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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umbia Pictures


<스탭>

◈ 감독/각본: 앤드류 니콜(Andrew Niccol)
◈ 캐스팅: 에단 호크(Ethan Hawke), 우마 서먼(Uma Thurman), 주드 로(Jude Law)
◈ 제작: 콜럼비아 픽쳐스(Columbia Pictures)


<시놉시스> 

근 미래의 사회. 태어날 때 각종 질병과 좋지 않은 성향의 원인이 되는 DNA를 제거하고, 완벽한 DNA만을 가진 태아로 태어나게 하는 시험관 시술의 인기로 인류의 출산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갈라지게 된다. 산모의 자궁을 통해 태어나는 자연적인 방법인 '신의 아이'와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추출해 완벽한 DNA로 시험관에서 태어나는 인공적인 방법인 '인간의 아이'로 나뉘어진 것이다. 선천적인 신체조건과 정신적 장애가 없는 이들 '인간의 아이'들은 곧 사회 각층의 엘리트로 성장하게 되고, 자연 그대로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 보통의 아이들은 곧 사회에서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생물학적 차별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엄마의 뱃속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난 빈센트 프리맨은 태어날 때 심장질환과 범죄자의 가능성을 지녔으며, 예상 수명이 31살 밖에 안되는 열성인자를 갖고 태어난 소년이다. 자라나면서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빈센트, 시험관 아기로 태어난 동생 안톤과의 수영시합에서 매번 패하던 그는 마지막 시함에서 동생을 이겨낸 뒤, 열성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그는 집을 나와 자신의 꿈을 향해 혹독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유전자 레벨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 사회는 빈센트의 모든 노력을 결국 물거품으로 만들 뿐이었다. 여러번의 응시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면접에서 번번이 통과하지 못한 그는, 결국 청소부로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에 발을 들이게 된다. 실력을 갖추고 피나는 노력을 해도 극복할 수 없는 DNA의 한계. 마침내 빈센트는 우성 DNA를 사고 파는 DNA의 중계인을 통해 자신의 꿈에 다가갈 수 있는 어둠의 경로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빈센트는 제롬 머로우라는 초일류 엘리트로 새 인생을 살게 되는데...


DNA로 모든 것이 결정된 미래의 사회, 한 남자가 마침내 그 벽을 넘다.

ⓒ Columbia Pictures

'루먼 쇼(1998)'로 우리에게 꽤 깊은 인상을 심어줬던 각본가 앤드류 니콜의 97년 연출 데뷔작인 '가타카(1997)'는 유전공학을 통해 우성 DNA만을 골라 시험관 아기를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근미래를 배경 삼아, 열성 DNA를 가진 보통 인간이었던 빈센트 프리맨(에단 호크 분)이 우성 DNA를 가진 엘리트들이 가득한 우주 항공회사 '가타카'에서 그들을 제치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신분이 갈리는 세상이라는 설정 자체도 흥미로우며, 완벽한 인간들 사이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불완전한 인간의 이야기 역시 드라마적 매력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매번 DNA로 모든 것을 검사하는 철저한 관리사회 속에서 부적격자인 빈센트가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적격자로 태어나는 과정과, 그 이후 그가 자신의 정체를 타인들에 감쪽같이 속이기 위해서 벌이는 여러가지 과정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긴장감 넘치는 구도로 풀어가면서 극적인 재미를 더해준 것이 이 영화에게 스테레오적인 매력을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을 결정짓는 미래형 관리사회는 흡사 타케미야 케이코의 만화 '지구로(1977)'에서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14세가 되는 해에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합한지의 여부를 테스트 받고 감별되는 먼 미래의 세상과 유사하다. 부적격적자로 낙인찍힌 아이들이 실상은 초능력과 같은 특수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로, 슈퍼 컴퓨터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에 반기를 들고 솔져라는 인물의 지휘 아래 고독한 싸움을 벌인다는 이야기의 지구로가 좀 더 스케일이 큰 SF 어드벤쳐의 성격을 띄고 있다면, 이 작품 가타카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DNA를 속이고 엘리트 사회에 발을 디딘 빈센트가 갑자기 회사 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그로 인해 들이닥친 경찰들로 인해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상황 속에서 빈센트의 내면의 갈등과 사랑, 그리고 통제된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파헤치는 미스테리 드라마적인 구도를 취하고 있다. 드라마 면에서는 지구로보다 농밀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SF라고는 하지만 빈센트와 그에게 유전자를 빌려준 유진(주드 로 분)과의 우정, 그리고 빈센트처럼 인간의 뱃속에서 태어난 여인인 아이린(우마 서먼 분)과의 사랑, 살인사건으로 인해 스스로의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한 빈센트의 갈등 등, 드라마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보니 SF로서 화려한 특수효과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완벽히 통제된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세트는 굉장히 차갑고 냉정하며, 딱딱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금속성의 이미지만으로도 지금과는 다른 미래 사회의 모습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 매일 실행되는 DNA 감별을 통과하기 위해 매일 각질 제거와 제모를 하고, 혈액샘플 채집에 대응하기 위한 가짜 피부조직과 유진의 혈액 샘플, 그리고 소변 샘플을 매일 준비하는 빈센트의 철저한 관리는 사회의 차별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길인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 지금의 사회 시스템에서조차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하물며, 유전자 레벨에서 신분이 결정지워지는 가상의 세계는 오죽하겠는가.

가타카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SF 물이다. 메시지도 좋았으며, 아주 최첨단의 미래사회를 그리지는 않았지만, 경직되고 차가운 근미래의 모습을 여러모로 잘 표현해 냈다. 드라마에 포인트를 준 미스테리적 구성도 만족스러웠다. 데뷔작으로서는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앤드류 니콜은 바로 그 다음해 트루먼 쇼에서도 상당히 재기 넘치는 이야기를 창작하면서, 매력적인 세계관과 꽤 깊이 있는 메시지가 공존하는 범상치 않은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게 된다. 다만, 그 이후의 작품들이 가타카나 트루먼 쇼만큼의 아우라를 보여주지 못함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자신을 경외하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조작된 DNA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우주선에 타기 직전 마지막 소변 검사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체 진짜 자신의 소변을 검사관에게 내민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완벽한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불완전함을 그리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불완전하게 태어났을까. 그것은 완전함을 향해 한발한발 내딛는 인간의 삶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은 아닐까.

덧붙임) EBS에서 방영된 일요시네마를 통해 이 작품을 본 것은 꽤 행운이었다. 보통 때라면 그 시간에 TV를 보지 못했었는데, 때마침 내린 장마비로 하루종일 집에 있었던 것이 오히려 이런 작품을 보게 되는 행운을 가져다 준 셈이다.

덧붙임) 네이버 영화 소개에서 나온 말인데, 소변 검사로는 DNA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소변 검사는 상당히 여러 군데에서 사용되며, 라스트에서는 제법 중요한 장면을 장식하는데 고증 측면에서 이는 꽤 큰 실수라 하겠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Columbia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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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PPON ANIMATION Co. Ltd.

<스탭>

◈ 감독: 쿠로다 요시오
◈ 원작: 마리 루이사 드 라라메
◈ 제작: 닛폰 애니메이션, 즈이요 영상


<시놉시스> 

벨기에의 북서부 지역 플란다스에서 우유배달을 하는 할아버지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소년 네로.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착한 마음씨를 잃지 않고 있는 네로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 그리고 안트워프 성당에 전시된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다. 어느날 철물점에서 혹사 당하는 개를 본 네로는 주인이 내버린 개를 집으로 데리고 와 정성껏 간호해준다. 네로는 파트라슈라는 이름을 개에게 지어주고, 우유수레를 끌 돈도 없이 할아버지와 힘들게 우유배달을 하는 네로를 본 파트라슈는 마치 자신이 도와주겠다는 듯이 우유수레를 끌려고 한다. 가난하고 고단한 네로와 할아버지의 생활 속에 어느덧 파트라슈는 믿음직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안트워프 지역의 유지 코제트의 딸인 아로아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소년 네로와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엄격한 코제트는 네로와 어울리는 딸 아로아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파트라슈의 원래 주인이었던 철물점 상인이 파트라슈가 자신의 소유라며 다시 끌고 가려하고, 코제트가 영국의 기숙학교로 아로아를 보내려 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하던 네로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데...


기억의 서재 한켠에서 찾아낸 소박한 한 소년의 이야기

번 제5회 YES24 블로그 축제를 맞이하여 '나를 한뼘 키워준 책 영화 음악'이 주제로 선정되었을 때 의외의 고민으로 쉽사리 포스팅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막상 깊은 감명을 가져다 준 영화를 꼽으려 하니 좀처럼 하나를 고르기가 막막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글을 쓰기 위한 소재를 쉽사리 고르지 못하는 난감함도 난감함이지만, 스스로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 하나를 자신있게 골라내지 못하다니 왠지 블로거(그것도 자칭 영화/만화영화 블로거)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과연 감명을 준 영화를 하나 뽑아야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어린 시절 나를 성장하게 해준 멘토와도 같은 작품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으로 일주일을 보내던 어느날,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건 회사에서 일을 하던 도중에 떠오른 생각이었는데요. 바로 대상을 영화라는 범위에 한정시키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실사영화 뿐만 아니라 만화영화도 엄밀히 말하면 영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나에게 어린 시절 벅찬 감동을 선사한 만화영화를 골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의외로 문은 쉽게 열렸습니다. 만화영화로서 영화 이상의 감동과 슬픔을 주었던 추억 속의 작품, 한 소년의 고난스럽지만 밝은 삶 속에 빠져 행복한 웃음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그 작품, 바로 '플란다스의 개(1975)'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마법과도 같이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갔고, 어느새 눈 앞에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소박한 꿈을 가진 소년 네로와 네로의 곁을 항상 떠나지 않았던 충견 파트라슈가 언제나 그렇듯 우유배달차를 끌고 플란다스의 아침 길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불행 속에서도 끝까지 고결함을 잃지 않은 네로와 파트라슈

동안 불우한 어린이와 충직한 동물의 아름다운 드라마가 영화의 단골 소재로 꽤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기에 이제 네로와 파트라슈는 옛날처럼 우리를 눈물짓게 하는 단 하나의 소년과 동물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을 쭈욱 나열해도 유독 이 작품만큼은 마치 다른 색깔로 칠해진 듯 눈에 띕니다. 그 많은 작품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제목이 무엇인지 가물가물해지는 와중에도 유독 이 작품만큼은 수십년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 한켠에 고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마치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이 아름답고 슬픈 이 소년과 개의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는 뭉클한 낙인과도 같습니다.

가난하고 고된 나날 속에서도 자상하고 인자한 할아버지 밑에서 화가를 꿈꾸며 묵묵히 힘든 나날을 이겨내는 소년, 그런 소년에게 어느날 찾아온 한마리의 개. 소년과 할아버지는 개를 통해 정신적인 위안과 삶의 여유를 찾고, 학대당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개 역시 소년과 할아버지를 통해 안식처와 가족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따스하고 끈끈한 유대감은 곤궁한 삶과 집주인 한스의 인정머리 없는 처사를 견딜 수 있는 큰 힘이 되지요. 여기에 마을 유지의 딸 아로아와의 우정 역시 네로에게는 커다란 삶의 활력소이기도 합니다. 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그의 꿈을 응원하는 착한 소녀와 거칠지만 듬직한 안트워프 시의 친구들. 네로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주는 열쇠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편견의 늪에 빠뜨리는 지도요.

사람은 사람이 만들어낸 돈과 그 돈으로 인해 쌓아올린 사회적 지위로 자신이 속해 있을 곳을 정하고 그 아래의 사람들을 배척하는 우를 종종 저지르게 됩니다. 플란다스의 유지 코제트와 그의 마름인 한스가 그런 인물이라 하겠지요. 물론, 이 문제는 말처럼 쉽게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네 삶을 돌아만 봐도 평범한 중산층의 서민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못한 극빈층의 자녀들이 자신의 자녀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려하는 것을 왕왕 볼 수 있지요.(그리고 종종 우리 자신도요) 어찌보면 사람을 구분짓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인간의 어두운 심성의 하나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편견 속에서 소외받고 있는 이들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다소 납득하지 못할 설정일지는 몰라도, 또 동화적이고 단순한 전개일지는 몰라도 이 작품은 네로의 슬픔을 시청자들과 관객들에게 깊이 전달시켜 줍니다. 어린이용 만화영화로서는 꽤 깊은 감정이입으로 인해 단순명료한 진리는 깊이를 가진 휴먼 스토리로 보는 이들에게 전달됩니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순수한 우정에 삐뚤어진 편견을 보내는 어른들. 그 속에서도 꿋꿋이 꿈과 우정을 지키던 소년은 든든한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었던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무너져 내립니다. 마지막까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던 소년에게는 너무도 가혹할 정도의 시련이지요. 더이상 집세를 내지 못하자 살던 집에서조차 쫓겨날 신세에 처한 소년. 다가오는 추운 겨울 날씨조차 소년의 편은 아닙니다. 이제껏 그를 지탱해주었던 일말의 등불마저 꺼져버린체 네로와 파트라슈는 춥디 추운 시련의 밑바닥으로 미끄러져 가고 맙니다.

그 와중에도 꺼지지 않고 마지막 불꽃을 피우던 그림을 향한 네로의 마지막 희망마저 사그러 드는 순간, 모든 것은 끝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른 소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로아의 아버지가 잊어버린 전재산을 찾아서 돌려주지요.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아로아의 집을 빠져 나옵니다. 스프 한숟가락, 빵 한조각이라도 얻어먹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소년의 고귀함은 어떤 면에서는 고지식할 정도로 안타깝고 동시에 마치 마지막을 준비하는 순례자의 그것처럼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떠나버린 소년과 소년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 아로아의 아버지, 그리고 마치 이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 그의 평생의 꿈이었던 화가로의 길... 소년이 희망을 버린 순간, 그동안 소년 앞에서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희망이 얄밉게도 복권에 당첨된 것 마냥 밀려듭니다. 하지만 그 벅찬 희망의 파도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조용히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평생의 그의 동반자였던 파트라슈와 함께 말이죠.

종교적인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마지막은 소박하지만 장엄하고, 슬프지만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소년은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고귀함을 잃지 않았고, 마지막까지도 세상과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떠나갔습니다. 그의 마지막이 너무도 조용하기에 관객들은 더 슬퍼하고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소년의 죽음 뒤로 떠오르는 아련한 작품의 주제가가 더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먼 동이 터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

하늘과 잇닿은 이 길을.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슬픔과 감동

제가 '새벽녘의 길(よあけのみち)'은 경쾌한 멜로디의 일본판 주제가보다 서정적인 목소리가 매력적인 한국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대모 정여진씨의 주제가(물론 주제가를 불렀을 당시는 앳띈 소녀였지요)가 원작의 뉘앙스와 더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소녀의 앳띄고 맑은 목소리와 미들 템포의 상쾌한 느낌으로 아침을 연상시키는 주제가는 왠지 모를 슬픔의 한자락이 느껴지는데, 네로의 마지막과 함께 들으면 왜인지 슬프고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그건 어쩌면 소년의 슬픈 마지막에 너무 많은 감정이입이 되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52화의 TV 시리즈로 방영되었던 플란다스의 개는 1997년에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과거의 향수를 거의 그대로 간직한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비록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했던 75년작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었던 같습니다. 그 옛날 기억 속의 네로와 파트라슈를 그대로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사실 새로운 극장판의 네로는 이전의 네로에 비해 조금 더 성숙한 듯한 느낌이긴 합니다. 아로아도 마찬가지구요.

전원적이고 서정적이면서 가슴 시렸던 한 편의 드라마. 플란다스의 개는 당시 만화영화로서는 실사영화에 버금가는 감정이입을 보여준 작품으로,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메마른 어른들의 감성에도 촉촉한 눈물의 비를 내리게 했던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젖은 자국이 오랫동안 마음 한곳에 남아 있는 것은 단지 글쓴이 만의 느낌은 아닐겁니다. 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의 이야기는 이제서야 오랜만의 회상을 마치고 다시 기억의 한구석으로 돌아갔습니다. 소년과 충직한 소년의 개는 그후로도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을 겁니다. 세상의 각박함에 스스로가 너무도 익숙해졌음을 발견하게 되었을 어느날, 한번쯤은 소박하고 고귀한 삶을 살다간 소년과 개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完)

ⓒ NIPPON ANIMATION Co. Ltd.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NIPPON ANIMATION Co. Ltd.에게 있습니다.
플란다스의 개 - 10점
쿠로다 요시오 감독/플래닛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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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두번째 합작, 게드전기의 오명을 만회할 수 있을까.         

ⓒ 2011 高橋千鶴 · 佐山哲郎 · GNDHDDT


야마 테츠로(佐山哲郎)와 타카하시 치즈루(高橋千鶴)의 1980년작 순정만화 '코쿠리코 언덕에서(コクリコ坂から)'를 원작으로 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극장 아니메 '코쿠리코 언덕에서(2011)'가 이번 7월 16일 일본 여름 극장가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감독은 '게드전기(2006)'를 통해 아니메 감독으로 데뷔한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 게드전기에서 혹독한 감독 데뷔전을 치른 동시에, 팬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던 그가 다시 한 번 절치부심하여 연출한 자신의 두번째 극장 아니메입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1963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요코야마 항구 주변에 사는 평범한 여고생 코마츠자키 우미의 학창시절과 로맨스를 다룬 잔잔한 스토리의 이야기입니다. 지브리의 2010년작 '마루 밑 아리에티(2010)'처럼 잔잔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이는군요. 청춘 로맨스물이라는 점에서는 '귀를 기울이면(1995)'과 같은 드라마가 되리라 보입니다. 6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기에 뭐랄까...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도 꽤 있을 것 같고 순정만화가 원작이다보니 가슴을 적시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도 싶네요.

☞ 코쿠리코 언덕에서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게드전기를 통해 평단과 팬들로부터는 극악의 점수를 받았던 미야자키 고로, 첫 작품에서 감독과 각본을 겸임하여 아버지의 명성에 다가서고자 했지만, 애니메이션에 문외한인 그로서는 확실히 역량부족을 드러내며 실패하고 말았었는데요.(다만 흥행은 그럭저럭 성공... 이야말로 지브리의 네임밸류 덕이라 하겠지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하야오 감독은 아들인 고로가 아니메 연출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그렇게 시킬 생각도 없었던 듯 합니다. 다만, 당시 자신을 대신하여 게드 전기를 맡을만한 인재를 발굴해내지 못했고, 스즈키 토시오 사장과 고로의 의지가 강했던 탓에 반포기상태로 고로에게 게드전기를 맡겼던 것으로 회자되고 있는데요. 그로 인해 미야자키는 만화영화 연출가로서는 초보였던 아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던 듯 싶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각본과 인물 설정 등에서 한계를 드러낸 고로는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던 셈이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다릅니다. 일단 하야오 자신이 아들을 아니메 연출가로 인정, 혹은 연출가로 키울 것을 결심한 듯 보이는군요. 그것은 게드전기에서 원안만 던져주었던 것과 달리 이번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기획과 각본을 맡아 아들의 뒤를 받쳐주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가능합니다. 사실 완벽주의자에 잔소리꾼인 하야오 감독의 성격상, 자신의 제자 혹은 자신이 키우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거든요. 과거 하야오의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던 故 콘도 요시후미의 경우도 귀를 기울이면 제작 당시 이것저것 너무 많이 간섭하다가 둘이서 의견충돌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게드전기에서 원안만 맡았다는 것은 당시 고로에게 관심을 끊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고, 이번 작품에서 기획과 각본을 맡아 아들을 지원한다는 것은 한 번 연출가로 키워볼 마음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군요.

각본은 하야오와 더불어 게드전기에서 고로와 같이 각본을 맡았던 니와 케이코(丹羽圭子)가 맡았는데요. 케이코 역시 게드 전기가 첫 각본이었기에 고로의 어시스턴트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픔이 있다 하겠습니다. 다만 아리에티에서 하야오와 공동 각본을 맡은 뒤 연타석으로 이번 코쿠리코 언덕에서도 하야오와 공동 각본을 맡는 것으로 보아 그녀 역시 하야오에게 뭔가 트레이닝을 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군요. 하야오는 이들 젊은 세대들에게 각각 연출과 각본 수업을 시키는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은 '마녀배달부 키키(1989)', '바다가 들린다(1993)' 등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콘도 카츠야(近藤勝也)가 맡았으며, 프로듀서는 스즈키 토시오(鈴木敏夫)입니다. 지브리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술 부분은 여기저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미술감독이 별도로 내정되지 않고 미술팀 자체가 미술을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가동될 것으로 보이는군요. 상당수의 지브리 작품들이 그동안 서너명의 미술감독이 선임되어 제작되었는지라 어찌보면 이제 지브리 미술은 감독이 따로 필요치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감독이 없어도 지브리의 미술은 여전히 훌륭하니까요. 적어도 이번 코쿠리코 언덕 역시 미술에서만큼은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일단 시사회의 반응은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6월 29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가 열렸던 것 같은데 대체적으로 호평일색인 것 같더군요. 일단,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작품이 게드전기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는 각본과 기획을 담당한 미야자키의 노련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풋내기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으로 볼 때 괜찮은 흐름이 아닐까 싶군요. 적어도 미야자키를 능가하지는 못하겠지만, 미야자키의 스타일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감독으로서 어쩌면 고로가 제격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앞으로 약 보름 뒤에 개봉될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직접 봐야지 판단할 수 있겠지만 말이죠.

☞ 유튜브 트레일러 영상 (보러가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高橋千鶴 · 佐山哲郎 · GNDHDDT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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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재해석한 오리지널 건담의 부활

ⓒ SOTSU · SUNRISE


'동전사 건담 AGE(2011)'에 이은 또 하나의 신 건담 시리즈는 놀랍게도 건담의 시초인 '기동전사 건담(1979)'을 새롭게 재해석한 코믹스 '건담 디 오리진(이하 오리진)'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건담팬들이 조심스럽게 그 가능성을 점쳐보거나 바라고 있었던 일이지만 막상 이렇게 현실화가 되니 놀랍기 그지 없네요. 많은 건담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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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화 소식은 카도카와 서점의 건담 전문지 '월간 건담 에이스'를 통하여 발표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월간 건담 에이스는 바로 창간호부터 오리진을 연재해온 잡지이기도 한데요. 얼마전 반다이에서 6월 25일에 새로운 건담 시리즈를 발표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오리진을 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퍼스트 건담의 메카닉 디자이너 오카와라 쿠니오 역시 새로운 건담 시리즈에 대해 언젠가 잠깐 언급을 했던 적이 있었죠. 그때는 그것이 건담 AGE를 의미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이제보니 바로 이 오리진을 얘기하는 것이었나 봅니다. 

원작 코믹스는 79년작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자 작화감독으로, 아니메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작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거대 프로젝트입니다. 토미노 요시유키의 원작인 건담을 코믹스화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야스히코는 당사자인 토미노 감독의 격려로 어렵사리 펜을 잡았고 그로부터 10년 만인 올해 마침내 오리진의 완결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원작자인 토미노 만큼이나 건담에 큰 영향을 끼친 그이기에 이 오리진은 확실히 여타 건담 관련 소설이나 코믹스와는 격을 달리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반면, 원작 이후 급속도로 거대해진 우주세기의 세계관을 이 오리진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데요. 야스히코 본인은 오리진이 건담의 오리진이자 온리 원(Only One)이다라는 소신을 밝힌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 말 그대로 오리진은 퍼스트 건담의 리메이크일 뿐 우주세기 전체를 꿰뚫는 이야기는 아닌 셈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신 시리즈는 퍼스트 건담 이후 몸집이 불어난 우주세기의 많은 뒷 이야기나 설정을 커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MSV 등을 통해 등장한 조니 라이덴이나 신 마츠나가 같은 인기 캐릭터들을 보는 것 같은 소소한 재미가 이번 시리즈에서는 어려울 것이다라는 것이죠. 하지만, 단순히 코믹스의 내용을 그대로 만화영화로 만들 것이냐는 두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30년이 지난 구시대적 SF 설정은 요즘의 추세에 맞춰 바뀌겠지만, MS의 디자인을 포함하여 오리진이 내포한 구시대적 스타일과 가치관을 과연 얼마만큼 현대적인 형태로 각색해내느냐는 시리즈의 성패가 좌우할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모든 리메이크작들이 가진 숙명이기도 하지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오리진 프로젝트는 30여년전보다 압도적으로 세련되어진 신작화로 과거의 건담을 리메이크한다는 기본 뼈대 위에서 몇몇 변주가 가해진 작품으로 태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도 전체적인 느낌은 현재 연재중인 '기동전사 건담 UC(2010)'의 스타일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군요.(예를 들면 MS 전투장면과 같은 부분) 아직 연출가나 각본 스탭, 작화 스탭 등 핵심 제작진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오리진은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야스히코나 메카닉 디자이너였던 오카와라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여러가지 스타일링이 더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무엇보다 샤아 아즈나블이나 세일러 마스와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묘사될지, 급하게 투입되어 조악한 디자인으로 등장했던 모빌 아머 등은 어떻게 스타일링이 될지 등이 몹시 궁금하네요.

 

다만, 자쿠러님과 같은 분들이 언급했다시피 금번 오리진의 타겟 시청층 설정은 시리즈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올드 팬들을 겨냥하면 작품의 생명력이 짧을 터이고, 신세대 팬을 노리기에는 기본 컨셉 자체가 그들과 맞지 않은 것이 오리진의 난제라 하겠는데요. 여기에 50화에 가까웠던 79년 시리즈나, 코믹스로도 21권이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의 길이로 만들 것이냐 하는 것도 이번 시리즈의 이슈라 하겠습니다. 예전과 같은 50화의 대작 시리즈는 요즘 거의 보기 힘든지라 건담도 예외는 아닌데요. 그렇다고 무리하게 스토리를 줄여 편수를 줄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 건담 The ORIGIN 아니메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 (바로가기)

ⓒ SOTSU · SUNRISE

그렇다면 결론은 1쿨이나 2쿨 단위로 제작하여 시즌제로 방영하거나, 케이블 TV 등에서 PPV 방식으로 방영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퍼스트 건담의 리메이크라는 상징성을 가진 거대 프로젝트이니 시류를 따르기 보다는 뚝심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적어도 DVD 시장에서만큼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지 않을까 싶네요. 오리진을 기점으로 우주세기 프라모델들도 다시 새로운 스타일로 출시될 가능성도 있구요.

