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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인간 337 (1977) 


ⓒ 블루미디어


<정보>

◈ 감독: 임정규
◈ 각본: 지상학
◈ 구성: 김일남
◈ 원화: 홍형선
◈ 배경: 오응환
◈ 음악/주제가: 정민섭 / 지구어린이 합창단 (노래)
◈ 기획/제작: 김일환 / 김상용, 박용우
◈ 제작사: 삼도필름
◈ 저작권: ⓒ 블루미디어
◈ 일자: 1977.12.08
◈ 장르: SF, 액션, 히어로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장동한 박사는 33억7천만원 개발비를 들여 전자인간 337을 만들어낸다. 전자인간 337은 마루치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는데, 5만 제곱미터 내의 모든 소리를 감지할 수 있는 청력, 3만 마력의 파워를 지니고 태권도를 비롯한 모든 무술을 구사할 수 있으며, 방탄/방화 기능이 내장된 망토를 갖추고 투명 상태로 적진에 침투할 수 있는 고성능 사이보그이다. 

한편, 칸트별의 과학자 마로 박사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인공지능 로봇 티탄과 세실은 자신의 창조자인 마로 박사를 사로잡고 칸트별을 전복시켜 로봇제국을 세우게 된다. 그들은 다음 목표로 지구를 노리지만, 지구에 전자인간 337이 있음을 알게 된 이들은 전자인간 337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되는데...


<소개>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1977)'에 이은 임정규 감독의 히어로 액션물 제2탄. 마루치 아라치의 세계관을 그대로 계승하되 그 주인공이 마루치 아라치가 아닌 전자인간 337로 바뀐 일종의 스핀오프 격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활약이 337에 못지 않게 배정되어 있어서 더블 캐스팅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하겠다. 전자인간 337의 이름은 제작비가 33억 7천만원이 들었다는 설정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제작년도인 77년도는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494원 정도의 고정환율이 적용되었으므로 33억 7천만원은 미화로 약 690만 달러에 해당한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보아 당시 인기리에 방영중이던 미드 '6백만불의 사나이'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받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미국식 히어로의 컨셉을 빌려와 한국적 설정에 맞게 변형시킨 사례로 보인다. 디자인 컨셉을 상당수 일본 만화영화에서 차용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일부에서는 DC 코믹스의 히어로 호크맨과의 디자인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디자인적인 공통점은 그다지 없지 않나 싶다. 마루치 아라치라는 현실적인 히어로에서 강력한 능력을 지닌 오리지널 인조인간 히어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 히어로 만화영화의 한 획을 그을 수도 있을 작품이었다.

상세보기

단, 이 작품은 크게 히트한 전작 마루치 아라치의 속편 격이라는 성격과 매력적인 337이라는 캐릭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관객동원 3만2천명으로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게 된다. 정확한 원인을 짚어내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서론이 너무 길어지면서, 히어로 액션물임에도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액션장면들이 등장했다는 점이 아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전편인 마루치 아라치의 경우, 전반부의 설명이 누락되어 스토리텔링의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초반부터 액션장면을 추가하면서 전체적으로 액션의 비중이 커진 반면, 337은 초반부에 아름이가 아라치와 상상의 세계를 노니는 장면과 같은 부분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등 서론에 너무 비중을 준 나머지 한시간 남짓한 작품에서 다른 이야기를 펼칠 시간이 부족해졌다. 한마디로 초반까지는 지루한 느낌을 준 셈이다.

하지만 로봇에 의해 생명체가 지배 당한 로봇제국과 마로 박사, 그리고 그의 아들 아름이의 설정은 비록 어린이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꽤 잘 짜여진 구조를 보여주었으며,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반전 역시 극의 단순함을 커버해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만약, 액션의 비중을 높이고, 마루치와 337로 나뉘어진 주인공 구도를 좀 더 잘 안배했더라면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64분 밖에 안되는 시간에 이 모든 것을 잘 안배해 담아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시간 30분 정도만 되었어도 어쩌면 한국 만화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을지도 모를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번 편에서는 아라치가 제법 많이 활약을 보이고 있어 흐뭇하다. 참 성숙한 소녀가 아닌가. 아하하...)

주제가의 매력은 사실 로보트 태권브이나 마루치 아라치의 주제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멜로디도 뛰어나고 따라 부르기도 쉽다. 메인 싱어없이 지구 어린이 합창단이 주제가를 불러, 합창의 묘미를 살려 주었는데, 실제로 응원에서는 단골로 쓰이는 것이 바로 337 박수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337박수는 전자인간 337이 만들어지기보다 먼저 등장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 전자인간 337이 이 337 박수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337 박수는 일제시대 교육의 잔재로 최근에 들어서야 밝혀졌다. 당시 스탭진들이야 꿈에도 몰랐던 사실이겠지만 덕분에 일말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주제가라 하겠다. 피겨 경기 같은 곳에서는 절대 치지 마시라.

ⓒ 블루미디어


☞ 포스팅을 위해 아래 참고사이트의 KMDB에서 VOD 시청을 했는데, 제법 볼만하다.


<참고 사이트>

[1] 속편열전: 전자인간 337 by 페니웨이, In This Film
[2] 전자인간 337 (1977.12.08. 극장판), 야누쓰의 메카닉스
[3] 전자인간 337, 한국영상자료원 KMDB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블루미디어에게 있습니다.


전자인간 337 - 6점
임정규 감독/블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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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WoW 두번째 확장팩이 시작할 즈음 제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세번째 확장팩에 발맞춰 재활용하는 포스트입니다. 네번째 확장팩이 나올 때는 재활용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쩝)

 다른 듯 서로 닮은 두 세계의 카리스마 악역들

ⓒ BLIZZARD Entertainment


으로 약 한달 뒤인 2010년 12월 9일이면 블리자드의 인기 MMORPG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번째 확장팩 '대격변(Cataclysm)'이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와우저들에게는 다시금 피를 끓게 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요. 비록, 오픈베타 때 만렙 찍고 쉬고, 첫번째 확장팩인 '불타는 십자군, 아니 성전' 때 70렙 찍고 바로 쉬고, 두번째 확장팩인 '리치왕의 분노' 때 80렙 찍고 바로 쉬어버린 레이드 경험 전무의 '어쩌다 와우저'인 엘로스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지까지 와우를 계속 플레이하고 있는 까닭은,

방대하고 치밀한 세계관과 그 속에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죠. 영상 매체든 게임 타이틀이든, 소설이건 코믹스이든 간에 이 스토리텔링은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블리자드가 창조해낸 아제로스의 이야기는 TRPG 세계관으로서 방대한 스케일과 영웅들이 즐비한 포가튼 렐름의 세계나 J.R.R 톨킨 교수가 창조해낸 모든 중세 판타지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중간계의 세계관(이하 톨킨의 세계관) 만큼이나 치밀하고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한데요. 물론, 그 오랜 역사나 스케일 등에 있어서 앞선 두 세계관이 여전히 우위에 있음은 사실입니다만, 아제로스의 이야기도 그에 못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제로스의 이야기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게 되는 악마들과 악당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톨킨의 세계관에도 이와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떠오르게 되었는데요. 두 시리즈의 주요 악역들이 모두 서로 대칭되는 위치에 있어서 몹시도 흥미롭다 하겠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은 어떤 면에서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이 톨킨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를 받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판타지 세계가 모두 톨킨의 세계관에 많게든 적게든 영향을 받았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악역들의 대칭은 주목할만하지 않을까 싶군요.

자, 그래서 이번 시간은 워크래프트 세계에 등장한 악역들과 톨킨의 세계관에 등장한 악역들을 서로 비교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모르고스 vs 살게라스

저, 톨킨의 세계관에서 가장 강대한 악의 원흉은 멜코르로, 후에 모르고스라 불리게 되는 한 발라(톨킨의 세계관에서는 창조주 일루바타르를 섬기는 존재들로 쉽게 기독교에서의 천사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입니다. 절대신 일루바타르를 섬기는 발라들 중에서도 가장 총명한 존재였던 그는, 일루바타르가 창조해낸 선율(이 톨킨의 세계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신들의 힘은 바로 음악으로, 개인적으로 참으로 낭만적이면서도 멋진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습니다.)에 의문을 품고 발라들의 합창 중에 홀로 자신만의 음색을 만들어내려다 큰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결국 천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천계에서 쫓겨난 그는 앙심을 품고 일루바타르가 창조해낸 새로운 세상 중간계와 중간계의 생명체인 엘프들을 증오하게 되는데요. 중간계로 숨어든 그는 때로는 감언이설로, 때로는 압도적인 폭력과 증오로 엘프들과 멘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끝없는 전쟁을 일삼다가 결국, 중간계의 발라들과 엘프들이 힘에 의해 세계 저편으로 추방되기에 이르릅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타천사 루시퍼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모르고스는 처음에는 선량한 존재였다가 신을 의심하고 악마로 타락한다는 점에서 고귀한 청동거인에서 악마의 제왕으로 변화하는 살게라스와 비교된다고 하겠습니다.

살게라스(좌)와 모르고스 (우)



아키몬드 vs 고스모그, 킬제덴 vs 사우론

라들은 마이어라 불리는 존재들을 휘하에 두고 있습니다. 마이어들은 발라들을 보좌하는 일종의 하급천사와 같은 존재들로, 발라들에게는 못미치지만 강대한 힘을 갖고 있는데요. 타락한 발라 모르고스를 따르던 마이어들은 모르고스와 함께 사악함에 물들어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끔찍하고 흉측한 모습들로 변하게 됩니다. (모르고스를 따르던 엘프들 또한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오크들입니다.)

이런 마이어들 중에는 모르고스의 총애를 받는 두 존재가 있었는데, 발록(영화 '반지의 제왕' 1편과 2편에서 회색의 간달프와 사투를 벌이던 거대한 악마)의 대장인 고스모그와 영화 '반지의 제왕'을 통해 모르고스보다 더더욱 유명해진 악의 제왕 사우론이 그들입니다. 강대한 힘을 지닌 고스모그가 모르고스의 왼팔이라면, 사악하고 교활한 사우론은 모르고스의 오른팔이라고 해야겠지요. 실제로, 누메노르 왕국을 술수로 멸망시킨 것도 사우론이며, 절대반지를 통해 중간계의 엘프와 멘족, 그리고 드워프들을 타락시킨 것도 사우론입니다.

이 둘은 그 위치와 성격에 있어서 살게라스의 군대를 이끈 총사령관 아키몬드(워크래프트 3편의 하이잘 산에서 세계수와 함께 폭사)와 책략가 킬제덴(리치왕을 만들어내고, 일리단을 수하로 부려 아제로스를 괴롭히는 악마)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힘을 앞세워 정면공격한 아키몬드는 발록을 이끌고 수차례의 엘프와 멘족의 전쟁에서 앞장을 선 고스모그와 비슷하며, 술수와 책략을 좋아하는 킬제덴 역시 사우론의 스타일과 비슷하다 하겠지요.

킬제덴(좌측상단)과 사우론(우측상단), 아키몬드(좌측하단)와 고스모그(우측하단)



리치왕 아서스 vs 앙그마르의 마술사 왕

르고스가 발라들과 엘프들에 의해 세계저편으로 영원히 추방된 후, 조용히 숨어서 때를 기다리던 사우론은 강대한 누메노르 왕국을 술수와 책략으로 파멸시키고 중간계로 숨어듭니다. 중간계로 돌아온 그는 엘프와 멘족, 그리고 드워프들에게 환심을 산 뒤에 각 지도자들에게 마법의 반지를 선물하게 되는데요. 그 와중에 사우론은 몰래 어둠의 산에서 이 반지들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반지를 만들어내어 중간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냅니다. 엘프들은 사우론의 흉계를 눈치채고 반지를 버린 체 몸을 피했고, 드워프들은 보물에 대한 탐욕이 너무 강했던 나머지 반지를 끼고 있었음에도 사우론의 힘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지만, 반지를 선물받은 9명의 멘족 왕들은 절대반지의 마력에 사로잡혀 사우론의 충실한 수하들이 되지요. 이들 9명이 바로 사우론의 측근인 나즈굴들이며, 그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나즈굴이 앙그마르의 마술사 왕(Witch King of Angmare)인 것입니다.

이쯤되면 눈치채셨겠지요? 이 마술사왕은 서리한(Frost Moune)에 의해 타락한 데스나이트가 되었다가, 후일 킬제덴이 만들어 낸 리치왕 넬쥴과 한 몸이 되어 새로운 리치왕으로 거듭나게 되는 비운의 인간족 왕자 아서스 메네실의 운명과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게다가 리치 킹(Lich King)이라는 이름은 위치 킹(Witch King)이라는 이름과 발음마저 유사하기까지 하지요.

리치왕 아서스(좌)와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우)




론, 세세한 설정과 이야기는 다릅니다만, 두 세계관에서 동일한 구도를 갖고 있는 악역들의 모습은 상당히 흥미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마침 워크래프트의 실사영화까지 제작되고 있다고 하니 과연 이런 매력적인 악당들이 영화 속에서 다시 등장할지 어떨지도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군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세번째 확장팩의 시작, 이런 숨겨진 뒷 이야기를 알고 와우를 즐긴다면 좀 더 재미있는 아제로스의 모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참, 이번 대격변의 최대 악인 데스윙은 과연 톨킨의 세계관에 무엇과 비유할 수 있을까요. 톨킨의 세계관에는 용이 모르고스의 사악한 부하들로 등장하는지라 숭고한 존재에서 타락한 악의 용이 된 데스윙의 모습과는 대비될만한 존재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비슷한 드래곤을 꼽자면,

톨킨의 세계관에서 모든 용들의 시조로, 핀로드 펠라군드의 나르고스론드 왕국을 멸망시킨 고룡 글라우룽이나 날개 달린 용으로 발라들과 에아렌딜의 군세에 맞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던 흑룡 앙칼라곤이 어떨까요. (생김새로는 앙칼라곤이 더 비슷하겠군요.)

빈킬로트에 탄 에아렌딜과 사투를 벌이는 앙칼라곤. 에아렌딜에게 패한 앙칼라곤은 모르고스의 당고르드림 위로 떨어져 탑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Illustrated by Simone G. Des Roches)

투린의 칼에 깊은 상처를 입는 글라우룽. 여기서 글라우룽은 최후를 맞이한다. (Illustrated by Guy Gondro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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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초인 점보트 3 (1977), 無敵超人ザンボット3 / Zambot 3


ⓒ SOTSU · SUNRISE


<정보>

◈ 원작: 스즈키 요시타케, 토미노 요시유키
◈ 총감독: 토미노 요시유키
◈ 각본: 고부 후유노리, 아라키 요시히사, 요시카와 소지 外
◈ 연출/스토리보드: 토미노 요시유키, 사다미츠 신야, 히로카와 카즈유키 外
◈ 캐릭터 디자인: 야스히코 요시카즈
◈ 메카닉 디자인: 히라야마 료지 / 오카와라 쿠니오, 스튜디오 누에 (디자인 협력)
◈ 미술감독: 나카무라 미츠키
◈ 음악/주제가: 와타나베 타케오, 마츠야마 유지 / 호리 코이치 外 (노래) 
◈ 기획: 선라이즈
◈ 제작사: 선라이즈, 소츄 에이전시, 나고야 TV
◈ 저작권: ⓒ SOTSU · SUNRISE
◈ 일자: 1977.10.08
◈ 장르: SFf, 퍼로봇,액션
◈ 구분/등급: TVA (23화) / 초등생 이상가 (PG)


<시놉시스>

정체불명의 외계인 가이조크의 침략으로 모성을 잃고 지구로 피신하게 된 비알성인의 생존자인 진 일가. 지구에 도착한 진 일가는 각각 진, 카미에, 카미기타의 세가문으로 나뉘어져 살아가게 된다. 가이조크가 머지 않아 지구에도 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을 한 카미기타 가문의 헤이자에몬 장로는 지구에 묻혀진 비알 성인의 유물인 이동요새 킹 비알과, 변신합체 로봇 점보트 3를 발굴하는 한 편, 진 가문의 캇페이와, 카미에 가문의 우츄타, 그리고 자신의 손녀인 키미기타 가문의 케이코 셋을 점보트 3의 파일럿으로 키워 다가오는 가이조크의 침략에 맞서게 하는데...


<소개>

'용자 라이딘(1975)'을 통해 로봇 아니메에 발을 들인 선라이즈는 도에이 동화의 '초전자로보 콤배틀러 V(1976)'와 '초전자머신 볼테스 V(1977)'의 하청작업을 통해 히트 로봇 아니메의 제작경험을 쌓게 된다. 비록 나가하마 타다오라는 불세출의 연출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으나, 이 작품들이 이 정도의 완성도를 내는데 있어서 선라이즈가 보여준 능력은 영세 제작사로서는 돋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SF 창작집단인 스튜디오 누에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빼놓을 수 없기는 하다.)

특히, 라이딘을 통해 연출가로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던 토미노 요시유키는 나가하마 타다오 밑에서 콤배틀러 V와 볼테스 V의 연출과 콘티를 맡아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거장의 노하우를 습득하면서 한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로맨티스트적인 세계관을 보여준 나가하마 감독과는 달리, 영화학도 출신이자 현실주의자였던 토미노는 드라마와 로봇 아니메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나가하마의 노하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데, 그것이 토미노의 두번째 로봇 아니메이자 리얼로봇과 슈퍼로봇 사이의 전환기를 마련하게 되는 '무적초인 점보트 3 (1977)'인 것이다.

토호쿠 신사(東北新社)의 자회사로 선라이즈와의 공동출자로 출범한 창영사(創映社)는 토호쿠 신사로부터 독립하여 선라이즈와 합병한 후, 독자적인 로봇 만화영화를 만들어 자사를 홍보코자 했다. 여기에 자사의 이미지 향상을 노리고 있던 완구업체 클로버가 가세하여 스폰서와 제작사라는 구도가 형성된다. 또한 소규모 광고 에이전시인 소츄 에이전시를 통해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초기 선라이즈의 사업구도가 구색을 갖추게 된다. ([1] 참조)

당시 콤배틀러 V와 볼테스 V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합체로봇물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던 선라이즈였기에 자연스레 로봇의 컨셉 역시 이들 두 작품의 영향을 받게 된다. 다만, 5기 합체의 컨셉은 점보트 3에 와서 3기 합체로 간소화하게 되는데, 일각에서는 아직은 영세한 규모와 부족한 노하우를 가진 선라이즈의 작업량을 줄이자는 의도와 함께, 중소업체였던 클로버가 5기 합체라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구현할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 참조) 어찌되었건 간에 3기 합체라는 이 컨셉은 차기작 '무적강인 다이탄 3(1978)'을 거쳐 '전설거신 이데온(1980)'에 까지 이어지면서 선라이즈 변신합체 로봇의 어떤 트렌드로 자리잡게 된다. (건담 역시 상반신과 하반신, 그리고 코어파이터로 3단 분리되니 3기 합체의 컨셉을 가지고 있다고도 봐야할지도)

점보트 3은 총을 사용하는 거대 로봇이라는 개념과 함께 양산형 로봇이 등장하는 병기적인 컨셉이 도입되는 리얼로봇의 초창기 모습이 보이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토미노 스타일의 현실적이고 비극적인 드라마가 도입되었다는 점에 그 진정한 의의를 찾아야 할 듯 싶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주변의 인물들이 차례로 희생되고, 외계인의 침략을 불러오는 원흉이라며 주인공들이 사람들에게 매도당하며, 이로 인해 주인공들이 전투중에 부서지는 건물과 주변상황을 의식해야 하는 등, 기존의 로봇 아니메에서는 보기 힘든 드라마적인 모습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표현에 있어서도 로맨티스트였던 나가하마의 그것과는 달리 지극히 현실적이고 비관적이어서 보는 내내 어린 시청자들에게는 어필할 수 없는 시리어스함이 가득한 작품이라 하겠다.

특히, 최종결전에 이르러 하나둘씩 생을 마감하는 주조연급의 희생은 로봇물을 넘어 아니메로서는 이례적인 충격의 장면이기도 했는데, 3인의 주인공급 인물들 중 오로지 캇페이만이 살아남아 지구에 귀환하여 절규하는 모습은 로봇물로서는 이례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그로 인해 그동안 주인공들을 박해하던 지구인들이 캇페이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감격스러운라스트조차 해피엔딩이 아닌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적은 편수에 우울하고 충격적인 전개였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으며 완구판매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결국, 이 아슬아슬한 전개가 성공적인 결과물로 자리하게 되면서 선라이즈는 차기작을 제작할 수 있는 탄력까지 얻게 되니 상업적인 면에서나 작품 내적인 면에서나 점보트 3의 성공은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점보트 3가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면, 토미노의 의지는 다시 한 번 꺾일 수 밖에 없었으며, 불과 3년도 체 안되는 훗날 일어나게 되는 기동전사 건담의 신화 역시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 SOTSU · SUNRISE

ⓒ SOTSU · SUNRISE



<참고 사이트>

[1] 無敵超人ザンボット3, Wikipedia Japan
[2] 무적초인 점보트 3, 엔하위키 미러
[3] 거대로봇 연구서설 - 볼테스 대 점보트 편 by 백금기사, 백금기사의 舊 연구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OTSU · SUNRISE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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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1977) 


ⓒ 김진희 / 블루미디어

 
<정보>

◈ 감독: 임정규
◈ 각본: 민병권
◈ 구성: 김일남
◈ 원화: 홍형선
◈ 배경: 오응환
◈ 촬영감독/촬영: 조민철 / 조복동
◈ 음악/주제가: 정민섭 / 지구어린이 합창단
◈ 기획/제작: 김일환 / 김삼용 
◈ 제작사: 삼도필름
◈ 저작권: ⓒ 김진희 / 블루미디어
◈ 일자: 1977.07.27
◈ 장르: 무협, 액션, 히어로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태권도 사범인 양사범과 연인인 장선생은 등산중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둘은 산 속을 헤매던 도중 한 동굴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서 야생 모습으로 살고 있는 마루치와 아라치를 발견하게 된다. 스승이자 보호자였던 할아버지를 정체불명의 파란 해골에게 잃어버린 후, 홀로 살고 있던 두 소년 소녀를 가엽게 여긴 양사범과 장선생은 둘을 거둬들이기로 한다. 양사범의 지도 하에 마루치와 아라치는 태권도를 배우게 되고, 그동안 야생에서 쌓아온 실력에 체계적인 지도를 받은 둘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마침내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게 되는 마루치.

발로막차 선수(발로 막 차지는 못하더라)와의 결승전이 한참 진행될 무렵, 정체불명의 괴한이 뛰어들어 발로막차를 쓰러뜨리고 마루치에게 덤벼든다. 승부를 우세하게 끌고 가던 마루치는 그만 괴한의 암수로 인해 중상을 입는다. 괴한은 바로 파란해골 13호가 이끄는 비밀조직 파란해골단의 공격대원. 과연 파란해골단이 꾸미는 음모는 무엇이며, 마루치와 그의 할아버지는 어째서 그들의 습격을 받게 된 것일까.


<소개>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1967)'에 이은 한국의 오리지널 히어로 액션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1976)'와 '로보트 태권브이 2탄 우주작전 (1977)'에서 원화를 담당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은 임정규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임정규 감독은 한일합작 애니메이션인 '황금박쥐(1968)'를 통해 만화영화계에 입문한 뒤, 한국 초창기 애니메이션의 메카 세기상사가 제작한 '우주의 왕자 황금철인(1968)', '보물섬(1969)', '왕자호동과 낙랑공주(1971)', '번개아텀(1971)', '괴수대전쟁(1972)'과 같은 작품에서 원화를 맡아온 대표적인 애니메이터 출신 연출가이다.([3], [4] 참조) 그가 참여한 작품의 상당수가 그러했듯이 그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마루치 아라치(1977)'와 '전자인간 337(1977)' 역시 히어로 액션물을 표방한 작품으로, 김청기 감독이 한국 토종 로봇 애니메이션을 이끌온 한국의 나가하마 타다오(로망 로봇 시리즈 3부작으로 마징가 Z 이후 일본 로봇만화영화의 틀을 만든 인물)라면, 임정규 감독은 히어로 애니메이션을 이끌어온 한국의 요시다 타츠오(타츠노코 프로의 설립자 겸 만화가로, 독수리 5형제, 신조인간 캐산 등을 만들어냄)라 부르면 어떨까 싶다.

특히, 임정규 감독은 로봇 디자인이라는 장벽에 막혀 결국 아니메의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우를 범했던 김청기 감독과는 달리, 최대한 오리지널 디자인과 스토리로 승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마침 MBC 라디오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이던 어린이 라디오 드라마 마루치 아라치를 원작으로 한국만의 오리지널 아니메를 만들어내게 되니, 바로 이 작품이 70년대 한국 만화영화계에서 로보트 태권브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마루치 아라치인 것이다.

한국 만화영화사에서 마루치 아라치의 위치는 태권브이의 그것에 비견될 만큼 특별한 것인데, 홍길동 이후 10여년 가까이 제작되어온 당시 한국 만화영화가 홍길동 외에는 특별한 오리지널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체, 전래 동화나 일본 아니메(번개 아텀은 철완 아톰을, 태권브이는 마징가 Z를 모티브로 삼았음)의 컨셉을 도입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던 당시, 최초의 오리지널 캐릭터로 만화영화를 제작했다는 점이 그것이라 하겠다. 또한, 전후의 궁핍한 시대 속에서 막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잘 살아보자는 의지를 불태우던 당시의 한국인들에게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를 통한 자긍심의 고취라는 민족적 관점에서도 마루치 아라치의 의의는 높았던 셈이다.

상세보기

인기 라디오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덕분에 라디오의 고정팬층을 그대로 극장에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흥행을 보증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마루치 아라치가 기록한 서울 관객 16만명 동원은 태권브이 1탄의 기록에는 조금 못미쳤지만, 동시기에 개봉했던 태권브이 3탄 수중특공대의 기록인 5만5천명을 능가하는 것으로([1] 참조), 당대 최고의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과의 맞대결에서 압승을 거둔 셈이었던 것이다.

단, 마루치 아라치도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과 동물들의 한가로운 모습을 인트로 씬으로 구성하며, 당시 한국 만화영화가 자주 사용하는 의미없는 디즈니 따라하기 공식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아쉬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중간에 마루치를 구하는 인어 소녀 유리의 등장은 히어로 액션물인 작품의 정체성과는 대비되는 조금 생뚱맞은 모습이기도. 그 밖에 왜 파란 해골 13호가 마루치와 아라치를 키운 할아버지를 헤쳤는지, 그리고 왜 파란해골 13호의 오른팔인 팔라팔라가 세계 태권도 대회장에 참석하여 마루치를 보고는 그의 제거를 명령했는지에 대한 일부 설명이 누락되는 등, 드라마적으로는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독창적인 이 작품에도 일부 아니메의 영향이 눈에 띄긴 하는데, 일단 악당역을 맡은 파란해골 13호는 아무래도 임정규 감독의 데뷔작인 황금박쥐의 외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놀랍게도 아라치의 판치라(속옷이 살짝 비치는) 액션이  등장하는 파격 연출이 등장하기도... (어이쿠, 뭔 소리. 이건 그냥 웃자고 한 소리다, 아하하. 아, 안 웃기네.)

마루치 아라치는 이후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같은 해에 개봉된 전자인간 337에도 주연급 캐릭터로 등장했으며, 88년에는 올림픽 개최를 맞이하여 MBC TV를 통해 TV 시리즈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작품의 스틸 이미지가 아닌, 컨셉 아티스트로 보이는 일러스트.



<참고 사이트>

[1] 고전열전: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by 페니웨이, In This Film
[2]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MOVIEMINI.net
[3] '태권V' 훈이와 깡통로봇은 친척?, 오마이뉴스
[4]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 (1967~2006) by 캅셀, 캡슐 블로그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김진희 / 블루미디어에게 있습니다.


마루치 아라치 - 8점
임정규 감독/블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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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인전대 바라타크 (1977), 超人戦隊 バラタック / Balatack


ⓒ TOEI Animation

<정보>

◈ 원작: 이케바라 시게토, 小林檀
◈ 총감독: 니시자와 노부타카
◈ 시리즈구성: 마루야마 마사오 
◈ 캐릭터 디자인: 코마츠바라 카즈오
◈ 메카닉/미술 디자인: 츠지 타다나오
◈ 작화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
◈ 음악/주제가: 코모리 아키히로 / 미즈키 이치로 (노래)
◈ 기획: 요코야마 켄지
◈ 제작사: 도에이 동화, TV 아사히
◈ 저작권: ⓒ TOEI Animation
◈ 일자: 1977.07.03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31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지구에서 11광년 떨어진 엡실론 별의 총통 샤이딘은 행성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가토 박사가 개발한 이론에 흥미를 갖고 친선사절단인 샤이니잭을 지구에 파견하여 가토 박사와 공동개발을 제안하고자 했다. 하지만, 샤이니잭의 책임자인 사령관 고르테우스는 개인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가토 박사를 납치하고 단독으로 지구 침략을 개시하게 된다.

영문도 모른체 미식축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던 가토 박사의 둘째 아들 유지는 갑작스레 4명의 젊은이들에게 이끌려 다목적 변신 로봇 바라타크에 올라타게 된다. 초능력을 가진 5명의 젊은이들이 힙을 합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바라타크. 유지 역시 나머지 4명처럼 초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바라타크는 지구방위를 위해 비밀리에 만들어진 로봇으로, 마침내 5인의 힘에 의해 지구 침략을 개시한 고르테우스 총통과 맞서 싸우게 된다.


<소개>

'강철 지그(1975)', '마그네로보 가킨(1976)'에 이어 제작된 세번째 마그네로보 시리즈. 일부에서는 마그네로보 시리즈에서 강철 지그를 빼고 '대공마룡 가이킹(1975)'을 넣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타카라에서 출시된 구체 관절과 자석부품을 지닌 로봇 완구 강철 지그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시작된 브랜드가 마그네 로보이기에 가이킹보다는 지그를 포함시키는 것이 맞다고 보여진다. (가이킹은 작품 내에서 특별히 마그네로보의 정체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그네로보 라는 타이틀은 두번째 작품인 가킨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본격적인 마그네로보 시리즈는 가킨과 바라타크 두 작품이라고 봐도 될 듯 싶다.

강철 지그를 끝으로 나가이 고와 사실상 결별한 도에이였지만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차기작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나가이 고에게서 아이디어를 구걸(좀 표현이 과격하지만 어떻게 보면 구걸이 맞지 않을까 싶다)하여 만든 가이킹에 이어 가킨 역시 강철 지그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작품이었기에 바라타크는 그런 면에서 도에이가 마그네로보 시리즈를 확실히 자기화시킨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5인전대라는 설정은 아무래도 콤배틀러 V와 볼테스 V로 당시 로봇 아니메의 트렌드를 좌지우지 하던 나가하마 타다오 작품들의 인기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메카닉 디자인에 있었는데, 다소 우스꽝스러운 산업용 로봇같은 인상을 풍기는 디자인으로 인해 바라타크는 스스로의 상품가치를 깎아 내리게 된다. 전 시리즈인 지그나 가킨의 경우는 기괴한 외모였지만 그 속에서도 나름의 멋과 스타일리쉬함이 살아있었으나 바라타크의 경우는 일반적인 슈퍼로봇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인해 멋진 주역메카를 기대하던 아이들에게는 많은 실망감을 주었을 듯. 더군다나 당시는 콤배틀러 V와 볼테스 V와 같이 멋드러진 변신합체를 보여주는 로봇 완구가 등장한 이후인지라 상대적으로 열악한 외모가 더더욱 경쟁력을 상실했을 터이다. (그 독특한 모양새 덕분에 오히려 요즘 보면 신선한 느낌도 있다.)

주인공들이 바라타크에 직접 탑승하는 것이 아니라 합체 비행선인 펜타고라스에 탑승하여 초능력으로 바라타크를 움직이는 것은 이색적이다. 여기에 마그네 시리즈의 특성을 적극활용하여 자유롭게 파츠를 교환하여 물속과 땅속 등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컨셉은 다른 로봇물에서는 보기 힘든 신선한 모습이었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당시 로봇물과는 달리 코믹한 요소를 대거 도입하였는데, 아동틱한 로봇 디자인과 함께 이러한 모습은 당시 로봇물의 시청층이 점차 고연령대로 이전하는 것과는 달리 역행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적측인 엡실론의 우주인들은 파충류 인간들인데, 그 모습 역시 아동용 만화영화에서 볼법한 디자인이다. 컨셉면에서나 이야기면에서 일부분은 타츠노코적인 취향이 엿보인다.

국내 렌탈 비디오 시대가 열리면서 타이거마스크 2세와 함께 당시 아니메 비디오의 첫 신호탄을 알린 작품으로 기억된다. 일본에서도 한동한 미디어화 되지 않으면서 레어 타이틀로 전락해 있었으나 2010년 3월 마침내 DVD로 발매되었다.

ⓒ TOEI Animation

ⓒ TOEI Animation



<참고 사이트>

[1] マグネロボシリーズ, Wikipedia Japan
[2] 超人戦隊バラタック, Wikipedia Japan
[3] [애니]초인전대 바라타크 by 우람솔, 우람솔님 블로그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 Anima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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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자머신 볼테스 V (1977), 超電磁マシーン ボルテスV / Voltes V


ⓒ TOEI


<정보>

◈ 원작: 얏테 사부로
◈ 감독: 故 나가하마 타다오
◈ 연출: 야마자키 카즈오, 요코야마 유이치로, 타카하시 모토스케, 테라다 카즈오, 토미노 요시유키
◈ 각본: 고부 후유노리, 사쿠라이 마사아키, 츠지 마사키 外
◈ 캐릭터 디자인: 유키 히지리
◈ 메카닉 디자인: 메카맨 (오카와라 쿠니오), 스튜디오 누에
◈ 작화감독: 사사카도 노부요시, 사카모토 사부로, 시오야마 노리오, 카나야마 아키히로, 타카하시 모토스케,
◈ 미술감독: 미야노 타카시
◈ 오프닝 애니메이션: 故 카나다 요시노리
◈ 음악/주제가: 쯔즈이 히로시 / 호리에 미츠코, 귀뚜라미73 합창단 (노래)
◈ 기획: 우스이 유쇼우, 이이지마 케이
◈ 제작사: 도에이, TV 아사히, 선라이즈, 토호쿠 신사 
◈ 저작권: ⓒ TOEI
◈ 일자: 1977.06.04
◈ 장르: SF, 드라마,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40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발달된 문명을 가진 행성 보아잔. 머리에 뿔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신분이 나뉘어지는 봉건제 국가인 보아잔 별의 황제 즈 잔바질은 조카인 프린스 하이넬을 원정군 사령관으로 삼아 지구침공을 개시한다. 저명한 과학자부부인 고우 켄타로와 고우 미츠요는 은사인 하마구치 박사와 함께 보아잔성의 침공을 예견하고 볼테스 V를 만들어 이동요새 빅 팰콘을 만들고 그 침략에 대비하지만, 볼테스 V의 완성 후 켄타로 박사는 홀연 모습을 감추고 만다. 사실 그는 보아잔 별의 제1 황위계승자로 뿔이 없다는 이유로 이복동생인 잔지발에게 황위를 뻬앗기고 지구로 추방된 외계인이었던 것이다. 잔바질 황제의 침공에는 바로 이복형인 켄타로 박사를 제거하려는 음모 역시 숨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른체 켄타로의 세 아들들은 볼테스 팀을 구성하여 보아잔 별의 침략에 맞서 지구를 지키게 된다.


<소개>

'용자 라이딘(1975)'의 호평, 그리고 연이은 '초전자로보 콤배틀러 V(1976)'의 대성공은 나가하마 타다오에게 로봇 아니메의 거장이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부여해주고 있었다. 콤배틀러 V가 당시 로봇물의 트렌드를 바꾸어버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게 되자 종영도 되기 전에 후속작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콤배틀러 V의 종영한 뒤 일주일 만에 방영을 시작한 작품이 바로 콤배틀러 V와 함께 나가하마 타다오의 걸작 로봇물로 평가받고 있는 '초전자머신 볼테스 V(1977)'다.

전작 콤배틀러 V의 경우는 용자 라이딘의 속편을 기획하던 와중 도에이의 요청에 의해 급거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면서 급하게 제작한 전례가 있었는데, 이 작품 역시 그 정도는 아니지만 꽤 촉박한 스케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나가하마 감독은 메인이 되는 주역 로봇의 디자인에 대한 권한을 스폰서에 완전히 위임하게 된다. 주역메카에 대한 논쟁으로 제작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도중 스폰서의 요청에 따라 청공검이라는, 로봇 최초로 검이라는 무기의 컨셉이 늑장투입되는 바람에 작화부터 여러 설정에서 대거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1] 참조)

스폰서에게 로봇에 대한 모든 것을 위임한 후 나가하마가 신경쓴 것은 스토리였다. 이미 기획단계에서 정해진 것은 직전작인 콤배틀러 V의 흥행요소, 즉 변신합체 로봇과 전대물이라는 설정이었다. 이대로라면 전작과의 차별점이 없는 아류작에 그칠 것이 자명한 바, 나가하마 감독은 콤배틀러 V와의 차별을 이야기의 구조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드라마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로봇물로 유명해진 그였지만 기실 그는 '거인의 별(1968)'이라는 열혈 스포츠물로 유명한, 드라마에 능한 감독이기도 했다. 세계명작극장 '엄마찾아 삼만리(1976)'에서 힌트를 얻은 나가하마는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는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전쟁 속에 펼쳐지는 비극적인 가족史를 강조한 작품세계를 구축한다. 이를 위해 1회로 에피소드가 종결되는 전작과는 달리, 대하드라마 형태로 연이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로봇 아니메로서는 한단계 성숙한 스토리텔링을 추구하게 된다.

