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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다양성, 마니아 계층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화후진국의 현주소.

ⓒ Blizzard Entertainment


2012년 5월 14일부터 시작된 '디아블로 D-1 행사'는 이제껏 보기 힘들었던 한국 게임문화 새로운 형태입니다. 마치 서태지 컴백 콘서트나, 아이폰 발매에 앞서 밤을 세워가며 기다리던 팬덤현상의 데자뷰인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솔직히 디아블로 시리즈를 1편부터 경험해온 원년(?) 디아블로 유저(라지만 그다지 열혈 디아블로 마니아는 아닙니다) 엘로스이지만 이번 디아블로 3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놀랍습니다. 출시 몇주전 부터는 저희 회사 건물 휴게실에서도 심심치 않게 디아블로 3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직원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10~20대의 젊은 세대들에게만 한정된 이슈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디아블로 3는 비단 게임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만의 이슈는 아닌가 봅니다. 유력 일간지들도 앞다투어 디아블로 3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요. 다들 행사장에 모인 수천의 게임팬들에 대한 놀라움의 기사로 가득합니다만, 아니나 다를까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담은 기사도 눈에 띕니다. ('ㅁ'일보의 모기사입니다만, 일단 링크는 안하겠습니다) 하긴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입니다. 불과 몇달전 청소년 셧다운제를 도입하며 여전히 게임과 같은 일부 장르에 대해 인색한 편견을 보내던 한국의 문화적 잣대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셈이죠. 

개인적으로는 이같은 기사 하나에 대해서 우려감을 표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인 이상, 언론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제약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인데요. 게임에 대한 우려감을 표현한 기사부터 그것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담은 기사까지 그 어떤 제약 없이 다양하게 노출되고 또 이를 인정해주는 저변이 생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정부가 크게 못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이 언론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임을 상기하면 시민들과 네티즌은 부디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야 겠지요.


다만, 우리가 상기해야할 것은 이런 게임과 같은 마이너(?)한 대중문화에 대한 보수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이 단순히 시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시대착오적 제도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7~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만화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이것이 얼마나 미개한 짓인지는 이제 많이들 인식하고 계실겁니다. 덕분에 한국의 만화는 오랜 세월 하청업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고, 요즈음에 와서야 비로소 조금씩 부활의 날개짓을 펴고 있지요. 만약, 당시 만화에 대한 인식이 전향적이었다면 한국은 지금쯤 훌륭한 문화 컨텐츠를 보유한 만화강국(비록 일본과 미국에는 못미칠지언정)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의 위치에 올라야 할 시기에 한국은 다시금 그 옛날의 미개한 짓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자신들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자충수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인정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만화강국인 일본도 과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주전함 야마토 극장판(1977)'과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 I(1981)' 개봉당시 였는데요. 주옥같은 만화영화를 여러편 만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영화에 비해 만화는 아이들의 문화쯤으로 인식하던 일본 사회는 야마토 극장판을 관람하기 위해 밤을 세고 줄을 선 팬들과, 건담 극장판 상영 전 특별 이벤트로 개최한 아니메 신세기 선언에 모여든 만오천명의 건담 팬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이를 일제히 신문기사에 대서특필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물론, 일부 언론들은 이를 보수적인 시각으로 다루기도 했었겠죠.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일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은 결과, 현재 일본은 미국만큼 엄청난 문화적 컨텐츠를 가진 국가가 되었습니다. 만성적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이 변치않는 선진국 대열에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문화적 선진성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한국이 문화적으로 일본을 월등히 앞서는 문화대국이었는지는 몰라도 20세기 들어와서는 분명 일본이 문화적 선진국입니다. 한국은 이를 따라잡는 입장이구요. 그것은 식민지 시대와 6.25 전쟁에 따른 역사적 암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 문화적 다양성을 받아들인 일본과 그렇지 못한 한국의 서로 다른 선택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저렇게 선진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단순히 경제적 성공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일본도 만화와 같은 일련의 '젊은 대중문화'를 저급한 문화로 인식하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문화적 전성기를 지났다고도 볼 수 있구요. 하지만, 그 다양성을 무조건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려하는 시각이 있지만, 이를 규제하지는 않습니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가 바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 중 하나는 아닐까요. 선진국일 수록 마니아들이 많다는 사실은 이러한 다양성과 선진국의 상관관계가 근거없는 가정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일 겁니다.

디아블로 3 행사장에 모인 수천명의 게임팬들을 게임 중독자로 비약해버리는 경직된 시각은 이런 점에서 몹시 위험스러운 생각입니다. 시각의 다양성을 인정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런 식의 가정은 이러한 시각의 기사를 싣는 보수언론의 문화적 가치관이 획일적이고 편향적이라는 비약적 가정도 가능하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한쪽에서는 게임의 부정적인 시각을 담은 사설과 기사를 쏟아내면서 자사의 게임 뉴스 사이트를 통해 게임 공략을 연신 쏟아내는 'ㅈ' 일보의 이중적 모습 또한 언론의 무책임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단면입니다. 디아블로 3의 출시는 하나의 게임 타이틀이 지닌 폭발적인 영향력과 함께 한국의 문화적 현주소를 또 한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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