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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랠리를 평정했던 전쟁의 여신


설의 랠리머신 란치아 스트라토스(Lancia Stratos)를 기억하십니까? 자동차 스타일링 회사인 베르토네(Gruppo Bertone)社의 사장 누치오 베르토네의 아이디어와 베르토네의 헤드 디자이너인 마르셀로 간디니의 디자인에 의해 탄생된 이 머신은 기획 자체가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사업안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누치오 베르토네의 개인적인 욕구에 의해서였습니다.

고급스러우며 마니악한 모델들을 주로 만들었던 란치아社가 1969년 피아트社에 인수되기 전인 63년에 출시했던 란치아 펄비아(Fulvia)를 베이스로 하여, 새로운 드림카를 만들고 싶던 베르토네의 지시에 의해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가 처음으로 디자인됩니다. 스트라토스 제로는 제작된 70년 당시로는 몹시도 파격적이면서 샤프한 라인을 선보인 컨셉카였는데요. 람보르기니 쿤타치를 연상시키는(그럴만도 한 것이 간디니는 후에 쿤타치를 디자인 합니다) 엣지있고 슬림한 전면부와 파격적인 형태의 앞유리, 과감한 심플함과 각진 라인은 SF 영화에서 나올법한 우주선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한 편의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의(High Fidelity)를 뜻하는 HF가 붙여진 스트라토스 HF는 제로의 디자인보다는 덜 파격적이지만, 여전히 미래지향적입니다. 파격적인 앞유리는 곡선형의 얌전한 디자인으로 변모했지만,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듯한 SF스러움이 살아있습니다. 스트라토스의 첫인상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와닿는 부분이랄까요. 공기역학에 최적화된 듯한 항공기를 연상시키는 차체의 라인을 따라 넋을 잃고 끝까지 다다르면, 매혹적인 디자인을 완성시키는 아름다운 뒷태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히, 이 스트라토스의 뒷모습은 개인적으로 그 어떤 슈퍼카, 아니 그 어떤 멋진 모델의 뒷모습과 비교해도 스트라토스에게 손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고나 할까요.


70년 토리노 모터쇼를 통해 관계자들과 란치아에게 극찬을 받은 스트라토스는 지속적인 디자인 업그레이드와 함께 랠리머신으로의 진화를 시작합니다. 실제로 70년 모터쇼에 등장했던 것은 스트라토스 HF가 아닌, 스트라토스 제로였었는데요. 란치아 내부에서 랠리머신으로의 개발이 결정되면서 스트라토스는 간디니에 의해 다시금 새로이 디자인 되기에 이르릅니다. 다시 말해서 스트라토스 HF의 진정한 매력은 단순히 미래지향적이고 다이나믹한 디자인 뿐만 아니라 전설적인 랠리머신으로서의 막강한 전투력을 그 아름다운 몸안에 갖고 있다는 것일 겁니다. 마치 전쟁의 여신 같이 말이죠.

페라리에 사용된 V6 엔진이 탑재되면서, 란치아의 럭셔리함과 베르토네의 혁신적인 디자인, 페라리의 막강한 전투력이 합쳐진 기이한 랠리 머신이 탄생하게 됩니다. 여기에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링까지 가세했으니 그야말로 드림카로서 적합한 진용이 아닐 수 없군요. 스트라토스 HF는 미드쉽에 후륜구동 방식으로, 순간가속형인데다가 좁은 시계와 엔진의 열이 그대로 운전석에 적용되는 최악의 승차감 등으로 인해, 강력한 전투력과 매혹적인 라인에 비해 너무도 다루기 힘든 까다로운 미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나가노 마모루의 코믹스 대서사시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모터헤드에 비유하자면, K.O.G(Knight of Gold) 중에서 강력한 성능과 아름다움, 까다로운 밸런스를 지닌 '나이트 오브 골드 라키시스'에 비유하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펄비아 엔진을 달고 랠리에 참가했던 프로토타입 머신을 거쳐 마침내 V6 엔진을 품은 스트라토스 HF는 1974년 타르카 플로리오 경주의 우승을 시작으로, 75년, 76년, 77년, 79년에 열린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 밖의 수많은 대회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 보입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한정생산될 수 밖에 없었던 제약조건 등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말 그대로 전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니메에 등장한 전설의 랠리머신

