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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방울방울 (1991), おもひでぽろぽろ / Only Yesterday / Memories of Teardrops


ⓒ 岡本螢 ・ 刀根夕子 ・ GNH


<정보>

◈ 원작: 오카모토 호타루(岡本螢), 토네 유코(刀根夕子)
◈ 감독/각본: 타카하타 이사오(高畑勲)
◈ 장면설계/스토리보드: 모모세 요시유키(百瀬義行)
◈ 캐릭터 디자인: 콘도 요시후미(近藤喜文)
◈ 작화감독: 콘도 요시후미, 콘도 카쯔야(近藤勝也), 사토 요시하루(佐藤好春)
◈ 미술감독: 오가 카즈오(男鹿和雄)
◈ 음악/노래: 호시 카츠(星勝) / 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
◈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鈴木敏夫)
◈ 제작 프로듀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 저작권: ⓒ 岡本螢 ・ 刀根夕子 ・ GNH
◈ 일자: 1991.07.20
◈ 장르: 드라마
◈ 구분/등급: 극장판 / 초등생 이상 관람가 (PG)


<줄거리>

동경 토박이로 자란 27살의 처녀 오카지마 타에코. 어렷을 적부터 방학 때 시골로 내려가는 학우들을 동경해오던 그녀는 회사에 열흘간의 여름 휴가를 내고 시골로 내려갈 계획을 세웠다. 큰 언니가 결혼하면서 시골에서 살게 되자 그녀에게도 찾아갈 시골이 생긴 것이다. 모처럼만의 귀향에 들뜬 타에코는 이것저것 시골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었던 자신의 옛 추억 속으로 빠져 드는데...


<소개>

오카지마 호타루()와 토네 유코(그림)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극장 아니메. 미야자키 하야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브리의 거장 타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으로, '반딧불의 묘(1988)'에 이은 그의 두번째 지브리표 아니메이다.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던 그가, 지브리에 들어온 이후로는 연출보다는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등, 지브리의 안살림에 주력하면서 작품 활동이 눈에 띄게 더디어진 점은 어떤 면에서 아쉽다고 하겠다. (1987년에 '柳川堀割物語'라는 실사 다큐멘터리영화를 연출하는 등, 80년대 중후반부의 그의 행적은 확실히 아니메에서 한발 멀어진 느낌이었다.)

도에이 동화부터 A 프로덕션, 즈이요 영상, 닛폰 애니메이션, 텔레콤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의 과거 행적과 대표 연출작들에서 볼 수 있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가장 큰 특징은 섬세한 일상의 묘사와 서정적인 전원 드라마에 있다. 동료이자 후배로서 그와 오랜 세월 같이 일해온 미야자키가 거대한 스케일과 흥미진진한 어드벤쳐, 그리고 디테일한 표현력이 발군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소소함과 전원적인 리얼리즘으로 인해 타카하타의 작품에는 항상 인간적이고 따뜻함이 넘쳐 흐른다. 타카하타의 이런 성향들은 미야자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어 그의 작품에서도 타카하타의 취향을 심심치 않게 엿볼 수 있으며, 심지어 이것이 지브리 아니메의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브리의 아니메는 그런 면에서 타카하타의 토양 위에 서있는 미야자키의 성과 같다.

3년만에 만들어진 추억은 방울방울에는 반딧불의 묘에서도 활약한 콘도 요시후미가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으로 그의 뒤를 받치고 있다. 미야자키와는 달리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타카하타에게 콘도는 어찌보면 손과 같은 존재였을지도. 장면설계와 레이아웃은 역시 반딧불의 묘에서 활약한 모모세 요시유키가 맡았다. 모모세 역시 타카하타의 이후 작품에서도 계속 활약한다는 점에서 콘도와 모모세 둘은 타카하타의 수족과도 같은 스탭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웃의 토토로(1988)'를 통해 지브리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오가 카즈오가 미술을 맡아 그의 특기인 녹색의 풍경을 화면 위에 펼쳐 보인다.