어찌되었건 이번 오리진 프로젝트는 전설적인 과거의 시리즈를 최신 작화로 볼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의미있는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제까지 많은 전설적인 명작들이 리메이크라는 명제를 통해 신작화로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만, 이번 건담 리메이크는 이제까지 리메이크되었던 작품들의 화제성을 훨씬 뛰어넘는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지요. 거기에 건담 에이스는 오리진 이후 후속 시리즈로, 키타즈메 히로유키의 '기동전사 제타 건담'을 연재할 예정이라고 하니, 자칫 하다가는 몇 년 뒤에 제타 건담을 리메이크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를 일이네요. 어찌되었건 건담의 팬으로서는 행복한 상상들인데요. 이번 오리진의 방영과 발맞춰 부디 한국에서도 영상매체로 건담이 발매되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OTSU · SUNRISE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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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ropaCorp · M6 Films · Griv Productions


<스탭>

◈ 감독: 피에르 모렐(Pierre Morel)
◈ 각본: 뤽 베송(Luc Besson), 로버트 마크 케이면(Robert Mark Kamen)
◈ 캐스팅: 리암 니슨(Liam Neeson), 매기 그레이스(Maggie Grace), 올리비에 라보르딘(Olivier Rabourdin), 팜케 얀센(Famke Janssen)
◈ 제작: 파라마운트 픽쳐스


<시놉시스>

전직 CIA 요원 브라이언(리암 니슨 분)은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생활로 인해 아내인 레노어(팜케 얀센 분)와 이혼하고 홀로 생활하는 독신남이다.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낙은 딸(매기 그레이스 분)인 킴 뿐. 하지만 레노어의 새 남편이자 킴의 계부인 스튜어트는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브라이언과는 달리 부유하고 안정적인 기업가이다. 가수가 꿈인 킴을 위해 그녀의 17세 생일파티에 노래방 기계를 사들고 찾아가는 브라이언. 하지만, 그의 선물은 스튜어트가 마련한 멋진 말 앞에서 한없이 초라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킴이 브라이언에게 같이 식사하자는 전화를 한다. 뜻밖의 킴의 약속에 뛸듯이 기뻐하는 브라이언, 하지만 그건 친구와 단둘이 파리 여행을 가기 위해 친부의 허락을 받기 위한 자리였다. 상심한 브라이언은 단둘이 여행가는 딸이 걱정되어 이를 허락하지 않지만, 울면서 뛰쳐나가는 킴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자신에게 꼬박꼬박 전화하는 것을 전제로 여행을 허락하게 된다. 드디어 킴이 파리로 떠나고... 약속된 시간에 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자 브라이언은 초조해 한다. 마침내 걸려온 딸의 전화, 하지만 그것은 안부전화가 아닌 도움을 청하는 다급한 전화였는데...


리암 니슨의 원맨쇼가 빛난, A급이 되기엔 다소 모자란 액션 스릴러

TV 무료영화를 통해 마침내 접하게 된 '테이큰(2008)'. 사실 수년전 지상파의 영화프로를 통해 소개가 될 당시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남다른 흥미를 갖고 있었다.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한 전직 CIA 요원인 아빠의 피말리는 추격전은 얼핏 느끼기에 한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서스펜스 스릴러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제한된 단서만으로 실낱같은 딸의 흔적을 쫓는 전직 CIA 요원의 추격전이라면 분명 꽤 좋은 스릴러물로 그려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주인공이 리암 니슨이라는 점도 믿음이 갔었고 말이다. 허나 결론적으로 테이큰은 예상과는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하여 테이큰이 어떤 작품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감상했기에 사실 기대는 최초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편이었다. 다만 어렴풋이나마 적어도 감상을 후회할 정도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기대했던 서스펜스 스릴러는 아니었지만, 테이큰은 재미있고 통쾌한 액션 스릴러로는 부족함이 없었으며, 리암 니슨의 호연에 힘입어 좀 더 비범함이 돋보인 작품이 되었다 하겠다. 이는 서두에서 묘사되는 브라이언의 처지가 큰 요인이 되었다.

신분을 숨겨야만 했던 CIA 요원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브라이언의 아내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와 이혼하고 돈많고 자상한 남자와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 브라이언은 CIA를 은퇴하고 변변한 직업없이 혼자서 살아가는 신세로 자신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외동딸이 있지만, 부유한 집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는 딸에게 다가가기에 자신은 너무도 초라한 신세다. 이는 한평생 가족만을 보고 일해왔으나 가족들과 격리된 체 소외받는 한국의 아버지들과도 묘하게 오버랩 되는 측면이 있다. 딸의 생일날 선물한 노래방 기계가 계부가 사준 최고급 종마에 의해 간단히 소외받는 장면이라든지, 예상치 못했던 딸과의 평범한 점심식사에 세상을 모두 얻은 듯이 기뻐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은 후에 벌어진 무자비한 브라이언의 복수극과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인정받지 못하던 가장이 극한 상황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믿음직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딸을 납치해간 인신매매범들을 향하여 무자비한 응징를 가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은 흡사 이정범 감독, 원빈 주연의 '아저씨(2010)'를 연상시킨다. 위기에 빠진 가족을 구출한다는 점에서는 유명한 TV 미니 시리즈 '24시(2001~현재)'나 폴 해기스 감독, 러셀 크로우 주연의 '쓰리 데이즈(2010)'와도 비슷한 스타일이라 하겠지만, 24시에 비해서 치밀한 두뇌게임이나 서스펜스가 부족하며 쓰리 데이즈에 비해서는 드라마성이 부족하다. 스릴러의 느낌이 가미된 액션물이라는 점에서 테이큰은 이 두 작품보다는 아저씨와의 비교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본 시리즈'와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특수요원의 액션물이라는 점에서는 수긍이 가지만, 쫓느냐 쫓기느냐의 차이가 엄연히 있으며, 서스펜스와 액션의 조화가 뛰어났던 본 시리즈에 비해 테이큰은 세기가 많이 부족하다.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한 인신매매 조직과, 여기서 사들인 처녀들을 인간경매로 팔아버리는 파렴치한 무리들을 응징하는 장면은 다소 잔혹하긴 하지만 통쾌함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다만, 해외에서는 PG-13 등급의 작품이 국내 개봉시에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상향조정되었는데, 그 정도라고 하기에는 다소 소프트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PG-13 등급으로 주기에도 개인적으로는 후하지 않나 싶고, R 등급 정도면 괜찮을 수위랄까. 라스트 액션 장면은 흡사 아저씨의 라스트 대결처럼 1대 다수로 수많은 경호원들을 물리치는데, 특히 마지막에 맞닥뜨리는 경호원은 둥그렇게 휜 형태의 단검을 사용하는 아랍인이라는 점에서 아저씨에서 원빈과 마지막 대결을 펼치는 타나용 웡트라쿨과 그의 휘어진 단검의 데자뷰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액션연출은 아저씨에 비해 스타일이나 세련됨이 부족하며, 다만 실전 특공무술을 선보이는 리암 니슨의 액션은 노쇠한 그의 연령을 감안했을 때 리얼리티가 넘친다. 이는 '13구역(2004)'을 통해 스피디한 프랑스식 액션을 선보인 피에르 모렐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토록 많은 살상을 저지른 뒤, 딸과 함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귀국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은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영화적으로 생략되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비현실적이고 비약이 심하다. 그건 납치 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리라 예상되는 딸이 너무도 해맑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리얼리티 측면의 흠이다. 프랑스 영화인 이 작품이 헐리우드식 액션영화와 마찬가지로 너무 감상적인 엔딩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무리라 하겠다.

'도망자(1993)'와 같은 작품이기를 기대했으나 테이큰은 그러한 기대에는 못미치는, 스릴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액션물이다. 다만, 액션물로서의 이 작품은 생각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적어도 보고 난 뒤 돈이 아까운 영화는 아니라 하겠다. 기대 이상의 흥행으로 현재 속편도 기획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속편은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니라 보인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EuropaCorp · M6 Films · Griv Production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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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기대에 못미쳤던 철권 영상화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인가

ⓒ 2011 NAMCO BANDAI Games. Inc


다이 남코사의 히트 격투대전 게임 '철권'을 원작으로 한 3D 애니메이션 '철권: 피의 복수(Tekken: Blood Vengeance)'가 오는 2011년 7월 26일, 미국 전역의 375개 이상의 개봉관에서 일제 상영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영화 개봉에 맞춰 비디오 게임 타이틀도 같이 판매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 Tekken: Blood Vengeance to Run in U.S. Theaters in 3D (바로가기)

아시다시피 철권은 1994년 발매된 남코사의 대전 액션 게임으로, 3D 격투기 게임의 선구자인 버추어 파이터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타이틀입니다. 아케이드 버전으로 출시되어 오랫동안 오락실의 인기 타이틀로 국내에서 사랑받아 왔으며, 일본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으로 발매된 뒤에 유명해진 타이틀이기도 하지요. 2007년에 발매된 철권 6에 이어 2011년 9월에는 철권 태그 토너먼트 2가 아케이드 버전으로 출시 예정에 있습니다. 1998년에는 OVA 아니메로 제작되기도 하였으며, 불과 1년전인 2010년에는 '할로윈 4(1988)'이나 '래피드 파이어(1992)' 등을 연출한 드와이트 H. 리틀 감독에 의해 미국에서 실사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죠. 물론, 격투게임을 원작으로 한 대다수의 실사영화가 그러하듯 이 작품의 완성도는 최악이었고, 결국 극장에도 개봉되지 못한 체 DVD 시장으로 직행하고 말았습니다.

앞선 두 작품의 영상화가 기대 이하였던 반면 이번 3D 애니메이션 철권: 피의 복수 편은 무엇보다 원작게임과 완벽한 싱크로를 자랑하는 3D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가장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린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작품의 프로듀서는 원작 게임의 아트 디렉터이기도 한 미즈시마 요시나리가 맡았으며, 감독은 제작사인 디지털 프론티어 소속의 모우리 유이치(毛利陽一)로, '보노보노의 쿠모모 나무의 비밀(2002)'와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2006)'에서 CG 디렉터로 참여한 신예 연출가입니다. 각본은 '카우보이 비밥(1998)'이나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2002)', '울프스 레인(2003)',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2005)', '지구로(2007)', '동쪽의 에덴(2009)' 등 상당히 굵직굵직하고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을 맡은 A급 각본가 사토 다이(佐藤 大)가 맡았습니다. 

사토 다이가 각본을 맡았다는 사실은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상당히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 작품이 그저 격투장면에만 신경쓴 단조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이니까요. 디지털 프론티어는 이미 '애플시드(2004)', '애플시드 Ex Machina(2007)', '레지던트 이블: 디제너레이션(2008)' 등을 통해 풀 CG 애니메이션의 노하우가 풍부한 제작사라는 점도 완성도에 믿음을 줍니다. 문제는 결국 신예 연출가가 이러한 리소스를 얼마나 잘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내느냐 인데, 레지던트 이블: 디제너레이션의 경우가 본 작과 스탭진의 구도가 유사(연출은 초보, 각본가는 베테랑)했음을 감안할 때 적어도 레지던트 이블 정도의 수준은 나오지 않을까 예상이 되는군요. 물론, 사토 다이도 '캐산 실사판(2004)'와 같은 망작에 참여한 적이 있긴 한지라 안심은 이릅니다만.

영어버전의 트레일러는 기대 이상으로 싱크로가 높습니다. 성우들의 연기도 만족스러운 것으로 보이구요. 개인적으로는 일본어 버전보다는 영어 버전이 더 나은 듯 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일본식 표현이나 억양이 질리는 느낌이라서 그런걸까요. 반가운 캐릭터들과 강렬한 액션, 뛰어난 CG 퀄리티로 무장한 철권: 피의 복수편. 실사영화가 표현해내지 못했던 격투 액션의 참맛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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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맨에 이은 본즈식 본격 히어로물

ⓒ BONES · トワノクオン製作委員会


'철의 연금술사(2003/2009)', '에우레카 세븐(2005)', '흑의 계약자(2007)', '망념의 잠드(2008)'로 아니메 팬들에게 웰메이드 스튜디오로 인정받고 있는 본즈(BONES)에서 6부작 극장 아니메로 기획된 '토와노 쿠온(2011)'을 올 6월 중순에 개봉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토와노 쿠온은 본즈의 전작인 '히어로 맨(2010)'이나 '스타 드라이버 빛의 타쿠토(2010)'에 이은 본즈식 히어로 액션물로서, 근래 일본 아니메의 유행코드 중 하나인 히어로 SF 액션물 중에는 첫번째로 극장 아니메로 등장하게 된 셈입니다. 본즈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선라이즈의 '타이거 앤 버니(2011)'나 '세이크리드 세븐(2011)', 전통의 명가 매드하우스의  '울버린(2011)', '엑스맨(2011)'과 좋은 비교가 될 듯 하네요.

☞ 세이크리드 세븐(Sacred Seven), 선라이즈의 달라지는 행보 (보러가기

감독은 이이다 우마노스케(飯田馬之介)로, 안타깝게도 작품을 한참 제작하던 지난 2010년 11월 말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마노스케 감독은 '기동전사 건담 08 MS 소대(1996)'을 연출하던 도중 세상을 떠난 칸다 다케유키 감독의 뒤를 이어 08 MS 소대를 7편부터 연출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그가 칸다 감독의 뒤를 따라 작품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아쉬운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마노스케 감독의 자리는 '비경탐험태 팜&일(1995)', '반드레드(2000)', '스트라토스4(2003)' 등 미소녀 액션물을 섭렵해온 모리 타케시(もりたけし)가 맡게 되었는데요. 타케시 감독은 본즈의 '스컬맨(2007)'을 통해 시리어스한 히어로 애니메이션을 인상적으로 연출했던 경력이 있기에 이번 작품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은 본즈를 대표하는 일류 작화가인 카와모토 토시히로(川元利浩)가 맡고 있습니다. '고식(2011)'에 이어 연달아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는데, 이 두 작품은 '천보이문 아야카시 아야시(2006)' 이후로 그의 5년만의 캐릭터 디자인 복귀작이기도 합니다. 고식이나 토와노쿠논이나 이전에 비해 좀더 미소녀적 취향으로 캐릭터 터치가 변한 듯 싶군요. 시리즈 구성은 사이조 네모토(根元歳三)로, 고식에도 각본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구로(2007)', '샹그리라(2009)' 등에 각본 스탭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본작의 주인공인 쿠온은 헤어스타일이나 헤어밴드에서 지구로의 두 히어로인 블루나 죠미를 연상시키는 군요.

이 밖에 컨셉 디자인에는 히어로맨에서 크리쳐 디자인을 맡았던 타케바 신고(武半慎吾)와 일류 메카닉 디자이너 이즈부치 유타카(出渕裕)가 가세하고 있으며, 작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이 발휘된 모습 '베스티아'의 디자인은 망념의 잠드에서 메카닉 디자인을 맡은 미즈하타 켄지(水畑健二)가 맡아 본즈만의 독특한 히어로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다른 본즈의 히어로 물에 비해서는 늦게 등장했지만 토와노 쿠온은 애초에 카와모토가 오리지널 아니메로 무려 4년전부터 기획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바, 오히려 본즈식 히어로 아니메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6부작 극장 아니메인만큼 퀄리티는 일반 TV 시리즈를 상회할 것으로 기대되는군요.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는 시리어스한 본즈식 히어로 아니메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망념의 잠드 이후 히어로 맨과 빛의 타쿠토에서 보여온 본즈의 제작 방향을 볼 때, 토와노 쿠온은 최신 흥행 트렌드와 본즈만의 스타일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한 작품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토와노 쿠온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 토와노 쿠온 프로모션 영상 (보러가기)

ⓒ BONES · トワノクオン製作委員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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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에 선 스필버그의 신작

ⓒ 2011 Paramount Pictures


벨기에의 작가 죠르쥬 레미(Georges Rémi)가 에르제(Hergé)라는 펜네임으로 1929년 창조한 고전명작 '틴틴의 모험(혹은 땡땡의 모험)'이 블록버스터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반지의 제왕'의 명장 피터 잭슨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올해 최대의 기대작 중 하나가 될 이 작품 '틴틴의 모험(2011)'은 이번 겨울 블록버스터로 팬들을 만나게 될 예정이라는군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틴틴의 모험은 애초부터 3부작으로 기획된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입니다. 원작의 9편에 해당하는 '황금집게발을 가진 게'와 11편인 '유니콘의 비밀', 그리고 12편 '레드 라캄의 보물'을 베이스 스토리로 삼아 제작될 계획인 것 같네요. 아마 각 편마다 별도의 에피소드를 갖고 진행되는 이야기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깐 반지의 제왕 3부작처럼 연결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편이 끝나면 사건이 일단락 되는 형식의 전개가 될 것 같다는 의미죠.

사실 스필버그로서는 이번 틴틴의 모험은 꽤나 염원하던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가 루카스와 합작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바로 이 틴틴의 모험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영화이기도 하니까요. 원작의 빅팬이기도 한 그는 83년 에르제가 사망 직후 틴틴의 판권을 가져왔다고 합니다.(당시 에르제는 틴틴의 실사영화를 스필버그의 상의하려던 참이었지요) 그것은 언젠가는 이 작품을 반드시 영화화 하겠다는 생각이었다는 뜻인데요. 이러한 그의 의지는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지연과 난항을 거답하다가 결국 실사영화가 아닌 만화영화로 그 방향이 변경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방향전환이 괜찮다고 보입니다. 이런 고전 소년 모험물을 실사영화로 만들어낼 경우 자칫하면 너무 뻔한 전개가 될지도 모를테니까요.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의 방향성을 선회시킨 것은 프로듀서인 피터 잭슨이라고 전해집니다)

만화영화는 기존의 CG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형태로, 실사영화에 근접한 비주얼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퍼포먼스 캡쳐라 불리는 기법으로, 가깝게는 올초 디즈니가 제작한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2011)'가 있구요. 좀 멀리는 로버트 져메키스의 '폴라 익스프레스(2004)'와 '베오울프(2007)' 등이 있습니다. 이 세 작품 모두 로버트 져메키스가 세운 이미지무버스 필름의 퍼포먼스 캡쳐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요. 다만, 이미지무버스 디지털이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를 끝으로 문을 닫았기에 이번 틴틴의 모험에 사용된 퍼포먼스 캡쳐 기술은 이미지무버스의 것이 아닌,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피터 잭슨이 설립한 스튜디오 웨타 디지털이 맡은 것으로 보입니다.
 

웨타 디지털은 '반지의 제왕' 3부작부터 '킹콩(2005)', 그리고 '아바타(2009)'에 이르는 2000년대 최고의 특수효과 영화들을 제작했으니 만큼 그 실력과 명성에 있어서는 져메키스의 이미지무버스 디지털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는데요. 다만 이번의 경우는 100% 퍼포먼스 캡쳐로 진행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그들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까지 100% 퍼포먼스 캡쳐의 영화들이 작품성에서는 인정을 받을지언정 대부분 흥행에서는 쓴잔을 마셨다는 점에서 틴틴의 모험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또한 '인디아나존스: 해골왕국의 비밀(2008)'에서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스 만큼이나 노쇄함을 보여주었던 스필버그의 엔터테인먼트 감각이 얼마나 빛을 발휘할지도 궁금하군요. 자칫 이전 스필버그식 가족 오락영화의 수준에 그친다면 작품의 볼거리는 잘 만들어진 CG 애니메이션 외에는 그닥 내세울게 없는 작품이 될지도 모릅니다. 뻔한 스토리를 갖고도 드라마틱하고 볼거리 넘치는 작품(구체적으로 아바타)을 탄생시켰던 제임스 카메론마냥 스필버그도 이번 작품에서 강한 임팩트를 선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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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Paramount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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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미국식 가족영화와 로봇 액션물의 조우 

ⓒ 2011 Dreamworks


'랜스포머(2007)'가 CG 로봇 액션의 성공적인 선례를 남김으로 인해 현실적이고 중량감 넘치는 로봇의 등장은 이제 스타워즈와 같은 몇몇 SF 영화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사실감 넘치는 디자인과 움직임은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대를 배경으로도 충분히 위화감을 주지 않는 영상적인 수준에까지 올라가게 된 것이죠. 하지만, 2007년 트랜스포머의 개봉 이래 트랜스포머와 같은 작품들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나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2009)' 등에서 상당히 현실적인 모습의 로봇형 병기를 만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군사용 병기를 연상시키는 것들로서, 우리가 만화영화에서 보아온 '로봇'과는 실상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트랜스포머가 아닌 또다른 영화가 우리가 아는 그 로봇을 소재로 한 영화를 선보이게 되니, 그것이 바로 드림웍스의 신작 '리얼 스틸(2011)'이 되겠습니다.

이야기는 전직 복서로, 챔피언을 목표로 살아온 챨리 켄튼(휴 잭맨 분)이 로봇 복싱이라는 새로운 스포츠의 도입으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기고 3류 로봇 복서 프로모터로 근근히 살아가던 도중, 자신의 아들 맥스(다코타 고요 분)에게 자극을 받아 로봇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가족애를 되새긴다는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가족영화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 상으로는 큰 임팩트를 찾기 힘든 작품이죠. 3류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 그 주인공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가족(아들), 가족으로 인해 삶의 목표와 생기를 되찾는 주인공, 목표를 향한 그들의 희망찬 도전, 그들 앞에 닥치는 최대의 시련, 극적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가족애를 확인하는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익숙한 이야기 전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큰 기대를 주는 요인은 바로 로봇 복서들의 현실감 넘치고 강렬한 CG 액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원작은 리챠드 매디슨이 1956년에 쓴 '스틸'이라는 단편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요. 리챠드 매디슨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천재성이 돋보였던 TV 영화 '대결(1971)'이나 올드팬들에게는 '환상특급'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드라마 '트와일라이트 존(1959)'을 쓴 인물로, 본 작품의 원작이 된 스틸 역시 59년도 트와일라이트 존에서 사용된 에피소드라고 합니다. (아, 한국에서 방영된 환상특급은 59년작이 아닌 83년작이구요.) 이 외에도 그가 쓴 소설 '나는 전설이다(1954)'의 경우는 1964년과 71년, 그리고 2007년에 각각 영화화 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2007)'가 바로 그 중 하나인 셈이죠.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시면 눈치채시겠지만, 호러와 판타지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입니다. 트와일라이트 존의 에피소드로 방영된 스틸 역시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싸우는 막소(Battling Maxo)'가 로봇 복서로 등장하고 있구요. 다만, 이번 리얼 스틸에서는 그러한 리챠드의 호러 판타지적 감성은 대거 삭제되고 강렬한 CG 액션과 전통적인 가족애를 테마로 한 PG 등급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감독은 '핑크팬더(2006)', '박물관이 살아있다(2006)'를 연출한 숀 레비가 맡았으며, 주연은 '엑스맨(2000)'으로 스타덤에 오른 휴 잭맨이, 휴 잭맨의 아들 역에는 신예 다코타 코요(현재 상영중인 '토르(2011)'에서 토르의 어린시절 역을 맡았다고 합니다)가 캐스팅 되었습니다. 또하나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로봇은 1:1 스케일의 실제 로봇 모형을 만들고 이를 모션 캡쳐기법으로 촬영했다고 전해지는군요.

글쎄요, 일단 스토리나 감독만으로 보았을 때는 큰 기대를 걸긴 어려운 작품이긴 합니다만, 예고편에서 선보인 매력적인 로봇 액션과 드림웍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마냥 망작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가져봅니다. 리얼 스틸은 2011년 10월 7일 북미에서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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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Dream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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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와 캡틴 아메리카, 엑스맨들과 대결하는 DC의 새로운 녹색 히어로

ⓒ 2011 Warner Bros. Pictures


벤져스 프로젝트의 일환인 마블의 히어로 무비 '토르(2011)'의 뒤를 이어, 이번에는 DC의 히어로 무비 '그린 랜턴(2011)'이 6월 16일 한국에서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DC와 마블 간의 히어로 전쟁이 그 막을 올리고 있는 셈인데요. 올 한 해에만 세 편이 개봉 예정되어 있는 마블에 비해 DC는 그린 랜턴 하나만이 개봉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올 한해로만 놓고 보면 마블의 초반 공세가 무섭다고 해야 하겠군요. 하지만 내년에는 DC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슈퍼 히어로들이 몰려온다, 시작된 마블의 거대 프로젝트 (보러가기)

그린 랜턴은 히어로 코믹스의 팬들에게는 유명한 DC 코믹스의 대표적인 히어로입니다. DC의 3대 히어로인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뒤를 잇는 네임 밸류를 갖고 있는 히어로로서,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그 시작은 1940년 빌 핑거(Bill Finger)와 마틴 노델(Martin Nodell)의 작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으니 실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히어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그린 랜턴은 이 1940년에 등장한 그린 랜턴(알란 스콧)이 아니라 1959년 존 브룸(John Broome)과 질 케인(Gil Kane)이 창조해낸 그린 랜턴(할 조단)이 주인공인 영화가 되겠습니다.

최초의 그린 랜턴이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활약한다는 설정을 가진 고전적인 히어로(그런 면에서는 마블의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와 비슷한 설정을 지녔군요)인 반면, 할 조단의 그린 랜턴은 외우주의 행성 오아(Oa)에 거점을 두고 있는 우주의 수호자의 일원이 되어 수호자들의 힘의 원천인 녹색의 파워 링을 받고 그린 랜턴으로 선택되는 인물입니다. 그로 인해 영화는 지구에 한정되지 않고 우주와 지구를 넘나드는, 이제까지의 '히어로 무비' 중에서는 가장 넓은 지역을 커버링하는 인물이 되시겠습니다. (클립톤 행성 출신인 슈퍼맨도 결국 활약은 지구에서 만이었으며, 우주에서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판타스틱 포 역시 지구 근처의 우주에서 사고를 겪은 뒤 실제 활약은 지구에서 벌이게 되니 그린 랜턴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지구로 무대가 한정된다 할 수 있겠지요.)

먼저 개봉한 토르가 신들의 세계에서 추방당해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 신이라면, 그린 랜턴은 평범한 인간에서 선택을 받아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서로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거기에, 이제까지의 히어로들과는 다르게 유니크한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우주의 수호자 중 한명이라는 것도 특이하네요. 압도적인 CG 기술로 인해 이제까지의 히어로들 중에서는 가장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줄런지도 모르겠군요. 특히 영롱한 녹색 불빛으로 인해 그 화려함은 다른 히어로들을 능가하지 않나 싶습니다. (원더우먼이 등장해준다면 모를까나 이제까지 히어로 중에서는 가장...)

ⓒ 2011 Warner Bros.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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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랜턴인 할 조단은 '베리드(2011)'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관 속에 갇힌 체 생매장 당한 한 남자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 내면서 뒤늦게 주목받고 있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맡았는데요. 작년 한 해 '127시간(2010)'을 통해 레이놀즈와 비슷한 상황의 배역을 신들리게 연기하면서 오스카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제임스 프랑코가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통해 얼굴을 알렸던 것과 비교하면 둘의 행보가 흥미롭다 하겠습니다. 감독은 '007 골든아이(1995)', '007 카지노 로얄(2006)'부터 '마스크 오브 조로(1998)', '레전드 오브 조로(2005)' 등 제법 굵직굵직한 블록 버스터들을 연출해온 영국계 감독 마틴 캠벨, 각본은 마이클 그린 외 다수. 그린은 TV 시리즈 '스몰빌(2001)'이나 '히어로즈(2006)' 등에 참여한 경력이 있기에 히어로 무비에 대한 적응력은 좋을 듯 싶군요.