또한, 전작의 미남 악역인 가루다의 설정을 더더욱 발전시켜 비극적인 드라마를 한가득 품은 캐릭터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그가 바로 올드팬의 뇌리에 지금까지도 뚜렷이 남아있는 프린스 하이넬이다. 이전까지의 악역에 비해서 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연을 부여받은 하이넬은 그 최후마저도 고고하고 비장했으니, 당대 로봇 아니메에서 건담의 샤아 아즈나블이 등장하기 전까지 악역 캐릭터로서 가장 독보적인 아우라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실제 주인공인 고우 삼형제나 히로인인 오카 메구미보다도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셈이다. 유키 히지리에 의해 그려진 하이넬은 순정만화와도 접점을 이루면서 로봇물의 캐릭터로는 이질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는데, 후일 나가하마 타다오가 연출하게 되는 '베르사이유의 장미(1979)'의 주인공인 남장 여인인 오스칼과의 이미지와도 묘하게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비극적인 고우 삼형제와 하이넬의 드라마 외에도 뿔이 있는 귀족과, 뿔이 없는 평민으로 양극화된 보아잔 성의 구조적 문제 역시 로봇물로서는 드물게 자세히 다루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볼테스 V의 주제는 바로 이 양극화된 사회를 주인공들이 개혁한다는 것이라 하겟는데, 이런 사회적인 메시지는 당시 로봇물로서는 이례적인 것으로 이 볼테스 V를 기점으로 로봇물이 성인층도 접할 수 있는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나가하마는 현실주의보다는 낭만주의를 선택하였고, 이러한 그의 스타일로 인해 초전자 시리즈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콤배틀러 V와 볼테스 V는 후일 '낭만로봇 시리즈'라는 실로 로맨틱한 별칭을 얻게 된다.

계층 간의 갈등을 타파한다는 사회적인 메시지는 일본보다는 해외에서 주효했다. 78년도에 필리핀으로 수출된 볼테스 V의 인기는 마치 프랑스에서의 'UFO 로보 그렌다이저(1975)'의 그것과도 같았는데(평균시청률 58%), 이런 류의 만화영화를 필리핀 아이들이 접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난도 마르코스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불신이 바로 이 볼테스 V의 보아잔 별의 상황에 투영되면서 성인층도 이 작품을 즐겨보았다는 이유도 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필리핀 정부는 최종화 직전 볼테스 V의 방영을 금지했으니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라 하겠다. ([1], [4] 참조)

오프닝 주제가는 호리에 미츠코가 불러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했다. 전대물(비밀전대 고렌쟈)에서는 주제가를 부른적이 있는 그녀였으나 로봇 만화영화의 주제가는 여성으로서는 최초였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기도 했다. 또한, 오프닝 원화는 일본 최고의 작화가 중 한명으로 손 꼽히는 故 카나다 요시노리가 맡아 특유의 역동적인 카메라워크와 다이나믹한 움직임으로 폭발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연도별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꼽을 때 70년대 오프닝 중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오프닝. 캅셀님 포스트 참조)  

ⓒ TOEI / ⓒ Tokuma Shoten


☞ 볼테스 V에 대한 괜찮은 리뷰 보러가기: <초전자머신 볼테스 V (파이브)> (1977) by 키웰
☞ 볼테스 V에 대한 괜찮은 리뷰 하나 더 보러가기: 아니메 집중분석 22 [초전자머신 볼테스 V] by 바이칸


<참고 사이트>

[1] 超電磁マシーン ボルテスV, Wikipedia Japan
[2] Chōdenji Machine Voltes V, Wikipedia
[3] Choudenji Machine Voltes V (TV), ANN
[4] 초전자머신 볼테스 V, 엔하위키미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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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스탭>

◈ 감독: 오시이 마모루
◈ 원작: 모리 히로시
◈ 제작: 프로덕션 I.G


<시놉시스> 

번의 전쟁 후 평화가 찾아온 근 미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전쟁을 일종의 쇼로 만들어 전문기업으로 하여금 전쟁을 대행토록 한다. 이러한 가식적인 평화 속에 사람들은 TV 속에 벌어지는 전쟁을 그저 남의 일처럼 여기게 된다. 전쟁은 로스톡社과 라우테른社 간의 대결로 치닫고 있었는데, 라우테른社의 전설적인 파일럿 '티쳐'는 모든 파일럿들에게 공포이자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지고 있다.

한편, 로스톡社의 유럽전선 기지 우리스로 배속된 신참 파일럿 칸나미 유이치. 이전의 기억이 없는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의 모습을 한 킬드레이다. 킬드레는 전쟁을 쇼로 만든 이 세계에서 사람들을 대신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이면서도 인간과는 다른 존재, 영원한 전쟁을 위해 늙지 않는 소년 소녀들이다. 우리스 기지에 배속되어 기지 책임자에게 전입신고를 하는 유이치. 기지 책임자이자 킬드레 출신인 쿠사나기 스이토와 칸나미 유이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노센스 이후 4년만에 돌아온 오시이 마모루의 신작

작인 공각기동대의 속편 '이노센스(2004)'를 통해 오시이 감독스러운 색체의 극단적인 절정과 그로 인한 거부감(아마 이러한 평가를 감독 자신은 즐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시이 감독은 그의 영화는 1만명 정도의 관객이 좋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죠. 1편의 영화를 100만명이 1번씩 보든 만명이 100번씩 보든 같다고 생각하는 그인데요. 실제로 오시이 감독의 마니아들이라면 그의 작품을 대부분 몇 번씩은 감상했을 겁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뭔 말인지 모르겠든요.)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오시이 마모루. '공각기동대(1995)'를 통해 그를 알게 된, 그의 작품에 다소 생소한 팬들이라면 오시이 마모루의 이런 모습은 어김없이 불편함과 지루함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상업용 대중예술로서의 만화영화, 모든 사람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영화라는 관점에서 오시이 감독의 작품들은 늘 규격 외의 것들이었죠. 실상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준 공각기동대도 일본 내 첫 개봉시에는 참혹할 정도로 관객의 외면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2008년, 마침내 새로운 작품을 들고 우리의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보다 늦은 2010년에 이르러서야 개봉(현재 개봉 중이지만 언제 극장가에서 내려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중이지만, 어찌되었건 마침내 4년만에 찾아온 오시이 감독의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는(?) 신작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스카이 크롤러(2008)'입니다.

언제나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문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로 '아니메의 철학자'로 불리는 그의 이번 신작은 과도한 난해함으로 인해 '현학적이고 잘난척 하는 것 같다'라는 혹평을 들었던 이노센스 직후의 작품(물론, 그 사이 어썰트 걸이라는 실사영화가 있지만)이라는 점에서 여러가지 기대와 우려를 갖게 합니다. 과연 오시이 마모루는 전작의 비평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좀더 대중친화적인 작품으로 찾아올 것인지, 아니면 이제껏 그래왔듯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어김없이 펼쳐갈지가 말이죠. 기대 속에 베일을 벗은 스카이 크롤러는 과연 오시이 감독의 작품다움에도 불구하고 이전과는 다른, 메마름 속에 한줄기 서정적인 감성을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늙지 않는 소년들인 킬드레와 티쳐가 작금의 일본시대의 젊은이와 기성세대를 비유한 것 때문일까요, 아니면 압도적인 영상미의 CG 공중전에서 느껴지는 시원해진 기분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쿠사나기와 칸나기 유이치의 잔잔한 멜로라인 덕분일까요. 하늘을 수놓는 비행기들의 거친 엔진음 사이로 퍼지는 애잔한 카와이 켄지의 음악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압도적인 영상미로 그려진 쓸쓸하고 메마른 창공

입부에 펼쳐지는 장쾌하고 실감 넘치는 프로펠러 전투기들의 공중전은 스카이 크롤러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이러한 압도적인 전투기들의 공중전은 참으로 오랜 만에 느껴보는데요. 짧게는 곤조의 '전투요정 유키카제(2001)'나 '라스트 엑자일(2003)'에서부터 길게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1992)'와 '천공의 성 라퓨타(1986)', 그리고 故 토리우미 히사유키의 '에어리어 88(1985)'과 '독수리 5형제(1972)'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실제로 오시이 마모루는 토리우미 감독의 제자로 독수리 5형제를 통해 연출로 데뷔했으니, 스카이 크롤러는 공중전 연출의 장인이었던 스승의 스타일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또다른 비행씬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현재 붉은 돼지 속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가 들리고 있지요.)

토리우미 히사유키가 에어리어 88에서 보여주었던 실감 넘치는 공중전의 묘사는 제자인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계승 발전되었습니다. 밀리터리 마니아인 오시이 감독의 정체성에 CG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의 모습이 반영된 놀라운 퀄리티의 영상미는 좌중을 압도하는데요. 전작인 아발론이나 이노센스에서 보여준 실사와 아니메의 결합(아발론에서는 실사를 아니메처럼 촬영하고, 이노센스에서는 아니메를 실사처럼 촬영하는 시도를 함. 결국 두 번 모두 미완성에 그치지긴 하지만...)이라는 실험적 연출기법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보다 사람들이 보기 편한 CG로 대중적인 접근을 취했다고 보여집니다. 실제로 공중전 외에는 2D 작업과 셀 애니메이션의 활용으로 이노센스에서 느껴졌던 거부감을 상당부분 줄인 것으로 추측되는군요.

결국, 영상미에 있어서 전작의 실험정신과는 다른 대중적인 느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너무도 섬세하고 정확한 장면구성과 움직임 덕에 비주얼은 여전히 우리에게 압도적인 느낌을 줍니다. 즉, 기막히게 멋지지만 너무도 완벽한 나머지 불편함이 느껴진다는 말인데요. 마니아의 경우라면 몰라도 일반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그 영상만으로도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극사실주의적인 색체를 어김없이 보인다 하겠습니다. 

이런 스카이 크롤러의 완벽한 영상미학은 공중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굳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교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늘이 로맨티스트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반면, 오이시 마모루의 하늘은 차가우리만치 냉정한 이성주의자의 그것이라고나 할까요. 전자와 후자의 퀄리티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듯 싶군요. 단지 취향의 차이일 뿐, 오시이 감독의 영상미는 확실히 그만의 정체성을 보란듯이 화면 가득 빛내고 있습니다.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영원한 젊은 속에 시들어가는 피터팬, 킬드레

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킬드레'라고 불리는 어린 소년 소녀들입니다. 나이를 먹지않는, 정상적으로 태어났다기 보다는 무언가 인공적인 방법에 의해서 태어난 존재인 킬드레. 전쟁이라는 인류 최대의 인공적 재앙을 쇼로 만들고, 그것을 아이들의 모습을 한 킬드레가 대신한다는 스카이 크롤러의 설정은 다분히 충격적이면서도 수많은 아니메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의 심오한 변주곡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작품 내에서 킬드레는 풍요로운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길들여져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는 현재의 젊은이들을, 그들과 맞서게 되는 정체불명의 격추왕 '티쳐'와 전쟁회사에 속한 어른들은 삐뚤어진 사회를 구축한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비유로, 확실히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띈 아니메에 자주 등장하는 어린 소년 소녀 전사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고 하겠지요.

스카이 크롤러는 이러한 킬드레의 모습을 비행기를 몰고 신기의 조종술로 적군들을 쓰러뜨리는 멋진 피터팬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어린 시절 또는 부모의 기억과 같이 정상적인 인간들이 가져야할 추억을 제거당한 체 매일매일 반복되는 전쟁 쇼 속에서 매말라가는 소년들의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보통의 아니메와는 다른 쓸쓸한 분위기를 이끌어 냅니다. 미성년자인 이들이 애연가인냥 연신 담배를 피워대거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콜걸과 잠자리에 드는 모습은 십대의 탈선이나 방황, 혹은 주인공들을 멋지게 보이기 위한 클리셰라기보다는 반복되는 전장과 잃어버린 자아라는 공허감을 메우기 위한 그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인 듯 위화감과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감정이 없는 듯한 메마른 표정과 함께 시종일관 잔잔하게 묘사되면서 작품의 분위기는 심연 속에 어두운 무언가가 존재하는 잔잔한 바다와 같은 형상을 띄게 됩니다.

특히, 이야기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우리스 기지의 지휘관 쿠사나기 스이토의 경우는, 킬드레로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생존하며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었으며,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마치 어른과 킬드레의 경계선 상에 위치한 인물로, 작품의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하겠는데요. 불안한 심리상태와 알 수 없는 공허감 속의 그녀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킬드레가 인간다움을 갖기 시작하는 과정의 모습이며, 동시에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마침내 사회에 첫발을 들인 그 시점의 모습과도 같은 것으로, 그녀를 통해 주인공인 칸나기는 킬드레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고, 마침내 그 운명에 맞서기 위해 티쳐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칸나기의 잊혀진 과거 역시 작품의 중요한 이야기거리입니다. 이 소재는 약간의 미스테리적인 형식을 취하면서 관객들에게 가벼운 수수께끼를 던져주게 되는데요. 이것이 그리 난해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 내에서 명확하게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상으로 그럴 것이다라는 모호한 답을 남긴 체 긴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전부터 그래왔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에는 깔끔한 결말이란 없습니다. 마치 무대의 조명이 서서히 꺼지면서 페이드인 하듯, 결말은 서서히 관객의 마음 속에서 꺼져가듯 사라지죠. 이러한 이야기는 명확함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없는 허무함과 공허감을 안겨줍니다.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전체적으로 무겁게 깔려 있는 분위기 속에 새로온 신참 동료의 신문 접는 모습을 보며 칸나기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그리고 킬드레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깊은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무언가가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쿠사나기와 칸나기의 인연은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와 미래를 향하기 시작합니다. 


긴 여운의 결말... 그리고 오늘 밤은 별에 안기어

라울 정도의 스펙타클한 공중전과 답답할 정도로 가슴 아프고 숨막히는 킬드레의 이야기는 묘한 부조화를 던져줍니다. 오시이 감독 스스로는 자신을 상업 만화영화 감독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실상 그가 보여준 작품들의 스펙트럼은 상업영화라는 표현이 무색한 난해한 작품들이 대부분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시이표 작품들은 하나같이 그 비주얼에서 상업적인 형식을 띄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연출한 작품 중에 유일하게 비주얼에서도 상업적이지 않았던 작품은 '천사의 알(1985)'이 아닐까 싶군요. 그러나 그러한 상업적인 비주얼 위에 풀어놓는 오시이 표 이야기는 언제나 끊임없는 자아와 정체성의 되물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실로 부조화스러운 작품들 그 자체랄까요.

다만, 스카이 크롤러는 그런 오시이 특유의 현학적 이야기와 상업적 극사실주의 속에서 한줄기 로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간 듯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위험한 것처럼 아슬아슬한 쿠사나기와 칸나기의 애정선은 작품의 주제, 즉 성장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고뇌와 정체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처럼 빛난다고 할까요. 너무나 메마른 느낌의 이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둘의 관계는 오히려 뜨겁지 않기에 애잔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감정이 메마른 쿠사나기가 칸나기에게 조금씩 마음을 보이는 이런 광경은 사실 오시이 감독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구요. (공각기동대나 패트레이버에서도 그랬지만, 오시이 감독의 작품에서 러브스토리는 드라마가 아닌 팩트 그 자체로 묘사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침내 칸나기는 티쳐에게로 기수를 돌립니다. 메마른 킬드레들의 가슴에 넓고 푸른 창공은 아름답지만 차가운 요람이자 묘지입니다. 때마침 엔딩에 흐르는 아야카의 '오늘 밤도 별에 안기어(今夜も星に抱かれて)'은 너무도 작품의 엔딩과 잘맞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러닝타임 내내 참고 참았던 감정이 녹아내리듯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 장면은 서서히 페이드 아웃되고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아, 엔딩 스탭롤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마시길. 엔딩곡이 너무도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끝에는 또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사이트>

[1] スカイ・クロラシリーズ, Wikipedia Japan
[2] 스카이 크롤러 スカイ クロラ, 2008, 씨네 21

[3] <스카이 크롤러> 오시이 감독의 수작 애니메이션, 무비조이
[4] ‘스카이 크롤러’ 오시이 마모루 감독, 존재, 그 이상의 주제는 없다!, 무비위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달의 영화 리뷰 2010년 11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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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왕자 (1977), 世界名作童話 白鳥の王子 / The Wild Swans  


ⓒ TOEI Animation

<정보>

◈ 원작: 안데르센 동화 '들판의 백조'
◈ 감독: 니시자와 노부타카
◈ 각색: 류 토모에
◈ 작화감독/작화감수: 츠노다 코이치 / 아베 타카시
◈ 미술감독: 치바 히데오
◈ 음악: 코모리 아키히로
◈ 기획/제작: 아리가 켄, 旗野義文 / 이마다 치아키
◈ 제작사: 도에이 동화
◈ 저작권: ⓒ TOEI Animation
◈ 일자: 1977.03.19
◈ 장르: 드라마, 세계명작동화,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사냥 중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왕은 길을 헤매던 중 한 마녀를 만나게 된다. 길을 빠져나오는 조건으로 마녀는 자신의 딸 그레타를 아내로 맞이할 것을 청하고, 마침 홀몸인 왕은 그레타를 데리고 숲을 빠져나오게 된다.

한편 왕에게는 6명의 왕자와 엘리사라는 1명의 공주가 있었다.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오직 요술 공만으로 찾아갈 수 있는 숲속 비밀의 집에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왕이 자신보다 아이들을 더 끔찍히 여기는 사실을 안 그레타는 질투심에 불타오른다.

모두가 잠든 밤, 요술의 공을 찾아낸 그녀는 이것을 사용하여 숲속 비밀의 집에 도착한다. 마법의 옷감을 던져 11명의 왕자를 백조로 만들어 버린 그레타. 절체절명의 순간, 백조로 변한 왕자가 엘리사에게 던진 그레타의 마법의 옷감을 가로채고, 엘리사는 숲속의 집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여 도망길에 오르게 된다. 오빠들을 그리워하며 정처없는 유랑의 길을 떠난 엘리사, 추운 겨울날 어느 동굴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빠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밤이면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가 해가 뜨면 다시 백조가 된다. 오빠들과 함께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엘리사. 

겨울이 끝나고 백조의 모습으로 먼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 오빠들은 자신들이 사람이 될 한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손에 닿기만 해도 따가울 정도의 가시나무 엉겅퀴를 짖이겨 그 실로 옷을 만들어 자신들에게 입히라는 것. 이 고통의 작업을 거쳐야만 오빠들을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는 엘리사.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조건이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조끼를 완성하여 오빠들에게 입힐 때까지 몇 년이 걸려도 절대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혹시라도 말을 하게 되면 오빠들은 모두 죽는다고 한다. 과연 그녀는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조건을 모두 지켜내고 오빠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소개>

안데르센 동화를 원작으로 새롭게 각색하여 만들어진 세계명작동화 1탄. 그림 형제의 '여섯마리의 백조'와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이 고전 전래동화가 새롭게 시작된 도에이 동화의 세계명작동화의 1번 타자로 선정되었다. 한동안 버려 두다시피 했던,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세계명작을 모티브로 한 극장판 만화영화가 '세계명작동화'라는 부제를 달고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도에이의 75년작 '인어공주(1975)'를 통해 세계명작동화도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로컬라이징을 통해 충분히 상업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인어공주(にんぎょ姫) 1975 by 캅셀 참조)

하지만, 그 외에도 당시 도에이 동화에서 A형 극장판을 주도하던 모리 야스지, 타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인재들이 대거 도에이 동화를 이탈하여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주도하며 인기를 이어간 것 역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은데, 특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엘리사의 어릴 적 모습이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1974)'의 주인공 하이디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한 점(헤어스타일부터 옷 스타일까지)이 이를 시사하지 않나 싶다.

못된 왕비에 쫓겨난 어여쁜 공주가 결국 고난을 이겨내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는 지극히 동화적이고 뻔한 결말의 작품이지만, 오빠들의 저주를 풀 수 있을 때까지 엉겅퀴 가시로 옷을 뜨면서 한마디도 말을 할 수 없는 엘리사의 설정은 꽤나 드라마틱하다. 시시각각 그녀에게 누명이 씌워지고 마녀로 몰려 화형장까지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도 묵묵히 오빠들을 위한 조끼를 짜는 그녀의 안타까운 장면에서부터 극적으로 조끼를 입고 인간으로 되돌아온 오빠들과의 감격적인 상봉까지 이르는 클라이막스는 멋진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 라스트 장면은 지금봐도 참으로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다만, 인트로의 비약이 너무 심해서 드라마적 완성도는 기대에 못미치지 않았나 싶다. 아동용을 타깃으로 한데다가 한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제작되다보니 아무래도 일부 내용을 불가피하게 삭제한 듯 싶다고 생각된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면서 엘리사의 비극적인 초반부가 축약된 것이나 그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슬픔 등이 그려지지 못한 부분도 아쉽다. 이러한 부분들이 살아 있었다면 보다 더 드라마틱한 작품이 되었겠지만, 이 정도로도 아동용 작품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겠다. 엘리사가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설정 덕분에 주인공 성우가 상당 기간 동안 입을 다물어야 하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 생겼는데, 한가지 의문은 도대체 왜 글자를 사용해 소통하지 않았냐는 것으로, 아마도 문자가 없는 나라거나 왕족이지만 불쌍하게도 문맹이거나 둘 중의 하나인가 싶다. 역시 애들에게는 엄마가 있어야... (실상은 동화인데 너무 따지는게 엘로스가 문제다)

한국에서도 명절특집으로 몇차례 방영되어 당시의 아이들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남긴 작품이다.


<참고 사이트>

[1] 세계명작동화 - 백조의 왕자 (世界名作童話 · 白鳥の王子) by 캅셀, CAPSULE: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2] 世界名作童話 白鳥の王子 (1977), allcinema.net
[3] The Wilde Swans, Wikipedia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 Anima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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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로봇 당가드 A (1977), 惑星ロボ ダンガードA / Wakusei Robo Danguard A



<정보>

◈ 원작: 마츠모토 레이지
◈ 감독: 카쯔마타 토모하루
◈ 각본: 야마자키 하루야, 요시오가 소지, 타무라 타쯔오 外
◈ 캐릭터 디자인: 아라키 신고, 히메노 미치
◈ 작화감독: 아라키 신고 外
◈ 미술: 우치카와 후미히로, 이토 이와미츠 外
◈ 음악/주제가: 키쿠치 슌스케 / 사사키 이사오&영 플래쉬 (노래)
◈ 기획/제작: 카스가 아즈마, 베쇼 코지, 카쯔타 미노루 / 미야자키 카즈야, 요시오카 오사무
◈ 제작사: 도에이 동화, 아사츠 DK, 후지 TV
◈ 저작권: ⓒ TOEI Animation
◈ 일자: 1977.03.06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56화) / 전체연령가 (G)


<시놉시스>

인류가 이주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천연자원의 보고, 녹색 행성 프로메테. 이 미지의 행성 프로메테를 향한 이주계획 통칭 프로메테 계획이 오오에도 박사를 중심으로 한창 진행되고 있다. 순조롭게 프로메테 계획이 진행되던 도중, 첫번째 우주선 발사가 폭발과 함께 실패를 맞게 된다. 대참사의 배후는 오오에도 박사와도 인연이 있었던 도플러 박사였으나, 사건은 우주선의 파일럿인 이치몬지 단테즈의 짓으로 꾸며지고 그는 프로메테 계획을 저지하려 한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고 만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치몬지 탄테즈의 아들인 16세 소년 이치몬지 타쿠야가 2차 프로메테 계획의 파일럿이 되기 위해 훈련에 매진하게 된다. 배신자라는 누명을 쓴 아버지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라온 타쿠야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프로메테 계획의 총괄 책임자인 오오에도 박사에 의해 키워졌다. 프로메테 계획이 재개됨과 동시에 도플러 박사는 선택된 엘리트만이 프로메테 계획에 이주할 수 있다는 명분하에 도플러 군단을 세우고 스스로를 총통으로 칭하며, 프로메테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전세계에 공격을 감행하게 되는데...


<소개>

마츠모토 레이지가 원작한 처음이자 마지막 로봇물. 선굵은 SF 드라마를 보여주었던 마츠모토 레이지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그것은 당시 도에이 동화의 노선 다변화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나가이 고와 사실상 결별하게 된 도에이는 나가이 고의 로봇물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로봇물을 제작함과 동시에, 선라이즈와 공동 합작으로 '초전자로보 콤배틀러 V(1976)'를 대히트 시키게 된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 듯 보였지만, 아무래도 선라이즈의 인력들이 주축이 되어 완성시킨 콤배틀러 V의 기대이상의 인기는 한편으로는 도에이에게는 불편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당시 '우주전함 야마토(1974)'로 인해 주가가 크게 오른 레이지에게까지 로봇물을 의뢰하게 되는데,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미 기획실에서 구색이 잡혀진 것으로, 레이지는 여기에서 세부적인 이야기 설정과 캐릭터 디자인만 가담하게 된다. 말 그대로 레이지의 이름만을 빌려온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다만,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로봇물과는 독특한 전개방식으로, 마츠모토 레이지만의 스타일이 가미된 로봇물로 거듭나게 된다. 특히, 주역로봇인 당가드 에이스가 13화에 이르러서야 등장하는 것은 로봇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12화까지 주인공은 당가도 에이스의 파일럿이 되기 위한 훈련과 훈련 중 도플러 군단의 공격로봇 메카사탄을 맞이하여 전투기를 몰고 나가 싸우는 등, 철저히 로봇물의 공식을 외면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것은 스토리를 다듬는 과정에서 로봇물을 싫어한 마츠모토 레이지가 변형시킨 것으로 추정되는데, 결국 스폰서의 압력에 의해 당가드 에이스가 13화에 비로소 등장하게 되니, 스폰서만 없었으면, 로봇물의 탈을 쓴 그냥 SF 드라마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TV 시리즈와 동시에 병행하여 연재된 월간 만화잡지에서는 최종화에만 달랑 등장하게 된다.)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도플러 군단에서 탈출한 정체불명의 인물로서, 타쿠야 등의 엄격한 훈련교관인 가면의 남자 캡틴 단이라는 설정은 인상적이다. '신조인간 캐산(1973)'이라든지 '합신전대 메칸더 로보(1977)' 등에서도 적군에 몸담고 있는 어머니와 주인공 아들이라는 비극적인 설정이 가미된 적이 있지만, 누명을 쓴 체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기억을 잃고 돌아와 서로가 부자인지도 모른체 교관과 훈련생으로 만나는 설정은 만화영화로서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설정이었다. 교관으로서의 캡틴 단은 악독하다고 할 정도로 훈련생들에게 엄격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와 팬들(특히 여성팬)의 공분을 사게 되면서 조기하차가 결정되었고, 덕분에 중반부에 가면을 벗고 아들과 극적인 상봉을 한 후 세상을 뜨게 된다. 캐릭터에 대한 팬들의 원성으로 부자간의 이별을 더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70년대 일본아이들에게도 엄격한 아버지는 비호감의 대상이었을지도)

중반부에는 토니 하켄이라는 미형 캐릭터가 등장하며, 콤배틀러 V의 가루다 장군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특히 마츠모토 레이지의 원안에, 아라키 신고, 히메노 미치 부부의 절정의 캐릭터 스타일링 덕에 레이지 스타일보다 더 미형의 캐릭터들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히로인인 키리노 리사는 레이지 히로인임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숱의 단발 커트가 인상적인 미인이었지만, 주인공인 타쿠야와의 멜로 라인을 포함하여 극중에서의 활약이 거의 두드러지지 않는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져 생각만큼 기억에 남을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이래저래 로봇물로서는 애매한 모습과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기는 하지만 레이지의 매력적인 캐릭터와 여러가지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가미된 데다가 도에이 동화가 두 팔을 걷어붙히고 밀어준 덕택인지 조기종영 없이 56화라는 무난한 길이로 마무리되었고, 77년 '혹성로봇 당가드 A 대 곤충군단'과 78년 '혹성로봇 당가드 A 우주대해전'이라는 25분짜리 극장판이 연이어 제작되었다. 1986년에는 '날아라 스타에이스'라는 제목으로 MBC에서 방영했으며, 강병철과 삼태기가 부른 주제가는 사사키 이사오의 주제가 이상으로 원작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 TOEI Animation



<참고 사이트>

[1] 惑星ロボ ダンガードA, Wikipedia Japan
[2] Wakusei Robo Dangard A (TV), ANN
[3] 혹성로보 단가드 A, 엔하위키 미러
[4] 혹성로봇 당가드 A (惑星ロボ ダンガードA) 1977 1978 by 캅셀, CAPSULE: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 Anima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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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FILMLINK Int.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Vampire Hunger D Production Commitee


<목차>



<서문>

3부에서는 아니메 각 장르에 판타지를 대입한 새로운 형태의 퓨전 판타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부와 2부가 지역적인 관점에서 판타지 아니메를 나눈 것이었다면, 3부는 아니메를 통해 판타지가 새롭게 변형되어진 사례를 알아보았다고 해야겠지요. 이번 4부에는 SF와 다양한 설정으로 변형된 퓨전 판타지가 아니라, 고전적인 장르인 호러를 아니메에 대입하면서 판타지적인 설정이 부각된 속칭 '호러 판타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사실, 호러 장르에는 상상 속에 볼법한 기괴한 괴물들이 등장하고 있기에 이미 판타지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호러의 단골 소재인 드라큘라나 늑대인간, 구미호와 요괴, 도깨비는 모두 상상이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판타지 세계의 크리쳐들로, 이야기의 성격이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인데요. 이러한 판타지와 호러는 생각 외로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어렷을 적 보고 자란 동화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사악한 괴물이나 마법사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동화의 성격 탓에 이야기가 순화되었을 뿐 실제로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크리쳐나 현상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로, 이것만으로도 두 장르의 연관성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호러와 판타지는 어찌보면 같은 출발점을 가지고 있는 장르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판타지의 어두운 단면에는 공포와 어두움이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의 단골 악역인 악마와 마왕이 호러의 주테마인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실제로 호러적인 상상력과 연출방식은 판타지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판타지를 대표하는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한 필 잭슨 감독이 '데드 얼라이브'나 '프라이트너'와 같은 공포영화를 연출해왔던 인물이라는 점이나, '스파이더 맨' 시리즈로 잘 알려진 감독이자 실사영화판 '워크래프트'를 연출할 예정인 샘 레이미 감독이 공포영화 '이블 데드' 시리즈로 연출경력을 쌓아온 인물이라는 점은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도 있지요. 2부에서 언급한 오리엔탈 판타지 장르의 아니메 '십이국기'의 경우에도 원작자인 후유미 오노가 공포소설을 써온 여류작가라는 점도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상상의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호러는 마치 강한 맛을 내는 스파이스 소스같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이번 시간은 위에서 이야기한 판타지의 어두운 단면, 즉 다크 판타지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호러 판타지를 소재로 한 아니메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공포 장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분, 또는 노약자와 임신부는 살포시 뒤로 가기를 눌러 주....실 건 없군요. 무서운 장면 안나옵니다. 부담갖지 마시고 즐겨 주세요.


아이들의 만화영화에 귀신이야기를 접목시킨다면?

화영화가 비록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한정된 장르는 아니었으나, 만화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소재의 선택이나 사회적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적인 작품이 주로 만들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일본 만화영화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본 상업용 만화영화의 시작을 장식한 도에이 동화의 작품들 모두가 세계명작동화를 소재로 한 동화 판타지의 형태였었는데요. 이런 상황이다보니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는 호러와 같은 소재들이 만화영화에 등장하기에는 아무래도 여러가지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백사전(1958)'에 등장한 사람으로 둔갑하는 거대한 흰뱀이라든지, '소년 사루토비사스케(1959)'에 등장하는 여자요괴와 같은 설정이 어느 정도 호러라는 장르의 영향을 받았음을 감안한다면, 호러와 일본 만화영화는 먼 옛날부터 미약하지만 길고 긴 인연을 쌓아왔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디즈니의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사악한 마법사 여왕의 음침한 모습에서도 어느 정도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는데요. 물론, 이러한 것들은 공포심을 유발시키기 위한 소재이긴 했으나, 아이들이 보는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표현 수위와 같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호러의 특색이 거세된 것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 맞게 희석시킨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호러의 소재를 만화영화에 접목시키는 것이 부분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을 때, 한 편의 작품이 요괴라는 호러적 소재를 정면에 내세워 TV 시리즈 아니메로 성공적인 모습을 선보이게 되니 그것이 바로 일본 만화영화의 대표적 아이콘이자 국민 만화라 할 수 있는 미즈키 시게루의 '게게게의 키타로(1968)'인 것입니다.

그림 연극의 일러스트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묘지의 키타로'라는 원제에서 묘지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덕분에 작자 자신의 어린 시절의 별명(게게루)에서 변형된 무의미한 '게게게'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로 알 수 있듯이 당시 호러 장르가 만화영화로 표현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제약을 갖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는데요. 유령족의 마지막 일족 소년 키타로와 키타로의 아버지인 눈알 아저씨, 그리고 쥐 아저씨와 같은 요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일본의 오래된 전승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미스테리한 괴담의 형식을 띈 원작의 이야기는 만화영화로 이식되면서 요괴소년인 키타로와 그의 동료들이 악한 요괴들과 싸운다는 어린이판 다크 히어로물의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 ·

ⓒ 水木プロ · TOEI Animation (좌) / ⓒ 第一動画 (우)


그림연극과 만화를 거쳐오면서 이미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에게 익숙한 컨텐츠로 자리잡고 있던 키타로는 만화영화로서도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특히, 요괴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이지만 친숙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인기를 얻게 되는데요. 비록 여러가지 시대적인 여건에 의해 호러 판타지 본연의 색깔이 많이 탈색된 키타로였지만, 이런 소재가 대중적이고 스테디한 인기를 얻으면서 만화영화에 호러 장르가 인식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게 됩니다. 특히, 구전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괴의 수만도 엄청나게 많을 정도로 괴담을 즐기고 괴담에 익숙한 일본의 국민성을 고려할 때, 아니메에서 호러 장르가 앞으로 보다 더 자주 등장하리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사례라 하겠지요. 

키타로와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요괴인간 벰(1968)'의 경우는 키타로에 비해 보다 더 호러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사람이 되고 싶은 요괴인간 벰, 베라, 베로의 이야기는 역으로 인간들의 삐뚤어진 모습을 투영하는 등 작품 내적으로도 상당히 성숙한, 당시 TV 만화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전개이기도 했었는데요. 무엇보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내에서도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 세계에 큰 인기를 끌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키타로와 함께 60년대 호러 만화영화의 큰 획을 그은 작품이기도 하지요.

70년대를 넘어서는 나가이 고의 '데빌 맨(1972)'이 그 바톤을 이어받게 됩니다. 데빌맨은 앞선 두 이야기와 비슷하게 악마가 주인공인 다크 히어로적인 성격의 작품이지만, 울트라 맨과 같은 거대 히어로의 성격이 더해진 보다 하드한 액션이 볼거리인 장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판타지보다는 히어로 액션물에 더 어울리는 형태라고 할 수도 있지요. 이에 비해 비슷한 시기에 코믹스로 그려진 데빌맨은 실로 호러 판타지에 어울리는 충격적인 표현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묵시록적인 세계관은 평범한 히어로물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TV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나가이 고만의 어둡고 암울한 작품관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당시로서는 충격적이라 할 수 있을만큼 하드고어스러운 표현으로 호러 판타지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비록 이러한 비주얼과 이야기는 당시 만화영화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호러의 진행방향이 확실히 이전과는 달리 과격해지기 시작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지요. 특히 나가이 고의 하드고어적인 폭력성이나 묵시록적인 세계관, 거기에 가학적 에로티시즘은 후대의 작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후 나가이 고는 '도로롱 엔마군(1973)'과 같이 키타로의 영향을 받은 듯한 아동용 호러 판타지물을 선보이며, 호러 판타지의 끈을 놓치는 않습니다만, '마징가 Z(1972)'의 대히트로 인하여 본연의 정체성을 잠시 접어두고 로봇물의 활성화(?)에 앞정서게 됩니다. 70년대까지만해도 호러가 만화영화에서 제자리를 잡는 것은 순탄치는 않은 듯 싶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를 SF와 로봇들이 메꾸면서 호러( 판타지)는 봉인된 미이라처럼 만화영화의 심연으로 가라앉게 되고 잠시 동안의 동면에 들어갑니다.

