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tions/Theme Review 2010.06.07 09:28

             

<프로필>
 
◈ 출연작
  - 은하철도 999 (1978, TV): 니시자와 노부타카(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은하철도 999 (1979, Movie): 린 타로(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은하철도 999, 유리의 클레어 (1980, Movie): 니시자와 노부타카(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안녕, 은하철도 999 (1981, Movie): 린 타로(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은하철도 999, Eternal Fantasy (1998, Movie): 우다 코노스케(감독)
  - 메텔 레전드 (2000, OVA): 요코다 카즈요시(감독)
  - 우주교향시 메텔 (2004, TV): 마사키 신이치(감독)
 
이 외에 78년 TV 시리즈 중 일부 에피소드를 편집하여 재구성한 스페셜 시리즈가 4편이 있다. 또한 그녀는 TV 에피소드 '시간성' 편과 두 편의 극장판에 우정출연(?)했던 하록선장을 위해 1999년작 '하록사가'에 잠시 출연하기도 한다. 그리고, 2006년 작 '은하철도 이야기: 잊혀진 시간의 혹성' 편에서는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그녀 또한 하록에 이어 카메오 출연에 맛을 들이게 된다, 으흠.
 
 
사나이의 우주를 사로잡은 신비로운 금발의 여인
 
일전에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캡틴 하록... 벗이여 별바다로 떠나자'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7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스타일의 장대한 스페이스 어드벤쳐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를 선보이며, 일약 1세대 아니메 붐을 일으킨 마츠모토 레이지(물론, 야마토 성공의 일등공신은 프로듀서이자 야마토의 원안을 기획한 니시자키 요시노부가 더 유력하다고 볼 수 있지만)는 연이어 '우주해적 캡틴 하록'을 통해 마츠모토 식 SF를 팬들에게 선보이며 후에 '레이지버스(Leijiverse)'라 불리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마츠모토 레이지(이하 마츠모토로 표기)는 이 두 시리즈 이외에도 슈퍼로봇 장르에 자신만의 SF 드라마를 접목시킨 '혹성로봇 당가드 에이스(1977)'과 서유기의 세계관을 SF 어드벤쳐에 접목시킨 'SF 서유기 스타징가(1978)' 등을 연이어 선보였는데, 비록 이 두 시리즈는 레이지버스의 세계관에 속하는 것이 아닌 TV 시리즈를 위해 별도로 제작된 오리지널 에피소드였지만, 당시 마츠모토 레이지 스타일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로 굳어져 가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츠모토의 최고의 전성기는 어쩌면 지금부터 말하려는 이 작품과 이 작품에 등장했던 한 여인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선굵은 사나이들의 꿈과 우정이 담긴 비장함이 메인 테마로 자리잡고 있던 마츠모토식 이야기의 반환점이며, 동시에 자유와 꿈을 노래하던 모험 이야기에서 휴먼 드라마와 현실의 풍자를 담은 좀 더 깊은 이야기로의 진화를 예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병과 악조건 속에 인간의 몸을 기계의 몸으로 바꾸어 불로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미래의 지구. 기계의 몸을 가진 부유한(그렇지만 이제는 더는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인간들이 기계의 몸을 갖지 못한 가난한(하지만 진짜 살아있는) 인간들을 핍박하며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극단으로 치달은 세상에서 살고 있던 소년 테츠로(한국방영 명칭 철이)는 기계 인간들에게 목숨을 잃은 어머니의 소망을 위해, 그리고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연하게 만난 신비의 여인 메텔과 함께 은하철도 999를 타고 몸을 기계로 바꿀 수 있는 머나먼 별 '라메탈'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 속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갈등, 이별과 화해 속에서 소년은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년을 이끌어 주던 신비의 여인은 여행의 종착점에서 기약없는 안녕을 고하며 떠나게 됩니다. 소년은 이제 어른으로서 홀로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마츠모토식 휴머니즘에서 좀 더 진일보하여 비뚤어진 사회를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고 스스로가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 속에 진정한 삶의 의미, 인간다움에 대한 것을 깨우치는 TV 시리즈 '은하철도 999'는 관념적이고 이상적이었던 마츠모토의 이전 작품에 비하여 현실적인 소재가 투영된 인간 드라마를 선보이며 매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합니다. 작품 내내 테츠로의 원 목표였던 '기계 인간이 되어 어머니의 못다한 삶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명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만화영화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년의 성장을 한 여인이 조용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봐주고 이끌어 주면서 각 화마다의 엔딩은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여인은 한 번도 소년에게 강요하거나 지시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가 깨우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며, 특유의 포근함으로 소년을 감싸줍니다. 사나이의 무뚝뚝함과 강인함, 비장함이 작품 전체를 지배했던 마츠모토의 세계는 이 메텔이라는 여인에 의해 잔잔하고 부드럽게 변모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오히려 팬들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라는 옛말처럼 메텔의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움은 장대한 우주를 그녀의 무대로 바꿔버릴 만큼 조용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흡입력을 가진 블랙홀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츠모토 선생이 순정만화까지 섭렵할 정도로 작품 세계의 폭이 넓기에 가능했던 일 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마츠모토 특유의 가냘프고 고전적인 캐릭터 묘사로 표현된 그녀의 외모 또한 이러한 성격과 맞물려 큰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는데, 이미 '우주해적 캡틴 하록'를 통해 마츠모토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애니메이션화했던 작화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가 이 작품에서도 신비한 여인의 이미지를 숨막힐 정도로 멋지게 만화영화에 이식하면서 절정의 여성미를 보여주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어떤 여성 캐릭터보다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그러나 어둡고 슬픈 금발의 여인이 만화영화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잘 벗기도 합니다, 이 아가씨는. 그렇습니다, 소년들에게는 얼씨구나~였던 것입니다.) 

