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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엘렌 실:라 루:멘 오멘티엘보 at NAVER'의 '라스트 유니콘 (1982), 독특한 매력의 이국적 판타지'를 수정하여 옮긴 글입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inherited from ITC Entertainment)


<스탭>

◈ 감독: 아써 랜킨 쥬니어 (Arthur Rankin Jr.), 쥴스 배스 (Jules Bass)
◈ 원작/각본: 피터.S.비글 (Peter.S.Beagle)
◈ 제작: ITC Entertaiment, Rankin/Bass Production, Topcraft Studio


<시놉시스>

'라스트 유니콘 (1982)'을 참고하세요.


1. 동서양이 합작한 환상적이고 고풍스러운 모험 이야기

'Last Unicorn(이하 라스트 유니콘)'은 동서양의 제작진들이 힘을 합쳐 만든 다국적 작품으로, 감독과 원작/각본과 같은 핵심 스탭진은 모두 미국에서, 그리고 스폰서는 영국의 ITC Entertainment가 맡았으며, 원화와 동화는 일본의 소규모 스튜디오인 Topcraft가 맡았습니다. 특히 이 Topcraft의 참여야말로 이 작품을 다른 영미권 작품과 차별화 시켜주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선녹음 후작화' 방식으로 제작되던 미국식 만화영화 제작 스타일과 '선작화 후녹음' 방식의 스타일로 제작되어오던 일본식 제작 방식과의 조우과 과연 어떤 형식의 작품으로 표현될지가 흥미로운 부분인 것이죠.
 
기실 Topcraft는 이 라스트 유니콘에 있어서는 하청 제작업체내지는 용역업체와 비슷한 위치(감독, 각본 등 핵심 스탭진이 모두 미국인, 비즈니스적으로는 '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라고 볼 수 있기에 실제 제작방식은 거의 미국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미국식 제작방식을 일본의 스튜디오가 얼마만큼 잘 소화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비 디즈니 계열의 극장판 만화영화로서는 꽤나 높은 완성도로 탄생되지 않았나 싶은데, 물론 디즈니라든지 일본의 탑 클래스(그러니까, 풀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제작할 수 있었던 초창기 도에이 스탭진들 같은...)의 극장판 만화영화에 비해서 객관적으로 캐릭터의 동화적 표현 등은 떨어지긴 합니다만, 동양권의 작화방식이 서양방식의 표현 스타일과 맞물려서 이루어낸 듯한 미묘한 특이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시각적 경험이기도 합니다.
 
라스트 유니콘은 성우 캐스팅에서 놀라울 정도의 호화 캐스팅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주인공인 유니콘 역에는 존 패로우 감독의 딸이자 우디 알렌 감독의 전부인이기도 한 연기파 배우 미아 패로우(물론, 지금 들어보면 유니콘 목소리치고는 아줌마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어설픈 마법사 슈멘드릭 역에 뉴욕 비평가 협회 남우조연상, 아카데미 남주조연상 등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 알란 아킨, 흥행성과 연기성을 골고루 갖춘 배우 제프 브리지스가 리르 왕자, '반지의 제왕' 사루만과 '스타워즈 에피소드'의 두쿠 백작으로 잘 알려진 크리스토퍼 리가 해거드 왕 등으로 캐스팅 되어 지금의 미국산 대작 만화영화의 스타 배우 캐스팅과 견주어도 그다지 밀릴 것 같지 않은 높은 네임밸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니콘과 숲의 장면 장면이 움직이는 동화에서 태피스트리(벽걸이용 융단) 형태로 변모하면서 마치 동화 속의 환상이 벽화로 재현되는 듯한 오프닝은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옛스럽고 엔틱합니다.(이 태피스트리는 '유니콘의 사냥'이라는 실제 작품에서 모티브를 받은 듯 싶습니다.) 배경으로 흐르던 서정적인 오프닝곡은 그룹 아메리카가 불렀는데요, 후에 케니 로긴스나 In-Mood 같은 그룹에 의해 몇 번 리메이크될 정도로 인기도 있었지요. 특히, 이 고풍스러운 벽화와 서정적인 테마로 특징 지워지는 영상은 왠지 낯설지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니메 팬들 중에서는 기억하시는 분도 많으리라 봅니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초창기 작품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번째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에서는 메인 테마와 함께 화면을 장식한 고풍스러운 벽화 스타일의 오프닝이 등장합니다. 다음 작품인 '천공의 성 라퓨타(1986)'의 오프닝 또한 이 나우시카의 오프닝처럼 벽화 스타일과 유사한 고풍스러운 연출을 보여주고 있지요. 짐작하셨겠지만, 이 라스트 유니콘의 만화영화 제작진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진은 동일한 제작진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창설 당시 Topcraft의 인재들이 흡수된지라 초창기 지브리 작품의 오프닝은 우연치 않게도 라스트 유니콘의 그것과 유사한 느낌을 줍니다.  
 