ⓒ 永井豪 · DYNAMIC Pro · TOEI Animation



OVA의 탄생과 하드고어 호러 판타지의 대두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의 TV 아니메가 태동기에 등장하여 좋은 반응을 이끌었던 키타로와 요괴인간, 데빌맨 이후로 호러 판타지는 주목할만한 작품을 내놓치 못한 체 70년대를 지나 80년대로 들어서게 됩니다. 당시에 이와 같은 현상은 1부부터 3부까지 언급한 다른 판타지 장르도 비슷한 양상이었는데요. 82년도에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돈 드라큘라(1982)'가 스폰서의 자금사정으로 8화라는 초 단기연재를 끝으로 조기 종영(물론, 돈 드라큘라 역시 호러의 의미가 퇴색된 가족물의 형식을 보여준 작품이지만)하는 등 호러 판타지는 80년대 중반까지 뚜렷한 대표작을 내놓지 못한 체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SF/로봇물의 득세가 무엇보다 큰 요인이었지만, 점차적으로 감상 연령층이 높아지는 아니메에서 (고정팬층이 확보된 키타로를 제외한) 아동용 호러 아니메가 경쟁력을 상실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 보구요. 장르적 특성상 TV 시리즈로 나오기에는 표현의 제약이 따랐고, 극장용으로 만들어지기에는 성공가능성이 의심되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이무렵, 호러 판타지와 같은 마이너한 장르에 한가닥 희망을 던져준 일대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것이 바로 OVA(Original Video Animation)의 탄생이었습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달로스(1983)'를 시작으로 OVA는 TV와 극장으로 양분되어 있던 아니메 시장에서 서서히 그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당시에는 주력 영상매체인 VHS 비디오와 베타 비디오 외에 레이저 디스크까지 생겨나면서 일본 미디어 시장이 점차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영상 매체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자 마니아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안으로 OVA가 적격이었던 셈이지요. 장르나 표현수위가 TV 아니메나 극장용 아니메에 비해 훨씬 자유로웠던 OVA는 그동안 소외되던 장르를 위한 블루오션이었으며, 애니메이터들이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동안 소외받고 있던 호러 판타지 역시 새로운 추진력을 얻게 되니, 이 시기에 첫 테이프를 끊게 되는 작품이 바로 공포소설의 대가 키쿠치 히데유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시다 토요오 감독의 '뱀파이어 헌터 D(1985)'였던 것입니다.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좌) / ⓒ 西谷史 · ANIMATE Film (우)


뱀파이어라는 호러 장르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소재로, 인간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혼혈 뱀파이어 던필의 모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키쿠치 히데유키와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단연 호러 판타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작품이 아니메로 제작된다는 것은 OVA로 인해 가능해진 표현상의 자유와 장르의 다양화가 하나의 원인이라고 하겠는데요. 특히, 이 작품은 호러 판타지에 어울리는 고어스럽고 괴기적인 비주얼로 이전보다 더 공포스러운 느낌을 선사하게 됩니다. 이러한 노골적이고 잔인한 연출은 아시다 토요오의 차기작 '북두의 권(1987)' 극장판에서도 등장하며, OVA로 인해 촉발된 표현의 자유가 극장판 아니메에까지 옮겨지게하는 계기가 되지요.

OVA의 활성화와 함께 80년대 중후반에는 SF 장르가 몰락하면서 다른 장르가 조금씩 힘을 얻게 되는, 이른바 아니메의 춘추전국시대가 시작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발표된 몇몇 판타지 작품들 중에서도 호러 판타지의 활약상은 눈에 띄는 것으로, '기동전사 더블제타 건담(1987)'의 초절정 인기 애니메이터 키타즈메 히로유키가 캐릭터 디자인으로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던 '여신전생(1987)'의 경우는 평범한 학생이 악마를 소환하고 합체하는 다크 히어로 액션물로 비록 아니메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게임으로 큰 호평을 받으며 호러 판타지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87년, 마침내 호러 판타지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이변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리미티드 아니메 기법을 예술적인 경지까지 끌어올린 아니메의 영상 아티스트 린 타로 감독의 제자로서, 스승 못지 않은 기량을 갖추고 있던 카와지 요시아키가 후일 그의 절친한 친구가 되는 뱀파이어 헌터 D의 작가 키쿠치 히데유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호러 판타지 아니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걸작 OVA를 탄생시키게 되니 그것이 지금도 카와지리 요시아키의 걸작 필모그라피 맨 윗줄에 놓여있는 '요수도시(1987)'인 것입니다.

ⓒ 菊地秀行 · 徳間書店 · ビデオアート · JAP Home Video(좌) / ⓒ 菊地秀行 · 朝日ソノラマ · ビデオアート · JAP Home Video(우)


이 작품은 이제까지 선보였던 호러 판타지류의 작품들에 비해 호러스러운 분위기를 훨씬 더 실감나게 묘사했던 작품으로, 그동안 아니메에 있어서는 변방의 장르에 그쳤던 호러 판타지가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괴기적인 설정 뿐만 아니라, 폭력과 에로티시즘이라는 성인물의 코드를 아니메에 실로 완벽하게 이식해내면서도 작품의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며, 다크 히어로라는 우리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굴레를 벗어나 하드보일드 액션장르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단순히 말초적인 유혈장면이나 에로티시즘에 천작하지 않고, 다양한 연출기법과 뛰어난 영상미학, 그리고 독특한 설정과 디자인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주력한 것이 요수도시의 성공원인이라 하겠지요.

카와지리 요시아키는 이듬해에 '마계도시(1988)'에서도 요수도시의 스타일을 잇는 요사스럽고 박력있는 호러 판타지 액션을 선보이며, 아니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호러 판타지는 요수도시를 기점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닌자라는 사무라이 액션 소재와 요괴라는 장르를 혼합한 '전국기담 요도전(1987)'이나 코믹스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오기노 마코토 원작의 '공작왕 시리즈(1988~1994)', 카기노우치 나루미의 원작을 바탕으로 남편인 히라노 토시키가 연출한 '흡혈희 미유(1988)', 그리고 란마1/2와 메종일각으로 유명한 다카하시 루미코 '인어의 숲(1991)', '인어의 상처(1993)'과 같은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이제까지의 패턴을 벗어난 다양한 장르와의 접목을 통해 좋은 모습을 연이어 선보입니다. 특히, 흡혈희 미유나 인어의 숲 등은 액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드라마성을 강조하는 미스테리적 요소 역시 선보이면서 수년 뒤에는 TV 시리즈로까지 호러 판타지를 진출시키는 의미있는 시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 JVC (좌) / ⓒ 平野俊貴事務 · 所吸血姫 美夕 製作委員會 · TV 東京 (우)



18금 아니메에 의한 호러 판타지의 변질과 몰락

OVA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또 하나의 현상은 바로 본격적인 성인용 H(헨타이의 H를 이니셜로 하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변태라는 뜻. 변태의 원의미보다는 에로틱이라 용어를 대체하는 뜻으로 보면 될 듯) 아니메의 등장이었습니다. 84년 '크림레몬 - 아미'를 시작으로 성인 아니메는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호러 본연의 거부감 때문에 상업성을 위해 예로부터 B급 호러영화들에 숱하게 에로틱한 장면들이 등장했던 것처럼, 이러한 성인 아니메의 태동은 호러장르와의 피할 수 없는 조우를 예고하고 있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미 요수도시를 통해 호러 판타지와 에로티시즘의 궁합이 증명된 1987년, 요수도시보다 3개월 먼저 등장하여 H 아니메임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호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괴한 작품이 등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마에다 토시오의 원작을 기본으로 한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1987)'입니다. 초창기의 H 아니메는 크림레몬에서도 보여진 바와 같이 H 아니메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성이 강조된 작품이 많았었는데, 이 우로츠키 동자 역시 인간계와 마계, 그리고 반인반수의 수인계가 존재하는 세상에 3,000년에 한번 부활하여 세갈래로 나누어진 세계를 하나의 세상으로 만들어낸다는 초신이라는 존재가 벌이는 이야기를 보여주어, 시놉시스만으로 보았을 때는 장대한 판타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초신과 요괴들이 벌이는 하드고어적인 잔혹한 액션과 요사스러운 묘사 외에도 당시 아니메의 수준을 능가하는 과격한 정사씬으로 H 아니메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요. 특히 요괴가 자신의 촉수를 이용해 여성들을 능욕하는 이른바 '촉수물의 효시'라는 또다른 명성을 갖게 됩니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호러 판타지의 형식을 취하면서 그 표현수위에 있어서는 포르노그라피의 수준으로 당대의 H 아니메 중에서는 단연 두드러진 작품이라고 하겠는데요. 이러한 B급 포르노 아니메가 일본을 넘어 북미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아니메로서는 충격에 가까운 성애묘사도 묘사였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H 아니메로서는 보기드문 이야기의 완성도와 B급 아니메라고는 믿을 수 없는 뛰어난 작화 퀄리티를 그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실제 우로츠키 동자의 스토리텔링은 오히려 근래의 허접한 몇몇 TV 시리즈 아니메들보다도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성애묘사를 모두 삭제하거나 도입부만 보이도록 편집한 후에도 이야기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여타의 H 아니메들과는 차원을 달리했으며, 야마시타 아키히코, 오오모리 히데토시, 사토 케이이치, 고토 케이지, 야나기사와 테츠야, 코바야시 마코토 등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아니메의 작화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스탭진의 이름만으르도 그 완성도를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특히, 이 작품의 원작자인 마에다 토시오는 '음수학원(라 블루 걸, 1989)'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촉수물의 붐을 일으키게 하는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이러한 촉수물은 당시 OVA 시장에 붐을 일으키고 있던 하드고어와 호러액션 장르의 설정을 H 아니메로 가져와, 액션과 드라마의 비중을 줄이고 가학적인 성애묘사에 치중하는 기형적인 형태로의 변형을 시도하면서 호러 판타지의 타락을 일으키는 일등 공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됩니다. 90년대 중반까지 촉수물은 H 아니메의 가장 인기있는 소재로 자리잡게 되면서 과도한 폭주 끝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영향력을 거의 잃다시피 하였고, 일본의 삐뚤어진 성적 판타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질타를 받아오며 일본 아니메의 어두운 부분을 상징하는 하나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변질로 인해 그 가치가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촉수물은 호러 판타지의 또다른 모습이었으며 같은 핏줄을 가진 사생아라 할 수 있는 존재들로, 호러 판타지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존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 前田俊夫 · ???



호러 판타지가 TV를 만났을 때,

크 히어로 아니메의 굴레를 벗어나 하드고어라는 새로운 장르의 총아로 앞장서며 영상미학을 선도했던 호러 판타지는 폭력과 섹스라는 피할 수 없는 덫에 걸려 스스로 자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호러 판타지는 여러 장르와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변신을 모색하기도 하는데요. 2부에서 언급한 '3X3 아이즈(1991)'는 오리엔탈 판타지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호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후지타 카즈히로의 걸작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요괴소년 호야(우시오와 토라, 1992)' 역시 호러와 오리엔탈 판타지를 접목한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키아 아사미야의 88년도 빅히트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사일런트 뫼비우스(1991)'는 호러와 싸이버펑크를 조합한 퓨전 호러 판타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키아 아사미야의 매력적인 캐릭터와 함께 좋은 평을 이끌어 내게 되지요. 

반면, 이제까지의 우울하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마물헌터 요코(1990)'과 같이 미소녀와 코미디를 혼합한 밝은 형태의 장르와 같이 색다른 시도도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미소녀 장르와의 조합은 '환몽전기 레다(1985)' 이후로 이어져온 미소녀 판타지물의 코드를 계승한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90년대에 들어 개그와 미소녀를 조합하여 등장하는 여러 다른 판타지 장르와 같이 호러 판타지도 어느 정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이전의 요사스러운 느낌 외에 가벼운 장르와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 자체의 변화와 함께 90년대에는 또다른 중요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TV 아니메가 이전보다 더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관대해졌다는 것입니다.

ⓒ 麻宮騎亜 · 角川書店 (좌) / ⓒ NCS · TOHO (중) / ⓒ 平野耕太 · 少年画報社 · Hellsing製作委員会 (우)


90년대 중반에 생긴 이러한 변화는 호러 판타지가 TV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며, 이로 인해 흡혈희 미유나 사일런트 뫼비우스 같이 OVA로 제작되었던 호러 판타지들이 TV 시리즈로 제작되었고, 이러한 양상은 21세기에 들어서도 계속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이전에 비하여 확실히 호러라는 장르가 대중화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헬싱(2001)'과 같이 예전에는 TV 시리즈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나마 많이 순화된)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는 작품이 버젓이 공중파로 방영되었으며, '크르노 크루세이드(2003)', '트리니티 블러드(2005)', '블러드 플러스(2005)', '디 그레이 맨(2006)' 등 편수는 많지 않지만 호러 판타지가 꾸준히 TV 시리즈로 제작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호러 판타지는 이제 더이상 특정 마니아들의 전유물이라든지, 포르노그라피를 등에 업은 변태적 성인 아니메에서난 볼 수 있는 그런 장르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흡혈귀나 괴물들과 같은 소재가 이전에 비해 A급 작품에도 빈번하게 사용되는 당시의 영화계의 시류와도 맞아 떨어져 호러 판타지를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던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과 같은 경우는 친구인 키쿠치 히데유키의 뱀파이어 헌터 D를 다시 한 번 극장판으로 리메이크한 '뱀파이어 헌터 D 블러드러스트(2000)'로 세계시장에 진출하였으며, TV 시리즈 블러드 플러스와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2000)'과 같은 작품의 경우도 압도적인 영상미로 세계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으며 후일 실사영화로까지 제작되기에 이르르는 것이죠.

그 뿐만 아니라 호러 판타지는 미스테리와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변주 또한 선보이게 되는데, '펫숍 오브 호러즈(2000)'나 '지옥소녀(2005)', '신령수 고스트하운드(2007)'와 같은 작품들은 이제까지와의 호러와는 다른 형태의, 보다 더 호러 본연의 의미에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게 되며 '바케모노가타리(2009)'와 같은 작품에 이르러서는 독특한 연출스타일과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인하여 마이너한 미스테리 호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 地獄少女 プロジェクト · スカパーウェルシンク (좌) /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神霊狩 GHOST HOUND 製作委員会 (중) / ⓒ 西尾維新 · 講談社 · アニプレックス・シャフト


호러 장르는 근래 들어 영화에서도 단독적인 장르가 아닌, 장르를 더욱 돋보이기 위한 양념과 같은 요소로 사용되면서 전에 없는 인기를 누리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반지의 제왕 3부작 이후로 판타지가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닌 어른들도 즐길 수 있고 시장성도 있음이 증명된 이후에는 성인용 판타지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그 리얼리티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호러적인 설정을 빼놓을 수가 없는 듯 싶군요. 그것은 괴담과 기담에 익숙하며 오래 전부터 만화영화에 성인용의 표현수위를 적용시켜온 일본 아니메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괴한 괴물들과 공포심을 유발하는 크리쳐가 등장할 수록 극의 흥미는 더더욱 커질 터이니 말입니다.

다만, 호러 장르는 마치 그 단어의 어감처럼 빛과 어둠의 경계에 위치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을 자극할 여지도 있으며, 포르노와 같은 저질문화에 동화되어 타락할 여지도 가장 큰 소재인 것입니다. 이러한 양날의 검과 같은 호러를 잘 다루어 공포심과 상상력을 극대화하면서도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있어서 아낌없는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좋은 호러 판타지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바래봅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4부 끝. 5부에서 계속)


<참고사이트>

[1] ゲゲゲの鬼太郎, Wikipedia Japan
[2] 妖怪人間ベム, Wikipedia Japan
[3] デビルマン, Wikipedia Japan
[4] 뱀파이어 헌터 D(吸血鬼ハンターD )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5] 요수도시(妖獸都市) 1987 by 캅셀, CAPSULE 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6] 超神伝説うろつき童子, Wikipedia Japan
[7] Horror Party - 호러애니메이션 by 깅오바, 지나간 미래, 또는 다가올 과거를 기록하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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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 AK Communication에서 증정받은 서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자쿠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를 다룬 오랜만의 로봇대백과(?)

프라 작례집부터 건담 소설과 코믹스에 이르기까지 국내 건프라/건담 마니아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유일의 오아시스 AK 커뮤니케이션즈에서 이번에는 정말 반가운 서적을 하나 출판했습니다. 이름하여 '자쿠 대사전 All about Zaku'.

왜 이 서적이 반가운고 하니 저 옛날 다이나믹 콩콩 대백과 시절의 무판권 로봇 아니메 설정집으로부터 무려 이십수년이 지난 지금, 아니메에 등장한 메카(로봇)에 대한 설정자료집을 서적으로 출간했다는 사실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도 그 옛날과 같은 무판권이 아닌 당당히 판권을 사서 제대로 번역한 책자로 나와줬으니 이 감동은 건담 팬들에게는 특별할 것 같군요. 특히, 로봇 대백과를 알고 있는 올드팬들에게는 더더욱 말입니다.

이번 자쿠대사전은 타카라지마사(寶島社)에서 출시된 'ザク大事典 All about ZAKU'를 번역한 서적으로,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중에서도 건담의 라이벌로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시리즈의 양대 MS인 자쿠에 대한 이야기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건담이 등장하지 않는 건담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AK 사장님이 건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건담이 등장하지 않은 컨텐츠를 내놓으셨다나 뭐라나... (이거 웃기시려고 자쿠대사전 출시한 걸지도...)

 
표지의 모습입니다. 일러스트는 텐진 히데타카씨의 작품으로, 마크로스 시리즈 프라모델 박스아트로도 유명한 분이죠. 그 외에도 MG 2.0 샤아전용 자쿠 II 라든지, MG 2.0 죠니 라이덴 전용 자쿠 II 고기동형 등의 건프라 박스아트도 그의 작품입니다. 앞선 박스아트들과는 비교하면 표지의 스타일은 약간 느낌이 다르군요.
 
 
 도입부에는 자쿠가 아니메에서 보여준 모습들을 세가지 파트로 나누어서 통계치를 보여줍니다. '자쿠가 당한 기술 Best 10', '자쿠의 용맹한 모습 15연발', '지는 순간 20연발' 등 다양한 자쿠의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특히, 이 자쿠의 여러가지 모습은 퍼스트 건담 한 작품 뿐만 아니라 기동전사 건담 전 시리즈를 통틀어 낸 장면들로 실로 편집진의 오덕 정신(?)을 느낄 수 있다고 하겠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퍼스트 건담의 자쿠 II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하겠습니다.
 
 
캬, 다음 페이지에는 한술 더떠서 건담 전 시리즈의 연표를 자쿠를 초점으로 재조명한 자쿠 흥망성쇠 연표네요. 뭐 놀랍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역시 편집진의 오덕정신에 순간 등골이 오싹... 그나저나 이 연표는 꽤 쓸만합니다. 자쿠의 역사와 시리즈 전체의 역사가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어 국내 건담 팬들과 건덕들에겐 좋은 자료가 될 듯.
 
 
자쿠대사전은 총 5장의 챕터와 다수의 특집 페이지, 그리고 특별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에는 퍼스트 건담 시대인 0079년부터 08소대(0079년), 포켓 속의 전쟁(0080년), 그리고 스타더스트 메모리(0083년)에 이르는 시대(MS IGLOO도 포함)에 등장한 MS-06 자쿠 II를 기본으로 한 다양한 자쿠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2장에는 그리프스 전쟁(제타 건담)과 제1차 네오지온 항쟁(더블제타 건담), 제2차 네오지온 항쟁(역습의 샤아)에 이르는 시기에 등장한 자쿠의 후계기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루어지구요. 3장에는 기동전사 건담 시드와 턴에이 건담 등에 등장한 자쿠들이, 4장에는 자쿠의 일부 파츠가 사용된 여타의 모빌슈트들에 대한 이야기, 5장에는 자쿠의 뒤를 이은 주력 양산기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장의 자쿠 계보. 다양한 자쿠들이 한 장에 빼곡이 들어찬 뿌듯함이 느껴지는데요. 특이하게도 몇몇 자쿠들은 설정자료가 아닌 스틸 샷으로 등장하는군요. MS-06C나 J는 그렇다쳐도 MS-06K는 설정 일러스트가 있는데 말입니다. 이 밖에 설정 일러스트가 없는 계보들은 모두 MSV에 등장하는 자쿠들로 아쉽게도 이번 대사전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책 자체가 아니메에 등장한 자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설정 일러스트만 존재하는 MSV 자쿠들은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 같군요.
 
 
자쿠 중 가장 유명한 자쿠인 붉은 혜성 샤아 아즈너블의 자쿠 II MS-06S입니다. 메카닉에 관계된 해설 외에도 파일럿과 연계하여 다양한 에피소드와 명장면들을 싣고 있어 딱딱한 느낌의 설정집과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자쿠 대사전이다보니 다른 MS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쿠와 비슷한 외형에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던 란 바랄의 구프라든지, 시리즈 중반부와 후반부에 들어 자쿠의 위치를 대신하는 돔과 겔구그는 약간의 페이지를 할애하여 이야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자쿠대사전 All about ZAKU
국내도서>만화
저자 : [우리들이 좋아하는 건담] 편집부
출판 :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0.10.15
상세보기

뿐만 아니라 같은 양산형이었던 연방군의 MS GM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습니다. 다방면에서 자쿠를 조명하는군요.

 
2장의 자쿠계보. 사실 제타와 더블제타에서 자쿠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수많은 MS들에 밀려 빛을 못보게 됩니다. 그나마 더블 제타의 경우에는 평범한 양산기를 넘어서는 강력한 성능의 커스텀기로서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제타에서는 마라사이에 밀렸을 뿐만 아니라 MS 자체로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모습이었죠. 그래도 보시는 것처럼 참 다양한 자쿠들이 등장하여 건담 시리즈의 한축이라는 것을 여전히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비운의 자쿠 후계기인 하이잭. 가장 많이 활약하게 되는 초반부에도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 체 갈발티 베타와 마라사이 등에게 양산기의 주도권을 넘겨주죠. 마라사이도 자쿠의 후계기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대사전에서는 언급이 안되는군요. 개인적으로 제타 건담 최고의 양산기는 릭 디아스로 꼽고 있습니다만.
 
 
더블제타의 자쿠 III. 자쿠 시리즈를 계승한 정통 자쿠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하이잭에 비해 훨씬 세련된 디자인과 다양한 장비를 내장(스커트의 빔 캐논은 당시로서는 꽤 신선한 컨셉)하는 등,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후반부에는 도벤 울프와 같은 기체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되지요. 하지만 개량형으로 재등장하면서 파일럿인 마슈마와 함께 후반부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아니메에 등장하는 자쿠계열 MS 파일럿 중 유명인사들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등자합니다.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부터 MS IGLOO의 화이트 오거 앨머 스넬, 08소대의 노리스 팩커드, 시드 시리즈의 이자크 쥴 등 유명 파일럿들이 기술/전략/출세/인망/전공 분야의 수치와 함께 소개됩니다. 재미있게도 이 카탈로그 다음으로는 자쿠에 탔던 조연 파일럿들이 대거 소개되는 챕터가 등장한다는.
 
 
3장에는 건담 시드 시리즈의 쟈프트 주력 양산기 자쿠 워리어를 중심으로 한 비우주세기 건담 시리즈의 자쿠 계열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제작 도중 메카닉 디자인이 급격히 퍼스트 건담의 메카닉 디자이너 오카와라 쿠니오로 변경되면서 부득이 하게 시드 시리즈의 MS는 대체적으로 좀 성의가 없는 느낌인데요. 이로 인해 F-91이나 V건담에서 선보인 탈 자쿠의 디자인이 다시 자쿠로 원위치하지 않았나 합니다.(물론, 자쿠의 이미지를 이어가려는 상업적인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자쿠와는 좀 다른 디자인을 보여주었던 시드의 양산기 진과 달리 시드 데스티니의 양산기는 이름부터 자쿠 워리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우주세기의 자쿠를 그대로 오마쥬하게 됩니다.
 
 
호오, 턴에이 건담의 보르자논도 당당히 자쿠대사전에 이름을. 하긴 이름만 제외하고는 자쿠 그 자체지요.
 
 
양산기로서 자쿠와 경쟁했던 즈다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
 

6장에는 자쿠의 자리를 대치한 각 건담 시리즈별 대표 양산기에 대한 소개가 다루어집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더블오 시리즈의 티에렌도 나오는 군요. 개인적으로 티에렌은 비우주세기 시리즈의 양산기 중 가장 멋진 놈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자쿠 대사전은 다양한 자쿠 시리즈를 탑승했던 파일럿과 출연했던 작품의 명장면과 매치하여 지루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설정집입니다. 전체적으로 편집 디자인이 좀 난잡하여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확실히 AK가 번역출간한 이제까지의 하비재팬 서적들의 편집디자인에 비해 이쪽은 레벨이 떨어져 보인다는...)이지만, 흥미로운 내용들 때문에 그것이 상쇄되는 느낌이군요. 특히, 마지막 섹션에 기록되어 있는 자쿠 등장 및 격파씬 일람은 모든 건담 시리즈의 에피소드별 등장한 자쿠의 종류와 출현 수, 격파 수, 그리고 간단한 코멘트와 자쿠를 공격한 방법 등을 모두 정리한 그야말로 오덕정신의 집합체라고 할 만한 자료입니다. 서두의 자쿠 연표와 함께 자쿠 마니아들의 내공을 증진하는데 큰 도움이 될지도.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AKARAJIMASHA / ⓒ SOTSU·SUNRISE / ⓒ SOTSU·SUNRISE·MBS / ⓒ AK 커뮤니케이션즈(한국어판)에게 있습니다.


자쿠대사전 - 8점
우리들이 좋아하는 건담 편집부 엮음/에이케이(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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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전대 메칸더로보 (1977), 合身戦隊メカンダーロボ / Mechander Robo


ⓒ Wako Production

 
<정보>

◈ 원작: 와코 프로덕션 기획실
◈ 감독: 닛타 요시타카
◈ 각본: 혼다 타케시, 陶山智, 海堂清彦
◈ 캐릭터 디자인: 오카사코 노부히로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
◈ 미술: 미야모토 세이지 外
◈ 음악/주제가: 와타나베 츄메이 / 미츠키 이치로, 콜롬비아 요람회 (노래)
◈ 기획/제작: 와코 프로덕션, 동급 에이전시 / 타카하시 스미오
◈ 제작사: 와코 프로덕션, 도쿄 12 채널
◈ 저작권: ⓒ Wako Production
◈ 일자: 1977.03.03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35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콘키스타 군단의 침략으로 멸망한 가니메데 별의 왕자 지미 오리온은 지구로 피신한다. 하지만 콘키스타 군단의 마수는 지구에까지 이르르고, 압도적인 콘키스터 군단의 힘 앞에 지구는 속수무책으로 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특히, 콘키스터 군단은 지구의 주 에너지 원인 원자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원자로가 가동하는 순간 5분안에 위치를 찾아내 이를 파괴하는 오메가 미사일 발사대를 위성궤도 상에 설치하고 지구의 반격을 무력화시키기고 있었다. 이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시키시마 박사가 개발한 항공모함 킹 다이아몬드와 메칸더 로보 밖에 없는데... 지미 오리온을 위시한 메칸더의 용사들은 과연 콘키스타 군단의 압도적인 힘으로부터 지구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소개>

로봇아니메의 붐을 타고 '안데스 소년 빼빼로의 모험(1975)'을 통해 하청제작사에서 막 독립제작사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와코 프로덕션에서 의욕적으로 제작한 로봇 아니메. 기이하게 생긴 로봇 디자인과 몇가지 참신한 설정이 돋보였으나 아니메 기획/제작에 있어 일천한 경험과 메인 스폰서 기업인 부루마쿠(ブルマァク)가 방송도중 도산하면서 후속 스폰서를 찾지 못하는 등의 악재로 인해 결국 35화라는 어정쩡한 형태로 결말을 맺는다. 제작 도중에 발생한 일이었기에 중도 하차 밖에 길이 없었지만, 스탭들의 의지에 의해 이전 편에서 사용된 씬들을 짜집기 하면서 후반부에는 총집편과 같은 형태의 방송으로 결국 나름의 완결까지 이르게 된다. 덕분에 시리즈의 완성도는 몹시 낮은 편이고, 뱅크샷이 너무 많이 남발되는 등 일본 내에서는 거의 잊혀지다시피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몇가지 흥미로운 설정들도 눈에 띄는데, 우선 지구의 유일한 동력원인 원자로가 반응하는 순간 이를 찾아내어 5분안에 격침시키는 콘키스타의 오메가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콘키스타 군단의 로봇과 5분 내에 전투를 끝마쳐야 하는 메칸더 로보의 설정은 당시로서는 꽤나 신선한 것이었다. 이러한 부분은 20여년 뒤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에서 에너지원 케이블을 달고 제한된 공간에서 움직이며, 케이블이 분리되면 시간제한을 갖는 에바에서 다시 재현되게 된다.

또한, 슈퍼로봇치고는 이례적으로 양산형 로봇이 등장하면서 이전의 작품과의 차별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부분은 만화영화 상의 설정을 고려했다기보다는 같은 로봇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전의 셀을 재사용하기 위한 제작상의 이유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겠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일보진전한 설정이었던 것이다. (사실, 건담조차도 양산형 모빌슈트의 구상에 있어서 어느 정도 제작여건을 고려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외에 주인공 지미 오리온과 콘키스타 군단의 부사령관 메두사의 관계에 있어서 드라마틱한 설정을 부여하는 등 드라마 부분에서도 나름의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낮은 수준의 완성도와 스폰서의 도산으로 인한 여러가지 악조건으로 이러한 이야기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무려 9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방영되어 기대 이상의 인기를 끌었으며(개인적으로는 이미 너무 눈이 높아진 관계로, 70년대에도 낮은 수준이었던 메칸더 브이의 작화 퀄리티를 보고는 곧바로 채널을 돌렷지만) 김국환 씨가 부른 한국판 주제가는 멜로디부터 가창력에 이르기까지 미즈키 이치로의 원 주제가를 완벽하게 압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국환 씨의 만화영화 주제가는 대부분이 원 주제가를 능가하는 포스를 부여준다. 만약, 당시 김국환이 일본에서 활약했다면, 어쩌면 미즈키 이치로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지는 않았을까 상상하기도.)

☞ 아, 한가지 더. 트랙백에 걸린 나이트세이버즈님의 포스팅을 보고 추가로 한가지를 더 이야기하면 메칸더 브이에는 무려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가 연출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 비록 에피소드 9화의 연출로만 잠깐 등장하고 계시지만 말이다. '방랑의 초스피드 콘티맨'이라는 예전의 명성에 걸맞게 9화만을 후다닥 연출하고 빠지신 걸까.


<참고 사이트>

[1] 合身戦隊メカンダーロボ, Wikipedia Japan
[2] Mechander Robo, Wikipedia
[3] 메칸더 브이, 베스트아니메
[4] 합신전대 메칸더로보, 엔하위키 미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ko Production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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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유럽의 사실적인 묘사와 미스터리한 탐정들과의 멋진 만남

ⓒ 2007 Guillermo Schavelzon & Asociados, Agencia Literaira / ⓒ 2010 Daekyo Publishing for Korean Translation


렷을 적 탐정을 향한 동경은 아이들(특히 소년들)의 단골 꿈 중의 하나였다. 코난 도일의 전설적인 명탐정 셔얼록 홈즈부터 모리스 르블랑의 신출귀몰한 괴도 아르센 뤼팡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유머스러운 땅딸보 탐정 에르큘 포와로, G.K.체스터튼의 온화하고 합리적인 브라운 신부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미스터리를 향한 그들의 모험 이야기는 언제나 아이들을 지적 만족감과 스릴넘치는 모험의 세계로 인도하곤 했다. 어린 시절 이들의 멋진 이야기에 매혹된 아이들 중 탐정을 꿈꾸지 않은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늘 이야기할 파블로 데 산체스의 또 하나의 미스터리 이야기 '파리의 수수께끼'는 바로 이러한 동경과 선망의 대상인 탐정의 이야기가 아닌, 그날의 우리들처럼 탐정을 동경하던 한 젊은 청년의 입장에서 바라본 미스터리 모험 이야기이다.

탐정의 관점이 아닌, 조수(여기서는 아들라테레라 부른다)의 관점으로 바라본 이 이야기는 얼핏 보았을 때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이야기라 하겠다. 탐정의 수사과정을 바라보는 그의 조수라는 점에서는 얼핏 코난 도일의 홈즈와 왓슨을 연상시키지만 실제로 주인공은 조수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구두가게 청년 시그문도 살바토리오인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중반부의 전개까지는 주인공 살바토리오가 탐정의 수사활동에 큰 도움을 미치는 비중있는 조역 정도가 아닐까 느껴진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우리의 예상이 거의 틀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결말은 드라마틱하게 흘러간다. 소설 속의 명탐정은 모두 이야기를 빛나게 하기 위한 조연에 불과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야기는 결말로 향하고, 살바트리오의 이야기도 예상치 못한 형태로 마무리 된다. 평범한 주인공이 그토록 바라던 탐정의 세계에 몸을 담게 되는 이야기는 이전까지의 미스테리와는 또 다른 맛을 독자에게 선사하게 된다. (사실, 이 결말은 서두에 살바트리오의 독백부분에서 어느 정도 암시되어 있기는 하다.)

살바트리오의 출신과 직업은 이 작품에서 나름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다. 애초에 미스터리라는 고도의 지적 모험에 평범한 구두수선공의 아들이라는 주인공의 정체성 그다지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주인공이 동경하던 탐정 크라이그의 조수 수련생 모집에 응시하는 서두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이 모험에 어울리는 인물로 성장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게 된다. 평범하고 소박한 청년에서 예리하고 날카로운 탐정의 아들라테레로의 성장을 말이다. 이러한 전개는 확실히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다른 모습이며, 동시에 참신한 매력을 부여한다. 언제나 완성된 존재인 탐정, 또는 탐정에 준하는 누군가가 완벽한 미스테리와 심오한 수수께끼에 직면하여 특유의 직감과 천재적인 사고력, 그리고 날카로운 관찰력과 천운으로 인해 사건을 해결하는 미스테리의 세계에서 성장 가능성을 내포한 주인공의 등장은 많은 기대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가져다 준다. 즉, 서툰 주인공의 행보가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파리의 수수께끼파블로 데 산티스(Pablo De Sa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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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상 이야기는 살바트리오의 활약상보다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십이탐정들과 그에 얽힌 미스테리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즉, 실제 이야기가 상에서는 살바트리오가 주인공이지만 사건을 풀어가고 해결하는 주체는 결국 십이탐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만큼 살바트리오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보다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약간 뒤쳐진 위치에서 움직이게 된다. 물론, 살바트리오의 독자적인 움직임과 시각이 이야기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서는 결국 십이탐정들에게로 관심이 쏠린다고나 할까. 특히, 작가가 창조해낸 이들 십이탐정의 설정은 상당히 매력적인 것으로, 유럽과 미국, 일본에 이르는 여러 나라의 명탐정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의 모습은 그들의 열렬한 팬이었던 살바트리오의 설레임만큼이나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매력을 선사해주고 있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벌어진 미스테리 연쇄 살인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하고 말이다.

명탐정들의 모임 속에는 연쇄 살인사건만큼이나 어둡고 묘한 긴장감과 적의가 내재하고 있다. 사실 초반부의 크라이그 탐정의 이야기부터 사건의 전조를 알리는 다르봉 탐정의 죽음과 사건을 뒤쫓는 아르자키 탐정들의 과거사, 서로에게 적의를 가진 로슨과 카스텔베티아 탐정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작품은 주 사건인 연쇄 살인사건 외에도 탐정들의 여러가지 에피소드와 갈등을 풀어놓고 있다. 꽤 산만할 법한 이 이야기가 중심을 잃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은 이야기가 연쇄살인 사건보다는 십이탐정과 그들 아들라테레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지만 연쇄 살인사건과 그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과정이 주요 테마가 아닌, 십이탐정과 아들라테레의 갈등과 숨겨진 이야기가 테마가 되고 있다.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탐정들의 과거와 현재에 얽힌 이야기라는 다소 드라마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은 흥미진진하고 궁금중을 유발한다. 이 점에서는 작가의 필력을 칭송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살인 사건보다도 주변 인물들 간의 얽혀진 과거와 관계가 살바트리오의 행보 중에 드러나는 이야기는 추리소설로는 색다른 형식과 매력을 보여준다.

에펠탑이 건축 중이던 19세기말엽의 프랑스와 만국박람회와 같은 당대의 이슈들을 완벽하게 묘사한 필력 역시 놀랍다. 미스테리이면서도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장면구성과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19세기 말의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 준다. 역자가 마치 백화점과 같은 구성이다고 표현한 이러한 작품에서 과연 사건의 추리라는 추리소설 본연의 테마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사건의 해결은 클라이막스에 극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마지막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해 낸다. 

물론, 사건의 복잡함은 다른 추리소설에 비하면 난해하지 않고 평이한 편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부분을 상쇄할만큼의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를 보여준다.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추리소설을 원한다면, 파리의 수수께끼는 기대 이상의 독특한 매력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07 Guillermo Schavelzon & Asociados, Agencia Literaira / ⓒ 2010 Daekyo Publishing for Korean Translation 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위드블로그 캠페인 우수 리뷰에 선정된 글입니다. 

