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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Lucas Film Ltd.

<스탭>

◈ 감독: J.J 에이브람스(J. J. Abrams)
◈ 각본: J.J 에이브람스, 로렌스 케스단(Lawrence Kasdan)
◈ 제작: 케슬린 케네디(Kathleen Kennedy), J.J 에이브람스 외


<줄거리> 

팰퍼틴 황제와 제국의 몰락 후 30여년이 흐르고... 마지막 제다이 였던 루크 스카이워크(마크 해밀 분)가 사라진다. 제다이와 공화국의 제거를 목표로 무너진 제국의 잔재에서 새롭게 일어난 '퍼스트 오더(First Order)'는 루크를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루크의 누이인 레이아 공주(캐리 피셔 분)는 퍼스트 오더에 대항하기 위해 다시금 저항군을 일으키게 된다.

레이아는 그녀가 가장 신뢰하는 저항군의 에이스 파일럿 포 다메론(오스카 아이삭 분)에게 루크의 행방을 알아낼 것을 비밀리에 명하고, 포는 사막 행성 자쿠의 마을 장로 로아 산 테카(막스 폰 쉬도우 분)에게 루크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는 지도를 받게 된다. 그러나 마을을 떠나려는 순간 퍼스트 오더의 기습이 시작되고, 탈출이 불가능할 것은 깨달은 포는 파트너 드로이드 BB-8에게 지도를 맡긴 체 자신은 퍼스트 오더의 지휘관이자 어둠의 포스를 사용하는 검은 마스크의 괴한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 분)에게 잡혀가게 된다.

정처 없이 사막을 횡단하던 BB-8은 자쿠에서 폐품 팔이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청소부 소녀 레이(데이지 리들리 분)를 우연히 만나고, BB-8과 떨어져 퍼스트 오더의 혹독한 고문을 받던 포는 퍼스트 오더의 방식에 환멸을 느끼고 탈영하려는 병사 핀(존 보예가 분)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자쿠로 돌아가게 된다. 과연 포는 BB-8을 만나 루크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우연치 않게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의 휘말리게 된 레이와 핀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고전 스페이스 오페라의 감동을 잘 살려낸 J.J식 리메이크

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7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스타워즈 IV, 새로운 희망>이 다시금 스크린에 걸리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아갔던 그때를 말입니다. 그것은 제가 혼자서 영화를 본 최초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2년 뒤인 1999년 역시 기억납니다. 당시 군복무 중이던 저는 면회를 오신 부모님 덕분에 외출을 나가 이 두 노인분을 설득하여 한 영화를 보고야 맙니다. 재미 없다는 두 분의 잔소리를 꿋꿋이 견디며 보았던 그 때의 영화는 바로 <스타워즈 I, 보이지 않는 위험>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스타워즈의 오랜 팬입니다. (스덕이라기엔 다소 모자랍니다만) 어렷을 적 TV에서 방영된 스타워즈 더빙판은 비디오로 녹화하여 십수번이 넘도록 돌려봤을 정도로 어린 시절의 제게 큰 영향을 미친 대중문화 컨텐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저와 같은 스타워즈 팬들에게 J.J 에이브람의 <스타워즈 VII, 깨어난 포스>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재회한 첫사랑(또는 그 첫사랑과 닮은 누군가)과 같은 떨림과 기다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재회의 기대 만큼이나 걱정과 기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흔히 프리퀄 3부작이라 불리는 에피소드 1, 2, 3 역시 이번 만큼이나 많은 스타워즈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잠 못 이루게 했지만, 실제로 그 재회는 설레임을 실망감으로 바꿔버린 아픈 기억이었죠.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린 첫사랑의 모습(그래도, 그 옛모습이 남아 있었기에 재회를 후회할 정도는 아니었지만)처럼 프리퀄 3부작은 스타워즈 팬들에게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J.J가 여러 감독들의 고사 끝에 마침내 감독으로 낙점되었을 때, 이번 에피소드 7이 프리퀄 3부작의 실망감을 훌륭히 상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가 <스타트렉> 리메이크 시리즈에서 보여준 만큼만 해낸다면, 분명 에피소드 7은 오리지널 3부작의 명성에 흠집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할까요. 이동진 평론가의 말마따나 그는 제임스 카메론이 갖고 있는 '속편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이을 만큼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재해석이 돋보인 속편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비록 <E.T>에 대한 오마쥬였던 <Super 8>의 평가가 국내에서는 그닥 좋지 못했지만, 영화의 만듦새나 글로벌 흥행 성적은 꽤 준수한 수준이었기에 J.J의 스타워즈 역시 어느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리라 믿게 되었죠.


이런 저의 스타워즈 팬으로서의 입장과 J.J에 대한 나름의 (근거 있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의 첫 감상은 프리퀄의 실망스러운 기억을 모두 잊을 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일단 한국을 제외하고 북미와 글로벌 흥행성적은 그야말로 근래의 모든 블록버스터 대작들을 압도하고 있지요. 이 기세라면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갖고 있는 <아바타><타이타닉>, 그리고 <쥬라기 월드><어벤져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그들 중 일부를 압도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스타워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미국인들의 시각도 감안해야 겠지만, 스타워즈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J.J의 스타워즈는 거부할 수 없는 감동이 있습니다. 오리지널 3부작의 미장센과 클리셰가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는데, 팬들이라면 반가움을 느끼지 않고는 못 베긴다고나 할까요. 사막 행성 자쿠의 마을이나 밀레니엄 팔콘을 필두로 한 빈티지 느낌이 가득한 SF 설정은 오리지널의 감성이 잘 살아있는 재해석이 돋보입니다. 과거 프리퀄 시리즈의 만화적 느낌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하겠습니다.

백병전이나 우주선 간의 공중전은 아이맥스 스크린과 어우러져 스케일과 리얼리티가 돋보입니다. 오리지널이 보여주었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우주 전투씬에 무게감과 박진감, 그리고 현장감이 더해졌다고 할까요. 반면 라이트 세이버 듀엘씬은 호불호가 갈립니다. 프리퀄에서 건질만한 몇 개 안되는 장점 중의 하나가 CG의 도움으로 펼쳐지는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현란한 광선검 결투에 있었는데, 깨어난 포스에서는 그 현란함이 사라진 대신 좀 더 파워가 넘치는 고전 결투로 표현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건 이대로의 맛이 있더군요.

신규 등장인물과 기존 인물의 설정은 무난한 편입니다. 특히, 한 솔로의 첫 등장은 스타워즈 팬들의 감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만큼 인상적이더군요. 다만, 너무나 모습이 변해 버린 레이아 공주는 과연 캐리 피셔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여서 조금 아쉽다 하겠습니다. 루크의 모습은 글쎄요... 그에 대한 감상은 스크린에서 직접 확인하시는게 좋을 듯 하군요. 그 외에도 츄바카나 C3PO, R2D2, 액크바 장군까지 익숙하고 반가운 특수분장 캐릭터들도 놓칠 수 없는 추억의 향연입니다.

새로운 캐릭터들은 무난합니다. 설정 파괴의 주범으로 일부에서 회자되는 주인공 레이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상당히 좋은 느낌입니다. 핀 역할을 맡은 존 보예가는 기대 이상이었고, 오스카 아이삭의 포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고 할까요. 카일로 렌의 아담 드라이버는 이번 깨어난 포스에서 가장 저평가를 받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에피소드 8과 9에서 최종 평가를 내리려 합니다. 성장하는 악역이라는 많은 분들의 평가처럼 카일로 렌은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리라 기대가 되네요.

전반적으로 이번 J.J의 스타워즈는 속편이라기보다는 리메이크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입니다. 설정 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흐름, 익숙한 대사의 등장 등 여러 면에서 에피소드 7은 에피소드 4의 오마쥬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에피소드 4의 리메이크가 아닌가 할 정도로 과거의 스타워즈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내는데 중점을 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 에피소드 7 자체의 특색이라든지 발전된 모습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인만큼 과학적 측면에서의 설정 오류는 차치하더라도 많이들 지적하는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급작스러운 전개방식은 J.J의 영화라는 것을 고려할 때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확실히 J.J는 에피소드 7을 얼마나 스타워즈스럽게 만드냐에 더 신경을 쓴 듯 싶군요. 그런 점에서 그가 연출한 스타 트렉에 비해 하나의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아쉽습니다.

에피소드 7은 모든 팬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많은 팬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스타워즈 프렌차이즈 부활의 신호탄을 쐈습니다. 문제는 깨어난 포스를 뒤이들 에피소드 8과 9의 감독이 J.J가 아니라는 점이랄까요. 대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지 못해 앞으로 다가올 전투를 걱정하는 장수의 마음처럼 우려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이번 에피소드 7을 보면서 들었던 또다른 감정이기도 합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5 Lucas Film Ltd.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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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조금일지는 몰라도 이 글에는 영화의 일부 내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단 1%의 스포일러도 원치 않으신다면 영화 포스터까지만 봐주세요. :-)

ⓒ 2014 Paramount Pictures


<스탭>

◈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 각본: 조나단 놀란(Jonathan Nolan), 크리스토퍼 놀란
◈ 제작: 에마 토마스(Emma Thomas), 린다 옵스트(Lynda Opst), 크리스토퍼 놀란


<줄거리> 

근 미래의 지구. 인류는 번성의 시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다가가고 있다. 땅은 더이상 농작물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고, 강력한 황사가 수도 없이 인류를 덮치자, 오랜동안 인류를 꿈꾸게 했던 우주도, 과학도 더 이상 인류의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황폐해진 땅에서 자랄 수 있는 몇 안되는 농작물을 키우는데 온 힘을 쏟으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었다. 농경사회로의 퇴행인 것이다.

한 때는 NASA의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히 분)는 장인 도널드(존 리스고우 분), 아들 톰(티모시 찰라멧 분), 딸 머피(멕켄지 포이 분)와 옥수수 농장을 꾸리며 살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NASA도, 우주비행사도 없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탐험과 발견, 그리고 우주를 사랑하는 쿠퍼와 그를 똑같이 빼닮은 딸 머피는 둘도 없는 막역한 부녀 사이. 머피는 자신 방 책장에서 책이 스스로 떨어진다면서 유령의 짓이 아닐까 걱정하지만, 쿠퍼는 그런 딸에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당부한다. 그러나, 황사 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딸의 방에 들이닥친 모래 먼지가 일정한 패턴을 그리는 것을 본 쿠퍼는 이것이 유령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상대성 이론, 신비로운 우주, 그리고 가족애. 부침은 있지만 감동은 살아있다.

군가가 제게 인터스텔라가 재미있냐고 물어보신다면, 아마도 저는 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것에 망설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터스텔라가 괜찮은 영화냐 물으신다면 망설임 없이 '예'라는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인터스텔라에 대한 제 감상평은 이 정도가 가장 알맞은 정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스텔라는 블록버스터 급의 스케일과 제작비를 자랑하는 영화지만, 그 속내는 정통 SF의 모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와 같은 선상에 놓여져 있습니다. 우주의 신비를 스크린 위에 표현하는 인터스텔라의 영상미는 근래 등장한 많은 SF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으뜸입니다. 단지 정통 SF 관점에서 이를 풀어냈기에 놀라움은 있어도 재미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인터스텔라가 천체 물리학적인 측면에서 완벽한 영화냐 라고 한다면 그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성 이론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삼은 인터스텔라는 고증에 있어서도 기존 SF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물리학적 지식을 요구하기에, 이 글에서 일일이 짚어가기에는 무리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황된 우주를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통 SF 영화로서의 가치는 유효합니다. 이는 작년에 개봉되어 많은 이들에게 극찬을 받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가 과학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웰 메이드 SF 영화로 평가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만화영화 블로그라는 이곳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면, 인터스텔라는 두 가지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안노 히데아키의 '왕립 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1987)'와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1989)'가 그것인데요, 전자는 블록 버스터급의 제작비를 투여하여 정통 SF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후자는 우주여행과 시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과학적 이론을 영화의 핵심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인터스텔라와의 교집합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는 인터스텔라의 소재가 완벽히 참신하지는 않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참신성이라는 측면에서의 감점 요소에도 불구하고 인터스텔라가 그려낸 우주는 물리학자들이나 이야기할 법한 심도 깊은 이론의 실체를 관객들에게 최대한 쉽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 그래비티가 중력의 영향력이 미치는 근거리 우주를 (많은 고증상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인터스텔라는 또다른 은하계를, 그리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SF 장르물에서나 볼 수 있는 웜홀이나 블랙홀을 관객들에게 최대한 현실적인 모습으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펼쳐지는 5차원의 세계는 그런 면에서 SF의 레전더리라 일컬어지는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마지막 챕터와 비교할만 합니다. 좀 더 감성적이지만 말이죠.


사실, 러닝타임이 거의 세시간에 이르는 인터스텔라의 전개는 기승전결로 볼 때 기와 전이 늘어지는 측면이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계속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반부가 늘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주인공인 쿠퍼와 딸인 머피의 관계를 보다 관객들에게 공감시키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부분이었다라고 보는데요. 반면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는 다소 갸우뚱 거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정통 SF로서 큰 호평을 받은 그래비티와 비교해도 분명 이야기의 흐름이 앞서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정통 SF에 가족이라는 구태의연한 테마를 조합한 이야기는 괜찮은 감정이입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매튜 매커너히와 어린 머피역을 맡은 멕켄지 포이의 호연 덕분이기도 할텐데요. 작년 아카데미 상에 빛나는 매커너히의 연기는 인터스텔라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군요. 전개에 이르러서는 광활한 우주의 모험이 이야기를 주도하면서 가족애라는 테마가 다소 희석되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녹화된 화상 데이터를 통해 느껴지는 애틋한 부성애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외롭고 메마른 우주여행에 쏟아지는 잔잔한 빗줄기처럼 촉촉한 느낌을 줍니다.

로봇들도 영화에서 상당히 큰 역할로 자리매김합니다. 전반적으로 심각함이 지배하는 인터스텔라에서 로봇들의 역할은 일종의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잔잔한 유머를 선사하는 존재들인데요.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모노리스와 유사한 형상은 분명 큐브릭의 영화에 대한 오마쥬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공의 존재들은 선배 SF영화에 비해 상당히 인간친화적인 모습으로 인간의 편에 섭니다. 어찌보면 이 메마른 SF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존재들인지도 모르겠군요.

인터스텔라는 분명 놀란 최고의 영화는 아닌 듯 보입니다. 다크나이트는 물론 이거니와 인셉션과 비교해도 인터스텔라의 뒷맛은 약간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영화 크레딧이 올라올 때의 느낌은 이 영화를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다소 난처할 정도였는데요. 굉장히 몰입하면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지루함을 느꼈던 부분이 있고, 또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예측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들도 있었던 것처럼 한마디로 결론을 내기에는 다소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인터스텔라는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가 스필버그의 필모그라피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한 위치를 놀란의 필모그라피에서 담당하지 않을까 조심히 예상합니다. 스스로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높은 기대치로 탄생시킨 이 영화는 분명 놀란 최고의 작품은 아닐지라도 놀란의 필모그라피에 있어서 반드시 회자될 작품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 2014 Paramount Pictures


덧붙임) 본문에서는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매튜 매커너히는 인터스텔라가 영감을 얻은 로버트 저메키스의 '컨택트(1997)'에도 주연으로 출연했었죠. 게다가 영화제작을 맡은 린다 옵스트는 컨택트의 제작자이기도.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고증에 참여한 물리학자의 킵 손 역시 컨택트 제작 당시 관여했던 인물이니 인터스텔라는 여러 측면에서 컨택트와 인연이 깊은 듯 합니다.

덧붙임) 제가 인터스텔라의 위치를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와 비교했는데, 사실 인터스텔라가 기획되었던 2006년 당시 감독은 스필버그였습니다. 스필버그가 조나단 놀란을 각본가로 고용한 뒤 내부 사정으로 하차하면서 그 뒤를 형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신하게 되지요. 스필버그-파라마운트 조합에서 놀란-파라마운트 조합으로 뒤바뀌니 그 때가지 놀란의 파트너 격이었던 워너가 자사의 영화/TV 시리즈 판권까지 넘겨가며 인터스텔라의 배급에 참여한 듯 싶네요. 결과는 과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4 Paramount Pictures에게 있습니다.



인터스텔라 (2014)

Interstellar 
8.1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매튜 매커너히,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제시카 차스테인, 케이시 애플렉
정보
SF | 미국 | 169 분 | 2014-11-06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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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Marvel Studios

<스탭>

◈ 원작: 댄 애브넷(Dan Abnett), 앤디 래닝(Andy Lanning)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1969)'
◈ 감독: 제임스 건(James Gunn)
◈ 각본: 제임스 건, 니콜 펄만(Nicole Perlman)
◈ 제작: 케빈 파이기(Kevin Feige)
◈ 제작/배급: 마블 스튜디오/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쳐스


<줄거리> 

1988년, 백혈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어린 퀼은 슬픔을 체 가눌 사이도 없이 외계인 도적단 래비져(Ravager)에게 납치되어 우주의 고아가 된다. 그로부터 26년 후, 래비저의 일원으로 성장한 퀼(크리스 프랫 분)은 폐허가 된 모라스 행성에서 정체불명의 오브를 탈취하여 노바 군단의 행성인 쟌다라로 향한다. 래비져의 두목인 욘두(마이클 루커 분)는 혼자서 오브를 가로챈 퀼의 목에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그를 뒤쫓기 시작한다.

한편, 이터널의 뮤턴트로 강력한 힘을 가진 악의 화신 타노스(조쉬 브롤린 분)의 힘을 빌어 쟌다라 행성을 멸망시킬 계획을 세우던 크리 제국의 폭군 로난(리 페이스 분)은 타노스의 명령으로 오브를 찾기 위해 자신의 부하들을 모라스로 보냈지만, 눈 앞에서 퀼에게 오브를 빼앗기고 만다. 로난은 자신을 돕기 위해 타노스가 보낸 두 딸 중 가모라(조 샐다나 분)에게 오브를 되찾을 것을 명하고, 쟌다라에서 퀼과 조우하는데 성공한 가모라는 쉽게 오브를 탈취하는 듯 했으나, 퀼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타기 위해 난입한 로켓(브래들리 쿠퍼 목소리), 그루트(빈 디젤 목소리)로 인해 난전 끝에 네 명 모두 노바 군단에게 체포되고 마는데...

히어로물보다는 정통 스페이스 오페라에 충실한 작품

제는 마블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끝나면 쿠기 영상이 나온다는 것쯤은 많은 영화팬들도 알고 있듯이, 마블 히어로 무비는 자신들만의 특징적인 개성과 독자적인 세계관을 영화팬들에게 조금씩 각인시켜 왔습니다.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외에도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 코믹스의 다른 히어로들도 속속 출격할 준비를 마치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닌 당당한 주류 장르로 성장하고 있지요.

'어벤져스(2012)'의 대성공 이후 마블 영화들은 페이즈(Phase) 1,2,3으로 나뉘어져 차근차근 예정대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페이즈 2의 포문을 연 '아이언맨3(2013)'을 시작으로 페이즈 2는 어벤져스의 후광을 바탕으로 페이즈 1보다 더 좋은 흐름을 타고 있는데요. 페이즈 2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어벤져스 속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이 내년에 개봉되는 것이 확정된 상황에서 페이즈 2의 2014년 여름을 책임지는 마블의 다음 타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질적인 친구입니다. 우주를 무대로 활약하는 영웅들의 모험 이야기,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가 그들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는 거대한 세계관 중 하나의 조각으로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여타 마블 히어로 영화와는 다른 장르적 매력을 가진 작품입니다. 올 봄, 히어로 물과 첩보액션물을 크로스오버하면서 장르적 매력을 선보였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와 같이 근래의 히어로 영화들이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색다른 시너지를 내려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가오갤은 SF 액션물 그 자체로서 히어로 영화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즉,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히어로 영화가 아닌 SF 액션물인 셈입니다.

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가오갤은 스페이스 오페라로 불리는 일련의 장르 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오갤의 주인공들은 코믹스와는 달리 히어로적인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고 있는데요. 주인공인 스타 로드를 포함, 원작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그 능력이 너프된 드렉스 더 디스트로어이어(데이브 바티스타 분) 등, 가오갤의 멤버들은 하나 같이 초인적인 능력이 사라진 전사나 무법자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루트가 비록 인간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희귀한 외계종족이라는 점에서 히어로와는 다소 동떨어진 모습이구요. 지구인들이 아니라는 설정을 십분 활용하여 감독은 히어로 장르를 약간 비트는 것만으로 이 영화를 스페이스 오페라로 훌륭하게 변주해내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점에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복고적인 성향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나 '스타 트렉' 시리즈 등 일련의 스페이스 오페라는 70~80년대를 수놓던 장르로서 새로움과는 거리가 먼데요. 이런 장르적 매력을 극대화화면서 제작진은 스페이스 오페라 시리즈가 유행하던 당시의 올드 팝들을 영화의 OST로 적극 활용하여 영화가 복고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분명히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스타트렉 시리즈를 리부트하고 스타워즈 시리즈도 리부트하려는 J.J 에이브람스와 좋은 비교거리가 될 수도 있겠군요)

개인적으로 이 포인트는 상당히 취향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가오갤에 대한 제 평가는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려 하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영화 초반 어린 스타 로드가 소니 워크맨으로 듣는 10cc의 'I'm not in love'를 비롯, 가오갤의 메인 테마라고도 할 수 있는 블루 스웨이드의 'Hooked on a feeling', 스타 로드가 모라스 행성에 도착했을 때 들리는 유쾌한 레드본의 'Come and get your love', 스타 로드가 가모라를 유혹할 때 사용하는 엘빈 비숍의 'Fooled around and fell in love' 등, 영화에 등장하는 올드 팝들은 노래 모음 제목인 'Awesome mix' 뜻 그대로 엄청(awesome)납니다. 그리고 이 매력적인 OST가 극에서 담당하는 역할 역시 매우 크구요.

어벤져스의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의 이야기지만, 이곳저곳에서 접점을 보여주면서 기존 시리즈와 연결시켜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벤져스 3에서나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마블 히어로 세계관의 가장 강력한 빌런인 타노스의 등장이나, '토르, 다크월드(2013)'의 엔딩 부분에 등장했던 컬렉터(베네치오 델 토로 분)의 재등장 등, 가오갤은 이번 페이즈 2는 아니더라도 페이즈 3부터는 뭔가 어벤져스와 세계관을 공유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즉,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히어로 물과는 다른 관점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오갤은 엄연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멋진 OST와 함께 멤버들의 개그스러운 모습 또한 가오갤의 영화적 재미를 십분 살리고 있습니다. 로켓 라쿤과 그루트의 콤비 플레이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하며, 스타 로드의 크리스 프랫은 정말 신의 한수가 아닌가 할 정도로 기막힌 캐스팅입니다. 그가 '레고 무비(2014)'의 덜떨어진 주인공 에밋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더더욱 스타 로드로서 보여줄 그의 코믹 연기가 기대됩니다. 홍일점인 가모라의 뇌쇄적인 매력 역시 빼놓을 수 없구요. 조 샐다나는 인간으로서도 외계인으로서도 그 치명적인 매력을 가릴 수가 없군요.

결말이 너무도 뻔한 이야기 전개와 부족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가오갤은 OST와 개그라는 투톱을 활용하여 히어로 물을 스페이스 오페라로 멋지게 탈바꿈한 영리함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한계를 센스있는 연출로 극복한 제임스 건의 엔터테인먼트 접근 방식은 분명 이번 가오갤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며, 그렇기에 페이즈 3에 다시 등장할 가오갤의 속편 또한 몹시도 기대된다 말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어벤져스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4번 타자라면, 가오갤은 어벤져스와는 다른 모습으로 마블 시리즈의 활력을 불어넣는 멋진 테이블 세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4 Marvel Studios에게 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014)

Guardians of the Galaxy 
8.1
감독
제임스 건
출연
크리스 프랫, 조 샐다나, 데이브 바티스타, 빈 디젤, 브래들리 쿠퍼
정보
액션, 어드벤처 | 미국 | 121 분 | 2014-07-31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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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읽지 마세요. 사실 읽은 후에도 감상에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 2014 Warner Bros. Pictures


<스탭>

◈ 감독: 가렛 에드워즈(Gareth Edwards)
◈ 원작/각본: 혼다 이시로(本多猪四郎) / 맥스 보렌스테인(Max Borenstein), 데이빗 칼라햄(David Callaham)
◈ 제작: 토마스 툴(Thomas Tull), 존 제시뉘(John Jashni)
◈ 기획: 패트리샤 윗쳐(Patricia Witcher), 반노 요시미츠(Banno Yoshimitsu)


<줄거리> 

비밀리에 미지의 존재를 조사하는 범지구적 단체 모나크. 모나크 소속의 세리자와 박사(와타나베 켄 분)는 필리핀의 한 광산을 방문한다. 우라늄을 채굴하는 도중 이상환 광경을 목격했다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광산 안으로 들어간 세리자와는 그곳에서 거대한 생물의 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두 개의 알집(?)을 발견하게 된다. 두 개 중 하나는 이미 열려 있었는데, 그곳에 있던 무언가는 이미 해변을 통해 바다로 빠져나간 상태. 세리자와 박사는 그것이 그들 모나크가 오랫동안 찾애 해메던 그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한편, 일본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 잔지라, 죠 브로디(브라이언 크랜스톤 분)와 아내 산드라(줄리엣 비노쉬 분)은 이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이다. 산드라가 점검을 위해 발전소 원자로로 들어간 바로 그 때, 잔지라에서 원인모를 진동이 감지된다.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거대한 충격과 굉음이 발생하고, 곧 발전소에서 급격하게 방사능이 노출되기 시작한다. 브로디는 방사능의 누출을 막기 위해 아내가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원자로를 폐쇄하고, 잠시후 잔지라는 산드라와 무수히 많은 인명들을 끌어안은 체 붕괴되고 만다.

그로부터 15년, 브로디와 산드라의 아들 포드(애론 테일러 존슨 분)는 그날의 트라우마를 가슴에 묻은 체 아내 엘르(엘리자베스 올슨 분)와 아들 샘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 일본에서 여전히 잔지라의 사고원인을 파헤치는 아버지와는 한동안 연락을 끊고 사는 상태. 하지만, 아버지가 출입금지구역이 된 잔지라에 무단침입하려다가 체포된 것을 계기로 포드는 이제는 더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15년 전의 악몽에 다시 한 번 맞딱드리게 되는데...


블록버스터로서는 밋밋하지만 마니아에게는 만족스러운 리메이크

다 이시로가 창조해 낸 일본 괴수영화의 원전 '고질라(1954)'는 일본의 서브컬쳐의 한 축을 당당히 책임지는 마니아적인 평가 외에도 핵무기에 대한 일본인들의 트라우마를 원자력에 대한 경종과 대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의 단상으로 이끌어낸 영화적인 완성도도 제법 좋았던 작품입니다. 이후 이 장르는 특촬물과 괴수물의 원전으로서 서브컬쳐 마니아들에게만 인정되어 왔지만, 영화가 가진 주제의식에 있어서는 특촬물을 능가하는 단순한 괴수물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셈입니다.

이후로도 2000년대까지 20여편이 넘는 고질라 스핀오프가 제작되어지지만, 1954년작 고질라를 능가하는 작품은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만큼 오리지널 고질라는 영화적 완성도에 있어서 수십년 뒤의 후속작들을 상회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비약적인 특수 촬영기법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이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내러티브를 후속작이 계승하고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헐리우드의 첫 리메이크 작인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1998)'도 마찬가지로, 고질라라는 이름만 가져온 이 작품은 그럴듯한 주제의식도 없이 그저 커다란 괴물이 인간들을 위협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단순한(그리고 비싸기만한) 특수효과로 어설프게 그려내면서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제의식도, 자기만의 특색도 가지지 못한 그저그런 B급 블록버스터로 태어나고 맙니다.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2014)'는 그런 면에서 에머리히의 B급 고질라를 훨씬 상회하는 결과물이자 오리지널 시리즈에 상당히 충실한 헐리우드판 리메이크 작입니다. 괴수물에 인색한 한국 시장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고질라는 북미시장에서는 약 1억6천만 달러(14년 5월25일 기준), 글로벌 마켓에서는 약 3억9천만 달러(14년 5월25일 기준)를 벌어들이며 준수한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출처: IMDb) 서브컬쳐 장르에 우호적인 외국인들의 평가라 하더라도 형제 격 영화인 길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2013)'이 최종 수익 4억달러에 그친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단순한 장르에 대한 취향 때문이 아니란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퍼시픽 림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고질라지만, 괴수들이 격돌하는 격투 장면의 압도감과 속도감은 퍼시픽 림보다 못하며, 서스펜스에 있어서는 매트 리브스의 '클로버필드(2008)'가 더 좋은 느낌입니다. 블록버스터로서 이 영화의 호흡은 다소 느린 편으로,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다가 갑자기 중간에 맥없이 풀려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와!'라는 외마디보다는 '음...' 하면서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질라가 등의 뿔 만을 내놓은 체 바다 속을 가로지르는 장면이나 샌프란시스코에 떨어진 원폭의 해체를 위해 낙하를 감행하는 군인들이 고질라의 거대한 몸체와 조우하는 장면 등, 고질라의 압도적인 위압감을 십분 살려낸 장면들은 꽤나 인상적입니다. 속도감은 떨어지지만 고질라와 무토의 도심 속 결전도 파워와 스케일이 살아있구요.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정통(?)괴수물로서의 모습에서도 충실합니다. 단지 임팩트가 부족한 편이죠.

줄리엣 비노쉬나 브라이언 크랜스톤은 네임밸류로만 봐서는 주연급이었지만, 아쉽게도 초반에 일찍 하차합니다. 괴수가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다소 떨어지는 주연급 캐스팅 파워를 메우기 위해 사용된 카드로 보이는데요. 이는 '슈퍼맨(1978)'에서 말론 브란도의 역할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 극 중 부부로 출연하는 주인공 애론 테일러 존슨과 엘리자베스 올슨이 '어벤져스 2 - 울트론의 시대(2015)'의 퀵 실버와 스칼렛 위치 역할을 맡았다는 점은 영화와는 별개로 반가운 부분입니다.

