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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한국어판) / © Okuda Hideo for Japanes
이 책은 활자 크기, 책의 두께와 같은 겉모습에서도 가벼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게 합니다. 그러나, 그 가벼움과 유쾌함, 그리고 이라부 박사의 엽기스러운 이면 속에 현대인의 고뇌와 그것을 해결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인 인간다움, 즉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잘 전달하고 있기에 한바탕 웃음 뒤에 살며시 스며드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또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이라부 박사의 정신과에는 다섯명의 환자들이 컨설팅을 받으러 옵니다. 야쿠자 중간보스, 서커스의 일류 공중그네 플라이어, 병원장을 장인으로 모시고 있는 정신과 의사, 프로팀의 주전 3루수, 통속소설을 쓰는 인기 여류작가. 그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 즉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인물들입니다. (야쿠자 보스나 공중그네 플라이어 둘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각자의 분야에서는 성공한 인물들이죠.) 그런 그들, 즉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그들이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체 오로지 자신의 길만 바라보며 세상에서 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이 작던 크던 느끼고 있는 일상의 스트레스와 접점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갖게 합니다.
첫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야쿠자 보스 세이지는 날카로운 것을 보면 질겁을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반대파의 중간보스의 '틱'이라는 정신병 증상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타인의 이해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는 인간적인 형태의 귀결을 보여줍니다. 그 말고도 매번 실수하는 공중그네 묘기가 자신을 제대로 서포트 하지 못하는 캐처(Catcher) 때문이라며 불안감에 떠는 일류 공중 그네 연기자 고헤이나, 병원장의 사위로 들어가 앞날을 보장받은 전도유망한 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류사회의 중압감에 시달리며, 매번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 정신과 의사 다쓰로, 신인 3루수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악송구를 거듭하는 주전 3루수 신이치, 통속 연애소설을 쓰는 인기작가지만, 지금 구상하는 이야기가 자신이 이전에 썼던 소설 속의 내용이 아닐까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여류작가 아키코 등 그들 모두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고쳐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정신과 의사 이라부는 그 엽기적인 모습과 행동을 통해 독자들에게는 웃음을, 환자들에게는 문제해결을 위한 단서를 제시하는 감초역할을 해내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이라부의 설정, 즉 척 보기에는 대책없고 무능한 인간이지만, 타인이 갖고 있지 못한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설정은 종종 일본의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항상 여자를 밝히고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지만 실력만은 일류이며, 위기 때는 항상 날카로운 판단력을 보여주는 츠카사 호조의 인기만화 '시티헌터'의 주인공 사에바 료나,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는 말썽장이 고등학생이지만 경찰들도 해결못하는 난해한 사건 앞에서는 신기의 추리력과 행동력을 보여주는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의 긴다이치 하지메(한국판 명칭: 김전일), 밝힘증에 관음증까지 가진 대책없는 노인네지만 실제로는 절륜한 무공의 소유자인 무천도사(물론, 뒤로 가면서 그냥 엑스타로 전락해 버리지만.), 씻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싫어하는 식탐주의자로 악보를 보지 못하는 엽기 음대생이지만 절대음감을 소유한 천재 음악소녀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 메구미 등, 일본 만화에서도 이라부 박사와 같은 이들은 자주 만나볼 수가 있죠. (일본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이런 설정의 인물들이 왕왕 보이는 듯 한데, 아마도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취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회인들, 혹은 자신의 분야에서 일류가 된 소위 어깨에 힘이 들어간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대책없고 무례하고 한심한 듯한 이라부 박사가 그들이 당연하듯이 여기고 있던 관습과 고정관념을 부수면서 그들은 자신이 속해있던 세상을, 사회를 그리고 그 속에 같이 사는 타인들을 이제까지 그들이 갖고 있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실 그것은 그들이 전에 갖고 있던 것이지만, 각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어느샌가 살며시 잊어버렸거나 스스로 버렸던 마음인 것이죠. 그러나, 사회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이라부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고, 자신들의 병마저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라부의 만화적인 모습 때문이었을까요. 공중그네는 2009년에는 만화영화로 제작되어 만화영화의 황금시간대인 노이타미나 시간대에 방영이 됩니다. 엽기적인 이라부 박사의 모습은 만화에서는 정말 만화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곰돌이 인형과 금발의 미소년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보여진다고 하는데요. 실사 배경과 인물을 만화영화와 겹쳐 사용하면서 독특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간호사인지 의심스러운 육감적인 마유미의 모습이 실사인물(모델 스기모토 유미 분) 형태로 등장하는 것만큼은 확실히 소설에 비해서는 크게 기대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남자들에게만.
© 空中ブランコ製作委員会(출처: 베스트 아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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