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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경찰 패트레이버 Early Days (1988),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 Patlabor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정보>

◈ 원작: 헤드기어, 유키 마사미(ゆうきまさみ)
◈ 감독: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 6화까지 / 요시나가 나오유키(吉永尚之) - 7화
◈ 각본: 이토 카즈노리(伊藤和典)
◈ 콘티/연출: 오시이 마모루 / 나카무라 류타로(中村隆太郎), 사와이 코지(澤井幸次), 이타노 이치로(板野一郎)
◈ 캐릭터 디자인: 타카다 아케미(高田明美)
◈ 메카닉 디자인: 이즈부치 유타카(出渕裕)
◈ 작화감독: 키세 카즈치카(黄瀬和哉), 와다 타쿠야(和田卓也), 다카하시 나오토(高橋直人)
◈ 미술감독: 오구라 히로마사(小倉宏昌)
◈ 음악/노래: 가와이 켄지(川井憲次) / 카사하라 히로코(笠原弘子)
◈ 제작사: 스튜디오 딘
◈ 저작권: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일자: 1988.04.25 ~ 1989.06.25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OVA(7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시놉시스>

하이퍼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수많은 분야에 진출한 범용 인간형 기계 레이버(Labor). 하지만 그것은 레이버 범죄라 불리는 새로운 사회적 위협을 만들어 내었다. 계속되는 레이버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시청은 산하에 특수차량 2과를 창설하게 된다. 통칭 특차 2과로 불리는 패트레이버 중대, 패트레이버의 탄생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창설된 특차 2과는 경시청 내부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단 세 대의 고물 레이버만이 지급된 형식상의 조직으로, 경시청 내부에서도 따돌림을 받는 허울뿐인 조직이기도 했다.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3개월 째, 마침내 최신형 레이버 3대가 특차 2과에 지급되기에 이른다. 이와 동시에 이 패트레이버의 운용을 위한 풋내기 요원들이 특차 2과에 배속되는데... (줄거리 서두는 OVA 프롤로그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


<소개>

'기동전사 건담(1979)'을 시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얼로봇이 87년 사실상의 종언을 고한 직후 등장한, 어찌보면 이제까지의 거대로봇 아니메 중 가장 현실적인 진짜 리얼로봇물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오시이 마모루를 위시한 창작집단 헤드기어의 첫 작품이자 헤드기어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며, 동시에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랐던 오시이 마모루를 기사회생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로봇물이면서도 프라모델이나 완구 업체를 스폰서로 삼지 않고 미디어 믹스적인 비즈니스 전개를 취하여 로봇물 중 거의 유일하게 스폰서의 입김에 놀아나지(?) 않은 작품이 바로 이 작품 '기동경찰 패트레이버(1988)'이다.

보통 TV 시리즈로 등장하여 인기를 끌면 극장 아니메가 제작되고, 이후 후속편이나 스핀오프 형태의 이야기가 OVA로 제작되는 것이 거의 관행이던 당시의 아니메 제작 시스템과는 달리, OVA로 등장하여 인기를 얻은 후, 극장 아니메가 제작되고 TV 시리즈가 제작되는 보편적인 방식을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역시 특이하다 할 수 있다. 여러 면에서 패트레이버가 당대의 로봇물과는 다른 출발점과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회사원에서 전업 만화가로 전향한 유키 마사미가 친한 친구들과 설정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하던 와중 '바이돌'이라는 기획에서 인간형 로봇 레이버가 등장하게 된 것이 패트레이버의 시작이다.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가는 과정에서 몇년 뒤 건담의 메카닉 디자이너로 유명해지는 이즈부치 유타카가 가세하고, '시끌별 녀석들(1981)'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토 카즈노리가 합류하면서 초기의 아이디어는 점차 애니메이션을 위한 기획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여기에 보다 애니메이션에 알맞는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시끌별 녀석들과 '마법천사 크리미 마미(1983)', 그리고 '변덕쟁이 오렌지로드(1987)'를 거쳐 80년대 최고의 캐릭터 디자이너 중 한명으로 성장한 타카다 아케미가 참가하게 된다. 여기에 오시이 마모루까지 가세하면서 창작집단 '헤드기어'가 최초로 결성된다.

오시이 마모루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이 기획에 동참하게 된다. 당시 그는 '달로스(1983)'와 '시끌별 녀석들 2 뷰티풀 드리머(1984)', '천사의 알(1985)'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면서 입지가 많이 좁아진 상황으로, 일감이 거의 없어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이 패트레이버는 오시이에게 있어서 기사회생의 기회이자 터닝포인트 였던 셈이다. 다만 기획이 어느 정도 잡힌 후에 참여한 본 작품에 오시이가 100% 만족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지며, 그중 주역 메카인 98식 잉그램의 경우에는, 슈퍼로봇에서 이어져온 인간형 로봇의 컨셉이라는 점에서 몹시나 언짢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디자이너인 이즈부치를 '메카 음치'라고 깔아내릴 정도.) 사실적인 로봇을 그리는 작품에서 인간형 로봇은 비현실적이다라는 것을 오시이는 주장한 셈인데, 결국 본 작품에는 잉그램과 같은 인간형 레이버 외에 상당수의 레이버가 오시이의 뜻에 따라 산업기계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등장하게 된다.

오프닝의 서두에서 펼쳐지는 잉그램의 놀라운 액션장면을 보고 본 작품에 빠져든 로봇 마니아들도 많았는데, 사실 오프닝의 컷은 거의 떡밥 수준으로 볼 수 있다. 본편의 전개는 로봇들의 강렬한 메카 액션과는 거리가 먼 시트콤 수준의 코미디와 드라마가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이제까지 등장한 로봇 아니메 중 가장 평범하고 소박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코미디 영화 '폴리스 아카데미'의 인물 설정을 모티브로 삼고 있기에 작품의 주무대이자 주인공들이 소속된 특차 2과는 개성이 강한 개그 캐릭터들로 넘실거린다. 다만, 빵 터지는 강한 개그보다는 전체적으로 잔잔한 시트콤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는 오시이표 개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개그에서조차 느린 호흡을 자랑하는 오시이의 진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리얼로봇이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패트레이버는 여타의 리얼로봇에 비해 태생이나 성격이 다른 별개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다. 거대한 세력과 세력간의 전쟁을 테마로 삼았던 여타의 로봇 아니메와는 달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부터 테러 사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범죄를 해결하는 범죄수사물에 가까우며, 주인공들 또한 천재 파일럿이나 고뇌하는 주인공이 아닌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경찰 공무원들이라는 점이 기존의 로봇물과는 다르다 하겠다. 시대 배경, 장소, 생활방식 등 모든 면에서 작품이 만들어졌던 80년대를 연상시키는데, 그저 6~8미터의 인간형 로봇이 등장한다는 것만이 다를 뿐 이러한 익숙한 배경과 평범한 이야기 전개는 패트레이버를 다른 로봇 아니메와는 다른 성격의 리얼로봇물로 그려주고 있다.

로봇의 활약이 거의 없는 독특한 형식의 로봇물임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기대이상이었다. 애초에 6부작으로 기획했던 OVA는 이후 1편이 더 연장되었으며 연출은 오시이 마모루가 아닌 시끌별 녀석들에서 콘티와 연출을 맡았던 요시나가 나오유키가 맡게 된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키사하라 히로코의 주제가 '미래파 Lover'는 일본 아이돌 여가수들의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싫어하던 당시의 엘로스에게 마크로스의 노래들과 더불어 그 편견을 날려준 곡으로, 톡톡 튀는 멜로디와 상큼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곡이기도 하다. OVA 2기와 구분하기 위해 나중에 출시되는 영상 소프트에는 'Early Days'라는 부제가 붙는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the Movie (1989) 


ⓒ HEADGEAR · EMOTION / TFC


<정보>

◈ 감독: 오시이 마모루
◈ 각본: 이토 카즈노리
◈ 캐릭터 디자인: 타카다 아케미
◈ 메카닉 디자인: 이즈부치 유타카 
◈ 디자인 협력: 카와모리 쇼지(河森正治), 사야마 요시노리(佐山善則), 이토 타케히코(伊東岳彦)
◈ 작화감독: 키세 카즈치카
◈ 미술감독: 오구라 히로마사
◈ 음악: 가와이 켄지
◈ 기획/프로듀서: 헤드기어 / 우노사와 신(鵜之沢伸), 마키 타로(真木太郎)
◈ 제작사: 스튜디오 딘
◈ 저작권: ⓒ HEADGEAR · EMOTION / TFC
◈ 일자: 1989.07.15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극장판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한 레이버의 폭주를 다룬 패트레이버의 첫 극장판 아니메. 키세 카즈치카의 현실적인 극화체풍의 작화는 극장판에 와서 더더욱 두드러졌는데, 그로 인해 타카타 아케미의 터치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 이는 후일 두번째 극장판과 세번째 극장판으로 이어지는 보다 심각한 패트레이버를 위한 일종의 포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이용한 에피소드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참신한 설정이었는데, 무엇보다 80년대 후반은 PC의 보급률이 전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시대로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개념 자체가 일반인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앞서간 소재라 할 수 있겠다. 

