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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야마 켄지의 사이보그 009가 기대되는 이유

ⓒ Production I.G / ⓒ ISHIMORI PRODUCTION INC


년 이맘때쯤 2010 CEATEC Japana 쇼의 파나소닉 부스에서 오시이 마모루의 사이보그 009 프로모션 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오시이 감독의 사이보그 009를 위한 일종의 프로모션 영상이 아닌가하는 기대를 갖기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 파나소닉 프로모션용 영상에 불과했었는데요.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사이보그 009의 최신 시리즈가 아니메 팬들에게 전모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공각기동대 SAC' TV 시리즈와 '정령의 수호자(2007)', '동쪽의 에덴(2009)' 시리즈를 통해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카미야마 켄지(神山健治) 감독의 '009 RE: CYBORG(2012)'가 바로 그것.

☞ 부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사이보그 009 3D (바로가기)

2012년 가을에 극장 아니메로 개봉 예정인 신작 사이보그 009는 2001년 TV 시리즈로 제작된 '사이보그 009 The Cyborg Soldier(2001)' 이후로 11년만의 작품이며, 동시에 '사이보그 009 초은하전설(1980)' 이후로는 32년만의 사이보그 009 시리즈의 극장 아니메가 되겠습니다. 일본 히어로물과 전대물의 방향성을 제시한 이 작품이 세월을 뛰어넘어 새로운 감성으로 리메이크 되는 모습은 올드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벅찬 감동과 추억을 느끼게 하는 기회가 될 듯 싶군요.

☞ 만화영화 연대기: 사이보그 009 시리즈 (1966~2001) (바로가기)

뭐랄까,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 시리즈를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뉘앙스로 재해석했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1995)'와 달리, 범죄수사물과 블레이드 런너 스타일의 싸이버펑크 장르를 적절히 혼합하여 인상적인 성인용 엔터테인먼트 물로 완벽하게 해석해내었던 카미야마 켄지의 감성이 고전적인 히어로물로서의 정체성이 깊이 배어있는 이번 사이보그 009의 리메이크에서도 크게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고 한다면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요. 그만큼, 켄지 감독에게 거는 기대는 개인적으로 무척 큰 편입니다. 공각기동대 TV 시리즈에서부터 정령의 수호자, 동쪽의 에덴에 이르기까지 켄지 감독은 항상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와 엔터테인먼트의 절묘한 앙상블...이라고 감히 이야기 하고 싶군요.

그렇다면, 이번 사이보그 009에서도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카미야마 켄지만의 스타일, 즉 스토리가 확실히 살아있는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 물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에 저는 긍정적인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공각기동대와 정령의 수호자를 지나 동쪽의 에덴에서 그는 연출가로서의 자질 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질도 범상치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의 (스토리 텔러로서의) 첫번째 도전이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기에 이번 새로운 사이보그 009의 이야기 역시 기대를 가질 수 밖에 없군요. 게다가 인간과 로봇의 경계선에 위치한 사이보그라는 설정은 그가 일류 연출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공각기동대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즉, 이번 사이보그 009는 원작자인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창안해낸 사이보그의 정체성에 켄지 감독이 경험했던 공각기동대의 전뇌화된 사이보그의 개념이 조합된 모습을 취할 것 같은 예감도 든다 하겠습니다. 그가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익숙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창조작업이라면 좀 더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할 법하다는 추측이 드는군요. 

☞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 Production I.G / ⓒ ISHIMORI PRODUCTION INC


이번 작품의 스탭은 그의 전작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요. 우선 캐릭터 디자인은 정령의 수호자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아소 가토우(麻生我等)가 참여하고 있으며, '강철의 연금술사 극장판(2005)'에서 3D 감독을, 그리고,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 시리즈에서 CGI 감독과, CG 감수를 맡았으며, 최신작 '타이거 & 버니(2011)'에서 CG를 맡았던 CG 전문회사 산지겐(삼차원) 출신의 스즈키 다이스케(鈴木大輔)가 작화감독을 맡아 이전과는 다른 켄지 스타일의 CG 아니메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확실히 예고편 영상으로 본 이번 사이보그 009는 켄지 감독의 작품에서 익히 볼 수 있는 극화풍의 캐릭터에 툰 쉐이딩 기법을 연상시키는 CG와 셀 애니메이션의 조화로 인해 기존의 아니메와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타케다 유스케(미술감독), 카와이 켄지(음악 담당) 등 켄지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인물들이 그 뒤를 받쳐주고 있어 비주얼에서만큼은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다만, 꽤나 묵직한 스타일의 실사영화에 가까운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켄지 감독의 화법이 캐주얼한 아니메 팬들에게는 어떤식으로 다가올지가 관건이라 하겠으며, 동시에 그만의 해석으로 전혀 새롭게 그려진 사이보그 009가 올드팬들에게도 어떤 형태로 받아들여질지는 본 작품의 상업적 성공을 좌우하는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동쪽의 에덴의 경우에는 우미노 치카의 샤방샤방한(?) 캐릭터로 인해 켄지 감독의 무거운 화법이 다소 상쇄된 부분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캐릭터에서도 그러한 타협점을 찾기가 힘들어 보이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극화풍의 캐릭터가 나름 맘에 드는 편입니다만, 원작의 사이보그들의 매력을 중요시 하는 분들에게는 과연 잘 먹힐까 궁금한 부분도 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불고 있는 히어로 코믹스의 인기에 못지않게 일본 아니메도 작금의 이슈는 히어로 물인 듯 합니다. 선라이즈는 '타이거 & 버니'와 '세이크리드 세븐'으로 히어로 아니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본즈 또한 '히어로맨'에 이어 '토와노 쿠온'을 선보이며, 그들만의 히어로 아니메를 만들어 나가고 있죠. 여기에 전통의 제작사 매드하우스는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을 아니메 식으로 재해석한 '울버린', '엑스맨', '블레이드' 등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 프로덕션 I.G까지 사이보그 009를 리메이크하여 가세하게 되는군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작금의 비주얼 엔터테인먼트 이슈는 슈퍼 히어로가 아닌가 합니다.

ⓒ Production I.G / ⓒ ISHIMORI PRODUCTION INC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Production I.G / ⓒ ISHIMORI PRODUCTION INC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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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경찰 패트레이버 Early Days (1988),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 Patlabor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정보>

◈ 원작: 헤드기어, 유키 마사미(ゆうきまさみ)
◈ 감독: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 6화까지 / 요시나가 나오유키(吉永尚之) - 7화
◈ 각본: 이토 카즈노리(伊藤和典)
◈ 콘티/연출: 오시이 마모루 / 나카무라 류타로(中村隆太郎), 사와이 코지(澤井幸次), 이타노 이치로(板野一郎)
◈ 캐릭터 디자인: 타카다 아케미(高田明美)
◈ 메카닉 디자인: 이즈부치 유타카(出渕裕)
◈ 작화감독: 키세 카즈치카(黄瀬和哉), 와다 타쿠야(和田卓也), 다카하시 나오토(高橋直人)
◈ 미술감독: 오구라 히로마사(小倉宏昌)
◈ 음악/노래: 가와이 켄지(川井憲次) / 카사하라 히로코(笠原弘子)
◈ 제작사: 스튜디오 딘
◈ 저작권: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일자: 1988.04.25 ~ 1989.06.25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OVA(7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시놉시스>

하이퍼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수많은 분야에 진출한 범용 인간형 기계 레이버(Labor). 하지만 그것은 레이버 범죄라 불리는 새로운 사회적 위협을 만들어 내었다. 계속되는 레이버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시청은 산하에 특수차량 2과를 창설하게 된다. 통칭 특차 2과로 불리는 패트레이버 중대, 패트레이버의 탄생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창설된 특차 2과는 경시청 내부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단 세 대의 고물 레이버만이 지급된 형식상의 조직으로, 경시청 내부에서도 따돌림을 받는 허울뿐인 조직이기도 했다.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3개월 째, 마침내 최신형 레이버 3대가 특차 2과에 지급되기에 이른다. 이와 동시에 이 패트레이버의 운용을 위한 풋내기 요원들이 특차 2과에 배속되는데... (줄거리 서두는 OVA 프롤로그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


<소개>

'기동전사 건담(1979)'을 시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얼로봇이 87년 사실상의 종언을 고한 직후 등장한, 어찌보면 이제까지의 거대로봇 아니메 중 가장 현실적인 진짜 리얼로봇물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오시이 마모루를 위시한 창작집단 헤드기어의 첫 작품이자 헤드기어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며, 동시에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랐던 오시이 마모루를 기사회생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로봇물이면서도 프라모델이나 완구 업체를 스폰서로 삼지 않고 미디어 믹스적인 비즈니스 전개를 취하여 로봇물 중 거의 유일하게 스폰서의 입김에 놀아나지(?) 않은 작품이 바로 이 작품 '기동경찰 패트레이버(1988)'이다.

