
  - 메텔 레전드 (2000, OVA): 요코다 카즈요시(감독)
  - 우주교향시 메텔 (2004, TV): 마사키 신이치(감독)
 
이 외에 78년 TV 시리즈 중 일부 에피소드를 편집하여 재구성한 스페셜 시리즈가 4편이 있다. 또한 그녀는 TV 에피소드 '시간성' 편과 두 편의 극장판에 우정출연(?)했던 하록선장을 위해 1999년작 '하록사가'에 잠시 출연하기도 한다. 그리고, 2006년 작 '은하철도 이야기: 잊혀진 시간의 혹성' 편에서는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그녀 또한 하록에 이어 카메오 출연에 맛을 들이게 된다, 으흠.
 
 
사나이의 우주를 사로잡은 신비로운 금발의 여인
 
일전에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캡틴 하록... 벗이여 별바다로 떠나자'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7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스타일의 장대한 스페이스 어드벤쳐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를 선보이며, 일약 1세대 아니메 붐을 일으킨 마츠모토 레이지(물론, 야마토 성공의 일등공신은 프로듀서이자 야마토의 원안을 기획한 니시자키 요시노부가 더 유력하다고 볼 수 있지만)는 연이어 '우주해적 캡틴 하록'을 통해 마츠모토 식 SF를 팬들에게 선보이며 후에 '레이지버스(Leijiverse)'라 불리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마츠모토 레이지(이하 마츠모토로 표기)는 이 두 시리즈 이외에도 슈퍼로봇 장르에 자신만의 SF 드라마를 접목시킨 '혹성로봇 당가드 에이스(1977)'과 서유기의 세계관을 SF 어드벤쳐에 접목시킨 'SF 서유기 스타징가(1978)' 등을 연이어 선보였는데, 비록 이 두 시리즈는 레이지버스의 세계관에 속하는 것이 아닌 TV 시리즈를 위해 별도로 제작된 오리지널 에피소드였지만, 당시 마츠모토 레이지 스타일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로 굳어져 가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츠모토의 최고의 전성기는 어쩌면 지금부터 말하려는 이 작품과 이 작품에 등장했던 한 여인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선굵은 사나이들의 꿈과 우정이 담긴 비장함이 메인 테마로 자리잡고 있던 마츠모토식 이야기의 반환점이며, 동시에 자유와 꿈을 노래하던 모험 이야기에서 휴먼 드라마와 현실의 풍자를 담은 좀 더 깊은 이야기로의 진화를 예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병과 악조건 속에 인간의 몸을 기계의 몸으로 바꾸어 불로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미래의 지구. 기계의 몸을 가진 부유한(그렇지만 이제는 더는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인간들이 기계의 몸을 갖지 못한 가난한(하지만 진짜 살아있는) 인간들을 핍박하며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극단으로 치달은 세상에서 살고 있던 소년 테츠로(한국방영 명칭 철이)는 기계 인간들에게 목숨을 잃은 어머니의 소망을 위해, 그리고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연하게 만난 신비의 여인 메텔과 함께 은하철도 999를 타고 몸을 기계로 바꿀 수 있는 머나먼 별 '라메탈'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 속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갈등, 이별과 화해 속에서 소년은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년을 이끌어 주던 신비의 여인은 여행의 종착점에서 기약없는 안녕을 고하며 떠나게 됩니다. 소년은 이제 어른으로서 홀로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마츠모토식 휴머니즘에서 좀 더 진일보하여 비뚤어진 사회를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고 스스로가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 속에 진정한 삶의 의미, 인간다움에 대한 것을 깨우치는 TV 시리즈 '은하철도 999'는 관념적이고 이상적이었던 마츠모토의 이전 작품에 비하여 현실적인 소재가 투영된 인간 드라마를 선보이며 매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합니다. 작품 내내 테츠로의 원 목표였던 '기계 인간이 되어 어머니의 못다한 삶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명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만화영화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년의 성장을 한 여인이 조용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봐주고 이끌어 주면서 각 화마다의 엔딩은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여인은 한 번도 소년에게 강요하거나 지시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가 깨우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며, 특유의 포근함으로 소년을 감싸줍니다. 사나이의 무뚝뚝함과 강인함, 비장함이 작품 전체를 지배했던 마츠모토의 세계는 이 메텔이라는 여인에 의해 잔잔하고 부드럽게 변모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오히려 팬들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라는 옛말처럼 메텔의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움은 장대한 우주를 그녀의 무대로 바꿔버릴 만큼 조용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흡입력을 가진 블랙홀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츠모토 선생이 순정만화까지 섭렵할 정도로 작품 세계의 폭이 넓기에 가능했던 일 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마츠모토 특유의 가냘프고 고전적인 캐릭터 묘사로 표현된 그녀의 외모 또한 이러한 성격과 맞물려 큰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는데, 이미 '우주해적 캡틴 하록'를 통해 마츠모토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애니메이션화했던 작화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가 이 작품에서도 신비한 여인의 이미지를 숨막힐 정도로 멋지게 만화영화에 이식하면서 절정의 여성미를 보여주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어떤 여성 캐릭터보다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그러나 어둡고 슬픈 금발의 여인이 만화영화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잘 벗기도 합니다, 이 아가씨는. 그렇습니다, 소년들에게는 얼씨구나~였던 것입니다.) 

바야흐로 모든 소년들은 그녀를 연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정체불명의 신비로운 미녀, 항상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머니 같으면서도 누나같이 친밀한 존재. 메텔은 모든 소년들의 로망이었고 선망이었으며, TV 시리즈 마지막 화에서 보여준 테츠로와의 이별은 이 작품을 시청해온 소년들에게도 큰 슬픔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테츠로 뿐만 아니라 모든 소년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정처없는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 Matsumoto Leiji / 1978 Toei Animation

그림 1. TV 시리즈 '은하철도 999'의 스틸 및 엔딩 컷.


식을 줄 모르는 논란, 신비스러움에 가리워진 그녀의 진짜 정체는

(캡틴 하록을 성공적으로 연출했던) 린 타로 감독이 연출한 극장판 '은하철도 999'는 TV 시리즈에 이어 다시 한 번 대성공을 거두었고, 메텔은 예의 그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으로 이번에도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여기서 린 타로는 하록 TV 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츠모토의 세계관을 다시 한 번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게 되는데, 테츠로의 나이를 TV 시리즈의 10대 초반에서 10대 중반으로 바꾸어 사춘기의 방황의 끝에서 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소년의 모습을 좀 더 현실감 있게 그려 나갔으며, 하록을 위시한 레이지버스의 단골들을 이 작품에 특별 출연시켜 레이지버스와의 연관성을 공고하게 만드는 등, 자신의 스타일로 999와 메텔을 그려갔던 것입니다. 

감독의 재해석은 팬들의 큰 호응으로 이어졌습니다. TV 시리즈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지금까지의 극장판 만화영화들이 모두 총집편 내지는 일부 에피소드 편집본의 형태에 그쳤던 것에 비해 별도의 독자적인 형태(TV 시리즈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이 시작되었고, TV 시리즈 방영 중 극장판이 공개. [2] 참조)로 진행되었던 극장판의 성공은 후속편의 제작으로 자연스레 이어졌고, 결국 2년 뒤 '안녕, 은하철도 999: 안드로메다 종착역(1981)'이 개봉되어 연타석 홈런을 날립니다. 특히, 이 후속편은 직전 극장판의 다음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아쉬운 이별을 고했던 메텔이 다시금 테츠로와 재회하고, '라메탈'과 어머니 프로메슘, 그리고 테츠로의 숨겨진 과거와의 진정한 결말을 내는 그야말로 999 세계관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 됩니다.

특히 999의 연속적인 성공에는 탄탄한 원작의 스토리와 캐릭터, 스탭진들의 노고가 담긴 작품의 완성도와 같은 요인 외에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요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원한 히로인 메텔의 진정한 정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는 이미 TV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몸이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다름을 몇 차례 암시해 왔었으며,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그녀의 본 모습은 마치 신비스럽지만, 결코 드러내지 않은 미녀의 눈부신 나신과도 같이 소년 팬들에게는 끊임없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소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궁금증의 대상 역시 다름아닌 그녀의 그 '몸'이었던 것이구요.)

© Matsumoto Leiji / 1979 Toei Animation

그림 2. 극장판 '은하철도 999'의 스틸 컷.

메텔이 과연 인간인지 기계인지, 아니면 인간도 기계도 아닌 어떤 괴기스러운 모습의 생명체인지(혹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대한 논의는 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었고, 아직까지도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원작자인 마츠모토 선생의 어떠한 언급도 없는 이상 메텔의 정체는 영원한 우주 저끝처럼 신비에 묻힌 설정으로 남을 겁니다. 사실, 추측컨데 마츠모토 선생조차 그녀의 정체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은 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다만, 그녀의 정체를 보았던 시리즈의 등장 인물들의 충격에 휩싸인 모습(평생 글만 쓰며 여성을 돌처럼 알고 지낸 대문호가 메텔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녀를 취하려 하다가 본 모습을 보자 강렬한 충격에 휩싸여 다시금 글에 정진한다든지, 기계 몸을 강매하는 불법업자가 메텔의 진짜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든지 하는 장면. [5] 참조)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메텔의 정체를 지속적으로 궁금해 하며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는 마츠모토식 관객 유도 장치였던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팬들에게 먹혀든 것입니다.

그녀의 정체만큼이나 또 하나의 논란거리로 이어져 온 것은 바로 999에 이어 방송된 TV 시리즈 '천년여왕'과의 관계였습니다.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에 지구와 충돌하는 행성 '라메탈'은 열차 999의 종착지이자 여왕 프로메슘이 지배하고 있던 999 세계관의 행성 '라메탈'과 같은 이름이었고, 긴 금발을 휘날리는 천년여왕 유키노 야요이는 마치 메텔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길고 그윽한 메텔의 눈매와는 달리 동그랗고 큰 유키노의 눈은 젊은 시절의 메텔을 묘사한 듯 보이기도 했지요.) '라메탈'의 충돌위협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분전했던 천년여왕은 결국 오랜 세월이 흘러 인간의 모습을 버리고 어머니 프로메슘에 의해 불로불사의 어떤 것으로 몸이 바뀌었고, 이후 프로메슘의 명령에 따라 테츠로라 생각되는 소년들을 끊임없이 라메탈로 데려와 기계인간으로 만드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당시 팬들의 추측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는 천년여왕과 메텔이 동일인이냐 아니냐를 놓고 끊임없는 논쟁이 오고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82년 '천년여왕'의 극장판 개봉에 맞추어 마츠모토 선생이 비로소 공개한 설정에서 유키노 야요이는 메텔이 아니며, 유키노 야요이와 메텔 모두 프로메슘의 딸([4] 참조)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메텔과 천년여왕과의 관계는 일단락이 됩니다만, 같은 레이지버스의 캡틴 하록 세계관에서 비롯된 여러가지 설정 상의 미스매치와 함께 999와 천년여왕과의 나머지 관계 및 밝혀지지 않은 각종 미스테리들은 오랜동안 레이지버스의 뜨거운 감자로 남게 됩니다.

© 1981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그림 3. 극장판 '안녕, 은하철도 999'의 스틸 컷.


돌아온 그녀,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다
 
80년대 초반을 넘기면서 레이지버스는 팬들의 관심을 잃고 먼 동면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꿈과 자유를 동경하는 마츠모토식 복고주의와 낭만주의(거기에 보수적인 민족주의까지)는 80년대의 리얼리즘과 신세대의 사고방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스스로 과거로 남기를 자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 아득한 우주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났던 메텔 역시 그녀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수많은 소년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린 청춘의 환영이 되어버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새로운 바람 속에서 이전 것들을 다시금 부활시키고자 하는 지속적인 복고주의 열풍은 레이지버스라는 전설적인 세계와 인물들을 그냥 둘리가 만무했습니다. 1시간짜리 극장판인 98년작 '은하철도 999: 이터널 판타지'는 TV 시리즈에서 헤어졌던 테츠로와 메텔과의 재회(린 타로 감독의 극장판에서 보여준 테츠로와 메텔의 이별과 재회, 그리고 또다른 이별의 이야기와는 별개로)로 시작하여, 다시금 그녀와의 새로운 여행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 고풍스러운 증기기관차 형태의 999만큼이나 오래된 명작은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신세대 팬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하며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메텔과 테츠로의 20여년만의 재회와 여행은 몇 부작으로 기획될 이 반가운 이야기의 시작점부터 처참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작품 자체의 네임 밸류에 비해 연륜이 짧은 스탭진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생겼다고 추측되는 완성도의 문제는 올드 팬들에게는 (일부를 제외하고는)그다지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듯 싶고, 이미 너무 구시대적인 마츠모토의 낭만적인 이야기와 가치관은 신시대가 받아들이기에는 노인의 옛 이야기인냥 지루했던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올드 팬과 신세대 팬 모두에게 외면을 받으며 이터널 판타지는 일회성 판타지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 그것은 후속 레이지버스의 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터널 판타지의 제작을 맡았던 도에이 동화의 포기에도 불구하고 레이지버스의 작품들은 속속 다른 제작사들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같은 해에 '화성여단 다나사이트 999.9'(실제로는 이 작품이 98년도에 가장 먼저 제작된 레이지버스 작품)와 '퀸 에메랄다스'를 시작으로 이듬해 '하록사가'까지 등장하며 레이지버스의 전설들이 봉인에서 해방되면서 메텔의 재복귀에 힘을 실어주자, 2000년 그녀는 '메텔 레전드'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메텔 레전드는 여러 의미에 있어서 메텔과 그녀의 팬들에게는 색다른 것이었는데, 그것은 먼저 더이상 999에 몸을 싣고 테츠로의 성장을 지켜보는 숙녀 메텔이 아닌, '라메탈'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는 소녀 메텔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제작진은 이제까지 결코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999와 테츠로를 메텔에게서 과감히 떼어 버리고 오히려 그녀의 수많은 논란거리이자 베일에 쌓였던 과거를 공개함으로써 새로운 시점으로 메텔을 바라보는 시도를 합니다. 999와 테츠로를 대신할 자리에는 메텔의 어머니이자 천년여왕이었던 프로메슘, 그리고 그녀의 쌍둥이 언니인 에메랄다스로 바꾸어 극을 이끌어 갑니다. 이 놀라운 설정은 또다른 논란거리를 야기하는데, 이미 82년 마츠모토 자신이 밝힌 레이지버스의 인물관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메텔과 에메랄다스의 자매 설정(이전에는 친우로 표시, [4] 참조)이나, 유키노 야요이가 또다른 프로메슘의 딸이었다는 설정을 뒤집고 프로메슘 자신이라는 설정으로 과감히 바꿔버리는 등, 오랜 시절 레이지버스를 보면서 자라온 올드 팬들에게는 그동안의 설정을 모두 뒤엎어 버리는 당황스러운 전개였던 것이죠. (그런 점에서 흥미거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메텔 뿐만이 아니라 그녀만큼이나 신비로움을 가진 레이지버스의 히로인 천년여왕과 어린 시절의 에메랄다스(어릴 때조차  해골모양의 핀을 머리에 꽂고 있는 것을 보고 실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해적 덕후'였나 봅니다.)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올드 팬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반가운 일임에는 분명했던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2004년 '우주교향시 메텔'로 이어져 메텔의 성장과정을 다루게 됩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결국 그녀의 몸에 얽힌 진짜 미스테리는 여기서도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2000 Leiji Matsumoto / Tsurubaya Creative / Art Collection House / Avex

그림 4. 메텔 레전드 스틸 컷.


그녀는 소년 시절의 연인, 청춘의 환상

그녀는 이제는 올드 팬이 되어버린 30~40대 아저씨들의 소년 시절을 빛나게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어떤 만화의 여성 캐릭터도 그녀 이상의 아우라를 가지지 못했습니다.(개인적인 편차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 중에서 결코 논외가 될 수가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심지어 현실 속의 여배우나 가수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그녀. 오히려 만화 캐릭터였기에 그 정도의 신비로움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녀는 소년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고 때로는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지켜주었으며, 어려운 인생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해답을 찾도록 옆에서 조용히 조언해주는 우주의 등대와도 같은 여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올드 팬들의 청춘 속에 머무르는 환상이었습니다. 소년들에게 있어서 연상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심어주었고, 동시에 금발의 백인 미녀에 대한 쓸데 없는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으며,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을 추구하는 현대의 여성들의 다이어트 취향을 십수년이 넘게 먼저 선도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정말 소년시절의 모든 남성들이 바라마지 않는 완벽한 연인이었던 것입니다.

테츠로와 메텔, 즉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동양 소년과 늘씬한 금발의 미녀라는 인물구도는 ('천년여왕'의 유키노 야요이와 하지메, '퀸 에메랄다스'의 에메랄다스와 토치로 등 마츠모토의 대부분의 캐릭터 설정처럼) '연상의 여인에 대한 소년의 동경' 이외에도 '작고 왜소한 동양의 남성과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늘씬한 금발의 백인 미녀'라는 전형적인 구도를 보여주며, 개인적으로는 마츠모토 선생이 갖고 있던 보수적 남성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또다른 표현인 듯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숨겨진 의미(동양 남성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싶은 마츠모토식 남성미의 어필. 물론 확증은 없지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가 소년들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측면, 즉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소년을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는 따뜻한 여인의 모습이 더욱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정말로 그녀는 어린 시절 흠모했던 환상의 여인이었고, 이제는 더이상 그녀를 봐도 어떠한 떨림도 갖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린 아저씨들의 청춘의 환상일 겁니다.

© 2004 Leiji Matsumoto / Shogakan / Joy Square / Avex

그림 5. 우주교향시 메텔 오프닝 스틸 컷.


<참고 포스트>
 
[1] Galaxy Express 999, Wikipedia
[2] 은하철도 999 1979 1981 by 캅셀, Capsule☺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은하철도 999 - 유리의 클레어 1980 by 캅셀, Capsule☺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남겨진 메텔의 비밀 by 캅셀, Capsule☺블로그
[5] 은하철도 999와 메텔의 비밀 by 캅셀, Capsule☺블로그
[6] 은하철도 999 ~ 이터널 판타지 by 슈케르
[7] 은하철도 이야기 ~ 잊혀진 시간의 혹성 by 슈케르
[8] 은하철도 999 - 이터널 판타지 by 키웰, Kewell's Factory about Something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주의 TTB 리뷰 2010년 6월 1주차에 선정된 리뷰이며, 프레스블로그 2010년 07월 MP 명예의 전당에서는 발라당 미끄러진 글입니다.


은하철도 999 극장판 박스세트 (3disc)  -  10점
린타로 감독/DVD 애니 (DVD 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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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07년에 발매가 되었으나, 차일피일 구입을 미루다가 잊고지내던 차, 썸머워즈 DVD 발매소식과 함께 불현듯 생각이 나, 구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 DVD(이하 시달녀, CJ 엔터테인먼트 제작)입니다. 시기상으로는 발매된지 몇년이나 지난 제품이지만, 때마침 극중 배경과 일치하는 초여름인데다가 곧 발매를 앞둔 섬머워즈 DVD의 전야제 개념으로 늦은 리뷰를 해보려 합니다.


패키지 리뷰

저, 이번에 구입한 패키지는 2007년에 초판된 스틸북과 필름컷이 포함된 디지팩 한정판이 아닌, 2009년 8월에 재판된 일반판이 되겠습니다. 일반판이라고는 하지만, CJ 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기업에서 제작한 타이틀이니만큼 무판권이나 제작여건이 열악한 중소 DVD 제작사에서 출시한 일반판 DVD에 비해서는 비교적 좋은 패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깔끔한 형태의 외장 커버입니다. 시원스러운 블루 계열 텍스트와 화이트 배경은 패키지를 더욱 깔끔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실제 DVD 케이스의 디자인.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대표적인 시달녀 일러슽트가 커버 전면을 시원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투명 케이스가 확실히 정답. 일반 불투명 검은 케이스였다면 에러였을 텐데 말입니다.


내부에는 3장의 디스크와 일러스트 몇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디지팩 한정판에서 필름컷과 스틸북이 빠진 구성인데, 가격차이는 2,000원이 조금 안되는군요. 필름컷과 스틸북이 날림이었나 봅니다. ;;;; 일러스트 모음이 위와 같이 케이스 내에 끼워져 있을 경우에는 케이스가 완전하게 닫히지 않고, 가운데 부분이 조금 벌어지는 것은 옥의 티로군요. 일러스트를 케이스에 넣지 않고 외장 커버에 넣으면 괜찮긴 합니다.


2번 3번 디스크의 라벨. 2번 디스크는 커멘터리, 3번 디스크는 콘티와 음성해설이 들어간 본편 영상입니다.


일러스트 모음을 뺀 케이스 내부. 투명 쥬얼 케이스이니 만큼 커버의 내측에도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심플하면서도 깔끔한 디자인.


배경 일러스트 모음. 이례적으로 캐릭터 디자이너인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일러스트가 아니라 시달녀의 배경미술 감독인 야마모토 니죠의 일러스트가 실려 있습니다. 의외이긴 하지만 사실 업계에서의 명성이나 경력 등은 야마모토 니죠가 사다모토를 훨씬 앞서긴 하지요.

저 유명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술감독으로서 미야자키 햐아오 감독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함께 숱한 지브리의 명작들을 만들어낸 그인데요. 이번 시달녀의 성공 역시 그의 유려한 배경미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브리의 게드전기와 맞붙었던 2006년 개봉 당시, 지브리의 걸출한 배경미술 감독들이 가세한 게드 전기의 미술적 완성도와 비교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지요. (물론, 시달녀 역시 야마모토 니죠 외에도 오구라 히로마사나 오가 카즈오 같은 톱 클래스의 배경미술 감독이 합세하여 레전드급 배경스탭 진용을 보여줬습니다만.)


일러스트의 뒷면에는 해당 일러스트에 대한 해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실 이 일러스트 모음은 비록 필름컷과 스틸북의 대용으로 포함되긴 했지만 야마모토 감독의 일러스트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데요. 아쉬운 것은 이렇게 낱장 형태로 딸랑 몇 장만 제공된지라 그 가치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은 있습니다 .

일반판의 한계를 간직하고는 있지만, 고급스럽고 깔끔한 디자인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네요.


DVD 리뷰

끔하고 심플한 느낌의 패키지에 비하여 DVD 내부에서는 몇 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이 눈에 띕니다. 먼저 디스크 1의 DVD 메뉴의 경우는 텍스트의 색이 번지거나 흐릿하여 뭉그러지는 느낌인데요. 깔끔한 메뉴 구성에 비해서 이 부분은 기대에 못미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2006 TOKIKAKE Film Partners


위의 메뉴는 디스크 1의 구성입니다. 재생, 챕터 선택, 설정, 스페셜 피쳐, 그리고 스탭진으로 구성됩니다. 스페셜 피쳐는 예고편과 뮤직비디오, TV CF 등으로 구성되어 있구요. 스탭진 목록(캡쳐한 영상에는 없습니다.)의 경우에는 하얀색 배경에 번짐이 심하고 해상도가 떨어지는 듯한 텍스트로만 스탭들을 표시하고 있어 고급스러운 패키지에 비해서 너무 조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2006 TOKIKAKE Film Partners


디스크 2와 디스크 3의 메뉴 구성. 배경 톤이 디스크 1에 비해 조금 어두워져 상대적으로 텍스트의 번짐이 심하지 않습니다. 디스크 2의 경우에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커멘터리와 시사회의 뒷 이야기 등이 실려 있는데요. 커멘터리는 시달녀의 여러가지 연출의도를 알 수 있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해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커멘터리가 그러하듯 지루한 감은 있습니다. 마니아나 만화영화 팬이 아니고서야 끝까지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반면, 시사회 뒷 이야기는 여러가지 생생한 모습이 담겨져 있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는데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본 애니메이터들의 우상이기도 한 야스히코 요시카즈 선생이 시사회장을 찾은 장면이었습니다. 야스히코 선생이 호소다 감독에게 사인을 요청하자 너무나 감격한 호소다 감독이 어쩔줄 몰라 하는 장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더군요. (마이클 조단을 우상으로 받들었던 소년이 NBA 최고 플레이어가 되어 마이클 조단에게 칭찬받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 2006 TOKIKAKE Film Partners


본편의 영상은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훌륭하긴 하지만, 압도적인 선명도나 화질을 보여준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서정적인 미술을 보여주는 작품의 경우 반드시 선명하고 깔끔한 화질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흔히들 (불법으로) 보는 DivX 영상에 비해서도 월등한 퀄리티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요.

사운드의 경우도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고는 있습니다만, 열악한 저희집 사운드 여건상 만족스러운 리뷰를 해볼 수가 없겠습니다. 사운드 쪽은 아쉽지만 좀 더 높은 내공의 AV 전문가 분들의 글을 참고하시도록 하구요.