극장판의 레벨에 맞게 이즈부치 유타카 외에 다수의 디자이너가 참가한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의 원작자겸 메카닉 디자이너인 거물 카와모리 쇼지의 가세라든지 '기동전사 제타 건담(1985)'으로 데뷔하여 여러 건담 시리즈에서 활약하게 되는 사야마 요시노리나 이토 타케히코 등으로 인해 한차원 더 높아진 메카닉 디테일을 경험할 수 있다. 극장판에 어울리는 뛰어난 수준의 작화 역시 볼거리로, 이후로 계속되는 압도적 퀄리티의 오시이표 극장판 아니메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TV (1989)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정보>

◈ 감독: 요시나가 나오유키
◈ 각본: 이토 카즈노리, 오시이 마모루, 요코테 미치코(横手美智子), 키무라 ?(木村直人)
◈ 콘티/연출: 타키자와 토시후미(滝沢敏文), 카세 미츠코(加瀬充子) 外 / 토모나가 케이타로(元永慶太郎), 아오키 야스나오(青木康直)
◈ 작화감독: 니시무라 노부요시(西村誠芳), 타카미 아키오(高見明男)
◈ 미술감독: 시부야 유키히로(渋谷幸弘)
◈ 음악/노래: 가와이 켄지 / 카사하라 히로코
◈ 프로듀서: 호리코시 토오루(堀越徹), 이시카와 세이지(石川清司)
◈ 제작사: 선라이즈
◈ 저작권: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일자: 1989.10.11~1990.09.26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TVA(47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극장판을 거치면서 인기를 입증한 패트레이버의 첫번째 TV 시리즈. 흥미로는 것은 본 작품의 제작을 선라이즈가 맡았다는 사실인데, 리얼로봇 아니메를 최초로 제작한 아니메 제작사와 리얼로봇의 개념을 다른 형태로 정립한 작품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 조우는 몹시도 흥미롭다 하겠다.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 스탭으로 한발 물러나고 요시나가 나오유키가 OVA 7편에 이어 감독을 맡으면서 전반적으로 오시이 색체는 옅어졌으며, 선라이즈의 가세로 분위기도 일신하게 된다. 다만, 이토 카즈노리나 오시이가 여전히 각본을 맡고 있어 패트레이버만의 정체성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특차2과의 일상에 대한 묘사나 현실적인 에피소드 등은 본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TV 시리즈에서는 이즈부치 유타카의 최고의 디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검은색 레이버 그리폰이 최초로 등장하고 있다. 미려하고 세련된 유선형의 검은색의 바디와 인상적인 빨간색 바이저는 산업용 기계로봇이 주로 등장하는 현실적인 패트레이버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52화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여건상의 이유로 47화로 종영하게 된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OVA 2기 (1990) 


ⓒ HEADGEAR · EMOTION / TFC

<정보>

◈ 감독: 요시나가 나오유키
◈ 각본: 오시이 마모루, 이토 카즈노리, 요코테 미치코 外
◈ 콘티/연출: 요시나가 나오유키, 키쿠치 카즈히토(菊池一仁) 外 / 토모나가 케이타로, 아오키 야스나오 外
◈ 작화감독: 야마다 키사라카(山田きさらか), 타카기 히로키(高木弘樹)
◈ 기획: 헤드기어
◈ 제작사: ?
◈ 저작권: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일자: 1990.11.22~1992.04.23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OVA(16화)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TV 시리즈의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제작된 두번째 OVA. 전체적으로 각각의 패트레이버 시리즈는 스토리적 연관성이 별로 없는 패러랠 월드를 표방하고 있지만 본 OVA와 TV 시리즈는 뚜렷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애초에 5화를 마저 다 채우지 못하고 종영된 TV 시리즈의 이야기를 마무리 짖자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2 the Movie (1992)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Production I.G


<정보>

◈ 감독: 오시이 마모루
◈ 각본: 이토 카즈노리
◈ 작화감독: 키세 카즈치카
◈ 디자인 협력: 카와모리 쇼지, 카토키 하지메(カトキハジメ), 후지시마 코스케(藤島康介)
◈ 미술감독: 오구라 히로마사
◈ 음악: 가와이 켄지
◈ 기획/제작: 헤드기어 / 우노사와 신, 하마와다 츠요시(濱渡剛)
◈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 프로덕션 I.G
◈ 저작권: ⓒ HEADGEAR · BANDAI VISUAL / TFC · Production I.G
◈ 일자: 1992.08.07
◈ 장르: SF,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극장판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오시이의 정체성이 다시금 불을 뿜은 패트레이버의 두번째 극장판. 애초부터 비현실적인 인간형 로봇의 등장이 마뜩치 않았던 오시이는 본작에 이르러 레이버의 활약을 대폭 축소시켰으며, 도쿄 시내에서 일어난 테러와 쿠데타,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에 연루된 음모를 파헤치는 서스펜스가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패트레이버를 변주하게 된다. 작품의 모티브는 첫번째 OVA의 에피소드 5, 6편인 '2과의 가장 긴하루'에 그려졌던 자위대의 쿠데타가 모티브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패트레이버이지만 패트레이버라고 보기 힘든 작품인 셈이다. 패트레이버를 통해 이전과는 달리 좀 더 대중취향적인 작품을 만들던 오시이의 작품 세계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알려준 작품이기도 하다. 

무거운 주제와 정적인 연출, 느린 호흡으로 긴 가치관과 이념을 읊는 오시이표 스타일로 인해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정체불명의 테러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와 정치적 헤게모니, 어눌하지만 뛰어난 상황판단력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특차2과의 코토 등 서스펜스 물로서는 영화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메카닉 디자인에 있어서도 비록 레이버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서두의 군사형 레이버를 비롯하여 상당히 하드한 밀리터리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다. 건프라 디자이너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카토키 하지메나 '오, 나의 여신님'의 작가로 메카닉 마니아이기도 한 후지시마 코스케 등이 참여하여 현실적인 병기와 탈 것들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시이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폐기물 13호 (2002), WXIII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HEADGEAR · EMOTION / TFC


<정보>

◈ 감독: 타카야마 후미히코(高山文彦)
◈ 각본: 도리 미키(とり みき)
◈ 캐릭터 디자인: 타카기 히로키
◈ 메카닉 디자인: 이즈부치 유타카, 카와모리 쇼지, 카토키 하지메
◈ 작화감독: 키세 카즈치카, 타카기 히로키 外
◈ 미술설정: 와타베 타카시(渡部隆)
◈ 음악: 가와이 켄지
◈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正雄), 시노하라 아키라(篠原昭)
◈ 제작총지휘: 와타나베 시게루(渡辺繁), 카와시로 카즈미(川城和実)
◈ 제작사: 매드하우스, 반다이, 토호쿠신사
◈ 저작권: ⓒ HEADGEAR · EMOTION / TFC
◈ 일자: 2002.03.30
◈ 장르: SF, 괴수물, 드라마, 리얼로봇, 범죄물
◈ 구분/등급: 극장판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10년만에 등장한 패트레이버의 신작 극장판. 오시이 마모루나 유키 마사미, 이토 카즈노리 등 패트레이버의 핵심진용이 대거 불참한 작품으로, 기존의 패트레이버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작품이다. 주인공 또한 특차 2과가 아닌 형사 쿠스미 타케시와 하타 신이치로이며, 특차 2과의 인물들과 레이버는 작품의 후반부에나 등장하게 된다. 그저 패트레이버의 세계관을 빌어온 스핀오프인 셈.

총 22권으로 완결된 유키 마사미의 원작 코믹스의 에피소드 '폐기물 13호'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나 원작과는 달리 상당히 시리어스한 성인취향의 전개가 눈길을 끈다. 이로 인해 뉘앙스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시리어스한 오시이의 극장판 2편과 같은 어두운 색체를 풍기고 있다. 다만, 정치논리라든지 이념적인 가치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우리를 어지럽게 했던 오시이의 극장판 2편과는 달리 본작은 괴수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한 여인과 그에 얽힌 슬프고도 충격적인 진실, 이를 뒤쫓는 두 민완형사의 이야기가 담긴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결과적으로 부제인 패트레이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물건이 되었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으며, 몰입감도 뛰어나다. 키세 카즈치카의 극화체는 본 작품과 완벽한 싱크로를 자랑한다.