동차에는 그다지 높은 식견을 지니지 못한 엘로스가 이 차에 반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정확히 언제인지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어떤 영상매체를 통해서였지 싶은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그나마 스트라토스에 대해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살다가 한 작품을 보면서 다시금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으니, 그 작품이 바로 카미야마 켄지 감독의 TV 시리즈 아니메, '공각기동대 SAC 1기(2002)' 입니다.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세번째 에피소드인 '내 사랑 안드로이드' 편에서는 공안 9과의 멤버인 바토의 애마로 등장하는 스트라토스의 모습을 잠깐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한 스트라토스는 미래라는 배경 덕분에 일부 스타일링이 가해져 약간 변형된 모습이었는데요. 스트라토스 HF와 가장 잘 어울리지 않나 싶은 겨자색의 컬러와 여전히 매력적인 콕핏트 스타일의 앞유리, 그리고 매혹적인 뒷태 덕에 보는 순간 무릎을 탁치면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스트라토스의 기억을 엘로스에게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비록 자주는 아니었지만 이 커스터마이즈된 스트라토스는 그 후에도 몇 번 정도 에피소드에 등장해주고 있지요.

아쉬운 것은 극장판인 공각기동대 2 이노센스나 다른 TV 시리즈에서는 이 스트라토스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랄까요. 하지만 스트라토스의 모습이 공각기동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OVA로 제작된 레이싱 아니메 'eX Driver'에서도 스트라토스의 멋진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무인 운전되는 자동차가 널리 퍼진 근미래에 자동차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프로급의 운전기술과 정비기술을 가지고 자동차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엑스 드라이버가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일행 중 한명인 천방지축 말괄량이 아가씨 리사가 모는 애마가 바로 이 스트라토스 HF인 것입니다.

© Kosuke Fujishima · ExD · Bandai Visual / D.G.A.


엑스 드라이버에 등장하는 스트라토스는 짙은 청색의 컬러링과 엑스드라이버의 로고가 크게 새겨져 있는데다가 바디 부분이 원 모델과는 약간 다른 스타일로 되어 있어 스트라토스 특유의 느낌이 좀 약한 듯 싶지만, 부드러운 CG와 깔끔한 컬러에 의해 HF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진한 청색계열의 컬러링 덕에 상당히 강인한 인상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공각기동대와는 달리 자동차가 주된 소재인 작품인데다가 주인공이 모는 머신이다보니 스트라토스를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트라토스의 팬에게는 특별한 느낌을 줄 것 같군요.

이 외에도 스트라토스는 페노메논社에 의해 2005년 새로운 디자인의 컨셉카로 탄생되기도 했습니다. 그외에도 2011년을 목표로 V8 엔진이 탑재된 또다른 스트라토스가 준비된다고 하니 오랫동안 묻혀져 있던 이 전설의 랠리머신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아직도 사그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 같네요. 하긴 문외한인 저조차도 그 존재를 알고 있던 녀석이니 말입니다.

스트라토스, 다시금 새로운 전설의 날개를 펼 수 있을까요.


☞ 아참, 그러고보니 어렷을 가장 좋아라했던 슈퍼카는 람보르기니 쿤타치였습니다. (그때는 카운타크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쿤타치와 스트라토스를 공교롭게도 모두 간디니가 디자인했네요.

☞ 2011년을 목표로 제작된 스트라토스는 컨셉카 형태로 뚱뚱해지면서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페노메논 스트라토스와는 달리 과거의 매혹적인 바디라인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스파이샷을 봤는데 정말이지... 아아~ 가슴 설렙니다!  새로운 스트라토스 보러가기 (클릭)


<참고 사이트>

[1] Lancia Stratos HF, Wikipedia
[2] Lancia Stratos HF, WikiCars
[3] Lancia(란치아), 오토피디아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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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었던 '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리튬향기의 여전사 쿠사나기 모토코'를 티스토리 옮긴 글입니다.

