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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조금일지는 몰라도 이 글에는 영화의 일부 내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단 1%의 스포일러도 원치 않으신다면 영화 포스터까지만 봐주세요. :-)

ⓒ 2014 Paramount Pictures


<스탭>

◈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 각본: 조나단 놀란(Jonathan Nolan), 크리스토퍼 놀란
◈ 제작: 에마 토마스(Emma Thomas), 린다 옵스트(Lynda Opst), 크리스토퍼 놀란


<줄거리> 

근 미래의 지구. 인류는 번성의 시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다가가고 있다. 땅은 더이상 농작물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고, 강력한 황사가 수도 없이 인류를 덮치자, 오랜동안 인류를 꿈꾸게 했던 우주도, 과학도 더 이상 인류의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황폐해진 땅에서 자랄 수 있는 몇 안되는 농작물을 키우는데 온 힘을 쏟으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었다. 농경사회로의 퇴행인 것이다.

한 때는 NASA의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히 분)는 장인 도널드(존 리스고우 분), 아들 톰(티모시 찰라멧 분), 딸 머피(멕켄지 포이 분)와 옥수수 농장을 꾸리며 살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NASA도, 우주비행사도 없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탐험과 발견, 그리고 우주를 사랑하는 쿠퍼와 그를 똑같이 빼닮은 딸 머피는 둘도 없는 막역한 부녀 사이. 머피는 자신 방 책장에서 책이 스스로 떨어진다면서 유령의 짓이 아닐까 걱정하지만, 쿠퍼는 그런 딸에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당부한다. 그러나, 황사 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딸의 방에 들이닥친 모래 먼지가 일정한 패턴을 그리는 것을 본 쿠퍼는 이것이 유령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상대성 이론, 신비로운 우주, 그리고 가족애. 부침은 있지만 감동은 살아있다.

군가가 제게 인터스텔라가 재미있냐고 물어보신다면, 아마도 저는 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것에 망설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터스텔라가 괜찮은 영화냐 물으신다면 망설임 없이 '예'라는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인터스텔라에 대한 제 감상평은 이 정도가 가장 알맞은 정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스텔라는 블록버스터 급의 스케일과 제작비를 자랑하는 영화지만, 그 속내는 정통 SF의 모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와 같은 선상에 놓여져 있습니다. 우주의 신비를 스크린 위에 표현하는 인터스텔라의 영상미는 근래 등장한 많은 SF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으뜸입니다. 단지 정통 SF 관점에서 이를 풀어냈기에 놀라움은 있어도 재미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인터스텔라가 천체 물리학적인 측면에서 완벽한 영화냐 라고 한다면 그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성 이론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삼은 인터스텔라는 고증에 있어서도 기존 SF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물리학적 지식을 요구하기에, 이 글에서 일일이 짚어가기에는 무리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황된 우주를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통 SF 영화로서의 가치는 유효합니다. 이는 작년에 개봉되어 많은 이들에게 극찬을 받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가 과학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웰 메이드 SF 영화로 평가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만화영화 블로그라는 이곳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면, 인터스텔라는 두 가지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안노 히데아키의 '왕립 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1987)'와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1989)'가 그것인데요, 전자는 블록 버스터급의 제작비를 투여하여 정통 SF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후자는 우주여행과 시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과학적 이론을 영화의 핵심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인터스텔라와의 교집합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는 인터스텔라의 소재가 완벽히 참신하지는 않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참신성이라는 측면에서의 감점 요소에도 불구하고 인터스텔라가 그려낸 우주는 물리학자들이나 이야기할 법한 심도 깊은 이론의 실체를 관객들에게 최대한 쉽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 그래비티가 중력의 영향력이 미치는 근거리 우주를 (많은 고증상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인터스텔라는 또다른 은하계를, 그리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SF 장르물에서나 볼 수 있는 웜홀이나 블랙홀을 관객들에게 최대한 현실적인 모습으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펼쳐지는 5차원의 세계는 그런 면에서 SF의 레전더리라 일컬어지는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마지막 챕터와 비교할만 합니다. 좀 더 감성적이지만 말이죠.


