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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헌터 D (1985), 吸血鬼ハンターD / Vampire Hunter D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정보>

◈ 원작: 키쿠치 히데유키 (菊地秀行)
◈ 감독: 아시다 토요오 (芦田豊雄)
◈ 각본: 히라노 야스시 (平野靖士)
◈ 캐릭터 디자인 원안: 아마노 요시타카 (天野喜孝) 
◈ 캐릭터 디자인인도리 코야 (いんどり小屋, 스튜디오 라이브 공동 팬네임)
◈ 작화감독
: 마쯔시다 하루미 (松下浩美)
◈ 미술감독: 마쯔다이라 사토시 (松平聡)
◈ 음악/노래: 코무로 테쯔야 (小室哲哉) / TM Network
◈ 제작: 사토 토시히코 (佐藤俊彦)
◈ 제작사: 아시 프로덕션 (葦プロダクション)
◈ 저작권: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일자: 1985.12.21 (극장개봉일)
◈ 장르: 액션, 판타지, 호러
◈ 구분/등급: OVA / 고교생 이상 관람가 (R)


<시놉시스>

먼 미래인 서기 12,090년, 핵전쟁이 휩쓸고 간 세계는 귀족이라 불리는 뱀파이어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인간들은 그저 귀족들의 먹을거리로 전락하고 수많은 괴물들과 악마들이 지상 위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불멸의 존재로, 강대한 과학력까지 손에 넣은 뱀파이어들은 나날이 번창해가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그들은 서서히 타락하고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들 밑에서 노예로 살아오던 인간들의 힘은 다시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반격에 의해 귀족의 힘은 현저히 약해졌고, 그 세력이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닌 귀족은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귀족들을 물리치기 위해 사람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뱀파이어 헌터를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귀족과 인간의 혼혈인 담피르(Dhampir: 뱀파이어남자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을 일컫는 단어.)는 귀족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그 몸에 흐르는 귀족의 피 덕분에 같은 편인 인간들에게도 경멸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리스는 남동생과 단둘이서 국경도시 근처에서 농장일을 하며 살고 있는 강인한 소녀. 어느날 괴물을 사냥하던 도중 도시 일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귀족 리 백작의 눈에 띄어 백작의 신부의 낙인이 찍히고 만다. 누구도 그녀를 도와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도리스는 결국 귀족과 인간의 혼혈인 담피르 헌터를 고용하여 리 백작을 처단하기로 맘 먹는다. 그녀의 의뢰로 담피르 헌터 중 한명인 D가 도시로 찾아오게 되는데...


<소개>

1983년 1월부터 아사히 신문출판을 통해 발간된 키쿠치 히데유키의 장편 호러소설을 원작으로 한 OVA 아니메. 현대 호러문학을 정립한 하워드 필립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후대의 작가들이 정립한 크툴후 신화(Cthulhu Mythos)를 기반으로 한 작품(키쿠치 본인도 러브크래프트의 열렬한 팬이다.)으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족인 담피르의 숙명을 갖고 태어난 인물 D의 활약을 소재로한 다크 히어로 판타지 액션물이다. 서기 10,000년대라는 먼 미래를 시간대로 하고 있으나 배경묘사는 20세기 초반에 가까워 보이며, 스파게티 웨스턴(비슷한 표현인 마카로니 웨스턴은 일본에서 유례한 단어)적인 묘사가 많다.

원작은 키쿠치 히데유키의 히트 소설로서도 유명하지만 동시에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로 더 큰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기도하다. 타츠노코 프로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아마노는 82년 타츠노코를 독립하여 애니메이터가 아닌 일러스트레이터로 변신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작품이 바로 이 뱀파이어 헌터 D인 것이다. 만화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마치 정통미술을 배운 미술학도의 삽화인 듯 고급스럽고 몽환적이며, 괴기스러우면서도 탐미적인 그의 일러스트는 커다란 인기를 끌며 이 작품을 베스트셀러 소설의 반열에 올리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아니메의 기획은 생각보다 난항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아시 프로덕션이 아니메 의사를 키쿠치에게 전했지만, 로봇물과 마법소녀물 등으로 이름이 난 아시 프로덕션이 자신의 호러 판타지를 아니메로 만들기에는 적합치 않다는 생각을 가진 키쿠치가 좀처럼 제작허가를 내주지 않은 까닭이었다. 결국, 감독으로 내정되었던 아시다 토요오가 파일럿 필름까지 만들어가는 열정을 보인 덕분에 키쿠치는 어렵사리 제작을 허락하게 되지만, 그동안 제작 스케쥴이 변경되면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을 예정이었던 아마노 요시타카가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3] 참조)

원작이 된 1권의 소설표지.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그로 인해 캐릭터 디자인은 아시다 감독의 스튜디오 라이브 작화팀에게 돌아가게 된다. 인도리 코야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스튜디오 라이브의 작화팀은 아마노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캐릭터를 디자인하였는데, 일부 캐릭터들은 아시다 토요오나 스튜디오 라이브가 참여했던 일련의 작품들인 '은하표류 바이팜(1983)'이나 '초수기신 단쿠가(1985)' 등의 캐릭터와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인기 캐릭터 디자이너로 알려진 아시다 토요오는 84년 '북두의 권(1984)' TV 시리즈를 통해 이전까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하드하고 고어스러운 작품을 연출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직후에 감독으로 참여한 이 뱀파이어 헌터 D OVA는 많은 컷에서 북두의 권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드러나기도 한다. 호러 판타지적인 분위기에 북두의 권의 영향을 받은 고어 액션이 첨가되면서 본 작품은 상당히 하드한 액션이 돋보이는 다이나믹한 작품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아시다 감독은 북두의 권의 주인공인 켄시로를 엑스트라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서비스도 선보이는데,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눈 앞에 둔 '북두의 권(1986)' 극장판에서는 반대로 D를 엑스트라 캐릭터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화끈한 액션 덕분이었는지 연말 OVA 판매랭킹에서는 2위를 차지하기도. 북미 시장에서는 일본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원작 소설과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 역시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TM Network 소속으로, 후일 일본 JPOP계의 거물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24살의 젊은 코무로 테쯔야가 처음으로 음악감독을 담당한 작품으로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을 필두로 TM Network의 아니메 히트송 행진이 이어지게 되기도. 전반적으로 흥미진진한 호러 판타지 작품이지만, 아마노가 하차한 덕분에 생긴 캐릭터 디자인의 이질감으로 인해 아시다 토요오의 뱀파이어 헌터 D라는 인상이 더 강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2000) 