전작인 반딧불의 묘가 비극적인 전쟁 드라마였던 것에 비해 '추억은 방울방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소한 일상의 드라마를 다루고 있다. 1980년대와 1960년대의 일상을 교차하면서 보여주는데, 60년대 일본의 풍경을 빛바랜 느낌으로 묘사하고, 작품의 현재 시점에 해당하는 80년대를 선명한 색감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현재와 과거를 시각적으로 구분하는 이 작품만의 개성적인 특색이다. 섬세한 일상의 묘사는 여기서도 여전한데, 파인애플을 칼로 깎는 다든지 베니바나를 수확한다든지 하는 부분은 당대의 작업환경이 수작업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실로 놀라운 수준. 현실적인 묘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첫 고백을 받은 타에코가 구름 위를 걷는다거나 순정만화의 소녀처럼 눈이 반짝거리거나 하는 부분에서는 만화영화의 장점을 살린 부분도 엿볼 수 있다.

디즈니적인 아니메를 지향하던 지브리의 작품답게 프리스코어링(선녹음 후작화) 방식으로 진행된 점도 특기할만 하다. 특히, 주인공인 타에코와 토시오의 경우는 성우를 맡은 이마이 미키와 야나기바 토시로의 실제 모습을 연상하여 캐릭터를 디자인한 것이 특이한 점.([1] 참조) 그래서인지 만화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웃거나 입을 움직일 때 생기는 볼의 주름을 묘사하는 등, 상당히 세세한 곳에 신경을 쓴 흔적이 느껴진다.

10일간의 휴가를 내어 동경하는 시골로 향하는 타에코가 여정 중에 떠올리는 그녀의 12살 기억은 평범함 속에 소소함과 재미가 넘쳐 흐른다. 만화영화이긴 하지만, 구성방식은 실사영화에 가까운 전개이며 어떤 면에서는 서정적인 수필을 연상시키게 한다. 특히 자신의 어렷을 적 추억을 떠올리는 27살의 처녀의 이야기는 굳이 만화영화의 팬이 아니더라도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전원적인 농촌생활과 어린 시절의 추억 등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향수라는 테마를 불러 일으키게 하고 있으며, 잔잔한 드라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면서 타카하타 감독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게 된다.


<참고 사이트>

[1] おもひでぽろぽろ, Wikipedia Japan
[2] おもひでぽろぽろ(1991), allcinema.net
[3] 추억은 방울방울, 베스트아니메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岡本螢 ・ 刀根夕子 ・ GNH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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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아이 고쿠 (1989), Midnight Eye ゴクウ


ⓒ 寺沢武一 · A-GIRL


<정보>

◈ 원작: 테라사와 부이치(寺沢武一)
◈ 감독: 카와지리 요시아키(川尻善昭)
◈ 각본: 테라사와 부이치-1부, 나카니시 류조(中西隆三)-1,2부
◈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 카와지리 요시아키-1부, 하마사키 히로츠구(浜崎博嗣)-1,2부
◈ 메카닉 디자인/작화감독: 오카무라 텐사이(岡村天斎)-1부, 사노 히로토시(佐野浩敏)-2부
◈ 미술감독/배경: 야마카와 아키라(山川晃)-1부, 오제키 리쿠오(小関睦夫)-2부 / 오가 카즈오(男鹿和雄)
◈ 음악/노래: 타케가와 유키히데(タケカワ ユキヒデ), KAZZ TOYAMA / 카츠라기 유키(葛城ユキ)
◈ 제작: 도에이 비디오-1,2부, 스코라/테라사와 프로덕션-2부
◈ 제작사: 매드하우스
◈ 저작권: ⓒ 寺沢武一 · MADHOUSE
◈ 일자: 1989.01.27, 1989.12.22
◈ 장르: SF, 성인, 액션
◈ 구분/등급: OVA (2화) / 미성년자 관람불가 (NC-17)


<시놉시스>

서기 2014년의 도쿄시티. 두번의 대지진을 겪은 도쿄는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 하이테크놀로지의 도시로 재탄생하였다. 전직경찰 출신인 후린지 고쿠는 이 도시의 뒷세계에서는 제법 유명한 사립탐정. 하지만, 근래 들어 고쿠의 경찰시절 동료들이 하나둘씩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대부분 자살로 잠정 결론이 나지만 고쿠는 이를 믿지 않고 나름의 수사를 계속하려 한다. 고쿠는 예전 동료인 여형사 야부키 요코를 찾아 동료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물어보고 그들이 모두 하쿠류 겐지라는 무기 상인과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함께 하쿠류 겐지 소유의 빌딩으로 향하던 고쿠와 요코는 감시를 서고 있던 두명의 형사가 투신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이제 겐지 수사팀에는 요코만이 유일한 생존자, 동료들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고쿠는 겐지의 빌딩에 직접 잠입을 시도하는데...


