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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조금일지는 몰라도 이 글에는 영화의 일부 내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단 1%의 스포일러도 원치 않으신다면 영화 포스터까지만 봐주세요. :-)

ⓒ 2014 Paramount Pictures


<스탭>

◈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 각본: 조나단 놀란(Jonathan Nolan), 크리스토퍼 놀란
◈ 제작: 에마 토마스(Emma Thomas), 린다 옵스트(Lynda Opst), 크리스토퍼 놀란


<줄거리> 

근 미래의 지구. 인류는 번성의 시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다가가고 있다. 땅은 더이상 농작물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고, 강력한 황사가 수도 없이 인류를 덮치자, 오랜동안 인류를 꿈꾸게 했던 우주도, 과학도 더 이상 인류의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황폐해진 땅에서 자랄 수 있는 몇 안되는 농작물을 키우는데 온 힘을 쏟으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었다. 농경사회로의 퇴행인 것이다.

한 때는 NASA의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히 분)는 장인 도널드(존 리스고우 분), 아들 톰(티모시 찰라멧 분), 딸 머피(멕켄지 포이 분)와 옥수수 농장을 꾸리며 살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NASA도, 우주비행사도 없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탐험과 발견, 그리고 우주를 사랑하는 쿠퍼와 그를 똑같이 빼닮은 딸 머피는 둘도 없는 막역한 부녀 사이. 머피는 자신 방 책장에서 책이 스스로 떨어진다면서 유령의 짓이 아닐까 걱정하지만, 쿠퍼는 그런 딸에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당부한다. 그러나, 황사 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딸의 방에 들이닥친 모래 먼지가 일정한 패턴을 그리는 것을 본 쿠퍼는 이것이 유령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상대성 이론, 신비로운 우주, 그리고 가족애. 부침은 있지만 감동은 살아있다.

군가가 제게 인터스텔라가 재미있냐고 물어보신다면, 아마도 저는 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것에 망설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터스텔라가 괜찮은 영화냐 물으신다면 망설임 없이 '예'라는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인터스텔라에 대한 제 감상평은 이 정도가 가장 알맞은 정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스텔라는 블록버스터 급의 스케일과 제작비를 자랑하는 영화지만, 그 속내는 정통 SF의 모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와 같은 선상에 놓여져 있습니다. 우주의 신비를 스크린 위에 표현하는 인터스텔라의 영상미는 근래 등장한 많은 SF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으뜸입니다. 단지 정통 SF 관점에서 이를 풀어냈기에 놀라움은 있어도 재미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인터스텔라가 천체 물리학적인 측면에서 완벽한 영화냐 라고 한다면 그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성 이론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삼은 인터스텔라는 고증에 있어서도 기존 SF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물리학적 지식을 요구하기에, 이 글에서 일일이 짚어가기에는 무리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황된 우주를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통 SF 영화로서의 가치는 유효합니다. 이는 작년에 개봉되어 많은 이들에게 극찬을 받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가 과학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웰 메이드 SF 영화로 평가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만화영화 블로그라는 이곳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면, 인터스텔라는 두 가지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안노 히데아키의 '왕립 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1987)'와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1989)'가 그것인데요, 전자는 블록 버스터급의 제작비를 투여하여 정통 SF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후자는 우주여행과 시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과학적 이론을 영화의 핵심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인터스텔라와의 교집합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는 인터스텔라의 소재가 완벽히 참신하지는 않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참신성이라는 측면에서의 감점 요소에도 불구하고 인터스텔라가 그려낸 우주는 물리학자들이나 이야기할 법한 심도 깊은 이론의 실체를 관객들에게 최대한 쉽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 그래비티가 중력의 영향력이 미치는 근거리 우주를 (많은 고증상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인터스텔라는 또다른 은하계를, 그리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SF 장르물에서나 볼 수 있는 웜홀이나 블랙홀을 관객들에게 최대한 현실적인 모습으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펼쳐지는 5차원의 세계는 그런 면에서 SF의 레전더리라 일컬어지는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마지막 챕터와 비교할만 합니다. 좀 더 감성적이지만 말이죠.


사실, 러닝타임이 거의 세시간에 이르는 인터스텔라의 전개는 기승전결로 볼 때 기와 전이 늘어지는 측면이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계속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반부가 늘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주인공인 쿠퍼와 딸인 머피의 관계를 보다 관객들에게 공감시키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부분이었다라고 보는데요. 반면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는 다소 갸우뚱 거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정통 SF로서 큰 호평을 받은 그래비티와 비교해도 분명 이야기의 흐름이 앞서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정통 SF에 가족이라는 구태의연한 테마를 조합한 이야기는 괜찮은 감정이입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매튜 매커너히와 어린 머피역을 맡은 멕켄지 포이의 호연 덕분이기도 할텐데요. 작년 아카데미 상에 빛나는 매커너히의 연기는 인터스텔라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군요. 전개에 이르러서는 광활한 우주의 모험이 이야기를 주도하면서 가족애라는 테마가 다소 희석되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녹화된 화상 데이터를 통해 느껴지는 애틋한 부성애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외롭고 메마른 우주여행에 쏟아지는 잔잔한 빗줄기처럼 촉촉한 느낌을 줍니다.

