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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노 감독의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 목차>


기동전사 건담 F91 (1991), 機動戦士ガンダムF91 / Mobile Suit Gundam F 91


ⓒ SOTSU · SUNRISE


<정보>

◈ 원안: 야다테 하지메(矢立肇)
◈ 원작/감독: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
◈ 각본: 이토 츠네히사(伊東恒久), 토미노 요시유키
◈ 캐릭터 디자인: 야스히코 요시카즈(安彦良和)
◈ 메카닉 디자인: 오카와라 쿠니오(大河原邦男)
◈ 작화감독: 키타하라 타케오(北原健雄), 무라세 슈코우(村瀬修功), 고바야시 토시미츠(小林利充)
◈ 미술감독: 이케다 시게미(池田繁美)
◈ 음악/노래: 카도쿠라 사토시(門倉聡) / 모리구치 히로코(森口博子)
◈ 제작/프로듀서: 야마우라 에이지(山浦栄二) / 나카가와 히로노리(中川宏徳)
◈ 제작사: 선라이즈, 나고야 TV, 반다이, 쇼치쿠, 소츠 에이전시
◈ 저작권: ⓒ SOTSU · SUNRISE
◈ 일자: 1991.03.16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액션, 전쟁
◈ 구분/등급: 극장판 / 중학생 이상 관람가 (PG-13)


<줄거리>

제2차 네오지온 항쟁으로부터 30년이 흐른 우주세기 0123년, 지온의 잔당마저 와해되면서 우주는 한동안 전란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동안의 평화로 인해 지구연방은 다시 나태와 부정부패로 얼룩지게 되고, 이러한 지구연방에 반기를 들고 고결한 귀족이 우주를 다스려야 한다는 코스모 귀족주의를 내건 로나 가문의 당주 마이처 로나와 신흥기업 붓흐 콘체른,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은 사병조직 크로스 본 뱅가드가 주축이 되어 코스모 바빌로니아 제국이 세워지게 된다.

우주세기 0123년 3월, 마이처 로나의 사위이자 크로스 본 뱅가드의 사령관인 카롯조 로나의 양아들 도렐 로나 대위가 이끄는 모빌 슈트 부대가 스페이스 콜로니 프론티어 IV를 급습한다. 갑작스런 크로스 본 뱅가드의 습격에 연방의 수비부대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이곳에 살고 있던 평범한 소년 시북 아노와 그의 친구들 역시 전화에 휘말리게 된다. 차례로 파괴되는 연방의 MS들 속에 시북은 엉겁결에 연방이 개발하고 있던 신형 MS 건담 F91에 탑승하게 되는데...


<소개>

'용자 엑스카이저(1990)'에서 전술했다시피, 나고야 TV의 토요일 밤 5시 반을 책임지고 있던 선라이즈 표 로봇 애니는 '기갑전기 드라고나(1987)'를 끝으로 한동안 사라졌다가 엑스카이저에 이르러서야 극적인 부활을 이루게 된다. 이는 반다이의 건프라에 의해 뒷전으로 밀렸던 전통의 완구 회사 타카라의 회심의 역습이기도 했으니, 경쟁사라 할 수 있는 반다이 역시 마냥 이것을 바라볼 수 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리얼 로봇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건담이라는 브랜드는 팬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문신과도 같았으며 이것은 반다이에게도 비즈니스적으로 마찬가지의 상황, 결국 용자 시리즈가 촉발시킨 로봇 아니메의 부활은 반다이에게로 하여금 건담 시리즈를 리부트는 시키는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건담 시리즈의 세번째 극장용 아니메인 '기동전사 건담 F91(1991)'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기동전사 더블제타 건담(1986)' 이후로 한동안 동면에 들어갔던 건담 TV 시리즈를 다시금 기획한다는 것은 반다이로서도 조심스러운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건담 시리즈는 이전과 달리 치밀한 사전 기획과 미디어 믹스가 전개되는데, 우선 건담 F91의 세계관을 팬들에게 좀 더 잘 이해시키고 관련 건프라 브랜드의 프로모션을 겸하기 위한 의도로, '기동전사 건담 F90'의 세계관을 1990년 여름부터 코믹스로 공개하게 된다. 건담 F90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건담 시리즈의 핵심 설정이라 할 수 있는 인간형 기동병기 모빌슈트의 크기가 대폭 축소되어 20m를 넘어섰던 전고가 15m 크기로 축소된 것이라 하겠다. 좀더 작고 세밀한 프라모델이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반다이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1/100 크기의 건프라가 1/144 크기와 별 차이가 없어지자 당시 기술력으로는 프라모델의 디테일과 기믹 구현에 있어서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고, F90, F91 시리즈에서는 1/144 브랜드가 사라지는 결과도 가져오게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건담 F90 외에도 건담 F91은 한가지 안전장치를 더 두게 되는데, 그것은 건담을 바로 TV 시리즈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용 아니메로 초반부의 이야기를 선공개한 후, 반응을 보고 뒷 이야기를 TV 시리즈를 기획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획 방향은 지금에 와서 보면 명백한 자신감 부족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자체가 아예 낯설은 작품이라면 모를까, 건담 시리즈는  이미 아니메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아니메다. 이것을 굳이 극장용 아니메로 만들고 추이를 본다는 의미는 건담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반다이 스스로도 확신을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는 아니었을까.