사실, 러닝타임이 거의 세시간에 이르는 인터스텔라의 전개는 기승전결로 볼 때 기와 전이 늘어지는 측면이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계속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반부가 늘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주인공인 쿠퍼와 딸인 머피의 관계를 보다 관객들에게 공감시키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부분이었다라고 보는데요. 반면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는 다소 갸우뚱 거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정통 SF로서 큰 호평을 받은 그래비티와 비교해도 분명 이야기의 흐름이 앞서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정통 SF에 가족이라는 구태의연한 테마를 조합한 이야기는 괜찮은 감정이입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매튜 매커너히와 어린 머피역을 맡은 멕켄지 포이의 호연 덕분이기도 할텐데요. 작년 아카데미 상에 빛나는 매커너히의 연기는 인터스텔라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군요. 전개에 이르러서는 광활한 우주의 모험이 이야기를 주도하면서 가족애라는 테마가 다소 희석되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녹화된 화상 데이터를 통해 느껴지는 애틋한 부성애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외롭고 메마른 우주여행에 쏟아지는 잔잔한 빗줄기처럼 촉촉한 느낌을 줍니다.

로봇들도 영화에서 상당히 큰 역할로 자리매김합니다. 전반적으로 심각함이 지배하는 인터스텔라에서 로봇들의 역할은 일종의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잔잔한 유머를 선사하는 존재들인데요.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모노리스와 유사한 형상은 분명 큐브릭의 영화에 대한 오마쥬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공의 존재들은 선배 SF영화에 비해 상당히 인간친화적인 모습으로 인간의 편에 섭니다. 어찌보면 이 메마른 SF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존재들인지도 모르겠군요.

인터스텔라는 분명 놀란 최고의 영화는 아닌 듯 보입니다. 다크나이트는 물론 이거니와 인셉션과 비교해도 인터스텔라의 뒷맛은 약간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영화 크레딧이 올라올 때의 느낌은 이 영화를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다소 난처할 정도였는데요. 굉장히 몰입하면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지루함을 느꼈던 부분이 있고, 또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예측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들도 있었던 것처럼 한마디로 결론을 내기에는 다소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인터스텔라는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가 스필버그의 필모그라피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한 위치를 놀란의 필모그라피에서 담당하지 않을까 조심히 예상합니다. 스스로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높은 기대치로 탄생시킨 이 영화는 분명 놀란 최고의 작품은 아닐지라도 놀란의 필모그라피에 있어서 반드시 회자될 작품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 2014 Paramount Pictures


덧붙임) 본문에서는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매튜 매커너히는 인터스텔라가 영감을 얻은 로버트 저메키스의 '컨택트(1997)'에도 주연으로 출연했었죠. 게다가 영화제작을 맡은 린다 옵스트는 컨택트의 제작자이기도.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고증에 참여한 물리학자의 킵 손 역시 컨택트 제작 당시 관여했던 인물이니 인터스텔라는 여러 측면에서 컨택트와 인연이 깊은 듯 합니다.

덧붙임) 제가 인터스텔라의 위치를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와 비교했는데, 사실 인터스텔라가 기획되었던 2006년 당시 감독은 스필버그였습니다. 스필버그가 조나단 놀란을 각본가로 고용한 뒤 내부 사정으로 하차하면서 그 뒤를 형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신하게 되지요. 스필버그-파라마운트 조합에서 놀란-파라마운트 조합으로 뒤바뀌니 그 때가지 놀란의 파트너 격이었던 워너가 자사의 영화/TV 시리즈 판권까지 넘겨가며 인터스텔라의 배급에 참여한 듯 싶네요. 결과는 과연...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4 Paramount Pictures에게 있습니다.



인터스텔라 (2014)

Interstellar 
8.1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매튜 매커너히,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제시카 차스테인, 케이시 애플렉
정보
SF | 미국 | 169 분 | 2014-11-06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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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노출이 있으니 굳이 이를 원치 않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2013 Warner Bros. Pictures


<스탭>

◈ 감독: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 각본: 알폰소 쿠아론, 요나스 쿠아론(Jonás Cuarón)
◈ 제작: 데이빗 헤이맨(David Heyman), 알폰소 쿠아론


<줄거리> 

미션 스페셜 리스트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 그녀는 익스플로어 호에 탑승하여 지구궤도에 떠있는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에 올라와 있다. 베테랑 우주 비행사이자 이번이 마지막 비행이기도 한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가 그녀와 함께 했는데, 시종일관 유쾌하게 수다를 떨며, 우주를 비행하는 그와 달리 이번이 첫 비행인 스톤은 다소 긴장한 듯 컨디션이 별로 좋지는 않아 보인다.

