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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Seoul Cultural Publishers, Inc.

가튼 렐름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 중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지도를 갖고 있는 R.A. 살바토레의 '아이스윈드데일' 트릴로지(3부작)가 마침내 한글판으로 번역되었습니다. 2년전 소설의 주인공인 드리즈트 도어덴의 성장기를 다루었던 '다크엘프' 3부작의 출간에 이어 번역된, 시리즈 중 가장 초기의 작품(소설의 시간대 상으로는 다크엘프 3부작에 이어 두번째 이지만)이자 가장 인지도가 높은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은 렐름에서 가장 매력적인 주인공 중 한명인 다크엘프(또는 드로우) 드리즈트 도어덴과 그의 절친한 동료들의 첫번째 모험담으로, 그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포가튼 렐름이라는 세상은 원래 TRPG(TableTalk RPG의 줄임말로, 주사위 보드게임 형태로 즐기는 롤플레잉게임을 이르는 말)의 세계관으로 사용되는 D&D(정확히는 후속편격인 AD&D)의 여러 세계관 중 하나로서, 아비어 토릴이라고 불리는 가상의 행성에서, 중세를 배경으로 다양한 환상 속의 종족, 천사와 악마, 요정과 괴물, 그리고 마법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드로우라 불리는 다크엘프는 원래 고귀한 요정족인 엘프족의 하나였으나, 지상의 엘프들과는 달리 지하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악하고 잔인한 검은 피부의 엘프들을 일컫고 있죠.

주인공 드리즈트 도어덴은 드로우로 태어나 드물게도 선한 마음과 정의감을 갖게 된 나머지 동족을 버리고 지상으로 올라온 유일한 인물입니다. 악의 인물이 선한 마음을 갖고 악당들과 싸운다는 시놉시스는 비슷한 류의 판타지 소설이나 코믹스 등에서 많이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흑요석에 비견될 정도로 새카만 피부와 눈부신 은발, 보랏빛의 눈동자를 지닌 이 미남 요정은 그 출신이나 그 외모만으로도 이미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요. 거기에 전광석화와 같이 빠르고 현란한 쌍검술, 항상 그를 도와주는 마법의 검은 표범 구웬휘바와 함께 한 그의 모습은 속된 말로 '그림이 된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R.A. 살바토레 소설의 매력은 드리즈트 도어덴의 비극적인 출신이나 매력적인 외모, 출중한 실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실제로 소설 속의 그는 뛰어난 전사이지만, 그에게 닥치는 시련은 언제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내야 할 정도로 절박하고 위험천만합니다. 아슬아슬한 위기를 겨우 극복할 만하면 또다른 위기상황이 숨쉴 틈 없이 몰아치며 독자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치 못하도록 합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의 빠른 검놀림처럼 위기와 극복, 모험과 전쟁은 3부작으로 이루어진 소설 내내 독자들을 열광시킵니다.

ⓒ Wizard of the Coast (Illustrated by Todd Lockwood)

아칼 케셀의 사악한 군대와 맞서 사투를 벌이는 드리즈트 일행들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강한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입니다만, 재미에 천작하여 소설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겐 생소한 렐름의 각 지역과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종족들의 생활방식의 묘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 환상의 세계를 마음 속으로 그려볼 수 있게 해주는 세심함은 재미를 주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묘사와 설명을 등한시하는 연륜이 짧은 판타지 작가들의 그것에 비해서는 확실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출신과 피부색 때문에 많은 렐름의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드리즈트의 모습, 그의 고독과 갈등, 그리고 친구들의 믿음과 우정과 같은 테마는 모험과 재미로만 흘러가는 이 소설의 중심을 잡아주는 훌륭한 테마입니다. 매 장마다 서두를 장식하는 드리즈트 본인의 회고록 또한 이 이야기의 현실성을 부여해주며, 동시에 들뜨는 분위기를 조용히 가라앉히는 역할을 훌륭히 해주고 있습니다.