보통 TV 시리즈로 등장하여 인기를 끌면 극장 아니메가 제작되고, 이후 후속편이나 스핀오프 형태의 이야기가 OVA로 제작되는 것이 거의 관행이던 당시의 아니메 제작 시스템과는 달리, OVA로 등장하여 인기를 얻은 후, 극장 아니메가 제작되고 TV 시리즈가 제작되는 보편적인 방식을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역시 특이하다 할 수 있다. 여러 면에서 패트레이버가 당대의 로봇물과는 다른 출발점과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회사원에서 전업 만화가로 전향한 유키 마사미가 친한 친구들과 설정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하던 와중 '바이돌'이라는 기획에서 인간형 로봇 레이버가 등장하게 된 것이 패트레이버의 시작이다.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가는 과정에서 몇년 뒤 건담의 메카닉 디자이너로 유명해지는 이즈부치 유타카가 가세하고, '시끌별 녀석들(1981)'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토 카즈노리가 합류하면서 초기의 아이디어는 점차 애니메이션을 위한 기획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여기에 보다 애니메이션에 알맞는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시끌별 녀석들과 '마법천사 크리미 마미(1983)', 그리고 '변덕쟁이 오렌지로드(1987)'를 거쳐 80년대 최고의 캐릭터 디자이너 중 한명으로 성장한 타카다 아케미가 참가하게 된다. 여기에 오시이 마모루까지 가세하면서 창작집단 '헤드기어'가 최초로 결성된다.

오시이 마모루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이 기획에 동참하게 된다. 당시 그는 '달로스(1983)'와 '시끌별 녀석들 2 뷰티풀 드리머(1984)', '천사의 알(1985)'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면서 입지가 많이 좁아진 상황으로, 일감이 거의 없어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이 패트레이버는 오시이에게 있어서 기사회생의 기회이자 터닝포인트 였던 셈이다. 다만 기획이 어느 정도 잡힌 후에 참여한 본 작품에 오시이가 100% 만족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지며, 그중 주역 메카인 98식 잉그램의 경우에는, 슈퍼로봇에서 이어져온 인간형 로봇의 컨셉이라는 점에서 몹시나 언짢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디자이너인 이즈부치를 '메카 음치'라고 깔아내릴 정도.) 사실적인 로봇을 그리는 작품에서 인간형 로봇은 비현실적이다라는 것을 오시이는 주장한 셈인데, 결국 본 작품에는 잉그램과 같은 인간형 레이버 외에 상당수의 레이버가 오시이의 뜻에 따라 산업기계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등장하게 된다.

오프닝의 서두에서 펼쳐지는 잉그램의 놀라운 액션장면을 보고 본 작품에 빠져든 로봇 마니아들도 많았는데, 사실 오프닝의 컷은 거의 떡밥 수준으로 볼 수 있다. 본편의 전개는 로봇들의 강렬한 메카 액션과는 거리가 먼 시트콤 수준의 코미디와 드라마가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이제까지 등장한 로봇 아니메 중 가장 평범하고 소박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코미디 영화 '폴리스 아카데미'의 인물 설정을 모티브로 삼고 있기에 작품의 주무대이자 주인공들이 소속된 특차 2과는 개성이 강한 개그 캐릭터들로 넘실거린다. 다만, 빵 터지는 강한 개그보다는 전체적으로 잔잔한 시트콤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는 오시이표 개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개그에서조차 느린 호흡을 자랑하는 오시이의 진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리얼로봇이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패트레이버는 여타의 리얼로봇에 비해 태생이나 성격이 다른 별개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다. 거대한 세력과 세력간의 전쟁을 테마로 삼았던 여타의 로봇 아니메와는 달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부터 테러 사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범죄를 해결하는 범죄수사물에 가까우며, 주인공들 또한 천재 파일럿이나 고뇌하는 주인공이 아닌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경찰 공무원들이라는 점이 기존의 로봇물과는 다르다 하겠다. 시대 배경, 장소, 생활방식 등 모든 면에서 작품이 만들어졌던 80년대를 연상시키는데, 그저 6~8미터의 인간형 로봇이 등장한다는 것만이 다를 뿐 이러한 익숙한 배경과 평범한 이야기 전개는 패트레이버를 다른 로봇 아니메와는 다른 성격의 리얼로봇물로 그려주고 있다.

로봇의 활약이 거의 없는 독특한 형식의 로봇물임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기대이상이었다. 애초에 6부작으로 기획했던 OVA는 이후 1편이 더 연장되었으며 연출은 오시이 마모루가 아닌 시끌별 녀석들에서 콘티와 연출을 맡았던 요시나가 나오유키가 맡게 된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키사하라 히로코의 주제가 '미래파 Lover'는 일본 아이돌 여가수들의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싫어하던 당시의 엘로스에게 마크로스의 노래들과 더불어 그 편견을 날려준 곡으로, 톡톡 튀는 멜로디와 상큼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곡이기도 하다. OVA 2기와 구분하기 위해 나중에 출시되는 영상 소프트에는 'Early Days'라는 부제가 붙는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the Movie (1989) 


ⓒ HEADGEAR · EMOTION / TFC


<정보>

◈ 감독: 오시이 마모루
◈ 각본: 이토 카즈노리
◈ 캐릭터 디자인: 타카다 아케미
◈ 메카닉 디자인: 이즈부치 유타카 
◈ 디자인 협력: 카와모리 쇼지(河森正治), 사야마 요시노리(佐山善則), 이토 타케히코(伊東岳彦)
◈ 작화감독: 키세 카즈치카
◈ 미술감독: 오구라 히로마사
◈ 음악: 가와이 켄지
◈ 기획/프로듀서: 헤드기어 / 우노사와 신(鵜之沢伸), 마키 타로(真木太郎)
◈ 제작사: 스튜디오 딘
◈ 저작권: ⓒ HEADGEAR · EMOTION / TFC
◈ 일자: 1989.07.15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극장판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한 레이버의 폭주를 다룬 패트레이버의 첫 극장판 아니메. 키세 카즈치카의 현실적인 극화체풍의 작화는 극장판에 와서 더더욱 두드러졌는데, 그로 인해 타카타 아케미의 터치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 이는 후일 두번째 극장판과 세번째 극장판으로 이어지는 보다 심각한 패트레이버를 위한 일종의 포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이용한 에피소드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참신한 설정이었는데, 무엇보다 80년대 후반은 PC의 보급률이 전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시대로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개념 자체가 일반인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앞서간 소재라 할 수 있겠다. 

극장판의 레벨에 맞게 이즈부치 유타카 외에 다수의 디자이너가 참가한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의 원작자겸 메카닉 디자이너인 거물 카와모리 쇼지의 가세라든지 '기동전사 제타 건담(1985)'으로 데뷔하여 여러 건담 시리즈에서 활약하게 되는 사야마 요시노리나 이토 타케히코 등으로 인해 한차원 더 높아진 메카닉 디테일을 경험할 수 있다. 극장판에 어울리는 뛰어난 수준의 작화 역시 볼거리로, 이후로 계속되는 압도적 퀄리티의 오시이표 극장판 아니메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TV (1989)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정보>

◈ 감독: 요시나가 나오유키
◈ 각본: 이토 카즈노리, 오시이 마모루, 요코테 미치코(横手美智子), 키무라 ?(木村直人)
◈ 콘티/연출: 타키자와 토시후미(滝沢敏文), 카세 미츠코(加瀬充子) 外 / 토모나가 케이타로(元永慶太郎), 아오키 야스나오(青木康直)
◈ 작화감독: 니시무라 노부요시(西村誠芳), 타카미 아키오(高見明男)
◈ 미술감독: 시부야 유키히로(渋谷幸弘)
◈ 음악/노래: 가와이 켄지 / 카사하라 히로코
◈ 프로듀서: 호리코시 토오루(堀越徹), 이시카와 세이지(石川清司)
◈ 제작사: 선라이즈
◈ 저작권: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일자: 1989.10.11~1990.09.26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TVA(47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극장판을 거치면서 인기를 입증한 패트레이버의 첫번째 TV 시리즈. 흥미로는 것은 본 작품의 제작을 선라이즈가 맡았다는 사실인데, 리얼로봇 아니메를 최초로 제작한 아니메 제작사와 리얼로봇의 개념을 다른 형태로 정립한 작품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 조우는 몹시도 흥미롭다 하겠다.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 스탭으로 한발 물러나고 요시나가 나오유키가 OVA 7편에 이어 감독을 맡으면서 전반적으로 오시이 색체는 옅어졌으며, 선라이즈의 가세로 분위기도 일신하게 된다. 다만, 이토 카즈노리나 오시이가 여전히 각본을 맡고 있어 패트레이버만의 정체성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특차2과의 일상에 대한 묘사나 현실적인 에피소드 등은 본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TV 시리즈에서는 이즈부치 유타카의 최고의 디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검은색 레이버 그리폰이 최초로 등장하고 있다. 미려하고 세련된 유선형의 검은색의 바디와 인상적인 빨간색 바이저는 산업용 기계로봇이 주로 등장하는 현실적인 패트레이버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52화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여건상의 이유로 47화로 종영하게 된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OVA 2기 (1990) 


ⓒ HEADGEAR · EMOTION / TFC

<정보>

◈ 감독: 요시나가 나오유키
◈ 각본: 오시이 마모루, 이토 카즈노리, 요코테 미치코 外
◈ 콘티/연출: 요시나가 나오유키, 키쿠치 카즈히토(菊池一仁) 外 / 토모나가 케이타로, 아오키 야스나오 外
◈ 작화감독: 야마다 키사라카(山田きさらか), 타카기 히로키(高木弘樹)
◈ 기획: 헤드기어
◈ 제작사: ?
◈ 저작권: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일자: 1990.11.22~1992.04.23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OVA(16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TV 시리즈의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제작된 두번째 OVA. 전체적으로 각각의 패트레이버 시리즈는 스토리적 연관성이 별로 없는 패러랠 월드를 표방하고 있지만 본 OVA와 TV 시리즈는 뚜렷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애초에 5화를 마저 다 채우지 못하고 종영된 TV 시리즈의 이야기를 마무리 짖자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2 the Movie (1992)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Production I.G