 
파리의 수수께끼 - 8점
파블로 데 산티스 지음, 조일아 옮김/대교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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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미라클 대작전 (1976), ポールのミラクル大作戦 / Paul's Miraculous Adventure


ⓒ Tatsunoko Pro


<정보>

◈ 원작: 타츠노코 기획실
◈ 총감독: 사사가와 히로시 
◈ 각본: 토리우미 진조, 야마모토 유우 外
◈ 캐릭터 디자인: 시모모토 아키코
◈ 작화감독: 하야오 노베, 후쿠야마 마사토시
◈ 미술감독: 나카무라 미츠키
◈ 음악/주제가: 키쿠치 슌스케 /  오오스기 쿠미코 (노래)
◈ 기획/제작: 토리우미 진조, 야나가와 시게루 / 요시다 타츠오
◈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덕션, 후지 TV
◈ 저작권: ⓒ TATSUNOKO Pro
◈ 일자: 1976.10.03
◈ 장르: 모험, 판타지
◈ 구분/등급: TVA (50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 폴. 10살 생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에게 봉제인형을 생일선물로 받는다. 생일선물에 기뻐하는 그날 밤, 갑자기 봉제 인형의 눈이 빛나더니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살아 움직이며 말까지 하는 봉제인형에게 놀라는 폴. 봉제 인형이 깨어남과 동시에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춰진다. 자신을 찌찌(파쿤)이라 소개한 인형은 함께 이상한 나라에 가지 않겠냐며 폴을 안내한다. 단짝 여자친구인 니나와 니나의 애견 삐삐(톳페)도 같이 여행에 따라나서게 된다.

찌찌가 들고 있는 뿅망치를 내리치자 공간이동이 가능한 통로가 생긴다. 통로를 통해 이상한 나라로 차원이동을 한 폴 일행들.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자 신기한 일들이 가득하다. 폴이 갖고 있는 장난감 자동차는 찌찌의 요술망치로 실제 크기의 만능 자동차로 변신하여 하늘을 날 수도 있다. 게다가 니나의 애견 삐삐는 커다란 귀로 하늘을 날 수도 있는데다가 말까지 가능하다니! 그러나 즐거운 시간도 잠시, 이상한 나라에 갑작스러운 암운이 닥친다. 바로 마왕 벨트사탄이 부활한 것이다. 2천년만에 부활한 벨트사탄은 도망치는 폴 일행에게서 니나를 납치하게 되고, 니나를 구하려 되돌아가려는 폴에게 더이상 이상한 나라에서 머물 시간이 없다며 그를 말리는 찌찌, 결국 통로가 닫히기 전에 폴 일행은 니나를 남겨둔 체 현실로 되돌아와야 했다.

이제 이상한 나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찌찌가 힘을 충전하여 다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는데... 과연 폴은 다시금 이상한 나라로 돌아가 니나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소개>

타츠노코의 76년도 히트 TV 시리즈. 이상한 세계로의 여행이라는 단골 판타지 소재에 타츠노코만의 감성과 아이디어가 더해져 멋진 판타지 모험극으로 태어났다. 찌찌의 힘에 의해 세계의 시간이 멈추고 요술 방망이를 두드려 차원의 문을 연 다음, 이상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이 이야기는 차원이동의 시간에 제한을 두고 매회 니나를 미쳐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남겨둔 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구성을 취하면서 연속극으로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이상한 나라로 차원이동을 하는 장면은 타츠노코의 전작 '타임보칸(1975)' 시리즈의 시간여행 방식과 동일한, 당시 만화영화에서는 꽤 독특한 연출방식이라고 하겠다.

특히, 이 이야기에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다채로운 아이템이 등장하게 되는데, 요요나 장난감 자동차 같은 평범한 장난감들이 찌찌의 요술방망이에 의해 환상의 무기로 변하는 설정은 다분히 판타지 히어로들의 전설적인 무기들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옮겨놓은 재미있는 설정이라 하겠다. 특히, 폴의 요요인 딱부리는 당시 아이들에게 요요붐을 일으키기도. 뿐만 아니라 장난감 요정인 찌찌나 삐삐, 가련한 여주인공 역할의 니나 등은 기존의 아니메와는 다른 서양적이고 동화적인 캐릭터로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시리즈의 최대 보스인 벨트사탄의 압도적인 아우라는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악역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연급 악역인 버섯요정 버섯돌이(카노피)의 매력 역시 오랫동안 회자되기도.

이듬해인 77년 KBS2 TV의 전신인 TBC를 통해 '이상한 나라의 삐삐'(초기 방영시에는 파쿤의 이름이 삐삐, 톳페의 이름이 찌찌였다. 친구인 별쥐옹의 댓글로 기억이 났는데... 조연 캐릭터가 제목에 사용되면서 주인공이 뒤로 밀리는 수모를...)로 방영되었으며, 3년 뒤인 1980년 KBS를 통해 재방영되기도 한다. 한참 후인 95년과 얼마전인 2009년 SBS와 EBS를 통해 각각 방영되면서 한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은 추억의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지혜 님이 부른 한국판 주제가는 일본 원 주제가에 비해서 오히려 멜로디 면에서는 앞서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 Tatsunoko Proⓒ Tatsunoko Pro


<참고 사이트>

[1] ポールのミラクル大作戦, Wikipedia Japan
[2] 이상한 나라의 폴, 위키피디아
[3] 이상한 나라의 폴, 베스트 아니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ATSUNOKO Pro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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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캔디 (1976), 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 / Candy Candy


ⓒ 水木杏子 · いがらしゆみこ · 講談社


<정보>

◈ 원작: 미즈키 쿄코(글), 이가라시 유미코(그림)
◈ 총감독: 이마자와 테츠오
◈ 감독: 시다라 히로시
◈ 각본: 유키무로 슌이치
◈ 캐릭터 디자인: 신도 미츠오
◈ 작화감독: 신도 미츠오, 모리시타 케이스케, 토미자와 카즈오 外
◈ 미술디자인: 우라타 마타지
◈ 음악/주제가: 와타나베 타케오 / 호리에 미츠코(노래)
◈ 제작사: 도에이 동화, TV 아사히
◈ 저작권: ⓒ Toei Animation (아니메) / ⓒ 水木杏子 · いがらしゆみこ · 講談社 (원작 코믹스)
◈ 일자: 1976.10.01
◈ 장르: 드라마, 로맨스, 순정
◈ 구분/등급: TVA (115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미국의 북동부에 위치한 미시간 호 근처 작은 시골마을, 고아원 '포니의 집'에 사는 밝고 명랑한 금발머리 주근깨의 소녀 캔디. 상냥하고 어른스러운 단짝 친구 애니와 함께 살아가지만, 캔디가 다섯살이 되는 날 애니는 부자집의 양녀로 입양을 가게 된다. 단짝친구와의 이별에 근처의 언덕에서 홀로 슬피 우는 캔디, 때마침 백파이프(스코틀랜드 전통악기)를 맨 금발의 소년이 나타나 캔디에게 말은 건넨다. '꼬마 아가씨는 우는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더 예뻐'. 펜던트를 떨어뜨리고(다섯살 짜리를 유혹했나 보다) 가는 소년. 캔디는 소년을 '언덕 위의 왕자님'이라 부르며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12살이 된 캔디는 레이크우드의 라건 가의 영애 이라이저의 말동무로 들어가게 된다. 이라이저 남매에게 온갖 학대를 받는 캔디.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캔디가 어느 장미정원에서 울고 있을 때, 먼옛날 언덕 위의 왕자님과 닮은 소년이 나타나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꼬마 아가씨는 우는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더 예뻐'.

소년이 떠난 장미정원의 문에는 저 옛날 왕자님의 떨어뜨린 펜던트에 새겨진 것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언덕 위의 왕자님을 이상으로 꿈꾸며 살아가던 소녀 캔디에 나타난 왕자님과 꼭 빼닮은 소년. 소년은 과연 누구이며, 언덕 위의 왕자님과 소년은 어떤 관계일까. (한국판 위키피디아 참조)


<소개>

미즈키 쿄코(팬네임) 원작, 이가라시 유미코 그림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도에이 동화의 순정 아니메. 순정 아니메로서는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하며, 일본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순정만화 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젠틀하고 부드러운 꽃미남 안소니와 야성적이고 터프한 매력남 테리우스, 그리고 긍정적이고 의지가 강한 억척소녀 캔디라는 공식은 순정 아니메를 넘어 다양한 장르의 아니메와 트렌디 드라마에서 변주된 모습으로 표현된다.

언뜻 보기에는 한 소녀의 꿈과 역경, 그리고 사랑을 담은 통속 멜로 드라마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강한 의지를 지닌 고아 소녀의 일생을 이야기한 휴먼 드라마의 성격이 강하며, 거기에 캔디가 어린 시절 만났던 언덕 위의 왕자님을 미스테리한 이야기로 포장하여 라스트에 그 모든 것이 밝혀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 언덕 위의 왕자님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라고 할 수 있는데, 어린 시절의 이상향을 동경하며 자란 소녀가 인생의 역경을 거쳐 어느덧 한 명의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나 그 이상향과 다시 조우한다는 성장과 깨달음이라는 테마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순정만화로서 꽤나 깊이 있는 스토리 텔링과 드라마를 보여준 작품인 것이다.

드라마적인 매력도 훌륭하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 부드럽고 상냥한 모든 여성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는 금발의 소년 안쏘니와, 이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터프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테리우스라는 두 남성 캐릭터의 구축은 지금에 와서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캐릭터 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제는 긍정적이고 강한 의지를 가진 억척스러운 여성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는 캔디도 그렇지만, 캔디를 괴롭히는 악의 대명사 이라이저와 닐 역시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밖에 알버트, 스테아, 아치, 애니, 패티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서로의 엇갈리는 감정선과 나름의 드라마를 선사하는 등, 캐릭터와 드라마의 조화는 실로 뛰어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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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순정물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묘사하며 로컬라이징에 성공한 작품의 분위기와, 인물 간의 드라마틱한 전개로 인해 어떤 면에서는 당시 닛폰 애니메이션의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의 느낌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은데, 애초부터 도에이 동화가 세계명작동화를 원작으로 한 만화영화를 만들던, 세계명작극장 시리즈 핵심 스텝들의 고향인 것을 감안하면 캔디와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는 어떤 면에서 같은 피(작품색)를 나눈 형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한국에서는 77년과 83년에 연이어 방송하여 일본에 못지 않은 대단한 인기를 끌게 된다. 순정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아이들도 즐겨볼 정도 였으니 그 드라마적 완성도와 재미는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일설에는 유럽 등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프랑스의 경우에는 유럽과 미국의 스타일을 너무도 완벽히 이식한 모습으로 인해 자국의 애니메이션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1] 참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호리에 미츠코의 주제가는 국내에서 당시 인기가수 혜은이에 의해 번안되어 불려졌는데, 개인적으로는 톡톡거리는 호리에의 노래보다는 애절함이 녹아 있는 혜은이의 노래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81년에는 국내에서 실사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는데(명절날 특집영화로도 제법 많이 방송), 당시 사회분위기에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확인되어진 한국 최초의 일본만화 원작 실사영화라고 할 수 있다. ([4]참조. 개인적으로 동시상영 형태로 현재는 기억이 안나는 극장 만화영화와 함께 보았던 걸로 기억. 실제 목적이었던 본편 만화영화는 잊어버렸는데, 동시상영한 이 영화는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니 신기하다. 영화 자체는 뭐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국내 모 TV 프로의 외국인 재연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캔디 캔디는 만화영화와 영화, 드라마, 연극, 코믹스, 소설, 캐릭터 상품 등 다채로운 방향으로 미디어 믹스 되었지만, 95년 촉발된 미츠키 쿄코와 이가라시 유미코 간의 저작권 분쟁으로 인해 수년간 법적 분쟁을 벌여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저작권은 원저작자인 미츠키 쿄코에게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이가라시 유미코가 독자적으로 벌여온 여러가지 미디어 믹스 사업들이 무산되면서, 코믹스나 DVD의 재발간이나 애니메이션의 재방송과 같은 모든 캔디 캔디 관련 비즈니스들이 중지된 상태이다. 이가라시 유미코가 그린 캔디는 앞으로 볼 가능성이 거의 없을 듯 싶으며, 오로지 미츠키 쿄코의 소설만으로 캔디를 접할 수 있다.

ⓒ 水木杏子 · いがらしゆみこ · 講談社



<참고 사이트>

[1] 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 Wikipeida Japan
[2] Candy Candy, Wikipeida
[3] Candy Candy(TV), Anime News Network
[4] 캔디 캔디, 위키피디아
[5] 캔디 캔디, 베스트아니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水木杏子·いがらしゆみこ·講談社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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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 태권 브이 (1976)


ⓒ (주)로보트 태권브이


<정보>

◈ 감독: 김청기
◈ 제작: 유현목
◈ 각본: 지상학
◈ 기획: 김일환
◈ 원화: 임정규 外
◈ 촬영: 김복동
◈ 효과: 김벌레
◈ 배경: 오응환
◈ 음악/주제가: 최창권 / 최호섭 (최창권 음악감독의 아들)
◈ 제작: 서울동화, 유프로덕션
◈ 저작권: ⓒ (주)로보트 태권브이
◈ 일자: 1976.07.24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세계적인 로봇 권위자로 김박사의 동료이기도 했던 카프 박사는 왜소하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뛰어난 두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아왔다. 세계 물리학자 모임에서 망신을 당한 카프 박사는 외모 지상주의(?)의 세계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맹세하며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로부터 수년 뒤, 각종 격투기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과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납치되는 의문의 실종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게 된다. 세계 태권도 대회에 출전했던 김박사의 아들 훈이의 결승전상대 리챠드 쇼도 그 중 하나. 이 일련의 사건에 과거 자신의 동료인 카프 박사가 연루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김박사는 의심하게 된다. 때마침 붉은제국이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이 이들 실종사건의 배후에 있음이 알려지게 된다. 지구 정복을 꿈꾸는 붉은 제국은 과연 카프 박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한편, 김박사는 강력한 거대 로봇 태권브이의 완성을 서두르려 하고 있다. 김박사가 개발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카프 박사의 딸이라며 메리라는 소녀가 찾아오게 된다. 그녀에 말에 의하면, 카프 박사가 자신이 개발한 인조인간 말콤의 손에 살해당하고 지금 말콤이 붉은제국을 이끌고 있다는 것. 김박사는 메리를 거둬들이게 되지만, 동료 윤박사의 딸인 훈이의 여자 친구 영희는 훈과 가까워지는 메리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실상 그녀의 정체는 붉은 제국의 스파이이자 사이보그. 훈과 영희에 의해 정체가 들통난 메리는 탈출에 성공한 후, 붉은제국 군대를 이끌고 태권브이의 설계도를 탈취하기 위해 기습을 시도한다. 격투 끝에 훈이들은 붉은제국의 부하들을 물리치지만, 김박사가 그만 적에게 치명상을 입고 만다.

오열하는 훈이를 향해 최후의 힘을 다해 태권브이의 완성을 알려주고 숨을 거두는 김박사. 마침내, 태권브이가 붉은제국의 야욕에 맞서 일어설 때가 되었다.


<소개>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1967)', 그리고 후속작인 '호피와 차돌바위(1967)' 이후로 다시 암흑기에 접어든 한국 만화영화의 부흥을 일으킨, 한국 만화영화의 최대 히트작이자 대표 아이콘. 로봇 만화영화의 종주국인 일본 외에 유일하게 거대로봇 장르에 도전한 한국의 첫 SF 로봇 만화영화로서, 서울에서만 동원관객 약 13만명이라는 당시로서는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하면서 실사영화를 제치고 76년도 흥행순위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통하게 된다. 만화영화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전무한, 아니 대중 문화 전반에 있어서 아직 초보단계에 있던 70년대의 한국 사회에 있어서 이 현상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마치 '우주전함 야마토(1974)'와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1981)'이 일본 사회에 강렬한 충격을 안겨준 것과 대동소이한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태권 브이는 로봇 만화영화에 있어서 최초로 전문적인 격투기 기술을 선보인 로봇으로서, 인간과 거의 흡사한 동작으로 태권도를 구사하여 한국적인 로봇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특히, 일부 작화에 있어서 로토스코핑 기법(실사촬영 후 이를 베이스로 그림을 그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하는 기법)을 활용하여 섬세하고 다이나믹한 태권도 동작을 구현해 내었으며, 짧은 제작기간과 영세한 제작비에 의해 뱅크샷이 여러번 사용되는 아쉬움 속에서도 주요 장면에서는 풀 애니메이션에 근접한 작화기술을 보여주며 어떤 면에서는 리미티드 기법의 일본 로봇 아니메를 능가하는 컷들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은 일본 만화영화 기법과 미국 만화영화 기법이 뒤섞인 한국 만화영화만의 스타일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외에도 태권브이의 태권 동작을 구현해내기 위해 직접 훈이의 정신이 태권브이와 연결되는 설정 역시 로봇 만화영화로서는 상당히 진일보한 설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아니메에서 발기술과 같은 섬세한 무술동작을 거대한 로봇이 해내는 것은 그로부터 2년 뒤 '투장 다이모스(1978)'에서 였다.)

줄거리에 있어서는 못생긴 외모로 인해 세상을 증오하게 되는 카프 박사나 사이보그로서 자신의 적인 주인공 훈을 사랑하게 되는 메리 등, 드라마틱한 인간관계가 강조된 작품이다. 특히, 태권 브이가 시리즈 중반 이후에나 출격하는 전개임에도 당시 아동 만화영화로서는 상당히 밀도 있는 스토리와 극적인 전개로 인해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잘 안배된 구성을 보여주었다. 음악에 있어서도 최창권 음악감독이 만들고 그의 어린 아들 최호섭이 직접 부른 주제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으니, 만화영화 뿐만 아니라 만화영화 최초의 OST라는 의의 등 여러 면에서 한국 만화영화의 큰 족적과 함께 새로운 앞날을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태권 브이는 그 밝은 면 만큼이나 어두운 부분 또한 공존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30년이 넘은 지금에서도 태권브이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만드는 마징가 Z의 표절작이라는 꼬리표이다. 거대로봇 장르는 일본 만화영화 밖에 없던 시절(물론, 지금도 거의 그렇지만)에 만화영화 후진국인 한국이 로봇 만화영화를 만든다면 어쩔 수 없이 그 레퍼런스는 일본 만화영화일 수 밖에 없었다. 당시의 일본 로봇 만화영화는 '마징가 Z(1972)', '그레이트 마징가(1974)', '겟타로보(1974)', 'UFO로봇 그렌다이저(1975)', '강철 지그(1975)'와 같이 다이나믹 프로와 나가이 고의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거의 같은 디자인 컨셉(겟타로보나 강철 지그는 좀 다르지만)을 가진 이 작품들의 로봇 디자인을 참고하면서 벌어진 표절 혹은 도용의 문제는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상상력의 빈곤과 역량의 부족'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싶다. 76년도에는 '대공마룡 가이킹(1976)'이나 '초전자로보 배틀러 V(1976)'와 같은 비 다이나믹 계열의 작품도 등장하지만 제작 시점으로 보았을 때, 태권 브이 제작진이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마징가 류의 작품들 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작품의 가제도 '마징가 태권'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으로 치면 말도 안될 이 타이틀 역시 의도적인 표절이라기 보다는 (접착용 메모지를 '포스트 잇'이라는 3M의 브랜드명으로 무의식적으로 부르는 것처럼) 당시 로봇하면 무조건 마징가라고 생각했던 시대적 문제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것이 마징가 표절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표절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에 표절작의 이름을 거는 것도 넌센스는 아닐까. 물론 이것은 그만큼 표절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뜻도 되겠지만 말이다. 결국, 이러한 상상력의 빈곤과 역량의 부족은 후일 태권 브이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악재로 작용하기도 하였으며, 표절에 대한 절대적인 의식 부족은 국내 만화영화 시장의 계속되는 고전 속에서 피치못할 표절에서 의도적인 표절로 서서히 그 모양새를 바꾸어가게 된다.

캐릭터 설정에 있어서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깡통로봇이라는 캐릭터의 등장 역시 고철 등을 사용해 만들어진 마징가 Z의 사이드 킥(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옳은지는 조금 의문이지만 하여튼) 보스보롯트의 설정에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태권 브이를 개발하고 살해당하는 훈의 아버지 김박사나 김박사의 친구로 태권브이의 광자력 빔 발사장치를 개발하는 윤박사와 그의 딸 영희 등 캐릭터의 설정은 마징가 Z와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극중 윤박사는 마징가 Z의 등장인물인 유미 교수의 한국방영시 이름 윤박사와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권브이는 마징가 Z, 그것도 한국방영판 마징가 Z를 참조했다는 이야기가 되려나.) 이쯤되면 훈이, 영희, 철이라는 지금으로서는 너무도 뻔한 네이밍 센스는 제작진의 상상력 부족을 탓하기 보다는 당시의 열악한 사회 분위기 속에 만들어진 웃지못할 에피소드로 봐줘야 될 듯도 싶다. (당시 초등학교인 국민학교 교과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이름이 철이와 영희였던 걸로 기억된다.)

인트로씬에 등장하는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 그리고 동물들의 일상묘사와 중간에 등장하는 메리와 훈이의 뮤지컬스러운 상상씬 역시 디즈니 만화영화의 일부 시퀀스와 같다며 후대에 이의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이 부분은 디즈니 만화영화가 당시 모든 아동만화영화의 바로미터였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데즈카 오사무조차 자신의 연출작 '불새 2772, 사랑의 코스모스 존(1980)'에서 이와 거의 유사한 씬을 뜬금없이 작품 중간중간에 끼워넣어 주시고 있다. 이 디즈니적 센스는 작품을 가리지 않고 80년대 초반까지 한국 극장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단골 씬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권 브이가 후세에 부끄러운 오점만으로 남을 수 없는 이유는, 당시의 제작 여건상의 한계와 함께 문화적 인식 부족이라는 70년대의 사회적 현실을 감안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징가 Z는 75년 9월 한국에서 방영되어 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데, 마징가 Z가 한국에서 종영한 76년 2월부터 불과 5개월 만에 태권브이가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극장을 찾은 그 어떤 어린이의 부모들도, 하물며 언론들까지 로봇의 표절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창작자든 일반인이든 간에 표절(혹은 도용)에 대한 당시의 절대적인 인식 부족을 의미하는 하나의 사례이다.

일본 문화 자체가 국내에 유입되는 것이 금지된 당시의 폐쇄적인 상황과 만화영화를 유해한 것으로 인식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마징가 Z 방영으로부터 불과 1년도 체 안되는 시간 안에 거대로봇물의 노하우가 전무한 스텝들, 그것도 일본 만화영화보다 더 영세한 인력구조(태권브이에 참여한 스탭 수는 약 60명) 안에서 이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줘야할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하면, 로봇 디자인과 일부 컨셉의 표절 혹은 도용이라는 결과로 인하여 불모지에서 우리만의 만화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스텝들의 의도와 노력과 같은 과정을 인정하지 않은 체 이 작품을 폄훼하는 것은, 한국 고유의 로봇물이라는 이유와 추억만으로 이 작품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것만큼이나 편향적인 생각은 아닐까.

작품의 표절과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 만화영화史의 어두운 면은 반성하되, 불모지에서 우리만의 만화영화를 키우고자 했던 애니메이터들의 노고와 좌절, 그리고 작품의 의의에 대해서는 인정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로보트 태권 브이 2탄 우주작전 (1976)

ⓒ (주)로보트 태권브이

<정보>

◈ 감독: 김청기
◈ 각본: 조항리
◈ 원화: 임정규, 김주인 外
◈ 효과: 김벌레
◈ 음악: 최창권
◈ 제작: 서울동화
◈ 저작권: ⓒ (주)로보트 태권브이
◈ 일자: 1976.12.13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태권 브이는 1편이 개봉된 7월부터 불과 5개월 만에 속편을 발표하게 된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5개월만에 극장 만화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만화영화 선진국인 미국이나, (당시 만화영화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던) 일본에서조차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제작속도는 한국 만화영화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사례라기보다는, 겨울방학 특수를 노린 스폰서의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를 오로지 태권 브이 하나만 믿고 달려온 스탭들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하면서 생긴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싶다. 

영세한 제작비와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나온 것임을 감안할 때 작화의 완성도는 놀랍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로 인해 많은 정성을 요하는 전투 장면에서는 뱅크 샷이 계속적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었지만, 태권 브이의 영상미는 당시의 열악한 제작여건을 감안하면 준수한 수준이었다. 또한, 전편에 이어 SF 로봇 만화영화에 디즈니적 시퀀스나 동화적 감성을 대입하였는데, 2편의 악의 축인 녹의 여왕의 설정이 마치 디즈니 동화의 마법사 여왕처럼 보이거나, 팅커벨 같은 요정의 모습으로 부활한 메리가 클라이막스에서 사람으로 환생하는 장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물론, 이러한 설정들은 디즈니의 하청작업 등을 통해 습득한 노하우를 그저 관성적으로 대입한 것으로 보이지만, 덕분에 1편에 이어 로봇 만화영화라는 아니메적 스타일과, 판타지 동화라는 디즈니적 스타일이 혼재하는 독특한 느낌의 로봇물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작은 요정 캐릭터가 로봇물에 등장하는 설정은 일본의 로봇 아니메 '성전사 단바인(1983)'이나 '중전기 엘가임(1984)'에 등장하는 '화우'라는 요정 캐릭터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작품의 요정 소녀와  태권브이의 메리와의 상관 관계는 전무하다.)

☞ 속편열전: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 - 사라진 태권 브이의 전설을 찾아서 by 페니웨이 (바로가기)


로보트 태권 브이 3탄 수중특공대 (1977)

ⓒ (주)로보트 태권브이

<정보>

◈ 감독: 김청기
◈ 총지휘: 전태규
◈ 제작: 유현목
◈ 각본/구성: 지상학 / 조항리
◈ 기획: 김춘범
◈ 원화: 김주인 外
◈ 효과: 김벌레
◈ 음악: 최창권
◈ 제작: 서울동화
◈ 저작권: ⓒ (주)로보트 태권브이
◈ 일자: 1977.07.20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3편 역시 2편의 방영으로부터 불과 7개월만에 상영을 시작하게 된다. 방학특수를 노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러한 제작방식은 치명적인 문제점이 존재하게 되는데, 바로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기획단계를 거쳐 각본, 설정, 디자인 등을 수립하고 색채설정과 콘티에 이르는 만화영화 제작의 사전작업을 의미)을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애니메이터들과 몇몇 뜻있는 이들에 의해 한국의 SF 만화영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태권브이였지만, 메카닉 디자인이나 캐릭터 디자인을 위한 절대적인 역량과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전편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태권브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외면한 체, 계속적인 수익의 창출을 위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연속으로 속편을 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가한 스탭들의 탓이라기보다는 프리프로덕션에 대한 개념이 전무한 상황에서 스폰서나 극장 측에서 개봉일정을 잡고, 그 때까지 작품을 완성하지 않으면 상영이 곤란해지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기인하고 있다.(또는, 그 일정에 맞추기 위해 제작진 스스로가 무리를 자처했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어찌되었건 두 입장 모두 돈이라는 문제에 직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애초에 새롭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위해 신경을 쓸 여력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어떻게든 작품을 완성시키고 흥행에 성공하다보면 나중에는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된 좀 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미래를 꿈꾸며 스탭들 대부분이 묵묵히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디며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원화 작업과 동화 채색, 촬영과 녹음 같은 실제 제작 작업만으로도 벅찬 시기에 디자인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방법은 이미 검증된 일본 만화영화 디자인의 표절이나 일부 도용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작된 태권브이 3편은 개봉과정에서 또다른 복병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1, 2편에서 원화를 담당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임정규가 삼도필름으로 자리를 옮겨 제작한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1977)'였다. 거의 반년 단위의 살인적 제작 스케줄 속에 창작의 추진력을 잃어버린 3탄과 임정규 감독의 지휘하에 한국식 히어로 액션물을 표방한 마루치 아라치와의 대결은 결국 마루치 아라치의 판정승으로 끝나게 되고, 태권 브이의 비상은 3탄에서 멈춘 체 잠시 동안의 숨고르기에 들어가게 된다. 


로보트 태권 브이와 황금날개의 대결 (1978)

ⓒ (주)로보트 태권브이

<정보>

◈ 감독: 김청기
◈ 각본: 조항리
◈ 기획: 김상호
◈ 제작: 박상호
◈ 촬영: 이성휘
◈ 효과: 김벌레
◈ 음악: 최창권
◈ 제작: 서울동화
◈ 저작권: ⓒ (주)로보트 태권브이
◈ 일자: 1978.07.26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77년 여름 마루치 아라치와의 대결에서 패한 김청기 감독은 역시 이듬해인 1월 방학 시기에 맞추어 태권브이가 아닌, 히어로 액션물 '황금날개 1,2,3(1978)'을 개봉시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다. 고무된 스탭진은 같은 해 여름 바로 황금날개 1,2,3과 로보트 태권브이를 한 작품에 등장시키는 크로스오버 작품 '로보트 태권 브이와 황금날개의 대결(1978)'을 개봉시키게 되는데, 이것은 도에이 동화가 선보인 일련의 마징가 군단의 크로스오버 작품과 같은 기획의도를 갖고 있었다. 히트작의 주인공과 그 주역메카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당시의 아이들에게는 실로 흥분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여기서도 역시 고질적인 디자인 표절의 문제는 꺼지지 않고 등장하게 되는데, 이미 마징가의 디자인을 도용한 태권 브이와 함께, '마그네로보 가킨(1976)'의 이미지와 흡사한 황금날개 3호 청동거인, 그리고 '신조인간 캐산(1973)'의 캐산과 가킨의 주인공 호죠 타케루의 전투복을 믹스매치한 황금날개 1호, 마지막으로 '바벨 2세(1973)'의 퓨마형 로봇 로뎀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황금날개 2호 등 온갖 아니메의 설정이 골고루 차용된 황금날개의 모습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황금날개 1,2,3은 바벨 2세를 모티브로 삼아 여러 아니메의 다양한 디자인을 가져다가 혼합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디자인 도용 혹은 표절에 가까운 모양새이지만, 반년 정도의 제작기간과 프리프로덕션이 전무한 상황에서 하나의 작품의 디자인을 도용하는 것이 아닌, 여러 작품의 디자인을 가져와 혼합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제작진의 마인드를 읽을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시도가 조금 더 탄력을 받았더라면 어쩌면 몇 작품 뒤에는 보다 더 오리지널 캐릭터를 창조해낼 수 있는 여력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79년의 12.12 사태 80년의 5.18 사태를 거치며 사회적 분위기는 급속히 냉랭해졌고, 이러한 대외적 여건 속에 만화영화 역시 정부의 지시에 의한 반공 만화영화 만들기라는, 정부의 선전용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3] 참조)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 (1979)

<정보>

◈ 감독: 송정률
◈ 기획: 정태규
◈ 각본: 지상학
◈ 제작: 유현목, 송재홍
◈ 효과: 손효신
◈ 저작권: ⓒ MBC 영상사업단
◈ 장르: SF, 모험,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포스터부터 우주전함 야마토의 잔재가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은 태권 브이의 후속작이나 스핀오프는 아니다. 지구의 오염을 구하기 위해 탈레스 별로 떠난 우주전함들이 정체불명의 공격으로 연이어 실패하자 우주전함 거북선이 못다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시놉시스 역시 야마토의 이야기와 대동소이하다. 포스터부터 스토리 구조까지 작품의 이야기는 야마토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의 백미는 스토리나 영상미가 아닌 클라이막스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주전함의 부품으로 사용된 태권브이가 극적인 순간에 우주선에서 사출되어 태권브이로 합체된다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태권브이의 등장에 당시의 극장 안은 아이들의 환호성으로 가득차게 된다.(물론, 엘로스도 그 중 하나였다) 한국 만화영화 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슈퍼 태권 브이 (1982)

ⓒ (주)로보트 태권브이

<정보>

◈ 감독/제작: 김청기
◈ 각본: 조항리
◈ 기획: 김춘범
◈ 배경: 강세건
◈ 음악: 최창권
◈ 제작: 서울동화, 뽀빠이과학 (협찬)
◈ 저작권: ⓒ (주)로보트 태권브이
◈ 일자: 1982.07.30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5공화국 정부의 주도에 의해 똘이 대장군과 같은 반공 만화영화 제작에 몰두하던 김청기 감독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금 SF 로봇만화영화를 부활시키고 싶었지만, 벌어들인 제작비를 다시 차기작에 올인하고 다시 벌어들인 제작비를 차기작에 올인하는 과정에서 태권브이를 제작할 여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시피 했다. 특히, 70년대보다 훨씬 더 벌어진 일본 만화영화와의 격차와 일본산 TV 만화영화의 국내 지상파 방영은 아이들로 하여금 한국의 극장 만화영화를 멀리 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제작 스케줄 속에 프리프로덕션과 같은 필수적인 작업을 등한시하며 기획력을 상실한 한국 만화영화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열심히만 한다고 알아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즈음 완구회사인 뽀빠이 과학이 김청기 감독에게 달콤한 제안을 하게 된다. 일본에서 수입한 로봇 완구를 프로모션해야 하는데, 태권브이의 제작비를 지원할테니 태권브이의 디자인을 수입한 로봇완구와 같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SF 만화영화의 부흥을 꿈꾸던 김청기 감독에게 이 제안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 이 완구를 기반으로 하여 제작된 4번째 정통 시리즈이자 태권브이 멸망의 전조를 알린 작품이 바로 슈퍼 태권브이였다. (김청기 감독이 먼저 뽀빠이 과학에게 태권브이의 스폰서를 요청했을 수도 있다. 누가 먼저가 되었건 이 완구를 태권브이의 디자인에 사용한 것은 비즈니스적인 결정이었다고 보여진다.)

당시 만화영화를 만들 제작비가 부족했던 김청기 감독은 뽀빠이 과학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기에 이르른다.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전액 뽀빠이 과학이 지원해주는 대신 뽀빠이 과학의 완구로서 태권 브이를 판매하자는 것. 그 직전에 일본의 완구회사를 방문하여 스폰서인 완구 회사가 로봇을 디자인하고 그에 따라 작품이 만들어지는 일본 로봇 아니메의 제작현장을 목격하며 큰 인상을 받았던 당시 뽀빠이 과학의 신현환 사장은 이 제안에 응하여 태권 브이의 완구제작에 착수하지만, 독자적인 금형과 캐릭터를 갖추지 못한 당시 한국 완구업계의 상황과 저작권 및 지적재산권에 대한 무지했던 당시의 인식 속에 뽀빠이 과학은 일본의 한 로봇완구의 금형을 들여와 여기에 태권브이의 얼굴을 붙여 로봇 완구를 제작하게 되고, 바로 이 로봇 디자인을 토대로 김청기 감독은 작품을 제작하게 되니, 이것이 태권브이의 4번째 정통 시리즈이자 태권브이 멸망의 전조를 알린 슈퍼 태권브이였다. (애초에 썼던 부분이 일부 사실과 다른 관계로 꾸브와제님의 포스팅을 참고로 다시 수정합니다.)

☞ 뽀빠이 과학, 한국 애니메이션 장난감의 첫발을 쏘아 올리다 by 꾸브와제, 테마파크 파라다이스 (바로가기)

태권브이의 원조가 된 로봇 완구는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82년작 '전투메카 자붕글(1982)'의 주력 메카 자붕글이었다. 국내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다시피한 이 작품의 완구와 태권브이와의 결합을 생각하면서 시작된 이 작품은, 태권브이 뿐만 아니라 상대편 메카에 앗가이나 구프와 같은 퍼스트 건담의 모빌슈트부터 자붕글의 거대 이동로봇 요새인 아이언 기어가 여과없이 등장하는 등, 70년대에 비해 한발짝도 나아지지 않은 한국 만화영화의 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1편의 로토스코핑 기법이나 풀 애니메이션에 근접했던 일부 움직임이 모두 사라진 태권브이는 말그대로 우스꽝스러운 탈을 쓴 광대에 불과했으며, 그나마의 창의성마저 사라진 기대 이하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건담류의 메카를 도용한 모습은 왠지 김청기 감독의 직전년도 작품 '혹성로봇 썬더에이(1981)'에서 이어져 온 듯 싶다. 즉, 김청기 감독도 당시에 건담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70년대에 태권브이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청소년으로 성장하고 일본 만화영화를 TV와 무판권 설정집으로 접하면서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것이다.(일부는 태권브이의 표절사실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더이상 태권브이에 열광하지 않는 아이들을 향한 태권브이의 처절한 몸부림은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게 된다.


84 로보트 태권 브이 (1984)

ⓒ (주)로보트 태권브이

<정보>

◈ 감독/제작: 김청기
◈ 기획: 김춘범
◈ 각본/각색: 양정기/조항리
◈ 작화감독: 김주인
◈ 배경: 강세건
◈ 음악: 최창권
◈ 제작: 서울동화, 뽀빠이과학 (협찬)
◈ 저작권: ⓒ (주)로보트 태권브이
◈ 일자: 1984.08.03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2년 뒤 다시금 뽀빠이 과학과 김청기 감독의 밀월이 시작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 슈퍼 태권브이로 인한 뽀빠이 과학의 매출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태권브이 얼굴을 한 자붕글 완구는 엘로스도 샀던 기억이 난다. 그전 또는 그후에는 원래 얼굴을 한 동일한 자붕글 완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번에 제안한 프로모션용 로봇 완구는 이전까지와는 좀 다른 물건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니메가 오리지널이 아닌 완구 자체가 오리지널인 일본 완구업체 타카라의 브랜드 '다이아아크론'이었던 것이다.