개인적으로 그린 랜턴은 히어로 무비로서는 평작 정도의 수준을 보여줄 작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보고 있습니다. 스타 캐스팅도 아닌데다가 감독인 마틴 켐벨이 괜찮은 흥행작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유명감독이긴 하지만, 카지노 로얄 이후 약 4년간의 공백이 있었으며 오랜만에 연출한 멜 깁슨 주연의 '엣지 오브 다크니스(2010)'도 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못본 체 평단에서도 '그럭저럭 볼만한' 작품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이본 작품에서 그닥 강한  임팩트를 주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어벤져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등장해주는 마블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솔로잉이라는 점에서도 파워가 밀리는 감이 있습니다.

다만, DC의 히어로라면 으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만을 생각하고 있는 중에 그린 랜턴이 영화화 되었다는 점은 무언가 다른 뉘앙스가 풍기기도 합니다. 저스티스 리그의 핵심 멤버였던 그린 랜턴이 등장했으니, DC 역시 마블과 마찬가지로 '저스티스 리그'를 영화화 시키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죠. 아직까지는 DC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았으나 2007년부터 실사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꽤 진전되고 있었던 만큼 영화팬들이라면 조심스레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 듯 싶은데요. 과연 토르와 엑스맨,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2011년의 공세 속에서 그린 랜턴이 얼마만큼의 선전을 해줄지가 저스티스 리그의 앞날을 밝혀줄 한줄기 녹색 섬광이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 DC Comics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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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헬드 기법에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접목한 독특한 호러 무비

ⓒ 2011 Magnet Releasing


국의 영화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노르웨이산 호러 영화가 2011년 6월 북미에서 개봉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괴물 트롤을 소재로 한 유럽식 호러영화인 이 작품의 제목은 '트롤 헌터'. 감독 역시 생소한 인물인 안드레 오브레달(André Øvredal)로, 안드레 자신이 직접 각본까지 쓴 작품입니다. 주연을 맡은 오토 제스퍼슨(Otto Jespersen)이나 한스 모르텐 한슨(Hans Morten Hansen)은 모두 노르웨이의 코미디언들이라 하는군요. 코미디언들이 등장하는 저예산 괴수영화라니 왠지 한국의 심형래 감독이 만들었던 예전의 B급 괴수영화 '티라노의 발톱'이나 '영구와 공룡 쭈쭈' 등이 생각나네요. 물론, 이 영화의 분위기는 심 감독의 영화와는 완전히 분위기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북유럽 신화 외에도 스칸디나비아나 스코틀랜드에 구전된 전설 속의 요괴인 트롤은 톨킨이 정립한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인 중간계에 등장하는 트롤이나, 이 톨킨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정립된 또다른 판타지 세계관들에 등장하는 트롤과는 좀 다른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필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3부작'에 등장하는 트롤은 거대하고 힘센 거인이라는 점에서는 원래 트롤의 설정과는 비슷하지만, 크리쳐 디자이너에 의해 나름의 스타일링이 가해진 형태이며, 게이머들에게 유명한 타이틀인 '워크래프트' 시리즈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트롤의 경우는 원래의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강인하고 날렵한 야만전사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는데요. 아마, 이번 포스트에 등장하는 트롤의 이미지가 원래의 트롤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디자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트롤 헌터 예고편 보러가기 (클릭)

포스터로만 보아도 굉장히 거대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직접 캠코더를 들고 촬영하는 것과 같은 핸드 헬드(Hand-Held)기법이 적용되어 상당한 현장감을 부여하고 있는데요. 핸드 헬드 기법의 괴수영화라는 점에서는 J.J 에이브람스가 제작했던 '클로버 필드(2008)'가 처음 연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핸드 헬드 기법의 호러영화라는 점에서 클로버 필드 역시 다니엘 미릭/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의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1999)'에 영감을 받았기에 트롤 헌터가 핸드 헬드 기법이라는 이유만으로 클로버 필드의 아류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군요. 오히려, 저예산 영화스러운 느낌을 주는 점에서는 클로버 필드보다는 블레어 윗치 쪽에 보다 더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클로버 필드가 고질라를 핸드 헬드 기법으로 촬영한 것과 같은 느낌이라면, 트롤 헌터는 핸드 헬드 기법의 호러영화에 거대한 트롤이 등장한다라고 보면 어떨까 싶네요.

등장하는 트롤은 한마리가 아닌 듯 합니다. 굉장히 거대한 트롤부터 3m 크기의 거인 트롤과, 자그마한 체구의 트롤 무리도 등장하는 것 같군요. 특히, 이 자그마한 체구의 트롤들은 미우라 켄타로의 코믹스 '베르세르크'의 천년제국의 매편 성마전기의 장에 등장하는 트롤을 연상시킨다 하겠습니다.

노르웨이 영화라는 점에서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헐리우드식 괴수영화에 비해 신선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줄 것으로 기대가 되는데요. 아쉽게도 국내에서의 개봉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이 영화의 판권을 벌써 헐리우드 측에서 사서 헐리우드식으로 리메이크할 것이 결정되었다고 하는군요. 아마 헐리우드식 트롤 헌터는 수년 뒤 한국 극장가에서도 관람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Magnet Releasing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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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감상기에는 부득이하게 작품의 내용과 결말의 일부분이 이야기되고 있으니 작품의 결말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스탭>

◈ 감독: 신카이 마코토
◈ 원작: 신카이 마코토
◈ 제작: 코믹스 웨이브 필름


<시놉시스> 

초등학교 시절 단짝친구로 지내온 타카기와 아카리. 아카리가 갑작스레 동경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의 토치기로 전학가게 되면서 둘은 행복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뒤로 한 체 헤어지게 된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서로 편지로 안부를 주고 받던 둘이었으나, 고교진학을 앞두고 타카기마저 동경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의 카고시마로 전학을 가게 된다. 아카리와의 거리가 더더욱 멀어지는 것을 염려한 타카기는 이사를 떠나기 전 아카리를 만나기 위해 토치기로 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세심히 기차시간과 환승역을 살피고 7시에 아카리와 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뒤 역에 타카기는 기차에 오르지만 갑작스레 폭설이 내리면서 시간은 지체되기만 한다. 아카리가 상처받을 것이 걱정되는 타카기. 하지만 하늘은 이런 타카기의 초조함을 모르는지 연신 눈을 퍼붓고, 결국 열차는 선로 위에 멈춰서고 마는데...


우주에서 하늘로, 그리고 지상으로 옮겨져온 신카이식 사랑이야기

카이 마코토 감독의 '별의 목소리(2002)'부터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 그리고 이번 '초속 5cm(2007)'에 이르기까지 감독이 이야기하는 테마와 소재는 동일합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떨어지게 된 남녀의 애틋한 감정과 그리움, 그리고 그것을 통한 성장과 깨달음. 우주라는 머나먼 시공으로 인해 이별하게 된 남녀의 이야기에서부터 영문도 모른 체 혼수상태에 빠져 자신에게 연락을 하지못하는 그녀가 자신을 버린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지나 초속 5cm에서는 전학으로 인해 서로 멀리 떨어져 버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전작의 이야기들이 외계문명과 우주탐사대(별의 목소리)나 분단된 일본의 사이에 위치한 신비한 탑(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과 같은 판타지스러운 배경과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했던 반면, 이번 작품은 현실적인 배경을 소재로 한 이야기입니다. 판타지나 SF스러운 소재가 사라짐으로써 작품은 이전 작들에 비해 보다 더 이별과 그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스케일이 작아진만큼 이야기의 디테일은 더욱 농밀해졌으며, 등장인물들의 수가 적어진만큼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마음에 더 가까이 와닿습니다. 그로 인해 이제까지의 신카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관객에게 주는 인상은 깊습니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져왔던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과연 만화영화로 얼마나 설득력있게 그려질 수 있을까요. 이미 진부할대로 진부한 소재의 멜로 드라마가 과연 만화영화로 그려진다고 얼마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신카이 감독 자신 역시 이 비슷한 소재를 이미 세번이나 스크린에 그려왔기에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작품에 대한 선입견은 그다지 기대가 높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깊은 여운의 바다로, 그리움의 저편으로 관객들을 이끌어 가게 됩니다.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마음을 정화시키는 아름답고 깨끗한 미술

속 5cm의 매력을 몇 배로 끌어올려주는 힘은 바로 서정적이면서도 놀랍도록 세밀하고 선명한 배경미술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상당히 정적인 작품으로 장면과 장면간의 호흡이 긴 롱테이크도 많고 캐릭터들의 움직임도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지루한 작품입니다만, 아름다운 배경으로 인해 그러한 지루함은 오히려 아름다운 배경을 천천히 감상하는 여유로움으로 바뀝니다. 벚꽃이 만발한 도입부의 화사한 봄 배경은 마치 눈부신 봄햇살을 받으며 벚꽃구경을 나온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광원효과나 원근감을 부여한 것과 같은 각종 그래픽 효과는 서정적인 배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처음부터 풀 HD 구현을 목표로 했던 작품인지라 그 선명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합니다. 극장이나 블루레이로 감상한 관객들이라면 이야기에는 감동하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배경에는 만장일치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포토샵의 엄청난 힘을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아름답고 세밀한 것은 배경 뿐만 아니라 사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칠판을 지우는 모습이나 편지지에 글씨를 쓰는 장면, 열차표에 형광펜으로 노선을 따라 선을 긋는 장면 등에서부터 차창거울에 비춰지는 기차의 실내모습, 오래 써서 천이 헤진 기차 시트 등, 세심한 부분에까지 상당한 묘사가 수반되고 있습니다. 신카이 감독 본인은 이번 초속 5cm의 경우 전작인 구름의 저편... 에 비해 묘사의 밀도를 줄이고 단순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은 단순화했다고 언급하긴 했습니다만, 어지간히 주의깊게 보지 않고서야 두 작품 간의 밀도 차이를 느끼는 것은 힘들 듯 싶군요. 이것은 풀 HD로 제작된 선명한 화질도 한 몫을 하는 듯 싶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는 실제 일본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여 이 장소를 가본 일본 관객들에게는 친밀감을 주기도 합니다. 2화의 배경이 되는 다네가지마의 경우는 작품에서처럼 실제로 우주항공 관련 설비들이 위치하고 있다고 하지요. 초속 5cm는 이렇게 실제 세상과의 거리를 좁혀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살리려는 흔적이 엿보입니다. 다만 감독 본인도 이미 밝혔듯이 그런 구도와 조건 안에서 실제 작품은 상상력에 근거한 비주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한 여름에 로케한 이와후네 역이 작품에서는 눈덮인 한겨울로 묘사되는 부분 등이 바로 그러한 것으로, 현실적인 배경이면서도 초속 5cm의 세계는 왠지 모를 판타지의 한자락의 느껴진다 하겠습니다. 마치 추억 속에 기억되는 그 옛날의 어느 장소인 것처럼 말입니다.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사춘기의 사랑을 테마로 한 소년과 소녀의 성장이야기

학으로 인해 멀리 떨어지게된 초등학교 시절의 소꿉친구. 연인 사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이 둘의 이야기는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숱한 비련의 연인들에 비해 임팩트도 약하고 신선미도 떨어집니다. 사춘기 시절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간직하고 지내는 순정적인 남자 주인공의 인생 이야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 밋밋한 스토리가 생각 이상의 진한 여운을 가져다 주는 것은 드라마틱하지 않은 평이함으로 인해 전해지는 공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비슷한 상황 겪었을 듯한 그런 현실적인 상황, 그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평범한 진리로 인해 맺어지지 못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잔잔하고 긴 롱테이크와 세심한 감정 표현으로 고급스럽게 그려집니다. 평범한 사랑이야기는 아름다운 배경으로 인해 눈이 시리도록 절절하게 느껴지고, 서로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나약함은 관객들에게 그들과 같이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것은 절제된 감정을 배경과 상황으로 은유적으로 묘사해낸 연출의 힘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풋풋한 사랑을 간직한 체 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이 애틋한 감정이 추억으로 변해가는 성장이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비록 안타까운 그리움이 가득하지만 그 끝은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일말의 희망과 전진을 엿볼 수 있습니다. 2화에서 끝내 타카기에게 고백하지 못한 체 그와의 거리를 느끼고 절망한 카나에가 타카기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우주로 향해 쏘아올려진 로켓의 장관 역시 현재의 슬픔과 괴로움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긍정적인 가치관의 은유적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토록 답답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연애감정의 표현에 소극적인 일본적 감성의 표현이기도 한지라 우리의 관점에서 공감을 못하거나 답답해하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만.)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카기와 아카리의 풋풋한 헤어짐과 애틋한 재회, 타카기를 짝사랑하는 카나에의 슬픈 순애보, 타카기의 방황과 추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연작단편 형태로 구성한 것은 꽤 세련되고 멋진 전개가 아닌가 합니다. 각 편 사이에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새로운 에피소드의 시작으로 잘라낸 것은 마치 연극의 무대 전환과도 같은 여운을 안겨준다고 하겠는데요. 세심하고 아름다운 배경과 세련되면서도 절제된 이러한 연출방식으로 인해 초속 5cm는 평범한 소재를 고급스러운 드라마로 변주해내게 됩니다.  

정적이면서 절제된 이야기는 3화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면 갑자기 급반전하게 됩니다. 일본인들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흐르면서 이제까지의 고요한 전개와는 달리 뮤직비디오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을 빠른 속도로 화면에 풀어놓습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절제되어왔던 감정을 노래와 함께 쏟아내는 듯, 조용하면서도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합니다. 혹자에겐 다소 생뚱맞은 불친절한 전개가 아닌가 하는 불평도 들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라스트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설명 없이도 전해지는 그리움과 회한, 아쉬움과 애틋함이 녹아든 음악의 라스트에 이르러 그려진 극적인 조우와 신기루 같은 이별은 긴 여운을 남기며 마지막 엔딩을 향해 흐릅니다. 어찌보면 초속 5cm는 이 라스트의 드라마틱한 뮤직 비디오를 위한 한 편의 긴 프롤로그였는지도 모릅니다.

초속 5cm는 소심하면서도 평범했던 어느 남녀의 풋풋한 시절을 아름답고 정갈한 터치로 그려낸 미셀러니(경수필)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깊이 있는 메시지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추억을 생각하게 하는 공감과 평안함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당신이 언젠가 해보았음직한, 그리고 고단한 삶으로 인해 잊고 지내던 풋풋한 사랑의 추억. 그 여운은 초속 5cm의 느린 속도로 다가오지만 그 파문은 마음 속에서 오랜동안 물결치고 있을 겁니다.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



☞ 초속 5cm DVD 리뷰 (바로가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Makoto Shinkai / CoMix Wave Films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 달의 TTB 리뷰 2011년 4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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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삼총사 중 가장 현란한 비주얼, 과연 스토리는?


동안 무려 20여편이나 실사영화로 제작되었던 알렉상드르 뒤마의 고전 명작 어드벤쳐 '삼총사'가 2011년 또다시 실사영화로 개봉예정에 있습니다. 감독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감독 겸 프로듀서로 알려진 폴 W.S. 앤더슨(Paul W.S. Anderson).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이 삼총사가 어떤 형태로 흘러가지가 짐작이 가는군요. 현란하고 스타일리쉬한 영상미에서는 적어도 매력적인 결과물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클래식한 중세 프랑스의 모습과 비디오 게임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의 조합이라는 점도 흥미롭구요. 다만 이제까지 앤더슨 감독의 오락영화들이 보여준 부실한 스토리로 인해 이번 작품 역시 볼거리만 풍성한 헐리웃식 팝콘무비 수준 이상은 되지 못하겠다는 선입견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인공 달타냥은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2010)'에서 퍼시 잭슨역을 맡았던 로간 러만이, 삼총사의 리더 아토스 역은 '오만과 편견(2005)'에서 남자 주인공 디아시를 맡았던 매튜 맥퍼딘, 포르토스 역은 '킹 아써(2004)', '일라이(2010)' 등에서 조역으로 활약한 레이 스티븐슨, 아라미스 역에는 영국계 배우인 루크 에반스 등 캐스팅 파워는 다소 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다만 악역인 여성 스파이 밀라디역에는 레지던트 이블의 여전사 밀라 요요비치가, 버킹엄 공작에 레골라스의 올랜도 볼룸이 캐스팅 되는 등 원작의 조연급 인물의 캐스팅 파워가 주연을 능가하는 캐스팅 파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는 적어도 이들 밀라디나 버킹엄 공작의 비중이 생각보다 높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올랜도 볼룸이 아라미스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군요.

이 외에 리슐리외 추기경에는 '바스터즈(2009)'를 통해 칸느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퍼 왈츠, '발할라 라이징(2009)', '더 도어(2009)' 등 비 헐리우드권 유럽 영화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매드 미켈슨이 달타냥의 라이벌 로슈포르를 맡는 등, 삼총사의 캐스팅은 악역과 조연급 인물에 캐스팅 비중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오히려 독특한 뉘앙스를 풍기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게 하는군요.

☞ 삼총사 공식 홈페이지 (클릭)

예고편을 보건데, 이 삼총사는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2009)'처럼 가장 원작과 상당히 다른 형태의 삼총사가 될 듯 합니다. 하늘을 나는 범선이 등장하는 예고편으로 보아 누군가의 말마따나 유럽식 판타지 무협 액션물의 모양새가 될 듯 싶네요. 각본을 맡은 앤드류 데이비스가 '브리짓존스의 일기(2001)' 등 드라마와 로맨스 쪽에 강점을 가진 작가라는 점은 꽤 독특합니다. 그의 드라마적 감성이 이 판타지 어드벤쳐 물에 어떤식으로 그려질지에 따라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줄 것으로 보이는군요. 데이비스가 커버하지 못하는 액션 부분의 이야기는 '프레데터스(2010)'에서 각본으로 참여한 알렉스 리트박이 보완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데이비스의 각본, 매튜 맥퍼딘, 매드 미켈슨, 크리스토퍼 왈츠 같은 연기파 배우들의 캐스팅에서 헐리우드식 팝콘 무비치고는 꽤 고급스러운 모양새도 느껴집니다. 애시당초 이 프로젝트가 미국, 영국, 독일 등의 다국적 영화인지라 분위기도 단순한 헐리우드 액션물과는 차별화될 것으로 보이구요. 유럽적 감성이 녹아든 만큼 색다른 오락물로 완성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개봉은 2011년 10월 14일 예정.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1 Summit Entertainment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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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MOUNT Pictures


<스탭>

◈ 감독: 마틴 스콜세지
◈ 원작: 데니스 르헤인
◈ 캐스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크 러팔로, 벤 킹슬리, 미셸 윌리엄스, 막스 폰 시도우
◈ 제작: 파라마운트 픽쳐스


<시놉시스>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정신병원에서 한 여성 환자가 실종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해결을 위해 현장으로 향하는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과 동료 척(마크 러팔로 분). 테디는 수년전 방화사건으로 인해 아내 돌로레스(미셸 윌리엄스 분)를 잃고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잦은 두통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병원의 책임자인 코리 박사(벤 킹슬리 분)를 만나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는 테디와 척. 사라진 환자는 레이첼 솔란도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자신의 아이 셋을 물에 익사시킨 뒤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으나 어젯밤 자신의 숙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테디는 코리 박사 이하 정신병원의 모두가 무언가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그들 몰래 사건을 조사하려는 테디. 사실 그에게는 이곳 정신병원을 찾은 또 하나의 숨겨진 목적이 있었는데...


부족한 스릴러의 공백을 메우는 뛰어난 싸이코 드라마

ⓒ PARAMOUNT Pictures

실 셔터 아일랜드가 스콜세지의 작품치고는 그다지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는 미디어의 소식을 접했을 때는 무척 실망했었다. 예고편이나 공중파 방송의 영화 소개 프로에서 접한 셔터 아일랜드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흐른 뒤 감상하게 된 셔터 아일랜드는 기대했던 이야기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미디어의 평가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작품이 되었다. 스콜세지 감독의 연출력은 거장의 칭호에 걸맞는 내공과 섬세함이 돋보였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물이 올랐으며, 악몽과 현실의 경계에 선 작품의 분위기는 훌륭한 긴장감을 선사하고 있다. 140분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셔터 아일랜드는 인상적인 느낌을 내게 심어주었다.

정신병원이 위치한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떠나는 테디와 척의 행보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당연히 미스테리 스릴러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엘로스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마치 이 서두는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2005)'에서 외딴섬 동화도로 향하는 원규(차승원 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다만, 연쇄살인사건과 범인의 정체, 그리고 섬에 감춰진 어둡고 충격적인 진실과 같은 클리셰가 드러난 혈의 누와는 달리 셔터 아일랜드는 다른 형태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것은 바로 테디의 트라우마와 현실 사이의 방황이다.


정신병자의 방화사건으로 세상을 뜬 아내에 대한 악몽과 2차 대전 중 겪었던 참상으로 고생하는 연방보안관 테디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동시에 핵심 키워드이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테디의 악몽과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 셔터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 속에 숨겨져 있을 모종의 진실 파헤치기를 키워드로 삼아 진행된다. 악몽, 과거, 현재로 오버래핑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아내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안은 체 사건에 뛰어든 주인공은 셔터 아일랜드 직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과 인셉션의 주인공 코브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엘로스의 경우는 셔터 아일랜드의 시놉시스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인셉션의 예고편을 접했을 때 둘이 비슷한 테마를 공유하고 있는 영화로 인식했었다.

인셉션과의 공유점을 발견했다면 셔터 아일랜드의 주제 역시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다. 결국 이 작품은 미스테리 스릴러라기 보다는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싸이코 드라마라는 주장르 위에 토핑처럼 스릴러를 얹은 장르인 것이다. 다만 그로 인해 첫 맛이 스릴러로 느꼈던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영화가 되었다. 게다가 악몽 속에 방황하는 테디의 싸이코 드라마인지라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는 무척 짓눌려 있고, 호러나 스릴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귀를 거슬리는 배경 음악 역시 이러한 불쾌감을 극대화시키는 미장셴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반전의 클라이막스와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사실 반전으로 향하는 여정이 예민한 관객들에게는 금방 보일 정도라는 점에서 그 구성에 실망을 보이는 이들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생각보다 충격이 덜한 반전과 함께 영화의 의도를 일순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 영화는 장르 영화라기보다는 드라마를 강조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물론 그로 인해 작품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미약해졌다. 다만 세간의 평가와 달리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스콜세지 최고의 필모그라피 중 하나는 아니더라도 무척 인상적인 A급 필모그라피 중 하나라 감히 말하고 싶다.

덧붙임) 한국판 포스터와 오리지널 포스터를 비교해보면 역시 오리지널 포스터 쪽이 원작의 느낌을 더 잘 살리고 있다. 잔뜩 인상을 찌뿌린 디카프리오의 표정이 그에게 어떤 심각한 사정이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오리지널 포스터와 달리 한국판 포스터의 디카프리오는 너무 평온한 표정이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PARAMOUNT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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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스탭>

◈ 감독: 잭 스나이더
◈ 원작: 케쓰린 래스키
◈ 제작: 워너 브라더스


<시놉시스> 

가면 올빼미(타이토)인 소렌은 호기심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올빼미이다. 그의 아버지 녹투스가 들려준 가훌의 가디언의 전설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세상 어딘가에 있는 위대한 가훌의 나무에 사는 가디언들은 메탈비크가 이끄는 순수혈통의 올빼미들에 의해 올빼미 왕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 그들을 물리치고 올빼미 왕국을 구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올빼미 왕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예언과 함께 전설적인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가디언의 전설에 매혹당한 소렌과 여동생 에글렌틴과 달리, 맏형인 클러드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렌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어느 날 부모들이 집을 비운 사이, 나는 연습을 하던 소렌과 클러드는 익숙치 않은 날개짓으로 인해 그만 땅으로 떨어지게 된다. 높은 나무 위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들짐승들에게 습격당할 위기에 처한 그들. 필사적으로 날개짓을 하던 소렌과 클러드에게 사나운 테즈메이니아데빌이 갑자기 덥쳐든다. 절체 절명의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온 두 마리의 칡부엉이에 의해 납치된 소렌과 클러드. 그들은 소렌과 클러드를 위협하며 어디론가 그들을 끌고 간다. 하늘에서 만난 그들의 무리들은 모두 어린 올빼미와 부엉이를 납치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고, 무리 속에서 만난 엘프 올빼미 길피와 함께 소렌과 클러드는 먼 옛날 가디언들에게 패한 메탈 비크의 왕국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성인용 액션물의 귀재와 가족용 어드벤쳐 애니메이션의 조우

쓰린 래스키의 장편 판타지 소설 '가훌의 가디언'을 모티브로 한 가디언의 전설은 인간이 주인공이 아닌, 올빼미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전쟁과 모험을 판타지적인 터치로 그려낸 대하 판타지 영화입니다. 총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연재분량. 이는 원작소설의 방대한 스케일과 거대한 서사를 짐작케 하는 대목인데요. 이로 인해 이번 가디언의 전설은 전체 15권 중 1권부터 3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가져와 축약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향후 영화의 흥행여부에 따라 뒤의 이야기를 속편으로 제작하겠다는 암묵적인 기획도 있었을 듯 싶군요.

그동안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해리 포터'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판타지 영화는 트렌드인냥 단편이 아닌 2~3부작으로 많은 작품들이 기획되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1부가 막을 내린 시점에서 이미 실패작으로 판가름이 났고, 이후 후속 시리즈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되지요. 판타지 영화 중, 특히 PG급 판타지 영화로서 해리 포터 시리즈 이후 후속 시리즈가 등장한 작품은 '나니아 연대기'시리즈가 유일하며, PG-13 등급 판타지는 반지의 제왕 이후 제대로 된 작품을 꼽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후속작들의 연이은 실패 속에 어느덧 판타지 영화는 2000년대 초반의 화려한 시간을 뒤로 한 체 침체기에 접어들게 되지요.

