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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출연작
  - 은하철도 999 (1978, TV): 니시자와 노부타카(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은하철도 999 (1979, Movie): 린 타로(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은하철도 999, 유리의 클레어 (1980, Movie): 니시자와 노부타카(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안녕, 은하철도 999 (1981, Movie): 린 타로(감독) / 코마츠바라 카즈오(작화감독)
  - 은하철도 999, Eternal Fantasy (1998, Movie): 우다 코노스케(감독)
  - 메텔 레전드 (2000, OVA): 요코다 카즈요시(감독)
  - 우주교향시 메텔 (2004, TV): 마사키 신이치(감독)
 
이 외에 78년 TV 시리즈 중 일부 에피소드를 편집하여 재구성한 스페셜 시리즈가 4편이 있다. 또한 그녀는 TV 에피소드 '시간성' 편과 두 편의 극장판에 우정출연(?)했던 하록선장을 위해 1999년작 '하록사가'에 잠시 출연하기도 한다. 그리고, 2006년 작 '은하철도 이야기: 잊혀진 시간의 혹성' 편에서는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그녀 또한 하록에 이어 카메오 출연에 맛을 들이게 된다, 으흠.
 
 
사나이의 우주를 사로잡은 신비로운 금발의 여인
 
일전에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캡틴 하록... 벗이여 별바다로 떠나자'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7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스타일의 장대한 스페이스 어드벤쳐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를 선보이며, 일약 1세대 아니메 붐을 일으킨 마츠모토 레이지(물론, 야마토 성공의 일등공신은 프로듀서이자 야마토의 원안을 기획한 니시자키 요시노부가 더 유력하다고 볼 수 있지만)는 연이어 '우주해적 캡틴 하록'을 통해 마츠모토 식 SF를 팬들에게 선보이며 후에 '레이지버스(Leijiverse)'라 불리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마츠모토 레이지(이하 마츠모토로 표기)는 이 두 시리즈 이외에도 슈퍼로봇 장르에 자신만의 SF 드라마를 접목시킨 '혹성로봇 당가드 에이스(1977)'과 서유기의 세계관을 SF 어드벤쳐에 접목시킨 'SF 서유기 스타징가(1978)' 등을 연이어 선보였는데, 비록 이 두 시리즈는 레이지버스의 세계관에 속하는 것이 아닌 TV 시리즈를 위해 별도로 제작된 오리지널 에피소드였지만, 당시 마츠모토 레이지 스타일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로 굳어져 가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츠모토의 최고의 전성기는 어쩌면 지금부터 말하려는 이 작품과 이 작품에 등장했던 한 여인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선굵은 사나이들의 꿈과 우정이 담긴 비장함이 메인 테마로 자리잡고 있던 마츠모토식 이야기의 반환점이며, 동시에 자유와 꿈을 노래하던 모험 이야기에서 휴먼 드라마와 현실의 풍자를 담은 좀 더 깊은 이야기로의 진화를 예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병과 악조건 속에 인간의 몸을 기계의 몸으로 바꾸어 불로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미래의 지구. 기계의 몸을 가진 부유한(그렇지만 이제는 더는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인간들이 기계의 몸을 갖지 못한 가난한(하지만 진짜 살아있는) 인간들을 핍박하며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극단으로 치달은 세상에서 살고 있던 소년 테츠로(한국방영 명칭 철이)는 기계 인간들에게 목숨을 잃은 어머니의 소망을 위해, 그리고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연하게 만난 신비의 여인 메텔과 함께 은하철도 999를 타고 몸을 기계로 바꿀 수 있는 머나먼 별 '라메탈'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 속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갈등, 이별과 화해 속에서 소년은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년을 이끌어 주던 신비의 여인은 여행의 종착점에서 기약없는 안녕을 고하며 떠나게 됩니다. 소년은 이제 어른으로서 홀로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마츠모토식 휴머니즘에서 좀 더 진일보하여 비뚤어진 사회를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고 스스로가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 속에 진정한 삶의 의미, 인간다움에 대한 것을 깨우치는 TV 시리즈 '은하철도 999'는 관념적이고 이상적이었던 마츠모토의 이전 작품에 비하여 현실적인 소재가 투영된 인간 드라마를 선보이며 매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합니다. 작품 내내 테츠로의 원 목표였던 '기계 인간이 되어 어머니의 못다한 삶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명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만화영화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년의 성장을 한 여인이 조용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봐주고 이끌어 주면서 각 화마다의 엔딩은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여인은 한 번도 소년에게 강요하거나 지시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가 깨우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며, 특유의 포근함으로 소년을 감싸줍니다. 사나이의 무뚝뚝함과 강인함, 비장함이 작품 전체를 지배했던 마츠모토의 세계는 이 메텔이라는 여인에 의해 잔잔하고 부드럽게 변모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오히려 팬들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라는 옛말처럼 메텔의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움은 장대한 우주를 그녀의 무대로 바꿔버릴 만큼 조용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흡입력을 가진 블랙홀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츠모토 선생이 순정만화까지 섭렵할 정도로 작품 세계의 폭이 넓기에 가능했던 일 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마츠모토 특유의 가냘프고 고전적인 캐릭터 묘사로 표현된 그녀의 외모 또한 이러한 성격과 맞물려 큰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는데, 이미 '우주해적 캡틴 하록'를 통해 마츠모토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애니메이션화했던 작화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가 이 작품에서도 신비한 여인의 이미지를 숨막힐 정도로 멋지게 만화영화에 이식하면서 절정의 여성미를 보여주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어떤 여성 캐릭터보다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그러나 어둡고 슬픈 금발의 여인이 만화영화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잘 벗기도 합니다, 이 아가씨는. 그렇습니다, 소년들에게는 얼씨구나~였던 것입니다.) 

바야흐로 모든 소년들은 그녀를 연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정체불명의 신비로운 미녀, 항상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머니 같으면서도 누나같이 친밀한 존재. 메텔은 모든 소년들의 로망이었고 선망이었으며, TV 시리즈 마지막 화에서 보여준 테츠로와의 이별은 이 작품을 시청해온 소년들에게도 큰 슬픔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테츠로 뿐만 아니라 모든 소년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정처없는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 Matsumoto Leiji / 1978 Toei Animation

그림 1. TV 시리즈 '은하철도 999'의 스틸 및 엔딩 컷.


식을 줄 모르는 논란, 신비스러움에 가리워진 그녀의 진짜 정체는

(캡틴 하록을 성공적으로 연출했던) 린 타로 감독이 연출한 극장판 '은하철도 999'는 TV 시리즈에 이어 다시 한 번 대성공을 거두었고, 메텔은 예의 그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으로 이번에도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여기서 린 타로는 하록 TV 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츠모토의 세계관을 다시 한 번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게 되는데, 테츠로의 나이를 TV 시리즈의 10대 초반에서 10대 중반으로 바꾸어 사춘기의 방황의 끝에서 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소년의 모습을 좀 더 현실감 있게 그려 나갔으며, 하록을 위시한 레이지버스의 단골들을 이 작품에 특별 출연시켜 레이지버스와의 연관성을 공고하게 만드는 등, 자신의 스타일로 999와 메텔을 그려갔던 것입니다. 

감독의 재해석은 팬들의 큰 호응으로 이어졌습니다. TV 시리즈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지금까지의 극장판 만화영화들이 모두 총집편 내지는 일부 에피소드 편집본의 형태에 그쳤던 것에 비해 별도의 독자적인 형태(TV 시리즈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이 시작되었고, TV 시리즈 방영 중 극장판이 공개. [2] 참조)로 진행되었던 극장판의 성공은 후속편의 제작으로 자연스레 이어졌고, 결국 2년 뒤 '안녕, 은하철도 999: 안드로메다 종착역(1981)'이 개봉되어 연타석 홈런을 날립니다. 특히, 이 후속편은 직전 극장판의 다음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아쉬운 이별을 고했던 메텔이 다시금 테츠로와 재회하고, '라메탈'과 어머니 프로메슘, 그리고 테츠로의 숨겨진 과거와의 진정한 결말을 내는 그야말로 999 세계관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 됩니다.

특히 999의 연속적인 성공에는 탄탄한 원작의 스토리와 캐릭터, 스탭진들의 노고가 담긴 작품의 완성도와 같은 요인 외에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요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원한 히로인 메텔의 진정한 정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는 이미 TV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몸이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다름을 몇 차례 암시해 왔었으며,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그녀의 본 모습은 마치 신비스럽지만, 결코 드러내지 않은 미녀의 눈부신 나신과도 같이 소년 팬들에게는 끊임없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소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궁금증의 대상 역시 다름아닌 그녀의 그 '몸'이었던 것이구요.)

© Matsumoto Leiji / 1979 Toei Animation

그림 2. 극장판 '은하철도 999'의 스틸 컷.

메텔이 과연 인간인지 기계인지, 아니면 인간도 기계도 아닌 어떤 괴기스러운 모습의 생명체인지(혹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대한 논의는 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었고, 아직까지도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원작자인 마츠모토 선생의 어떠한 언급도 없는 이상 메텔의 정체는 영원한 우주 저끝처럼 신비에 묻힌 설정으로 남을 겁니다. 사실, 추측컨데 마츠모토 선생조차 그녀의 정체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은 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다만, 그녀의 정체를 보았던 시리즈의 등장 인물들의 충격에 휩싸인 모습(평생 글만 쓰며 여성을 돌처럼 알고 지낸 대문호가 메텔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녀를 취하려 하다가 본 모습을 보자 강렬한 충격에 휩싸여 다시금 글에 정진한다든지, 기계 몸을 강매하는 불법업자가 메텔의 진짜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든지 하는 장면. [5] 참조)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메텔의 정체를 지속적으로 궁금해 하며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는 마츠모토식 관객 유도 장치였던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팬들에게 먹혀든 것입니다.