ⓒ 2001 FILMLINK International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バンパイアハンターD製作委員会


<정보>

◈ 감독/각본/콘티: 카와지리 요시아키 (川尻善昭)
◈ 캐릭터 디자인: 미노와 유타카 (箕輪豊)
◈ 작화감독: 미노와 유타카, 아베 히사시 (阿部恒), 하마사키 히로츠구 (浜崎博嗣)
◈ 미술감독: 이케하타 유우지 (池畑祐治)
◈ CG 테크니컬 감독: 마에다 츠네오 (前田庸生)
◈ 음악: 마르코 드 암브로시오
◈ 제작/프로듀서: 야마모토 마타이치로 (山本又一朗) / 마루야마 마사오 (丸山正雄) 外
◈ 제작사: 매드하우스, 필름링크 인터내셔널, DR MOVIE
◈ 저작권: ⓒ 2001 FILMLINK International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バンパイアハンターD製作委員会
◈ 일자: 2000.08.25
◈ 장르: 액션, 판타지, 호러
◈ 구분/등급: 극장판 / 중학생 이상 관람가 (PG-13)


<소개>

원작의 된 4권의 소설표지.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원작자인 키쿠치 히데유키의 절친으로, 다수의 키쿠치의 소설을 아니메로 만들었던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감독한 극장용 아니메. 당시 카와지리는 북미 시장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북미에서 인기가 높은 뱀파이어 헌터 D와, 마찬가지로 북미에서 인지도가 높은 아니메 감독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몹시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북미시장을 목표로 한 작품으로, 최초 녹음에 외국인 성우가 기용되는 등 미일 합작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북미에서 먼저 개봉한 작품이기도 하다.

85년도 OVA와는 달리 카와지리 요시아키 특유의 스타일과 아마노의 미학적인 감각을 잘 살려낸 캐릭터 디자인이 일품이다. 중성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미남자 D의 모습을 잘 살려낸 디자인으로, OVA의 D가 황야의 무법자에 가까운 코스튬이었다면, 극장판의 D는 미래지향적인 코스튬이 인상적이다. 이는 '수병위인풍첩(1993)'부터 카와지리 작품에 참여해온 미노와 유타카의 결과물이다. 이야기는 원작의 3부에 해당하는 妖殺行편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데,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직접 감독에 각본, 콘티까지 1인 3역을 수행하고 있다.

미학적으로는 OVA보다 한단계 상승했으며, 카와지리 요시아키 작품다운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었으나, 특유의 요사스러움이라든지 클라이막스의 스케일은 전작만 못한 편이다. 하드고어의 대가로 이름 높은 카와지리의 작품인데, 이제까지 중 가장 보기 무난한 작품이라 할까. 이는 아무래도 미일 합작 애니메이션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하면서 로컬라이징을 염두에 둔 미국 제작진 측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아니메 특유의 스타일이 약화되고 북미 애니메이션의 성격이 강해진 것이다. 다만, 원작의 스파게티 웨스턴적인 배경묘사는 이러한 취지에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겠다.

☞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2000), 돌아온 전설의 뱀파이어 헌터 (클릭)


<참고 사이트>

[1] 吸血鬼ハンターD, Wikipedia Japan
[2] 뱀파이어 헌터 D, 엔하위키 미러
[3] 뱀파이어 헌터 D(吸血鬼ハンターD)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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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블랙 코스튬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캐릭터들


랙은 심플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칠흑과 같이 한없는 어두움과 세련되고 고상한 고귀함을 동시에 표출하지요. 검은 가죽의상처럼 젊고 파격적이며, 뇌쇄적이고 퇴폐한 느낌을 풍기다가도 검은색 슈트처럼 중후하고 귀족적인 풍취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다른 색들도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연출하긴 합니다만, 검은색이 보여주는 양면성은 다른 색보다 확연하게 양갈래로 나누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악하고 어두운 절대악을 상징하기도 합니다만, 절대적인 강함으로 정의의 편에 서는 흑기사와 같은 다크 히어로로서의 컬러로도 잘 어울립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색이라 할까요.

이리하여 검은색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코믹스, 만화영화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들의 퍼스널 컬러로서 사랑받아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엘로스 역시 무척 좋아하는 컬러이기도 한데요. 이번 시간에는 이 블랙이라는 색상을 멋지게 소화해내었던 가상의 인물들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고자 합니다. 소설, 영화, 만화영화, 드라마, 코믹스, 게임에 걸쳐 기억나는 캐릭터들 중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꼽아보았으며, 소개 순서는 캐릭터의 창작연도 순이 되겠습니다.


Character 1. 쾌걸 조로 (1919~2005) from 쾌걸 조로

1919년 존스톤 멕클레이의 소설에 등장한 조로는 검은 코스튬의 캐릭터들 중에서는 첫 번째로 엘로스에게 검은색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 인물로 기억됩니다. 스페인어로 '여우'라는 뜻의 조로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캘리포니아의 귀족 돈 디에고 델라베가(혹은 돈 디에고 베가)가 부패한 관리들로부터 평민들을 구하는 의적으로 분하여 활약한다는 이야기를 다룬 활극인데요. 평상시에는 겁쟁이에 어리숙한 귀족 도련님으로 행세하는 디에고가, 위급한 상황에서는 검은 망토와 검은 복면, 그리고 검은 긴 챙모자를 눌러쓰고 현란한 펜싱기술로 관리들과 병사들을 골탕 먹이는 멋진 의적으로 분하는 모습은 후일 미국의 슈퍼 히어로와도 일치하는 점이 있지요.

