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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스탭>

◈ 감독: 오시이 마모루
◈ 원작: 모리 히로시
◈ 제작: 프로덕션 I.G


<시놉시스> 

번의 전쟁 후 평화가 찾아온 근 미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전쟁을 일종의 쇼로 만들어 전문기업으로 하여금 전쟁을 대행토록 한다. 이러한 가식적인 평화 속에 사람들은 TV 속에 벌어지는 전쟁을 그저 남의 일처럼 여기게 된다. 전쟁은 로스톡社과 라우테른社 간의 대결로 치닫고 있었는데, 라우테른社의 전설적인 파일럿 '티쳐'는 모든 파일럿들에게 공포이자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지고 있다.

한편, 로스톡社의 유럽전선 기지 우리스로 배속된 신참 파일럿 칸나미 유이치. 이전의 기억이 없는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의 모습을 한 킬드레이다. 킬드레는 전쟁을 쇼로 만든 이 세계에서 사람들을 대신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이면서도 인간과는 다른 존재, 영원한 전쟁을 위해 늙지 않는 소년 소녀들이다. 우리스 기지에 배속되어 기지 책임자에게 전입신고를 하는 유이치. 기지 책임자이자 킬드레 출신인 쿠사나기 스이토와 칸나미 유이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노센스 이후 4년만에 돌아온 오시이 마모루의 신작

작인 공각기동대의 속편 '이노센스(2004)'를 통해 오시이 감독스러운 색체의 극단적인 절정과 그로 인한 거부감(아마 이러한 평가를 감독 자신은 즐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시이 감독은 그의 영화는 1만명 정도의 관객이 좋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죠. 1편의 영화를 100만명이 1번씩 보든 만명이 100번씩 보든 같다고 생각하는 그인데요. 실제로 오시이 감독의 마니아들이라면 그의 작품을 대부분 몇 번씩은 감상했을 겁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뭔 말인지 모르겠든요.)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오시이 마모루. '공각기동대(1995)'를 통해 그를 알게 된, 그의 작품에 다소 생소한 팬들이라면 오시이 마모루의 이런 모습은 어김없이 불편함과 지루함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상업용 대중예술로서의 만화영화, 모든 사람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영화라는 관점에서 오시이 감독의 작품들은 늘 규격 외의 것들이었죠. 실상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준 공각기동대도 일본 내 첫 개봉시에는 참혹할 정도로 관객의 외면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2008년, 마침내 새로운 작품을 들고 우리의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보다 늦은 2010년에 이르러서야 개봉(현재 개봉 중이지만 언제 극장가에서 내려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중이지만, 어찌되었건 마침내 4년만에 찾아온 오시이 감독의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는(?) 신작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스카이 크롤러(2008)'입니다.

언제나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문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로 '아니메의 철학자'로 불리는 그의 이번 신작은 과도한 난해함으로 인해 '현학적이고 잘난척 하는 것 같다'라는 혹평을 들었던 이노센스 직후의 작품(물론, 그 사이 어썰트 걸이라는 실사영화가 있지만)이라는 점에서 여러가지 기대와 우려를 갖게 합니다. 과연 오시이 마모루는 전작의 비평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좀더 대중친화적인 작품으로 찾아올 것인지, 아니면 이제껏 그래왔듯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어김없이 펼쳐갈지가 말이죠. 기대 속에 베일을 벗은 스카이 크롤러는 과연 오시이 감독의 작품다움에도 불구하고 이전과는 다른, 메마름 속에 한줄기 서정적인 감성을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늙지 않는 소년들인 킬드레와 티쳐가 작금의 일본시대의 젊은이와 기성세대를 비유한 것 때문일까요, 아니면 압도적인 영상미의 CG 공중전에서 느껴지는 시원해진 기분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쿠사나기와 칸나기 유이치의 잔잔한 멜로라인 덕분일까요. 하늘을 수놓는 비행기들의 거친 엔진음 사이로 퍼지는 애잔한 카와이 켄지의 음악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압도적인 영상미로 그려진 쓸쓸하고 메마른 창공

입부에 펼쳐지는 장쾌하고 실감 넘치는 프로펠러 전투기들의 공중전은 스카이 크롤러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이러한 압도적인 전투기들의 공중전은 참으로 오랜 만에 느껴보는데요. 짧게는 곤조의 '전투요정 유키카제(2001)'나 '라스트 엑자일(2003)'에서부터 길게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1992)'와 '천공의 성 라퓨타(1986)', 그리고 故 토리우미 히사유키의 '에어리어 88(1985)'과 '독수리 5형제(1972)'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실제로 오시이 마모루는 토리우미 감독의 제자로 독수리 5형제를 통해 연출로 데뷔했으니, 스카이 크롤러는 공중전 연출의 장인이었던 스승의 스타일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또다른 비행씬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현재 붉은 돼지 속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가 들리고 있지요.)