한때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에 등장한 괴물이 폐기물 13호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표절 논란에 휘말리기도. 형체를 알기 힘든 그로테스크한 몸체에 크고 강한 꼬리, 인간처럼 팔 다리가 달린 부분은 일견 표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는데,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양서류나 어류(실제 모티브는 아구라고 전해짐)를 연상시키는 외형에, 개구리의 다리와 흡사한 네 개의 다리를 갖고 있는 반면, 폐기물 13호는 인간의 유전자가 결합되어 인간과 같은 팔다리와 여성의 가슴까지 달려있고 치아가 있다는 점에서 표절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폐기물 13호의 디자인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언급하기에는 실루엣의 일부가 비슷한 것도 사실. 이로 인해 국내 일부 네티즌과 혐한류에게 본의 아니게 여러가지 가십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다만 디자인 외에 스토리 상의 표절을 주장하는 부분은 근거가 없는 악성 루머다.(그런 식이라면 공각기동대는 블레이드런너의 표절이다.)


미니 파토 (2002) 


ⓒ HEADGEAR · EMOTION / TFC · Production I.G

<정보>

◈ 감독: 카미야마 켄지(神山健治)
◈ 각본/연출컨셉/음향 프로듀스: 오시이 마모루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니시오 테츠야(西尾鉄也)
◈ 음악/노래: 가와이 켄지 / 히요도 마코(兵藤まこ)
◈ 제작사: 프로덕션 I.G
◈ 저작권: ⓒ HEADGEAR · EMOTION / TFC · Production I.G
◈ 일자: 2002.03.30
◈ 장르: 드라마, 코미디
◈ 구분/등급: 단편(옴니버스 3부작) / 고교생 이상 관람가(R)


<소개>

폐기물 13호와 동시에 상영된 단편 애니메이션. 여러가지 실험적 기법이 적용된 작품으로 얼핏 보기에는 종이를 오려 만든 캐릭터를 카메라로 찍은 인형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풀 CG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가분수의 귀여운 2등신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런 형태의 애니메이션을 일본에서는 '파다파다 아니메(パタパタアニメ)'라고 부르기도 한다.([5] 참조) 파닥파닥 아니메로 명명해도 좋을 듯.

각본부터 연출컨셉에 이르는 기본 얼개는 오시이 감독이 아웃라인을 잡았으며, '인랑(2000)'에서 연출을 맡았으며, 오시이가 기획자 양성을 위해 세운 오시이 학원 출신이기도 한 신예 연출가 카미야마 켄지가 감독을 맡아 범상치 않은 연출력을 선보였다. 카미야마는 본 작품에서 선보인 종이 인형극과 같은 애니메이션 기법을 후일 자신의 TV 시리즈인 '동쪽의 에덴(2009)'의 엔딩 애니메이션에서 다시 한 번 선보이기도. 본편의 작화는 키세 카즈치카와 함께 Production I.G의 양대 작화가이자 오시이 마모루의 또다른 작화 파트너이기도 한 니시오 테츠야가 맡고 있다. 

엉뚱한 관점과 마니악한 지식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황당한 코미디는 패트레이버 본래의 스타일을 극장판보다 더 잘 살리고 있다.


<참고 사이트>

[1]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Wikipedia Japan
[2]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the Movie, Wikipedia Japan
[3]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2 the Movie, Wikipedia Japan
[4] WXIII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Wikipedia Japan
[5] ミニパト, Wikipedia Japan
[6]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 (OVA 第1期) (1988), allcinema.net
[7] Patlabor, Wikipedia
[8] Patlabor The Mobile Police (OAV 1/1988), ANN
[9]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엔하위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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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알 (1985), 天使のたまご / Angel's Egg



<정보>

◈ 원안: 오시이 마모루 (押井守), 아마노 요시타카 (天野喜孝)
◈ 감독/각본: 오시이 마모루
◈ 캐릭터 디자인/미술설정 (아트 디렉션): 아마노 요시타카
◈ 작화감독: 나쿠라 야스히로 (名倉靖博)
◈ 미술감독/레이아웃 감수: 고바야시 시치로 (小林七郎)
◈ 음악: 칸노 요시히로 (菅野由弘)
◈ 기획/제작: 야마시타 타츠미 (山下辰巳), 오가타 히데오 (尾形英夫) / 도쿠마 야스요시 (徳間康快)
◈ 제작사: 스튜디오 딘
◈ 저작권: ⓒ 현재 저작권 불명
◈ 일자: 1985.12.22
◈ 장르: 컬트, 판타지
◈ 구분/등급: OVA, 극장판 / 고교생 이상 관람가 (R)


<시놉시스>

기묘한 기계구조물과 체스판처럼 생긴 대지 위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긴 기계장치를 짊어진 한 남자가 서있다. 저 멀리 거대한 구모양의 구조체가 땅으로 착지하려 한다. 요란한 기적 소리를 내뿜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상을 가진 거대한 구조체는 커다란 굉음과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땅에 내린다. 가운데에 빛나는 푸른 색의 반원이 마치 거대한 눈과도 같다.

한 소녀가 눈을 뜬다.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걸어가는 소녀. 소녀가 일어나자 이불 속에 감춰진 거대한 타조알 크기의 알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깥의 경치를 감상하던 소녀는 이내 옷을 챙겨입고, 침대 위의 알을 소중하게 안은 체 길을 떠난다. 소녀가 떠난 언덕 위에 거대한 방주 모양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소녀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그리고 소녀가 품고 있는 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소개>

후일 '아니메의 철학자'라 불리게 되는 오시이 마모루의 네번째 연출작이자 그가 연출한 최초의 OVA인 '달로스(1983)'에 이은 자신의 두번째 OVA. 아니메의 철학자라 불리는 그의 별명에 가장 걸맞는 작품 중의 하나로, 초현실적인 작품세계와 몽환적인 영상, 모호한 주제의식 등으로 지금까지도 문제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이다. '시끌별 녀석들 2 Beautiful Dreamer (1984)'에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던 오시이의 철학적 사색은 이 작품에서 폭발되었으며, 이후 다시 현실과의 접점을 찾은 듯한 모습이다.(물론, 현실과의 접점을 찾은 뒤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난해하고 사색적이다.)

사실 천사의 알은 초현실적인 컬트 장르의 작품이 아닌, 코믹하고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천사의 알을 위해 오시이는 타츠노코 프로 시절 같이 일해왔으며,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를 떠나 있던 아마노 요시타카를 영입하게 되는데, 그가 그려온 캐릭터 디자인을 본 순간 오시이는 자신의 기획안을 수정하기로 맘먹게 된다. 애니메이터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그의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오시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어떤 것을 꿈틀거리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폰서인 도쿠마 서점으로서는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다행히도(?) 그들은 애니메이션 제작 당시에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당시 아마노는 자신이 삽화 일러스트를 했던 키쿠치 히데유키의 '뱀파이어 헌터 D(1985)' OVA 쪽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뱀파이어 헌터 D의 제작난항으로 인해 천사의 알에 올인하게 된다. 덕분에 뱀파이어 헌터 D는 영상미 쪽에서는 아쉬운 작품이 되었지만.

초현실적이고 컬트적인 오시이의 작품세계를 완성시키는 작품의 비주얼리스트들은 단연 아니메 업계 최강의 아티스트들로 구성되었다. 작품의 방향성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준 아마노 요시타카가 캐릭터 디자인을 포함한 아트 디렉션을, '고깔모자의 메모루(1984)'에서 귀여우면서도 서정적인 캐릭터들을 선보였던 나쿠라 야스히로가 작화를, 여기에 아니메 최고의 미술감독 고바야시 시치로가 미술을 담당한 천사의 알은 단연 아니메 중에서 독창적인 비주얼을 선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작품세계에 어울리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안노 히데아키 역시 이 작품에 참여했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량에 기겁하여 얼마 안가 뛰쳐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2] 참조)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대사들을 엄청나게 읊어대는 근래의 오시이 작품에 비해 성우들의 대사량은 아니메 최고 수준으로 적다. 초반부와 종반부에는 거의 대사가 없다시피하며, 소녀와 정체모를 청년 둘이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만 대사가 나오는데, 이마저도 무척 짧은 편이다. 여기에다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숨막힐 정도로 긴 일부 롱테이크 샷,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전개는 무척이나 불편하다.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 오시이 감독의 작품 성향 그 극단에 다다른 작품이라 하겠다. (어제 밤에 보다가 몇 번을 졸았는지 모른다.)

노아의 방주, 타천사 루시퍼, 천사와 악마의 대화를 연상시키는 시퀀스는 기독교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나 주제의식 자체는 종교적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어려우며, 주제의식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작품이다. 애초에 오시이 감독 역시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가보다는 알 속에 무엇이 있었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는데([1] 참조), 그 역시 어떤 답안이 있다기 보다는 그저 관객의 상상과 사색에 맡기려한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라 하겠다. 