능숙한 마상술, 멋진 호를 그리며 상대를 제압하는 채찍, 그리고 날카롭고 재빠른 검술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조로는 특히 순식간에 상대에게 Z자의 검상을 남기는 것으로도 인상적인데요. 수십편의 영화와 TV 드라마, 여기에 애니메이션으로도 등장하는 등, DC나 마블의 히어로들보다 더 먼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미국식 히어로라 하겠습니다. 민중의 편에서 부패한 권력자들을 응징하는 모습에서는 유럽의 의적 로빈 훗이나 한국의 고전 의적 홍길동과도 비교된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의적 중에서는 가장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렷을적 계몽사(?)의 세계명작전집 등을 통해 처음 조로를 만난 이래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조로 중 한명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미남 배우 알랭 드롱이 주연한 1975년작 '조로(1975)'가 아닌가 싶습니다. 1960~70년대의 대표적인 미남배우인 알랭 드롱이 연기한 조로는 후일 국내 공중파 방송에서도 몇 번씩이나 명절특선 영화나 토요 명화 등으로 방영되었던 작품으로,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스파게티 웨스턴(마카로니 웨스턴)의 조류를 타고 만들어진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요. 특히, 라스트에서 선보인 조로의 촛불 자르기 신공(다섯개의 초가 일렬로 꽂혀진 촛대를 조로 십자로 베어버리자 양쪽의 네 개의 초는 수평으로 베어지고 가운데 초만 가운데로 갈라지는 황당무게한 조로의 기술)은 어린 나이에는 몹시도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금 보면 어이가 없긴 합니다만)

98년에는 당대의 인기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을 맡은 '마스크 오브 조로(1998)'로 다시 한 번 조로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조로보다는 케서린 제타 존스의 눈부신 미모에 더 마음이 가버기도 했었죠. 반데라스의 조로는 좀 더 코믹하고 서민적인(?) 캐릭터로 묘사됩니다만, 현란한 몸놀림과 검은 망토는 여전히 멋스럽다 하겠습니다.


Character 2. 배트맨 (1939~계속) from 배트맨

ⓒ DC Comics

퍼맨과 함께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를 대표하는 히어로인 배트맨은,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리 초인적인 힘을 갖지 않은 인간적인 히어로입니다. DC의 간판 슈퍼맨과 함께 가장 많이 실사영화화된 인물이기도 하지요. 북미에서 제작된 영화로만 치자면 10편으로 9편의 슈퍼맨보다 많습니다. 현재 제작되고 있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슈퍼맨 신작이 있으나, 배트맨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새로운 속편이 등장할 예정에 있지요. 여기에 10편의 비디오 영화, 여섯번의 TV 시리즈, 이십여편의 애니메이션까지 실로 미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크나이트'라는 별명처럼 배트맨은 검은색에 잘 어울리는 히어로입니다. 어렷을 적 불우한 기억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갖고 있는 배트맨은 선과 혼란이 공존하는 캐릭터입니다. 백만장자라는 밝음 속에 숨겨진 외롭고 고독한 삶, 히어로라는 영광 뒤에 숨겨진 악당들을 향한 병적인 증오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블랙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배트맨의 양면적인 캐릭터는 1966년 TV 시리즈의 등장으로 인해 그 매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로빈과 짝을 맞춰 우스꽝스런 코스튬을 입고 경박한 톤으로 대사를 읊는 TV 시리즈의 배트맨은 분명 배트맨의 퍼스널 컬러인 블랙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 TV 시리즈에서 배트맨의 코스튬은 전체적으로 밝은 회색계열의 색상에 검은색 마스크와 장갑, 부츠로 마무리되어 검은색의 묘미를 살리지 못합니다. 물론, 이는 원작 코믹스에 바탕을 둔 디자인이긴 했으나, TV 시리즈로 옮겨지면서 순화된 캐릭터의 성격에 덩달아 밝은 회색의 코스튬까지 더해지면서 블랙이라는 컬러가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았지요.

하지만, 이런 배트맨은 89년 팀 버튼의 '배트맨(1989)'으로 인해 새롭게 조명받게 됩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기괴한 고담시를 배경으로 어둠 속에서 악당들을 응징하는 배트맨은 원작과는 다소 성격의 차이는 있어도 어둠과 잘 어울리는 안티히어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선사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팀 버튼식 블랙의 묘미가 빛나는 순간이었죠. '가위손(1990)'이나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 '스위니토드(2007)' 등 팀 버튼의 영화에서 블랙은 어두움과 그로테스크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이는 후속편인 '배트맨 리턴즈(1992)'에서 더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되지요. 마치 마녀의 시커먼 망토와 같은 괴기스러운 검은색은 원작과는 또다른 맛을 선사해 줍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새롭게 그려진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나이트(2008)'에서 배트맨은 더더욱 강렬한 블랙의 느낌을 선사합니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놀란의 블랙은 다크나이트라는 부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배트맨을 창조해내게 되는 것이죠. 비록 강렬한 악역 조커의 등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밀리긴 했지만, 다크나이트는 어둠과 빛 사이에서 방황하는 어두운 히어로의 면모를 실로 완벽에 가깝게 스크린에 묘사합니다. 2012년 다시 한 번 우리곁으로 돌아올 다크나이트의 발걸음은 그래서 더더욱 기대됩니다.


Character 3. 일지매 (1975~2009) from 일지매

국의 대표적인 토종 히어로(?)라 부를 수 있는 일지매는 홍길동과는 달리 정확한 기원이 전해지지 않은체 구전되어온 인물입니다. 조선 순조 당시 무인인 조수삼의 '추재집'에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기에 실존인물의 가능성도 있는데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검은 옷과 검은 두건을 한 일지매는 1975년 故 고우영 화백이 일간 스포츠에 연재했던 만화 '일지매(1975)'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과 이야기를 갖추게 됩니다. 고우영 화백의 작품을 통해 탄력을 받은 일지매는 70년대 말엽 최초로 실사영화화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현재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고호 감독(화가 고흐 아니구요.)의 '날으는 소년 일지매(197x)'가 되겠습니다.
 