☞ 트랜스포머의 원조 '다이아크론'을 아십니까 by 무희, 무희의 주절주절 포스 (보러가기)
☞ 트랜스포머: 하스브로 + 타카라 이야기 by 워드나, 워드나의 던전 (보러가기)

다이아크론 브랜드의 한 제품인 3단 합체 다이아배틀스를 수입한 뽀빠이 과학은 역시 전처럼 태권브이의 머리만을 교체하여 만화영화로 인한 매출을 노리고 있었는데, 이러한 기획의도 속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태권브이 최후의 애니메이션 판인 '84 태권브이'가 되겠다. 로봇 만화영화의 스폰서가 로봇 완구업체이고 스폰서가 만든 완구의 판매를 위해 만화영화는 극중 로봇의 구매욕구를 자극할 수 있게 최대한 멋진 액션을 선보이는 것은 당시 로봇 만화영화의 기본 공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남의 제품을 수입해서 허가없이 제품을 수정한 뒤, 이것을 홍보하기 위한 만화영화를 제작한다는 점에서 80년대에 있어서도 인식의 진전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겠다.

그러나, 이번에는 태권브이의 디자인에 이전보다 좀 더 독자적인 스타일이 더해진다. 당시의 투박한 금형기술로 만들어진 다이아배틀스 완구(물론, 당시에는 기가 막힌 완성도였다. 역시 이것도 오리지널 완구와 태권브이 머리가 달린 제품을 모두 구입했던 기억이...)는 아무래도 그대로 만화영화에 이식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었고, 그로 인해 3단 변신이라는 컨셉 외에는 거의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이 적용되어 이제까지의 태권브이 중에서는 오히려 가장 독창적인 디자인의 메카로 거듭나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디자인은 시대에 뒤쳐지거나 디테일이 부족했으며, 분리합체 메커니즘은 조악한 수준이었다. 등에 달린 날개의 경우는 희한하게도 모티브가 된 다이아배틀스보다는 전작인 슈퍼태권브이의 오리지널 자붕글의 날개와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표절 또는 도용의 흔적은 완벽히 지워지지 않았다. 극중 악역으로 등장하는 훈의 친구인 현의 사이보그 모습은 '우주해적 코브라(1982)'에 등장하는 해적 길드의 보스 크리스탈 보이의 디자인의 완벽한 표절이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전작인 슈퍼 태권브이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콘티의 엉성함은 76년도 원작의 명성을 무색케 할 정도였다.

이러한 악재 속에 마침내 태권브이의 시계는 84년을 끝으로 멈추고 말았으며, 결국 '스페이스 간담 브이(1984)'라는 희대의 괴작을 만들어내며 스스로의 명성을 허물기 시작(이전까지 작품의 메카디자인 표절했음에도 디자인에 여러가지 다른 시도를 하려한 흔적이 있다면, 스페이스 간담 브이는 완벽하게 발키리를 그대로 표절한 작품)한 김청기 감독은 85년작인 '똘이와 제타로보트(1985)'를 끝으로 만화영화의 제작에 손을 띄게 된다.


로보트 태권 브이 90 (1990)

<정보>

◈ 감독/제작: 김청기
◈ 각본: 조항리, 채동근
◈ 기획: 김춘범
◈ 촬영: 정운교
◈ 음악/주제가: 남우영 / 김흥국
◈ 출연: 이승형, 강민경, 남궁원, 장덕수, 이재은 外
◈ 저작권: ⓒ (주)로보트 태권브이
◈ 일자: 1990.07.28
◈ 장르: SF, 로봇, 액션, 특촬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 (G)


<소개>

만화영화에서 물러난 후에도 인기개그맨 심형래와 특촬 히어로물을 결합시킨 우뢰매 시리즈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이 시기에 김청기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한 획(?)을 긋게 되는 박중훈 주연의 초괴작 '바이오맨(1988)'을 연출하기도 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B급 감독의 포스가 느껴지고 있었다.)을 벌이던 김청기 감독은 돌연 90년, 오랜세월 동안 동면에 들어간 태권브이를 소재로 다시금 작품을 만들게 된다. 당시의 한국 극장 만화영화 시장은 완전히 사장된 체로 기나긴 잠에 빠진 뒤였다. 이 즈음에 다시 부활한 태권브이의 소식은 기대와 우려가 반반 섞인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뚜껑을 연 태권브이는 한가닥의 기대는 커녕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게 하는 괴작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저예산의 특촬물을 촬영하면서 쌓은 김 감독의 노하우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합성이라는 독특한 제작방식을 선보인 이 태권브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였다. 캐스팅 파워가 떨어지는 상태에서 엉성한 연기와 열악한 특수효과는 오히려 작품의 독이 되었고, 만화영화 씬에 등장하는 태권브이는 디자인에 있어서 여러 고심을 한 흔적에도 불구하고, 실사부분의 낮은 완성도에 맞물려 큰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이 작품은 과거 태권브이를 기억하는 청장년 세대에게도, 우뢰매를 보면서 커온 당시의 어린이들에게도 모두 인정받지 못하며 철저하게 외면받은 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김청기 감독 역시 이후로 계속 우뢰매 시리즈를 통해 근근히 창작활동을 병행하게 되지만, 과거 한국 만화영화계를 이끌 것으로 기대되던 인재는 B급 특촬물의 제작 속에 어느덧 과거의 명성과 총기를 잃고 서서히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기 시작한다.

☞ 괴작열전: 로보트 태권브이90 by 페니웨이, 페니웨이™의 In This Film (보러가기)


<참고 사이트>

[1] 로보트 태권브이, 위키피디아
[2] 로보트 태권브이, 네이버영화
[3] 한국만화영화40년사①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 캡슐 블로그
[4] 태권V, 엔하위키 미러
[5] 로보트 태권브이, 화려한 등장과 몰락까지 by Mullu, NEOSTAR.NET 
[6] 로버트 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 by 디제, 오리지널 태권V의 마지막 출연작, 디제의 애니와 영화이야기
[7]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최고의 반전을 선사하다 by 페니웨이, 페니웨이™의 In This Film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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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박물관과 토이뮤지엄, 동심의 세계로

람버스(성인은 6,000원, 아이들은 3,000원입니다.)를 타고 헤이리를 대강 둘러본 후에는 몇 군데만을 선정하여 갤러리에 입장하기로 했습니다. 워낙 규모도 넓은지라 그냥 바깥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것 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군요. 거기에 무료 갤러리보다는 유료 갤러리가 많은 관계로 경제적인 문제도 있구요. 아무래도 예술작품들이 전시되는 곳인데다가 작가들의 개인 작업공간이나 갤러리가 위치한 곳이다보니 관람료는 비교적 비싼 편입니다. 관람버스의 경우에는 기사님께서 헤이리의 이곳저곳을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시는 장점이 있지만, 자신의 스타일대로 관람을 원하시면 자전거도 괜찮을 듯 합니다. 이인용 자전거도 대여가 가능하더군요. 게다가 뒤에는 아이들이 탈 수 있는 카트까지 달려 있어 아이들이랑 같이온 관람객들에게도 그만인 듯 합니다. 4~5살 어린이들 둘이 한 번에 탈 수 있는 크기더군요.


뭐, 역시 만화영화/영화 블로그를 지향(아, 현재는 제 블로그가 만화영화에 집중되어 있지만 언젠가 여유가 되면 영화 쪽도 제대로 다뤄볼 요량입니다)하다보니 역시 자연스레 이곳을 첫번째 관람장소로 선택했습니다. 입구에 즐비한 포스터와 캐릭터 피규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피규어와 포스터가 대량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입장료는 4,000원이구요.


입구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피규어가 마니아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헐리웃 영화부터 일본 아니메까지 엄청난 피규어와 완구들이 장식되어 있더군요. 아, 부럽습니다. ㅠㅠ


아, 엘로스의 어린시절의 그녀인 메텔의 피규어가 거의 한칸을 차지하는 레이지버스 피규어들입니다.


배트맨이나 슈퍼맨 같은 미국 히어로부터 반지의 제왕, 터미네이터, 300, 글라디에이터 등 최신영화의 피규어도 한 가득입니다.


한쪽 벽면에는 올드 무비들의 국내극장 개봉시 포스터가 프린트되어 벽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희귀한 영화 포스터들의 경우에는 엄청난 가격대를 호가하고 있다고 하지요. 그러고보니 영화 포스터말고 예전에 극장에서 돈주고 샀던 영화 팜플렛들도 상당히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헉~ 중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몽타쥬 한답시고 당시 거금 주고 샀던 영화 팜플렛을 모조리 가위질 했던 생각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그게 돈을 가위질한 거 였습니다, 흑. 


만화영화 포스터들도 눈에 띄는군요. 벽면에 붙여진 포스터들은 모두 오리지널이 아니라 오리지널을 스캔한 것인 반면, 이것들은 오리지널 포스터 같습니다. 최근작부터 고전작까지 다양하군요. 아, 태권브이 포스터는 탐이 좀 납니다.


절대반지의 창조자이자 악의 화신 모르고스의 오른팔로, 그의 몰락 이후 중간계를 위협한 악의 제왕 사우로 피규어. 오옷~ 피규어가 가득한 이 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피규어 중 하나입니다.


2층에도 각종 영화 포스터와 피규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층은 피규어에 집중되어 있고, 2층은 포스터에 집중되어 있군요. T-800 터미네이터의 얼굴 피규어. 아, 이것도 멋집니다. 이곳에는 T-800 말고도 T-X의 얼굴 피규어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스타워즈의 제다이마스터 요다 피규어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요다가 워낙 자그맣다 보니 혹시 이게 1:1 스케일이려나요.


좀 더 자세한 관람을 해보고 싶었지만, 역시 아드님의 컨디션 관계로 간단한 관람만을 마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제공하는 LIME TREE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었는데, 이 집 샌드위치 소문대로 괜찮네요. 연어날치알 샌드위치인데 아들녀석도 제법 맛있게 먹더라는.


아트 갤러리 한 곳을 더 방문해보고도 싶었으나 역시 아드님을 위하여 LIME TREE 옆의 토이뮤지엄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1층은 카페테리아, 2층에는 장난감들을 전시하고 3층은 놀이방, 지하에는 아이들을 위한 테마 놀이방이 준비되어 있더군요. 아이들한테는 그만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들도 정신줄을 놓으시... 아, 그건 아니고 하여간 정말 재미있게 놀더군요. 유의할 건 2~3층의 토이 전시장/놀이방과 지하의 테마 놀이방은 입장료를 별도로 받는다는 것. 

짧고도 아쉬운 4시간의 헤이리 관람기였습니다. 하루만에 모든 걸 다보려는 것보다는 자연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산책을 즐기듯이 쉬엄쉬엄 둘러보는 것이 헤이리를 더 알차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군요. 예술과 자연이, 대중과 예술가가, 아이들과 어른이 모두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컨텐츠들이 헤이리에는 다양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시간을 내서 들려와야 겠군요. 4시간으로는 헤이리의 1/10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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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건축 디자인과 함께 하는 가을 산책길

난 주 일요일에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갔더랬습니다. 한동안, 파견근무에 적응을 못해서 주말이면 거의 퍼져있다 시피 했는데, 더이상 빈둥거렸다간 가을 나들이를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요즘, 특히 블로그를 하게 된 이후로는 집에 있는 시간을 더 좋아라 했습니다만, 와이프나 아들 녀석과 같이 모처럼 외곽으로 나가 기분 전환도 해볼겸 헤이리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사실, 부끄럽지만 헤이리는 이번이 첫 방문입니다. 어찌저찌 하다보니 찾아갈 기회가 없었는데요. 상상 이상으로 큰 규모에 살짝 놀랐다고 하겠습니다. 날씨도 선선하면서 햇빛이 좋았던 터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들이가 되었던 것 같네요. 공원이나 유원지가 아닌, 마을이다보니 공용주차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주변에 여기저기 주차가 가능합니다. 사시는 분들에게는 이쪽이 더 좋긴 합니다만,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오는 주말 같은 경우에는 꽤 혼잡한 느낌이더군요.


헤이리의 다섯 다리 중 세번째 다리인 환(環)입니다. 철창처럼 생긴 다리의 지붕을 통해 분산되는 빛으로 인해 마치 포토샵 처리를 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고 하더군요. 클로즈업한 와이프와 아들 사진을 보니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잘 나왔더라구요.


김기덕 감독의 영화(제목은 들었는데 기억이...)에도 등장했다고 하는 버스 형태의 숍. 간단한 수제 액세서리와 봉제인형 등을 팔고 있습니다. 길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차들로 인해 좀 번잡하고 사진찍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별도의 공용 주차장이 있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있지만, 대부분이 사유지로 구성되어 있어서 별로 여의치는 않은 듯.


2002 월드컵의 주역들을 묘사한 93 뮤지엄 앞의 조형물.


헤이리의 중간 부분 즈음에 자리잡고 있는 한향림 현대도자 미술관. 미술관과 카페가 어우러져 예술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미술관과 함께 도예 스튜디오와 디저트 카페가 자리한 UNA로 이어지는 이 부분은 1층과 2층에 자리한 카페테리아 덕에 유럽의 정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스토리빌(?) 즈음에 위치한 남성 누드 조형물. 설명에 의하면 특이하게도 건축가 분이 만드신 조형물이라고 하는군요. 차디찬 메탈블루의 감촉이 신선해지는 가을과 잘 어우러집니다. 좀 추운가 보군요, 포즈가 경직된 걸 보니...(뭐래, 정말)


수제 초콜릿과 케잌을 제공하는 카페와 아트샵 등이 위치한 K SPACE. 종영한 SBS TV 예능 프로그램 '골드미스가 간다'에서 맞선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는군요.


500년 된 느티나무. 수천만원의 거액들여 거의 죽어가던 이 노목을 극적으로 구해냈다고 하는군요. 왼쪽 가지의 둥그런 부분이 종양이라고 합니다. 이 나무, 굴곡이 좀 있군요.


도로 위로 삐져나온 나무도 자르지 않고 예술작품을 옆에 위치시켜 자연과 예술의 조화라는 헤이리의 명제를 실현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아, 저 담벼락이 예술작품이구요.

 
헤이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갤러리 MOA. '죽기전에 꼭 보아야할 세계건축 1001'에 한국현대건축으로는 처음 선정된 곳이라고 합니다. 독특한 공간감과 조형미가 돋보이는 군요. 아직 아들 놈이 어린 관계로, 이번에는 관람을 패스. 다음 기회에는 한 번 들려보려 합니다.


갤러리 MOA 근처에서 또 만만치 않은 포스를 보여주시는 포네티브 스페이스. 도예가 한영실님의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벽재질이 마치 녹슨 쇠같은 질감을 보여주는데, 물론 실제로는 녹슨 쇠가 아니올습니다.


국내 최대규모의 영화세트 공간이 위치하고 있는 아트서비스. 박찬욱 감독의 '박쥐'나 '올드보이', '여고괴담 시리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수많은 한국영화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하는군요. 말 그대로 건물 내에 거대한 세트장이 위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영화의 특성상 일반인에게 공개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갤러리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 모 예술가가 키우는 고양이라고 하는군요. 예술을 좀 아는 듯(;) 포즈를 제법 잘 취하고 있습니다.


건물 내에 나무가 자라고 있는, 건물을 지을 당시 건물 터에 위치한 나무를 잘라내지 않고 그냥 건축한 것으로 보이는 금산 갤러리의 모습. 이처럼 헤이리에는 자연과 예술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건물이나 조형물이 자주 눈에 띄는데요. 북카페 반디의 경우에는 건물 터에 있는 두 그루의 거목을 건물 주가 너무 좋아한 나머지 건물 자체를 축소하여 지었다는 후문도 전해집니다.


미술 전시회와 음악회 등이 열리는, 보라색의 색감이 인상적인 공간 퍼플.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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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Tatsunoko Pro. / 鴉 - KARAS 製作委員會


<스탭>

◈ 감독: 사토 케이이치
◈ 원작: 사토 케이이치
◈ 제작: 타츠노코 프로


<시놉시스> 

세상의 도시들은 긴 세월동안 정령 유리네와 그의 전사 카라스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다. 요괴들의 세상과 인간 세상을 이어가며 양쪽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 카라스 중 한 명인 혼슈인 에코는 요괴와 그들의 세상을 잊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분노, 스스로의 의지로 유리네를 배반하고 기계화된 요괴들과 함께 인간세상을 뒤엎을 음모를 꾸미게 된다. 최강의 카라스인 에코를 막으려 여러 카라스들이 도전하지만 그의 압도적인 힘 앞에 차례로 쓰러지고... 에코의 음모를 막고 인간세상과 요괴세상 모두의 질서를 되찾을 새로운 카라스는 과연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타츠노코 프로 40년 노하우와 사토 케이이치 감성 디자인의 만남

'학닌자대 갓챠맨(1972)'와 '신조인간 캐산(1973)', '타임보칸(1975)' 등으로 일본 최대의 아니메 스튜디오 도에이 동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70년대를 수놓은 타츠노코 프로덕션(일본식으로는 줄여서 타츠노코 프로). 타츠노코는 아니메에 5인 전대물의 공식을 대입하는 등 히어로 액션물에서 발군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히어로물의 본가로 인정받고 있는데요. 비단 히어로물의 본가라는 명성 외에도 코믹스나 소설 등을 원작으로 하지 않고 자신만의 오리지널 아니메로 승부를 걸어 여러 명작을 탄생시킨 제작사로도 정평이 나있습니다. 히어로물 외에도 '마하 고고(1967)', '개구리 왕눈이(1973)'이라든지 '이상한 나라의 폴(1976)' 등 독창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낸 아니메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죠.

비록 지금은 그 위세가 예전같지 못하다고 하지만, 토리우미 히사유키(에어리어 88 감독), 아마노 요시타카(천재 캐릭터 디자이너, 뱀파이어 헌터 D,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캐릭터 디자인), 코가와 토모노리(전설거신 이데온, 성전사 단바인 등의 캐릭터 디자인. 스튜디오 비보의 창립자로 기타즈메 히로유키, 온다 나오유키의 스승), 오카와라 쿠니오(아니메 1세대 메카닉 디자이너. 기동전사 건담의 메카닉 디자인), 오시이 마모루(아니메의 철학자. 패트레이버, 공각기동대 등 연출), 타카다 아케미(일본 최고의 미형 캐릭터 디자이너 중 한명. 마법천사 크리미마미, 오렌지로드의 캐릭터 디자인) 등 기라성 같은 애니메이터들을 키워냈으며, 타츠노코에서 분사한 Production I.G는 현재에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걸작 아니메들을 지속적으로 제작해내는 명 제작사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카라스는 바로 이러한 전설적인 아니메 제작사 타츠노코가 자사설립 40주년(설립 1962년)을 기념하여 2005년부터 출시한 6부작 OVA로, 타츠노코의 트레이드 마크인 히어로 액션물을 기본으로 하여 특촬물과 호러물을 적절히 조합한 다크 히어로 판타지 액션 아니메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겟타로보호(1991)', '자이언트 로보(1992)'부터 'BIG O(1999)', '마징카이저(2001)' 등 레트로 퓨처 풍의 로봇 아니메에서 디자인을 맡으며 활약해온 사토 케이이치의 첫 연출작으로, 특유의 스타일리쉬함으로 멋진 액션 비주얼을 선보이게 됩니다. 사토 케이이치는 로봇물 외에도 '백수전대 가오렌쟈(2001)', '인풍전대 허리켄쟈(2002)', '폭룡전대 아바렌쟈(2003)' 등의 특촬물에서도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왔으며, 타츠노코가 제작한 다크히어로 액션물 '소울테이커(2001)'에서 크리쳐 디자인을 맡으며, 히어로물과 용자물에도 조예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2000년 NTT 도코모의 CF 영상인 'NTT 도코모 갓챠맨' 역시 그의 작품이기도 하지요.

연출경력은 없지만, 로봇물부터 특촬물과 히어로물까지 골고루 참여한 그의 이력은 이 작품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이 작품은 그가 기획부터 원안, 감독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어 타츠노코의 4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사토 케이이치를 위한, 사토 케이이치에 의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 2005 Tatsunoko Pro. / 鴉 - KARAS 製作委員會



2D와 3D가 혼합된 압도적인 영상미와 비주얼

프닝부터 압도적인 액션 비주얼로 팬들을 화면 깊숙히 끌어들이는 카라스의 영상은 단연코 압권입니다. 카라스의 액션 미학은 특촬물에서 볼법한 액션 시퀀스를 다이나믹하고 역동적인 표현이 가능한 아니메의 영역으로 표현해 내었다는 것인데요. 근래의 CG 기술의 도움을 얻은 바가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스의 비주얼에는 일반적인 CG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느끼기 힘든 질감과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실제로 제작진은 2D와 3D의 중간 정도의 느낌을 내는 것을 비주얼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했는데요. 이를 위해 일반적인 사람들이나 엑스트라들의 경우에는 셀화로 작업한 원화를 CG로 보정해주는 작업을, 그리고 카라스나 요괴와 같이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은 CG로 작업한 기본 위에 셀화 작업과 카라스만의 강렬한 명암대비를 사용하여 CG 이면서도 마치 셀화와 실사의 중간 같은 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CG 위에 셀화로 보정을 해주는 작업에 있어서는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사용되었던 툰 쉐이딩(Toon Shading: CG로 만들어진 기본 그림 위에 애니메이션에서 쓰이는 것과 같은 셀화적 색감과 그림자를 입히는 기법. 애플시드 극장판이나 마비노기와 같은 게임에서 보는 비주얼을 뜻함) 기법과는 달리 CG 캐릭터의 일부분, 즉 망토와 같은 부분은 셀화로 작업하고 나머지 CG 부분은 강렬한 명암효과를 부여하여 CG의 느낌을 최소화 시킨 다음, 각종 광원효과 등을 적용하여 CG의 기본 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상당히 많은 작업량을 요구하는 속칭 노가다에 가까운 작업이었습니다만, 관록의 타츠노코 제작진답게 이런 부분에서도 특유의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높은 완성도의 비주얼을 창조해내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과도한 작업량이나 CG가 투입되면서 생긴 제작비의 상승은 제작 도중 카라스의 프로젝트를 잠시 휘청거리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 듯 하지만, 결국 40주년이라는 명제하에 끝까지 포기를 하지 않은 제작진의 의지 덕분에 시리즈는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지요.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빗나갔지만, 이러한 카라스의 독특한 영상미는 CG 효과를 눈에 띄지 않게 한다는 것이 선결조건이었기에 될 수 있는 한 밝은 조명이나 밝은 장소에서의 액션씬은 자제하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다행히 다크 히어로와 요괴들이 등장하는 액션물이었기에 자연스레 카라스의 액션은 주로 밤을 배경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지요. 음산하고 어두운 배경 속에서 시커멓고 괴기스럽게 생긴 캐릭터들이 펼치는 하드한 액션에 강렬한 명암효과와 광원효과가 부여되면서 CG의 이질감은 상쇄되었고, 효과는 더욱 화려하게 부곽됩니다. 이런 컬러와 효과가 빠른 스피드의 액션 시퀀스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카라스의 비주얼은 강렬하고 세련된 블랙의 느낌을 선사하게 되지요.

특히, 압권은 특촬물에서 익히 볼법한 과장된 등장씬과 변신씬, 그리고 공격을 들어가기 전의 특별한 포즈 등을 들 수 있는데요. 어린이들에게 극적효과를 느끼게 하기 위해 자주 쓰이는 이 특촬물적인 시퀀스는 성인들이 볼법한 다크 히어로 액션물에서 강렬한 컬러링의 CG와 음산한 분위기, 그리고 적절한 음악에 맞춰 전혀 유치하지 않은 시퀀스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꽤 과격한 액션 연출이 등장하기에 어찌보면 액션에서만큼은 사실주의적 연출이 등장했을 법도 하지만, 스타일과 멋을 최대로 살려낸 이러한 연출방식은 '과장'이라는 키워드를 액션 연출에 가장 성공적으로 대입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할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비주얼에서만큼은, 그리고 액션연출과 그 스타일에 있어서는 타츠노코의 40주년을 기념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아니메 중에서도 그 영상미를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 2005 Tatsunoko Pro. / 鴉 - KARAS 製作委員會



호러와 느와르가 뒤섞인 강렬하고 하드한 액션

라스는 타츠노코의 히어로물 중에서도 드물게 다크 히어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애초에 기획 단계부터 제대로된 다크 히어로물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카라스는 사악한 쪽에 몸을 두고 있다가 그들을 배반하고 정의의 편에 선다는 다른 다크 히어로물과는 달리, 도시의 수호자로 까마귀의 형상을 한 어둡고 우울한 과거를 지닌 히어로로 묘사됩니다. 이런 면에서 카라스는 데빌맨이나 뱀파이어 헌터 D와 같은 부류라기보다는 배트맨의 부류에 가까운 히어로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전반부에는 주인공인 오토하의 과거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체 단편적인 영상만이 제공되면서(그것도 자세히 눈여겨 보지 않으면, 주인공인지 눈치채기가 힘들 정도) 오히려 베일에 쌓인 비밀스러운 히어로로 묘사됩니다.

오히려 초반부는 기계와 결합된 기괴한 모습의 요괴들이 등장하고 그들에 의해 사람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되면서 이를 해결하려는 쿠레 형사와 사기사카 형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마치 호러나 미스테리 드라마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이러한 괴기스러운 사건 속에 고양이 정령 유리네의 기묘한 주문과 함께 등장하는 카라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3화까지의 전개는 이렇게 인간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기묘한 사건이 발생한 후, 결국 정체를 드러낸 요괴 앞에 신비의 인물 카라스가 등장하는 시퀀스를 따라가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이야기에서 또다른 중요인물로 등장하는 누에의 경우에는 요괴로서 요괴들과 그들을 이끄는 선대 카라스 에코를 배신하고 인간의 편에 선 인물이라 하겠는데요. 오히려 다크히어로의 성격 상 이 누에야말로 카라스의 진정한 다크히어로가 아닐까 합니다. 누에의 경우는 요괴이면서도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대부분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게 되는데, 뮤지션처럼 느껴지는 스타일리쉬한 패션과 금으로 도금된 멋진 권총, 그리고 오토바이와 같은 액세서리들로, 마치 느와르물에 등장하는 멋진 주인공을 연상시키게 합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시점은 쿠레 형사와 사키사카 형사, 누에, 그리고 카라스의 세가지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여기에 인간의 시점에서 그들을 관찰하게 되는 시골에서 상경한 아가씨 히나루, 누에를 따르는 요괴소년, 거기에 또다른 도시에서 온 유리네와 그녀의 카라스인 호무라 등의 시점이 대입되면서 작품은 다양한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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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일부분만 드러나며 전체적인 얼개를 알 수 없었던 이야기는 이렇게 여러 인물들의 시점에서 전개된 이야기의 조각들이 하나로 얽히며 마침내 실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1화에 등장했던 알 수 없는 응급실의 인물이 누구인지, 왜 누에가 요괴들을 배반하고 인간들의 편에 섰는지, 오토하는 과연 누구이고 어떻게 카라스가 되었는지 등등이 차례로 밝혀지게 되지요. 여러가지 의문들과 다양한 등장인물들로 인해 내러티브가 길어지고 지루해질 우려도 있지만, 이 작품은 제법 스토리텔링과 액션의 균형을 잘잡은 작품입니다. 액션에 몰입하여 작품의 내러티브가 실종하지도 않았고, 내러티브에 집중하여 작품이 지루해지지도 않았구요. 거기에 다양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갖고 나름의 결말을 맞이하는 점도 훌륭한 편입니다.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 버리지 않았다고 해야할까요. 조연급인 인물 사기사카 형사와 그의 딸 요시코의 이야기도 카라스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다지 큰 연관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인 줄거리를 따라 적절한 전개와 클라이막스, 그리고 결말을 보여줍니다.

물론, 다른 도시의 카라스인 호무라의 등장은 조금 생뚱맞은 감도 있습니다만, 이야기 자체를 훼손시키기 보다는 그저 관찰자로서의 역할에 그치기 때문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 편입니다. 오히려 호무라의 통통 튀는 매력이 카라스의 어두운 분위기를 상쇄해준다고 할까요. 이런 인물로는 히나루를 또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작품의 이야기와는 진짜로 전혀 상관없는 히나루는 우연치 않게도 카라스와 요괴들이 등장하는 장소마다 어김없이 찾아와 본인의 생업인 아르바이트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얼핏보면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녀이지만, 이렇게 작품의 매 에피소드마다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장면은 감독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치 영화 속 카메오의 등장같이 말이죠. 

전체적으로 카라스의 이야기는 이처럼 여러개의 에피소드들이 조각조각 나누어져 메인 줄거리와 함께 유기적으로 흘러가다가 메인 줄거리의 전개과정에 맞춰 에피소드 각각도 나름의 결말을 보여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영리하고 재기넘치는 스토리 구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2005 Tatsunoko Pro. / 鴉 - KARAS 製作委員會



마니악한 40주년 기념작, 감탄과 아쉬움이 교차

라스는 타츠노코의 40주년 기념작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그야말로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정성을 들인 멋진 비주얼, 비주얼에 걸맞는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 거기에 비주얼과 이야기의 균형을 잘잡은 연출 등 완성도 면에서는 인정을 해줄 수 밖에 없는 작품이지요. 거기에 엔터테인먼트 본연의 재미에도 충실한 작품입니다. 과연 초짜 연출가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반면, 사토 감독의 스타일이 거의 100%를 차지한다 싶은 이 작품은 40주년 기념작이라는 태그를 띄고 나면 과연 타츠노코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연관성이 없는 편입니다. 실제 타츠노코의 인재들이 상당수 타츠노코를 떠난 후인지라 이 작품은 거의 신진급 인물들이 참여한 타츠노코의 정체성을 그다지 엿볼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히어로물이라는 장르적 특성 외에는 타츠노코와의 교집합을 찾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물론 일부 스타일에 있어서 이 작품은 타츠노코의 2001년작 소울테이커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실제로 소울테이커는 사토 감독이 디자이너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소울테이커 역시 타츠노코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신보 아키유키의 색깔이 너무 많이 드러나는 작품이기에 연관성을 찾기는 힘들다고 하겠습니다. 애초에 기획 스타일이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것이었기에 이런 부분은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긴 합니다. 그저 물론 작품의 호불호나 완성도와는 무관한 그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인데요. 맛이 좋다, 없다, 짜다, 싱겁다가 아닌 '맛은 있는데, 이 집 전통의 맛은 사라졌네' 라는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또한, 감탄스러운 영상미와 잘 짜여진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뭔가 사람을 잡아끄는 스토리텔링에서는 역시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잘 짜여졌지만,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깊이는 얕아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만큼 메인 스토리의 힘이 약해졌다고 해야할까요. 마니악한 스타일리쉬 액션으로는 100점짜리이지만, 그 이상을 보기에는 좀 아쉬운 느낌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작품은 2006년 제5회 동경 국제 아니메 어워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지요.) 물론, 첫 연출임을 감안하면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40주년 기념이니만큼 타츠노코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해서였지 않겠나 싶기도 하구요.

아쉬운 것은 타츠노코가 40주년 기념작에도 불구하고 예전과 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일 겁니다. 타츠노코의 몰락 이후 아니메는 제대로 된 히어로물을 보기가 힘든 편인데요. (물론, 2000년대에도 타츠노코는 얏타맨 리메이크가 실사판 등으로 여전히 활동을 하긴 합니다만) 이제 50주년을 향해가는 타츠노코가 50주년 기념작에는 보다 더 멋진 히어로물을 들고 우리를 찾아와 주기를 기대해봅니다.

ⓒ 2005 Tatsunoko Pro. / 鴉 - KARAS 製作委員會



<참고 사이트>

[1] KARAS, Wikipedia Japan
[2] さとうけいいち, Wikipedia Japan
[3] Project K, 카라스 한국판 DVD 스페셜 피쳐
[4] 메이킹 카라스, 카라스 한국판 DVD 스페셜 피쳐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05 Tatsunoko Pro. / 鴉 - KARAS 製作委員會에게 있습니다.



카라스 전편 일반판 박스세트 (12disc) - 10점
사토 케이치/미라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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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tsu · Sunrise


<목차>



<서문>

타지 아니메 연대기 1부와 2부를 통해 여러분은 아니메에 등장하는 두 종류의 판타지인 '서양 판타지(1부)'와 '동양 판타지(2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지역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판타지는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두 장르가 섞이거나 전혀 다른 세계관을 설계하여 지역적 구분이 모호해진 '무국적 판타지'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무국적 판타지를 지역적 관점이 아닌 장르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무국적 판타지라 분류하기에는 아니메가 너무도 다양한 장르와의 혼합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 과정 중에 어떤 작품은 서양 판타지와 로봇 아니메를, 어떤 장르는 동양 판타지와 히어로 액션물을 결합하는 것과 같이, 무국적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니메의 독창적인 장르들, 즉 로봇물, 히어로물, 마법소녀물과 같은 장르와 판타지의 결합(무국적 판타지를 포함하여)을 이번 3부에서는 '퓨전 판타지'로 명명하고자 합니다.

퓨전 판타지는 사실 판타지의 한 장르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몇 가지 판타지적 설정이 가미되었으나 실제 작품의 성격은 판타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작품들도 많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으로 '드래곤볼' 시리즈 같은 경우는 오리엔탈 판타지 서유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고 소원을 들어주는 용신이라는 판타지적 장치가 등장하고 있지만 전반부는 코믹액션물의, 후반부는 무협액션물의 성격이 짙습니다. 게다가 캡슐이나 우주선, 스카우터, 로봇 같은 SF 요소까지 등장하는 그야말로 백화점과 같은 설정의 작품이기도 하지요. 사실 드래곤 볼 쯤되면 판타지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데요. 다양한 장르에 판타지적 설정을 가미하여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낸 아니메의 특성상, 퓨전 판타지는 어찌보면 한 장르로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가장 광범위한 장르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1부나 2부에서 언급한 작품들 중 상당수도 정통 판타지라기보다는 일본적인 재해석이나 다른 장르 아니메와의 크로스오버가 시도된 퓨전 스타일의 작품들이죠.

따라서 이번 시간에는 이토록 광범위한 퓨전 판타지의 장르에 어떤 형태의 시도들이 있는지를 알아보며, 그중 대표적인 몇몇 작품만을 소개해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로봇, 판타지의 대지 위에 서다

2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판타지를 주소재로 하여 시작된 일본의 상업 극장 만화영화는 60년대 중반에 들어 일본산 오리지널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만화영화가 그 자리에 들어서면서 점차 인기를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테즈카 오사무나 이시노모리 쇼타로(혹은 이시모리 쇼타로), 나가이 고와 같이,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대형 만화가들의 작품들이 TV까지 진출하면서 아니메의 장르적 완성을 가져오게 되는데요. 로봇물, 히어로물(혹는 전대물), 마법소녀물과 같은 일본만의 오리지널리티가 가득한 만화영화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판타지는 주도권을 빼앗기고 아니메의 변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아니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로봇물은 '기동전사 건담(1979)'을 기점으로 고연령층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면서, 높아진 연령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전보다 더 드라마적인 요소가 더 강해졌으며, 정통 SF 스타일이 도입되면서 논리적인 설득력이 뒷받침하는 사실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게 됩니다. 80년대 중후반까지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자 판타지의 입지는 그다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요. 저연령대이건 고연령대이건 가리지 않고 SF와 로봇물이 범람하면서 판타지가 들어설 곳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판타지의 부활은 이런 SF/로봇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변방이 아닌 중심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당시 아니메의 흐름을 만들어낸 장본인 중 한명인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었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한데요. 이는 토미노 감독 스스로가 어느 한 장르에 안착하기보다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83년도에 선라이즈에서 제작된 판타지 로봇물 '성전사 단바(1983)'인 것입니다.

ⓒ Sotsu · Sunrise


다른 차원의 세계 바이스톤 웰로 불려온 소년 쇼 자마가 그곳에서 오라력이라는 기이한 힘으로 동작하는 곤충모양의 거대 인간병기 오라 배틀러에 탑승하여 성전사로 전쟁 속에 휘말리는 단바인의 이야기는 오라력으로 움직이는 기이한 거대 병기 외에는 중세유럽의 시대배경을 지닌 지극히 판타지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었는데요. 특히, 이 작품은 판타지의 세계관을 빌렸으되 그 성격은 이전의 판타지 만화영화와는 다른 성인취향의 시리어스하고 드라마틱한 설정을 보여줬고, 세계관이 바뀌었을 뿐 그 모습은 리얼로봇의 한 장르로 보아도 될 법한 설정들로 꾸며져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성전사 단바인은 당시 최고의 인기장르인 로봇물에 판타지를 가미한 색다른 맛을 보여주며, 일본 특유의 스타일과 세계적인 것과의 성공적인 융합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판타지와 로봇 아니메의 퓨전은 '중전기 엘가임(1984)'과 '기갑계 가리안(1985)'을 거치면서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장르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80년도 후반에 들어 로봇 아니메가 몰락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이러한 시도는 계속적으로 보여진다는 것으로, 리얼로봇에서 다시 아동용 로봇물로 방향을 선회한 선라이즈의 빅히트작 '마신영웅전 와타루(1988)'나 '마동왕 그랑조트(1989)', 그리고 '패왕대계 류나이트(1994)'에서도 판타지와 로봇을 혼합하면서 90년대 들어 부활한 판타지 아니메의 인기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특히,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에 이르러서는 높은 완성도의 드라마와 비주얼로 판타지와 로봇의 결합에 있어서 하나의 큰 획을 긋게 되지요.