시리즈가 오래 연재되면서 근래에 출간되는 드리즈트 도어덴의 이야기는 이러한 초심을 잃고 뻔한 흥미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은 그런 점에서 무게감이 잘 잡혀져 있는 대표적인 모험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Wizard of the Coast (Illustrated by Todd Lockwood)

미스랄 홀의 참상을 마주한 체 할아버지의 갑옷과 무기를 들고 복수를 다짐하는 브루노어 배틀해머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줄거리 역시 크게 3가지로 나뉘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1부 '마법의 크리스탈' 편은 사악한 힘을 지닌 유물 크렌쉬니본를 얻어 아이스윈드데일 지역의 텐타운을 정복하려는 사악한 마법사 아칼 케셀과 역시 크렌쉬니본을 노리는 악마 에르투, 그리고 드리즈트 도어덴과 그의 친구들인 드워프 브루노어, 바바리안 울프가, 하플링 레지스의 모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 '은색의 강' 편에 이르러서는 이야기가 전환되어 브루노어의 잊혀진 고향인 미스랄홀을 찾기 위해 아이스윈드데일을 떠나 렐름의 내륙으로 모험을 떠나는 드리즈트 일행과, 하플링 레지스의 뒤를 쫓는 드리즈트의 최대 라이벌, 암살자 엔트레리와의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3부 '하플링의 보석' 편은 엔트레리에게 납치당한 레지스를 구하기 위해 소드코스트 해안을 따라 최남단의 도시 칼림포트로 향하는 드리즈트와 울프가, 그리고 브루노어와 캐티브리의 모험을 이야기합니다.

환상의 모험이 가득한 세상,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은 오랜만에 일상의 반복된 생활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의 짜릿한 모험을 위한 훌륭한 여행권이 될 겁니다.

ⓒ Wizard of the Coast (Illustrated by Todd Lockwood)

다른 차원인 타르테루스에서 데모단드와 사투를 벌이는 드리즈트 일행들


☞ 아이스윈드데일 3부작은 시간 상으로는 다크엘프 3부작보다는 나중의 이야기이지만, 쓰여진 것은 먼저이기 때문에 드리즈트의 과거를 언급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크엘프 3부작과 모순되거나 안맞는 부분이 종종 있습니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듯.

☞ 드리즈트 도어덴의 이야기에는 그의 일행 말고도 렐름의 세계관에서 이름 높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미스트라 신의 힘을 이어받은 7명의 자매들인 세븐시스터즈는 미스트라에게 선택된 자들과 함께, 렐름의 세계관에서는 유명 인사이자 강대한 힘을 가진 이들인데요. 특히, 세븐시스터즈의 둘째인 실버리문의 여왕 알루스트리엘은 이 작품에서 드리즈트에게 연정을 품게 되는 설정으로 등장하시기도. 각종 렐름 팬 사이트에서 알루스트리엘이 드리즈트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글을 본적은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접하니 몹시 반가운 대목이었다는. 그런데 이분, 아들들이 꽤 많으시답니다. 선덕여왕의 미실과 비교할만한...

☞ 그외에 워터딥에서 잠시 대면한 켈벤은 바로 저 유명한 미스트라에게 선택된 자 블랙스태프 켈벤 아룬선이며, 그의 제자인 멜코어 할펠 역시 등장합니다. 다크엘프 3부작에서는 세븐시스터즈의 셋째인 도브 팔콘핸드가 지상에 처음 나온 드리즈트를 추적하는 레인저로 잠시 등장했지요.

마법의 크리스탈 - 10점
R. A. 살바토레 지음, 손원석 옮김/서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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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Ryoichi Yokomizo

본 추리소설의 거장 故 요코미죠 세이시 선생의 1951년작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라고는 하지만, 한 세기 전에 태어난 인물인지라 사실 국내에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인지도 자체는 그닥 높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른다 하더라도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탐정의 이름을 들어보면 어디선가 낯익은 느낌을 갖게 되는 분들도 있으리라 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추리만화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한국판 제목: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주인공인 김전일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명탐정이신 우리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의 바로 그 할아버지로,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해낸 희대의 명탐정이 바로 이 긴다이치 코스케인 것입니다. 실제 김전일이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긴다이치로 발음하며, 김전일의 원 일본이름은 긴다이치 하지메이죠.
 
일본 추리만화 초유의 베스트셀러에서 매번 거론되는 이 인물은 요코미조 선생과 그가 창안해 낸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에 대한 일종의 존경의 표현이며, 동시에 많은 일본 추리 매니아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고, 김전일(실제로는 긴다이치 하지메)은 그 이름으로 인해 긴다이치 코스케의 명성과 아우라를 어느 정도 등에 업고 작품을 이끌어 가는 것이기도 하구요.
 
자, 이 정도로 일본 내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이 작품 '악마과 와서 피리를 분다.'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77편의 에피소드들 중 15번째에 해당하는 비교적 초창기의 작품입니다. 초창기이다보니 당시 한참 전성기의 필력을 과시하던 요코미조 선생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실제로 당시 요코미조 선생은 이 작품을 포함하여 무려 세 편의 긴다이치 코스케 이야기를 집필 중이었다고 하는군요(시공사판 소설의 후기 참조).
 