날으는 소년 일지매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동용으로 만들어진 한국판 무술영화입니다. 당시에는 무명의 성룡이 국내에서 무술영화에 출연하는 등, 홍콩 무술영화에 영향을 받아 한국산 무술영화들도 제법 제작되던 시대였는데요. 이러한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만들어진 일지매는 비록 완성도에서는 아동용이라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한국 고유의 세계관과 고유의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여러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일지매는 한 때 대한민국 최고의 괴작 연출가 중 한명이라 할 수 있는 남기남 감독(대표작 '영구와 땡칠이(1989)')에 의해 '슈퍼맨 일지매(1990)'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적이 있구요.(주인공이 무려 최수종) MBC에서는 최정주의 소설 일지매를 원작으로 한 8부작 드라마 '일지매(1993)'가 장동건, 염정아 주연으로 방영된 사례도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일지매는 계속적으로 영상화되면서 그 명맥을 이어온 셈이죠. 그러다가 2008년 SBS에서 이용석 연출/이준기 주연의 '일지매(2008)'를 방영하면서 일지매는 다시 화제의 중심에 올라서게 됩니다. 특히, SBS의 일지매는 민중의 편에서서 탐욕스러운 권력자와 대적하는 일지매의 활약을 상당히 통쾌하게 표현하면서 이슈가 되기도 하였죠. 당시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일지매는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게 됩니다. 주조연의 감칠 맛나는 연기도 일품이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이듬해에 MBC에서 제작된 황인뢰, 김수영 연출/정일우 주연의 '돌아온 일지매(2009)'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현대 시대에 일지매를 새롭게 조명했던 고우영 화백의 원작을 기본으로 한 작품으로, 원점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동시에 책녀를 통한 독특한 나레이션 기법과 흥미로운 연출기법 등으로 다소 거친 연출을 보여주었던 SBS의 일지매에 비해 보다 세련된 영상미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은데요. 다만, 시기를 잘 탔고, 캐릭터의 묘미가 잘 살아났던 SBS의 일지매에 비해서는 대중적 호응이 미치지 못하기도 하였죠.

인기를 끈 일지매는 2009년  SBS와 초록뱀 미디어 등의 주도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기세라면 한번쯤 메이저 실사영화로 한번쯤 제작해도 어떨까 하는 기대도 드는군요.


Character 4. 다쓰 베이더 (1977~1983) from 스타워즈

ⓒ LUCASFILM Ltd.

쓰 베이더(Darth Vader)는 검은색이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인 악, 그리고 어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캐릭터 중 한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흡장치를 통해 내뱉는 귀에 거슬리는 거친 숨소리, 왠만한 장정들을 압도하는 위압적인 체구, 얼굴을 모두 가리는 그로테스크한 검은 헬멧과 검은 갑옷으로 몸을 감싼 그는 제다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다이 중 한 명이며, 뛰어난 파일럿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름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타투인 혹성에서 노예로 살던 도중 그 가능성을 알아본 제다이 마스터 콰이곤에 의해 제다이로 키워지게 되지요.

포스에 질서를 가져올 인물로, 동시에 위험한 미래를 가진 인물로 평가받던 그는 콰이곤의 사후에는 콰이곤의 제자였던 오비완에 의해 제다이로 길러집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던 아나킨은 세속의 가치관을 모두 부질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고고한 제다이의 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했고, 파드메를 향한 사랑과 강렬한 소유욕, 그리고 어머니를 잃고 나서의 상실감과 증오를 이겨내지 못하고 시쓰(Sith)의 군주인 팰퍼틴의 꾀임에 넘어가 어둠의 제다이인 시쓰의 군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오비완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빈사의 상태에 빠졌던 그는 팰퍼틴에 의해 생명유지 장치를 부착한 검은 갑옷을 입은 다쓰 베이더로 거듭납니다. 이후 그는 공화국의 잔족세력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제국의 병사에게까지 공포스러운 존재로 태어나게 되지요. 누구든지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표정을 알 수 없는 검은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그가 다가온다면 긴장에 떨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그는 실수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부하들을 포스의 힘으로 질식사 시켜버리기도 합니다. 그가 포스로 상대방의 숨통을 죄일 때 손가락으로 마치 목줄을 잡는 듯한 시늉(포스 그립이라는 기술로도 불립니다)을 취하는데, 이 포즈는 그야말로 다쓰 베이더의 어둡고 강렬한 힘을 대표하는 포즈이기도 하지요.

특히, 에피소드 5편인 '제국의 역습(1980)'편에서 루크 스카이워커와의 결투 끝에 그를 궁지에 몬 그가 루크에게 자신이 바로 아버지임을 밝히는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자주 패러디되기도 하였죠.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본연의 선함을 되찾고 팰퍼틴 황제를 쓰러뜨리며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그는 이제까지의 영화사상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검은 코스튬의 악인 중 한명일 것입니다.


Character 5. 메텔 (1978~2004) from 은하철도 999

ⓒ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아하면서도 우아한 검은색의 긴 코트와 검은 색 샤프카(러시아식 털모자)를 쓴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누가 뭐래도 아니메 역사상 가장 눈부신 여인 중 하나일 겁니다. 70년대 TV에서 그녀를 접한 남자아이들에게 있어서 그녀의 존재는 한마디로 여신과 같았지요. 이후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아니메에 등장하여 소년들의 이상형이 되었지만, 그녀만큼 눈부시고 그녀만큼 포근하며 동시에 그녀만큼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여인은 찾아보기 힘들 듯 싶습니다.

주인공 테츠로(철이)의 엄마를 기본으로 하여 복제된 메텔(그러나, 후일 발표된 '메텔 레전드(2000)' 등을 통해서 이러한 설정을 작가인 마츠모토 레이지 스스로 뒤엎어버립니다. 어쨋든간에)은 그 출생상의 특징으로 인해 주인공인 테츠로 뿐만 아니라 은하철도 999를 시청하는 모든 소년들에게 있어서 미래의 연인인 동시에 동경하는 누나이자 이상적인 엄마의 느낌을 주었다 하겠습니다. 엘로스도 이 메텔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어렷을 적 잠시 연상의 여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군요.

메텔이 입고 있는 검은 옷은 그녀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준다며 라메텔 혹성으로 데려가 기계인간이 되게 한 수많은 아이들을 위한 상복의 의미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검은색 코트에 가려진 그녀의 진짜 정체는 그녀의 미모에 홀려 그녀를 원했더 수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할 정도로 무서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추악한 진실을 검은색 코트 속에 감춘 체 길고 긴 시간의 여행자를 자처하는 그녀는 깊은 슬픔을 간직한 체 결코 드러내지 않는 고결한 여인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그녀의 검은색은 그래서 고귀하고 슬픈, 그리고 우울한 느낌을 줍니다.