한창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면서 코왈스키의 의미없는 수다를 건성으로 흘려듣던 그 때, 컨트롤 센터인 휴스턴으로부터 다급한 무선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폐기 위성을 처리하기 위해 발사된 러시아의 미사일에 의해 파손된 위성의 파편이 근처 궤도의 위성과 충돌하면서 연쇄반응이 일어나 익스플로어 호로 다량의 잔해가 접근중이라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다급하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려던 스톤과 코왈스키에게 위성의 잔해들이 맹렬한 속도로 접근하고, 손쓸 틈도 없이 익스플로어호는 케슬러 신드롬에 휘말려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CG미학의 결정체와 휴먼드라마의 완벽한 캐미스트리

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그래비티(2013)'는 분명 훌륭한 작품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2013년 최고의 영화로 꼽는다고 하는데, 그 의견에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래비티가 SF 영화사의 레전더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영화냐 하면 그건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오딧세이(1968)'처럼 거대한 철학적 담론과 완벽한 영상미가 조화를 이룬 심오한 SF 레전더리도 아니며, 오딧세이와는 완벽한 대칭점에 있는 SF 판타지의 기념비적인 전설 '스타워즈(1977)'의 상상력과 기발함을 담고 있지도 않다. 프랭클린 J 샤프너의 '혹성탈출(1968)'이 보여준 충격적인 미래상,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가 선보인 포스트모더니즘과 스릴러의 절묘한 조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런너(1982)'에서 느꼇던 디스토피아적이고 느와르적인 컬트함도 없다.

그래비티는 특수효과 측면에서는 스필버그의 뒤를 잇는 블록버스터의 거장 제임스 카메론의 완벽함에 근접해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과 삶을 향한 의지, 자연을 마주한 인간성의 되물음에서는 이전의 수많은 비슷한 영화(SF는 아니지만, 다른 재난영화)들과 비교하여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실과 가깝게 재현해낸 우주라는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향한 한 여성의 투쟁은 무척이나 현실감이 있고, 흡입력이 있으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특수효과를 통해 감독이 보여준 실제와 유사한 영상적 체험으로 인해 우리는 주인공 스톤과 한자리에서 우주의 미아가 되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진다.

이 영상적 체험이 다른 여타의 영화들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 영화가 조난 영화이기 때문이다. 액션, 미스테리, 스릴러, 판타지 등 SF 영화와 어울릴 수 있는 수많은 장르 중 재난 영화의 코드를 사용하여 미지의 우주에서 겪는 있을 법한 사고를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기시감으로 표현한 시각적 효과는 단순한 특수 효과 이상으로 관객들의 감정을 파고든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토리는 비록 단순하지만 뛰어난 CG와 맞물려 완벽한 캐미스트리를 뽐내고 있다. 만약, 이 압도적인 영상미와 어우러질 이야기의 깊이와 신선함이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SF 걸작들에 견줄 정도였다면 그래비티는 분명 그들과 같은 자리에 올라설 만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 2013 Warner Bros. Pictures



스톤과 코왈스키, 그리고 후반부는 거의 스톤 혼자서 이끌어가는 영화의 구도는 온전히 캐릭터와 메인 테마에게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이는 이미 '127시간(2010)'이나 '베리드(2010)'에서 우리가 보아왔던 것인데, 이런 영화는 당연하게도 주연배우의 연기 내공이 영화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산드라 블록은 분명 탁월한 캐스팅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딸을 잃고 생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여성 우주인 스톤을 실로 훌륭하게 표현해냈는데, 나약한 여성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강인한 여성으로 일어서는 모습은 흡사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1979)'의 시고니 위버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다. (ISS의 소유즈에 극적으로 랑데뷰한 뒤 우주복을 벗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스톤의 모습은 구명정을 타고 노스트로모 호를 탈출하여 동면에 들어가기전 속옷 차림으로 잠깐 동안 여유를 취하는 리플리를 연상시킨다.)

초반부에 펼쳐지는 20여분에 달하는 롱테이크 씬은 이 영화의 압권 중 하나다. 마치 우주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이 인트로는 아마도 21세기 들어 만들어진 영화들 중 가장 인상적인 인트로 중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이 외에도 계속적으로 영화에는 긴 롱테이크가 사용되는데, 뛰어난 3D CG와 함께 롱테이크 촬영기법은 관객들에게 실제와 같은 체험을 전달하는 그래비티만의 백미이기도 하다. 3D 역시 이 영화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 실제로 케슬러 신드롬에 의해 위성의 파편들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장면들은 입체 영상에서 더 빛을 발한다. 우주공간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리얼리티를 영화에 부여함으로써 영화는 시각적인 체험에 관객들을 더더욱 집중시킨다.