<소개>

'우주해적 코브라'를 집필한 만화가 테라사와 부이치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OVA. 코믹스는 1987년부터 '코믹버거(現 코믹버즈)'를 통해 연재되었으며, 단행본으로는 단 4권만 발간되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신의 눈'이라 불리는 초소형 컴퓨터를 왼쪽에 눈에 장착한 사립탐정 고쿠를 주인공으로 한 하드보일드 액션물인데, 테라사와의 출세작 코브라와 비교하여 전반적으로 비슷한 취향의 작품이지만 묘사나 표현이 이전보다 더 성인취향에 맞게 조정되었으며, 전반적으로 시리어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 하겠다. 주인공의 이름이 고쿠(한국어로는 오공)인 것은 그가 사용하는 무기가 여의봉처럼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애초에 손오공을 모티브로 해서인지 헤어스타일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원숭이의 머리모양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테라사와 본인이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였기 때문일까. 테즈카의 직계제자인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코브라에 이어 고쿠는 테즈카의 또다른 제자 린 타로의 제자이기도 한 카와지리 요시아키와 매드하우스가 제작을 맡는다. 서양 SF적인 뉘앙스를 가진 코브라를 일본적인 아니메라마 스타일로 재해석했던 데자키 오사무와 달리, 카와지리는 테라사와의 서구적인 센스를 가져와 자신의 B급 컬트 액션 스타일과 접목시킨다. 이미 '요수도시(1987)'와 '마계도시(1988)' 등을 통해 보여주었던 카와지리 만의 독특한 감각이 개인적으로는 데자키-테라사와의 조합보다는 더 나은 듯한 생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쿠는 그렇게 걸출한 작품은 아니다. 다만, OVA로서 그리고 B급 하드보일드 액션물로서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 寺沢武一 · A-GIRL

본작의 캐릭터 디자인에는 카와지리 외에도 하마사키 히로츠구가 참여하는데, 타츠노코 출신으로 87년에 매드하우스로 자리를 옮긴 그는 마계도시 원화로 카와지리와 인연을 쌓은 뒤 바로 고쿠에서부터 카와지리 작품의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으로 올라서게 되며, 카와지리의 차기작 '사이버시티 OEDO 808(1990)', '철완 BIRDY(1996)', '뱀파이어 헌터 D(2001)' 등에서도 활약하게 된다. 캐릭터 디자인보다는 메카닉 디자인 쪽의 스탭들이 더 놀라운데, 우선 1부의 메카닉 디자인과 작화를 책임진 오카무라 텐사이는 후일 '울프스 레인(2003)', '흑의 계약자(2007, 2009)' 등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탑 클래스 연출가로 성장하게 되며, 2부에서 메카닉을 맡게 되는 사노 히로토시는 '기동전사 건담 0083(1991)', '기동무투전 G건담(1994)',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 '라제폰(2002)' 등에서 멋진 그림을 선보이는 일류 작화가로 대성하게 된다. 이외에도 모리모토 코지나 오가 카즈오와 같은 초특급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하여 기대 이상의 탄탄한 작화력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원작의 느낌에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하려 했는지 앞선 두 작품에서 보여졌던 카와지리 감독만의 하드고어한 느낌은 다소 완화된 느낌으로, 완성도나 재미는 평균 이상의 작품이다. 특히, 눈에 장착된 초소형 컴퓨터로 모든 자료를 수집, 검색, 판독한다든지, 컴퓨터로 동작하나는 전세계의 모든 전자기기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대부분의 전자기기에 CPU와 운영체제, 그리고 소프트웨어가 장착되는 요즘의 세상을 어느 정도 예측했다는 점에서 설정은 다소 황당하더라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코브라가 스타워즈적인 느낌이었다면, 본 작품은 007에 가까운 모양새라고 할 수 있을 듯.