<프로필>
 
◈ 이름: 쿠사나기 모토코
출생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비밀에 쌓인 신비로운 여성. 어렸을 적 사고로 인해 온몸을 기계(의체)화 한 후, 나이에 맞게 몸을 바꿔온 것으로 추정. 뇌와 척수 일부분 외에 모든 것이 생체가 아닌 기계로, 인간과 사이보그의 모호한 경계에 서있는 인물. 오시이 마모루의 첫번째 극장판 'Ghost in the Shell(1995)'의 도입부에서 그녀의 사이보그 몸이 만들어지는 단편적인 장면을 엿볼 수 있다.
 
◈ 연령: 불명
만화책의 외모는 20대에 가까운 외모이고,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카미야마 켄지의 TV 시리즈 상에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외모로 추정되나, 기계 몸이기에 외모로 실제 연령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즘식으로 바꿔 말하면 전신 성형미인이라는 소리. (베스트 아니메 사이트에서는 30대 후반 이상의 연령으로 설명되어 있으나, 글쓴 이가 신뢰할만한 출처를 찾지 못해 불명으로 표기.)

◈ 별명: 소좌 (한국식으로는 소령, 미국식으로는 Major)
과거 군에 몸 담고 있을 당시의 그녀의 계급인데, 당시 동료였던 이시카와나 바토가 습관적으로 부르는 탓에 다른 공안 9과의 멤버들도 그녀를 소좌라 부른다. 한국판 DVD 등에서는 한국이라는 정서를 감안하여 소좌와 동등한 계급인 소령으로 표기.

◈ 소속: 공안9과 (후에는 조직을 탈퇴하여 독자적으로 행동)
몸을 사이보그화하거나 뇌를 전자두뇌로 바꾸어 직접 뇌를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진 미래의 시대이기에, 타인의 전자두뇌를 해킹하는 사이버 범죄의 발생율이 빈번하다. 이러한 고도의 사이버 범죄와 자국 내의 안보를 위협하는 각종 테러사건 등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내무성 산하의 비밀경찰이 바로 공안 9과이다. 멤버들은 대부분 군경력을 지닌 전뇌전과 대인전투의 스페셜리스트들로, 형사출신인 토그사를 제외하고는 몸의 상당 부분이 사이보그화 되어 있다.

오시이 감독의 첫번째 극장판에서는 인형사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그(혹은 그녀나 그것)와 융합함으로 인해 쿠사나기이면서도 쿠사나기가 아닌 새로운 무엇인가로 환생한다. 그 이후 공안 9과를 탈퇴하여, 두번째 극장판인 '이노센스(2004)'에서는 단독으로 바토를 도와주기도 한다. (이 인형사와의 융합은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책에서도 다루어졌던 전개이다.)

패러랠 월드격인 공각기동대 3번째 TV용 단편 'Solid State Society(2006)'에서는 극장판과는 다른 이유(그러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음. 단지, 소수정예에서 거대조직으로 변모하는 공안 9과를 떠나 독자적인 수사활동을 추구했던 쿠사나기의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추정)로 인해 공안9과를 탈퇴했다가 클라이막스에 극적으로 공안 9과와 공동전선으로 사건을 해결. 단, 다시 공안 9과에 합류하는지의 여부는 작중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 특기: 전뇌전, 테러진압, 인질구출, 암살
비핵대전 시절의 군경력으로 인해 그녀는 잠입, 침투, 인질구출 및 암살과 같은 소규모 특수작전임무의 스페셜리스트이며, 동시에 전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는 전뇌 해커이기도 하다. 비록 극장판의 인형사나 TV 시리즈의 웃는 남자, 개별 11인의 쿠제, 내무성의 고다, 괴뢰회 같은 대립측 캐릭터의 활약을 강조하기 위해 조금 덜 다루어진 듯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그들과 버금가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들 이상의 해커라는 사실은 극장판 '이노센스'나 TV 단편 'Solid State Society'에서 그 면면을 엿볼 수 있다.