<정보>

◈ 감독: 오시이 마모루
◈ 각본: 이토 카즈노리
◈ 작화감독: 키세 카즈치카
◈ 디자인 협력: 카와모리 쇼지, 카토키 하지메(カトキハジメ), 후지시마 코스케(藤島康介)
◈ 미술감독: 오구라 히로마사
◈ 음악: 가와이 켄지
◈ 기획/제작: 헤드기어 / 우노사와 신, 하마와다 츠요시(濱渡剛)
◈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 프로덕션 I.G
◈ 저작권: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Production I.G
◈ 일자: 1992.08.07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극장판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오시이의 정체성이 다시금 불을 뿜은 패트레이버의 두번째 극장판. 애초부터 비현실적인 인간형 로봇의 등장이 마뜩치 않았던 오시이는 본작에 이르러 레이버의 활약을 대폭 축소시켰으며, 도쿄 시내에서 일어난 테러와 쿠데타,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에 연루된 음모를 파헤치는 서스펜스가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패트레이버를 변주하게 된다. 작품의 모티브는 첫번째 OVA의 에피소드 5, 6편인 '2과의 가장 긴하루'에 그려졌던 자위대의 쿠데타가 모티브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패트레이버이지만 패트레이버라고 보기 힘든 작품인 셈이다. 패트레이버를 통해 이전과는 달리 좀 더 대중취향적인 작품을 만들던 오시이의 작품 세계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알려준 작품이기도 하다. 

무거운 주제와 정적인 연출, 느린 호흡으로 긴 가치관과 이념을 읊는 오시이표 스타일로 인해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정체불명의 테러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와 정치적 헤게모니, 어눌하지만 뛰어난 상황판단력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특차2과의 코토 등 서스펜스 물로서는 영화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메카닉 디자인에 있어서도 비록 레이버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서두의 군사형 레이버를 비롯하여 상당히 하드한 밀리터리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다. 건프라 디자이너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카토키 하지메나 '오, 나의 여신님'의 작가로 메카닉 마니아이기도 한 후지시마 코스케 등이 참여하여 현실적인 병기와 탈 것들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시이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폐기물 13호 (2002), WXIII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HEADGEAR · EMOTION / TFC


<정보>

◈ 감독: 타카야마 후미히코(高山文彦)
◈ 각본: 도리 미키(とり みき)
◈ 캐릭터 디자인: 타카기 히로키
◈ 메카닉 디자인: 이즈부치 유타카, 카와모리 쇼지, 카토키 하지메
◈ 작화감독: 키세 카즈치카, 타카기 히로키 外
◈ 미술설정: 와타베 타카시(渡部隆)
◈ 음악: 가와이 켄지
◈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正雄), 시노하라 아키라(篠原昭)
◈ 제작총지휘: 와타나베 시게루(渡辺繁), 카와시로 카즈미(川城和実)
◈ 제작사: 매드하우스, 반다이, 토호쿠신사
◈ 저작권: ⓒ HEADGEAR · EMOTION / TFC
◈ 일자: 2002.03.30
◈ 장르: SF, 괴수물,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극장판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10년만에 등장한 패트레이버의 신작 극장판. 오시이 마모루나 유키 마사미, 이토 카즈노리 등 패트레이버의 핵심진용이 대거 불참한 작품으로, 기존의 패트레이버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작품이다. 주인공 또한 특차 2과가 아닌 형사 쿠스미 타케시와 하타 신이치로이며, 특차 2과의 인물들과 레이버는 작품의 후반부에나 등장하게 된다. 그저 패트레이버의 세계관을 빌어온 스핀오프인 셈.

총 22권으로 완결된 유키 마사미의 원작 코믹스의 에피소드 '폐기물 13호'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나 원작과는 달리 상당히 시리어스한 성인취향의 전개가 눈길을 끈다. 이로 인해 뉘앙스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시리어스한 오시이의 극장판 2편과 같은 어두운 색체를 풍기고 있다. 다만, 정치논리라든지 이념적인 가치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우리를 어지럽게 했던 오시이의 극장판 2편과는 달리 본작은 괴수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한 여인과 그에 얽힌 슬프고도 충격적인 진실, 이를 뒤쫓는 두 민완형사의 이야기가 담긴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결과적으로 부제인 패트레이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물건이 되었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으며, 몰입감도 뛰어나다. 키세 카즈치카의 극화체는 본 작품과 완벽한 싱크로를 자랑한다.

한때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에 등장한 괴물이 폐기물 13호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표절 논란에 휘말리기도. 형체를 알기 힘든 그로테스크한 몸체에 크고 강한 꼬리, 인간처럼 팔 다리가 달린 부분은 일견 표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는데,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양서류나 어류(실제 모티브는 아구라고 전해짐)를 연상시키는 외형에, 개구리의 다리와 흡사한 네 개의 다리를 갖고 있는 반면, 폐기물 13호는 인간의 유전자가 결합되어 인간과 같은 팔다리와 여성의 가슴까지 달려있고 치아가 있다는 점에서 표절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폐기물 13호의 디자인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언급하기에는 실루엣의 일부가 비슷한 것도 사실. 이로 인해 국내 일부 네티즌과 혐한류에게 본의 아니게 여러가지 가십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다만 디자인 외에 스토리 상의 표절을 주장하는 부분은 근거가 없는 악성 루머다.(그런 식이라면 공각기동대는 블레이드런너의 표절이다.)


미니 파토 (2002) 


ⓒ HEADGEAR · EMOTION / TFC · Production I.G

<정보>

◈ 감독: 카미야마 켄지(神山健治)
◈ 각본/연출컨셉/음향 프로듀스: 오시이 마모루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니시오 테츠야(西尾鉄也)
◈ 음악/노래: 가와이 켄지 / 히요도 마코(兵藤まこ)
◈ 제작사: 프로덕션 I.G
◈ 저작권: ⓒ HEADGEAR · EMOTION / TFC · Production I.G
◈ 일자: 2002.03.30
◈ 장르: 드라마, 코미디
◈ 구분/등급: 단편(옴니버스 3부작)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폐기물 13호와 동시에 상영된 단편 애니메이션. 여러가지 실험적 기법이 적용된 작품으로 얼핏 보기에는 종이를 오려 만든 캐릭터를 카메라로 찍은 인형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풀 CG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가분수의 귀여운 2등신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런 형태의 애니메이션을 일본에서는 '파다파다 아니메(パタパタアニメ)'라고 부르기도 한다.([5] 참조) 파닥파닥 아니메로 명명해도 좋을 듯.

각본부터 연출컨셉에 이르는 기본 얼개는 오시이 감독이 아웃라인을 잡았으며, '인랑(2000)'에서 연출을 맡았으며, 오시이가 기획자 양성을 위해 세운 오시이 학원 출신이기도 한 신예 연출가 카미야마 켄지가 감독을 맡아 범상치 않은 연출력을 선보였다. 카미야마는 본 작품에서 선보인 종이 인형극과 같은 애니메이션 기법을 후일 자신의 TV 시리즈인 '동쪽의 에덴(2009)'의 엔딩 애니메이션에서 다시 한 번 선보이기도. 본편의 작화는 키세 카즈치카와 함께 Production I.G의 양대 작화가이자 오시이 마모루의 또다른 작화 파트너이기도 한 니시오 테츠야가 맡고 있다. 

엉뚱한 관점과 마니악한 지식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황당한 코미디는 패트레이버 본래의 스타일을 극장판보다 더 잘 살리고 있다.


<참고 사이트>

[1]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Wikipedia Japan
[2]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the Movie, Wikipedia Japan
[3]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2 the Movie, Wikipedia Japan
[4] WXIII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Wikipedia Japan
[5] ミニパト, Wikipedia Japan
[6]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OVA 第1期) (1988), allcinema.net
[7] Patlabor, Wikipedia
[8] Patlabor The Mobile Police (OAV 1/1988), ANN
[9]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엔하위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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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각기동대 Solid State Society 3D 극장판과 함께 상영예정

출처: XI Avant 공식 홈페이지 ⓒ KAMIYAMA KENJI / Production I.G


번 '공각기동대 SAC Solid State Society 3D' 극장개봉(개봉일은 3월 26일)에 발맞춰 카미야마 켄지가 새 애니메이션을 하나 선보인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신작 아니메가 아닌 NTT 도코모의 프로모션용 영상으로, 3분 30초짜리 단편 아니메라고 하는군요. 제목은 'XI Avant (크롯시이 아방)'.

NTT 도코모의 LTE(Long Term Evolution) 서비스인 XI 서비스의 프로모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근미래의 세계를 무대로 어떤 남자를 추적하는 임무를 받은 주인공 타카무라 카오루가 XI 휴대폰을 사용하여 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LTE 서비스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드리면, 3세대 이동통신의 핵심기술인 HSDPA(고속 하향 패킷 접속) 방식보다 향상된 무선데이터 패킷 통신 규격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4세대 이동통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는데요.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HD급 동영상의 실시간 재생 등을 위해 4세대 이동통신이 요즘 IT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며, XI Avant는 바로 이런 트렌드에 맞춰 NTT 도코모가 서비스하는 4세대 이동통신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아니메인 셈입니다.