<참고 사이트>

[1] ゴクウ, Wikipedia Japan
[2] MIDNIGHT EYE ゴクウ(1989), allcinema.net
[3] MIDNIGHT EYE ゴクウ II(1989), allcinema.net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寺沢武一 · MADHOUSE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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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극장 아니메 시리즈>

1.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1979)
2.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1984)
3. 명탐정 홈즈 (1984)
4.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5. 이웃집 토토로 (1988)
6.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7. 붉은 돼지 (1992)
8. 원령공주 (1997)
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10.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11. 벼랑위의 포뇨 (2008)
12. 바람이 분다 (2013)

이웃집 토토로 (1988), となりのトトロ / My Neighborhood Totoro


ⓒ 二馬力 · 徳間書店


<정보>

◈ 원작/감독/각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 작화감독: 사토 요시하루(佐藤好春)
◈ 미술감독: 오가 카즈오(男鹿和雄)
◈ 원화: 단나이 츠카사(丹内司), 오츠카 신지(大塚伸治), 카나다 요시노리(金田伊功), 콘도 카즈야(近藤勝也)
◈ 음악/노래: 히사이시 조(久石譲) / 이노우에 아즈미(井上あずみ)
◈ 기획/제작: 야마시타 타츠미(山下辰巳), 오카다 히데오(尾形英夫) / 도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
◈ 프로듀서: 하라 토오루(原徹)
◈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도쿠마 서점
◈ 저작권: ⓒ 二馬力 · 徳間書店
◈ 일자: 1988.04.16
◈ 장르: 드라마, 모험, 판타지
◈ 구분/등급: 극장판 / 전연령가(G)


<시놉시스>

때는 1950년대의 일본,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대신하여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의젓한 소학교 6학년 소녀 쿠사가베 사츠키는 호기심 많은 동생 메이와 고고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곧 퇴원할 엄마를 위해 물 맑고 공기 좋은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사짐과 함께 털털 거리며 굴러가는 작은 고물 삼륜차에 몸을 싣고 꼬불꼬불한 논길을 거쳐 다다른 시골. 나무들이 우거진 터널 같은 계단을 지나 넓은 언덕 위에 새로운 집이 사츠키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들떠하는 사츠키와 메이.

근처의 거대한 녹나무가 보이는 뜰과 동화속 존재인 마쿠로쿠로스케가 존재하는 듯한 시골집은 전원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정취를 풍기고 있어 사츠키와 메이에게는 따사로우면서도 왠지 모를 위화감이 으스스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사츠키가 학교에 가고, 아빠가 일을 하고 있는 어느 화창한 오후, 혼자서 집주변을 살펴보며 자연과 벗삼아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던 메이는 생전 처음보는 희한한 모양의 동물(?)을 발견하고 뒤를 쫓던 도중 녹나무 밑의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마는데...


<소개>

스튜디오 지브리의 두번째 극장 아니메(동시 상영으로 제작된 '반딧불의 묘(1988)'가 있으니 둘 다 지브리의 두번째 극장 아니메라 보면 될 듯. 지금에서야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지브리 아니메로 여기지만, 원래 나우시카는 지브리가 창립하기 전 탑 크래프트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지브리의 탄생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네번째 극장 아니메. 이제는 지브리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이자 하나의 정체성으로 여겨지는, 일본 아니메의 대표적인 캐릭터이자 아이콘인 토토로를 주인공로 한 작품으로, 상영 당시만 하더라도 그 파급력은 미비했었다. 지브리 사상 최저 흥행성적을 거둬들인 '천공의 성 라퓨타(1986)'보다 살짝 앞선 약 5.9억엔의 수입(라퓨타는 약 5.8억엔)과 8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니 지금의 네임밸류에 비하면 무척 초라한 성적을 거둔 셈.

토토로의 기원은 사실 197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에이 동화를 떠나 A 프로덕션(現 신에이 동화)에 입사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A 프로덕션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도쿄무비신사의 극장 아니메를 하청받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아기 팬더와 아빠 팬더가 등장하는 작품을 생각해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토토로의 원형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 당시 제작된 도쿄무비신사의 '팬더와 아기팬더(1972)'의 팬더는 생김새나 표정 등이 토토로와 무척 흡사하였으며 주인공 여자아이인 미미코는 토토로의 주인공인 사츠키와 메이를 섞어 놓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 팬더와 아기팬더(パンダコパンダ) 1972 1972 by 캅셀 (보러가기)

토토로의 초기 기획서가 미야자키에 의해 스폰서인 도쿠마 서점에 제출될 때만 하더라도 도쿠마 서점은 이 기획안을 그다지 마뜩치 않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시대 배경도 너무 오래된 옛날인데다가 스케일이나 드라마성이 전작인 나우시카나 라퓨타에 비해 너무 소박하고 밋밋해서 흥행하기에는 뭔가 한 방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기획된 작품의 러닝타임도 6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단독 상영으로는 다소 어정쩡한 길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 물꼬는 의외의 방향에서 터졌다. 당시 지브리에서 기획 중이던 또다른 극장 아니메 반딧불의 묘 역시 60분 정도 밖에 안되는 러닝 타임이었기에 이 두 작품을 동시상영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이로 인해 극적으로 토토로는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다만 후일 제작 과정 중에서 반딧불의 묘나 토토로나 모두 9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가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태어나게 된다.