고질라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서브컬쳐나 괴수물에 열광하는 마니아라면 에드워즈 감독의 고질라는 제법 괜찮은 작품입니다. 오리지널의 주제의식을 살짝 변주하여 원자력의 위험을 일깨우고 대자연의 분노를 거대한 괴물들의 묵시록적인 대결로 표현해 낸 부분은 인상적이며, 덕분에 고질라는 단순한 괴수물 이상의 내러티브가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말마따나 고질라의 초, 중반부는 괴수물보다는 재난 영화에 가까운 모양새로 액션보다는 드라마에 충실하죠. 이로 인해 호흡은 비록 느리지만, 스토리텔링은 여타 블록버스터보다 좋습니다.

모든 사건이 끝난 뒤 바다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고질라의 뒷모습은 오리지널 일본 시리즈들에 대한 오마쥬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후속편이 등장할 것만 같은 엔딩이었는데, 리메이크작의 성공적인 흥행성적을 볼 때 아주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입니다. 일본 서브컬쳐의 헐리우드 두드리기는 고질라로 인해 비로소 인상적인 결과를 낸 것 같네요.

ⓒ 2014 Warner Bros. Pictures


덧붙임) 본문에서는 퍼시픽 림보다 고질라를 좀 더 높게 평가햇지만, 사실 제 개인적인 평가는 고질라 별 3개, 퍼시픽 림 3개 반으로, 퍼시픽 림이 좀 더 높습니다. 서브컬쳐 오락물로서 보면 아무래도 고질라가 좀 늘어지는 느낌이... 아니 제 수준이 딱 그 정도여서요. :)


덧붙임) 예고편에서 크랜스톤의 혼신(?)의 연기 장면을 보고 왠지 이 영화가 괴수물보다는 재난영화스런 느낌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얼추 예상이 맞았습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4 Warner Bro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고질라 (2014)

Godzilla 
5.6
감독
가렛 에드워즈
출연
애론 테일러-존슨, 브라이언 크랜스턴, 엘리자베스 올슨, 줄리엣 비노쉬, 와타나베 켄
정보
액션, SF | 미국 | 123 분 | 2014-05-15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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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Marvel Studios


<스탭>

◈ 감독: 안소니 루소(Anthony Russo), 조 루소(Joe Russo)
◈ 원작: 에드 브루베이커(Ed Brubaker)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외
◈ 제작/배급: 마블 스튜디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줄거리> 

아스가르드인 로키와 치타우리 종족의 뉴욕 침공이 있은지도 벌써 2년, 캡틴 아메리카로 불리는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쉴드의 일원으로 점차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가는 중이다. 알제리안 해적들에 의해 나포된 쉴드 소속의 함선의 구출임무를 맡은 로저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던 도중, 함께 작전에 참여한 나타샤(스칼렛 요한슨 분)가 독자적으로 함선의 컴퓨터에서 정보를 유출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별개의 임무를 나타샤에게 맡긴 것에 실망한 로저스는 닉 퓨리(사우엘 L. 잭슨 분)에게 섭섭함을 토로하고, 그런 로서스에게 퓨리는 쉴드가 극비리에 진행 중인 인사이트 프로젝트를 공개한다. 그것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세 대의 헬리케리어가 상공에 대기하면서, 위성 연결을 통해 테러 분자 또는 사회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찾아내어 미연에 제거하는 것이었으니...


캡틴, 마블 페이즈 2의 진정한 주역이 될 것인가

블 페이즈 1의 라인 업을 기억하시는지? '아이언 맨(2008)'부터 시작하여 '퍼스터 어벤져(2011)'까지 이어온 마블 히어로 영화는 마침내 '어벤져스(2012)'를 통해 압도적인 파워를 뿜어냈습니다. 그러나 '아바타(2009)', '타이타닉(1997)'에 이은 역대 흥행성적 3위라는 타이틀은 온전히 어벤져스 한 편의 영화가 이룩한 것이 아니죠. 아이언 맨부터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단독 영화들의 힘이 뒷받침이 된 것입니다.

페이즈 1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대단원이 되는 어벤져스의 직전에 개봉되면서 페이즈 1에서 제법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성이나 위치에 비했을 때 1편에서의 그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죠. 그것은 어벤져스에서도 마찬가지. 어찌보면 마블 히어로 중에서 가장 극적인 과거사를 가지고 있지만, 평면적인 그의 캐릭터는 그의 제한된 능력만큼이나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벤져스의 대성공으로 인해 각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도 그 위상이나 부담감이 예전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톱 플레이어 격인 아이언 맨 시리즈야 독자적인 팬덤을 구축하고 있으니 차치하더라도, 헐크, 토르, 거기에 캡틴 아메리카는 모두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기로에 선 셈이죠. 캡틴보다 앞서 개봉한 토르의 두번째 속편은 어벤져스를 통해 달라진 토르 브랜드의 위상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모로 슈퍼히어로의 주인공으로서는 미약한 힘을 갖고 있는 캡틴은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크리스토퍼 놀란이 성공적으로 해냈던, 히어로 장르와 타 장르영화의 융합은 캡틴의 두번째 속편인 윈터 솔저의 키워드입니다. SF를 적절하게 융합시킨 '맨 오브 스틸(2013)'이나 하이틴 영화의 감성을 더한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2012)' 등, 근래의 히어로 영화들은 사실 타 장르와의 융합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마블산 히어로 영화들 중에서는 캡틴 아메리카가 가장 그 부분에 적극적이랄까요. 전쟁물과의 접목을 시도한 퍼스트 어벤져에 이어 이번에는 첩보액션물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럽군요.

놀라운 것은 윈터솔저를 연출하고 뒤이어 캡틴의 세번째 속편까지 연출할 것으로 알려진 감독 루소 형제가 주로 TV 시리즈 시트콤이나 코미디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온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터 솔저는 웃음기가 100% 빠진(물론, 닉 퓨리와 인공지능의 대화와 같은 깨알같은 유머가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진지한 첩보액션물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첩보물로서의 이야기 흐름도 물론 준수합니다만, 윈터 솔저가 인상적인 것은 적당히 개연성 있는 스토리와 함께 캡틴의 장점을 120% 활용한 정교한 액션 연출에 있습니다.

어벤져스를 보아온 영화 팬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시피 캡틴의 능력은 인간을 다소 상회하는 신체적 능력과 어떤 충격이든지 반사시키는 비브라늄 방패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슈트나 천둥을 부르는 초능력, 녹색 괴물의 압도적 파워가 그에게는 없지요. 당연히 이들과 보여주는 액션의 질감이 틀릴 수 밖에 없는데요. 이것을 이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멋지게 맞춤 재단해 냅니다. 그로 인해 이 영화는 첩보 액션물과 다소 빈약한 능력의 히어로라는 조합으로 훌륭한 한편의 오락물을 만들어 냅니다.

팀의 일원, 국가를 위한 희생(물론 이 부분은 영화에서 변주되지만) 등, 전통적인 가치관에 충실한 로저스가 그가 믿었던 것들에 의해 배신당하는 부분은 평면적인 그의 캐릭터를 입체적인 상황에 노출시켜 극적인 긴장감을 부여하게 합니다. 그 사이사이 배치해 놓은 7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홀로 미지의 세상에 떨어진 외로운 인간으로서의 로저스를 묘사하는 점도 제법 인상적이구요. 개인적으로 미국적인 히어로라는 한계 속에서도 페이즈 1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인물이 캡틴이었는데 이번 페이즈 2에서도 그 평가는 변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액션, 스토리, 캐릭터 모든 면에서 페이즈 2의 스타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가 아닐까 합니다.

ⓒ 2014 Marvel Studios



덧붙임) 많은 분들도 느끼셨겠지만, 윈터 솔저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의 캐릭터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 정도 레벨의 배우를 그 정도로만 소비했다는 점에서 아직 루소 형제의 내공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네요. 좀 잔인하게 말하면 레드포드 옹은 영화의 홍보를 위해 희생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덧붙임) 스칼렛 요한슨은 콜슨에 이어 이제는 마블 히어로 영화에서는 빠져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요? 이번에는 단순한 스페셜 출연이 아니라 캡틴의 사이드킥으로서 맹활약합니다. 부족한 캡틴의 능력을 커버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이쯤되면 블랙 위도우 단독 시리즈가 나와도 될 정도.

덧붙임) 사실, 어벤져스 2 직전 페이즈 2의 마지막 타자는 캡틴이 아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입니다. 일단은 서로 활동하는 지역구가 다르니 이 친구들은 살짝 포지셔닝을 달리해도 될 것 같네요. 그래서 페이즈 2의 스타는 캡틴 아메리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만.

덧붙임) 쿠키 영상이 두 개인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관람객이 저랑 와이프 둘 밖에 없다보니 조금 뻘쭘해서 하나만 보고 나와버렸습니다. 이럴 땐 좀 천연덕스럽게 버텨서 보고 그래야 하는데, 저도 그런 성격이 못되다 보니... ㅠㅠ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4 Marvel Studios에게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2014)

Captain America: The Winter Soldier 
8.5
감독
조 루소, 앤소니 루소
출연
크리스 에반스, 스칼렛 요한슨, 사무엘 L. 잭슨, 로버트 레드포드, 세바스찬 스탠
정보
액션, 어드벤처, SF | 미국 | 136 분 | 2014-03-26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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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스탭>

◈ 감독: 피터 잭슨(Peter Jackson)
◈ 원작: J.R.R 톨킨(Tolkien)의 '호빗'
◈ 제작: 뉴 라인 시네마, MGM, 워너 브러더스


<줄거리> 

외로운 산으로의 여정이 시작되기 1년 전, 프랜싱포니 여관에서 간달프(이안 멕켈런 분)와 소린(리처드 아미티지 분)이 비밀스럽게 만남을 갖는다. 흩어진 드워프들을 규합하기 위해 아르켄스톤을 찾아야 한다고 드워프 왕자를 설득하는 간달프. 사악한 용 스마우그(베네딕트 컴버배치 분)가 차지한 자신의 왕국 에레보르로의 발길을 주저하는 소린에게 간달프는 용으로부터 아르켄스톤을 빼내오기 위해서는 솜씨 좋은 도둑을 고용해야 한다고 귀띔을 한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르켄스톤을 찾기 위한 드워프의 원정대에는 솜씨 좋은(?) 도둑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 분)가 함께 하고 있었다. 아조그가 이끄는 오크 무리들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 머크우드 숲까지 다다른 원정대. 숲에서 사악한 기운을 감지한 간달프는 그 자신의 원래 목적, 즉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악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소린들에게 잠시동안의 작별을 고한체 사악한 이들이 잠든 곳으로 향하게 되고,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준 마법사와 이별하게 된 빌보와 소린의 드워프들은 신비함과 사악함이 묻어있는 머크우드 숲의 미로 속으로 향하게 되는데...


흥미진진한 모험과 액션, 그리고 부족한 참신함

킨의 '반지의 제왕'에 비해 이야기, 스케일 등 모든 면이 부족했던 톨킨의 습작 '호빗'을 3부작의 대작 시리즈로 제작하는 것이 결정났을 때 사실 영화 '호빗'의 한계나 우려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3부작으로 영화화하기에는 내용이 많이 부실했던 호빗을 2시간 이상의 러닝타임을 가진 대작 3부작으로 만든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전작인 반지의 제왕을 의식한 행보였고, 애초에 볼륨의 차이가 나는 두 작품을 비슷한 체급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호빗은 상당 부분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새로이 창조하고 구성하는 작업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MGM의 파산으로 야기된 제작 지연(호빗 1편 확장판의 제작비화를 보면 그만큼 스토리를 각색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제잔진들은 언급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결과물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느낌이다.), 프리 프로덕션 중에 델 토로에서 잭슨으로 감독이 교체되는 등, 여러 부침을 겪은 호빗은 출발부터가 사실 상당한 부담과 불안요소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영화사의 레전더리가 되어버린 전작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부담이었고, 호빗은 아무리 피터 잭슨이라 할지라도 잘해봐야 반지의 제왕과 엇비슷한 수준에 머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2편까지 공개된 현재의 상황에서 이 부정적인 예상은 아쉽게도 거의 들어맞고 있다.

이번 2편 '호빗:스마우그의 폐허', 그리고 1편인 '호빗:뜻밖의 여정'까지 통틀어서 이 시리즈의 가장 거슬리는 점은 바로 참신함의 부재이다. 안타깝게도 호빗 시리즈는 2편까지의 줄거리 전개, 설정 등이 전작인 반지의 제왕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쉬움을 주고 있다. 머크우드 숲으로 향하는 소린 원정대의 모습은 팡고른 숲으로 향하는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의 아라고른 일행의 모습과 겹쳐진다. 도중에 원정대를 이탈하여 돌 굴드르로 향하는 간달프의 행보 역시 '반지의 제왕:반지 원정대'에서 오르상크의 탑으로 갔다가 사루만에게 사로잡히는 간달프의 모습과 너무도 동일하다. 독에 중독된 드워프 킬리를 치료하는 엘프 타우리엘(에반젤린 릴리 분)의 모습 또한 반지원정대에서 프로도를 치료하는 아르웬의 그것 그대로다. 이런 유사함은 긴 러닝타임과 지루한 전개와 어우러져 일부 관객들에게 상당한 피로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캐릭터의 사용도 많은 이들이 지적한 듯이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이미 많이 언급된 원정대의 주축 드워프들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그것. 1편에서는 전작의 핵심 인물들인 엘론드, 갈라드리엘, 사루만, 골룸에 라다가스트 등이 등장하여 드워프들의 매력이 초반부를 제외하고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면, 스마우그의 폐허에서는 레골라스, 타우리엘, 스란두일, 바드와 같은 인물들로 인해 역시 드워프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는 많은 인물들의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가 살아있던 반지의 제왕과 비교하면 분명히 비교된다. 전작의 인기인이었던 레골라스의 경우는 용맹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했던 모습과 달리 차갑고 사나운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캐릭터의 성격 변화의 이유가 극중에서 설명되지 않아 어리둥절함을 안겨주고 있다. 타우리엘과 킬리의 다소 생뚱맞은 로맨스와 함께 레골라스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겉도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각색과 설정상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호빗은 분명 블록버스터급 하이판타지 어드벤쳐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즉, 극적인 전개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 스케일과 액션의 웅장함, 그리고 고급스러움은 전작인 반지의 제왕 외에 마땅히 비교할만한 판타지가 없는 것 역시 사실인 것이다. 급박한 전개 속에서도 간간히 보여주는 서정적인 모습들이나 유머러스한 대사는 능숙한 완급조절을 보여주고 있으며, 머크우드 숲에서 사악한 거미들과 사투를 벌일 때 반지의 사악함에 선한 마음을 잠시 잃어버린 빌보의 모습에서도 그저 치고 받고 싸우는 액션물 이상의 감상을 보여줌은 분명 이 작품의 격이 그저그런 블록버스터와는 몇 차원이 다름을 느끼게 해준다.

배급사와 극장사의 부율전쟁 등으로 인해 일반 디지털 극장에서 관람했는데, 많은 이들의 평으로 보아 이번 액션들은 보다 더 HFR에 맞춰진 느낌이 아닌가 싶다. 특히, 통나무 통을 타고 급류에서 펼쳐지는 엘프들과 드워프, 오크들의 속도감 넘치는 추격전은 HFR에서 더 진가를 발휘할 듯. 다만, 아직도 관람객들의 시각은 HFR에는 다소 적응이 안되어 있는 듯 싶다. 그에 비해 후반부는 다소 늘어지는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아우라가 빛을 발휘하는 스마우그의 압도적인 위용이 극을 좌지우지 한다. 어떤 면에서 스마우그와 빌보의 시퀀스는 1편 뜻밖의 여정에서 보았던 골룸과 빌보의 시퀀스와 대비되는 느낌이다. 음성변조가 아닌 실제 목소리로 펼쳐지는 베네딕트의 연기는 스마우그와 완벽한 싱크로를 보이며, 드라마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프리먼이 연기하는 빌보의 능청스러움과 잘 어우러지고 있다.

클라이막스가 되는 스마우그와 드워프들의 사투는 돌 굴드르에서 펼쳐지는 간달프와 네트로맨서의 대결과 교차편집되면서 흥미를 안겨주는데,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전개였다. 다만, 그것이 연속극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멈춰지는 부분은 많은 관람객들에게 그다지 와닿는 부분은 아닌 듯. 반지의 제왕이 1편이나 2편 모두 그 안에서 기승전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비해 이번 2편은 기승전에서 이야기가 갑자기 중단되어 허망함을 주는 느낌이다. 다만, 이 시리즈를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감상했던 많은 이들에게는 다음 편을 몹시도 기다리게 하는 기대감이 공존하는 엔딩이 아닐까 한다.

호빗 시리즈는 앞서도 말했듯이 3편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반지의 제왕의 아성을 결코 넘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의 이야기 전개에서 보여준 너무도 많은 전작의 기시감, 캐릭터의 설정과 이들을 극 안에 녹아들어가게 하는 부분에서의 허술함은 분명 디테일한 각색에 있어서 많은 허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십여년 사이 진화되어온 특수효과를 기반으로 한 스펙타클한 영상미와 흥미로운 모험, 그리고 고급스러움은 여전히 이 작품과 비교할만한 판타지가 반지의 제왕 외에는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대로라면 3편 역시 상당히 많은 전작의 기시감을 떠안게 되겠지만, 그 재미만큼은 어느 정도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 2013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덧붙임) 이러쿵 저러쿵 불만을 늘어놓기는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몹시 재미있게 감상했다. 그런 점에서 엘로스의 영화 감상기준이 그다지 세심하지 않음을 유추할 수 있다.

덧붙임) 간달프와 더불어 꽃미남이었던 레골라스마저 반지의 제왕보다 설정상 수십년 전의 이야기에서 더 나이가 들어보임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한계인가.


덧붙임) 사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스마우그의 최후가 2편에서 그려지고, 다섯 부족의 전쟁이 3편에서 다루어질 걸로 예상했는데, 이게 3편으로 넘어갔다. 볼그와 레골라스의 추격전까지 더하면 3편은 그야말로 마무리 짖지 못한 액션들이 몰아치는 액션의 홍수가 되어버릴 듯. 이야기의 부재를 액션으로 메울 기세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3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에게 있습니다.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2013)

The Hobbit: The Desolation of Smaug 
7.4
감독
피터 잭슨
출연
마틴 프리먼, 이안 맥켈런, 리차드 아미티지, 케이트 블란쳇, 올랜도 블룸
정보
어드벤처, 판타지 | 미국, 뉴질랜드 | 161 분 | 2013-12-12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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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노출이 있으니 굳이 이를 원치 않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2013 Warner Bros. Pictures


<스탭>

◈ 감독: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 각본: 알폰소 쿠아론, 요나스 쿠아론(Jonás Cuarón)
◈ 제작: 데이빗 헤이맨(David Heyman), 알폰소 쿠아론


<줄거리> 

미션 스페셜 리스트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 그녀는 익스플로어 호에 탑승하여 지구궤도에 떠있는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에 올라와 있다. 베테랑 우주 비행사이자 이번이 마지막 비행이기도 한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가 그녀와 함께 했는데, 시종일관 유쾌하게 수다를 떨며, 우주를 비행하는 그와 달리 이번이 첫 비행인 스톤은 다소 긴장한 듯 컨디션이 별로 좋지는 않아 보인다.

한창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면서 코왈스키의 의미없는 수다를 건성으로 흘려듣던 그 때, 컨트롤 센터인 휴스턴으로부터 다급한 무선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폐기 위성을 처리하기 위해 발사된 러시아의 미사일에 의해 파손된 위성의 파편이 근처 궤도의 위성과 충돌하면서 연쇄반응이 일어나 익스플로어 호로 다량의 잔해가 접근중이라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다급하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려던 스톤과 코왈스키에게 위성의 잔해들이 맹렬한 속도로 접근하고, 손쓸 틈도 없이 익스플로어호는 케슬러 신드롬에 휘말려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CG미학의 결정체와 휴먼드라마의 완벽한 캐미스트리

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그래비티(2013)'는 분명 훌륭한 작품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2013년 최고의 영화로 꼽는다고 하는데, 그 의견에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래비티가 SF 영화사의 레전더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영화냐 하면 그건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오딧세이(1968)'처럼 거대한 철학적 담론과 완벽한 영상미가 조화를 이룬 심오한 SF 레전더리도 아니며, 오딧세이와는 완벽한 대칭점에 있는 SF 판타지의 기념비적인 전설 '스타워즈(1977)'의 상상력과 기발함을 담고 있지도 않다. 프랭클린 J 샤프너의 '혹성탈출(1968)'이 보여준 충격적인 미래상,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가 선보인 포스트모더니즘과 스릴러의 절묘한 조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런너(1982)'에서 느꼇던 디스토피아적이고 느와르적인 컬트함도 없다.

그래비티는 특수효과 측면에서는 스필버그의 뒤를 잇는 블록버스터의 거장 제임스 카메론의 완벽함에 근접해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과 삶을 향한 의지, 자연을 마주한 인간성의 되물음에서는 이전의 수많은 비슷한 영화(SF는 아니지만, 다른 재난영화)들과 비교하여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실과 가깝게 재현해낸 우주라는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향한 한 여성의 투쟁은 무척이나 현실감이 있고, 흡입력이 있으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특수효과를 통해 감독이 보여준 실제와 유사한 영상적 체험으로 인해 우리는 주인공 스톤과 한자리에서 우주의 미아가 되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진다.

이 영상적 체험이 다른 여타의 영화들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 영화가 조난 영화이기 때문이다. 액션, 미스테리, 스릴러, 판타지 등 SF 영화와 어울릴 수 있는 수많은 장르 중 재난 영화의 코드를 사용하여 미지의 우주에서 겪는 있을 법한 사고를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기시감으로 표현한 시각적 효과는 단순한 특수 효과 이상으로 관객들의 감정을 파고든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토리는 비록 단순하지만 뛰어난 CG와 맞물려 완벽한 캐미스트리를 뽐내고 있다. 만약, 이 압도적인 영상미와 어우러질 이야기의 깊이와 신선함이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SF 걸작들에 견줄 정도였다면 그래비티는 분명 그들과 같은 자리에 올라설 만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 2013 Warner Bros. Pictures



스톤과 코왈스키, 그리고 후반부는 거의 스톤 혼자서 이끌어가는 영화의 구도는 온전히 캐릭터와 메인 테마에게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이는 이미 '127시간(2010)'이나 '베리드(2010)'에서 우리가 보아왔던 것인데, 이런 영화는 당연하게도 주연배우의 연기 내공이 영화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산드라 블록은 분명 탁월한 캐스팅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딸을 잃고 생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여성 우주인 스톤을 실로 훌륭하게 표현해냈는데, 나약한 여성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강인한 여성으로 일어서는 모습은 흡사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1979)'의 시고니 위버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다. (ISS의 소유즈에 극적으로 랑데뷰한 뒤 우주복을 벗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스톤의 모습은 구명정을 타고 노스트로모 호를 탈출하여 동면에 들어가기전 속옷 차림으로 잠깐 동안 여유를 취하는 리플리를 연상시킨다.)

초반부에 펼쳐지는 20여분에 달하는 롱테이크 씬은 이 영화의 압권 중 하나다. 마치 우주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이 인트로는 아마도 21세기 들어 만들어진 영화들 중 가장 인상적인 인트로 중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이 외에도 계속적으로 영화에는 긴 롱테이크가 사용되는데, 뛰어난 3D CG와 함께 롱테이크 촬영기법은 관객들에게 실제와 같은 체험을 전달하는 그래비티만의 백미이기도 하다. 3D 역시 이 영화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 실제로 케슬러 신드롬에 의해 위성의 파편들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장면들은 입체 영상에서 더 빛을 발한다. 우주공간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리얼리티를 영화에 부여함으로써 영화는 시각적인 체험에 관객들을 더더욱 집중시킨다.

날카로운 과학적 고증의 잣대를 들었을 때, 그래비티 역시 많은 부분에서 그 점을 피해갈 수는 없다. 케슬러 신드롬이 발생하게 되는 과정과 조건, 제트팩만을 이용하여 ISS의 소유즈로 이동하는 여정, 소화기를 이용해 중국의 우주정거장 텐궁으로 이동하는 설정 등은 분명 극적인 상황을 위해 현실감을 무시한 부분이기도. 그러나, 우주공간에서 관성으로 인해 계속 빙글빙글 도는 우주인들의 모습, 우주 정거장의 해치를 열 때 기압 차이로 폭발하듯 열리는 장면, 극적으로 지구에 귀환한 스톤이 우주공간에서의 생활 덕분에 근육이 풀어져 한참동안 대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부분들은 분명 많은 SF 영화들이 놓치고 지나갔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비티는 2013년을 수놓은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고 놀라운 작품이다. 특히, 관객들이 우주 한복판에 있는 듯한 시각적인 체험을 통해 우주의 미아가 된 여주인공이 극적으로 지구로 귀환하는 여정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 점은 이제껏 다른 영화에서 느껴보지 못한 부분이다. 경이적인 영상효과를 이토록 이야기와 완벽하게 융합시킨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영화를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에 올려놓는 일부의 성급한 평가도 그런 점에서 그다지 과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 2013 Warner Bros. Pictures


덧붙임) 이제까지의 SF 영화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그래비티지만, 많은 부분에서 선배 SF 영화들의 클리셰를 등장시키고 있다. 본문에서 언급한 스톤의 탈의 장면도 그렇고, 'I've Got bad feelings about this'라는 코왈스키의 대사는 스타워즈의 한 솔로가 자주 말하던 대사. 여기에 미션 컨트롤 센터에서 스톤들과 교신하는 목소리는 이 영화와 유사한 장르라 할 수 있는 론 하워드 감독의 '아폴로 13(1995)'에서 컨트롤 센터 팀장으로 등장했던 에드 해리스.

덧붙임) 삶의 의지를 포기했던 스톤이 지구의 아마추어 무선 통신사 아닌강과 대화하는 장면은 쿠아론의 아들로 공동 각본가로 이름을 올린 요나스 쿠아론의 단편작 '아닌강'에서 아닌강의 시점으로 다시 그려진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라비티 DVD, 블루레이 타이틀에 포함될 듯. 아닌감?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3 Warner Bro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그래비티 (2013)

Gravity 
8
감독
알폰소 쿠아론
출연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에드 해리스, 오르토 이그나티우센, 폴 샤마
정보
SF, 드라마 | 미국 | 90 분 | 2013-10-17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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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Pictures


<스탭>

◈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 각본: 트레비스 비챔(Travis Beacham), 길예르모 델 토로
◈ 제작: 토마스 툴(Thomas Tull), 존 제시니(Jon Jashni), 메리 패어런트(Mary Parent)


<줄거리> 

근 미래, 카이쥬(Kaiju)라 불리우는 외계 거대생물체의 위협이 시작되었다. 태평양 심해의 포탈에서 나타난 그들은 무차별적으로 인류를 습격했고, 인류는 카이쥬의 압도적인 공포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위협에 직면하여 힘을 합하기 시작한 인류는 거대한 카이쥬에 맞서기 위해 과학력을 모아 거대 인간형 병기 '예거(Jaeger)"를 만들고, 거대한 예거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기 위해 두 명의 파일럿이 서로의 정신을 공유하는 '드리프트'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드리프트 시스템과 막강한 예거의 전투력으로 세계 각지의 카이쥬들은 하나 둘 격퇴되기 시작하고, 이제 예거와 파일럿들은 인류의 구원자이자 히어로로 거듭나게 된다.

얀시 베켓(디에고 클래튼호프 분)와 롤리 베켓(챨리 헌냄 분) 형제는 예거 '집시 데인저'의 파일럿이었다. 바다 한복판에서 펼쳐진 카이쥬와 혈투에 의해 형 얀시를 잃고 반파된 예거를 혼자서 조종해 해안까지 다다른 롤리는 그 트라우마로 인해 파일럿을 그만두고 카이쥬를 방어하기 위한 장벽 공사의 인부로 살고 있었다. 인류의 지도자들이 갈수록 강해지는 카이쥬의 공격에 한계를 느끼고 예거 계획을 취소하고 장벽 만들기에 전력을 쏟자 예거 부대의 사령관 펜터코스트(이드리스 엘바 분)는 남아있는 예거들과 파일럿을 모아 카이쥬를 향한 최후의 반격을 시도하기 위해 은퇴한 롤리를 찾아나서는데...


마니아를 위한 압도적인 스케일의 헐리우드식 특촬물

'시픽 림(2013)'의 압도적인 예고편이 인터넷에 소개되기 시작하자 소년 시절의 로망으로 로봇을 품고 살았던 마니아들은 '트랜스포머(2007)' 이후 한동안 명맥을 잃었던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실사영화에 대한 또다른 기대로 이 영화의 개봉을 학수고대 했을 듯 싶다. 만화영화 블로깅을 취미로 삼고, 어린 시절부터 거대 로봇의 로망에 몸을 맡긴 체 중년이 되어서도 가끔씩 프라모델을 사면서 그 끈을 놓치않고 사는 글쓴이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 트랜스포머가 보여준 실사로 살아 움직이는 로봇을 넘어 아니메에서 보았던 거대 로봇이 미지의 괴수와 싸운다는 테마 하나만으로도, 퍼시픽 림은 분명 마니아들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극장을 사수해야할 가치가 있는 물건인 셈이다.

트랜스포머 이후 활발했던 거대로봇 실사영화의 흐름이 한동안 주춤하고 있는 (마니아들에게는) 안타까운 현상은 그만큼 이 장르가 실사영화로 이식되기에는 여러가지 난제를 갖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아니메에 기원을 둔 거대로봇은 그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로컬라이징이 그닥 쉽지 않은 마니아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아니메 스타일에 충실하면 대중성을 잃고, 대중성에 충실하면 특유의 색깔을 잃은 이도저도 아닌 물건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북미 TV 시리즈로 오랜 세월동안 자연스럽게 로컬라이징이 되어온 트랜스포머의 경우는 운이 좋았던 셈이랄까.