로봇과 판타지를 결합한 판타지 로봇물은 퓨전 판타지 중에서는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동시에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카플로네 이후에는 크게 주목을 받은 작품은 비록 없었지만, 최근까지도 AIC가 제작을 맡은 '이세계의 성기사 이야기(2009)'(특히, 이 작품은 AIC의 전작 '엘 하자드'나 '천지무용'의 스타일에 판타지 로봇물이 더해진 형태를 보여주지요)와 XEBEC과 Production I.G의 '브레이크 블레이드(2010)'와 같은 굵직굵직한 작품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어느 정도 독립된 장르로도 자리를 잡지 않았나 생각도 되는군요. 특히, 근래의 작품들은 미소녀 + 러브코미디와 같은 흥행코드를 적극 채용하면서 예전의 시리어스했던 작품들에 비해 보다 더 상업적이면서 대중적인 취향을 고려한 흔적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 Sotsu · Sunrise (좌측) / ⓒ AIC · VAP (중간) / ⓒ 吉永裕ノ介 · Flex Comix · Break Balde 製作委員会 (우측)



장르의 다양화와 함께 시작된 판타지의 다채로운 변형

80년대 들어서는 비록 SF/로봇 아니메가 아니메의 전반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아니메 시장이 커지고, OVA 시장이 열리면서 다양하고 색다른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일본 경제의 호황과 맞물려 많은 자본이 유입되고, 아니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성인들도 아니메를 즐기는 등, 80년대는 그야말로 '아니메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었죠.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여 판타지도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여러가지 시도를 하게 되는데요. 정통 판타지보다는 다양한 아니메 장르에 배경으로 사용되거나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창작작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하고 색다른 시도를 합니다.

요술공주의 밍키로 유명한 감독 유야마 쿠니히코와 미형 캐릭터 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이노마타 무츠미의 '환몽전기 레다(1985)'는 유럽식 중세 판타지를 기본으로, 비키니 형태의 전투복을 입은 미소녀와 변신 메카가 등장하는 등 여러모로 장르의 퓨전화가 이루어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두 콤비의 차기작이자 극장판 대작 아니메인 '윈다리아(1986)'의 경우에는 이보다는 얌전했지만, 바이크 형태의 탈 것이나 총기류가 등장하는 등 역시 현대적인 아이템이 판타지 세계에서 사용되는 시간적 퓨전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특히 레다의 경우에는 나가이 고 원작의 '꿈차원 헌터 판도라(1986)'와 같은 일련의 아류작들이 양산되는 계기를 가져왔고, 우루시하라 사토시의 육감적인 캐릭터 디자인으로 유명한 '레무니아의 전설(1989)'에 이르르면 에로티시즘과의 결합을 시도하며 18금 장르로도 그 흐름이 이어지게 됩니다.

ⓒ TOHO·Kaname Pro (좌측) / ⓒ ヒロメディア·Kaname Pro·Dynamic Pro (중간) / ⓒ Urushihara Satoshi·AIC


유럽식 판타지의 배경에 현대적이거나 미래적인 소재가 등장하는 작품 외에도 아주 색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니메의 철학자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가 힘을 합친 '천사의 알(1985)'의 경우에는 시대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 그리고 공간적 배경조차 전혀 가늠할 수 기이한 세상에서 희한하게 생긴 총기류의 물건(이것조차 자세한 용도가 불명)을 든 정체불명의 사내와 역시 정체불명의 알을 품은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어떤 장르와도 연결시키기 어려운 난해한 이 작품은 실로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의 작품으로, 오히려 이런 정체불명의 성격 때문에 판타지로 분류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아마노 요시타카의 몽환적인 캐릭터 디자인은 이듬해인 86년도에는 정통 판타지에 보다 가까운 스타일의 작품 '아몬사가(1986)'나 뱀파이어 헌터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와 호러의 조합 '뱀파이어 헌터 D(1985)'에 사용되면서 아마노 특유의 몽환적인 캐릭터가 판타지와 멋진 궁합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이후, 아마노 요시타카는 RPG의 명작 타이틀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판타지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게 되지요.

80년대 아니메의 호황기와 함께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판타지와 타장르의 융합은, 타츠노코의 '천공전기 슈라토(1989)'에서는 일본식 전대 히어로물과 불교/힌두교 신화가 접목된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기고 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에는 오히려 이렇게 동양적인 판타지 소재가 아니메의 다른 장르들과 퓨전을 이루거나 직접적인 소재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았는데요. 이 시기에는 '로도스 전기(1990)'를 기점으로 정통 판타지 또한 심심치 않게 등장하여 전반적으로 판타지가 강세를 띄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슬레이어즈(1995)' 시리즈의 폭발적인 인기로 판타지는 90년대 들어서는 TV에서도 자주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시기에 방영된 '엘 하자드(1995)'의 경우에는 판타지 아니메에서 자주 사용되는 차원이동을 소재로 곤충군단과 마법이 등장하는 신비한 세상 엘 하자드에서 벌어지는 모험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중동의 아라비아 세계관을 도입했으나, 고대의 인간형 병기 이프리타의 등장과 물, 불, 바람을 다루는 대신관의 등장과 같이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혼합된 퓨전 판타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러브 코미디의 성격을 띄고 있어 판타지의 성격보다는 러브 코미디 장르에 더 어울리는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이렇게 슬레이어즈 시리즈 이후 판타지 장르는 시리어스함보다는 가벼운 코미디 위주의 성격을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아카호리 사토루의 응큼한 스타일과 개그가 혼합된 '폭렬헌터(1995)'나 독특한 개그를 선보였던 '엘프를 사냥하는 사람들(1996)'은 모두 판타지 세계관을 사용하면서도 다양한 설정과 장르적 특성을 부여하여 정통보다는 퓨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 AIC·Pioneer·El Hazard Project (좌측) / ⓒ Satoru Akahori·Rei Omishi·Media Works·Bakuretsu Project·TV Tokyo·Sotsu(중간) / ⓒ Yagami Yu·Media Works·Amuse·Sotsu (우측)



게임과 소설, 코믹스에 이르기까지, 그치지 않는 퓨전의 시도

와 같이 극동이나 중세 유럽 외에 인도나 중동의 소재까지 빌려오면서 다양화된 판타지는 90년대 들어서는 러브 코미디의 요소마저 합세하여 보다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사실 아니메에서 동양 판타지이나 서양 판타지나 모두 소수의 작품(대작 극장판이나 OVA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중성을 고려한 결과 일본 아니메의 특징적이 요소가 혼합되어 정통 스타일과는 다른 변질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70년대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OVA 등에서 주로 시도되었고, 90년대에 이르르면 TV 시리즈로 진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21세기에 들어서는 판타지가 보다 더 여러 장르에 변형된 모습으로 사용되면서 이전보다 더 대중화되고 접근이 쉬워졌다는 느낌입니다. RPG와 같은 게임의 활성화도 어느 정도 한몫을 한 것도 싶은데요. 특히 80년대부터 시작하여 90년대를 넘어서 장수 시리즈이자 일본 최고의 인기 타이틀로 자리잡은 RPG 파이널 판타지의 경우에는 곤조의 TV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언리미티드(2001)'를 비롯하여, 스퀘어 에닉스가 직접 제작한 '파이널 판타지 Advent Children(2005)' 등의 작품으로 좋은 반응을 얻게 됩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초창기에는 정통 판타지의 노선을 걷다가 7편에 이르러서부터는 현대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퓨전적인 배경을 보여주게 되지요. 특히, 이 시리즈는 아니메 외에도 게임 타이틀 자체에 삽입된 동영상을 통해 아니메에 근접하는 영상적 감동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게임을 소재로 한 아니메는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제작되는데, TYPE MOON의 비주얼 노벨 게임인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2006)'는 원작의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TV 시리즈 아니메로 제작된 사례로, 2010년에는 극장판으로도 제작되기에 이르릅니다. 전설의 영웅을 마법으로 소환하여 자신의 서번트로 삼아 성배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마법사들의 결투는 현대적인 배경 위에서 펼쳐지며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는데요. 게다가 소환한 영웅들이 동서양을 모두 망라하는 유명인사들로 채워져 있어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모두 혼합한 퓨전 판타지를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 Square Enix (좌측) / ⓒ TYPE-MOON · Fate-UBW Project (우측)


이외에도 독특한 세계관으로 눈길을 끈 작품도 있습니다. 본즈가 제작한 '울프스레인(2003)'의 경우가 바로 대표적인 예인데요. 현대적인 배경 속에 하늘을 나는 거대한 배를 소유한 특권층 귀족이 존재하고, 인간으로 둔갑하여 살아가는 늑대들과 그들을 인도하는 소녀의 형상을 한 꽃이라는 기이한 소재를 사용하여, 판타지와 정통 드라마를 혼합한 멋진 완성도를 보여주다 하겠습니다. 특히, 드라마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하기 시작한 최근의 아니메 트렌드와는 달리,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통 판타지는 아니었지만 정통적인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드라마를 강조하는 제작사 본즈는 이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판타지 작품을 몇 차례 선보이는데, '스크랩드 프린세스(2003)'는 서양식 판타지를 얼개로 하여 SF를 가미한 세계관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드라마와 코미디를 적절히 섞은 퓨전 판타지를 보여줍니다. 겉모습은 예전의 판타지 아니메에서 많이 보아온 모습이지만,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결말과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인해 다소 엉성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이기도 하지요.

또한 아라카와 히로무의 동명 인기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본즈의 또다른 히트작 '강철의 연금술사(2003)'는 20세기 초반의 유럽과 같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여 지구와는 거울처럼 대비되는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연금술사 엘릭 형제의 모험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기본적으로 소년 만화의 형식을 취하면서 연금술이라는 몹시 판타지스러운 소재를 사용하여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 작품입니다. 이렇게 근대적인 세계관에 판타지적인 소재를 등장시키거나, 판타지스러운 세계관에 SF 또는 현대적인 설정을 등장시키는 혼합방식은 위와 같이 본즈가 만들어 낸 일련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통해 90년대부터 시작된 러브 코미디 형식의 퓨전 판타지에 비해 보다 더 성숙해진 드라마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 Bones·Nobumoto Keiko·BV (좌측) / ⓒ Sakaki Ichiro·Kadokawa Shoten·Sutepri Project (중간) / ⓒ Arakawa Hiromu·Square Enix·Bones·MBS·ANX·Dentsu (우측)


지금까지 이야기한 작품들을 기본으로 요약하자면 퓨전 판타지라고 불리는 판타지를 가미한 복합적 장르의 아니메들은 다양한 세계관을 빌려와 일본의 입맛에 맞게 로컬라이징한 경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60년대의 정통파 풀 애니메이션을 거쳐 70년대의 일본식 오리지널 아니메를 지나 80년대의 장르적 완성을 거친 아니메는 이후부터는 다양한 장르와의 크로스오버와 소재의 혼합으로 작품의 매력을 더더욱 다양하게 만들고 있는데, 마치 정통 요리에서 퓨전 요리로 레시피를 다양하게 바꾼 레스토랑과도 흡사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중심에서 캐릭터 중심으로 아니메의 무게추가 기울어지면서 퓨전 판타지 역시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수단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볼거리(캐릭터)를 제공하기 위한 부차적인 소재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세계관의 깊이 있는 묘사보다는 그저 단순한 미장센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습니다. '퀸즈 블레이드(2009)'와 같은 여자 캐릭터의 노출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에서 판타지는 세심한 묘사나 디테일한 세계관의 구현이 필요치 않은 쉽사리 구현 가능한 세트 디자인일 뿐이데요. 꼭 판타지라는 소재를 깊이 있게 대입한 정통 스타일의 아니메만이 해답은 아니겠지만, 세심한 설정과 드라마가 돋보이는 판타지 작품들이 하나같이 외면받거나 제작 선호도에서 밀리는 현실은 아쉽기만 합니다. (퓨전 판타지는 아니지만,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던 '정령의 수호자(2007)'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상업적인 관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흥미 위주의 말초적인 작품들을 위한 부가적인 소재로서의 판타지가 아닌, 보다 더 깊이있는 설정과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의 소재로서 판타지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3부 끝. 4부에서 계속)

<참고 사이트>

[1] 판타지 로봇 서사시 - 단바인에서 에스카플로네까지 (上) by 엘로스, 별바다의 서고
[2] 판타지 로봇 서사시 - 단바인에서 에스카플로네까지 (下) by 엘로스, 별바다의 서고
[3] 환몽전기 레다(幻夢戦記レダ)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천사의 알(天使の卵)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프레스블로그 MP(Monthly Posting) 2010년 11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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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거진과 함께 다양한 샘플제품 제공

프레스 블로그를 통해서 얼마전 건네받게 된 엠브레인마스의 바이럴 마케팅 매거진 M.A.S(More Attractive Selection)와 그의 샘플들입니다. 바이럴 마케팅(바이러스 마케팅, 혹은 입소문 마케팅이라고도 하며 네티즌들의 소문이나 자발적인 리뷰를 통해 제품을 홍보하는 마케팅 방식을 말함)의 일환으로 제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여러가지 편리한 정보를 담은 매거진과 함께 일련의 샘플을 보내어 블로그들로 하여금 샘프를 접해보고 리뷰를 써서 제품을 홍보하게 한다는 방식인데요. 엠브레인마스는 이 샘플제품들의 제작/판매회사가 아니라 마케팅 전문회사로 바이럴 마케팅에 의한 제품 홍보 전략을 수행하고 있는 회사가 되시겠습니다. 엠브레인마스에게 자사의 제품들을 홍보하도록 샘플을 제공한 회사가 있으면, 매거진과 함께 이 샘플들을 몇몇 파워 블로거들에게 보내주는 형태인 것이죠. 이를 위해서 비슷한 형태의 바이럴 마케팅을 추구하고 있는 프레스 블로그와 손잡고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전 대단한 파워블로거는 아니지만 운이 좋아 얻어 걸리게 되었군요.


패키지 구성은 제법 풍성합니다. 창간호라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6개의 샘플이 제공되고 있네요.


첫번째는 요즘 가장 활발하게 바이럴 마케팅이 시도되고 있는 품목 중 하나인 화장품 샘플입니다. DHC의 클렌징, 세안, 보습, 보호 샘플. 와이프 쓰라고 줘야할 듯.


차앤박 화장품의 피부 재생 촉진 프리미엄 BB 크림. 역시 와이프에게로.


폰즈의 대나무 차콜을 원료로 한 클렌징과 페이셜 폼 세트. 역시 와이프 당첨.


케라시스 샴푸 샘플. 오, 이건 저도 좀 쓸 수 있겠군요.


the saem(더 샘)의 스페셜 트라이얼 키트인 젬 미라클 다이아몬드와 타로텔러. 이렇게 말하면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젬 미라클 다이아몬드는 세럼을 말하고, 타로텔러는 마스크 시트올습니다. 저야 세럼이 아직도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요. (단어의 원뜻은 혈청입니다만, 뭐 그건 아닐테구...) 이거 남자도 사용가능한건가요? 이승기군이 광고에 나오니 남자용인가? 아이고 무식함이 줄줄 흐릅니다. 기름종이로 닦아야 할 듯.


아아, 정말 반가운 샘플. 카레 되시겠습니다. 이 제품은 샘플을 받기 전에 이미 몇 번 집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 제품인데, 생각 이상으로 맛이 좋았다는 기억이...


우리 와이프님이 가장 좋아하실 이승기 군이 표지모델로 등장한 매거진. 제공된 각 샘플에 대한 제품 소개와 함께 정보성 글로 구성된 간단한 매거진입니다.


M.A.S 제작진 일동의 단체 사진과 인사말.

 
샘플 제품 소개 외에 매거진의 구성은 건강과 웰빙 쪽에 상당부분이 할애되어 있습니다.

M.A.S는 1,000명의 파워 블로거(엉? 전 아닌데...)에게 발송되어 그 평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1월부터는 1,000명에서 2,000명을 대상으로 발송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현재 핫 이슈 중의 하나인 바이럴 마케팅에서 M.A.S가 과연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샘플 제공이라는 방식은 이제까지의 바이럴 마케팅 방식과는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만, 샘플 제공이 가능한 제품에만 한정된다는 아쉬움도 있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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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 AK Communication에서 증정받은 서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간단하면서도 파워풀한 SD 건담 프라모델 가이드


2010년 9월 30일에 발행된 AK 커뮤니케이션즈의 신간, SD 건담 삼국전 프라모델 내비게이션북입니다. SD(Super Deformed)는 2등신의 귀여운 캐릭터형 몸체를 가진 건담들로 아니메와 게임으로 많은 시리즈들이 제작되었으며, 고연령층의 전유물이던 건담을 아동층에게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이지요. 특유의 귀여움, 거기에 전국시대나 중국의 삼국지, 중세 판타지 설정들이 가미된 다채로운 세계관으로 원래의 건담 시리즈와는 별개의 매력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MS들이 병기로서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장군이나 무사, 기사와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되면서 수많은 프라모델 라인업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특히, 다른 프라모델 제품군에 비해 저렴하고 조립이 간단하며, 귀엽고 아기자기한 매력으로 인해 프라모델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죠.

이번 AK 커뮤니케이션즈의 신간은 TV 시리즈 'SD 건담 삼국전 Brave Battle Warriors'에 등장하는 SD 건담 제품들을 기본으로 하비재팬에서 발간된 동명의 프라모델 가이드북을 번역한 것으로, SD 건프라의 팬들과, 프라모델 입문자들에게 적합한 간단하면서도 있을만한 내용은 다 있는 프라모델 가이드라고 하겠습니다.


목차는 간단합니다. 첫번째 프라모델 가이드는 초급편, 중급편, 상급편으로 나뉘어 간단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구요. 프로모델러들의 SD 건담 작례집, 그리고 SD 건담 삼국전 설정자료집과 카탈로그로 나뉘어집니다. SD 건담스럽게 심플합니다.


특히, 이번 가이드에는 SD 건담 조립에 도움이 될 플라스틱 안전니퍼를 같이 제공하고 있네요. 말그대로 플라스틱 재질이라 SD 건담으로 프라모델에 도전하는 어린이나 여성분들에게도 딱입니다.


조립이 쉽고 간편한 SD 건담이라 이 초급편에서는 일반적인 프라모델 조립 가이드에서 볼 수 있는 조립기술 대신 먹선넣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먹선 넣기 외에도 건담마커펜을 활용한 부분도색에 대한 설명도 들어가 있어 초급편은 다 만들어진 SD 건담에 일종의 기본적인 마무리 작업을 설명하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중급편에 들어가니 여기서 분리한 부품의 게이트 자국을 다듬는 방법이나, 접합선을 없애는 방법과 같은 조립에 대한 가이드가 나오는 군요. 조립 가이드 후에는 캔 스프레이 도색이나 마스킹 방법과 같은 도색강의도 나오니 확실히 중급편다운 기술을 소개하는 듯 합니다.


상급편에 들어가면, 일반 프라모델에서도 상급 기술이라 할 수 있는 퍼티와 프라판을 사용한 제작기술 가이드가 나옵니다. 저가 키트이다보니 SD 건담 제품군은 일부 부품에 비어있는 빈공간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보다 더 정교한 모델로 제작하기 위해서 이러한 빈공간을 메꾸기 위한 상위단계의 기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SD 건담 시리즈는 입문자 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를 즐겨 만드는 중급 이상의 모델러들도 있기에 이러한 가이드는 여러가지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겠네요.


하비재팬 모델 가이드 북이라면 역시 빠지지 않는 프로모델러들의 작례집. 간단한 키트들이지만 모델러들의 손에 의해 깔끔하고 세련되게 재탄생한 SD 건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난이도가 낮은 SD 건담 시리즈들인지라 조금만 연습하면 왠지 모델러들의 작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서비스 페이지라 할 수 있는 설정자료집. 삼국전에 등장하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자료와 간단한 설명을 볼 수 있어 이 가이드북을 버라이어티하게 만들어 줍니다. 삼국지의 다양한 무장들이 건담 시리즈에 수많은 MS들과 만나 여러가지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모습들이 인상적이네요. SD 건담 시리즈를 수집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가이드를 보고 나니 왠지 끌립니다. 시험삼아 몇 개 사볼까요.

SD 건담 삼국전 프라모델 내비게이션북은 간단한 작례 가이드와 작례집, 설정자료 등으로 꾸며진 라이트한 프라모델 가이드 북으로, SD 건담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프라모델 가이드에 비해 SD 건담 시리즈에 특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구요. SD 건담 시리즈에 입문하는 분들이나 SD 건담 시리즈 팬들에게는 괜찮은 가이드 북이 되리라 봅니다.

※ 포스트에 촬영된 책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AK Communication (한국어판)에게 있습니다.


SD건담 삼국전 프라모델 내비게이션 북 - 8점
Hobby Japan 편집부 엮음/에이케이(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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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畑事務所・TNHG


<스탭>

◈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 원작: 타카하타 이사오
◈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시놉시스> 

마지역에서 다카가 숲과 스즈카 숲으로 나뉘어 살던 너구리들은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점차 숲이 없어지면서 존속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들 너구리들은 사람들이 안보일 때는 두발로 서서 다니며, 변신술과 같은 도술을 부릴 수 있는 이들이었지만, 자연을 바꿔버리는 인간들의 힘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평성 31년(평성, 일어로 헤이세이는 현재 일왕의 연호로 1988년부터 시작함. 평성 31년이면 서기로 2019년을 의미), 너구리들은 인간들에게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기로 한다. 인간들에 맞서기 위해 너구리 장로들이 내놓은 계획은 바로 오랫동안 금지되어 있던 변신술의 부활과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이었는데...


지브리의 또하나의 심장, 다카하타 이사오의 걸작 판타지

튜디오 지브리하면 대게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들은 세심한 설정, 아름다운 배경, 서정적인 음악, 거대한 스케일, 신나는 모험, 반전의식과 환경주의가 담긴 메시지, 하늘을 향한 로망, 그리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등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소재들로 가득하지요. 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에는 미야자키에 버금가는 또하나의 거장이 자리하고 있음을 아니메를 많이 보아온 팬들이라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일본 아니메史를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감독 중의 한명, 다카하타 이사오가 있음을 말입니다.

사실, 다카하타 이사오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세워진 직후에는 연출이라는 자신의 본업보다는 제작 쪽에 주로 몸을 담으면서 지브리의 안살림을 챙겨왔습니다. 그러나 다카하타와 미야자키가 처음 조우한 60년대의 도에이 동화 시절을 지나 세계명작동화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 닛폰 애니메이션 시절까지는 오히려 다카하타가 연출을 맡았고, 후배인 미야자키는 그를 도와 설정 등에 관여했던 적이 더 많았지요. 이 때까지 그가 연출했던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모험(1968)', '팬더와 아기팬더(1972)',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1974)', '엄마찾아 삼만리(1976)', '빨간머리 앤(1979)', '첼리스트 고슈(1982)' 등 주옥같은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흥행적인 면에서 미야자키가 앞서 있다고 하지만 작품의 네임밸류만 놓고 보자면 둘은 거의 쌍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이런 그가 스튜디오 지브리에 안착하면서부터는 자신의 작품 활동 수를 줄이고 후배인 미야자키를 전면에 내세운 체 자신은 스튜디오 내의 궂은 일을 도맡게 됩니다. 그의 필모그라피가 상당부분 세계명작동화에 기반한 현실적이고 소소한 드라마(물론, 데뷔작인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모험은 상당한 스케일의 판타지 드라마입니다만)였던 반면, 미야자키의 작품들은 대게 판타지적이고 모험이 가득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은 둘의 스타일이 같은 소스(세계 명작동화 스타일)에서 기반하고 있지만,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지브리에서 연출한 전작 '반딧불의 묘(1988)'와 '추억은 방울방울(1991)'은 이러한 현실주의적인 성격에 더해 그동안 선보였던 유럽식 배경을 벗어나 일본적인 색체를 물씬 풍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미야자키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이국의 모험'을 그린다면, 다카하타 감독은 '현실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드라마'에 능숙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둘의 성격적 차이는 지브리의 작품 스펙트럼을 폭넓게 하는 하나의 강점이라고 할 수도 있구요.

그런 그가 94년 변신술을 사용하는 너구리가 주택개발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험에 처하자 인간에 맞서 싸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일상의 모험'을 다룬 재미있는 작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바로 이번에 소개할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이하 폼포코)'입니다.

ⓒ 畑事務所・TNHG



인간을 풍자하는 재주많고 유쾌한 너구리들의 생활

야기는 동경의 타마지역 신도시 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주택공급 사업의 일환으로 산을 깎아 계단형태로 아파트 단지를 세우려는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두 무리로 나뉘어 서로 다투던 너구리 무리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너구리들은 두발로 서서 걸어다닐 수 있으며, 사람처럼 말도 하고, 심지어는 도술을 사용하여 자유자재로도 변신할 수 있는 영험한 동물이라는 것인데요. 이들은 인간들의 도시개발계획에 맞서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내고자 인간들을 파악하기 위한 인간연구계획과 한동안 금기시 해왔던 변신술을 부활시켜 인간들에 맞서기로 결정합니다. 실로 너구리들의 반란, 아니 너구리들의 역습인 것이죠.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너구리들이 절대 인간처럼 사악하거나 계산적이지 않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며 놀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평화가 빼앗길 위기에 처한 너구리들이지만, 심각한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인간들을 향한 대응방식이 결정되자 바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처럼 기뻐하는 너구리들의 모습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만, 천진스럽고 낙천적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누구를 해코지하거나 다치게 하려는 공격적인 방식보다는 '원만하게 잘 해결되면 그걸로 좋지 아니한가'라는 순진한 너구리들의 방식은 자신들에게 닥친 위기상황을 실로 유쾌하게 희화화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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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들 무리중에도 강경파가 있어 공사장에 진입하는 트럭을 도랑으로 떨어뜨리고 운전을 방해하여 절벽에 추락시키는 것과 같은 과격한 행동을 일삼지만, 이마저 낙천적인 그들의 성격 때문에 유야무야 되어버리고 맙니다. 인간들을 아예 멸망시켜버리자는 초강수를 계획하다가도 햄버거 때문에 인간들 일부는 살려둬야 한다며 웃음으로 마무리 지어버리는 너구리들의 모습은 가벼운 미소를 짓게 만들죠.

특히, 초반에 변신술을 익히는 그들의 일상은 타카하타 감독의 숨겨진 개그가 빛을 발하는 대목인데요. 변신술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해 하반신이나 상반신은 그대로 너구리인체로 변신하거나 아예 변신술을 하지 못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선생님 앞을 지나가는 어설픈 너구리들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너구리들의 변신술은 게다가 한계가 있는데요. 막대한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변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태미너 드링크를 수시로 복용해야 한다는 재미있는 제한까지 둡니다. 인간으로 변신한 뒤 한계가 다다른 너구리들은 눈밑에 진한 다크써클이 생기면서 점차 지쳐가다가 체력이 다하면 너구리로 변하고 맙니다. 이러한 설정은 실로 디테일함과 재기가 넘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로 다채로운 너구리들의 매력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너구리들의 모습으로 또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동물 너구리의 모습으로, 너구리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처럼 웃고 떠들고 걸어다니는 환상 속 너구리로, 패기를 잃어버린 비관적인 모습일 때는 더더욱 만화적인 형태의 너구리(기획단계에서 논의되었던 스기우리 시게루의 만화 '백팔백 너구리'의 너구리를 컨셉으로 한 것)로 변하면서 상황에 따라 다채롭게 변모하게 되는데요. 너구리들을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이러한 연출방식은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오고가는 이 작품의 성격과도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고 하겠습니다.

ⓒ 畑事務所・TNHG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한 너구리들의 특훈장면. 미숙한 너구리들의 변신장면은 기발한 웃음을 선사한다.


개발 지상주의를 향한 비판, 현실주의가 살아있는 동화

포코가 코믹 판타지의 형태를 띄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 돋보이는 것은 지브리의 테마인 환경주의를 보다 더 사실주의적인 관점에서 묘사했다는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거대한 판타지의 세상 속에서 환경주의를 묘사했던 미야자키와는 달리, 다카하타 이사오는 변신 너구리들의 판타지스러운 세상을 사실주의가 가득한 인간의 세상 한 가운데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보다 더 이 메시지를 피부에 와닿게 하는 수법을 보이고 있는데요. 덕분에 이 작품은 판타지적인 연출이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물과 기름처럼 판타지와 사실주의가 양립하는 기묘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이 변신 너구리들의 생활이 삭제된 체 인간의 관점에서 진행되었다면,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피폐해지는 자연의 모습과 이로 인해 살곳을 잃고 인간세상으로 먹을 것을 찾아나온 야생 너구리들의 이야기라는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인 이야기가 되었을 겁니다. 이 얼개를 유지하면서 여기에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적인 너구리들을 등장시켜 다큐와 동화가 공존하는 보기드문 스타일의 풍자 판타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상반된 두 스타일을 한 작품에 융화시키는 것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로 두 가지 장르에 모두 정통한 연출가만이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모습일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타카하타 감독이기에 가능한 모습인 것이구요.

덕분에 지브리 작품의 거의 공통적인 테마라 할 수 있는 환경주의는 더더욱 설득력있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결말 역시 현실과 동화의 오묘한 결합을 보여주고 있지요. 결국, 너구리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만, 그것은 배드 엔딩이라고 볼 수 많은 없습니다. 너구리들은 인간들로 변신하여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지요. 변신하지 못하는 너구리들은 그들대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쓰레기통을 뒤지고, 인간들에게 음식을 구걸하는 비참한 신세로 변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식의 결말은 낭만주의적인 미야자키의 스타일에 비해서는 굉장히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카하타의 작품은 미야자키의 작품에 비해 더 성숙한 느낌이 묻어나지요. 성숙함은 동심의 결여를 의미하지만, 폼포코에서는 유쾌한 너구리들로 인해 마냥 현실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현실적인 드라마라는 레시피에 판타지라는 소스를 뿌린 맛나는 요리처럼 폼포코는 담백한 현실과 달콤한 판타지가 공존하며 인간(현실)과 자연(판타지)가 상생하기 위한 물음을 던집니다.

ⓒ 畑事務所・TNHG

지브리 작품 최초로 실사장면이 삽입된 컷. 맛있는 튀김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타카하타 감독이 직접 지시를 한 장면으로, 촬영 후 튀김은 모두 스탭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후문이...

ⓒ 畑事務所・TNHG

지브리 작품 최초로 CG를 도입한 도서관 장면. 이 장면은 작품 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짧은 컷이었지만, 이를 위해 CG 경험이 전무한 지브리는 외주로 이 장면을 구현했다고 한다. 지브리에서 CG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작품은 3년후에 제작된 '원령공주(1997)'.
 

소소하고 잔잔한 서민적인 이야기 

포코는 다카하타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재기발랄함과 독특함이 넘쳐나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웃의 야마다 군(1999)'과 같은 작품에서 다카하타 감독은 지브리적 스타일을 버리고 또다른 변신을 시도했지만, 사회성과 오락성을 절묘하게 조합시킨 본 작품의 매력은 역시 다카하타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브리로 옮겨와 연출한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친화도를 갖고 있기도 하구요. 한국의 극장에서 상영된 그의 유일한 작품으로, 반응도 좋았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일본적이면서도 향토적인 느낌을 가져다주는 굉장히 서민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왜색이라는 부정적인 시각과 맞물릴 수도 있지만, 유쾌하고 우화적이면서 소시민적인 취향에 잘맞는 이 작품의 느낌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더 많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작품의 결말은 유쾌하면서도 해피엔딩이 아니며, 실패했음에도 슬픈 엔딩이 아닌 여운이 남는 결말을 보여주었지만, 전형적인 결말이었기에 해학적이면서도 기발했던 시작에 비해서는 김이 빠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이 굉장히 뚜렷한 드라마틱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소소하고 잔잔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도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과 대비되는 타카하타 감독만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는 드라마틱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영화같은 드라마틱함이 아닌 잔잔한 물결과 같은 선택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미야자키 감독보다도 6살 연상인 타카하타 감독의 신작을 이제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일 겁니다. 미야자키의 대를 이을 인재가 없는 것 역시 아쉬운 일이지만, 잔잔하고 서민적인 휴머니스트 거장의 대를 이을 전수자가 없다는 것 역시 지금의 아니메에서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 畑事務所・TNHG

클라이막스의 요괴대작전에는 지브리의 인기 캐릭터들인 토토로와 키키, 붉은 돼지가 특별출연 해주셨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타카하타 감독의 서비스라고나 할까.


<참고 사이트>

[1]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1994) by 엘로스
[2] 비극적인 환경파괴의 연대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by 김봉석, 씨네21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畑事務所・TNHG에게 있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애니메이션 영화 리뷰 모아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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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bariki · TNDG


<목차>



<서문>

타지 아니메 연대기 1부에서는 유럽식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일본 스타일로 변주한 아니메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일본 아니메에서 중세 판타지는 80년대 아니메 전성기 시절에 이르러 다양한 소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제작되기 시작했지만, 전반적으로는 SF 아니메의 위세에 눌려 그다지 큰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게임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RPG가 성장하고, 그로 인한 미디어 믹스가 전개되면서 역으로 이러한 소재들이 아니메 쪽으로 흘러들어 오기 시작하게 되지요.

이후 90년대 들어서는 로도스 섬의 전기를 시작으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베스트 셀러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를 미디어 믹스하는 과정에서 판타지 아니메들이 속속 화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중세 판타지 아니메는 몇몇 히트작을 제외하고는 주로 작품에서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 못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로봇물의 배경으로 사용되면서 퓨전 형태의 판타지로 변형되거나, 코미디 혹은 연애물의 배경으로 사용되어 색다른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지요. 정통 스타일의 판타지 아니메가 그닥 없음은 엘로스의 시각에서는 좀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러한 중세 판타지와는 어떤 면에서 평행선에 위치하는 동양적인 판타지, 즉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리엔탈 판타지로 시작된 상업용 만화영화 시대

시다시피 상업용 일본 만화영화의 시초는 1958년에 도에이에서 제작한 '백사전'이라는 극장용 만화영화였습니다.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 만화영화는 아니메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아니메라는 표현이 고유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74년 발표된 '우주전함 야마토'가 사회적 현상이 되고난 후였지요.) 작품의 시놉시스는 중국의 고전인 전등신화를 바탕으로 수천년동안 도를 닦은 백사(하얀뱀) 백소정과 선비 허 선의 러브스토리인데요, 실로 로맨틱하고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세계사에 최초의 장편 (컬러) 만화영화로 인식되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1937)'가 아름다운 공주와 마법을 사용하는 사악한 여왕, 그리고 정의로운 왕자가 등장하는 지극히 중세유럽의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였던 것에 비해 아시아 권에서 가장 최초의 컬러 장편 만화영화였던 백사전이 중국의 설화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였다는 것은 만화영화와 판타지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사전의 성공에 크게 고무된 도에이는 연이어 극장용 만화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디즈니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에 이어 '신데렐라(195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51)', '피터팬(1953)', '잠자는 숲속의 미녀(1959)'와 같은 서양식 판타지 세계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처럼 도에이 쪽도 판타지적인 성격의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하게 되지요. 일본 만화영화의 초창기의 관람층은 어린이들을 위주로 한 전연령가의 성격이었기에 성인 취향의 판타지라기보다는, 모험적이고 교훈적인 소재를 가진 동화적인 판타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후일 5부에서 이야기하게 될 동화 판타지에 더 부합되는 소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초반부의 애니메이션들은 동화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동양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화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오리엔탈 판타지에 포함된다고 하겠습니다. '소년 사루토비 사스케(1959)', '서유기(1960)', '안쥬와 즈시오마루(1961)', '신밧드의 모험(1962)', '개구리 왕자의 왕뱀퇴치(1963)', '멍멍 충신장(1963)' 등 초창기 일본 극장 만화영화는 모두 동양적 판타지 세계관을 가진 동화적 감성의 만화영화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요. 

ⓒ Toei Animation

초창기 일본 만화영화를 장식한 도에이의 작품들은 상당수가 동양적 배경에 판타지가 가미된 모습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서양적 동화를 다룬 디즈니와 대비되는, 즉 디즈니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차별화 전략인 듯 싶다.

이렇게 초창기 만화영화의 절대적인 소재였던 오리엔탈 판타지는 테즈카 오사무나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같은 일본적인 색체를 가진 스타 만화가들의 등장으로 일대 국면을 맞게 됩니다. 특히, 이들은 동화적이거나 판타지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SF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일본 최초의 TV 시리즈 만화영화이자 현재까지도 일본 만화영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메김한 테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1963)'의 등장, 당대 최고의 만화영화 제작 스튜디오였던 도에이로 하여금 디즈니를 지향하는 풀 애니메이션 기반의 'A형 극장판 만화영화'에서 탈피하여 일본의 오리지널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저예산의 'B형 극장판 만화영화'로 방향을 돌리게 한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의 '사이보그 009(1966)' 등의 등장은 그때까지 이어져오던 오리엔탈 판타지의 기세를 잠재워 버리게 됩니다. 
 