천년여왕이었던 프로메슘(유키노 야요이)의 딸이며, 동시에 우주를 방랑하는 해적 퀸 에메랄다스의 쌍동이 여동생인 그녀는 극장판 '은하철도 999(1979)'에서 테츠로에게 '소년시절의 마음에만 남아있는 청춘의 환영'이라는 잊을 수 없는 명대사를 남깁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를 동경하면서 스크린 앞에 모여있던 수많은 소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듯 합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눈부신 그녀는 이제는 그저 어쩌다 기억나는 인상적인 만화영화의 히로인 정도로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소년시절의 연인, 청춘의 환상 메텔 (보러가기)


Character 6. 뱀파이어 헌터 D (1983~계속) from 뱀파이어 헌터 D

Illustrated by 天野喜孝 ⓒ 菊地秀行 · 朝日新聞出版

파이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뱀파이어. 인간과 괴물, 선과 악의 경계에 서게 되는 기구한 운명의 이 창백한 미남자는 인간들의 증오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인간들을 해하는 뱀파이어들을 사냥하는 끝없는 고뇌의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공포소설의 대가 키쿠치 히데유키가 창안해 낸 소설 속의 혼혈 뱀파이어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깊게 각인시키게 된 것은 소설의 삽화 일러스트를 맡았던 일본의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공이 크다고 하겠는데요. 그의 손끝에서 펼쳐진 몽환적이면서도 고귀함과 세련됨, 그리고 괴기함을 겸비한 헌터 D의 일러스트는 그때까지 타츠노코 프로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의 그림체와는 전혀 다른, 만화의 범주를 탈피한 시각적 센세이션이었다 하겠습니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애니메이터(아마노는 10대의 나이에 타츠노코에 입사해, 창립자 삼형제 중 막내인 쿠리 잇페이의 제자로 만화를 배움)의 손 끝에서 미대생들을 능가하는 환상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그림이 나오다니! 당시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를 접한 엘로스는 그 특이한 매력에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뱀파이어를 상징하는 어둡디 어두운 검은색은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를 통해 귀족적인 고귀함과 뱀파이어의 어두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검은색으로 다시 채색되었고, 그런 D의 모습은 비극적인 출생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검은 옷의 미남자가 실상은 뱀파이어의 피가 섞인 어둡고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D는 키쿠치 히데유키의 소설, 그리고 아마노의 삽화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뒤, 아시도 토요오의 85년작 OVA를 통해 아니메 팬들에게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비록, 여러가지 제작일정상의 난항으로 인해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떤 아마노가 본 작품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기존의 일러스트와는 분위기가 너무도 다른 D로 그려져 개인적으로는 몹시 아쉬운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요. 후일 키쿠치 히데유키의 단짝 친구이자 하드고어 아니메의 대가인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북미시장을 목표로 만든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2000)'에서는 카와지리스러운 캐릭터 스타일을 유지한 체 아마노가 그린 D를 적절히 재해석하면서 멋진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OVA의 D는 멋진 캐릭터이긴 했으나 디테일이 떨어지는 관계로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하프 뱀파이어라는 느낌이 약해진 반면, 새로운 극장판의 D는 원작의 삽화에서 보여준 귀족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그려내면서도, 원작의 스타일이 아닌 카와지리 작품다운 스타일로 재해석함으로써 보다 더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되는군요. 다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해외시장을 목표로 하면서 카와지리 특유의 작품색이 옅어져 결과적으로는 싱거운 작품이 되었다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더더욱 멋진 D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 과묵한 성격 탓인지 아니메에서 그를 만나기는 좀처럼 힘들군요.

☞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2000), 돌아온 전설의 뱀파이어 헌터 (보러가기)


Character 7. 드리즈트 도우덴 (1988~계속) from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

Illustrated by Todd Lockwood ⓒ WIZARDS OF THE COAST

가튼 렐름은 TSR사에서 출시한 TRPG 게임인 AD&D 세계관 중 하나입니다. 게임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게임 디자이너들 뿐만 아니라 게이머들 스스로가 이 매력적인 세계관에 스스로 이야기를 추가하거나 영웅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데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 포가튼 렐름은 거대하고 구체적이며 온갖 영웅들과 악당들, 신과 악마, 그리고 모험과 음모, 낭만이 존재하는 신비롭고 방대한 세상으로 자리 잡아가게 됩니다. 수많은 영웅들과 악당들이 모험 속에 스스로의 무용담과 전설을 쌓아나가고 있는 이 곳에서도 드리즈트 두어덴은 특히나 눈에 띄는 명성과 실력을 갖고 있는 다크 엘프 레인져입니다.

흑요석과 같은 검은 피부, 검은 피부와 멋진 대조를 이루는 눈부신 은발머리, 이 멋진 무채색의 대비 속에서 또렷하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보라색 안광... 드리즈트의 이 강렬한 외모는 포가튼 렐름의 영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을 정도로 인상적인데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 세계에서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종족 중의 하나인 다크 엘프 드로우라는 사실입니다. 사악한 종족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운명의 굴레를 벗고 어두운 지하세계(포가튼 렐름에서 드로우들은 언더다크라는 지하세계가 삶의 터전이죠.)를 벗어나 지상으로 향한 이 용감한 다크 엘프는 지상인들의 편견과 오해, 멸시와 증오 속에서도 그의 영원한 파트너인 검은 표범 구엔하이버와 함께 친구들과 안식처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신분과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고 운명과 싸우는 어둠의 히어로는 항상 사람들에게 강렬한 매력을 선사하게 마련이죠.

두 자루의 시미터를 현란하고 멋지게 사용하는 쌍검술의 달인이자 노련한 레인져인 그는 포가튼 렐름을 배경으로 한 R.A.Salvatore의 베스트셀러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을 통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매력을 선사했고, 이후 '다크 엘프 3부작', '드로우의 유산 3부작', '어둠으로의 길 3부작' 등을 통해 꾸준히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먼저 소개한 헌터 D가 아마노 요시타카의 환상적인 일러스트에 의해 시각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드리즈트 역시 소설 삽화가로 활약한 토드 락우드에 의해 인상적인 모습을 부여받았다고 하겠는데요. 살바토레가 묘사한 드리즈트의 매력을 멋지게 화폭에 담아낸 락우드의 일러스트는 금방이라도 두 자루의 시미터를 들고 악당들을 응징하는 다크 엘프의 영웅처럼 생생하다 하겠습니다.

현재 드리즈트는 계속적으로 소설과 코믹스 등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바이오웨어의 전설적인 RPG 게임 '발더스게이트'나 PS용 게임인 '데몬스톤'에서도 깜짝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D&D 마니아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 멋진 다크 엘프를 실사영화를 통해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요. 북미에서는 인기 높은 캐릭터이니 만큼 이러한 바람이 그저 헛된 망상이 아니길 마음 속으로 빌어보려 합니다.