DVD 리뷰인지라 본편의 내용에 대한 리뷰는 여기서는 다루지 않을 생각입니다. 시달녀의 리뷰는 나중에 애니 리뷰에서 다시 다룰 예정인데요. 간략하게나마 작품에 대해 소개를 드리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로 낙점받으며 지브리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던 호소다 감독이 지브리 경영진 교체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제작도중 강판당하고 나서, 프리랜서로 전업하여 만든 작품으로, 같은 해 개봉되었던 지브리의 차세대 기대주 미야자키 고로 감독(미야자키 감독의 아들)의 '게드 전기'와의 대결에서 초기에는 개봉관 수를 적게 확보했기에 흥행에서 밀리는 듯 싶었으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어 롱런을 한 작품이지요.

비록 흥행에서는 어느 정도 선전을 했으나 평단의 혹평을 들었던 게드 전기에 비해 관객과 평단 모두의 호평 속에 게드 전기를 K.O 시키며 호소다 마모루를 극장 아니메의 떠오르는 블루칩으로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를 앞세운 도쿠마 서점과 스튜디오 지브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극장 아니메 시장에서의 아성을 카도카와 서점과 매드하우스가 오랜만에 무너뜨린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구요.

앞서도 언급했던 지브리의 대표적인 미술감독 야마모토 니죠들의 가세로 서정적이고 깔끔해진 배경과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매력적인 캐릭터, 단순화된 선과 컬러링으로 심플함과 정갈함을 극대화시킨 작화, 호소다 만의 신선하고 재미있는 카메라 워킹과 연출 등 모든 면에서 아니메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간단한 작품소개를 끝으로 시달녀 DVD의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국내에 정발된 아니메 DVD 중에서는 상급의 패키지를 갖춘 타이틀이 아닐까 합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일반판 (3disc) - 8점
호소다 마모루 감독, 이시다 타쿠야 외 목소리/아트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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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의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우주해적 캡틴하록... 벗이여 별바다로 떠나자'를 티스토리로 옮긴 글입니다.


<프로필>
 
◈ 주요 출연작
   - 우주해적 캡틴하록 (TV, 1978):  린 타로(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우주해적 캡틴하록: 아르카디아호의 비밀 (Movie, 1978):  린 타로(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Movie, 1982):  카츠마타 토모하루(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무한궤도 SSX (TV, 1982):  카츠마타 토모하루(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하록사가, 니벨룽겐의 반지~라인의 황금~ (OVA, 1999):  타케우치 요시오(감독),  모토하시 히데유키(작화감독)
   - 건 프론티어 (TV, 2002):  젠 소이치로(감독),  시마즈 이쿠오(작화감독)
   - 우주해적 캡틴하록, Endless Odyssey (OVA, 2003):  린 타로(감독),  유키 노부테루(작화감독)
 
◈ 카메오/조연급 출연작
   - 은하철도 999 (TV, 1978) 시간성 편
   - 은하철도 999 (Movie, 1979) 
   - 안녕, 은하철도 999 (Movie, 1981) 
   - 퀸 에메랄다스 (OVA, 1998) 
   - 코스모 워리어 제로 (TV, 2001)  
   - 우주교향시 메텔 (OVA, 2004) 
 
☞ 글쓴이 주 #1: 캡틴 하록을 포함한 레이지버스의 작품을 감상하실 때의 주의점

'천년여왕 - 우주전함 야마토 - 은하철도999 - 캡틴 하록 - 퀸 에메랄다스'로 대표된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들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야마토의 경우는 예외라고 해도 될 듯)이지만 각 작품 간의 정합성은 항상 조금씩 어긋나 있고, 등장인물들의 상관관계도 이전작과 다르거나 다소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다. 이것은 애초부터 그(각 작품 간의 연관성)에 대해 원작자가 세세하고 면밀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그의 작품을 연출했던 린 타로 감독이나 다른 연출 및 각본 스탭들의 독자적인 해석과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토치로의 딸 마유는 린 타로가 TV판에 등장시키고 후에 레이지가 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원작에 등장시킨다. [2]참조)에 의해 생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후일 마츠모토 레이지 선생이 자신의 세계관을 일부 변경(예를 들면, 천년여왕과 메텔이 동일인인 듯 묘사했다가 나중에는 메텔을 그녀의 딸로 설정했다든지, 메텔과 에메랄다스를 라이벌처럼 표현했다가 후일 자매로 설정했다든지 하는 부분)함으로써 이전 작품과의 스토리적 정합성에서 더더욱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기에 레이지버스의 작품 모두를 동일한 시간축에 놓고 앞뒤가 꼭 맞게 배치하려는 불가능한 노력만 자재한다면 감상에는 무리가 없다.
 
결국, 각 작품을 모두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핀 오프의 작품(실제로 '건 프론티어'의 경우는 완전히 스핀오프를 표방한다고 할 수 있다.) 정도로 보면 어떨까 싶으며, 82년 TV 시리즈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무한궤도 SSX(이하 무한궤도 SSX)' 이후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레이지버스의 작품들이 99년부터 다시 제작되면서 마츠모토 레이지 선생이 세계관을 나름대로 깔끔히 정리하신 듯 싶으니 굳이 말끔히 정리된 세계관을 원한다면 그의 최신작에 묘사된 세계관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 (예를 들면, 우주교향시 메텔 같은 작품.) 
 
☞ 글쓴이 주 #2: 레이지버스란?

레이지 + 유니버스의 합성어로 마츠모토 레이지가 창안해낸 세계관과 그 세계관을 차용한 작품들을 통털어 일컫는 말. 보통 '우주전함 야마토', '우주해적 캡틴 하록', '은하철도 999', '천년 여왕' 정도를 지칭하며, 원작만화가 아니라 TV 방영을 위해 기획된 'SF 서유기 스타징가'나 '혹성로봇 당가도 에이스'와 같이 마츠모토 레이지가 원작으로 참여한 오리지널 아니메의 경우는 이 레이지버스의 세계관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프롤로그 - 별바다의 태동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일본은 자괴감과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일례로, 일본에 주둔한 미군들 중 일부가 (구시대의 많은 점령군이 그러했듯) 점령지의 여인들을 욕보이는 사건이 속출했지만, 패배감에 젖은 일본의 남자들은 그런 미군의 행패를 그냥 조용히 눈감고 지켜볼 뿐 누구 하나도 용기있게 나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일화는 그즈음 일본에서 최고의 무술 고수가 되기 위해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던 젊은 시절의 최배달(최영의) 선생이 이런 미군들의 행패를 좌시하지 못하고 몇 차례에 걸쳐 미군들을 혼내주자 양식있는 몇몇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미군에게 받았던 모욕적인 처사를 능가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조선의) 이 젊은 무술인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고우영 화백의 '바람의 파이터' 참조)


시대가 흘러, 패전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시작한 일본인들이었지만,(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다시 일어서게 된 원동력 중의 하나가 한 때 자신들이 침략했던 한반도에서 일어난 6.25 전쟁이었고) 여전히 그들 마음 한켠에는 아직도 패배주의가 사라지지 않은 체 트라우마처럼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런 자신들의 과거를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물려주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 중의 하나가 애니메이션 사업이었습니다. 인기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와 영화사로 명성을 쌓고 있던 도에이를 필두로 시작된 일본의 만화영화는 눈부신 성장을 시작했고, 미국과는 다른 새롭고 경제적인 제작기법과 참신한 소재들을 바탕으로 서서히 일본의 아이들에게 꿈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해내게 됩니다.


60년대의 아니메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라난 아이들이 청소년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만화영화, 즉 아니메는 중대한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아니메를 보며 자라난 아이들을 계속 수요층으로 자리잡게 할 좀 더 고연령대를 위한 작품이 필요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이제 아니메는 더이상 아이들만의 것이 아닌 일본인들을 위한 하나의 대중 영상매체로 성장하기 위한 저변이 마련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그것'이 등장한 것입니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이 건조한 세계 최대(最大)의 전함이었던 야마토를 모델로 하여, 환경위기에 봉착한 지구를 구원하기 위해 우주 저편의 환경 정화장치를 가져오는 임무를 맡고 출발한 우주전함 야마토와 승무원들의 스페이스 어드벤쳐를 다룬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의 '그것', '우주전함 야마토(74년작, 한국 방영제목 날으는 전함 V호)'는 지금까지의 아니메를 한단계 상회하는 과학적 고증과 짜임새 있는 휴먼 드라마, 그리고 우주 전함 간의 장대하고 스펙타클한 전투장면을 그려내며, 일약 1세대 아니메 붐을 일으키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됩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일본 아니메 종사자들이 최고로 치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주전함 야마토'의 성공은 단순히 아니메의 레벨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이 부끄러워하던 과거의 소재를 과감히 채용하여 새시대를 열어가는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잠재되어 있던 일본인들의 패배의식을 자긍심으로 바꾸고,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일종의 사이코 드라마로서의 역할을 해냈던 것입니다. 비로소 아니메가 어린이를 넘어 어른들까지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대충매체로서의 도약의 기회가 되었고, 이 새로운 아니메 붐은 바로 마츠모토 레이지라는 일개 만화가를 일류 만화가의 반열에 올려놓기 시작합니다.


© Matsumoto Leiji & Nishizaki Yoshinobu

우주전함 야마토 극장판 포스터. 레이지버스의 시초가 된 작품.



캡틴 하록, 사나이의 로망을 싣고 별바다를 모험하다


'우주전함 야마토'의 대성공 이후, 마츠모토 레이지(편의상 별도의 존칭없이 마츠모토로 표기하겠습니다.)는 도에이의 간판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도에이가 이끌어 오던 로봇 아니메의 주도권이 그들의 손을 떠나 선라이즈로 넘어가기 시작한 70년대 후반, 마츠모토의 장대한 스페이스 어드벤쳐는 도에이의 또다른 대안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죠. 그리고 78년, 드디어 레이지버스의 세계의 한축을 지탱하는 한 사나이가 과묵한 걸음걸이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야마토와는 또다른 사나이들의 로망을 실은 우주 전함 아르카디아호와 함께 온 사나이의 이름은 캡틴 하록이었습니다.


78년 TV 시리즈 '우주해적 캡틴하록'은 스토리 텔링에 있어서는 '우주전함 야마토'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술합니다. '지구를 침략한 마존에 맞서 자유를 위해 홀로 싸우는 우주해적'이라는 시놉시스는 지구의 오염된 환경을 구하기 위해 장대한 우주여행을 떠나는 야마토의 그것에 비교해 메시지나 신선도에 있어서도 별반 나을 점이 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주에서의 모험과 항모들간의 장렬한 전투라는 야마토의 소재에 캡틴 하록이라는 강렬한 캐릭터가 가세한 후속 아류작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과묵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사나이의 마초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하록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원작의 깊이와는 관계없이 마츠모토 스타일의 로망을 시청자에게 강하게 인식시키게 됩니다. 어떠한 위험과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강인한 정신력, 그것은 과거 패전 이후 자격지심에 짓눌려 있던 일본인들의 모습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었으며, 동시에 강인한 사무라이 정신을 다시 일깨우고 싶은 민족주의의 발로였던 것입니다.


우주인 침략자 앞에서도 제 밥그릇 찾기에 바빴던 한심하고 무능한 지구의 정부와 군은 과거의 부정적인 일본(또는 일본의 기성세대)에 대한 마츠모토의 우회적인 비판이었으며, 동시에 그들과는 달리 자유와 꿈을 위해 홀로 악전고투하는 하록과 아르카디아호의 승무원들은 마츠모토의 바람이 담긴 미래의 일본상이자 일본의 젊은이의 나아갈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불행하게도, 한국과 같은 나라에게 있어서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일본 제국주의의 편린과도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하록 선장은 기실 원작자인 마츠모토가 탄생시킬 당시만 하더라도 대중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습니다만(아무래도 당시 마츠모토 선생은 야마토 쪽에 좀더 비중을 두었던 듯 싶군요.), 이를 린 타로 감독이 맡아 연출하게 되면서 원작의 캐릭터를 린 타로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기대 이상의 호응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78년 TV 시리즈에 등장한 하록의 친우 토치로의 딸 마야의 경우가 바로 이런 린 타로 식 재해석의 산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투쟁과 방랑에 길들여진 거친 해적의 이미지에 친우의 딸을 보살피고 지켜주는 따뜻한 어른의 모습을 오버랩시켜 하록을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움을 갖춘 멋진 사나이로 묘사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본편의 작화감독을 맡은 코마츠바라 카즈오는 특유의 신들린 듯한 솜씨로 호리호리하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진 원작의 하록과 나긋나긋하면서도 가냘픈 마츠모토 특유의 여성 캐릭터들, 땅딸막하고 보잘 것 없지만 각자의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아르카디아호의 승무원들을 멋지게 재구성하여 시각적 공감대를 가져다 줍니다. (특히, 마츠모토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작고 못생긴 주변 인물들은 얼핏 보기에도 동양인, 아니 일본인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싶으며 이것 역시 마츠모토식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 멋진 환상의 콤비가 이후 은하철도 999로 이어지는 마츠모토 원작 만화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어 감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첫번째 TV 시리즈 우주해적 캡틴하록의 오프닝 스틸 컷.


 

풍랑 속에 길을 잃은 해적, 별바다에 잠들고

TV 시리즈의 방영 이후, 극장판(우주해적 캡틴 하록: 아르카디아호의 비밀, 1978년작)으로 제작되며 '은하철도 999'와 함께 당당히 레이지버스의 한축으로 야마토를 이어가기 시작한 하록. 뒤이은 마츠모토의 초 히트작 '은하철도 999' TV 시리즈의 에피소드 '시간성' 편과, '은하철도 999'의 극장판 시리즈 2편에 모두 카메오 또는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명실공히 마츠모토의 페르소나로 팬들에게 깊게 각인되기 시작합니다.

마츠모토가 그렸던 성장하는 주인공으로서의 모습이 '캡틴 하록'의 다이바, '은하철도 999'의 테츠로, '천년여왕'의 하지메로 그 모습을 바꾸어 형상화 되었다면, 이 하록은 이미 완성된 캐릭터로서 성장하는 청소년들을 지켜보고 도움을 주는 든든한 후원자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하록은 이처럼 다른 작품에 등장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작품에서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팬들에게 심어주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마치, 크게 히트한 이후 출연을 자제하며, CF나 뮤직 비디오에만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스타들처럼 말입니다.)


그로부터 4년 후, 하록은 드디어 카츠마타 토모하루 감독(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우주전함 야마토:사랑의전사 연출)이 원톱 감독으로 나선 새로운 극장판에 등장하게 됩니다. 하록의 젊은 시절, 즉 애꾸눈이 되기 이전의 모습부터 토치로, 에메랄다스와 같은 그의 절친한 동료들을 만나게 되는 하록의 최초의 여정을 다룬 극장판 '나의 청춘 아르카디아호(1982)'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막을 연 이 작품은 기대에 못미치는 흥행 결과로 레이지버스 작품들의 흥행가도에 큰 제동을 걸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이 20여년 가까이 만화영화화 되지 못하는 (극장판의 후일담을 다룬 '무한궤도 SSX' 외에는 20여년 동안 만화영화화 되지 않음) 단초를 제공하는 오명을 갖게 되지요. 82년 당시 흥행수입 6억 5천만엔은 대성공은 아니더라도 대참패라고는 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같은 해 개봉했던 극장판 '1000년 여왕'의 흥행수입이 10억엔 정도로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랭킹 92위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도 이는 나름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정가도를 달리고 있던 마츠모토 원작이라는 네임밸류는 이미 그 정도의 수익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82년도 극장판 나의 청춘 아르카디아호의 스틸 컷.

 

추측하기로는 81년부터 82년을 거쳐 전 일본적인 관심을 몰고 온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 3부작'의 열풍이 아동층에 한정되어 있던 로봇 장르를 성인층과 마니아층까지 본격적으로 확장시키면서 낭만적이고 신파적인 마츠모토식 SF에서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와 드라마로 가득찬 토미노식 리얼 SF의 세계로 팬들의 관심이 쏠린 것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교적 진부해진 레이지버스의 SF 설정도 그렇지만, 이미 그 드라마적인 전개에 있어서도 마츠모토식 로망스, 즉 선굵은 남성들의 꿈을 향한 낭만적이고 비장한 이야기가 불과 몇 년을 기점으로 낡은 구시대식의 사고방식으로 전락했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요.


게다가, 이 극장판은 작품 내내 비장미, 사나이의 기개, 정복당한 지구인들의 참상에 대한 우울한 묘사에 치우친 체 하록과 토치로들의 본격적인 활약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지는, TV 시리즈의 프롤로그적 성격이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 극장을 찾았던 많은 관객들에게 긴 시간 동안 우울함과 지루함을 선사해주었을 듯 합니다. 게다가 클라이막스 또한 그다지 상쾌한 결말이 되지 못했구요. 하록의 첫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의의 외에는 너무 무겁고 지리했던 이 작품의 분위기가 바로 가장 큰 실패의 요인이 아닐까 싶군요.  

또한, 일루미다스 군에게 점령당한 지구인들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미군에게 패배한 일본을 비유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한국인으로서는 그런 설정이 마치 일본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구한말의 모습과도 겹쳐지며, 또 이러한 모습을 일본의 만화영화가 묘사하면서 강한 거부감이 느껴진 것 역시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일본 관객들이 한국인인 제가 느낀 감정을 가졌을 리는 만무하지만, 경제대국인 된 일본에게 있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오래 전의 이야기는 이제 고리타분하거나 관심 밖의 소재는 아니었을까요.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하록은 같은 해, TV 시리즈 '무한궤도 SSX'를 통해 극장판 이후의 본격적인 하록들의 첫 모험을 다룹니다. 그러나, 린 타로 감독이 이전 시리즈에서 시도했던 설정들은 이 작품에 이르러 틀어지기 시작하는데, 토치로와 에메랄다스가 극장판에서 첫 만남을 갖은 이후, 이 시리즈를 통해서 절친한 동료로 발전하고 연인의 감정을 쌓아가는 순간 토치로를 사망시킴으로써, 이전 린 타로의 TV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토치로와 에메랄다스의 딸 마야의 출생(연인이 되기 전 사망한 토치로가 에메랄다스 사이에서 마야를 낳을 시간적 여유가 없음)에 대한 오류가 발생했고, 극장판부터 함수에 거대한 해골문양을 새겨넣었던 아르카디아호는 수십년 뒤 다시 만들어진 하록 시리즈에서도 여전히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최초의 TV 시리즈에 등장했던 해골문양의 함수가 없는 아르카디아호(일설에는 이 최초의 아르카디아호는 데쓰 쉐도우 호이고, 이후의 것이 아르카디아 호로 구분된다고 합니다만)의 존재를 무색하게 하는 등, 이전 시리즈와의 많은 설정상의 마찰을 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만들어 낸 문제라기보다는 레이지버스의 작품들이 여러 감독의 손을 거치면서 각 시리즈의 이야기 전개를 위한 나름의 설정을 만들어 내면서 원작과의 절충을 위한 과정을 거치는 중, 이전 시리즈의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것이 고의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간에) 발생한 문제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 이후 수많은 팬들에게 있어서 설정의 진위 여부로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면서 작품의 호불호와는 별개로 레이지버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팬들에게 의해 재해석되고 재해부되며 여러가지 가십거리를 낳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두번째 TV 시리즈 '무한궤도 SSX'의 오프닝 스틸 컷.



해적, 과거에서 부활하여 신세기를 항해하다


이후, 수십년동안 레이지버스는 만화영화 팬들의 뇌리에서 거짓말처럼 잊혀져 버렸습니다. 저 90년대 초반의 리메이크 붐 당시에도 레이지버스는 그 어떤 재탄생의 조짐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1세대 아니메의 붐을 일으켰던, 아니메 시대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전설의 작품(물론, 하록은 야마토나 은하철도 999에 비해서 그 의의가 비교적 약했지만)은 철저히 신세대에게 외면받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1998년, 레이지버스의 최초의 태동을 이야기하는 '화성여단 다나사이트 999.9'가 OVA로 등장하면서 레이지버스는 오랜동안의 봉인을 풀고 신세기로의 항해를 위한 엔진 예열에 들어갑니다. 연이어 '은하철도 999 ~ 이터널 판타지'와 '퀸 에메랄다스'가 우주로의 항해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 '퀸 에메랄다스'에서 하록은 오랜만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20년만의 스크린 복귀로 팬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하록의 등장씬은 말 그대로 짧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99년, 하록은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북구 전설 '니벨룽겐의 반지'를 토대로 한 유명한 바그너의 오페라 '라인의 황금'을 모티브로 한 OVA '하록 사가, 니벨룽겐의 반지~라인의 황금~(이하 하록 사가)'은, 레이지버스의 유명인사들인 하록의 영원한 벗 토치로, 토치로의 연인이자 하록의 오랜 동료인 여해적 에메랄다스, 그리고 신비의 여인 메텔 등이 모두 등장하는 가슴 뛰는 도입부와 함께 새로운 하록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인간으로서는 대적할 수 없는 하록의 압도적인 강함 때문이었는지 신과 대적하는 해적이라는 거창한 판타지적 이야기 전개(물론, 모티브가 된 이야기가 북구전설이었던 것도 원인이겠지만)를 선보이면서 이전의 하록 선장과는 달리 허무맹랑하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거기에 6부작이라는 짧은 OVA의 편수에 비해 그 전개가 너무 늘어지면서 스케일은 굉장히 크게 시작하여 결말 자체는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실망스러운 이야기의 완성도를 보여줬던 것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아쉽게도 새로운 작화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하록과 레이지버스의 인물들, 그리고 장중한 오페라와의 접목이라는 의의 외에는 재미 뿐만 아니라 완성도에 있어서도 많은 아쉬움을 준 작품이 되고 맙니다. 이미 오랜 시절 구축되어온 지나치리만치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이미지는 몇 마디의 대사와 함께 가끔 역동적으로 아르카디아호의 키를 조종하는 모습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과묵하게 서있기만 하는 도를 넘치는 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느린 전개와 맞물려 스케일만 큰 지리한 클래식 오페라처럼 인식시키고 맙니다. 하록의 모습은 기존의 이미지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작품의 재미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배우의 자세를 잊어버린 왕년의 톱클래스 탤런트와 같은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맞이하여 레이지버스는 본격적인 시동을 겁니다. '코스모 워리어 제로(2001)'를 통해 새롭게 시동을 건 레이지버스의 스페이스 어드벤쳐에서 하록은 주인공에게 쫓기는 우주 해적이라는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했고, '건 프론티어(2002)'에서는 뜬금없이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전혀 선보이지 않았던 썰렁한 개그까지 말이죠.) 20년만에 복귀하여 옛 이미지 그대로 연기했다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연기 변신을 시도한 톱 탤런트의 모습과 같다고 할까요. 전설로 회자되던 한 남자의 복귀는 그렇게 순탄치는 않았던 것입니다.

©1999 Leiji Matsumoto • Shinchousha/Bandai Visual • 81produce

99년작 '하록사가'의 스틸 컷.



벗이여 언젠가 또 별바다로 떠나자, 해적의 깃발 아래서...


신세기에 들어 미소녀에 대한 편향된 작품의 제작 스타일, 그리고 오래가는 작품보다는 패스트푸드처럼 금방 소비가 가능한 소재가 트렌드가 되어가면서 레이지버스의 작품들은 요즘의 기호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70년대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가 그 이미지에 너무나 많이 녹아 들어있는, 비장하고 진지한 하록의 모습은 그가 갖고 있는 고전적인 남성미와 더불어 구시대의 대표적인 상징처럼 여겨지는군요.


2003년 린 타로 감독이 다시 연출한 '우주해적 캡틴하록: 끝이 없는 오딧세이'는 하록의 내면을 심도있게 다루어 보려한 린 타로 감독의 의지가 엿보인 작품이었습니다만, 덕분에 작품은 한층 더 무거워졌고, 게다가 '하록사가'에 이어 다시 한 번 초자연적인 존재와 아르카디아호와의 대결을 묘사하면서 지루한 이야기 전개를 피해가지 못하게 됩니다. (만약, 일루미다스나 마존과 같은 실존하는 적과의 스펙타클한 스페이스 액션을 소재로 했다면 좀 더 좋은 반응을 얻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노장의 연출력은 여전히 빛났고, 과거 코마츠바라 카즈오에 버금가는 유키 노부테루의 캐릭터 디자인은 전작의 명성에 버금갈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이미 시대는 옛 해적의 이야기에 환호하기에는 너무 많은 다른 것들에 익숙해져 버린 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는 21세기에 리메이크된 여타 하록 시리즈에 비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주인공은 바뀝니다. 전설적인 해적의 귀항은 비록 기대에는 못미쳤지만, 그동안 그가 항해해온 수많은 별바다의 항해기록이 모두 헛되었던 것이 아니듯 이 여정 역시 그의 전설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그의 항해는 우리의 추억과 맞닿아있기에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고, 저 옛날 별바다를 함께 항해했던 동반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의 여정에는 제국주의의, 일본의 국수주의의 냄새가 나 가끔을 멀미가 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거대한 그의 분신 아르카디아호와 별바다를 향한 그의 항해에는 여전히 우리의 지난 시절과 추억이 흩날리는 해적의 깃발처럼 그의 옆에 영원히 놓여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는 별바다를 향한 기나긴 여정에 오를 겁니다, 검은 망토를 휘날리면서.
 