그녀의 정체만큼이나 또 하나의 논란거리로 이어져 온 것은 바로 999에 이어 방송된 TV 시리즈 '천년여왕'과의 관계였습니다.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에 지구와 충돌하는 행성 '라메탈'은 열차 999의 종착지이자 여왕 프로메슘이 지배하고 있던 999 세계관의 행성 '라메탈'과 같은 이름이었고, 긴 금발을 휘날리는 천년여왕 유키노 야요이는 마치 메텔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길고 그윽한 메텔의 눈매와는 달리 동그랗고 큰 유키노의 눈은 젊은 시절의 메텔을 묘사한 듯 보이기도 했지요.) '라메탈'의 충돌위협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분전했던 천년여왕은 결국 오랜 세월이 흘러 인간의 모습을 버리고 어머니 프로메슘에 의해 불로불사의 어떤 것으로 몸이 바뀌었고, 이후 프로메슘의 명령에 따라 테츠로라 생각되는 소년들을 끊임없이 라메탈로 데려와 기계인간으로 만드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당시 팬들의 추측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는 천년여왕과 메텔이 동일인이냐 아니냐를 놓고 끊임없는 논쟁이 오고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82년 '천년여왕'의 극장판 개봉에 맞추어 마츠모토 선생이 비로소 공개한 설정에서 유키노 야요이는 메텔이 아니며, 유키노 야요이와 메텔 모두 프로메슘의 딸([4] 참조)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메텔과 천년여왕과의 관계는 일단락이 됩니다만, 같은 레이지버스의 캡틴 하록 세계관에서 비롯된 여러가지 설정 상의 미스매치와 함께 999와 천년여왕과의 나머지 관계 및 밝혀지지 않은 각종 미스테리들은 오랜동안 레이지버스의 뜨거운 감자로 남게 됩니다.

© 1981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그림 3. 극장판 '안녕, 은하철도 999'의 스틸 컷.


돌아온 그녀,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다
 
80년대 초반을 넘기면서 레이지버스는 팬들의 관심을 잃고 먼 동면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꿈과 자유를 동경하는 마츠모토식 복고주의와 낭만주의(거기에 보수적인 민족주의까지)는 80년대의 리얼리즘과 신세대의 사고방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스스로 과거로 남기를 자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 아득한 우주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났던 메텔 역시 그녀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수많은 소년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린 청춘의 환영이 되어버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새로운 바람 속에서 이전 것들을 다시금 부활시키고자 하는 지속적인 복고주의 열풍은 레이지버스라는 전설적인 세계와 인물들을 그냥 둘리가 만무했습니다. 1시간짜리 극장판인 98년작 '은하철도 999: 이터널 판타지'는 TV 시리즈에서 헤어졌던 테츠로와 메텔과의 재회(린 타로 감독의 극장판에서 보여준 테츠로와 메텔의 이별과 재회, 그리고 또다른 이별의 이야기와는 별개로)로 시작하여, 다시금 그녀와의 새로운 여행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 고풍스러운 증기기관차 형태의 999만큼이나 오래된 명작은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신세대 팬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하며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메텔과 테츠로의 20여년만의 재회와 여행은 몇 부작으로 기획될 이 반가운 이야기의 시작점부터 처참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작품 자체의 네임 밸류에 비해 연륜이 짧은 스탭진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생겼다고 추측되는 완성도의 문제는 올드 팬들에게는 (일부를 제외하고는)그다지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듯 싶고, 이미 너무 구시대적인 마츠모토의 낭만적인 이야기와 가치관은 신시대가 받아들이기에는 노인의 옛 이야기인냥 지루했던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올드 팬과 신세대 팬 모두에게 외면을 받으며 이터널 판타지는 일회성 판타지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 그것은 후속 레이지버스의 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터널 판타지의 제작을 맡았던 도에이 동화의 포기에도 불구하고 레이지버스의 작품들은 속속 다른 제작사들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같은 해에 '화성여단 다나사이트 999.9'(실제로는 이 작품이 98년도에 가장 먼저 제작된 레이지버스 작품)와 '퀸 에메랄다스'를 시작으로 이듬해 '하록사가'까지 등장하며 레이지버스의 전설들이 봉인에서 해방되면서 메텔의 재복귀에 힘을 실어주자, 2000년 그녀는 '메텔 레전드'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메텔 레전드는 여러 의미에 있어서 메텔과 그녀의 팬들에게는 색다른 것이었는데, 그것은 먼저 더이상 999에 몸을 싣고 테츠로의 성장을 지켜보는 숙녀 메텔이 아닌, '라메탈'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는 소녀 메텔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제작진은 이제까지 결코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999와 테츠로를 메텔에게서 과감히 떼어 버리고 오히려 그녀의 수많은 논란거리이자 베일에 쌓였던 과거를 공개함으로써 새로운 시점으로 메텔을 바라보는 시도를 합니다. 999와 테츠로를 대신할 자리에는 메텔의 어머니이자 천년여왕이었던 프로메슘, 그리고 그녀의 쌍둥이 언니인 에메랄다스로 바꾸어 극을 이끌어 갑니다. 이 놀라운 설정은 또다른 논란거리를 야기하는데, 이미 82년 마츠모토 자신이 밝힌 레이지버스의 인물관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메텔과 에메랄다스의 자매 설정(이전에는 친우로 표시, [4] 참조)이나, 유키노 야요이가 또다른 프로메슘의 딸이었다는 설정을 뒤집고 프로메슘 자신이라는 설정으로 과감히 바꿔버리는 등, 오랜 시절 레이지버스를 보면서 자라온 올드 팬들에게는 그동안의 설정을 모두 뒤엎어 버리는 당황스러운 전개였던 것이죠. (그런 점에서 흥미거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메텔 뿐만이 아니라 그녀만큼이나 신비로움을 가진 레이지버스의 히로인 천년여왕과 어린 시절의 에메랄다스(어릴 때조차  해골모양의 핀을 머리에 꽂고 있는 것을 보고 실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해적 덕후'였나 봅니다.)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올드 팬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반가운 일임에는 분명했던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2004년 '우주교향시 메텔'로 이어져 메텔의 성장과정을 다루게 됩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결국 그녀의 몸에 얽힌 진짜 미스테리는 여기서도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2000 Leiji Matsumoto / Tsurubaya Creative / Art Collection House / Avex

그림 4. 메텔 레전드 스틸 컷.


그녀는 소년 시절의 연인, 청춘의 환상

그녀는 이제는 올드 팬이 되어버린 30~40대 아저씨들의 소년 시절을 빛나게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어떤 만화의 여성 캐릭터도 그녀 이상의 아우라를 가지지 못했습니다.(개인적인 편차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 중에서 결코 논외가 될 수가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심지어 현실 속의 여배우나 가수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그녀. 오히려 만화 캐릭터였기에 그 정도의 신비로움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녀는 소년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고 때로는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지켜주었으며, 어려운 인생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해답을 찾도록 옆에서 조용히 조언해주는 우주의 등대와도 같은 여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올드 팬들의 청춘 속에 머무르는 환상이었습니다. 소년들에게 있어서 연상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심어주었고, 동시에 금발의 백인 미녀에 대한 쓸데 없는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으며,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을 추구하는 현대의 여성들의 다이어트 취향을 십수년이 넘게 먼저 선도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정말 소년시절의 모든 남성들이 바라마지 않는 완벽한 연인이었던 것입니다.

테츠로와 메텔, 즉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동양 소년과 늘씬한 금발의 미녀라는 인물구도는 ('천년여왕'의 유키노 야요이와 하지메, '퀸 에메랄다스'의 에메랄다스와 토치로 등 마츠모토의 대부분의 캐릭터 설정처럼) '연상의 여인에 대한 소년의 동경' 이외에도 '작고 왜소한 동양의 남성과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늘씬한 금발의 백인 미녀'라는 전형적인 구도를 보여주며, 개인적으로는 마츠모토 선생이 갖고 있던 보수적 남성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또다른 표현인 듯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숨겨진 의미(동양 남성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싶은 마츠모토식 남성미의 어필. 물론 확증은 없지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가 소년들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측면, 즉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소년을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는 따뜻한 여인의 모습이 더욱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정말로 그녀는 어린 시절 흠모했던 환상의 여인이었고, 이제는 더이상 그녀를 봐도 어떠한 떨림도 갖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린 아저씨들의 청춘의 환상일 겁니다.

© 2004 Leiji Matsumoto / Shogakan / Joy Square / Avex

그림 5. 우주교향시 메텔 오프닝 스틸 컷.


<참고 포스트>
 
[1] Galaxy Express 999, Wikipedia
[2] 은하철도 999 1979 1981 by 캅셀, Capsule☺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3] 은하철도 999 - 유리의 클레어 1980 by 캅셀, Capsule☺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4] 남겨진 메텔의 비밀 by 캅셀, Capsule☺블로그
[5] 은하철도 999와 메텔의 비밀 by 캅셀, Capsule☺블로그
[6] 은하철도 999 ~ 이터널 판타지 by 슈케르
[7] 은하철도 이야기 ~ 잊혀진 시간의 혹성 by 슈케르
[8] 은하철도 999 - 이터널 판타지 by 키웰, Kewell's Factory about Something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주의 TTB 리뷰 2010년 6월 1주차에 선정된 리뷰이며, 프레스블로그 2010년 07월 MP 명예의 전당에서는 발라당 미끄러진 글입니다.