바야흐로 모든 소년들은 그녀를 연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정체불명의 신비로운 미녀, 항상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머니 같으면서도 누나같이 친밀한 존재. 메텔은 모든 소년들의 로망이었고 선망이었으며, TV 시리즈 마지막 화에서 보여준 테츠로와의 이별은 이 작품을 시청해온 소년들에게도 큰 슬픔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테츠로 뿐만 아니라 모든 소년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정처없는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 Matsumoto Leiji / 1978 Toei Animation

그림 1. TV 시리즈 '은하철도 999'의 스틸 및 엔딩 컷.


식을 줄 모르는 논란, 신비스러움에 가리워진 그녀의 진짜 정체는

(캡틴 하록을 성공적으로 연출했던) 린 타로 감독이 연출한 극장판 '은하철도 999'는 TV 시리즈에 이어 다시 한 번 대성공을 거두었고, 메텔은 예의 그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으로 이번에도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여기서 린 타로는 하록 TV 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츠모토의 세계관을 다시 한 번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게 되는데, 테츠로의 나이를 TV 시리즈의 10대 초반에서 10대 중반으로 바꾸어 사춘기의 방황의 끝에서 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소년의 모습을 좀 더 현실감 있게 그려 나갔으며, 하록을 위시한 레이지버스의 단골들을 이 작품에 특별 출연시켜 레이지버스와의 연관성을 공고하게 만드는 등, 자신의 스타일로 999와 메텔을 그려갔던 것입니다. 

감독의 재해석은 팬들의 큰 호응으로 이어졌습니다. TV 시리즈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지금까지의 극장판 만화영화들이 모두 총집편 내지는 일부 에피소드 편집본의 형태에 그쳤던 것에 비해 별도의 독자적인 형태(TV 시리즈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이 시작되었고, TV 시리즈 방영 중 극장판이 공개. [2] 참조)로 진행되었던 극장판의 성공은 후속편의 제작으로 자연스레 이어졌고, 결국 2년 뒤 '안녕, 은하철도 999: 안드로메다 종착역(1981)'이 개봉되어 연타석 홈런을 날립니다. 특히, 이 후속편은 직전 극장판의 다음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아쉬운 이별을 고했던 메텔이 다시금 테츠로와 재회하고, '라메탈'과 어머니 프로메슘, 그리고 테츠로의 숨겨진 과거와의 진정한 결말을 내는 그야말로 999 세계관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 됩니다.

특히 999의 연속적인 성공에는 탄탄한 원작의 스토리와 캐릭터, 스탭진들의 노고가 담긴 작품의 완성도와 같은 요인 외에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요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원한 히로인 메텔의 진정한 정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는 이미 TV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몸이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다름을 몇 차례 암시해 왔었으며,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그녀의 본 모습은 마치 신비스럽지만, 결코 드러내지 않은 미녀의 눈부신 나신과도 같이 소년 팬들에게는 끊임없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소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궁금증의 대상 역시 다름아닌 그녀의 그 '몸'이었던 것이구요.)

© Matsumoto Leiji / 1979 Toei Animation

그림 2. 극장판 '은하철도 999'의 스틸 컷.