© LEIJI MATSUMOTO/Kobunsha • VAP • NTV ©2002 VAP • NTV

2003년작 '우주해적 캡틴하록: 끝없는 오딧세이'의 스틸 컷.



<참고 포스트>

 

[1] Captain Harlock, Wikipedia

[2] 우주해적 캡틴 하록 by 만보, Habest Days

[3] 우주해적 캡틴 하록 1978 by 캅셀, Capsule☺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1982 by 캅셀, Capsule☺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5] 캡틴 하록 TV 시리즈 by 슈케르

[6]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by 슈케르

[7] 무한궤도 SSX by 슈케르

[8] 하록사가: 니벨룽겐의 반지 ~ 라인의 황금 by 슈케르

[9] 우주해적 캡틴 하록 - Endless Odyssey Outside Legend by Kewell, Kewell's Factory about Som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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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吉永裕ノ介・フレックスコミックス/「ブレイク ブレイド」製作委員会

유노스케 요시나가의 동명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브레이크 블레이드'가 '공각기동대', '스카이 크롤러', '도서관 전쟁', '동쪽의 에덴' 등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명성높은 프로덕션 I.G를 통해 6부작 극장 아니메로 탄생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원제는 브레이크 블레이드이고, 공식 사이트의 일본어 명칭 역시 ブレイク ブレイド(브레이크 블레이드)로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Broken Blade가 올바른 표기입니다. 공식사이트 역시 영문표기는 Broken Blade로 표기하고 있구요. 제목처럼 몸체에 붙어 있는 칼날이 부러져 있는 고대의 골렘(거대 인간병기) 데루핀구를 의미하는 제목입니다.

석영이라는 마력의 돌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사는 1000년 후의 세계에서 희귀하게도 그런 능력이 없는 주인공인 라이가트와, 사관학교 시절의 친우이자 크리슈나 국왕인 호즈루, 같은 친구이며 호즈루 왕의 아내가 된 시균, 그리고 적국인 아테네즈 연방의 천재전사로 그들에게 칼을 뽑게 되는 또다른 친구 제스. 이야기는 이 4명의 친구들이 얽힌 세계에서 골렘이라는 거대 인간형 병기를 타고 싸우는 전쟁 드라마가 될 것 같습니다.

마력이 없으면 다룰 수 없는 골렘 중에서도 고대의 골렘으로 그 누구도 조종이 불가능했던 골렘 데루핀구를 라이가트가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는 역시 평범하거나 소외되었던 인물이 영웅으로 탄생하게 되는 전형적인 영웅탄생의 이야기가 될 것 같군요. 특히,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는 거대 인간형 병기 골렘의 경우는 건담 더블오를 통해 이미 멋진 메카닉 디자인을 선보였던 야나세 타카유키가 맡아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공식사이트에 디자인된 골렘들의 모습은 중량감과 스타일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만족스러운 느낌이네요.

그 밖에도 '마크로스 7'에서 감독을 맡았던 아미노 테츠로가 총감독을, '초수기신 단쿠가', '머신로보: 크로노스' 등에 참여했던 XEBEC의 이사 하바라 노부요시가 감독을, '풀메탈패닉 1기', '간츠', '유키카제' 등에서 스토리 작업을 했던 소고 마사시 등 로봇 아니메에서 경험을 쌓았던 스태프들의 참여로 인해 프로덕션 I.G의 오랜만의 로봇 아니메라는 불안감을 어느 정도 불식시켜주고 있습니다.

다만, 4분짜리 PV 영상에서 본 작화 퀄리티가 그동안의 프로덕션 I.G가 선보인 퀄리티에 비춰볼 때 TV 시리즈의 수준을 넘어가지는 못한다는 점(물론, I.G의 TV 시리즈 작화 수준은 몹시 높은 편입니다만)이나, 베테랑 스탭진이라고는 하지만, 캐릭터 디자인(노리타 타쿠시게)이나 메카닉 작화감독(마츠무라 타쿠야) 등 비주얼 쪽의 스탭진 일부는 큰 대표작이 없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등, 전반적으로 프로덕션 I.G의 일류 스탭들이 참여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제작에는 자회사인 프로덕션 I.G의 XEBEC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XEBEC 쪽에 스탭진의 무게가 실리지 않나 싶은 측면도 있네요.

골렘이라는 인간형 병기가 주름잡는 세상에서 1000년전에 만들어진 거대 골렘병기 데루핀구(고토부키야에서 출시된 프라모델의 영문명칭은 Delphine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일본어 발음은 데루핀구입니다. 그것을 반영해서인지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Dirfringe로 표기되어 있군요.)의 등장은 마치, 이 작품과 상당히 비슷한 설정을 보여줬던 다카하시 료스케 감독의 1985년작 '기갑계 가리안'을 연상시킵니다. 왕국과 같은 중세식 세계관에 마력이라는 개념과, 거대한 철거인의 등장은 판타지와 로봇아니메를 접목시킨 일련의 선라이즈 아니메에서 그 데자뷰를 찾을 수 있는데요. 이 장르를 꽤나 좋아했던 저로서는 그런 면에서 기대되는 바가 큽니다.

다만, 6부작이라는 극장용 아니메로 제작되는 것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는 높지 않았던 예고편의 퀄리티가 과연 본편에서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줄지,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스탭진으로 과연 만족할만한 연출력과 이야기 전개를 보여줄지가 염려스러운 부분이긴 한데요.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이후로 그동안 잠잠했던 판타지와 로봇 아니메의 시도가 이번 브레이크 블레이드를 통해 다시 한 번 멋진 조합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브레이크 블레이드의 1장은 5월 29일 개봉예정입니다.

공식사이트 바로가기 (클릭)

© 吉永裕ノ介・フレックスコミックス/「ブレイク ブレイド」製作委員会

고토부키야에서 출시된 데르핀구 프라모델 from Hobby Search. (그림을 누르시면 출처로 이동합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 권리는 © 吉永裕ノ介・フレックスコミックス/「ブレイク ブレイド」製作委員会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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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SUMMER WARS FILM PARTNERS. / CJ 엔터테인먼트 (한국판 DVD)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최신히트작 썸머워즈가 한국판 DVD로 마침내 발매됩니다.

블루레이로의 출시는 아직 미정입니다만, DVD가 나온 이상 곧 발매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제작은 극장배급을 맡았던 CJ 엔터테인먼트가 맡았으니 아니메 DVD로는 괜찮은 패키지가 될 듯 한데요. CJ로서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도쿄 마블 초콜릿' 이후 세번째로 출시하는 아니메 타이틀이 되는 셈이군요.

현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제외하고 극장 아니메로 전연령대의 관객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여주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이기에 DVD로서도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이어 이번에도 재미있으면서도 말초적이지 않고, 넓은 관객층을 고려하였으되 상투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군요. 전작에 비해서는 못하다는 평도 있지만, 그렇다고 소장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패키지는 2장의 디스크로 본편과 호소다 감독의 인터뷰가 실린 디스크 1과 예고편과 성우 인터뷰, 그리고 호소다 감독의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에서의 인터뷰가 실린 디스크 2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셔플먼트에 대한 정보는 아직 불명인데, 전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디스크 3장으로 구성된 DVD 패키지인 것에 비하면 다운그레이드된 느낌이 들긴 합니다. (가격은 같은데 말이죠.)

발매예정일은 6월 17일로 되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여름을 맞이하여 발매 되는군요. 일부러 여름에 맞춰 출시하려고 CJ는 1년이 지나서야 DVD를 제작한걸까요. 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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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Takada Akemi

오렌지로드, 마법천사 크리미마미, 패트레이버의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이노마타 무쯔미(윈다리아, 바람의 대륙, 사이버 포뮬러), 하루히코 미키모토(마크로스, 메가존 23, 건버스터)와 함께 80년대 일본의 3대 미형 캐릭터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던 타카다 아케미 씨가 5월 15일 시부야에서 드로잉 세션을 열었습니다.
이 드로잉 세션은 마법천사 크리미 마미 캐릭터 숍인 'MAMI's Magical Star'에서 열렸는데요. 동영상 스트림 사이트인 USTREAM에서 이 대가의 드로잉 세션을 생중계로 방송했다고 합니다. 비록, 생중계는 끝났지만, 여전히 이곳에서는 녹화된 아케미씨의 드로잉 세션이 스트림으로 제공되고 있으니, 오랜만에 대가의 솜씨를 구경하실 분들께서는 한번쯤 방문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하군요.

개인적으로 이노마타 무쯔미 씨와 함께 일본 아니메 캐릭터 디자이너 중에서는 가장 일본 아니메적 미형 캐릭터를 잘 그려내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렷을 적에는 민메이의 영향으로 하루히코 미키모토를 가장 선호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아키메씨와 무쯔미씨에게 손을 더 들어드리고 싶군요. 두 분 중 택일하는 것은 제게는 몹시 어려운 선택입니다만.

근래에는 아니메 쪽이 참여가 뜸한 듯하여 좀 아쉬운데요, 다시금 그녀의 멋진 캐릭터가 화면에서 살아 움직일 날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역시 녹슬지 않은 대가의 솜씨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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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었던 '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리튬향기의 여전사 쿠사나기 모토코'를 티스토리 옮긴 글입니다.

<프로필>
 
◈ 이름: 쿠사나기 모토코
출생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비밀에 쌓인 신비로운 여성. 어렸을 적 사고로 인해 온몸을 기계(의체)화 한 후, 나이에 맞게 몸을 바꿔온 것으로 추정. 뇌와 척수 일부분 외에 모든 것이 생체가 아닌 기계로, 인간과 사이보그의 모호한 경계에 서있는 인물. 오시이 마모루의 첫번째 극장판 'Ghost in the Shell(1995)'의 도입부에서 그녀의 사이보그 몸이 만들어지는 단편적인 장면을 엿볼 수 있다.
 
◈ 연령: 불명
만화책의 외모는 20대에 가까운 외모이고,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카미야마 켄지의 TV 시리즈 상에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외모로 추정되나, 기계 몸이기에 외모로 실제 연령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즘식으로 바꿔 말하면 전신 성형미인이라는 소리. (베스트 아니메 사이트에서는 30대 후반 이상의 연령으로 설명되어 있으나, 글쓴 이가 신뢰할만한 출처를 찾지 못해 불명으로 표기.)

◈ 별명: 소좌 (한국식으로는 소령, 미국식으로는 Major)
과거 군에 몸 담고 있을 당시의 그녀의 계급인데, 당시 동료였던 이시카와나 바토가 습관적으로 부르는 탓에 다른 공안 9과의 멤버들도 그녀를 소좌라 부른다. 한국판 DVD 등에서는 한국이라는 정서를 감안하여 소좌와 동등한 계급인 소령으로 표기.

◈ 소속: 공안9과 (후에는 조직을 탈퇴하여 독자적으로 행동)
몸을 사이보그화하거나 뇌를 전자두뇌로 바꾸어 직접 뇌를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진 미래의 시대이기에, 타인의 전자두뇌를 해킹하는 사이버 범죄의 발생율이 빈번하다. 이러한 고도의 사이버 범죄와 자국 내의 안보를 위협하는 각종 테러사건 등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내무성 산하의 비밀경찰이 바로 공안 9과이다. 멤버들은 대부분 군경력을 지닌 전뇌전과 대인전투의 스페셜리스트들로, 형사출신인 토그사를 제외하고는 몸의 상당 부분이 사이보그화 되어 있다.

오시이 감독의 첫번째 극장판에서는 인형사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그(혹은 그녀나 그것)와 융합함으로 인해 쿠사나기이면서도 쿠사나기가 아닌 새로운 무엇인가로 환생한다. 그 이후 공안 9과를 탈퇴하여, 두번째 극장판인 '이노센스(2004)'에서는 단독으로 바토를 도와주기도 한다. (이 인형사와의 융합은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책에서도 다루어졌던 전개이다.)

패러랠 월드격인 공각기동대 3번째 TV용 단편 'Solid State Society(2006)'에서는 극장판과는 다른 이유(그러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음. 단지, 소수정예에서 거대조직으로 변모하는 공안 9과를 떠나 독자적인 수사활동을 추구했던 쿠사나기의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추정)로 인해 공안9과를 탈퇴했다가 클라이막스에 극적으로 공안 9과와 공동전선으로 사건을 해결. 단, 다시 공안 9과에 합류하는지의 여부는 작중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 특기: 전뇌전, 테러진압, 인질구출, 암살
비핵대전 시절의 군경력으로 인해 그녀는 잠입, 침투, 인질구출 및 암살과 같은 소규모 특수작전임무의 스페셜리스트이며, 동시에 전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는 전뇌 해커이기도 하다. 비록 극장판의 인형사나 TV 시리즈의 웃는 남자, 개별 11인의 쿠제, 내무성의 고다, 괴뢰회 같은 대립측 캐릭터의 활약을 강조하기 위해 조금 덜 다루어진 듯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그들과 버금가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들 이상의 해커라는 사실은 극장판 '이노센스'나 TV 단편 'Solid State Society'에서 그 면면을 엿볼 수 있다.

그 외의 특기(?)라면, 초고가의 특제 의체를 적극 활용한 관능미 넘치는 바디 라인이라고나 할까. 단, 육감적인 스타일의 패션을 보여주었던 만화책에 비해 극장판이나 TV 시리즈에서의 헤어 스타일이나 패션감각은 대체적으로 하드웨어에 못미치는 감각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아마도, 그것은 오시이 감독이나 그의 문하생이었던 카미야마 감독의 리얼리티적인 작품관에 기인한 듯.) 그러나, 그 보라빛 단발머리야말로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 포인트이기도.

◈ 그 외 신변잡기
자신의 비밀 아지트를 몇 곳 소유하고 있으며, 원격조종용 의체도 다수 소유하고 있는 등, 상당한 재력가로 추정. 그것이 위험천만한 군과 공안에 근무한 그녀의 직업적 특성에 따른 보수 때문인지, 이제는 알 수 없는 그녀의 먼 과거에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초일류 해커라는 특성을 발휘하여 어디서 못된 짓을 해서 번 것인지는 TV 시리즈나 극장판만으로는 추정 불가능.

TV 시리즈 1기에 등장했던 그녀의 여성친구들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레즈비언적인 성취향을 지닌 듯 싶다. 단, TV 시리즈 2기에서 소년을 유혹하던 장면이나 코믹스의 여타 장면들로 미루어 보아 양성애자로 추정. (자유자재로 의체를 바꿀 수 있고, 온갖 전뇌를 돌아다녔으니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된다면 성정체성을 잃어버릴지도. 언젠가 아는 친구가 말했던 '환생하면 여자로 태어나 여성의 오르가즘을 탐구해보고 싶다.'는 절규는 쿠사나기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듯.)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특수공작원... 코믹스
 
쿠사나기 모토코는 89년 시로 마사무네 원작의 만화책 공각기동대를 통하여 세상에 등장합니다. 그녀는 시로 마사무네의 이전작 'Appleseed(1985)'의 여주인공 듀난 너츠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시로 마사무네의 육감적인 데생력에 힘입어 여성스러우면서도 강인한, 마치 한마리의 날렵한 치타와도 같은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여인이기도 합니다.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은 사이버 펑크적이면서도 디테일한 설정 덕에 모국인 일본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더욱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기실 애플시드나 공각기동대 모두 캐쥬얼하게 접할 수 있는 만화책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세계관과 디테일한 메카 묘사, 복잡하고 세밀한 데생 덕에 매니아적 색채가 강한 사이버펑크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이 두 작품은 모두 일정연령 이상의 성인층을 위한 작품이라는 이야기와 상통하기에 성인층에 대한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내지 원작자인 시로 마사무네의 성적 취향)에서 듀난이나 쿠사나기 모두 굉장히 육감적이고 섹슈얼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녀들은 기존의 SF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에 비해 (모습에서나 정신적으로나)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동시대의 만화영화 주인공들 중에는 87년에 OVA로 제작되었던 켄이치 소노다(만화가 겸 캐릭터 디자이너)의 '버블검 크라이시스'에 등장하는 프리스나 실비아와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프리스는 듀난과, 실비아는 쿠사나기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을 듯. 물론,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켄이치 소노다가 그렸던 여주인공들은 밀리터리 스페셜리스트라는 측면에서 시로 마사무네의 캐릭터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이 버블검 크라이시스 이외에도 그의 또다른 작품인 '갈포스(1986)'의 라비, 엘자, 루피, '건 스미스 캣츠(1995)'의 라리 등이 비슷한 성격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건 스미스 캣츠의 주인공 라리의 경우, 단발의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쿠사나기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죠.
 

© SHIROW MASAMUNE / KODANSHA

그림1. 애플시드 만화책 표지(좌측), 공각기동대 만화책 첫번째 시리즈 미국판(중앙), 두번째 시리즈 Man Machine Interface 미국판(우측). 만화책의 쿠사나기는 극장판이나 TV 시리즈보다 좀 더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 데생 스타일의 차이로 인해 시로 마사무네의 육감적인 캐릭터들은 켄이치 소노다의 귀여운(?) 캐릭터들에 비해 성인 취향에 더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켄이치 소노다의 캐릭터들이 성숙하고 이지적인 여인과, 보이쉬한 터프걸, 여성스러운 청순녀, 깜찍하고 귀여운 미소녀 등으로 나뉘어 거의 그녀들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시로 마사무네의 그녀들은 원톱 여주인공으로서 남성미를 자랑하는 파트너(브리아레오스나 바토)와 함께 강한 대비를 보이면서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이 큰 차이라 하겠습니다
 
성인 취향(이면서 동시에 남성 취향)의 극단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시로 마사무네의 캐릭터들이지만, 듀난과 쿠사나기는 몇몇 부분에서 서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남자친구 브리아레오스를 일편단심으로 바라보며, 콤비플레이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듀난이 젊고 패기 넘치는, 그리고 순수하고 우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쿠사나기는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 선 모호한 정체성과 남자 친구와 레즈비언 친구를 모두 사귀는 양성애적 성취향, 자신의 적수였던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자아로 탄생하는 불확실한 가치관 등 여러 면에서 사이버펑크 성인물의 주인공에 걸맞는 혼돈스럽고 규격화되지 않은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쿠사나기의 젊었을 적 모습이 듀난이고 듀난이 많은 경험과 세월을 겪어 성숙된 모습이 쿠사나기라고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군요.

© KENICHI SONODA

 그림2. 갈포스(좌측), 버블검 크라이시스(중앙), 건 스미스 캣츠 (우측). 켄이치 소노다의 작품들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SF, 또는 밀리터리 액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결국, 만화책의 마니아적인 색체 때문이었는지 쿠사나기는 쉽게 영상매체를 통해 모습을 보이지는 못합니다.(듀난은 88년작 OVA 애플 시드로 먼저 아니메계에 데뷔를 합니다만, 그리 큰 반응을 얻지는 못합니다.) 아마 당시가 SF 장르가 몰락하면서 복고와 리메이크 바람이 불던 일본 아니메의 암흑기의 한가운데였다는 사실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군요. 결국, 90년대 중반까지 그녀를 기억하는 이는 소수의 매니아에 불과했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말입니다.
 
 
관능을 벗고 철학을 입다... 극장판 공각기동대
 
95년, 에반게리온(이하 에바)의 써드 임팩트('은하철도 999'와 '기동전사 건담', '마크로스'로 대표되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을 세컨드 임팩트로 가정했을 때)와 함께 일본 아니메는 수년간의 침체를 딛고 신세기로의 도약을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아니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단연 에바를 꼽고 있고 저 역시 그 점에 있어서 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 써드 임팩트를 온전히 에바 혼자서 열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에바가 아니메 마니아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일반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일본 내에서의 국지적 임펙트였다면(물론, 그 이후에 세계적인 반향을 얻었지만),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1995, 이하 공각기동대 극장판)'과 오토모 가츠히로가 총감독을 맡았던 '메모리즈(1996)',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1997)'로 이어지는 극장용 아니메의 삼연속 랑데뷰 홈런은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아니메의 위상을 높여준 글로벌 임팩트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바로 그 첫번째 홈런인 공각기동대 극장판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 쿠사나기 모토코인 것입니다. (결국, 에바가 일본 만화영화 내수시장에 활력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뒤의 세 작품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고, 뒤의 세 작품은 일본 만화영화의 작품성을 전세계적으로 알렸다는 점에서 에바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국가 기밀을 탈취해서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려는 면책특권을 지닌 외교관을 눈깜짝할 새에 사살한 후, 빌딩의 저 아래로 광학미체(간단히 말해서 투명장치)와 함께 사라지는 도입부, 곧이어 펼쳐지는 신비로운 오프닝 테마를 배경으로 세밀한 의체 제작과정을 묘사한, 당시로서는 극한에 이른 비쥬얼은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으며, 아니메 史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의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오시이 마모루식 완벽주의의 집합체였던 것입니다.
 

© 1995 SHIROW MASAMUNE / KODANSHA / Bandai Visual

그림3. 쿠사나기의 의체(사이보그 몸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던 극장판의 인트로 씬. 의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마치 만화책의 쿠사나기에서 극장판의 쿠사나기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듯 하다. 극장판의 캐릭터 디자인과 키 애니메이터는 인랑의 감독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작화감독은 Production I.G의 또다른 명 감독인 붉은광탄 질리온의 니시쿠보 미즈호가 맡아 새로운 쿠사나기를 그려내었다. 

오시이 감독은 시로 마사무네의 멋진 세계관을 극장판으로 옮기면서 쿠사나기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리뉴얼 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를 감싸고 있던 최대의 무기(?)인 관능미를 과감히 벗겨버리고, 정체성에 방황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탈바꿈 시켜버린 것이었습니다. 관능미를 벗어버린 그녀는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기다렸다는 듯 풀어놓으며, 스탭진이 창조해 낸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이고 어두운 도시에서 철학적 향연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Ghost in the Shell'이라는 제목 그대로 쿠사나기의 관능미 속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마치 껍질 속의 고스트처럼 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시이 감독은 자신의 해석대로 묘사했던 쿠사나기와는 반대로 원작의 디테일한 밀리터리적 설정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실사 영상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인 연출을 선보입니다. 머신건과 권총을 능숙하게 조립하고 다루는 모습은 특수공작원이라는 그녀의 신분을 생생하게 묘사했고, 우리는 여성을 넘어 강인한 카리스마와 실력을 가진 주인공으로서 그녀를 인정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쿠사나기가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개체로서 네트워크를 향해 나아가듯, 전형적 히로인의 테두리에 묶여있던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성별을 극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으로 새로운 진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공각기동대 극장판은 사실 일본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참패하고 맙니다. 관능미를 벗어버린 어둡고 우울한 여주인공과 오시이 감독의 난해한 연출력이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러나,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이 외국에서 호평을 얻었던 것처럼 극장판은 외국 개봉 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합니다.(해외에서의 성공 이후 다시 일본에서 재개봉되었구요.)

'전뇌를 통해 네트워크에 가상현실로 접속하고, 타인의 뇌를 해킹하여 가상의 기억을 심어놓을 수 있으며, 자신의 기억을 모두 데이터로 백업하여 네트워크에 저장한다.'는 시놉시스는 당시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최상위 형태의 진화였고 거기에 일반 아동용 만화영화, 아니 실사영화마저도 뛰어넘는 치밀한 스토리와 극사실주의는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인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세기말 등장했던 초 화제작 '매트릭스(1999)'의 감독 워쇼스키 형제(이제는 남매)가 이 공각기동대 극장판에 큰 영향을 받았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아바타'의 SF 거장 제임스 카메론 역시 공각기동대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합니다.
 

© 1995 SHIROW MASAMUNE / KODANSHA / Bandai Visual

그림4. 광학미체와 함께 빌딩의 아래로 사라지는 쿠사나기의 극장판 오프닝 씬. 광학미체는 공안 9과 요원들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광학미체 속에 몸을 숨기는 쿠사나기의 모습이 의체라는 껍데기 속에 인간임을 증명하는 고스트가 숨어있는 모습과 겹쳐지는 듯하다.