그 외의 특기(?)라면, 초고가의 특제 의체를 적극 활용한 관능미 넘치는 바디 라인이라고나 할까. 단, 육감적인 스타일의 패션을 보여주었던 만화책에 비해 극장판이나 TV 시리즈에서의 헤어 스타일이나 패션감각은 대체적으로 하드웨어에 못미치는 감각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아마도, 그것은 오시이 감독이나 그의 문하생이었던 카미야마 감독의 리얼리티적인 작품관에 기인한 듯.) 그러나, 그 보라빛 단발머리야말로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 포인트이기도.

◈ 그 외 신변잡기
자신의 비밀 아지트를 몇 곳 소유하고 있으며, 원격조종용 의체도 다수 소유하고 있는 등, 상당한 재력가로 추정. 그것이 위험천만한 군과 공안에 근무한 그녀의 직업적 특성에 따른 보수 때문인지, 이제는 알 수 없는 그녀의 먼 과거에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초일류 해커라는 특성을 발휘하여 어디서 못된 짓을 해서 번 것인지는 TV 시리즈나 극장판만으로는 추정 불가능.

TV 시리즈 1기에 등장했던 그녀의 여성친구들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레즈비언적인 성취향을 지닌 듯 싶다. 단, TV 시리즈 2기에서 소년을 유혹하던 장면이나 코믹스의 여타 장면들로 미루어 보아 양성애자로 추정. (자유자재로 의체를 바꿀 수 있고, 온갖 전뇌를 돌아다녔으니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된다면 성정체성을 잃어버릴지도. 언젠가 아는 친구가 말했던 '환생하면 여자로 태어나 여성의 오르가즘을 탐구해보고 싶다.'는 절규는 쿠사나기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듯.)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특수공작원... 코믹스
 
쿠사나기 모토코는 89년 시로 마사무네 원작의 만화책 공각기동대를 통하여 세상에 등장합니다. 그녀는 시로 마사무네의 이전작 'Appleseed(1985)'의 여주인공 듀난 너츠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시로 마사무네의 육감적인 데생력에 힘입어 여성스러우면서도 강인한, 마치 한마리의 날렵한 치타와도 같은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여인이기도 합니다.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은 사이버 펑크적이면서도 디테일한 설정 덕에 모국인 일본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더욱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기실 애플시드나 공각기동대 모두 캐쥬얼하게 접할 수 있는 만화책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세계관과 디테일한 메카 묘사, 복잡하고 세밀한 데생 덕에 매니아적 색채가 강한 사이버펑크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이 두 작품은 모두 일정연령 이상의 성인층을 위한 작품이라는 이야기와 상통하기에 성인층에 대한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내지 원작자인 시로 마사무네의 성적 취향)에서 듀난이나 쿠사나기 모두 굉장히 육감적이고 섹슈얼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녀들은 기존의 SF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에 비해 (모습에서나 정신적으로나)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동시대의 만화영화 주인공들 중에는 87년에 OVA로 제작되었던 켄이치 소노다(만화가 겸 캐릭터 디자이너)의 '버블검 크라이시스'에 등장하는 프리스나 실비아와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프리스는 듀난과, 실비아는 쿠사나기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을 듯. 물론,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켄이치 소노다가 그렸던 여주인공들은 밀리터리 스페셜리스트라는 측면에서 시로 마사무네의 캐릭터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이 버블검 크라이시스 이외에도 그의 또다른 작품인 '갈포스(1986)'의 라비, 엘자, 루피, '건 스미스 캣츠(1995)'의 라리 등이 비슷한 성격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건 스미스 캣츠의 주인공 라리의 경우, 단발의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쿠사나기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죠.
 