일본적 감성을 지닌 새로운 작품의 등장은 만화영화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전의 A형 극장판의 비중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판타지 장르 역시 축소되었고, 특히 초반 만화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던 오리엔탈 판타지는 그 비중이 크게 줄어들게 되지요. 오리지널 스토리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고전설화나 세계명작 등을 기본으로 한 판타지 장르는 어차피 제한된 소재로 인해 한계가 존재하고 있었는데다가 아톰이나 사이보그 009같은 SF에 기반한 창작 캐릭터의 등장이 퇴장속도를 가속화 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절한 교체 타이밍에 등장한 셈이랄까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의미있는 시도가 있었는데요. 테즈카 오사무가 설립한 무시 프로덕션에서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 만화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제작된 아니메라마 1탄 '천일야화(1969)'의 경우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소재로 몽환적인 영상과 에로틱한 표현을 통해 당대의 만화영화와 그 방향을 달리한 성인취향의 스타일로 큰 호평을 얻기에 이르릅니다. 이 작품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범세계적으로 알려진 오리엔탈 판타지 '아라비안 나이트'를 소재로 삼았는데, 아라비안 나이트는 이 후에도 '알리바바와 40마리의 도적(1971)'이나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진 TV 시리즈 '아라비안 나이트 신밧드의 모험(1975)', '알라딘과 마법램프(1982)'(역시 한국 TV에서 명절특선으로 몇 차례 방영)에서도 쓰이면서 초창기 오리엔탈 판타지의 소재로 크게 각광받게 됩니다. 아니메라마 시리즈는 이후에도 두 작품이 더 발표됩니다만, 이후의 시리즈는 판타지보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로 전환되면서 사실적이고 예술적인 방향의 작품들을 선보이게 되지요. 

ⓒ Tezuka Production (좌측) / ⓒ Toei Animation (중간) / ⓒ Nippon Animation (우측)

아라비안 나이트는 특히 초창기 오리엔탈 판타지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는데,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재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각광을 받은 듯 싶다.


아니메의 본격적인 시작, SF의 성장과 판타지의 쇠퇴

렇게 시작된 70년대 일본 만화영화 시대는 판타지에 있어서는 암흑기와도 같았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일본 만화영화의 아이덴티티가 거의 성립되는 단계로 볼 수 있는데, 로봇물, 히어로물, 마법소녀물이라는 독특한 일본 만화영화 장르가 이 때에 와서 자리를 잡게 되고, 그 외에도 세계 명작동화와 같은 장르 등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판타지가 설 자리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겠습니다. 오리엔탈 판타지이건, 서양 판타지이건 간에 모두 기존의 유명한 전설이나 설화, 동화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작품들인지라 이미 한번씩 사용된 소재이다보니 신작을 만들기에도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구요.

그러나, 78년 마침내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의 한 획을 그을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니 그것이 바로 故 테즈카 오사무 필생의 역작 불새 시리즈의 첫 작품인 '불새 - 여명편'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체적인 시리즈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오리엔탈 판타지로 규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시공의 이야기는 어느 때는 판타지였다가 어느 때는 SF적인 세계관으로 바뀌기도 하지요. 게다가 이 여명편의 경우에는 만화영화라고 보기보다는 당시 특수효과 기술로는 재현이 불가능했던 불새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 합성한 실사영화의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불새 시리즈는 풀 애니메이션 SF 판타지 성격을 지닌 테즈카 오사무 본인의 연출작 '불새 2772 - 사랑의 코스모스존(1980)'을 거쳐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 린 타로 감독의 '불새 - 봉황편(1986)'에 이르러 진정한 오리엔탈 판타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87년도에는 OVA '불새 - 야마토 편'이 출시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70년대부터 이어져온 오리엔탈 판타지의 약세는 80년대에 들어와서도 그 사정이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중세 판타지가 로봇물과 결합되거나 RPG의 공식을 따르면서 변형된 형식으로 계속 이어져나간 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일본적인 색체를 지닌 시대물과 겹쳐지면서 동일한 색체로 인해 그 독특함을 잃어버렸고, 판타지의 또 하나의 소재라 할 수 있는 무협 요소 역시 사무라이물이나 '북두의 권'과 같은 근미래적 세계관의 액션무협 작품들과 중첩되면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지요. SF/로봇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 틈새를 공략하는 다양한 장르들에게마저 밀려버린 오리엔탈 판타지는, 같은 색체를 지닌 시대물이나 사무라이 물에게까지 자리를 내주면서 불새 이외에는 뚜렷할만한 작품을 보여주지 못하고 시들해져 버리게 됩니다.

ⓒ Tezuka Production

시공을 넘나들며, SF와 판타지를 오가는 대작 '불새'는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들인 린 타로, 히라타 토시오, 카와지리 요시아키, 다카하시 료스케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소재의 고갈, 판타지를 부활시키다

80년대 후반부에 시작된 아니메의 침체기는 90년도에 이르러서도 좀체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메를 이끌고 있던 거대한 축이었던 SF/로봇 장르가 몰락하면서 다음 아니메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한 아니메는 복고주의 작품들과 리메이크들이 양산되면서 그럭저럭 명맥을 이어가게 되는데요. 이 시기에 중세 판타지가 판타지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게 제작되었던 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오히려 이시기에 이르러 변형된 모습과 색다른 시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타장르와의 퓨전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죠.

89년도에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 제작된 '천공전기 슈라토'는 이런 면에서 오리엔탈 판타지의 컨셉을 가미한 독특한 히어로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소재 또한 익숙한 일본이나 중국의 판타지가 아닌, 인도의 힌두교 신화나 불교적인 소재를 모티브로 삼는 파격을 보여주었지요. 이 독특한 소재는 슈라토에만 그치지 않고,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체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CLAMP의 '성전(RG Veda)'에도 사용되는데요. 성전 역시 아수라나 야차와 같은 불교적 소재가 가미된 오리엔탈 판타지 스타일의 작품이지만, CLAMP 특유의 순정만화적인 스타일과 이국적인 캐릭터 디자인으로 오리엔탈 판타지의 느낌이 그닥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원작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낮은 완성도의 아니메 퀄리티도 크게 한몫을 했지요.

ⓒ Sotsu · Tatsunoko Pro (좌측) / ⓒ Clamp · Shinshokan


힌두교/불교적인 소재는 극동 아시아나 중동의 소재에 비해서는 신선하지만, 이를 모티브로 한 위의 두 작품은 타장르와의 퓨전이 이루어지면서 변형된 일본적 색체가 가미되어 원래의 느낌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무국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작 자체도 소재에 대해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기보다는 모티브만을 가져와 자신만의 색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구요.

이와는 별개로, 다카다 유조의 히트 코믹스로 원작으로 한 OVA '3X3 아이즈(1991)'는 티벳 밀교라는 독특한 소재 바탕으로 요괴와의 하드코어한 액션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다카다 유조의 데생 스타일은 앞선 두 작품에 비해서 보다 더 오리엔탈 판타지의 느낌에 가까운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요사스러운 디자인과 잔인한 묘사 등은 오리엔탈 판타지인 동시에 호러 액션물에 가까운 모양새를 보여줍니다. 역시 오리엔탈 판타지를 바탕으로 일본식 변형이 가해진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호러 액션과 오리엔탈 판타지의 결합은 3X3 Eyes 외에도 오기노 마코토의 빅히트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OVA '공작왕 시리즈(1988~1994)'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오리엔탈 판타지의 변신은 이렇게 히어로물부터 호러액션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타장르와의 혼합을 시도하게 됩니다. 95년부터 방영되며 큰 인기를 얻었으며 투니버스를 통해 방영되어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후시기 유우기(국내 방영제목 환상게임)'에 이르르면, 순정멜로물과 오리엔탈 판타지를 혼합한 또다른 형태의 모습으로도 거듭나게 되지요. 이러한 현상은 소재 고갈에 허덕이던 아니메가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지 않았던 오리엔탈 판타지의 도움을 받은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물이나 순정멜로와 같은 아니메 특유의 장르에 이러한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를 가미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려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혼합 장르들은 인기의 흐름을 이어갔다기 보다는 소재의 다양화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측면에서 단발성에 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중세 판타지 스타일의 '로도스 섬의 전(1990)'나 '슬레이어즈 시리즈' 등이 어느 정도 인기몰이를 했던 것에 비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체 어느 덧 시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 Takada Yujo · Kodansha (좌측) / ⓒ Ogino Makoto · Shueisha (우측)

이 시기의 오리엔탈 판타지는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힌두교나 밀교, 퇴마술과 같은 독특한 소재가 사용되었지만, 정통적인 스타일에 멀어지며 다른 장르와 혼합을 시도하게 된다.


동양적 소재,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 

반게리온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아니메는 다시 새로운 추진력을 얻고 도약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는 한동안 부진했던 해외 시장의 공략 역시 공격적으로 이뤄지게 되는데요. 바로 이 시기에 마스터피스라고 불릴 수 있는 세 작품이 일본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커다란 호평을 얻게 됩니다. 먼저, 아니메의 철학자이자 사실주의자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사이버펑크 걸작 '공각기동대 극장판(1995)'가 일본 내에서의 참패와는 정반대로 세계시장에서 극찬을 얻게 되구요. '아키라(1988)'로 과거 세계시장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던 오토모 가츠히로 또한 옴니버스 극장판 '메모리즈(1995)'로 역시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바로 이 때, 한 편의 오리엔탈 판타지 걸작이 이 두 작품과 함께 아니메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작품을 통해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동안의 무국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일본의 설화를 바탕으로 연출한 판타지 모험극 '원령공주(1997)'는, '아니메의 세계화'라는 추세에 발맞추어 자국인 일본의 색체를 물씬 풍기는 설정과 일본의 고유 민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스러운 모험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원령공주는 한동안 아니메에서는 그 자취를 볼 수 없었던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의 모습이었으며, 그 완성도 또한 명불허전의 것이었죠. 디즈니의 배급망을 통해 개봉된 원령공주는 미국시장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었고, 4년 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통해서 일본 내의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울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한동안 별주목을 얻지 못했던 오리엔탈 판타지는 세계화에 추세와 함께 거장의 힘을 빌려 일본 아니메 史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 역대 영화 흥행수입 1위 센과 치히로 행방불명, 3위는 원령공주)

ⓒ Nibariki · TNDG (좌측) / ⓒ Nibariki · TGNDDTM (우측)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와 동화적인 오리엔탈 판타지가 일본영화 역대 흥행순위 1,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미야자키+판타지의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과시했다. 게다가 흥행순위 2위는 서양식 판타지와 멜로물을 결합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극장가에서 큰 성공을 거둔 오리엔탈 판타지의 위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시리즈에서는 지지부진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미소녀와 개그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혼합된 학원로맨스물과, 하렘물들이 큰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하는데, 중세 판타지의 경우에는 몇몇 작품이 이 흐름에 편승하여 그 소재로써 사용되지만, 오리엔탈 판타지의 경우는 좀처럼 그렇지 못했지요. 하지만, 2002년 실로 오랜만에 오리엔탈 판타지가 TV 시리즈로 등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후유미 오노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 대하서사극 '십이국기(2002)'인 것입니다.

공포소설로 일가견이 있는 후유미 오노가 치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 소설은, 여성 작가로서는 드물게 거대한 스케일이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장기인 호러틱한 분위기와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 인기는 시리어스하고 지루한 대하 서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십이국기를 장편 TV 아니메로 제작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는데요. 실제로 이 작품은 그 전개가 장중하고 서사적인지라 오락적인 측면에서는 매력이 없는 작품입니다만, 원작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며 정통 오리엔탈 판타지의 참맛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유럽식 판타지가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톨킨의 세계관에 기반한 이야기와, 동화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로 나뉘어 지는 반면, 오리엔탈 판타지는 각 국의 설화와 전설에 기반한 동화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십이국기와 같이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의 등장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라고 하겠지요.

이후 오리엔탈 판타지는 보다 더 시리어스한 내용을 가진 작품들로 성인층을 공략하게 됩니다. 특히 이 작품들 중에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며 오리엔탈 판타지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우루시바라 유키의 동명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독특한 판타지 미스테리 '충사(2005)'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자연현상을 벌레라는 단어로 칭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기현상을 해결하며 떠도는 충사 깅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오리엔탈 판타지인데요. 현대적인 복장을 한 깅코와 근대화 이전의 일본의 시골을 연상시키는 배경이 혼합되어 시간 배경마저 모호하며, 거기에 이상한 자연현상이 겹치면서 실로 동양적인 판타지의 신비로움이 잘 살아난 걸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완성도 면에서도 부족한 퀄리티로 아쉬움을 남겼던 십이국기에 비해 애니메이션 자체의 완성도 역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두루 갖추어 실사영화로도까지 제작되기도 했으니, 21세기 들어 오리엔탈 판타지의 의미있는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 Huyumi Ono·Kodansha (좌측) / ⓒ Urushibara Yuki/ Kodansha·Mushishi Partnership (우측)

개인적으로 몹시 좋아하는 두 작품으로 십이국기는 중국을, 충사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용면에서는 전자는 대하 서사시를, 후자는 미스테리 드라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흡입력있는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충사 뿐만 아니라 뛰어난 완성도의 오리엔탈 판타지들이 계속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선라이즈에서 분사한 제작사 BONES는 '천보이문 아야카시 아야시(2006)'을 통해 일본적 색체가 강한 판타지 작품을 선보입니다. 시대물스러운 배경 위에 퇴마라는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를 접목시켜 본즈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어 냈지요. BONES에 버금가는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프로덕션 I.G는 우에하시 나오코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정령의 수호자(2007)'로 역시 정통 판타지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작품들은 뛰어난 완성도와 안정적인 스토리텔링에 비해서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데는 실패하게 됩니다. 이후 오리엔탈 판타지는 두각을 나타낼만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체 다시금 정체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아니메의 세계화 추세를 맞이하여 옛 일본 시대를 컨셉으로 한 시대물과 판타지물의 등장은 어찌보면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한 듯도 싶습니다. 안정적인 스토리텔링과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끌기에는 역부족인 셈이죠.

이제는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가 일본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더 다채로워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비록 잠깐에 그쳤지만, 인도나 티벳 등의 소재를 사용하려 한 시도는 참신한 것이었죠. 가까운 한국의 소재에도 눈을 돌렸으면 싶지만 아직 여러모로 여의치는 않는 듯 싶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스스로도 세계에 내세울만한 전설이나 설화의 발굴에 부족했다는 생각인데요. 삼국지나 서유기, 수호지와 같이 중국에는 세계에 내세울만한 고전문학이 존재하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측면에서는 여러 좋은 컨텐츠를 제대로 세계에 소개하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 會川昇·BONES/MBS·ANX·Dentsu(좌측) / ⓒ 上橋菜穂子·偕成社·精靈の守り人 製作委員会 (우측)

성인취향의 시리어스한 작품을 주로 제작하는 본즈와 프로덕션 I.G의 오리엔탈 판타지는 월등한 완성도와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끄는 것에 실패한 비운의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꼭 한국인만이 한국의 설화와 전설을 소재로 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구미호와 같은 소재는 만화영화나 영화로서도 꽤 매력적인 소재라고 보이는데, 이런 컨텐츠들을 선진국들이 가져다 쓸 수 있는 길이 더 열렸으면 싶구요. 실례로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한국의 설화를 소재로 '레이디 인 더 워터'를 연출하기도 했지요. (완성도는 안습이었습니다만.) 그외에도 한미 합작 애니메이션 '아앙의 전설(역시 샤말란 감독이 실사화 하면서 안습의 완성도로 탄생)'은 오리엔탈 판타지의 성격을 띈 보기드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적인 컨텐츠가 세계시장에서 각광을 받는다면,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없을지 몰라도 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으며, 여러 관광 컨텐츠나 캐릭터 사업을 열 수 있는 간접적인 경제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메에서도 이처럼 한국적인 소재가 쓰인 오리엔탈 판타지가 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2부 끝. 3부에서 계속)

덧붙임) 아, 그러고보니 95년도에 한일합작으로 홍길동을 소재로 한 '돌아온 홍길동'이라는 작품이 제작된 적이 있긴 했습니다. 신동헌 감독의 고전 홍길동을 다시 이어보자는 기획의도였지만, 전형적인 일본식 히어로물로 변질되어버린 데다가 완성도까지 안습이었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만...


<참고 사이트>

[1] 백사전(白蛇傳) 1958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2] 불새-여명편(火の鳥 · 黎明編) 1978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불새-봉황편(火の鳥 · 鳳凰編)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火の鳥 (漫画), Wikipedia Japan
[5] 3×3 EYES, Wikipedia Japan
[6] もののけ姫,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프레스블로그 MP(Monthly Posting)2010년 10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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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었던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1): 일본식 중세 판타지'를 기본으로 하여 새로이 내용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 Group SNE/KADOKAWA/MARUBENI/TOKYO Broadcasting (Illustrated by Yuki Nobuteru)


<목차>



<서문>

타지라는 장르는 굉장히 포괄적인 장르입니다. 마법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이야기의 소재나 배경으로 사용되는 장르를 판타지라고 쉽게 정의할 수도 있지만, 성격에 따라서는 동화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조금은 무섭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마법이 등장한다면 얼핏 고대나 중세유럽이 시대 배경이 되어야할 것 같지만 현재에 벌어지는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요. 흔히들 말하는 톨킨의 세계관이나 RPG(Role Playing Game)의 토대가 되는 포가튼 렐름(Forgotten Realm)과 같은 서양 문명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동양의 신화나 전설, 그리고 무협소설의 이야기도 훌륭한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라는 별에 한정될 수도 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지구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구요.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될 수 있는 판타지는 그 성격상 만화영화와 상당히 궁합이 잘맞는 소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생활하는 만화영화의 표현 자체가 판타지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과거 디즈니의 수많은 명작 만화영화들의 소재는 대부분 세계명작 동화를 토대로 한 것이었으며, 동화는 당연하게도 판타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타지에서 선보이는 여러 초자연적인 현상의 표현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실사영상으로 재현하기 위한 기술적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만화영화와 더 밀접한 관련을 맺기도 했지요.

이 글은 바로 이렇게 판타지와 좋은 궁합을 선보이는 만화영화 중 일본 만화영화, 즉 아니메에 한정하여 판타지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이들 판타지 아니메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이야기 해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사실, 이 글은 이미 2년 전에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포스팅된 바가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작품의 소개에 너무 치중하여 전체적인 흐름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번 포스트를 통해 새롭게 리뉴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당시 글을 다시 보니 여러 오류들이 있어서 정정차원의 글이기도 합니다)

글은 총 5부작으로 구성됩니다. 판타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 톨킨 교수가 창조해냈던 중간계의 세계관이나, 아더왕의 전설, 북유럽의 신화, 그리스 신화 등을 기본으로 한 서양 판타지 중에서 특히, 일본식 재해석이 주로 이루어졌던 중세 판타지를 다룬 아니메를 시작으로, 동양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오리엔탈 판타지, SF와 같은 타장르와의 혼합이 인상적인 퓨전 판타지, 호러틱한 소재와 표현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호러 판타지, 마지막으로 동화적인 세계관과 이야기를 선보인 동화 판타지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법소녀물도 판타지물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일단 마법소녀물을 제외시켰습니다.)

본 글에서 정의한 판타지 아니메의 다섯가지 분류는 오로지 글쓴 이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결과로, 공식적인 명칭과는 무관한 것이오니 읽으시면서 착오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어디가서 판타지 만화영화가 제가 말한 것처럼 다섯 종류로 나뉜다고 말씀하시다가 망신 당하시는 일이 없으시길 빌면서...


중세 판타지, 아니메의 외면을 받다(?)

세 판타지 세계관(본 글에서는 표기상의 편의를 위해 톨킨의 중간계 세계관, 북유럽 신화, 그리스 신화, 포가틀 렐름의 세계관과 같은 서양식 판타지 세계관을 통틀어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라고 명명하도록 하겠습니다.)이 아니메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58년 '백사전'으로 상업 만화영화의 시대를 연 일본 만화영화사에서도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명작동화 스타일을 추구하던 당시의 아니메가 자국의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아니메들의 공세에 밀리게 되는, 즉 '세계적인 것의 추구'에서 '일본적인 것의 추구'로 전체적인 아니메의 방향이 선회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후 슈퍼로봇, 마법소녀, 전대물/히어로물, 레이지버스, 리얼로봇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은 중세 판타지라는 서양식 소재가 아니메에 끼어들 틈을 거의 주지 않았다고 봐야 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트렌드가 막 틀을 잡아가던 70년대 후반 경에 중세 판타지를 소재로 한 아니메가 하나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아더왕의 전설을 소재로 한 '원탁의 기사 이야기, 불타올라라 아서(한국방영제목 '원탁의 기사'. 이하 원탁의 기사)'가 그것입니다.

'원탁의 기사 불타올라라 아서'의 주인공 아서왕.

어찌보면 이 원탁의 기사는 중세 판타지를 아니메의 소재로 쓰고자 했던 의도라기보다는 제작사인 도에이 동화가 이전에 선보였던 세계 명작동화 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이 방영을 시작한 79년도는 슈퍼로봇의 전성기가 정점을 거쳐 서서히 내리막을 걷던 시기이며, 기동전사 건담이 방영을 시작하며 리얼로봇 신화의 태동을 알리던 시점이기도 했는데요.

이것은 그동안 로봇 아니메를 이끌어 오던 도에이 동화가 선라이즈에게 그 바톤을 거의 넘겨줘 버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도에이 동화가 자신의 옛 레퍼토리인 세계명작동화들을 다시 끄집어 내는 과정에서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아더왕의 전설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원탁의 기사는 1기와 2기(2기 제목은 원탁의 기사가 아닌, 백마의 왕자로 바뀝니다.)로 나뉘어 방영됩니다. 1기가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던 탓에 작품의 진행노선에 변화를 주기 위해 불가피하게 1기와 2기로 구분되었다 보여지는데요. 전통적인 아서왕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지 못하자 도에이 동화측에서 히어로물의 컨셉을 이 원탁의 기사에 적용하게 되었고, 바로 이 2기의 변화는 앞으로 이야기할 일본식 중세 판타지 아니메의 방향성에 대해 모종의 단서를 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국을 떠나 잠행을 시작한 아서왕이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자 갑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엑스칼리버와 빛의 방패(?)를 들고 나타나는 모습은 영락없는 일본식 히어로의 모습 그것입니다. 갑옷의 모습 또한 중세의 무거운 풀 플레이트(Full Plate) 갑옷이 아닌 가벼운 전투복 같아서 마치 전년도에 방영했던 'SF 서유기 스타징가(1978)'에 등장하는 손오공들의 코스튬 디자인을 연상시켰구요. 게다가 종반부에는 하늘을 나르는 배까지 등장하는 등([1] 참조), 거의 완벽하게 아서왕의 전설을 재구성하여 일본산 히어로물로 탈바꿈시키게 됩니다.

비록, 원탁의 기사는 일본 내에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만, 이 아서왕 이야기의 파격적인 원작 파괴는 앞으로 중세 판타지 소재의 아니메가 가야할 어떤 방향을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극장판과 OVA로 방향선회, 그리고 RPG의 시동

79년 원탁의 기사를 끝으로 한동안 일본 아니메는 로봇 아니메, 특히 건담으로 대표되는 리얼로봇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렸고, 그와 함께 판타지라는 소재는 아니메에서 한동안 눈에 띄지 못하게 됩니다. 리얼로봇으로 인해 사실주의가 아니메의 대세가 되면서 SF 아니메가 다른 아니메들의 영향력을 앞질러 버리는 전개가 계속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SF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판타지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여집니다. (판타지의 약세는 리얼로봇으로 SF의 붐을 몰고 온 장본인 토미노 감독이 83년도에 판타지와 로봇이라는 요소를 결합시킨 독특한 작품 '성전사 단바인'을 제작하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합니다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3부에서 다루도록 하구요.)

TV 아니메가 SF와 리얼로봇의 흐름에 휩쓸리고 있을 무렵, 극장용 아니메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경제의 전성기가 계속되면서 극장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카토카와 서점의 극장시장 가세로 대작 극장판 영화와 아니메가 속속 만들어지던 무렵, 카토카와 서점의 견제를 위해 미야자키 하야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로 성공을 거둔 도쿠마 서점이 미야자키 하야오에 이은 제2의 거장을 극장 아니메 시장에 진출시키려한 것이죠. 그 제2의 거장이란 다름 아닌 바로 야스히코 요시카즈였습니다.

선라이즈의 캐릭터 디자이너 겸 작화감독으로,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로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고 있던 그는, 토미노 요시유키의 그늘을 벗어나 크리에이터로서 일보 진화하려 하던 참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만화잡지 '류'에 '아리온'이라는 판타지 배경의 코믹스를 연재중이었고([2] 참조), 업계와 야스히코 본인의 의지가 맞물려 이 아리온이 마침내 극장 아니메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야스히코 요시카즈라는 네임 밸류와, 도쿠마 서점의 공격적인 제작의지가 맞물려 아리온은 대작 아니메로서의 위용을 어김없이 보여주게 됩니다. 특히, 그리스 신화라는 중세 판타지 소재의 단골 메뉴가 이 작품의 배경이 됨으로써 중세 판타지의 소재가 다시금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는 OVA 베스트셀러인 유야마 쿠니히코(요술공주 밍키 감독)와 초미형 캐릭터 디자이너 이노마타 무츠미의 '환몽전기 레다(1985)'나, 역시 이 두 콤비의 극장판 아니메인  '윈다리아(1986)', 그리고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환상적인 캐릭터를 톱 클래스의 작화가 아라키 신고/히메노 미치 부부가 멋지게 해석해낸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의 '아몬 사가(1986)'와 같은 걸출한 작품들이 등장하며 판타지의 흐름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레다나 윈다리아 등의 작품들은 모두 정통 판타지의 형식 위에 여러가지 독자적인 설정이 가미된 변형된 판타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아리온 이하 이 작품들이 아니메에서 판타지의 흐름을 주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동전사 Z 건담(1985)'을 정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리얼로봇 아니메는 87년도의 '기갑전기 드라고나'를 끝으로 사실상의 여정을 마치고 있던 참이었으며, 그러한 공백기를 틈타서 중세 판타지는 아니메가 아닌 컴퓨터 게임시장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스퀘어社의 RPG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 에닉스社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후일, 스퀘어는 에닉스에 합병되어 스퀘어 에닉스로 사명 변경)는 일본 게임시장에 RPG라는 장르의 성공적인 안착을 가져온 타이틀로서, 그 영향력은 게임 시장을 막 넘어설 기세였습니다. 미디어 믹스의 소재로서도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던 이 시리즈들은 코믹스를 거쳐 마침내 아니메 시장에 입성하게 되었고, 이들 중 가장 먼저 아니메化 된 것이 바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였던 것입니다.

'드래곤 볼'이라는 희대의 히트작을 만들어낸 토리야마 아키라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그는 드래곤 퀘스트 게임에서 이미 캐릭터 디자인을 맡고 있었는데) '드래곤 퀘스트 - 아벨탐험대(1989~1990)'는 본방의 시청률 면에서는 그닥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했으나, RPG의 공식을 코믹스를 거쳐 아니메로 옮겨놓았다는 점에 있어서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아벨 탐험대 이후에도 코믹스로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던 '드래곤 퀘스트 - 다이의 대모험(1991~1992)'을 연이어 선보이게 되지요. (세번째 시리즈인 '로토의 문장'은 TV 시리즈가 아닌 극장판으로 제작됩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의의는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 아니메에 사용되었다는 것 외에도, 중세 판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게임을 통해 완벽하게 일본식 스타일로 재구성된 중세 판타지가 아니메의 소재로 쓰였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중세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실제 그 모습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철저히 바뀌어진 설정이었던 것입니다. 게임에서 사용되었던 각종 마법과 공격기술, 파티 캐릭터들의 구성 등은 중세 판타지를 토대로 RPG를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설정이었으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더 강력한 보스와 만나게 되는 설정 역시 RPG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RPG의 모습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로봇물과 판타지를 결합한 퓨전 스타일의 '마신영웅전 와타루(1988)' 등과 함께, 아니메에서의 중세 판타지를 출신불명의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자리매김 시키게 됩니다.

파이널 판타지와 함께 일본 RPG의 양대산맥을 구축한 드래곤 퀘스트. 코믹스와 아니메로 미디어믹스되며 저력을 과시한다.



전통과 변칙의 조화, 소설을 원동력으로 삼다

서 언급했듯이 RPG 게임에서 비롯된 중세 판타지의 세계관은 아니메에서도 게임 스타일에 더 정형화된 모습으로 주로 등장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들은 주 시청타깃층이 어린이들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통 판타지를 지향하기보다는 그들의 취향에 맞는 변형된 일본식 중세 판타지로의 접근이 더 맞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일본 내 대중성을 고려하면서 판타지는 완벽히 일본식 입맛으로 길들여집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판타지 아니메는 몇몇 기본 뼈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변형된 일본식 스타일을 따르게 되지요.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 흐름은 한방향으로만 고정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작가의 판타지 소설로 인해 판타지 아니메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여 날개를 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미즈노 료 원작의 판타지 대하소설 '로도스 섬의 전기'인 것입니다.

이 소설은 이제까지의 판타지 아니메들이 그러했듯이 아동층을 타깃으로 하여 PRG의 공식을 대입한 변형된 일본식 판타지가 아닌 판타지의 전통적 아이템인 TRPG(Table Talk RPG)를 바탕으로, 중세 판타지 세계관에 충실한 설정과 매력적인 세계관, 살아 움직이는 신화속 캐릭터들로 인해 일본에서도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소설 뿐만 아니라 PC 게임, 카드 게임을 거쳐 TV 아니메이션과 OVA 등 수많은 형태의 미디어 믹스가 전개된 가히 일본 중세 판타지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겠죠. 

특히, OVA로 제작된 13화 완결의 아니메 '로도스 섬의 전기(1990)'는 90년대 들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작화감독 유키 노부테루의 미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캐릭터로 인해 아니메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정통 판타지의 의미있는 일격을 날리게 됩니다. 이전까지의 판타지 아니메가 거의 대부분 정통 스타일을 버리고 일본식 변주를 보여주었던 것에 비하여 이 작품은 원작에 충실한 구성과 시리어스한 내용 전개로 인하여 판타지의 붐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도스 전기를 시작으로 '은하영웅전설'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다나카 요시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아슬란 전기(1991)'와, 타게가와 세이의 라이트 노벨을 극장판 아니메화하고 세기의 미형 캐릭터 디자이너 이노마타 무츠미와 유키 노부테루가 동시에 참여한 '바람의 대륙(1992)' 등이 로도스 섬의 전기가 다시 불러 일으킨 정통 판타지의 바람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정통 판타지의 공식을 따르거나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화된 작품들이었다. 80년대 중반의 판타지 아니메 스타일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높은 완성도나 걸출한 작화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이 정통 판타지 스타일의 아니메들은 그 인기의 흐름을 이끌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뒤의 두 작품들은 모두 카도카와 서점의 작품들이었는데, 당시 카도카와 서점이 기업경영을 둘러싸고 벌어진 내흥으로 인해 그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군요. 이후에 등장한 판타지 소설들은 정통 판타지의 공식을 바탕으로 일본식 스타일에 맞춰진 새로운 흐름으로 전개되기 시작했고, 특히 젊은 작가층이 많이 포진된 판타지 소설의 속성 상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라이트노벨 계열에서 주 소재로 쓰여지기 시작하면서 좀 더 아니메로의 전환이 용이한 코믹적인 요소나 만화적인 설정이 적극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RPG에 길들여진 신세대적 감각과 라이트노벨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의 결합으로 인해 추후의 판타지 아니메의 노선은 보다 더 가벼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판타지 장르의 기념비적인 빅히트작이 마침내 아니메로 등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칸자카 하지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코믹 판타지 아니메 '슬레이어즈(1995~2009)'였던 것입니다.

슬레이어즈 시리즈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은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나 '
기동전함 나데시코(1996)'과 같은 메가톤급 히트작이 줄을 이으면서 아니메의 새로운 시동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는데요. 이 시기에 이들 레전드급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 슬레이어즈의 등장은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일본식 판타지 아니메의 밝은 앞날을 말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슬레이어즈 시리는 2009년까지 총 5기의 TV 시리즈와 5편의 극장판, 2편의 OVA 뿐만 아니라 각종 게임 타이틀과 코믹스 등의 성공적인 미디어 믹스로 판타지 아니메의 레전더리로 남게 되며, 슬레이어즈의 성공은 이후 정통 스타일의 판타지보다는 코믹과 개그가 가미된 보다 더 라이트한 형태의 판타지 아니메들이 생산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슬레이어즈 이후 판타지는 다시 시리어스에서 코믹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다만, 이번에는 성적인 코드가 삽입된 작품이 왕왕 눈에 띄었다.



퓨전의 홍수 속에 정통 판타지를 그리워하다

타지 아니메는 로봇 장르나 마법소녀물과 같이 아니메에 있어서 하나의 장르로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시대를 거쳐오면서 몇몇 걸출한 작품들이 아니메의 일부 흐름을 판타지 아니메 쪽으로 잠시 돌린 적은 있지만, 대게는 그 생명력이 얼마 가지 못했지요. 특히 아니메에서 배경과 소재로 숱하게 사용되었으면서도 정통 스타일보다는 수많은 변주와 변화가 가해진 장르가 바로 중세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자기식으로의 개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스타일 덕분인지 일본 아니메에서 정통 판타지를 만나기란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세 판타지나 혹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코믹 장르이건 시리어스한 드라마이건, 모에물이건 간에 상관없이 자주 등장하는 편입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열풍 이후로 잠시동안 판타지 장르가 전세계(정확히 말하면 헐리우드)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던 당시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싶기도 하구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장르의 아니메들이 선보이면서 판타지 역시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보이는 듯 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모에나 개그와 같은 가벼운 성격을 가진 작품들의 영향 탓인지 큰 스케일의 작품이 나타나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곤조의 2007년 극장 아니메 '브레이브 스토리'나 지브리의 차세대 기대주(?) 미야자키 고로의 '게드전기(2007)'는 모두 흥행에 있어서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만, 획을 긋기에는 역부족이었지요. 게드전기의 경우에는 흥행에 비해 평단과 관객의 평가는 비참할 정도이기까지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판타지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요. 작품의 메인 소재라기보다는 극의 설정과 같이 서브 테마로 자주 사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로봇 아니메 또는 SF 아니메와의 결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3부인 퓨전 판타지 파트에서 좀 더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에물과 같이 최근 제작편수가 눈에 띄게 많은 장르에서도 단순 배경으로 자주 사용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퀸즈 블레이드'와 같은 노골적인 아니메에도 중세 판타지는 변형된 소재로서 등장하지요.)

하지만, 정통 판타지에 대한 흐름이 끊긴 부분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퓨전 요리와 신개념의 레시피가 많을수록 원래의 맛, 정통 맛에 대한 그리움 역시 커지는 법이 아닐까요. 일본식으로 변주된 작품들 뿐만 아니라 좀 더 정통적인 스타일에 기반한 드라마틱하고 큰 스케일의 작품도 가끔은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1부 끝. 2부에서 계속)


<참고 사이트>

[1] <원탁의 기사>(円卓の騎士物語)(1979): 불타올라라 아서(燃えろアーサー), by Kewell, Kewell's Factory about
 Something 
[2] 아리온(アリオン) 1986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ロードス島戦記, Wikipedia Japan
[4] スレイヤーズ,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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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FOCUS Films LLC.


<스탭>

◈ 감독: 쉐인 에이커
◈ 원작: 쉐인 에이커
◈ 제작: 포커스 필름


<시놉시스> 

기계문명이 극한으로 치달은 인간세상은, 자아를 갖고 폭주한 기계에 의해 전화의 불길에 휩싸인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모두 몰살당하고, 인간들이 사라진 세상은 음산하고 황량한 폐허로 변하고... 전화의 불길이 극한에 다다를 무렵, 한 과학자가 손수 만든 헝겊인형에 자신의 영혼을 나누기 시작한다. 과학자의 영혼을 나누어 받은 헝겊인형들은 생명을 부여 받고 각자의 개성을 지닌 개체로 다시 태어난다. 마지막 헝겊인형에 혼을 불어넣고 마침내 숨을 거두는 과학자. 깨어난 인형은 처음 보는 세상에 당황하게 된다. 과연 무엇을 위해 이들은 태어난 것인가. 마지막 헝겊 인형의 등에는 나인(9)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재능있는 젊은 감독의 경이롭고 창의적인 비주얼

독 쉐인 에이커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장편화한 '나인(9)'은, 2005년도 오스카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작품을 독특한 감성의 소유자 팀 버튼 감독과, '원티드'를 통해 홍콩 느와르 이상의 화려한 액션연출을 선보인 티무르 베르맘베토프가 제작을 지원하여 장편애니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난 작품입니다. 이 라인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젊은 신예감독의 독창적인 비주얼과, 괴기스럽고 동화적인 팀 버튼의 감성, 그리고 티무르 베르맘베토프의 스타일리쉬함이 가미된 멋진 작품이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실제로 트레일러로 보았던 나인(9)은 단편영화의 괴이하고 독특한 비주얼에 더하여 스케일과 다이나믹함, 그리고 디스토피아스러운 배경을 잘 살린 멋진 미술로 전세계 영화팬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지요. 

