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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Chika Umino


2002년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가 방영을 시작했을 때, 엘로스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시이 마모루에 의해 이미 완벽한 재해석이 이루어졌던 극장판이 TV 시리즈로 방영된다면, 그 난해했던 전작을 계승하면서 TV 시리즈로의 매력은 분명 반감되리라는 예상을 했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섣불리 가벼운 액션물로 바꾸는 것도 너무 큰 이질감을 줄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극장판에서 선보였던 그 절정의 영상미가 장편의 TV 시리즈로 이식된다면 퀄리티의 하강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우려 속에 시작한 첫 화의 감상에서 제가 느낀 것은 놀라움이었습니다. 가벼움으로 빠지지 않고, 그렇다고 난해한 철학의 천작하지도 않는 적정선의 깊이, 그것을 수사 드라마 형태로 풀어가면서 시청자들에게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이야기 전개의 묘미, 비록 극장판보다야 낮을지언정 일반적인 TV 시리즈의 퀄리티를 몇 단계 상회하는 디테일함, 이 모든 것이 너무도 강렬하게 와닿았던 것이죠.

초반의 단 몇 화만의 감상으로 이미 엘로스는 공각기동대 TV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시이 마모루가 연출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작품의 스탭롤에서 처음 보는 낯선 이름의 감독을 발견하는 순간, 단번에 그의 팬이 되기를 결심하게 됩니다.

'카미야마 켄지'

40년대생의 아니메 명장(미야자키 하야오, 린 타로, 토미노 요시유키, 데자키 오사무 등)들의 공력이 서서히 쇠하기 시작하고, 50년대생의 기수들인 오시이 마모루, 카와지리 요시아키, 오토모 가츠히로마저 주춤하는 와중에 60년대생 감독들의 활약이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60년대생 감독으로 주목할만한 이들은) 안노 히데아키와 카와모리 쇼지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등장한 이 낯선 이름은 아니메의 미래가 아직 밝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싶어 몹시나 반갑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물론, 퍼펙트 블루의 콘 사토시나, 울프스 레인의 오카무라 텐사이, 에스카플로네의 아카네 카즈키 등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만 말입니다.)

'정령의 수호자(2007)'를 통해 이미 또 한 번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그(물론, 시청률 면에서야 참패를 면치 못했지만, 그것은 작금의 아니메 조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지,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충분한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가 2년만에 들고온 또다른 작품이 바로 이 에덴의 동... 아 아니, '동쪽의 에덴(2009)'입니다.

시작부터 무슨 장르인지 정의를 내리기가 애매모호함으로 출발하는 작품이지만, 초반부터 카미야마 식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1류 감독의 필수 덕목으로 꼽히는 각본작업에 있어서도 카미야마는 원작/각본/감독의 1인 3역을 해내고 있기에, 역시 차세대를 짊어질 아니메 감독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더더욱 공고하게 하는군요.

ⓒ Eden of the East Production Committee

그림 1. 에덴의 동쪼.., 아 아니 동쪽의 에덴 스틸샷 (출처: 베스트 아니메)


일단, 요즘의 추세에 맞춰 치카 우미노(캐릭터 원안)/모리카와 사토코(본편 캐릭터 디자인)의 예쁘장한 캐릭터와, 자타가 공인하는 초일류의 비쥬얼을 선보이는 Production I.G의 정예들이 선보이는 깔끔한 비쥬얼도 작품의 매력을 배가시켜 줍니다. 카와이 켄지 음악감독은 이젠 뭐, 거의 Producion I.G의 전속 음악감독인 듯 싶구요. 한마디로 웰메이드 아니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에덴의 도, 험험... 동쪽의 에덴의 힘은 바로 이야기의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 이전작들에서 보여준 카미야마 켄지의 스토리 텔링은 믿음이 가기에 충분하지만, 앞선 두 작품들이 모두 원작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직접 원작을 담당한 이 작품의 완성도(흥행보다는 그 완성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군요.)의 향방이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를 가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일본만화의 신 故 데즈카 오사무가 말한 '만화영화의 중요한 요소는 첫째도 이야기, 둘째도 이야기, 셋째도 이야기'라는 이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번 작품을 통해 카미야마 감독이 다시 한 번 증명해주었으면 합니다. 라이트 노벨의 가벼움과 모에스러움에게 둘러쌓인 지금의 아니메는 이제 지나치게 단맛만 강하니까요.

☞ 아 참, 이 작품은 얼마전 종방한 송승헌 주연의 '에덴의 동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헛갈리지 마세요.  저도 쓰면서 자꾸 에덴의 동쪽으로 오타가 나와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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