© SHIROW MASAMUNE / KODANSHA

그림1. 애플시드 만화책 표지(좌측), 공각기동대 만화책 첫번째 시리즈 미국판(중앙), 두번째 시리즈 Man Machine Interface 미국판(우측). 만화책의 쿠사나기는 극장판이나 TV 시리즈보다 좀 더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 데생 스타일의 차이로 인해 시로 마사무네의 육감적인 캐릭터들은 켄이치 소노다의 귀여운(?) 캐릭터들에 비해 성인 취향에 더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켄이치 소노다의 캐릭터들이 성숙하고 이지적인 여인과, 보이쉬한 터프걸, 여성스러운 청순녀, 깜찍하고 귀여운 미소녀 등으로 나뉘어 거의 그녀들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시로 마사무네의 그녀들은 원톱 여주인공으로서 남성미를 자랑하는 파트너(브리아레오스나 바토)와 함께 강한 대비를 보이면서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이 큰 차이라 하겠습니다
 
성인 취향(이면서 동시에 남성 취향)의 극단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시로 마사무네의 캐릭터들이지만, 듀난과 쿠사나기는 몇몇 부분에서 서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남자친구 브리아레오스를 일편단심으로 바라보며, 콤비플레이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듀난이 젊고 패기 넘치는, 그리고 순수하고 우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쿠사나기는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 선 모호한 정체성과 남자 친구와 레즈비언 친구를 모두 사귀는 양성애적 성취향, 자신의 적수였던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자아로 탄생하는 불확실한 가치관 등 여러 면에서 사이버펑크 성인물의 주인공에 걸맞는 혼돈스럽고 규격화되지 않은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쿠사나기의 젊었을 적 모습이 듀난이고 듀난이 많은 경험과 세월을 겪어 성숙된 모습이 쿠사나기라고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군요.

© KENICHI SONODA

 그림2. 갈포스(좌측), 버블검 크라이시스(중앙), 건 스미스 캣츠 (우측). 켄이치 소노다의 작품들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SF, 또는 밀리터리 액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결국, 만화책의 마니아적인 색체 때문이었는지 쿠사나기는 쉽게 영상매체를 통해 모습을 보이지는 못합니다.(듀난은 88년작 OVA 애플 시드로 먼저 아니메계에 데뷔를 합니다만, 그리 큰 반응을 얻지는 못합니다.) 아마 당시가 SF 장르가 몰락하면서 복고와 리메이크 바람이 불던 일본 아니메의 암흑기의 한가운데였다는 사실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군요. 결국, 90년대 중반까지 그녀를 기억하는 이는 소수의 매니아에 불과했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말입니다.
 
 
관능을 벗고 철학을 입다... 극장판 공각기동대
 
95년, 에반게리온(이하 에바)의 써드 임팩트('은하철도 999'와 '기동전사 건담', '마크로스'로 대표되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을 세컨드 임팩트로 가정했을 때)와 함께 일본 아니메는 수년간의 침체를 딛고 신세기로의 도약을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아니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단연 에바를 꼽고 있고 저 역시 그 점에 있어서 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 써드 임팩트를 온전히 에바 혼자서 열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에바가 아니메 마니아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일반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일본 내에서의 국지적 임펙트였다면(물론, 그 이후에 세계적인 반향을 얻었지만),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1995, 이하 공각기동대 극장판)'과 오토모 가츠히로가 총감독을 맡았던 '메모리즈(1996)',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1997)'로 이어지는 극장용 아니메의 삼연속 랑데뷰 홈런은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아니메의 위상을 높여준 글로벌 임팩트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바로 그 첫번째 홈런인 공각기동대 극장판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 쿠사나기 모토코인 것입니다. (결국, 에바가 일본 만화영화 내수시장에 활력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뒤의 세 작품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고, 뒤의 세 작품은 일본 만화영화의 작품성을 전세계적으로 알렸다는 점에서 에바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국가 기밀을 탈취해서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려는 면책특권을 지닌 외교관을 눈깜짝할 새에 사살한 후, 빌딩의 저 아래로 광학미체(간단히 말해서 투명장치)와 함께 사라지는 도입부, 곧이어 펼쳐지는 신비로운 오프닝 테마를 배경으로 세밀한 의체 제작과정을 묘사한, 당시로서는 극한에 이른 비쥬얼은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으며, 아니메 史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의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오시이 마모루식 완벽주의의 집합체였던 것입니다.
 