그리하여 여자를 넘어섰던 그녀의 변신은 결국 강렬한 잔상을 남기면서 일본 만화영화사에 길이 기록됩니다. 관능미에 가려져 연기력을 평가받지 못하던 그녀가 작가주의 감독을 통해 새로운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철학 위에 관능과 카리스마를 입다... TV 시리즈
 
95년 극장판과 함께 글로벌한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그녀는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마치, 인형사와 융합해 공안 9과를 떠나 네트워크로 잠적해버린 극장판의 뒷모습처럼 말이죠. 그녀는 아니메와는 별개로 97년도 PS용 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극장판의 어두웠던 모습과는 다른, 만화책의 쿠사나기에 충실한 예전의 그녀로 돌아와 만화책의 그녀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신선함을, 만화책의 팬들이었던 이들에게는 쿠사나기의 역동적인 모습을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7년만인 2002년, 드디어 네트워크의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던 그녀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TV 시리즈,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이하 SAC)로 말입니다.
 
Production I.G의 차세대 주자인 카미야마 켄지가 감독을 맡은 TV 시리즈 SAC에서 쿠사나기는 극장판의 그녀와는 또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시이 감독의 쿠사나기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정체성에서 방황하며, 어두운 고독의 세계를 홀로이 가는 한마리의 외로운 늑대의 모습이었다면, 카미야마 감독의 그녀는 공안 9과의 2인자로서 개성 넘치는 공안대원들을 강인한 카리스마로 이끌어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암사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5. TV 시리즈 1기의 장면들. 만화책의 쿠사나기는 마니악했고, 극장판의 그녀는 난해했다는 점에서 TV 시리즈의 그녀가 상대적으로 대중적이고 접하기 쉬웠으며, 또한 그 카리스마와 매력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않았나 싶다. 

어찌보면, 극장판의 시니컬한 그녀가 되기 직전의 좀 더 젊은 쿠사나기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더불어 흥미진진해진 이야기와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주었던 극장판의 쿠사나기에 비해 오히려 인간적으로 좀 더 시청자에게 가까워진 그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외적인 볼거리에 치우치지 않은 스토리의 정합성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해서 메인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배치된 단편 에피소드도 별도의 이야기로서도 뛰어난 완성도와 함께 주제의식을 임팩트하게 전달했고, 그를 위해 때로는 쿠사나기를 메인 주인공으로, 때로는 조연급 내지는 아예 이야기의 흐름에서 빼버림으로써 공각기동대를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닌, 공안 9과의 인물(과 기계)들을 모두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단독 주인공이 아닌 여러 주인공 중 하나로 작품을 끌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오히려 시리즈 내내 그 존재감을 잃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SAC에서 이미 그녀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최고조에 이른 모습으로 표현되었던 탓일 겁니다. 그러면서도 제작진은 그녀를 슈퍼 히로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적절한 한계와 긴장감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고도의 테크닉을 보여줍니다. 오시이 감독의 극사실주의적 작품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면서도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적절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성격을 잃지 않은 SAC를 통해 그녀는 비로소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여배우로 태어난 것입니다.

오시이 감독만이 창조해낼 수 있을 것 같던 그녀는 이렇게 신예 카미야마 감독에 의해 난해함을 벗어버리고 강렬한 카리스마와 훨씬 더 강조된 여성성을 바탕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냉철한 그녀, TV 시리즈 1기의 엔딩곡 'Litium Flower'야말로 그녀를 정의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군요.
 
SAC는 성인용 작품이면서, 게다가 일반 지상파가 아닌 위성 케이블 방송의 PPV(Pay-Per-View: 시청 전에 일정금액을 결제하면 결제한 금액만큼 시청이 가능한 방식으로, 회당 결제방식의 주문형 비디오 VOD와는 차이가 있는 유료시청 방식. 글쓴이 주.) 형태로 방영하는 작품으로서 2기 제작이 어렵지 않나라는 예상을 깨고, 테러리스트를 사살하고 빌딩 아래로 광학미체와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는 유명한 쿠사나기의 극장판 오마쥬씬과 함께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2기에서는 그녀를 스크린에 데뷔시킨 오시이 마모루 감독도 스토리 컨셉으로 참여하는데요, 오시이 마모루는 SAC로 그녀를 보내고 비슷한 시기의 극장판에서는 그녀를 빼버린 체, 바토와 토그사만을 등장시켜 모토코가 사라진 이후의 공각기동대를 새롭게 그려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오시이 감독을 위해 그녀는 비록 목소리로나마 극장판에 등장하기도 하죠.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6. 오시이 마모루가 스토리 컨셉으로 참여하면서 묵직해진 스토리와 함께 그녀의 과거를 단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SAC 2기는 배경이 된 세계관에서 한국이 비핵대전으로 인해 몰락하고 한국민들은 난민이 되어 중국과 일본으로 뿔뿔이 흩어졌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채용함으로써 우리에게는 불편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만화책을 거쳐 극장판과 융합하고, 다시 극장판을 거쳐 TV 시리즈와 융합하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새로운 개체로서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쿠사나기 모토코를 의식한 스탠드 얼론 컴플렉스
 
쿠사가기가 보여준 강인한 카리스마와 행동력을 가진 여성상은 앞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버블검 크라이시스'와 같은 또다른 만화영화나, 각종 액션영화의 여주인공들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널리 익숙해진 모습이기도 합니다. 과연 누가 그런 여성 캐릭터의 시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TV 시리즈 1기의 최종화에서 웃는 남자와 쿠사나기가 정의했던 스탠드 얼론 컴플렉스(Stand Alone Complex: 한 명의 사람이 전달한 정보를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한 행동을 보이는데, 이 때 그들에게 계시를 준 최초의 사람은 선두에 나서지 않은 체, 그 정보를 이어 받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이 마치 자신이 오리지널인양 행동하지만 그 방향성은 잃어버린 상태. 글쓴이 주.)와도 같이, 스스로가 오리지널인듯 화면에서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자신만의 개성을 잃어버린 체 모방을 반복하는 캐릭터도 있고, 자기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캐릭터도 있습니다만, 그들 중에서 가장 빛을 발하고 있는 캐릭터는 단연코 쿠사나기를 뽑지 않을 수 없군요. 오리지널을 능가했는지도 모를 그녀의 존재감은 이제 만화영화 뿐만 아니라 영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가 헐리우드에서 실사영화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런 여성을 넘어선 강인함과 함께 강조되는 관능미나 성적 묘사는 분명 쿠사나기를 위시한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을 남성 시청자들에게 어필시킬 수 있는 매력포인트이면서 동시에 그녀들을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 의해 그러한 부분이 많이 거세되었으나, 카미야마 감독의 TV 시리즈는 (원작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성인물의 여주인공으로서 그녀의 성적 매력을 작품 내에서 은근히 자극했었죠.

비록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의 진지함 속에 드러난 일종의 팬 서비스적인 형태였지만, 결국 강인한 여주인공으로서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 또한 결국은 남성들이 창조해 낸 성적 판타지의 굴레를 완벽하게 떨쳐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설정은 동시에 그녀가 사이보그의 몸으로서 자신이 기계가 아닌 여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도 사용되고 있기에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극장판에서 네트워크와 융합되어 사라져 버린 그녀는 TV 단편 '공각기동대 SAC Solid State Society(SAC 3기)'를 통해 잠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만, 여전히 무한한 네트워크의 공간 속에서 기약없는 여행을 떠난 체입니다. 마치 샤아와 아무로가 액시즈의 빛과 함께 우주의 저편으로 생사를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메텔이 은하철도 999에 몸을 싣고 영원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하록 선장이 아르카디아호와 함께 별바다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녀의 다시 돌아오는 언젠가, 화면에서는 그녀의 귀환을 알리는 리튬 꽃의 메마른 금속향기가 광학미체의 미세한 시각적 간섭과 함께 우리의 감각을 일깨울지도 모릅니다.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7. SAC 3기는 연재물이 아닌 2시간 분량의 TV 단편으로 제작되어 일종의 팬서비스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여기서 쿠사나기는 이유를 밝히지 않은체 공안 9과에서 탈퇴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여 마치 극장판에서 인형사와 융합하여 공안 9과를 떠난 다음의 그녀의 행적을 묘사한 듯한 착각을 주기도 했다. 실제 TV 시리즈 SAC와 극장판의 스토리는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로, 일종의 패러랠 월드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참고 포스트>
 
1. 쿠사나기 모토코, 위키피디아


공각기동대 3종 패키지 :래핑맨, 인디비주얼 일레븐, S.S.S (6DISC) - 10점
카미야마 켄지 감독/미라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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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에덴 국내 DVD 케이스

ⓒ Eden of the East Production Committee / ⓒ 버즈픽쳐스 (한국판 DVD)


프로덕션 I.G 제작, 카미야마 켄지 감독의 2009년 화제작 '동쪽의 에덴'이 국내에 DVD 출시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YES24, 인터파크, 무비4989, 오즈DVD 등 국내 대형 인터넷서점과, 중소형 DVD 쇼핑몰 등에서 출시예정인데요. TTB를 제공하는 알라딘 쪽은 아직 출시상품으로 올라와 있지 않은 상태군요.

디스크는 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5:1의 Anamorphic 와이드 스크린과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기존의 와이드 스크린보다 더 넓은 화면비율을 제공함에 따라 라스트 씬의 미사일 격추 등과 같은 장면에서 꽤 좋은 느낌의 영상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5.1채널 지원도 그렇고 아니메 DVD로는 꽤 좋은 사양으로 출시되는군요.

카미야마 켄지 감독의 전작 공각기동대 SAC가 국내에서 제법 팔린 타이틀이라서 그런건지, 2010년도 노이타미나(NOITAMINA) 인기 프로라는 네임밸류 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무판권의 저가 DVD보다는 확실히 콜렉션으로서 좋은 가치를 할 듯 합니다.

그러나저러나, 동쪽의 에덴도 나온 마당에 카미야마 감독의 이전작인 정령의 수호자도 출시해줬으면 하는데... 일본 내에서도 (완성도가 좋았음에도) 좋지 않은 시청률을 보였던 작품인지라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동쪽의 에덴은 '슬럼독 밀리어네어', '국가대표' 등을 출시한 버즈 픽쳐스에서 출시됩니다. 5월 26일 출시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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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었던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아니메의 영원한 페르소나 샤아 아즈나블'을 티스토리로 옮긴 글입니다.

<프로필>


◈ 본명: 캬스발 램 다이쿤 (U.C 0059년 ~ U.C 0093년)

어린 시절 마스가에 입양되었을 당시에는 '에두아르드 마스(Edouard Mass)'라는 이름으로 불리웠으며, 이후 마스가를 나와 0074년 지온의 사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이름을 사용. 1년 전쟁 종결 후, 종적이 묘연(액시즈에 몸을 담고 있었다고 함)하다가 다시 지구권으로 돌아와 에우고의 핵심 일원으로 참여하며 '쿠와트로 버지나'로 이름을 바꿈.

가족관계: 1남 1녀 중 장남.
지온공국의 창시자 지온 줌 다이쿤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데긴 소도 자비에 의해 아버지가 암살되고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을 부지한다. 여동생인 아르테시아 줌 다이쿤(세일러 마스)(그가 살아 있는 동안) 남아 있는 유일한 혈육.

별명: 붉은 혜성 
붉은 색의 쟈크를 탄 체 고속 강습 공격으로 연방군의 전함을 차례로 격침하는 모습에서 붙여진 별명. 흔히들 샤아가 조종하는 기체는 통상의 3배 속도로 움직인다고 하여 아군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자 적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퍼스트 건담에서 샤아가 최초로 등장할 때, 통상의 세 배 속도라고 연방군 오퍼레이터가 친절히 설명.)

사망경위
시신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기동전사 건담:역습의 샤아'에서조차 그 마지막을 확실하게 묘사하지 않아 불분명하지만, 지구로 낙하하던 액시즈와 함께 그의 평생의 라이벌 아무로 레이와 함께 전사한 것으로 추정, 방년 34세. (혹시나 살아 있지 않을까 하는 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원작자인 토미노 감독은 한 대담에서 샤아가 확실하게 죽었다고 단정. 개인적으로는 Z 건담에서 행방불명된 체로 끝나는 것이 제일 낳은 결말이라고 생각 중.)


붉은 혜성의 탄생 전


그의 탄생전, 즉 70년대 초중반의 로봇물에서 악역이란 동전의 앞 뒷면처럼 주인공과 정반대인,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였습니다. 로봇물의 붐을 일으킨 '마징가 Z'의 아수라 백작은 남녀의 모습을 반반 가진 추악한 얼굴과 함께 '마징가 Z 타도'라는 목적에 사로잡힌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주며, 마징가 Z의 조종사 카부토 코우지(쇠돌이)의 열혈과는 어떤 의미에서는 동질의 뜨거움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와는 정반대의 음흉하고 부정적인 기운을 화면에 온통 뿜어냈습니다. 바꿔 말하면, 아수라 백작의 광기스러움이 극에 달하고 그 음모와 광폭함이 강렬해지면 강렬해질수록 주인공 카부토 코지의 열혈스러운 정의감은 상대적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형상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보스인 헬박사보다는 매회 카부토와 대치하는 아수라 백작이 실질적인 대립각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싶군요.)

이렇게 강렬한 악역은 시리즈가 바뀌고 새로운 로봇이 등장하더라도 또다른 형태의 악랄함으로 재무장하고 시청자(어린이들) 앞으로 다가옴으로써 주인공이라는 빛을 더더욱 밝혀주는 어둠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향한 어린이들의 감정이입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어린이들은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며 로봇 아니메의 세계로 흠뻑 빠져 버렸던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만화영화 주인공과의 강렬한 자기 동일시에는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해 온갖 형태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였던 그림자 같은 악역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수라 백작(마징가 Z), 암흑대장군(그레이트 마징가), 베가대왕(그렌다이저), 다리우스 대제(대공마룡 가이킹).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러나, 반복되는 로봇 아니메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비열하고 사악하며 광기에 찬 악당들의 모습은 세월이 흘러가며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시작은 바로 이제까지 로봇물을 이끌어 오던 토에이 동화가 아닌, 소에이샤라 불리는 작은 제작사(후일 선라이즈로 사명 개명)로부터였습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제자로서 '철완 아톰(1967)' 등을 통해 이미 연출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고 '바다의 트리톤(1972)'을 통해 TV 시리즈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던, 젊은 애니메이터 토미노 요시유키가 감독을 맡은 '용자 라이딘(1975)'은 기존의 도에이 동화 로봇물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한 몇 가지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전의 악역과는 다른 모습의 악역의 등장이었습니다.

토미노 감독은 악역들이 주인공과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대립각을 이루었던 기존의 형세와는 달리, 주인공과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하게 되는 라이벌 형태로의 구도로 악역 캐릭터를 설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 모험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인공을 빛나게 하기 위한 역할 이상의 무엇인가를 부여받지 못했던 악역 캐릭터들에게도 자신만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자칫하면 시청자들이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을 방해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했으니까요. 토미노 감독의 이런 도전적인 설정을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디자인한 캐릭터가 바로 '프린스 샤킨'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왕자를 연상시키는 듯한 복장과 가면을 쓴 샤프하고 늘씬한 미남자(?) 샤킨은 기존의 흉폭하고 흉물스러웠던 로봇물의 악역 캐릭터들과는 그 모습에서 확실히 차이를 달리했고, 이전까지의 단순 이분법적인 선악 캐릭터의 구분을 외모에서부터 서서히 모호한 형태로 바꾸어가기 시작합니다. 비록 최초의 시도였기에 샤킨은 외모 이상의 캐릭터적인 측면에서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여느 악역과 다를 바 없는 성격으로 묘사되었습니다만, 분명 이것은 기존의 로봇물과는 다른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전조였던 것입니다.

지만, 이러한 토미노 감독의 시도는 시청률에 민감한 TV 시리즈의 한계에 부딪혀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라이딘의 오컬트적인 배경과 묘사는 첨단 과학의 집대성으로 묘사되었던 당시의 슈퍼로봇들과는 색다른 이질감을 주었고, 그것은 제작사 측면에서는 참신함이라기보다는 시청률에 대한 우려감을 심어주었던 듯 싶습니다. 결국 라이딘은 제작을 맡았던 토호쿠 신사가 시청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삐꺽거리기 시작했고, 26화를 기점으로 감독의 경질이라는 결과를 가져옵니다.([3] 참조) 그리고 나가하마 타다오 감독 체제(토미노 감독은 감독보조 격하)로 바뀐 이후의 라이딘에서 결국 프린스 샤킨은 거대화된 체 라이딘과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프린스 샤킨(라이딘), 대장군 가루다(컴배틀러V), 프린스 하이넬(볼테스V), 리히텔 제독(투장 다이모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허나 이러한 사정 속에서도 시청률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보였던 라이딘을 통해 변화의 물결은 조금씩 큰 파도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프린스 샤킨의 조기 강판을 결정했던 나가하마 감독은 오히려 차기작 '초전자로보 컴배틀러 V(1976)'에서 미남 캐릭터인 대장군 가루다를 적 캐릭터로 등장시킴으로써, 토미노 감독이 시도했던 악역 캐릭터의 변화를 계승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샤킨이 외모에서만 변화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가루다는 자신의 신념과 임무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제서야 악역 캐릭터는 조금씩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주인공 외에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 즉 다양한 캐릭터 성이 서서히 작품에서 커다란 부분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가하마 감독은 컴배틀러 V의 대성공 이후 '초전자머신 볼테스 V (1977)'의 프린스 하이넬, '투장 다이모스 (1978)'의 리히텔 제독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미남 악역 캐릭터들을 화면에 속속 등장시키면서 이후 로봇물에 있어서 새로운 인물구도를 제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1979년,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과 야스히코 요시카즈 작화감독은 이전까지 등장했던 로봇물의 미남 악역 캐릭터를 집대성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등장할 모든 미남 악역 캐릭터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게 되는 한 사내를 탄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붉은 혜성의 탄생, 그리고 생애


그가 탄생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조상뻘이라고도 볼 수 있는 프린스 샤킨의 첫 글자 '샤아'라는 음절과 샹송가수 샤를르 아즈나브르(Charles Aznavour)에서 이름을 따온 샤아 아즈나블은 자신만큼이나 당시의 작품과는 궤도를 달리했던 로봇물 '기동전사 건담(1979)(이하 퍼스트 건담)'의 TV 시리즈 시청률 부진으로 오히려 작중에서 가르마 쟈비를 죽음에 빠뜨린 후에는 잠시 등장하지 못하는 치욕을 겪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당시 시청률 부진에 대한 대책으로 그의 조기 퇴장이 제작진 사이에서 제기되기도 했었다는군요. 결국 샤아의 조기 퇴장이라는 위기사태는 샤아의 계속적인 출연을 바랬던 소녀팬들 팬레터를 기점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게 됩니다. [1] 참조) 결국 시청자들의 외면 속에 52화 예정이 43화로 조기종영되면서까지 쓸쓸하게 퇴장했던 건담과 샤아. 이렇듯 그의 등장이 처음부터 모든 이들에게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쓸쓸한 종결에서부터 신화는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재방송에 대한 요청과 건담 프라모델의 판매 호조 등 어린이가 아닌 만화영화 마니아들의 폭발적인 지지에 힘입어 극장판 3부작으로 방영된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1981~82)'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며, 드디어 일본 만화영화史에 리얼 로봇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예고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후폭풍과 함께 통상의 3배의 속도로 팬들을 사로 잡아버린 이가 바로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이었습니다.


주인공을 성장시키기 위한 존재로서의 샤아였지만, 라라아와 아무로와의 만남을 통해 뉴타입의 가능성을 인식하면서 그 역시 성장하게 된다. ⓒ SUNRISE/SOTSU AGENCY

'용자 라이딘'의 샤킨과 흡사한 가면을 쓴 이 신비한 미남자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신분을 숨긴 체 지온공국의 주목받는 청년장교로 성장하면서 주인공인 아무로 레이 일행과는 다른 드라마를 그려갑니다. 그의 복수극은 사이드 7에서 연방군이 비밀리에 제작하던 모빌슈트의 정찰 임무를 통해 새로운 기점을 맡게 되는데, 한 지온군 병사의 호승심과 그로 인한 사이드 7의 인명 피해, 이런 참상을 좌시하지 않던 한 어린 소년이 충동적으로 탑승한 연방군의 비밀 병기 건담의 기동으로 인해 비로소 주인공 아무로 레이의 얘기와 그의 얘기는 오버랩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퍼스트 건담에서의 샤아의 모습은 이전까지의 악역과는 다른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악역이 아닌 라이벌로서, 즉 또다른 인격체로서 작품에 등장한 본격적인 캐릭터의 모습이었다는 점입니다. 로봇의 성능보다는 탑승하는 파일럿의 역량을 중시하게 된 퍼스트 건담의 로봇조종 방식은 샤아라는 인물의 압도적인 모빌슈트 조종술과 아무로의 아직은 초보적인 그것을 오버랩 시킴으로써, 샤아를 아무로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눈 앞의 적으로 묘사합니다. 주인공과 대립을 이루던 이전의 악역들이 총사령관 내지는 총지휘관이라는 직책으로 인해 주인공과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대립을 이루었다면 샤아는 처음부터 주인공 일행과 맞닥뜨리고 갈등을 부여하는 '실질적인 라이벌 관계'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신념 때문에 갈등(컴배틀러 V의 가루다)하고, 출생으로 인해 갈등(볼테스 V의 하이넬)하고, 자신의 여동생과 적과의 사랑으로 인해 갈등(다이모스의 리히텔)하던 나가하마 감독의 낭만로봇 3부작의 악역 캐릭터들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샤아는 무섭게 성장하는 주인공 아무로와의 파일럿으로서의 경쟁심, 자신이 사랑했던 라라아가 뉴타입으로서 아무로와 교감하는 것에 대한 질투심, 연방군으로서 자신과 맞서 싸우는 여동생 세일러에 대한 연민, 자신의 원 목표였던 자비가에의 복수 등 좀 더 다양한 갈등 속에 노출됨으로써 주인공 이상의 복잡한 갈등 구조와 드라마를 갖고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그야말로 '반대편의 주인공'이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퍼스트 건담으로 일본 만화영화사에서 새로운 조명을 받기 시작한 샤아 아즈나블은 리얼로봇의 전성기이자 아니메 전성기였던 80년대에 이르러 최고의 카리스마로서 만화영화 팬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합니다. 리얼로봇의 본격적인 러쉬가 시작되는 80년대 초중반, '성전사 던바인(1983)'의 번 버닝스, '중전기 엘가임(1984)'의 갸브레 드 갸브레이, '기갑계 가리안(1984)'의 하이샬랏트 등 다양한 악역, 아니 라이벌 캐릭터들이 주인공과 갈등구조를 끌어나가는, 그야말로 샤아 아즈나블의 계승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약, 샤아가 극장판 건담 3부작을 끝으로 (자비가의 복수를 마친 그가 극중에서 조용히 사라졌던 것처럼) 일본 만화영화에서 종적을 감추었다면 그의 카리스마는 더이상 지속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만, 주변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팬들의 속편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커져만 갔고, 특히나 건담 프라모델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던 반다이에게 있어서 새로운 건담 시리즈의 제작과 그에 따른 수많은 프라모델의 출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금맥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전작과는 달리 상업적인 기획 의도(물론, 전작 역시 상업적인 기획의도 반영된 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시작 자체는 점보트3와 다이탄3을 히트시킨 토미노 감독과 스탭들이 이번에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게 해달라는 요구에 의해 시작된 작품이었음)와 주위의 기대를 잔뜩 짊어진 체 샤아는 다시금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리얼로봇물, 아니 일본 로봇 만화영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또 하나의 전설 '기동전사 Z 건담(1985)(이하 제타 건담)'으로 말입니다.

훨씬 더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온 제타 건다의 샤아. 당시 천재 애니메이터였던 우메즈 야스오미가 그린 오프닝의 샤아(좌측 상단)는 본편을 몇 단계나 상회하는 최강의 퀄리티를 보여주었었다. ⓒ SUNRISE/SOTSU AGENCY

전편에 이어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디자인하고 기타즈메 히로유키 등이 그려낸 제타 건담의 샤아는 퍼스트 건담의 그와는 몇 가지 차이를 보였는데, 먼저 더이상 주인공과의 경쟁구도를 취하는 라이벌 캐릭터가 아닌, 주인공의 성장을 지켜보고 이끌어주는 '조력자와 관찰자의 역할'로 돌아섰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캐릭터의 역할 조정이 어떤 의미에서는 이 제타 건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선라이즈/반다이의 사업적인 기획의도에 의해 등 떠밀리듯이 제타 건담을 제작한([2], [4] 참조) 토미노 감독이, 이전 시리즈의 잔재였던 샤아를 과감히 주인공 까미유와의 라이벌 구도에서 배제함으로써 이 작품을 이전의 건담과는 다른 모습으로 끌고 나가려 했던 의지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샤아의 자리에는 제리드라는, 샤아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퍼스트 건담'의 과거, 즉 샤아와 아무로의 대결 구도에 집착하는 열성 팬들의 바람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아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사실은, 전 주인공이었던 아무로를 '까미유의 조력자 역할로 설정해도 별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로는 한참 후에야 연방군에 의해 무기력하게 연금되어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고, 샤아 아즈나블은 1화부터, 그것도 주인공보다 먼저 화면에 등장시킴으로써 건담에 있어서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샤아의 영향력이 강력했음을 토미노 감독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었던 것입니다. (감독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말입니다.)