자, 이런 즈음에 R 등급 성인 액션물에서 주목할만한 모습을 보여준 한 인물이 PG급 판타지 영화인 이 가디언의 전설의 감독으로 낙점되니 그가 바로 '300(2006)'과 '왓치맨(2009)'를 통해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쉬하면서도 고어적이고 만화영화적인 영상 씨퀀스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비주얼리스트 잭 스나이더 입니다. 사실, 잭 스나이더가 판타지 영화의 감독으로 내정된 시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기대를 표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은 아직 검증될 필요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말랑말랑한 오락영화보다는 색깔있는 성인용 오락물을 만든다는 점에서 보다 더 세련된 판타지 영화를 기대해봄직했었기 때문인데요. (물론, 이 초반의 판단미스는 가디언의 전설이 PG 등급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 원인도 되었습니다만)

과연 R등급 성인액션물의 비주얼리스트가 만든 대중적 판타지 영화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을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WARNER BROS



압도적인 디테일로 다가오는 CG와 특유의 영상미학

선 언급하고 넘어가야할 점은, 이 작품이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입니다.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CG와 압도적인 디테일로 인해 이 작품은 접하는 순간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요. 세심하게 표현된 올빼미들의 묘사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스피디한 비행장면, 그리고 실감넘치는 배경묘사는 실제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못하게 만드는 사실감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올빼미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아, 만화영화구나 라고 느낄 수 있다라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요. 올빼미의 섬세한 묘사는 현재의 CG 수준이 어디까지 도달해 있는지를 우리에게 인상적으로 각인시켜주고 있으며, 바람에 흩날리는 털의 세심한 변화라든지 새들끼리의 전투장면에서 사방으로 흩날리는 깃털의 묘사 등 자세한 곳에까지 현실적인 묘사를 놓치지 않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적절한 장면에서 슬로우 비디오로 극적인 연출효과를 부여하는 잭 스나이더 특유의 CF적 연출 스타일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인 묘사, CF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듯한 세련된 연출 등, 어떤 면에서 가디언의 전설은 PG 등급의 영화에는 그닥 많이 사용되지 않는 다양한 영상 기법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습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전작인 300과 왓치맨에서 보여준 영상기법이 거의 그대로 사용되는 셈인데요. 다만 다른 점이라면, 전작에서 보여준 고어적이고 선정정인 표현이 거세된 것이 유일하다 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잭 스나이더식 비주얼이 그 표현수위만 낮춘 셈이죠.

DVD로 감상을 한터라 3D로 제작된 가디언의 전설의 영상미를 직접 느낀대로 표현할 수 없음은 유감입니다. 다만, DVD의 SD급 화질로도 감탄할만한 영상미를 보여준 바, 블루레이나 3D 영상으로는 분명 그 이상의 시각적 유희를 느낄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몇몇 지인분들에 의하면 스피디한 비행씬이 많이 등장하는데다가 디테일이 너무 세밀하여 3D 영화로 감상했을 때 오히려 시각적 피로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디언의 전설은 '아바타(2009)' 이후 가장 완성도 높은 3D 영상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다만 실사와 CG가 혼합된 아바타와 달리, 가디언의 전설은 오로지 CG로만 제작된 애니메이션이고,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세밀한 묘사로 인해 그 시각적인 부담감은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큰 것 역시 사실이 아닐까 싶군요.

ⓒ WARNER BROS



뻔한 서사구조, 스토리와 비주얼의 부조화

점에 가까운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영화사에 한획을 긋는 데는 실패한 작품입니다. 사실 북미 흥행은 제작비의 절반수준을 약간 넘기면서 사실상 참패를 하게 되었는데요. (물론, 글로벌 수익으로는 1억4천만불을 벌어들이면서 어느 정도 명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영상미를 가진 이 감탄스러운 애니메이션이 기대 이하의 호응을 얻은 것은 영상미에 미치지 못하는 이야기의 완성도가 그 원인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그동안의 필모그라피에서 보여준 스토리텔러로서의 모습은 물음표라 하겠습니다. 전작인 300이나 왓치맨이 모두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거대한 서사를 가진 가훌의 가디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스토리 구성의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거든요. 게다가 그 스케일도 작았구요.

반면, 가훌의 가디언은 비록 첫 3권까지의 내용을 가져와 이야기로 구성한다고 해도 꽤 방대한 양에 해당합니다. 적어도 2시간에 가까운 분량으로 작업이 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를 이 장대한 이야기는 영화로 옮겨지면서 단 96분으로 이야기가 축소되게 됩니다. 판타지 영화의 성공작으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평균 180분 정도의 러닝타임(확장판에서는 200분을 넘어가는 쿨럭;)을, 해리 포터 시리즈가 평균 140~150분의 러닝타임을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무척 짧은 상영시간이라 할 수 있지요. 심지어 나니아 연대기 역시 2부가 110여분이고 1부와 3부는 140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원작인 가훌의 가디언의 이야기가 결코 이들 판타지 흥행 3대 시리즈의 원작과 비교하여 떨어지지 않는 스케일과 서사를 갖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는 명백히 스토리 구성 상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스토리텔러로서 아직 검증이 필요한 신예 감독에게 이처럼 거대한 서사를 갖고 있는 작품을 다른 판타지 영화들보다 적은 시간 안에 영화로 재구성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작업이었을 겁니다. (물론, 각본 작업은 스나이더 본인이 아닌 존 오로프와 존 콜리 등이 맡고 있습니다만) 이로 인해 원작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축소되고 각색되어 특색없는 뻔한 이야기로 다시 재탄생하게 됩니다. 러닝타임의 제약을 갖게 되면서 원작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올빼미의 생태구조에 대한 뛰어나고 사실적인 묘사 역시 거의 작품에서 표현되고 있지 않지요. 결국, 영화는 그저 압도적인 영상미를 감상하는 것 외에 뚜렷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가 힘든 작품이 되고 맙니다. '놀라우리만치 먹음직스러운 데코레이션에 감명 받아 한 스푼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맛은 있으되 눈으로 보고 기대했던 그 만큼은 아니라는 실망감이 드는 요리를 먹고 있는 심정'이 어쩌면 가디언의 전설을 감상하고 난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아닐까 싶군요.  

ⓒ WARNER BROS



스토리텔러로서의 한계를 보여준 잭 스나이더

PG 등급의 영화로서도 평이한 권선징악의 스토리 외에도 평이한 캐릭터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을 반감시킵니다. 짧은 러닝타임으로 인해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부분도 있는데다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올빼미들을 묘사하면서 PG 등급의 영화로서는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고 하겠군요. 즉, 너무 사실적인 올빼미라 귀엽다거나 이쁘다거나 이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습은 R등급에 가까운 비주얼인데, 내용은 PG등급의 이야기이니 사실적인 비주얼을 기대하고 간 성인관객들은 실망하고, 가족 판타지 오락영화로 생각하고 간 가족관객들은 기막히긴 하지만, 너무 사실적이어서 징그러운 비주얼에 쉬이 감정이입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R등급 비주얼리스트로서 잭 스나이더의 첫번째 도전이 실패로 끝났음을 보여주는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가디언의 전설은 로버트 져메키스 감독의 '베오울프(2007)'과 비교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흥행 감독 로버트 져메키스는 자신이 세운 이미지무버스 디지털 회사의 퍼포먼스 캡쳐 기술을 활용하여 실사에 가까운 CG와 성인등급의 표현묘사를 앞세운 R 등급 판타지 애니메이션 베오울프를 선보였으나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게 되지요. 만약, 베오울프의 이야기를 잭 스나이더가 연출하고, 가디언의 전설을 로버트 져메키스가 맡았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물론, 그저 추측과 상상에 불과할 뿐입니다만, 가디언의 전설은 확실히 스나이더와는 맞지 않는 궁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디언의 전설은 올빼미판 반지의 전쟁이라고 불릴만큼 판타지로서는 높은 수준의 비주얼로 인해 어느 정도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판타지 영화의 팬이라면 가디언의 전설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을 듯 싶군요. 다만, 여건이 되신다면 (블로그 이웃이신 영화 파워블로거 페니웨이님 말마따나) 블루레이급의 화질로 감상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분명 기대 이상의 감동을 얻으실 겁니다. 영화 결말 부분은 원작의 이야기 구조로 인해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모양새로 결말을 맺게 됩니다만, 속편을 볼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가 아닐까 싶군요.

ⓒ WARNER BROS


☞ 개인적으로 PG-13 등급에, 110분 정도만 러닝타임을 줬어도 이 작품은 꽤 괜찮은 애니메이션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쉐인 에커의 '나인(2009)'과 함께 그 스토리가 너무나 아쉬운 작품이네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RNER BROS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 달의 TTB 리뷰 2011년 3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가디언의 전설 - 6점
잭 스나이더 감독, 짐 스터게스 외 목소리/워너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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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필요한 화성인과 말하는 자동차 vs 뚱보 팬더와 느끼한 고양이

ⓒ DREAMWORKS


'이스토리3(2010)'(글로벌 수익: 약 10억6천만달러)과 '라푼젤(2010)'(글로벅 수익: 약 5억5천만달러)을 통해 작년 한해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2010)'(글로벌 수익: 약 4억9천만달러)와 '메가마인드(2010)'(글로벅 수익: 약 3억 2천만달러)에게 판정승을 거둔 디즈니/픽사. 조금씩 그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북미 애니메이션은 디즈니/픽사와 드림웍스의 양강구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도 그들의 한판승부는 계속 이어질 듯 하네요.

일단, 작년 이들 두 제작사의 간판 애니메이션의 북미 개봉일을 살펴보면,

드래곤 길들이기: 2010년 3월 26일
토이스토리: 2010년 6월 12일
메가마인드: 2010년 10월 28일
탱글드: 2010년 11월 24일

였는데요. 드림웍스 측에서 먼저 포문을 열고 디즈니/픽사가 이에 응사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 2011년 3월 11일 (개봉예정)
쿵푸팬더 2: 2011년 5월 26일 (개봉예정)
카 2: 2011년 6월 24일 (개봉예정)
장화신은 고양이: 2011년 11월 9일 (개봉예정)

로 디즈니가 선공을 하고 드림웍스가 역습을 하는 형태의 전개가 벌어질 듯 합니다.

ⓒ WALT DISNEY Pictures

먼저 디즈니가 선보이는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2011)'(원제: Mars Needs Moms)는 이제까지 선보인 디즈니의 CG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실사에 가까운 묘사가 수반된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입니다. 이는 제작에 로버트 져메키스와 그의 스튜디오 이미지무버스 디지털(ImageMovers Digital)이 참여했기 때문인데요. 져메키스와 이미지무버스 디지털은 디즈니 자회사로, '폴라 익스프레스(2004)' 등을 통해 본 작품과 비슷한 비주얼을 이미 선보인 바가 있지요. 이 기술은 퍼포먼스 캡쳐라 불리고 있는데요, 이번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는 아쉽게도 이미지무버스 디지털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특하고 사실적인 비주얼과 디즈니다운 어드벤쳐가 버무려진 이 작품이 과연 어린이들에게 얼마만큼 어필할지 궁금하군요.

☞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 (보러가기)

이에 맞서 드림웍스는 여름철 성수기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슈렉을 잇는 자사의 간판 캐릭터 포를 앞세운 '쿵푸 팬더 2(2011)'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선택받은 전사가 되기위해 요절복통 쿵푸 수련과정을 보여주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쿵푸 고수들의 습격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무적의 5인방과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꾸려진다 하는데요. 이미 쿵푸의 절대고수가 된만큼 전작보다는 훨씬 멀쩡해진(?) 포가 얼마만큼의 웃음을 줄지가 관건이라 하겠습니다. 일단 스케일과 액션 면에서는 전작을 능가하리라는 예상을 쉽게 하게 되는군요. 네임 밸류면에서 일단 올 상반기 대결에서는 드림웍스의 우세가 점쳐집니다만, 대부분의 속편이 전편을 능가하지 못해온 관례를 상기할 때, 쿵푸 팬더가 마냥 우세하리라고는 점칠 수 없다 하겠습니다. 더군다나 두 작품은 개봉시기에 2달 이상의 갭이 있기에 직접적인 대결도 아니구요. 아, 쿵푸 팬더 2는 한국계인 제니퍼 여 감독이 연출을 맡아 한국인으로서는 기대가 크기도 합니다. 

ⓒ WALT DISNEY Pictures

☞ 쿵푸팬더 2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 (보러가기)

오히려 쿵푸 팬더 2는 한달 뒤 블록버스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6월말에 디즈니가 개봉하는 '카(2006)'의 속편 '카 2(2011)'와 맞대결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작인 카가 성공적인 흥행을 거두긴 했지만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던 관계로 그 속편 역시 임팩트는 떨어지는 느낌이 있군요. 다만,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을 이끄는 명장 존 라세터가 전작 카 이후 5년만에 감독으로 복귀하는 작품인지라 그 무게감은 여타 애니메이션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다 하겠습니다. 라세터는 이 5년 동안 감독보다는 제작총지휘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었죠. 이번에도 감독과 제작 총지휘를 동시에 맡아 작품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듯 싶군요. 대신 브레드 루이스가 조감독으로 라세터의 뒤를 지원하게 됩니다.

☞ 카 2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 (보러가기)

11월에는 다시 드림웍스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놀랍게도 '슈렉' 시리즈에서 주인공 슈렉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장화신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장화신은 고양이(2011)'(원제: Puss in Boots)가 드림웍스의 히든카드가 된다고 하는군요. 느끼함과 깜찍함을 오가는 표정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번 신작은 슈렉의 스핀오프로서 그 기대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기름기 가득한 목소리에 '데스페라도(1995)',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2003)'를 통해 반데라스와 호흡을 맞춰온 히스패닉계의 섹시 여우 셀마 헤이엑도 캐스팅되었다고 하는군요. 감독인 크리스밀러는 '슈렉 3(2007)'와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2009)'을 감독한 인물로, 장화신은 고양이가 처음 등장하는 '슈렉 2(2004)'에서 각본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 장화신은 고양이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 (보러가기)

전반적으로 디즈니/픽사의 이번 신작들은 로버트 져메키스나 존 라세터와 같은 거물들이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는 반면, 드림웍스의 작품들은 신예 연출가를 기용하는 대신, 메가히트를 친 전작의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작품으로 대결을 펼치는 형세로 보입니다. 과연 올해 두 거물 제작사의 대결에서는 누가 판정승을 거두게 될까요. 화성인은 엄마가 필요해의 개봉이 얼마 안남은 지금, 디즈니/픽사와 드림웍스의 1라운드는 이제 곧 시작됩니다.

ⓒ DREAMWORKS


☞ 제가 의도한 바대로, 이번 포스트는 다소 드림웍스의 작품들을 강조하는 형태로 흘러갔습니다. 사심 가득한 포스트, 부디 이해 바라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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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블랙 코스튬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캐릭터들


랙은 심플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칠흑과 같이 한없는 어두움과 세련되고 고상한 고귀함을 동시에 표출하지요. 검은 가죽의상처럼 젊고 파격적이며, 뇌쇄적이고 퇴폐한 느낌을 풍기다가도 검은색 슈트처럼 중후하고 귀족적인 풍취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다른 색들도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연출하긴 합니다만, 검은색이 보여주는 양면성은 다른 색보다 확연하게 양갈래로 나누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악하고 어두운 절대악을 상징하기도 합니다만, 절대적인 강함으로 정의의 편에 서는 흑기사와 같은 다크 히어로로서의 컬러로도 잘 어울립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색이라 할까요.

이리하여 검은색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코믹스, 만화영화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들의 퍼스널 컬러로서 사랑받아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엘로스 역시 무척 좋아하는 컬러이기도 한데요. 이번 시간에는 이 블랙이라는 색상을 멋지게 소화해내었던 가상의 인물들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고자 합니다. 소설, 영화, 만화영화, 드라마, 코믹스, 게임에 걸쳐 기억나는 캐릭터들 중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꼽아보았으며, 소개 순서는 캐릭터의 창작연도 순이 되겠습니다.


Character 1. 쾌걸 조로 (1919~2005) from 쾌걸 조로

1919년 존스톤 멕클레이의 소설에 등장한 조로는 검은 코스튬의 캐릭터들 중에서는 첫 번째로 엘로스에게 검은색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 인물로 기억됩니다. 스페인어로 '여우'라는 뜻의 조로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캘리포니아의 귀족 돈 디에고 델라베가(혹은 돈 디에고 베가)가 부패한 관리들로부터 평민들을 구하는 의적으로 분하여 활약한다는 이야기를 다룬 활극인데요. 평상시에는 겁쟁이에 어리숙한 귀족 도련님으로 행세하는 디에고가, 위급한 상황에서는 검은 망토와 검은 복면, 그리고 검은 긴 챙모자를 눌러쓰고 현란한 펜싱기술로 관리들과 병사들을 골탕 먹이는 멋진 의적으로 분하는 모습은 후일 미국의 슈퍼 히어로와도 일치하는 점이 있지요.

능숙한 마상술, 멋진 호를 그리며 상대를 제압하는 채찍, 그리고 날카롭고 재빠른 검술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조로는 특히 순식간에 상대에게 Z자의 검상을 남기는 것으로도 인상적인데요. 수십편의 영화와 TV 드라마, 여기에 애니메이션으로도 등장하는 등, DC나 마블의 히어로들보다 더 먼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미국식 히어로라 하겠습니다. 민중의 편에서 부패한 권력자들을 응징하는 모습에서는 유럽의 의적 로빈 훗이나 한국의 고전 의적 홍길동과도 비교된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의적 중에서는 가장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렷을적 계몽사(?)의 세계명작전집 등을 통해 처음 조로를 만난 이래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조로 중 한명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미남 배우 알랭 드롱이 주연한 1975년작 '조로(1975)'가 아닌가 싶습니다. 1960~70년대의 대표적인 미남배우인 알랭 드롱이 연기한 조로는 후일 국내 공중파 방송에서도 몇 번씩이나 명절특선 영화나 토요 명화 등으로 방영되었던 작품으로,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스파게티 웨스턴(마카로니 웨스턴)의 조류를 타고 만들어진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요. 특히, 라스트에서 선보인 조로의 촛불 자르기 신공(다섯개의 초가 일렬로 꽂혀진 촛대를 조로 십자로 베어버리자 양쪽의 네 개의 초는 수평으로 베어지고 가운데 초만 가운데로 갈라지는 황당무게한 조로의 기술)은 어린 나이에는 몹시도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금 보면 어이가 없긴 합니다만)

98년에는 당대의 인기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을 맡은 '마스크 오브 조로(1998)'로 다시 한 번 조로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조로보다는 케서린 제타 존스의 눈부신 미모에 더 마음이 가버기도 했었죠. 반데라스의 조로는 좀 더 코믹하고 서민적인(?) 캐릭터로 묘사됩니다만, 현란한 몸놀림과 검은 망토는 여전히 멋스럽다 하겠습니다.


Character 2. 배트맨 (1939~계속) from 배트맨

ⓒ DC Comics

퍼맨과 함께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를 대표하는 히어로인 배트맨은,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리 초인적인 힘을 갖지 않은 인간적인 히어로입니다. DC의 간판 슈퍼맨과 함께 가장 많이 실사영화화된 인물이기도 하지요. 북미에서 제작된 영화로만 치자면 10편으로 9편의 슈퍼맨보다 많습니다. 현재 제작되고 있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슈퍼맨 신작이 있으나, 배트맨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새로운 속편이 등장할 예정에 있지요. 여기에 10편의 비디오 영화, 여섯번의 TV 시리즈, 이십여편의 애니메이션까지 실로 미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크나이트'라는 별명처럼 배트맨은 검은색에 잘 어울리는 히어로입니다. 어렷을 적 불우한 기억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갖고 있는 배트맨은 선과 혼란이 공존하는 캐릭터입니다. 백만장자라는 밝음 속에 숨겨진 외롭고 고독한 삶, 히어로라는 영광 뒤에 숨겨진 악당들을 향한 병적인 증오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블랙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배트맨의 양면적인 캐릭터는 1966년 TV 시리즈의 등장으로 인해 그 매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로빈과 짝을 맞춰 우스꽝스런 코스튬을 입고 경박한 톤으로 대사를 읊는 TV 시리즈의 배트맨은 분명 배트맨의 퍼스널 컬러인 블랙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 TV 시리즈에서 배트맨의 코스튬은 전체적으로 밝은 회색계열의 색상에 검은색 마스크와 장갑, 부츠로 마무리되어 검은색의 묘미를 살리지 못합니다. 물론, 이는 원작 코믹스에 바탕을 둔 디자인이긴 했으나, TV 시리즈로 옮겨지면서 순화된 캐릭터의 성격에 덩달아 밝은 회색의 코스튬까지 더해지면서 블랙이라는 컬러가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았지요.

하지만, 이런 배트맨은 89년 팀 버튼의 '배트맨(1989)'으로 인해 새롭게 조명받게 됩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기괴한 고담시를 배경으로 어둠 속에서 악당들을 응징하는 배트맨은 원작과는 다소 성격의 차이는 있어도 어둠과 잘 어울리는 안티히어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선사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팀 버튼식 블랙의 묘미가 빛나는 순간이었죠. '가위손(1990)'이나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 '스위니토드(2007)' 등 팀 버튼의 영화에서 블랙은 어두움과 그로테스크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이는 후속편인 '배트맨 리턴즈(1992)'에서 더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되지요. 마치 마녀의 시커먼 망토와 같은 괴기스러운 검은색은 원작과는 또다른 맛을 선사해 줍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새롭게 그려진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나이트(2008)'에서 배트맨은 더더욱 강렬한 블랙의 느낌을 선사합니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놀란의 블랙은 다크나이트라는 부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배트맨을 창조해내게 되는 것이죠. 비록 강렬한 악역 조커의 등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밀리긴 했지만, 다크나이트는 어둠과 빛 사이에서 방황하는 어두운 히어로의 면모를 실로 완벽에 가깝게 스크린에 묘사합니다. 2012년 다시 한 번 우리곁으로 돌아올 다크나이트의 발걸음은 그래서 더더욱 기대됩니다.


Character 3. 일지매 (1975~2009) from 일지매

국의 대표적인 토종 히어로(?)라 부를 수 있는 일지매는 홍길동과는 달리 정확한 기원이 전해지지 않은체 구전되어온 인물입니다. 조선 순조 당시 무인인 조수삼의 '추재집'에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기에 실존인물의 가능성도 있는데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검은 옷과 검은 두건을 한 일지매는 1975년 故 고우영 화백이 일간 스포츠에 연재했던 만화 '일지매(1975)'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과 이야기를 갖추게 됩니다. 고우영 화백의 작품을 통해 탄력을 받은 일지매는 70년대 말엽 최초로 실사영화화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현재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고호 감독(화가 고흐 아니구요.)의 '날으는 소년 일지매(197x)'가 되겠습니다.
 
날으는 소년 일지매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동용으로 만들어진 한국판 무술영화입니다. 당시에는 무명의 성룡이 국내에서 무술영화에 출연하는 등, 홍콩 무술영화에 영향을 받아 한국산 무술영화들도 제법 제작되던 시대였는데요. 이러한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만들어진 일지매는 비록 완성도에서는 아동용이라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한국 고유의 세계관과 고유의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여러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일지매는 한 때 대한민국 최고의 괴작 연출가 중 한명이라 할 수 있는 남기남 감독(대표작 '영구와 땡칠이(1989)')에 의해 '슈퍼맨 일지매(1990)'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적이 있구요.(주인공이 무려 최수종) MBC에서는 최정주의 소설 일지매를 원작으로 한 8부작 드라마 '일지매(1993)'가 장동건, 염정아 주연으로 방영된 사례도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일지매는 계속적으로 영상화되면서 그 명맥을 이어온 셈이죠. 그러다가 2008년 SBS에서 이용석 연출/이준기 주연의 '일지매(2008)'를 방영하면서 일지매는 다시 화제의 중심에 올라서게 됩니다. 특히, SBS의 일지매는 민중의 편에서서 탐욕스러운 권력자와 대적하는 일지매의 활약을 상당히 통쾌하게 표현하면서 이슈가 되기도 하였죠. 당시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일지매는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게 됩니다. 주조연의 감칠 맛나는 연기도 일품이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이듬해에 MBC에서 제작된 황인뢰, 김수영 연출/정일우 주연의 '돌아온 일지매(2009)'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현대 시대에 일지매를 새롭게 조명했던 고우영 화백의 원작을 기본으로 한 작품으로, 원점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동시에 책녀를 통한 독특한 나레이션 기법과 흥미로운 연출기법 등으로 다소 거친 연출을 보여주었던 SBS의 일지매에 비해 보다 세련된 영상미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은데요. 다만, 시기를 잘 탔고, 캐릭터의 묘미가 잘 살아났던 SBS의 일지매에 비해서는 대중적 호응이 미치지 못하기도 하였죠.

인기를 끈 일지매는 2009년  SBS와 초록뱀 미디어 등의 주도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기세라면 한번쯤 메이저 실사영화로 한번쯤 제작해도 어떨까 하는 기대도 드는군요.


Character 4. 다쓰 베이더 (1977~1983) from 스타워즈

ⓒ LUCASFILM Ltd.

쓰 베이더(Darth Vader)는 검은색이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인 악, 그리고 어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캐릭터 중 한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흡장치를 통해 내뱉는 귀에 거슬리는 거친 숨소리, 왠만한 장정들을 압도하는 위압적인 체구, 얼굴을 모두 가리는 그로테스크한 검은 헬멧과 검은 갑옷으로 몸을 감싼 그는 제다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다이 중 한 명이며, 뛰어난 파일럿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름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타투인 혹성에서 노예로 살던 도중 그 가능성을 알아본 제다이 마스터 콰이곤에 의해 제다이로 키워지게 되지요.

포스에 질서를 가져올 인물로, 동시에 위험한 미래를 가진 인물로 평가받던 그는 콰이곤의 사후에는 콰이곤의 제자였던 오비완에 의해 제다이로 길러집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던 아나킨은 세속의 가치관을 모두 부질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고고한 제다이의 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했고, 파드메를 향한 사랑과 강렬한 소유욕, 그리고 어머니를 잃고 나서의 상실감과 증오를 이겨내지 못하고 시쓰(Sith)의 군주인 팰퍼틴의 꾀임에 넘어가 어둠의 제다이인 시쓰의 군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오비완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빈사의 상태에 빠졌던 그는 팰퍼틴에 의해 생명유지 장치를 부착한 검은 갑옷을 입은 다쓰 베이더로 거듭납니다. 이후 그는 공화국의 잔족세력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제국의 병사에게까지 공포스러운 존재로 태어나게 되지요. 누구든지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표정을 알 수 없는 검은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그가 다가온다면 긴장에 떨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그는 실수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부하들을 포스의 힘으로 질식사 시켜버리기도 합니다. 그가 포스로 상대방의 숨통을 죄일 때 손가락으로 마치 목줄을 잡는 듯한 시늉(포스 그립이라는 기술로도 불립니다)을 취하는데, 이 포즈는 그야말로 다쓰 베이더의 어둡고 강렬한 힘을 대표하는 포즈이기도 하지요.