로봇들도 영화에서 상당히 큰 역할로 자리매김합니다. 전반적으로 심각함이 지배하는 인터스텔라에서 로봇들의 역할은 일종의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잔잔한 유머를 선사하는 존재들인데요.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모노리스와 유사한 형상은 분명 큐브릭의 영화에 대한 오마쥬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공의 존재들은 선배 SF영화에 비해 상당히 인간친화적인 모습으로 인간의 편에 섭니다. 어찌보면 이 메마른 SF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존재들인지도 모르겠군요.

인터스텔라는 분명 놀란 최고의 영화는 아닌 듯 보입니다. 다크나이트는 물론 이거니와 인셉션과 비교해도 인터스텔라의 뒷맛은 약간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영화 크레딧이 올라올 때의 느낌은 이 영화를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다소 난처할 정도였는데요. 굉장히 몰입하면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지루함을 느꼈던 부분이 있고, 또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예측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들도 있었던 것처럼 한마디로 결론을 내기에는 다소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인터스텔라는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가 스필버그의 필모그라피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한 위치를 놀란의 필모그라피에서 담당하지 않을까 조심히 예상합니다. 스스로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높은 기대치로 탄생시킨 이 영화는 분명 놀란 최고의 작품은 아닐지라도 놀란의 필모그라피에 있어서 반드시 회자될 작품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 2014 Paramount Pictures


덧붙임) 본문에서는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매튜 매커너히는 인터스텔라가 영감을 얻은 로버트 저메키스의 '컨택트(1997)'에도 주연으로 출연했었죠. 게다가 영화제작을 맡은 린다 옵스트는 컨택트의 제작자이기도.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고증에 참여한 물리학자의 킵 손 역시 컨택트 제작 당시 관여했던 인물이니 인터스텔라는 여러 측면에서 컨택트와 인연이 깊은 듯 합니다.

덧붙임) 제가 인터스텔라의 위치를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와 비교했는데, 사실 인터스텔라가 기획되었던 2006년 당시 감독은 스필버그였습니다. 스필버그가 조나단 놀란을 각본가로 고용한 뒤 내부 사정으로 하차하면서 그 뒤를 형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신하게 되지요. 스필버그-파라마운트 조합에서 놀란-파라마운트 조합으로 뒤바뀌니 그 때가지 놀란의 파트너 격이었던 워너가 자사의 영화/TV 시리즈 판권까지 넘겨가며 인터스텔라의 배급에 참여한 듯 싶네요. 결과는 과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4 Paramount Pictures에게 있습니다.



인터스텔라 (2014)

Interstellar 
8.1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매튜 매커너히,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제시카 차스테인, 케이시 애플렉
정보
SF | 미국 | 169 분 | 2014-11-06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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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Pictures

<스탭>

◈ 감독: 잭 스나이더(Zack Snyder)
◈ 각본: 데이빗 S. 고이어(David S. Goyer), 크리스토퍼 놀란
◈ 제작: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챨스 로번, 에마 토마스, 데보라 스나이더


<줄거리> 

무차별적인 자원개발로 붕괴의 위기에 놓은 행성 크립톤. 크립톤 최고의 과학자 조 엘(러셀 크로우 분)은 원로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크립톤의 정수를 담은 코덱스를 자신에게 맡겨 달라 제안하지만, 원로들은 조 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때마침 과격파인 조드 장군(마이클 섀논 분)이 이끄는 쿠데타 군이 원로원을 급습하고, 혼란을 틈타 조 엘은 코덱스를 탈취하여 자신의 거처로 급히 피신한다. 인공적으로 출산을 조절하는 크립톤에서 자연 출산으로 태어난 그의 갓난 아들 칼 엘(헨리 카빌 분)과 코덱스를 태양계에 위치한 행성 지구로 피신시키려는 조 엘 부부. 그러나, 칼 엘이 탄 비행선이 출발하기 직전, 조드 장군의 반란군이 조 엘의 거처를 급습하고 사투 끝에 간신히 아들을 떠나보낸 조 엘은 그만 조드에 의해 숨을 거두고 만다.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고 조드 장군과 쿠데타 군은 원로원에 의해 팬텀 존에 유배되는 형벌에 처해진다. 하지만, 조 엘의 예언대로 크립톤은 결국 멸망에 이르르고, 크립톤의 마지막 생존자 칼 엘은 코덱스와 함께 낯선 행성인 지구에 도착하게 된다. 그를 처음 발견하는 조나단 켄트(케빈 코스트너 분)와 마사 켄트(다이안 레인 분)에 의해 칼 엘은 클라크 켄트라는 이름의 지구인으로 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태양에 의해 세포가 강화된 클라크는 평범한 지구인과는 다른 초능력을 보유하게 되고,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체 방황을 거듭하게 되는데...


SF로 풀어낸 신화적 이야기, 일말의 아쉬움을 남기다.