작품에서 선보이는 XI 휴대폰. ⓒ KAMIYAMA KENJI / Production I.G

아마도 이는 카미야마 감독의 전작 '동쪽의 에덴(2009)'의 영향이 어느 정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동쪽의 에덴에서 카미야마 감독은 휴대폰을 사용하여 세상을 움직이는 '세레손'과 증강현실 화상검색 엔진 '동쪽의 에덴' 시스템을 선보이며, 다가올 스마트폰 시대의 모습을 아니메로 훌륭하게 묘사했던 적이 있었죠. 여기에 동쪽의 에덴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모리카와 사토코와 사사키 아츠코가 이번 XI Avant에서도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아, 영상을 접하는 순간 동쪽의 에덴의 기시감이 꽤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될 듯 합니다.

☞ XI Avant 프로젝트 페이지 (바로가기)

공식 홈페이지의 프로모션 영상은 깔끔하고 감각적인 카미야마/프로덕션 I.G 식 비주얼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 SAC부터 동쪽의 에덴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엠블렘이 등장하고 있군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어떤 주제의식이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작 TV 시리즈나 극장 아니메가 아니라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만, 카미야마 감독의 신작을 기대하고 있던 분들에게는 약간의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영상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접하기가 힘들 듯 합니다. XI Avant는 3월말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후, 공각기동대 SAC 3D 극장판 개봉시 선행영상으로 극장에서 상영될 것으로 보입니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기간은 4월 2일부터입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KAMIYAMA KENJI / Production I.G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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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en of the East Production Committee / ⓒ 버즈픽쳐스 (한국판 DVD)

TV 시리즈가 DVD로 출시된지 체 얼마 되지도 않아 동쪽의 에덴 첫번째 극장판 'King of Eden'도 DVD로 6월 18일에 출시되었습니다. 오, 예상 외의 빠른 대응이로군요. TV 시리즈 출시 후 체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동쪽의 에덴은 TV 시리즈로 전 11화, 극장판으로 2부작으로 기획되어 있습니다. 별도의 스토리가 아닌, TV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극장판 2부작을 통해 비로소 완벽한 결말이 나는 작품입니다. TV 시리즈를 구하신 분이라면 당연히 같이 구비해야할 목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쉽게도 이번 극장판 DVD는 2부작이 모두 실린 DVD가 아닌, 극장판 1부만이 실린 패키지입니다. 디스크도 1장으로 구성되어 아쉬움이 있습니다. 셔플먼트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부족한 패키지일 것 같은데, 추후 출시될 극장판 2부 역시 디스크 1장으로 출시되겠군요. 조금 기다렸다가 1, 2부 통합 패키지로 출시해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아직 구입을 한 타이틀은 아닙니다만, 빠른 시일 내에 TV 시리즈와 극장판 DVD에 대한 리뷰로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지갑이 허락해준다면 말이죠, 흑.

극장판 DVD 역시 버즈 픽쳐스에서 출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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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었던 '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리튬향기의 여전사 쿠사나기 모토코'를 티스토리 옮긴 글입니다.

<프로필>
 
◈ 이름: 쿠사나기 모토코
출생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비밀에 쌓인 신비로운 여성. 어렸을 적 사고로 인해 온몸을 기계(의체)화 한 후, 나이에 맞게 몸을 바꿔온 것으로 추정. 뇌와 척수 일부분 외에 모든 것이 생체가 아닌 기계로, 인간과 사이보그의 모호한 경계에 서있는 인물. 오시이 마모루의 첫번째 극장판 'Ghost in the Shell(1995)'의 도입부에서 그녀의 사이보그 몸이 만들어지는 단편적인 장면을 엿볼 수 있다.
 
◈ 연령: 불명
만화책의 외모는 20대에 가까운 외모이고,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카미야마 켄지의 TV 시리즈 상에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외모로 추정되나, 기계 몸이기에 외모로 실제 연령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즘식으로 바꿔 말하면 전신 성형미인이라는 소리. (베스트 아니메 사이트에서는 30대 후반 이상의 연령으로 설명되어 있으나, 글쓴 이가 신뢰할만한 출처를 찾지 못해 불명으로 표기.)

◈ 별명: 소좌 (한국식으로는 소령, 미국식으로는 Major)
과거 군에 몸 담고 있을 당시의 그녀의 계급인데, 당시 동료였던 이시카와나 바토가 습관적으로 부르는 탓에 다른 공안 9과의 멤버들도 그녀를 소좌라 부른다. 한국판 DVD 등에서는 한국이라는 정서를 감안하여 소좌와 동등한 계급인 소령으로 표기.

◈ 소속: 공안9과 (후에는 조직을 탈퇴하여 독자적으로 행동)
몸을 사이보그화하거나 뇌를 전자두뇌로 바꾸어 직접 뇌를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진 미래의 시대이기에, 타인의 전자두뇌를 해킹하는 사이버 범죄의 발생율이 빈번하다. 이러한 고도의 사이버 범죄와 자국 내의 안보를 위협하는 각종 테러사건 등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내무성 산하의 비밀경찰이 바로 공안 9과이다. 멤버들은 대부분 군경력을 지닌 전뇌전과 대인전투의 스페셜리스트들로, 형사출신인 토그사를 제외하고는 몸의 상당 부분이 사이보그화 되어 있다.

오시이 감독의 첫번째 극장판에서는 인형사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그(혹은 그녀나 그것)와 융합함으로 인해 쿠사나기이면서도 쿠사나기가 아닌 새로운 무엇인가로 환생한다. 그 이후 공안 9과를 탈퇴하여, 두번째 극장판인 '이노센스(2004)'에서는 단독으로 바토를 도와주기도 한다. (이 인형사와의 융합은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책에서도 다루어졌던 전개이다.)

패러랠 월드격인 공각기동대 3번째 TV용 단편 'Solid State Society(2006)'에서는 극장판과는 다른 이유(그러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음. 단지, 소수정예에서 거대조직으로 변모하는 공안 9과를 떠나 독자적인 수사활동을 추구했던 쿠사나기의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추정)로 인해 공안9과를 탈퇴했다가 클라이막스에 극적으로 공안 9과와 공동전선으로 사건을 해결. 단, 다시 공안 9과에 합류하는지의 여부는 작중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 특기: 전뇌전, 테러진압, 인질구출, 암살
비핵대전 시절의 군경력으로 인해 그녀는 잠입, 침투, 인질구출 및 암살과 같은 소규모 특수작전임무의 스페셜리스트이며, 동시에 전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는 전뇌 해커이기도 하다. 비록 극장판의 인형사나 TV 시리즈의 웃는 남자, 개별 11인의 쿠제, 내무성의 고다, 괴뢰회 같은 대립측 캐릭터의 활약을 강조하기 위해 조금 덜 다루어진 듯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그들과 버금가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들 이상의 해커라는 사실은 극장판 '이노센스'나 TV 단편 'Solid State Society'에서 그 면면을 엿볼 수 있다.

그 외의 특기(?)라면, 초고가의 특제 의체를 적극 활용한 관능미 넘치는 바디 라인이라고나 할까. 단, 육감적인 스타일의 패션을 보여주었던 만화책에 비해 극장판이나 TV 시리즈에서의 헤어 스타일이나 패션감각은 대체적으로 하드웨어에 못미치는 감각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아마도, 그것은 오시이 감독이나 그의 문하생이었던 카미야마 감독의 리얼리티적인 작품관에 기인한 듯.) 그러나, 그 보라빛 단발머리야말로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 포인트이기도.

◈ 그 외 신변잡기
자신의 비밀 아지트를 몇 곳 소유하고 있으며, 원격조종용 의체도 다수 소유하고 있는 등, 상당한 재력가로 추정. 그것이 위험천만한 군과 공안에 근무한 그녀의 직업적 특성에 따른 보수 때문인지, 이제는 알 수 없는 그녀의 먼 과거에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초일류 해커라는 특성을 발휘하여 어디서 못된 짓을 해서 번 것인지는 TV 시리즈나 극장판만으로는 추정 불가능.

TV 시리즈 1기에 등장했던 그녀의 여성친구들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레즈비언적인 성취향을 지닌 듯 싶다. 단, TV 시리즈 2기에서 소년을 유혹하던 장면이나 코믹스의 여타 장면들로 미루어 보아 양성애자로 추정. (자유자재로 의체를 바꿀 수 있고, 온갖 전뇌를 돌아다녔으니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된다면 성정체성을 잃어버릴지도. 언젠가 아는 친구가 말했던 '환생하면 여자로 태어나 여성의 오르가즘을 탐구해보고 싶다.'는 절규는 쿠사나기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듯.)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특수공작원... 코믹스
 
쿠사나기 모토코는 89년 시로 마사무네 원작의 만화책 공각기동대를 통하여 세상에 등장합니다. 그녀는 시로 마사무네의 이전작 'Appleseed(1985)'의 여주인공 듀난 너츠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시로 마사무네의 육감적인 데생력에 힘입어 여성스러우면서도 강인한, 마치 한마리의 날렵한 치타와도 같은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여인이기도 합니다.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은 사이버 펑크적이면서도 디테일한 설정 덕에 모국인 일본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더욱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기실 애플시드나 공각기동대 모두 캐쥬얼하게 접할 수 있는 만화책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세계관과 디테일한 메카 묘사, 복잡하고 세밀한 데생 덕에 매니아적 색채가 강한 사이버펑크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이 두 작품은 모두 일정연령 이상의 성인층을 위한 작품이라는 이야기와 상통하기에 성인층에 대한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내지 원작자인 시로 마사무네의 성적 취향)에서 듀난이나 쿠사나기 모두 굉장히 육감적이고 섹슈얼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녀들은 기존의 SF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에 비해 (모습에서나 정신적으로나)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동시대의 만화영화 주인공들 중에는 87년에 OVA로 제작되었던 켄이치 소노다(만화가 겸 캐릭터 디자이너)의 '버블검 크라이시스'에 등장하는 프리스나 실비아와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프리스는 듀난과, 실비아는 쿠사나기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을 듯. 물론,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켄이치 소노다가 그렸던 여주인공들은 밀리터리 스페셜리스트라는 측면에서 시로 마사무네의 캐릭터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이 버블검 크라이시스 이외에도 그의 또다른 작품인 '갈포스(1986)'의 라비, 엘자, 루피, '건 스미스 캣츠(1995)'의 라리 등이 비슷한 성격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건 스미스 캣츠의 주인공 라리의 경우, 단발의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쿠사나기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죠.
 