2005년 새롭게 그려진 극장판 '별을 계승하는 자'의 라스트 씬이었던 샤아와 아무로의 재회. 만화영화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두 사내의 만남은 올드팬들에게 있어서는 벅찬 감동 그 자체였다. ⓒ SUNRISE/SOTSU AGENCY

게다가 원래 아무로와 샤아의 대결 구도와 같은 전개를 보여주었어야 할 까미유와 제리드의 그것은 갈수록 관심을 잃어만 가더니, 급기야 까미유가 지구로 향한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제리드는 한동안 이야기에서 배제됨으로써, 마치 퍼스트 건담 방영 초기 가르마의 사후 한 동안 모습을 감추었던 샤아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리드는 결코 샤아처럼 제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고, 오히려 지구에서 다시 만난 샤아와 아무로의 재회 장면은 제타 건담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감동을 선사한 씬이 되며, 팬들에게 제타 건담의 진정한 주인공은 역시 까미유가 아닌 아무로와 샤아가 되어야 한다는 이미지만 강렬하게 전하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결국 제리드는 까미유와의 라이벌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복수에 불타는 엑스트라 1'으로 전락되어 버린 체, 그 자리를 팹티머스 시로코라는 강렬한 카리스마의 캐릭터가 대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공 까미유를 밀쳐 버리고 실질적인 'Z 건담'의 주인공으로서 팬들에게 인정 받으면서도 조력자 이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역할 상의 한계로 인해, 샤아는 극중 내내 어중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로코와 하만 칸에게 실력으로 밀리면서 올드 타입(정확히 말하면 올드타입이라기보다는 뉴타입으로서의 각성이 아직은 덜 된 초보 뉴타입 정도랄까요)으로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점이나, 지도자와 야전 지휘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체 어정쩡한 위치에 머물렀던 그의 역량(이것이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최종화에서 하만 칸의 큐베레이에게 맥없이 무너지는 그의 백식을 보며 열성 팬들은 분통을 터뜨렸고, 이어지는 충격의 결말은 한동안 많은 팬들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갈 정도였으니까요. 굳이 비교하자면, 에반게리온 TV 시리즈의 결말과 같은 허무감이라고나 할까요. 에바의 마지막을 통해 안노 감독이 '오타쿠들이여, 현실로 돌아오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처럼 토미노 감독 역시 카미유의 정신붕괴와 샤아의 실종을 통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리듯이 만들어야 했던 제타 건담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처참한 심경을 말하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샤아는 더이상 토미노/야스히코 만의 샤아가 아니었던 것이고, Z 건담을 통해 모든 것을 종결지으려 했던 토미노 감독 역시 다시금 반다이에 떠밀려 '기동전사 ZZ 건담(1986)'을 제작해야 하는 현실에 몰려야 했던 것입니다. 
 


붉은 혜성의 사후


'기동전사 ZZ 건담'의 실패, 그리고 반다이의 계속적인 건담 시리즈의 제작요구, 더이상 후속작을 거부해도 피할 수 없는 챗바퀴 속에 있음을 알게 된 토미노 감독은, 결국 모든 팬들의 염원일지도 모르는 숙명의 대결을 통해 완벽한 건담의 종결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아무로와 샤아의 재대결을 그린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1988)'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토미노 감독이 팬들의 강렬한 염원 속에서도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끝끝내 샤아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건담, 아니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기존의 노선에서 물러나, 오히려 전면적으로 샤아와 아무로의 재대결이라는 팬들의 바람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이제 더이상의 건담은 없기를 바라는 일종의 배수의 진을 치고 만든 작품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이제는 성숙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영원한 에이스 아무로와 함께, '퍼스트 건담'의 철가면과, 'Z 건담'의 선글라스를 모두 벗어 버리고 온전한 맨얼굴로 팬들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네오지온의 총수 샤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샤아의 마지막 모습은 기타즈메 히로유키가 새롭게 그려낸 세련되어진 그 외모만큼이나 세련되지는 못했다. ⓒ SUNRISE/SOTSU AGENCY

그러나, 토미노 감독은 결코 팬들의 구미에 맞는 전개를 선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로는 무난했었으나) 어느 한 여성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한 체 나나이와 퀘스, 그리고 죽은 라라아 사이에서 갈등했던 우유부단함, 30대의 나이에 10대의 퀘스의 마음을 농락했던(그것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지라도) 무책임함, 결국 아무로와의 제대로 된 승부도 내지 못한 체 허망하게 탈출포트 째로 아무로의 뉴건담에게 사로잡히는 무력함 등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이전의 샤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네오 지온의 총수라는, 이제까지의 그의 직책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자신이 지구로의 추락을 명했던 인공구조물 액시즈의 벽면에 쳐박힌 체, 액시즈를 막으려는 아무로와 많은 이들의 필사의 노력을 바라보면서, 샤아는 결국 만화영화 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토미노 감독과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창조한 페르소나와 같은 인물, 수많은 열성 팬들을 양산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동시에 지속적인 수익을 바랬던 반다이의 끊임없는 염원에 의해 창조자였던 그들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세기의 캐릭터 샤아는 결국, 팬들의 기대와 토미노 감독의 방황과 갈등 사이에서 그 역시 방황을 거듭하며 영욕의 10년(1979년 퍼스트 건담부터 1988년 역습의 샤아까지)을 끝맺게 됩니다.

아나벨 가토(건담 0083), 젝스 마키스(건담 윙), 라우 르 크루제(시드), 네오 노아로크(시드 데스티니).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 SUNRISE/SOTSU AGENCY

샤아의 죽음과 함께 리얼로봇물은 새로운 신시대를 향했을까요? 더이상 팬들, 아니 반다이는 건담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건담이 낳은 최고의 영웅, 일본 만화영화사에 길이 남을 한 사내의 죽음조차도 건담의 분열과 재생산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후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듯이 수많은 건담들이 그의 주검 위에서 다시금 새로운 샤아의 탄생을 바라며, 한없이 종영과 방영을 거듭하기 시작합니다. 반다이가 포기하지 않는 한 건담은 앞으로도 계속될지도 모릅겠군요. 그리고 그런 계속된 건담 시리즈의 속에서 여전히 샤아를 꿈꾸는 사내들의 등장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혹자는 샤아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어 철가면을 쓰고 등장하기도 했고, 혹자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이며 다른 길을 걸어가기도 했지만, 그들은 모두 샤아의 후예, 그리고 복제들인 것입니다. (실제 토미노 요시유키의 소설 '가이아 기어'에는 그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복제인간 아프란시아 샤아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1] 참조)

샤아는 건담 시리즈 뿐만 아니라 많은 로봇물, 아니 일본 만화영화에서 하나의 정형화된 캐릭터 구도를 제시했습니다. '퍼스트 건담'에서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그림자가 아닌 주인공과 경쟁하는 라이벌로서 또 하나의 주인공, 그리고 'Z 건담'에서 보여주었던, 주인공을 이끌어 주는 조력자이자 선배로서의 완성된 인격체. 그리고, 그런 위치와 실력에 필적하는 완벽한 미남자라는 정형화된 외모까지도 말입니다. 비록, 철가면을, 선글라스를, 붉은 옷을 입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현재 일본 만화영화의 수많은 캐릭터들은 샤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덕분에 근래에 들어 그런 캐릭터 만큼 식상한 캐릭터는 없을 정도이지만 말입니다.)

온다 나오유키가 다시 그린 2005년의 샤아와 그의 애기 백식.

비록 로봇장르가 몰락하고 건담이 지루한 재생산을 반복하더라도, 그와 같은 캐릭터가 이젠 너무도 많아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더라도, 통상의 3배의 속도로 팬들에게 다가왔던 그 별명 그대로 그가 붉은 혜성처럼 강렬한 잔상을 우리에게 남겨놓았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겁니다.


그리고...

2005년 샤
아는 토미노 감독이 새롭게 재해석한 '기동전사 Z 건담 극장판 3부작(2005~2006)'을 통해 다시금 예전보다 더 세련된 모습으로 우리곁을 찾아 왔습니다. 온다 나오유키(마계도시, 간츠, 에르고 프록시, 블라스레이터의 캐릭터 디자이너)가 새롭게 그려낸 21세기의 샤아(물론, 무라세 슈코 등이 작화에 참여하면서 많은 캐릭터들이 동글동글한 동안으로 변해버려 기존 팬들이 위화감을 느끼기는 했지만)는 야스히코가 디자인하고 키타즈메가 그려냈던 20세기의 샤아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누적 관객 800만명이라는 히트를 기록할 정도로 건재함을 과시한 것입니다.



<참고 포스트>

[1] 샤아 아즈나블(캬스발 렘 다이쿤) by 니힐리스트, ARE YOU READY FOR GUNDAM
[2] 기동전사 Z 건담 by 니힐리스트, ARE YOU READY FOR GUNDAM
[3] 슈퍼로봇 이야기 1 <용자 라이딘> by Kewell, Kewell's Factory about Something
[4] 거대로봇 연구서설 - Z 건담편 1 by 백금기사, 백금기사의 舊 연구소
[5] 거대로봇 연구서설 - 역습의 샤아편 by 백금기사, 백금기사의 舊 연구소
[6] 베스트 아니메 (스틸샷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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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의 '기신병단 (1993), 애매한 역사관과 복고주의가 뒤섞인 스팀펑크 액션물'을 본 블로그로 옮긴 글입니다.

기신병단 DVD 표지© 山田正紀 / 中央公論社 / PIONEER LDC, INC


<스탭>

◈ 감독: 이시야마 타카아키
◈ 원작: 야마다 마사키  
◈ 제작: 은하제국, 파이오니어 LDC


<시놉시스>

2차 세계대전 중, 미지의 외계인과의 전투를 대비하여 통칭 ‘모듈’을 만든 다카무라 박사는 이를 노리는 관동군 대좌 신타이와 외계인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미녀 의사 마리아 브라운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다카무라 박사의 아들 다이시는 ‘모듈’을 간직한 체 거리의 아이들과 살아가지만, 전란의 소용돌이는 다이시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한편, 마리아의 쌍동이 언니 에바 브라운은 모듈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다카무라 박사가 남긴 모듈을 되찾기 위해 관동군에 협력하고 있었다. 마리아라고 믿었던 에바에게 아이들은 모듈을 빼앗기게 되고, 바로 그 시각 하늘에서는 보라색 빛과 함께 외계인들의 침입이 시작된다. 관동군과 외계인의 위협 속에 절체절명 놓인 다이시, 바로 그 순간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거대로봇 뇌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1. 작품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

기신병단은 90년대 초반 일본 아니메의 침체기가 시작되면서 유행처럼 번졌던 복고주의 작품 중 하나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복고적 그림 스타일, 스팀펑크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메카와 중량감 넘치는 액션씬, 그리고 유럽과 중국 등 전세계를 누비는 방대한 스케일의 로봇 액션물입니다.  

7~80년대 대호황기를 누리던 일본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침체가 발생하던 90년대 초반, 아니메 시장 역시 시장의 포화, 컨텐츠의 부족이라는 업계의 상황이 맞물려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것은 흥행이 보장되는 그만그만한 작품들이 일색인 상황으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시기가 90년대 초반인 것이죠. 시기적 특성상 90년대 초반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을만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보다는 이전에 인기를 끌었던 스타일이 다시 주목받는 복고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새로이 만들어 낼 컨텐츠의 부족도 있었겠지만, 호황기였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본인들의 정서도 어느 정도 반영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복고주의 열풍으로 이전에 흥행했던 작품들을 리메이크 하거나 그 속편을 만드는 사례가 늘어나게 됩니다. ‘바벨 2세(1992)’, ‘철인 28호 FX(1992)’, ‘마크로스2(1992)’, ‘마크로스7(1994)’, 마크로스 플러스(1994)’, ‘플란다스의 개(1992)’, ‘신조인간 캐산(1993)’, ‘요술공주 밍키(1993)’, ‘더티 페어 플래쉬(1994)’, ‘독수리 5형제(1994)’ 등은 모두 이런 복고주의와 리메이크의 바람을 타고 제작된 7~80년대의 인기작들이었죠. 이러한 현상은 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등장하기 전까지 일본 아니메를 지배하며 아니메 업계에 기나긴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됩니다. 

삽입그림1

90년대 복고주의 대표작 '자이언트 로보'(좌).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원작으로 90년대 복고주의 리메이크 작품 중에서는 단연코 걸출한 작품. 70년대의 초히트작 '독수리 5형제'를 우메츠 야스오미가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으로 새롭게 리메이크 한 '독수리 5형제(1994)'(우).


2. 거대한 스케일의 복고주의 메카 애니메이션

'기신병단'은 90년대 초반 복고주의 열풍의 선두에 섰던 작품 중 하나인 '자이언트 로보(1991)'와 여러 곳에서 유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나리오나 연출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이 두 작품은 그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해오던 늘씬하고 멋진 로봇이 아닌, 육중하고 투박한 스타일의 로봇이 등장하여 건담으로 대표되던 80년대의 리얼로봇과는 다른 또다른 기계적인 리얼함을 보여줍니다.

각각 뇌신, 풍신, 용신으로 불리는 ‘기신병단’의 로봇들은 전차, 비행기, 그리고 잠수함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지금까지 일본 만화영화에서 익히 보아오던 인간형 로봇과는 달리 병기나 기계의 느낌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중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걸맞게 수동으로 엔진을 돌리고 발전기가 최고치에 다다를 때 동작하는 로봇의 모습은 와다 카오루의 웅장한 음악과 어울려 고풍스러운 멋을 보여주고 있구요. 그 외에도 ‘기신병단’의 이동수단인 중갑 기관차, 대형 프로펠러 수송기, 뇌신의 조종사 바레이오가 운전하는 클래식 자동차 소백룡 등, 작품 내내 복고주의적 향수를 일으키는 메카들은 시종일관 클래식한 멋스러움, 즉 스팀펑크 스타일의 멋을 선사합니다. 

스케일이 큰 연출 역시 이 작품의 또다른 매력입니다. ‘자이언트 로보’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나라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주인공들의 모험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 배경과 어울려 스펙타클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거기에 수상 프로펠러 비행기에서 연인을 향해 던지는 스카프 씬이라든지,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 같은 아시아 어느 도시의 한 복판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씬 등은 스팀펑크스러운 메카 액션씬 사이사이에 펼쳐지면서 감칠 맛나는 애피타이저의 역할을 해줍니다. 

그 와중에도 만화적인 연출(뇌신의 조종사 바레이오의 자동차 액션씬이나 주인공 다이시의 자전거 씬 등에서 보이는 함축과 과장의 대표적 만화적 연출)을 잃지 않음으로 인해 저 옛날의 ‘바벨 2세’나 ‘사이보그 009’ 등과 같은 모험 아니메에서 느끼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라고 할까요. 이렇게 작화와 연출은 아동용 스타일인데 비해 작품의 배경이나 이야기의 전개는 성인들도 보기에 무난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체관람가로 아주 적절한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대중적인 오락물로서의 요건을 거의 다 갖춘 셈인 것이지요.

삽입그림2© 山田正紀 / 中央公論社 / PIONEER LDC, INC

기신병단의 주역메카들. 좌측부터 뇌신(육전형), 풍신(공중형), 용신(수중형). 조종사가 탑승하면 바로 눈에 불이 들어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비사들이 각 부의 엔진을 일일이 수동으로 가동시키고 엔진예열이 끝나야지만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3. 침략행위가 슬그머니 축소되어 버린 안스러운 설정

(최고의 수준은 아니지만) 좋은 퀄리티의 작화와 음악, 멋진 메카들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 그리고 큰 스케일의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기신병단’은 한가지 점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작품이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왜곡하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입니다. 1화의 시작부터 일본의 대륙침략에 대해 격한 논쟁을 벌이는 엑스트라들의 대사는 현대 일본인들의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일까요. 아니면, 일본의 역사적 오점을 미화하는 모습일까요. 

혹자는 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한 작품이라고 이 작품을 평하기도 하지만, 제 생각은 선대의 잘못을 후대에서 잘 각색하여 이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반성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최대로 미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치스, 관동군, 에일리언과 싸우는 ‘기신병단’의 멤버의 중요인물들이 모두 일본인이라는 것은 특히나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든 지워버리고 싶은 일본인의 욕구의 발로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러나, ‘기신병단’은 분명 기존의 일본의 침략전쟁의 역사를 다룬 작품들 중에서는 꽤나 이 부분에 있어서 인정을 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침략전쟁의 주원인을 나치스로 돌리고, 일본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관동군이라는 일개 군대에 그 잘못을 모두 돌려버리는 점이라든지, 관동군의 주 활동무대가 만주, 즉 실제 침탈을 행했던 아시아 쪽이 아닌 유럽 쪽에 치중되어 있는 것, 나치스와 에일리언의 입장은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일본에 대한 언급은 빠진 체 관동군의 주요 간부인 신카이 대령과 그의 몇몇 부하들만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한계 역시 보이고 있지만 말입니다. (자기네 손으로 자기네 나라를 악으로 규정 짓기에는 아직 마음에 준비가 필요했었던 때였나 봅니다. 지금도 안되긴 하지만.) 

☞ 다음 단락은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거기에 재미있는 사실은 작품 종반에 등장하는 원폭투하에 관한 이야기 인데, 최초의 원폭은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원폭투하라는 역사적 사실은 등장시키되 이를 일본이 아닌 나치스의 영토에 위치한 에일리언 기지에 투하하려 함으로써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원폭이라는 단어 역시 사용하지 않고 폭탄의 코드네임인 ‘글래머 걸’이라는 명칭만 사용합니다. ‘글래머 걸’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코드네임이죠.)

삽입그림3© 山田正紀 / 中央公論社 / PIONEER LDC, INC

몇가지 확인하고 싶은 대사들. 그림(좌)의 '만주를 꿈의 대룩이라고 믿고...'에서 꿈이란 것은 일본의 대륙진출을 의미하는 것일까? / 그림(중앙)의 '쓸데 없는 싸움이...'이라는 대사는 한국과 중국의 침략에 대한 일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일까? '뿐이잖아'라는 대사가 몹시 거슬린다. / 마지막 그림(우)의 대사에는 아까와는 달리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들어있지만, 피해를 입힌 상대국에 대한 사죄의 마음은 찾아볼 길이 없다.

삽입그림4© 山田正紀 / 中央公論社 / PIONEER LDC, INC

또 다른 의문들. 그림(좌)의 '하얼빈에는 731 특제 자백제...'라는 대사는 731 부대의 존재와 인체실험을 인정하는 발언? / 그림(중앙)의 나치스의 동맹이었음을 시사하는 '동맹국인 일본도 그 작전에 참가해줘야 겠다.'는 작품 내에서 몇 안되는 일본의 전쟁 참여사실 인정발언. / 그림(우)의 '나치와 일본은 동맹국이다.'라는 대사 역시 좀전의 대사에 이어 다시금 2차 대전의 전범국이었음을 인정하는 대사. 작품의 종반부에 이르러 제작진도 일본의 침략전쟁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듯. 


4. 껄끄러운 역사적 배경이 깔린 흥미로운 스팀펑크 액션?

재미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역사적 상황과 애매한 일본의 태도가 엿보인 이 작품 ‘기신병단’은 우리나라에서도 몇 번씩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영어로 된 오프닝/엔딩 크레딧을 보니 수출 염두에 두었거나, 후에 수출이 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듭니다만.) 제 경우에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태평양 전쟁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런 팩션(Fact[사실]+Fiction[소설]의 합성어)류의 작품의 경우, 그 사실 왜곡 여부에 있어서 가끔 논란의 여지가 생기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태평양 전쟁 같은 근대의 역사의 경우에는 일본의 침탈을 받은 나라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가 심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겠죠.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서 중국의 대한 언급은 가급적 회피하고 있으며, 한국의 이야기는 아예 배제가 되어 있습니다.

일본 아니메의 경우는 현재 정상적인 루트가 아닌 P2P와 불법복제물을 통해 상당부분이 우리에게 접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성인이 된 분들이나,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아직 역사의식이 정립되지 않은 팬들에게는 이렇게 노골적인 왜곡이 아닌 가벼운 왜곡과 역사적 진실이 슬그머니 덮여진 작품이 오히려 안 좋은 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도 가져 봅니다. 

삽입그림5© 山田正紀 / 中央公論社 / PIONEER LDC, INC

그 외의 재미있는 것들. 그림(좌)에 등장하는 알버트 박사는 외모도 그렇고 바이얼린을 즐겨 연주하는 데다가 E=mc²라는 공식까지 쓴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이 양반은 과연 누구일까요? / 그림(중앙)의 대사  '글래머 걸은 나치스의 에일리언 기지에 투하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라는 대사. 원폭투하는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만화영화로 재현되기에도 너무 쓰라린 현실인 듯 싶다. 투하장소를 슬그머니 바꿔주시는 제작진... / 그림(우)의 일본 대신 원폭에 맞을 위기에 처한 에이리언들. 명색이 에일리언인데 따발총이 왠말인가. 보통 따발총이라면 소련제 기관단총을 말하는 것인데... 그럼 혹시, 댁들 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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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시리즈 목차>


그레이트 마징가 (1974), グレートマジンガー / Great Mazinger


ⓒ NAGAI GO·DYNAMIC Pro / TOEI Animation

<정보>

◈ 원작: 나가이 고, 다이나믹 프로
◈ 감독: 카츠마타 토모하루 外
◈ 캐릭터 디자인: 모리시타 케이스케
◈ 레이아웃: 후지카와 케이스케, 안도 토요히로 外
◈ 음악: 와타나베 츄메이
◈ 주제가 歌: 미즈키 이치로
◈ 제작: 도에이 동화, 다이나믹 프로
◈ 저작권: ⓒ NAGAI GO·DYNAMIC Pro / TOEI Animation
◈ 일자: 1974.09.08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56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헬박사의 지구정복의 야망이 마징가 Z와 카부토 코지에 의해 좌절되자 기나긴 세월 동안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기계제국 미케네 군단의 지상침공이 시작되었다. 헬박사의 기계수를 훨씬 상회하는 강력한 전투수 군단의 파워 앞에 마징가 Z가 속절없이 패배하는 찰나, 천둥과 번개에 부르며 또다른 정체불명의 마징가가 전투수 군단 앞에 그 당당한 위용을 드러낸다.

죽은 줄만 알았던 카부터 코지의 부친 카부토 겐죠 박사가 과학연구소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그레이트 마징가와 그레이트 마징가의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겐죠 박사에게 훈련을 받아온 츠루기 테츠야. 이제 마징가 Z의 뒤를 이어 압도적인 미케네 제국의 전투수 군단과의 결전을 위해 그레이트 마징가가 움직인다.


<소개>

'마징가 Z (1972)'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징가 Z의 대인기는 도에이 동화에게 새로운 히트작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고, 포피에게는 특촬물 외에 또다른 거대로봇 장르의 완구라는 히트 상품을 마련하게 해주었지만, 시리즈가 종결에 가까워질수록 마징가 Z의 뒤를 이을 새로운 인기작의 탄생은 새로운 고민거리로 다가오게 된다. 이 시기에 나가이 고는 자신이 창조한 마징가 Z와 카부토 코지에 대한 무한 애정을 선보이며, 이들을 계속 신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쓰고 싶어했지만, 이미 시장에 팔릴만큼 팔린 마징가 Z가 다시 신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포피 측으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사실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스폰서인 포피는 나가이 고에게 신 시리즈를 이어갈 새로운 마징가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나가이 고가 초반에 제안한 갓마징가는 모종의 이유로 스폰서에게 승인을 받지 못한다. 스폰서의 요청을 받아들여 나가이 고가 만든 두번째 컨셉이 바로 그레이트 마징가인 것이다. 주인공 역시 카부토 코지가 아닌 보다 더 전사로서의 이미지에 가까워진 츠루기 테츠야가 등장하고, 거의 모든 인물이 신 캐릭터로 교체된다. 마징가 시리즈의 아이콘이라 보스보롯트와 보스 3인조, 코지의 동생 카부토 시로 등이 출연하여 전 시리즈와의 연계점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그레이트 마징가의 계획은 사실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서 계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징가 Z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연장방영을 하면서 74년 9월까지 방영하게 되자 제작진은 자연스러운 시리즈의 교체를 위해 마징가 Z 시리즈 전개 중 그레이트 마징가의 새로운 적이 될 미케네 제국과 고오공 대공을 등장시켜 헬 박사에 이은 새로운 적의 등장을 시청자들에게 인식시키게 된다. 그리고, 74년 7월말에 개봉된 '마징가 Z 대 암흑대장군(1974)'를 통하여 TV 시리즈보다 앞서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의 충격적인 교체를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리즈 자체는 상당히 무난하게 마징가 Z에서 그레이트 마징가로 이전하게 된다. 이미 마징가 Z에서 상대해야할 적과 새로운 주인공, 그리고 새로운 마징가들이 등장한 셈이니 시리즈라는 느낌 자체도 강하게 느껴지고, 이로 인해 기존의 시청층을 그대로 잡아둘 수 있을 것이었다.