금으로부터 약 30여년전인 80년대 초반 쯤일까, 리차드 도너의 슈퍼맨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흥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존 윌리암스의 시대를 초월하는 테마와 함께 시작하는 '슈퍼맨(1978)'은 비록 TV 브라운관에서의 시청이었지만, 당시 어린 나에게는 강렬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엘로스에게 있어서 슈퍼맨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와 함께 이제까지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보아온 영화 시리즈이기도 한데, 슈퍼맨은 미국의 히어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아이들에게는 상당한 임팩트를 준 캐릭터였음을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슈퍼맨의 첫 극장영화는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서만 알려져 있던 슈퍼맨이라는 만화 주인공을 전세계에 깊이 각인시킨 장본인이다. 비록 다른 나라의 만화 캐릭터이지만, 영화라는 영상매체를 통해 슈퍼맨은 글로벌한 대중 문화의 아이콘으로 수십년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남게 되었으며, 굳이 코믹스의 팬이 아니더라도 슈퍼맨과 그를 연기한 故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두 인물은 이제 미국인을 포함하여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신화적인, 혹은 상징적인 무언가로 자리매김했다고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신화가 되어버린 슈퍼맨과 크리스토퍼 리브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쥬였던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2006)'가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이것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많은 이들이 슈퍼맨에게 걸었던 기대 심리를 관점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엘로스의 관점에서 싱어의 슈퍼맨은 꽤 잘만든 '오마쥬'였다. 물론, 많은 한국 관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 하지만)로 막을 내렸을 때, 이제 DC의 간판 히어로는 슈퍼맨 보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새롭게 그려진 배트맨으로 바뀐 듯 보였다. 더 이상 빨갛고 파란 스판 덱스를 입은 우스꽝스런 철의 사나이가 등장할 무대는 그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히어로 장르 무비에서조차 없는 듯 싶었으며, 더군다나 2010년대에 이르러 히어로 장르의 주도권은 DC가 아닌 라이벌 마블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너 감독에 의해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코믹북 히어로가 미국을 대표하는 신화적인 캐릭터로 재창조된 후부터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슈퍼맨은 끝까지 잊지 않고 싶은 노스텔지어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세계화에 의해 그 미국적인 색깔이 비판받는다 할지라도 슈퍼맨은 많은 이들에게 그러한 존재이고 그러한 컨텐츠는 아닐까. 그리고 결국 그러한 사람들의 바람이 모아져 마침내 2013년 강철의 사나이가 우리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배트맨 시리즈를 완벽하게 부활시킨 각본가 데이빗 S. 고이어와 그의 단짝(?)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맨 오브 스틸(2013)'에 참여하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급상승했던 것이 사실이다. 놀란이 감독을 맡지 않더라도 고이어의 각본이라면 충분히 슈퍼맨을 매력적으로 그려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비록 몇 차례의 작품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잭 스나이더가 감독이었지만, 그의 영상 미학 만큼은 계속 인상적으로 여겨왔기에 스토리만 잘 받쳐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과연 맨 오브 스틸은 이 기대를 100% 충족한 영화일까.


고이어와 스나이더, 그리고 놀란이 그려낸 슈퍼맨은 우선, 기존의 슈퍼맨 시리즈를 다시금 리부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크립톤에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데, 이미 도너 감독이 거의 완벽하게 그려냈던 설정에 대한 고이어판 해석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물론,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인상적인 크립톤의 모습과 말론 블란도의 '조 엘'이 보여준 카리스마를 넘어서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퍼스트이자 베스트였던 것을 재해석해야하는 난제를 풀어낸 이번 방식은 오리지널을 능가하진 못했어도 충분히 준수한 모습이었으며, 러셀 크로우의 '조 엘'은 블란도의 그것을 넘어서지는 못해도 충분히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

슈퍼맨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한 편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맨 오브 스틸은 사실 개봉 전부터 이 거대한 이야기를 한 편 안에 다 담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스토리에 치중하면 볼거리를 상실한 드라마가 되어버릴 것이고, 볼거리에 치중하다는 스토리의 밀도가 떨어진 그저 그런 블록버스터에 그치지 않겠는가. 그렇게 볼 때 맨 오브 스틸은 주어진 러닝타임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각본이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시간 순에 의한 전개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클라크가 과거를 부분부분 회상(플래쉬 백)하면서 관객들에게 그의 이방인으로서의 삶과 고뇌를 풀이하는 부분은 많은 것을 담아내야 했던 이 영화에 있어서 적절한 선택이었다. 다만, 그가 방랑의 길에서 지구를 구원하는 메시아로 재탄생하기 위한 심경의 변화를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에는 아무래도 짧았던 것이 사실이고, 마찬가지로 히로인인 로이스 레인과의 유대관계가 깊어지는 부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SF 장르로 슈퍼맨이라는 히어로물을 풀어낸 모양새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다. 원 시리즈만큼 독창적이진 않지만 크립톤 행성의 묘사와, 조드 장군의 일행이 지구를 침략하는 부분도 인상적. 다만, 많은 SF 영화들, 특히 최근에 개봉했던 작품들('우주전쟁', '트랜스포머', '스카이라인' 등등)이 반복적으로 보여준 모습이다보니 다소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이와는 별개로 연출 부분에서도 식상한 점들이 눈에 띄는데, 기존의 스나이더 식 슬로우 액션이 사라진 대신 급격스러운 줌 인으로 마치 핸드 헬드를 연상시키는 촬영기법은 분명 현장감을 더해주기는 했지만, 이미 '아바타(2009)'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방식이다보니 그 역시 다소 신선도가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운 설정과 멋진 영상기법이 펼쳐지고 있지만, 독창적인 면이 부족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고편을 통해 많은 이들을 열광시킨 슈퍼맨의 강렬한 액션은 확실히 압도적인 스펙타클함으로 관객들을 빠져들게 한다. 이제껏 보아온 모든 히어로 영화들 중에서 그 강력함과 스피드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비교적 최근 히어로물인 '어벤져스(2012)'와 비교하면 그 흐름이 단조롭다. 파워는 대단하지만 그 세기(디테일)가 모자란 셈이다. 상당히 몰입하며 감상한 것은 분명한데, 끝나고 나서 뭔가 알 수 없는 아쉬움을 남겼다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조드 장군과 슈퍼맨의 라스트 클라이막스는 그 파괴적이고 압도적인 힘의 대결만큼은 기대를 넘어섰지만 영화 전체적인 맥락 면에서는 다소 호흡을 끊는 부분이 있다.