실사영화로의 이식이 어렵다는 것은 해당 장르에 대한 스탭들의 이해도도 한 몫을 한다. 한마디로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감독이 이런 마니아적인 소재를 실사로 이식하는 작업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벤져스(2012)'의 죠스 웨던이 마블 코믹스의 열렬한 팬이었이다는 것은 이를 증명하는 사례이며, 그런 점에서 길예르모 델 토로는 이 장르를 실사영화로 이식하기에는 적합한 연출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로봇 아니메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을 연상시키는 격납고와 거대 로봇의 움직임을 실감나게 표현해낸 육중한 연출, 흡사 '자이언트 로보(1991)'처럼 디지털 방식의 동력이 아닌 원자로가 장착된 아날로그 방식이라는 점 등 여러 장면에서 로봇 아니메의 향수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퍼시픽 림은 디테일하게는 로봇 아니메의 많은 장면과 설정들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특촬물(특수촬영물)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외계에서 온 거대 괴수와 거대 히어로의 대결은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울트라맨(1966)'의 구도를 따르고 있으며, 일본식 특촬물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혼다 이치로의 '고지라(1954)'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로봇 아니메와 특촬물, 이 일본의 양대 서브컬쳐를 오마쥬한 퍼시픽 림은 과연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와 결합하여 대중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퍼시픽 림이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느냐는 박스오피스의 수익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Box Office Mojo(바로가기)가 집계한 퍼시픽 림의 월드 와이드 수익은 현재 약 1억8천만 달러로 제작비 1억9천만 달러에 거의 근접한 수치를 기록 중이다. 개봉한지 약 2주가 지났음을 감안할 때 이는 실망스러운 수치라 하겠다. 북미 박스오피스 권에서도 퍼시픽림은 주말 수익 1천6백만 달러로 18일 개봉한 'RED2(2013)'의 1천8백만 달러에 뒤쳐지며 현재 6위에 머물고 있다. 이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퍼시픽 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어내는데는 사실상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퍼시픽 림의 흥행이 저조한 이유는 마니악한(물론, 어떤 관점에서 일본 서브컬쳐는 마니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는 않는다) 일본 서브컬쳐와 블록버스터의 조합이 실패했기 때문일까. 일본 아니메를 오랫동안 보아온 마니악한 입장에서 퍼시픽 림의 아니메/특촬물의 실사영화 이식은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압도적인 중량감과 스케일로 펼쳐지는 거대로봇 예거와 카이쥬와의 혈투는 그 장면만을 놓고 볼 때 단연 극장에서 볼만한 가치를 지닌 장면들이다. 힘과 힘의 격돌 뿐만 아니라 위기의 순간 튀어나오눈 예거의 각종 무기 시스템, 지형지물을 이용한 카이쥬와의 혈투 등은 그야말로 마니아들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에게도 탄성을 가져올만한 부분. 이 액션 시퀀스에서만큼은 직전에 개봉해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2013)'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스케일의 로봇과 괴수의 액션 사이사이를 이어가는 이야기의 얼개와 밀도는 다소 황당할 정도로 엉성한데, 바로 이것이 퍼시픽 림이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캐스팅에서 보다 유명한 배우들이 기용되었다면 어느 정도 스토리의 단점들이 감춰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보인다. 무명의 인물을 기용하고도 대히트한 블록버스터의 예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특히, 마코 역을 맡은 기쿠치 린코는 그녀의 연기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작품의 캐릭터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듯 싶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트라우마와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과정이 영화에서 너무 안이하게 그려져 마코 자체가 스토리의 가장 큰 오점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안타깝다.

주인공인 챨리 허냄은 이런 부실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주인공으로서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실상 퍼시픽 림의 주인공은 예거와 카이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형을 잃은 트라우마와 마코와의 관계형성에서 충분히 관객들에게 어필할만한 구도를 만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카이쥬의 등장부터 완벽한 격퇴가 러닝타임 안에 모두 그려지면서 그 기회를 잃은 듯 싶다. 그 와중에 등장한 두 박사나 특히 특별출연에 가까운 론 펄만의 하니발 챠우는 가뜩이나 풀어갈 숙제가 많은 이야기에 커다란 짐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론 펄만의 팬이지만, 이 작품에서 론 펄만은 등장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니발 챠우의 에피소드를 삭제하고 메인 스토리에 치중했다면 좀 더 이야기 구조가 짜임새 있어지지는 않았을까.

퍼시픽 림은 극단의 성향을 보여준 작품이다. 거대 로봇과 괴수라는 마니아적인 소재를 블록버스터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영상미로 재현한 부분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지만 그로 인해 감수해야만 하는 스토리의 부실함은 그만큼 안타깝다. 이런 류의 오락물, 특히나 로봇 또는 특촬물에 관심이 큰 마니아들을 위한 장르물에서 스토리의 완성도가 크게 문제가 안될지는 몰라도 퍼시픽 림이 완성도 높은 오락물로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최소한의 스토리 완성도는 보장되어야 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2억불짜리 오마주의 그저그런 흥행 성적이 추후 이런 장르의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길예르모 감독의 도전은 절반의 성공 혹은 안타까운 실패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 Warner Bros. Pictures


덧붙임) 객관적인 이 영화의 평점을 이야기해보라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겠지만, 주관적인 평점을 이야기하라면 5점 만점에 4점이다. 그러니까 마니아 층에는 나름 어필한 작품인 셈이다.

덧붙임) 카이주에 매달려 하늘로 끌려가는 집시의 비장의 무기인 검이 나오는 부분은 말 그대로 델 토로의 오덕스러움이 만개하는 장면. 검 모양의 아이콘이 그려진 집시의 버튼은 마치 '마징가 Z(1972)'와 같은 슈퍼 로봇의 그것을 연상시키며, 조각조각 나누어져 있던 검이 하나의 완전한 검으로 연결되는 모습은 흡사 '기갑계 가리안(1984)'이나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의 데자뷰가 느껴진다.

덧붙임) 마코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일본의 시가지와 카이쥬의 습격은 특촬물의 향수가 상당히 진하게 베어 나오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사실 오마주 그 자체나 다름없는 영화다. 그런 점에서 트랜스포머와는 확실히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rner Bro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퍼시픽 림 (2013)

Pacific Rim 
7.2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찰리 헌냄, 이드리스 엘바, 키쿠치 린코, 찰리 데이, 로버트 카진스키
정보
SF | 미국 | 131 분 | 2013-07-11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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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Pictures

<스탭>

◈ 감독: 잭 스나이더(Zack Snyder)
◈ 각본: 데이빗 S. 고이어(David S. Goyer), 크리스토퍼 놀란
◈ 제작: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챨스 로번, 에마 토마스, 데보라 스나이더


<줄거리> 

무차별적인 자원개발로 붕괴의 위기에 놓은 행성 크립톤. 크립톤 최고의 과학자 조 엘(러셀 크로우 분)은 원로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크립톤의 정수를 담은 코덱스를 자신에게 맡겨 달라 제안하지만, 원로들은 조 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때마침 과격파인 조드 장군(마이클 섀논 분)이 이끄는 쿠데타 군이 원로원을 급습하고, 혼란을 틈타 조 엘은 코덱스를 탈취하여 자신의 거처로 급히 피신한다. 인공적으로 출산을 조절하는 크립톤에서 자연 출산으로 태어난 그의 갓난 아들 칼 엘(헨리 카빌 분)과 코덱스를 태양계에 위치한 행성 지구로 피신시키려는 조 엘 부부. 그러나, 칼 엘이 탄 비행선이 출발하기 직전, 조드 장군의 반란군이 조 엘의 거처를 급습하고 사투 끝에 간신히 아들을 떠나보낸 조 엘은 그만 조드에 의해 숨을 거두고 만다.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고 조드 장군과 쿠데타 군은 원로원에 의해 팬텀 존에 유배되는 형벌에 처해진다. 하지만, 조 엘의 예언대로 크립톤은 결국 멸망에 이르르고, 크립톤의 마지막 생존자 칼 엘은 코덱스와 함께 낯선 행성인 지구에 도착하게 된다. 그를 처음 발견하는 조나단 켄트(케빈 코스트너 분)와 마사 켄트(다이안 레인 분)에 의해 칼 엘은 클라크 켄트라는 이름의 지구인으로 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태양에 의해 세포가 강화된 클라크는 평범한 지구인과는 다른 초능력을 보유하게 되고,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체 방황을 거듭하게 되는데...


SF로 풀어낸 신화적 이야기, 일말의 아쉬움을 남기다.

금으로부터 약 30여년전인 80년대 초반 쯤일까, 리차드 도너의 슈퍼맨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흥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존 윌리암스의 시대를 초월하는 테마와 함께 시작하는 '슈퍼맨(1978)'은 비록 TV 브라운관에서의 시청이었지만, 당시 어린 나에게는 강렬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엘로스에게 있어서 슈퍼맨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와 함께 이제까지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보아온 영화 시리즈이기도 한데, 슈퍼맨은 미국의 히어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아이들에게는 상당한 임팩트를 준 캐릭터였음을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슈퍼맨의 첫 극장영화는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서만 알려져 있던 슈퍼맨이라는 만화 주인공을 전세계에 깊이 각인시킨 장본인이다. 비록 다른 나라의 만화 캐릭터이지만, 영화라는 영상매체를 통해 슈퍼맨은 글로벌한 대중 문화의 아이콘으로 수십년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남게 되었으며, 굳이 코믹스의 팬이 아니더라도 슈퍼맨과 그를 연기한 故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두 인물은 이제 미국인을 포함하여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신화적인, 혹은 상징적인 무언가로 자리매김했다고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신화가 되어버린 슈퍼맨과 크리스토퍼 리브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쥬였던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2006)'가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이것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많은 이들이 슈퍼맨에게 걸었던 기대 심리를 관점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엘로스의 관점에서 싱어의 슈퍼맨은 꽤 잘만든 '오마쥬'였다. 물론, 많은 한국 관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 하지만)로 막을 내렸을 때, 이제 DC의 간판 히어로는 슈퍼맨 보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새롭게 그려진 배트맨으로 바뀐 듯 보였다. 더 이상 빨갛고 파란 스판 덱스를 입은 우스꽝스런 철의 사나이가 등장할 무대는 그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히어로 장르 무비에서조차 없는 듯 싶었으며, 더군다나 2010년대에 이르러 히어로 장르의 주도권은 DC가 아닌 라이벌 마블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너 감독에 의해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코믹북 히어로가 미국을 대표하는 신화적인 캐릭터로 재창조된 후부터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슈퍼맨은 끝까지 잊지 않고 싶은 노스텔지어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세계화에 의해 그 미국적인 색깔이 비판받는다 할지라도 슈퍼맨은 많은 이들에게 그러한 존재이고 그러한 컨텐츠는 아닐까. 그리고 결국 그러한 사람들의 바람이 모아져 마침내 2013년 강철의 사나이가 우리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배트맨 시리즈를 완벽하게 부활시킨 각본가 데이빗 S. 고이어와 그의 단짝(?)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맨 오브 스틸(2013)'에 참여하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급상승했던 것이 사실이다. 놀란이 감독을 맡지 않더라도 고이어의 각본이라면 충분히 슈퍼맨을 매력적으로 그려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비록 몇 차례의 작품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잭 스나이더가 감독이었지만, 그의 영상 미학 만큼은 계속 인상적으로 여겨왔기에 스토리만 잘 받쳐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과연 맨 오브 스틸은 이 기대를 100% 충족한 영화일까.


고이어와 스나이더, 그리고 놀란이 그려낸 슈퍼맨은 우선, 기존의 슈퍼맨 시리즈를 다시금 리부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크립톤에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데, 이미 도너 감독이 거의 완벽하게 그려냈던 설정에 대한 고이어판 해석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물론,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인상적인 크립톤의 모습과 말론 블란도의 '조 엘'이 보여준 카리스마를 넘어서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퍼스트이자 베스트였던 것을 재해석해야하는 난제를 풀어낸 이번 방식은 오리지널을 능가하진 못했어도 충분히 준수한 모습이었으며, 러셀 크로우의 '조 엘'은 블란도의 그것을 넘어서지는 못해도 충분히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

슈퍼맨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한 편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맨 오브 스틸은 사실 개봉 전부터 이 거대한 이야기를 한 편 안에 다 담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스토리에 치중하면 볼거리를 상실한 드라마가 되어버릴 것이고, 볼거리에 치중하다는 스토리의 밀도가 떨어진 그저 그런 블록버스터에 그치지 않겠는가. 그렇게 볼 때 맨 오브 스틸은 주어진 러닝타임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각본이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시간 순에 의한 전개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클라크가 과거를 부분부분 회상(플래쉬 백)하면서 관객들에게 그의 이방인으로서의 삶과 고뇌를 풀이하는 부분은 많은 것을 담아내야 했던 이 영화에 있어서 적절한 선택이었다. 다만, 그가 방랑의 길에서 지구를 구원하는 메시아로 재탄생하기 위한 심경의 변화를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에는 아무래도 짧았던 것이 사실이고, 마찬가지로 히로인인 로이스 레인과의 유대관계가 깊어지는 부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SF 장르로 슈퍼맨이라는 히어로물을 풀어낸 모양새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다. 원 시리즈만큼 독창적이진 않지만 크립톤 행성의 묘사와, 조드 장군의 일행이 지구를 침략하는 부분도 인상적. 다만, 많은 SF 영화들, 특히 최근에 개봉했던 작품들('우주전쟁', '트랜스포머', '스카이라인' 등등)이 반복적으로 보여준 모습이다보니 다소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이와는 별개로 연출 부분에서도 식상한 점들이 눈에 띄는데, 기존의 스나이더 식 슬로우 액션이 사라진 대신 급격스러운 줌 인으로 마치 핸드 헬드를 연상시키는 촬영기법은 분명 현장감을 더해주기는 했지만, 이미 '아바타(2009)'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방식이다보니 그 역시 다소 신선도가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운 설정과 멋진 영상기법이 펼쳐지고 있지만, 독창적인 면이 부족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고편을 통해 많은 이들을 열광시킨 슈퍼맨의 강렬한 액션은 확실히 압도적인 스펙타클함으로 관객들을 빠져들게 한다. 이제껏 보아온 모든 히어로 영화들 중에서 그 강력함과 스피드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비교적 최근 히어로물인 '어벤져스(2012)'와 비교하면 그 흐름이 단조롭다. 파워는 대단하지만 그 세기(디테일)가 모자란 셈이다. 상당히 몰입하며 감상한 것은 분명한데, 끝나고 나서 뭔가 알 수 없는 아쉬움을 남겼다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조드 장군과 슈퍼맨의 라스트 클라이막스는 그 파괴적이고 압도적인 힘의 대결만큼은 기대를 넘어섰지만 영화 전체적인 맥락 면에서는 다소 호흡을 끊는 부분이 있다.

맨 오브 스틸은 신화적인 초인의 이야기를 상당히 고급스럽고 또한 흥미진진하게 풀이했다. 다만, 영웅의 탄생과 성장, 방황과 각성, 그리고 세상의 구원을 모두 한편의 이야기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로 인한 캐릭터의 소비도 매우 아쉬운데, 데일리 플래닛의 편집장인 페리 화이트역의 로렌스 피쉬번과 같은 인물은 실제 캐릭터나 배우의 비중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에서는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다만, 맨 오브 스틸의 성공이 확실해 보이는 지금, 1편이 성공 여부에 따라 후속편을 제작한다는 워너의 기획이 실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이 캐릭터들은 후속 시리즈에서 제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조나단 켄트로 분한 케빈 코스트너도 마찬가지. 비록 클라크의 회상으로 계속 얼굴을 내밀지만, 인상적인 아버지의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등장시간이 짧아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함은 아쉽기 그지 없다.

여러가지 인상적인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맨 오브 스틸의 완성도는 아쉬움이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이야기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고이어-스나이더의 투톱 시스템이 상당히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맨 오브 스틸의 완벽한 평가는 3부작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가 끝난 즈음에야 좀 더 확실해질지도 모르겠다. 완성도에서는 일말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SF 영화로 재탄생한 슈퍼맨의 리부트는 꽤 만족스러운 편이다.

ⓒ Warner Bros. Pictures

덧붙임) 맨 오브 스틸은 어떤 면에서 '매트릭스'와 맞닿아 있다. 자연출생이 아닌 인공 수정란에서 태어나는 크립톤인의 설정, 지구를 테라포밍하기 위해 지표를 꿰뚫는 크립톤의 우주선 등은 매트릭스의 그것과 닮은 부분이 있으며, 심지어 로렌스 피쉬번과 함께 스완익 장군으로 등장하는 해리 레닉스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락 장군을 연기했던 인물이다.

덧붙임) 비록, 신화적인 존 윌리암스의 테마가 구축한 아성과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만, 한스 짐머의 테마는 맨 오브 스틸과는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그만큼 이번 슈퍼맨은 어두운 편이었고, 그것이 기존 팬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측면도 있을 듯.

덧붙임) '이모탈스(2011)'에서 헨리 카빌을 보는 순간, 그전까지는 반신반의로 생각했던 그가 슈퍼맨에 상당히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른건 몰라도 슈퍼맨의 캐스팅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덧붙임) 다이안 레인. 매혹적인 미모의 이 여배우조차 세월의 흐름에는 어쩔 수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오히려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체 마사 켄트를 연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비록 짧은 등장이었지만 꽤 인상적이었다.

덧붙임) 조드 장군 역을 맡은 마이클 섀논을 보는 순간, 정웅인 씨가 오버랩된 것은 나뿐만이었을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rner Bro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맨 오브 스틸 (2013)

Man of Steel 
7.5
감독
잭 스나이더
출연
헨리 카빌, 에이미 아담스, 마이클 섀넌, 케빈 코스트너, 다이안 레인
정보
액션, 어드벤처, 판타지 | 미국 | 143 분 | 2013-06-13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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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Marvel Studios


<스탭>

◈ 감독: 쉐인 블랙(Shane Black)
◈ 각본: 드루 피어스(Drew Pearce), 쉐인 블랙
◈ 제작: 케빈 파이기(Kevin Feige)
◈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 DMG 엔터테인먼트, 월드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쳐스


<줄거리>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1999년 세기말 파티에 매혹적인 여과학자 마야(레베카 홀 분)와 함께 참석한다. 마침 이곳에 남루한 차림의 과학자 앨드리치 킬리언(가이 피어스 분)이 스타크를 찾아온다. 자신의 회사인 AIM에 대해 열띈 설명을 늘어놓는 킬리언이 귀찮았던 토니는 수 분 뒤에 옥상에서 만나자는 거짓 약속으로 그를 바람 맞힌다. 그리고 1999년의 그 밤은 그에게 완전히 잊혀져버린 옛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로부터 수년, 어벤져스와 함께 외계인 치타우리의 침공을 극적으로 막아낸 스타크는 그로 인해 심한 불면증과 불안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불안감을 잊기 위해 더 강력한 아이언맨 수트를 만드는 것에 열중하는 토니. 그로 인해 연인인 페퍼(귀네스 팰트로 분)와도 종종 마찰을 일으키는 등, 스타크의 사생활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스타크 앞에 스스로를 만다린이라 칭하는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벤 킹슬리 분)가 등장한다. 그는 파편이 전혀 남지 않는 정체불명의 폭탄을 사용하여 미국 사회를 공포에 빠트리는데...


엔터테인먼트만으로는 3부작 중 최고의 모습.

'벤져스(2012)'는 2008년부터 시작된 마블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대단원이기도 했지만, 이후로도 계속될 마블 히어로 월드의 두번째 단계를 위한 관문이기도 했다. 어벤져스로 인해 비로소 마블의 히어로 월드는 이전까지와는 달리 거대한 한 편의 세계관으로 영화팬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시작되는 모든 마블산 히어로 영화는 곧 마블 히어로 월드의 한 단면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지워진다.

어벤져스의 1편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자연스레 이어질 마블의 두 번째 페이즈는 팬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제 마블의 히어로 무비는 그저 한 편 한 편이 어찌되는가 보다는 그 한 편이 이후에 미칠 파급효과와 인과관계까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좀 더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이 두 번째 페이즈의 첫 단추를 아이언맨이 채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마블 히어로 월드의 첫 시작 역시 아이언맨이었으니 말이다.

'아이언맨 3(2013)'는 그런 면에서 마블의 두 번째 페이즈를 여는 성공적인 시작과 어벤져스의 열기를 이어가는 멋진 가교로, 그리고 삼부작으로 만들어지면서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성공적인 시리즈 히어로 무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속편으로 유감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평가는 레전드가 되어버린 여타의 히어로 영화들과 비교하기에 부족할지는 몰라도 아이언맨 3는 마블 히어로 월드와 어벤져스의 지속적인 성공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멋진 결과물이 되었다는 것만큼은 강한 긍정을 표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감독이 1편과 2편의 존 파브로에서 쉐인 블랙으로 교체되었지만, 시리즈는 커다란 부침이 없는 것 같다. 특히, 블랙이 '리썰 웨폰(1987)', '리썰 웨폰 2(1989)'의 각본가라는 점을 상기하면 오히려 이번 3편은 앞선 두 편에 비해 보다 더 짜임새 있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영화로 변모했음을 느낄 수 있다(블랙은 아이언맨 3에서 연출 겸 공동 각본가로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그가 '키스키스 뱅뱅(2005)'을 통해 이미 로다주(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호흡을 맞춰봤다는 것도 호재. 재미있는 것은 전편의 감독이자 경호원 호건 역의 존 파브로가 3편에도 출연하여 비교적 극 초반부에 이야기 중심에서 멀어진다는 점. 블랙으로 감독이 바뀐 부분과 어울려 이 장면은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파브로는 감독 대신 제작 프로듀서로 작품에 참여한다)


어벤져스 직후에 등장한 마블의 첫 히어로 시리즈이지만, 사실 아이언맨 3의 내용 자체는 어벤져스를 위한 가교나 그 어떤 복선과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치타우리의 침공 이후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 토니 스타크만의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물론, 국내에서 아이언 맨의 인기가 여타 히어로 영화들과 비교하여 좀 더 높다는 어드밴티지가 있지만, 한국의 흥행 성과가 단순히 아이언 맨이나 로다주에 대한 충성도에 의한 결과는 아닌 것이 당연할만큼 이 영화는 재미있다.

특히,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수트를 입고 아이언맨으로 변한 토니가 아닌 토니 그 자신에 보다 더 포커스를 맞춘 영화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전작에 비해 보다 더 로다주의 매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 측면에서는 전작들을 능가하는 스펙타클함을 보여주는데, 특히 초반부 만다린의 습격으로 토니의 저택이 붕괴되는 부분은 어벤져스에서 보여주었던 스케일 큰 액션에서 이어지는 시각적 쾌감과 서스펜스를 선사하고 있다. 익스트리미스로 인해 압도적인 힘을 얻게된 병사들과의 사투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액션 전개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서 스타크의 빠른 판단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아슬아슬함을 비교적 잘 묘사하고 있다.

감독이 교체되었지만 전편에서부터 이어져온 아이언맨만의 개그는 본편에서도 여전하다. 개인적으로 쉐인 블랙의 아이언맨이 존 파브로의 아이언맨보다는 좀 더 낫다는 생각이고, 이번 3편의 성공으로 인해 아이언맨 4편의 전망 역시 밝아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갈수록 커져가는 로다주의 몸값을 마블이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도 있지만, 이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서 아이언맨을 띄어낸다는 것은 조니 뎁을 이야기할 때 잭 스패로우를 언급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만큼 스타크와 다우니는 동일시되고 있으며, 그것이 아이언맨의 가장 중요한 성공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수트보다는 스타크에게 중점을 두었던 이번 3편의 선택은 옳은 결정이었다 보인다.

그렇지만 제법 인상적인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히로인인 페퍼의 엔딩에서의 역할이다. 어느 정도 현실적인 부분과 적정한 타협을 이어가던 아이언맨 3편에서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 또한 어벤져스에서 토르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던 아이언 맨의 수트가 3편에서는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한 강화인간들에 의해 맥없이 파괴되는 부분도 기존 설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엔딩 스탭롤 이후의 쿠키 영상을 기대했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별로였다는 점 또한 아쉬움. 어벤져스의 쿠키 영상에서 히어로들이 슈와마를 먹는 만큼 일상적인 이야기로 꾸며진 아이언맨 3의 쿠키 영상은 페이즈 2의 시작을 여는 작품의 것으로는 다소 미흡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쉐인 블랙은 마블의 히어로 월드에 속한 아이언맨을 연출했다기보다는 스타크에 집중한 좀 더 대중적인 아이언맨을 보여준 것은 아닌가 싶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3 Marvel Studios에게 있습니다.




아이언맨 3 (2013)

Iron Man 3 
7.9
감독
쉐인 블랙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기네스 팰트로, 돈 치들, 가이 피어스, 벤 킹슬리
정보
액션, SF | 미국 | 130 분 | 2013-04-25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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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스탭>

◈ 감독: 피터 잭슨(Peter Jackson)
◈ 원작: J.R.R 톨킨(Tolkien)의 '호빗'
◈ 제작: 뉴 라인 시네마, MGM, 워너 브러더스


<줄거리> 

111번째의 생일을 맞은 호빗족의 원로 빌보 베긴스. 그는 자신이 60년 전에 겪었던 잊을 수 없었던 그 모험을 글로 남기기로 결심한다. 그의 모험은 동부의 외로운 산 지하에 터전을 잡은 난쟁이들의 위대한 왕국 에레보르와 연관이 있다. 불멸의 두린의 피를 이어받은 왕가의 마지막 적통이자 난쟁이의 반지의 정당한 소유자인 스로르의 손자, 에레보르 왕 스라르의 아들인 소린 왕자는 황금용 스마우그의 침략으로 자신의 왕국 에레보르를 등지고 십수명의 가신들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드워프이다. 그는 스마우그에게서 에레보르를 되찾고 자신의 왕국을 재건하겠다는 일념 하에 뜻을 같이할 동지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이 소린의 일행에 회색의 마법사인 미스란디르, 즉 간달프도 참여하게 된다. 

완벽하게 잠들지 않은 악의 존재를 염려하던 간달프는 소린의 모험이 자신이 염려하는 일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 속에 소린과 뜻을 같이 하게 된다. 강인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고집스런 이 드워프 무리들의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간달프는 또 한명의 대원을 추천하게 되는데, 그는 샤이어에 사는 평화를 사랑하는 소인족 호빗 중의 한 명인 빌보 베긴스 였으니...


논란을 부른 삼부작의 첫시작, 반지의 제왕에는 못미치지만 준수한 완성도.

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3부작' 시리즈는 판타지 영화사를 새로이 쓴 기념비적인 시리즈다. 모든 판타지의 출발선이라 할 수 있는 톨킨 경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것도 그렇지만, 그 톨킨의 원작을 블록버스터 급 영화로 만들면서도 기존 블록버스터의 가벼움에 물들지 않았던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 판타지라는 장르 영화가 풍겨왔던 어린이용이라는 선입관에 묻히지 않고 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감동과 깊이를 보여주으며, 특수효과가 주는 눈요기 거리에 휩쓸리지 않고 스토리에 충실했다는 점 역시 반지의 제왕이 그저 그런 판타지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3부작으로 피터 잭슨은 B급 호러무비 감독에서 명감독의 칭호까지 얻게 되니, 잭슨에게, 판타지 영화에게, 그리고 (절대 영화화 되지는 못할 것만 같았던) 원작에게 있어서 반지의 제왕 3부작은 빛나는 이정표이자 전환점이었던 셈이다.

그런 반지의 제왕이 스크린에서 내려간지도 어언 10여년, 우리는 다시 한 번 중간계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될 또다른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그것이 2012년 12월부터 전세계적으로 상영을 시작한 '호빗, 뜻밖의 여정'(이하 뜻 밖의 여정)이다. 톨킨 경의 중간계를 세계관으로 삼은 소설 중 가장 먼저 쓰여진 소설 '호빗'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호빗이었던 프로도의 삼촌인 빌보를 주인공으로 삼아 전설의 난쟁이 왕국 에레보르와 황금용 스마우그를 둘러싼 빌보와 간달프, 그리고 드워프 왕자 소린을 필두로 한 12명의 드워프들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이다. 잭슨 감독은 이번에도 호빗을 3부작으로 제작하여 반지의 제왕과 마찬가지로 한꺼번에 3부를 제작한 뒤 1년 단위로 상영을 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톨키니스트들과 판타지 영화의 팬, 그리고 반지의 제왕을 인상깊게 보았던 이들에게 이는 3년 동안의 예약된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단, 3부는 현재 촬영중이다.)

반지의 제왕에 대한 영화화가 논의되던 90년대말부터 사실 호빗의 영화화는 피터 잭슨의 머리 속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당시 잭슨은 3부작으로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1부는 호빗, 그리고 2부와 3부는 반지의 제왕의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판권 문제로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호빗을 제외한 반지의 제왕만이 3부작으로 만들어져 먼저 공개되었던 것이다. 호빗의 판권을 사들인 MGM은 반지의 제왕을 제작한 뉴라인 시네마와 공동으로 호빗 시리즈를 제작하기로 하고 피터 잭슨을 제작 총지휘로, 그리고 '블레이드2', '헬보이', '판의 미로' 등으로 잘 알려진 길예르모 델 토로에게 감독을 의뢰하게 된다. 사실 개인적으로 델 토로-잭슨의 조합은 무척이나 기대되는 진용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환상의 투톱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MGM의 파산, 재정적인 문제로 지연되는 프로젝트에 불만을 품은 델 토로의 퇴장 등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던 호빗은 결국 잭슨을 다시금 감독으로 돌아오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반지의 제왕과는 다른 뉘앙스의 중간계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제작진의 의도는 아쉽게도 불발로 끝났지만, 기획 초기부터 이미 델 토로가 상당부분의 세계관과 이야기 구축에 참여했던 터라 호빗은 온전히 잭슨 식 중간계 이야기는 아닌 듯 싶다. 실제로 중간계의 사악한 크리쳐들은 반지의 제왕과 다소 다른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러한 부분은 델 토로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예를 들어, 워르그 같은 크리쳐는 델 토로의 주장으로 인해 반지의 제왕과 다른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변주가 일부 관객들에게는 다소 3D 만화영화 같다는 평을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된다. 사실 근래 들어 CG 만화영화와 CG 영화의 갭은 많이 줄어든 상황이라 이런 비평은 취향의 차이는 아닌가 싶다. 즉, 만화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무리없이 넘기겠지만, 사실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거슬린다고나 할까.