토리우미 히사유키가 에어리어 88에서 보여주었던 실감 넘치는 공중전의 묘사는 제자인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계승 발전되었습니다. 밀리터리 마니아인 오시이 감독의 정체성에 CG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의 모습이 반영된 놀라운 퀄리티의 영상미는 좌중을 압도하는데요. 전작인 아발론이나 이노센스에서 보여준 실사와 아니메의 결합(아발론에서는 실사를 아니메처럼 촬영하고, 이노센스에서는 아니메를 실사처럼 촬영하는 시도를 함. 결국 두 번 모두 미완성에 그치지긴 하지만...)이라는 실험적 연출기법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보다 사람들이 보기 편한 CG로 대중적인 접근을 취했다고 보여집니다. 실제로 공중전 외에는 2D 작업과 셀 애니메이션의 활용으로 이노센스에서 느껴졌던 거부감을 상당부분 줄인 것으로 추측되는군요.

결국, 영상미에 있어서 전작의 실험정신과는 다른 대중적인 느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너무도 섬세하고 정확한 장면구성과 움직임 덕에 비주얼은 여전히 우리에게 압도적인 느낌을 줍니다. 즉, 기막히게 멋지지만 너무도 완벽한 나머지 불편함이 느껴진다는 말인데요. 마니아의 경우라면 몰라도 일반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그 영상만으로도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극사실주의적인 색체를 어김없이 보인다 하겠습니다. 

이런 스카이 크롤러의 완벽한 영상미학은 공중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굳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교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늘이 로맨티스트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반면, 오이시 마모루의 하늘은 차가우리만치 냉정한 이성주의자의 그것이라고나 할까요. 전자와 후자의 퀄리티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듯 싶군요. 단지 취향의 차이일 뿐, 오시이 감독의 영상미는 확실히 그만의 정체성을 보란듯이 화면 가득 빛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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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은 속에 시들어가는 피터팬, 킬드레

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킬드레'라고 불리는 어린 소년 소녀들입니다. 나이를 먹지않는, 정상적으로 태어났다기 보다는 무언가 인공적인 방법에 의해서 태어난 존재인 킬드레. 전쟁이라는 인류 최대의 인공적 재앙을 쇼로 만들고, 그것을 아이들의 모습을 한 킬드레가 대신한다는 스카이 크롤러의 설정은 다분히 충격적이면서도 수많은 아니메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의 심오한 변주곡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작품 내에서 킬드레는 풍요로운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길들여져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는 현재의 젊은이들을, 그들과 맞서게 되는 정체불명의 격추왕 '티쳐'와 전쟁회사에 속한 어른들은 삐뚤어진 사회를 구축한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비유로, 확실히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띈 아니메에 자주 등장하는 어린 소년 소녀 전사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고 하겠지요.

스카이 크롤러는 이러한 킬드레의 모습을 비행기를 몰고 신기의 조종술로 적군들을 쓰러뜨리는 멋진 피터팬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어린 시절 또는 부모의 기억과 같이 정상적인 인간들이 가져야할 추억을 제거당한 체 매일매일 반복되는 전쟁 쇼 속에서 매말라가는 소년들의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보통의 아니메와는 다른 쓸쓸한 분위기를 이끌어 냅니다. 미성년자인 이들이 애연가인냥 연신 담배를 피워대거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콜걸과 잠자리에 드는 모습은 십대의 탈선이나 방황, 혹은 주인공들을 멋지게 보이기 위한 클리셰라기보다는 반복되는 전장과 잃어버린 자아라는 공허감을 메우기 위한 그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인 듯 위화감과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감정이 없는 듯한 메마른 표정과 함께 시종일관 잔잔하게 묘사되면서 작품의 분위기는 심연 속에 어두운 무언가가 존재하는 잔잔한 바다와 같은 형상을 띄게 됩니다.