맨 오브 스틸은 신화적인 초인의 이야기를 상당히 고급스럽고 또한 흥미진진하게 풀이했다. 다만, 영웅의 탄생과 성장, 방황과 각성, 그리고 세상의 구원을 모두 한편의 이야기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로 인한 캐릭터의 소비도 매우 아쉬운데, 데일리 플래닛의 편집장인 페리 화이트역의 로렌스 피쉬번과 같은 인물은 실제 캐릭터나 배우의 비중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에서는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다만, 맨 오브 스틸의 성공이 확실해 보이는 지금, 1편이 성공 여부에 따라 후속편을 제작한다는 워너의 기획이 실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이 캐릭터들은 후속 시리즈에서 제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조나단 켄트로 분한 케빈 코스트너도 마찬가지. 비록 클라크의 회상으로 계속 얼굴을 내밀지만, 인상적인 아버지의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등장시간이 짧아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함은 아쉽기 그지 없다.

여러가지 인상적인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맨 오브 스틸의 완성도는 아쉬움이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이야기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고이어-스나이더의 투톱 시스템이 상당히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맨 오브 스틸의 완벽한 평가는 3부작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가 끝난 즈음에야 좀 더 확실해질지도 모르겠다. 완성도에서는 일말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SF 영화로 재탄생한 슈퍼맨의 리부트는 꽤 만족스러운 편이다.

ⓒ Warner Bros. Pictures

덧붙임) 맨 오브 스틸은 어떤 면에서 '매트릭스'와 맞닿아 있다. 자연출생이 아닌 인공 수정란에서 태어나는 크립톤인의 설정, 지구를 테라포밍하기 위해 지표를 꿰뚫는 크립톤의 우주선 등은 매트릭스의 그것과 닮은 부분이 있으며, 심지어 로렌스 피쉬번과 함께 스완익 장군으로 등장하는 해리 레닉스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락 장군을 연기했던 인물이다.

덧붙임) 비록, 신화적인 존 윌리암스의 테마가 구축한 아성과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만, 한스 짐머의 테마는 맨 오브 스틸과는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그만큼 이번 슈퍼맨은 어두운 편이었고, 그것이 기존 팬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측면도 있을 듯.

덧붙임) '이모탈스(2011)'에서 헨리 카빌을 보는 순간, 그전까지는 반신반의로 생각했던 그가 슈퍼맨에 상당히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른건 몰라도 슈퍼맨의 캐스팅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덧붙임) 다이안 레인. 매혹적인 미모의 이 여배우조차 세월의 흐름에는 어쩔 수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오히려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체 마사 켄트를 연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비록 짧은 등장이었지만 꽤 인상적이었다.

덧붙임) 조드 장군 역을 맡은 마이클 섀논을 보는 순간, 정웅인 씨가 오버랩된 것은 나뿐만이었을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rner Bro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맨 오브 스틸 (2013)

Man of Steel 
7.5
감독
잭 스나이더
출연
헨리 카빌, 에이미 아담스, 마이클 섀넌, 케빈 코스트너, 다이안 레인
정보
액션, 어드벤처, 판타지 | 미국 | 143 분 | 2013-06-13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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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Warner Bros


<스탭>

◈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 각본: 크리스토퍼 놀란, 죠나단 놀란(Jonathan Nolan)
◈ 제작: DC 코믹스, 레전더리 픽쳐스(Legendary Pictures), 신카피 필름(Syncopy Films), 워너 브러더스(배급)


<줄거리> 

조커와의 사투, 레이첼의 죽음, 그리고 하비 덴트의 비극적인 최후로부터 8년... 고담시는 하비 덴트의 죄를 대신 짊어진 배트맨(크리스찬 베일 분)의 희생으로 덴트법을 신설, 조직폭력배들을 일망타진하고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경찰청장이자 하비 덴트의 진실, 배트맨의 희생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고든 청장(게리 올드만 분)은 몇 번이나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평화로운 고담시의 모습을 보며 그 진실을 가슴에 묻어둘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거짓된 고담시의 평화는 계속될 것만 같았다.