반지의 제왕 이후 영화계는 새로운 기술적 성취를 이루어 냈다. 3D와 HFR(High Frame Rate)이 그것인데, 3D와 IMAX 등은 '아바타'나 '인셉션' 등을 기점으로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지만, 뜻 밖의 여정이 최초로 선보인 HFR은 아직 관객들에게 완벽하게 어필하지는 못한 것 같다. 초당 48프레임으로 재생되는 영상은 분명 기존과는 다른 디테일과 선명도를 자랑했지만, 안타깝게도 TV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라는 혹평(?)을 듣고 있는 상황이다. 24프레임으로 상영되는 일반 디지털 버전으로 관람했기에 여기에서는 HFR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눌 수 없을 듯 싶지만,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후속편이나 앤디 서키스(골룸을 연기한 바로 그 배우)의 '동물농장' 등이 HFR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니 HFR의 가능성은 여전히 진행중으로 보인다.

뜻 밖의 여정은 기대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반지의 제왕을 능가하지는 못했다'라든지 '이야기가 너무 늘어지고 지루하다'라는 평 역시 만만치 않게 듣고 있다. 사실, 3부작의 1부만이 공개된 상황에서 지루하다라는 평은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반지의 제왕 역시 1편 '반지 원정대'가 등장했을 때 비슷한 평을 들었던 것을 상기하면, 뜻 밖의 여정이 보여준 첫 시작은 오히려 나쁘지 않다 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3부작으로 만들기에는 다소 빈약한 원작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오히려 3부작으로 이야기를 만들면서 잭슨이나 델 토로, 그리고 프란 월시, 필리파 보옌스가 창작해낸 이야기는 꽤나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호빗이라는 별도의 스토리를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로서 변주해낸 부분은 여러모로 팬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리라 본다.(갈라드리엘, 엘론드, 사루만 등 전작의 친숙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여 전 시리즈를 재미있게 본 많은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다만, 톨킨의 열렬한 팬이거나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열렬한 팬들, 그리고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일부 마니아들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가 가진 서사의 지루함은 어쩔 수 없는 맹점이다. 반지의 제왕 역시 3부작으로 만들어지면서 굉장히 긴 서사가 전개되는데, 이러한 부분은 보통 관객들에게는 꽤나 다가가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뜻 밖의 여정 역시 한계는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중간계의 세계 곳곳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이 길다는 점은 열렬한 팬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아닌가 싶다.

또한, 반지의 제왕보다 아무래도 작을 수 밖에 없는 스케일에 우려를 제기하는 이들도 많은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호빗 3부작이 꼭 반지의 제왕같은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서사적인 전쟁 드라마가 되어야할 이유는 없다고 보여진다. 오히려 그런 생각은 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거대 블록버스터 전쟁 드라마로 단정짓는 오류는 아닐까. 호빗 3부작은 반지의 제왕과는 다른 장대한 어드벤쳐로서 가치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3부에 이르르면 다섯부족의 전쟁 에피소드가 등장하면서 제법 큰 스케일의 전쟁 묘사도 등장하여 대미를 장식하겠지만 말이다.

뜻 밖의 여정을 비롯한 호빗 3부작 시리즈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원 시리즈이기도 한 반지의 제왕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대단원의 여정을 완벽하게 보여준 원 시리즈가 존재하는 이상, 호빗 3부작이 보여주는 스토리는 어쩔 수 없는 프리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이미 스타워즈 6부작이 보여준 모습이기도 한데, 나름의 예측이지만 호빗이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반지의 제왕을 넘어서기는 힘들겠지만, 호빗 3부작은 분명히 관객들에게 환상적인 중간계의 여정을 잘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인 뜻 밖의 여정은 분명 실망보다는 기대가 더 많았던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덧붙임1) 다들 지루하다고 하지만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의 확장판을 보고 싶다. 나에게 2시간 50분은 너무 짧았다.
덧붙임2)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전개가 반지의 원정대의 전개와 상당부분 비슷했다는 점이다. 리븐델을 방문하고, 깎아지른 절벽의 여정과 곧 이은 고블린의 지하소굴로의 여정 등은 놀랍게도 반지의 원정대의 여정과 유사하다.
덧붙임3) 절대반지를 빌보에게 빼앗기기 전의 골룸은 절대반지의 힘으로 인해 반지의 제왕의 골룸보다 훨씬 샤방샤방(?)하다. 
덧붙임4) 안타까운 것은 간달프 역의 이안 멕켈런 경이나 사루만의 크리스토퍼 리가 10년이 지나 오히려 프리퀄에서 더 노쇄해 보인다는 점. 분장도 하고 CG 처리도 했을텐데 흘러가는 세월을 어쩌지 못했나 싶은 안타까움이...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에게 있습니다.



호빗 : 뜻밖의 여정 (2012)

The Hobbit: An Unexpected Journey 
8.1
감독
피터 잭슨
출연
이안 맥켈런, 마틴 프리먼, 리차드 아미티지, 제임스 네스빗, 켄 스탓
정보
어드벤처, 판타지 | 미국, 뉴질랜드 | 169 분 | 2012-12-13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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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t Disney


<스탭>

◈ 감독/각본: 앤드류 스탠튼(Andrew Stanton)
◈ 원작: 에드가 라이스 버로우스(Edgar Rice Burroughs)의 '화성의 공주'
◈ 제작: 월트 디즈니 픽쳐스


<줄거리> 

지구에서는 화성이라 불리는 행성 바숨. 우리들이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곳 바숨에는 실제로 문명을 가진 외계종족들이 살고 있다. 바숨은 헬리움과 조당가 천년에 이르는 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조당가의 지배자 샙 단(도미닉 웨스트 분)이 예언자들에게 신의 무기를 받으면서 전황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호전적이고 사악한 샙 단의 조당가 앞에 헬리움은 패퇴를 거듭하고, 헬리움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주 데쟈 토리스(린 콜린스 분)을 샙 단과 혼인시키는 일 뿐인데...

한편, 화성에서 멀리 떨어진 지구에는 은퇴한 군인으로 거대한 금광을 발견한 부유한 탐험가 존 카터(테일러 키취 분)가 돌연 급사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카터의 유서에는 모든 재산을 자신의 조카인 에드가에게 맡긴다고 씌여 있었고, 결국 그의 장례식에 에드가는 영문도 모른체 불려오게 된다. 카터의 유해는 개인 무덤에 안장되었는데, 그곳은 오직 안에서만 문을 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변호사에게 카터의 저널을 넘겨받는 에드가. 거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카터의 놀라운 모험 이야기가 씌여져 있었는데...


완성도와 재미에 비해 크게 기대에 못미치는 흥행성적은 왜?

드가 라이스 버로우스의 1917년작 소설 '화성의 공주'(버로우스에게는 '타잔'이라는 또다른 마스터피스가 하나 더 있다. 존 카터와 타잔에게서 어딘가 유사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를 원작으로 삼은 '존 카터(2012)'는 버로우스가 창조한 바숨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로, 앞으로 이어질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서막을 알릴 작품이기도 했다. 만약, 존 카터가 흥행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면 바숨 시리즈는 적어도 3부작으로 제작에 들어갈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작비를 간신히 넘는 흥행성적을 거두면서 사실상 이 전설의 시리즈는 무려 100여년만의 영상화에도 불구하고 1회성 이벤트로 그치고 만다. 무엇이 이토록 이 작품을 실패작으로 만들게 했을까? 기대에 못미치는 시나리오? 부족한 연출력? 떨어지는 캐스팅 파워? 볼거리가 빈약한 특수효과? 

적어도 글쓴이가 이 작품을 감상했을 때 느꼈던 약점은 시나리오의 엉성함이나 부족한 연출력은 아니지 않나 싶다. 비록 극장에서 감상하지 못했지만 존 카터는 준수한 스토리텔링과 만족할만한 연출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니모를 찾아서(2003)'나 '월-E(2008)'를 연출했던 애니메이션 감독 앤드류 스탠튼의 첫 실사영화 연출작임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완성도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평하고 싶다. 존 카터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하는 도입부는 이제는 고전적인 모양새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편이다. 스토리의 전개도 친절하면서도 완급이 조절되어 잘 흐르는 느낌이다. 다만 카터와 데쟈, 그리고 솔라가 바숨을 여행하는 부분은 다소 안이한 흐름으로 인해 지루함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전체적인 느낌은 바숨 시리즈에게 큰 영향을 받았던 '스타워즈' 시리즈 중 타투인 행성에서의 모험을 연상시킨다. 

3D 영화로서의 효과는 2D로 감상했기에 평을 삼가하겠지만,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이 중론인데, 2D 관점에서의 특수효과나 미술부분은 준수하다. 다만, 화려한 나비 행성의 장관이 돋보였던, 역시 이 바숨 시리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진 '아바타(2009)'를 떠올리면 아무래도 황량한 사막이 주 배경인 바숨은 볼거리 부분에서 다소 부족한 부분도 있는 편이다. 발전된 CG로 인해 바숨의 이종족이자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대거 포진한 타르크 종족의 이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작품에 녹아들었고, 헬리움이나 조당가의 거대한 구조물과 그들의 비행선들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멋진 비주얼로 무장되어 있다. 모든 스페이스 오페라의 원조답게 존 카터의 설정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여타 엉성한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능가하는 이 매력적인 영화가 대중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디즈니 스스로도 이 작품을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 내놓지 못했을 만큼 이 영화는 자신감이 부족하다.(6월에 개봉예정이었던 존 카터는 2011년 1월 디즈니에 의해 3월로 개봉이 조정된다.) 그다지 네임밸류가 높지 않은 테일러 키취나 린 콜린스 등을 주역으로 쓴 것도 어찌보면 자신감이 부족했던 영화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캐스팅 파워가 영화의 완성도를 담보하지는 않지만, 자신감이 결여된 이 작품의 캐스팅 파워는 확실히 아쉬워 보인다. 하물며 악역인 샙 단마저도 인상적이지 못하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적인 캐릭터는 애석하게도 화성 강아지 울라다. 그만큼 인상적인 캐릭터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는 물론 캐스팅 미스 이전에 캐릭터 설정의 문제일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원작의 여러가지 고전적인 색체들을 현대적으로 각색해내기는 했지만, 스타워즈 류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이제는 한물간 트렌드라는 사실을 어떻게 보면 존 카터가 증명해준 셈이기도 하다. 화성의 지배하려는 잔인한 정복자와 그와 정략결혼 해야만 하는 비운의 공주, 그리고 지구에서 우연치 않게 화성으로 온 히어로와 같은 설정은 우리보다 장르 문학에 훨씬 우호적인 미국에서도 이제는 너무 식상한 소재는 아니었을까? 새로운 스타워즈 3부작 시리즈가 오리지널 3부작의 압도적인 명성을 등에 업고도 기대만큼의 흥행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은 트렌드가 변했음을 알리는 전조였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존 카터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은 너무 늦게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스타워즈 신 3부작 시리즈가 등장할 즈음인 2000년대 초반에만 나왔어도 지금 정도의 홀대를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존 카터를 디즈니가 제작했다는 점이다. 앤드류 스탠튼의 연출력은 훌륭한 편이지만(물론, 존 카터는 니모를 찾아서나 월-E와 같은 그의 대표작에 비해서는 평이한 것도 사실이다.) 실사영화라면 디즈니에서는 무리다. 기억해야할 것은 그 오랜 세월동안 디즈니가 제대로 성공시킨 실사영화 프렌차이즈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어벤져스는 디즈니의 손길이 닿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마블의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존 카터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스타워즈와 아바타와 직접 비교해 보면 이 작품이 가진 한계가 드러난다. 거대한 제국과 맞서 싸우는 제다이 기사와 반란군의 이야기를 다룬 스타워즈는 분명 존 카터보다 큰 스케일과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넘쳐난다. 반면, 아바타와 비교하면 스케일이나 캐릭터 등에서 아바타와 비슷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존 카터가 밀리는데 이는 액션에서는 확실하게 액션을, 드라마에서는 확실하게 드라마를 보여준 아바타가 평이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존 카터보다 밀도가 높고 임팩트가 강하기 때문이다. 스케일과 캐릭터, 그리고 디테일과 임팩트의 차이가 존 카터를 2% 아쉬운 원조 스페이스 오페라로 만든 셈이다.

하지만, 많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존 카터는 제법 볼만하다. 원작의 갖고 있는 매력을 이 작품은 나름대로 훌륭하게 재현해내지 않았나 싶으며, 순간적이지만 속편을 기대하기까지 했다면 너무 후한 평가일까.

ⓒ Walt Disney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lt Disney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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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Warner Bros


<스탭>

◈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 각본: 크리스토퍼 놀란, 죠나단 놀란(Jonathan Nolan)
◈ 제작: DC 코믹스, 레전더리 픽쳐스(Legendary Pictures), 신카피 필름(Syncopy Films), 워너 브러더스(배급)


<줄거리> 

조커와의 사투, 레이첼의 죽음, 그리고 하비 덴트의 비극적인 최후로부터 8년... 고담시는 하비 덴트의 죄를 대신 짊어진 배트맨(크리스찬 베일 분)의 희생으로 덴트법을 신설, 조직폭력배들을 일망타진하고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경찰청장이자 하비 덴트의 진실, 배트맨의 희생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고든 청장(게리 올드만 분)은 몇 번이나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평화로운 고담시의 모습을 보며 그 진실을 가슴에 묻어둘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거짓된 고담시의 평화는 계속될 것만 같았다.

8년 동안 자신의 저택에서 세상과 담을 쌓은 체 은둔해 오던 브루스 웨인. 하비 덴트와의 사투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된 웨인은 레이첼의 죽음이라는 크나큰 상실감을 가슴에 묻고 배트맨으로서의 모습 역시 봉인한 체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인의 등장과 함께 이 상처뿐인 평화와 웨인의 은둔 생활은 서서히 그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다소 아쉬운 완성도보다 더 아쉬운 것은 시리즈의 종결

트맨 시리즈 아니, 히어로 영화라는 장르를 새로운 화법으로 풀어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2008)'는 분명 히어로 영화의 범주를 넘어선 걸작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다크나이트는 범죄 느와르라는 영화장르에 히어로 영화의 미장센이 더해진 작품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만큼 배트맨 시리즈의 본연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있는 이질적인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맨 이야기의 중요한 설정들이 무리없이 영화 속에 녹아들어감으로써 배트맨의 팬들에게까지도 충분히 공감이 가능한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역시 놀란의 비범한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의 연속적인 대성공은 놀란을 좋은 감독에서 명감독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놓았다. 이제 그가 만드는 영화는 적어도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에 버금가는 수준일거야 라거나 그정도가 아니면 곤란하지 정도의 기대가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고나 할까. 이것은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론과 같은 블록버스터의 거장들이 공통적으로 짊어져야만 했던 숙명이기도 하다. 비록 그들과 출발점은 달랐다 해도 놀란 역시 스필버그나 카메론이 받아온 그 과도한 기대를 짊어져야 하는 순간이 온 셈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등장한 작품이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다크나이트라는 놀란표 배트맨 트릴로지의 최종장으로서, 그리고 이제까지 상승세로 일관해오던 놀란의 필모그라피 중에서 가장 큰 기대를 안고 등장한 신작으로서,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트 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를 탄생하게 한 놀란의 그 놀라운 감각이 과연 종언을 고하는 그의 마지막 배트맨 시리즈의 대미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의 성공이다. 아니 아트 블록버스터로서의 완성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다만 다크나이트나 인셉션이 보여주었던,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놀란의 영화 최대점에 못미칠 뿐이다.

ⓒ 2011 Warner Bros


이러한 감상은 많은 평론가부터 영화 블로거, 그리고 일반 팬들에 이르기까지 제법 공통적으로 느끼고 부분 같다. '역시 놀란, 하지만 다크나이트보다는 좀...' 이 정도가 이 영화에 대한 가장 대중적이고 다수결적인 평가가 아닐까. 시리즈의 대미 역시 훌륭하게 장식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아웃라인과 스토리의 흐름, 그리고 테마의 완성도 역시 3부작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히어로 영화 연작  시리즈 중 이제까지 어떤 시리즈도 이렇게 성공적인 완결을 보여준 예는 없다. 슈퍼맨 시리즈는 리차드 도너를 버림으로써 3부에 이르러 최악의 영화가 되었고, 팀 버튼의 배트맨 연작은 결국 죠엘 슈마허로 바톤 터치 되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시리즈도 마찬가지, 3부의 연출을 고사한 싱어 덕분(?)에 엑스맨 3부작도 그 완결은 심히 미약하였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 시리즈도 3부에 이르러 결국 많은 걸 잃어야만 했다.


여타의 히어로 연작 시리즈와 비교할 때, 아니 다른 모든 장르의 연작 시리즈와 비교해도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은 분명 놀라울 정도의 평균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즉 각 시리즈간 완성도의 편차가 크지 않다. 이는 단순히 전편보다 더 스케일이 크고 더 화려한 액션장면과 특수효과가 가미되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시리즈를 관통하는 스토리의 정합성,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충분히 공감이 가능토록 하는 개연성, 기승전결의 흐름과 극적인 전개, 그리고 허를 찌르는 반전에 이르기까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 시리즈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다크나이트를 넘어설 수 없었으며, 개인적으로는 분명 좋은 완성도임을 인정하면서도 실망이라는 단어를 자신있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만약,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3부와 4부로 나뉘어 졌다면, 아니 적어도 3시간에서 3시간 30분 정도의 러닝타임만 되었다면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그렇다하더라도 다크나이트를 능가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일말의 실망감을 극복해낸 보다 더 완벽한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러닝타임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스토리의 흐름이 지나치게 빠르고 호흡이 끊어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8년간의 은둔을 깨고 돌아온 배트맨, 그리고 그의 패배,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배트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도는 분명 극적이긴 하지만 2시간 45분이라는 시간 안에서는 그것이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새로운 빌런인 베인, 캣우먼 셀리나 카일, 젊은 경찰 존 블레이크 등 새로운 인물들에게도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시간이 할당되면서 각 에피소드들이 다크나이트가 보여준 정밀함을 보여내지 못한 것은 러닝타임에 대한 아쉬움을 더더욱 크게 하는 부분이다.

ⓒ 2011 Warner Bros


캐릭터의 설정에도 아쉬움이 있다. 특히 히로인의 경우가 그러한데 마리온 꼬틸라르를 제대로 활용해내지 못한 점이나 앤 해서웨이의 캣우먼이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에 방해가 되는 부분은 분명 놀란답지 못했다. 조커를 능가할 수는 없었지만, 톰 하디의 베인은 기대 이상의 아우라를 화면에 분출하며 강력한 빌런의 면모를 과시했음에도 이러한 베인마저 마지막에서는 납득하지 못하는 말로를 보여준다. 조커와 하비가 얼마나 극의 흐름을 극적으로 만들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전반적으로 캐스팅은 다크나이트와 인셉션 등 놀란의 대표작에 얼굴을 내민 단골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놀란 소속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작품인 듯한 느낌도 든다. 조셉 고든 레빗의 블레이크는 마지막에서 기대했던 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안타깝게도 놀란의 다크나이트가 여기서 끝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팬 서비스 정도에 그치고 만다.

한스 짐머의 웅장하고 어두운 음률을 바탕으로 구현해낸 고담 시와 다크나이트의 세상은 삭막하고 메마른 느낌을 완벽하게 전달해주면서 히어로 영화답지 않은 현실감을 영화에 부여한다. 아이맥스로 촬영해낸 압도적인 영상미는 3D CG와는 또다른 현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놀란과 그의 스탭들이 설계한 사운드와 영상미는 작품의 품격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느끼게 해준다. 스토리 외에도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보여준 많은 부분은 놀란표 영화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제 이 많은 것들은 배트맨 시리즈가 아닌 다른 영화에서 보여지겠지만.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히어로 영화의 스탠다드가 되지는 않겠지만, 히어로 영화가 어디까지 진중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걸작 시리즈로 기억될 것이다. 놀란이 물러난 뒤에도 배트맨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 후의 배트맨은 배트맨일 수는 있어도 다크나이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 2011 Warner Bros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Warner Bro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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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Marvel Studios


<스탭>

◈ 감독: 조스 위든
◈ 원작: 스탠 리 (마블 코믹스)
◈ 제작: 파라마운트 픽쳐스, 마블 스튜디오, 디즈니 (배급)


<시놉시스> 

음모를 꾸미고 왕위를 찬탈하려다 아스가르드에서 추방당한 로키(톰 히들스톤 분). 그는 추방 중에 또다른 외계종족 치타우리와 조우하게 된다. 무한한 에너지원인 큐브를 찾고 있던 그들에게 로키는 지구에 바로 그들이 찾던 큐브가 있음을 알려준다. 큐브를 가져다 주는 대신 지구를 정복하는데 힘을 빌려달라는 로키의 제안을 치타우리는 받아들이게 되고, 로키는 큐브가 숨겨져 있는 쉴드의 비밀 연구소로 향하게 된다.

한편, 큐브의 이상현상으로 쉴드의 연구소는 현재 긴급 대피 명령이 내려진 상태. 쉴드의 국장인 닉 퓨리(사무엘 L. 잭슨)와 암호명 '호크아이'인 에이전트 바튼(제레미 레너 분), 물리학자 셀빅 박사(스텔란 스카스가드 분)가 보는 앞에서 불안정한 큐브는 마침내 우주로의 포탈을 연다. 포탈을 통해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로키. 로키는 쉴드의 요원들을 간단하게 제압하고 바튼과 셀빅, 그리고 요원들의 정신을 지배하여 자신의 수하로 만든다. 큐브를 탈취한 로키가 연구소를 탈출하면서 쉴드의 연구소 역시 흔적도 없이 지하로 매몰되어버린다.

로키에게 탈취당한 큐브는 지구에게 미증유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퓨리는 폐기되었던 '어벤져스' 작전을 발동시킨다. 이것은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진 슈퍼 히어로들을 팀으로 모아 심각한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쉴드의 극비 작전이었으니...


수많은 캐릭터들을 잘 녹여낸 이야기는 수준급.

2008년 '아이언 맨(2008)'을 시작으로 '인크레더블 헐크(2008)', '아이언맨 2(2010)', '토르(2011)',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2011)'로 이어지던 마블 히어로 월드의 최종장이 마침내 그 전모를 드러내었다. 이제까지 등장시켰던 4명의 주인공급 히어로 아이언맨,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에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까지 가세한 사상초유의 6인의 히어로 물 '어벤져스(2012)'가 4월 25일부터 전세계 스크린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다섯 편의 영화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기꺼이 어벤져스를 위한 프롤로그(?)가 되었던 것은 영화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는 어벤져스에 대한 마블의 자신감과 각오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 슈퍼 히어로들이 몰려온다, 시작된 마블의 거대 프로젝트 (보러가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1954)'와 이를 오마쥬한 존 스터지스 감독의 '황야의 7인(1960)'과 같은 걸작들은 각각이 한 명의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는 다수의 영웅이 한 편에 모두 등장한다는 영화적 쾌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지만,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한무리로 등장하는 영화가 반드시 성공적인 결과를 보장하지 않음은 익히 잘 알려진 교훈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티븐 노링턴의 '젠틀맨 리그(2003)'를 보면 그러한 시도의 패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히어로가 모두 모여 있으되 팀워크는 엉망이고 이야기는 뒤죽박죽이다. 영화가 아닌 스포츠 게임을 봐도 스타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소위 '드림팀'이 항상 강팀이 아님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어벤져스는 어떨까. 과연 젠틀맨 리그와 같이 겉모습만 화려하고 속은 비어있는 여느 블록버스터와 별다를 바 없을까, 아니면 레전드들이 모두 모여 압도적인 힘과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미국 농구대표팀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까. 영화의 감상을 마친 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이 영화는 후자에 더 근접한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벤져스는 많은 공격수들이 모였음에도 멋진 팀플레이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화려한 볼거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잘 짜여진 이야기의 힘으로 어벤져스는 마블 히어로 월드의 최종장을 실로 멋지게 장식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어벤져스가 모든 히어로 무비의 완성형은 아니다. 히어로라는 만화 캐릭터를 성인들도 볼 수 있는 한편의 멋진 실사영화로 만들어냈던 리챠드 도너의 '슈퍼맨(1978)'이나, 기괴하면서도 독특하면서도 어두운 감각으로 히어로 무비를 새롭게 변주해냈던 팀 버튼의 '배트맨(1989)', 그리고 히어로물을 히어로물 이상의 현실적인 드라마로 완벽하게 바꾸어 낸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2008)' 등,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히어로 무비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명작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히어로 물의 본연의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오락물로서의 완성도는 탑 클래스 수준이다. 아직 미국과 중국 등에서 개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벤져스의 개봉 성적은 놀라울 정도이며, 슈퍼 히어로에 대체적으로 인색한 편인 한국에서조차 최단기간 160만 관객 달성이라는 기록까지 세우고 있다. 이는 단순히 볼거리가 화려하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 2012 Marvel Studios


디지털 3D IMAX는 분명 히어로들의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장면을 120% 즐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관람방법이다. 쉴드의 초대형 비행기지 '헬리케리어'의 거대한 스케일과 치타우리의 흉측한 비행괴물의 모습 등은 그야말로 3D에서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준다. '아바타(2009)' 이후 쏟아진 3D 영화의 홍수는 3D 컨텐츠와 디바이스 시장의 활성화를 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필요한 3D 영화들의 범람이라는 결과도 이끌어 내었다. 3D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영화들이 3D라는 타이틀을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면서 3D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수준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하지만, 어벤져스는 3D IMAX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3D 영화다. 오히려 어벤져스라는 타이틀 자체가 주는 파괴력 때문인지 3D는 뒷전으로 밀리기까지 했다.(영화랑 별 상관없는 내용까지 포스터의 선전문구로 활용하는 한국의 영화관계사들조차 어벤져스 포스터에서 3D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3D IMAX가 아니라면 별볼일 없는 영화일까? 만약, 어벤져스가 '압도적인 볼거리에만 기댄 영화'라면 이 가정은 사실이 될 터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은 NO라고 단언할 수 있다. 분명 3D IMAX는 이 영화의 플러스 요인을 가져다 준 수단이지만, 그것이 없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하고 멋지다. 그것은 바로 잘 짜여진 이야기의 힘이다. 굉장한 현실적 드라마나 생각할만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그냥 이 영화는 히어로 액션장르에 충실한 오락 영화다.), 오락영화로서, 그리고 히어로 무비로서 어벤져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잘 짜여져 있다. 특히, 4인의 메인 히어로(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와 2인의 서브 히어로(블랙 위도우, 호크아이), 여기에 조연급 캐릭터들(닉 퓨리, 콜슨, 마리아 힐 등)의 캐릭터 안배는 뛰어나다. 물론, 메인 빌런인 로키가 클라이막스에서 대대적인 침공을 가하는 치타우리와 수많은 히어로들의 사이에 끼이면서 존재감이 미약해진 아쉬움도 있지만, 이것이 전체적인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수많은 캐릭터들을 의미없이 소비하지 않으려 하면서 이야기는 제법 빡빡한 편이다. 그로 인해 전개가 느슨하지는 않지만 피로한 느낌도 다소 있다 하겠다.

이야기 덕분에 히어로들의 볼거리가 줄어들지도 않았다.(사실 이 영화는 액션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다만, 그 액션과 액션을 연결하는 이야기가 잘 만들어져 있다는 것) 앞서 등장한 일련의 마블 히어로 시리즈에서 거의 얼굴을 내밀지 못했던 호크아이는 서장을 멋지게 장식해 내면서 존재감을 과시했고, 토르와 아이언맨, 헐크와 토르의 맞대결이 등장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마블의 팬들에게 훌륭한 팬 서비스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각본의 구성은 실로 영민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듯. 이는 감독이자 각본가인 조스 웨든이 오랜 코믹스 팬이자 그 스스로도 코믹북 작가(직접 마블 코믹스의 엑스맨 시리즈 'Astonishing X Men'의 스토리를 집필할 정도로 전문만화 작가)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원작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캐릭터의 설정과 이야기의 구성을 그에 맞춰 디테일하게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결국 비주얼의 화려함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뼈대가 되었고, 이는 어벤져스가 마블 히어로 월드를 집대성한 멋진 히어로 무비라는 평가를 듣는 데 있어서 별다른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물론, 히어로 무비로서의 현실적 한계는 있다. 로키가 지구를 찬탈하려는 목적이 전작인 토르를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리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으며, 캐릭터 안배를 잘했다고는 하지만 역시 너무 많은 인물들의 등장은 이야기를 깊이있게 끌고 가기에는 여전히 방해가 되고 있다. 그나마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에 달하기 때문에 이것이 어느 정도 볼만한 수준으로 가지 않았나 싶은데, 페니웨이님에 따르면 실제로는 3시간 분량으로 제작된 영화라 하니 어쩌면 어벤져스의 진정한 참맛은 블루레이나 DVD에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부디 빨리 디렉터스 컷이 출시되길 바랄 뿐

어벤져스의 후속편은 이미 스타트를 끊었다고 전해진다. 마블이 굉장한 자신감을 갖고 작품을 끌어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마블의 계획이 아직까지는 큰 실패없이 착착 계획대로 진행되는 듯 싶다. 다만, 어벤져스의 대성공은 후속작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준 셈이다.(트랜스포머를 잊지 말자) 어벤져스는 이제까지 공개되었던 마블의 다섯편의 히어로 무비의 최종장이자 이제부터 시작될 마블 히어로 무비의 서장이 되었다. 어벤져스의 성공을 기점으로 한동안 헐리우드는 히어로 무비의 전성시대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2012년은 어떤 면에서 히어로 무비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여는 관문이 된 셈이다.

ⓒ 2012 Marvel Studios

덧붙임) 코비 스멀더스는 엘로스에게는 생소한 배우지만 영화와는 별개(?)로 맘에 쏙드는 캐스팅이었다. 왜냐구? 그건 영화를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갈 듯. 쉴드 유니폼이 그렇게 멋진 유니폼인지 그녀를 보고서야 알았다, 어흠.