특히, 이야기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우리스 기지의 지휘관 쿠사나기 스이토의 경우는, 킬드레로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생존하며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었으며,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마치 어른과 킬드레의 경계선 상에 위치한 인물로, 작품의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하겠는데요. 불안한 심리상태와 알 수 없는 공허감 속의 그녀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킬드레가 인간다움을 갖기 시작하는 과정의 모습이며, 동시에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마침내 사회에 첫발을 들인 그 시점의 모습과도 같은 것으로, 그녀를 통해 주인공인 칸나기는 킬드레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고, 마침내 그 운명에 맞서기 위해 티쳐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칸나기의 잊혀진 과거 역시 작품의 중요한 이야기거리입니다. 이 소재는 약간의 미스테리적인 형식을 취하면서 관객들에게 가벼운 수수께끼를 던져주게 되는데요. 이것이 그리 난해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 내에서 명확하게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상으로 그럴 것이다라는 모호한 답을 남긴 체 긴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전부터 그래왔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에는 깔끔한 결말이란 없습니다. 마치 무대의 조명이 서서히 꺼지면서 페이드인 하듯, 결말은 서서히 관객의 마음 속에서 꺼져가듯 사라지죠. 이러한 이야기는 명확함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없는 허무함과 공허감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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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무겁게 깔려 있는 분위기 속에 새로온 신참 동료의 신문 접는 모습을 보며 칸나기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그리고 킬드레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깊은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무언가가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쿠사나기와 칸나기의 인연은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와 미래를 향하기 시작합니다. 


긴 여운의 결말... 그리고 오늘 밤은 별에 안기어

라울 정도의 스펙타클한 공중전과 답답할 정도로 가슴 아프고 숨막히는 킬드레의 이야기는 묘한 부조화를 던져줍니다. 오시이 감독 스스로는 자신을 상업 만화영화 감독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실상 그가 보여준 작품들의 스펙트럼은 상업영화라는 표현이 무색한 난해한 작품들이 대부분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시이표 작품들은 하나같이 그 비주얼에서 상업적인 형식을 띄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연출한 작품 중에 유일하게 비주얼에서도 상업적이지 않았던 작품은 '천사의 알(1985)'이 아닐까 싶군요. 그러나 그러한 상업적인 비주얼 위에 풀어놓는 오시이 표 이야기는 언제나 끊임없는 자아와 정체성의 되물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실로 부조화스러운 작품들 그 자체랄까요.

다만, 스카이 크롤러는 그런 오시이 특유의 현학적 이야기와 상업적 극사실주의 속에서 한줄기 로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간 듯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위험한 것처럼 아슬아슬한 쿠사나기와 칸나기의 애정선은 작품의 주제, 즉 성장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고뇌와 정체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처럼 빛난다고 할까요. 너무나 메마른 느낌의 이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둘의 관계는 오히려 뜨겁지 않기에 애잔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감정이 메마른 쿠사나기가 칸나기에게 조금씩 마음을 보이는 이런 광경은 사실 오시이 감독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구요. (공각기동대나 패트레이버에서도 그랬지만, 오시이 감독의 작품에서 러브스토리는 드라마가 아닌 팩트 그 자체로 묘사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침내 칸나기는 티쳐에게로 기수를 돌립니다. 메마른 킬드레들의 가슴에 넓고 푸른 창공은 아름답지만 차가운 요람이자 묘지입니다. 때마침 엔딩에 흐르는 아야카의 '오늘 밤도 별에 안기어(今夜も星に抱かれて)'은 너무도 작품의 엔딩과 잘맞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러닝타임 내내 참고 참았던 감정이 녹아내리듯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 장면은 서서히 페이드 아웃되고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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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엔딩 스탭롤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마시길. 엔딩곡이 너무도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끝에는 또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사이트>

[1] スカイ・クロラシリーズ, Wikipedia Japan
[2] 스카이 크롤러 スカイ クロラ, 2008, 씨네 21

[3] <스카이 크롤러> 오시이 감독의 수작 애니메이션, 무비조이
[4] ‘스카이 크롤러’ 오시이 마모루 감독, 존재, 그 이상의 주제는 없다!, 무비위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달의 영화 리뷰 2010년 11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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