반딧불의 묘에 지브리의 A급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한데다가 스튜디오마저 이들이 쓰고 있었기에 토토로의 제작은 신설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으며, 스탭 역시 반딧불의 묘에 비해서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인재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본 작품을 통해 지브리와 첫 만남을 갖게 된 미술감독 오가 카즈오의 경우는 일본 아니메 양대 거장 미술감독으로 불리는 코바야시 시치로와 무쿠오 다카무라 둘 모두를 스승으로 모셨던 인물로서, 그 천부적인 감각으로 인해 완벽주의자인 미야자키에게마저 극찬을 받기 이른다. 실제 토토로에서 보여준 카즈오의 미술은 20여년 전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푸르렀으며, 그때까지 지브리의 미술을 이끌고 있던 야마모토 니죠(당시에는 반딧불의 묘에서 미술감독을 역임)와 비교했을 때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반딧불의 묘에 비해 애니메이터의 진용이 다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토토로의 미술적 가치는 지브리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겠다.

50년대 일본의 농촌생활을 묘사한 작품의 디테일은 역시 미야자키답게 명불허전이다. 상당히 세심한 디테일까지 신경을 쓴 결과 도저히 아동용 만화영화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한 느낌이 전달되는 것은 이제까지도 유효한 지브리의 대표적인 스타일이다. 특히, 그 때까지만 해도 주로 유럽의 전원적 정취를 묘사하면서 일부 팬들로부터 백인우월주의자라는 편견을 들어왔던 미야자키가 일본의 전통적인 생활상이 물씬 풍기는 작품을 연출함으로써 그러한 일각의 편견을 일축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연출한 작품 중 일본적 배경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나 '원령공주(1997)'가 역대 극장 아니메 랭킹 1위와 3위에 올라있는 것은 미야자키가 동양적이고 일본적인 가치관의 표현에 있어서도 높은 내공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살던 주인공 소녀가 시골로 이사를 와 신비한 현상을 겪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 전개는 후일 미야자키 최고의 히트작 센과 치히로...와 동일한 스타트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사츠키와 메이, 그리고 잔잔한 극의 분위기는 다소 어둡고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여었던 센과 치히로...에 비해 낙관적이고 유아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삼륜차나 수도 펌프 등은 과거 한국에서도 70년대까지는 볼 수 있었던 것들로, 우리의 역사 중 일부가 일본과 좋지 않은 형태로 얽혀 있던 지난 시절의 잔재를 느낄 수 있다 하겠다. 다만 동시 상영으로 방영되었던 반딧불의 묘가 태평양 전쟁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국내 팬들에게 반일 감정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토토로의 경우는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아이템과 소소한 생활 스타일을 제외하고는 민족주의적 편향이나 왜곡된 역사적 관점을 거의 느낄 수가 없는 소박한 작품이기에 이러한 역사적 유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편이다.

극장에서는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지만 TV 방영시에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기록했다. 방송 때마다 시청률은 20% 안팎을 기록할 정도로, 이는 전작인 라퓨타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일어났던 현상이기도 하다. 토토로의 봉제인형도 큰 인기를 끌어 1991년 당시 판매 개수는 약 210만개에 이르기도 했는데([1], [3] 참조) 이는 지브리의 캐릭터가 시장에서 통한 최초의 사례로, 토토로에 이르러 캐릭터 사업이 지브리의 고정적인 수입원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비디오나 DVD로도 쾌조의 순항을 지속하였으며, 모 공원에서는 작품에 등장하였던 사츠키와 메이의 시골집이 실제로 재현되기에까지 이른다. 명실공히 지브리와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평단의 찬사도 줄을 이었다 방영해인 1988년 일본의 저명한 영화잡지 키네마준보 베스트 10에서 일본영화 베스트 10 1위를 차지했으며, 독자선정 일본 영화 베스트 1위, 독자선정 일본영화 감독상 등 그해의 일본 실사영화들을 모두 제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또한 마이니치 영화콩쿨 일본영화 대상, 제6회 일본 애니메이션 대상·아톰상 최우수 작품상/각본부분 최우수상/미술부문 최우수상/주제가부문최우수상, 제20회 성운상 미디어부분 수상 등 수상경력 역시 화려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계속적인 극장흥행 부진은 지브리와 미야자키의 불안요인이기도 했다. 나우시카를 통해 뭔가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건만 흥행은 계속 저조한 상황에 흐르고 있었고, 지브리에게는 무언가 결정적으로 큰 한방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 二馬力 · 徳間書店