8년 동안 자신의 저택에서 세상과 담을 쌓은 체 은둔해 오던 브루스 웨인. 하비 덴트와의 사투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된 웨인은 레이첼의 죽음이라는 크나큰 상실감을 가슴에 묻고 배트맨으로서의 모습 역시 봉인한 체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인의 등장과 함께 이 상처뿐인 평화와 웨인의 은둔 생활은 서서히 그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다소 아쉬운 완성도보다 더 아쉬운 것은 시리즈의 종결

트맨 시리즈 아니, 히어로 영화라는 장르를 새로운 화법으로 풀어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2008)'는 분명 히어로 영화의 범주를 넘어선 걸작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다크나이트는 범죄 느와르라는 영화장르에 히어로 영화의 미장센이 더해진 작품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만큼 배트맨 시리즈의 본연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있는 이질적인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맨 이야기의 중요한 설정들이 무리없이 영화 속에 녹아들어감으로써 배트맨의 팬들에게까지도 충분히 공감이 가능한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역시 놀란의 비범한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의 연속적인 대성공은 놀란을 좋은 감독에서 명감독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놓았다. 이제 그가 만드는 영화는 적어도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에 버금가는 수준일거야 라거나 그정도가 아니면 곤란하지 정도의 기대가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고나 할까. 이것은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론과 같은 블록버스터의 거장들이 공통적으로 짊어져야만 했던 숙명이기도 하다. 비록 그들과 출발점은 달랐다 해도 놀란 역시 스필버그나 카메론이 받아온 그 과도한 기대를 짊어져야 하는 순간이 온 셈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등장한 작품이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다크나이트라는 놀란표 배트맨 트릴로지의 최종장으로서, 그리고 이제까지 상승세로 일관해오던 놀란의 필모그라피 중에서 가장 큰 기대를 안고 등장한 신작으로서,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트 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를 탄생하게 한 놀란의 그 놀라운 감각이 과연 종언을 고하는 그의 마지막 배트맨 시리즈의 대미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의 성공이다. 아니 아트 블록버스터로서의 완성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다만 다크나이트나 인셉션이 보여주었던,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놀란의 영화 최대점에 못미칠 뿐이다.

ⓒ 2011 Warner Bros


이러한 감상은 많은 평론가부터 영화 블로거, 그리고 일반 팬들에 이르기까지 제법 공통적으로 느끼고 부분 같다. '역시 놀란, 하지만 다크나이트보다는 좀...' 이 정도가 이 영화에 대한 가장 대중적이고 다수결적인 평가가 아닐까. 시리즈의 대미 역시 훌륭하게 장식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아웃라인과 스토리의 흐름, 그리고 테마의 완성도 역시 3부작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히어로 영화 연작  시리즈 중 이제까지 어떤 시리즈도 이렇게 성공적인 완결을 보여준 예는 없다. 슈퍼맨 시리즈는 리차드 도너를 버림으로써 3부에 이르러 최악의 영화가 되었고, 팀 버튼의 배트맨 연작은 결국 죠엘 슈마허로 바톤 터치 되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시리즈도 마찬가지, 3부의 연출을 고사한 싱어 덕분(?)에 엑스맨 3부작도 그 완결은 심히 미약하였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 시리즈도 3부에 이르러 결국 많은 걸 잃어야만 했다.


여타의 히어로 연작 시리즈와 비교할 때, 아니 다른 모든 장르의 연작 시리즈와 비교해도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은 분명 놀라울 정도의 평균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즉 각 시리즈간 완성도의 편차가 크지 않다. 이는 단순히 전편보다 더 스케일이 크고 더 화려한 액션장면과 특수효과가 가미되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시리즈를 관통하는 스토리의 정합성,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충분히 공감이 가능토록 하는 개연성, 기승전결의 흐름과 극적인 전개, 그리고 허를 찌르는 반전에 이르기까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 시리즈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다크나이트를 넘어설 수 없었으며, 개인적으로는 분명 좋은 완성도임을 인정하면서도 실망이라는 단어를 자신있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만약,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3부와 4부로 나뉘어 졌다면, 아니 적어도 3시간에서 3시간 30분 정도의 러닝타임만 되었다면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그렇다하더라도 다크나이트를 능가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일말의 실망감을 극복해낸 보다 더 완벽한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러닝타임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스토리의 흐름이 지나치게 빠르고 호흡이 끊어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8년간의 은둔을 깨고 돌아온 배트맨, 그리고 그의 패배,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배트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도는 분명 극적이긴 하지만 2시간 45분이라는 시간 안에서는 그것이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새로운 빌런인 베인, 캣우먼 셀리나 카일, 젊은 경찰 존 블레이크 등 새로운 인물들에게도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시간이 할당되면서 각 에피소드들이 다크나이트가 보여준 정밀함을 보여내지 못한 것은 러닝타임에 대한 아쉬움을 더더욱 크게 하는 부분이다.