© SHIROW MASAMUNE / KODANSHA

그림1. 애플시드 만화책 표지(좌측), 공각기동대 만화책 첫번째 시리즈 미국판(중앙), 두번째 시리즈 Man Machine Interface 미국판(우측). 만화책의 쿠사나기는 극장판이나 TV 시리즈보다 좀 더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 데생 스타일의 차이로 인해 시로 마사무네의 육감적인 캐릭터들은 켄이치 소노다의 귀여운(?) 캐릭터들에 비해 성인 취향에 더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켄이치 소노다의 캐릭터들이 성숙하고 이지적인 여인과, 보이쉬한 터프걸, 여성스러운 청순녀, 깜찍하고 귀여운 미소녀 등으로 나뉘어 거의 그녀들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시로 마사무네의 그녀들은 원톱 여주인공으로서 남성미를 자랑하는 파트너(브리아레오스나 바토)와 함께 강한 대비를 보이면서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이 큰 차이라 하겠습니다
 
성인 취향(이면서 동시에 남성 취향)의 극단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시로 마사무네의 캐릭터들이지만, 듀난과 쿠사나기는 몇몇 부분에서 서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남자친구 브리아레오스를 일편단심으로 바라보며, 콤비플레이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듀난이 젊고 패기 넘치는, 그리고 순수하고 우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쿠사나기는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 선 모호한 정체성과 남자 친구와 레즈비언 친구를 모두 사귀는 양성애적 성취향, 자신의 적수였던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자아로 탄생하는 불확실한 가치관 등 여러 면에서 사이버펑크 성인물의 주인공에 걸맞는 혼돈스럽고 규격화되지 않은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쿠사나기의 젊었을 적 모습이 듀난이고 듀난이 많은 경험과 세월을 겪어 성숙된 모습이 쿠사나기라고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군요.

© KENICHI SONODA

 그림2. 갈포스(좌측), 버블검 크라이시스(중앙), 건 스미스 캣츠 (우측). 켄이치 소노다의 작품들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SF, 또는 밀리터리 액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결국, 만화책의 마니아적인 색체 때문이었는지 쿠사나기는 쉽게 영상매체를 통해 모습을 보이지는 못합니다.(듀난은 88년작 OVA 애플 시드로 먼저 아니메계에 데뷔를 합니다만, 그리 큰 반응을 얻지는 못합니다.) 아마 당시가 SF 장르가 몰락하면서 복고와 리메이크 바람이 불던 일본 아니메의 암흑기의 한가운데였다는 사실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군요. 결국, 90년대 중반까지 그녀를 기억하는 이는 소수의 매니아에 불과했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말입니다.
 
 
관능을 벗고 철학을 입다... 극장판 공각기동대
 
95년, 에반게리온(이하 에바)의 써드 임팩트('은하철도 999'와 '기동전사 건담', '마크로스'로 대표되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을 세컨드 임팩트로 가정했을 때)와 함께 일본 아니메는 수년간의 침체를 딛고 신세기로의 도약을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아니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단연 에바를 꼽고 있고 저 역시 그 점에 있어서 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 써드 임팩트를 온전히 에바 혼자서 열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에바가 아니메 마니아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일반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일본 내에서의 국지적 임펙트였다면(물론, 그 이후에 세계적인 반향을 얻었지만),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1995, 이하 공각기동대 극장판)'과 오토모 가츠히로가 총감독을 맡았던 '메모리즈(1996)',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1997)'로 이어지는 극장용 아니메의 삼연속 랑데뷰 홈런은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아니메의 위상을 높여준 글로벌 임팩트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바로 그 첫번째 홈런인 공각기동대 극장판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 쿠사나기 모토코인 것입니다. (결국, 에바가 일본 만화영화 내수시장에 활력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뒤의 세 작품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고, 뒤의 세 작품은 일본 만화영화의 작품성을 전세계적으로 알렸다는 점에서 에바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국가 기밀을 탈취해서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려는 면책특권을 지닌 외교관을 눈깜짝할 새에 사살한 후, 빌딩의 저 아래로 광학미체(간단히 말해서 투명장치)와 함께 사라지는 도입부, 곧이어 펼쳐지는 신비로운 오프닝 테마를 배경으로 세밀한 의체 제작과정을 묘사한, 당시로서는 극한에 이른 비쥬얼은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으며, 아니메 史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의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오시이 마모루식 완벽주의의 집합체였던 것입니다.
 

© 1995 SHIROW MASAMUNE / KODANSHA / Bandai Visual

그림3. 쿠사나기의 의체(사이보그 몸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던 극장판의 인트로 씬. 의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마치 만화책의 쿠사나기에서 극장판의 쿠사나기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듯 하다. 극장판의 캐릭터 디자인과 키 애니메이터는 인랑의 감독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작화감독은 Production I.G의 또다른 명 감독인 붉은광탄 질리온의 니시쿠보 미즈호가 맡아 새로운 쿠사나기를 그려내었다. 

오시이 감독은 시로 마사무네의 멋진 세계관을 극장판으로 옮기면서 쿠사나기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리뉴얼 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를 감싸고 있던 최대의 무기(?)인 관능미를 과감히 벗겨버리고, 정체성에 방황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탈바꿈 시켜버린 것이었습니다. 관능미를 벗어버린 그녀는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기다렸다는 듯 풀어놓으며, 스탭진이 창조해 낸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이고 어두운 도시에서 철학적 향연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Ghost in the Shell'이라는 제목 그대로 쿠사나기의 관능미 속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마치 껍질 속의 고스트처럼 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시이 감독은 자신의 해석대로 묘사했던 쿠사나기와는 반대로 원작의 디테일한 밀리터리적 설정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실사 영상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인 연출을 선보입니다. 머신건과 권총을 능숙하게 조립하고 다루는 모습은 특수공작원이라는 그녀의 신분을 생생하게 묘사했고, 우리는 여성을 넘어 강인한 카리스마와 실력을 가진 주인공으로서 그녀를 인정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쿠사나기가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개체로서 네트워크를 향해 나아가듯, 전형적 히로인의 테두리에 묶여있던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성별을 극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으로 새로운 진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공각기동대 극장판은 사실 일본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참패하고 맙니다. 관능미를 벗어버린 어둡고 우울한 여주인공과 오시이 감독의 난해한 연출력이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러나,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이 외국에서 호평을 얻었던 것처럼 극장판은 외국 개봉 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합니다.(해외에서의 성공 이후 다시 일본에서 재개봉되었구요.)

'전뇌를 통해 네트워크에 가상현실로 접속하고, 타인의 뇌를 해킹하여 가상의 기억을 심어놓을 수 있으며, 자신의 기억을 모두 데이터로 백업하여 네트워크에 저장한다.'는 시놉시스는 당시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최상위 형태의 진화였고 거기에 일반 아동용 만화영화, 아니 실사영화마저도 뛰어넘는 치밀한 스토리와 극사실주의는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인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세기말 등장했던 초 화제작 '매트릭스(1999)'의 감독 워쇼스키 형제(이제는 남매)가 이 공각기동대 극장판에 큰 영향을 받았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아바타'의 SF 거장 제임스 카메론 역시 공각기동대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합니다.
 

© 1995 SHIROW MASAMUNE / KODANSHA / Bandai Visual

그림4. 광학미체와 함께 빌딩의 아래로 사라지는 쿠사나기의 극장판 오프닝 씬. 광학미체는 공안 9과 요원들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광학미체 속에 몸을 숨기는 쿠사나기의 모습이 의체라는 껍데기 속에 인간임을 증명하는 고스트가 숨어있는 모습과 겹쳐지는 듯하다.

그리하여 여자를 넘어섰던 그녀의 변신은 결국 강렬한 잔상을 남기면서 일본 만화영화사에 길이 기록됩니다. 관능미에 가려져 연기력을 평가받지 못하던 그녀가 작가주의 감독을 통해 새로운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철학 위에 관능과 카리스마를 입다... TV 시리즈
 
95년 극장판과 함께 글로벌한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그녀는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마치, 인형사와 융합해 공안 9과를 떠나 네트워크로 잠적해버린 극장판의 뒷모습처럼 말이죠. 그녀는 아니메와는 별개로 97년도 PS용 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극장판의 어두웠던 모습과는 다른, 만화책의 쿠사나기에 충실한 예전의 그녀로 돌아와 만화책의 그녀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신선함을, 만화책의 팬들이었던 이들에게는 쿠사나기의 역동적인 모습을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7년만인 2002년, 드디어 네트워크의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던 그녀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TV 시리즈,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이하 SAC)로 말입니다.
 