특히, 에피소드 5편인 '제국의 역습(1980)'편에서 루크 스카이워커와의 결투 끝에 그를 궁지에 몬 그가 루크에게 자신이 바로 아버지임을 밝히는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자주 패러디되기도 하였죠.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본연의 선함을 되찾고 팰퍼틴 황제를 쓰러뜨리며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그는 이제까지의 영화사상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검은 코스튬의 악인 중 한명일 것입니다.


Character 5. 메텔 (1978~2004) from 은하철도 999

ⓒ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아하면서도 우아한 검은색의 긴 코트와 검은 색 샤프카(러시아식 털모자)를 쓴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누가 뭐래도 아니메 역사상 가장 눈부신 여인 중 하나일 겁니다. 70년대 TV에서 그녀를 접한 남자아이들에게 있어서 그녀의 존재는 한마디로 여신과 같았지요. 이후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아니메에 등장하여 소년들의 이상형이 되었지만, 그녀만큼 눈부시고 그녀만큼 포근하며 동시에 그녀만큼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여인은 찾아보기 힘들 듯 싶습니다.

주인공 테츠로(철이)의 엄마를 기본으로 하여 복제된 메텔(그러나, 후일 발표된 '메텔 레전드(2000)' 등을 통해서 이러한 설정을 작가인 마츠모토 레이지 스스로 뒤엎어버립니다. 어쨋든간에)은 그 출생상의 특징으로 인해 주인공인 테츠로 뿐만 아니라 은하철도 999를 시청하는 모든 소년들에게 있어서 미래의 연인인 동시에 동경하는 누나이자 이상적인 엄마의 느낌을 주었다 하겠습니다. 엘로스도 이 메텔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어렷을 적 잠시 연상의 여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군요.

메텔이 입고 있는 검은 옷은 그녀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준다며 라메텔 혹성으로 데려가 기계인간이 되게 한 수많은 아이들을 위한 상복의 의미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검은색 코트에 가려진 그녀의 진짜 정체는 그녀의 미모에 홀려 그녀를 원했더 수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할 정도로 무서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추악한 진실을 검은색 코트 속에 감춘 체 길고 긴 시간의 여행자를 자처하는 그녀는 깊은 슬픔을 간직한 체 결코 드러내지 않는 고결한 여인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그녀의 검은색은 그래서 고귀하고 슬픈, 그리고 우울한 느낌을 줍니다.

천년여왕이었던 프로메슘(유키노 야요이)의 딸이며, 동시에 우주를 방랑하는 해적 퀸 에메랄다스의 쌍동이 여동생인 그녀는 극장판 '은하철도 999(1979)'에서 테츠로에게 '소년시절의 마음에만 남아있는 청춘의 환영'이라는 잊을 수 없는 명대사를 남깁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를 동경하면서 스크린 앞에 모여있던 수많은 소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듯 합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눈부신 그녀는 이제는 그저 어쩌다 기억나는 인상적인 만화영화의 히로인 정도로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소년시절의 연인, 청춘의 환상 메텔 (보러가기)


Character 6. 뱀파이어 헌터 D (1983~계속) from 뱀파이어 헌터 D

Illustrated by 天野喜孝 ⓒ 菊地秀行 · 朝日新聞出版

파이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뱀파이어. 인간과 괴물, 선과 악의 경계에 서게 되는 기구한 운명의 이 창백한 미남자는 인간들의 증오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인간들을 해하는 뱀파이어들을 사냥하는 끝없는 고뇌의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공포소설의 대가 키쿠치 히데유키가 창안해 낸 소설 속의 혼혈 뱀파이어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깊게 각인시키게 된 것은 소설의 삽화 일러스트를 맡았던 일본의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공이 크다고 하겠는데요. 그의 손끝에서 펼쳐진 몽환적이면서도 고귀함과 세련됨, 그리고 괴기함을 겸비한 헌터 D의 일러스트는 그때까지 타츠노코 프로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의 그림체와는 전혀 다른, 만화의 범주를 탈피한 시각적 센세이션이었다 하겠습니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애니메이터(아마노는 10대의 나이에 타츠노코에 입사해, 창립자 삼형제 중 막내인 쿠리 잇페이의 제자로 만화를 배움)의 손 끝에서 미대생들을 능가하는 환상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그림이 나오다니! 당시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를 접한 엘로스는 그 특이한 매력에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뱀파이어를 상징하는 어둡디 어두운 검은색은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를 통해 귀족적인 고귀함과 뱀파이어의 어두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검은색으로 다시 채색되었고, 그런 D의 모습은 비극적인 출생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검은 옷의 미남자가 실상은 뱀파이어의 피가 섞인 어둡고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D는 키쿠치 히데유키의 소설, 그리고 아마노의 삽화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뒤, 아시도 토요오의 85년작 OVA를 통해 아니메 팬들에게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비록, 여러가지 제작일정상의 난항으로 인해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떤 아마노가 본 작품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기존의 일러스트와는 분위기가 너무도 다른 D로 그려져 개인적으로는 몹시 아쉬운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요. 후일 키쿠치 히데유키의 단짝 친구이자 하드고어 아니메의 대가인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북미시장을 목표로 만든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2000)'에서는 카와지리스러운 캐릭터 스타일을 유지한 체 아마노가 그린 D를 적절히 재해석하면서 멋진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OVA의 D는 멋진 캐릭터이긴 했으나 디테일이 떨어지는 관계로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하프 뱀파이어라는 느낌이 약해진 반면, 새로운 극장판의 D는 원작의 삽화에서 보여준 귀족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그려내면서도, 원작의 스타일이 아닌 카와지리 작품다운 스타일로 재해석함으로써 보다 더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되는군요. 다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해외시장을 목표로 하면서 카와지리 특유의 작품색이 옅어져 결과적으로는 싱거운 작품이 되었다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더더욱 멋진 D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 과묵한 성격 탓인지 아니메에서 그를 만나기는 좀처럼 힘들군요.

☞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2000), 돌아온 전설의 뱀파이어 헌터 (보러가기)


Character 7. 드리즈트 도우덴 (1988~계속) from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

Illustrated by Todd Lockwood ⓒ WIZARDS OF THE COAST

가튼 렐름은 TSR사에서 출시한 TRPG 게임인 AD&D 세계관 중 하나입니다. 게임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게임 디자이너들 뿐만 아니라 게이머들 스스로가 이 매력적인 세계관에 스스로 이야기를 추가하거나 영웅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데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 포가튼 렐름은 거대하고 구체적이며 온갖 영웅들과 악당들, 신과 악마, 그리고 모험과 음모, 낭만이 존재하는 신비롭고 방대한 세상으로 자리 잡아가게 됩니다. 수많은 영웅들과 악당들이 모험 속에 스스로의 무용담과 전설을 쌓아나가고 있는 이 곳에서도 드리즈트 두어덴은 특히나 눈에 띄는 명성과 실력을 갖고 있는 다크 엘프 레인져입니다.

흑요석과 같은 검은 피부, 검은 피부와 멋진 대조를 이루는 눈부신 은발머리, 이 멋진 무채색의 대비 속에서 또렷하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보라색 안광... 드리즈트의 이 강렬한 외모는 포가튼 렐름의 영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을 정도로 인상적인데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 세계에서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종족 중의 하나인 다크 엘프 드로우라는 사실입니다. 사악한 종족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운명의 굴레를 벗고 어두운 지하세계(포가튼 렐름에서 드로우들은 언더다크라는 지하세계가 삶의 터전이죠.)를 벗어나 지상으로 향한 이 용감한 다크 엘프는 지상인들의 편견과 오해, 멸시와 증오 속에서도 그의 영원한 파트너인 검은 표범 구엔하이버와 함께 친구들과 안식처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신분과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고 운명과 싸우는 어둠의 히어로는 항상 사람들에게 강렬한 매력을 선사하게 마련이죠.

두 자루의 시미터를 현란하고 멋지게 사용하는 쌍검술의 달인이자 노련한 레인져인 그는 포가튼 렐름을 배경으로 한 R.A.Salvatore의 베스트셀러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을 통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매력을 선사했고, 이후 '다크 엘프 3부작', '드로우의 유산 3부작', '어둠으로의 길 3부작' 등을 통해 꾸준히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먼저 소개한 헌터 D가 아마노 요시타카의 환상적인 일러스트에 의해 시각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드리즈트 역시 소설 삽화가로 활약한 토드 락우드에 의해 인상적인 모습을 부여받았다고 하겠는데요. 살바토레가 묘사한 드리즈트의 매력을 멋지게 화폭에 담아낸 락우드의 일러스트는 금방이라도 두 자루의 시미터를 들고 악당들을 응징하는 다크 엘프의 영웅처럼 생생하다 하겠습니다.

현재 드리즈트는 계속적으로 소설과 코믹스 등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바이오웨어의 전설적인 RPG 게임 '발더스게이트'나 PS용 게임인 '데몬스톤'에서도 깜짝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D&D 마니아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 멋진 다크 엘프를 실사영화를 통해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요. 북미에서는 인기 높은 캐릭터이니 만큼 이러한 바람이 그저 헛된 망상이 아니길 마음 속으로 빌어보려 합니다.

☞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 - 드리즈트 도어덴의 장대한 모험의 시작 (보러가기)


Character 8. 흑태자 칼 스타이너 (1995~1998) from 창세기전 I, II

ⓒ SOFTMAX Co, Ltd.

산 RPG 게임의 신기원을 열었던 소프트맥스사의 '창세기전'은 스케일 큰 서사적인 스토리라인, 만화가인 김진이 직접 일러스트한 유려한 캐릭터 디자인, 흥미진진한 게임시스템(물론, 그 흥미진진한 만큼 수많은 버그로 인해 호평에 버금가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등으로, 걸음마 수준이던 90년대 말 국산 패키지 게임시장에 신선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됩니다. 치명적인 버그를 포함하고 있던 1편을 보완하고 아직 완결되지 못한 이후의 스토리까지 모두 포함하여 다시 태어난 '창세기전 II'는 버그로 점철되었던 전작의 오명을 어느 정도 만회하면서 흥행에 성공하게 되지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버그들이 존재했지만.)

사실, 이 정도의 치명적인 버그가 있는 게임이라면 멋진 그래픽과 게임성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전이 지금까지도 국내 게이머들의 입에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드라마틱한 스토리 전개와 강렬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발휘한 주인공 흑태자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장남인 흑태자 에드워드를 모델로 했다고 전해지는 흑태자 칼 스타이너는 항상 검은 갑옷과 검은 투구를 쓰고 변방의 게이시르 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대전쟁의 선봉에 서는데요. 뛰어난 무인이자 천재적인 전략가로, 사선진형이라는 신개념의 전법을 통해 적은 수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넓은 평원의 전투에서 막강한 실버애로우 연합의 대군을 궤멸시키면서 안타리아 대륙의 패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에도 불구하고 흑태자는 게임 플레이어의 플레잉 캐릭터가 아닙니다. 오히려 흑태자에 의해 조국이 멸망당한 펜드레건의 왕녀 이올린과 라시드 왕자, 비프로스트 공국의 레인져 G.S로 흑태자의 게이시르 제국과 맞서는 것이 플레이어들의 미션인 것이죠. 세상을 위협하는 악마에 맞서싸운다는 전형적인 RPG 공식을 벗어난 이 멋진 스토리는 게임과 함께 게임 속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하게 됩니다. (물론, 결국 플레이어는 흑태자를 플레이하게 되긴 하지요.)

세상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꿈을 버리는 흑태자의 기구한 운명과 슬픈 결말은 게임 타이틀의 수준을 넘어서는 드라마틱함을 보여줍니다. 흑태자가 사라진 후에도 창세기전 시리즈는 이 비극적인 운명과 드라마를 잘 활용하여 게임에 머물기에는 아까운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게 되는데요. 현재 온라인 게임으로 다시 팬들에게 돌아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듯 하니 그 멋진 드라마의 부활을 다시 한 번 기다려볼까 합니다.


Character 9. V (1982~2005) from 브이 포 벤데타

ⓒ WARNER BROS

은 코스튬의 히어로가 보통 선과 악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라면, 브이(V)는 가장 적격인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들 중 가장 특이한 히어로 중 하나일 겁니다. 영국의 유명작가 알렌 무어와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의 일러스트에 의해 탄생된 브이는 검은색 복장과 검은색 망토, 챙긴 검은 색 모자를 쓴 전형적인 다크 히어로인데요. 특히, 그는 로마 카톨릭 혁명단체의 일원으로 저 유명한 화약음모사건을 통해 영국의 국왕 제임스1세를 암살하려 했던 전설적인 테러리스트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즉, 그에게는 선과 악의 경계라는 다크 히어로 특유의 본질 이외에, 영웅과 테러리스트라는 양면적인 정체성을 가진 인물인 것입니다.

시점에 따라 그는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는 영웅이기도 하며, 사회 혼란을 획책하는 위험한 테러리스트로도 보여집니다. 인체실험의 대상으로 상상도 못할 지옥의 나날을 살아온 그의 과거와,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예술적 취향, 세련된 검은색의 코스튬과 우스꽝스런 가이 포크스의 가면까지... 브이는 언제나 상반되고 모순 덩어리이며, 이중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그는 침착함과 광기의 모습을 오가며 광적이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휴고 위빙 특유의 매력적인 보이스 컬러와 연기는 양면적인 브이의 모습을 실로 스크린에 멋지게 묘사하지 않았나 합니다. 사실, 처음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러갈 때만 하더라도 그저 그런 액션영화로 잘못 알고 있던 엘로스는, 처음에는 지루한 전개에 실망을 느끼다가 중반 이후 스크린에 급격하게 빨려들게 되었는데요. 전혀 정보를 모른 체 접한 영화 중 무척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였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인상적인 브이의 모습만큼이나 나탈리 포트만의 호연도 인상적입니다. 극중 삭발투혼까지 발휘한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음을 예견하고 있는데요. 정말로 이번 오스카에서 그녀는 '블랙스완(2010)'을 통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의 성공적인 변신의 마침표를 찍게 되지요.

독특한 기행만큼이나 브이의 마지막 역시 장렬하면서도 강렬합니다. 광기와 신념, 정의와 복수라는 경계 속에 선 그는 어쩌면 진정한 다크 히어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부 끝. 2부에서 계속)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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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小学館 · KITTY FILM


<스탭>

◈ 원작: 하기오 모토
◈ 감독: 데자키 사토시, 토미나가 츠네오
◈ 제작: 키티 필름


<시놉시스> 

워프로 인해 먼 은하계까지 진출하게 된 인류는 수세기 사이에 수많은 혹성국가를 형성하며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사바계나 세글계와 같은 여러 이성인들과 조우하며 전쟁과 화해를 반복하던 은하계는 성간연맹의 형성과 함께 공존의 시대로 넘어갔으며, 우주시대를 짊어질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성간연맹이 창설한 코스모 아카데미도 어느덧 120년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스모 아카데미는 우주학의 모든 것을 가르치는 그야말로 우주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모든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코스모 아카데미의 졸업생은 우주의 엘리트로 그 어떤 은하계에서든 그 지위를 보장받게 된다. 3년마다 거행되는 코스모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에는 전우주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지원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테라계 시베리스 출신의 타다토스 렌(이하 타다)도 그들 중 하나.

1차 시험과 2차 시험을 통과한 타다는 이제 마지막 3차 시험만을 남겨놓고 있다 3차 시험은 10명씩 조를 이뤄 아카데미에서 지정한 우주선에서 치루어진다. 타다와 나머지 9명은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지정된 우주선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체 버려진 듯한 이 우주선의 이름은 에스페란자 호. 에스페란자호에 도착한 아카데미 응시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분명 10명이 이 우주선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도착하고보니 11명의 인원이 있는 것이다. 모두 자신들이 정당한 응시자들이라 주장하는 상황. 과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누구란 말인가. 3차 시험은 이 에스페란자호에서 53일간 생활하는 것이며,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선내의 붉은색 박스의 스크램블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는 외부와의 통신은 일절 불가능하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참여자 전원이 시험에서 탈락하게 된다. 타다 일행들은 53일 동안의 긴 시험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손님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순정만화의 새지평을 연 거장 하기오 모토의 SF 미스테리 스릴러

'구로(1977)'로 순정소녀만화에 SF라는 소재를 접목시켰던 거장 타케미야 케이코와 함께 로맨스에 국한되어 있던 순정만화의 장르를 확대시킨 거장 하기오 모토의 동명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11인이 있다'는 시놉시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정만화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긴장감 넘치는 서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범은하계로 삶의 영역을 확장한 인류, 그리고 이러한 은하계에서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명문 학교. 천문학적인 경쟁률을 뚫고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 모인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한 오래된 우주선 속에서 53일간의 생존 테스트를 받는 마지막 시험에 참여하고, 놀랍게도 이 폐쇄된 공간에 초대받지 않은 한명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동시에 타이틀이 등장하는 서두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심어줍니다. 그동안의 순정만화가 이쁘고 화사한 남녀들이 등장하여 청춘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패턴이었다면 이 작품은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패턴을 넘어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이 발간된지 무려 40년이 지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수많은 순정만화가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1인이 있다는 그 소재의 신선함과 구성에 있어서 결코 최근의 인기 순정만화에 뒤지지 않습니다. 순정만화의 범주로 한정하기에는 작품의 그릇이 커보이기까지 하는데요. 하기오 모토를 가리켜 '소녀만화의 신'이라 가리키는 것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걸작은 스크린으로 옮겨져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감독인 데자키 사토시는 아니메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인 데자키 오사무의 형으로, '거인의 별(1968)'이나 '어택 No.1(1969)', '캡틴(1980)'과 같은 스포츠 계열 작품에서 연출이나 각본을 맡아왔었는데요. 이번 작품에서는 후배인 토미나가 츠네오와 함께 공동으로 11인이 있다를 감독하게 됩니다. 비록 데자키 오사무와 같은 현란하고 실험적인 영상기법은 없습니다만, 11인이 있다는 원작의 매력을 스크린에 잘 옮겨놓은 수작입니다. 구성도 깔끔하며, 흡입력도 좋습니다. 거기에 동생 데자키 오사무의 작화 파트너인 스기노 아키오 작화감독이 참여한 작화라인은 하기오 모토의 스타일을 아니메에 성공적으로 이식하게 됩니다.

특히, 본 작품의 히로인(이랄까요. 왜 단정짓지 않는지는 스포일러임으로 본 리뷰에서는 밝히지 않겠습니다.)으로 등장하는 프롤베리체리 프롤은 보이시한 매력과 풍성한 금발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상큼한 미모로 이 어두운 작품에 한줄기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지요. 스기노의 캐릭터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화사함과 그로테스크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매력이 있는데요. 이러한 독특한 작풍은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좋은 상성을 보여주는 듯 싶습니다.   

순조롭게 우주선으로 항해하던 10명에서 갑자기 11명으로 늘어나는 장면. 하지만 이부분은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 萩尾望都 · 小学館 · KITTY FILM



수수께끼의 한명, 우주선에 감추어진 미스테리, 각자의 숨겨진 사연들

관력이라는 특출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 타다, 그런 그의 직관력으로도 나머지 10명은 전혀 거짓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스스로가 의심을 받게 되는 상황, 여기에 왠지 가면 갈수록 상황은 타다에게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거기에다가 직관력이라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음 방문한 이 에스페란자 호의 이곳저곳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타다. 다른 수험생들의 의심 속에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고장난 우주선은 궤도를 이탈하여 태양으로 접근합니다. 여기에 이 우주선이 과거 치료가 불가능한 전염병이 발병했던 곳임을 타다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되는 멤버들, 선내의 온도가 40도가 넘어가면 전염병의 병균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상황, 과연 이들은 시험을 포기하고 붉은색 박스의 버튼을 눌러 아카데미로부터 구조를 요청해야만 하는걸까요. 어떻게 해서든 이 난관을 극복하고, 불청객을 찾아내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난관이 속속 그들 앞에 등장하는 급박한 상황, 뭔가 머리속을 맴도는 타다의 이상한 기시감, 하나 둘씩 뭔가를 숨기고 있는 멤버들, 그리고 점점 의심의 눈초리는 타다로 향하고... 이 모든 것들은 서스펜스와 미스테리로서 작품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최고조로 이끌어 줍니다. 별다른 엔터테인먼트적인 장치나 연출이 없이, 화려한 영상 기법이 동원되지 않고서도 11인이 있다는 순전히 이야기의 힘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흡입력을 보여줍니다. 순정만화에 SF와 미스테리를 접목시켰다는 새로운 시도도 시도지만, 하기오 모토의 이 작품은 실로 스토리에 충실한, 기본기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높은 완성도의 기본기로 인해 별다른 장치 없이도 작품은 흥미롭고 인상적입니다.

러닝타임이 다 끝나고 난 뒤에 '야, 좋은데?'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이것이 흠이면 흠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 진행 내내 등장인물들과 관객을 조여오는 서스펜스와 미스테리에 대한 해답이 결말부분에 너무도 말끔히 정리됩니다. 여운 없이 작품의 마무리는 정말 깔끔한데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보여지는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는 그래서 그 깔끔함 속에 약간의 여운을 남겨준다 하겠습니다.

과연 이 다양한 인물들 중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은 누구일까. ⓒ 萩尾望都 · 小学館 · KITTY FILM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작품

록 결말이 앞선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밝고 순정만화스러워서 조금 당혹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그로 인해 엔딩곡인 '나의 오네스티'의 감미로운 멜로디와는 오히려 잘 매칭되는 느낌입니다. 너무 깔끔하긴 하지만 이야기 전체의 흐름이 흐트러지지는 않는다고 할까요. 어두운 서스펜스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각자의 꿈을 가진 건전한 청년들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 속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느낌을 줍니다. 실제로 이들 11명은 불청객의 등장과 각종 돌발상황으로 날카로워진 상황에서도 식당에서 서로에게 음식과 소스를 던지고 뿌려대며 즐거운(?) 난동을 부리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보면서 음울한 결론과 밝은 결론의 두 가지를 예상하고 있었는데요. 결국 이야기는 제가 예상했던 두번째로 흘러가게 되어 예측이 맞은 즐거움도 함께 했던 감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만화영화치고는 꽤 잘짜여진 이야기 구조와 드라마로 인해 근래에 본 작품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라 할 수 있겠군요. 이야기의 힘, 11인이 있다는 그 기본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히로인(?)이 될지도 모르는 프롤의 눈부신 미소. ⓒ 萩尾望都 · 小学館 · KITTY FILM



<참고 사이트>

[1] 11人いる!, Wikipedia Japan
[2] 11인이 있다!(11人いる!)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萩尾望都 · 小学館 · KITTY FILM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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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가 스타 블레이져가 되기 위해 남겨진 숙제들

2010년에 개봉된 일본의 야마토 실사영화판. ⓒ 2010 SPACE BATTLESHIP ヤマト製作委員会


시자키 요시노부/마츠모토 레이지의 '우주전함 야마토(1974)'가 헐리웃에서 실사영화화 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작사는 스카이댄스 프로덕션(Skydance Production). 파라마운트가 투자를 한 소규모 제작사로 얼마전 북미에서 개봉한 '트루 그릿(2010)'의 제작을 맡았던 신생 제작사입니다. CEO가 배우 출신의 29살 청년 데이빗 엘리슨인데요. 이 친구 이제보니 오라클의 CEO 래리 엘리슨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헐~ 오라클이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파라마운트가 투자한 것에 아버지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네요. (너무 부정적인 관점인가요.)

현재 진행상황은 2011년 2월 21일 현재 영화판권 획득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각본에는 '유주얼 서스펙트(1985)', '발키리(2008)', '투어리스트(2010)' 등을 집필한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선임되었다고 하는군요. 적어도 각본이 아주 망작은 아니겠다라는 생각은 듭니다. 타이틀은 예전에 북미에서 방영되었을 당시 TV 시리즈의 타이틀이었던 '스타 블레이져'가 될 듯 하네요.

☞ 'True Grit' Co-Financier Skydance Targets 'Star Blazers' For Christopher McQuarrie, Deadline (보러가기)

사실 야마토의 헐리웃 실사영화화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1990년대에 디즈니가 판권을 사들여 실사영화의 의지를 보여준 적이 있었지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1999)'의 각본 스탭이었던 탭 머피가 각본을 맡아 사고뭉치 오합지졸 승무원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전함 아리조나 호에 탑승하여 우주로의 모험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미군에는 1913년에 진수한 USS 아리조나 전함이 실존했었고, 이 아리조나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침몰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의 상징이었던 전함 야마토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을 헐리웃으로 각색하면서 이런 사연을 가진 아리조나 함을 소재로 한 것은 다분히 미국인들의 센스(?)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당시 디즈니의 회장직에 있던 마이클 아이스너가 회사를 떠나면서 이 실사영화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맙니다. 이후 소식이 들려오지 않다가 2006년에 이르러서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나 '나비효과' 시리즈의 제작에 참여했던 벤더스프링크(Bendersprink)라는 회사와 프로듀서 조쉬 C. 클라인이 팀을 이루어 다시금 실사영화 프로젝트를 가동시키게 됩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예상대로 진척되지 못한 체 오늘에 이른 듯 싶군요. 현재 조쉬 C. 클라인은 데이빗 엘리슨과 함께 스카이댄스 프로덕션에서 야마토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벤더스프링크가 참여하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군요.

일단, 뒷배경이 든든한(?) 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좀더 구체적으로 진행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야마토의 스토리 자체가 그다지 헐리웃 SF 영화로서는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헐리웃에서 실사영화한다면 군국주의적 컨셉을 갖고 있는 야마토의 디자인과 캐릭터 설정 등 당연히 거세되어 미국적인 입맛으로 바뀔텐데, 과연 그렇다면 굳이 야마토를 가져다 쓸 필요가 있냐 하는 것이죠. 캐릭터들도 전부 원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으로 바뀌면서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겠고, 함선 디자인조차 일제 전함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니 당연히 서양식 우주전함으로 새로이 디자인하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스타 블레이져에서 원작의 느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멸망의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머나먼 안드로메다의 별로 여행을 떠나는 우주전함의 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원작의 장렬한 느낌이 아닌 미국식 액션 어드벤쳐가 된다면 이 영화에게서 기대할 것은 CG 외에는 없다는 것이죠.

이제까지 아니메를 소재로 한 헐리웃 영화는 대부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헐리웃 측 각본 스탭의 역량부족, 다시 말하면 판권을 사들인 영화사 측의 역량 부족과 작품에 대한 이해부족에 따른 로컬라이징의 실패가 원인이지 않나 싶은데요. 특히, 왜색이 짙은 야마토를 스타 블레이져로 각색하기 위한 작업은 다른 아니메보다 더더욱 어려운 작업이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물론, 영화 소재가 부족하다보니 그럴수도 있겠습니다만 과연 이것저것이 다 거세된 야마토가 관객들에게 야마토로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라 하겠습니다. 차라리 과거 SF 미드를 영화화하는 것이 낳지 않으려나 싶군요.