ⓒ 2011 Warner Bros


캐릭터의 설정에도 아쉬움이 있다. 특히 히로인의 경우가 그러한데 마리온 꼬틸라르를 제대로 활용해내지 못한 점이나 앤 해서웨이의 캣우먼이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에 방해가 되는 부분은 분명 놀란답지 못했다. 조커를 능가할 수는 없었지만, 톰 하디의 베인은 기대 이상의 아우라를 화면에 분출하며 강력한 빌런의 면모를 과시했음에도 이러한 베인마저 마지막에서는 납득하지 못하는 말로를 보여준다. 조커와 하비가 얼마나 극의 흐름을 극적으로 만들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전반적으로 캐스팅은 다크나이트와 인셉션 등 놀란의 대표작에 얼굴을 내민 단골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놀란 소속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작품인 듯한 느낌도 든다. 조셉 고든 레빗의 블레이크는 마지막에서 기대했던 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안타깝게도 놀란의 다크나이트가 여기서 끝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팬 서비스 정도에 그치고 만다.

한스 짐머의 웅장하고 어두운 음률을 바탕으로 구현해낸 고담 시와 다크나이트의 세상은 삭막하고 메마른 느낌을 완벽하게 전달해주면서 히어로 영화답지 않은 현실감을 영화에 부여한다. 아이맥스로 촬영해낸 압도적인 영상미는 3D CG와는 또다른 현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놀란과 그의 스탭들이 설계한 사운드와 영상미는 작품의 품격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느끼게 해준다. 스토리 외에도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보여준 많은 부분은 놀란표 영화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제 이 많은 것들은 배트맨 시리즈가 아닌 다른 영화에서 보여지겠지만.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히어로 영화의 스탠다드가 되지는 않겠지만, 히어로 영화가 어디까지 진중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걸작 시리즈로 기억될 것이다. 놀란이 물러난 뒤에도 배트맨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 후의 배트맨은 배트맨일 수는 있어도 다크나이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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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Warner Bros. Pictures


<스탭>

◈ 감독/각본: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셉 고든-레빗, 와타나베 켄, 마리온 꼬띨라르, 엘렌 페이지, 톰 하디
◈ 배급: 워너 브라더스


<시놉시스> 

인의 꿈에 접속할 수 있는 드림 머신 PASIV가 개발된 어느 미래, 타인의 꿈에서 정보를 추출해내는 최고의 실력자(극중에서는 추출자라 부른다)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파트너인 아서(조셉 고든-래빗 분)와 함께 코볼사의 의뢰로 비밀스런 업무를 실행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코볼사의 의뢰는 실패로 끝나게 되고 그들이 꿈 속에서 정보를 빼내려 했던 기업의 CEO 사이토(와타나베 켄 분)는 코브의 실력을 인정하고 역으로 한가지 의뢰를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꿈을 통해 모종의 무의식을 심는 작업인 인셉션(Inception).

경쟁사의 회장인 피셔가 임종할 시간이 다가오자, 사이토는 경쟁사를 분사시켜 그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인셉션을 실행하려 한다. 인셉션의 타겟은 피셔 회장의 아들인 로버트 피셔 주니어(킬리언 머피 분). 이제까지 공식적으로 성공된 인셉션은 한 건도 없을 만큼 일류 추출자들에게도 인셉션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내키지 않아 하는 아서와 달리 코브는 무언가에 홀린 듯 사이토의 의뢰를 수락한다. 그것은 바로 모종의 이유로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아이들을 두고 고국을 떠나온 그의 신변 문제를 사이토가 해결해 주겠다고 하는 매력적인 제안 때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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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블록버스터급의 지적 유희를 즐겨라!!
 

2010년의 전반부 영화계를 돌아온 블록버스터의 거장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휩쓸었다면 (물론, 아카데미 상에서는 '하트 로커'에 밀렸지만, 영화계 뿐만 아니라 3D 기술까지 새로운 이슈를 가져온 아바타의 영향력은 하트 로커를 능가했다고 봐야할 듯. 아바타가 2009년 작이긴 하지만 12월에 개봉된 영화이기에 실제 영향력은 2010년 초반부를 장악했다고 생각된다.), 아마 후반부는 블록버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아트 블록버스터'의 귀재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 휩쓸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이제 불과 10일 남짓한 개봉기간에도 불구하고 이 예상은 거의 확실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 예상은 빗나가지 않을 듯 싶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인셉션에 열광하게 만드는가?