Last Unicorn,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Nausica of the Valley of Wind, © 1984 Tokuma Shoten

그림 1. Last Unicorn의 오프닝(위)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오프닝(아래) 화면.


2. 꿈의 마지막 단편을 쫓아 삐뚤어진 현실 속을 여행하는 유니콘의 이야기

라스트 유니콘의 각본은 원작자 본인인 Peter.S.Beagle이 맡았습니다. 보통은 원작자가 아닌 전문 각본가가 각본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Beagle 선생의 경우는 이미 78년에 '반지의 제왕' 만화영화의 각본을 맡았기에 (여담으로 어린시절 이 만화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던 유명인 중의 한 명이 바로 20여년 뒤 '반지의 제왕' 3부작 시리즈로 전세계적 명성을 얻은 피터 잭슨 감독이기도 합니다.) 각본가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춘 상태였고, 그로 인해 각본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자가 각본을 쓴지라 작품의 이야기 전개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만화영화를 위해 잘 안배되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스토리의 뛰어난 이식성은 이 작품의 가치를 현재까지도 이어주는 중요한 포석이 되고 있습니다.
 
초반의 이야기는 환상 속의 동물인 유니콘이 어느날 자신의 동족이 한 명(아, 아니 한마리)도 없음을 인지하고는 동족을 찾기 위해 숲을 떠나 세상을 여행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녀(성우가 여성분이니까 그녀가 맞겠죠.)는 한 정신 나간 나비(말 그대로 횡설수설합니다.)와의 만남을 통해 동족의 행방이 한 붉은 황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붉은 황소를 찾아나서게 되는데요. 정신 나간 나비의 말 이외에는 정보를 얻을 곳이 없는 유니콘의 현실이 왠지 그녀, 즉 꿈과 추억이 현실과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다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싶습니다.
 
(꿈과 동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유니콘을 백마로 착각합니다.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이들이 순수와 꿈의 상징인 유니콘의 뿔을 보지 못하는 모습은 현대인을 빗댄 은유이기도 하지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유니콘을 사악한 마법사 포르투나는 한 눈에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법사에게 있어 유니콘은 순수와 꿈의 상징이 아닌 한낱 돈벌이의 도구일 뿐입니다. 마법사는 유니콘을 붙잡아 그녀에게 가짜 뿔을 씌우고 사람들에게 유니콘이라고 속여 보여줍니다. 진짜 뿔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유니콘은 가짜 뿔이 씌워져 가짜 유니콘으로 보여지는 서글픈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순수와 꿈을 잃어버리고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군상 역시 오버랩됩니다. 초반부의 유니콘이 처한 상황은 동화적인 표현이 돋보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비유적으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니콘의 고난은 한 견습 마법사의 도움으로 인해 또다른 전개를 맞게 됩니다. 이 마법사는 자신을 슈멘드릭이라고 소개하는데요, 우스운 것은 슈멘드릭이라는 이름이 이디시어(블로그지기 주: 독일어에 슬라브어와 히브리어가 섞인 말)로는 '바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슈멘드릭은 제대로 된 마법은 구사할 줄 모르는데다가 상황판단력이 좀 뒤쳐지는 어리숙한 인물로 나옵니다.(물론, 동시에 정의감과 순수함 역시 갖고 있지만.) 유니콘의 본 모습을 알아본 그는 유니콘을 탈출시키기 위해 도움을 자처하게 됩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그림 2. 사계절 동안 동족을 찾아 헤매는 유니콘.