☞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 - 드리즈트 도어덴의 장대한 모험의 시작 (보러가기)


Character 8. 흑태자 칼 스타이너 (1995~1998) from 창세기전 I, II

ⓒ SOFTMAX Co, Ltd.

산 RPG 게임의 신기원을 열었던 소프트맥스사의 '창세기전'은 스케일 큰 서사적인 스토리라인, 만화가인 김진이 직접 일러스트한 유려한 캐릭터 디자인, 흥미진진한 게임시스템(물론, 그 흥미진진한 만큼 수많은 버그로 인해 호평에 버금가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등으로, 걸음마 수준이던 90년대 말 국산 패키지 게임시장에 신선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됩니다. 치명적인 버그를 포함하고 있던 1편을 보완하고 아직 완결되지 못한 이후의 스토리까지 모두 포함하여 다시 태어난 '창세기전 II'는 버그로 점철되었던 전작의 오명을 어느 정도 만회하면서 흥행에 성공하게 되지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버그들이 존재했지만.)

사실, 이 정도의 치명적인 버그가 있는 게임이라면 멋진 그래픽과 게임성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전이 지금까지도 국내 게이머들의 입에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드라마틱한 스토리 전개와 강렬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발휘한 주인공 흑태자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장남인 흑태자 에드워드를 모델로 했다고 전해지는 흑태자 칼 스타이너는 항상 검은 갑옷과 검은 투구를 쓰고 변방의 게이시르 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대전쟁의 선봉에 서는데요. 뛰어난 무인이자 천재적인 전략가로, 사선진형이라는 신개념의 전법을 통해 적은 수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넓은 평원의 전투에서 막강한 실버애로우 연합의 대군을 궤멸시키면서 안타리아 대륙의 패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에도 불구하고 흑태자는 게임 플레이어의 플레잉 캐릭터가 아닙니다. 오히려 흑태자에 의해 조국이 멸망당한 펜드레건의 왕녀 이올린과 라시드 왕자, 비프로스트 공국의 레인져 G.S로 흑태자의 게이시르 제국과 맞서는 것이 플레이어들의 미션인 것이죠. 세상을 위협하는 악마에 맞서싸운다는 전형적인 RPG 공식을 벗어난 이 멋진 스토리는 게임과 함께 게임 속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하게 됩니다. (물론, 결국 플레이어는 흑태자를 플레이하게 되긴 하지요.)

세상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꿈을 버리는 흑태자의 기구한 운명과 슬픈 결말은 게임 타이틀의 수준을 넘어서는 드라마틱함을 보여줍니다. 흑태자가 사라진 후에도 창세기전 시리즈는 이 비극적인 운명과 드라마를 잘 활용하여 게임에 머물기에는 아까운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게 되는데요. 현재 온라인 게임으로 다시 팬들에게 돌아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듯 하니 그 멋진 드라마의 부활을 다시 한 번 기다려볼까 합니다.


Character 9. V (1982~2005) from 브이 포 벤데타

ⓒ WARNER BROS

은 코스튬의 히어로가 보통 선과 악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라면, 브이(V)는 가장 적격인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들 중 가장 특이한 히어로 중 하나일 겁니다. 영국의 유명작가 알렌 무어와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의 일러스트에 의해 탄생된 브이는 검은색 복장과 검은색 망토, 챙긴 검은 색 모자를 쓴 전형적인 다크 히어로인데요. 특히, 그는 로마 카톨릭 혁명단체의 일원으로 저 유명한 화약음모사건을 통해 영국의 국왕 제임스1세를 암살하려 했던 전설적인 테러리스트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즉, 그에게는 선과 악의 경계라는 다크 히어로 특유의 본질 이외에, 영웅과 테러리스트라는 양면적인 정체성을 가진 인물인 것입니다.

시점에 따라 그는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는 영웅이기도 하며, 사회 혼란을 획책하는 위험한 테러리스트로도 보여집니다. 인체실험의 대상으로 상상도 못할 지옥의 나날을 살아온 그의 과거와,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예술적 취향, 세련된 검은색의 코스튬과 우스꽝스런 가이 포크스의 가면까지... 브이는 언제나 상반되고 모순 덩어리이며, 이중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그는 침착함과 광기의 모습을 오가며 광적이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휴고 위빙 특유의 매력적인 보이스 컬러와 연기는 양면적인 브이의 모습을 실로 스크린에 멋지게 묘사하지 않았나 합니다. 사실, 처음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러갈 때만 하더라도 그저 그런 액션영화로 잘못 알고 있던 엘로스는, 처음에는 지루한 전개에 실망을 느끼다가 중반 이후 스크린에 급격하게 빨려들게 되었는데요. 전혀 정보를 모른 체 접한 영화 중 무척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였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인상적인 브이의 모습만큼이나 나탈리 포트만의 호연도 인상적입니다. 극중 삭발투혼까지 발휘한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음을 예견하고 있는데요. 정말로 이번 오스카에서 그녀는 '블랙스완(2010)'을 통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의 성공적인 변신의 마침표를 찍게 되지요.

독특한 기행만큼이나 브이의 마지막 역시 장렬하면서도 강렬합니다. 광기와 신념, 정의와 복수라는 경계 속에 선 그는 어쩌면 진정한 다크 히어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부 끝. 2부에서 계속)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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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FILMLINK International/HIDEYUKI KIKUCHI/ASAHI SONORAMA/VAMPIRE HUNTER D Production Commitee