© 1995 SHIROW MASAMUNE / KODANSHA / Bandai Visual

그림3. 쿠사나기의 의체(사이보그 몸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던 극장판의 인트로 씬. 의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마치 만화책의 쿠사나기에서 극장판의 쿠사나기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듯 하다. 극장판의 캐릭터 디자인과 키 애니메이터는 인랑의 감독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작화감독은 Production I.G의 또다른 명 감독인 붉은광탄 질리온의 니시쿠보 미즈호가 맡아 새로운 쿠사나기를 그려내었다. 

오시이 감독은 시로 마사무네의 멋진 세계관을 극장판으로 옮기면서 쿠사나기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리뉴얼 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를 감싸고 있던 최대의 무기(?)인 관능미를 과감히 벗겨버리고, 정체성에 방황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탈바꿈 시켜버린 것이었습니다. 관능미를 벗어버린 그녀는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기다렸다는 듯 풀어놓으며, 스탭진이 창조해 낸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이고 어두운 도시에서 철학적 향연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Ghost in the Shell'이라는 제목 그대로 쿠사나기의 관능미 속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마치 껍질 속의 고스트처럼 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시이 감독은 자신의 해석대로 묘사했던 쿠사나기와는 반대로 원작의 디테일한 밀리터리적 설정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실사 영상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인 연출을 선보입니다. 머신건과 권총을 능숙하게 조립하고 다루는 모습은 특수공작원이라는 그녀의 신분을 생생하게 묘사했고, 우리는 여성을 넘어 강인한 카리스마와 실력을 가진 주인공으로서 그녀를 인정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쿠사나기가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개체로서 네트워크를 향해 나아가듯, 전형적 히로인의 테두리에 묶여있던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성별을 극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으로 새로운 진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공각기동대 극장판은 사실 일본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참패하고 맙니다. 관능미를 벗어버린 어둡고 우울한 여주인공과 오시이 감독의 난해한 연출력이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러나,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이 외국에서 호평을 얻었던 것처럼 극장판은 외국 개봉 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합니다.(해외에서의 성공 이후 다시 일본에서 재개봉되었구요.)

'전뇌를 통해 네트워크에 가상현실로 접속하고, 타인의 뇌를 해킹하여 가상의 기억을 심어놓을 수 있으며, 자신의 기억을 모두 데이터로 백업하여 네트워크에 저장한다.'는 시놉시스는 당시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최상위 형태의 진화였고 거기에 일반 아동용 만화영화, 아니 실사영화마저도 뛰어넘는 치밀한 스토리와 극사실주의는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인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세기말 등장했던 초 화제작 '매트릭스(1999)'의 감독 워쇼스키 형제(이제는 남매)가 이 공각기동대 극장판에 큰 영향을 받았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아바타'의 SF 거장 제임스 카메론 역시 공각기동대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합니다.
 

© 1995 SHIROW MASAMUNE / KODANSHA / Bandai Visual

그림4. 광학미체와 함께 빌딩의 아래로 사라지는 쿠사나기의 극장판 오프닝 씬. 광학미체는 공안 9과 요원들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광학미체 속에 몸을 숨기는 쿠사나기의 모습이 의체라는 껍데기 속에 인간임을 증명하는 고스트가 숨어있는 모습과 겹쳐지는 듯하다.

그리하여 여자를 넘어섰던 그녀의 변신은 결국 강렬한 잔상을 남기면서 일본 만화영화사에 길이 기록됩니다. 관능미에 가려져 연기력을 평가받지 못하던 그녀가 작가주의 감독을 통해 새로운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철학 위에 관능과 카리스마를 입다... TV 시리즈
 
95년 극장판과 함께 글로벌한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그녀는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마치, 인형사와 융합해 공안 9과를 떠나 네트워크로 잠적해버린 극장판의 뒷모습처럼 말이죠. 그녀는 아니메와는 별개로 97년도 PS용 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극장판의 어두웠던 모습과는 다른, 만화책의 쿠사나기에 충실한 예전의 그녀로 돌아와 만화책의 그녀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신선함을, 만화책의 팬들이었던 이들에게는 쿠사나기의 역동적인 모습을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7년만인 2002년, 드디어 네트워크의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던 그녀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TV 시리즈,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이하 SAC)로 말입니다.
 