어쨋든 스타 블레이져 프로젝트는 시동에 들어갔습니다. 아직 각본가 외에는 캐스팅도 구체적인 연출진도 구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고, 판권 협상도 마무리가 안된 듯 싶으니 갈 길은 여전히 멀 것 같은데요. 그 긴 시간만큼 완성도 높은 이야기의 영화가 되기를 (형식적으로나마) 기원해 봅니다.

ⓒ 東北新社 · 徳間書店


덧붙임) 개인적으로 레이지옹의 작품들, 특히 (니시자키 프로듀서가 거의 창조해낸) 야마토는 헐리웃 실사영화로 만들기에는 너무 일본색이 강하다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군국주의적 정취도 많이 느껴지구요. 이걸 헐리웃에서 실사영화로 만들면 당연히 군국주의 색체를 지워버릴텐데, 그럼 작품의 정체성이 없어지는 셈이 됩니다. 이게 나쁜 요소이긴 하지만 레이지옹의 작품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거든요. 레이지옹 작품 중에서 가장 실사영화화하기 좋은 건 제 생각에는 스타징가입니다. 오로라 공주의 미니스커트를 실사판으로 보고 싶기도 하고... 요.

덧붙임) 일본판 실사영화처럼 야마토의 또다른 카리스마 데스라 총통은 당연히 북미판에도 안나오겠죠. 적어도 에일리언의 모습을 한 기괴한 형상으로 나오거나.

덧붙임) 다른 건 다 바꿔도 좋은데... 여승무원 복장만큼은 어떻게 원작의 느낌 그대로 살려주시면 안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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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vel Comics

 
DC를 시샘한 마블의 영화 사랑

DC 코믹스의 대표 히어로 슈퍼맨과 배트맨이 실사영화를 통해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하는 동안, DC 코믹스와 함께 북미 코믹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마블 코믹스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스파이더맨과 엑스맨,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등, DC에 뒤지지 않는 매력적인 히어로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마블이었지만, 영화시장에서는 좀처럼 그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던 것입니다. TV 시리즈와 실사영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마블 스튜디오를 80년대에 설립했지만, 85년부터 거론되던 자사 최고의 히트 캐릭터 스파이더맨의 실사영화가 판권을 둘러싼 문제로 감독으로 선임되었던 제임스 카메론이 도중하차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블의 히어로들은 스크린에 입성하지 못한 체 21세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배트맨 시리즈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히어로 영화가 예전만큼의 임팩트를 갖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CG라는 신기술이 실사영화에 서서히 접목되면서 히어로 영화는 다시금 부활의 날개짓을 펼치기 시작했고, '블레이드(1998)'를 통해 그토록 염원하던 실사영화에의 진출을 성공한 마블은 그로부터 4년 뒤인 2002년 마침내 '스파이더맨(2002)'을 개봉하여 DC 코믹스의 히어로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빅히트 대작을 보유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실사영화에서는 마블의 일대 반격이 시작됩니다. 블레이드 시리즈는 이후에도 3편까지 제작되면서 대표적인 R 등급 뱀파이어 히어로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3편까지 연달아 빅히트하며 마블의 대표 히어로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되지요. 여기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연출한 엑스맨 3부작(3부는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하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이전과는 다른 고뇌하고 소외받는 히어로들을 묘사하면서 영화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실사영화의 DC 히어로들과 달리 마블의 21세기 히어로들은 보다 더 인간적이고 불완전했습니다.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불행했고, 그래서 연민이 느껴지기까지 했지요. 이제 영화의 히어로 월드는 마블의 히어로들이 지배할 것 만 같았습니다.

ⓒ 20th Century Fox


ⓒ Columbia Pictures



풍요 속의 빈곤,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하게 된 마블

21세기 초반 헐리우드는 심각한 소재고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실사영화로 만들 만한 소재들이 바닥이 나기 시작한 것이죠. 이즈음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해리 포터 시리즈가 어마어마한 흥행에 성공하자 헐리우드의 제작사들은 앞다투어 판타지 영화에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작품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안으로 풍부한 컨텐츠를 자랑하는 일본  아니메를 소재로 삼게 되지만, 원작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로컬라이징에 실패한 헐리우드식 아니메 해석은 이제까지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랜스포머의 경우는 실제 원작은 일본이지만, 완구와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이미 어느 정도 북미에서 로컬라이징이 된 소재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다가 사그러들었던 히어로물은 재활용 소재로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일구어내게 됩니다. 기존의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히어로물은 아직 그만큼 팬층이 형성되지 않는 일본산 애니메이션보다는 더 관객에게 어필하기가 쉬운 소재였고, CG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러한 트렌드를 타고 등장한 마블의 히어로들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실사영화에 들이닥치게 됩니다.

하지만 풍요 속에 빈곤은 존재하는 법, 우선 수많은 히어로 무비들의 양산으로 인해 일부 작품들은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으로 인해 기대치가 높아진 탓에 그 뒤에 등장한 '헐크(2003)'나 '데어데블(2003)', '일렉트라(2005)', '판타스틱 포(2005)' 등은 그 완성도가 앞선 히트작들과 비교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흥행 역시 앞선 작품들에 비해서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안았구요. 여기에 실사영화를 위해 캐릭터 사용료 만을 받고 판권을 영화사에 넘겨버린 마블로서는 자신의 히어로들이 등장한 영화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그저 손가락만 빨며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2003년 라이벌인 DC 코믹스가 워너브러더즈 계열사인 DC 엔터테인먼트로 편입되면서, 마침내 DC의 히어로들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이 새롭게 리부트시킨 배트맨 2부작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나이트(2008)'는 히어로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단의 극찬 속에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게 되며, 엑스맨 시리즈로 마블의 히어로들을 성공적으로 실사로 이식했던 브라이언 싱어가 슈퍼맨 리부트 프로젝트로 자리를 옮겨 '슈퍼맨 리턴즈(2006)'을 제작하는 등 DC의 공세는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블로서는 이제 결단의 시기를 내릴 때가 온 것이었습니다.

ⓒ Paramount Picture



어벤져스, 마침내 전모를 드러낸 마블의 히어로 월드

2008년 드디어 마블 자신이 독자적으로 제작한 '아이언맨(2008)'과 '인크레더블 헐크(2008)'가 스크린으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비록 같은 해에 개봉한 DC의 다크나이트에는 못미쳤지만, 아이언맨은 기록적인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내었으며, 인크레더블 헐크 역시 준수한 결과를 남기게 되었던 겁니다. 이에 자신을 얻은 마블은 원대한 계획을 꿈꾸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어벤져스'의 시동이었습니다.

아이언맨을 보시면 크레딧이 끝나고 영화 마지막에 비밀조직 쉴드의 국장 닉퓨리가 등장하여 토니 스타크에게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깁니다. '당신만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나?' 바로 이것이 어벤져스의 시동을 암시하는 대사였던 것입니다. 어벤져스는 마블의 대표 히어로들이 결성한 조직으로, 1963년 코믹스로 발표되기 시작한 작품인데요. 그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며 마블의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마블은 몇몇 대표 히어로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관 그 자체를 영화로 옮기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를 한 두편의 영화로 영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코믹스처럼 각각의 히어로들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차례로 선보인 다음, 이후에 그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별도의 영화로 공개한다는 것인데요. '아이언맨2(2010)'를 선보인 뒤 마블은 지속적으로 대표 히어로인 '토르(2011)'와 '캡틴 아메리카(2011)'를 자체 제작하여 개봉할 예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에는 이들 히어로 영화들을 한자리에 묶을 '어벤져스(2012)'가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딱히 마블의 팬이 아니지만 이러한 마블의 프로젝트는 몹시도 흥미롭고 기대된다 하겠습니다. 방대한 세계관을 하나의 작품에 무리하게 집어넣지 않고 독립적인 작품들로 그 단편들을 보여주어 종래에는 하나의 완성된 월드를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은 영화의 속편 제작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가 아닌가 싶군요. 특히, 마블 엔터테엔먼트가 2009년부로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이러한 마블의 장대한 프로젝트는 더더욱 무게가 실려 보입니다.

여기에 마블이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마블의 히어로들을 소재로 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 역시 개봉 예정에 있으며, 소니가 별도로 시동하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4번째 작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도 제작중이라고 합니다. 또한,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하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의 속편 '더 울버린(2012)' 역시 2011년 4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마블의 파상공세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되면 역시 DC의 반격 역시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 DC 쪽도 올해 '그린 랜턴(2011)'을 필두로, 놀란 감독이 다시 배트맨 속편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를 제작중에 있으며, 슈퍼맨의 속편인 '슈퍼맨: 맨 오브 스틸(2012)'은 '왓치맨(2009)'을 통해 R등급 성인 히어로물의 진수를 보여준 잭 스나이더 감독이 연출을 맡을 예정에 있죠. 거대한 베일을 벗은 마블의 어벤져스 프로젝트에 비견될 DC의 져스티스 리그가 과연 시동될지 역시 관심거리라 하겠습니다.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히어로들의 전쟁이 이제 스크린에까지 그 전장을 넓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 Paramount Pictures


ⓒ Paramount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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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G와 셀 애니메이션의 조화, 푸우의 다섯번째 장편애니메이션.

ⓒ WALT DISNEY Pictures

 
1926년 발표된 앨런 알렉산더 밀른의 동화로서, 디즈니의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더 널리 알려진 '아기곰 푸우(또는 곰돌이 푸우, 원제는 위니 더 푸우, 영어로는 Winnie the Pooh. 요즘 표현으로 하면 하의실종 종결자 푸우... 풉.)'의 다섯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 올 여름 6월 북미 개봉예정에 있습니다. 꿀을 사랑하는 아기 곰 푸우와 활기찬 아기 호랑이 티거, 작고 내성적인 꼬마 돼지 피글렛, 우울한 당나귀 이요르 등 친근한 동물 캐릭터들을 주인공 삼아 그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동화 자체의 인지도 뿐만 아니라 캐릭터 사업과 영상물로서도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온 스테디 셀러이기도 합니다. 특히, 디즈니가 그려낸 푸우는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은 살아 있는 봉제인형의 모습으로 시각화 시켜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 시켰던 작품이죠. 이로 인해 푸우하면 으례 우리는 디즈니가 그려낸 캐릭터들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으로 대표되는 디즈니의 오리지널 캐릭터들과 함께, 푸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한축을 단단히 책임지고 있는 인기 캐릭터입니다. 같은 세계명작동화를 원작으로 한 아기사슴 밤비나 아기코끼리 덤보, 101마리의 달마시안들과 함께 수많은 어린이들의 유년시절을 함께 한 친근한 곰 푸우는 그동안 4번의 TV 시리즈와, 다섯번의 단편 극장 애니메이션, 그리고 4번의 장편 극장 애니메이션 및 수많은 TV 스페셜과 비디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왔는데요. 가장 최근의 극장 애니메이션이었던 'Pooh's Heffalump Movie(2005)'에 이어 6년만에 신작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이번에 우리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푸우 관련 영상 컨텐츠를 전부 통틀어서도 6년만의 신작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 푸우의 다섯번째 극장 애니메이션은 2009년에 개봉했던 '공주와 개구리(2009)'에 사용되어 셀 애니메이션과 최신 CG의 조화로운 비주얼을 선보였던 Toom Boom Animation의 소프트웨어가 쓰였다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CG의 부드럽고 세밀한 움직임과 선명한 색감, 그리고 셀 에니메이션의 서정적인 터치가 살아있는 작품이 될 듯 싶습니다. 감독은 장편 극장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이 첫 연출인 스테판 앤더슨과 돈 홀이 공동으로 맡았습니다.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진두지휘하는 존 라세타가 총괄제작을 맡았으며, 한스 짐머에 헨리 잭맨이 음악을 맡는 등, 스탭진 역시 녹록치 않습니다. 적어도 셀 애니메이션에 대한 디즈니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하네요.

푸우와 그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기에 사실 요즘의 코믹하고 다이나믹한 CG 애니메이션에 비해서는 지겨운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랜만에 순수한 아기 동물들과의 추억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듯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개봉소식을 못들었는데요. 만약 개봉하게 된다면 저도 아들 손 붙잡고 한 번 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 WALT DISNEY Pictures


☞ 예고편 보러가기 (유튜브)
☞ 예고편 보러가기 (애플 트레일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LT DISNEY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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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화사 집


<스탭>

◈ 감독/각본: 최동훈
◈ 캐스팅: 강동원, 김윤석, 임수정, 유해진 外
◈ 제작: 영화사 집


<시놉시스> 

태초에 땅에선 인간과 짐승이 조화로웠고, 하늘 깊숙한 감옥엔 요괴들이 갇혀 있었다. 도력 높은 신선 표은대덕은 신비한 피리를 삼천일 동안 불며, 요괴의 마성을 잠재우고 있었다. 삼천일의 마지막 날 열렸어야 할 감옥문이 그곳을 지키던 미관말직 신선 셋의 실수로 하루 먼저 열리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요괴들의 마성은 다시 깨어났고, 표은대덕의 피리는 사악한 기운에 묻혔다.

요괴들은 모두 피리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피리를 빼앗긴 표은대덕은 요괴의 마성에 젖은 체 지상으로 떨어졌다. 마성에 빠진 표은대덕과 요괴들은 지상으로 쫓겨와 인간의 몸에 숨어들었고, 자신이 누군지 그 기억마저도 잃어버렸다. 사람들 사이에선 오직 피리를 가진 자만이 요괴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신들의 실수로 피리를 잃어버린 신선 셋은 지상으로 내려와 이름 높은 도사 화담에게 요괴와 피리를 찾아줄 것을 부탁하게 되고, 화담은 이 부탁을 받아 요괴들의 추적에 나서게 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실제 영화의 프롤로그 내레이션을 옮긴 글입니다.)


기대 이하의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다.

번에 구정특선으로 감상하게 된 전우치는 이제까지의 한국 판타지 영화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은행나무 침대(1996)'의 성공 이후, 한국 영화계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귀천도(1996)', '비천무(2000)', '단적비연수(2000)', '천년호(2003)',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중천(2006)'과 같은 일련의 판타지 무협 액션물들을 잇달아 선보이게 되지만, 거의 대부분이 조악한 완성도와 뒤떨어지는 서사로 인하여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이 와중에 등장한 전우치는 비록 히어로 물로 홍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술과 부적이 사용되고 신선과 요괴가 등장하는 등, 전형적인 오리엔탈 판타지의 형식을 취한 작품으로, 이들 한국적 판타지 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우치 이전의 한국 판타지 영화들은 우선 중국의 무협 액션에 비해 한참 세기가 부족했던 액션연출이나 다른 작품에서 자신이 보여주었던 만큼의 아우라를 보여주지 못한 배우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연기력, 판타지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못했던 감독들의 성향과 엉성한 각본과 같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대부분이 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보다 더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판타지라는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과 이해력 부족이 먼저라 하겠는데, 이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도 마찬가지의 문제라 하겠다. 이제까지 한국영화 중 성공한 영화 대부분이 현실세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코미디나 드라마, 혹은 범죄액션물이 대부분이었고, SF나 판타지와 같은 장르 영화는 한국영화로서는 거의 성공한 전례가 없었던 것이 그 반증은 아닐까. 한마디로 만드는 이나 보는 이나 판타지라는 소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소설이나 코믹스,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판타지라는 소재가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대중적인 이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로 인해 발달된 촬영기술과 막대한 제작비가 확보되었음에도 2000년대 들어 제작한 대부분의 판타지 영화들은 흥행 참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둔 것이 이제까지의 상황이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에 이르러서야 전우치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주)영화사 집


'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2006)' 등을 통해 하이스트 무비와 범죄 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최동훈 감독은 2006년 판타지 영화 중천의 각본 작업에도 잠시 참여한 경력이 있다. 수준 이하의 스토리 텔링을 보여준 중천의 각본이 온전히 최동훈 감독의 작품은 아니지만, 이 대목은 확실히 불안감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이다. 즉, 흥미진진한 두뇌 싸움을 보여주었던 앞선 두 작품에 비해 판타지라는 이야기 형식이 최동훈 감독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전우치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미흡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작품이다. 오락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단선적인 전개는 둘째치고 그 완성도도 생각만큼 만족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연출 역시도 그러한데, 피리를 요괴에게 빼앗긴 체 인간계로 떨어진 표은대독의 이야기와 전우치의 등장과 난동, 그리고 화담과 세 신선의 요괴쫓기 에피소드를 시간 순에 맞춰 평이하게 배열하지 않고 각자의 시점에 따라 교차로 진행시킨 서두 부분은 분명 최동훈 감독의 재기가 엿보이는데, 이후의 이야기는 서두와는 달리 그저 평범하게 시간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 이것은 단조로운 이야기 흐름이 기교있는 연출을 보여줄 여지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래도 영화 초반에 주어진 두어가지의 복선이 클라이막스와 결말부분에서 다시금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단조로운 전개에도 불구하고 전우치는 위트가 넘치고 즐겁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껄렁껄렁한 강동원의 연기와 언제 어디서나 제 역할을 다해내는 유해진의 코믹 연기는 이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일등 공신이다. 여기에 송영창, 주진모, 김상호로 이어지는 얼빠진 세 신선 역시 감초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들로 인해 전우치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오락영화가 되었다. 이전에 비해 훨씬 수준이 높아진 액션연출도 일품이다. 도술을 사용하는 전우치의 액션장면은 꽤 잘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은데, 극장이 아닌 TV로 감상했음에도 불구하고 CG의 이질감을 제외하고는 큰 흠결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모습이었다. 유쾌한 캐릭터들의 코미디와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다소 허술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전우치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 이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우직한 전개가 아닌가 싶다.

ⓒ (주)영화사 집


하지만 캐스팅이나 캐릭터 설정에 있어서는 일부 미스나 사족이 느껴진다. 많은 미디어에서 지적했듯이, 히로인 역의 임수정의 비중이 너무 미약하여 히로인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은 아쉬운 부분이다. 오히려 특별출연한 염정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느낌인데, 이는 같이 특별출연한 김효진이나 백윤식에 비교하면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중이 커보인다. 또한, 화담 역의 김윤석 역시 기이하게도 캐릭터와 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섬뜩할 정도로 오싹한 연기를 펼치는 듯 싶다가도 어떤 장면에서는 묘한 불협화음이 느껴지는데, 타짜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악역의 연기나 이때까지의 그의 필모그라피를 살펴볼 때 이는 의아한 점이라 하겠다. 어쩌면 판타지라는 옷이 김윤석과는 그다지 맞지 않는지도. 반면 특별출연한 천관대사 역의 백윤식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는데, 확실히 이런 부분은 연기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비록 여러가지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지만, 동시에 전우치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유쾌한 도사 영웅의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인 영화에만 열중하는 한국의 영화 정서에 좋은 청량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전우치를 통해 부디 한국 영화계도 SF나 판타지 같은 장르 영화들이 제작되고 성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주)영화사 집


덧붙임) 백윤식의 아들 백도빈도 이 영화에 출연하는데, 최동훈 감독의 전작 타짜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부자 동반출연이다. 아버지는 특별출연이지만, 아들은 레벨이 떨어져서 그냥 단역인가.

덧붙임) 개인적으로 백윤식 선생의 왕팬이다. 찌질한 연기부터 중후한 연기까지 작품이나 캐릭터, 출연 비중과는 상관업이 언제나 멋진 연기를 선보이신다는... 게다가 이런 판타지 스타일까지 소화를 해내시다니 사랑합니다.

덧붙임) TV로 흥미진진하게 보려던 찰나, 아드님의 취침 관계로 인하여 부득이 시청이 중단되고 말았다. 집이 좁아서 안방에 TV가 있는데, 이런 연휴나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주 쥐약이다. 덕분에 네이버에서 2,000원내고 마저 다봤다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주)영화사 집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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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HOUSE


<스탭>

◈ 원작/감독/각본/캐릭터 디자인: 콘 사토시
◈ 제작: 매드 하우스


<시놉시스> 

도박으로 패가망신하고 거리로 나온 중년 아저씨 긴과, 중년 호모 하나, 그리고 가출 소녀 미유키는 집을 나와 하루하루를 밖에서 연명하는 홈리스(Homeless;노숙자)들이다. 여느 때와 같이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쓰레기를 뒤지던 셋은 바구니 안에 버려진 한 아기를 발견하게 된다. 평소에 엄마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하나는 아기를 키우겠다고 고집부리며 키요코라 이름을 붙여주지만, 귀찮은 일에 얽매이기 싫은 긴과 미유키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 박스로 만든 자신들의 거처에서 그렇게 티격태격 하루를 보낸 그들은 하나의 고집으로 키요코를 키우는 대신, 아기를 버린 부모를 찾아주기로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뜻밖에도 여러가지 모험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아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조명해보는 드라마

제가 동경대부인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막장 인생을 살아가던 3인의 노숙자들이 우연치 않게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서로 간의 애정을 확인하게 된다는 가족 드라마적인 전개를 만화영화적인 방식으로 풀어간 작품입니다. 많은 곳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이 작품은 존 포드 감독의 '3인의 대부(1948)'를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요. 웨스턴 무비였던 3인의 대부에 비해서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의 가족 코미디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1985)'와 오히려 더 가까운 느낌의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듯 세상과 담을 쌓은 3명의 주인공이 우연치 않게 발견한 아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전개는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진부한 소재인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전작인 '퍼펙트 블루(1998)'에서도 그러했듯이 콘 사토시는 이 진부한 가족 코미디스러운 소재를 가지고 실사 영화에 근접한 비주얼로 재현함 동시에, 만화영화적 상상력을 곁들이고 독특한 블랙 코미디와 미스테리적 구성을 더함으로써 진부한 레시피로 놀라울만치 맛깔스러운 식감을 연출해내는 신기를 선보이게 됩니다. 이리하여 콘 사토시의 장기라 할 수 있는 현실과 비현실의 절묘한 오버래핑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정직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콘 사토시의 필모그라피 중에서 단연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사실 다해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게 그의 필모그라피입니다만) 인상적인 작품이 된 것입니다.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중첩은 사라졌지만, 작품의 배경과 오프닝 스탭 타이틀을 중첩시키는 등, 특유의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다. ⓒ MADHOUSE



실사영화를 지향하는 정교한 만화영화적 표현

화영화는 전작에 이어서 여전히 실사영화에 근접하는, 아니 실사영화를 지향하는 세밀하고 디테일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도시의 밤거리와 겨울 정경의 실감나는 배경묘사는 퍼펙트 블루나 천년여우에 이어서도 여전한데요. 이는 미술감독으로 아니메 업계에 입문한 사토시 감독의 이력을 알게 되면 납득이 가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과도할 정도로 세밀한 배경의 묘사는 흡사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작품들이 선보인 그것과 동질의 느낌을 선사합니다. 이런 면에서 콘 사토시의 작품에서는 극사실주의적인 냄새가 풍기기도 합니다. (오토모 가츠히로는 사토시가 신인시절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한 인물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치밀할 정도의 세심한 배경과 사실적인 인물묘사를 지향하면서도 콘 사토시의 작품에서는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인 판타지가 살아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법한 일들이 태연스럽게 이 극사실적인 만화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이죠. 이는 현실과 환상을 오고 가는 그의 특색있는 연출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도 수시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극적인 치요코의 구출장면은 이 작품에서 애니메이션만의 장기를 살려낸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외에도 비탈길에서 자동차에 깔려 구조를 바라는 야쿠자 보스의 고군분투라든가, 실로 다양한 표정을 선보이는 여장남자 하나의 그로테스크한 표정들은 극사실주의라는 제한조건 속에서 만화영화의 장기를 십분 살리는 다양하고 코믹한 표현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실사영화를 지향하지만 발 하나는 애니메이션에 담근 체 완전하게 넘어가지 않는 듯한 사토시의 작품세계는 그로 인해 오히려 사실주의라는 껍데기를 쓴 낭만주의적 색체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우연적인 만남으로 인한 전개의 반전과 스토리의 진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데요. 폭설로 운행을 멈춘 전철에서 맞은 편 전철에 서있는 아빠를 마주하게 된 가출소녀 미유키나, 목숨을 구해준 야쿠자 보스를 따라간 보스의 딸 결혼식에서 자신을 도박에 빠뜨리게 한 원수(게다가 보스의 사위 될 인물)를 마주한 긴, 보스를 저격한 저격범에 의해 납치된 미유키를 구하기 위해 택시를 탔던 하나가 클라이막스에서 납치된 갓난아기 키요코를 되찾으려고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가 바로 미유키를 구할 때 탔던 택시라든지, 편의점에서 죽치고 있는 노숙자 트리오를 못마땅하게 여긴 취객과 싸움이 붙어 잠시 거리로 나왔는데, 그 사이 눈길에 미끄러진 구급차가 편의점을 들이받는 것과 같은 우연 등은 진부하면서도 작품의 재미를 살려주는 클리셰로써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됩니다.

뒷배경으로 등장하는 가게 유리창에 붙여진 메모리즈,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는 모두 사토시 감독의 전작이다. ⓒ MADHOUSE



진부한 가족영화를 재기 넘치는 드라마로 변주해낸 콘 사토시의 걸작

부한 가족 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던 이 작품을 아기를 키우는 세 노숙자의 이야기로 풀어가지 않고 아기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는 노숙자들의 로드 무비로 변주해낸 사토시 감독의 선택은 탁월했다 하겠습니다. 그로 인해 소재의 진부함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있지요. 사토시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 역시 이 작품을 맛깔스럽게 하는 요소입니다. '천년여우(2001)'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환각적이고 어두운 느낌을 선보인 사토시 감독이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그런 유머감각이 십분 살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토시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미스테리스러운 전개는 이 작품에서도 잠시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클라이막스를 둘러싸고 등장하는 갓난아기 치요코의 출생의 비밀이 잔잔하고 독특한 웃음을 주던 이 작품의 분위기를 갑작스레 다이나믹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그것인데요. 이런 가족 영화에서 라스트에 이르러 급박한 전개로 전환되는 것이 그다지 참신한 전개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작품은 그 부분에 있어서 능숙하고 세련됩니다. 추격씬 역시 적절한 코미디와 액션을 결합하여 사실주의의 한도 내에서 애니메이션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해주고 있지요. 