메텔이 과연 인간인지 기계인지, 아니면 인간도 기계도 아닌 어떤 괴기스러운 모습의 생명체인지(혹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대한 논의는 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었고, 아직까지도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원작자인 마츠모토 선생의 어떠한 언급도 없는 이상 메텔의 정체는 영원한 우주 저끝처럼 신비에 묻힌 설정으로 남을 겁니다. 사실, 추측컨데 마츠모토 선생조차 그녀의 정체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은 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다만, 그녀의 정체를 보았던 시리즈의 등장 인물들의 충격에 휩싸인 모습(평생 글만 쓰며 여성을 돌처럼 알고 지낸 대문호가 메텔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녀를 취하려 하다가 본 모습을 보자 강렬한 충격에 휩싸여 다시금 글에 정진한다든지, 기계 몸을 강매하는 불법업자가 메텔의 진짜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든지 하는 장면. [5] 참조)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메텔의 정체를 지속적으로 궁금해 하며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는 마츠모토식 관객 유도 장치였던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팬들에게 먹혀든 것입니다.

그녀의 정체만큼이나 또 하나의 논란거리로 이어져 온 것은 바로 999에 이어 방송된 TV 시리즈 '천년여왕'과의 관계였습니다.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에 지구와 충돌하는 행성 '라메탈'은 열차 999의 종착지이자 여왕 프로메슘이 지배하고 있던 999 세계관의 행성 '라메탈'과 같은 이름이었고, 긴 금발을 휘날리는 천년여왕 유키노 야요이는 마치 메텔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길고 그윽한 메텔의 눈매와는 달리 동그랗고 큰 유키노의 눈은 젊은 시절의 메텔을 묘사한 듯 보이기도 했지요.) '라메탈'의 충돌위협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분전했던 천년여왕은 결국 오랜 세월이 흘러 인간의 모습을 버리고 어머니 프로메슘에 의해 불로불사의 어떤 것으로 몸이 바뀌었고, 이후 프로메슘의 명령에 따라 테츠로라 생각되는 소년들을 끊임없이 라메탈로 데려와 기계인간으로 만드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당시 팬들의 추측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는 천년여왕과 메텔이 동일인이냐 아니냐를 놓고 끊임없는 논쟁이 오고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82년 '천년여왕'의 극장판 개봉에 맞추어 마츠모토 선생이 비로소 공개한 설정에서 유키노 야요이는 메텔이 아니며, 유키노 야요이와 메텔 모두 프로메슘의 딸([4] 참조)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메텔과 천년여왕과의 관계는 일단락이 됩니다만, 같은 레이지버스의 캡틴 하록 세계관에서 비롯된 여러가지 설정 상의 미스매치와 함께 999와 천년여왕과의 나머지 관계 및 밝혀지지 않은 각종 미스테리들은 오랜동안 레이지버스의 뜨거운 감자로 남게 됩니다.

© 1981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그림 3. 극장판 '안녕, 은하철도 999'의 스틸 컷.