비록, 영화로 대성공을 거두며 요코미조 선생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이누가미 일족'이나, '옥문도', '팔묘촌'과 같은 작품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긴다이치 코스케 팬들의 인기투표에서 당당히 3위에 올랐으며, 요코미조 본인은 베스트 7에 선정할 정도로, 이 작품의 완성도와 인지도는 높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로도 수차례 제작된 사례도 있지요.
 
 
기괴하고 미스테리한 몰락귀족의 가족사에 접근하는 명탐정의 여행기
 
작품의 전개는 밀실살인을 포함한 기묘하고 괴기스러운 살인 징후, 피해자와 주변인물들의 과거 속에 숨겨진 경악스러운 진실, 범인은 결국 주변인물들 중 하나라는 결과 등이 포함되어 있는 전형적인 요코미조식 추리 전개를 따르고 있습니다. 비록 요코미조 선생의 작품을 읽지 못한 이들이더라도 이러한 전개는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에서 익히 보아온 모습이기도 하지요. 정확히 말하면, 요코미조 선생의 스타일을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 스토리 작가들이 이어받았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요코미조 선생이 이전까지 그려왔던 피해자 가문에 얽혀 있는 낡고 고루한 인습과 삐뚤어진 과거에서 좀 더 나아가, 전후 몰락한 일본의 귀족제(일본에서는 화족제도)와 사회상이 반영되었단 점에서 이전 작품들과는 달라진 스타일을 보이고 있으며, 추리소설의 백미 중의 하나인 밀실살인이나 전혀 불가능 할 것 같은 범죄장면의 묘사보다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과거의 실마리를 하나둘 짜맞추어가는 이야기 전개에 그 비중이 더 맞추어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첫번째의 밀실사건이 발생한 후,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건 현장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보다는 이미 본편이 시작되기전 자살을 시도하면서 사건의 발단을 알린 피해자 가문의 가장 츠바키 자작의 행방을 쫓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30장에 이르는 본작의 구성에서 중반부는 바로 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츠바키 자작 행적 찾기에 할애되고 있지요. 이후 중후반부에 이루어지는 몇 건의 살인사건은 초반부의 밀실사건과 같은 불가능 범죄가 아닌, 일반적인 살인현장에 그치고 있어 상대적으로 살인사건 자체가 갖고 있는 미스테리함은 경미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작품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며, 세 건의 살인사건마다 축음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플루트 곡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의 기괴한 느낌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살한 츠바키 자작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 기괴한 플루트 곡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산한 츠바키 가문의 저택과, 몰락한 옛 귀족들의 음험한 과거, 그리고 피폐해진 패전 후의 일본(굳이 이 작품에서는 패전이라는 말보다는 전후로만 묘사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야 일본인이 쓴 이야기니만큼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치고)의 상황과 어울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몹시도 괴기스럽게 이끌어가고 있지요. 특히, 한국어판을 출간한 시공사가 자사의 블로그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이 기묘하게 음산한 플루트 곡을 들으면서 책을 읽어본다면 그 느낌은 확실히 평상시보다 강렬해질 듯 합니다.
 
 
깊은 풍미를 가진 고전적인 일본스러운 맛의 미스테리
 
전체적으로 작품의 흡입력은 강력합니다.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강렬하다고 할까요. 다만, 그 원동력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사건해결보다는 어둡고 사악한 악마의 과거가 숨겨진 귀족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긴다이치 코스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비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명탐정이 모든 사건에서 항상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에피소드 등에서도 몇 차례 보아온 모습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와 많은 동질감을 느끼는(물론, 김전일의 스토리 작가들이 요코미조 선생의 스타일을 답습한 것이지만) 전개 방식은 어떤 면에서는 친근감을 느끼게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식상함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작품 자체의 식상함이라기보다는 우연치 않게 비슷한 맛에 너무 길들여져 버린 독자들이 운이 없는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실제로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를 권당 2~30여번은 족히 보아왔던 제게 이 작품은 분명 멋지지만, '뭔가 예전에 한번은 먹어보았던 맛인데?'라는 느낌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익숙한 맛도 확실히 거장이 만들어 낸 맛인지라 식상함 속에서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의 작품이 몇 번씩이나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다시 김전일을 통해 비슷한 스타일로 미디어 믹스화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깊은 풍미에 대한 팬들의 욕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봅니다.
 