은하철도 999 극장판 박스세트 (3disc)  -  10점
린타로 감독/DVD 애니 (DVD 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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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Warner Bros. Pictures

그림을 누르시면 공식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미스테리와 블록버스터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 크리스토퍼 놀란과 '셔터 아일랜드' 이후로 또다시 미스테리로 우리를 찾아온 왕년의 꽃미남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신작 인셉션(Inception).

시작, 시초를 의미하는 단어인 인셉션이 타이틀로 쓰인 이 영화는 트레일러만으로는 과연 무슨 영화인지가 궁금할 정도로 신비롭고 미스테리합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와 같이 가상세계에서나 볼법한 세상은 영화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순식간에 접혀지는 도시의 모습이나, 중력의 영향의 미치지 않는 우주 공간인 듯 자유자재로 벽면을 타고 넘는 사람들, 그리고 시간이 멈춰진 양 공중에서 굳어져 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다시금 놀란 감독이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미스테리와 스릴러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블록버스터에 연결시키는 이전작의 모습처럼 이 작품 역시 단순하게 치고 받는 헐리우드의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이상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의 꿈을 해킹하는 마인트 해커라는 설정은 이미 매트릭스를 전후로 잠시 붐을 타고 만들어졌던 일련의 가상현실 영화(다크시티, 엑시스텐즈, 13층 등)들과 그리 다를 바는 없어보입니다. 가상현실을 기본으로 제작된 영화들 대부분이 미스테리라는 장르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과연 동일한 미스테리를 소재로 다룬 이 영화가 얼마나 차별점을 보여줄지 의문이 들구요.

하지만, 놀란 감독이라는 네임밸류만으로 우리는 이 영화과 이전의 많은 가상현실 미스테리 영화들과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줍니다. 이미 슈퍼히어로물을 훌륭한 범죄수사물로 탈바꿈 시킨 그의 역량이나 메멘토나 프레스티지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감각, 그리고 다른 영화들에 비해 보다 더 가까운 느낌을 주는 듯한 현장감 등은 인셉션을 이전의 선배격인 영화들과는 차별화시켜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하는군요. 놀란 감독 자신도 이 영화에서 현장감, 현실감을 상당히 중요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감있는 영상을 위해 IMAX 카메라가 아닌 Anarmorphic 35mm와 65mm, 그리고 비스타비전(VistaVision) 등을 혼합하여 촬영했다고 하는군요. (위키피디아 참조)

이미 '셔터 아일랜드'를 통해 미스테리에서도 훌륭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이 영화에서 재 역활을 해줄 것이라는 신뢰를 줍니다. 그의 경우에는 인셉션 후에도 프리즈너(Prisoner)나 로우 드웰러(The Low Dweller)와 같은 일련의 스릴러 물에 캐스팅이 예정되어 있는데 당분간 미스테리 스릴러 계열의 작품에서 계속적인 활약을 보여줄 것 같은 예감이군요.

'엑스맨 3: 최후의 전쟁'에서 앳띈 모습으로 얼굴을 알리고 '주노'를 통해 연기력을 겸비한 주연급으로 성장한 앨렌 페이지가 이번 영화에 출연하며 전작과는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스토리 상으로는 페이지보다 더 큰 역할을 맡지 않을까 싶은 일본계 배우 와타나베 켄이 트레일러 상에서는 그닥 하이라이트가 비춰지지 않은 듯한 모양새군요. 와타나베 킨의 경우에는 '배트맨 비긴즈'의 라스 알 굴 역을 통해 이미 놀란 감독과 한 번 일해본 경험이 있기도 합니다. 

인셉션은 2010년 7월 15일 전세계 동시 개봉예정에 있습니다. 이 모든 기대감과 호기심은 앞으로 두 달도 체 안되는 시간 안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듯 싶군요. 그것도 아이맥스로 말입니다.

인셉션 한국판 포스터

인셉션의 또다른 포스터1

 

인셉션의 또다른 포스터2

인셉션의 또다른 포스터3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 권리는 © Warner Bros. Picture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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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또다시 시작된 J.J 에이브람스의 초특급 떡밥

 내년 여름 개봉을 앞두고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인 'SUPER 8'의 트레일러입니다. 캐스팅도, 스태프도 비공개인체 감독/각본의 J.J 에이브람스에 프로듀서는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가세하여 황금의 투톱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트레일러로 본 바에 의하면 이번 작품 역시 J.J 에이브람스가 프로듀서를 맡았던 '클로버필드(2008)'에 이어 무언가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일설에 의하면 이 작품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전 작내지는 그의 과거의 아이디어와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도 합니다만, 정확히 무슨 작품이 될지는 현재로서는 불명입니다.

자, 과연 어떤 스타일의 작품을 공개하려고 사람들에게 이리 호기심을 던져주는 걸까요. J.J 에이브람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던진 떡밥의 실체는 내년에 가서야 그 의문이 풀릴 듯 합니다. 깜짝 파티를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군요,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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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RISE Inc. All Rights Reserved.


연일 쉴새없이 쏟아지는 일본 아니메들의 헐리우드 영화화 소식 속에 또하나의 걸작이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기획 중에 있습니다. 주인공은 무려 카우보이 비밥.

 

사실, 카우보이 비밥의 실사화 얘기는 이미 올초에 등장한 이야기입니다만, 엘로스가 너무 늦게 이 소식을 접하는 바람에 이제서야 뒷북을 울리고 있습니다. 어쨋던 간에 꽤나 놀라운 소식이면서 동시에 기대 3, 우려 7의 그다지 크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는 작품입니다.

 

근래에 개봉된 많은 아니메 원작의 헐리우드 영화들은 대부분 기대 이하의 완성도를 보여준 것이 사실입니다. '스피드 레이서(2008)'나 '드래곤 볼 에볼루션(2009)'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구요. 전지현의 주연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2009)' 역시 헐리우드 영화는 아니었지만, 기대 이하의 완성도(사실 개인적으로는 기대 안하고 있었는데)로 흥행에 참패하였지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경우가 가장 성공한 예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작품은 80년대부터 미국에서 현지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과는 조금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하튼 간에 그런 점에서 이번 카우보이 비밥의 실사화 역시 기존의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공식을 대입할 경우에는 원작 특유의 색체를 잃어버린 그저 그런 범작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봇과 같은 아니메 특유의 특징이 드러나는 이전까지의 작품들에 비해 비밥은 원작 자체가 이미 영화적이면서도 서양적인 색체(웨스턴 느와르와 SF 어드벤쳐의 결합)를 띄고 있기, 가장 영화화가 무난하면서 동시에 그만큼 타 작품과 비교되는 매력적인 부분을 끌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작품이 아니니까요.

 

특히, 독특한 매력과 개성을 보여주었던 비밥의 캐릭터에 맞는 배역의 캐스팅,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작품과 적절하게 매치시킨 음악적 감성을 과연 얼마만큼 영화에서는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내느냐, 2시간의 러닝 타임 동안 비밥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시나리오 작업 등이 매우 어려운 난제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칫 잘못 만들면 앞서 언급했던 문제(원작 자체가 이미 굉장히 서양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로 인해 비밥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비밥의 색깔이 아닌 그냥 단순한 헐리우드식 SF 액션물에 그치기 때문인 것이죠. 드래곤볼의 독특한 외모의 주인공들이나, 트랜스포머의 로봇과 같은 아니메만의 색체가 비밥에는 없다는 것이 실사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구요.

 

캐스팅은 이미 올초에 언급이 되었듯이 키아누 리브스가 현재 스파이크 역으로 내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 부분 역시 기대반 우려반의 캐스팅이 아닐까 싶은데요. 확실히 근육질의 헐리우드 액션 스타들에 비해서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지만, 동시에 스파이크의 날렵한 절권도 액션이나 시니컬한 그의 스타일을 과연 리브스가 얼마나 잘 살려낼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매트릭스에서 보여준 그 어설픈 쿵푸 실력은 분명 날쌘 스파이크와는 안어울리는 모습이니까요.(게다가 요즘들어 살도 많이 찐 듯) 동시에 매트릭스 이후 긴 슬럼프를 겪고 있는 그가 과연 이 작품으로 멋진 재기에 성공할지도 관심사이구요. 그나마 조금 다행인 것은 '콘스탄틴(2005)'에서 보여준 모습이 나름 스파이크와 잘 매치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이번 9월 들어 리브스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시나리오의 재작업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초안이었던 시나리오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듯 싶은데요,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되는 만큼, 높은 완성도의 시나리오로 태어나길 기대해봅니다. 또한, 이번 작품에는 헐리우드의 스탭들 이외에도 아니메 비밥을 만들어내었던 일등 공신들인 와타나베 신이치로(감독), 노부모토 케이코(각본), 미나미 마사히코(프로듀서, 現 BONES 대표이사) 등이 컨설턴트로 참여하는 만큼 원작의 색체를 잃지 않는 영화가 되는 것 역시 기대 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페이는 도대체 누가 맡으려나요.

 

Live-Action Cowboy Bebop Proposal Officially Announced

Keanu Reeves: Live-Action Cowboy Bebop is in Rewriting

 

ⓒ SUNRISE Inc.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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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88mm, DEIZ / Geneon Universal Entertainment


2008년 극장판 아니메 '스카이 크롤러'로 우리를 찾아왔던 아니메의 철학자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다시금 새로운 신작으로 우리를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실사영화로 말이죠.