Production I.G의 차세대 주자인 카미야마 켄지가 감독을 맡은 TV 시리즈 SAC에서 쿠사나기는 극장판의 그녀와는 또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시이 감독의 쿠사나기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정체성에서 방황하며, 어두운 고독의 세계를 홀로이 가는 한마리의 외로운 늑대의 모습이었다면, 카미야마 감독의 그녀는 공안 9과의 2인자로서 개성 넘치는 공안대원들을 강인한 카리스마로 이끌어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암사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5. TV 시리즈 1기의 장면들. 만화책의 쿠사나기는 마니악했고, 극장판의 그녀는 난해했다는 점에서 TV 시리즈의 그녀가 상대적으로 대중적이고 접하기 쉬웠으며, 또한 그 카리스마와 매력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않았나 싶다. 

어찌보면, 극장판의 시니컬한 그녀가 되기 직전의 좀 더 젊은 쿠사나기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더불어 흥미진진해진 이야기와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주었던 극장판의 쿠사나기에 비해 오히려 인간적으로 좀 더 시청자에게 가까워진 그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외적인 볼거리에 치우치지 않은 스토리의 정합성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해서 메인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배치된 단편 에피소드도 별도의 이야기로서도 뛰어난 완성도와 함께 주제의식을 임팩트하게 전달했고, 그를 위해 때로는 쿠사나기를 메인 주인공으로, 때로는 조연급 내지는 아예 이야기의 흐름에서 빼버림으로써 공각기동대를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닌, 공안 9과의 인물(과 기계)들을 모두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단독 주인공이 아닌 여러 주인공 중 하나로 작품을 끌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오히려 시리즈 내내 그 존재감을 잃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SAC에서 이미 그녀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최고조에 이른 모습으로 표현되었던 탓일 겁니다. 그러면서도 제작진은 그녀를 슈퍼 히로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적절한 한계와 긴장감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고도의 테크닉을 보여줍니다. 오시이 감독의 극사실주의적 작품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면서도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적절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성격을 잃지 않은 SAC를 통해 그녀는 비로소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여배우로 태어난 것입니다.

오시이 감독만이 창조해낼 수 있을 것 같던 그녀는 이렇게 신예 카미야마 감독에 의해 난해함을 벗어버리고 강렬한 카리스마와 훨씬 더 강조된 여성성을 바탕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냉철한 그녀, TV 시리즈 1기의 엔딩곡 'Litium Flower'야말로 그녀를 정의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군요.
 
SAC는 성인용 작품이면서, 게다가 일반 지상파가 아닌 위성 케이블 방송의 PPV(Pay-Per-View: 시청 전에 일정금액을 결제하면 결제한 금액만큼 시청이 가능한 방식으로, 회당 결제방식의 주문형 비디오 VOD와는 차이가 있는 유료시청 방식. 글쓴이 주.) 형태로 방영하는 작품으로서 2기 제작이 어렵지 않나라는 예상을 깨고, 테러리스트를 사살하고 빌딩 아래로 광학미체와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는 유명한 쿠사나기의 극장판 오마쥬씬과 함께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2기에서는 그녀를 스크린에 데뷔시킨 오시이 마모루 감독도 스토리 컨셉으로 참여하는데요, 오시이 마모루는 SAC로 그녀를 보내고 비슷한 시기의 극장판에서는 그녀를 빼버린 체, 바토와 토그사만을 등장시켜 모토코가 사라진 이후의 공각기동대를 새롭게 그려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오시이 감독을 위해 그녀는 비록 목소리로나마 극장판에 등장하기도 하죠.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6. 오시이 마모루가 스토리 컨셉으로 참여하면서 묵직해진 스토리와 함께 그녀의 과거를 단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SAC 2기는 배경이 된 세계관에서 한국이 비핵대전으로 인해 몰락하고 한국민들은 난민이 되어 중국과 일본으로 뿔뿔이 흩어졌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채용함으로써 우리에게는 불편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만화책을 거쳐 극장판과 융합하고, 다시 극장판을 거쳐 TV 시리즈와 융합하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새로운 개체로서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쿠사나기 모토코를 의식한 스탠드 얼론 컴플렉스
 