날카로운 과학적 고증의 잣대를 들었을 때, 그래비티 역시 많은 부분에서 그 점을 피해갈 수는 없다. 케슬러 신드롬이 발생하게 되는 과정과 조건, 제트팩만을 이용하여 ISS의 소유즈로 이동하는 여정, 소화기를 이용해 중국의 우주정거장 텐궁으로 이동하는 설정 등은 분명 극적인 상황을 위해 현실감을 무시한 부분이기도. 그러나, 우주공간에서 관성으로 인해 계속 빙글빙글 도는 우주인들의 모습, 우주 정거장의 해치를 열 때 기압 차이로 폭발하듯 열리는 장면, 극적으로 지구에 귀환한 스톤이 우주공간에서의 생활 덕분에 근육이 풀어져 한참동안 대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부분들은 분명 많은 SF 영화들이 놓치고 지나갔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비티는 2013년을 수놓은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고 놀라운 작품이다. 특히, 관객들이 우주 한복판에 있는 듯한 시각적인 체험을 통해 우주의 미아가 된 여주인공이 극적으로 지구로 귀환하는 여정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 점은 이제껏 다른 영화에서 느껴보지 못한 부분이다. 경이적인 영상효과를 이토록 이야기와 완벽하게 융합시킨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영화를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에 올려놓는 일부의 성급한 평가도 그런 점에서 그다지 과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 2013 Warner Bros. Pictures


덧붙임) 이제까지의 SF 영화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그래비티지만, 많은 부분에서 선배 SF 영화들의 클리셰를 등장시키고 있다. 본문에서 언급한 스톤의 탈의 장면도 그렇고, 'I've Got bad feelings about this'라는 코왈스키의 대사는 스타워즈의 한 솔로가 자주 말하던 대사. 여기에 미션 컨트롤 센터에서 스톤들과 교신하는 목소리는 이 영화와 유사한 장르라 할 수 있는 론 하워드 감독의 '아폴로 13(1995)'에서 컨트롤 센터 팀장으로 등장했던 에드 해리스.

덧붙임) 삶의 의지를 포기했던 스톤이 지구의 아마추어 무선 통신사 아닌강과 대화하는 장면은 쿠아론의 아들로 공동 각본가로 이름을 올린 요나스 쿠아론의 단편작 '아닌강'에서 아닌강의 시점으로 다시 그려진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라비티 DVD, 블루레이 타이틀에 포함될 듯. 아닌감?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2013 Warner Bro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그래비티 (2013)

Gravity 
8
감독
알폰소 쿠아론
출연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에드 해리스, 오르토 이그나티우센, 폴 샤마
정보
SF, 드라마 | 미국 | 90 분 | 2013-10-17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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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Pictures


<스탭>

◈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 각본: 트레비스 비챔(Travis Beacham), 길예르모 델 토로
◈ 제작: 토마스 툴(Thomas Tull), 존 제시니(Jon Jashni), 메리 패어런트(Mary Parent)


<줄거리> 

근 미래, 카이쥬(Kaiju)라 불리우는 외계 거대생물체의 위협이 시작되었다. 태평양 심해의 포탈에서 나타난 그들은 무차별적으로 인류를 습격했고, 인류는 카이쥬의 압도적인 공포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위협에 직면하여 힘을 합하기 시작한 인류는 거대한 카이쥬에 맞서기 위해 과학력을 모아 거대 인간형 병기 '예거(Jaeger)"를 만들고, 거대한 예거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기 위해 두 명의 파일럿이 서로의 정신을 공유하는 '드리프트'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드리프트 시스템과 막강한 예거의 전투력으로 세계 각지의 카이쥬들은 하나 둘 격퇴되기 시작하고, 이제 예거와 파일럿들은 인류의 구원자이자 히어로로 거듭나게 된다.