불친절하고 지나치게 사색적인 작품색깔 덕에 오시이 감독에게 한동안 감독 제의가 들어오지 않게 한 원인을 제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오시이 본인의 의지이기도 했지만, 캐릭터 디자인 하나로 감독의 작품 기획안을 바꿔버리게 했다는 점에서 아마노의 일러스트가 가진 포스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참고 사이트>

[1] 天使のたまご. Wikipedia Japan
[2] 押井守, Wikipedia Japan
[3] 天使のたまご (1985), allcinema.net
[4] 천사의 알(天使のたまご) 1985 by 캅셀, CAPSULE 블로그: 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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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스탭>

◈ 감독: 오시이 마모루
◈ 원작: 모리 히로시
◈ 제작: 프로덕션 I.G


<시놉시스> 

번의 전쟁 후 평화가 찾아온 근 미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전쟁을 일종의 쇼로 만들어 전문기업으로 하여금 전쟁을 대행토록 한다. 이러한 가식적인 평화 속에 사람들은 TV 속에 벌어지는 전쟁을 그저 남의 일처럼 여기게 된다. 전쟁은 로스톡社과 라우테른社 간의 대결로 치닫고 있었는데, 라우테른社의 전설적인 파일럿 '티쳐'는 모든 파일럿들에게 공포이자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지고 있다.

한편, 로스톡社의 유럽전선 기지 우리스로 배속된 신참 파일럿 칸나미 유이치. 이전의 기억이 없는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의 모습을 한 킬드레이다. 킬드레는 전쟁을 쇼로 만든 이 세계에서 사람들을 대신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이면서도 인간과는 다른 존재, 영원한 전쟁을 위해 늙지 않는 소년 소녀들이다. 우리스 기지에 배속되어 기지 책임자에게 전입신고를 하는 유이치. 기지 책임자이자 킬드레 출신인 쿠사나기 스이토와 칸나미 유이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노센스 이후 4년만에 돌아온 오시이 마모루의 신작

작인 공각기동대의 속편 '이노센스(2004)'를 통해 오시이 감독스러운 색체의 극단적인 절정과 그로 인한 거부감(아마 이러한 평가를 감독 자신은 즐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시이 감독은 그의 영화는 1만명 정도의 관객이 좋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죠. 1편의 영화를 100만명이 1번씩 보든 만명이 100번씩 보든 같다고 생각하는 그인데요. 실제로 오시이 감독의 마니아들이라면 그의 작품을 대부분 몇 번씩은 감상했을 겁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뭔 말인지 모르겠든요.)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오시이 마모루. '공각기동대(1995)'를 통해 그를 알게 된, 그의 작품에 다소 생소한 팬들이라면 오시이 마모루의 이런 모습은 어김없이 불편함과 지루함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상업용 대중예술로서의 만화영화, 모든 사람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영화라는 관점에서 오시이 감독의 작품들은 늘 규격 외의 것들이었죠. 실상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준 공각기동대도 일본 내 첫 개봉시에는 참혹할 정도로 관객의 외면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2008년, 마침내 새로운 작품을 들고 우리의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보다 늦은 2010년에 이르러서야 개봉(현재 개봉 중이지만 언제 극장가에서 내려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중이지만, 어찌되었건 마침내 4년만에 찾아온 오시이 감독의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는(?) 신작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스카이 크롤러(2008)'입니다.

언제나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문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로 '아니메의 철학자'로 불리는 그의 이번 신작은 과도한 난해함으로 인해 '현학적이고 잘난척 하는 것 같다'라는 혹평을 들었던 이노센스 직후의 작품(물론, 그 사이 어썰트 걸이라는 실사영화가 있지만)이라는 점에서 여러가지 기대와 우려를 갖게 합니다. 과연 오시이 마모루는 전작의 비평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좀더 대중친화적인 작품으로 찾아올 것인지, 아니면 이제껏 그래왔듯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어김없이 펼쳐갈지가 말이죠. 기대 속에 베일을 벗은 스카이 크롤러는 과연 오시이 감독의 작품다움에도 불구하고 이전과는 다른, 메마름 속에 한줄기 서정적인 감성을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늙지 않는 소년들인 킬드레와 티쳐가 작금의 일본시대의 젊은이와 기성세대를 비유한 것 때문일까요, 아니면 압도적인 영상미의 CG 공중전에서 느껴지는 시원해진 기분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쿠사나기와 칸나기 유이치의 잔잔한 멜로라인 덕분일까요. 하늘을 수놓는 비행기들의 거친 엔진음 사이로 퍼지는 애잔한 카와이 켄지의 음악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압도적인 영상미로 그려진 쓸쓸하고 메마른 창공

입부에 펼쳐지는 장쾌하고 실감 넘치는 프로펠러 전투기들의 공중전은 스카이 크롤러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이러한 압도적인 전투기들의 공중전은 참으로 오랜 만에 느껴보는데요. 짧게는 곤조의 '전투요정 유키카제(2001)'나 '라스트 엑자일(2003)'에서부터 길게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1992)'와 '천공의 성 라퓨타(1986)', 그리고 故 토리우미 히사유키의 '에어리어 88(1985)'과 '독수리 5형제(1972)'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실제로 오시이 마모루는 토리우미 감독의 제자로 독수리 5형제를 통해 연출로 데뷔했으니, 스카이 크롤러는 공중전 연출의 장인이었던 스승의 스타일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또다른 비행씬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현재 붉은 돼지 속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가 들리고 있지요.)

토리우미 히사유키가 에어리어 88에서 보여주었던 실감 넘치는 공중전의 묘사는 제자인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계승 발전되었습니다. 밀리터리 마니아인 오시이 감독의 정체성에 CG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의 모습이 반영된 놀라운 퀄리티의 영상미는 좌중을 압도하는데요. 전작인 아발론이나 이노센스에서 보여준 실사와 아니메의 결합(아발론에서는 실사를 아니메처럼 촬영하고, 이노센스에서는 아니메를 실사처럼 촬영하는 시도를 함. 결국 두 번 모두 미완성에 그치지긴 하지만...)이라는 실험적 연출기법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보다 사람들이 보기 편한 CG로 대중적인 접근을 취했다고 보여집니다. 실제로 공중전 외에는 2D 작업과 셀 애니메이션의 활용으로 이노센스에서 느껴졌던 거부감을 상당부분 줄인 것으로 추측되는군요.

결국, 영상미에 있어서 전작의 실험정신과는 다른 대중적인 느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너무도 섬세하고 정확한 장면구성과 움직임 덕에 비주얼은 여전히 우리에게 압도적인 느낌을 줍니다. 즉, 기막히게 멋지지만 너무도 완벽한 나머지 불편함이 느껴진다는 말인데요. 마니아의 경우라면 몰라도 일반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그 영상만으로도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극사실주의적인 색체를 어김없이 보인다 하겠습니다. 

이런 스카이 크롤러의 완벽한 영상미학은 공중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굳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교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늘이 로맨티스트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반면, 오이시 마모루의 하늘은 차가우리만치 냉정한 이성주의자의 그것이라고나 할까요. 전자와 후자의 퀄리티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듯 싶군요. 단지 취향의 차이일 뿐, 오시이 감독의 영상미는 확실히 그만의 정체성을 보란듯이 화면 가득 빛내고 있습니다.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영원한 젊은 속에 시들어가는 피터팬, 킬드레

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킬드레'라고 불리는 어린 소년 소녀들입니다. 나이를 먹지않는, 정상적으로 태어났다기 보다는 무언가 인공적인 방법에 의해서 태어난 존재인 킬드레. 전쟁이라는 인류 최대의 인공적 재앙을 쇼로 만들고, 그것을 아이들의 모습을 한 킬드레가 대신한다는 스카이 크롤러의 설정은 다분히 충격적이면서도 수많은 아니메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의 심오한 변주곡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작품 내에서 킬드레는 풍요로운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길들여져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는 현재의 젊은이들을, 그들과 맞서게 되는 정체불명의 격추왕 '티쳐'와 전쟁회사에 속한 어른들은 삐뚤어진 사회를 구축한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비유로, 확실히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띈 아니메에 자주 등장하는 어린 소년 소녀 전사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고 하겠지요.

스카이 크롤러는 이러한 킬드레의 모습을 비행기를 몰고 신기의 조종술로 적군들을 쓰러뜨리는 멋진 피터팬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어린 시절 또는 부모의 기억과 같이 정상적인 인간들이 가져야할 추억을 제거당한 체 매일매일 반복되는 전쟁 쇼 속에서 매말라가는 소년들의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보통의 아니메와는 다른 쓸쓸한 분위기를 이끌어 냅니다. 미성년자인 이들이 애연가인냥 연신 담배를 피워대거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콜걸과 잠자리에 드는 모습은 십대의 탈선이나 방황, 혹은 주인공들을 멋지게 보이기 위한 클리셰라기보다는 반복되는 전장과 잃어버린 자아라는 공허감을 메우기 위한 그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인 듯 위화감과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감정이 없는 듯한 메마른 표정과 함께 시종일관 잔잔하게 묘사되면서 작품의 분위기는 심연 속에 어두운 무언가가 존재하는 잔잔한 바다와 같은 형상을 띄게 됩니다.