시리즈 자체는 속편으로서 무리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드라마적인 측면에서도 사이보그가 되어 자신이 아버지라는 것을 카부토 시로에게 숨긴 체 살아가는 카부토 겐죠 박사와, 각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테츠야나 준과 같은 캐릭터 설정은 당시 아동용 로봇 만화영화의 주인공으로서는 보기 드문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 셈이었다. 시청률도 마징가 Z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마징가 Z에 비해 56화라는 짧은 편수로 종영한 것은 시청률이나 작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스폰서의 완구 판매가 생각보다 시원치 않았던 것에 있었다. 74년도에 그레이트 마징가의 완구매출은 4위에 그쳤는데, 이시기 마징가 Z의 매출은 1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다음해에는 5위권 밖으로 떨어지게 된다. 예상 외의 완구부진은 결국 제작진에게 또다른 새로운 시리즈의 구상이라는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며, 동시에 마징가라는 브랜드의 재고를 의미했다. 즉, 마징가 시리즈가 아닌 보다 더 새로운 시리즈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레이트 마징가 대 겟타로봇 (1975)


ⓒ NAGAI GO·DYNAMIC Pro / TOEI Animation


<정보>

◈ 감독: 아케히 마사유키
◈ 원작: 나가이 고, 이시카와 켄
◈ 각본: 후지카와 케이스케
◈ 작화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
◈ 음악: 와타나베 츄메이, 키쿠치 슌스케
◈ 제작: 도에이 동화
◈ 저작권: ⓒ NAGAI GO·ISHIKAWA KEN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 일자: 1975.03.21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 / 전연령가 (G)


<소개>

나가이 고의 후배이자 다이나믹 프로에 몸을 담고 있는 이시카와 켄의 원작의 또다른 히트 로봇물 겟타 로보가 마침내 그레이트 마징가와 조우했다. 나가이 고의 자식들인 마징가들만의 대결에서 벗어나 비록 같은 다이나믹 프로의 형제지간이지만 이런 형태의 크로스오버는 분명 당시의 어린이 팬들에게는 크나큰 기대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러한 타장르 간의 로봇을 크로스오버로 등장시키는 전개는 후일 반프레스토의 빅히트 게임 슈퍼로봇대전의 모티브가 된다고도 할 수 있을 듯.


그레이트 마징가 대 겟타로봇 G (1975)


ⓒ NAGAI GO·DYNAMIC Pro / TOEI Animation


<정보>

◈ 감독: 아케히 마사유키
◈ 원작: 나가이 고, 이시카와 켄
◈ 각본: 후지카와 케이스케
◈ 작화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
◈ 음악: 와타나베 츄메이, 키쿠치 슌스케
◈ 제작: 도에이 동화
◈ 저작권: ⓒ NAGAI GO·ISHIKAWA KEN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 일자: 1975.07.26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 / 전연령가 (G)


<소개>

그레이트 마징가 대 겟타로보의 히트로 인해 당시 각 작품의 판권을 가지고 있던 강담사와 소학관은 1회성으로 한정했던 양자간의 크로스오버를 다시금 이 작품으로 재현하기에 이르른다.([5] 참조) 예상치 못한 적의 공격으로 대파되는 겟타로보를 대신하여 겟타로보 G로 교체되는 이야기 전개는 이제 도에이 로봇물의 어떤 스타일로 자리잡은 듯 싶다.

이런 식의 주역 로봇 교체는 후일 도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성전사 단바인(1983)', '중전기 엘가임(1984)', '기동전사 Z 건담(1985)' 등에서 유사한 형태로 계승되는데, 전자(도에이 동화의 슈퍼로봇물의 주역로봇 교체)의 형태가 시청률이나 흥행성적을 고려한 기획의도였다면, 후자(리얼로봇물에서의 주역메카 교체)는 스폰서의 프라모델 판매라는 새로운 마케팅 기획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 사이트>

[1] Great Mazinger (TV), Anime News Network
[2] グレートマジンガー, Wikipedia Japan
[3] 거대로봇 연구 - 그레이트 마징가 편 - by 백금기사, 백금기사의 1호 연구소
[4] 마징가 Z는 이렇게 탄생했다 by 잠본이, 잠보니스틱스
[5] 마징가 Z 극장판 시리즈 1973-1976 by 캅셀, 캡슐☺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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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소녀 하이디 (1974), アルプスの少女ハイジ / Heidi, Girl of the Alps


알프스 소녀 하이디 DVD 커버

ⓒ ZUIYO

<정보>

◈ 원작: 요한나 슈피리
◈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 시리즈 구성: 마츠키 이사오
◈ 스토리보드: 타카하타 이사오, 오쿠다 세이지 , 쿠로다 요시오, 토미노 요시유키
◈ 캐릭터 디자인: 코타베 요이치
◈ 작화감독: 모리 야스지, 코타베 요이치
◈ 미술감독: 이오카 마사히로
◈ 음악: 와타나베 타케오
◈ 장면설계 및 레이아웃: 미야자키 하야오
◈ 제작: 즈이요 영상
◈ 저작권: ⓒ ZUIYO
◈ 방영일자: 1974.01.06
◈ 장르: 드라마, 세계명작
◈ 구분/등급: TVA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고모 밑에서 자란 소녀 하이디, 비록 고아지만 밝고 상냥하고 구김살 없는 하이디는 고모의 생활형편이 여의치 않아 알프스 산 중턱의 친할아버지에게로 보내지게 된다. 친할아버지지만 자식들과의 왕래를 끊고 살았던 하이디의 친할아버지는 손녀인 하이디를 반가와 하기는 커녕 무뚝뚝하게 대한다.

외톨이로 자란 하이디와 외톨이로 살아온 할아버지의 알프스 산 아래 생활은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소개>

일본 아니메사에 '세계명작 극장'이라 불리는 장르를 정립시킨 명실공히 세계명작 극장의 1번 타자(실제로 하이디는 칼피스 어린이 극장이라는 명칭으로 방영되었으나, 후일 많은 팬들이 세계명작 극장 시리즈와 동일시 하게 된다. [4] 참조)으로, '플란다스의 개(1975)'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세계명작 극장 시리즈에서 사랑 받아온 스테디 셀러이자 베스트 셀러. 타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황금 콤비가 힘을 합친 작품으로, 코타베 요이치, 모리 야스지, 쿠로다 요시오와 같은 도에이 A 스튜디오 출신의 베테랑 애니메이터들이 대거 참여하여 힘을 실어주었다. 특히, 이 스탭진들은 도에이 동화에서 이전까지 세계명작을 원작으로 한 대작 극장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해왔으며, 도에이 동화가 60년대 후반부터 일본내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에 매진하자 이에 반대하여 도에이를 나온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위 당대의 무시 프로덕션 출신 애니메이터들에 비견될 만큼의 엄청난 인재들의 집합이었던 셈이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주축이 되어 설립된 즈이요 영상은 이 작품의 기획을 위하여 핵심 스탭들인 코타베 요이치, 미야자키 하야오 등과 스위스의 알프스 등을 방문하는 아니메 최초의 현지 답사를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남다른 시도와 노력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데, 알프스의 빼어난 정경과 유럽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과 사람들의 모습은 흡사 외국의 만화영화인 것 마냥 이국적이고 신선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도에이가 이전에 선보였던, 그리고 하이디의 스탭들이 참여해 왔던 A 스튜디오의 극장 애니메이션과는 많이 다른 형태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전의 작품보다 훨씬 덜 일본적이지만 그렇다고 유럽이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도 뭔가 다른, 색다른 스타일의 서양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실제, 이 작품이 일본의 작품이라는 것을 못믿었던 외국인들도 꽤 많았다고 한다. 글쓴이 역시도 어렸을 적에는 세계 명작극장이 유럽 만화영화라고 생각하고 자랐다.)

하이디에서 보여진 이러한 스타일 - 혹자는 무국적 스타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 은 후일 세계명작 극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으며, 동시에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스타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세계에까지 이어지는 일본 아니메 사상 가장 특별하고 유니크한 스타일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갈등과 이를 통해 깨우치게 되는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 그리고 휴머니즘적인 이야기는 한참 슈퍼로봇의 열풍이 휘몰아치던 당시의 아니메 시류와는 전혀 다른 편안함을 주었으며, 동시에 감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요즘 흔히들 일컬어 지는 '치유계 애니'의 진정한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작품. 하이디로 대성공을 거둔 즈이요 영상은 얼마 안가 닛폰 애니메이션과 합병되면서 명실공히 세계 명작극장의 본격적인 태동을 알리기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에는 기동전사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가 다수의 콘티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한참 프리랜서로서, 초스피드 콘티맨(퀄리티는...)으로 이름을 날리던 당시였다.

하이디 메모리얼 DVD 박스 커버

ⓒ ZUIYO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DVD 메모리얼 박스는 현재 한국에도 발매가 되었다. 예스24 단독판매로 불행히도 한국어 더빙은 지원되지 않아 그 옛날 한국 성우들의 정겨운 목소리를 접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참고 사이트>

[1] Alps no Shojo Heidi (TV), Anime News Network
[2] アルプスの少女ハイジ_(アニメ), Wikipedia Japan
[3] Heidi, Girl of the Alps, Wikipedia
[4]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アルプスの少女ハイジ,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5] 1년짜리 감동의 릴레이 '세계명작극장', by 송락현, CAPSULE 블로그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ZUIYO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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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작성했던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쿠로미짱 (2001), 웃음 속에 담겨진 애니메이터들의 꿈과 애환'을 티스토리 블로그로 옮기면서 내용과 구성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쿠로미짱 1편 DVD 표지©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스탭>

◈ 감독/스토리보드: 다이치 아키타로
◈ 제작: 유메타 컴퍼니


<시놉시스>

고교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 '루이몬드 3세'에 감명 받아 애니메이터의 길로 들어서 오오구로 미키코(이하 쿠로미). 애니메이션 학교를 졸업하고 소원하던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제작부 직원으로 입사한다. 두근거리는 첫출근, 회사에는 아무도 안보이고... 갑자기 나타난 선임자는 현재 방송예정인 '타임 져니스' 2화의 원화작업이 거의 진행이 안되어 펑크 위기에 처해 있다는 다급한 말을 남긴 체 병원으로 실려간다. 

이제 제작부원은 쿠로미 하나뿐... 보이지도 않는 애니메이터들과 코 앞까지 닥친 마감시간... 쿠로미는 과연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제작해낼 수 있을 것인가.


1. 개그물의 대가, 다이치 아키타로가 만들다!

'원츄!'라는 초 유행어를 탄생시킨 엽기 아니메 '멋지다 마사루(1998)'. 작품을 보신 분은 없으시더라도 인터넷 상에서 덧글로 한번쯤 '원츄'를 써보신 분들은 많이 있으실 겁니다. 우스다 쿄스케의 동명만화인 '멋지다 마사루'를 멋지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냈던 희대(?)의 연출가는 바로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이라는 인물인데요. 이번에 리뷰할 작품은 바로 이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의 OVA 아니메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쿠로미짱(이하 쿠로미짱)'이 되겠습니다.

다이치 아키타로, 일본 아니메 감독 중에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구사하는 감독이 있을까요.(사실 꽤 있기는 한데, 강조 차원에서...) '리리카 SOS(1995)'과 같은 미소녀 변신물에서부터 '멋지다 마사루(1998)', '괴짜가족(1998)'과 같은 초엽기 개그물을 거쳐 '지금 거기에 있는 나(1999)'와 같은 진지하고 어두운 작품을 넘어 '후르츠 바스켓(2001)'과 같은 순정 멜로물까지. 그가 연출을 맡은 장르는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연출을 맡은 작품들을 모두 자신의 독특한 연출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역량은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아키타로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메이저 아니메 감독은 아닙니다만, 그만의 특색이자 장기인 탁월한 개그 연출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순정물, 시대물에서부터 진지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작품에 걸맞는 연출을 해낸다는 점에서 저는 그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대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급의 작품을 제작하는 감독이라기 보다는 저예산의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는 작품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감독이라고나 할까요.

이 작품 '쿠로미짱' 역시 그런 아키타로 감독의 역량을 십분 살려 그의 전매특허인 정신산란하면서도 변화무쌍한 개그를 작품 전반에 걸친 메인 소스로 곁들이면서 그 내용물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드라마로 조리해냄으로써,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보기드문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포복절도할 개그와 잔잔한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이러한 그의 연출은 같은 해 제작된 순정물 '후르츠 바스켓'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2. 개그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다채롭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이야기

숨쉴 틈 없이 변화하는 작화(물론 작화붕괴가 아닙니다.)와 정신 사납도록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작품의 분위기를 갑자기 끌어올렸다가 느닷없이 내리깔았다 하면서 시종일관 시청자들의 정신을 어지럽게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지러움이 어지러움에 끝나지 않고 폭소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 어지러움이 감독의 연출방식으로 일정한 스타일과 리듬감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진지한 씬에서는 진지한 극화체로 묘사되다가 순식간에 개그적인 상황과 엽기스러운 캐릭터로 변모하는 장면전환과 작화변신은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말처럼 시시각각 자유자재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변화하는 것에 그치지고 않고 그 순간순간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해 줍니다.

쿠로미짱 캡쳐사진 1©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 캐릭터들의 얼굴. 아키타로 감독에게 걸리면 제 아무리 초절정 미녀라도 엽기괴물로 성형된다.

거기에 제각각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점 또한 이 작품을 왁자지껄하면서도 이야기거리가 많은 작품으로 만들어 줍니다. 신입사원으로 세상의 찌든 때가 덜 묻은 순수하고 의욕이 넘치는 주인공 쿠로미, 업계의 생리에 길들여져 관조적이었으나 쿠로미의 생기에 서서히 동화되어가는 작화감독 하마코(엄청난 애연가), 그리고 각각의 독특한 개성들로 똘똘 뭉친 여러 원화맨들까지... 시종일관 이 시끄럽고 부조화스러운 캐릭터들의 일상과 에피소드는 보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콘서트처럼 펼쳐집니다.

'쿠로미짱'이 만화영화를 제작하는 애니메이터들의 생활상을 얘기하는지라, 작품에 등장하는 제작사 '스튜디오 쁘띠(petit. '작은, 소규모의'란 뜻으로 이 스튜디오가 영세하고 작은 스튜디오라는 것을 암시)'의 작품들도 중간중간 화면에 펼쳐집니다. 만화영화 내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의 여러 만화영화들(루이몬드 3세, 타임 쟈니스 외에 여러가지 작품들)이 등장하는 방식은 위에서 말한 개성 넘치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함께 작품을 더욱 더 다양한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 줍니다. 마치 백화점 같이 말입니다.

쿠로미짱 캡쳐사진 2©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작품 속에서 스튜디오 쁘띠가 제작하는 다양한 애니메이션들. 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다.


3. 웃음이라는 조미료로 간을 맞춘 애니메이터들의 생활상

'쿠로미짱'이 주는 웃음 외의 또다른 맛은 우리는 그저 재미있게 보기만 할 뿐인 만화영화의 제작현장과 그 속에서 울고 웃는애니메이터들의 꿈과 애환을 보여주는 것으로, 작품의 개그스러움에 묻혀 그 주제의식이 사라지지 우를 범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훌륭하게 주제의식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마감에 쫓겨 작화감독의 수정 없이 원화가 바로 동화로 넘어가는 모습은, 흔히들 우리가 '작붕(작화붕괴)'이라고 일컫는 만화영화의 제작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전 제작이 아닌 매주 다음 주 분량을 촬영하여 숨가쁘게 편집하기에 바쁜 한국의 드라마 제작현실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스튜디오의 매출을 위해 스탭들이 한꺼번에 다량의 작품들을 제작함으로써 일어나는 작품의 질적 저하라든지 스탭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방송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작품 자체의 질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제작진의 현실적 결정은 작품의 개그스러움과는 별개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쿠로미짱 캡쳐사진 3©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작품속에 등장하는 애니 '루이몬드 3세'의 방영 비디오(좌)/리뉴얼 비디오(우). 이처럼 본방 때는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엉망으로 제작했다가 후에 비디오나 DVD 출시 때 다시 리뉴얼하여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흔히들 '데쓰 마치(죽음의 행진. 소프트웨어 공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드워드 요우든이 2003년에 쓴 책의 제목으로, 실패의 길로 접어든 프로젝트의 모습이 마치 죽음의 길로 행진하는 모습과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용어.)'라 불리는 이러한 잘못된 프로젝트의 운영과 프로젝트에 속한 구성원들의 고난은 바로 이 '쿠로미 짱'에서 애니메이터들이 겪는 말도 안되는 제작 스케줄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사회생활을 한 분들에게 있어 이 작품은 상당한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요소가 다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고됨과 괴로움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이 느끼는 좌절과 비애가 자신이 겪었던 괴로웠던 업무와 겹쳐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쿠로미 짱'은 성인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꿈을 꺾지 않고 도전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작품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 속으로 그들의 꿈이 실현되기를 응원하고, 그들의 꿈이 성취됨과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줌으로써 만화영화, 아니 모든 문화 컨텐츠의 본질적인 목표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감동, 그리고 마음의 정화'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문제해결과 목표달성의 이야기는 결국, 작품 내에서의 에피소드 하나에만 해당될 뿐, 그 뒤에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더 남아있음을 보여줍니다. OVA 1화에서는 방송펑크 직전의 '타임 져니스' 2화를 어떻게 제작하는 것이냐였고 결국 아슬아슬하게 제작을 완료하지만, 다음 화의 제작 스케줄이 다시 밀어닥치는 현실로 끝을 맺습니다. OVA 2화 역시 동시에 3개의 작품을 제작해야 하는 위기상황이 주어지고, 이 위기는 어떻게든 해결해 내지만 여전히 같은 스탭진으로 동시에 3개의 작품을 제작해야한다는 현실을 남겨둔체 끝나게 됩니다.

쿠로미짱 캡쳐사진 4©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OVA 2화에서 동시에 세 작품의 진행을 위해 작화감독의 수정없이 원화맨들이 대충 그린 그림을 그대로 동화파트로 넘어가는 모습이 나온다. 동화파트는 일반적으로 외주를 주는데 예전에는 한국, 요즘은 중국에 많이 의뢰를 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위기상황을 타개하되, 절대 이상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고 현실을 계속 직시한 체 작품을 끝맺는 것은 자칫 이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해피 엔딩으로만 끝나지 않게 하는 제동 장치와 같은 역할을 해주어, '아직도 만화영화의 제작에는 이러한 난관들이 많이 남아 있다.'라는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선사해 주는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라고 한다면, '쿠로미 짱'은 그러한 명제를 충실하게 구현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블록버스터만이 재미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

'쿠로미짱'은 제가 보아온 아니메 중 그 임팩트가 강했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특히나, '원하던 꿈과 목표는 반드시 달콤하지만은 않고 쓴 맛도 갖고 있으며, 그러한 쓴 맛(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자신에게 채찍을 한다는 점'에서 있어서 이 작품에서 등장한 애니메이터라는 직업 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 개인사업자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큰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나 사회초년생들과 매너리즘에 빠진 중견 직장인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쿠로미짱 캡쳐사진 5©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열심히 일하는 스튜디오 스텝들의 모습들. 무언가를 위해 정진하는 모습은 직업이 무엇이냐를 떠나서 항상 멋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작품 자체의 주제의식과는 별개로, '저예산과 그리 뛰어나지 않은 작화, 현실적이고 평범한 일상의 얘기로도 이렇게 멋지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스타 플레이어는 없어도 탄탄한 조직력과 치밀한 전략/전술,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1류의 팀을 누르는 2류의 팀이 있듯이 말이죠. 

비록 2화의 짧은 OVA 였지만 쿠로미 짱과의 만남은 몹시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참에 쿠로미 짱을 만나고 오실런지요. (아차, 국내 정발된 DVD가 없는지라 그녀와의 만남이 그다지 쉽지는 않을 듯 하군요, 물론 정식 루트로 접한다고 했을 때만.)

쿠로미짱 캡쳐사진 6© 2001 Daichi Akitaroh,Watanabe Hajime,Yumeta Company

뭐라고라고라~ 우리 DVD가 한국에 정발되지 못했다고!


<참고 사이트>

[1] Animation Runner Kuromi (OAV), Anime News Network
[2] Animation Runner Kuromi,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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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gai Go/Dynamic Pro·Toei Animation

 

큐티 하니 (1973), キューティーハニー / Cuty Honey


<정보>

◈ 원작: 나가이 고, 다이나믹 프로
◈ 연출: 카츠마타 토모하루, 모리시타 고조, 시타라 히로시 外
◈ 각본: 쯔지 마사키, 타카쿠 스스무, 후지카와 케이스케
◈ 캐릭터 디자인: 아라키 신고
◈ 작화감독: 아라키 신고, 코마츠바라 카즈오, 다카하시 신야 外
◈ 미술디자인: 우라타 마타지
◈ 음악/주제가: 와타나베 타케오 / 마에카와 요코 (歌)
◈ 제작: 도에이 동화
◈ 저작권: ⓒ Nagai Go/Dynamic Pro·Toei Animation
◈ 일자: 1973.10.13
◈ 장르: 변신마법소녀, 액션
◈ 구분/등급: TVA (25화) /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 (PG)


<시놉시스>

시스터 질이 이끄는 정체불명의 조직 팬더 크로(원작명칭: 판사 크로), 그들이 노리는 것은 키사라기 박사가 발명한 공중원소 고정장치(‘Re:큐티하니’에서는 I 시스템)로, 엄청난 파워를 갖고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꿈의 장치이다. 키사라기 박사는 팬더 크로에 의해 죽기 전 공중원소 고정장치를 자신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소녀 키사라기 하니에게 장착을 시키고 숨을 거둔다. 

키사라기 박사의 원수를 갚고 팬더 크로의 야망을 분쇄하기 위해 키사라기 하니는 사랑의 전사 큐티 하니로 변신하는데...

 
<소개>

나가이 고가 '주간 소년 챔피온'에 1973년 10월부터 74년 1월까지 연재한 단행본 2권 분량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제작된 TV 애니메이션. 나가이 고의 전작 '아바시리 일족의 비밀'에 이은 또 하나의 문제작으로, 변신소녀에 폭력(나가이 고 원작의 코믹스들은 대게 액션보다는 폭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측면이 있다.)과 에로티시즘을 결부한 작품이다. 2권 분량의 코믹스보다는 거의 동시에 전개된 TV 시리즈로 인해 이름이 더 알려진 작품으로, 당시 어느 정도 고정장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마법소녀물을 남성적인 관점에서 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코믹스의 폭력과 에로티시즘은 상당히 순화되어 히어로물적인 성격으로 변모했는데, 여자 캐릭터가 단독 주인공으로 액션장르에 등장한 아니메는 큐티 하니가 최초라 할 수 있다.  

그 표현순위가 TV 시리즈를 위해 굉장히 순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하니가 전라로 몸을 들어내었다가 다시 변신하는 과정(물론, 중요부위는 갖가지 사물과 배경을 동원하여 가렸다)은 당시의 일본 TV에서는 충격적인 연출이었다. 원작의 스타일은 굉장히 하드한 폭력물이었지만, TV 시리즈는 유쾌하고 코믹한 액션 활극으로 변모하면서 인기 역시 기대이상이었다. 평균 시청률 8.8%, 최대시청률 10.5%를 기록. ([1] 참조)

다만, 당시로서는 매우 선정적인, 은근하게 에로티시즘을 표방하는 작품의 성격은 시청자들(특히 부모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게 되고 3쿨 정도의 분량으로 예정되어있던 시리즈는 시청률 부진이 아닌, 시청자 항의로 조기 종영하게 된다. 와타나베 타케오의 주제가 '큐티 하니'는 재치가 넘치는 오프닝 영상과 함께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 이후로도 수없이 리메이크 되면서 시대를 뛰어넘어 꾸준한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가 된다. 