얀시 베켓(디에고 클래튼호프 분)와 롤리 베켓(챨리 헌냄 분) 형제는 예거 '집시 데인저'의 파일럿이었다. 바다 한복판에서 펼쳐진 카이쥬와 혈투에 의해 형 얀시를 잃고 반파된 예거를 혼자서 조종해 해안까지 다다른 롤리는 그 트라우마로 인해 파일럿을 그만두고 카이쥬를 방어하기 위한 장벽 공사의 인부로 살고 있었다. 인류의 지도자들이 갈수록 강해지는 카이쥬의 공격에 한계를 느끼고 예거 계획을 취소하고 장벽 만들기에 전력을 쏟자 예거 부대의 사령관 펜터코스트(이드리스 엘바 분)는 남아있는 예거들과 파일럿을 모아 카이쥬를 향한 최후의 반격을 시도하기 위해 은퇴한 롤리를 찾아나서는데...


마니아를 위한 압도적인 스케일의 헐리우드식 특촬물

'시픽 림(2013)'의 압도적인 예고편이 인터넷에 소개되기 시작하자 소년 시절의 로망으로 로봇을 품고 살았던 마니아들은 '트랜스포머(2007)' 이후 한동안 명맥을 잃었던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실사영화에 대한 또다른 기대로 이 영화의 개봉을 학수고대 했을 듯 싶다. 만화영화 블로깅을 취미로 삼고, 어린 시절부터 거대 로봇의 로망에 몸을 맡긴 체 중년이 되어서도 가끔씩 프라모델을 사면서 그 끈을 놓치않고 사는 글쓴이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 트랜스포머가 보여준 실사로 살아 움직이는 로봇을 넘어 아니메에서 보았던 거대 로봇이 미지의 괴수와 싸운다는 테마 하나만으로도, 퍼시픽 림은 분명 마니아들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극장을 사수해야할 가치가 있는 물건인 셈이다.

트랜스포머 이후 활발했던 거대로봇 실사영화의 흐름이 한동안 주춤하고 있는 (마니아들에게는) 안타까운 현상은 그만큼 이 장르가 실사영화로 이식되기에는 여러가지 난제를 갖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아니메에 기원을 둔 거대로봇은 그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로컬라이징이 그닥 쉽지 않은 마니아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아니메 스타일에 충실하면 대중성을 잃고, 대중성에 충실하면 특유의 색깔을 잃은 이도저도 아닌 물건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북미 TV 시리즈로 오랜 세월동안 자연스럽게 로컬라이징이 되어온 트랜스포머의 경우는 운이 좋았던 셈이랄까.

실사영화로의 이식이 어렵다는 것은 해당 장르에 대한 스탭들의 이해도도 한 몫을 한다. 한마디로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감독이 이런 마니아적인 소재를 실사로 이식하는 작업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벤져스(2012)'의 죠스 웨던이 마블 코믹스의 열렬한 팬이었이다는 것은 이를 증명하는 사례이며, 그런 점에서 길예르모 델 토로는 이 장르를 실사영화로 이식하기에는 적합한 연출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로봇 아니메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을 연상시키는 격납고와 거대 로봇의 움직임을 실감나게 표현해낸 육중한 연출, 흡사 '자이언트 로보(1991)'처럼 디지털 방식의 동력이 아닌 원자로가 장착된 아날로그 방식이라는 점 등 여러 장면에서 로봇 아니메의 향수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퍼시픽 림은 디테일하게는 로봇 아니메의 많은 장면과 설정들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특촬물(특수촬영물)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외계에서 온 거대 괴수와 거대 히어로의 대결은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울트라맨(1966)'의 구도를 따르고 있으며, 일본식 특촬물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혼다 이치로의 '고지라(1954)'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로봇 아니메와 특촬물, 이 일본의 양대 서브컬쳐를 오마쥬한 퍼시픽 림은 과연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와 결합하여 대중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퍼시픽 림이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느냐는 박스오피스의 수익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Box Office Mojo(바로가기)가 집계한 퍼시픽 림의 월드 와이드 수익은 현재 약 1억8천만 달러로 제작비 1억9천만 달러에 거의 근접한 수치를 기록 중이다. 개봉한지 약 2주가 지났음을 감안할 때 이는 실망스러운 수치라 하겠다. 북미 박스오피스 권에서도 퍼시픽림은 주말 수익 1천6백만 달러로 18일 개봉한 'RED2(2013)'의 1천8백만 달러에 뒤쳐지며 현재 6위에 머물고 있다. 이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퍼시픽 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어내는데는 사실상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퍼시픽 림의 흥행이 저조한 이유는 마니악한(물론, 어떤 관점에서 일본 서브컬쳐는 마니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는 않는다) 일본 서브컬쳐와 블록버스터의 조합이 실패했기 때문일까. 일본 아니메를 오랫동안 보아온 마니악한 입장에서 퍼시픽 림의 아니메/특촬물의 실사영화 이식은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압도적인 중량감과 스케일로 펼쳐지는 거대로봇 예거와 카이쥬와의 혈투는 그 장면만을 놓고 볼 때 단연 극장에서 볼만한 가치를 지닌 장면들이다. 힘과 힘의 격돌 뿐만 아니라 위기의 순간 튀어나오눈 예거의 각종 무기 시스템, 지형지물을 이용한 카이쥬와의 혈투 등은 그야말로 마니아들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에게도 탄성을 가져올만한 부분. 이 액션 시퀀스에서만큼은 직전에 개봉해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2013)'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스케일의 로봇과 괴수의 액션 사이사이를 이어가는 이야기의 얼개와 밀도는 다소 황당할 정도로 엉성한데, 바로 이것이 퍼시픽 림이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캐스팅에서 보다 유명한 배우들이 기용되었다면 어느 정도 스토리의 단점들이 감춰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보인다. 무명의 인물을 기용하고도 대히트한 블록버스터의 예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특히, 마코 역을 맡은 기쿠치 린코는 그녀의 연기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작품의 캐릭터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듯 싶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트라우마와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과정이 영화에서 너무 안이하게 그려져 마코 자체가 스토리의 가장 큰 오점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안타깝다.