돌아온 그녀,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다
 
80년대 초반을 넘기면서 레이지버스는 팬들의 관심을 잃고 먼 동면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꿈과 자유를 동경하는 마츠모토식 복고주의와 낭만주의(거기에 보수적인 민족주의까지)는 80년대의 리얼리즘과 신세대의 사고방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스스로 과거로 남기를 자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 아득한 우주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났던 메텔 역시 그녀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수많은 소년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린 청춘의 환영이 되어버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새로운 바람 속에서 이전 것들을 다시금 부활시키고자 하는 지속적인 복고주의 열풍은 레이지버스라는 전설적인 세계와 인물들을 그냥 둘리가 만무했습니다. 1시간짜리 극장판인 98년작 '은하철도 999: 이터널 판타지'는 TV 시리즈에서 헤어졌던 테츠로와 메텔과의 재회(린 타로 감독의 극장판에서 보여준 테츠로와 메텔의 이별과 재회, 그리고 또다른 이별의 이야기와는 별개로)로 시작하여, 다시금 그녀와의 새로운 여행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 고풍스러운 증기기관차 형태의 999만큼이나 오래된 명작은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신세대 팬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하며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메텔과 테츠로의 20여년만의 재회와 여행은 몇 부작으로 기획될 이 반가운 이야기의 시작점부터 처참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작품 자체의 네임 밸류에 비해 연륜이 짧은 스탭진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생겼다고 추측되는 완성도의 문제는 올드 팬들에게는 (일부를 제외하고는)그다지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듯 싶고, 이미 너무 구시대적인 마츠모토의 낭만적인 이야기와 가치관은 신시대가 받아들이기에는 노인의 옛 이야기인냥 지루했던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올드 팬과 신세대 팬 모두에게 외면을 받으며 이터널 판타지는 일회성 판타지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 그것은 후속 레이지버스의 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터널 판타지의 제작을 맡았던 도에이 동화의 포기에도 불구하고 레이지버스의 작품들은 속속 다른 제작사들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같은 해에 '화성여단 다나사이트 999.9'(실제로는 이 작품이 98년도에 가장 먼저 제작된 레이지버스 작품)와 '퀸 에메랄다스'를 시작으로 이듬해 '하록사가'까지 등장하며 레이지버스의 전설들이 봉인에서 해방되면서 메텔의 재복귀에 힘을 실어주자, 2000년 그녀는 '메텔 레전드'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메텔 레전드는 여러 의미에 있어서 메텔과 그녀의 팬들에게는 색다른 것이었는데, 그것은 먼저 더이상 999에 몸을 싣고 테츠로의 성장을 지켜보는 숙녀 메텔이 아닌, '라메탈'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는 소녀 메텔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제작진은 이제까지 결코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999와 테츠로를 메텔에게서 과감히 떼어 버리고 오히려 그녀의 수많은 논란거리이자 베일에 쌓였던 과거를 공개함으로써 새로운 시점으로 메텔을 바라보는 시도를 합니다. 999와 테츠로를 대신할 자리에는 메텔의 어머니이자 천년여왕이었던 프로메슘, 그리고 그녀의 쌍둥이 언니인 에메랄다스로 바꾸어 극을 이끌어 갑니다. 이 놀라운 설정은 또다른 논란거리를 야기하는데, 이미 82년 마츠모토 자신이 밝힌 레이지버스의 인물관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메텔과 에메랄다스의 자매 설정(이전에는 친우로 표시, [4] 참조)이나, 유키노 야요이가 또다른 프로메슘의 딸이었다는 설정을 뒤집고 프로메슘 자신이라는 설정으로 과감히 바꿔버리는 등, 오랜 시절 레이지버스를 보면서 자라온 올드 팬들에게는 그동안의 설정을 모두 뒤엎어 버리는 당황스러운 전개였던 것이죠. (그런 점에서 흥미거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메텔 뿐만이 아니라 그녀만큼이나 신비로움을 가진 레이지버스의 히로인 천년여왕과 어린 시절의 에메랄다스(어릴 때조차  해골모양의 핀을 머리에 꽂고 있는 것을 보고 실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해적 덕후'였나 봅니다.)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올드 팬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반가운 일임에는 분명했던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2004년 '우주교향시 메텔'로 이어져 메텔의 성장과정을 다루게 됩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결국 그녀의 몸에 얽힌 진짜 미스테리는 여기서도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2000 Leiji Matsumoto / Tsurubaya Creative / Art Collection House / Avex

그림 4. 메텔 레전드 스틸 컷.


그녀는 소년 시절의 연인, 청춘의 환상

그녀는 이제는 올드 팬이 되어버린 30~40대 아저씨들의 소년 시절을 빛나게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어떤 만화의 여성 캐릭터도 그녀 이상의 아우라를 가지지 못했습니다.(개인적인 편차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 중에서 결코 논외가 될 수가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심지어 현실 속의 여배우나 가수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그녀. 오히려 만화 캐릭터였기에 그 정도의 신비로움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녀는 소년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고 때로는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지켜주었으며, 어려운 인생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해답을 찾도록 옆에서 조용히 조언해주는 우주의 등대와도 같은 여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올드 팬들의 청춘 속에 머무르는 환상이었습니다. 소년들에게 있어서 연상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심어주었고, 동시에 금발의 백인 미녀에 대한 쓸데 없는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으며,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을 추구하는 현대의 여성들의 다이어트 취향을 십수년이 넘게 먼저 선도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정말 소년시절의 모든 남성들이 바라마지 않는 완벽한 연인이었던 것입니다.