<스탭>

◈ 감독: 카와지리 요시아키
◈ 원작: 기쿠치 히데유키
◈ 제작: 매드하우스. 필름링크 인터내셔널


<시놉시스>

핵전쟁 이후 뱀파이어들이 귀족이라 불리며 인간들 위에 군림하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한 A.D 12,090년. 자신의 딸 샬롯을 뱀파이어에게 납치당한 대부호 앨번은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이자 뱀파이어 헌터인 던필(이하 D)을 고용하여 백작 마이어로부터 그의 딸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의심 많은 대부호의 아들은 D 외에도 또다른 헌터집단 '마커스 형제'에게도 같은 의뢰를 맡기는데, 샬롯을 먼저 구출해야만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에 마커스 형제는 D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마커스 형제'의 일원인 여성헌터 레일라는 D에게 경계심과 동시에 호기심을 보이게 되고, 마이어 백작과의 첫 대면에서 D는 납치된 샬롯이 마이어를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이어 백작이 암살집단인 바르바로이 일족의 3인조를 고용하게 되면서 이제 D와 마커스 형제, 바르바로이 3인조까지 얽힌 복잡한 추격전이 시작되는데... 과연 마이어가 향하는 곳은 어디이며, 샬롯과 마이어의 관계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1. 기쿠치 히데유키의 소설, 아마노 요시타카의 날개를 달고 애니메이션계에 입성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기쿠치 히데유키 원작의 '뱀파이어 헌터 D(1983)'는 1983년 1월 처음 소설로 등장합니다. '마계도시 신주쿠(1982)'라는 소설로 공포 소설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기쿠치 히데유키는 후일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과 황금 콤비로 호러 판타지 계열의 아니메 수작을 연이어 등장시키며, 일약 '공포소설의 대가'라는 명성을 얻기에 이르르는데요. 이 뱀파이어 헌터 D는 바로 그의 작품 중에서 1번 타자로 애니메이션화된 작품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 20권이 발표되며 30년 가까이 연재를 계속하고 있는 이 장편의 판타지 공포소설도 초창기의 기쿠치 히데유키만의 네임 밸류만으로 애니메이션화 되기에는 버거웠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면에는 당시 삽화가로서 소설에 참여한 애니메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 때문인 것도 있으니까요.

70년대 타츠노코 프로에 10대의 나이로 입사하여 천재적인 애니메이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아마노 요시타카가 애니메이터로서의 범주에만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며, 소설 삽화에 과감히 도전했던 이 작품은 원작자인 기쿠치 히데유키보다 아마노 요시타카에게 더 큰 명성을 안겨주며, 그를 애니메이터가 아닌 특급 일러스트레이터의 반열로 격상시켜주는 중대한 모멘텀이 됩니다. 물론 이 영향은 뱀파이어 헌터 D에게도, 기쿠치 히데유키에게도 동반 상승효과를 가져옵니다. 환상적인 일러스트 덕에 책의 가치는 높아졌으며,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을 더욱 더 배가시킨 것입니다.

ⓒ YOSHITAKA AMANO / ASAHI SONORAMA

그림 1. 아마노 요시타카의 소설 삽화 일러스트 (출처: 베스트 아니메)


그 덕분일까요, 뱀파이어 헌터 D는 85년 마침내 기쿠치 히데유키의 작품으로서는 최초로 애니메이션화 되기에 이르릅니다. 감독은 '우주전함 야마토(1974)'의 작화감독에서부터 '요술공주 밍키모모(1982)'이나 '은하표류 바이팜(1983)' 등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널리 알려진 아시다 토요오가 맡았는데요. 당시 원작자인 기쿠치 히데유키가 뱀파이어 헌터 D의 제작의사를 밝혔던 아시 프로덕션의 스타일이 자신의 작품 성향과는 너무도 달라서 수차례 거절을 했었으나, 아시다 토요오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 아니메로의 제작이 가능했던 숨겨진 에피소드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1] 참조)

뱀파이어 헌터 D의 1권의 이야기를 80분짜리 OVA로 아니메화한 이 작품은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높은 작화 퀄리티의 작품이라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만,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의 배경과 뱀파이어라는 호러 판타지적 소재가 기묘하게 어울린 숨겨진 고전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후일 '북두의 권(1986)' 극장판을 통해 센세이셔널한 고어 액션씬을 훌륭하게 선보인 아시다 토요오 감독의 액션 연출은 이 작품에서도 그 흥미를 더하죠. 특히, 단순한 뱀파이어 헌터로만 여겨졌던 D가 클라이막스 씬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힘과 그 힘에 얽힌 출생의 비밀은 크나큰 흥미와 함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준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말 OVA 랭킹 2위에 오를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둔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을 내놓지 못하였고,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이 연출한 기쿠치 원작의 '요수도시(1987)'가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킨 뒤, 카와지리가 키쿠치의 작품을 연달아 아니메화하는 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북미시장에 진출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이 작품이 왜 후속 시리즈를 내지 않은 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것일까요. 의문점을 뒤로 한체 세월은 어느덧 15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HIDEYUKI KIKUCHI / ASAHI SONORAMA

그림 2. 85년도 OVA 트레일러 영상 스틸 컷. (출처: Youtube.com)


2. 동반자 카와지리 요시아키와의 만남... 예견된 D의 부활

'요수도시(1987)', '마계도시 신주쿠(1988)', '바람의 이름은 아무네지아(1990)' 등에서 연달아 호흡을 맞추면서 기쿠치 히데유키와 카와지리 요시아키는 황금 콤비이자 절친한 친구로 발전하게 됩니다. 스승 린 타로에게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의 정수를 물려받은 일본의 탑 클래스 애니메이션 연출가 카와지리 감독과 이제는 일본 공포소설을 대표하는 기쿠치 히데유키의 조합은 하드고어 쟝르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며 그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됩니다. 만약, 뱀파이어 헌터 D가 좀 더 늦게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카와지리 감독의 작품으로 등장했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요. 이러한 의문의 답은 비로소 2000년에 들어서야 그 해답을 보여주게 됩니다.

'수병위인풍첩(1993)'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카와지리는 90년대 말부터 서서히 해외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선배격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데자키 오사무 감독(데자키 오사무 감독은 카와지리의 스승인 린 타로 감독과 함께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였지요. 무협소설로 치면 사숙이라 할 수 있겠군요.)도 해외진출을 했었으나, 그것이 북미에서의 러브콜이 아닌 잇단 흥행실패로 인한 도미였던 것에 비해 카와지리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북미의 인지도가 꽤 높은 편이었지요. 그리고, 미일 합작 애니메이션의 감독으로 낙점되면서 그가 선택한 작품이 바로 뱀파이어 헌터 D인 것입니다. 북미에서 인기가 높았던 원작 소설과 북미에서 인기가 높은 아니메 감독의 만남, 거기에 원작자인 키쿠치와 절친한 친구라는 점에서 뱀파이어 헌터 D는 카와지리 감독의 북미권 데뷔로서는 더없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로 인해 수천년간 인간과 뱀파이어의 경계에서 고독한 방랑을 해온 사나이가 마침내 15년만에 스크린으로 부활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2000, 이하 블러드러스트)'인 것입니다.