주인공인 챨리 허냄은 이런 부실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주인공으로서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실상 퍼시픽 림의 주인공은 예거와 카이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형을 잃은 트라우마와 마코와의 관계형성에서 충분히 관객들에게 어필할만한 구도를 만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카이쥬의 등장부터 완벽한 격퇴가 러닝타임 안에 모두 그려지면서 그 기회를 잃은 듯 싶다. 그 와중에 등장한 두 박사나 특히 특별출연에 가까운 론 펄만의 하니발 챠우는 가뜩이나 풀어갈 숙제가 많은 이야기에 커다란 짐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론 펄만의 팬이지만, 이 작품에서 론 펄만은 등장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니발 챠우의 에피소드를 삭제하고 메인 스토리에 치중했다면 좀 더 이야기 구조가 짜임새 있어지지는 않았을까.

퍼시픽 림은 극단의 성향을 보여준 작품이다. 거대 로봇과 괴수라는 마니아적인 소재를 블록버스터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영상미로 재현한 부분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지만 그로 인해 감수해야만 하는 스토리의 부실함은 그만큼 안타깝다. 이런 류의 오락물, 특히나 로봇 또는 특촬물에 관심이 큰 마니아들을 위한 장르물에서 스토리의 완성도가 크게 문제가 안될지는 몰라도 퍼시픽 림이 완성도 높은 오락물로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최소한의 스토리 완성도는 보장되어야 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2억불짜리 오마주의 그저그런 흥행 성적이 추후 이런 장르의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길예르모 감독의 도전은 절반의 성공 혹은 안타까운 실패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 Warner Bros. Pictures


덧붙임) 객관적인 이 영화의 평점을 이야기해보라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겠지만, 주관적인 평점을 이야기하라면 5점 만점에 4점이다. 그러니까 마니아 층에는 나름 어필한 작품인 셈이다.

덧붙임) 카이주에 매달려 하늘로 끌려가는 집시의 비장의 무기인 검이 나오는 부분은 말 그대로 델 토로의 오덕스러움이 만개하는 장면. 검 모양의 아이콘이 그려진 집시의 버튼은 마치 '마징가 Z(1972)'와 같은 슈퍼 로봇의 그것을 연상시키며, 조각조각 나누어져 있던 검이 하나의 완전한 검으로 연결되는 모습은 흡사 '기갑계 가리안(1984)'이나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의 데자뷰가 느껴진다.

덧붙임) 마코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일본의 시가지와 카이쥬의 습격은 특촬물의 향수가 상당히 진하게 베어 나오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사실 오마주 그 자체나 다름없는 영화다. 그런 점에서 트랜스포머와는 확실히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Warner Bros. Pictures에게 있습니다.



퍼시픽 림 (2013)

Pacific Rim 
7.2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찰리 헌냄, 이드리스 엘바, 키쿠치 린코, 찰리 데이, 로버트 카진스키
정보
SF | 미국 | 131 분 | 2013-07-11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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