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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메를 이끌어갈 또 하나의 별이 지다.


드하우스의 21세기를 이끌어갈, 아니 일본 아니메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거목 콘 사토시(今 敏) 감독이 지난 화요일인 8월 24일, 췌장암으로 아쉬운 생을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향년 47세.

지브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물로 지목되었던 이가 98년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던 콘도 요시후미라면, 지브리의 라이벌이라 부를 수 있는 매드하우스를 이끌어갈 인물 중 하나는 바로 콘 사토시였습니다. 두 감독 모두 비슷한 나이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군요.

훗카이도 출생으로 무사시노 예술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콘 사토시는 90년에 '해귀선'이라는 코믹스를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아키라(1988)'의 거장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이 연출한 'World Apartment Horror(1991)'의 작업에 참여했던 그는 곧이어 매드하우스에 입사하게 되고, 기타쿠보 히로유키가 연출하고 오토모 가츠히로가 각본을 맡았던 '노인 Z(1991)'에서 세트 디자인을 맡으면서 아니메 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오시이 감독의 '패트레이버 2(1993)'에서는 레이아웃 스탭으로 참여하기도 했지요. 연출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배경 미술 등에서 활약한 이력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95년에 제작된 옴니버스 스타일의 아니메 '메모리즈' 3부작의 첫번째 에피소드 '마그네틱 로즈'로, 이 작품에서 콘 사토시는 각본과 배경미술 감독으로 참여하여 예의 뛰어난 영상미를 선사합니다. 작은 부분까지 세심한 디테일을 부여한 마그네틱 로즈의 세트들은 정말 인간이 그린 작품일까 싶을 정도로 정밀하고 사실감이 흘러넘쳤죠.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었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 극장판과 맞먹을 정도의 압도적 퀄리티는 세계적인 극찬을 받기도 합니다.

ⓒ Magnetic Rose/Memorise Production Committee


이렇게 배경미술 감독으로 창창하게 나아갈 것 같던 그는 돌연 98년 2월 한편의 극장 아니메의 감독으로 다시금 아니메 팬들에게 찾아옵니다. 이 작품이 바로 '퍼펙트 블루(1998)'입니다.

원래 실사영화로 기획되었으나 아니메로 노선을 전환했던 이 작품은 아니메로 제작 결정이 난 이후에도 좀처럼 감독을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매드하우스의 프로듀서인 이노우에 히로아키와 마루야마 마사오의 제안으로 연출가의 경험이 전무했던 콘 사토시가 전격적으로 감독으로 발탁되게 됩니다. 사이코 호러 장르인 작품의 성격상 흥행이나 인기보다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던 터이기에 아마도 콘 사토시에게 메가폰이 넘어가지 않았나 싶은데요, 결국 이 작품으로 인해 콘 사토시의 인생은 180도 변하고 맙니다. 퍼펙트 블루에는 아니메 업계에 발을 들일 때부터 그와 호흡을 맞춰온 오토모 가츠히로 또한 스페셜 어드바이저로 참여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퍼펙트 블루는 평단과 관객의 열렬한 지지 속에 콘 사토시의 연출력을 만천하에 알린 작품이 되었습니다. 뛰어난 디테일을 지닌 실사영화스러운 표현, 이러한 배경 위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콘 사토시만의 독특한 연출은 정말 놀랍고도 신선할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영화로 제작되었다면 과연 이런 작품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사이코 호러라는 영화적인 장르를 아니메로 승화시킨 감독의 천재적인 재능은 수많은 명감독들이 포진한 아니메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었습니다.

ⓒ 1997 Madhouse Inc · REX Entertainment Co., LTD.


그러나, 콘 사토시의 진정한 내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연이어 놀라운 작품들을 선보이게 되는데요. 그로부터 3년 뒤에 선보인 극장판 아니메 '천년여우(2001)'에서는 더더욱 압도적인 완성도와 내러티브를 보여줍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과 함께 2002년 제5회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애니메이션 부분에서 공동대상을 수상했으며,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극장영화부문 최우수 작품상, 제6회 캐다나 팬드-아시아 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 영화상 등 많은 영화제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기에 이르릅니다. 뒤이어 2003년 개봉된 '동경대부' 역시 제58회 마이니치 영화콩쿨 애니메이션 영화상, 퓨쳐 필름 페스티벌 최우수 작품상,  제36회 시체스 국제 카타루니야 영화제에서 최우수 영화관객상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콘 사토시를 매드하우스를 대표하는 감독, 아니 21세기의 아니메를 짊어질 작품성과 티켓파워를 동시에 지닌 감독으로 탄생시키게 됩니다. 외적인 측면 뿐만이 아니라 연출가, 그리고 각본가에 세트 디자인 등을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비주얼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실로 오랜만에 보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던 셈입니다. 

ⓒ 千年女優 製作委員會 (좌) / ⓒ 今敏 · Madhouse/東京ゴッドファーザーズ 製作委員會 (우)
ⓒ 今敏 · Madhouse/妄想代理人 製作委員會 (좌)  /  ⓒ Madhouse/Sony Pictures (우)

2004년에 TV 시리즈로 등장한 '망상대리인'은 그의 장기인 환상과 현실의 기묘한 조합과, 미스테리스러운 각본이 어우러진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으로 콘 사토시가 대중성에 치우친 감독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21세기 들어 똑같은 패턴의 그렇고 그런 아니메들이 물밀듯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의 이런 작품세계는 신선한 동시에 한가닥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비즈니스라는 미명 하에 가장 성공적인 공식만을 찾으려고 하는 아니메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한가지 대안으로 말입니다.  

비록 '파프리카(2006)'에서는 예의 환상과 현실의 조합이 조금은 구태의연해진 측면이 있었지만, 여전히 완성도 높은 미스테리 를 선보였던 그는 다소 긴 침묵기간을 거쳐 2010년 '꿈꾸는 기계'라는 이제까지와의 스타일과는 다소 다른 새로운 신작을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팬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는 그의 신작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비록 일본인이지만 그의 죽음이 더더욱 아쉽고 애통합니다. 아니메의 거장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신세대 애니메이터들을 이끌어갈 거대한 제목이었는데 말입니다. 꿈과 현실을 절묘하게 오버랩 시키던 콘 사토시 감독은 이제 더이상 현실에서 마주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가 남긴 유작들을 통해 많은 애니메이터들의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울러 제작 도중이었던 '꿈꾸는 기계'가 잘 마무리되어 그가 남긴 마지막 유작으로서의 가치를 더해주었으면 하구요.

현실 너머의 세계로 영면을 떠난 콘 사토시 감독의 명복을 빕니다.

ⓒ 2009 MADHOUSE / 今 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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