소설 뱀파이어 헌터 D의 세번째 에피소드 '妖殺行(Demon Deathchase)'를 영화화한 블러드러스트는 기획 단계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했기에 보통의 아니메와는 달리 외국인 스탭들이 작품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그로 인해 성우 캐스팅에 애초부터 외국인이 기용되어 연기를 펼쳤다는 것이 이색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더빙판에 비해 성우들의 연기는 작품과 좋은 매치업을 보여줍니다. 이제까지의 영어 더빙판 아니메의 경우, 아무래도 성우들의 연기력이나 동화와의 동기화 부분에 있어서 원 성우에 비해서 그닥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는데요. 그에 비해서 이 작품에서의 성우들의 연기력은 합격점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일본어로 아니메를 계속 보아온 팬들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거슬리거나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북미 아니메 팬들에게는 이때까지의 더빙판에 비해서는 확실히 좋은 느낌을 주었을 듯 합니다. 다만, 일부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대사에서도 읊조리는 듯한 톤으로 연기를 하여 왠지 답답한 느낌이 드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수병위인풍첩부터 카와지리의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낸 미노와 유타카가 이번에는 카와지리식 스타일에 아마노 요시타카의 몽환적이면서도 탐미적인 D의 모습을 꽤나 훌륭하게 녹여낸 점은 이 작품의 백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뿐만 아니라 뱀파이어인 마이어나 카밀라의 귀족스러움과 괴기스러움이 혼재된 모습, 마커스 형제의 개성 넘치는 모습이나 바르바로이 일족의 흉측한 모습 등은 제각각 멋진 개성을 뽐내고 있죠. 스파게티 웨스턴과 고딕 스타일, SF와 판타지를 오가는 기묘한 크로스오버적인 배경의 묘사, OVA에 비해 격상된 퀄리티와 이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CG들, 그리고 이런 비쥬얼을 멋지게 살려주는 음악 등이 한데 어울린 블러드러스트는 하이 퀄리티의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 2001 FILMLINK International/HIDEYUKI KIKUCHI/ASAHI SONORAMA/VAMPIRE HUNTER D Production Commitee

그림 3.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스틸 컷.


3. 멋진 구성과 고급스러운 연출, 하지만 2% 부족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원작의 경우에는 마커스 형제에게 스토리의 중심이 가있는 상황에서 D가 해결사로서 역할을 하는 형태로 전개가 됩니다.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인 이번 편에서는 주인공 D가 조금 뒤로 물러가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극장판으로 이식되면서 스토리는 조금 수정이 가해지게 됩니다. 그 결과 D와 마커스 형제의 이야기가 비슷한 비중으로 맞춰지게 됩니다. 2시간 남짓한 이야기 길이 속에서 이 역할 분배는 나름 좋은 비율을 보여주는 듯 싶습니다. 역시 카와지리 감독이 톱 클래스의 연출가임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겠죠.

이전까지의 매니아적인 작품 색체(폭력미학의 대가라는 별명답게)는 북미시장을 공략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서 좀 더 대중적인 모습을 취할 수 밖에 없었기에 순화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많은 카와지리 감독의 팬들이 상당수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군요. 거기에 무언가 2% 부족한 액션 덕에 고급스럽고 멋진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조금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사실 스토리의 전체적인 균형적인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심심한 뒷맛은 카밀라와 D가 맞대결을 펼치는 클라이막스 씬까지 주욱 이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작품 내 액션 씬의 비중이 적었다기 보다는 액션 자체, 특히 주인공인 D의 액션 장면이 동적인 부분보다는 정적인 씬에 대부분 머물러 있던 결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D의 부족한 액션을 마커스 형제가 나누어서 담당하다보니 스토리의 균형과는 별개로 D의 역할은 더 축소되어 보이고 결과적으로 액션이 필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부족한 작품으로 인식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한정된 셀 안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특기로 삼았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액션 연출이 근래의 다이나믹한 액션씬에 비해 역동적인 맛을 못살리면서 생기는 아쉬움은 아닌가 합니다. 리미티드 기법의 대가답게 카와지리 감독 또한 정지영상 컷의 감각적인 배치나 광원 연출, 배경의 활용 등을 통해 멋진 액션 장면을 구현해 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고급스러운 연출 방식은 이 블러드러스트 내에서도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고 있구요. 하지만, 근래의 애니메이션 상당수가 상당히 역동적인 액션샷들을 구사하고 있기에 이러한 부분은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생각도 드는군요. 그래서인지 카와지리 감독의 신작 '하이랜더(2007)'의 경우는 블러드러스트보다 훨씬 역동적인 장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비주얼과 이야기가 보여준 블러드러스트의 멋과 완성도는 인상적입니다. OVA의 경우 D의 진정한 활약은 클라이막스에서나 펼쳐지며, 그의 출생에 얽힌 비밀까지 살짝 드러나 드라마틱한 클라이막스를 보여줍니다. 블러드러스트 역시 카밀라와의 대결에서 D의 출생의 비밀이 살짝 선보이며 드라마틱한 결말로 향하게 되는데요. 마이어 백작과 샬롯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작품의 메인 테마이기에 이번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D가 주인공이 아닌 마이어와 샬롯이 주인공인 이야기로 볼 수가 있겠습니다. 다만,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테마가 전반적으로 흡입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이는 소재 자체의 진부함도 있겠지만, 원체 스토리 자체가 애틋한 러브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깊이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군요.

ⓒ 2001 FILMLINK International/HIDEYUKI KIKUCHI/ASAHI SONORAMA/VAMPIRE HUNTER D Production Commitee

그림 4. 뱀파이어 헌터 D 스틸 컷.


4. 속편의 가능성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D가 TV 시리즈 형태의 장편으로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극장판으로서의 완성도는 물론 훌륭했지만, D의 출생의 비밀과 같은 부분이 좀 더 심도있게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단편으로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런 단편 에피소드 중의 하나로 이 블러드러스트가 아니메화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현재까지도 계속적인 연재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D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원작 자체의 고딕스럽고 웨스턴스러운 독특한 느낌, 그리고 아마노가 창안해낸 몽환적인 캐릭터가 기실 아니메로 제작하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작품일지도 모르겠군요. 카와지리 감독 정도의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섣부른 아니메 프로젝트는 오히려 D의 이미지를 망칠 우려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때문에 더 이상 후속 논의가 없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팬으로서 언젠가 다시 등장할 D의 속편은 꽤나 기대되는 기다림이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만들어진 두 편의 작품이 모두 조금씩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언젠가 등장할지 모르는 다음 속편은 부디 전보다는 더 나은 모습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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