특히, 이야기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우리스 기지의 지휘관 쿠사나기 스이토의 경우는, 킬드레로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생존하며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었으며,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마치 어른과 킬드레의 경계선 상에 위치한 인물로, 작품의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하겠는데요. 불안한 심리상태와 알 수 없는 공허감 속의 그녀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킬드레가 인간다움을 갖기 시작하는 과정의 모습이며, 동시에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마침내 사회에 첫발을 들인 그 시점의 모습과도 같은 것으로, 그녀를 통해 주인공인 칸나기는 킬드레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고, 마침내 그 운명에 맞서기 위해 티쳐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칸나기의 잊혀진 과거 역시 작품의 중요한 이야기거리입니다. 이 소재는 약간의 미스테리적인 형식을 취하면서 관객들에게 가벼운 수수께끼를 던져주게 되는데요. 이것이 그리 난해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 내에서 명확하게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상으로 그럴 것이다라는 모호한 답을 남긴 체 긴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전부터 그래왔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에는 깔끔한 결말이란 없습니다. 마치 무대의 조명이 서서히 꺼지면서 페이드인 하듯, 결말은 서서히 관객의 마음 속에서 꺼져가듯 사라지죠. 이러한 이야기는 명확함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없는 허무함과 공허감을 안겨줍니다.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전체적으로 무겁게 깔려 있는 분위기 속에 새로온 신참 동료의 신문 접는 모습을 보며 칸나기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그리고 킬드레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깊은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무언가가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쿠사나기와 칸나기의 인연은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와 미래를 향하기 시작합니다. 


긴 여운의 결말... 그리고 오늘 밤은 별에 안기어

라울 정도의 스펙타클한 공중전과 답답할 정도로 가슴 아프고 숨막히는 킬드레의 이야기는 묘한 부조화를 던져줍니다. 오시이 감독 스스로는 자신을 상업 만화영화 감독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실상 그가 보여준 작품들의 스펙트럼은 상업영화라는 표현이 무색한 난해한 작품들이 대부분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시이표 작품들은 하나같이 그 비주얼에서 상업적인 형식을 띄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연출한 작품 중에 유일하게 비주얼에서도 상업적이지 않았던 작품은 '천사의 알(1985)'이 아닐까 싶군요. 그러나 그러한 상업적인 비주얼 위에 풀어놓는 오시이 표 이야기는 언제나 끊임없는 자아와 정체성의 되물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실로 부조화스러운 작품들 그 자체랄까요.

다만, 스카이 크롤러는 그런 오시이 특유의 현학적 이야기와 상업적 극사실주의 속에서 한줄기 로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간 듯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위험한 것처럼 아슬아슬한 쿠사나기와 칸나기의 애정선은 작품의 주제, 즉 성장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고뇌와 정체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처럼 빛난다고 할까요. 너무나 메마른 느낌의 이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둘의 관계는 오히려 뜨겁지 않기에 애잔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감정이 메마른 쿠사나기가 칸나기에게 조금씩 마음을 보이는 이런 광경은 사실 오시이 감독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구요. (공각기동대나 패트레이버에서도 그랬지만, 오시이 감독의 작품에서 러브스토리는 드라마가 아닌 팩트 그 자체로 묘사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침내 칸나기는 티쳐에게로 기수를 돌립니다. 메마른 킬드레들의 가슴에 넓고 푸른 창공은 아름답지만 차가운 요람이자 묘지입니다. 때마침 엔딩에 흐르는 아야카의 '오늘 밤도 별에 안기어(今夜も星に抱かれて)'은 너무도 작품의 엔딩과 잘맞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러닝타임 내내 참고 참았던 감정이 녹아내리듯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 장면은 서서히 페이드 아웃되고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아, 엔딩 스탭롤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마시길. 엔딩곡이 너무도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끝에는 또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사이트>

[1] スカイ・クロラシリーズ, Wikipedia Japan
[2] 스카이 크롤러 スカイ クロラ, 2008, 씨네 21

[3] <스카이 크롤러> 오시이 감독의 수작 애니메이션, 무비조이
[4] ‘스카이 크롤러’ 오시이 마모루 감독, 존재, 그 이상의 주제는 없다!, 무비위크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에게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달의 영화 리뷰 2010년 11월차에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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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메의 철학자와 전대물의 원조 히어로가 조우하다.

ⓒ Ishimori Productions


2010년 10월 5일부터 8일까지 일본 시바시의 전시장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리는 2010 CEATEC Japan 쇼의 파나소닉 부스에서, 파나소닉이 스폰서를 맡고, 프로덕션 I.G가 제작을 맡은 Full HD 3D 애니메이션 '사이보그 009'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연출을 맡은 이는 무려 오시이 마모루 감독.

☞「009」3D立体視アニメ公開 押井守が映像制作, AnimeAnime (보러가기)
☞ Mamoru Oshii, Production I.G Make 3D Cyborg 009 Anime, Anime News Network (보러가기)

현재 4분 45초 정도 길이의 영상으로 제작되어 전시회 내에서만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것만 보아서는 파나소닉의 3D 기술력을 홍보하기 위한 홍보영상 수준이라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홍보영상인데도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 카와이 켄지 음악감독까지 가세했으니 스탭진의 네임밸류는 막강하네요. 오시이 감독이 이런 작업도 하나요? 의외입니다.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는 극장용 아니메의 일부분을 공개하는 줄 알고 무척 흥분했는데, 현재로서는 극장 아니메로 제작을 기획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네요. 아쉽군요.

하지만, 전시회에서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라면 파나소닉이 극장 아니메 스폰서를 자처하지도 않을까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다시 연출을 맡는다면, 상당히 난해난 사이보그 009가 될런지도 모르겠네요.

ⓒ Ishimori Productions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Ishimori Productions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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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에 실었던 ' 애니메이션 인물열전: 리튬향기의 여전사 쿠사나기 모토코'를 티스토리 옮긴 글입니다.

<프로필>
 
◈ 이름: 쿠사나기 모토코
출생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비밀에 쌓인 신비로운 여성. 어렸을 적 사고로 인해 온몸을 기계(의체)화 한 후, 나이에 맞게 몸을 바꿔온 것으로 추정. 뇌와 척수 일부분 외에 모든 것이 생체가 아닌 기계로, 인간과 사이보그의 모호한 경계에 서있는 인물. 오시이 마모루의 첫번째 극장판 'Ghost in the Shell(1995)'의 도입부에서 그녀의 사이보그 몸이 만들어지는 단편적인 장면을 엿볼 수 있다.
 
◈ 연령: 불명
만화책의 외모는 20대에 가까운 외모이고,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카미야마 켄지의 TV 시리즈 상에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외모로 추정되나, 기계 몸이기에 외모로 실제 연령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즘식으로 바꿔 말하면 전신 성형미인이라는 소리. (베스트 아니메 사이트에서는 30대 후반 이상의 연령으로 설명되어 있으나, 글쓴 이가 신뢰할만한 출처를 찾지 못해 불명으로 표기.)

◈ 별명: 소좌 (한국식으로는 소령, 미국식으로는 Major)
과거 군에 몸 담고 있을 당시의 그녀의 계급인데, 당시 동료였던 이시카와나 바토가 습관적으로 부르는 탓에 다른 공안 9과의 멤버들도 그녀를 소좌라 부른다. 한국판 DVD 등에서는 한국이라는 정서를 감안하여 소좌와 동등한 계급인 소령으로 표기.

◈ 소속: 공안9과 (후에는 조직을 탈퇴하여 독자적으로 행동)
몸을 사이보그화하거나 뇌를 전자두뇌로 바꾸어 직접 뇌를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진 미래의 시대이기에, 타인의 전자두뇌를 해킹하는 사이버 범죄의 발생율이 빈번하다. 이러한 고도의 사이버 범죄와 자국 내의 안보를 위협하는 각종 테러사건 등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내무성 산하의 비밀경찰이 바로 공안 9과이다. 멤버들은 대부분 군경력을 지닌 전뇌전과 대인전투의 스페셜리스트들로, 형사출신인 토그사를 제외하고는 몸의 상당 부분이 사이보그화 되어 있다.

오시이 감독의 첫번째 극장판에서는 인형사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그(혹은 그녀나 그것)와 융합함으로 인해 쿠사나기이면서도 쿠사나기가 아닌 새로운 무엇인가로 환생한다. 그 이후 공안 9과를 탈퇴하여, 두번째 극장판인 '이노센스(2004)'에서는 단독으로 바토를 도와주기도 한다. (이 인형사와의 융합은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책에서도 다루어졌던 전개이다.)

