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 감독: 카미야마 켄지
◈ 원작: 우에하시 나오코
◈ 제작: Production I.G
<시놉시스>
우연히 신요고황국의 둘째 황자를 구하게 된 호위무사 바르사. 둘째 황비의 초청으로 궁에 들어간 그녀는 황비로부터 둘째 황자를 호위해 이 나라에서 도망쳐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둘째 황자의 몸에 요괴가 붙어 있고, 이것이 황제의 신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둘째 황자는 암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8명의 목숨빚을 짊어지고 있던 바르사는 그 의뢰를 받아들여 둘째 황자와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둘째 황자의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요괴가 아닌 정령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넘어온 정령의 알이었는데...
등장인물
1. 십이국기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오리엔탈 판타지 대작 아니메
이런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는 오히려 진부함을 벗기 위해 유럽 판타지에 곁들여진 양념마냥 작품에서 조금씩 사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TRPG의 세계관으로 유명한 '포가튼 렐름'의 세계관에는 일본의 도검을 모델로 한 카타나나 중국의 소림사 승려를 기본으로 한 몽크와 같은 소재와 캐릭터가 등장하고, 일본의 아니메나 RPG 게임에는 권법가나 사무라이와 같은 동양적이거나 일본적인 색체를 가진 캐릭터와 소재가 등장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컨텐츠 전체를 오리엔탈 판타지로 구성한 작품들은 아직도 유럽 판타지에 비해 그 수가 적고, 또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판타지를 소재로 컨텐츠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을 전제 하에서 이번에 얘기할 작품인 '정령의 수호자'는 오리엔탈 판타지를 상당히 고급스럽고 정갈하게 묘사해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2. 공각기동대 SAC의 스탭진들이 다시 뭉치다
ⓒHEADGEAR / EMOTION / TFC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講談社 · 攻殻機動隊製作委員会
음악 역시 공각기동대 극장판 1편과 이노센스 등으로 유명한 일본 아니메의 대표적인 음악감독인 카와이 켄지씨가 만들어 작품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제가는 일본의 대표적인 인기 락 그룹 라르크엔시엘이 맡아 작품 초반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지요. 그외에 고토 타카유키 이하 여러 작화스탭들, 다케다 유스케 미술감독 등 많은 스탭진들은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에 참여한 Production I.G의 베테랑 스탭진들인지라 완성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줍니다.
캐릭터 디자인 원안을 맡은 아소 가토우씨는 18금 헨타이 코믹스 작품을 여럿 그려낸 꽤 재미있는 이력을 갖고 있는데요, 물론, 이 작품에서는 그의 이런 장기는 전혀 발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생각 외의 완성도를 보여준 듯 합니다. 작품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러스트가 아마 그의 일러스트가 아닐까 추정되는군요.
원작자인 소설가 우에하시 나오코씨는 정령의 수호자를 1부로 하여, 어둠의 수호자, 꿈의 수호자 등의 집필했으며,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챠그무가 주체가 되는 여행자 시리즈 또한 있다고 하니 소설로도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원작자체가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베스트셀로서, 우헤하시 나오코 본인이 아니메와 공각기동대의 열렬한 팬이라고도 하는군요.
3. 판타지라는 색상으로 훌륭하게 채색된 성장 드라마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성장 드라마는 아동과 청소년이 주시청 대상인 애니메이션, 특히나 아니메에 있어서는 거의 어느 장르에나 쓰여지는 하나의 테마입니다만, 정령의 수호자는 그 주인공을 이미 성장한, 그리고 챠그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자라난 바르사라는 인물로 상정한 다음, 그가 지켜야 하는 인물인 챠그무가 성장하는 모습을 제3자적인 입장에서 보여줌으로써, 청소년 층 뿐만 아니라, 성인층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거기에 판타지라면 의례 등장하는 마법이나 괴물과 같은 요소들이 이 작품에서는 주된 이야깃거리가 아닌(물론, 정령의 알이라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판타지 요소, 그 자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의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는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로 사용되면서, 흥미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성숙한 전개를 원하는 고연령대의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그리고 작품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이러한 전개가 자칫 지루함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정령의 수호자는 지루할 수도 있는 이런 전개를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각본과 연출로 멋지게 풀어 나간다는 점에서 밀도있고 심도있는 재미를 선사하지 않나 싶습니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에 이어 켄지 감독은 상당히 영화적이고도 리얼한 연출방식으로 작품을 이끌어 나갑니다.