마법사에게서 탈출한 유니콘과 슈멘드릭은 정처없는 여행 도중 숲에서 한무리의 부랑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로빈 훗의 망령에 사로잡혀 사는 캡틴 컬리의 일당들이었는데요, 유니콘의 마법(그러나 슈멘드릭은 자신이 한 것인 줄로 착각)으로 로빈 훗과 메리언의 망령을 본 이들은 감격에 겨워합니다. 몽상에 빠진 체 현실을 거부하는 이들의 모습은 바로 이전 에피소드에서 유니콘의 진짜 뿔을 알아보지 못하고 가짜 뿔에 현혹된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과 함께 인간을 향한 또다른 풍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 속에서 유니콘은 순수와 꿈을 간직한 또다른 동료(내지는 하녀?) 몰리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든든한(?) 동료들을 얻은 유니콘의 여정은 어두운 현실이 맞닥뜨리면서 급반전됩니다. 세상의 모든 유니콘들 잡아 해거드 왕에게 바친 붉은 황소가 등장한 것입니다. 붉은 황소에 엄청난 위압감에 유니콘 일행은 두려움에 떨고... 숲에서의 마법(로빈 훗과 메리언의 환영을 캡틴 컬리에게 보여준 것)이 자신이 한 것이라 착각한 슈멘드릭은 당당하게 마법의 주문을 읊지만 엉뚱한 결과를 가져와 유니콘을 아리따운 아가씨로 변신시키고 맙니다.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는 유니콘(슈멘드릭의 실력을 감안했을 때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두꺼비나 생쥐가 아닌게 어디랍니까.)을 진정시키면서 우여곡절 끝에 해거드 왕을 찾아낸 유니콘 일행, 슈멘드릭은 얼떨결에 유니콘을 '아말띠아'라는 이름으로 해거드 왕에게 소개시키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말띠아'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이름으로, 염소와 비슷한 모습으로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데, 뿔 하나에는 술이 가득 차 있고, 다른 하나에는 음식이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제우스가 뿔 하나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아말띠아는 하나의 뿔을 갖고 있게 되며, 흰 몸과 하나의 뿔 덕에 많은 이들이 유니콘으로 오인하고 있다고도 하는군요. 바로 이 유니콘으로 오인되는 아말띠아의 이름이 인간의 껍질을 쓰고 있는 유니콘의 이름으로 사용되며, 또다시 작품은 진정한 사실을 외면한 체 허상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비유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런 유니콘, 아니 유니콘의 인간 모습을 해거드 왕의 의붓아들 리르 왕자가 사랑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좀 더 미묘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죠.
 
유니콘은 해거드 왕에게 사로잡힌 자신의 동족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요. 리르 왕자와의 사랑은, 그리고 해거드 왕과 붉은 황소와의 결말은 어찌 될까요. 그녀는 과연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허상과 위선을 벗고 진실과 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한가닥 희망인 순수와 꿈을 찾아내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그림 3. 마녀 포르투나(좌측 상단), 슈멘드릭(우측 상단), 캡틴 컬리(좌측 하단), 그리고 붉은 황소(우측 하단).


3.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랑받는 유니콘, 그녀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3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이 작품은 서구권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국내에서는 80년대 들어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해준 적이 있었지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서 100만장 이상의 DVD 판매량을 올린 것이 그것인데요. 유니콘이 갖고 있는 특유의 깨끗하고 투명한 느낌의 환상성은 순수함이라는 테마에 가장 잘 부합하는 소재로, 어두움과 공포의 대명사 용과 함께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재생산 되는 판타지적 소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유니콘을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는 꽤나 독특하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양의 작화와 서양의 연출이 어우러져 다른 작품과는 다른 독특한 맛을 주는 이 작품은, 특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유니콘의 색다른 아름다움이 유니콘의 본 모습이 아닌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본 모습 이상의 아우라를 뿜어낸 아이러니함 역시 갖고 있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명작을 만들어낸 원작자 Beagle 선생이 저작권료를 제대로 못받아 2000년대에 들어 제작사 측과 법적 분쟁까지 갔다는 사실은 꿈과 망상,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극중 인물들의 모습처럼 왠지 모를 쓸씀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작자의 아픈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화면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유니콘의 눈부신 흰색은 인간의 영원한 동경, 노스텔지어를 연상케 하는 또다른 상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eter.S.Beagle / Granada International

그림 4. 해거드 왕(우측 상단)과 리르 왕자(좌측 상단), 그리고 인간으로 변한 유니콘 아말띠아(하단).

☞ 아,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라스트 씬에서 파도에 갇혀있던 유니콘들이 탈출하여 해변을 뒤덮는 장관은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에서 아르웬이 나즈굴을 물리치기 위해 강물에 걸었던 마법과도 오버랩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작자 Beagle 선생은 이미 78년 '반지의 제왕' 만화영화 각본을 맡은 적이 있다는 것. (물론, 톨킨 선생의 '반지의 제왕' 원작에 이미 묘사가 된 장면이지만 말입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이주의 영화리뷰 2009년 7월 3주차에 선정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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