덧붙임) 스칼렛 요한슨의 블랙 위도우는 개인적으로 아이언맨 2보다 살짝 아쉽다. 그건 그녀의 연기나 역할 때문이 아니라 길고 곱슬거리는 매혹적인 빨간머리가 단정한 단발로 바뀌었기 때문. 긴머리를 휘날리며 펼치는 아이언맨 2의 액션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런 듯. 

덧붙임) 엔딩 스크롤 중간에 등장하는 2편의 메인 빌런이 될거라 예상되는 그는 어벤져스의 팬들에게는 익숙한 바로 '그'이다. 그를 알아본 마블 팬들이라면 작은 탄성과 2편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고조되어 극장을 나왔을 듯.

덧붙임) 혹시나 하는 예상과 달리 모든 엔딩 스크롤이 올라간 뒤에는 별도의 서비스 씬이 등장하지 않는다. 새벽 1시에 상영하는 어벤져스를 감상한지라 영화가 끝나고 피로함을 참으면서 끝까지 자리를 고수했는데, 아무것도 안나오니 좀 허전...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2 Marvel Studios에게 있습니다.



어벤져스 (2012)

The Avengers 
8
감독
조스 웨던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헴스워스, 마크 러팔로, 크리스 에반스, 스칼렛 요한슨
정보
액션 | 미국 | 142 분 | 2012-04-26
글쓴이 평점  


[블루레이] 어벤져스 - 10점
조스 웨든 감독,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외 출연/월트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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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조니 뎁... 어쩌란 말인가.

ⓒ 2012 Warner Bros


2012년은 누가 뭐래도 히어로 무비의 해라 하겠지만, 그외에도 주목할만한 대작들이 연이어 극장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근래들어 2012년만큼 기대작들이 많은 해도 드물지 않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인데요. 초대작은 아니지만 눈길을 끄는 한편의 영화가 계절의 여왕 5월에 출격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바로 팀 버튼 감독-조니 뎁 주연의 '다크 쉐도우(2012)'죠.

올드팬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 다크 쉐도우는 1966년부터 1971년까지 ABC TV에서 절찬리에 방영했던 인기 TV 시리즈입니다. 방영된 에피소드는 무려 1,225화. 두말 할 것도 없는 인기 장수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다크 쉐도우는 1970년과 1971년 TV 시리즈를 만들었던 댄 커티스가 직접 감독을 맡아 두 편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합니다. 이후 20여년 동안 잠잠했다가 91년 TV 시리즈로 리메이크 되었지만, 인기를 끌지 못한 체 12화로 막을 내리고 맙니다. 이런 연유로 이 전설적인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는 미국에서도 올드팬 외에는 많지 않은 셈이죠.

영화에서의 이야기는 대충 이렇게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18세기 중반, 바람둥이 사업가인 바나바스 콜린스와 그의 가족들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를 해옵니다. 제 버릇 못 버리고 미국에서도 애정행각을 일삼는 바나바스, 그러다가 그만 마녀 안젤리크에게 실연의 상처를 안기고 맙니다. 마녀는 바나바스에게 저주를 내리고 그로 인해 뱀파이어로 변해버린 바나바스는 관 속에 갇힌 체 땅 속에 생매장 되고 말지요. 그로부터 무려 200여년 후인 1972년에 깨어난 바나바스, 콜린스 가문을 찾은 그는 폐허에 가깝게 변해버린 가문과 괴팍한 그의 후손들을 만나게 됩니다. 새로운 세상에의 적응, 가문의 부흥, 그리고 마녀 안젤리크와의 해묵은 악연까지... 그가 해결할 문제는 굉장히 많아 보이는군요.

팀 버튼의 다크 쉐도우는 호러 판타지라는 원작의 컨셉을 그대로 이어가되, 팀 버튼 만의 독특한 감성과 블랙 코미디가 버무려진 좀 더 대중적인 느낌으로 재탄생 될 듯 합니다. 이는 예고편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짐작이 가능한데요. 베리 화이트(Barry White)의 'You Are My First, My Last, My Everything'의 흥겨운 멜로디와 함께 펼쳐지는 조니 뎁의 익살스러운 연기는 실제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명불허전의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감독에게는 아쉬운 소리지만 조니 뎁의 한 명만으로도 이 영화는 꽤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인 셈입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이후로 조니 뎁은 팀 버튼의 페르소나라는 굴레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군요.


주인공 바나바스 콜린스 역의 조니 뎁 외에도 매력적인 배우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바나바스 콜린스에게 저주를 내린 마녀 안젤리크 역에는 '몽상가들(2003)'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프랑스계 배우 에바 그린이, 콜린스 가문의 여자 가장 엘리자베스는 이제는 '관록'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여배우 미셀 파이퍼가, 엘리자베스의 딸 캐롤린은 '렛 미 인(2010)'에서 12살 뱀파이어 소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클로이 모레츠가, 엘리자베스의 주치의인 쥴리아는 팀 버튼의 아내로 수많은 작품에서 독특하고 매력적인 역할들을 맡아온 헬레나 본 햄 카터가 캐스팅 되는 등, 매력적인 여배우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그러고보니 이 작품, 조니 뎁 외에 조연급 여자 캐릭터들이 모두 네임 밸류가 제법 있는 여배우들로 캐스팅이 되어 있군요. 상대적으로 등장하는 남자배우들의 네임밸류가 밀리는 느낌입니다. 아차, 건물관리인 윌리 역에는 '왓치맨(2009)'에서 인상적인 다크 히어로 로어셰크 역을 맡았던 잭키 얼 헤일리가 캐스팅 되었군요. 여기에 하나 더, '드라큘라(1958)'를 통해 우리에게 드라큘라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노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빌 멜로이 역에 캐스팅 되어 또다른 가쉽거리를 팬들에게 선사할 것을 보입니다.

팀 버튼만의 감성이 충만한 영화로 당연스레 탄생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니 뎁의 익살스런 연기가 영화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는 것은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예고편에서 본 바나바스 콜린스는 어딘가 모르게 캐리비안 해적의 히어로 잭 스패로우와 겹쳐지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인데요. 그 특유의 비음 섞인 표정부터 무심한 듯 겁먹은 듯한 알쏭달쏭한 표정까지... 조니 뎁의 바나바스는 분명 잭 스패로우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뭐랄까... 오히려 요즘 들어서는 이 캐릭터가 잭 스패로우가 아니라 조니 뎁 그 자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코믹 연기는 단순한 캐릭터 중복이라는 수준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력적이고 기대된다고나 할까요. 조니 뎁의 원맨쇼 만으로도 기본은 할 것 같은데 팀 버튼만의 독특한 감성과 이야기가 더해지고, 그의 최근 몇 작품들에 비해 좀 더 대중적인 색체를 띄고 있으니만큼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성공을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다크 쉐도우가 뎁에게 잭 말고 또다른 인상적인 캐릭터를 안겨줄 수 있을까요. 


덧붙임) 어쩌다보니 프리뷰가 다크 쉐도우나 팀 버튼보다는 조니 뎁 중심으로 흘러간 듯 하군요, 쩝.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2 Warner Bro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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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lativity Media



<스탭>

◈ 감독: 타셈 싱(Tarsem Singh)
◈ 각본: Vlas Parlapanides, Charley Parlapanides
◈ 제작: 렐러티비티 미디어(Relativity Media), 유니버설 픽쳐스


<시놉시스> 

태초에 불멸의 존재들이 사는 천상에서 큰 전쟁이 있었다. 승리한 불멸의 존재들은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게 되고, 타이탄(혹은 티탄)이라 불리는 패배한 존재들은 타르타로스 산 밑에 봉인되고 만다. 오직 에피루스의 활만이 타이탄의 봉인을 풀 수 있으리라.

한편,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신에 대한 증오로 삐둘어진 헤카리온의 왕 하이페리온(미키 루크 분)은 신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잔혹한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그의 목적은 에피루스의 활을 찾아 타이탄의 봉인을 푸는 것. 하이페리온의 등장으로 세상은 혼돈과 어둠에 잠기지만, 신들의 왕 제우스(루크 에반스 분)는 다른 신들이 인간사에 개입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시킨다. 이를 어기는 신이 있다면 그는 불멸의 힘을 잃고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엄명이 내려진다. 하이페리온은 에피루스의 활을 찾기 위해 성지를 공격, 페드라(프레이다 핀토 분)를 비롯한 처녀 예언자들을 납치하고 점점 더 에피루스의 활을 향해 접근해가고 있었다. 과연 누가 사악한 하이페리온에 맞서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

한편, 절벽 어귀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테세우스(헨리 카빌 분)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근근히 살아가는 청년이다. 비록, 미천한 신분이지만 그는 어렷을 적부터 자신을 가르쳐 온 정체불명의 노인 덕분에 누구보다도 용맹하고 강인한 전사로 길러지게 된다. 하이페리온의 마수가 이 작은 마을로 다가오면서 테세우스는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데...


적어도 헨리 카빌의 슈퍼맨은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도 태생의 CF 감독 출신이라는 타셈 싱의 정체성에 비춰볼 때 분명 '신들의 전쟁(2011, 원제 이모탈스)'은 기존의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와는 뭔가 다른 이질적인 영화가 되리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스크린 전체를 감싸는 금빛 톤의 색감과 이질적인 공간감은 예고편으로 보았을 때 분명 색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같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삼아 수개월 먼저 개봉했던 조나단 리브스만의 '타이탄(2011, 원제 타이탄의 충돌)'과 비교하면 이러한 느낌은 더더욱 도드라진다. 타이탄의 충돌이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 포맷을 빌린 작품이었다면 신들의 전쟁은 무언가 다를 것이다라는 예상은 누구나 다 했으리라.

굳이 비슷한 작품을 꼽자면 국내 개봉시 언급되었던 잭 스나이더의 '300(2007)'이 가장 근접하다 하겠는데, 극단적인 슬로모션과 패스트 모션을 조합한 CF적인 영상미, 만화적인 시퀀스, 고어적인 연출, 고대 그리스라는 엇비슷한 시대적 배경 등 여러 면에서 분명 두 작품은 닮아 있다. 다만, 타셈 싱의 출신 탓인지 분명 이 영화에서는 왠지 모를 동양적 정취가 느껴진다. 고대 그리스가 배경이 되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에서 느껴지는 테이스트는 페르시아 혹은 인도 풍에 가깝다.

황금 빛 톤의 색감과 함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시각적 요소는 강렬한 음영의 대비이다. 이는 타셈 싱이 이미 밝혔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카라바지오의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로 인해 고대 그리스의 신비로운 영상미를 구현해내는 것은 분명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각적 느낌을 보여주는 300과 비교하면 300이 그래픽 노블을 실사화로 구현한 듯한 비현실적인 영상미라면, 신들의 전쟁은 좀 더 정통미술에 가까운 영상미를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비현실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영상미는 분명 이 영화 최대의 장점이기는 하지만, 3D는 사족에 가깝다. 근래 제작되는 대부분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신들의 전쟁 역시 굳이 3D가 필요한 영화는 아니다. 물론, 3D라는 광고카피가 영화흥행에 일정부분 도움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 Relativity Media

이런 류의 영화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최대의 단점은 스토리이다. 뻔하고 상투적인 스토리 전개도 문제지만, 주인공이자 영웅적인 활약을 보여줄 테세우스는 결정적으로 영화에서 그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쳐내지 못한다. 이는 그가 성장하는 전개 부분이 늘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후반부에 보여줄 그의 활약상이 줄어든 때문인데, 이는 비슷한 장르였던 타이탄의 충돌과 비교할 때 오히려 뒤쳐지는 모습이다. 타이탄의 충돌 역시 그저 그런 완성도의 작품이었지만, 주인공인 페르세우스의 활약상은 신들의 전쟁보다 훨씬 더 스크린에 잘 담아내고 있다 하겠다.


신들과 인간들의 전쟁이 이원화 되어버린 것도 주인공의 역할과 스토리의 힘을 약화시켰다. 정작 중요한 클라이막스에 테세우스보다는 타이탄과 신들의 소소한(?) 전쟁이 부각되면서 영화는 최후의 힘을 잃는다. 특수효과면에서도 뚜렷한 볼거리가 없다.  알맹이는 없었으나 여러가지 다채로운 크리쳐들의 등장과 거대한 스케일로 눈만은 호강했던 타이탄의 충돌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300과 비교해서는 집중력과 완성도가 부족하다. 페르시아의 대군과 맞서 싸우는 스파르타 정예군단의 활약에만 중점을 두었던 300이 짜임새가 훨씬 좋다. 

그나마 흥행에서는 그럭저럭 성적(제작비 1억2천만 달러를 들여 월드와이드로 약 2억 1천만 달러의 수입)을 거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타셈 싱의 감각적이고 이국적인 영상미 덕분은 아닌가 싶다. 비슷한 흥행성적을 거둬들인 타이탄의 충돌이 특수효과와 스케일로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과 대비된다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본편에서는 그다지 만족할만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주인공 헨리 카빌의 이미지가 그가 주연을 맡은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2012)'의 슈퍼맨과는 제법 잘 맞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 이 영화에서 얻은 수확이라면 수확.(의외로 크리스토퍼 리브와 비슷한 이미지에 놀랐다.) 우연치 않게도 비슷한 영상미를 선보이는 두 감독의 영화에 연이어 캐스팅된 카빌이 과연 맨 오브 스틸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관전 포인트다.

덧붙임) 프레이다 핀토는 아시다시피 대니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에 출연했던 인도계 여배우인데, 언듯언듯 이민정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때가 있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 아마도 그 매력적인 눈 때문이 아닌가 싶다.

덧붙임) 아테나 여신으로 분한 이사벨 루카스를 알아보시는 분이 있으신지? '트랜스포머2: 폴른의 역습(2009)'에서 주인공 샘을 유혹하던 인간형 디셉티콘으로 출연했던 매혹적인 아가씨다. 이 두 매력적인 여배우가 작품에서 별 다른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것도 이 영화의 흠이라면 흠. 흠...

덧붙임) 미키 루크의 악역은 재고의 여지가 있어보인다. 물론 그만의 카리스마를 여지없이 뿜어내기는 하지만 매번 거기서 거기다. 마치 그 옛날 그가 기막히게(?) 잘 생겼던 시절의 비슷비슷한 캐릭터들처럼 말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워 보인다는.

덧붙임) 어쩌다보니 삼총사에 이어 이번 신들의 전쟁까지 모두 루크 에반스가 출연하는 영화를 리뷰했다. 그리고 둘다 재미없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Relativity Media에게 있습니다.


신들의 전쟁 (2011)

Immortals 
5.5
감독
타셈 싱
출연
헨리 카빌, 미키 루크, 프리다 핀토, 루크 에반스, 이사벨 루카스
정보
액션, 판타지 | 미국 | 110 분 | 20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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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SUMMINT ENTERTAINMENT


<스탭>

◈ 감독: 폴 W.S 앤더슨
◈ 원작: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 제작: 콘스탄틴 필름, 임팩트 픽쳐스, NEF 프로덕션


<시놉시스> 

17세기 초의 프랑스, 어린 루이 13세가 왕위에 등극하면서 유럽은 전운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루이 왕과 안느 왕비를 보좌하기 위해 추기경인 리슐리외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루이 왕의 왕권은 암암리에 위협받게 되고...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들었다는 비행선의 설계도를 훔치고자 왕 직속의 총사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세사람의 총사인 아토스와 포르토스, 아라미스, 그리고 아토스의 연인이자 유능한 스파이인 한 밀라디가 이탈리아에 침입한다. 네 사람의 활약으로 쉽게 비행선의 설계도를 탈취해내긴 하지만, 밀라디의 배신으로 설계도는 그만 영국의 버킹엄 공작에게 넘어가고 만다. 믿었던 사랑에 배신당하고 임무마저 실패한 삼총사는 한물간 퇴물로 취급되고 마는데...


킬링 타임용으로는 그럭저럭 볼만한 캐주얼 오락 액션물.

많은 고전명작들이 영화화되고 있지만 삼총사처럼 꾸준하게 제작되는 영화들도 드문 편이다. 1903년부터 실사영화로만 20여편 이상 만들어져온 삼총사는 1970년대 이후로는 한동안 스크린에서 만나보기 힘들었으나, 월트 디즈니가 제작하고 키퍼 서덜랜드, 챨리 쉰, 크리스 오도넬 등이 출연한 '삼총사(1993)'로 젊은 세대들에게 보다 현대적이고 유쾌한 코미디와 볼거리가 넘치는 삼총사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후 두 편의 실사화를 거쳐 다시금 21세기 세번째 삼총사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이것이 바로 '삼총사 3D(2011)'인 것이다.

영제나 한제나 모두 말미에 3D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영화의 한계도 명확해진 셈이다. 작금 영화계의 이슈인 3D 효과를 보여주기 위한 현란한 액션들이 곳곳에 배치된 팝콘 무비라는 점. 이는 당연하게도 스토리의 평이함으로 귀결된다. '아바타(2009)' 이후 우후죽순처럼 많은 3D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헐리우드의 관계자들은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스토리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그 어떤 효과도 의미가 없음을. 뻔하게 예상 가능한 스토리의 아바타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 뛰어난 영상미를 뒷받침하는 시나리오의 완성도였다. 흔한 스토리,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더라도 얼마만큼 완성도를 높이느냐에 따라 영화의 질이 달라지는데, 그런 점에서 이번 삼총사도 그리 훌륭하지는 못한 셈이다.

다만, 93년도 삼총사와 비교한다면 이 작품은 그래도 93년작 정도의 완성도에는 근접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된다. 만화처럼 황당무개한 설정과 너무 화려한 영상미에 작품이 치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너무 단맛이 강한 케이크가 된 것은 아쉽지만 말이다. 좀 더 드라마 쪽에 비중을 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연출해온 폴 W.S 앤더슨 감독은 해를 거듭할 수록 가벼운 영화들을 만드는 것 같아 이는 어쩌면 지나친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캐스팅은 상당히 화려하다. 게다가 희한게도 주역인 삼총사와 달타냥보다는 밀라디, 버킹엄, 로슈포르 쪽이 오히려 캐스팅 파워가 높다. 밀라디의 경우는 이번 삼총사에서 히로인이자 최대의 악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원작부터 그러했지만 밀라디는 삼총사의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것이 사실인데, 밀라 요요비치의 밀라디는 그런 점에서 꽤 만족스러운 캐스팅이었다. 삼총사를 연기한 매튜 맥퍼딘, 레이 스티븐슨, 루크 에반스도 네임밸류와는 상관없이 적절한 캐스팅이었다고 생각되며, 로슈포르의 매드 미켈슨은 93년작 삼총사에서 로슈포르를 연기한 마이클 윈콧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져 잠시 헛갈리기까지 했다. 루이 13세를 맡은 프레디 폭스의 연기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던 듯. 이로 인해 원작의 히어로 격인 달타냥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캐스팅만 놓고 보자면 이제까지의 달타냥 중에서는 가장 Young한, 한국말로 상큼한 달타냥이었는데, 뭐 거기까지.

본편의 감상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인 2011년 4월에 작성했던 프리뷰 그 이상도 이하가 아닌 듯 싶다. 개인적으로 3D는 이 영화에겐 사치인 듯. 네이버 무비를 통해 집에서 감상을 했는데, 그 정도 환경이면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하다. 독일, 영국, 미국이 합작한 다국적 영화지만, 정체성은 딱 헐리우드식 팝콘 무비에서 거의 벗어남이 없으며,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뉘앙스로 영화가 엔딩을 맞는데 이번 편에서 버킹엄 공작을 맡은 올랜도 볼룸의 비중이 적었음을 감안할 때 속편이 나올 가능성이 다분히 높은 듯 싶다. 흥행도 나름 했으니 문제도 없을 듯. 다만 속편에는 3D는 빼는 것이 어떨까. 

☞ 삼총사 3D, 고전 어드벤쳐의 스타일리쉬 판타지 액션물로의 진화 (보러가기)

ⓒ 2012 SUMMINT ENTERTAINMENT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2 SUMMINT ENTERTAINMENT에게 있습니다.


삼총사3D (2011)

The Three Musketeers 
6.9
감독
폴 W.S. 앤더슨
출연
매튜 맥퍼딘, 루크 에반스, 레이 스티븐슨, 로건 레먼, 올랜도 블룸
정보
액션, 어드벤처 |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 111 분 | 2011-10-12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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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Warner Bros. Pictures


<스탭>

◈ 감독: 잭 스나이더(Zack Snyder)
◈ 각본: 잭 스나이더, 스티브 시부야(Steve Shibuya)
◈ 캐스팅: 에밀리 브라우닝(Emily Browning), 애비 코니쉬(Abbie Cornish), 제나 말론(Jena Malone), 바넷사 허진스(Vanessa Hudgens), 제이미 청(Jamie Chung)
◈ 제작: 워너 브러더스 픽쳐스


<시놉시스> 

여기 방금 어머니를 여읜 두 자매가 있다. 소녀들의 아버지는 탐욕에 찬 계부, 모든 재산을 딸들에게 남긴다는 아내의 유언장에 격분한 그는 자신의 의붓딸들을 위협하려 했고, 엉겁결에 소녀는 권총을 발사하게 된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며 발사된 총알은 계부가 아닌 자신의 동생에게로 향하고 만다. 동생마저 잃고 마는 소녀, 이제 그녀에게 의지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계부는 소녀가 어머니를 여의고 정신착란 증세를 보여 동생을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고, 소녀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끌려간다. 정신병원의 책임자 블루는 계부에게 뒷돈을 건네받고 소녀를 평생 정신병원에서 썩게 할 것을 약속한다. 정신병원에 보낸 것도 모자라 계부는 뇌수술을 통해 소녀의 기억을 지우게 될 것을 원하고... 뇌수술을 받게 될 동안 남은 시간은 5일, 과연 소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소녀가 수술대에서 눈을 감은 순간, 그녀는 베이비돌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주류를 향한 잭 스나이더의 두번째 도전, 다시 한 번 실패로 돌아가다.

ⓒ 2010 Warner Bros. Pictures

'디언의 전설(2010)'을 통해 이제까지보다 한 레벨 더 올라간 블록버스터의 기대주가 되려 했던 잭 스나이더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시도와 멋진 영상미를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헐리우드는 잭 스나이더에게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듯 싶다. 가디언의 전설이 극장에서 내려온지 반년이 못되어 잭의 또다른 야심작이 극장가를 통해 우리를 찾아왔고, 내년에도 한편의 대작 블록버스터가 대기중이니 말이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지난 4월에 개봉한 잭 스나이더 연출/각본/제작의 '써커 펀치(2011)'가 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작품은 그의 한계를 보여준 가디언의 전설에도 못미치는 실패작으로 귀결되었다. 흥행성적으로만 보아도 약 8천만 달러의 엇비슷한 제작비가 소요된 이 두 작품에서 가디언의 전설이 약 1억 4천만 달러의 글로벌 흥행수익을 거둬들이며 나름 선방한 반면, 써커 펀치는 9천만 달러에 조금 못미치는 성적(그것도 글로벌 흥행 성적으로)을 거둬들이며 가까스로 적자를 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물론, PG등급으로 상영되었던 가디언의 전설에 비해 PG-13인 써커 펀치가 다소 불리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베스트 셀러를 원작으로 삼았던 가디언의 전설과 달리 그가 직접 각본작업에 참여했던 써커 펀치의 이야기 완성도가 분명 전작에 못미쳤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실제로 그가 써커 펀치 이전에 작업한 4편의 작품들은 모두 원작을 가진 이야기였다. 써커 펀치는 그런 면에서 잭에게 있어서 한단계 더 높은 수준의 연출가로 거듭나기 위한 일종의 시험무대였던 셈인데, 결과적으로 첫번째 시험은 낙방에 가까운 점수가 나온 셈이다.

☞ 가디언의 전설 - 잭 스나이더의 장점과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애니메이션 (바로가기)

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이 작품은 흔히들 말하는 병맛이라고 불리는 영화는 적어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늘씬하고 매혹적인 미소녀가 다섯명씩이나 등장해서가 아니다.(아니라고 완벽히 부정하진 못하겠다만)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분명 감독이 많은 정성을 들이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실험을 했구나라는 것이었다. 다만, 그로 인해 이 작품은 음식의 시식으로 비유하자면 좋았다가 씁쓸했다가, 달콤했다가 너무 시큼하다가, 쫄깃하다가 푸석하다가를 반복하며 들쭉날쭉한 맛이 느껴지는 음식이었다. 전체적인 영화의 구성은 화려한 데코레이션을 제거하고 나면 너무 빈약하고 보잘 것 없다. 하지만 부분 부분을 장식한 데코레이션에서만큼은 상당히 일류적인 감각과 재치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아마 이것이 헐리우드가 잭 스나이더를 계속 사랑하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재산을 노리는 계부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소녀, 계부는 소녀에게서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누명을 씌워 정신병원에 가두고 뇌물을 써서 기억을 지우는 뇌수술을 소녀에게 시키려 한다. 남은 시간은 5일, 이 이야기는 그 5일 사이에 벌어지는 소녀의 이야기를 소녀의 환상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소녀의 또다른 환상의 삼중 구조로 풀어가는 이야기이다. 이 현실과 환상, 그리고 환상 속의 환상으로 이루어지는 삼중구조는 얼핏 작년도에 개봉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에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며, 스릴러라는 형식을 채택한 점에서는 오히려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2010)'와의 접점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두 작품과 비교해서도 써커 펀치는 확연히 내공이 부족해 보인다.

꿈에서 꿈으로, 다시 꿈으로 들어가면서 각각의 상황이 중첩되면서 긴장감을 높였던 인셉션과 달리, 써커 펀치는 환상에서 환상으로 들어가는 중에 그 어떤 긴장감도 가중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정신병원에 들어간 주인공 베이비돌이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위기상황 속에서 환상, 그리고 환상으로 들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그저 현실의 상황이 환상 속의 다른 상황으로 재구성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인데, 그 베이스가 되는 이야기 구조 자체가 느슨하기 때문에 긴장감이나 몰입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환상 속의 환상으로 들어간 뒤 펼쳐지는 판타지와 SF, 밀리터리가 결합된 기묘한 세계에서의 액션에 잠시 몰입하다가 환상이 끝나고 나면 영화는 갑작스레 싱거워지면서 특유의 맛을 잃고 만다. 

또한, 계부에 의해 억울하게 정신병원에 갇혀 정신적으로 크나큰 위기에 직면한 베이비돌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있어서도 이 작품은 부인의 죽음이라는 과거 속에 숨겨진 트라우마를 안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속에 살아가는 수사관의 이야기를 다룬 셔터 아일랜드에 비교하면 그 드라마성과 스릴러성이 너무도 부족하다. 스릴러를 표방한 작품임에도 써커 펀치에서는 어떤 스릴러도 느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이 작품의 또하나의 크나큰 미스이기도 하다. 실제 이야기의 짜임새가 단순하고 느슨하다 보니 환상 속의 환상에서 벌어지는 잭 스나이더만의 독특한 영상미학을 제외하고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별반 없는 셈이다. 그로 인해 음침하고 메마른 정신병원과 퇴폐적이면서 암울한 클럽을 표현한 미술과 색감은 상당히 훌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큰 빛을 발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 인셉션, 아트 블록버스터의 진수를 보여주다. (바로가기)
☞ 셔터 아일랜드, 스릴러가 아닌 한편의 싸이코 드라마 (바로가기)

결국, 영화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환상 속의 또다른 환상인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미소녀들의 화끈한 액션장면에 한정된다. 사실 이 부분은 잭 스나이더의 원래 장기이기도 한데, 비주얼 노벨을 영상화하는데에서도 나름 일가견을 보인 잭은 아니메 스타일의 캐릭터들을 서구식 영화로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나름의 노하우를 가진 듯 싶다. 교복을 입고 일본도를 휘두르는 베이비돌의 스타일은 아무리봐도 일본 아니메의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물론, 이는 공동으로 각본을 작업한 스티브 시부야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아니메를 실사영화화했던 많은 실패작들과 비교해서 그 영상적 완성도는 써커 펀치가 단연코 월등하다. 다만, 이 만화적 씨퀀스들이 작품의 일부분에 한정되면서 이야기는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하는 갈짓자 행보를 걷고 있다. 현실과 첫번째 환상의 이야기가 화려한 영상미의 두번째 환상만큼 매력적이었다면 이 영화의 평가는 달라졌겠지만, 아쉽게도 잭 스나이더가 그 정도의 수준에 미치려면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 2010 Warner Bros. Pictures

엔딩 스탭롤에 펼쳐지는 블루(오스카 아이삭 분)와 고스키(칼라 구기노 분)의 듀엣 퍼포먼스는 이 작품을 고풍스러운 클럽 스타일과 테크노스러운 분위기를 오가는 작품으로 꾸미고자 했던 감독의 의중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만약, 작품 내에서 그러한 분위기 전환이 잘 묘사되었다면 엔딩 역시 빛났으련만, 아쉽게도 본편에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엔딩은 오히려 뜬금없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재미있는 것은 클럽을 배경으로 삼았으면서도 본편에서 여배우들의 공연장면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

이제 바톤은 내년에 잭 스나이더가 연출할 슈퍼맨 시리즈의 후속편 '맨 오브 스틸(2012)'에게로 넘어갔다. 과연 가디언의 전설에 이은 두 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잭 스나이더는 부활할 수 있을까. DC의 히어로 수퍼맨이 내년도 마블 진영의 야심작 어벤져스와의 싸움에서 패한다면 잭 스나이더는 헐리우드의 신뢰를 잃을지도 모른다. DC의 모회사이기도 한 워너는 이번 써커 펀치의 실패를 통해 벌써부터 큰 고민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0 Warner Bro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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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t Disney


<스탭>

◈ 감독: 롭 마샬(Rob Marshall)
◈ 원작: 팀 파워스(Tim Powers)
◈ 캐스팅: 조니 뎁(Johnny Depp),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 이안 맥쉐인(Ian McShane), 제프리 러쉬(Jeoffrey Rush)
◈ 제작: 월트 디즈니 픽쳐스


<시놉시스> 

스페인의 바닷가, 어부들이 바다에서 그물을 걷어올리던 중 그물에 걸려있는 괴노인을 발견한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노인을 왕성으로 데리고 간 어부들, 노인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폰세 데 레온'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탐험가로 푸에르토리코의 첫번째 통치자이자 플로리다를 발견해 내었던 후안 폰세 데 레온은 젊음의 샘을 발견했던 인물로도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었다. 노인의 손에 들린 책에 폰세 데 레온과 젊음의 샘에 관련된 정보들이 씌여져 있음을 알아낸 스페인은 곧장 젊음의 샘을 향한 항해 준비에 들어간다.