많은 평론가들이나 블로거들이 이미 지적했다시피 인셉션에서 등장하는 꿈을 훔치는 추출자의 이야기는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가상현실을 다룬 내용으로 오랜 고전소설부터 정신분석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언급되어온 이야기거리이다. 바꿔 말하면 그리 놀라울 것이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특히, 이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이야기는 10여년전 '매트릭스(1999)'를 통해 이미 세상사람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선사한 소재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줄줄이 제작되었던 적이 있었기에 과연 10년이나 지난 후에 비슷한 소재(물론,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이긴 하지만)로 제작된 이 영화가 얼마만큼의 차이점을 보여줄 것인가도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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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이 비슷한 소재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더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한 것은 아바타나 매트릭스와 같은 현란한 영상미라기보다는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에 일어나는 서스펜스, 즉 긴박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것이 꿈과 현실의 단순한 이중 중첩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들어간 꿈과 그 꿈속에 다시 들어간 꿈, 그리고 그 꿈 속에서 또다시 진입한 꿈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다층적 구조의 서스펜스이기에 관개들은 강렬한 몰입감과 함께, 스탭들이 만들어낸 복잡다단한 꿈과 현실의 중첩구조에 혀를 내두룰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꿈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아키텍쳐(꿈 설계자)와 추출차로 나뉘어지는 이론적인 정연함, 그리고 무의식의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토템'이라는 아이디어, 꿈에서 헤어나지 못한체 무의식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림보',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사용되는 ''의 개념 등 단순한 꿈과 현실의 넘나듬이 아닌, 이야기가 존재하기 위한 논리적이고도 현실적인 설정의 등장으로 이 영화는 판타지이면서도 판타지가 아닌, 꿈이면서도 꿈같지 않은 영화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 외의 설정이나 음악에서도 여러가지 재미있는 점이 눈에 띈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킥을 발동시킬 때, 꿈 속에 빠진 팀원들에게 킥이 발동됨을 무의식 속에 알려주기 위해 사용되는 음악인 에디트 삐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라는 샹송은 에디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라비앙 로즈'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래로서, 과거의 후회 속에 트라우마에 빠져사는 주인공 코브의 상황과 묘하게 대비되는 느낌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극 중에서 코브의 아내 맬로 출연하는 마리온 꼬띨라르는 라비앙 로즈에서 에디트 삐아프 역할을 맡았다는 것. 이것이 놀란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모르겠으나(아마도 어느 정도 의도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묘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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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감독은 이외에도 관객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교묘한 설정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결말부분의 결정적 힌트라고 할 수 있는 코브의 결혼반지 아이템도 바로 그것. 관람에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이 부분(이걸 한번 관람에 눈치채신 분이 있다면 정말 뛰어난 관찰력을 지니고 계시다고 해야할 듯) 역시 우연이 아닌 감독의 의도된 장치라고 보는게 맞을 듯 싶다. 마치 복잡한 퍼즐을 연상시키는 듯한 영화 속에 교묘하게 내재되어 있는 설정들은 단순하게 재미로만 볼 수 있는 블록버스터급의 작품에서 지적인 희열을 느끼게 해주며 관객들을 인셉션으로 끌어들이는 두번째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인셉션은 이러한 복잡한 다층구조의 공간과 교묘한 퍼즐로 인해 관객에게 지적인 호기심을 줄지언정 현학적인 대사와 난해한 전개로 관객들에게 불편하거나 어려운 느낌을 심어주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오락영화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은 체 기존의 오락영화와 차별화되는 적절한 난해함과 적절한 복잡함을 부여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구태의연하지 않으면서도 본질인 재미를 놓치지 않은 이러한 균형미는 이 영화가 범대중적인 공감과 센세이션을 동시에 일으키며 흥행몰이를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트 블록버스터'라는 놀란 감독 자신으로 인해 창조된 이 신조어에 그야말로 완벽하게 부합하는 영화, 그것이 인셉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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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적절한 깊이를 갖춘 블록버스터 내지는 오락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저예산 영화를 만들면서 그 영화적 내공과 깊이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놀란 감독의 정체성에 있지 않을까도 싶다. 특히 미스테리와 같은 지적인 게임을 필요로 하는 영화에서 쌓인 감독의 연출력이 오락영화와 만나면서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이면에는 놀란 감독이 오락영화랑 의외로 좋은 궁합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이러한 오락성은 영화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실제 대중성을 담보로 하여 전개된 꿈과 현실의 다층구조는 생각 외로 단순한 직렬성을 보여주고 있어 예민한 관객이라면 오히려 기대치보다 단순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아니메 '이노센스'에서는 전자두뇌에 해킹을 당한 바토와 토구사가 현실과 해킹당한 가상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과 비현실의 다층구조로 볼 때 오히려 이 쪽이 좀 더 난해하고 능란해 보이는 부분도 있다.)

비록 놀란 감독의, 놀란 감독에 의한 영화이긴 하지만, 배우들의 호연도 무시할 수 없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겉멋들은 연기가 아닌, 살아있는 드라마와 같은 영화를 위해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력은 인셉션의 완성도를 뒷받침한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배트맨 시리즈부터 인셉션에 이르기까지 아트 블록버스터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이 바로 완성도 높은 배우들의 연기력인 것이다. '타이타닉' 이후 주춤했던 디카프리오에게 '셔터 아일랜드'와 이 '인셉션'은 다시금 그의 저력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된 듯 하다. 조연인 조셉 고든-래빗의 매력은 어느 부분에서는 디카프리오를 능가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칙칙한 남자들 사이에서 빛나는 상큼한 엘렌 페이지의 모습이 흐뭇하기까지 하다. (에헴...)