ⓒ Nagai Go/Dynamic Pro·秋田書店

나가이 고의 원작 코믹스 표지


신 큐티 하니 (1994) 


ⓒ Nagai Go/Dynamic Pro·Toei Animation

<정보>

◈ 감독: 나가오카 야스치카
◈ 각본: 시즈야 이사오, 清水東, 植村更
◈ 캐릭터 원안: 나가이 고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호리우치 오사무
◈ 메카닉 디자인: 아베 쿠니히로, 키시모토 세이지
◈ 미술감독: 사카모토 노부토 外
◈ 오프닝 영상 원화: 와타나베 케이스케, 요시다 토오루, 요시마츠 타카히로, 이치하라 미츠루
◈ 음악/주제가: 토야마 카즈히코 / les 5-4-3-2-1 (歌)
◈ 제작: 다이나믹 프로, 도에이 비디오, 스튜디오 주니오
◈ 저작권: ⓒ Nagai Go/Dynamic Pro·Toei Animation
◈ 일자: 1994.03.21
◈ 장르: 변신마법소녀, 액션
◈ 구분/등급: OVA (8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 (R)


<소개>

원 TV 시리즈 이후 무려 20여년 만에 리메이크 된 전 8부작의 OVA. OVA라는 매체적 특성에 힘입은 데다가 캐릭터 원안에 나가이 고가 참여하면서 4편의 큐티 하니 아니메 중에서는 가장 원작과 분위기가 가까운 큐티 하니로 태어났다. 특히, 문제의 변신장면에서는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며, 그 덕분인지 응큼남(?)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기존의 시리즈로부터 3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원작의 캐릭터들과 나가이 고 월드의 캐릭터들이 카메오로 다수 등장하는 등, 90년대 초반의 복고 분위기에 편승하여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기대 이상의 인기를 끌자 제작사 측에서는 4부로 예정되어 있던 OVA를 12화로 연장할 것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 결과 4부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가 일단락 되고 5화부터는 별개의 에피소드가 진행된다. 하지만, 5화부터 인기가 급락하고 8부까지 제작이 진행된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제작사인 스튜디오 주니오마저 도산해버리면서 신 시리즈는 8화에서 그 시동을 멈추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원작과 가까우면서 가장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되어버린 셈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오프닝 영상은 '천원돌파 그렌라간(2007)', '므네모슈네의 딸들(2008)'에서 작화감독을 맡았던 이시하라 미츠루, '푸른유성 SPT 레이즈너(1985)', '풀메탈패닉(2002)', '기동전사 건담 SEED(2002)' 등에서 메카 작화감독으로 활약한 요시다 토오루, '각오의 스스메(1996)', '성계의 문장' 시리즈에서 캐릭터 디자인으로 활약한 와타나베 케이스케, '초수기신 단쿠가(1985)', '트라이건(1998)'. '사이버 포뮬러' 시리즈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요시마츠 타카히로 등이 원화를 맡아 원작의 스타일과 신작의 세련된 작화가 어울린 육감적이고 스피디한 영상미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큐티 하니 시리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오프닝)


큐티 하니 F (1997) 


ⓒ Dynamic Pro·Iisaka Yukako·Toei Animation

<정보>

◈ 감독: 사사키 노리요
◈ 시리즈 구성: 야마구치 료타
◈ 캐릭터 디자인: 시모가사 미호
◈ 작화감독: 스기모토 미치아키, 키타노 요시히로, 타카시 시게루, 호소야마 마사키 外
◈ 미술디자인: 鹿野良行 外
◈ 음악/주제가: 사하시 토시히코 / SALIA (歌)
◈ 제작: 도에이 동화, TV 아사히
◈ 저작권: ⓒ Dynamic Pro·Iisaka Yukako·Toei Animation
◈ 일자: 1997.02.15
◈ 장르: 변신마법소녀, 순정, 액션
◈ 구분/등급: TVA (39화) / 초등생이상 관람가 (PG)


<소개>

OVA와 비슷한 시기에 리메이크 된 TV 시리즈는 4개의 큐티 하니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원작과 스타일이 다른 장르이다. 90년대에 인기를 끌고 있던 '세일러 문' 시리즈 스타일의 변신소녀 컨셉으로 제작되었는데, 원 시리즈나 세일러 문이나 모두 싸우는 변신소녀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전자가 폭력과 에로티시즘에 기반한 남성적 작품이었다면, 세일러 문류의 시리즈는 순정 마법소녀물에 더 가까운, 여성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시리즈는 속된 말로 상당히 말랑말랑한 전개가 되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연재를 시작했으며, TV 시리즈에 모티브가 된 이시키 유카코의 동명 코믹스가 소녀만화잡지에 연재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전개라고 할 수 있다. 하니가 연모하는 꽃미남 캐릭터들부터 다채로운 미형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90년대의 변신소녀물의 컨셉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줄거리 역시 원작과는 전혀 다른 전개로 일종의 스핀오프격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의 트렌드와 잘맞는 스타일로 원작을 모르는 저연령대의 신규팬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었으며,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하니가 전사 형태의 변신 외에도 다채로운 직업의 여성들로 변신하는 모습은 80년대의 변신소녀물의 명작 '요술공주 밍키(1982)'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무지개요정 하니'이라는 기막한(?) 제목으로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다. TV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97년 3월에는 시리즈 최초로 극장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74년 큐티 하니도 토에이 만화축제를 맞이하여 극장에서 상영했으나 별도의 극장판이 아닌 TV 시리즈 12화를 재방영한 것이었다.)


Re 큐티 하니 (2004) 


ⓒ Laterna·Toei Video·Gainax·Towani


<정보>

◈ 총감독: 안노 히데아키 
◈ 감독: 이마이시 히로유키 (1화), 이토 나오유키 (2화), 마사유키 (3화)
◈ 각본: 나카시마 카즈키, 타키 코이치, 카사이 타케오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히라마츠 타다시
◈ 키 애니메이션: 이마이시 히로유키, 히라마츠 타다시, 하마수 히데키
◈ 음악/주제가: 우에다 스스무 / 코다 쿠미
◈ 제작: 가이낙스, 도에이 동화
◈ 저작권: ⓒ Laterna·Toei Video·Gainax·Towani
◈ 일자: 2004.07.25
◈ 장르: 변신마법소녀, 액션
◈ 구분/등급: OVA (3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 (R)


<소개>

21세기 들어 새롭게 복귀한 큐티하니는 공교롭게도 결혼 후 오랜만에 아니메 업계로 돌아온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복귀작이 되었다. 안노 감독은 다소 과격하고 선정적인 이 작품을 복귀작으로 고르면서 한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실사영화로 큐티 하니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라비아 아이돌 출신의 사토 에리코를 기용하고, 애니메이션적 촬영기법을 실사영화에 적용한 실험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안노 감독다운 센스를 발휘했다. 아니메는 실사영화로부터 2개월 정도 텀을 두고 OVA로 출시되었는데, 안노 감독이 실사영화 쪽에 비중을 두면서 아니메는 총감독으로 전체를 조율하고 실제 연출은 이마이시 히로유키(천원돌파 그렌라간 감독)와 같은 가이낙스의 차세대 연출진에게 바통을 넘겼다. 오프닝은 실사영화와 동일한 오프닝을 사용하였다.

가이낙스의 작품답게 아니메는 시종일관 스피디하고 다이나믹하며 만화적인 연출기법이 볼거리이다. 나가이 고의 자극적인 폭력성과 가학적 에로티시즘은 거세했으되, 다이나믹한 카메라워크와 가이낙스 특유의 오타쿠적 취향이 가미된 큐티(?)한 에로티시즘과 복고주의가 이를 대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덕분에 느낌은 완전히 가이낙스의 스타일이었지만 전체적인 광기는 왠지 모르게 원작의 느낌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안타깝게도 실사영화의 흥행실패와 함께 OVA 역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작품이 되어버렸지만, 그 애니메이션적 완성도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으며, Re 큐티 하니의 다이나믹한 작화 스타일, 즉 작고한 일본 아니메 불세출의 작화가 카나다 요시노리의 스타일을 이어받은 '카나다 流'(일본은 유파나 어떤 스타일을 총칭할 때 사무라이들의 검술유파를 칭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류'라는 단어를 종종쓰곤 한다)는 '천원돌파 그렌라간(2007)' 등에서 계속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사영화와 OVA 아니메에 모두 사용된 코다 쿠미의 주제가 '큐티 하니'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 그녀의 재기를 다지는 발판이 되었으며, 한국의 아유미가 다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한가지 더 특이할만한 일은 실사영화에서 원작자인 나가이 고 선생이 카메오로 출연했다는 것.

ⓒ GAINAX·WoWow

OVA 아니메보다 앞서 제작된 안노 히데아키의 큐티하니 실사판

ⓒ NAGAI GO·ブロ―ドマ―クス·デイ―ブサイド·ハニ―製作委員會

2007년에는 25화 TV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참고 사이트>

[1] キューティーハニー, Wikipedia Japan
[2] Cutie Honey, Wikipedia
[3] 큐티 하니, 위키피디아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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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BONES·Project EUREKA Movie / ⓒ 미라지엔터테인먼트 (Korean Edition)


2005년도 TV 시리즈로 방영되었던 BONES의 '교향시편 에우레카 7'의 극장판 '교향시편 에우레카 7: 포켓이 무지개로 가득 (2009)' DVD가 한국에도 출시예정이라고 합니다. 출시예정일은 4월 20일이구요. 인터파크나 YES24 등은 현재 예약판매를 받고 있네요.

TV 시리즈가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상황에서 극장판만 발매하는지라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이번 극장판 DVD 발매가 TV 시리즈 발매로도 이어졌으면 하는데... 작품의 성격상 국내에 많은 어필이 될지 어떨지는 두고봐야 겠네요.

DVD 제작사는 미라지 엔터테인먼트로 카라스 한국판 DVD나 공각기동대 트릴로지 박스셑 등을 제작한 업체입니다. 앞선 두 작품들이 국내 DVD로서는 꽤 괜찮은 패키징을 보여주었기에 이번 에우레카 극장판 DVD도 패키지 퀄리티는 꽤 괜찮을 듯 싶습니다.

라제폰부터 이어져온 본즈스러움(부담스러운 시리어스함과 십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난해함 정도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싶은데)을 십분 간직한 SF 로봇물이니만큼 조금 높은 연령대의 청소년들에게 어필할 작품입니다. 전체관람가라고는 했지만, 저연령대의 아이들이 흥미를 끌기에는 내러티브가 좀 길고 전개가 느린 편. 단 본즈의 일류 작화진의 힘 덕분에 보여줄 곳에서는 확실하게 보여주는 (아, 물론 베드씬이 아니라 액션씬이.... -0-)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번 DVD 국내 출시를 맞이하여 저도 오랜 만에 렌턴과 에우레카의 또다른 모험 이야기 속으로 다녀올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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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P・W/ヒーローマン製作委員会 ・テレビ東京

미국 히어로 만화계의 대부 스탠 리와 일본을 대표하는 투철한 장인정신의 아니메 제작사 본즈가 힘을 합친 기대작이 올 4월 TV 도쿄를 통해 방영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목은 '히어로맨'.

 

아시다시피 '스파이더 맨', '판타스틱 4', '엑스맨', '아이언 맨', '헐크', '데어데빌'과 같은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을 음으로 양으로 탄생시킨, 작가이자, 편집자이며 프로듀서인 동시에 배우(영화화된 몇몇 그의 작품에 카메오로 등장하신 전력이 있으심. 아마 이번 아니메에서도 캐릭터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시는 듯)이기도 한 마블코믹스의 명예회장 스탠 리가 무려 원작을 담당한 이 작품은, 그의 장기인 히어로 장르를 기본으로 일본 아니메의 스타일이 퓨전을 이룬 새로운 히어로물이 될 듯 합니다.

 

감독인 난바 히토시는 '달려라! 부메랑(1989)', '보노보노(1995)' 같은 아동물부터 '정글의 왕자 타짱(1993)' 같은 엽기코믹물과 '그래플러 바키(2001)'과 같은 격투 액션물까지 연출한 베테랑이며, 캐릭터 디자인은 '톱을 노려라! 2'에서 메카닉 디자인/게스트 캐릭터 디자인으로 참여한 이래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 '천원돌파 그렌라간', '정령의 수호자', '에반게리온: 서' 등등에 참여한 코야마 시게토가, 크리쳐 디자인은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라제폰', '울프스레인',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 등 다수의 본즈 작품에서 디자인을 담당한 타케바 신고가, 미술 디자인/감독은 '므네모쉬네의 딸들'의 유미코 콘도가 맡았습니다. 카와모토 토시히로가 치프 애니메이터로 뒤를 받쳐주기에 일단 비주얼 쪽에서는 믿음이 가는군요. (다만, 히어로맨의 옆구리에 수놓아진 별모양의 장식과 파란색 띄 등에서 성조기를 연상케 하는 전형적 미국식 디자인이 약간은 거슬리는 감이 있긴 합니다만. 원작자인 스탠 리의 취향이려니 하고 조금은 참아줘야할 듯.)

 

과연, 미국식 히어로의 아버지인 스탠 리의 아이디어가 정통 스타일의 아니메를 대표하는 제작사 중 하나인 본즈를 만나서 어떤 식으로 탄생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또한, '망념의 잠드(2008)' 이후로 전통적인 일본식 로봇물에서 벗어나 조금식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는 본즈의 SF 물에 대한 접근 방법이 이번 '히어로맨'을 통해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또한 기대되는 부분이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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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TSU · SUNRISE (captured from Official Website)


마침내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와 극장을 통해 공개된 기동전사 건담 유니콘(이하 U.C) 1화.
 
(네, 사실 이 U.C 1화에 대한 감상기가 많은 블로그나 카페에 소개되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이 정식적인 루트가 아닌 경로를 통해 감상을 했다는 얘기겠지요. 될 수 있으면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작품의 감상기는 자제를 하려고 했는데, 간만에 꽤 흥미진진하게 감상했던지라 짤막하게나마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그만...)
 
일단 30주년을 터닝 포인트로 삼아 새롭게 시작된 우주세기의 건담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말해서,
 
많은 부분에서 합격점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비주얼 부분에서는 거의 A를 줘도 아깝지 않을 합격점이었습니다. 야스히코 요시카즈 선생 특유의 필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나름 잘 살려낸 캐릭터 디자인은 '카드캡처 체리'와 같은 클램프의 작품들에서부터 '위치헌터 로빈'과 같은 극화적인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보여주고 있는 다카하시 쿠미코의 작품인데요. 특히, 위치헌터 로빈에서 보여주었던, 리얼한 드라마풍에 어울리는 극화적인 캐릭터 라인을 베이스로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스타일을 잘 적응시킨 모습입니다. 6화 분량의 OVA인지라 일반 TV 시리즈에 비해서는 확실히 높은 퀄리티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듯 합니다. 동화적인 측면에서도 평균 이상의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구요.
 
이러한 작화적, 동화적 완성도는 비단 캐릭터 뿐만 아니라, 건담 아니메에서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MS 전투에서도 돋보입니다. MS의 전투를 360도 전방위 콕핏트 내에서의 시점과 우주공간의 관찰자 시점으로 번갈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를 빠른 시점 전환으로 묘사하여 그 박진감을 더해주고 있구요. 특히, 전반부의 크샤트리아와 제간 편대의 전투 장면은 이번 U.C의 MS전 연출이 어떤 스타일이 될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기준점이 될 듯 합니다.
 
세련되면서도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조종석의 그래픽 디스플레이 표현, MS가 선보이는 중량감 넘치는 총격/포격신 등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의 묘사는 박진감 넘치는 MS끼리의 백병전 연출을 멋지게 상호보완해주고 있습니다. 과거 '바람의 검심 극장판'이나 '슈발리에' 등에서 선보였던 후루하시 감독의 액션 연출이 이번 U.C의 MS 전에서도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듯 싶군요.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이전의 건담 시리즈의 오마쥬가 여러군데 등장하여 매니아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디제님의 '기동전사 건담 UC(유니콘) - 제1화 유니콘의 날'을 보시면 좀 더 세세한 이야기들을 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되구요. 특히, 이 작품의 히로인인 그녀(누군지는 머리모양을 보시면 짐작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공식 사이트에서도 그 본명을 소개하지 않고 있기에 밝히지 않겠습니다. 디제님의 블로그를 보시면 누군지는 아시겠지만.)가 가명으로 사용하는 오드리 번은 작중에서 그녀가 마주치는 극장 간판 '로마의 휴일'의 여주인공 故 오드리 햅번의 이름을 오마쥬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게다가 '로마의 휴일(본편에서는 '런어웨이 프린세스'라는 몹시도 그녀에게 어울리는 제목으로 대체가 되었구요.)' 옆에 '4번째 비극'이라는 또다른 영화의 간판 또한, 작품의 전개를 암시하는 또다른 복선이기도 합니다. (일년 전쟁과 그리프스 전쟁, 그리고 네오지온 항쟁에 이은 4번째 전쟁을 암시하는 뜻인 듯.)
 
단,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는 일부분에 있어서 다소 심한 비약이 눈에 띄어 억지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중반부에 오드리 번의 도움이 되고 싶다며, 지금의 생활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외치는 주인공 바나지의 모습은 그가 느꼈던 소외감이 작중에서 그다지 잘 설명되지 않았기에 갑작스럽고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역시, 종반부에 유니콘 건담 앞에서 이루어지는 바나지와 비스트 재단의 당주 카디아스의 대화 역시 급작스럽게 출생의 비밀이 언급되면서 전반적으로 어리둥절한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이런 부분은 러닝 타임의 제약(6부작)이라는 한계 속에서 많은 내용을 축약할 수 밖에 없었던 제작진의 현실적인 문제인 듯 싶네요.
 
또하나, 비스트 재단이 재단 자체적인 목적으로 만들어낸 유니콘 건담은 비록 재단의 모든 역량이 투입된 일급 비밀의 MS이긴 하겠지만, 당주가 직접 MS에 탑승하여 기동 테스트를 한다는 모습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빌 게이츠가 MS의 회장이 된 후에도 윈도우즈  개발을 위해 직접 코딩을 하는 모습처럼 뭔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요. (원 소설 속에서는 어떤 설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OVA에서는 좀 어리둥절한 느낌이군요.) 어떤 면에서는 퍼스트 건담의 아무로나 제타 건담의 카미유 모두가 그 부친이 건담의 개발자였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둔 전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작 소설 자체가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 못한 상황에서 아니메로의 이식은 이 정도면 합격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샤아를 연상시키는 풀 프론탈의 등장이라든지, 소년이 뜻하지 않게 자신에게 닥친 시련 속에서 건담을 타게 되는 시퀀스 등 우주세기의 전형적인 스토리 공식을 따르는 모습은 식상함을 주는 대목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로 인해 그동안 잠잠해졌던 우주세기의 불씨를 어느 정도 살려주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도 있습니다.
 
샤아나 아무로 같은 건담의 아이콘들이 거의 다 사라진 우주세기가 과연 어느 정도의 관심을 이끌지, 그리고 신세대들에게 어느 정도 어필을 할지 역시 앞으로의 우주세기 시리즈의 연이은 제작을 위한 척도가 될 듯도 싶구요. 제목인 U.C가 우주세기와 유니콘을 모두 의미하는 이니셜이라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1편의 전개를 어느 정도 후속편들이 잘 이끌어 갈지, U.C의 앞으로의 전개에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덧붙임) 작품 초반부에 소데츠키 소속의 수송선 '가란쉐르'에 몰래 탑승한 히로인 오드리가 우주복을 갈아 입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 만약, 요즘 아니메였다면 저 부분에서 분명 속옷 바람으로 옷을 갈아 입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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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려 있는 '정령의 수호자 (2007), 성장을 주제로 한 깊이 있는 동양 판타지'을 본 블로그에 옮긴 글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스탭>

◈ 감독: 카미야마 켄지
◈ 원작: 우에하시 나오코
◈ 제작: Production I.G


<시놉시스>

우연히 신요고황국의 둘째 황자를 구하게 된 호위무사 바르사. 둘째 황비의 초청으로 궁에 들어간 그녀는 황비로부터 둘째 황자를 호위해 이 나라에서 도망쳐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둘째 황자의 몸에 요괴가 붙어 있고, 이것이 황제의 신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둘째 황자는 암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8명의 목숨빚을 짊어지고 있던 바르사는 그 의뢰를 받아들여 둘째 황자와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둘째 황자의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요괴가 아닌 정령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넘어온 정령의 알이었는데...



등장인물



1. 십이국기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오리엔탈 판타지 대작 아니메

아시다시피 반지의 제왕에서 비롯된 서양의 판타지 세계관(편의상 유럽 판타지로 표기)은 21세기를 맞이하여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등 전반적인 문화산업 새로운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다 판타지 세계관을 쓰는 양상이 되었습니다.) 원래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삼시 세끼를 매 번 먹다보면 질리는 법. 그런 면에서 질리도록 소비되고 있는 서양 판타지에 대안으로 동양의 판타지 세계관(편의상 오리엔탈 판타지로 표기)은 그만큼 방대하고 다양한 소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몇 몇 컨텐츠 외에는 아직까지는 이를 훌륭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오리엔탈 판타지를 소재로 한 작품들. 좌측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십이국기(코바야시 츠네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천녀유혼(서극 감독)', '후시기 유우기(카메가키 하지메 감독)'.

이런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는 오히려 진부함을 벗기 위해 유럽 판타지에 곁들여진 양념마냥 작품에서 조금씩 사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TRPG의 세계관으로 유명한 '포가튼 렐름'의 세계관에는 일본의 도검을 모델로 한 카타나나 중국의 소림사 승려를 기본으로 한 몽크와 같은 소재와 캐릭터가 등장하고, 일본의 아니메나 RPG 게임에는 권법가나 사무라이와 같은 동양적이거나 일본적인 색체를 가진 캐릭터와 소재가 등장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컨텐츠 전체를 오리엔탈 판타지로 구성한 작품들은 아직도 유럽 판타지에 비해 그 수가 적고, 또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판타지를 소재로 컨텐츠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을 전제 하에서 이번에 얘기할 작품인 '정령의 수호자'는 오리엔탈 판타지를 상당히 고급스럽고 정갈하게 묘사해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2. 공각기동대 SAC의 스탭진들이 다시 뭉치다

감독과 각본은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로 떠오르는, 또한 개인적으로 상당히 팬이기도 한 카미야마 켄지 감독입니다. (정령의 수호자가 방영된 시점에서) 아직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 외에는 이렇다 할 필모그라피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만, 만들어낸 작품 대부분이 (흥행여부와는 관계없이)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들이기에 앞으로의 작품에 대한 기대치도 굉장히 높은 인물이라고나 할까요. 그의 데뷔작은 패트레이버의 외전격 단편인 '미니 파토(2002)'라는 작품으로 종이로 오려낸 캐릭터들을 실사로 촬영하는 독특한 영상기법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때부터 범상치 않은 그의 연출력은 빛을 발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미니 파토의 독특한 연출 방식은 그의 최신작 '동쪽의 에덴'의 엔딩 영상에서 다시 한 번 사용되기도 하지요.)

ⓒHEADGEAR / EMOTION / TFC

켄지 감독의 데뷔작인 미니파토. 종이인형을 이용한 특이한 연출과 특유의 개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패트레이버 세번째 극장판 DVD에 부록으로 들어가 있다. 공각기동대 DVD 부록인 '타치코마의 일상'과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講談社 · 攻殻機動隊製作委員会

정령의 수호자 스텝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 공각기동대 SAC TV 시리즈. 비록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지만,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극장판이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점에서 후속작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시작했음에도 불구, 극장판과는 또다른 매력을 선사하며 높은 완성도의 작품으로 새롭게 구성.

음악 역시 공각기동대 극장판 1편과 이노센스 등으로 유명한 일본 아니메의 대표적인 음악감독인 카와이 켄지씨가 만들어 작품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제가는 일본의 대표적인 인기 락 그룹 라르크엔시엘이 맡아 작품 초반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지요. 그외에 고토 타카유키 이하 여러 작화스탭들, 다케다 유스케 미술감독 등 많은 스탭진들은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에 참여한 Production I.G의 베테랑 스탭진들인지라 완성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줍니다.

캐릭터 디자인 원안을 맡은 아소 가토우씨는 18금 헨타이 코믹스 작품을 여럿 그려낸 꽤 재미있는 이력을 갖고 있는데요, 물론, 이 작품에서는 그의 이런 장기는 전혀 발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생각 외의 완성도를 보여준 듯 합니다. 작품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러스트가 아마 그의 일러스트가 아닐까 추정되는군요.

원작자인 소설가 우에하시 나오코씨는 정령의 수호자를 1부로 하여, 어둠의 수호자, 꿈의 수호자 등의 집필했으며,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챠그무가 주체가 되는 여행자 시리즈 또한 있다고 하니 소설로도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원작자체가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베스트셀로서, 우헤하시 나오코 본인이 아니메와 공각기동대의 열렬한 팬이라고도 하는군요.