Production I.G의 차세대 주자인 카미야마 켄지가 감독을 맡은 TV 시리즈 SAC에서 쿠사나기는 극장판의 그녀와는 또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시이 감독의 쿠사나기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정체성에서 방황하며, 어두운 고독의 세계를 홀로이 가는 한마리의 외로운 늑대의 모습이었다면, 카미야마 감독의 그녀는 공안 9과의 2인자로서 개성 넘치는 공안대원들을 강인한 카리스마로 이끌어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암사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5. TV 시리즈 1기의 장면들. 만화책의 쿠사나기는 마니악했고, 극장판의 그녀는 난해했다는 점에서 TV 시리즈의 그녀가 상대적으로 대중적이고 접하기 쉬웠으며, 또한 그 카리스마와 매력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않았나 싶다. 

어찌보면, 극장판의 시니컬한 그녀가 되기 직전의 좀 더 젊은 쿠사나기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더불어 흥미진진해진 이야기와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주었던 극장판의 쿠사나기에 비해 오히려 인간적으로 좀 더 시청자에게 가까워진 그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외적인 볼거리에 치우치지 않은 스토리의 정합성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해서 메인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배치된 단편 에피소드도 별도의 이야기로서도 뛰어난 완성도와 함께 주제의식을 임팩트하게 전달했고, 그를 위해 때로는 쿠사나기를 메인 주인공으로, 때로는 조연급 내지는 아예 이야기의 흐름에서 빼버림으로써 공각기동대를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닌, 공안 9과의 인물(과 기계)들을 모두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단독 주인공이 아닌 여러 주인공 중 하나로 작품을 끌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오히려 시리즈 내내 그 존재감을 잃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SAC에서 이미 그녀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최고조에 이른 모습으로 표현되었던 탓일 겁니다. 그러면서도 제작진은 그녀를 슈퍼 히로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적절한 한계와 긴장감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고도의 테크닉을 보여줍니다. 오시이 감독의 극사실주의적 작품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면서도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적절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성격을 잃지 않은 SAC를 통해 그녀는 비로소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여배우로 태어난 것입니다.

오시이 감독만이 창조해낼 수 있을 것 같던 그녀는 이렇게 신예 카미야마 감독에 의해 난해함을 벗어버리고 강렬한 카리스마와 훨씬 더 강조된 여성성을 바탕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냉철한 그녀, TV 시리즈 1기의 엔딩곡 'Litium Flower'야말로 그녀를 정의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군요.
 
SAC는 성인용 작품이면서, 게다가 일반 지상파가 아닌 위성 케이블 방송의 PPV(Pay-Per-View: 시청 전에 일정금액을 결제하면 결제한 금액만큼 시청이 가능한 방식으로, 회당 결제방식의 주문형 비디오 VOD와는 차이가 있는 유료시청 방식. 글쓴이 주.) 형태로 방영하는 작품으로서 2기 제작이 어렵지 않나라는 예상을 깨고, 테러리스트를 사살하고 빌딩 아래로 광학미체와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는 유명한 쿠사나기의 극장판 오마쥬씬과 함께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2기에서는 그녀를 스크린에 데뷔시킨 오시이 마모루 감독도 스토리 컨셉으로 참여하는데요, 오시이 마모루는 SAC로 그녀를 보내고 비슷한 시기의 극장판에서는 그녀를 빼버린 체, 바토와 토그사만을 등장시켜 모토코가 사라진 이후의 공각기동대를 새롭게 그려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오시이 감독을 위해 그녀는 비록 목소리로나마 극장판에 등장하기도 하죠.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6. 오시이 마모루가 스토리 컨셉으로 참여하면서 묵직해진 스토리와 함께 그녀의 과거를 단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SAC 2기는 배경이 된 세계관에서 한국이 비핵대전으로 인해 몰락하고 한국민들은 난민이 되어 중국과 일본으로 뿔뿔이 흩어졌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채용함으로써 우리에게는 불편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만화책을 거쳐 극장판과 융합하고, 다시 극장판을 거쳐 TV 시리즈와 융합하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새로운 개체로서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쿠사나기 모토코를 의식한 스탠드 얼론 컴플렉스
 
쿠사가기가 보여준 강인한 카리스마와 행동력을 가진 여성상은 앞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버블검 크라이시스'와 같은 또다른 만화영화나, 각종 액션영화의 여주인공들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널리 익숙해진 모습이기도 합니다. 과연 누가 그런 여성 캐릭터의 시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TV 시리즈 1기의 최종화에서 웃는 남자와 쿠사나기가 정의했던 스탠드 얼론 컴플렉스(Stand Alone Complex: 한 명의 사람이 전달한 정보를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한 행동을 보이는데, 이 때 그들에게 계시를 준 최초의 사람은 선두에 나서지 않은 체, 그 정보를 이어 받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이 마치 자신이 오리지널인양 행동하지만 그 방향성은 잃어버린 상태. 글쓴이 주.)와도 같이, 스스로가 오리지널인듯 화면에서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자신만의 개성을 잃어버린 체 모방을 반복하는 캐릭터도 있고, 자기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캐릭터도 있습니다만, 그들 중에서 가장 빛을 발하고 있는 캐릭터는 단연코 쿠사나기를 뽑지 않을 수 없군요. 오리지널을 능가했는지도 모를 그녀의 존재감은 이제 만화영화 뿐만 아니라 영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가 헐리우드에서 실사영화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런 여성을 넘어선 강인함과 함께 강조되는 관능미나 성적 묘사는 분명 쿠사나기를 위시한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을 남성 시청자들에게 어필시킬 수 있는 매력포인트이면서 동시에 그녀들을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 의해 그러한 부분이 많이 거세되었으나, 카미야마 감독의 TV 시리즈는 (원작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성인물의 여주인공으로서 그녀의 성적 매력을 작품 내에서 은근히 자극했었죠.

비록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의 진지함 속에 드러난 일종의 팬 서비스적인 형태였지만, 결국 강인한 여주인공으로서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 또한 결국은 남성들이 창조해 낸 성적 판타지의 굴레를 완벽하게 떨쳐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설정은 동시에 그녀가 사이보그의 몸으로서 자신이 기계가 아닌 여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도 사용되고 있기에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극장판에서 네트워크와 융합되어 사라져 버린 그녀는 TV 단편 '공각기동대 SAC Solid State Society(SAC 3기)'를 통해 잠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만, 여전히 무한한 네트워크의 공간 속에서 기약없는 여행을 떠난 체입니다. 마치 샤아와 아무로가 액시즈의 빛과 함께 우주의 저편으로 생사를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메텔이 은하철도 999에 몸을 싣고 영원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하록 선장이 아르카디아호와 함께 별바다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녀의 다시 돌아오는 언젠가, 화면에서는 그녀의 귀환을 알리는 리튬 꽃의 메마른 금속향기가 광학미체의 미세한 시각적 간섭과 함께 우리의 감각을 일깨울지도 모릅니다.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7. SAC 3기는 연재물이 아닌 2시간 분량의 TV 단편으로 제작되어 일종의 팬서비스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여기서 쿠사나기는 이유를 밝히지 않은체 공안 9과에서 탈퇴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여 마치 극장판에서 인형사와 융합하여 공안 9과를 떠난 다음의 그녀의 행적을 묘사한 듯한 착각을 주기도 했다. 실제 TV 시리즈 SAC와 극장판의 스토리는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로, 일종의 패러랠 월드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참고 포스트>
 
1. 쿠사나기 모토코, 위키피디아


공각기동대 3종 패키지 :래핑맨, 인디비주얼 일레븐, S.S.S (6DISC) - 10점
카미야마 켄지 감독/미라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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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에덴 국내 DVD 케이스

ⓒ Eden of the East Production Committee / ⓒ 버즈픽쳐스 (한국판 DVD)


프로덕션 I.G 제작, 카미야마 켄지 감독의 2009년 화제작 '동쪽의 에덴'이 국내에 DVD 출시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YES24, 인터파크, 무비4989, 오즈DVD 등 국내 대형 인터넷서점과, 중소형 DVD 쇼핑몰 등에서 출시예정인데요. TTB를 제공하는 알라딘 쪽은 아직 출시상품으로 올라와 있지 않은 상태군요.

디스크는 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5:1의 Anamorphic 와이드 스크린과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기존의 와이드 스크린보다 더 넓은 화면비율을 제공함에 따라 라스트 씬의 미사일 격추 등과 같은 장면에서 꽤 좋은 느낌의 영상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5.1채널 지원도 그렇고 아니메 DVD로는 꽤 좋은 사양으로 출시되는군요.

카미야마 켄지 감독의 전작 공각기동대 SAC가 국내에서 제법 팔린 타이틀이라서 그런건지, 2010년도 노이타미나(NOITAMINA) 인기 프로라는 네임밸류 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무판권의 저가 DVD보다는 확실히 콜렉션으로서 좋은 가치를 할 듯 합니다.