 

'아발론(2001)' 이후 다시금 새롭게 만들어지는 그의 실사영화는 '어썰트 걸(Assault Girl)'로, SF 장르의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사막을 무대로 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배경 속에서 '수나 쿠지라'라 불리는 거대한 모래 고래와 같은 괴물과 싸우는 세명의 여성 헌터가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그레이라 불리는 여성헌터는 메이사 쿠로키가 맡았는데요. 그녀는 '벡실 - 2077년 일본쇄국'에서 벡실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루시퍼 역의 린코 키쿠치는 오시이 감독의 전작 '스카이 크롤러'에서 쿠사나기 스이토 역을 맡아 이미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의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대령  역의 히나코 사에키는 오시이 감독옴니버스 영화인 진·여립음사열전(真 女立喰師列伝)의 첫번째  에피소인 '어썰트 걸: 켄터키의 히나코'에서 출연하며, 이미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어썰트 걸과는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앞서 언급한 린코 키쿠치 양도 오시이 감독의 또다른 단편 'Assault Girl 2'에 출연했다고 하는군요.

 

세 명 다 아니메와 영화 등에서 강인한 여전사의 역할을 맡아본지라 배역의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캐스팅보다는 오시이 감독이 전작 아발론과 여타 그의 아니메에서 보여준 그 난해하고 불친절한 스토리와 연출을 이번에도 고스란히 이 어썰트 걸에 대입할 것인지가 관건이 되겠군요. 40여초 정도의 분량으로 공개된 트레일러는 일단 괴물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세 명의 여주인공의 모습이 부각되었습니다만, 실제 전개는 어떨지.

 

어썰트 걸은 올 12월 19일 일본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상영될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썰트 걸과 더불어 오시이 감독이 2011년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는 극장판 아니메와 또다른 두 편의 실사영화도 기대를 해봅니다.

 

기사 출처: Oshii's Live-Action Assault Girls Feature in December, Anime News Network

 

예고편 보러가기

 

세 명의 여주인공 좌측부터 메이사 쿠로키, 린코 키쿠치, 히나코 사에키.

어익후, 좌측에서 우측으로 갈수록 연령대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래보이는군요, 불행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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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tarou Miura·Hakusensha

총몽을 헐리우드 실사영화로 제작하도록 한 프로듀서 노스롭 데이비스(Northrop  Davis)가 이번에는 베르세르크, 그래플러 바키, 멘발의 겐 등을 연이어 실사영화로 제작할 계획에 있다고 합니다. 아래는 해당 기사의 출처.

 

Berserk, Baki, Barefoot Gen Pitched to Hollywood

 

아직, 구체적인 제작계획이나 스탭진이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만, 헐리웃에서 이 작품들의 실사영화화를 검토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 합니다. 이 세 작품 외에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일본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전차남 역시 그 프랜차이즈 권리를 따온 것 같군요. 한꺼번에 4작품이나 런칭을 시작했으니 적어도 한 작품 이상은 실사영화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베르세르크는 많은 분들이 아시듯 강렬한 하드고어적 액션과 처절함으로 가득한 어두운 판타지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작품이 오락성이 가득한 헐리웃의 실사영화로 제작될 경우, 아무래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인데요. 요 근래 헐리웃 오락 영화에서도 굉장히 탄탄하고 사실적인 묘사들을 잘 해내는 감독들이 많이 늘어난지라 좋은 감독만 만난다면, 의외로 멋진 작품으로 탄생하지 않을까 싶은 기대 역시 큽니다.

 

그래플러 바키는 이타가키 케스케의 격투기 장르 코믹스로, 사실적이고 과격한 액션묘사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 전개는 굳이 아니메나 코믹스가 아니더라도 쟝 끌로드 반담과 같은 액션 배우들이 수차례 선보인 B급 격투영화에서 익히 보아온 전개이기에 영화화에 그리 큰 메리트가 있는지는 의문이 들긴 하는군요.

 

오히려 이들 중에서는 맨 발의 겐의 그 의의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합니다. 원폭이 떨어진 일본의 처참한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이 작품은 지극히 일본적이지만, 동시에 전쟁의 폐해와 군국주의 모순, 그리고 핵무기의 처참함을 알려준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핵무기의 위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지금의 세계에 어쩌면 공감가는 메시지를 선사할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좋은 감독과 각본가, 그리고 명배우들을 만나서 완성도 높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우선 과제이겠지만요.

 

헐리웃의 아니메에 대한 러브콜은 근래에 들어서는 거의 노골적이다시피 굉장한 러쉬를 이루는 듯 합니다. 아직까지는 트랜스포머 외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 없었습니다만, (사실 트랜스포머도 이미 하스브로 컴퍼니를 통해 미국 내에서 일찍 현지화를 이룬 후 실사영화화 되었기에 완전히 아니메를 옮겨온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군요.) 속속 제작되는 아니메 원작의 실사영화가 더 높은 완성도로 큰 반응을 일으킨다면, 일본의 아니메, 아니 대중문화는 지난 수십년간 세계에 끼친 파급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플러 바키(좌) ⓒItagaki Keisuke/Akita Shotend·Free Will / 맨발의 겐 (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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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20th Century Fox


타이타닉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던 헐리우드의 거장 제임스 카메론이 마침내 다시 돌아옵니다. 무려, 두 편의 영화와 함께 말이죠.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어비스 등에서 이미 SF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그의 이번 복귀작은 당연스럽게도 SF입니다. 게다가 단순한 실사영화가 아닌, 3D 최신기술이 총동원된 3D 애니메이션 + 실사영화의 조합이 될 듯 하군요. 퍼포먼스 캡쳐 방식과 3D 퓨전 카메라 시스템 등이 동원되어 굉장히 독특한 영상미를 보여줄 것 같습니다. 2008년 개봉예정이었으나 2009년으로 연기된 이 작품의 제목은 아바타.
 
올해 터미네이터 4: Salvation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샘 워딩튼을 비롯, 조 샐다나, 라즈 알론소를 비롯하여 제임스 카메론의 이전 작에 출연했던 시고니 위버(에일리언2), 마이클 빈(터미네이터, 에일리언2) 등도 출연하는 등, 캐스팅도 몹시 기대가 됩니다. 과연 오랜동안의 공백기를 접고 돌아온 거장의 SF가 어떤 모습으로 탄생될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한가지 더 반가운 것은, 카메론 감독은 이 아바타 외에도 무려 한편의 작품을 더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 두번째 작품의 제목은  바로 베틀 엔젤(총몽)입니다.
 
일본 아니메 팬들이라면 많이들 아실법한 이 작품은 기시로 유키토의 사이버펑크 작품으로, 90년에 출간되어 SF 매니아들에게 좋은 평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선택받은 자들만이 사는 공중도시 자렘과 그 아래 지상에서 살아가는 극빈층의 사람들. 자신의 몸을 사이보그 화하는 것이 일반화된 이 사회에서 인간의 생몸은 자렘의 이들에게는 비싼 값으로 거래되는 물품이며, 지상의 빈민들은 이를 통해 자렘으로의 진출을 꿈꾸게 됩니다. 총몽은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 속에서 기억을 잃어버린체 쓰레기더미 속에서 발견된 사이보그 소녀 갈리가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격투기술을 통해 강적들과 싸워나가면서 자신의 과거를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는 SF 격투 액션물의 수준이지만, 굉장히 암울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과 잔인하고 리얼한 격투 장면의 묘사, 암울한 세계 속에서 사이보그와 인간의 경계 속에 서있는 벼랑 끝의 인간군상이 겹쳐지면서 상당히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1993 Yukito Kishiro/Business Jump/Shueisha/KSS

 요즈음, 소재고갈로 인해 헐리우드가 일본 아니메를 영화화하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이번 카메론 감독의 배틀 엔젤은 그 중에서도 완성도 면에서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수준이 다른 작품이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봅니다. 게다가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 2, TV 미니 시리즈 다크 엔젤 등에서 이미 강인한 여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연출해왔던 카메론 감독인지라 이번 배틀 엔젤의 싱크로는 몹시 높지 않나 싶구요. 거기에 아바타에서 사용한 퍼포먼스 캡쳐 방식과 3D 퓨전 카메라 시스템, 그리고 실제 배우와 CG 캐릭터의 실시간 합성방식 등이 적용되어 코믹스에서 보여주었던 하드코어한 액션씬의 재현 역시 높은 수준으로 구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현재 아바타의 잇단 개봉연기로 인해 2009년 여름에 개봉예정이었던 배틀 엔젤 또한 무기한 개봉연기에 들어가게 된 듯 합니다. (아바타가 아직 공식 트레일러조차 공개 안된 것으로 보아 더 길어질 듯 싶군요.) 10년만의 복귀작이어서 그런지 카메론 감독도 각별히 신경을 쓰는 듯한 느낌이군요. 그가 다시 한 번 거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할 지 몹시 기대가 됩니다.
 
아, 이번 배틀 엔젤 기획은 총 3부작으로 첫번째 시리즈의 흥행 여부를 보고 차기 시리즈의 제작여부를 결정 짓는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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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zzard Entertainment


게임 시장에서 독보적인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블리자드 사의 대표작 워크래프트가 마침내 영화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감독은 무려 샘 레이미 감독.

공포영화 '이블 데드(1982)'로 독특한 감성을 선보였던 샘 레이미는 이후 다양한 영화를 거쳐 스파이더 맨 3부작으로 메이저 급 감독으로 우뚝서게 됩니다. 그런 그가 이번 워크래프트의 감독을 맡았다는 것은 영화화에 대한 신뢰도를 보장하는 보증수표와 같다고나 할까요.

ⓒ Bizzard Entertainment

근래 들어, 오락 영화를 스릴러 물이나 호러 물들을 연출했던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으면서 완성도가 높아지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보아왔습니다. '데드 얼라이브(1992)'나 '프라이트너(1997)'의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 3부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사례, '메멘토(2001)'의 크리스토 놀란 감독이 배트맨 시리즈를 대성공시킨 사례, '유주얼 서스펙트(1996)' 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엑스맨 시리즈와 슈퍼맨 리턴즈를 성공시킨 사례 등...