3. 판타지라는 색상으로 훌륭하게 채색된 성장 드라마

오리엔탈 판타지를 그 외관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정령의 수호자는 액션이나 어드벤처보다는 드라마에 더 집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바르사와 바르사가 호위하게 된 정령의 알을 품은 어린 황자 챠그무, 이야기는 뜻하지 않은 대자연의 숙명을 짊어지게 된 아이가 그 숙명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한 인간으로,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커다란 나무에 자그마한 에피소드들이 나뭇잎처럼 붙어서 하나의 거대한 나무로 형성화하는 듯한 느낌을 보여줍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성장 드라마에 걸맞게 챠그무는 확실히 자라고 있다, 무럭무럭. 우리 아이가 26주만에 이렇게 컸어요.

성장 드라마는 아동과 청소년이 주시청 대상인 애니메이션, 특히나 아니메에 있어서는 거의 어느 장르에나 쓰여지는 하나의 테마입니다만, 정령의 수호자는 그 주인공을 이미 성장한, 그리고 챠그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자라난 바르사라는 인물로 상정한 다음, 그가 지켜야 하는 인물인 챠그무가 성장하는 모습을 제3자적인 입장에서 보여줌으로써, 청소년 층 뿐만 아니라, 성인층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거기에 판타지라면 의례 등장하는 마법이나 괴물과 같은 요소들이 이 작품에서는 주된 이야깃거리가 아닌(물론, 정령의 알이라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판타지 요소, 그 자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의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는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로 사용되면서, 흥미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성숙한 전개를 원하는 고연령대의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판타지 소재는 때로는 양념처럼, 때로는 메인 음식처럼 사용되어 결코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느낌이다.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그리고 작품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이러한 전개가 자칫 지루함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정령의 수호자는 지루할 수도 있는 이런 전개를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각본과 연출로 멋지게 풀어 나간다는 점에서 밀도있고 심도있는 재미를 선사하지 않나 싶습니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에 이어 켄지 감독은 상당히 영화적이고도 리얼한 연출방식으로 작품을 이끌어 나갑니다.


4. 세계관 속에 교묘하게 녹아든 일본과 중국의 문화

오리엔탈 판타지는 그리스/로마 신화, 북구신화, 이집트 신화 등으로 그 소재가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은 몇가지에 고정되어 있는 유럽 판타지와는 달리, 각 나라의 설화나 건국신화 등에 그 모티브를 두고 있어서 나라 별로 다양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인이 만든 정령의 수호자는 일본의 옛모습을 모티브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챠그무의 나라이자 이야기의 주된 배경인 신 요고황국은 그 복식, 병사들의 무장, 주민들의 생활방식, 황궁의 모습 등을 일본의 옛모습에서 모티브를 받았다는 것이 눈에 뜨일 정도이고, 바르사의 고향인 칸발은 마치 중국을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쉽게도 한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지만요.)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전체적인 복식이나 건축물, 생활상은 일본의 그것을 사용하고 있으나 간간히 외국의 것들도 등장하고 있다. 스틸 샷의 좌측 하단에 보이는 의상은 중앙 아시아나 러시아의 전통의상을 기본으로 한게 아닌가 하는 싶다. (실제로 등장인물도 파란 눈에 금발이다.)

특히, 이 작품에 바르사 일행과 대척하고 있는 요고황국의 황실무사들은 일본의 사무라이와 닌자를 연상시키는 듯한 복식과 행동으로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전설적인 작품 '7인의 사무라이'를 그 모티브로 삼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게 합니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7명이 아닌 8명이 나오니 거기까지는 억측일지도 모르겠군요.)


5. 쿠사나기 모토코의 환생? 강인한 여성상과 모성상을 동시에 보여준 바르사

정령의 수호자는 주인공의 한 명인 챠그무의 성장을 그 주제로 한 작품이지만, 그를 보살피고 인격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게 지켜주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바르사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작품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술의 달인으로 탁월한 임기응변과 대담함, 그리고 용의주도함을 갖춘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아니메 팬들은 어떤 여성 캐릭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바로 공각기동대 시리즈의 히로인 쿠사나키 모토코 소령말입니다.

물론, 쿠사나기 모토코가 바르사의 롤모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모토코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 원작이 공각기동대보다 먼저 나왔다고 하니 말이죠. (애니메이션보다 소설이 먼저 나왔다는 것이고, 실제 공각기동대 코믹스보다는 정령의 수호자 쪽이 나중에 출간됐습니다. 공각기동대 코믹스는 80년대 작품.) 아마, 감독 이하 공각기동대의 스탭진이 대거 투입되다보니 작화같은 부분에서부터 자연스레 비슷한 인상을 주지 않았나 싶군요. (제 경우에는 성우가 같다는 착각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바르사는 안도 마부키씨가, 모토코는 타나카 아츠코씨가 맡았습니다.) 그러나, 바르사는 모토코와 다른 점을 하나 갖고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이 작품에서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해줄지도 모르는 모성애가 아닐까 합니다.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講談社 · 攻殻機動隊製作委員会 (좌) /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우)

같은 스텝진이 그려낸지라 둘의 느낌은 외모 상으로도 상당히 비슷하다. 인조피부의 효과인가 화장술의 덕인가, 모토코 여사가 좀 더 뽀샤시 해보이는...

챠그무를 대하는 바르사의 모습은 단순한 호위무사 이상의, 챠그무를 강인한 인간으로 키우는 데 많은 역할이 할애되어 있고, 실제 중간의 전개과정은 그러한 바르사와 챠그무의 관계와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모성애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성애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앞에서는 엄하게, 뒤에서 따뜻하게 지켜보는 그런 모습은 확실히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운 모습이랄까요. 그것은 그녀가 어머니없이 먼 타국에서 외롭게 자란 탓에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린 것도 있겠지만, 지그로에게 맡겨져 길러져 온 탓에 지그로의 남성적인 육아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은 탓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여성인 이상, 그것은 부성애보다는 모성애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듯 합니다. 다만, 그 외향적 모습이 무뚝뚝하고 남성적일 뿐이겠지요.

어떤 분들께선 첫 도입부에서 보여준 바르사의 현란한 액션씬에 매료되어 이 작품을 보셨을 수도 있겠고, (물론, 이 현란한 액션 역시 정령의 수호자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중간 에피소드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액션 때문에 많은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바르사의 진정한 매력은 그 현란한 무예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강인한 모성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3화에 등장한 바르사와 황실 무사들의 액션장면. 이 씬 하나로 초반 이 작품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최고조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현란한 움직임을 스피디하게 표현해낸 것도 훌륭지만, 그 빠른 전개 중에 사이 사이 슬로우 모션으로 주인공의 위기 상황을 강조한 연출력은 애니메이션으로선 매우 높은 수준의 연출 중 하나일 듯. (특히 저 창의 끈이 격투 중간중간에 조금씩 풀리는 연출은 매우 감탄)


6. 수호자 시리즈의 연이은 애니화를 기대하면서...

정령의 알을 품은 탓에 나라의 재앙으로 오인받으며 죽음에 몰린 왕자를 맡아 도망길에 오르는 젊은 여자무사의 이야기는 최초에는 긴장감 넘치는 탈주극으로 우리를 이끈 연 후,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원치 않은 사명과 업을 짊어진 어린 왕자가 백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드라마적인 전개와 잔잔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다가 말미에 이르러서는 왕자가 품은 정령의 알을 빼앗기 위한 정령계의 괴물과, 시시각각 왕자를 쫓아오는 황국무사들의 추격, 그리고 정령의 알을 꺼내고 왕자를 구하기 위한 바르사 일행의 실마리 찾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로 다시 늦춰진 긴장감을 팽팽히 당겨줍니다.

특히 그 중간에 등장하는 바르사의 감춰진 과거, 지그로와의 추억 등은 이 이야기의 또다른 사이드 스토리로서의 흥미를 주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지요. 사실 원작 소설의 경우는 이 에피소드의 완결 이후, 바르사가 다시금 그녀의 고향인 칸발로 돌아가 지그로 등과 얽혀진 오랜 이야기를 해결해 나가는 원톱 주인공으로서의 바르사의 모험 이야기가 다루어 집니다만, 아쉽게도 정령의 수호자의 후속작이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듯 싶습니다. 

완성도 높은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저조했던 시청률 덕에 이 작품의 후속이 더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기도 합니다. 물론, 액션에 많은 관심을 두고 보신다면 지루한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 이런 진지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매일 자극적인 패스트푸드와 서양식 식단으로 지친 우리의 몸에 깔끔한 웰빙음식과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글쎄요,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니메 팬들의 입맛이 다시금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할 때는 바르사를 다시 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기약없는 바르사의 모험 이야기가 언제고 다시금 우리에게 들려올 날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시작은 또 다른 이야기의 결말. 끝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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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TSU · SUNRISE (captured from Gundam UC Homepage)


2010년 봄 개봉예정인 건담 U.C의 프로모션 영상. 이번 건담 엑스포에서 공개되었던 영상이 마침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하여 네티즌들에게도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 그런데 공개는 되었는데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프로모션 영상의 링크가 깨진 듯 싶군요. 결국은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으로 감상을 했는데 말입니다.

일단 비주얼은 기대를 갖을 만 합니다. 6부작의 OVA인지라 자본 및 업무 집중도가 높아서 그런지 작화 퀄리티는 꽤 좋군요. 거기에 캐릭터 디자이너인 타카하시 쿠미코(카드캡터 사쿠라, 동경 바빌론, 위치헌터 로빈 등의 캐릭터 디자이너)가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스타일을 나름 잃지 않으면서도 요즘의 취향에 맞게 캐릭터 디자인을 잘 뽑아내준 듯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위치헌터 로빈을 통해서 이분의 캐릭터 디자인에 큰 신뢰를 보내고 있었기에(이쁘장한 스타일도, 극화적이고 사실적인 스타일도 다 소화가능하구나라고 인정) 꽤 만족스럽다는 생각이구요.

포로모션 영상을 통해 보여진 등장한 제간, 크샤트리아, 유니콘 등의 모습도 꽤 만족스럽습니다. 캐릭터 디자인/메카닉 디자인 및 작화는 일단 합격점이 아닌가 싶군요. 관건은 역시 스토리와 연출이 될 듯 합니다. 바람의 검심 추억편/슈발리에의 후루하시 카즈히로 감독인 이상, 내러티브 전개에는 그닥 문제는 없을 듯 싶은데 재미면에서는 과연 어떨지.

그간 저연령 취향의 엔터테인먼트적 전개와 상업성에 치중해온 신 건담 시리즈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는 보입니다만.

ⓒSOTSU · SUNRISE (captured from Youtube.com)



☞ 공식 홈페이지 프로모션 영상 (보러가기)
☞ 유튜브 포로모션 영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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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RISE Inc. All Rights Reserved.


연일 쉴새없이 쏟아지는 일본 아니메들의 헐리우드 영화화 소식 속에 또하나의 걸작이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기획 중에 있습니다. 주인공은 무려 카우보이 비밥.

 

사실, 카우보이 비밥의 실사화 얘기는 이미 올초에 등장한 이야기입니다만, 엘로스가 너무 늦게 이 소식을 접하는 바람에 이제서야 뒷북을 울리고 있습니다. 어쨋던 간에 꽤나 놀라운 소식이면서 동시에 기대 3, 우려 7의 그다지 크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는 작품입니다.

 

근래에 개봉된 많은 아니메 원작의 헐리우드 영화들은 대부분 기대 이하의 완성도를 보여준 것이 사실입니다. '스피드 레이서(2008)'나 '드래곤 볼 에볼루션(2009)'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구요. 전지현의 주연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2009)' 역시 헐리우드 영화는 아니었지만, 기대 이하의 완성도(사실 개인적으로는 기대 안하고 있었는데)로 흥행에 참패하였지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경우가 가장 성공한 예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작품은 80년대부터 미국에서 현지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과는 조금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하튼 간에 그런 점에서 이번 카우보이 비밥의 실사화 역시 기존의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공식을 대입할 경우에는 원작 특유의 색체를 잃어버린 그저 그런 범작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봇과 같은 아니메 특유의 특징이 드러나는 이전까지의 작품들에 비해 비밥은 원작 자체가 이미 영화적이면서도 서양적인 색체(웨스턴 느와르와 SF 어드벤쳐의 결합)를 띄고 있기, 가장 영화화가 무난하면서 동시에 그만큼 타 작품과 비교되는 매력적인 부분을 끌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작품이 아니니까요.

 

특히, 독특한 매력과 개성을 보여주었던 비밥의 캐릭터에 맞는 배역의 캐스팅,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작품과 적절하게 매치시킨 음악적 감성을 과연 얼마만큼 영화에서는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내느냐, 2시간의 러닝 타임 동안 비밥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시나리오 작업 등이 매우 어려운 난제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칫 잘못 만들면 앞서 언급했던 문제(원작 자체가 이미 굉장히 서양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로 인해 비밥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비밥의 색깔이 아닌 그냥 단순한 헐리우드식 SF 액션물에 그치기 때문인 것이죠. 드래곤볼의 독특한 외모의 주인공들이나, 트랜스포머의 로봇과 같은 아니메만의 색체가 비밥에는 없다는 것이 실사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구요.

 

캐스팅은 이미 올초에 언급이 되었듯이 키아누 리브스가 현재 스파이크 역으로 내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 부분 역시 기대반 우려반의 캐스팅이 아닐까 싶은데요. 확실히 근육질의 헐리우드 액션 스타들에 비해서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지만, 동시에 스파이크의 날렵한 절권도 액션이나 시니컬한 그의 스타일을 과연 리브스가 얼마나 잘 살려낼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매트릭스에서 보여준 그 어설픈 쿵푸 실력은 분명 날쌘 스파이크와는 안어울리는 모습이니까요.(게다가 요즘들어 살도 많이 찐 듯) 동시에 매트릭스 이후 긴 슬럼프를 겪고 있는 그가 과연 이 작품으로 멋진 재기에 성공할지도 관심사이구요. 그나마 조금 다행인 것은 '콘스탄틴(2005)'에서 보여준 모습이 나름 스파이크와 잘 매치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이번 9월 들어 리브스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시나리오의 재작업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초안이었던 시나리오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듯 싶은데요,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되는 만큼, 높은 완성도의 시나리오로 태어나길 기대해봅니다. 또한, 이번 작품에는 헐리우드의 스탭들 이외에도 아니메 비밥을 만들어내었던 일등 공신들인 와타나베 신이치로(감독), 노부모토 케이코(각본), 미나미 마사히코(프로듀서, 現 BONES 대표이사) 등이 컨설턴트로 참여하는 만큼 원작의 색체를 잃지 않는 영화가 되는 것 역시 기대 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페이는 도대체 누가 맡으려나요.

 

Live-Action Cowboy Bebop Proposal Officially Announced

Keanu Reeves: Live-Action Cowboy Bebop is in Rewriting

 

ⓒ SUNRISE Inc.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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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Yukinobu Hoshino, Futabasha / TO Production Committee (from TO Official Website)


3D 툰 셰이딩 기법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스타일의 Full 3D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던 아라마키 신지 감독의  '애플시드(2004)'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리고, '벡실 2077 일본쇄국(2007)'을 통해 보다 더 실사에 가까워진 3D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던 소리 후미히코 감독의 최신작 TO가 이번 10월, DVD를 통해 선행 렌탈 형식으로 공개될 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소리 후미히코 감독은 애니메이션 감독이기 이전에 영화 '핑퐁(2002)'의 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그전부터 영화와 드라마의 특수효과 등을 담당한 영화통으로, 이번 TO 역시 벡실과 더불어 기존의 아니메와는 다른 그만의 색체를 보여줄 듯 합니다. 특히나 3D 특수효과 등에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는 감독이기에 이번 작품은 분명 3D 특수효과에 있어서 만큼은 높은 완성도로 구현되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더군다나 이 작품은 일본 SF 만화의 대작인 유키노부 호시노의 원작 '2001 밤 이야기(1984)'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깊이 있고 진지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방대하고 서사적인 설정으로, 만화를 뛰어넘는 작품성을 보여주었던 유키노부 선생의 작품이 차세대 영상미를 이끌어 갈 3D 실사 애니메이션과 만났을 경우의 시너지 효과가 무척이나 기대가 가는군요.

 

공식 트레일러의 영상은 마치 한편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보는 듯한 장대함으로 가득합니다. 스타워즈나 에이리언과 같은 고전 우주 SF 영화들에서 느꼈던 스펙타클함과 함께,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오딧세이 등에서 느꼈던 심오함을 기대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이 작품을 추켜세운 표현일까요. 그만큼 원작이 주는 스토리에 대한 신뢰성과 이미 이전작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3D 연출력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고 하고 싶군요.

 

공식 홈페이지 가기(클릭)


© 2009 Yukinobu Hoshino, Futabasha / TO Production Committee (from TO Official Website)


소리 후미히코의 이전작 벡실이 뛰어난 영상미와 참신한 시놉시스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우려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고전 SF 명작의 현대적인 재해석이라는 측면만 볼지라도 이번 TO는 꽤 기대해봄직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입니다. 특히나 SF 팬들에게는 말이죠.

 

이번 TO는 원작의 방대한 스토리를 모두 담아내지 않고 원작을 기본으로 하여 '공생혹성(Symbiotic Planet)'과 '타원궤도(Elliptical Orbit)'의 두 가지 에피소드로 작품을 구성한 듯 합니다. 에피소드에 맞춰 등장인물도 나누어져 있는 듯 하군요. 특히, 공생혹성 에피소드에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성우 겸 가수로 유명한 히라노 아야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벡실을 제작했던 OXYBOT.

 

아, 그러고보니 유키노부 호시노의 2001 밤 이야기는 이미 80년대 OVA 아니메를 통해 한 번 제작된 사례가 있지요. 데자키 오사무 감독 밑에서 연출수업을 쌓았던 타케우치 요시오 감독과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영원한 파트너 스기노 아키오 감독 등이 참여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작품과의 비교도 좋을 듯 싶군요.


© Yukinobu Hoshino/Futabashi • TMS • Vi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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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니메의 산증인이자 명감독인 린타로(69세) 감독이 실로 오랜만에 신작을 들고 찾아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메트로폴리스(2001)'이후 8년만의 극장판 아니메 소식이며, OVA 였던 '우주해적 캡틴 하록, 끝없는 오딧세이(2002)' 이후로는 7년만의 소식입니다. 2004년도에 '48 X 61'이라는 단편을 발표하기는 했습니다만, 제대로 된 극장판의 제작소식은 실로 오랜만인지라 반가울 따름입니다.

 

게다가 이번 신작 발표 소식은 하나가 아닌 둘인지라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시들지 않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데요. 그 첫번째 소식은 바로 올겨울에 개봉 예정에 있는 3D 극장 애니메이션인 '요나 요나 펭귄'입니다. 제목이나 포스터를 통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전연령가의 가족 만화영화가 될 듯 합니다. 태국과 프랑스의 애니메이션 스탭들이 참여해서 글로벌한 느낌의 작품이 되리라는 예상 또한 할 수 있겠군요.


ⓒ2009 Rintaro·Madhouse / Yona Yona Penguin Film Partners·DFP

그동안 성인취향의 스타일리쉬하고 일본적인 작품을 주로 만들어오던 린타로 감독인지라 이번 신작은 꽤나 이례적인 느낌입니다. 그의 라이벌로 비교되던 미야자키 감독과 비슷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요(전연령가의 가족 만화영화라는 측면에서). 미야자키 감독 또한 이번 '벼랑 위의 포뇨(2009)'를 통해 이전보다 더욱 연령대를 낮춘 아동취향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던 점을 볼 때, 이 두 명장의 작품관이 황혼기에 접어들어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합니다. 린타로 감독 스타일의 가족 만화영화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또 하나의 소식 또한 몹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요. 린타로 감독은 4년 내에 한일합작 프로젝트로 또 하나의 3D 애니메이션을 구상중이라고 합니다. 곽재용 감독의 한일합작 영화 '사이보그 그녀(2008)'의 프로듀서였던 지영준 프로듀서가 린타로 감독과 함께 작업한다고 하니 어떤 작품이 될지 기대가 되는군요.

 

린타로 감독은 삼성 코엑스 몰에서 열린 인터뷰를 통해 (이번에 기획중인 작품은) 헐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요. 이번 요나 요나 펭귄을 통해 글로벌한 취향의 3D 애니메이션에 대한 모의 테스트를 해본 후, 그 노하우를 신작 3D 애니메이션의 제작에 대입하는 린타로 감독의 글로벌 프로젝트가 아닐까 추측을 해봅니다. 정말, 저 연세에 대단한 창작욕이 아닐 수가 없군요. (남들은 은퇴를 논할 시기인데 말입니다.)

 

사실, 린타로 감독은 이미 '알렉산더 전기(2000)'를 통해 한일 합작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의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매드하우스는 오랜동안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애니메이터들과의 교류가 빈번했던 지라 이번 한일 합작이 굉장히 이례적인 이벤트는 아니긴 합니다만, 이전에 비해 규모나 방향성에서 더욱 글로벌해진 이번 프로젝트에 한국 일본 양국의 유명한 스탭들이 참여하여 제작을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이전까지의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에 비해 확실히 비중이 큰 프로젝트가 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극장 아니메의 제작을 다국적 컨소시엄 형태로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예전과는 달라진 아시아권의 애니메이션 저변을 가늠해볼 수도 있구요.

 

과연, 린타로 감독은 미야자키 감독에 이어 여전히 녹슬지 않은 노장의 내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노쇠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대신하여 근래에 그들의 영역과 비슷한 작품들을 연속으로 선보이는 매드하우스가 과연 글로벌한 만화영화사로 떠오를까요.(이번 프로젝트에 매드하우스가 참여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거의 그럴 것이라고 추측 중) 이번 린타로 감독의 프로젝트는 그런 면에서 꽤 의미가 클 듯 싶습니다.

 

Metropolis Helmer Rintaro Announces New Fantasy An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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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Yasuomi Umetsu, Kite Liberator Production Committee, Fever Dreams LLC.

2008년 3월, 오랜만에 자신의 신작 '카이트 리버레이터(Kite Liberator)'를 내놓았던 우메츠 야스오미. 최근 일기당천 시리즈나 퀸즈 블레이드 등의 원화나 오프닝/엔딩 등의 스탭등으로 이름을 올리고는 있지만, 1년 반이 지나도록 신작 소식이 없던 그가 최근 새로이 신작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일단, 현재는 '도쿄 매그니튜드 8.0'의 파이널 에피소드의 키 애니메이션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군요. 도쿄 매그니튜드 8.0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노자키 아츠코가 그의 작품 카이트 리버레이터에 참여했던 것에 대한 일종의 고마움의 표시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역시 카이트 리버레이터에 참여했던 코지마 히로카즈가 캐릭터 디자이너로 참여하는 (현재 제작중으로 타이틀이 알려지지 않은)모 작품에도 참여하여 키 애니메이터로서 도움을 주는 중이라고 합니다. 알게 모르게 여러 작품에서 활약하고 있었군요.

 

이런 그가 이번에는 그의 이름을 제대로 걸고 새 작품을 내놓을 요량인데요, 먼저 첫번째로는 EA사의 신작게임인 단테스 인페르노(Dante's Inferno)의 애니메이션 판에 그 모습을 드러낼 듯 합니다. 아직 캐릭터 디자이너일지 연출가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메츠 외에도 '위치헌터 로빈', '에르고 프록시'의 감독이었던 무라세 슈코도 참여하고, '세이버 마리오넷 J'의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코토부키 츠카사 등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Production I.G 제작의 옴니버스 형식 아니메가 될 것 같습니다. (Production I.G 외에도 사무라이 참프루의 Manglobe나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동우 애니메이션 등도 참여예정이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이 작품 외에 그는 이번에 별도로 그의 이름을 건 오리지널 작품을 하나 기획 중인 듯 합니다. 세부적인 사항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상황인데요, 과연 2008년 이후 소식이 없는 카이트 리버레이터의 신작일지, 아니면 별도의 다른 작품일지는 좀 더 두고보아야할 듯 합니다. 카이트 리버레이터의 신작이라면, 굳이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듯 하니 새로운 신작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릴 듯 하군요.

 

아니메의 전설적 애니메이터로 추앙받던 카나다 요시노리 씨가 돌아가신 지금, 그와 비견될 만한 애니메이터로 불릴 이는 이제 이타노 이치로와 바로 이 우메츠 야스오미가 아닐까 하는데요. 모쪼록 이번에 새로운 신작을 통해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신들린 작화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굳이 환상적인 베드씬이 빠져도 괜찮습니다. 정말입니다, 정말입니...

 

Kite, Mezzo's Umetsu Plans His Next Original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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