테츠로와 메텔, 즉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동양 소년과 늘씬한 금발의 미녀라는 인물구도는 ('천년여왕'의 유키노 야요이와 하지메, '퀸 에메랄다스'의 에메랄다스와 토치로 등 마츠모토의 대부분의 캐릭터 설정처럼) '연상의 여인에 대한 소년의 동경' 이외에도 '작고 왜소한 동양의 남성과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늘씬한 금발의 백인 미녀'라는 전형적인 구도를 보여주며, 개인적으로는 마츠모토 선생이 갖고 있던 보수적 남성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또다른 표현인 듯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숨겨진 의미(동양 남성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싶은 마츠모토식 남성미의 어필. 물론 확증은 없지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가 소년들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측면, 즉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소년을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는 따뜻한 여인의 모습이 더욱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정말로 그녀는 어린 시절 흠모했던 환상의 여인이었고, 이제는 더이상 그녀를 봐도 어떠한 떨림도 갖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린 아저씨들의 청춘의 환상일 겁니다.

© 2004 Leiji Matsumoto / Shogakan / Joy Square / Avex

그림 5. 우주교향시 메텔 오프닝 스틸 컷.


<참고 포스트>
 
[1] Galaxy Express 999, Wikipedia
[2] 은하철도 999 1979 1981 by 캅셀, Capsule☺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은하철도 999 - 유리의 클레어 1980 by 캅셀, Capsule☺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남겨진 메텔의 비밀 by 캅셀, Capsule☺블로그
[5] 은하철도 999와 메텔의 비밀 by 캅셀, Capsule☺블로그
[6] 은하철도 999 ~ 이터널 판타지 by 슈케르
[7] 은하철도 이야기 ~ 잊혀진 시간의 혹성 by 슈케르
[8] 은하철도 999 - 이터널 판타지 by 키웰, Kewell's Factory about Something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주의 TTB 리뷰 2010년 6월 1주차에 선정된 리뷰이며, 프레스블로그 2010년 07월 MP 명예의 전당에서는 발라당 미끄러진 글입니다.


은하철도 999 극장판 박스세트 (3disc)  -  10점
린타로 감독/DVD 애니 (DVD Ani)

블로그의 모든 글에 대한 저작권은 엘로스에게 있으며, 허락없이 불펌과 재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링크 또는 트랙백을 이용해주세요.

Posted by 엘로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옛날 참많이도 즐겨 봤었는데ㅎㅎ 추억을 되돌려 보는것같네요.

    2010.06.07 02: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999의 경우는 얼마전에 EBS에서 재방영하더군요. 지금은 끝난 것 같지만... 요즘 EBS에서 추억의 만화영화가 방영하고 있으니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서 보기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대가 직장인이 볼만한 시간대는 아닌 것 같지만요... ^^;;)

      2010.06.07 09:28 신고 [ ADDR : EDIT/ DEL ]
  2. 어렸을적에 저분을 알면 아저씨 모르면 꼬마라는 말이 있죠.

    2010.06.07 10: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이젠 999를 보고 자란 소년들이 모두 30대 후반 이상의 아저씨들이 되었으니... 주인공 철이가 살아 있다면 딱 이 나이겠군요. 세월이 참...

      2010.06.07 10:17 신고 [ ADDR : EDIT/ DEL ]
  3. 너무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어렴풋이 메텔과 철이의 이별장면에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철이는 소년들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는데 말이죠. 후훗.

    2010.06.07 11: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저한테도 정말 추억으로 남아있는 애니메이션이에요!
    메텔은 정말 묘한 매력을 풍기는 여신이었는데...

    하나의 논문을 보는 듯한 글 쏨씨와 방대한 분량이네요! 잘봤습니다!^ㅡ^

    ps. 메텔도 메텔이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김국환씨가 부르던 주제가가 더 기억에 남을거같아요!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2010.06.19 17: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김국환씨의 주제가는 정말이지 원 주제가를 능가하는 포스를 가지고 있지요. 전 999의 주제가도 좋아했지만, 천년여왕 쪽을 더 좋아라 했습니다. ^^

      2010.06.19 22:03 신고 [ ADDR : EDIT/ DEL ]
  5. 테츠로

    이미 결말을 알고있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메텔에대한 신비감은 아직 없어지지가 않네요

    만화캐릭터를 통틀어 이렇게 막연한 신비감을 풍기는 여캐릭터는 없을듯합니다..

    2011.05.18 14: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개인적으로 만화영화 여성 등장인물 중 제일 처음 이성으로 느낀 이가 바로 메텔이었던 것 같네요. ^^;

      2011.05.18 23:23 신고 [ ADDR : EDIT/ DEL ]
  6.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눈물이 났네요 어쩌면 현재 우리가 기계 인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도 전자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메텔의 검은 상복은 제게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평안하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9.28 16: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