4. 세계관 속에 교묘하게 녹아든 일본과 중국의 문화
그렇기에 일본인이 만든 정령의 수호자는 일본의 옛모습을 모티브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챠그무의 나라이자 이야기의 주된 배경인 신 요고황국은 그 복식, 병사들의 무장, 주민들의 생활방식, 황궁의 모습 등을 일본의 옛모습에서 모티브를 받았다는 것이 눈에 뜨일 정도이고, 바르사의 고향인 칸발은 마치 중국을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쉽게도 한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지만요.)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특히, 이 작품에 바르사 일행과 대척하고 있는 요고황국의 황실무사들은 일본의 사무라이와 닌자를 연상시키는 듯한 복식과 행동으로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전설적인 작품 '7인의 사무라이'를 그 모티브로 삼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게 합니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7명이 아닌 8명이 나오니 거기까지는 억측일지도 모르겠군요.)
5. 쿠사나기 모토코의 환생? 강인한 여성상과 모성상을 동시에 보여준 바르사
물론, 쿠사나기 모토코가 바르사의 롤모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모토코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 원작이 공각기동대보다 먼저 나왔다고 하니 말이죠. (애니메이션보다 소설이 먼저 나왔다는 것이고, 실제 공각기동대 코믹스보다는 정령의 수호자 쪽이 나중에 출간됐습니다. 공각기동대 코믹스는 80년대 작품.) 아마, 감독 이하 공각기동대의 스탭진이 대거 투입되다보니 작화같은 부분에서부터 자연스레 비슷한 인상을 주지 않았나 싶군요. (제 경우에는 성우가 같다는 착각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바르사는 안도 마부키씨가, 모토코는 타나카 아츠코씨가 맡았습니다.) 그러나, 바르사는 모토코와 다른 점을 하나 갖고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이 작품에서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해줄지도 모르는 모성애가 아닐까 합니다.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講談社 · 攻殻機動隊製作委員会 (좌) /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우)
챠그무를 대하는 바르사의 모습은 단순한 호위무사 이상의, 챠그무를 강인한 인간으로 키우는 데 많은 역할이 할애되어 있고, 실제 중간의 전개과정은 그러한 바르사와 챠그무의 관계와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모성애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성애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앞에서는 엄하게, 뒤에서 따뜻하게 지켜보는 그런 모습은 확실히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운 모습이랄까요. 그것은 그녀가 어머니없이 먼 타국에서 외롭게 자란 탓에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린 것도 있겠지만, 지그로에게 맡겨져 길러져 온 탓에 지그로의 남성적인 육아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은 탓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여성인 이상, 그것은 부성애보다는 모성애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듯 합니다. 다만, 그 외향적 모습이 무뚝뚝하고 남성적일 뿐이겠지요.
어떤 분들께선 첫 도입부에서 보여준 바르사의 현란한 액션씬에 매료되어 이 작품을 보셨을 수도 있겠고, (물론, 이 현란한 액션 역시 정령의 수호자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중간 에피소드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액션 때문에 많은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바르사의 진정한 매력은 그 현란한 무예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강인한 모성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6. 수호자 시리즈의 연이은 애니화를 기대하면서...
특히 그 중간에 등장하는 바르사의 감춰진 과거, 지그로와의 추억 등은 이 이야기의 또다른 사이드 스토리로서의 흥미를 주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지요. 사실 원작 소설의 경우는 이 에피소드의 완결 이후, 바르사가 다시금 그녀의 고향인 칸발로 돌아가 지그로 등과 얽혀진 오랜 이야기를 해결해 나가는 원톱 주인공으로서의 바르사의 모험 이야기가 다루어 집니다만, 아쉽게도 정령의 수호자의 후속작이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듯 싶습니다.
완성도 높은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저조했던 시청률 덕에 이 작품의 후속이 더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기도 합니다. 물론, 액션에 많은 관심을 두고 보신다면 지루한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 이런 진지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매일 자극적인 패스트푸드와 서양식 식단으로 지친 우리의 몸에 깔끔한 웰빙음식과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글쎄요,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니메 팬들의 입맛이 다시금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할 때는 바르사를 다시 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기약없는 바르사의 모험 이야기가 언제고 다시금 우리에게 들려올 날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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