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vel Comics
당시 영화계에서는 배트맨 시리즈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히어로 영화가 예전만큼의 임팩트를 갖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CG라는 신기술이 실사영화에 서서히 접목되면서 히어로 영화는 다시금 부활의 날개짓을 펼치기 시작했고, '블레이드(1998)'를 통해 그토록 염원하던 실사영화에의 진출을 성공한 마블은 그로부터 4년 뒤인 2002년 마침내 '스파이더맨(2002)'을 개봉하여 DC 코믹스의 히어로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빅히트 대작을 보유하게 됩니다.
ⓒ 20th Century Fox
ⓒ Columbia Pictures
그런 상태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다가 사그러들었던 히어로물은 재활용 소재로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일구어내게 됩니다. 기존의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히어로물은 아직 그만큼 팬층이 형성되지 않는 일본산 애니메이션보다는 더 관객에게 어필하기가 쉬운 소재였고, CG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러한 트렌드를 타고 등장한 마블의 히어로들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실사영화에 들이닥치게 됩니다.
하지만 풍요 속에 빈곤은 존재하는 법, 우선 수많은 히어로 무비들의 양산으로 인해 일부 작품들은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으로 인해 기대치가 높아진 탓에 그 뒤에 등장한 '헐크(2003)'나 '데어데블(2003)', '일렉트라(2005)', '판타스틱 포(2005)' 등은 그 완성도가 앞선 히트작들과 비교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흥행 역시 앞선 작품들에 비해서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안았구요. 여기에 실사영화를 위해 캐릭터 사용료 만을 받고 판권을 영화사에 넘겨버린 마블로서는 자신의 히어로들이 등장한 영화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그저 손가락만 빨며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2003년 라이벌인 DC 코믹스가 워너브러더즈 계열사인 DC 엔터테인먼트로 편입되면서, 마침내 DC의 히어로들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이 새롭게 리부트시킨 배트맨 2부작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나이트(2008)'는 히어로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단의 극찬 속에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게 되며, 엑스맨 시리즈로 마블의 히어로들을 성공적으로 실사로 이식했던 브라이언 싱어가 슈퍼맨 리부트 프로젝트로 자리를 옮겨 '슈퍼맨 리턴즈(2006)'을 제작하는 등 DC의 공세는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블로서는 이제 결단의 시기를 내릴 때가 온 것이었습니다.
ⓒ Paramount Picture
아이언맨을 보시면 크레딧이 끝나고 영화 마지막에 비밀조직 쉴드의 국장 닉퓨리가 등장하여 토니 스타크에게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깁니다. '당신만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나?' 바로 이것이 어벤져스의 시동을 암시하는 대사였던 것입니다. 어벤져스는 마블의 대표 히어로들이 결성한 조직으로, 1963년 코믹스로 발표되기 시작한 작품인데요. 그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며 마블의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마블은 몇몇 대표 히어로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관 그 자체를 영화로 옮기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를 한 두편의 영화로 영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코믹스처럼 각각의 히어로들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차례로 선보인 다음, 이후에 그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별도의 영화로 공개한다는 것인데요. '아이언맨2(2010)'를 선보인 뒤 마블은 지속적으로 대표 히어로인 '토르(2011)'와 '캡틴 아메리카(2011)'를 자체 제작하여 개봉할 예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에는 이들 히어로 영화들을 한자리에 묶을 '어벤져스(2012)'가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딱히 마블의 팬이 아니지만 이러한 마블의 프로젝트는 몹시도 흥미롭고 기대된다 하겠습니다. 방대한 세계관을 하나의 작품에 무리하게 집어넣지 않고 독립적인 작품들로 그 단편들을 보여주어 종래에는 하나의 완성된 월드를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은 영화의 속편 제작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가 아닌가 싶군요. 특히, 마블 엔터테엔먼트가 2009년부로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이러한 마블의 장대한 프로젝트는 더더욱 무게가 실려 보입니다.
여기에 마블이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마블의 히어로들을 소재로 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 역시 개봉 예정에 있으며, 소니가 별도로 시동하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4번째 작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도 제작중이라고 합니다. 또한,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하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의 속편 '더 울버린(2012)' 역시 2011년 4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마블의 파상공세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되면 역시 DC의 반격 역시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 DC 쪽도 올해 '그린 랜턴(2011)'을 필두로, 놀란 감독이 다시 배트맨 속편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를 제작중에 있으며, 슈퍼맨의 속편인 '슈퍼맨: 맨 오브 스틸(2012)'은 '왓치맨(2009)'을 통해 R등급 성인 히어로물의 진수를 보여준 잭 스나이더 감독이 연출을 맡을 예정에 있죠. 거대한 베일을 벗은 마블의 어벤져스 프로젝트에 비견될 DC의 져스티스 리그가 과연 시동될지 역시 관심거리라 하겠습니다.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히어로들의 전쟁이 이제 스크린에까지 그 전장을 넓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 Paramount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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