어찌되었든 이 기획을 실행하기 위해 반다이는 역습의 샤아 이후 한동안 휴식기를 갖고 있던 토미노 요시유키를 감독으로 기용하고, 마찬가지로 '비너스 전기(1989)' 이후 아니메 업계를 떠나 코믹스에만 전념하고 있던 야스히코 요시카즈를 다시 불러들여 캐릭터 디자인을 맡겼으며, 메카닉 디자인 역시 '기동전사 제타 건담(1985)' 이후 등장한 나가노 마모루, 코바야시 마코토, 후지타 카즈미, 이즈부치 유타카 등이 아닌 오리지널 시리즈의 디자이너인 오카와라 쿠니오를 복귀시키는 등 건담 시리즈의 리부트를 위한 최정예 멤버들을 소집하게 된다. 다만, 작화에 있어서는 야스히코가 캐릭터 디자인만을 맡으면서 신진들이 투입되었고, 이 때 참여한 무라세 슈코우는 건담 F91을 시작으로 '기동전사 V 건담 (1993)', '신기동전기 건담 W(1995)' 등 후기 건담 시리즈를 대표하는 작화가로 성장하게 된다.


이야기는 기존의 건담 시리즈와는 연관이 거의 없는 30년 후의 이야기이다. 토미노 스스로도 아무로와 샤아의 대결로 압축되었던 과거의 건담 이야기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건담 시리즈를 다시 시작할 동기부여가 되었을 터. 그만큼 건담 시리즈로 받아온 토미노의 스트레스는 큰 것이었는데, 이 때문인지 지온이나 뉴타입 등 과거 건담의 단골 설정들이 대거 삭제되고 새로운 설정들로 대체되며, 주인공 역시 히스테릭하고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던 이전의 주인공과는 달리 시북 아노라는 비교적 평범하고 무난한 성격의 인물이 맡게 된다. 극장 아니메의 이야기가 비록 프롤로그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많은 등장인물들이 죽어나가던 토미노의 이야기와 달리 어느 정도 해피 엔딩 형태로 마무리되는데, '무적초인 점보트3(1977)'부터 역습의 샤아에 이르기까지 토미노의 작품 패턴이 '새드 엔딩-해피 엔딩'을 반복하고 있음을 상기하면 역습의 샤아 이후 만들어진 건담 F91의 엔딩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다음의 작품이 지극히 암울하게 되리라는 의미기도 하지만. 실제로 V 건담을 상기해보면 이 가정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새로운 건담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윤곽이나 몇몇 설정이 기존의 건담 시리즈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건담 설계자인 주인공 시북 아노, 서로가 사랑하는 두 남녀 주인공이 적대한 두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는 현실, 가면을 쓴 주인공의 라이벌 격 악역 등, F91은 새로운 건담 시리즈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기존의 시리즈에서 별달리 나아간 점이 없다. 극장용 아니메가 건담 F91 세계관의 프롤로그적 성격을 띈 이야기이다 보니 기승전결의 한계를 갖고 있는데, 여기에 설정마저 기존 건담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으니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지루한 양상을 띄고 있다.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구겨 넣으면서 스토리 흐름이 무너진 것도 또 하나의 악재다.

한가지 더 짚고 가야할 것은,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심오한 인간 드라마를 구축하는데 있어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토미노이지만, 그에게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가진 드라마틱한 장면 구성이나 섬세한 연출력, 린 타로 혹은 데자키 오사무가 보여준 현란한 영상기법이 없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은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인데 TV 시리즈 등으로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이 된 기존의 건담 시리즈라면 큰 문제가 없었지만, 새롭게 시작된 건담 시리즈에서, 그것도 TV 시리즈가 아닌 극장 아니메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을 만한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를 보여주기에는 제아무리 토미노라도 역부족은 아니었을까. 반다이의 자신감 없는 기획과 참신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한 토미노의 연출 미스는 결과적으로 야심차게 시작된 건담 F91의 주요 실패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극장용 아니메 답게 작화의 퀄리티는 뛰어난 수준이며, 오랜만에 야스히코의 캐릭터(물론 그가 직접 그리지는 않았지만)를 건담 시리즈에서 볼 수 있다는 의의도 있다. 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상대측 모빌슈트의 트레이드 마크인 모노아이 타입의 마스크를 버리고, 독일군 방독면 형태의 마스크를 채용한 것도 나름 신선한 시도. 이 시도는 F91이 실패하면서 2년 뒤 V 건담에서 다시 한 번 사용되지만, V 건담마저 실패하면서 모노아이 디자인의 유무가 건담 시리즈의 성패에 있어서 하나의 징크스처럼 작용하게 된다. 다만, 건담 F91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91년부터 건담 시리즈는 다시금 부활의 날개를 펴게 되는데, 그것은 건담 F91과 비슷한 시기에 기획된 선라이즈의 또다른 건담 시리즈 때문이었다.

ⓒ SOTSU · SUNRISE · 講談社



<참고 사이트>

[1] 機動戦士ガンダムF91, Wikipedia Japan
[2] 機動戦士ガンダムF91 (1991), allcinema.net
[3] 기동전사 건담 F91, 엔하위키 미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SOTSU · SUNRISE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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