한편, 블랙 펄의 갑판장이었던 죠샤미 깁스가 잭 스패로우라는 누명을 쓰고 런던의 재판장에 선다. 깁스는 무고함을 항변하지만, 시민들은 해적을 교수형에 처하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이 때 등장한 스미스 판사, 판사는 처형 위기에 처한 깁스를 무기징역으로 감면시켜준다. 알고보니 판사는 잭 스패로우가 변장한 모습이었던 것, 잭은 매수한 마부가 모는 죄수 호송형 마차에 깁스를 태우고 의기양양하게 탈출에 성공한다. 깁스로부터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팔아 가짜 잭 행세를 알게 된 잭. 대화가 끝나갈 즈음 목적지에 마차가 도착한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항구가 아니라 영국의 왕 죠지 2세의 궁전 앞. 잭은 영국군들에게 체포당해 궁전으로 끌려가는데...


미드 필더가 사라진 해적팀, 잭 선장의 개인기만으로 버텨내다.

즈니랜드의 놀이테마로 사랑받던 캐리비안의 해적이 영화화되어 이제는 고사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던 해적 어드벤처물에 또다른 신화를 써내려간지도 어느덧 8년째에 접어들었다. 잭 스패로우라는 헐리우드 영화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한명을 만들어낸 이 유쾌하고 재기 넘치는 3부작이 다채로운 볼거리와 재미를 팬들에게 듬뿍 안겨주고 4년전 막을 내렸지만, 헐리우드의 잭 스패로우 사랑은 3부작으로는 부족했던 듯 싶다. 2011년 캐리비안의 해적의 4번째 시리즈가 다시금 우리를 찾아오게 되었으니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으리라 짐작되는(또, 많은 분들이 실망하셨으리라 짐작되는)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2011)'가 바로 그것이 되겠다.

이미 3부작에 걸친(물론, 실제로 1편은 별개의 이야기이고, 그후 2편과 3편이 내용상 연계가 있지만) 이야기로 사실상 잭 스패로우의 모험의 첫장은 끝난 셈. 새로이 시작될 4편은 전혀 새로운 모험거리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3부작과 같이 각 시리즈가 전체 이야기의 한부분이 되는 연속성을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하는 시리즈 물의 경우는 이야기와 캐릭터에 있어서 매 시리즈마다 많은 고민이 수반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번 4편에 이르러서는 올랜도 볼룸의 윌 터너나 키이라 나이틀리의 엘리자베스와 같이 잭 스패로우의 든든한 사이드 킥들이 모두 시리즈에서 하차했으며, 무엇보다 3부작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참여하지 않음으로 인해 캐리비안의 해적은 새로운 인물들과 새로운 감독으로 시리즈를 꾸려가야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시리즈의 각본은 캐리비안 시리즈를 창조해낸 테드 엘리엇과 테리 로지오가 그대로 맡았지만, 이야기는 팀 파워스가 1987년에 쓴 소설 '낯선 조류(1987)'라는 유명한 소설을 베이스로 삼았다. 여기에 '시카고(2002)'와 '게이샤의 추억(2005)' 등으로 잘 알려진 롭 마샬 감독이 연출가로 합류하면서 오히려 시리즈의 모양새는 이전보다 더 무게감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키이라 나이틀리를 대신하는 여주인공 역에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낙점되었고, 잭 스패로우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자 가장 강력한 라이벌 바르보사 선장의 제프리 러쉬가 건재하는 등, 사실 시리즈는 시작 전에는 많은 기대감을 안겨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 시리즈의 반 이상을 책임지는 매력적인 악당 잭 스패로우가 여전히 건재했다. 좋은 스토리와 좋은 감독, 좋은 캐릭터가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이 네번째 시리즈는 미적지근한 평을 들어야만 했을까.

극장이 아닌 PC(네이버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를 이용)에서 감상했기에 그 느낌이 스크린과는 다소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이 4번째 시리즈는 킬링 타임용으로는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4편의 흥행성적은 약 10억4천만달러에 이르는데, 이는 9억6천만달러의 성적을 거둬들인 3편보다 앞서고, 10억6천만달러로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둬들인 2편보다 약간 모자란 정도다. 그리고 2편과 3편의 경우 사실 비평면에서는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왜 유독 4편은 전작에 비해 저평가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부제인 낯선 조류처럼 이제까지와는 낯선 분위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잭 스패로우의 원맨쇼인 것 같던 시리즈가 막상 많은 조연급 배우들이 하차하고 나니 생각 외로 그들의 빈자리가 컸음을 제작진과 관객 모두 공감했다고나 할까. 역으로 말하면 새로운 캐릭터들이 그만큼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이 시리즈는 잭이 등장하는 부분과 잭이 등장하지 않는 부분의 편차가 몹시 크다. 특히, 새로운 악당인 검은 수염역의 이안 맥쉐인은 전 시리즈에서 강렬한 모습을 선보였던 문어선장 데비 존스역의 빌 나이와 아무래도 많은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데비 존스의 포스가 너무도 강렬했던 덕분에 검은 수염의 아우라는 상대적으로 너무 미약해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는 왁자지껄한 구도도 본 시리즈에 와서는 너무도 점잖아진 분위기다. 전반적으로 4편은 해적 어드벤쳐를 마음껏 비틀어댔던 이전 시리즈에 비해 얌전하고, 오히려 전통적인 느낌마저 풍긴다. 이는 뮤지컬과 드라마에 일가견이 있는 롭 마샬 감독의 취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실제로 코미디와 어드벤쳐가 과하리만치 빛을 발했던 전 시리즈에 비해 이번 시리즈는 잭과 바르보사, 깁스와 같은 원 캐릭터들을 빼면 몹시도 정통 해적물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런던에서 벌어지는 초반부의 모험 때만해도 괜찮을 것 같았던 이 영화는 전개가 거듭될 수록 점점 늘어지게 되는데, 이는 분명 캐리비안의 해적이 지녔던 본래의 성질이 희석되고, 롭 마샬 감독의 감성이 가미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 Walt Disney

시리즈 본래의 느낌을 잃어버린 것 외에 한가지 더 문제였던 것은 한편의 이야기에 너무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여 이야기의 밀도가 옅어졌다는 것이다. 잭과 그의 옛 연인 안젤리카, 그리고 안젤리카의 아버지인 검은 수염, 검은 수염을 뒤쫓는 바르보사 선장, 여기에 검은 수염에 사로잡힌 신부 필립과 역시 검은 수염에게 사로잡힌 인어 시레나까지... 너무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각 캐릭터들은 자신만의 매력이나 스토리를 작품에서 보여주지 못한체 오히려 전체 이야기를 산만하게 끌고 가는 악재로 작용한다. 전작에서도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 캐리비안의 해적이지만, 2편과 3편은 이야기가 연결되었기에 이 많은 캐릭터들을 소화할 여력이 있었으며, 1편의 경우에는 4편보다는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수도 적었고, 이야기도 중심이 잡혀 있었다. 이 작품에서 인어는 분명 매혹적인 소재였지만, 이미 잭과 안젤리카라는 구도에 신부와 인어의 뜬금없는(?) 로맨스까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오히려 산만해지지 않았나 싶다. 바르보사나 안젤리카 둘 중 한명은 굳이 시리즈에 필요가 있는 캐릭터였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물론, 제 역할을 다한 바르보사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다소 사족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번 4편을 끝으로 시리즈가 막을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시리즈는 흥행에서는 전작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잭 스패로우라는 희대의 캐릭터가 여전히 제 몫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지만, 이번 4편은 여전히 잭 덕분에 볼만한 가치가 있다. 다음에는 어떤 캐릭터들과 어떤 모험 이야기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잭 스패로우라는 보증수표가 건재한 이상 후속편은 여전히 가능성과 흥행성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lt Disney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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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th Century Fox


<스탭>

◈ 감독: 루퍼트 와이어트(Rupert Wyatt)
◈ 원작: 피에르 불의 SF 소설 '유인원들의 혹성(1963)' / 프랭클린 J. 샤프너의 영화 '유인원들의 혹성(1968)'
◈ 캐스팅: 제임스 프랑코(James Franco), 앤디 서키스(Andy Serkis), 프리다 핀토(Freida Pinto)
◈ 제작: 20세기 폭스


<시놉시스> 

제약회사 젠시스에 근무하는 과학자 윌 로드만(제임스 프랑코 분)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유전자 연구에 몰두하던 중, 손상된 뇌조직을 복구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다. 그는 이 약을 '큐어'라 명명하고 침팬지에게 임상실험을 하게 되는데, 큐어를 접종한 침팬치 '반짝이는 눈'이 인간의 수준에 가까운 지능을 보유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큐어와 침팬지 반짝이는 눈을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당일, 반짝이는 눈이 갑자기 돌변하여 연구소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경비원에 의해 반짝이는 눈은 사살되고 크게 실망한 사장은 신약의 개발중지와 함께 임상실험 중이던 모든 침팬지들을 안락사시킬 것을 지시한다. .

그런데, 침팬지들을 안락사시키던 도중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사살된 반짝이는 눈에게 아기가 있었던 것이다. 아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진 침팬지가 난동을 부린 사실을 알게된 로드만. 하지만 이미 연구는 중단된 뒤였고, 하는 수 없이 로드만은 아기 침팬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버지의 병을 보다 못해 연구실에서 몰래 빼내온 큐어를 아버지에게 접종하는 로드만, 약은 성공적이어서 아버지는 치매증상을 벗어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정상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로드만은 침팬지를 키우게 되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지능이 늘어나는 아기 침팬지에게 로드만 부자는 '시저'(앤디 서키스 분)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되는데...


고전 SF 시리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 웰메이드 SF

전 명작을 리메이크하는 것은 쉬운 동시에 어려운 일이다. 분명, 히트한 작품을 소재로 하는 것은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것보다는 흥행에 있어서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만큼 위험한 것은 원작의 명성에 못미치는 완성도로 그려질 경우에는 초반의 기대심리가 순식간에 혹평의 쓰나미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공한 1탄의 속편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어느새 속편과 리메이크작은 흔히 볼 수 있는 영화계의 트렌드가 되었으나 그 대부분이 원작의 명성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왔다. 소재를 빌어쓴 만큼 리메이크는 언제나 전작의 완성도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사실 혹성탈출이 이번에 다시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큰 흥미를 못느꼈었다. 2001년 팀 버튼의 '혹성탈출(2001)'이 등장했을 때만해도 이 전설적인 고전 SF의 부활을 몹시나 흥분된 마음으로 기대했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혹성탈출과 팀 버튼은 안타까울 정도로 상성이 맞지 않았고, 팀 버튼의 컬트적 재기는 SF 고전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런 빛을 발휘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소리소문 없이 등장한, 게다가 장편연출은 이번이 두번째 밖에 안되는 신예 루퍼트 와이어트가 감독인 혹성탈출은 확실히 이전보다 그 파워가 많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인간 주인공을 맡은 제임스 프랑코가 비록 '127시간(2010)'을 통해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며 주목받는 배우로 부상하긴 했으나 아직 대형 배우는 아니라는 점, 원숭이 주인공을 맡은 앤디 서키스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과, '킹콩(2005)'의 킹콩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명성높은 CG 전문 배우이지만 (오히려 명성을 안겨준 그 CG로 인해)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본 작품의 캐스팅 파워가 일반적인 블록버스터에 비해 그리 대단치 않음을 말해준다. 9300백만달러의 제작비는 2001년 혹성탈출의 제작비 1억불에도 못미친다. 무려 10년 전의 작품보다 제작비가 적다는 것은 10년 사이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참고로 올 여름 최대의 블록버스터였던 '트랜스포머 3(2011)'의 제작비는 1억9천5백만 달러다. 개인적으로 두 배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트랜스포머3의 완성도는 이번 혹성탈출의 반만큼도 못미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사람들의 기대치를 완벽하게 능가했다. 만약, 이 작품이 2001년 혹성탈출 만큼의 관심을 받고 시작했다 하더라도 결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나리오는 기대 이상이었고,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으며, CG는 이 영화의 많은 것들을 훌륭하게 재현해 주었다. 무려 43년전의 고전 SF는 이번 작품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고 부활을 이루었다.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 이 작품은 속편의 제작까지도 가능한 길을 열어주지 않았나 싶다.

우선 이야기하고 넘어가야할 것은, 이 작품은 국내에서 영화개봉시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던 프리퀄이 절대 아니다. 이미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돌고 도는 세계관을 가진 원작의 성격상, 프리퀄이나 시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인다. 2001년에 제작된 팀 버튼의 작품도 프리퀄이나 시퀄이 아닌 원작의 컨셉을 갖고 새롭게 그려낸 리메이크였는데, 원작의 1편에 해당하는 시점으로 리메이크한 것이 팀 버튼의 작품이었다면, 이번 루퍼트 와이어트의 혹성탈출은 원작의 3편 정도에 해당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그 내용은 전혀 달라서 우주선을 타고 미래에서 온 지능을 가진 유인원이라는 원작의 설정과 달리 이번에는 유전자 공학으로 인해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갖게 된 유인원이라는 설정이 부여되고 있다. 인류의 멸망 역시 본작에서 어느 정도 암시되고 있는데, 그 역시 핵전쟁에 의한 멸망을 다루었던 냉전시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원작과는 달리 최근 SF에서 많이 묘사되고 있는 바이러스에 의한 인류 멸망으로 변주되고 있다. 이는 본 작품이 프리퀄이 아닌 새로운 해석, 즉 리부트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인간 배우들이 곳곳에서 극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누가 뭐라해도 이 작품의 주인공은 침팬지인 시저다. 특히, 이제까지 실사에서 불가능한 SF 또는 환타지 세상의 크리쳐 묘사의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던 CG는 배우의 감정을 스크린에 완벽하게 묘사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본 작품의 CG는 웨타 디지털이 맡고 있는데, 웨타 디지털은 아시다시피 반지의 제왕의 감독 피터 잭슨이 설립한 디지털 특수효과 회사로, 이미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킹콩을 통해 CG 캐릭터의 정교한 감정 표현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앞선 두 작품보다 이 작품은 보다 더 섬세하다. 특히, CG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이전작과 달리 작품에 등장하는 시저를 위시한 유인원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감이 넘쳐 감정이입을 극대화시켜주고 있다. 이는 CG도 CG이지만 유인원의 리더인 시저를 훌륭하게 연기해 낸 배우 앤디 서키스의 몫이다. 그의 섬세하고 격정적인 감정연기가 있었기에 CG로 재현된 시저는 실제 이상의 현실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 20th Century Fox

중후반부 들어 시저의 지휘하에 벌어지는 유인원들의 봉기는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블록버스터라는 작품의 정체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부분이지만, 이 영화는 서두부터 펼쳐지는 치밀한 드라마적 전개로 인해 뒤의 클라이막스가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즉, 극적 구성이 탄탄하고, CG 캐릭터의 연기가 관객들에게 깊은 감정이입을 가져왔던 것이 본작의 진정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은 혹시나 속편이 제작되면 등장할 본격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기승전결을 보여주었다. 블록버스터와 정통 SF 영화의 가운데 즈음에 위치한 듯한 이 모양새는 '아트 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를 창조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에 비해서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제법 무게감이 있다. 올 여름 내로라하는 블록버스터보다 이 철지난 고전 SF의 리부트 영화가 훨씬 견고하고 짜임새 있는 재미를 보여주었다고 감히 말할 정도로 영화는 괜찮았다.

한국에서 방영되면서 제목이 바뀐 혹성탈출(실제로는 일본에서 쓰여진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쓴 사례. 페니웨이님 리뷰 참고)이라는 타이틀은 원작이나 팀버튼의 리메이크작은 몰라도 이번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의 리부트 작품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유인원들의 혹성, 이 작품은 원제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듯 싶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th Century Fox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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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vel Studios · Paramount Pictures


<스탭>

◈ 감독: 조 존스톤
◈ 원작: 조 사이먼, 잭 커비
◈ 제작: 마블 스튜디오, 파라마운트


<시놉시스> 

2차 세계대전이 한참 진행 중이던 시절, 한 왜소한 청년이 입대지원소에서 퇴짜를 맞는다. 그의 이름은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 분). 어려서부터 병약한 체질로 천식과 각종 질병을 안고 살아온 그는 체격도 건장한 일반 남자에 못미칠 정도로 작고 깡마른 청년이었다.  하지만 스티브는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신념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투철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 둘도 없는 친구인 버키(세바스찬 스탠 분)가 육군 병장으로 참전하게 되자 그의 낙담은 더욱 커져만 가고... 함께 한 만국 박람회에서 입대를 만류하는 버키에게 스티브는 입대를 향한 자신의 강한 신념과 의지를 들려준다.

한편, 만국 박람회에는 독일에서 망명한 유대인 과학자 아브라함 어스킨(스탠리 투치 분)도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의 강한 신념과 정의로움을 목격한 그는 그의 비밀 프로젝트를 위한 병사로 스티브 로저스를 지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수퍼 솔저 프로젝트. 히틀러 휘하의 특수 부대 레드스컬의 초인 프로젝트를 저지하기 위한 미군의 극비 프로젝트였는데... 


어벤저스를 향한 마지막 단추, 준수한 완성도와 아쉬운 메시지로 마무리하다.

'켓티어(1991)', '쥬만지(1995)', '쥬라기 공원3(2001)', '울프맨(2010)' 등을 연출한 조 존스톤의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2011, 이하 퍼스트 어벤져)'는 2012년 개봉 예정인 마블 히어로 무비의 결정판 '어벤져스(2012)'의 마지막 퍼즐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어벤져스는 캡틴 아메리카를 리더로 하는 마블 코믹스 출신 히어로 팀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번 캡틴 아메리카를 끝으로 헐크, 아이언맨, 토르 등 내년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어벤져스 팀의 진용이 갖추어진 셈이다. 물론, 스파이더 맨이나 울버린 등은 아쉽게도 등장하지 않지만 말이다.(판권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현재 스파이더맨은 소니, 엑스맨과 울버린은 20세기 폭스사에서 영화화 판권을 가지고 있다.)

이번 퍼스트 어벤져가 지향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지 않나 한다. 우선은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차기작 어벤져스를 위한 등장 히어로들의 프롤로그 성격의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미국적 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의 글로벌한 재해석이라는 것. 캡틴 아메리카는 조 사이먼과 잭 커비의 1941년작 코믹스가 시작으로, 당시 2차 대전이 한창이던 무렵에 발간된 작품이다. 전시라는 당시의 시대상에 맞게 캡틴 아메리카는 국가적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히어로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코스튬에서부터 미국의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가미되었다. 당연히 빌런 측도 나치의 인물들이 설정이 되었는데 이러한 고전적 설정들이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미국 중심적인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기에 글로벌 시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캡틴 아메리카의 맹점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불과 십수년 전, 미국이 세계의 꺼지지 않는 중심으로 정치, 경제, 문화를 모두 독식하고 있을 즈음에는 이러한 것들은 굳이 신경을 쓸 이유가 없는 것들이기도 했다. 냉전시대의 영향도 있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는 미국 위주의 가치관을 가진 영화들을 만들어 내었고 우리는 그것을 역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감상하고 즐거워 하곤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어 이런 미국적 캐릭터들을 리메이크 하는데 있어서 만드는 미국도 조심스럽고, 보는 우리들도 그저 관성적으로 감상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변해버린 시대를 맞이하여 퍼스트 어벤져도 많은 고심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분명 원작의 그 히어로와는 다소 다른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인간병기로 다시 탄생한 주인공 스티브 로저스가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의 사기 진작과 군수자금 마련을 위한 국채 홍보 캐릭터로 전락하면서 미국 성조기를 모티브로 한 코스튬을 입고 위문공연을 다닌다는 시놉시스는, 노골적으로 미국적인 이 히어로를 다른 나라 사람들도 공감을 가져줄만한 캐릭터로 무난하게 그려낸 부분이 아닌가 한다. 조국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초인 프로젝트에 합류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으나 막상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의 역할에 만족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며, 처음에는 어색함으로 어쩔줄 몰라하던 캡틴 아메리카가 공연을 거듭할 수록 능숙해지고 나름 그런 삶에서 반쯤 보람을 찾는 모습을 캡틴 아메리카의 뮤지컬 공연과 오버래핑시킨 초반부의 전개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 중 하나이다.
 
액션 히어로물로서 본 작품 역시 토르와 마찬가지로 볼거리 위주의 전개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비중을 두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다만, 이로 인해 액션물로서의 매력은 다소 희석된 편인데, 사실 많은 액션 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서사에 치중하다보니 액션 묘사는 디테일하다기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다. 여기에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 자체에 너무 많은 부분이 할애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이야기나 다른 캐릭터 구축은 소홀한 부분이 있다. 워낙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있겠지만, 토미 리 존스나 휴고 위빙과 같은 매력적인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할애된 시간은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이 둘이 굳이 이 작품에 필요했나 싶을 정도로 두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들은 매력이 부족하다.

그외에도 사이드킥이라 할 수 있는 죽마고우 버키가 소속된 캡틴 아메리카의 특수부대원들까지 등장하면서 전체적으로 이런 인물들의 캐릭터 구축에는 다소 미진한 부분이 있다 하겠다. 재미있는 것은 캡틴 아메리카의 팀은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인, 흑인, 아시아인 등 다국적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부분은 분명 세계시장을 염두에 둔 헐리우드식 캐릭터 설정으로 보이며, 개인적으로 다소 작위적인 설정은 아닌가 한다.

전반적으로 캡틴 아메리카는 준수한 느낌이다. 엄청난 스케일의 압도적인 액션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지는 못했고, 캡틴 아메리카에 너무 많은 부분이 할애되면서 상대적으로 주변인물들이 소홀해지는 부분은 있었지만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액션 블록버스터보다는 좋은 느낌이었다. 근래 들어 등장하는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들이 액션보다는 서사에 치중하고 있고, 그로 인해 갈수록 고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는 형태로 변주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는 환영할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캡틴 아메리카가 지닌 한계가 완벽히 극복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2차 세계대전에 그 시점을 맞춘 이 영화로서는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내년에 개봉될 어벤져스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2012년 줄줄이 개봉예정되어 있는 히어로 무비들. 바야흐로 헐리우드는 지금 히어로들의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Marvel Studios · Paramount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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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umbia Pictures


<스탭>

◈ 감독/각본: 앤드류 니콜(Andrew Niccol)
◈ 캐스팅: 에단 호크(Ethan Hawke), 우마 서먼(Uma Thurman), 주드 로(Jude Law)
◈ 제작: 콜럼비아 픽쳐스(Columbia Pictures)


<시놉시스> 

근 미래의 사회. 태어날 때 각종 질병과 좋지 않은 성향의 원인이 되는 DNA를 제거하고, 완벽한 DNA만을 가진 태아로 태어나게 하는 시험관 시술의 인기로 인류의 출산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갈라지게 된다. 산모의 자궁을 통해 태어나는 자연적인 방법인 '신의 아이'와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추출해 완벽한 DNA로 시험관에서 태어나는 인공적인 방법인 '인간의 아이'로 나뉘어진 것이다. 선천적인 신체조건과 정신적 장애가 없는 이들 '인간의 아이'들은 곧 사회 각층의 엘리트로 성장하게 되고, 자연 그대로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 보통의 아이들은 곧 사회에서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생물학적 차별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엄마의 뱃속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난 빈센트 프리맨은 태어날 때 심장질환과 범죄자의 가능성을 지녔으며, 예상 수명이 31살 밖에 안되는 열성인자를 갖고 태어난 소년이다. 자라나면서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빈센트, 시험관 아기로 태어난 동생 안톤과의 수영시합에서 매번 패하던 그는 마지막 시함에서 동생을 이겨낸 뒤, 열성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그는 집을 나와 자신의 꿈을 향해 혹독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유전자 레벨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 사회는 빈센트의 모든 노력을 결국 물거품으로 만들 뿐이었다. 여러번의 응시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면접에서 번번이 통과하지 못한 그는, 결국 청소부로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에 발을 들이게 된다. 실력을 갖추고 피나는 노력을 해도 극복할 수 없는 DNA의 한계. 마침내 빈센트는 우성 DNA를 사고 파는 DNA의 중계인을 통해 자신의 꿈에 다가갈 수 있는 어둠의 경로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빈센트는 제롬 머로우라는 초일류 엘리트로 새 인생을 살게 되는데...


DNA로 모든 것이 결정된 미래의 사회, 한 남자가 마침내 그 벽을 넘다.

ⓒ Columbia Pictures

'루먼 쇼(1998)'로 우리에게 꽤 깊은 인상을 심어줬던 각본가 앤드류 니콜의 97년 연출 데뷔작인 '가타카(1997)'는 유전공학을 통해 우성 DNA만을 골라 시험관 아기를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근미래를 배경 삼아, 열성 DNA를 가진 보통 인간이었던 빈센트 프리맨(에단 호크 분)이 우성 DNA를 가진 엘리트들이 가득한 우주 항공회사 '가타카'에서 그들을 제치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신분이 갈리는 세상이라는 설정 자체도 흥미로우며, 완벽한 인간들 사이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불완전한 인간의 이야기 역시 드라마적 매력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매번 DNA로 모든 것을 검사하는 철저한 관리사회 속에서 부적격자인 빈센트가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적격자로 태어나는 과정과, 그 이후 그가 자신의 정체를 타인들에 감쪽같이 속이기 위해서 벌이는 여러가지 과정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긴장감 넘치는 구도로 풀어가면서 극적인 재미를 더해준 것이 이 영화에게 스테레오적인 매력을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을 결정짓는 미래형 관리사회는 흡사 타케미야 케이코의 만화 '지구로(1977)'에서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14세가 되는 해에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합한지의 여부를 테스트 받고 감별되는 먼 미래의 세상과 유사하다. 부적격적자로 낙인찍힌 아이들이 실상은 초능력과 같은 특수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로, 슈퍼 컴퓨터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에 반기를 들고 솔져라는 인물의 지휘 아래 고독한 싸움을 벌인다는 이야기의 지구로가 좀 더 스케일이 큰 SF 어드벤쳐의 성격을 띄고 있다면, 이 작품 가타카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DNA를 속이고 엘리트 사회에 발을 디딘 빈센트가 갑자기 회사 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그로 인해 들이닥친 경찰들로 인해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상황 속에서 빈센트의 내면의 갈등과 사랑, 그리고 통제된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파헤치는 미스테리 드라마적인 구도를 취하고 있다. 드라마 면에서는 지구로보다 농밀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SF라고는 하지만 빈센트와 그에게 유전자를 빌려준 유진(주드 로 분)과의 우정, 그리고 빈센트처럼 인간의 뱃속에서 태어난 여인인 아이린(우마 서먼 분)과의 사랑, 살인사건으로 인해 스스로의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한 빈센트의 갈등 등, 드라마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보니 SF로서 화려한 특수효과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완벽히 통제된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세트는 굉장히 차갑고 냉정하며, 딱딱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금속성의 이미지만으로도 지금과는 다른 미래 사회의 모습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 매일 실행되는 DNA 감별을 통과하기 위해 매일 각질 제거와 제모를 하고, 혈액샘플 채집에 대응하기 위한 가짜 피부조직과 유진의 혈액 샘플, 그리고 소변 샘플을 매일 준비하는 빈센트의 철저한 관리는 사회의 차별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길인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 지금의 사회 시스템에서조차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하물며, 유전자 레벨에서 신분이 결정지워지는 가상의 세계는 오죽하겠는가.

가타카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SF 물이다. 메시지도 좋았으며, 아주 최첨단의 미래사회를 그리지는 않았지만, 경직되고 차가운 근미래의 모습을 여러모로 잘 표현해 냈다. 드라마에 포인트를 준 미스테리적 구성도 만족스러웠다. 데뷔작으로서는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앤드류 니콜은 바로 그 다음해 트루먼 쇼에서도 상당히 재기 넘치는 이야기를 창작하면서, 매력적인 세계관과 꽤 깊이 있는 메시지가 공존하는 범상치 않은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게 된다. 다만, 그 이후의 작품들이 가타카나 트루먼 쇼만큼의 아우라를 보여주지 못함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자신을 경외하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조작된 DNA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우주선에 타기 직전 마지막 소변 검사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체 진짜 자신의 소변을 검사관에게 내민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완벽한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불완전함을 그리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불완전하게 태어났을까. 그것은 완전함을 향해 한발한발 내딛는 인간의 삶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은 아닐까.

덧붙임) EBS에서 방영된 일요시네마를 통해 이 작품을 본 것은 꽤 행운이었다. 보통 때라면 그 시간에 TV를 보지 못했었는데, 때마침 내린 장마비로 하루종일 집에 있었던 것이 오히려 이런 작품을 보게 되는 행운을 가져다 준 셈이다.