<참고 사이트>

[1] となりのトトロ, Wikipedia Japan
[2] となりのトトロ, allcinema.net
[3] 이웃집 토토로, 위키피디아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二馬力 · 徳間書店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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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畑事務所・TNHG


<스탭>

◈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 원작: 타카하타 이사오
◈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시놉시스> 

마지역에서 다카가 숲과 스즈카 숲으로 나뉘어 살던 너구리들은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점차 숲이 없어지면서 존속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들 너구리들은 사람들이 안보일 때는 두발로 서서 다니며, 변신술과 같은 도술을 부릴 수 있는 이들이었지만, 자연을 바꿔버리는 인간들의 힘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평성 31년(평성, 일어로 헤이세이는 현재 일왕의 연호로 1988년부터 시작함. 평성 31년이면 서기로 2019년을 의미), 너구리들은 인간들에게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기로 한다. 인간들에 맞서기 위해 너구리 장로들이 내놓은 계획은 바로 오랫동안 금지되어 있던 변신술의 부활과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이었는데...


지브리의 또하나의 심장, 다카하타 이사오의 걸작 판타지

튜디오 지브리하면 대게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들은 세심한 설정, 아름다운 배경, 서정적인 음악, 거대한 스케일, 신나는 모험, 반전의식과 환경주의가 담긴 메시지, 하늘을 향한 로망, 그리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등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소재들로 가득하지요. 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에는 미야자키에 버금가는 또하나의 거장이 자리하고 있음을 아니메를 많이 보아온 팬들이라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일본 아니메史를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감독 중의 한명, 다카하타 이사오가 있음을 말입니다.

사실, 다카하타 이사오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세워진 직후에는 연출이라는 자신의 본업보다는 제작 쪽에 주로 몸을 담으면서 지브리의 안살림을 챙겨왔습니다. 그러나 다카하타와 미야자키가 처음 조우한 60년대의 도에이 동화 시절을 지나 세계명작동화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 닛폰 애니메이션 시절까지는 오히려 다카하타가 연출을 맡았고, 후배인 미야자키는 그를 도와 설정 등에 관여했던 적이 더 많았지요. 이 때까지 그가 연출했던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모험(1968)', '팬더와 아기팬더(1972)',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1974)', '엄마찾아 삼만리(1976)', '빨간머리 앤(1979)', '첼리스트 고슈(1982)' 등 주옥같은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흥행적인 면에서 미야자키가 앞서 있다고 하지만 작품의 네임밸류만 놓고 보자면 둘은 거의 쌍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이런 그가 스튜디오 지브리에 안착하면서부터는 자신의 작품 활동 수를 줄이고 후배인 미야자키를 전면에 내세운 체 자신은 스튜디오 내의 궂은 일을 도맡게 됩니다. 그의 필모그라피가 상당부분 세계명작동화에 기반한 현실적이고 소소한 드라마(물론, 데뷔작인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모험은 상당한 스케일의 판타지 드라마입니다만)였던 반면, 미야자키의 작품들은 대게 판타지적이고 모험이 가득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은 둘의 스타일이 같은 소스(세계 명작동화 스타일)에서 기반하고 있지만,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지브리에서 연출한 전작 '반딧불의 묘(1988)'와 '추억은 방울방울(1991)'은 이러한 현실주의적인 성격에 더해 그동안 선보였던 유럽식 배경을 벗어나 일본적인 색체를 물씬 풍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미야자키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이국의 모험'을 그린다면, 다카하타 감독은 '현실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드라마'에 능숙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둘의 성격적 차이는 지브리의 작품 스펙트럼을 폭넓게 하는 하나의 강점이라고 할 수도 있구요.

그런 그가 94년 변신술을 사용하는 너구리가 주택개발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험에 처하자 인간에 맞서 싸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일상의 모험'을 다룬 재미있는 작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바로 이번에 소개할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이하 폼포코)'입니다.