그러나저러나, 동쪽의 에덴도 나온 마당에 카미야마 감독의 이전작인 정령의 수호자도 출시해줬으면 하는데... 일본 내에서도 (완성도가 좋았음에도) 좋지 않은 시청률을 보였던 작품인지라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동쪽의 에덴은 '슬럼독 밀리어네어', '국가대표' 등을 출시한 버즈 픽쳐스에서 출시됩니다. 5월 26일 출시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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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려 있는 '정령의 수호자 (2007), 성장을 주제로 한 깊이 있는 동양 판타지'을 본 블로그에 옮긴 글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스탭>

◈ 감독: 카미야마 켄지
◈ 원작: 우에하시 나오코
◈ 제작: Production I.G


<시놉시스>

우연히 신요고황국의 둘째 황자를 구하게 된 호위무사 바르사. 둘째 황비의 초청으로 궁에 들어간 그녀는 황비로부터 둘째 황자를 호위해 이 나라에서 도망쳐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둘째 황자의 몸에 요괴가 붙어 있고, 이것이 황제의 신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둘째 황자는 암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8명의 목숨빚을 짊어지고 있던 바르사는 그 의뢰를 받아들여 둘째 황자와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둘째 황자의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요괴가 아닌 정령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넘어온 정령의 알이었는데...



등장인물



1. 십이국기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오리엔탈 판타지 대작 아니메

아시다시피 반지의 제왕에서 비롯된 서양의 판타지 세계관(편의상 유럽 판타지로 표기)은 21세기를 맞이하여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등 전반적인 문화산업 새로운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다 판타지 세계관을 쓰는 양상이 되었습니다.) 원래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삼시 세끼를 매 번 먹다보면 질리는 법. 그런 면에서 질리도록 소비되고 있는 서양 판타지에 대안으로 동양의 판타지 세계관(편의상 오리엔탈 판타지로 표기)은 그만큼 방대하고 다양한 소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몇 몇 컨텐츠 외에는 아직까지는 이를 훌륭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오리엔탈 판타지를 소재로 한 작품들. 좌측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십이국기(코바야시 츠네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천녀유혼(서극 감독)', '후시기 유우기(카메가키 하지메 감독)'.

이런 오리엔탈 판타지 소재는 오히려 진부함을 벗기 위해 유럽 판타지에 곁들여진 양념마냥 작품에서 조금씩 사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TRPG의 세계관으로 유명한 '포가튼 렐름'의 세계관에는 일본의 도검을 모델로 한 카타나나 중국의 소림사 승려를 기본으로 한 몽크와 같은 소재와 캐릭터가 등장하고, 일본의 아니메나 RPG 게임에는 권법가나 사무라이와 같은 동양적이거나 일본적인 색체를 가진 캐릭터와 소재가 등장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컨텐츠 전체를 오리엔탈 판타지로 구성한 작품들은 아직도 유럽 판타지에 비해 그 수가 적고, 또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판타지를 소재로 컨텐츠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을 전제 하에서 이번에 얘기할 작품인 '정령의 수호자'는 오리엔탈 판타지를 상당히 고급스럽고 정갈하게 묘사해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2. 공각기동대 SAC의 스탭진들이 다시 뭉치다

감독과 각본은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로 떠오르는, 또한 개인적으로 상당히 팬이기도 한 카미야마 켄지 감독입니다. (정령의 수호자가 방영된 시점에서) 아직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 외에는 이렇다 할 필모그라피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만, 만들어낸 작품 대부분이 (흥행여부와는 관계없이)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들이기에 앞으로의 작품에 대한 기대치도 굉장히 높은 인물이라고나 할까요. 그의 데뷔작은 패트레이버의 외전격 단편인 '미니 파토(2002)'라는 작품으로 종이로 오려낸 캐릭터들을 실사로 촬영하는 독특한 영상기법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때부터 범상치 않은 그의 연출력은 빛을 발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미니 파토의 독특한 연출 방식은 그의 최신작 '동쪽의 에덴'의 엔딩 영상에서 다시 한 번 사용되기도 하지요.)

ⓒHEADGEAR / EMOTION / TFC

켄지 감독의 데뷔작인 미니파토. 종이인형을 이용한 특이한 연출과 특유의 개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패트레이버 세번째 극장판 DVD에 부록으로 들어가 있다. 공각기동대 DVD 부록인 '타치코마의 일상'과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講談社 · 攻殻機動隊製作委員会

정령의 수호자 스텝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 공각기동대 SAC TV 시리즈. 비록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지만,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극장판이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점에서 후속작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시작했음에도 불구, 극장판과는 또다른 매력을 선사하며 높은 완성도의 작품으로 새롭게 구성.

음악 역시 공각기동대 극장판 1편과 이노센스 등으로 유명한 일본 아니메의 대표적인 음악감독인 카와이 켄지씨가 만들어 작품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제가는 일본의 대표적인 인기 락 그룹 라르크엔시엘이 맡아 작품 초반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지요. 그외에 고토 타카유키 이하 여러 작화스탭들, 다케다 유스케 미술감독 등 많은 스탭진들은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에 참여한 Production I.G의 베테랑 스탭진들인지라 완성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줍니다.

캐릭터 디자인 원안을 맡은 아소 가토우씨는 18금 헨타이 코믹스 작품을 여럿 그려낸 꽤 재미있는 이력을 갖고 있는데요, 물론, 이 작품에서는 그의 이런 장기는 전혀 발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생각 외의 완성도를 보여준 듯 합니다. 작품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러스트가 아마 그의 일러스트가 아닐까 추정되는군요.

원작자인 소설가 우에하시 나오코씨는 정령의 수호자를 1부로 하여, 어둠의 수호자, 꿈의 수호자 등의 집필했으며,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챠그무가 주체가 되는 여행자 시리즈 또한 있다고 하니 소설로도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원작자체가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베스트셀로서, 우헤하시 나오코 본인이 아니메와 공각기동대의 열렬한 팬이라고도 하는군요.


3. 판타지라는 색상으로 훌륭하게 채색된 성장 드라마

오리엔탈 판타지를 그 외관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정령의 수호자는 액션이나 어드벤처보다는 드라마에 더 집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바르사와 바르사가 호위하게 된 정령의 알을 품은 어린 황자 챠그무, 이야기는 뜻하지 않은 대자연의 숙명을 짊어지게 된 아이가 그 숙명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한 인간으로,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커다란 나무에 자그마한 에피소드들이 나뭇잎처럼 붙어서 하나의 거대한 나무로 형성화하는 듯한 느낌을 보여줍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성장 드라마에 걸맞게 챠그무는 확실히 자라고 있다, 무럭무럭. 우리 아이가 26주만에 이렇게 컸어요.

성장 드라마는 아동과 청소년이 주시청 대상인 애니메이션, 특히나 아니메에 있어서는 거의 어느 장르에나 쓰여지는 하나의 테마입니다만, 정령의 수호자는 그 주인공을 이미 성장한, 그리고 챠그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자라난 바르사라는 인물로 상정한 다음, 그가 지켜야 하는 인물인 챠그무가 성장하는 모습을 제3자적인 입장에서 보여줌으로써, 청소년 층 뿐만 아니라, 성인층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거기에 판타지라면 의례 등장하는 마법이나 괴물과 같은 요소들이 이 작품에서는 주된 이야깃거리가 아닌(물론, 정령의 알이라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판타지 요소, 그 자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의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는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로 사용되면서, 흥미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성숙한 전개를 원하는 고연령대의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판타지 소재는 때로는 양념처럼, 때로는 메인 음식처럼 사용되어 결코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느낌이다.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그리고 작품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이러한 전개가 자칫 지루함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정령의 수호자는 지루할 수도 있는 이런 전개를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각본과 연출로 멋지게 풀어 나간다는 점에서 밀도있고 심도있는 재미를 선사하지 않나 싶습니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에 이어 켄지 감독은 상당히 영화적이고도 리얼한 연출방식으로 작품을 이끌어 나갑니다.


4. 세계관 속에 교묘하게 녹아든 일본과 중국의 문화

오리엔탈 판타지는 그리스/로마 신화, 북구신화, 이집트 신화 등으로 그 소재가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은 몇가지에 고정되어 있는 유럽 판타지와는 달리, 각 나라의 설화나 건국신화 등에 그 모티브를 두고 있어서 나라 별로 다양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인이 만든 정령의 수호자는 일본의 옛모습을 모티브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챠그무의 나라이자 이야기의 주된 배경인 신 요고황국은 그 복식, 병사들의 무장, 주민들의 생활방식, 황궁의 모습 등을 일본의 옛모습에서 모티브를 받았다는 것이 눈에 뜨일 정도이고, 바르사의 고향인 칸발은 마치 중국을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쉽게도 한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지만요.)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전체적인 복식이나 건축물, 생활상은 일본의 그것을 사용하고 있으나 간간히 외국의 것들도 등장하고 있다. 스틸 샷의 좌측 하단에 보이는 의상은 중앙 아시아나 러시아의 전통의상을 기본으로 한게 아닌가 하는 싶다. (실제로 등장인물도 파란 눈에 금발이다.)

특히, 이 작품에 바르사 일행과 대척하고 있는 요고황국의 황실무사들은 일본의 사무라이와 닌자를 연상시키는 듯한 복식과 행동으로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전설적인 작품 '7인의 사무라이'를 그 모티브로 삼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게 합니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7명이 아닌 8명이 나오니 거기까지는 억측일지도 모르겠군요.)


5. 쿠사나기 모토코의 환생? 강인한 여성상과 모성상을 동시에 보여준 바르사

정령의 수호자는 주인공의 한 명인 챠그무의 성장을 그 주제로 한 작품이지만, 그를 보살피고 인격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게 지켜주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바르사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작품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술의 달인으로 탁월한 임기응변과 대담함, 그리고 용의주도함을 갖춘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아니메 팬들은 어떤 여성 캐릭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바로 공각기동대 시리즈의 히로인 쿠사나키 모토코 소령말입니다.