특히, 앞서도 언급했던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오버래핑이라는, 사토시만의 장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 오로지 드라마와 코미디라는 정공법만으로 이 정도의 완성도를 이끌어낸 사토시 감독의 저력은 실로 놀랍다 하겠습니다. 캐릭터나 자극적인 요소가 전혀 없이 평법하고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완성해낸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만화영화에서 스토리와 미술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 작품이라 하겠지요. 이 두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던 사토시 감독의 죽음은 그래서 더더욱 아쉽다 하겠습니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반가운(?) 삼계탕집의 모습. 특유의 극사실주의에 의해 만화영화를 넘어서는 표현력을 보여주는 사토시 작품만의 특색이 살아있다. ⓒ MADHOUSE



<참고 사이트>

[1] 東京ゴッドファーザーズ,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MADHOUSE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달의 영화 리뷰 2011년 2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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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OPUS Pictures


<스탭>

◈ 감독/각본/각색: 이정범
◈ 캐스팅: 원빈, 김새론, 김희원, 김성오, 김태훈
◈ 제작: 오퍼스 픽쳐스
◈ 관람등급: 미성년자 관람불가


<시놉시스> 

과거가 알려지지 않은 사나이 차태식(원빈 분)은 누구와도 인연을 만들지 않은체 홀로 외로이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다. 옆집에서 효정(김효서 분)과 단둘이 사는 불우한 소녀 소미(김새론 분)가 태식의 유일한 벗. 무뚝뚝한 태식이지만 소미는 그에게 마음을 열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태식 역시 꼭 닫은 마음의 문 틈을 살짝 열어 소미만을 유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악몽과 같은 과거로 인해 세상을 등진 그에게 소미는 거친 사막 속 자그마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인 셈이다.

한편, 나이트 클럽의 무희로 일하는 효정(김효서 분)은 불법장기 매매업자이자 마약 중간상인 만석(김희원 분)과 종석(김성오 분) 일당의 마약 샘플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만다. 마약 조직의 보스 오명규 사장(송영창 분)은 만석을 호되게 폭행하고, 이에 만석의 동생 종석은 샘플을 찾기 위해 추적 끝에 효정을 찾아낸다. 소미를 납치하고 효정을 폭행한 종석과 그 일당은 마약 샘플이 담긴 카메라 가방이 태식의 전당포에 저당 맡겨졌음을 알고 태식의 전당포에 들이닥치게 되는데...


라스트 액션씬은 한국 액션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난 2010년 화제의 영화는 뭐니뭐니 해도 원빈의 아저씨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유약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오던 원빈의 연기 변신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의 한국 영화 중 가장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선보이면서 여성관객과 남성관객의 호응을 동시에 이끌어 냈으니 말이다. 특히,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62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지난해 한국 영화 중 가장 큰 흥행성적을 올렸고, 이는 역대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의 방화 중에서도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단순히 인기스타 원빈의 액션영화여서 였을까?

그동안 귀동냥으로만 들어왔던 아저씨를 본 소감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점이었다. 물론, 서사구조는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했던 옆집 소녀가 마약조직에 납치된 후, 세상을 등진 전직 특수부대 출신의 사나이가 소녀를 살리기 위해 마약조직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시놉시스 자체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단조로운 스토리라인 속에서 아저씨가 빛났던 것은 감성과 스타일리쉬였다.

많은 기사와 블로거들의 리뷰에서도 언급되어 왔겠지만, 이 이야기는 뤽 베송 감독/쟝 르노,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레옹(1994)'이나 피에르 모렐 감독/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2008)'과의 데자뷰를 연상시킨다. 물론, 어딘가에서도 한두번 이야기 되었겠지만, 감정을 모르는 살인기계 레옹이 옆집소녀 마틸다에 의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레옹의 시퀀스는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고 세상을 등져버린 태식과 소미의 관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또한, 납치한 딸을 찾기 위해 제한된 단서로 그들을 추적하는 테이큰의 전직 특수요원 브라이언 밀스의 이야기와도 차별점이 존재한다. 전자인 레옹은 킬러가 소녀에 의해 인간의 의미를 되찾고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살리기 위해서 싸운다는 이야기이며, 후자인 테이큰은 영문도 모른체 납치당한 딸을 찾기 위해 남겨진 실낱같은 단서에 의지하여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적 시퀀스가 가미된 작품이다.

반면 아저씨의 그것은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비열한 만석과 종석 일당에게 사로잡힌 옆집 소녀 소미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한 남자의 사투를 다루고 있다. 시퀀스는 앞선 두 작품보다 단순하지만, 감성적 흡입력은 레옹에 필적하고 테이큰을 능가하는 듯 싶다. 특히, 악당으로 등장하는 만석역의 김희원과 종석역의 김성오의 연기는 100%의 싱크로를 자랑하는데, 사이코패스에 가까울 정도로 냉혹하면서도 교활하기까지 한 이들의 악당 연기에 의해 원빈의 복수의 당위성은 관객들에게 별 설명없이도 크게 와닿는 느낌이다. 즉, 저렇게 잔인하고 비열한 악당들을 부디 응징해주었으면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다. (이들 만석 종석 형제 외에도 동양계 킬러 람로완 역을 맡은 타나용 웡트라쿨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목소리 톤도 중후하고 멋졌으며 원빈과의 라스트 액션 역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 2010 OPUS Pictures


아저씨에서 악당들을 응징하는 원빈의 연기는 가히 최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애초에 이정범 감독은 주인공인 아저씨 역할을 50~60대의 중년 남성으로 설정했다가 다시 40대까지 낮추었다고 되어 있는데, 만약 원래의 설정대로 아저씨가 만들어졌다면 이 정도의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가녀리고 유약한 인상의 원빈은 과거 슬픈 상처를 간직한 특수부대 요원 출신의 태식과는 너무 거리가 멀 정도로 깔끔한 마스크지만, 그로 인해 여성관객들의 호감도를 최대로 이끌어 내게 된다. 만약 라스트의 그 처절한 액션씬이 원빈이 아닌 진짜 아저씨였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그저 주연 배우의 외모만이었다면 오히려 이 영화는 그저그런 영화로 전락했을 수도 있지만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원빈의 연기는 배역과의 놀라운 싱크로를 보여주고 있다. 말랑말랑한 꽃미남의 멋진 액션 영화라 생각하면 오산일 정도로 원빈은 현실감 있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데, 잔혹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높은 표현수위와 더불어 영화를 일반적인 액션영화가 아닌 감성이 살아있는 액션영화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미 역의 김새론은 이 작품에서는 기대했던 만큼의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한 듯 싶다. 감정을 폭발해야 하는 씬에서는 아직 어린 소녀라 그런지 조금 미숙한 부분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한 편이었다.) 

주조연들의 연기 외에도 이 영화를 빛나게 한 또 하나의 원동력, 그리고 주인공 원빈에게는 다소 우호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남성팬들을 열광하게 한 것은 바로 감각적이고 세련된 액션 씬이다. 아저씨는 한국 액션영화, 특히 조폭들이 등장하는 액션 범죄 장르로서는 드물게 스타일리쉬하고 세련된 액션씬을 선보이고 있다. 원빈이 선보이는 특공무술은 이제까지 한국영화에서 선보인 무술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살상과 제압을 위해 간결화된 동작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는 마치 과거 미국의 액션스타 스티븐 시걸이 선보였던 특공무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다만, 이것이 극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남발되지 않고 꼭 필요한 흐름에서만 등장하면서 단순한 서사 구조임에도 이야기의 흐름은 좋은 편이다. 즉, 볼거리에 너무 치중하면서 서사가 매끄럽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은 것이다.

원빈의 액션이 절정을 이루는 영화의 클라이막스 씬은 이제까지 억눌려왔던 모든 분노를 한번에 폭발시키듯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공식 사이트에서 시사회를 마치고 나온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이 라스트 액션씬에 대해 극찬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작품을 보고 나니 이것이 단순한 인사치레는 아니었다 싶다. 이제까지 스크린 속에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왔던 악인들에 대한 원빈의 냉혹하고 비정한 복수는 그 잔인함으로 인해 오히려 리얼리티가 살아나고 큰 공감을 자아낸다. 유혈이 낭자하는 이러한 씬에 익숙하지 않은 팬들에게는 거북한 장면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원빈이라는 배우가 해서 그런지 오히려 이 씬의 잔혹함이 상쇄되는 느낌이 있다.

단순한 액션영화에 감성과 스타일리쉬함, 그리고 리얼리티를 더함으로써 아저씨는 평범을 넘어서는 작품이 되었다. 솔직히 기대 이상의 완성도에 개인적으로 놀랐다고 해야겠다. 감독, 배우 모두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이 영화는 오히려 말랑말랑한 헐리우드의 액션 블록버스터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 2010 OPUS Pictures


덧붙임) 형사팀장 김치곤 역의 김태훈의 욕 연기는 작중의 어지간한 조폭들보다 더 상스러웠다. 뭐 터프한 세계에서 이런 욕이야 일상다반사겠지만, 들었을 때 기분 좀 상할 정도로 톤이 까랑까랑하다고나 할까. (나무라는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다.)

덧붙임) 만석 역의 김희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악당 역에 제격이지 않았나 싶다. 딱 보기에도 악당같아 보이는 김성오보다 오히려 이런 쪽이 더 무섭다. 욕도 정말 맛깔나게 발음해주시고 계시다. 실례일지는 모르나 마스크가 마치 차태현과 유해진을 섞어놓은 듯한 인상이랄까.

덧붙임) 클라이막스 전 불법장기 시술을 하는 마약중독 의사 역의 조연배우는 순간 살찐 김윤식인줄 알고 잠시 착각했다는.

덧붙임) 솔직히 결말부분은 좀 늘어지지 않았나 싶은 느낌이 든다. 그 전에 호송되는 씬에서 태식이 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달리는 경찰차를 줌아웃하면서 끝내도 무난하지 않았을까 싶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럼 너무 뻔하려나.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0 OPU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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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리드(Buried)에 이은 또다른 형태의 공간제약 스릴러

ⓒ 2010 20th Century Fox


'레인스포팅(1996)'을 통해 방황하는 청춘의 심리를 스피디하고 리듬감 넘치는 카메라워크로 승화시켰으며, '28일 후(2002)'와 '28주 후(2007)'를 통해 스릴러에서도 번뜩이는 감각과 재치를 선보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를 통해 아카데미 8개 부분 석권, 골든 글로브 4개부분 석권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모두 휩쓸면서 드라마와 스릴러를 넘나드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이는 대니 보일의 신작 '127시간(2010)'이 2010년 11월 미국개봉에 이어 2011년 2월 한국에서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블루 존 캐년 등반에 나섰던 아론 랠스톤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절벽 밑으로 떨어져 바위에 오른팔이 끼어 버린 체 옴짝달짝하지 못하고 절벽 아래에 갇히게 되면서, 생존을 위해 벌이는 127시간 동안의 사투를 담은 이 드라마는 제한된 공간에 갇힌 극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 아론의 몸부림을 스릴러와 서스펜스를 가미하여 긴박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여기에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극단의 선택을 내려야 하는 인간의 심리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함으로써 스릴러와 드라마의 뛰어난 조합과 완성도를 선보일 듯 합니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127시간은 그 결말에 대해 이미 관객들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실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묘사함으로써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궁금증 보다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라는 궁금증으로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유도하는 작품이라 하겠네요.

이미 여러편의 작품에서 우리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탑 클래스의 연출가 대니 보일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우리에게 커다른 믿음을 심어주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의 일등공신은 역시 지옥에서 생환하는 청년 아론을 100% 완벽하게 연기해낸 제임스 프랑코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합니다. 거의 1인 등장인물로 극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제임스 프랭코는 팔을 잘라내야만 탈출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속에 처한 아론의 심리를 신들린 듯 연기해냈는데요.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해리 오스본 역으로 우리에게 익숙할 뿐 이렇다 할 주연작이 없는 그에게 있어서 이 127시간은 연기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듯 합니다.

ⓒ 2010 20th Century Fox

사실, 이 127시간을 보면 자연스럽게 얼마전 개봉한 영화 '베리드(2010)'가 연상됩니다. 테러리스트에 납치되어 관에 갇힌 체 땅속에 묻힌 한 남자의 상황을 충격적으로 표현한 베리드는 여러 면에서 127시간과 닮아 있습니다. 제한된 공간에 갇힌 인간의 극한상황을 이야기한 점이나, 그것을 드라마와 절묘하게 매치업시킨 장르적 크로스오버, 여기에 직전작까지는 대표적인 주연작이 없었던 베리드의 주인공 라이언 레이놀즈가 왠지 127시간의 주인공 제임스 프랭코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점, 여기에 둘 다 자신의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마련할 정도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는 점 등등... 두 작품은 마치 형제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하겠죠. 제한된 공간 안에 갇힌 극한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두 작품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여 극한 상황이라는 서스펜스에만 치중한 것이 아닌, 그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심리를 좀 더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전작들에 비해 좀 더 디테일하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흥행에 있어서는 127시간이 더 나은 평가를 받을 듯 싶습니다. 베리드를 연출한 로드리고 코르테스의 연출내공이 아무래도 대니 보일에 비할 바가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의 관 속에서 모든 씬을 찍은 베리드의 정직할 정도로 우직한 연출에 비해, 블루 존 캐년의 장관과 가족들과의 회상 씬으로 보다 더 풍부한 구성의 127시간이 아무래도 관객에게는 좀 더 다가기가 쉬울 듯 싶군요. 여기에 테러나 냉혹한 현실을 우회풍자한 베리드에 비해 미국 영화의 테마인 가족애와 한 개인의 기적적인 생환사를 다룬 127시간 쪽이 아무래도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베리드보다는 관객에게 우호적인 평가를 받을 듯 싶습니다. 

'Box Office Mojo'의 자료에 의하면 베리드는 북미에서 약 백만 달러, 전세계적으로 천7백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여 총 천8백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러가기) 반면 127시간은 북미에서만 약 천백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으며, 글로벌 수익은 아직 추산 중에 있는데요. 베리드의 제작비가 약 2~3백만 달러, 127시간이 천8백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가 들었음을 감안할 때 둘 다 제작비 대비로서는 성공적인 수익을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만, 역시 규모 나 네임밸류 측면에서는 127시간이 베리드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되는군요. 물론, 단순 흥행수익 수치 비교만으로 이 작품들을 평가하는 것은 단선적인 시각입니다만, 적어도 관객들의 호응면에서는 127시간이 좀 더 우위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83회 아카데미에서 과연 제임스 프랭코와 라이언 레이놀즈가 맞붙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작품의 직접 비교를 떠나 이 두 작품으로 인해 제임스 프랭코와 라이언 레이놀즈는 연기력을 겸비한 차세대 스타로서 발돋움 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제임스 프랭코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로 선정되면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으며, 라이언 레이놀즈 역시 데드풀 외에도 몇 작품의 주인공으로 낙점되면서 상한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적어도 헐리웃은 두 명의 젊고 유능한 연기자를 발굴한 셈입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0 20th Century Fox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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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동화의 디즈니다우면서도 픽사스러운 재해석  

ⓒ WALT DISNEY Pictures


'이 스토리(1995)'의 대성공 이후, 픽사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인어공주(1989)'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세계명작동화의 디즈니식 재해석, 그리고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는 두가지 테마는 한동안 세계 애니메이션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습니다. 동화적인 감성에 비해 재기발랄한 CG 애니메이션은 과거의 것들을 고리타분하고 전형적인 전개로 만들만큼 참신하고 신선했었죠. CG 애니메이션의 대성공은 북미에서 셀 애니메이션의 입지를 더더욱 좁게 했고, 디즈니/픽사의 대항마라 할 수 있는 드림웍스까지 등장하면서 이제 북미 애니메이션하면 과거 세계명작 동화 스타일의 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신세대의 감각에 맞는 CG 애니메이션으로 인식될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요즘의 세대에 있어서 과거 디즈니의 셀 애니메이션은 그야말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이거나 듣기만 했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셈이죠. 이제 3D 기술까지 접목되면서 애니메이션은 더더욱 2차원의 세계를 벗어나 3차원으로 진입하고 있는 중이라 하겠습니다.

픽사와 드림웍스의 전쟁이 한참 진행중이던 2009년, 토이스토리를 통해 CG 애니메이션 시대를 열었던 존 라세터가 프로듀서를 맡고 인어공주로 디즈니의 제2의 전성기를 열었던 론 클레멘츠/존 머스커가 연출을 맡은 '공주와 개구리(2009)'가 준수한 흥행성적을 거두면서, 디즈니만의 가정적이고 고전적인 스타일은 다시금 부활의 날개를 펴는 듯 보였습니다. 특히, 공주와 개구리는 픽사의 연타석 흥행 속에서도 꾸준히 '노틀담의 꼽추(1996)', '헤라클레스(1997)', '뮬란(1998)', '타잔(1999)' 등의 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며 명예회복을 노리던 디즈니가 한동안 그 의지를 접었던 셀 애니메이션으로 거둔 성적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고전적인 셀 애니메이션이 세계시장에서 의미가 있음을 증명한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리고 2010년 말, 고전적인 셀 애니메이션의 스타일과 신세기를 열어가는 3D CG 애니메이션의 매력이 하나로 합친 작품이 등장했으니 그것이 바로 '탱글드(2010)', 그림 형제의 동화 '라푼젤'을 원작으로 한 디즈니의 최신작이 되겠습니다.

ⓒ WALT DISNEY Pictures

이미 북미와 유럽에서 2010년 11월에 개봉되어 현재까지 약 4억 달러, 북미에서만 2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히트를 기록했는데요. 특히, 이 작품은 이제까지의 창작 CG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세계명작동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픽사 스타일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디즈니 스타일의 감성이 보다 더 많이 녹아들어간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닌듯 싶은데요. 출구가 없는 높은 탑에 갇혀 홀로사는 긴 머리카락의 소녀는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원작의 히로인과는 달리, 호기심 많고 쾌활한 소녀 라푼젤이 되었으며, 그녀의 목소리에 반하여 위험을 무릎쓰고 탑에 오르는 원작의 왕자는 유쾌하고 넉살좋은 왕국 최고의 도둑 라이더가 되었습니다. 원작의 우울하고 비극적인 멜로물의 분위기 역시 이에 맞춰 보다 더 코믹하고 역동적인 어드벤쳐 물로 탈바꿈 한 듯 싶은데요. 전체적으로 이러한 작품의 스타일은 디즈니보다는 픽사의 스타일에 더 가까운 듯 싶습니다. 즉, 디즈니의 고전적 감성을 픽사 스타일로 재해석한 새로운 느낌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90년도 중반부터 시작된 디즈니와 픽사의 밀월관계를 감안하면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진작에 한번쯤은 나와줬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디즈니와 픽사가 합병이 된 후에나 등장한 것을 보면 이제까지 픽사가 만든 애니메이션이 그 만큼 디즈니의 감성을 배제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간 것이라는 증명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싶네요. 그러나, 이러한 픽사식 변주는 사실 이 탱글드가 처음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과거 '몬스터 주식회사(2001)'나 '인크레더블(2004)'를 통해서도 픽사는 고전적인 가치들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시도를 하고는 했었죠. 디즈니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던 드림웍스의 파격적인 시도에 비해서는 다소 얌전하긴 하지만 픽사의 스타일은 그렇기에 오히려 대중에게 더 많은 호응을 얻는 듯 싶습니다. 온건파 개혁주의자 같은 픽사의 모습으로 디즈니의 고전적인 스타일이 21세기의 입맛에도 알맞을 정도로 잘 옮겨진 듯도 싶구요.

자, 한국에서는 2010년 2월에 개봉 예정에 있는데요. 전통적인 한국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로 미루어 볼 때 탱글드(한국 개봉명은 원작의 이름은 라푼젤 그대로입니다.)의 성공은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탱글드의 음악은 돌아온 애니메이션 음악의 거장 알란 맨킨이 맡았는데요. 과거 인어공주부터 포카 혼타스까지 이어졌던 그의 마법이 이번에도 또 한 번 인정을 받을지 역시 기대된다 하겠습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LT DISNEY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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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TSU · SUNRISE


<스탭>

◈ 감독: 미즈시마 세이지
◈ 각본: 쿠로다 요스케
◈ 제작: 선라이즈


<시놉시스> 

선구자 이오리아 슈헨베르그가 만든 인공지능 베다의 생체단말인 이노베이드 이면서도 그의 의지에 반해 스스로가 인류를 이끌고자 했던 리본즈 알마크가 진정한 이노베이터로 각성한 솔레스탈 비잉의 세츠나 F 세이에이에 의해 격퇴된지 2년 후인 서기 2,314년, 130년 전에 목성으로 떠났던 유인 탐사선 유로파의 잔해가 지구로 접근한다. 거대한 우주선의 지구 추락을 우려한 지구군의 공격에 의해 유로파는 파괴되었지만, 그 파편들은 지구의 곳곳에 흩뿌려지게 된다. 

그러나, 파편이 추락한 주변에서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자동차와 지하철 등이 무인으로 움직여 사고를 냈던 것. 특히, 이것은 뇌양자파가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즉 이노베이터로서의 자질을 가진 이들의 주위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솔레스탈 비잉은 이 이상한 현상에 주목, 세츠나와 록온이 지구권으로 돌아가 알렐루야와 소마와 조우하게 된다. 탐사선의 잔해에 붙어 있던 미지의 금속 유기체에 의한 사건임을 파악한 지구 연방정부는 이노베이터의 자질을 가진 이들을 뇌양자파 차단 시설로 급히 옮기고 이 정체불명의 금속체에게 ELS(Extraterrestrial Living metal Shapeshifter)라는 이름을 붙인다. 

한편, 그 시각 목성권에 이변이 발생한다.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가 소멸할 정도의 거대한 중력이상이 생기면서 거대한 ELS와 그 군대가 태양계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지구 연방과 솔레스탈 비잉은 미지의 생명체와 인류의 존망을 건 사투를 눈앞에 두게 되었는데...


미지의 우주와의 조우, 이노베이터로 각성한 인류의 첫 시련

담 시리즈의 특징이자 정체성이라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갈등과 오해,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전쟁과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매번 시리즈가 리부트되고 새로운 건담과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이 기본적인 구도는 바뀌지 않았었죠. 토미노 요시유키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턴에이 건담도, 결국은 인간과 인간의 갈등을 테마로 했으며, 새로운 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건담 시드 시리즈와 건담 더블오 시리즈 역시 미흡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갈등과 드라마를 작품의 축으로 삼았다 하겠습니다. 

2009년 종영되며, 시드 이후 새로운 건담 시리즈로, 우주세기의 그늘을 나름 성공적으로 탈피한 건담 더블오가 2010년에 이르러 새로운 극장판을 공개하게 됩니다. 그것도 총집편 형태가 아닌, 오리지널 극장판으로 말입니다. 이는 91년 개봉되었던 '기동전사 건담 F91(1991)'이후 실로 19년만의 완벽한 오리지널 극장판으로, 더블오 시리즈가 독립된 세계관으로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왔으며, 동시에 상업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라 하겠습니다. 특히, 제타 건담 이후 매번 이루어져 왔던 건담 시리즈의 주역기 교체는 이번 극장판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져 시즌1과 시즌2에 이어 극장판까지 전 건담 주역기가 교체되면서 프라모델 라인업에 있어서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19년만에 등장한 오리지널 건담 극장판은 놀랍게도 인간과 인간의 갈등을 다룬 것이 아닌, 인간과 외우주에서 온 이상생명체와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전체 로봇 아니메로 볼 때는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입니다만, 항상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의 갈등을 테마로 내세웠던, 건담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이야기라 하겠는데요. (물론, 퍼스트 건담의 최초 기획안은 우주인과의 전쟁을 이야기로 하려 하긴 했지요.) 뉴타입과 시드에 이은 인류의 진화의 테마 이노베이터로 각성을 시작한 인류가 외우주로의 진출을 모색하면서 우연치 않게 미지의 우주생명체와 조우하게 되고, 이를 통해 지구가 아닌 새로운 세상으로 한발을 내딛으려는 인류가 낡은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미래의 존재로 각성하기 위한 첫번째 갈등과 시련을 겪는다라는 주제를, 제작진은 미지의 우주와의 조우라는 소재로 풀어 나가려 했다고 보입니다.


엔터테인먼트와 드라마의 조율에 실패한 19년만의 오리지널 건담 극장판

간형 생명체가 아닌 생체와 비생체에 자유로이 침식이 가능한 금속 유기생명체라는 점에서 더블오에 등장하는 인류의 적 ELS는 위협적이고 대적하기 힘든 존재로 묘사됩니다. 게다가 그 수 역시 지구 연방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지요. 이는 항상 비슷한 세력을 갖추고 국지적으로 반목과 소요를 거듭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했던 기존의 건담 시리즈와는 다른 전개를 보여줍니다. 압도적인 ELS의 힘 앞에 인류 절멸의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모빌슈트라는 개인용 병기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싸움에 나서는 이야기는 거대한 스케일과 위압감으로 관객을 압도하려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풀어나가야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나머지 여러 숙제를 안은 체 구멍난 서사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거대한 스케일에, 이제까지 등장한 시리즈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등장하여 이야기의 한 조각씩을 책임집니다만, 이로 인해 원작을 감상하지 않은 이들은 이야기의 전개를 알 길이 없고, 동시에 2시간이라는 짧은(물론, 극장 아니메로서는 꽤 긴) 러닝타임을 수많은 인물들이 나눠가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필연적인 깊이의 부족은 TV 시리즈에 이어 여전히 서사가 엉성한 더블오의 맹점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TV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무거운 소재를 다룬 방대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풀어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각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니 결국 깊이와 밀도를 모두 상실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 결과 위기에서 절정까지는 그럭저럭 얼개를 유지하지만, 세츠나와 퀀터가 등장하여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절정과 결말에 이르는 부분은 시간에 쫓기듯 부실하고, 결과적으로 직전까지의 전개에 비해 허술하고 허망한 느낌을 줍니다. 뭔가 대단한 여러가지를 잔뜩 풀어넣고 서투르게 중요한 것들만 주섬주섬 해결하게 되는 것이죠.

TV 시리즈에서도 그랬듯이 더블오는 만화영화로서는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려 했으면서도 드라마 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하려하면서 생긴 불협화음을 극장판에서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 너무 많은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극의 흐름을 자꾸 끊어버리고 있지요. 지구연방 소속의 이노베이터 데카르트 대위 같은 경우, 상당히 강렬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극 중간에 허무하게 퇴장했으며, 몇 컷만 등장해도 되었을법한 사지 크로스로드와 루이스 할레비는 가뜩이나 이야기거리가 많은 극장판의 많은 부분을 침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지가 극 초반에 관람하는 영화(라 쓰고 용자물이라 읽는다) '솔레스탈 비잉'도 이야기와 그닥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러닝타임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연출 상의 미스라고 부를만 합니다.

거기에 건담 시리즈에서 항상 변하지 않고 등장하는 거대한 레이저 병기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여 식상함을 안겨주고 있으며, 상상 이상의 스피드로 싸우는 모빌슈트의 모습은 과연 모빌슈트가 필요한 전투일까 싶을 정도로 그저 쏘고 피하고 할 뿐입니다. 일부 팬들의 말마따나 모빌슈트로서의 정체성, 즉 인간형 기동병기 다운 모습이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모빌슈트의 매력은 상실되었으며, 그것은 솔레스탈 비잉의 주역 건담 4기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오히려 그레함 에이커의 브레이브와 그의 브레이브 편대가 전투기 형태와 MS 형태의 적절한 조합과 연계 전술로 인해 이 작품에서 건담 마이스터들보다 더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군요.