특히, 나인(9)의 세계는 그 독특함이나 기묘함에 있어서 제작자로 나선 팀 버튼의 컬러와 상당히 궁합이 잘맞는 느낌입니다. 괴기스러우면서도 동화적인 느낌을 즐겨 보여주는 독특한 감성의 소유자 팀 버튼은 자신만의 컬러가 너무나 확고하기에 타인의 작품과 어울리기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나인(9)에서 둘의 궁합만큼은 정말 훌륭하지 않나 싶군요. 실제로 팀 버튼은 쉐인 에이커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정말 그의 취향에 딱 맞는 스타일인 것 같긴 합니다.

거친 헝겊조각을 꿰메고 엮어서 만든 나인(9)의 인형들은 괴기스럽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인형과는 다른 투박하고 요상한 외모로 인해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주기도 합니다. 특히, CG의 세밀하고 차가운 질감으로 인해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데요. 이 작품은 이런 괴상한 비주얼로 인해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연령가(G)가 아닌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PG) 등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황량하게 변해버린 세상과 폐허가 된 도시, 헝겊인형들을 습격하는 각종 기계 등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갖추었을 뿐 그 외형은 성인영화에 가까운 비주얼과 형식을 취하고 있죠.

티무르 베르맘베토프가 자칫 지루하고 거북할 수 있는 이 괴상한 동화이야기에 스타일을 부여해준 것도 큰 힘이 아니었나 합니다. 특히 뮤직비디오의 화려함을 연상시키는 영상미학이 이 독특한 작품에 가미되면서 이야기는 활극 형태의 모양새를 갖춰갑니다. 원티드에서도 이미 보여주었던 긴박한 액션 시퀀스 사이 사이에 펼쳐지는 슬로비디오 모션이 이번 나인(9)에서도 등장해주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역시 티무르 감독이 조언을 해주었으리라 짐작이 되는 대목이지요. 덕분에 일부 액션 시퀀스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박진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 손만한 크기의 인형들과 기계들의 전투가 이토록 큰 스케일일지는 미쳐 몰랐다고나 할까요.

ⓒ 2009 FOCUS Films LLC.



인류멸망의 근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9개의 작은 인형들

야기는 모든 인류가 멸망한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지막 생존자인 과학자가 자신의 영혼을 헝겊인형에 나누어주고는 숨이 끊어지는 에필로그를 지나 마침내 9번째 헝겊인형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나인(9)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지요. 나인(9)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낯선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자신에게 무슨 사명이 있는지, 무슨 일이 앞으로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말이죠. 유약하지만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나인(9)의 목소리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 역할을 맡았던 일라이저 우드가 맡았습니다. 프로도 역시 평범한 호빗으로 거대한 난관을 뚫고 중간계를 세상에서 구해내게 되는데, 이런 전작의 캐릭터는 이 나인(9)과도 잘 맞는 느낌입니다. 단, 나인(9)의 경우에는 짧은 러닝타임 내에 유약한 모습을 벗어나 인류를 멸망시킨 기계와 대적해야한다는 시간 상의 제약이 따르는데요. 결국 이 러닝타임의 차이로 인해 주인공의 심경변화나 영웅적인 모습이 작품에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되고 맙니다.

이 작품은 나인(9)외에도 1번부터 8번까지의 8개의 헝겊인형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두 각자의 특색과 성격을 지닌 인형들이죠. 고지식한 리더 원(1), 진실을 따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혁신적인 2인자 투(2), 쌍동이 학자들로 귀여운 아이들을 연상시키는 쓰리(3)와 포(4), 투(2)를 따르는 소심하지만 따뜻한 기술자 파이브(5),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매번 같은 모양의 괴상한 그림만을 그리는 식스(6), 빠르고 강한 여전사 세븐(7), 힘 좋고 충직한 원(1)의 보디가드(8) 등 다채로운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상세보기

나인(9)을 구하려다 투(2)가 기계 괴물에게 끌려가면서 이야기는 마침내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원(1)의 고지식함에 투(2)를 구하기 위해 파이브(5)와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나인(9), 때마침 등장한 세븐(7)의 도움으로 투(2)를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실수로 잠들어 있던 인류멸망의 원인인 기계가 깨어납니다. 투(2)의 영혼을 흡수하는 거대한 기계, 다시 재앙은 시작되었고, 나인(9)은 세븐(7)들과 함께 자신들이 태어난 이유와 기계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기계가 깨어나면서부터 작품의 호흡은 가빠지기 시작합니다. 이제까지는 정적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화려한 CG 액션이 등장하면서 동적으로 변하게 되지요. 결국 이야기는 저 거대한 기계에 맞서 싸우는 자그마한 인형들의 사투로 귀결됩니다.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에서 절대악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지만 특이하게 생긴 작은 인형들이 그 주인공으로 나서면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창조적인 디자인과 멋진 미술은 이 색다름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지요. 굉장히 황폐한 느낌의 세상이지만 한차원 높은 비주얼로 인해 세련된 느낌마저 듭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멋진 비주얼에 비해 스토리는 밀도가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세상을 멸망시킨 거대한 기계와의 사투가 80분 남짓한 러닝타임에 모두 펼쳐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세계관도 설명해야 하고 평범한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각성할 시간도 필요한데다가 지루함을 상쇄시키기 위한 멋진 액션장면들도 들어가야 하니까요. 시리즈물로 나가거나 최소 2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제작되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도 있습니다.

ⓒ 2009 FOCUS Films LLC.



경이로운 비주얼과 평이한 줄거리 사이에서 범작으로 그친 작품

국, 이 스토리의 미흡함은 작품의 발목을 잡아 당초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작품을 완결 짓습니다. 아,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입니다.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평이하다고 느껴지지요. 경이로운 비주얼에 걸맞지 않은 너무 평범한 이야기는 작품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악재로 작용합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의 러닝타임이 좀 더 길었더라면,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거리가 첨가되었다면 이 아쉬운 감정은 놀라운 감동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 장편을 연출해본 경험이 없는 신예 감독이기에 아무래도 (걸출한 제작자들 사이에서) 휘둘린 감이 있지 않나 추측도 해보는데요. 오히려 모든 스토리를 완결 지으려는 욕심을 벌이고 구상한 얘기의 일부분만을 이야기하는 선에서 끝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납치당한 투(2)를 구출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극적으로 그를 구해내면서 그동안에 겪는 갖가지 모험들과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정도까지만 말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분명 그 재기넘치고 신선했던 원래 단편 정도의 감흥은 못주었더라도 애니메이션으로서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경이로운 비주얼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과할지는 몰라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비주얼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지요. 비록 미흡한 스토리이지만 비주얼의 가치를 완벽히 훼손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009 FOCUS Films L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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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이저 X (1976), グロイザーX / Gloizer X


ⓒ Ota Gosaku · Knack

 
<정보>

◈ 원작: 오우타 고사쿠
◈ 총감독: 타이센지 히로시
◈ 감수: 나가이 고
◈ 시리즈 구성: 안도 토요히로
◈ 캐릭터 디자인: 스즈키 타카오
◈ 작화감독: 다나카 에이지, 長谷川憲生
◈ 음악: 가와치 쿠니 (OP,ED 작곡) / 이케다 코우 (노래)
◈ 제작: Knack, 동경12채널
◈ 저작권: ⓒ Ota Gosaku · Knack
◈ 일자: 1976.07.01
◈ 장르: SF,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39화) / 전체연령가 (G)


<시놉시스>

북극에 전진기지를 갖춘 이성인 가이라 제국이 겔돈 제왕의 명에 따라 지구 침공을 계시한다. 반전파인 가이라별의 천재과학자 얀박사는 자신이 만든 공폭로봇인 그로이저 X에 딸인 리타를 태워 가이라 제국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로이저 X와 딸인 리타만이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지구로 불시착한 리타는 토비시마 박사의 민간 항공사에 의해 구조되고, 가이라 제국의 침략을 전해들은 토비시마 박사는 팀의 에이스 파일럿인 카이사카 죠를 리타와 함께 그로이저 X에 태워 가이라 제국의 침략에 맞서게 한다.


<소개>

'아스트로 강가(1972)'에 이은 Knack의 두번째 로봇 아니메. 다이나믹 프로 출신으로 나가이 고의 어시스턴트이기도 했던 오우타 코사쿠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Knack의 첫번째 로봇 아니메였던 아스트로 강가는 TV 시리즈 최초의 로봇 아니메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두 달 뒤에 방영된 나가이 고의 '마징가 Z(1972)'의 폭발적인 인기에 밀려 잊혀졌던 일화가 있다는 것. 일본판 위키에는 나가이 고가 감수를 맡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묘사되어 있는데, 오우타 코사쿠가 다이나믹 프로 출신임을 감안하면, 비공식적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을 받지 않았나 싶다. 당대 로봇 아니메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던 나가이 고였기에 제작진 측에서도 그 이름을 빌리는 것이 시청률에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에서 넣지 않았나 싶은 추측도 해볼 수 있다.

외계인이 만든 최고의 로봇이 외계인을 배신하고 지구인의 편에서 싸운다는 설정은 Knack의 이전 작인 아스트로 강가의 컨셉과 비슷하면서 동시에 나가이 고의 'UFO 로봇 그렌다이저(1975)'와도 유사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설정은 당시 아동물에서 상당히 극적인 요소를 부여하기에 자주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비행기에서 로봇으로 변신한다는 그로이저 X의 공폭(공중폭격기)로보의 개념은 UFO에서 로봇으로 분리되는 그렌다이저와도 비교되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다만, 동시기에 등장한 '초전자 로봇 콤배틀러 V(1976)'에 비하여 조악한 변신 메커니즘이나 부족한 드라마 등 여러 면에서 콤배틀러 V에 비교되면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컨셉 자체가 마징가 Z에서 이어져온 작품인지라 컴배틀러 V로 인해 높아진 아이들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던 셈이다. 어찌보면 다이나믹 프로 계열의 작품과 선라이즈 계열의 작품이 맞부딛힌 결과로 볼 수 있는데, 76년이 로봇 아니메의 트렌드가 변화하는 길목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2009년 이마가와 야스히로의 최신 마징가 시리즈 '진 마징가, 충격의 Z편(2009)'에서 기계수 중 하나로 그로이저 X가 잠시 등장하기도 하는데, 오우타 코이치와 나가이 고, 그리고 다이나믹 프로와의 관계를 알고 나면 납득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진 마징가에서 그로이저 X를 보고 깜짝 놀라신 분들 당시에 많았다고 전해진다. 눈썰미가 없는 엘로스는 눈치도 못챘지만.)

유럽에 출시된 그로이저 X DVD 커버. 나가이 고와 마징가의 유명세를 이어가기 위해 마징거 X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아차, 빼먹은 거 한가지. 그로이저 X의 남자 주인공 성우는 후루야 토오루(건담의 아무로 레이 성우)가 맡으셨다는.


<참고 사이트>

[1] グロイザーX, Wikipedia Japan
[2] Gloizer X, Wikipedia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Ota Gosaku · Knack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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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방송으로 부활하는 하얀 거인, 진가를 드러내고 

금에 와서 건담의 첫 방송이 저조했던 원인을 되짚어보면 작품의 완성도면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의 시청층에 대해서 제작진 측이 잘못 판단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싶다. 애초에 드라마틱한 설정과 복잡한 갈등관계가 자리하면서 로봇 액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아진 것은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했음이 분명하다. '우주전함 야마토(1974)' 이후에 고연령층의 아니메 팬 층이 존한다는 것을 인식한 제작진과 토미노 감독은 이들을 타깃으로 삼고 작품을 만들었지만, 문제는 로봇물의 정체성이 원래 저연령층의 전유물이었기에 방영을 시작한 건담을 보고 고연령층의 시청자들은 분명 아동용 로봇물일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방영을 거부했을 듯 싶다.

게다가 원 로봇의 시청층인 아이들은 으례 그렇듯 새로운 로봇물이구나 하고 TV 앞에 모여 앉았는데, 왠 사교성 부족하고 멋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찌질한 소년 주인공이 등장하는데다가 시도 때도 없이 로봇 조종 안하겠다고 응석을 부리고 앉았으니 매회 '합체-전투-위기-필살기-격파'를 반복해오던 당대의 로봇물과는 너무도 다른 흐름에 애시당초 채널을 돌렸을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꾸준히 보아온 일부 고연령대 시청자들과,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미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로봇물임에도 불구하고 열렬한 팬이 되어버린 소녀들은 건담의 종영과 더불어 방송국과 제작사측에 재방송을 강렬히 요청하게 된다. 첫 방영부터가 아닌 방영 중에서야 비로소 건담의 진가를 파악하게 되어 뒤늦게 시청층에 합류한 이들의 경우는 더더욱 재방송을 원했을 터이고, 오프라인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던 당시의 아니메 마니아(요즘같은 인터넷이라는 이기를 꿈도 꿀 수 없었던 당시였다)들은 입소문으로 작품의 진가를 타인에게 전파하며 앞다투어 재방송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다 죽어가던 불씨에 다시금 불이 붙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재방송의 시청층은 바로 토미노 감독과 제작진 측이 애초부터 상정하고 있던 바로 그 연령대의 시청층이었다. 제대로 된 타깃층을 항하여 전파를 탄 건담의 반응은 어떠했겠는가. 그것은 말 그대로 폭발적인 것이었다. 첫 방송 당시 한자리수 시청률에 그쳤던 건담은 첫번째 재방송에서는 10%를 넘기며 뒤늦은 인기를 증명하였고, 완전하게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은 82년도의 재방송에서는 2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80년 1월 건담의 첫방송이 종영되자마자 서둘러 2월에 '무적로보 트라이더 G7(1980)'을 방영하며, 건담의 실패를 덮어버리려 했던 선라이즈에게도 이것은 분명 예상치 못햇던 일이었을 것이다. 부진을 거듭하다가 예상된 방영횟수도 못채우고 조기종영된 이 괴작(당시의 관점에서는 괴작이었을지도 모른다)이 강렬한 후폭풍을 일으킬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은 반년 뒤의 프라모델 열풍과 맞물려 사회적인 현상으로 번지며 마침내 81년 방영된 극장판을 통해 그 진정한 시작을 알리게 된다.

동경에 위치한 반다이 본사 (출처: 위키피디아 재팬)

프라모델, 또다른 신회를 만들어내다

1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건담의 스폰서는 완구업체 크로바(클로버)였다. 당시 로봇 아니메는 완구회사와 함께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사가 아니메를 만드는 동안, 완구회사는 주역 로봇의 완구를 제작하여 작품의 방영과 함께 로봇 완구를 시장에 내놓는 형태의 시스템을 취하고 있었다. 아니메의 제작비는 스폰서인 완구업체에서 대는 것이었으며, 그에 대한 투자 수익은 판권을 독점한 완구업체의 완구판매를 통해 이루어지는 형태인 것이다. 지금과 같이 DVD부터 각종 캐릭터 상품과 코믹스, 소설과 같은 미디어 믹스의 전개로 상품 루트가 다변화된 것과는 달리 당시의 상품화는 완구업체에 집중되는 단선적인 루트를 갖고 있었고, 때문에 완구업체로서는 시청률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완구의 판매가 중요했다. 실제로 시청률은 저조했으되 완구판매에서는 기대이상의 수익을 올린 작품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건담은 시청률에도, 완구판매도 모두 실패한 비운의 작품이었다. 콤배틀러 V 이후 정교한 변신 합체 완구로 인해 눈높이가 높아진 아이들에게 별다른 메커니즘이 내장되지 않은 건담 완구는 밋밋하기 그지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끼워넣은 코어파이터 합체 메커니즘 역시 이전까지의 변신합체 로봇에 비하면 턱없이 심심한 것이었다. 비록 G 아머 시스템에 DX 합체세트까지 등장하면서 조금씩 부진을 만회하기는 했지만, 스폰서 입장에서 건담 완구는 저주에 가까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작품이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던 중, 선라이즈는 완구판매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건담을 완구가 아닌 프라모델로서 머천다이징하는 방안을 크로바측에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제안은 크로바에 의해 간단히 거절당하고 만다. 상품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모델을 다른 제품으로 상용화한다는 것이 수지가 맞지않는 비즈니스라고 판단한 듯 싶은데, 이것이 미래의 비즈니스 명운을 좌지우지할 중대한 선택이었음을 그 때의 크로바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건담의 에이전시 업체였던 創通(창통, 일본어로 소츄) 에이전시는 선라이즈와 함께 건담의 저작권을 갖고 있었는데, 선라이즈의 이 사업안을 들고 여러 프라모델 업체에 상품화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로봇완구는 프라모델과는 다른 타깃 시장의 제품으로, 프라모델이 어린이들이 아닌 청소년 이상의 고연령층을 위한 상품이었고, 로봇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상품화 역시 당연히 완구형태로 생각되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던 건담이기에 상품화 역시 어쩌면 프라모델이 더 적합했을지도 모른다. 뒤늦게서야 선라이즈는 그 사실을 눈치챘던 것일까. 

여러 업체와의 미팅 끝에 마침내 최종 사업자는 우주전함 야마토를 프라모델로 상품화하면서 이제 조금씩 프라모델 업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프라모델 업체 반다이 모형에게로 낙찰되었다. 그리고 건담의 종영 후 반년 정도 지난 후에 마침내 첫번째 건담 프라모델이 시장에 나오게 되니, 재방송으로 인한 뒤늦은 인기와 맞물려 프라모델, 아니 건프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당대 굴지의 완구회사 크로바와 후발주자 반다이의 운명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크로바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선라이즈 작품의 로봇들을 완구화하게 되지만, 83년 성전사 단바인의 완구를 끝으로 파산하게 된다)

건담의 뒤늦은 인기점화와 프라모델의 붐 뒤에는 야마토 이후 활성화되기 시작한 아니메 전문잡지들과 일부 마니아들의 힘을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월간 OUT에서 출간한 무크지 '건담 센츄리'는 건담 월드에 대대한 세세한 소개와 스탭들과의 인터뷰, 거기에 아니메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은 각종 설정에 대한 설득력있는 설명으로 마니아들에게 커다란 호평을 얻었으니 그 디테일한 설정은 후일 선라이즈에서조차 이를 인정하고 인용할 정도로 치밀한 것이었다.(모빌슈트의 자세제어 시스템인 AMBAC과 같은 개념이 건담 센츄리에서 등장하게 된다) 건담 센츄리의 발간과 함께 건담의 세계관은 아니메에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설정과 설명이 가해지면서 더더욱 풍성해지고 다양하게 변한다.

거기에 프라모델 라인업의 다양화를 위해 기획된 MSV(모빌슈츠 배리에이션)는 작품에 등장하지 않은 프로토타입의 MS들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세세한 설정과 함께 MS 존재의 타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통해 작품의 종영 이후에도 건담의 인기를 (작품과는 별개로) 관성적으로 이어가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MSV를 기반으로 추가 건프라들이 제작되면서 건프라의 생명력은 연장되었고, 팬들은 건담에서 못다한 뒷 이야기의 조각들을 MSV에서 찾아내며 더더욱 건담의 세계에 심취하게 된다. 특히, 일부 파워 모델러들의 경우에는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어 프라모델을 개조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능동적인 참여는 건담 월드를 더더욱 풍성하고 복잡하며, 거대하게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 SUNRISE · SOTSU Agency


아니메 신세기 선언, 마침내 시작된 아니메 세컨드 임팩트

80년에 시작된 엄청난 건담의 인기 후폭풍은 아니메와 아니메 관련 산업 전반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파급력이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아니메의 시청층이 아이들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만큼 성숙하고 치밀한 작품관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 SF 로봇 아니메의 머천다이징 방식이 로봇 완구에만 있지 않다는 여러가지 숙제들이 관계자들에게 주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토미노 감독 이하 스탭진들이 애초부터 상업적인 고려없이 오로지 제대로 된 SF 아니메를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임했던 작품이 이제와서는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케이스와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시키는 아니메가 되었다는 점이다.

마침내 81년 3월 14일(하얀색의 건담을 위한 것인지 날짜도 화이트데이), TV 시리즈의 초반부를 재편집한 극장판 1부, '기동전사 건담'이 개봉되었다. 특히, 이 극장판의 의의는 이보다 앞선 2월 22일 극장 개봉을 기념하여 개최된 '애니메이션 신세기 선언'에 있었는데, 당시 이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관중의 수는 약 1만 5천명으로, 단순 이벤트 수준의 행사에 이토록 많은 인원이 결집한 것은 마치 5년여전 야마토 극장판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 앞에서 길게 줄을 섰던 당시의 상황과 유사한 것이었다. 신세기 선언은 또한 건담의 테마였던 뉴타입처럼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의미하고 있었다. 즉, 당대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그들만의 문화와 아이콘을 갖고 있으며, 그 중의 하나가 아이들의 전유물일 것만 같은 아니메였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건담이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자리였던 것이다.

극장판 3부작은 대성공이었다. 특히 마지막 3부인 해후의 우주편은 TV 시리즈 후반기에 급작스런 병으로 일선에서 떠났던 불세출의 작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돌아와 거의 모든 컷을 다시금 수정하여 신작화로 그려냄으로써 TV 시리즈를 감상하고 극장을 찾았던 수많은 건담 팬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으며, 극장 아니메의 대표적인 캐쉬 카우라 할 수 있는 도라에몽 극장판 시리즈를 뛰어 넘어 82년도 아니메 흥행랭킹 1위, 전체 극장 흥행랭킹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아니메 신세기 선언을 통해 그 존재를 보여준 거대한 팬층(마니아, 혹은 좀더 일본적으로 오타쿠)의 등장은 이후의 아니메가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프라모델을 위시한 다양한 아니메 비즈니스 수단의 등장과 함께 우주전함 야마토 이후 일본 아니메 史를 송두리채 흔들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었다. 후일 역시 90년대 아니메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에서 등장한 거대한 지각변동을 의미하는 임팩트(Impact)라는 현상은 야마토와 에반게리온과 더불어 바로 건담에게 부여하면 가장 적합한 호칭일지도 모른다. 아니메 세컨드 임팩트, 그렇다. 건담에 의해 아니메는 두번째 변혁을 맞이하고 있었다.

ⓒ SUNRISE · SOTSU Agency


에필로그 - 아직도 계속되는 건담의 신화

약, 건담이 재방송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혁신적인 모습과 깊이있는 내러티브에도 불구하고 첫방송에 실패한 이 작품이 그대로 묻혔다면, 아마도 로봇 아니메의 성장은 지금보다는 더디었을 것이다. 로봇물은 여전히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내용으로 제작되고, 80년대 SF 아니메의 폭발적인 성장은 분명히 한템포가 더 늦었을지도 모른다. 불멸의 리얼로봇 아니메로 젊은 아니메 세대가 애니메이터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조차 건담이 없었으면 태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르며, 마크로스의 소식을 듣고 대학을 중퇴하고 상경한 안노 히데아키 이하 가이낙스의 핵심인물들도 역시 애니메이터가 되지 않았거나 늦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토미노 감독은 '전설거신 이데온(1980)'의 제작을 포기했을 테고, 그로 인해 90년대 아니메의 또다른 부흥을 일으켰던 에반게리온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건프라는 상품화되지 못했을테고, 반다이는 지금처럼 거대한 회사로 성장하지 못한체 그저 그런 회사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건담이 모든 아니메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건담이 사회적 현상으로 떠오르지 못했더라면 아니메는 그만큼 지금보다는 퇴보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작품 자체적인 가치와 의의를 넘어서 건담이라는 작품이 후대 아니메와 관련 비즈니스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은 일개 작품의 레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반면, 건담이 가져온 혁신은 또다른 편향적인 시각과 가치관을 가져오게 된다. 먼저 SF, 그것도 로봇을 중심으로 80년대 아니메가 과도하게 방향 선회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SF를 향한 아니메의 일관된 사랑으로 인해 수많은 걸작 아니메가 탄생한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었지만, 소재의 다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체 SF로 고정된 시각은 결국, 소재고갈과 함께 훗날 아니메의 쇠퇴를 가속화하게 된다. 물론, 중간중간 여러가지 다양한 소재도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건담으로 인해 시작된 과열된 SF 로봇 아니메의 열기는 이러한 의미 있는 시도들을 크게 부각시키지는 못했다.

프라모델이라는 새로운 상품의 등장으로 인해 건담의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것 역시 내재된 위험요소였다. 분명, 당시의 시점에서는 새롭고 참신한 아이템이었던 로봇 프라모델은 이후 건담 외에는 큰 히트를 일으킬만한 원동력을 찾지 못한 체 건담에게 지나치리만큼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반다이가 건담의 속편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물론, 현재의 반다이는 다양한 수익 다변화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건담의 의존도를 많이 줄였긴 하지만, 80년대 당시 건담은 반다이에게 있어서 하나뿐인 젖줄이었다.)

건담에 지나치리만큼 심취해버린 오타쿠들 역시 건담의 지루한 재생산에 큰 일조를 하게 된다. 특히, 건담에 대한 과도한 애정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에 입맛에 맞는 이야기 전개를 제작진 측에 요구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그들만의 건담 월드를 만들고 싶어했다. 혁신과 개방의 개념으로 시작했던 건담은 서서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모했고, 스폰서와 팬들의 과도한 간섭에 의해 크리에이터인 토미노 감독이 자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영광과 오욕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건담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상업적인 사정과 과도한 팬덤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우주세기에 안주하지 않은 체 건담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간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창조자라 할 수 있는 토미노 감독의 손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젊은 세대들에 의해 새로운 항해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오한 드라마를 버리고 미소녀들이 잔뜩 등장하는 모에 아니메로 변모했다 하더라도, 로봇 아니메를 정통 SF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 했던 성숙한 시도를 져버리고 슈퍼로봇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변화하고 있는 아니메 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변모하고 있는 건담은 신인류라 불리는 뉴타입처럼 진화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혁신의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훗날 건담의 시계가 멈춘다고 하더라도 그 오랜 시간동안의 변혁의 과정을 통해 만화영화는 새로운 틀을 구축하고 발전하리라 기원해본다.


('기동전사 건담(3부) - 부활하는 하얀 거인. 발동, 아니메 세컨드 임팩트!' 끝)

ⓒ SUNRISE · SOTSU Agency


<참고 사이트>

[1] 機動戦士ガンダム, Wikipedia Japan
[2] モビルスーツバリエーション, Wikipedia Japan
[3] ガンダムセンチュリー,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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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자로보 콤배틀러 V (1976), 超電磁ロボ コンバトラーV / Combattler V


ⓒ TOEI · TV ASAHI


<정보>

◈ 원안: 얏테 사부로 (도에이 영상본부 TV 프로듀서 공동필명)
◈ 감독: 나가하마 타다오
◈ 각본: 츠지 마사키, 후지카와 케이스케 外
◈ 스토리보드: 야스히코 요시카즈, 이시구로 노보루, 타카하시 료스케, 토미노 요시유키 外
◈ 캐릭터 디자인: 야스히코 요시카즈
◈ 메카닉 디자인: 스튜디오 누에 (미야타케 카즈타카)
◈ 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 外
◈ 미술감독: 미야노 타카시
◈ 오프닝 애니메이션: 카나다 요시노리
◈ 음악/주제가: 쯔즈이 히로시 / 미즈키 이치로 (주제가)
◈ 제작: 도에이 동화, TV 아사히 (방송), 선라이즈, 스튜디오 누에, 스튜디오 딘, 토후쿠 신사 (제작협력)
◈ 저작권: ⓒ TOEI · TV ASAHI
◈ 일자: 1976.04.17
◈ 장르: SF, 드라마, 로봇, 액션
◈ 구분/등급: TVA (54화) / 전연령가 (G)


<시놉시스>

오랜 세월 동안 지구의 지하에 터전을 잡고 지구 정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캠벨 성인들, 이들의 존재를 눈치 챈 난바라 박사는 캠벨 성인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5대의 메카가 합체하여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는 콤배틀러 V를 완성하고 이를 조정할 5명의 용사를 일본 각지에서 선출한다. 팀내 리더로 스피드광이자 열혈소년인 아오이 효마, 냉철한 사격의 달인인 나니와 쥬죠, 여유로운 성격의 유도 달인인 니시카와 다이사쿠, 천재소년으로 초등학생의 나이에 미국 명문대에 재학중인 키타 코스케, 그리고 난바라 박사의 손녀로 박학다식하고 다재다능한 소녀 난바라 치즈루까지... 마침내 캠벨 성인들의 지구 침공이 시작되고, 콤배틀러 팀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소개>

1976년도의 도에이의 로봇 애니메이션 스케줄은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대공마룡 가이킹(1976)'이 후지 TV에서 4월 1일 방영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초전자로보 콤배틀러 V(1976)'가 불과 2주 정도 후에 아사히 TV를 통해 방영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나자 '마그네로보 가킨(1976)'이 아사히 TV에서 일요일에 방영을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지금 소개할 콤배틀러 V는 슈퍼로봇 아니메의 역사를 새로 썼으며, 도에이의 로봇 전성기의 정점을 찍고 동시에 도에이 로봇 아니메 몰락의 전조가 되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기억될만한 걸작 로봇 아니메이다.

애초에 이 작품은 도에이 애니메이션이 아닌 도에이 본사 측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원작을 맡은 야츠데 사부로는 특정인물이 아닌 도에이 영상본부의 PD들의 공동필명으로, 이들이 로봇 아니메를 기획하여 도에이 애니메이션측으로 위탁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도에이는 가이킹을 제작하고 있던 와중이었기에 도에이 본사의 기획은 결국 외주 제작 형태로 처리하는 것으로 내부결정이 난 듯 싶다. 그리고 여기서 슈퍼로봇 제작의 판도를 바꾸게 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로봇 아니메의 제작에 있어서 압도적인 파워를 갖고 있던 도에이 외에 아니메를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으로는 나가이 고와 다이나믹 프로가 있었으나 이들은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창작집단으로 아니메 제작능력이 전무했었다. 그 외에 토호쿠 신사 측에서 75년 소에이샤라는 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통해서 '용자 라이딘(1975)'을 제작한 전례가 있었을 뿐이다. (토호쿠 신사는 76년 당시 에이켄이라는 제작사와 함께 'UFO 로봇 다이아포론'을 제작, 방영중에 있었다.) 용자 라이딘은 시청률에서도 생각 이상의 선전을 보였던 바, 외주제작은 결국 이 용자 라이딘 팀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라이딘의 속편을 기획하고 있던 감독 나가하마 타다오 이하 쇼에이샤의 제작팀들은 급거 차기 프로젝트를 접고 바로 도에이의 외주제작건에 돌입하게 된다. 시간이 무척 촉박했던 관계로 제작진은 상당한 고충을 겪었다고 전해지지만, 스폰서의 요청을 십분 반영한 완벽한 합체로봇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라이딘에서 그 실력을 선보인 작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를 캐릭터 디자인으로 고용하여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창조해냈으며, 드라마에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 나가하마 타다오가 총지휘를 맡은 콤배틀러 V는 기대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내며 일약 로봇 아니메의 초인기작으로 탄생하게 된다.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한차원 일보진전한 합체 시스템은 그때까지의 어떤 로봇보다도 현실적인 합체씬을 선보이며, 완구와의 싱크로를 100% 이룩해내었다. 게다가 제작팀에 고안해낸 각종 무기 시스템은 로켓펀치나 미사일, 레이저 광선에 한정된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신개념이었다. 갓챠맨의 5인 전대를 매력적으로 이식한 캐릭터 설정, 라이딘부터 시작된 미형의 악역 캐릭터의 등장과 악역치고는 너무도 드라마틱한 설정의 부여, 단순한 로봇 아니메 이상의 에피소드와 사연이 실린, 실로 70년대 로봇 아니메의 궁극의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토미노 요시유키, 야스히코 요시카즈, 이시구로 노보루, 타카하시 료스케 등으로 이루어지는 연출가 집단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이 모두 후일 리얼로봇 아니메의 거장들이 된다는 점에서도 콤배틀러 V의 완성도는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동시에 이 정도의 인력들이 도에이가 아닌 소에이샤에 몰려 있다는 것은 훗날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다이나믹 프로의 기획력과 도에이의 제작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도에이의 로봇 천하를 끝낼 새로운 뉴페이스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 TOEI · TV ASAHI


☞ 콤배틀러 V의 괜찮은 리뷰 보러가기: <초전자로보 콤바트라 V>(1976) 낭만로봇 시리즈, 서장을 장식하다 by 키웰
☞ 콤배틀러 V의 괜찮은 리뷰 하나 더 보러가기: 아니메 집중분석 21 [초전자로보 콤바트라 V] by 바이칸


<참고 사이트>

[1] Cho Denji Robo Combattler V (TV), Anime News Network
[2] 超電磁ロボ コン・バトラーV, Wikipedia Japan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TOEI · TV ASAHI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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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 AK Communication에서 증정받은 서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 2010 Tony TAKEZAKI / ⓒ SOTSU · SUNRISE / ⓒ 2010 AK 커뮤니케이션즈 (한국어판)

국어판 단행본으로 발매되면서 국내 건담 팬들에게도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 토니 타게자키의 건담 패러디 코믹스, '토니 타게자키의 건담만화 III'이 2010년 8월 30일 출시되었습니다.

☞ 토니 타케자키의 건담만화, 우주세기의 영웅들의 숨겨진 비화(?)를 공개한다! (클릭)

이미 1편 발간시 언급했지만,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그림체를 완벽히 소화해낸 토니 타케자키의 그림체로 인해 패러디 만화이면서도 마치 건담의 사이드 스토리인냥 몰입도가 좋은 것이 토니 타케자키 만화의 장점입니다. 거기에 연방과 지온의 등장인물들이 기상천외하고 엽기적인 개그를 선보이면서, 그 재미를 더하고 있지요.

이번 편은 개인적으로 1편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재미와 구성으로 더 재미있게 본 느낌입니다. 왠지 토니씨가 연재를 하면서 개그감각이 늘어나는 듯 싶군요. 건프라 사진컷까지 동원하며 많은 컬러 페이지를 삽입했던 2편에 비하면 조금 심심해보일지도 모르지만, 1편보다는 훨씬 많은 3개의 에피소드가 컬러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페이지수는 2편과 비슷하고 1편에 비해서는 얇은 160페이지 정도의 분량입니다만, 개제된 에피소드가 24화에 달하여 19화가 실린 1편이나 16화가 실린 2편에 비해 내용은 더 풍성한 느낌입니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살펴보면 먼저 제1화 장미와 황야와 오뎃사의 경우에는 퍼스트 건담에서 엑스트라로 등장했던 한 미소년 병사를 모티브로 하여 그로 인해 화이트베이스의 모든 인물들과 심지어 침투한 란 바랄 이하 지온군 병사, 거기에 검은 삼연성과 마쿠베 소령에 레빌장군까지 모두 미소년가 미중년으로 변모하는 어이없는 시츄에이션을 선보이고 있는데, 마치 모두 미소년 미소녀들만 등장하는 요즘 아니메의 모습과 비슷하여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 2010 Tony TAKEZAKI / ⓒ SOTSU · SUNRISE / ⓒ 2010 AK 커뮤니케이션즈 (한국어판)

모든 등장인물이 꽃미남 꽃중년인 건담은 어떤 느낌일까? 시드나 더블오를 보라.

제2화인 프라우 보우의 야망 편에서는 아무로의 소꿉친구로 실제 건담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프라우 보우가 아무로를 대신하여 주인공이 되겠다는 망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변신 마법소녀처럼 속옷차림에서 연방군 군복으로 갈아입고, 여승무원들은 모두 바지를 입지 않은 맨다리로 다니며(앗싸아!), 타이트한 파일럿 슈트 안에는 올누드 차림으로, MS 발진시 느껴지는 G에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고, MS가 부서지면 파일럿 슈트도 같이 찢어지는 등 갖가지 응큼한 설정 등이 등장합니다. 이조차도 요즘 아니메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여러가지 음흉한 장면들과 비교되는 느낌이군요. (의도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이런 설정들은 아니메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들이긴 합니다)

ⓒ 2010 Tony TAKEZAKI / ⓒ SOTSU · SUNRISE / ⓒ 2010 AK 커뮤니케이션즈 (한국어판)

뭐라뭐라 했지만, 이런 건담은 한번쯤 보고 싶... 긁적긁적.

토니 타케자키의 건담만화는 일단 이것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색다른 웃음과 마니악한 재미를 선사해 준 작품으로 건담 팬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듯 싶군요. 하지만, 말 그대로 건담 팬들만이 알 수 있는 시츄에이션 개그들, 특히 퍼스트 건담의 장면장면들 패러디한 에피소드가 대부분인지라 퍼스트 건담의 내용을 모르는 분들에게는 웃음 포인트를 잡기가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퍼스트 건담을 아신다면, 이 작품은 그야말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겁니다.

ⓒ 2010 Tony TAKEZAKI / ⓒ SOTSU · SUNRISE / ⓒ 2010 AK 커뮤니케이션즈 (한국어판)

우리는 이런 세이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0 Tony TAKEZAKI / ⓒ SOTSU · SUNRISE / ⓒ 2010 AK 커뮤니케이션즈 (한국어판)에게 있습니다. 이미지 스캔시 한국어판 저작권자인 AK 커뮤니케이션즈와 협의 하에 스캔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토니 타케자키의 건담만화 3 - 8점
토니 타케자키 글 그림, 김정규 옮김/에이케이(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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