ⓒ 畑事務所・TNHG



인간을 풍자하는 재주많고 유쾌한 너구리들의 생활

야기는 동경의 타마지역 신도시 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주택공급 사업의 일환으로 산을 깎아 계단형태로 아파트 단지를 세우려는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두 무리로 나뉘어 서로 다투던 너구리 무리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너구리들은 두발로 서서 걸어다닐 수 있으며, 사람처럼 말도 하고, 심지어는 도술을 사용하여 자유자재로도 변신할 수 있는 영험한 동물이라는 것인데요. 이들은 인간들의 도시개발계획에 맞서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내고자 인간들을 파악하기 위한 인간연구계획과 한동안 금기시 해왔던 변신술을 부활시켜 인간들에 맞서기로 결정합니다. 실로 너구리들의 반란, 아니 너구리들의 역습인 것이죠.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너구리들이 절대 인간처럼 사악하거나 계산적이지 않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며 놀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평화가 빼앗길 위기에 처한 너구리들이지만, 심각한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인간들을 향한 대응방식이 결정되자 바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처럼 기뻐하는 너구리들의 모습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만, 천진스럽고 낙천적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누구를 해코지하거나 다치게 하려는 공격적인 방식보다는 '원만하게 잘 해결되면 그걸로 좋지 아니한가'라는 순진한 너구리들의 방식은 자신들에게 닥친 위기상황을 실로 유쾌하게 희화화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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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들 무리중에도 강경파가 있어 공사장에 진입하는 트럭을 도랑으로 떨어뜨리고 운전을 방해하여 절벽에 추락시키는 것과 같은 과격한 행동을 일삼지만, 이마저 낙천적인 그들의 성격 때문에 유야무야 되어버리고 맙니다. 인간들을 아예 멸망시켜버리자는 초강수를 계획하다가도 햄버거 때문에 인간들 일부는 살려둬야 한다며 웃음으로 마무리 지어버리는 너구리들의 모습은 가벼운 미소를 짓게 만들죠.

특히, 초반에 변신술을 익히는 그들의 일상은 타카하타 감독의 숨겨진 개그가 빛을 발하는 대목인데요. 변신술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해 하반신이나 상반신은 그대로 너구리인체로 변신하거나 아예 변신술을 하지 못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선생님 앞을 지나가는 어설픈 너구리들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너구리들의 변신술은 게다가 한계가 있는데요. 막대한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변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태미너 드링크를 수시로 복용해야 한다는 재미있는 제한까지 둡니다. 인간으로 변신한 뒤 한계가 다다른 너구리들은 눈밑에 진한 다크써클이 생기면서 점차 지쳐가다가 체력이 다하면 너구리로 변하고 맙니다. 이러한 설정은 실로 디테일함과 재기가 넘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로 다채로운 너구리들의 매력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너구리들의 모습으로 또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동물 너구리의 모습으로, 너구리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처럼 웃고 떠들고 걸어다니는 환상 속 너구리로, 패기를 잃어버린 비관적인 모습일 때는 더더욱 만화적인 형태의 너구리(기획단계에서 논의되었던 스기우리 시게루의 만화 '백팔백 너구리'의 너구리를 컨셉으로 한 것)로 변하면서 상황에 따라 다채롭게 변모하게 되는데요. 너구리들을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이러한 연출방식은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오고가는 이 작품의 성격과도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고 하겠습니다.

ⓒ 畑事務所・TNHG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한 너구리들의 특훈장면. 미숙한 너구리들의 변신장면은 기발한 웃음을 선사한다.


개발 지상주의를 향한 비판, 현실주의가 살아있는 동화

포코가 코믹 판타지의 형태를 띄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 돋보이는 것은 지브리의 테마인 환경주의를 보다 더 사실주의적인 관점에서 묘사했다는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거대한 판타지의 세상 속에서 환경주의를 묘사했던 미야자키와는 달리, 다카하타 이사오는 변신 너구리들의 판타지스러운 세상을 사실주의가 가득한 인간의 세상 한 가운데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보다 더 이 메시지를 피부에 와닿게 하는 수법을 보이고 있는데요. 덕분에 이 작품은 판타지적인 연출이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물과 기름처럼 판타지와 사실주의가 양립하는 기묘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이 변신 너구리들의 생활이 삭제된 체 인간의 관점에서 진행되었다면,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피폐해지는 자연의 모습과 이로 인해 살곳을 잃고 인간세상으로 먹을 것을 찾아나온 야생 너구리들의 이야기라는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인 이야기가 되었을 겁니다. 이 얼개를 유지하면서 여기에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적인 너구리들을 등장시켜 다큐와 동화가 공존하는 보기드문 스타일의 풍자 판타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상반된 두 스타일을 한 작품에 융화시키는 것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로 두 가지 장르에 모두 정통한 연출가만이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모습일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타카하타 감독이기에 가능한 모습인 것이구요.