덧붙임) 네이버 영화 소개에서 나온 말인데, 소변 검사로는 DNA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소변 검사는 상당히 여러 군데에서 사용되며, 라스트에서는 제법 중요한 장면을 장식하는데 고증 측면에서 이는 꽤 큰 실수라 하겠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Columbia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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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ropaCorp · M6 Films · Griv Productions


<스탭>

◈ 감독: 피에르 모렐(Pierre Morel)
◈ 각본: 뤽 베송(Luc Besson), 로버트 마크 케이면(Robert Mark Kamen)
◈ 캐스팅: 리암 니슨(Liam Neeson), 매기 그레이스(Maggie Grace), 올리비에 라보르딘(Olivier Rabourdin), 팜케 얀센(Famke Janssen)
◈ 제작: 파라마운트 픽쳐스


<시놉시스>

전직 CIA 요원 브라이언(리암 니슨 분)은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생활로 인해 아내인 레노어(팜케 얀센 분)와 이혼하고 홀로 생활하는 독신남이다.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낙은 딸(매기 그레이스 분)인 킴 뿐. 하지만 레노어의 새 남편이자 킴의 계부인 스튜어트는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브라이언과는 달리 부유하고 안정적인 기업가이다. 가수가 꿈인 킴을 위해 그녀의 17세 생일파티에 노래방 기계를 사들고 찾아가는 브라이언. 하지만, 그의 선물은 스튜어트가 마련한 멋진 말 앞에서 한없이 초라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킴이 브라이언에게 같이 식사하자는 전화를 한다. 뜻밖의 킴의 약속에 뛸듯이 기뻐하는 브라이언, 하지만 그건 친구와 단둘이 파리 여행을 가기 위해 친부의 허락을 받기 위한 자리였다. 상심한 브라이언은 단둘이 여행가는 딸이 걱정되어 이를 허락하지 않지만, 울면서 뛰쳐나가는 킴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자신에게 꼬박꼬박 전화하는 것을 전제로 여행을 허락하게 된다. 드디어 킴이 파리로 떠나고... 약속된 시간에 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자 브라이언은 초조해 한다. 마침내 걸려온 딸의 전화, 하지만 그것은 안부전화가 아닌 도움을 청하는 다급한 전화였는데...


리암 니슨의 원맨쇼가 빛난, A급이 되기엔 다소 모자란 액션 스릴러

TV 무료영화를 통해 마침내 접하게 된 '테이큰(2008)'. 사실 수년전 지상파의 영화프로를 통해 소개가 될 당시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남다른 흥미를 갖고 있었다.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한 전직 CIA 요원인 아빠의 피말리는 추격전은 얼핏 느끼기에 한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서스펜스 스릴러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제한된 단서만으로 실낱같은 딸의 흔적을 쫓는 전직 CIA 요원의 추격전이라면 분명 꽤 좋은 스릴러물로 그려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주인공이 리암 니슨이라는 점도 믿음이 갔었고 말이다. 허나 결론적으로 테이큰은 예상과는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하여 테이큰이 어떤 작품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감상했기에 사실 기대는 최초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편이었다. 다만 어렴풋이나마 적어도 감상을 후회할 정도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기대했던 서스펜스 스릴러는 아니었지만, 테이큰은 재미있고 통쾌한 액션 스릴러로는 부족함이 없었으며, 리암 니슨의 호연에 힘입어 좀 더 비범함이 돋보인 작품이 되었다 하겠다. 이는 서두에서 묘사되는 브라이언의 처지가 큰 요인이 되었다.

신분을 숨겨야만 했던 CIA 요원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브라이언의 아내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와 이혼하고 돈많고 자상한 남자와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 브라이언은 CIA를 은퇴하고 변변한 직업없이 혼자서 살아가는 신세로 자신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외동딸이 있지만, 부유한 집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는 딸에게 다가가기에 자신은 너무도 초라한 신세다. 이는 한평생 가족만을 보고 일해왔으나 가족들과 격리된 체 소외받는 한국의 아버지들과도 묘하게 오버랩 되는 측면이 있다. 딸의 생일날 선물한 노래방 기계가 계부가 사준 최고급 종마에 의해 간단히 소외받는 장면이라든지, 예상치 못했던 딸과의 평범한 점심식사에 세상을 모두 얻은 듯이 기뻐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은 후에 벌어진 무자비한 브라이언의 복수극과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인정받지 못하던 가장이 극한 상황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믿음직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딸을 납치해간 인신매매범들을 향하여 무자비한 응징를 가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은 흡사 이정범 감독, 원빈 주연의 '아저씨(2010)'를 연상시킨다. 위기에 빠진 가족을 구출한다는 점에서는 유명한 TV 미니 시리즈 '24시(2001~현재)'나 폴 해기스 감독, 러셀 크로우 주연의 '쓰리 데이즈(2010)'와도 비슷한 스타일이라 하겠지만, 24시에 비해서 치밀한 두뇌게임이나 서스펜스가 부족하며 쓰리 데이즈에 비해서는 드라마성이 부족하다. 스릴러의 느낌이 가미된 액션물이라는 점에서 테이큰은 이 두 작품보다는 아저씨와의 비교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본 시리즈'와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특수요원의 액션물이라는 점에서는 수긍이 가지만, 쫓느냐 쫓기느냐의 차이가 엄연히 있으며, 서스펜스와 액션의 조화가 뛰어났던 본 시리즈에 비해 테이큰은 세기가 많이 부족하다.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한 인신매매 조직과, 여기서 사들인 처녀들을 인간경매로 팔아버리는 파렴치한 무리들을 응징하는 장면은 다소 잔혹하긴 하지만 통쾌함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다만, 해외에서는 PG-13 등급의 작품이 국내 개봉시에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상향조정되었는데, 그 정도라고 하기에는 다소 소프트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PG-13 등급으로 주기에도 개인적으로는 후하지 않나 싶고, R 등급 정도면 괜찮을 수위랄까. 라스트 액션 장면은 흡사 아저씨의 라스트 대결처럼 1대 다수로 수많은 경호원들을 물리치는데, 특히 마지막에 맞닥뜨리는 경호원은 둥그렇게 휜 형태의 단검을 사용하는 아랍인이라는 점에서 아저씨에서 원빈과 마지막 대결을 펼치는 타나용 웡트라쿨과 그의 휘어진 단검의 데자뷰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액션연출은 아저씨에 비해 스타일이나 세련됨이 부족하며, 다만 실전 특공무술을 선보이는 리암 니슨의 액션은 노쇠한 그의 연령을 감안했을 때 리얼리티가 넘친다. 이는 '13구역(2004)'을 통해 스피디한 프랑스식 액션을 선보인 피에르 모렐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토록 많은 살상을 저지른 뒤, 딸과 함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귀국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은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영화적으로 생략되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비현실적이고 비약이 심하다. 그건 납치 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리라 예상되는 딸이 너무도 해맑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리얼리티 측면의 흠이다. 프랑스 영화인 이 작품이 헐리우드식 액션영화와 마찬가지로 너무 감상적인 엔딩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무리라 하겠다.

'도망자(1993)'와 같은 작품이기를 기대했으나 테이큰은 그러한 기대에는 못미치는, 스릴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액션물이다. 다만, 액션물로서의 이 작품은 생각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적어도 보고 난 뒤 돈이 아까운 영화는 아니라 하겠다. 기대 이상의 흥행으로 현재 속편도 기획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속편은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니라 보인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EuropaCorp · M6 Films · Griv Production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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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미국식 가족영화와 로봇 액션물의 조우 

ⓒ 2011 Dreamworks


'랜스포머(2007)'가 CG 로봇 액션의 성공적인 선례를 남김으로 인해 현실적이고 중량감 넘치는 로봇의 등장은 이제 스타워즈와 같은 몇몇 SF 영화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사실감 넘치는 디자인과 움직임은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대를 배경으로도 충분히 위화감을 주지 않는 영상적인 수준에까지 올라가게 된 것이죠. 하지만, 2007년 트랜스포머의 개봉 이래 트랜스포머와 같은 작품들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나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2009)' 등에서 상당히 현실적인 모습의 로봇형 병기를 만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군사용 병기를 연상시키는 것들로서, 우리가 만화영화에서 보아온 '로봇'과는 실상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트랜스포머가 아닌 또다른 영화가 우리가 아는 그 로봇을 소재로 한 영화를 선보이게 되니, 그것이 바로 드림웍스의 신작 '리얼 스틸(2011)'이 되겠습니다.

이야기는 전직 복서로, 챔피언을 목표로 살아온 챨리 켄튼(휴 잭맨 분)이 로봇 복싱이라는 새로운 스포츠의 도입으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기고 3류 로봇 복서 프로모터로 근근히 살아가던 도중, 자신의 아들 맥스(다코타 고요 분)에게 자극을 받아 로봇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가족애를 되새긴다는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가족영화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 상으로는 큰 임팩트를 찾기 힘든 작품이죠. 3류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 그 주인공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가족(아들), 가족으로 인해 삶의 목표와 생기를 되찾는 주인공, 목표를 향한 그들의 희망찬 도전, 그들 앞에 닥치는 최대의 시련, 극적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가족애를 확인하는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익숙한 이야기 전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큰 기대를 주는 요인은 바로 로봇 복서들의 현실감 넘치고 강렬한 CG 액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원작은 리챠드 매디슨이 1956년에 쓴 '스틸'이라는 단편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요. 리챠드 매디슨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천재성이 돋보였던 TV 영화 '대결(1971)'이나 올드팬들에게는 '환상특급'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드라마 '트와일라이트 존(1959)'을 쓴 인물로, 본 작품의 원작이 된 스틸 역시 59년도 트와일라이트 존에서 사용된 에피소드라고 합니다. (아, 한국에서 방영된 환상특급은 59년작이 아닌 83년작이구요.) 이 외에도 그가 쓴 소설 '나는 전설이다(1954)'의 경우는 1964년과 71년, 그리고 2007년에 각각 영화화 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2007)'가 바로 그 중 하나인 셈이죠.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시면 눈치채시겠지만, 호러와 판타지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입니다. 트와일라이트 존의 에피소드로 방영된 스틸 역시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싸우는 막소(Battling Maxo)'가 로봇 복서로 등장하고 있구요. 다만, 이번 리얼 스틸에서는 그러한 리챠드의 호러 판타지적 감성은 대거 삭제되고 강렬한 CG 액션과 전통적인 가족애를 테마로 한 PG 등급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감독은 '핑크팬더(2006)', '박물관이 살아있다(2006)'를 연출한 숀 레비가 맡았으며, 주연은 '엑스맨(2000)'으로 스타덤에 오른 휴 잭맨이, 휴 잭맨의 아들 역에는 신예 다코타 코요(현재 상영중인 '토르(2011)'에서 토르의 어린시절 역을 맡았다고 합니다)가 캐스팅 되었습니다. 또하나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로봇은 1:1 스케일의 실제 로봇 모형을 만들고 이를 모션 캡쳐기법으로 촬영했다고 전해지는군요.

글쎄요, 일단 스토리나 감독만으로 보았을 때는 큰 기대를 걸긴 어려운 작품이긴 합니다만, 예고편에서 선보인 매력적인 로봇 액션과 드림웍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마냥 망작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가져봅니다. 리얼 스틸은 2011년 10월 7일 북미에서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클릭)

ⓒ 2011 Dreamworks

ⓒ 2011 Dreamworks

ⓒ 2011 Dream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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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Dreamwork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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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와 캡틴 아메리카, 엑스맨들과 대결하는 DC의 새로운 녹색 히어로

ⓒ 2011 Warner Bros. Pictures


벤져스 프로젝트의 일환인 마블의 히어로 무비 '토르(2011)'의 뒤를 이어, 이번에는 DC의 히어로 무비 '그린 랜턴(2011)'이 6월 16일 한국에서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DC와 마블 간의 히어로 전쟁이 그 막을 올리고 있는 셈인데요. 올 한 해에만 세 편이 개봉 예정되어 있는 마블에 비해 DC는 그린 랜턴 하나만이 개봉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올 한해로만 놓고 보면 마블의 초반 공세가 무섭다고 해야 하겠군요. 하지만 내년에는 DC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슈퍼 히어로들이 몰려온다, 시작된 마블의 거대 프로젝트 (보러가기)

그린 랜턴은 히어로 코믹스의 팬들에게는 유명한 DC 코믹스의 대표적인 히어로입니다. DC의 3대 히어로인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뒤를 잇는 네임 밸류를 갖고 있는 히어로로서,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그 시작은 1940년 빌 핑거(Bill Finger)와 마틴 노델(Martin Nodell)의 작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으니 실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히어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그린 랜턴은 이 1940년에 등장한 그린 랜턴(알란 스콧)이 아니라 1959년 존 브룸(John Broome)과 질 케인(Gil Kane)이 창조해낸 그린 랜턴(할 조단)이 주인공인 영화가 되겠습니다.

최초의 그린 랜턴이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활약한다는 설정을 가진 고전적인 히어로(그런 면에서는 마블의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와 비슷한 설정을 지녔군요)인 반면, 할 조단의 그린 랜턴은 외우주의 행성 오아(Oa)에 거점을 두고 있는 우주의 수호자의 일원이 되어 수호자들의 힘의 원천인 녹색의 파워 링을 받고 그린 랜턴으로 선택되는 인물입니다. 그로 인해 영화는 지구에 한정되지 않고 우주와 지구를 넘나드는, 이제까지의 '히어로 무비' 중에서는 가장 넓은 지역을 커버링하는 인물이 되시겠습니다. (클립톤 행성 출신인 슈퍼맨도 결국 활약은 지구에서 만이었으며, 우주에서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판타스틱 포 역시 지구 근처의 우주에서 사고를 겪은 뒤 실제 활약은 지구에서 벌이게 되니 그린 랜턴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지구로 무대가 한정된다 할 수 있겠지요.)

먼저 개봉한 토르가 신들의 세계에서 추방당해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 신이라면, 그린 랜턴은 평범한 인간에서 선택을 받아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서로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거기에, 이제까지의 히어로들과는 다르게 유니크한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우주의 수호자 중 한명이라는 것도 특이하네요. 압도적인 CG 기술로 인해 이제까지의 히어로들 중에서는 가장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줄런지도 모르겠군요. 특히 영롱한 녹색 불빛으로 인해 그 화려함은 다른 히어로들을 능가하지 않나 싶습니다. (원더우먼이 등장해준다면 모를까나 이제까지 히어로 중에서는 가장...)

ⓒ 2011 Warner Bros.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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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랜턴인 할 조단은 '베리드(2011)'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관 속에 갇힌 체 생매장 당한 한 남자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 내면서 뒤늦게 주목받고 있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맡았는데요. 작년 한 해 '127시간(2010)'을 통해 레이놀즈와 비슷한 상황의 배역을 신들리게 연기하면서 오스카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제임스 프랑코가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통해 얼굴을 알렸던 것과 비교하면 둘의 행보가 흥미롭다 하겠습니다. 감독은 '007 골든아이(1995)', '007 카지노 로얄(2006)'부터 '마스크 오브 조로(1998)', '레전드 오브 조로(2005)' 등 제법 굵직굵직한 블록 버스터들을 연출해온 영국계 감독 마틴 캠벨, 각본은 마이클 그린 외 다수. 그린은 TV 시리즈 '스몰빌(2001)'이나 '히어로즈(2006)' 등에 참여한 경력이 있기에 히어로 무비에 대한 적응력은 좋을 듯 싶군요.

개인적으로 그린 랜턴은 히어로 무비로서는 평작 정도의 수준을 보여줄 작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보고 있습니다. 스타 캐스팅도 아닌데다가 감독인 마틴 켐벨이 괜찮은 흥행작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유명감독이긴 하지만, 카지노 로얄 이후 약 4년간의 공백이 있었으며 오랜만에 연출한 멜 깁슨 주연의 '엣지 오브 다크니스(2010)'도 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못본 체 평단에서도 '그럭저럭 볼만한' 작품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이본 작품에서 그닥 강한  임팩트를 주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어벤져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등장해주는 마블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솔로잉이라는 점에서도 파워가 밀리는 감이 있습니다.

다만, DC의 히어로라면 으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만을 생각하고 있는 중에 그린 랜턴이 영화화 되었다는 점은 무언가 다른 뉘앙스가 풍기기도 합니다. 저스티스 리그의 핵심 멤버였던 그린 랜턴이 등장했으니, DC 역시 마블과 마찬가지로 '저스티스 리그'를 영화화 시키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죠. 아직까지는 DC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았으나 2007년부터 실사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꽤 진전되고 있었던 만큼 영화팬들이라면 조심스레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 듯 싶은데요. 과연 토르와 엑스맨,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2011년의 공세 속에서 그린 랜턴이 얼마만큼의 선전을 해줄지가 저스티스 리그의 앞날을 밝혀줄 한줄기 녹색 섬광이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 DC Comics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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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헬드 기법에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접목한 독특한 호러 무비

ⓒ 2011 Magnet Releasing


국의 영화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노르웨이산 호러 영화가 2011년 6월 북미에서 개봉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괴물 트롤을 소재로 한 유럽식 호러영화인 이 작품의 제목은 '트롤 헌터'. 감독 역시 생소한 인물인 안드레 오브레달(André Øvredal)로, 안드레 자신이 직접 각본까지 쓴 작품입니다. 주연을 맡은 오토 제스퍼슨(Otto Jespersen)이나 한스 모르텐 한슨(Hans Morten Hansen)은 모두 노르웨이의 코미디언들이라 하는군요. 코미디언들이 등장하는 저예산 괴수영화라니 왠지 한국의 심형래 감독이 만들었던 예전의 B급 괴수영화 '티라노의 발톱'이나 '영구와 공룡 쭈쭈' 등이 생각나네요. 물론, 이 영화의 분위기는 심 감독의 영화와는 완전히 분위기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북유럽 신화 외에도 스칸디나비아나 스코틀랜드에 구전된 전설 속의 요괴인 트롤은 톨킨이 정립한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인 중간계에 등장하는 트롤이나, 이 톨킨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정립된 또다른 판타지 세계관들에 등장하는 트롤과는 좀 다른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필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3부작'에 등장하는 트롤은 거대하고 힘센 거인이라는 점에서는 원래 트롤의 설정과는 비슷하지만, 크리쳐 디자이너에 의해 나름의 스타일링이 가해진 형태이며, 게이머들에게 유명한 타이틀인 '워크래프트' 시리즈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트롤의 경우는 원래의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강인하고 날렵한 야만전사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는데요. 아마, 이번 포스트에 등장하는 트롤의 이미지가 원래의 트롤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디자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트롤 헌터 예고편 보러가기 (클릭)

포스터로만 보아도 굉장히 거대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직접 캠코더를 들고 촬영하는 것과 같은 핸드 헬드(Hand-Held)기법이 적용되어 상당한 현장감을 부여하고 있는데요. 핸드 헬드 기법의 괴수영화라는 점에서는 J.J 에이브람스가 제작했던 '클로버 필드(2008)'가 처음 연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핸드 헬드 기법의 호러영화라는 점에서 클로버 필드 역시 다니엘 미릭/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의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1999)'에 영감을 받았기에 트롤 헌터가 핸드 헬드 기법이라는 이유만으로 클로버 필드의 아류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군요. 오히려, 저예산 영화스러운 느낌을 주는 점에서는 클로버 필드보다는 블레어 윗치 쪽에 보다 더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클로버 필드가 고질라를 핸드 헬드 기법으로 촬영한 것과 같은 느낌이라면, 트롤 헌터는 핸드 헬드 기법의 호러영화에 거대한 트롤이 등장한다라고 보면 어떨까 싶네요.

등장하는 트롤은 한마리가 아닌 듯 합니다. 굉장히 거대한 트롤부터 3m 크기의 거인 트롤과, 자그마한 체구의 트롤 무리도 등장하는 것 같군요. 특히, 이 자그마한 체구의 트롤들은 미우라 켄타로의 코믹스 '베르세르크'의 천년제국의 매편 성마전기의 장에 등장하는 트롤을 연상시킨다 하겠습니다.

노르웨이 영화라는 점에서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헐리우드식 괴수영화에 비해 신선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줄 것으로 기대가 되는데요. 아쉽게도 국내에서의 개봉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이 영화의 판권을 벌써 헐리우드 측에서 사서 헐리우드식으로 리메이크할 것이 결정되었다고 하는군요. 아마 헐리우드식 트롤 헌터는 수년 뒤 한국 극장가에서도 관람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Magnet Releasing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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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삼총사 중 가장 현란한 비주얼, 과연 스토리는?


동안 무려 20여편이나 실사영화로 제작되었던 알렉상드르 뒤마의 고전 명작 어드벤쳐 '삼총사'가 2011년 또다시 실사영화로 개봉예정에 있습니다. 감독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감독 겸 프로듀서로 알려진 폴 W.S. 앤더슨(Paul W.S. Anderson).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이 삼총사가 어떤 형태로 흘러가지가 짐작이 가는군요. 현란하고 스타일리쉬한 영상미에서는 적어도 매력적인 결과물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클래식한 중세 프랑스의 모습과 비디오 게임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의 조합이라는 점도 흥미롭구요. 다만 이제까지 앤더슨 감독의 오락영화들이 보여준 부실한 스토리로 인해 이번 작품 역시 볼거리만 풍성한 헐리웃식 팝콘무비 수준 이상은 되지 못하겠다는 선입견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인공 달타냥은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2010)'에서 퍼시 잭슨역을 맡았던 로간 러만이, 삼총사의 리더 아토스 역은 '오만과 편견(2005)'에서 남자 주인공 디아시를 맡았던 매튜 맥퍼딘, 포르토스 역은 '킹 아써(2004)', '일라이(2010)' 등에서 조역으로 활약한 레이 스티븐슨, 아라미스 역에는 영국계 배우인 루크 에반스 등 캐스팅 파워는 다소 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다만 악역인 여성 스파이 밀라디역에는 레지던트 이블의 여전사 밀라 요요비치가, 버킹엄 공작에 레골라스의 올랜도 볼룸이 캐스팅 되는 등 원작의 조연급 인물의 캐스팅 파워가 주연을 능가하는 캐스팅 파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는 적어도 이들 밀라디나 버킹엄 공작의 비중이 생각보다 높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올랜도 볼룸이 아라미스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군요.

이 외에 리슐리외 추기경에는 '바스터즈(2009)'를 통해 칸느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퍼 왈츠, '발할라 라이징(2009)', '더 도어(2009)' 등 비 헐리우드권 유럽 영화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매드 미켈슨이 달타냥의 라이벌 로슈포르를 맡는 등, 삼총사의 캐스팅은 악역과 조연급 인물에 캐스팅 비중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오히려 독특한 뉘앙스를 풍기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게 하는군요.

☞ 삼총사 공식 홈페이지 (클릭)

예고편을 보건데, 이 삼총사는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2009)'처럼 가장 원작과 상당히 다른 형태의 삼총사가 될 듯 합니다. 하늘을 나는 범선이 등장하는 예고편으로 보아 누군가의 말마따나 유럽식 판타지 무협 액션물의 모양새가 될 듯 싶네요. 각본을 맡은 앤드류 데이비스가 '브리짓존스의 일기(2001)' 등 드라마와 로맨스 쪽에 강점을 가진 작가라는 점은 꽤 독특합니다. 그의 드라마적 감성이 이 판타지 어드벤쳐 물에 어떤식으로 그려질지에 따라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줄 것으로 보이는군요. 데이비스가 커버하지 못하는 액션 부분의 이야기는 '프레데터스(2010)'에서 각본으로 참여한 알렉스 리트박이 보완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데이비스의 각본, 매튜 맥퍼딘, 매드 미켈슨, 크리스토퍼 왈츠 같은 연기파 배우들의 캐스팅에서 헐리우드식 팝콘 무비치고는 꽤 고급스러운 모양새도 느껴집니다. 애시당초 이 프로젝트가 미국, 영국, 독일 등의 다국적 영화인지라 분위기도 단순한 헐리우드 액션물과는 차별화될 것으로 보이구요. 유럽적 감성이 녹아든 만큼 색다른 오락물로 완성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개봉은 2011년 10월 14일 예정.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Summit Entertainment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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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MOUNT Pictures


<스탭>

◈ 감독: 마틴 스콜세지
◈ 원작: 데니스 르헤인
◈ 캐스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크 러팔로, 벤 킹슬리, 미셸 윌리엄스, 막스 폰 시도우
◈ 제작: 파라마운트 픽쳐스


<시놉시스>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정신병원에서 한 여성 환자가 실종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해결을 위해 현장으로 향하는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과 동료 척(마크 러팔로 분). 테디는 수년전 방화사건으로 인해 아내 돌로레스(미셸 윌리엄스 분)를 잃고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잦은 두통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병원의 책임자인 코리 박사(벤 킹슬리 분)를 만나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는 테디와 척. 사라진 환자는 레이첼 솔란도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자신의 아이 셋을 물에 익사시킨 뒤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으나 어젯밤 자신의 숙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테디는 코리 박사 이하 정신병원의 모두가 무언가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그들 몰래 사건을 조사하려는 테디. 사실 그에게는 이곳 정신병원을 찾은 또 하나의 숨겨진 목적이 있었는데...


부족한 스릴러의 공백을 메우는 뛰어난 싸이코 드라마

ⓒ PARAMOUNT Pictures

실 셔터 아일랜드가 스콜세지의 작품치고는 그다지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는 미디어의 소식을 접했을 때는 무척 실망했었다. 예고편이나 공중파 방송의 영화 소개 프로에서 접한 셔터 아일랜드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흐른 뒤 감상하게 된 셔터 아일랜드는 기대했던 이야기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미디어의 평가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작품이 되었다. 스콜세지 감독의 연출력은 거장의 칭호에 걸맞는 내공과 섬세함이 돋보였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물이 올랐으며, 악몽과 현실의 경계에 선 작품의 분위기는 훌륭한 긴장감을 선사하고 있다. 140분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셔터 아일랜드는 인상적인 느낌을 내게 심어주었다.

정신병원이 위치한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떠나는 테디와 척의 행보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당연히 미스테리 스릴러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엘로스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마치 이 서두는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2005)'에서 외딴섬 동화도로 향하는 원규(차승원 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다만, 연쇄살인사건과 범인의 정체, 그리고 섬에 감춰진 어둡고 충격적인 진실과 같은 클리셰가 드러난 혈의 누와는 달리 셔터 아일랜드는 다른 형태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것은 바로 테디의 트라우마와 현실 사이의 방황이다.


정신병자의 방화사건으로 세상을 뜬 아내에 대한 악몽과 2차 대전 중 겪었던 참상으로 고생하는 연방보안관 테디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동시에 핵심 키워드이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테디의 악몽과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 셔터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 속에 숨겨져 있을 모종의 진실 파헤치기를 키워드로 삼아 진행된다. 악몽, 과거, 현재로 오버래핑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아내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안은 체 사건에 뛰어든 주인공은 셔터 아일랜드 직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과 인셉션의 주인공 코브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엘로스의 경우는 셔터 아일랜드의 시놉시스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인셉션의 예고편을 접했을 때 둘이 비슷한 테마를 공유하고 있는 영화로 인식했었다.

인셉션과의 공유점을 발견했다면 셔터 아일랜드의 주제 역시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다. 결국 이 작품은 미스테리 스릴러라기 보다는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싸이코 드라마라는 주장르 위에 토핑처럼 스릴러를 얹은 장르인 것이다. 다만 그로 인해 첫 맛이 스릴러로 느꼈던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영화가 되었다. 게다가 악몽 속에 방황하는 테디의 싸이코 드라마인지라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는 무척 짓눌려 있고, 호러나 스릴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귀를 거슬리는 배경 음악 역시 이러한 불쾌감을 극대화시키는 미장셴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반전의 클라이막스와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사실 반전으로 향하는 여정이 예민한 관객들에게는 금방 보일 정도라는 점에서 그 구성에 실망을 보이는 이들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생각보다 충격이 덜한 반전과 함께 영화의 의도를 일순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 영화는 장르 영화라기보다는 드라마를 강조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물론 그로 인해 작품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미약해졌다. 다만 세간의 평가와 달리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스콜세지 최고의 필모그라피 중 하나는 아니더라도 무척 인상적인 A급 필모그라피 중 하나라 감히 말하고 싶다.

덧붙임) 한국판 포스터와 오리지널 포스터를 비교해보면 역시 오리지널 포스터 쪽이 원작의 느낌을 더 잘 살리고 있다. 잔뜩 인상을 찌뿌린 디카프리오의 표정이 그에게 어떤 심각한 사정이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오리지널 포스터와 달리 한국판 포스터의 디카프리오는 너무 평온한 표정이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PARAMOUNT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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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블랙 코스튬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캐릭터들


랙은 심플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칠흑과 같이 한없는 어두움과 세련되고 고상한 고귀함을 동시에 표출하지요. 검은 가죽의상처럼 젊고 파격적이며, 뇌쇄적이고 퇴폐한 느낌을 풍기다가도 검은색 슈트처럼 중후하고 귀족적인 풍취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다른 색들도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연출하긴 합니다만, 검은색이 보여주는 양면성은 다른 색보다 확연하게 양갈래로 나누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악하고 어두운 절대악을 상징하기도 합니다만, 절대적인 강함으로 정의의 편에 서는 흑기사와 같은 다크 히어로로서의 컬러로도 잘 어울립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색이라 할까요.

이리하여 검은색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코믹스, 만화영화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들의 퍼스널 컬러로서 사랑받아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엘로스 역시 무척 좋아하는 컬러이기도 한데요. 이번 시간에는 이 블랙이라는 색상을 멋지게 소화해내었던 가상의 인물들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고자 합니다. 소설, 영화, 만화영화, 드라마, 코믹스, 게임에 걸쳐 기억나는 캐릭터들 중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꼽아보았으며, 소개 순서는 캐릭터의 창작연도 순이 되겠습니다.


Character 1. 쾌걸 조로 (1919~2005) from 쾌걸 조로

1919년 존스톤 멕클레이의 소설에 등장한 조로는 검은 코스튬의 캐릭터들 중에서는 첫 번째로 엘로스에게 검은색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 인물로 기억됩니다. 스페인어로 '여우'라는 뜻의 조로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캘리포니아의 귀족 돈 디에고 델라베가(혹은 돈 디에고 베가)가 부패한 관리들로부터 평민들을 구하는 의적으로 분하여 활약한다는 이야기를 다룬 활극인데요. 평상시에는 겁쟁이에 어리숙한 귀족 도련님으로 행세하는 디에고가, 위급한 상황에서는 검은 망토와 검은 복면, 그리고 검은 긴 챙모자를 눌러쓰고 현란한 펜싱기술로 관리들과 병사들을 골탕 먹이는 멋진 의적으로 분하는 모습은 후일 미국의 슈퍼 히어로와도 일치하는 점이 있지요.