쿠사가기가 보여준 강인한 카리스마와 행동력을 가진 여성상은 앞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버블검 크라이시스'와 같은 또다른 만화영화나, 각종 액션영화의 여주인공들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널리 익숙해진 모습이기도 합니다. 과연 누가 그런 여성 캐릭터의 시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TV 시리즈 1기의 최종화에서 웃는 남자와 쿠사나기가 정의했던 스탠드 얼론 컴플렉스(Stand Alone Complex: 한 명의 사람이 전달한 정보를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한 행동을 보이는데, 이 때 그들에게 계시를 준 최초의 사람은 선두에 나서지 않은 체, 그 정보를 이어 받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이 마치 자신이 오리지널인양 행동하지만 그 방향성은 잃어버린 상태. 글쓴이 주.)와도 같이, 스스로가 오리지널인듯 화면에서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자신만의 개성을 잃어버린 체 모방을 반복하는 캐릭터도 있고, 자기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캐릭터도 있습니다만, 그들 중에서 가장 빛을 발하고 있는 캐릭터는 단연코 쿠사나기를 뽑지 않을 수 없군요. 오리지널을 능가했는지도 모를 그녀의 존재감은 이제 만화영화 뿐만 아니라 영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가 헐리우드에서 실사영화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런 여성을 넘어선 강인함과 함께 강조되는 관능미나 성적 묘사는 분명 쿠사나기를 위시한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을 남성 시청자들에게 어필시킬 수 있는 매력포인트이면서 동시에 그녀들을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 의해 그러한 부분이 많이 거세되었으나, 카미야마 감독의 TV 시리즈는 (원작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성인물의 여주인공으로서 그녀의 성적 매력을 작품 내에서 은근히 자극했었죠.

비록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의 진지함 속에 드러난 일종의 팬 서비스적인 형태였지만, 결국 강인한 여주인공으로서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 또한 결국은 남성들이 창조해 낸 성적 판타지의 굴레를 완벽하게 떨쳐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설정은 동시에 그녀가 사이보그의 몸으로서 자신이 기계가 아닌 여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도 사용되고 있기에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극장판에서 네트워크와 융합되어 사라져 버린 그녀는 TV 단편 '공각기동대 SAC Solid State Society(SAC 3기)'를 통해 잠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만, 여전히 무한한 네트워크의 공간 속에서 기약없는 여행을 떠난 체입니다. 마치 샤아와 아무로가 액시즈의 빛과 함께 우주의 저편으로 생사를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메텔이 은하철도 999에 몸을 싣고 영원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하록 선장이 아르카디아호와 함께 별바다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녀의 다시 돌아오는 언젠가, 화면에서는 그녀의 귀환을 알리는 리튬 꽃의 메마른 금속향기가 광학미체의 미세한 시각적 간섭과 함께 우리의 감각을 일깨울지도 모릅니다.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7. SAC 3기는 연재물이 아닌 2시간 분량의 TV 단편으로 제작되어 일종의 팬서비스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여기서 쿠사나기는 이유를 밝히지 않은체 공안 9과에서 탈퇴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여 마치 극장판에서 인형사와 융합하여 공안 9과를 떠난 다음의 그녀의 행적을 묘사한 듯한 착각을 주기도 했다. 실제 TV 시리즈 SAC와 극장판의 스토리는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로, 일종의 패러랠 월드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참고 포스트>
 
1. 쿠사나기 모토코, 위키피디아


공각기동대 3종 패키지 :래핑맨, 인디비주얼 일레븐, S.S.S (6DISC) - 10점
카미야마 켄지 감독/미라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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