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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 Worldwide Limited / ⓒ Thinking Tree Publishing Co., Ltd. for Korean Edition

장의 미술작품은 사람을 압도하는 예술적 감동을 안겨주는 것부터 이해할 수 없을만큼의 난해함으로 작품세계로의 범접 자체를 거부하는 작품(물론, 실제로는 보는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일테지만)까지 다양하다. 물론 대게의 예술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에 정서적 감동을 주고 마음의 양식을 주는 것이지만, 언젠가부터 이들 예술작품은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들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교육을 받고 교양을 갖춘 상류층이나 예술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그 기회가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 예술작품들은 소위 있는 사람들이나 가방 끈이 긴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물론, 일부 그림들은 왕이나 귀족의 요청으로 인해 그려지고 그들의 개인 소유가 된 적도 있다.) 그것은 작가의 예술적 욕구로 인해 창조되고,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있었던 것이다. 예술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은 작가나 일부 소유욕이 강한 수집가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시대가 서서히 변화하면서 생겨난 결과였다.

값비싼 가치를 지닌 작품을 세상의 해로운 것들로부터 보존하기 위해서 예술 작품은 지속적으로 엄중한 관리와 감시를 받아야만 했고, 작품을 보기 위해서 비싼 대관료(물론, 일반인에게 저렴하게 공개되는 적도 있었지만)를 지불하게 되면서부터 서서히 대중과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누구와도 스스럼 없이 지내던 평범한 한 소녀가 만인이 사랑하는 스타가 되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자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관람의 장벽이 점점 높아지자, 작품이 지닌 가치만큼 작품을 보고자 하는 이들 역시 그에 걸맞는 수준 혹은 사회적 지위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 어느덧 순수 예술은 일반인들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는 대중예술이라는 상대적으로 관람장벽이 낮은 대안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모니카 봄 두첸의 '세계명화 비밀'은 이렇게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거리를 두면서 멀어져버린 순수 예술 작품 중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대부분 없으리라 여겨지는 8점의 걸작에 대한 숨겨진 뒷 이야기를 통해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명작 예술들과 일반인들의 거리를 좁히려 한 책이다.

그녀의 책을 여는 순간, 우리는 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또는 미술 전람회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받는다. 저자는 마치 예술품을 보러온 일반인들에게 예술품에 대한 가이드를 해주는 큐레이터처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딱딱한 예술적 가치와 작품의 해설에 치중하기 보다 그녀는 작품을 창조해낸 예술가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예술가들이 살았던 시대, 그 속에서 이 걸작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이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작품을 창조하는 중간과정과 만들어 지고 난 후 쏟아진 주변의 감탄 혹은 혹평. 어느 새 이야기는 작품 하나의 해설이 아닌,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그 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8점의 명작을 주제로 이야기가 이루어지지만, 그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동시대의 작품이나 그들이 창조했던 또다른 걸작들, 단순한 스케치나 소묘부터 그들이 영향을 준 후대작가의 그림까지, 전람회는 8점 밖에 전시되지 않았을거라 생각했던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로 가득한 풍성한 전람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하여 작품에 대한 해설이 이루어지지만, 수많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의 이야기 역시 인용되면서 작가의 이야기에 탄탄한 근거가 되어준다. 지금에 와서는 걸작이라는 칭송을 받는 이 작품들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노골적인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고호나 피카소, 잭슨 폴록과 같은 괴짜 화가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귀동냥으로 들어왔던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서는 구체적이고 생생하여 흥미롭기까지 하다.

예술가의 생활과, 작품이 제작되기까지의 비화, 그리고 예술사의 흐름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장단의 조절에 성공한 그녀의 필력은 예술작품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쉽고 또한 그 깊이가 훼손되지 않고 있다. 예술에 문외한인 내가 읽기에도 무난한 수준이었으니... 단지 여덟 작품에 대한 이야기 만으로 더 이상의 후속작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후속작들은 그녀의 저서와는 별개의 것들이다.

전시회나 순수예술이 자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생각했던 일반인들에게 예술의 참맛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해주는 멋진 시식회와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근래에 갈수록 높아지는 책 값을 고려할 때 엄청난 수의 예술작품의 컬러사진이 첨부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하다는 것 또한 예술로의 장벽을 낮춰주는 것 같은 모양새이다.

모니카 봄 두첸의 세계명화 비밀은 국내에서는 2002년에 초판되어 2006년 2월에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 이 포스트는 제4회 YES24 블로그 축제 티스토리 상에 어줍잖게 선정된 글입니다.


 

세계명화 비밀 - 10점
모니카 봄 두첸 지음, 김현우 옮김/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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