이런 측면에서 샘 레이미 감독의 워크래프트는 흥행을 위해 억지스런 재미에 치중하거나 단선적인 전개를 보이기 보다는 좀 더 현실감있는 판타지 영화로 재탄생 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큽니다. (물론, 우웨 볼 감독과 같은 예외도 있지만 말입니다.)

또한, 반지의 제왕 3부작 이후로 봇물처럼 제작된 판타지 영화들이 근래 들어 해리포터 시리즈나 나니아 연대기 외에는 대부분이 이렇다 할 완성도나 만족할만한 흥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워크래프트에 거는 기대 또한 무척 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톨킨의 중간계, AD&D의 포가튼 렐름에 버금가는 방대한 세계관과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는 아제로스 대륙의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영화화될지가 벌써부터 큰 기대를 갖게 하는군요.

ⓒ Bizzard Entertainment

영화 시나리오가 현재 공개되지 않은 상황인지라 과연 어떤 에피소드가 영화에 채택될지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서스 왕자의 타락과 아키몬드의 최후, 일리단의 음모와 리치왕의 부활을 다루었던 워크래프트 3편의 스토리가 가장 매력적인 에피소드이지만, 티리스팔의 최후의 수호자였던 메디브의 이야기도 영화화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싶구요.

워크래프트의 제작은 2011년 개봉 예정에 있는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4 촬영이 끝나면 시작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3편에서 생각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이번 4편의 촬영은 샘 레이미에게는 또다른 분수령이 될 듯 싶은데요. 우려가 되는 것은 이 4편의 성공 여부가 워크래프트의 영화제작에도 나름의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은 것이군요. 직전 영화에서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을 경우 상대적으로 차기 작품에서 힘을 발휘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모쪼록 높은 완성도로 제작되어 게임에서 느꼈던 전율을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관련기사>

☞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기사: BLIZZARD ENTERTAINMENT® AND LEGENDARY PICTURES SIGN SAM RAIMI TO DIRECT UPCOMING WARCRAFT® MOVIE
☞ XPorts News 한글 번역 기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레전더리 픽처스, 워크래프트 영화에 샘 레이미 감독 선정


※ 워크래프트까지 영화화되는 마당에 이제 남은 것은 포가튼 렐름의 다크 엘프 영웅 드리즈트 두어덴의 이야기일 듯. 과연 이것은 언제쯤이나 영화화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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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shizaki Yoshinobu · Matsumoto Leiji / Toei Animation

 소문으로만 무성하는 듯 하던 마츠모토 레이지의 장편 스페이스 판타지 우주전함 야마토의 실사영화화가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아래는 Anime News Network에 게재된 해당 기사.

 

Noboru Ishiguro Confirms Live-Action Yamato in Development, Anime News Network

 

감독은 야마토 첫번째 TV 시리즈의 작화감독에서부터 이후의 TV 시리즈에서 연출을 맡았던 야마토의 원년멤버이자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의 노장 이시구로 노보루가 맡았고, 야마토의 공동 창조자로, 긴 옥고와 길고긴 마츠모토 레이지와의 저작권 분쟁 끝에 마침내 돌아온 풍운아 니시자키 요시노부가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게다가 SMAP의 리더이자 일본의 대표 미남배우인 키무라 타쿠야를 캐스팅하여 다시금 야마토 부활을 위한 힘찬 시동에 들어간 듯 하군요.

 

올드팬들은 잘 아시겠지만, 우주전함 야마토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인 마츠모토 레이지의 첫번째 히트작으로, 70년대 후반 아니메 르네상스의 초석을 다지게 한 일본 아니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전 아니메의 SF 설정을 한단계 상회한 당시 야마토의 과학적 고정과 장대한 서사적 스토리는 수많은 매니아층을 생성했으며, 안노 히데아키와 같은 당시의 꿈나무들에게 기동전사 건담과 함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작품이기도 하지요.

 

국내에서는 우주전함 V 호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어 역시 커다란 인기를 끌며 국내 아니메 1세대들에게도 깊이 각인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핵심인 전함 야마토가 일본 제국주의 시절 건조되었던 일본 최대(最大)의 전함 야마토의 겉모습을 오마쥬(실제로, 작품 내에서 태평양 전쟁시절 침몰되었던 야마토의 잔해를 모티브로 삼아 야마토를 재건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지금도 기억)하는 등, 여러 면에서 일본의 보수적(우리의 관점에서는 제국주의적) 관점을 강하게 드러내며 불편한 감정 역시 가져다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2009년 중에 원래 극장판 아니메 '우주전함 야마토 - 부활편'의 제작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는 상황에서 이번 실사편 영화의 제작 발표소식은 꽤나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니시자키 프로듀서가 오랜만에 현업으로 돌아와 노구의 몸을 이끌고 꽤나 적극적으로 야마토의 부활에 앞장서는 듯한 느낌입니다. 극장판 아니메는 현재 12월에 개봉 예정에 있으니 실사 영화는 아무리 빨라도 내년 말 즈음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군요.

 

 

그러나, 이런 와중에 여러가지 우려와 불안감도 갖게 하는데요. 일단, 아니메의 그 방대한 SF 서사시를 실사영화화한다는 것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수준의 자본과 연출력이 필요한 것인데, 과연 그것을 아니메 감독 출신의 이시구로 감독이 잘 해낼 것인지가 궁금하구요.(물론, 전문 영화스탭들이 보조하겠지만.) 프로듀서와 감독 모두 70대의 노장들인데다가 원체부터 보수적인 색체를 띄었던 레이지버스의 작품인지라 과연 신세기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작품으로 탄생할지도 역시 걱정이기도 합니다.

 

아니메를 섣불리 헐리우드식 스타일로 변형하여 실패한 사례는 이미 '스피드 레이서'나 '드래곤 볼 에볼루션' 등에서 보아왔습니다만, 그렇다고 아니메적 감성으로 실사영화를 연출하는 것도 분명 이질감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을 터이니 그 부분의 조율과 노하우가 영화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관건이 아닐까 싶군요. 물론, CG의 완성도 역시 당연히 필요한 문제겠지요. 마지막으로, 군국주의의 정취가 풍기는 이 아니메가 실사영화로 등장했을 때, 과연 얼마만큼 일본적 보수주의가 배제되느냐 하는 것도 한국의 아니메 팬들로서는 나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기대와 불안감 속에 마침내 발진을 하는 야마토. 야마토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 실체를 드러낼지가 자못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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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의 '라스트 유니콘 (1982), 독특한 매력의 이국적 판타지'를 수정하여 옮긴 글입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inherited from ITC Entertainment)


<스탭>

◈ 감독: 아써 랜킨 쥬니어 (Arthur Rankin Jr.), 쥴스 배스 (Jules Bass)
◈ 원작/각본: 피터.S.비글 (Peter.S.Beagle)
◈ 제작: ITC Entertaiment, Rankin/Bass Production, Topcraft Studio


<시놉시스>

'라스트 유니콘 (1982)'을 참고하세요.


1. 동서양이 합작한 환상적이고 고풍스러운 모험 이야기

'Last Unicorn(이하 라스트 유니콘)'은 동서양의 제작진들이 힘을 합쳐 만든 다국적 작품으로, 감독과 원작/각본과 같은 핵심 스탭진은 모두 미국에서, 그리고 스폰서는 영국의 ITC Entertainment가 맡았으며, 원화와 동화는 일본의 소규모 스튜디오인 Topcraft가 맡았습니다. 특히 이 Topcraft의 참여야말로 이 작품을 다른 영미권 작품과 차별화 시켜주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선녹음 후작화' 방식으로 제작되던 미국식 만화영화 제작 스타일과 '선작화 후녹음' 방식의 스타일로 제작되어오던 일본식 제작 방식과의 조우과 과연 어떤 형식의 작품으로 표현될지가 흥미로운 부분인 것이죠.
 
기실 Topcraft는 이 라스트 유니콘에 있어서는 하청 제작업체내지는 용역업체와 비슷한 위치(감독, 각본 등 핵심 스탭진이 모두 미국인, 비즈니스적으로는 '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라고 볼 수 있기에 실제 제작방식은 거의 미국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미국식 제작방식을 일본의 스튜디오가 얼마만큼 잘 소화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비 디즈니 계열의 극장판 만화영화로서는 꽤나 높은 완성도로 탄생되지 않았나 싶은데, 물론 디즈니라든지 일본의 탑 클래스(그러니까, 풀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제작할 수 있었던 초창기 도에이 스탭진들 같은...)의 극장판 만화영화에 비해서 객관적으로 캐릭터의 동화적 표현 등은 떨어지긴 합니다만, 동양권의 작화방식이 서양방식의 표현 스타일과 맞물려서 이루어낸 듯한 미묘한 특이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시각적 경험이기도 합니다.
 