일반 극장에서 관람하는 바람에 그 저력을 완벽하게 실감하지 못했지만, 압도적인 영상미 역시 인셉션의 장점이다. 현란하다기 보다는 압도적이라고 해야할까, 특히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 분)가 처음 꿈으로 들어와 만들어내는 꿈속의 세계나, 림보의 단계에서 코브와 멜이 구현해놓은 세계는 아이맥스 영화관에서야 진정한 느낌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물론, '인셉션(Inception), 크리스토퍼 놀란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기대되는 미스테리 대작'에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애초에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되지 않은 인셉션이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보여질 때 얼마만큼의 차별화를 둘지는 의문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압도적인 꿈의 스케일을 좀 더 느낄 수 있는 점에서는 아이맥스도 나름 좋은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열린 결말로 인해 관객들에게 수많은 뒷 이야기를 남기게 하는 끝매듭 역시 유려하고 세련되다. 단순히 개운치 않은 뒷맛을 전달해주기 보다는 살짝 작은 탄성을 일으키게 하는 여운을 남겨준다. 감독이 생각한 진정한 결말은 무엇일까? 그것을 추론해보는 것도 좋지만 그 자체의 느낌으로 간직하는 것도 나름 좋지 않을까 싶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스타일을 좋아한다.)

인셉션, 이제 블록버스터급의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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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아차, 한가지 더. 극 중에서 피셔의 꿈 속에 들어간 코브들이 빗속의 추격전에서 모는 세단은 놀랍게도 현대의 중형세단 제네시스다. '트랜스포머 2'의 마티즈에 이어 한국 자동차들의 영화 속 선전이 놀랍다. (돈 좀 많이 썼겠다.)


<참고 사이트>

[1] [정보] 인셉션 : 25가지 완벽 분석 가이드 by 늑대발, DVDPrime.com (스포일러 있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rner Bro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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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와 블록버스터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 크리스토퍼 놀란과 '셔터 아일랜드' 이후로 또다시 미스테리로 우리를 찾아온 왕년의 꽃미남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신작 인셉션(Inception).

시작, 시초를 의미하는 단어인 인셉션이 타이틀로 쓰인 이 영화는 트레일러만으로는 과연 무슨 영화인지가 궁금할 정도로 신비롭고 미스테리합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와 같이 가상세계에서나 볼법한 세상은 영화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순식간에 접혀지는 도시의 모습이나, 중력의 영향의 미치지 않는 우주 공간인 듯 자유자재로 벽면을 타고 넘는 사람들, 그리고 시간이 멈춰진 양 공중에서 굳어져 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다시금 놀란 감독이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미스테리와 스릴러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블록버스터에 연결시키는 이전작의 모습처럼 이 작품 역시 단순하게 치고 받는 헐리우드의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이상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의 꿈을 해킹하는 마인트 해커라는 설정은 이미 매트릭스를 전후로 잠시 붐을 타고 만들어졌던 일련의 가상현실 영화(다크시티, 엑시스텐즈, 13층 등)들과 그리 다를 바는 없어보입니다. 가상현실을 기본으로 제작된 영화들 대부분이 미스테리라는 장르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과연 동일한 미스테리를 소재로 다룬 이 영화가 얼마나 차별점을 보여줄지 의문이 들구요.

하지만, 놀란 감독이라는 네임밸류만으로 우리는 이 영화과 이전의 많은 가상현실 미스테리 영화들과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줍니다. 이미 슈퍼히어로물을 훌륭한 범죄수사물로 탈바꿈 시킨 그의 역량이나 메멘토나 프레스티지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감각, 그리고 다른 영화들에 비해 보다 더 가까운 느낌을 주는 듯한 현장감 등은 인셉션을 이전의 선배격인 영화들과는 차별화시켜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하는군요. 놀란 감독 자신도 이 영화에서 현장감, 현실감을 상당히 중요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감있는 영상을 위해 IMAX 카메라가 아닌 Anarmorphic 35mm와 65mm, 그리고 비스타비전(VistaVision) 등을 혼합하여 촬영했다고 하는군요. (위키피디아 참조)

이미 '셔터 아일랜드'를 통해 미스테리에서도 훌륭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이 영화에서 재 역활을 해줄 것이라는 신뢰를 줍니다. 그의 경우에는 인셉션 후에도 프리즈너(Prisoner)나 로우 드웰러(The Low Dweller)와 같은 일련의 스릴러 물에 캐스팅이 예정되어 있는데 당분간 미스테리 스릴러 계열의 작품에서 계속적인 활약을 보여줄 것 같은 예감이군요.

'엑스맨 3: 최후의 전쟁'에서 앳띈 모습으로 얼굴을 알리고 '주노'를 통해 연기력을 겸비한 주연급으로 성장한 앨렌 페이지가 이번 영화에 출연하며 전작과는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스토리 상으로는 페이지보다 더 큰 역할을 맡지 않을까 싶은 일본계 배우 와타나베 켄이 트레일러 상에서는 그닥 하이라이트가 비춰지지 않은 듯한 모양새군요. 와타나베 킨의 경우에는 '배트맨 비긴즈'의 라스 알 굴 역을 통해 이미 놀란 감독과 한 번 일해본 경험이 있기도 합니다. 

인셉션은 2010년 7월 15일 전세계 동시 개봉예정에 있습니다. 이 모든 기대감과 호기심은 앞으로 두 달도 체 안되는 시간 안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듯 싶군요. 그것도 아이맥스로 말입니다.

인셉션 한국판 포스터

인셉션의 또다른 포스터1

 

인셉션의 또다른 포스터2

인셉션의 또다른 포스터3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 권리는 © Warner Bros. Picture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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