패러랠 월드격인 공각기동대 3번째 TV용 단편 'Solid State Society(2006)'에서는 극장판과는 다른 이유(그러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음. 단지, 소수정예에서 거대조직으로 변모하는 공안 9과를 떠나 독자적인 수사활동을 추구했던 쿠사나기의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추정)로 인해 공안9과를 탈퇴했다가 클라이막스에 극적으로 공안 9과와 공동전선으로 사건을 해결. 단, 다시 공안 9과에 합류하는지의 여부는 작중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 특기: 전뇌전, 테러진압, 인질구출, 암살
비핵대전 시절의 군경력으로 인해 그녀는 잠입, 침투, 인질구출 및 암살과 같은 소규모 특수작전임무의 스페셜리스트이며, 동시에 전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는 전뇌 해커이기도 하다. 비록 극장판의 인형사나 TV 시리즈의 웃는 남자, 개별 11인의 쿠제, 내무성의 고다, 괴뢰회 같은 대립측 캐릭터의 활약을 강조하기 위해 조금 덜 다루어진 듯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그들과 버금가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들 이상의 해커라는 사실은 극장판 '이노센스'나 TV 단편 'Solid State Society'에서 그 면면을 엿볼 수 있다.

그 외의 특기(?)라면, 초고가의 특제 의체를 적극 활용한 관능미 넘치는 바디 라인이라고나 할까. 단, 육감적인 스타일의 패션을 보여주었던 만화책에 비해 극장판이나 TV 시리즈에서의 헤어 스타일이나 패션감각은 대체적으로 하드웨어에 못미치는 감각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아마도, 그것은 오시이 감독이나 그의 문하생이었던 카미야마 감독의 리얼리티적인 작품관에 기인한 듯.) 그러나, 그 보라빛 단발머리야말로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 포인트이기도.

◈ 그 외 신변잡기
자신의 비밀 아지트를 몇 곳 소유하고 있으며, 원격조종용 의체도 다수 소유하고 있는 등, 상당한 재력가로 추정. 그것이 위험천만한 군과 공안에 근무한 그녀의 직업적 특성에 따른 보수 때문인지, 이제는 알 수 없는 그녀의 먼 과거에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초일류 해커라는 특성을 발휘하여 어디서 못된 짓을 해서 번 것인지는 TV 시리즈나 극장판만으로는 추정 불가능.

TV 시리즈 1기에 등장했던 그녀의 여성친구들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레즈비언적인 성취향을 지닌 듯 싶다. 단, TV 시리즈 2기에서 소년을 유혹하던 장면이나 코믹스의 여타 장면들로 미루어 보아 양성애자로 추정. (자유자재로 의체를 바꿀 수 있고, 온갖 전뇌를 돌아다녔으니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된다면 성정체성을 잃어버릴지도. 언젠가 아는 친구가 말했던 '환생하면 여자로 태어나 여성의 오르가즘을 탐구해보고 싶다.'는 절규는 쿠사나기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듯.)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특수공작원... 코믹스
 
쿠사나기 모토코는 89년 시로 마사무네 원작의 만화책 공각기동대를 통하여 세상에 등장합니다. 그녀는 시로 마사무네의 이전작 'Appleseed(1985)'의 여주인공 듀난 너츠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시로 마사무네의 육감적인 데생력에 힘입어 여성스러우면서도 강인한, 마치 한마리의 날렵한 치타와도 같은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여인이기도 합니다.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은 사이버 펑크적이면서도 디테일한 설정 덕에 모국인 일본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더욱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기실 애플시드나 공각기동대 모두 캐쥬얼하게 접할 수 있는 만화책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세계관과 디테일한 메카 묘사, 복잡하고 세밀한 데생 덕에 매니아적 색채가 강한 사이버펑크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이 두 작품은 모두 일정연령 이상의 성인층을 위한 작품이라는 이야기와 상통하기에 성인층에 대한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내지 원작자인 시로 마사무네의 성적 취향)에서 듀난이나 쿠사나기 모두 굉장히 육감적이고 섹슈얼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녀들은 기존의 SF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에 비해 (모습에서나 정신적으로나)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동시대의 만화영화 주인공들 중에는 87년에 OVA로 제작되었던 켄이치 소노다(만화가 겸 캐릭터 디자이너)의 '버블검 크라이시스'에 등장하는 프리스나 실비아와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프리스는 듀난과, 실비아는 쿠사나기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을 듯. 물론,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켄이치 소노다가 그렸던 여주인공들은 밀리터리 스페셜리스트라는 측면에서 시로 마사무네의 캐릭터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이 버블검 크라이시스 이외에도 그의 또다른 작품인 '갈포스(1986)'의 라비, 엘자, 루피, '건 스미스 캣츠(1995)'의 라리 등이 비슷한 성격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건 스미스 캣츠의 주인공 라리의 경우, 단발의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쿠사나기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죠.
 

© SHIROW MASAMUNE / KODANSHA

그림1. 애플시드 만화책 표지(좌측), 공각기동대 만화책 첫번째 시리즈 미국판(중앙), 두번째 시리즈 Man Machine Interface 미국판(우측). 만화책의 쿠사나기는 극장판이나 TV 시리즈보다 좀 더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 데생 스타일의 차이로 인해 시로 마사무네의 육감적인 캐릭터들은 켄이치 소노다의 귀여운(?) 캐릭터들에 비해 성인 취향에 더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켄이치 소노다의 캐릭터들이 성숙하고 이지적인 여인과, 보이쉬한 터프걸, 여성스러운 청순녀, 깜찍하고 귀여운 미소녀 등으로 나뉘어 거의 그녀들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시로 마사무네의 그녀들은 원톱 여주인공으로서 남성미를 자랑하는 파트너(브리아레오스나 바토)와 함께 강한 대비를 보이면서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이 큰 차이라 하겠습니다
 
성인 취향(이면서 동시에 남성 취향)의 극단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시로 마사무네의 캐릭터들이지만, 듀난과 쿠사나기는 몇몇 부분에서 서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남자친구 브리아레오스를 일편단심으로 바라보며, 콤비플레이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듀난이 젊고 패기 넘치는, 그리고 순수하고 우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쿠사나기는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 선 모호한 정체성과 남자 친구와 레즈비언 친구를 모두 사귀는 양성애적 성취향, 자신의 적수였던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자아로 탄생하는 불확실한 가치관 등 여러 면에서 사이버펑크 성인물의 주인공에 걸맞는 혼돈스럽고 규격화되지 않은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쿠사나기의 젊었을 적 모습이 듀난이고 듀난이 많은 경험과 세월을 겪어 성숙된 모습이 쿠사나기라고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군요.

© KENICHI SONODA

 그림2. 갈포스(좌측), 버블검 크라이시스(중앙), 건 스미스 캣츠 (우측). 켄이치 소노다의 작품들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SF, 또는 밀리터리 액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결국, 만화책의 마니아적인 색체 때문이었는지 쿠사나기는 쉽게 영상매체를 통해 모습을 보이지는 못합니다.(듀난은 88년작 OVA 애플 시드로 먼저 아니메계에 데뷔를 합니다만, 그리 큰 반응을 얻지는 못합니다.) 아마 당시가 SF 장르가 몰락하면서 복고와 리메이크 바람이 불던 일본 아니메의 암흑기의 한가운데였다는 사실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군요. 결국, 90년대 중반까지 그녀를 기억하는 이는 소수의 매니아에 불과했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말입니다.
 
 
관능을 벗고 철학을 입다... 극장판 공각기동대
 
95년, 에반게리온(이하 에바)의 써드 임팩트('은하철도 999'와 '기동전사 건담', '마크로스'로 대표되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을 세컨드 임팩트로 가정했을 때)와 함께 일본 아니메는 수년간의 침체를 딛고 신세기로의 도약을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아니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단연 에바를 꼽고 있고 저 역시 그 점에 있어서 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 써드 임팩트를 온전히 에바 혼자서 열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에바가 아니메 마니아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일반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일본 내에서의 국지적 임펙트였다면(물론, 그 이후에 세계적인 반향을 얻었지만),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1995, 이하 공각기동대 극장판)'과 오토모 가츠히로가 총감독을 맡았던 '메모리즈(1996)',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1997)'로 이어지는 극장용 아니메의 삼연속 랑데뷰 홈런은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아니메의 위상을 높여준 글로벌 임팩트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바로 그 첫번째 홈런인 공각기동대 극장판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 쿠사나기 모토코인 것입니다. (결국, 에바가 일본 만화영화 내수시장에 활력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뒤의 세 작품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고, 뒤의 세 작품은 일본 만화영화의 작품성을 전세계적으로 알렸다는 점에서 에바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국가 기밀을 탈취해서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려는 면책특권을 지닌 외교관을 눈깜짝할 새에 사살한 후, 빌딩의 저 아래로 광학미체(간단히 말해서 투명장치)와 함께 사라지는 도입부, 곧이어 펼쳐지는 신비로운 오프닝 테마를 배경으로 세밀한 의체 제작과정을 묘사한, 당시로서는 극한에 이른 비쥬얼은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으며, 아니메 史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의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오시이 마모루식 완벽주의의 집합체였던 것입니다.
 