물론, 쿠사나기 모토코가 바르사의 롤모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모토코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 원작이 공각기동대보다 먼저 나왔다고 하니 말이죠. (애니메이션보다 소설이 먼저 나왔다는 것이고, 실제 공각기동대 코믹스보다는 정령의 수호자 쪽이 나중에 출간됐습니다. 공각기동대 코믹스는 80년대 작품.) 아마, 감독 이하 공각기동대의 스탭진이 대거 투입되다보니 작화같은 부분에서부터 자연스레 비슷한 인상을 주지 않았나 싶군요. (제 경우에는 성우가 같다는 착각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바르사는 안도 마부키씨가, 모토코는 타나카 아츠코씨가 맡았습니다.) 그러나, 바르사는 모토코와 다른 점을 하나 갖고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이 작품에서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해줄지도 모르는 모성애가 아닐까 합니다.

ⓒ 士郎正宗 · Production I.G · 講談社 · 攻殻機動隊製作委員会 (좌) /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우)

같은 스텝진이 그려낸지라 둘의 느낌은 외모 상으로도 상당히 비슷하다. 인조피부의 효과인가 화장술의 덕인가, 모토코 여사가 좀 더 뽀샤시 해보이는...

챠그무를 대하는 바르사의 모습은 단순한 호위무사 이상의, 챠그무를 강인한 인간으로 키우는 데 많은 역할이 할애되어 있고, 실제 중간의 전개과정은 그러한 바르사와 챠그무의 관계와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모성애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성애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앞에서는 엄하게, 뒤에서 따뜻하게 지켜보는 그런 모습은 확실히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운 모습이랄까요. 그것은 그녀가 어머니없이 먼 타국에서 외롭게 자란 탓에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린 것도 있겠지만, 지그로에게 맡겨져 길러져 온 탓에 지그로의 남성적인 육아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은 탓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여성인 이상, 그것은 부성애보다는 모성애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듯 합니다. 다만, 그 외향적 모습이 무뚝뚝하고 남성적일 뿐이겠지요.

어떤 분들께선 첫 도입부에서 보여준 바르사의 현란한 액션씬에 매료되어 이 작품을 보셨을 수도 있겠고, (물론, 이 현란한 액션 역시 정령의 수호자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중간 에피소드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액션 때문에 많은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바르사의 진정한 매력은 그 현란한 무예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강인한 모성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3화에 등장한 바르사와 황실 무사들의 액션장면. 이 씬 하나로 초반 이 작품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최고조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현란한 움직임을 스피디하게 표현해낸 것도 훌륭지만, 그 빠른 전개 중에 사이 사이 슬로우 모션으로 주인공의 위기 상황을 강조한 연출력은 애니메이션으로선 매우 높은 수준의 연출 중 하나일 듯. (특히 저 창의 끈이 격투 중간중간에 조금씩 풀리는 연출은 매우 감탄)


6. 수호자 시리즈의 연이은 애니화를 기대하면서...

정령의 알을 품은 탓에 나라의 재앙으로 오인받으며 죽음에 몰린 왕자를 맡아 도망길에 오르는 젊은 여자무사의 이야기는 최초에는 긴장감 넘치는 탈주극으로 우리를 이끈 연 후,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원치 않은 사명과 업을 짊어진 어린 왕자가 백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드라마적인 전개와 잔잔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다가 말미에 이르러서는 왕자가 품은 정령의 알을 빼앗기 위한 정령계의 괴물과, 시시각각 왕자를 쫓아오는 황국무사들의 추격, 그리고 정령의 알을 꺼내고 왕자를 구하기 위한 바르사 일행의 실마리 찾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로 다시 늦춰진 긴장감을 팽팽히 당겨줍니다.

특히 그 중간에 등장하는 바르사의 감춰진 과거, 지그로와의 추억 등은 이 이야기의 또다른 사이드 스토리로서의 흥미를 주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지요. 사실 원작 소설의 경우는 이 에피소드의 완결 이후, 바르사가 다시금 그녀의 고향인 칸발로 돌아가 지그로 등과 얽혀진 오랜 이야기를 해결해 나가는 원톱 주인공으로서의 바르사의 모험 이야기가 다루어 집니다만, 아쉽게도 정령의 수호자의 후속작이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듯 싶습니다. 

완성도 높은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저조했던 시청률 덕에 이 작품의 후속이 더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기도 합니다. 물론, 액션에 많은 관심을 두고 보신다면 지루한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 이런 진지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매일 자극적인 패스트푸드와 서양식 식단으로 지친 우리의 몸에 깔끔한 웰빙음식과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글쎄요,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니메 팬들의 입맛이 다시금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할 때는 바르사를 다시 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기약없는 바르사의 모험 이야기가 언제고 다시금 우리에게 들려올 날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上橋菜穂子 · 偕成社 · 精靈の守り人」製作委員会

시작은 또 다른 이야기의 결말. 끝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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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Chika Umino


2002년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가 방영을 시작했을 때, 엘로스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시이 마모루에 의해 이미 완벽한 재해석이 이루어졌던 극장판이 TV 시리즈로 방영된다면, 그 난해했던 전작을 계승하면서 TV 시리즈로의 매력은 분명 반감되리라는 예상을 했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섣불리 가벼운 액션물로 바꾸는 것도 너무 큰 이질감을 줄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극장판에서 선보였던 그 절정의 영상미가 장편의 TV 시리즈로 이식된다면 퀄리티의 하강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우려 속에 시작한 첫 화의 감상에서 제가 느낀 것은 놀라움이었습니다. 가벼움으로 빠지지 않고, 그렇다고 난해한 철학의 천작하지도 않는 적정선의 깊이, 그것을 수사 드라마 형태로 풀어가면서 시청자들에게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이야기 전개의 묘미, 비록 극장판보다야 낮을지언정 일반적인 TV 시리즈의 퀄리티를 몇 단계 상회하는 디테일함, 이 모든 것이 너무도 강렬하게 와닿았던 것이죠.

초반의 단 몇 화만의 감상으로 이미 엘로스는 공각기동대 TV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시이 마모루가 연출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작품의 스탭롤에서 처음 보는 낯선 이름의 감독을 발견하는 순간, 단번에 그의 팬이 되기를 결심하게 됩니다.

'카미야마 켄지'

40년대생의 아니메 명장(미야자키 하야오, 린 타로, 토미노 요시유키, 데자키 오사무 등)들의 공력이 서서히 쇠하기 시작하고, 50년대생의 기수들인 오시이 마모루, 카와지리 요시아키, 오토모 가츠히로마저 주춤하는 와중에 60년대생 감독들의 활약이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60년대생 감독으로 주목할만한 이들은) 안노 히데아키와 카와모리 쇼지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등장한 이 낯선 이름은 아니메의 미래가 아직 밝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싶어 몹시나 반갑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물론, 퍼펙트 블루의 콘 사토시나, 울프스 레인의 오카무라 텐사이, 에스카플로네의 아카네 카즈키 등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만 말입니다.)

'정령의 수호자(2007)'를 통해 이미 또 한 번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그(물론, 시청률 면에서야 참패를 면치 못했지만, 그것은 작금의 아니메 조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지,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충분한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가 2년만에 들고온 또다른 작품이 바로 이 에덴의 동... 아 아니, '동쪽의 에덴(2009)'입니다.

시작부터 무슨 장르인지 정의를 내리기가 애매모호함으로 출발하는 작품이지만, 초반부터 카미야마 식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1류 감독의 필수 덕목으로 꼽히는 각본작업에 있어서도 카미야마는 원작/각본/감독의 1인 3역을 해내고 있기에, 역시 차세대를 짊어질 아니메 감독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더더욱 공고하게 하는군요.

ⓒ Eden of the East Production Committee

그림 1. 에덴의 동쪼.., 아 아니 동쪽의 에덴 스틸샷 (출처: 베스트 아니메)


일단, 요즘의 추세에 맞춰 치카 우미노(캐릭터 원안)/모리카와 사토코(본편 캐릭터 디자인)의 예쁘장한 캐릭터와, 자타가 공인하는 초일류의 비쥬얼을 선보이는 Production I.G의 정예들이 선보이는 깔끔한 비쥬얼도 작품의 매력을 배가시켜 줍니다. 카와이 켄지 음악감독은 이젠 뭐, 거의 Producion I.G의 전속 음악감독인 듯 싶구요. 한마디로 웰메이드 아니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에덴의 도, 험험... 동쪽의 에덴의 힘은 바로 이야기의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 이전작들에서 보여준 카미야마 켄지의 스토리 텔링은 믿음이 가기에 충분하지만, 앞선 두 작품들이 모두 원작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직접 원작을 담당한 이 작품의 완성도(흥행보다는 그 완성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군요.)의 향방이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를 가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일본만화의 신 故 데즈카 오사무가 말한 '만화영화의 중요한 요소는 첫째도 이야기, 둘째도 이야기, 셋째도 이야기'라는 이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번 작품을 통해 카미야마 감독이 다시 한 번 증명해주었으면 합니다. 라이트 노벨의 가벼움과 모에스러움에게 둘러쌓인 지금의 아니메는 이제 지나치게 단맛만 강하니까요.

☞ 아 참, 이 작품은 얼마전 종방한 송승헌 주연의 '에덴의 동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헛갈리지 마세요.  저도 쓰면서 자꾸 에덴의 동쪽으로 오타가 나와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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