덕분에 지브리 작품의 거의 공통적인 테마라 할 수 있는 환경주의는 더더욱 설득력있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결말 역시 현실과 동화의 오묘한 결합을 보여주고 있지요. 결국, 너구리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만, 그것은 배드 엔딩이라고 볼 수 많은 없습니다. 너구리들은 인간들로 변신하여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지요. 변신하지 못하는 너구리들은 그들대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쓰레기통을 뒤지고, 인간들에게 음식을 구걸하는 비참한 신세로 변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식의 결말은 낭만주의적인 미야자키의 스타일에 비해서는 굉장히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카하타의 작품은 미야자키의 작품에 비해 더 성숙한 느낌이 묻어나지요. 성숙함은 동심의 결여를 의미하지만, 폼포코에서는 유쾌한 너구리들로 인해 마냥 현실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현실적인 드라마라는 레시피에 판타지라는 소스를 뿌린 맛나는 요리처럼 폼포코는 담백한 현실과 달콤한 판타지가 공존하며 인간(현실)과 자연(판타지)가 상생하기 위한 물음을 던집니다.

ⓒ 畑事務所・TNHG

지브리 작품 최초로 실사장면이 삽입된 컷. 맛있는 튀김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타카하타 감독이 직접 지시를 한 장면으로, 촬영 후 튀김은 모두 스탭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후문이...

ⓒ 畑事務所・TNHG

지브리 작품 최초로 CG를 도입한 도서관 장면. 이 장면은 작품 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짧은 컷이었지만, 이를 위해 CG 경험이 전무한 지브리는 외주로 이 장면을 구현했다고 한다. 지브리에서 CG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작품은 3년후에 제작된 '원령공주(1997)'.
 

소소하고 잔잔한 서민적인 이야기 

포코는 다카하타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재기발랄함과 독특함이 넘쳐나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웃의 야마다 군(1999)'과 같은 작품에서 다카하타 감독은 지브리적 스타일을 버리고 또다른 변신을 시도했지만, 사회성과 오락성을 절묘하게 조합시킨 본 작품의 매력은 역시 다카하타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브리로 옮겨와 연출한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친화도를 갖고 있기도 하구요. 한국의 극장에서 상영된 그의 유일한 작품으로, 반응도 좋았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일본적이면서도 향토적인 느낌을 가져다주는 굉장히 서민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왜색이라는 부정적인 시각과 맞물릴 수도 있지만, 유쾌하고 우화적이면서 소시민적인 취향에 잘맞는 이 작품의 느낌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더 많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작품의 결말은 유쾌하면서도 해피엔딩이 아니며, 실패했음에도 슬픈 엔딩이 아닌 여운이 남는 결말을 보여주었지만, 전형적인 결말이었기에 해학적이면서도 기발했던 시작에 비해서는 김이 빠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이 굉장히 뚜렷한 드라마틱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소소하고 잔잔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도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과 대비되는 타카하타 감독만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는 드라마틱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영화같은 드라마틱함이 아닌 잔잔한 물결과 같은 선택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미야자키 감독보다도 6살 연상인 타카하타 감독의 신작을 이제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일 겁니다. 미야자키의 대를 이을 인재가 없는 것 역시 아쉬운 일이지만, 잔잔하고 서민적인 휴머니스트 거장의 대를 이을 전수자가 없다는 것 역시 지금의 아니메에서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 畑事務所・TNHG

클라이막스의 요괴대작전에는 지브리의 인기 캐릭터들인 토토로와 키키, 붉은 돼지가 특별출연 해주셨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타카하타 감독의 서비스라고나 할까.


<참고 사이트>

[1]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1994) by 엘로스
[2] 비극적인 환경파괴의 연대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by 김봉석, 씨네21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당권리는 ⓒ 畑事務所・TNHG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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