© 1995 SHIROW MASAMUNE / KODANSHA / Bandai Visual

그림3. 쿠사나기의 의체(사이보그 몸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던 극장판의 인트로 씬. 의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마치 만화책의 쿠사나기에서 극장판의 쿠사나기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듯 하다. 극장판의 캐릭터 디자인과 키 애니메이터는 인랑의 감독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작화감독은 Production I.G의 또다른 명 감독인 붉은광탄 질리온의 니시쿠보 미즈호가 맡아 새로운 쿠사나기를 그려내었다. 

오시이 감독은 시로 마사무네의 멋진 세계관을 극장판으로 옮기면서 쿠사나기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리뉴얼 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를 감싸고 있던 최대의 무기(?)인 관능미를 과감히 벗겨버리고, 정체성에 방황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탈바꿈 시켜버린 것이었습니다. 관능미를 벗어버린 그녀는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기다렸다는 듯 풀어놓으며, 스탭진이 창조해 낸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이고 어두운 도시에서 철학적 향연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Ghost in the Shell'이라는 제목 그대로 쿠사나기의 관능미 속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마치 껍질 속의 고스트처럼 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시이 감독은 자신의 해석대로 묘사했던 쿠사나기와는 반대로 원작의 디테일한 밀리터리적 설정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실사 영상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인 연출을 선보입니다. 머신건과 권총을 능숙하게 조립하고 다루는 모습은 특수공작원이라는 그녀의 신분을 생생하게 묘사했고, 우리는 여성을 넘어 강인한 카리스마와 실력을 가진 주인공으로서 그녀를 인정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쿠사나기가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개체로서 네트워크를 향해 나아가듯, 전형적 히로인의 테두리에 묶여있던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성별을 극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으로 새로운 진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공각기동대 극장판은 사실 일본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참패하고 맙니다. 관능미를 벗어버린 어둡고 우울한 여주인공과 오시이 감독의 난해한 연출력이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러나,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이 외국에서 호평을 얻었던 것처럼 극장판은 외국 개봉 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합니다.(해외에서의 성공 이후 다시 일본에서 재개봉되었구요.)

'전뇌를 통해 네트워크에 가상현실로 접속하고, 타인의 뇌를 해킹하여 가상의 기억을 심어놓을 수 있으며, 자신의 기억을 모두 데이터로 백업하여 네트워크에 저장한다.'는 시놉시스는 당시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최상위 형태의 진화였고 거기에 일반 아동용 만화영화, 아니 실사영화마저도 뛰어넘는 치밀한 스토리와 극사실주의는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인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세기말 등장했던 초 화제작 '매트릭스(1999)'의 감독 워쇼스키 형제(이제는 남매)가 이 공각기동대 극장판에 큰 영향을 받았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아바타'의 SF 거장 제임스 카메론 역시 공각기동대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합니다.
 

© 1995 SHIROW MASAMUNE / KODANSHA / Bandai Visual

그림4. 광학미체와 함께 빌딩의 아래로 사라지는 쿠사나기의 극장판 오프닝 씬. 광학미체는 공안 9과 요원들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광학미체 속에 몸을 숨기는 쿠사나기의 모습이 의체라는 껍데기 속에 인간임을 증명하는 고스트가 숨어있는 모습과 겹쳐지는 듯하다.

그리하여 여자를 넘어섰던 그녀의 변신은 결국 강렬한 잔상을 남기면서 일본 만화영화사에 길이 기록됩니다. 관능미에 가려져 연기력을 평가받지 못하던 그녀가 작가주의 감독을 통해 새로운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철학 위에 관능과 카리스마를 입다... TV 시리즈
 
95년 극장판과 함께 글로벌한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그녀는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마치, 인형사와 융합해 공안 9과를 떠나 네트워크로 잠적해버린 극장판의 뒷모습처럼 말이죠. 그녀는 아니메와는 별개로 97년도 PS용 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극장판의 어두웠던 모습과는 다른, 만화책의 쿠사나기에 충실한 예전의 그녀로 돌아와 만화책의 그녀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신선함을, 만화책의 팬들이었던 이들에게는 쿠사나기의 역동적인 모습을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7년만인 2002년, 드디어 네트워크의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던 그녀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TV 시리즈,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이하 SAC)로 말입니다.
 
Production I.G의 차세대 주자인 카미야마 켄지가 감독을 맡은 TV 시리즈 SAC에서 쿠사나기는 극장판의 그녀와는 또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시이 감독의 쿠사나기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정체성에서 방황하며, 어두운 고독의 세계를 홀로이 가는 한마리의 외로운 늑대의 모습이었다면, 카미야마 감독의 그녀는 공안 9과의 2인자로서 개성 넘치는 공안대원들을 강인한 카리스마로 이끌어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암사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5. TV 시리즈 1기의 장면들. 만화책의 쿠사나기는 마니악했고, 극장판의 그녀는 난해했다는 점에서 TV 시리즈의 그녀가 상대적으로 대중적이고 접하기 쉬웠으며, 또한 그 카리스마와 매력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않았나 싶다. 

어찌보면, 극장판의 시니컬한 그녀가 되기 직전의 좀 더 젊은 쿠사나기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더불어 흥미진진해진 이야기와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주었던 극장판의 쿠사나기에 비해 오히려 인간적으로 좀 더 시청자에게 가까워진 그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외적인 볼거리에 치우치지 않은 스토리의 정합성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해서 메인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배치된 단편 에피소드도 별도의 이야기로서도 뛰어난 완성도와 함께 주제의식을 임팩트하게 전달했고, 그를 위해 때로는 쿠사나기를 메인 주인공으로, 때로는 조연급 내지는 아예 이야기의 흐름에서 빼버림으로써 공각기동대를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닌, 공안 9과의 인물(과 기계)들을 모두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단독 주인공이 아닌 여러 주인공 중 하나로 작품을 끌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오히려 시리즈 내내 그 존재감을 잃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SAC에서 이미 그녀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최고조에 이른 모습으로 표현되었던 탓일 겁니다. 그러면서도 제작진은 그녀를 슈퍼 히로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적절한 한계와 긴장감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고도의 테크닉을 보여줍니다. 오시이 감독의 극사실주의적 작품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면서도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적절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성격을 잃지 않은 SAC를 통해 그녀는 비로소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여배우로 태어난 것입니다.

오시이 감독만이 창조해낼 수 있을 것 같던 그녀는 이렇게 신예 카미야마 감독에 의해 난해함을 벗어버리고 강렬한 카리스마와 훨씬 더 강조된 여성성을 바탕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냉철한 그녀, TV 시리즈 1기의 엔딩곡 'Litium Flower'야말로 그녀를 정의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군요.
 
SAC는 성인용 작품이면서, 게다가 일반 지상파가 아닌 위성 케이블 방송의 PPV(Pay-Per-View: 시청 전에 일정금액을 결제하면 결제한 금액만큼 시청이 가능한 방식으로, 회당 결제방식의 주문형 비디오 VOD와는 차이가 있는 유료시청 방식. 글쓴이 주.) 형태로 방영하는 작품으로서 2기 제작이 어렵지 않나라는 예상을 깨고, 테러리스트를 사살하고 빌딩 아래로 광학미체와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는 유명한 쿠사나기의 극장판 오마쥬씬과 함께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2기에서는 그녀를 스크린에 데뷔시킨 오시이 마모루 감독도 스토리 컨셉으로 참여하는데요, 오시이 마모루는 SAC로 그녀를 보내고 비슷한 시기의 극장판에서는 그녀를 빼버린 체, 바토와 토그사만을 등장시켜 모토코가 사라진 이후의 공각기동대를 새롭게 그려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오시이 감독을 위해 그녀는 비록 목소리로나마 극장판에 등장하기도 하죠.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6. 오시이 마모루가 스토리 컨셉으로 참여하면서 묵직해진 스토리와 함께 그녀의 과거를 단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SAC 2기는 배경이 된 세계관에서 한국이 비핵대전으로 인해 몰락하고 한국민들은 난민이 되어 중국과 일본으로 뿔뿔이 흩어졌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채용함으로써 우리에게는 불편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만화책을 거쳐 극장판과 융합하고, 다시 극장판을 거쳐 TV 시리즈와 융합하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새로운 개체로서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쿠사나기 모토코를 의식한 스탠드 얼론 컴플렉스
 
쿠사가기가 보여준 강인한 카리스마와 행동력을 가진 여성상은 앞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버블검 크라이시스'와 같은 또다른 만화영화나, 각종 액션영화의 여주인공들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널리 익숙해진 모습이기도 합니다. 과연 누가 그런 여성 캐릭터의 시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TV 시리즈 1기의 최종화에서 웃는 남자와 쿠사나기가 정의했던 스탠드 얼론 컴플렉스(Stand Alone Complex: 한 명의 사람이 전달한 정보를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한 행동을 보이는데, 이 때 그들에게 계시를 준 최초의 사람은 선두에 나서지 않은 체, 그 정보를 이어 받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이 마치 자신이 오리지널인양 행동하지만 그 방향성은 잃어버린 상태. 글쓴이 주.)와도 같이, 스스로가 오리지널인듯 화면에서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자신만의 개성을 잃어버린 체 모방을 반복하는 캐릭터도 있고, 자기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캐릭터도 있습니다만, 그들 중에서 가장 빛을 발하고 있는 캐릭터는 단연코 쿠사나기를 뽑지 않을 수 없군요. 오리지널을 능가했는지도 모를 그녀의 존재감은 이제 만화영화 뿐만 아니라 영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가 헐리우드에서 실사영화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런 여성을 넘어선 강인함과 함께 강조되는 관능미나 성적 묘사는 분명 쿠사나기를 위시한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을 남성 시청자들에게 어필시킬 수 있는 매력포인트이면서 동시에 그녀들을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 의해 그러한 부분이 많이 거세되었으나, 카미야마 감독의 TV 시리즈는 (원작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성인물의 여주인공으로서 그녀의 성적 매력을 작품 내에서 은근히 자극했었죠.