라스트 유니콘은 성우 캐스팅에서 놀라울 정도의 호화 캐스팅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주인공인 유니콘 역에는 존 패로우 감독의 딸이자 우디 알렌 감독의 전부인이기도 한 연기파 배우 미아 패로우(물론, 지금 들어보면 유니콘 목소리치고는 아줌마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어설픈 마법사 슈멘드릭 역에 뉴욕 비평가 협회 남우조연상, 아카데미 남주조연상 등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 알란 아킨, 흥행성과 연기성을 골고루 갖춘 배우 제프 브리지스가 리르 왕자, '반지의 제왕' 사루만과 '스타워즈 에피소드'의 두쿠 백작으로 잘 알려진 크리스토퍼 리가 해거드 왕 등으로 캐스팅 되어 지금의 미국산 대작 만화영화의 스타 배우 캐스팅과 견주어도 그다지 밀릴 것 같지 않은 높은 네임밸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니콘과 숲의 장면 장면이 움직이는 동화에서 태피스트리(벽걸이용 융단) 형태로 변모하면서 마치 동화 속의 환상이 벽화로 재현되는 듯한 오프닝은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옛스럽고 엔틱합니다.(이 태피스트리는 '유니콘의 사냥'이라는 실제 작품에서 모티브를 받은 듯 싶습니다.) 배경으로 흐르던 서정적인 오프닝곡은 그룹 아메리카가 불렀는데요, 후에 케니 로긴스나 In-Mood 같은 그룹에 의해 몇 번 리메이크될 정도로 인기도 있었지요. 특히, 이 고풍스러운 벽화와 서정적인 테마로 특징 지워지는 영상은 왠지 낯설지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니메 팬들 중에서는 기억하시는 분도 많으리라 봅니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초창기 작품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번째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에서는 메인 테마와 함께 화면을 장식한 고풍스러운 벽화 스타일의 오프닝이 등장합니다. 다음 작품인 '천공의 성 라퓨타(1986)'의 오프닝 또한 이 나우시카의 오프닝처럼 벽화 스타일과 유사한 고풍스러운 연출을 보여주고 있지요. 짐작하셨겠지만, 이 라스트 유니콘의 만화영화 제작진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진은 동일한 제작진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창설 당시 Topcraft의 인재들이 흡수된지라 초창기 지브리 작품의 오프닝은 우연치 않게도 라스트 유니콘의 그것과 유사한 느낌을 줍니다.  
 

Last Unicorn,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Nausica of the Valley of Wind, © 1984 Tokuma Shoten

그림 1. Last Unicorn의 오프닝(위)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오프닝(아래) 화면.


2. 꿈의 마지막 단편을 쫓아 삐뚤어진 현실 속을 여행하는 유니콘의 이야기

라스트 유니콘의 각본은 원작자 본인인 Peter.S.Beagle이 맡았습니다. 보통은 원작자가 아닌 전문 각본가가 각본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Beagle 선생의 경우는 이미 78년에 '반지의 제왕' 만화영화의 각본을 맡았기에 (여담으로 어린시절 이 만화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던 유명인 중의 한 명이 바로 20여년 뒤 '반지의 제왕' 3부작 시리즈로 전세계적 명성을 얻은 피터 잭슨 감독이기도 합니다.) 각본가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춘 상태였고, 그로 인해 각본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자가 각본을 쓴지라 작품의 이야기 전개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만화영화를 위해 잘 안배되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스토리의 뛰어난 이식성은 이 작품의 가치를 현재까지도 이어주는 중요한 포석이 되고 있습니다.
 
초반의 이야기는 환상 속의 동물인 유니콘이 어느날 자신의 동족이 한 명(아, 아니 한마리)도 없음을 인지하고는 동족을 찾기 위해 숲을 떠나 세상을 여행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녀(성우가 여성분이니까 그녀가 맞겠죠.)는 한 정신 나간 나비(말 그대로 횡설수설합니다.)와의 만남을 통해 동족의 행방이 한 붉은 황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붉은 황소를 찾아나서게 되는데요. 정신 나간 나비의 말 이외에는 정보를 얻을 곳이 없는 유니콘의 현실이 왠지 그녀, 즉 꿈과 추억이 현실과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다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싶습니다.
 
(꿈과 동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유니콘을 백마로 착각합니다.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이들이 순수와 꿈의 상징인 유니콘의 뿔을 보지 못하는 모습은 현대인을 빗댄 은유이기도 하지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유니콘을 사악한 마법사 포르투나는 한 눈에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법사에게 있어 유니콘은 순수와 꿈의 상징이 아닌 한낱 돈벌이의 도구일 뿐입니다. 마법사는 유니콘을 붙잡아 그녀에게 가짜 뿔을 씌우고 사람들에게 유니콘이라고 속여 보여줍니다. 진짜 뿔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유니콘은 가짜 뿔이 씌워져 가짜 유니콘으로 보여지는 서글픈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순수와 꿈을 잃어버리고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군상 역시 오버랩됩니다. 초반부의 유니콘이 처한 상황은 동화적인 표현이 돋보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비유적으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니콘의 고난은 한 견습 마법사의 도움으로 인해 또다른 전개를 맞게 됩니다. 이 마법사는 자신을 슈멘드릭이라고 소개하는데요, 우스운 것은 슈멘드릭이라는 이름이 이디시어(블로그지기 주: 독일어에 슬라브어와 히브리어가 섞인 말)로는 '바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슈멘드릭은 제대로 된 마법은 구사할 줄 모르는데다가 상황판단력이 좀 뒤쳐지는 어리숙한 인물로 나옵니다.(물론, 동시에 정의감과 순수함 역시 갖고 있지만.) 유니콘의 본 모습을 알아본 그는 유니콘을 탈출시키기 위해 도움을 자처하게 됩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그림 2. 사계절 동안 동족을 찾아 헤매는 유니콘.

마법사에게서 탈출한 유니콘과 슈멘드릭은 정처없는 여행 도중 숲에서 한무리의 부랑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로빈 훗의 망령에 사로잡혀 사는 캡틴 컬리의 일당들이었는데요, 유니콘의 마법(그러나 슈멘드릭은 자신이 한 것인 줄로 착각)으로 로빈 훗과 메리언의 망령을 본 이들은 감격에 겨워합니다. 몽상에 빠진 체 현실을 거부하는 이들의 모습은 바로 이전 에피소드에서 유니콘의 진짜 뿔을 알아보지 못하고 가짜 뿔에 현혹된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과 함께 인간을 향한 또다른 풍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 속에서 유니콘은 순수와 꿈을 간직한 또다른 동료(내지는 하녀?) 몰리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든든한(?) 동료들을 얻은 유니콘의 여정은 어두운 현실이 맞닥뜨리면서 급반전됩니다. 세상의 모든 유니콘들 잡아 해거드 왕에게 바친 붉은 황소가 등장한 것입니다. 붉은 황소에 엄청난 위압감에 유니콘 일행은 두려움에 떨고... 숲에서의 마법(로빈 훗과 메리언의 환영을 캡틴 컬리에게 보여준 것)이 자신이 한 것이라 착각한 슈멘드릭은 당당하게 마법의 주문을 읊지만 엉뚱한 결과를 가져와 유니콘을 아리따운 아가씨로 변신시키고 맙니다.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는 유니콘(슈멘드릭의 실력을 감안했을 때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두꺼비나 생쥐가 아닌게 어디랍니까.)을 진정시키면서 우여곡절 끝에 해거드 왕을 찾아낸 유니콘 일행, 슈멘드릭은 얼떨결에 유니콘을 '아말띠아'라는 이름으로 해거드 왕에게 소개시키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말띠아'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이름으로, 염소와 비슷한 모습으로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데, 뿔 하나에는 술이 가득 차 있고, 다른 하나에는 음식이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제우스가 뿔 하나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아말띠아는 하나의 뿔을 갖고 있게 되며, 흰 몸과 하나의 뿔 덕에 많은 이들이 유니콘으로 오인하고 있다고도 하는군요. 바로 이 유니콘으로 오인되는 아말띠아의 이름이 인간의 껍질을 쓰고 있는 유니콘의 이름으로 사용되며, 또다시 작품은 진정한 사실을 외면한 체 허상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비유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런 유니콘, 아니 유니콘의 인간 모습을 해거드 왕의 의붓아들 리르 왕자가 사랑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좀 더 미묘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죠.
 
유니콘은 해거드 왕에게 사로잡힌 자신의 동족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요. 리르 왕자와의 사랑은, 그리고 해거드 왕과 붉은 황소와의 결말은 어찌 될까요. 그녀는 과연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허상과 위선을 벗고 진실과 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한가닥 희망인 순수와 꿈을 찾아내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그림 3. 마녀 포르투나(좌측 상단), 슈멘드릭(우측 상단), 캡틴 컬리(좌측 하단), 그리고 붉은 황소(우측 하단).


3.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랑받는 유니콘, 그녀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3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이 작품은 서구권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국내에서는 80년대 들어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해준 적이 있었지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서 100만장 이상의 DVD 판매량을 올린 것이 그것인데요. 유니콘이 갖고 있는 특유의 깨끗하고 투명한 느낌의 환상성은 순수함이라는 테마에 가장 잘 부합하는 소재로, 어두움과 공포의 대명사 용과 함께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재생산 되는 판타지적 소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유니콘을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는 꽤나 독특하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양의 작화와 서양의 연출이 어우러져 다른 작품과는 다른 독특한 맛을 주는 이 작품은, 특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유니콘의 색다른 아름다움이 유니콘의 본 모습이 아닌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본 모습 이상의 아우라를 뿜어낸 아이러니함 역시 갖고 있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명작을 만들어낸 원작자 Beagle 선생이 저작권료를 제대로 못받아 2000년대에 들어 제작사 측과 법적 분쟁까지 갔다는 사실은 꿈과 망상,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극중 인물들의 모습처럼 왠지 모를 쓸씀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작자의 아픈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화면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유니콘의 눈부신 흰색은 인간의 영원한 동경, 노스텔지어를 연상케 하는 또다른 상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그림 4. 해거드 왕(우측 상단)과 리르 왕자(좌측 상단), 그리고 인간으로 변한 유니콘 아말띠아(하단).