ⓒ SOTSU · SUNRISE



거대한 스케일, 익숙한 전개. 상실된 혁신의 의지

지의 우주인과의 조우는 이미 건담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는 마크로스 시리즈를 통해 끊임없이 다루어져 온 것으로, 특히 더블오 극장판은 그 중에서도 마크로스 시리즈의 84년도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1984)'와 비교할만 합니다. 많은 등장인물들을 늘어놓지 않고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면서 드라마와 로맨스, 볼거리의 균형을 이룬 마크로스 극장판에 비해 더블오 극장판은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로 인해 드라마는 빈약하고, 펠트의 로맨스는 애절함이 느껴지지 않으며, MS 전투씬은 자체로서는 현란하고 스피디합니다만, 결말에서는 진부하고 지루하게 전개됩니다. 

형체가 불분명한 압도적인 우주 생명체와의 일전은 곤조의 디지털 TV 로봇물 '반드레드(2000~2001)'을 연상시키는데요. 화끈한 로봇의 액션에서 더블오는 장면장면에서는 10년전의 CG로 완성된 반드레드에 뒤지지는 않습니다만, 서사의 밀도와 짜임새는 오히려 한수 아래의 작품인 반드레드에 비해 부실해 보입니다. 보다 더 높은 관객층을 상정한 듯한 더블오의 이야기가 반드레드의 그것보다 짜임새가 덜한 것은 TV 시리즈로 구성되어 서사의 여유가 생긴 것임을 감안할 때 명백히 더블오의 이야기가 2시간 안에 풀기에는 너무 방대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제작된 로봇물 중 가장 출중한 완성도와 재미를 보여준 '천원돌파 그렌라간(2007)'의 그것에 비하면 더더욱 세련되지 못합니다. 익숙한 전개 속에 차별화된 볼거리는 그저 현란하게 움직이는 MS의 전투씬 밖에 없었으며, 주인공인 세츠나와 주역기인 퀀터가 미지의 우주생명체와 싸우는 것이 아닌 대화와 소통을 위한 키로 사용되면서 주인공의 활약이 거의 없는 이상한 모양새의 로봇 액션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로봇물로서 더블오는 지나치게 성숙한 주제의식을 담으려 했던 것이 폐인이라 봅니다. 오히려 반드레드나 그렌라간처럼 압도적인 적을 맞이하여 이노베이터의 힘을 최대한 각성하여 싸우는 세츠나와 솔레스탈 비잉의 모습을 화끈하게 그리는 엔터테인먼트에 치중했으면 더 좋은 완성도와 짜임새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엔터테인먼트라는 정체성을 가진 체 심오한 드라마와 주제를 연출하려 했습니다만, 연출가의 역량의 부족, 그리고 각본의 허술함은 이러한 두 상반된 요소의 조율에 있어서 실패한 모습을 보였다 하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작품의 완전한 망작이라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8억4천만엔의 흥행수입을 올리며 2010년 아니메 흥행랭킹 11위에 오르는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죠. 재미 역시 허술한 짜임새가 거슬리긴 했지만, 극장을 뛰쳐나오거나 모니터를 꺼버릴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좀 유치하긴 하지만 볼만합니다.

여러 아쉬움 속에서 더블오 시리즈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 듯 합니다. 극장판의 전개로 보아 사이드 스토리를 다룬 스핀오프나 프리퀄 외에 더블오 시리즈의 시퀄이 계속될 여지는 없어 보이는군요. 이야기의 짜임새는 아쉬웠고,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사실들도 많았습니다만, 어찌되었든 가장 깨끗하게 마무리를 지은 시리즈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더블오는 새로운 건담 시리즈로서 많은 것을 시도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공업 디자인적 컨셉을 도입한 더블오의 MS는 이전까지의 건담 시리즈와는 또다른 매력을 보여주었으며, 미지의 생명체와의 전투를 소재로 하는 등, 새로운 시도들이 인상적이었다 하겠습니다. 이제 건담은 다시 우주세기의 이야기로 바톤이 넘어간 듯 싶지만, 새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건담의 시도는 아직도 멈추지는 않을 듯 싶네요. 그땐 부디 이야기에 있어서도 완성도가 보장된 작품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 SOTSU · SUNRISE


덧붙임 1) 타이틀을 책임지고 있는 건담 더블오는 그 어떤 활약도 하지못한체 타이틀의 의미를 퇴색시키신다는...

덧붙임 2) 엔딩 크레딧이 끝난 뒤에는 무려 이오리아 슈헨베르가가 젋었을 적 모습으로 등장해서 작품의 주제와 테마를 다시 한번 거창한 어조로 설명 해주십니다만, 본편의 서사가 엉망이라 그닥 와닿지는 않습니다.

덧붙임 3) 연극에서 독백을 하듯 자신의 생각을 토해내는 등장인물들은 토미노 요시유키가 처음 만들어낸 씨퀀스로 당시에는 신선하고 극적인 느낌이지만, 30년 가까이 일본 아니메 단골 시퀀스로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뭔가 극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느낌입니다. 뭔가 어설픈 개똥철학을 서로서로 읊조리고 있으니 이야기가 더 유치해지는 듯.  

덧붙임 4) 최초에 ELS와 결전을 벌이는 지구연방합대의 사령관은 김 중장님이랍니다. 멋진 대사를 일어로 날려주시는 걸 보니 제일교포시겠군요. -0-;

덧붙임 5) 퀀터의 진정한 매력은 극장판이 아니라 프라모델로 감상할 수 있을 듯.


<참고 사이트>

[1] 劇場版 機動戦士ガンダム00 -A wakening of the Trailblazer-,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OTSU · SUNRISE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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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턴 호러 판타지, 전작 '리전'의 전례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

ⓒ 2010 Sony Pictures


민우의 코믹스로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프리스트'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실사영화로 2011년 3월에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감독은 '리전(Legion, 2010)'을 통해 이미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여 그닥 성공적이지 못했던 장편영화 데뷔를 마쳤던 신예 스콧 챨스 스튜어트. 주인공은 '다빈치코드(2006)'에서 사일러스 역을 맡아 우리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영국계 배우 폴 베타니가 맡았습니다. 폴 베타니는 스콧 감독의 리전에서도 주인공인 대천사 미카엘을 맡았는데요, 감독이나 주인공이나 모두 비슷한 전작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리전은 프리스트를 위한 일종의 습작물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 '겟썸(2008)'의 떠오르는 신예 캠 지겐뎃, '미션 임파서블3(2006)'과 '다이하드 4.0(2007)' 등에서 뇌쇄적인 매력을 선보인 매기 큐,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로한 왕국의 기마대 대장으로 활약했던 칼 어번, 관록의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 A급 블록버스터에 근접한 캐스팅 파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2010 Sony Pictures

아시다시피 영화 프리스트는 묵시록적인 색체를 보여주었던 코믹스의 원 줄거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등장인물도 원작의 인물들이 아닌 오리지널 캐릭터들로서, 이야기와 인물들에 있어서는 전혀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별개의 작품인 셈입니다. 상대하는 적들도 타천사들이 아닌 흡혈귀이며,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스스로를 복수의 도구로 만들어버린 원작의 주인공 이반 아이작과는 달리 신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인물 프리스트(이름없이 그냥 프리스트로 불리는 듯)가 주인공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종교계의 반발을 의식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군요. 오히려 이런 설정은 형민우 작가의 프리스트보다는 일본 아니메 중에서 교황청 소속으로 흡혈귀들과 싸우는 신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요시다 스나오(글)/토레스 시바모토(그림)의 코믹스 '트리니티 블러드'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제작사가 소니인 것으로 보아 기획단계에서 이런 컨셉의 이야기가 프리스트의 반기독교적 색체를 밀어냈을 가능성도 의심되긴 하네요.

원작 프리스트가 북미에서 그다지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에 원작의 파격적인 각색이 더 용이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적어도 주인공이라도 같은 이름과 비주얼을 사용했을 법도 한데, 철저히 새로운 비주얼과 스토리를 선보인 점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군요. 프리스트는 온라인 게임으로도 2002년 제작되었으나 큰 인기를 끌지 못해 서비스가 중단된 적이 있는데요. 영화는 원작과 전혀 다르고, 온라인 게임은 일찌감치 서비스 중단을 하는 등 여러모로 미디어 믹스 면에서는 각개 전투가 행해지면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실사영화가 좀 더 빨리 진행되었거나 실사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게임기용 타이틀로 발매되었다면 보다 더 성공적인 원소스 멀티유즈가 되었을 법도 한데 말이죠.

ⓒ 2010 Sony Pictures

일단, 원작과 너무도 다른 이야기 전개는 원작 팬들에게는 큰 실망감을 줄 듯 합니다. 새로이 각색된 스토리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뱀파이어와의 결투인지라 식상한 부분도 있구요. 더군다나 스콧 감독의 전작 리전이 프리스트와 비슷한 장르로서 평단의 혹평과 관객의 싸늘한 외면을 받았던 전례 덕에 프리스트에 대한 기대감을 반감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폴 베타니가 드라마 중심의 작품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인 반면, 액션물에서는 존재감이 미약하다는 개인적인 감상도 있구요. 다만, 작품 스타일이 리전과는 달리 호러 판타지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는지라 괴기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폴 베타니에게 리전보다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 기대도 공존하기는 합니다.

무엇보다 원래 연출을 맡을 예정이었던 샘 레이미가 빠졌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 영화의 기대치를 완벽하게 깎아내린 일등공신이 아닌가 합니다. 적어도 이야기의 얼개가 느슨한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스토리텔링에 비주얼만 화려한 작품이 될 듯한 예감이 드는데요. 예고편 영상은 분명 화려한 비주얼과 고딕풍의 암울한 비주얼로 인해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만, 과연 얼마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줄지는 여전히 물음표라 할 수 있겠습니다.

☞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 보러가기 (클릭)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ony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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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의 새로운 시도, 마케팅 전략과 작가주의의 절묘한 접목


'드보이(2003)', '박쥐(2009)'의 거장 박찬욱 감독이 동생 박찬경 미디어 아티스트와 함께 스마트폰(정확히 말하면 아이폰4)을 사용하여 촬영한 독특한 단편영화 '파란만장'이 2011년 1월 27일 CGV를 통하여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감독이 단편영화라는 비상업적 분야에 도전을 했다는 점에서 비인기 분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끌게 했다는 의의가 있구요. 또하나는 스마트폰이라는 보편적인(?) 장비로도 영화 촬영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에서 또한 의의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스마트폰만을 사용하여 촬영한 작품이지만, 영화적인 연출을 위해 고성능 렌즈를 부착하는 등, 여러가지 부가장비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500만 화소에 720p의 HD 동영상의 녹화가 가능한, 카메라폰으로서는 고성능의 카메라를 장착한 아이폰이지만 야간촬영이나 근접촬영과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장비 촬영장비가 스마트폰이라는 점에서 많은 영세한 독립영화 제작진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 셈입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아이폰 4로 보다 더 고품질의 동영상 촬영을 위한 OWLE사의 아이폰 액세서리가 출시되고 있더군요. 물론, 일반인에게는 고가의 장비이지만, 일반적인 영화장비에 비해 저렴한 이 장비들은 저예산의 장비로도 훌륭한 영상미를 구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가 된 셈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촬영하겠다는 이야기는 Olleh CF를 통해 TV에서들 많이 접하셨을 줄 압니다. 저는 그것이 단순히 CF를 위한 영화적 영상을 찍겠다는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이렇게 극장에서 상영가능한 영상물을 내겠다는 소리인줄은 어제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거장은 뭔가 다르긴 하달까요. 작품은 2010년 11월 17일에 크랭크인하여 불과 열흘만인 11월 26일에 모든 촬영을 끝냈다고 하는군요.

영화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낚시를 하던 한 남자(오광록 분)가 낚시에 걸린 무언가를 끌어올렸더니 그것이 왠 여인(이정현 분)이었다는 전개는 현실과 판타지가 미묘하게 조합된 박찬욱표 영화답다고 해야겠습니다. 30분이라는 러닝타임과 장비의 한계상 움직임이 많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정지영상과 대화 중심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보는데요.(제작기를 들어보면 이정현이 강도높은 액션장면을 찍었다는 소리도 있으니 어쩌면 이 예상은 틀릴지도 모르겠네요.) 특히, 이 영화는 메인 카메라인 스마트폰 외에도 주변의 스탭들이 자신들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사용해 별도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여 보여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즉, 다양한 각도에서 비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장면들이 추가된 다큐멘터리적인 연출이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때문에 네이버 영화에서는 이 영화의 장르를 판타지와 다큐멘터리로 정의한 듯도 싶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스타 감독의 단편영화라는 작가주의적 의의 외에도, 이 작품은 이러한 작가주의를 실로 기막히게 스마트폰의 마케팅 전략과 연결시킨 마케팅 전략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이미 CF를 통하여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촬영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을 대중에게 심어준 다음, 번듯한 영화로 극장에 개봉시킴으로써 영화를 본 관객들이나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아, 스마트폰으로도 이렇게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게다가 박찬욱 감독이 만들었네!'라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브랜드 이미지의 위상을 드높인 케이스라 하겠는데요. 그간 서비스에 비해 CF에서 더 탁월한 감각(?)을 선보였던 KT가 CF와 실제 영화제작을 연결시키면서 보다 수준높은 비즈니스 전개를 선보였다 하겠습니다.

물론, CF와 영화를 접목시키는 마케팅 전략은 이미 모토 클래식 CF에 사용된 류승완 감독/정두홍 무술감독의 '타임리스'나 윈저 CF에 사용되어 화제를 모았던 이재규 감독/이병헌 한채영 주연의 '인플루언스' 등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습니다만, 별도의 단편영화로 만들어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점에서 이번 박찬욱/박찬경의 파란만장은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박찬욱/박찬경 형제는 파란만장을 기점으로 'PARKing CHANce'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여 단편영화나 다큐멘터리 등 실험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영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부디 이 거장의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단편영화나 실험영화들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으면 합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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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ITO Production · TMS · FILMLINK


<스탭>

◈ 감독: 데자키 오사무
◈ 원작: 사이토 타카오
◈ 제작: 도쿄무비신사


<시놉시스> 

세계적인 부호 레오나르드 도슨의 아들인 로버트 도슨의 암살 의뢰를 받은 전설적인 스나이퍼 듀크 토코. 의뢰받은 일은 한치의 오차나 실수도 없이 반드시 수행해 내고야 마는 지상 최고의 킬러인 그의 암호명은 고르고 13이다. 도슨 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순간, 도슨 회장의 앞에서 로버트는 고르고 13의 저격에 의해 그만 즉사하고 만다.

로버트 도슨의 암살 이후, 그는 또다시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신흥 마피아의 보스 닥터Z의 암살 의뢰를 받는다.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닥터Z의 암살에 성공한 고르고13에게 돌연 습격이 시작된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고르고13은 닥터 Z 암살의뢰인을 찾아가지만, 이미 그는 고문을 당하고 숨을 거둔 뒤였다. 숨쉴 겨를도 없이 몰아치는 암살자들의 습격과 군대 수준의 화력을 앞세운 공격. 고르고 13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체불명의 적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과연 고르고 13은 누구에게 습격을 당하는 것일까. 사방에서 밀려드는 강력한 적들을 하나 둘 물리치며, 고르고 13은 그 의문을 풀어나가기 시작하는데...


아니메라마, 하드보일드 액션으로 부활하다

'일의 죠(1970)', '에이스를 노려라(1973)', '보물섬(1978)', '베르사이유의 장미(1979)'와 같은 70년대의 명작 애니메이션을 관통하는 연출가 데자키 오사무의 특징은 (영상미학의 대가라 불리는 그의 불세출의 연출력을 제외하고) 만화영화임에도 성인들이 즐길 수 있는 인간 드라마에 있다 하겠습니다. 밑바닥 인생에서 세계 챔피언으로 우뚝선 뒤 자신의 젊음을 하얗게 불태웠던 풍운의 권투선수 죠, 수많은 라이벌과의 경쟁을 통해 진정한 테니스 에이스로 성장해 가는 소녀 오카 히로미, 악당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가슴에 사나의 로망을 아로 새겨넣었던 외다리 사나이 캡틴 실버, 여자로 태어나 운명을 극복하고 불꽃 같은 삶은 살다가 간 오스칼 프랑소와에 이르기까지... 그가 연출하는 만화영화의 등장인물은 드라마틱한 이야기 속에서 실사영화 이상의 생동감으로 팬들을 사로잡고,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데자키 감독의 작품들이 모두 시대를 넘어서 지금까지 사랑받고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만화영화의 범주를 넘어선 드라마틱한 인간 드라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데자키의 스승 테즈카 오사무가 창립한 무시 프로덕션은 일본 만화영화의 두가지 방향성을 제시했었습니다. 하나는 디즈니에 필적하는 만화영화를 만들자는 것으로, 이는 전통적인 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는 압도적인 제작력을 가진 디즈니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테즈카 오사무로 하여금 리미티드 기법이라고 하는 일본 아니메 고유의 제작기법을 낳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고품격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실험적 도전이었습니다. 이제는 성인 만화영화의 본산으로 불리는 일본 만화영화로서도 당시 이 시도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 아래 만화영화의 일본식 발음인 아니메이숀과 드라마의 합성인 '아니메라마'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무시 프로덕션의 아니메라마 3부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천일야화(1969)', '클레오파트라(1970)', '슬픔의 벨라돈나(1973)'로 이어지는 아니메라마 3부작은 영상예술로 승화된 비주얼과 이야기로 성인 만화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만, 지나치게 앞서간 작가주의와 무리한 재정투입으로 인해 무시 프로덕션의 도산을 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무시 프로덕션의 수많은 후학들에게 큰 경험과 교훈, 그리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게 되었지요. 무시 프로덕션 출신으로 현재에 이르러 명장으로 칭송받는 스기이 기사부로, 린 타로, 토미노 요시유키, 타카하시 료스케 등의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들은 모두 만화영화의 범주를 넘어선 깊이 있는 드라마로 일본 아니메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던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는 이번에 이야기할 데자키 오사무와 그의 작품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이야기이구요. 앞서 이야기한 70년대 그의 명작들은 하나같이 아니메라마가 지향했던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데자키만의 영상미학이 가미되어 시대를 넘어서도 하나같이 칭송받고 있지요.

그렇다면, 사이토 타카오가 창조해낸 희대의 스나이퍼로 일본 성인만화에 큰 족적을 남긴 전설적인 인물 고르고 13은 과연 아니메라마의 계승자이자 영상미학의 대가인 데자키 오사무의 손에 의해 어떻게 만화영화로 태어나게 되었을까요. 강렬한 하드보일드 액션과 아니메의 스타일리스트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큰 기대를 가질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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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섹스를 고급화시킨 데자키의 영상미학의 절정

록 이제까지의 필모그라피가 거의 대부분 성인취향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데자키의 작품은 80년대에 들어와 좀 더 과격하게 변모합니다. 직전년도에 연출한 '스페이스 어드벤쳐 코브라(1982)' 역시 테라사와 부이치의 동명 SF 하드보일드 액션물을 원작으로 한 성인취향의 액션 영상을 선보였는데요. 이전과는 달리 육감적인 여성미의 강조와 잔인한 폭력씬으로 인해 드라마성이 강조된 이제까지의 데자키 작품에 비해 자극적인 느낌을 주었다 하겠습니다. 물론, 내일의 죠나 보물섬 등에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 장면을 연출해온 데자키 감독입니다만, 코브라는 몽환적인 연출로 인하여 액션장면에서는 호흡이 느려지고, 이야기는 허공에 뜬 느낌을 주었지요.

이듬해에 나온 고르고 13은 그런 면에서 분명 코브라에 비해 템포도 빠르고 긴장감도 배가되었습니다. 고르고 13에게 암살당하는 인물들의 공포에 질린 표정은 다소 과장된 표정으로 죽음의 문턱에 선 인간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해 냅니다. 여기에 특유의 하모니 기법은 정과 동을 오가는 작품의 분위기에서 매순간마다 강렬한 하이라이트를 선사하게 되지요.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회심의 결정타를 날리는 순간에 어김없이 화면은 정지되며 극화체의 일러스트가 화면을 대신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연출은 실로 데자키 감독의 작품들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내는 기가 막힌 수법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역동적인 액션장면 사이사이에 등장하여 역동성을 오히려 배가시키는 실로 데자키만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지요.

원작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표현에서도 이 작품은 도전적인 장면들을 선보입니다. 천일야화에 이어 만화영화에 베드씬을 그려넣는 파격을 선보인 것이죠. 스기노 아키오에 의해 그려진 육감적인 여성들은 실로 만화영화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관능미를 뽐내고 있습니다. 고르고에게 남편을 살해당한 비련의 여인 로라가 암살자 스네이크에게 능욕당하는 장면은 괴기스럽고 몽환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고르고와 조력자 리타와의 정사장면 역시 어두운 음영과 실루엣으로 고혹적으로 표현해 냅니다. 이러한 선정적 묘사는 과거 아니메라마 3부작 정도는 아닐지더라도 노골적인 컷을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묘사하고 있지요. 

감각적인 화면분할은 동시간대에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묘사를 실로 기막히게 표현해 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기법이지만 이러한 화면분할을 통해 고르고 13은 스파이 액션 영화로서의 진면목인 서스펜스의 느낌을 잘 살려냅니다. 오디오의 시간대와 비디오의 시간대를 달리하는 연출방식, 중요한 장면을 반복해서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등, 작품은 만화영화로서는 절정의 테크닉과 수많은 시도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동문지간인 린타로 감독 역시 즐겨 사용하는) 투과광 기법과 입사광 기법까지 선보이는 등, 고르고 13은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데자키의 모든 영상미학이 집결된 영상미학의 결정체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3년 뒤에 자신의 영상미학을 모두 쏟아낸 린 타로 감독의 사무라이 액션물 '카무이의 검(1985)'과도 비교된다 하겠습니다. 움직이는 그림에서 보다 더 고도의 기법이 적용될 여지가 많은 만화영화의 특성상 두 거장은 액션물을 연출하면서 실로 절정의 영상미학을 담아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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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CG 도입, 과유불급으로 인해 실패한 시도

화영화로서 시도할 수 있는 최고의 영상연출을 화면에 쏟아부은 것 외에도 고르고 13은 아니메史의 한획을 그을 또하나의 영상적 시도를 선보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 최초로 만화영화에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한 것인데요. 당시 컴퓨터 그래픽은 디즈니가 제작한 '트론(1982)'과 같은 실사영화에 등장했을 뿐 전세계적으로 영화나 만화영화에서 시도한 사례가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즈니조차도 절반의 성공에 그친 체 막을 내려야 했던 CG를 불과 1년 뒤에 만화영회에 전격 도입한 데자키 오사무와 제작진의 시도는 실로 엄청난 모험이었던 셈이죠.

직전년도의 극장판 코브라에서도 4채널 돌비 입체 음향 시스템을 일본 영화 최초로 도입했던 데자키 감독은 이번에도 영상예술에 있어서 선구적인 시도를 보여준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그의 도전적인 모험은 안타깝게도 불발로 그치게 됩니다. 당시의 CG는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자본과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었기에, 이로 인해 작품에서 오프닝 씬(그나마 여기서도 Full CG가 아닌 실사 스톱모셥과의 조합으로 제작)과 라스트의 헬기 전투 씬 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던 겁니다. 게다가 조악한 당시의 CG 기술로는 지금과 같은 셀과 CG의 결합을 시도할 수 없었으며, 질감의 표현 역시 셀로 그려진 아니메 컷과 너무도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던 탓에 전체적으로 영상 속에서 너무 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물론, 이 조악한 CG가 컷에 많이 사용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작품의 전체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만, 세계 최초로 CG를 도입한 야심찬 시도라는 의의에 부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포스터의 COMPIX(COMputer와 PICture의 조합어.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만화영화라는 의의를 부각하기 위한 신조어라 볼 수 있을 듯)라는 홍보가 무색한 이 모습은 결과적으로 관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는 부작용만 낳았습니다.

획기적으로 시도한 CG의 아쉬움 외에도 과도한 원작의 재해석은 원작의 팬들에게는 외면을 받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운 액션물이지만 너무도 판타지스럽게 표현된 데자키의 영상미학은 사실적이고 냉소적인 암살자 고르고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잔인한 폭력묘사와 선정적인 장면 역시 극장 애니메이션으로서는 흥행의 저해요소이기도 했을 겁니다.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 성공할텐데 고르고 13은 여기저기 마니악한 측면이 눈에 띈 작품이라고 해야 겠지요. 여러가지 흥행의 저해요소는 결국 놀라운 영상미로 무장된 이 걸작에게 흥행참패라는 굴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게 됩니다. 전년도의 코브라에 이은 고르고 13의 흥행 패배는 70년대를 풍미했던 데자키 오사무로 하여금 도미를 결심하게 되는 하나의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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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아니메의 진수를 보여준 안타까운 걸작

록 최초의 시도라는 의의 외에는 작품에서 사족이 되었던 CG 기술이나 성인 등급의 과격한 표현 수위로 인해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한 고르고 13이었지만, 데자키 오사무의 모든 영상미학이 담겨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성인용 액션 만화영화 이상의 작품성과 아우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실사영화를 무색케 하는 각종 영화적 연출기법과 시퀀스로 인해 아니메의 영상 레벨을 한차원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또한 이 작품은 과거 아니메라마에서 보여주었던 판타지스러운 연출기법들에 의해 하드보일드 액션물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가져다 주는데요. 바로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하드보일드 액션과 판타지스러운 연출기법의 조합이 80년대 들어 사실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팬들의 취향과 궤를 달리하며 인기몰이에 실패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영상 테크닉을 지양하고, 화끈한 액션물에 충실한 연출방식을 선보였다면, 고르고 13은 원작의 팬들 뿐만 아니라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작품의 상업적인 성공여부나 장르적 특징과는 어울리지 않는 영상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선보인 데자키의 모든 영상 테크닉이 전부 녹아져 있으며, 거기에 더불어 CG라는 당시로서는 실로 선구적인 시도로 인해 세월이 흘러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선정성과 폭력성이라는 두 키워드에 의해 성인용 아니메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고르고 13은 영상적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성인용 아니메라는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성인 아니메의 걸작을 만나고 싶다면 고르고 13은 놓치지 말아야할 작품 중 하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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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1] 고르고 13 (1983~2008) by 엘로스, 별바다의 서고
[2] 出﨑統,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AITO Production · TMS · FILMLINK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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