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자유시장경제와 세계화를 되짚어 보다.

ⓒ Ha-Joon Chang / ⓒ Bookie (Korean Translation)

의 이야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엘로스는 얼마전까지만해도 보수적 관점을 가진 한국시민이었다. 부모님도 그러했고 전반적으로 유복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엘로스가 진보적 관점을 가지기에는 좀 어려운 여건이 있었다. 대학시절 학생 운동도 그저 모두가 참여하니까 몇 번 얼굴을 내밀었을 뿐 등록금 인상투쟁 외에는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는 것도 있었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던 중도성향에, 환경적인 영향으로 인해 보수에 가까운 가치관을 지닌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시민이었던 셈이다.

이런 엘로스의 가치관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작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엘로스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의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원제: The Conscience of  a Liberal)'을 읽기 시작하던 중이었는데,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나뉘어진 미국의 보수와 진보의 역사 속에서 경제는 어떤 형태로 변화되었고 중산층의 부흥과 몰락, 미국사회의 커다란 빈부격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를 놀라운 식견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깊이 있는 필력으로 써내려간 크루그먼 교수의 견해는 단 한권만으로 엘로스가 가지고 있던 허름한 가치관을 모두 허물고 새롭게 구축할 정도의 깊은 인상을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로 엘로스의 경제적, 정치적 식견이나 견해가 깊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2002년부터 약 3년간 벤처기업 창업멤버로서 실패의 쓴잔을 맛보면서 대기업 위주로 흘러가는 한국의 경제 시스템에 깊은 회의를 갖게 된 엘로스로서는 너무도 강렬하고 공감가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는 그런 면에서 크루그먼 교수가 주장하는 일련의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의 허점과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작은 정부, 감세정책, 공공기관의 민영화 같은 정책들의 이면에 놓인 여러가지 맹점들을 동일한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장교수는 진보주의자라는 정치적 관점보다는 경제학자로서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며, 저명한 학자라기보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려깊은 선생님의 눈높이로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크루그먼 교수의 저서에 비해 같은 가치관과 견해를 지닌 저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부담없이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서두에 장교수 본인이 직접 언급했듯이 난해한 경제학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이론적인 배경을 공고히 하는 전문가적 입장이 아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화법으로 어려운 경제학의 화두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짧은 페이지에 펼쳐낸 장교수의 이야기들은 입문서적이라는 작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예리하고 날카롭게 자유시장경제의 맹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위해 인용하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경제적 사례는 과연 이 정도 두께의 책에서 어떻게 다 인용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이다. 저명한 학자이면서도 장교수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라하면 좀 과장된 칭찬일까. 거기에 비록 자유시장경제의 맹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되 무조건적으로 그것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 이것은 잘못을 비난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는 보다 긍정적인 시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자유시장경제가 지향하는 또다른 이념인 세계화에 대한 장교수의 부정적 견해는 이채롭다. 게다가 책을 읽은 시점이 한국에서 G20이 열리던 전후이다보니 책을 읽는 내내 코엑스에서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는 세계정상들과 대기업가들의 모습이 세계화를 반대한 G20 반대시위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세계화라는 명목하에 선진국들의 편의대로 재편되는 경제 시스템과 정책들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죄고 있는 작금의 전세계적 금융위기(물론, 한풀 꺾이긴 했지만)는, 우리가 한 번쯤 이 시스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국내도서>경제경영
저자 : 장하준(Ha-Joon Chang) / 김희정,안세민역
출판 : 부키 2010.11.04
상세보기

작은 정부와 감세정책과 같은 자유시장 경제 시스템을 적극 추진하는 한국에 있어서도 장교수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지표는 나아졌지만, 실업률과 물가는 여전히 높은 한국의 현실은 바로 장교수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자유시장 경제의 맹점에 의한 현상들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시스템의 유지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존속하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 한국 경제 시스템에도 깊이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IT 분야에 종사하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인터넷이 세탁기보다 세상에 미친 영향이 더 적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비록 정보혁명이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모든 나라가 비슷한 수준의 경제 수준을 갖추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아직도 제조업이 더 절실한 국가가 많다는 현실은 우리가 미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아니, 당면한 한국의 현실을 봐도 그렇다. 젊은 세대들이 스마트폰이 가져온 새로운 혁명에 경탄하고 있을 때 여전히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극빈층이 존재하고 있으며, 디지털 방송의 탄생을 앞두고 HD를 이야기할 때 여전히 아날로그 브라운관 TV로 뉴스와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웃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불과 몇년 전 최진실씨의 사망을 통해 한국에 인터넷 실명제와 같은 인터넷 규제책이 나오면서 한국 사회가 떠들석했던 적이 있었다. 정부는 더이상 인터넷에서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불미스러운 일들을 막기 위해 이것을 규제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꽤 많이 가미된) 주장을 했고, 네티즌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역시 정치적 목적이 더 큰) 야당 정치인들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전근대적인 처사라며 이를 규탄했던 적이 있다. 인터넷의 규제를 외치던 이들은 경제 시스템에서는 오히려 시장의 논리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반대 논리를 펴고 있으며, 인터넷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의 대부분은 또 그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 책에서 과연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규제와 자율은 양립이 아니라 상호보완하는 개념은 아닐까. 시장에게 무조건 자유를 주는 것이 옳지 않다면, 인터넷의 자율 역시 적절한 규제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시장을 정부 뜻대로 컨트롤 하는 것이 기업의지를 위축시키는 것(그렇지만, 실제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도 엄연히 규제들은 존재하고 있다. 즉, 장교수의 말대로 완전한 의미의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이라면, 현재 우리들이 가장 큰 혁명이라 생각하는 인터넷(물론 장교수는 이것이 착각이라 책에서 언급했지만) 역시 규제에 의해 위축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보수적인 역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성립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세계화와 자유시장이라는 성공하고 선택된 이들을 위한 시스템은 이제 적어도 수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Ha-Joon Chang / ⓒ Bookie (Korean Translation)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위드블로그 캠페인 베스트 리뷰에 선정된 글입니다. 
    어쩌다보니까 반디&View 어워드 2010년 11월4주 수상작에도 선정된 글입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10점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