☞ 아,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라스트 씬에서 파도에 갇혀있던 유니콘들이 탈출하여 해변을 뒤덮는 장관은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에서 아르웬이 나즈굴을 물리치기 위해 강물에 걸었던 마법과도 오버랩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작자 Beagle 선생은 이미 78년 '반지의 제왕' 만화영화 각본을 맡은 적이 있다는 것. (물론, 톨킨 선생의 '반지의 제왕' 원작에 이미 묘사가 된 장면이지만 말입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주의 영화리뷰 2009년 7월 3주차에 선정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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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zzle Animation Studio / Shanghai Media Group

금번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7.16 ~ 7.26)의 '애니 판타'에서 무협팬들이 좋아하실 만한 작품이 개봉예정이라고 합니다.

홍콩의 인기 만화가 마영성 원작의 '풍운'을 만화영화한 'Storm Rider - Clash of Evils(2008)'가 그것인데요. 풍과 운이라는 두명의 주인공이 난세의 강호를 헤쳐 나가는 무협액션물로, 89년부터 20년에 걸쳐 장기간 연재되는 중국을 대표하는 무협만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년 동안의 장기 연재이니만큼, 풍운의 소재는 상당히 식상해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만큼 무협만화에서 풍운이라는 두 글자를 빠뜨릴 수 없을 정도로 굳건한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런 작품을 만화영화로 한만큼, 이번 극장판 만화영화는 중국 애니메이션의 자부심이 집결된 작품이라는 추측을 해보게 됩니다.

 

트레일러로 감상한 풍운의 영상미는, 적극적인 CG의 사용으로 인해 현란한 비쥬얼을 자랑합니다. 애니메이션 계통에서는 아직 연륜이 깊지 않은 중국이기에 디테일한 작화 퀄리티에 있어서는 여전히 한 수 아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지만, 기대 이상이라고나 할까요. 문제는 스토리와 그것을 작품에 적절히 적용하는 감독의 스토리보드 및 연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괜찮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러고보니 풍운의 원소스 멀티유즈(일본식 용어로는 미디어 믹스)는 이번 극장판 만화영화가 처음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폭발적인 코믹스의 인기에 힘입어 풍운은 최초로 영화화 되었던 것이죠.


ⓒ Golden Harvest Pictures

 고혹자 시리즈와 함께 후일 무간도 시리즈로 명성을 얻게 되는 유위광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곽부성, 정이건이 주연을 맡은 실사영화 '풍운(1998)'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CG 특수효과를 접목시켜 무협과 판타지를 절묘하게 조합해 냅니다. 아크로바틱한 무술 연출에만 집중되어 있던 홍콩 무협영화에 헐리우드식 스케일과 특수효과가 접목되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던 것이죠.

 

거기에 당대 최고의 꽃미남 배우였던 반항적인 이미지의 곽부성과, 긴머리가 인상적이었던 부드러운 이미지의 정이건 투톱은 만화와의 싱크로를 100%로 이끌어 줍니다. 지금까지의 홍콩 영화들 중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 대부분이 너무나 동떨어지는 주연배우와 원작 주인공과의 미스매치와 조악한 설정재현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면, 이 풍운은 적어도 곽부성과 정이건, 그리고 웅패 역의 소니 치바(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일본 배우가 홍콩영화의 배역을 맡은...)와 같은 주요 배역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멋진 캐스팅을 보여주었으며, 설정이나 장면연출 등에 있어서도 당시의 홍콩 영화들에 비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유위광 감독이 촬영감독 출신이었기에 그만큼 영상미에서 당시의 홍콩영화와는 궤도를 달리한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나도 싶습니다. 유위광 감독은 풍운 후 정이건을 원톱 주연으로 내세워 역시 마영성 원작의 '중화영웅(1999)'를 선보입니다만, 초반부의 너무도 긴 배경설명 덕에 무협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지루함을 주었습니다. 결국 라스트 씬의 액션 외에는 볼거리가 전혀 없는 '팥없는 찐빵'이 되어버렸고, 각본의 완성도에 있어서도 문제점을 드러내며 전체적인 완성도에 있어서 전작인 풍운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단, 라스트 씬의 액션 연출과 CG는 그 나름대로 괜찮은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 2009 UNIVERSE Entertainment

풍운은 그 외에도 PC 게임과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도 찾아오게 됩니다. 조악한 게임성을 보여주었던 첫 패키지 게임(98년도였나 싶은데, 무려 정품으로 구입하셔서 좋아라 플레이했던...)에 이어 속편이 출시되고 온라인 게임으로까지 등장했죠. 그 외에도 대만에서는 2002년과 2004년에 각각 TV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무려 4년이 흘러 만화영화로써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풍운 극장 만화영화를 통해 다시금 풍운의 폭풍이 극장가에 불듯 합니다. 2008년 불기 시작한 만화영화의 바람이 다시금 영화에까지 미쳐 올 12월 마침내 풍운의 속편이 개봉예정에 있다는군요.  

주연은 풍운 1편의 곽부성과 정이건이 다시 맡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감독은 '방콕 데인져러스'나 '디 아이' 등으로 이름을 알린 팽 형제가 맡았는데요. 최근의 헐리우드의 진출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그들이 다시금 홍콩으로 유턴해서 만든 작품인지라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헐리우드에서의 실패가 이들 형제에게 좋은 약이 되었으면 싶습니다만...

 

트레일러의 영상미는 오랜 만의 속편답게 1편에 비해 훨씬 진일보한 CG 들로 가득합니다. 어찌보면 2년전에 개봉되었던 '300'과 같은 매우 독특한 색감의 비주얼인 듯 싶은데요. 역시 이번에도 관건은 액션과 스토리의 적절한 배치와 연출이 아닐까 합니다. 액션 위주로 흐를 경우, 이야기의 흐름이 무너지고, 이야기에 집중할 경우 지리한 액션 작품이 되어버릴 공산이 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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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FILMLINK International/HIDEYUKI KIKUCHI/ASAHI SONORAMA/VAMPIRE HUNTER D Production Commitee


<스탭>

◈ 감독: 카와지리 요시아키
◈ 원작: 기쿠치 히데유키
◈ 제작: 매드하우스. 필름링크 인터내셔널


<시놉시스>

핵전쟁 이후 뱀파이어들이 귀족이라 불리며 인간들 위에 군림하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한 A.D 12,090년. 자신의 딸 샬롯을 뱀파이어에게 납치당한 대부호 앨번은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이자 뱀파이어 헌터인 던필(이하 D)을 고용하여 백작 마이어로부터 그의 딸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의심 많은 대부호의 아들은 D 외에도 또다른 헌터집단 '마커스 형제'에게도 같은 의뢰를 맡기는데, 샬롯을 먼저 구출해야만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에 마커스 형제는 D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마커스 형제'의 일원인 여성헌터 레일라는 D에게 경계심과 동시에 호기심을 보이게 되고, 마이어 백작과의 첫 대면에서 D는 납치된 샬롯이 마이어를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이어 백작이 암살집단인 바르바로이 일족의 3인조를 고용하게 되면서 이제 D와 마커스 형제, 바르바로이 3인조까지 얽힌 복잡한 추격전이 시작되는데... 과연 마이어가 향하는 곳은 어디이며, 샬롯과 마이어의 관계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1. 기쿠치 히데유키의 소설, 아마노 요시타카의 날개를 달고 애니메이션계에 입성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기쿠치 히데유키 원작의 '뱀파이어 헌터 D(1983)'는 1983년 1월 처음 소설로 등장합니다. '마계도시 신주쿠(1982)'라는 소설로 공포 소설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기쿠치 히데유키는 후일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과 황금 콤비로 호러 판타지 계열의 아니메 수작을 연이어 등장시키며, 일약 '공포소설의 대가'라는 명성을 얻기에 이르르는데요. 이 뱀파이어 헌터 D는 바로 그의 작품 중에서 1번 타자로 애니메이션화된 작품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 20권이 발표되며 30년 가까이 연재를 계속하고 있는 이 장편의 판타지 공포소설도 초창기의 기쿠치 히데유키만의 네임 밸류만으로 애니메이션화 되기에는 버거웠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면에는 당시 삽화가로서 소설에 참여한 애니메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 때문인 것도 있으니까요.

70년대 타츠노코 프로에 10대의 나이로 입사하여 천재적인 애니메이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아마노 요시타카가 애니메이터로서의 범주에만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며, 소설 삽화에 과감히 도전했던 이 작품은 원작자인 기쿠치 히데유키보다 아마노 요시타카에게 더 큰 명성을 안겨주며, 그를 애니메이터가 아닌 특급 일러스트레이터의 반열로 격상시켜주는 중대한 모멘텀이 됩니다. 물론 이 영향은 뱀파이어 헌터 D에게도, 기쿠치 히데유키에게도 동반 상승효과를 가져옵니다. 환상적인 일러스트 덕에 책의 가치는 높아졌으며,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을 더욱 더 배가시킨 것입니다.