능숙한 마상술, 멋진 호를 그리며 상대를 제압하는 채찍, 그리고 날카롭고 재빠른 검술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조로는 특히 순식간에 상대에게 Z자의 검상을 남기는 것으로도 인상적인데요. 수십편의 영화와 TV 드라마, 여기에 애니메이션으로도 등장하는 등, DC나 마블의 히어로들보다 더 먼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미국식 히어로라 하겠습니다. 민중의 편에서 부패한 권력자들을 응징하는 모습에서는 유럽의 의적 로빈 훗이나 한국의 고전 의적 홍길동과도 비교된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의적 중에서는 가장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렷을적 계몽사(?)의 세계명작전집 등을 통해 처음 조로를 만난 이래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조로 중 한명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미남 배우 알랭 드롱이 주연한 1975년작 '조로(1975)'가 아닌가 싶습니다. 1960~70년대의 대표적인 미남배우인 알랭 드롱이 연기한 조로는 후일 국내 공중파 방송에서도 몇 번씩이나 명절특선 영화나 토요 명화 등으로 방영되었던 작품으로,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스파게티 웨스턴(마카로니 웨스턴)의 조류를 타고 만들어진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요. 특히, 라스트에서 선보인 조로의 촛불 자르기 신공(다섯개의 초가 일렬로 꽂혀진 촛대를 조로 십자로 베어버리자 양쪽의 네 개의 초는 수평으로 베어지고 가운데 초만 가운데로 갈라지는 황당무게한 조로의 기술)은 어린 나이에는 몹시도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금 보면 어이가 없긴 합니다만)

98년에는 당대의 인기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을 맡은 '마스크 오브 조로(1998)'로 다시 한 번 조로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조로보다는 케서린 제타 존스의 눈부신 미모에 더 마음이 가버기도 했었죠. 반데라스의 조로는 좀 더 코믹하고 서민적인(?) 캐릭터로 묘사됩니다만, 현란한 몸놀림과 검은 망토는 여전히 멋스럽다 하겠습니다.


Character 2. 배트맨 (1939~계속) from 배트맨

ⓒ DC Comics

퍼맨과 함께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를 대표하는 히어로인 배트맨은,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리 초인적인 힘을 갖지 않은 인간적인 히어로입니다. DC의 간판 슈퍼맨과 함께 가장 많이 실사영화화된 인물이기도 하지요. 북미에서 제작된 영화로만 치자면 10편으로 9편의 슈퍼맨보다 많습니다. 현재 제작되고 있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슈퍼맨 신작이 있으나, 배트맨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새로운 속편이 등장할 예정에 있지요. 여기에 10편의 비디오 영화, 여섯번의 TV 시리즈, 이십여편의 애니메이션까지 실로 미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크나이트'라는 별명처럼 배트맨은 검은색에 잘 어울리는 히어로입니다. 어렷을 적 불우한 기억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갖고 있는 배트맨은 선과 혼란이 공존하는 캐릭터입니다. 백만장자라는 밝음 속에 숨겨진 외롭고 고독한 삶, 히어로라는 영광 뒤에 숨겨진 악당들을 향한 병적인 증오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블랙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배트맨의 양면적인 캐릭터는 1966년 TV 시리즈의 등장으로 인해 그 매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로빈과 짝을 맞춰 우스꽝스런 코스튬을 입고 경박한 톤으로 대사를 읊는 TV 시리즈의 배트맨은 분명 배트맨의 퍼스널 컬러인 블랙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 TV 시리즈에서 배트맨의 코스튬은 전체적으로 밝은 회색계열의 색상에 검은색 마스크와 장갑, 부츠로 마무리되어 검은색의 묘미를 살리지 못합니다. 물론, 이는 원작 코믹스에 바탕을 둔 디자인이긴 했으나, TV 시리즈로 옮겨지면서 순화된 캐릭터의 성격에 덩달아 밝은 회색의 코스튬까지 더해지면서 블랙이라는 컬러가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았지요.

하지만, 이런 배트맨은 89년 팀 버튼의 '배트맨(1989)'으로 인해 새롭게 조명받게 됩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기괴한 고담시를 배경으로 어둠 속에서 악당들을 응징하는 배트맨은 원작과는 다소 성격의 차이는 있어도 어둠과 잘 어울리는 안티히어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선사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팀 버튼식 블랙의 묘미가 빛나는 순간이었죠. '가위손(1990)'이나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 '스위니토드(2007)' 등 팀 버튼의 영화에서 블랙은 어두움과 그로테스크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이는 후속편인 '배트맨 리턴즈(1992)'에서 더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되지요. 마치 마녀의 시커먼 망토와 같은 괴기스러운 검은색은 원작과는 또다른 맛을 선사해 줍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새롭게 그려진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나이트(2008)'에서 배트맨은 더더욱 강렬한 블랙의 느낌을 선사합니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놀란의 블랙은 다크나이트라는 부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배트맨을 창조해내게 되는 것이죠. 비록 강렬한 악역 조커의 등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밀리긴 했지만, 다크나이트는 어둠과 빛 사이에서 방황하는 어두운 히어로의 면모를 실로 완벽에 가깝게 스크린에 묘사합니다. 2012년 다시 한 번 우리곁으로 돌아올 다크나이트의 발걸음은 그래서 더더욱 기대됩니다.


Character 3. 일지매 (1975~2009) from 일지매

국의 대표적인 토종 히어로(?)라 부를 수 있는 일지매는 홍길동과는 달리 정확한 기원이 전해지지 않은체 구전되어온 인물입니다. 조선 순조 당시 무인인 조수삼의 '추재집'에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기에 실존인물의 가능성도 있는데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검은 옷과 검은 두건을 한 일지매는 1975년 故 고우영 화백이 일간 스포츠에 연재했던 만화 '일지매(1975)'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과 이야기를 갖추게 됩니다. 고우영 화백의 작품을 통해 탄력을 받은 일지매는 70년대 말엽 최초로 실사영화화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현재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고호 감독(화가 고흐 아니구요.)의 '날으는 소년 일지매(197x)'가 되겠습니다.
 
날으는 소년 일지매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동용으로 만들어진 한국판 무술영화입니다. 당시에는 무명의 성룡이 국내에서 무술영화에 출연하는 등, 홍콩 무술영화에 영향을 받아 한국산 무술영화들도 제법 제작되던 시대였는데요. 이러한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만들어진 일지매는 비록 완성도에서는 아동용이라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한국 고유의 세계관과 고유의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여러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일지매는 한 때 대한민국 최고의 괴작 연출가 중 한명이라 할 수 있는 남기남 감독(대표작 '영구와 땡칠이(1989)')에 의해 '슈퍼맨 일지매(1990)'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적이 있구요.(주인공이 무려 최수종) MBC에서는 최정주의 소설 일지매를 원작으로 한 8부작 드라마 '일지매(1993)'가 장동건, 염정아 주연으로 방영된 사례도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일지매는 계속적으로 영상화되면서 그 명맥을 이어온 셈이죠. 그러다가 2008년 SBS에서 이용석 연출/이준기 주연의 '일지매(2008)'를 방영하면서 일지매는 다시 화제의 중심에 올라서게 됩니다. 특히, SBS의 일지매는 민중의 편에서서 탐욕스러운 권력자와 대적하는 일지매의 활약을 상당히 통쾌하게 표현하면서 이슈가 되기도 하였죠. 당시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일지매는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게 됩니다. 주조연의 감칠 맛나는 연기도 일품이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이듬해에 MBC에서 제작된 황인뢰, 김수영 연출/정일우 주연의 '돌아온 일지매(2009)'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현대 시대에 일지매를 새롭게 조명했던 고우영 화백의 원작을 기본으로 한 작품으로, 원점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동시에 책녀를 통한 독특한 나레이션 기법과 흥미로운 연출기법 등으로 다소 거친 연출을 보여주었던 SBS의 일지매에 비해 보다 세련된 영상미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은데요. 다만, 시기를 잘 탔고, 캐릭터의 묘미가 잘 살아났던 SBS의 일지매에 비해서는 대중적 호응이 미치지 못하기도 하였죠.

인기를 끈 일지매는 2009년  SBS와 초록뱀 미디어 등의 주도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기세라면 한번쯤 메이저 실사영화로 한번쯤 제작해도 어떨까 하는 기대도 드는군요.


Character 4. 다쓰 베이더 (1977~1983) from 스타워즈

ⓒ LUCASFILM Ltd.

쓰 베이더(Darth Vader)는 검은색이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인 악, 그리고 어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캐릭터 중 한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흡장치를 통해 내뱉는 귀에 거슬리는 거친 숨소리, 왠만한 장정들을 압도하는 위압적인 체구, 얼굴을 모두 가리는 그로테스크한 검은 헬멧과 검은 갑옷으로 몸을 감싼 그는 제다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다이 중 한 명이며, 뛰어난 파일럿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름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타투인 혹성에서 노예로 살던 도중 그 가능성을 알아본 제다이 마스터 콰이곤에 의해 제다이로 키워지게 되지요.

포스에 질서를 가져올 인물로, 동시에 위험한 미래를 가진 인물로 평가받던 그는 콰이곤의 사후에는 콰이곤의 제자였던 오비완에 의해 제다이로 길러집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던 아나킨은 세속의 가치관을 모두 부질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고고한 제다이의 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했고, 파드메를 향한 사랑과 강렬한 소유욕, 그리고 어머니를 잃고 나서의 상실감과 증오를 이겨내지 못하고 시쓰(Sith)의 군주인 팰퍼틴의 꾀임에 넘어가 어둠의 제다이인 시쓰의 군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오비완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빈사의 상태에 빠졌던 그는 팰퍼틴에 의해 생명유지 장치를 부착한 검은 갑옷을 입은 다쓰 베이더로 거듭납니다. 이후 그는 공화국의 잔족세력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제국의 병사에게까지 공포스러운 존재로 태어나게 되지요. 누구든지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표정을 알 수 없는 검은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그가 다가온다면 긴장에 떨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그는 실수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부하들을 포스의 힘으로 질식사 시켜버리기도 합니다. 그가 포스로 상대방의 숨통을 죄일 때 손가락으로 마치 목줄을 잡는 듯한 시늉(포스 그립이라는 기술로도 불립니다)을 취하는데, 이 포즈는 그야말로 다쓰 베이더의 어둡고 강렬한 힘을 대표하는 포즈이기도 하지요.

특히, 에피소드 5편인 '제국의 역습(1980)'편에서 루크 스카이워커와의 결투 끝에 그를 궁지에 몬 그가 루크에게 자신이 바로 아버지임을 밝히는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자주 패러디되기도 하였죠.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본연의 선함을 되찾고 팰퍼틴 황제를 쓰러뜨리며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그는 이제까지의 영화사상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검은 코스튬의 악인 중 한명일 것입니다.


Character 5. 메텔 (1978~2004) from 은하철도 999

ⓒ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아하면서도 우아한 검은색의 긴 코트와 검은 색 샤프카(러시아식 털모자)를 쓴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누가 뭐래도 아니메 역사상 가장 눈부신 여인 중 하나일 겁니다. 70년대 TV에서 그녀를 접한 남자아이들에게 있어서 그녀의 존재는 한마디로 여신과 같았지요. 이후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아니메에 등장하여 소년들의 이상형이 되었지만, 그녀만큼 눈부시고 그녀만큼 포근하며 동시에 그녀만큼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여인은 찾아보기 힘들 듯 싶습니다.

주인공 테츠로(철이)의 엄마를 기본으로 하여 복제된 메텔(그러나, 후일 발표된 '메텔 레전드(2000)' 등을 통해서 이러한 설정을 작가인 마츠모토 레이지 스스로 뒤엎어버립니다. 어쨋든간에)은 그 출생상의 특징으로 인해 주인공인 테츠로 뿐만 아니라 은하철도 999를 시청하는 모든 소년들에게 있어서 미래의 연인인 동시에 동경하는 누나이자 이상적인 엄마의 느낌을 주었다 하겠습니다. 엘로스도 이 메텔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어렷을 적 잠시 연상의 여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군요.

메텔이 입고 있는 검은 옷은 그녀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준다며 라메텔 혹성으로 데려가 기계인간이 되게 한 수많은 아이들을 위한 상복의 의미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검은색 코트에 가려진 그녀의 진짜 정체는 그녀의 미모에 홀려 그녀를 원했더 수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할 정도로 무서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추악한 진실을 검은색 코트 속에 감춘 체 길고 긴 시간의 여행자를 자처하는 그녀는 깊은 슬픔을 간직한 체 결코 드러내지 않는 고결한 여인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그녀의 검은색은 그래서 고귀하고 슬픈, 그리고 우울한 느낌을 줍니다.

천년여왕이었던 프로메슘(유키노 야요이)의 딸이며, 동시에 우주를 방랑하는 해적 퀸 에메랄다스의 쌍동이 여동생인 그녀는 극장판 '은하철도 999(1979)'에서 테츠로에게 '소년시절의 마음에만 남아있는 청춘의 환영'이라는 잊을 수 없는 명대사를 남깁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를 동경하면서 스크린 앞에 모여있던 수많은 소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듯 합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눈부신 그녀는 이제는 그저 어쩌다 기억나는 인상적인 만화영화의 히로인 정도로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소년시절의 연인, 청춘의 환상 메텔 (보러가기)


Character 6. 뱀파이어 헌터 D (1983~계속) from 뱀파이어 헌터 D

Illustrated by 天野喜孝 ⓒ 菊地秀行 · 朝日新聞出版

파이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뱀파이어. 인간과 괴물, 선과 악의 경계에 서게 되는 기구한 운명의 이 창백한 미남자는 인간들의 증오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인간들을 해하는 뱀파이어들을 사냥하는 끝없는 고뇌의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공포소설의 대가 키쿠치 히데유키가 창안해 낸 소설 속의 혼혈 뱀파이어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깊게 각인시키게 된 것은 소설의 삽화 일러스트를 맡았던 일본의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공이 크다고 하겠는데요. 그의 손끝에서 펼쳐진 몽환적이면서도 고귀함과 세련됨, 그리고 괴기함을 겸비한 헌터 D의 일러스트는 그때까지 타츠노코 프로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의 그림체와는 전혀 다른, 만화의 범주를 탈피한 시각적 센세이션이었다 하겠습니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애니메이터(아마노는 10대의 나이에 타츠노코에 입사해, 창립자 삼형제 중 막내인 쿠리 잇페이의 제자로 만화를 배움)의 손 끝에서 미대생들을 능가하는 환상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그림이 나오다니! 당시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를 접한 엘로스는 그 특이한 매력에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뱀파이어를 상징하는 어둡디 어두운 검은색은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를 통해 귀족적인 고귀함과 뱀파이어의 어두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검은색으로 다시 채색되었고, 그런 D의 모습은 비극적인 출생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검은 옷의 미남자가 실상은 뱀파이어의 피가 섞인 어둡고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D는 키쿠치 히데유키의 소설, 그리고 아마노의 삽화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뒤, 아시도 토요오의 85년작 OVA를 통해 아니메 팬들에게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비록, 여러가지 제작일정상의 난항으로 인해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떤 아마노가 본 작품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기존의 일러스트와는 분위기가 너무도 다른 D로 그려져 개인적으로는 몹시 아쉬운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요. 후일 키쿠치 히데유키의 단짝 친구이자 하드고어 아니메의 대가인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북미시장을 목표로 만든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2000)'에서는 카와지리스러운 캐릭터 스타일을 유지한 체 아마노가 그린 D를 적절히 재해석하면서 멋진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OVA의 D는 멋진 캐릭터이긴 했으나 디테일이 떨어지는 관계로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하프 뱀파이어라는 느낌이 약해진 반면, 새로운 극장판의 D는 원작의 삽화에서 보여준 귀족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그려내면서도, 원작의 스타일이 아닌 카와지리 작품다운 스타일로 재해석함으로써 보다 더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되는군요. 다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해외시장을 목표로 하면서 카와지리 특유의 작품색이 옅어져 결과적으로는 싱거운 작품이 되었다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더더욱 멋진 D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 과묵한 성격 탓인지 아니메에서 그를 만나기는 좀처럼 힘들군요.

☞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2000), 돌아온 전설의 뱀파이어 헌터 (보러가기)


Character 7. 드리즈트 도우덴 (1988~계속) from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

Illustrated by Todd Lockwood ⓒ WIZARDS OF THE COAST

가튼 렐름은 TSR사에서 출시한 TRPG 게임인 AD&D 세계관 중 하나입니다. 게임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게임 디자이너들 뿐만 아니라 게이머들 스스로가 이 매력적인 세계관에 스스로 이야기를 추가하거나 영웅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데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 포가튼 렐름은 거대하고 구체적이며 온갖 영웅들과 악당들, 신과 악마, 그리고 모험과 음모, 낭만이 존재하는 신비롭고 방대한 세상으로 자리 잡아가게 됩니다. 수많은 영웅들과 악당들이 모험 속에 스스로의 무용담과 전설을 쌓아나가고 있는 이 곳에서도 드리즈트 두어덴은 특히나 눈에 띄는 명성과 실력을 갖고 있는 다크 엘프 레인져입니다.

흑요석과 같은 검은 피부, 검은 피부와 멋진 대조를 이루는 눈부신 은발머리, 이 멋진 무채색의 대비 속에서 또렷하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보라색 안광... 드리즈트의 이 강렬한 외모는 포가튼 렐름의 영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을 정도로 인상적인데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 세계에서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종족 중의 하나인 다크 엘프 드로우라는 사실입니다. 사악한 종족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운명의 굴레를 벗고 어두운 지하세계(포가튼 렐름에서 드로우들은 언더다크라는 지하세계가 삶의 터전이죠.)를 벗어나 지상으로 향한 이 용감한 다크 엘프는 지상인들의 편견과 오해, 멸시와 증오 속에서도 그의 영원한 파트너인 검은 표범 구엔하이버와 함께 친구들과 안식처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신분과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고 운명과 싸우는 어둠의 히어로는 항상 사람들에게 강렬한 매력을 선사하게 마련이죠.

두 자루의 시미터를 현란하고 멋지게 사용하는 쌍검술의 달인이자 노련한 레인져인 그는 포가튼 렐름을 배경으로 한 R.A.Salvatore의 베스트셀러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을 통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매력을 선사했고, 이후 '다크 엘프 3부작', '드로우의 유산 3부작', '어둠으로의 길 3부작' 등을 통해 꾸준히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먼저 소개한 헌터 D가 아마노 요시타카의 환상적인 일러스트에 의해 시각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드리즈트 역시 소설 삽화가로 활약한 토드 락우드에 의해 인상적인 모습을 부여받았다고 하겠는데요. 살바토레가 묘사한 드리즈트의 매력을 멋지게 화폭에 담아낸 락우드의 일러스트는 금방이라도 두 자루의 시미터를 들고 악당들을 응징하는 다크 엘프의 영웅처럼 생생하다 하겠습니다.

현재 드리즈트는 계속적으로 소설과 코믹스 등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바이오웨어의 전설적인 RPG 게임 '발더스게이트'나 PS용 게임인 '데몬스톤'에서도 깜짝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D&D 마니아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 멋진 다크 엘프를 실사영화를 통해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요. 북미에서는 인기 높은 캐릭터이니 만큼 이러한 바람이 그저 헛된 망상이 아니길 마음 속으로 빌어보려 합니다.

☞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 - 드리즈트 도어덴의 장대한 모험의 시작 (보러가기)


Character 8. 흑태자 칼 스타이너 (1995~1998) from 창세기전 I, II

ⓒ SOFTMAX Co, Ltd.

산 RPG 게임의 신기원을 열었던 소프트맥스사의 '창세기전'은 스케일 큰 서사적인 스토리라인, 만화가인 김진이 직접 일러스트한 유려한 캐릭터 디자인, 흥미진진한 게임시스템(물론, 그 흥미진진한 만큼 수많은 버그로 인해 호평에 버금가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등으로, 걸음마 수준이던 90년대 말 국산 패키지 게임시장에 신선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됩니다. 치명적인 버그를 포함하고 있던 1편을 보완하고 아직 완결되지 못한 이후의 스토리까지 모두 포함하여 다시 태어난 '창세기전 II'는 버그로 점철되었던 전작의 오명을 어느 정도 만회하면서 흥행에 성공하게 되지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버그들이 존재했지만.)

사실, 이 정도의 치명적인 버그가 있는 게임이라면 멋진 그래픽과 게임성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전이 지금까지도 국내 게이머들의 입에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드라마틱한 스토리 전개와 강렬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발휘한 주인공 흑태자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장남인 흑태자 에드워드를 모델로 했다고 전해지는 흑태자 칼 스타이너는 항상 검은 갑옷과 검은 투구를 쓰고 변방의 게이시르 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대전쟁의 선봉에 서는데요. 뛰어난 무인이자 천재적인 전략가로, 사선진형이라는 신개념의 전법을 통해 적은 수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넓은 평원의 전투에서 막강한 실버애로우 연합의 대군을 궤멸시키면서 안타리아 대륙의 패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에도 불구하고 흑태자는 게임 플레이어의 플레잉 캐릭터가 아닙니다. 오히려 흑태자에 의해 조국이 멸망당한 펜드레건의 왕녀 이올린과 라시드 왕자, 비프로스트 공국의 레인져 G.S로 흑태자의 게이시르 제국과 맞서는 것이 플레이어들의 미션인 것이죠. 세상을 위협하는 악마에 맞서싸운다는 전형적인 RPG 공식을 벗어난 이 멋진 스토리는 게임과 함께 게임 속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하게 됩니다. (물론, 결국 플레이어는 흑태자를 플레이하게 되긴 하지요.)

세상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꿈을 버리는 흑태자의 기구한 운명과 슬픈 결말은 게임 타이틀의 수준을 넘어서는 드라마틱함을 보여줍니다. 흑태자가 사라진 후에도 창세기전 시리즈는 이 비극적인 운명과 드라마를 잘 활용하여 게임에 머물기에는 아까운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게 되는데요. 현재 온라인 게임으로 다시 팬들에게 돌아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듯 하니 그 멋진 드라마의 부활을 다시 한 번 기다려볼까 합니다.


Character 9. V (1982~2005) from 브이 포 벤데타

ⓒ WARNER BROS

은 코스튬의 히어로가 보통 선과 악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라면, 브이(V)는 가장 적격인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들 중 가장 특이한 히어로 중 하나일 겁니다. 영국의 유명작가 알렌 무어와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의 일러스트에 의해 탄생된 브이는 검은색 복장과 검은색 망토, 챙긴 검은 색 모자를 쓴 전형적인 다크 히어로인데요. 특히, 그는 로마 카톨릭 혁명단체의 일원으로 저 유명한 화약음모사건을 통해 영국의 국왕 제임스1세를 암살하려 했던 전설적인 테러리스트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즉, 그에게는 선과 악의 경계라는 다크 히어로 특유의 본질 이외에, 영웅과 테러리스트라는 양면적인 정체성을 가진 인물인 것입니다.

시점에 따라 그는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는 영웅이기도 하며, 사회 혼란을 획책하는 위험한 테러리스트로도 보여집니다. 인체실험의 대상으로 상상도 못할 지옥의 나날을 살아온 그의 과거와,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예술적 취향, 세련된 검은색의 코스튬과 우스꽝스런 가이 포크스의 가면까지... 브이는 언제나 상반되고 모순 덩어리이며, 이중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그는 침착함과 광기의 모습을 오가며 광적이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휴고 위빙 특유의 매력적인 보이스 컬러와 연기는 양면적인 브이의 모습을 실로 스크린에 멋지게 묘사하지 않았나 합니다. 사실, 처음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러갈 때만 하더라도 그저 그런 액션영화로 잘못 알고 있던 엘로스는, 처음에는 지루한 전개에 실망을 느끼다가 중반 이후 스크린에 급격하게 빨려들게 되었는데요. 전혀 정보를 모른 체 접한 영화 중 무척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였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인상적인 브이의 모습만큼이나 나탈리 포트만의 호연도 인상적입니다. 극중 삭발투혼까지 발휘한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음을 예견하고 있는데요. 정말로 이번 오스카에서 그녀는 '블랙스완(2010)'을 통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의 성공적인 변신의 마침표를 찍게 되지요.

독특한 기행만큼이나 브이의 마지막 역시 장렬하면서도 강렬합니다. 광기와 신념, 정의와 복수라는 경계 속에 선 그는 어쩌면 진정한 다크 히어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부 끝. 2부에서 계속)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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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가 스타 블레이져가 되기 위해 남겨진 숙제들

2010년에 개봉된 일본의 야마토 실사영화판. ⓒ 2010 SPACE BATTLESHIP ヤマト製作委員会


시자키 요시노부/마츠모토 레이지의 '우주전함 야마토(1974)'가 헐리웃에서 실사영화화 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작사는 스카이댄스 프로덕션(Skydance Production). 파라마운트가 투자를 한 소규모 제작사로 얼마전 북미에서 개봉한 '트루 그릿(2010)'의 제작을 맡았던 신생 제작사입니다. CEO가 배우 출신의 29살 청년 데이빗 엘리슨인데요. 이 친구 이제보니 오라클의 CEO 래리 엘리슨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헐~ 오라클이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파라마운트가 투자한 것에 아버지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네요. (너무 부정적인 관점인가요.)

현재 진행상황은 2011년 2월 21일 현재 영화판권 획득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각본에는 '유주얼 서스펙트(1985)', '발키리(2008)', '투어리스트(2010)' 등을 집필한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선임되었다고 하는군요. 적어도 각본이 아주 망작은 아니겠다라는 생각은 듭니다. 타이틀은 예전에 북미에서 방영되었을 당시 TV 시리즈의 타이틀이었던 '스타 블레이져'가 될 듯 하네요.

☞ 'True Grit' Co-Financier Skydance Targets 'Star Blazers' For Christopher McQuarrie, Deadline (보러가기)

사실 야마토의 헐리웃 실사영화화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1990년대에 디즈니가 판권을 사들여 실사영화의 의지를 보여준 적이 있었지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1999)'의 각본 스탭이었던 탭 머피가 각본을 맡아 사고뭉치 오합지졸 승무원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전함 아리조나 호에 탑승하여 우주로의 모험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미군에는 1913년에 진수한 USS 아리조나 전함이 실존했었고, 이 아리조나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침몰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의 상징이었던 전함 야마토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을 헐리웃으로 각색하면서 이런 사연을 가진 아리조나 함을 소재로 한 것은 다분히 미국인들의 센스(?)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당시 디즈니의 회장직에 있던 마이클 아이스너가 회사를 떠나면서 이 실사영화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맙니다. 이후 소식이 들려오지 않다가 2006년에 이르러서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나 '나비효과' 시리즈의 제작에 참여했던 벤더스프링크(Bendersprink)라는 회사와 프로듀서 조쉬 C. 클라인이 팀을 이루어 다시금 실사영화 프로젝트를 가동시키게 됩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예상대로 진척되지 못한 체 오늘에 이른 듯 싶군요. 현재 조쉬 C. 클라인은 데이빗 엘리슨과 함께 스카이댄스 프로덕션에서 야마토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벤더스프링크가 참여하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군요.

일단, 뒷배경이 든든한(?) 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좀더 구체적으로 진행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야마토의 스토리 자체가 그다지 헐리웃 SF 영화로서는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헐리웃에서 실사영화한다면 군국주의적 컨셉을 갖고 있는 야마토의 디자인과 캐릭터 설정 등 당연히 거세되어 미국적인 입맛으로 바뀔텐데, 과연 그렇다면 굳이 야마토를 가져다 쓸 필요가 있냐 하는 것이죠. 캐릭터들도 전부 원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으로 바뀌면서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겠고, 함선 디자인조차 일제 전함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니 당연히 서양식 우주전함으로 새로이 디자인하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스타 블레이져에서 원작의 느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멸망의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머나먼 안드로메다의 별로 여행을 떠나는 우주전함의 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원작의 장렬한 느낌이 아닌 미국식 액션 어드벤쳐가 된다면 이 영화에게서 기대할 것은 CG 외에는 없다는 것이죠.

이제까지 아니메를 소재로 한 헐리웃 영화는 대부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헐리웃 측 각본 스탭의 역량부족, 다시 말하면 판권을 사들인 영화사 측의 역량 부족과 작품에 대한 이해부족에 따른 로컬라이징의 실패가 원인이지 않나 싶은데요. 특히, 왜색이 짙은 야마토를 스타 블레이져로 각색하기 위한 작업은 다른 아니메보다 더더욱 어려운 작업이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물론, 영화 소재가 부족하다보니 그럴수도 있겠습니다만 과연 이것저것이 다 거세된 야마토가 관객들에게 야마토로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라 하겠습니다. 차라리 과거 SF 미드를 영화화하는 것이 낳지 않으려나 싶군요.

어쨋든 스타 블레이져 프로젝트는 시동에 들어갔습니다. 아직 각본가 외에는 캐스팅도 구체적인 연출진도 구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고, 판권 협상도 마무리가 안된 듯 싶으니 갈 길은 여전히 멀 것 같은데요. 그 긴 시간만큼 완성도 높은 이야기의 영화가 되기를 (형식적으로나마) 기원해 봅니다.

ⓒ 東北新社 · 徳間書店


덧붙임) 개인적으로 레이지옹의 작품들, 특히 (니시자키 프로듀서가 거의 창조해낸) 야마토는 헐리웃 실사영화로 만들기에는 너무 일본색이 강하다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군국주의적 정취도 많이 느껴지구요. 이걸 헐리웃에서 실사영화로 만들면 당연히 군국주의 색체를 지워버릴텐데, 그럼 작품의 정체성이 없어지는 셈이 됩니다. 이게 나쁜 요소이긴 하지만 레이지옹의 작품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거든요. 레이지옹 작품 중에서 가장 실사영화화하기 좋은 건 제 생각에는 스타징가입니다. 오로라 공주의 미니스커트를 실사판으로 보고 싶기도 하고... 요.

덧붙임) 일본판 실사영화처럼 야마토의 또다른 카리스마 데스라 총통은 당연히 북미판에도 안나오겠죠. 적어도 에일리언의 모습을 한 기괴한 형상으로 나오거나.

덧붙임) 다른 건 다 바꿔도 좋은데... 여승무원 복장만큼은 어떻게 원작의 느낌 그대로 살려주시면 안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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