비록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의 진지함 속에 드러난 일종의 팬 서비스적인 형태였지만, 결국 강인한 여주인공으로서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 또한 결국은 남성들이 창조해 낸 성적 판타지의 굴레를 완벽하게 떨쳐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설정은 동시에 그녀가 사이보그의 몸으로서 자신이 기계가 아닌 여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도 사용되고 있기에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극장판에서 네트워크와 융합되어 사라져 버린 그녀는 TV 단편 '공각기동대 SAC Solid State Society(SAC 3기)'를 통해 잠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만, 여전히 무한한 네트워크의 공간 속에서 기약없는 여행을 떠난 체입니다. 마치 샤아와 아무로가 액시즈의 빛과 함께 우주의 저편으로 생사를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메텔이 은하철도 999에 몸을 싣고 영원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하록 선장이 아르카디아호와 함께 별바다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녀의 다시 돌아오는 언젠가, 화면에서는 그녀의 귀환을 알리는 리튬 꽃의 메마른 금속향기가 광학미체의 미세한 시각적 간섭과 함께 우리의 감각을 일깨울지도 모릅니다.

© SHIROW MASAMUNE ~ PRODUCTION I.G / KODANSHA

그림7. SAC 3기는 연재물이 아닌 2시간 분량의 TV 단편으로 제작되어 일종의 팬서비스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여기서 쿠사나기는 이유를 밝히지 않은체 공안 9과에서 탈퇴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여 마치 극장판에서 인형사와 융합하여 공안 9과를 떠난 다음의 그녀의 행적을 묘사한 듯한 착각을 주기도 했다. 실제 TV 시리즈 SAC와 극장판의 스토리는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로, 일종의 패러랠 월드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참고 포스트>
 
1. 쿠사나기 모토코, 위키피디아


공각기동대 3종 패키지 :래핑맨, 인디비주얼 일레븐, S.S.S (6DISC) - 10점
카미야마 켄지 감독/미라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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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88mm, DEIZ / Geneon Universal Entertainment


2008년 극장판 아니메 '스카이 크롤러'로 우리를 찾아왔던 아니메의 철학자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다시금 새로운 신작으로 우리를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실사영화로 말이죠.

 

'아발론(2001)' 이후 다시금 새롭게 만들어지는 그의 실사영화는 '어썰트 걸(Assault Girl)'로, SF 장르의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사막을 무대로 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배경 속에서 '수나 쿠지라'라 불리는 거대한 모래 고래와 같은 괴물과 싸우는 세명의 여성 헌터가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그레이라 불리는 여성헌터는 메이사 쿠로키가 맡았는데요. 그녀는 '벡실 - 2077년 일본쇄국'에서 벡실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루시퍼 역의 린코 키쿠치는 오시이 감독의 전작 '스카이 크롤러'에서 쿠사나기 스이토 역을 맡아 이미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의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대령  역의 히나코 사에키는 오시이 감독옴니버스 영화인 진·여립음사열전(真 女立喰師列伝)의 첫번째  에피소인 '어썰트 걸: 켄터키의 히나코'에서 출연하며, 이미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어썰트 걸과는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앞서 언급한 린코 키쿠치 양도 오시이 감독의 또다른 단편 'Assault Girl 2'에 출연했다고 하는군요.

 

세 명 다 아니메와 영화 등에서 강인한 여전사의 역할을 맡아본지라 배역의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캐스팅보다는 오시이 감독이 전작 아발론과 여타 그의 아니메에서 보여준 그 난해하고 불친절한 스토리와 연출을 이번에도 고스란히 이 어썰트 걸에 대입할 것인지가 관건이 되겠군요. 40여초 정도의 분량으로 공개된 트레일러는 일단 괴물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세 명의 여주인공의 모습이 부각되었습니다만, 실제 전개는 어떨지.

 

어썰트 걸은 올 12월 19일 일본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상영될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썰트 걸과 더불어 오시이 감독이 2011년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는 극장판 아니메와 또다른 두 편의 실사영화도 기대를 해봅니다.

 

기사 출처: Oshii's Live-Action Assault Girls Feature in December, Anime News Network

 

예고편 보러가기

 

세 명의 여주인공 좌측부터 메이사 쿠로키, 린코 키쿠치, 히나코 사에키.

어익후, 좌측에서 우측으로 갈수록 연령대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래보이는군요, 불행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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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이지만, 흥행 감독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항상 철학적인 사색, 그리고 관객들과의 고도의 지적인 대화를 즐겨하는 편인데요. 그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다준 95년도 작품 '공각기동대' 역시 난해하고 논술적인 대사들, 아름답고 세밀하지만 메마른 배경, 격한 액션장면에서조차 정적감을 느끼게 하는 기묘한 긴장감 등으로 사실 편하게 보기가 힘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속편격인 '이노센스(2004)'에 와서는 이러한 사색적 표현이 실험적인 영상미와 어우러져 한편의 추상화를 접하는 듯한 기묘한 불편함을 선사하기도 했죠. 그래도 전체적인 스토리가 가는 길을 놓치지 않는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여러모로 관객들에게는 어려움 역시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4년만에 새로운 작품을 들고 왔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스카이 크롤러(2008)'가 되겠습니다.

오시이 감독들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철학적이고 난해하다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한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표현이 있는데요, 그것은 '불안한 편안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편할 정도로 느릿느릿한 등장인물들의 반응과 하나하나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조용하면서도 확실한 몸짓들... 그것은 대부분 침묵 속에서, 또는 느릿한 테마와 어우러져 묘한 침묵을 관객들에게 안겨줍니다. 스카이 크롤러 역시 이런 기묘한 정적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작품입니다. 조용한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하는 편안함 속에서 밀려오는 왠지 모를 불안감 가득한 오후... 라면 좀 어울리는 표현일까요. 탁 트인 우리스 기지와 높고 푸른 하늘의 배경조차도 주인공들의 삶의 무게가 얹혀져 왠지 모를 슬픔을 안겨주는 듯 합니다.

 

스카이 크롤러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남녀 간의 감정선이 묘하게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전체적인 불안한 편안함 속에서 오시이 감독의 작품답게 격한 감정의 표현이 드러나지 않기에 수면에서 뜨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부표와 같은 희미한 느낌입니다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느낌이 십분 살아나기도 합니다. 물론, 메인 테마는 등장하는 피터팬과 같은 소년,소녀들인 킬드레의 자아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비행전투씬은 3D 연출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하우를 자랑하는 Production I.G와, 역시 그 난해하고 복잡한 스토리만큼이나 영상미에 있어서도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오시이 마모루의 조합으로, 과연이라는 소리를 낼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오시이 마모루의 스승으로 일찌기 '에어리어 88(1985)'에서 희대의 비행전투씬을 연출해냈던 故 토리미우미 히사유키 감독의 편린이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그의 직계제자라 할 수 있는 오시이 감독이 처음으로 하늘을 무대로 한 작품을 통해 스승처럼 멋진 비행전투씬을 표현해냈다는 것도 스카이 크롤러의 하나의 의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음악들이 너무도 마음에 드는데요. 카와이 켄지의 메인 테마도 메인 테마지만, 엔딩에 흐르는 주제가, 아야카의 '오늘 밤도 별에 안겨서'는 본편 내내 막혀 있던 절제된 슬픔과 감정들이 마치 스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자막과 함께 흘러나와 개인적으로는 꽤나 감정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듣자 마자 홀딱 반해버렸네요.)

 

글쎄요, 오시이 감독이 말했듯이 이 작품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주는 소수의 관객들을 위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근래의 오시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는 꽤 대중적인 취향에 근접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작품에는 한가지 반전이 숨어 있는데요. 사실 작품 초반부에 이미 짐작을 해버린 터라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라는 점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군요.

 

기회가 되면 스카이 크롤러는 다시 한 번 자세한 리뷰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내 DVD 발매가 몹시 기대되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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