ⓒ YOSHITAKA AMANO / ASAHI SONORAMA

그림 1. 아마노 요시타카의 소설 삽화 일러스트 (출처: 베스트 아니메)


그 덕분일까요, 뱀파이어 헌터 D는 85년 마침내 기쿠치 히데유키의 작품으로서는 최초로 애니메이션화 되기에 이르릅니다. 감독은 '우주전함 야마토(1974)'의 작화감독에서부터 '요술공주 밍키모모(1982)'이나 '은하표류 바이팜(1983)' 등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널리 알려진 아시다 토요오가 맡았는데요. 당시 원작자인 기쿠치 히데유키가 뱀파이어 헌터 D의 제작의사를 밝혔던 아시 프로덕션의 스타일이 자신의 작품 성향과는 너무도 달라서 수차례 거절을 했었으나, 아시다 토요오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 아니메로의 제작이 가능했던 숨겨진 에피소드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1] 참조)

뱀파이어 헌터 D의 1권의 이야기를 80분짜리 OVA로 아니메화한 이 작품은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높은 작화 퀄리티의 작품이라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만,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의 배경과 뱀파이어라는 호러 판타지적 소재가 기묘하게 어울린 숨겨진 고전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후일 '북두의 권(1986)' 극장판을 통해 센세이셔널한 고어 액션씬을 훌륭하게 선보인 아시다 토요오 감독의 액션 연출은 이 작품에서도 그 흥미를 더하죠. 특히, 단순한 뱀파이어 헌터로만 여겨졌던 D가 클라이막스 씬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힘과 그 힘에 얽힌 출생의 비밀은 크나큰 흥미와 함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준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말 OVA 랭킹 2위에 오를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둔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을 내놓지 못하였고,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이 연출한 기쿠치 원작의 '요수도시(1987)'가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킨 뒤, 카와지리가 키쿠치의 작품을 연달아 아니메화하는 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북미시장에 진출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이 작품이 왜 후속 시리즈를 내지 않은 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것일까요. 의문점을 뒤로 한체 세월은 어느덧 15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HIDEYUKI KIKUCHI / ASAHI SONORAMA

그림 2. 85년도 OVA 트레일러 영상 스틸 컷. (출처: Youtube.com)


2. 동반자 카와지리 요시아키와의 만남... 예견된 D의 부활

'요수도시(1987)', '마계도시 신주쿠(1988)', '바람의 이름은 아무네지아(1990)' 등에서 연달아 호흡을 맞추면서 기쿠치 히데유키와 카와지리 요시아키는 황금 콤비이자 절친한 친구로 발전하게 됩니다. 스승 린 타로에게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의 정수를 물려받은 일본의 탑 클래스 애니메이션 연출가 카와지리 감독과 이제는 일본 공포소설을 대표하는 기쿠치 히데유키의 조합은 하드고어 쟝르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며 그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됩니다. 만약, 뱀파이어 헌터 D가 좀 더 늦게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카와지리 감독의 작품으로 등장했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요. 이러한 의문의 답은 비로소 2000년에 들어서야 그 해답을 보여주게 됩니다.

'수병위인풍첩(1993)'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카와지리는 90년대 말부터 서서히 해외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선배격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데자키 오사무 감독(데자키 오사무 감독은 카와지리의 스승인 린 타로 감독과 함께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였지요. 무협소설로 치면 사숙이라 할 수 있겠군요.)도 해외진출을 했었으나, 그것이 북미에서의 러브콜이 아닌 잇단 흥행실패로 인한 도미였던 것에 비해 카와지리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북미의 인지도가 꽤 높은 편이었지요. 그리고, 미일 합작 애니메이션의 감독으로 낙점되면서 그가 선택한 작품이 바로 뱀파이어 헌터 D인 것입니다. 북미에서 인기가 높았던 원작 소설과 북미에서 인기가 높은 아니메 감독의 만남, 거기에 원작자인 키쿠치와 절친한 친구라는 점에서 뱀파이어 헌터 D는 카와지리 감독의 북미권 데뷔로서는 더없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로 인해 수천년간 인간과 뱀파이어의 경계에서 고독한 방랑을 해온 사나이가 마침내 15년만에 스크린으로 부활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2000, 이하 블러드러스트)'인 것입니다.

소설 뱀파이어 헌터 D의 세번째 에피소드 '妖殺行(Demon Deathchase)'를 영화화한 블러드러스트는 기획 단계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했기에 보통의 아니메와는 달리 외국인 스탭들이 작품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그로 인해 성우 캐스팅에 애초부터 외국인이 기용되어 연기를 펼쳤다는 것이 이색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더빙판에 비해 성우들의 연기는 작품과 좋은 매치업을 보여줍니다. 이제까지의 영어 더빙판 아니메의 경우, 아무래도 성우들의 연기력이나 동화와의 동기화 부분에 있어서 원 성우에 비해서 그닥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는데요. 그에 비해서 이 작품에서의 성우들의 연기력은 합격점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일본어로 아니메를 계속 보아온 팬들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거슬리거나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북미 아니메 팬들에게는 이때까지의 더빙판에 비해서는 확실히 좋은 느낌을 주었을 듯 합니다. 다만, 일부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대사에서도 읊조리는 듯한 톤으로 연기를 하여 왠지 답답한 느낌이 드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수병위인풍첩부터 카와지리의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낸 미노와 유타카가 이번에는 카와지리식 스타일에 아마노 요시타카의 몽환적이면서도 탐미적인 D의 모습을 꽤나 훌륭하게 녹여낸 점은 이 작품의 백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뿐만 아니라 뱀파이어인 마이어나 카밀라의 귀족스러움과 괴기스러움이 혼재된 모습, 마커스 형제의 개성 넘치는 모습이나 바르바로이 일족의 흉측한 모습 등은 제각각 멋진 개성을 뽐내고 있죠. 스파게티 웨스턴과 고딕 스타일, SF와 판타지를 오가는 기묘한 크로스오버적인 배경의 묘사, OVA에 비해 격상된 퀄리티와 이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CG들, 그리고 이런 비쥬얼을 멋지게 살려주는 음악 등이 한데 어울린 블러드러스트는 하이 퀄리티의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 2001 FILMLINK International/HIDEYUKI KIKUCHI/ASAHI SONORAMA/VAMPIRE HUNTER D Production Commitee

그림 3.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 스틸 컷.


3. 멋진 구성과 고급스러운 연출, 하지만 2% 부족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원작의 경우에는 마커스 형제에게 스토리의 중심이 가있는 상황에서 D가 해결사로서 역할을 하는 형태로 전개가 됩니다.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인 이번 편에서는 주인공 D가 조금 뒤로 물러가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극장판으로 이식되면서 스토리는 조금 수정이 가해지게 됩니다. 그 결과 D와 마커스 형제의 이야기가 비슷한 비중으로 맞춰지게 됩니다. 2시간 남짓한 이야기 길이 속에서 이 역할 분배는 나름 좋은 비율을 보여주는 듯 싶습니다. 역시 카와지리 감독이 톱 클래스의 연출가임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겠죠.

이전까지의 매니아적인 작품 색체(폭력미학의 대가라는 별명답게)는 북미시장을 공략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서 좀 더 대중적인 모습을 취할 수 밖에 없었기에 순화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많은 카와지리 감독의 팬들이 상당수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군요. 거기에 무언가 2% 부족한 액션 덕에 고급스럽고 멋진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조금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사실 스토리의 전체적인 균형적인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심심한 뒷맛은 카밀라와 D가 맞대결을 펼치는 클라이막스 씬까지 주욱 이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작품 내 액션 씬의 비중이 적었다기 보다는 액션 자체, 특히 주인공인 D의 액션 장면이 동적인 부분보다는 정적인 씬에 대부분 머물러 있던 결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D의 부족한 액션을 마커스 형제가 나누어서 담당하다보니 스토리의 균형과는 별개로 D의 역할은 더 축소되어 보이고 결과적으로 액션이 필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부족한 작품으로 인식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한정된 셀 안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특기로 삼았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액션 연출이 근래의 다이나믹한 액션씬에 비해 역동적인 맛을 못살리면서 생기는 아쉬움은 아닌가 합니다. 리미티드 기법의 대가답게 카와지리 감독 또한 정지영상 컷의 감각적인 배치나 광원 연출, 배경의 활용 등을 통해 멋진 액션 장면을 구현해 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고급스러운 연출 방식은 이 블러드러스트 내에서도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고 있구요. 하지만, 근래의 애니메이션 상당수가 상당히 역동적인 액션샷들을 구사하고 있기에 이러한 부분은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생각도 드는군요. 그래서인지 카와지리 감독의 신작 '하이랜더(2007)'의 경우는 블러드러스트보다 훨씬 역동적인 장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비주얼과 이야기가 보여준 블러드러스트의 멋과 완성도는 인상적입니다. OVA의 경우 D의 진정한 활약은 클라이막스에서나 펼쳐지며, 그의 출생에 얽힌 비밀까지 살짝 드러나 드라마틱한 클라이막스를 보여줍니다. 블러드러스트 역시 카밀라와의 대결에서 D의 출생의 비밀이 살짝 선보이며 드라마틱한 결말로 향하게 되는데요. 마이어 백작과 샬롯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작품의 메인 테마이기에 이번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D가 주인공이 아닌 마이어와 샬롯이 주인공인 이야기로 볼 수가 있겠습니다. 다만,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테마가 전반적으로 흡입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이는 소재 자체의 진부함도 있겠지만, 원체 스토리 자체가 애틋한 러브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깊이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군요.

ⓒ 2001 FILMLINK International/HIDEYUKI KIKUCHI/ASAHI SONORAMA/VAMPIRE HUNTER D Production Commitee

그림 4. 뱀파이어 헌터 D 스틸 컷.


4. 속편의 가능성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D가 TV 시리즈 형태의 장편으로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극장판으로서의 완성도는 물론 훌륭했지만, D의 출생의 비밀과 같은 부분이 좀 더 심도있게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단편으로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런 단편 에피소드 중의 하나로 이 블러드러스트가 아니메화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현재까지도 계속적인 연재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D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원작 자체의 고딕스럽고 웨스턴스러운 독특한 느낌, 그리고 아마노가 창안해낸 몽환적인 캐릭터가 기실 아니메로 제작하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작품일지도 모르겠군요. 카와지리 감독 정도의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섣부른 아니메 프로젝트는 오히려 D의 이미지를 망칠 우려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때문에 더 이상 후속 논의가 없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팬으로서 언젠가 다시 등장할 D의 속편은 꽤나 기대되는 기다림이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만들어진 두 편의 작품이 모두 조금씩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언젠가 등장할지 모르는 다음 속편은 부디 전보다는 더 나은 모습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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