음산하고 음울하며 충격적인 귀족사에 얽힌 미스테리... 어쩌면 이 무덥고 습한 여름의 날씨에 제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렛츠리뷰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 10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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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 저/스튜디오 본프리 발행

본의 대표적인 건설기업 마에다 건설이 야심차게 시작한 황당무개 공상과학 현실화 프로젝트의 2탄 '은하철도 999 우주레일을 건설하라(마에다 건설 판타지 영업부 저 / 김영종 역 / 스튜디오 본프리 발행)'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저자인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이하 판타지 영업부)는 마에다 건설사가 건설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일반인들에게 마에다 건설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내에서 결성된 일종의 프로젝트 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판타지'라는 프로젝트 팀의 명칭처럼 그들의 방향성은 사뭇 환상적이고 현재로서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미지의 것들에 고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프로젝트 1탄이었던 마징가 Z 지하기지에 이어 이번에는 너무도 유명한 저 은하철도 999의 발차대인 우주레일의 건설을 그 목표로 하고 있군요. (아쉽게도 메텔은 여기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책 중의 등장인물인 B주임 말마따나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군요.)

 

판타지 영업부의 이 웅대무비(?)한 프로젝트는 사실상 그들의 브랜드/이미지 마케팅의 일환으로, 실제적인 건설 프로젝트라고 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습니다. 마에다 건설의 기업 이미지 개선과 홍보가 이 책을 펴낸 원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이 책의 또다른 의의는 브랜드/이미지 마케팅을 위한 홍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진지하고 열정적인 판타지 영업부의 프로젝트 수행자세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대충대충 우주레일 건설이라는 황당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려 하지 않습니다. 실제 건설에 필요한 여러가지 전문지식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그것을 우주레일이라는 상상 속의 건축물에 적용시키려 하지요. 현재의 기술력으로 가능한한 최선의 방법으로 우주레일 건설 프로젝트에 임하는 그들의 진지한 자세는 사뭇 놀랍기까지 합니다. 워낙에 꼼꼼하고 디테일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라지만, 이러한 판타지 영업부의 자세는 단순한 꼼꼼함을 넘어서 꿈을 향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비록 마케팅을 위한 홍보전략에서 시작했으나 그 과정은 홍보전략 이상의 열정을 품은 듯 느껴지는 것이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딱딱한 서술이 아닌, 판타지 영업부의 팀원들 간의 대화로 풀어나갑니다. 주축이 되는 A부장, B주임, C주임, D직원 외에도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알파벳 이니셜을 통해 등장하는데요. 이러한 이야기 스타일의 전개는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건설 프로젝트 미팅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단순히 건설 프로젝트 미팅에 대한 이야기만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은하철도 999 아니메에 관련된 각종 이야기들과 소소한 유머들을 곁들여 나름의 재미를 부여하려 합니다. 단, 그로 인해 좀 더 아니메 매니아적인 냄새가 풍겨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니메에 관한 관심이 그닥 없는 독자들에게는 그들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쉽사리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문적인 건설 지식도 깊진 않지만 꾸준히 등장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지만, 결국은 꽤 매니아적인 색체를 풍기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 저/스튜디오 본프리 발행

그러나, 언급하고 있는 아니메의 각종 장면이나 등장인물, 그리고 건축과 건설 등에 관한 각종 지식들을 주석과 그림으로 뒷받침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는 꽤 친절한 전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상 속의 건축물을 실제로 구현하려 하는 그들의 매니아적인 열정에 동참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굳이 아니메 매니아나 건설지식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읽는 시간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을 겁니다.

 

불가능한 꿈을 향한 인간들의 열정이 미래를 만들어 온 인간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분명 이 판타지 영업부의 프로젝트는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단순히 자신이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영화의 것들을 실제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취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정말로 현실로 만들어 보려하는 미래지향적인 열정에 대한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지요.

 

일본인들은 아톰과 건담 같은 로봇 아니메를 통해 로봇에 대한 꿈을 키워왔고, 세계 제일의 로봇 기술을 가진 나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워온 미국인들이 세계 제일의 우주항공 기술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물론, 미국인들의 이런 우주항공 기술은 냉전시대의 군사력 경쟁도 큰 몫을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한국 역시 이러한 상상력을 일깨울 수 있는 컨텐츠가 부족하다고 해서 꿈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잃어버려서는 안될 겁니다.

 

마징가 Z가 아니면 어떻고, 은하철도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무언가를 꿈을 꾸고 그 무언가를 현실화 하려한다는 의지와 도전정신이 있다면, 우리도 판타지 영업부처럼 비록 황당무개하더라도 언젠가는 이룰지도 모르는 꿈을 위해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은하철도999 우주레일을 건설하라! - 8점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 지음/스튜디오본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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