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s/Rest of Bookcase 2013.05.15 16:00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읽지 마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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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탭>

◈ 연출: 김병수
◈ 극본: 송재정, 김윤주
◈ 기획/제작: TvN / 초록뱀 미디어, JSPICTURES


<줄거리> 

안나푸르나 원정대 취재를 위해 네팔에 머물고 있던 CBM 기자 주민영(조윤희 분)은 5년 동안 열렬히 짝사랑 중인 선배기자 박선우(이진욱 분)가 온다는 소식에 단숨에 공항으로 달려가 그를 맞는다. 그런 민영에게 선우는 다짜고짜 진한 키스를 하고, 그동안 끊임없는 애정공세에도 꿈쩍않던 선우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민영에게 선우는 6개월만 같이 살자는 농담섞인 프로포즈를 한다.

한편, 형인 정우(전노민 분)가 1년 전 히말라야에서 동사했다는 사실은 확인한 선우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형을 만난 그날, 한눈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던 형을 붙잡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한다. 그날 밤,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던 선우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출처: TvN 나인 공식 홈페이지)


시간여행을 다른 관점으로 묘사한 보기 드문 수작

시간여행, 혹은 타임 슬립이라 불리는 소재는 H.G 웰스의 SF 소설 '타임머신(1895)' 이전부터 그 후의 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 사용되면서 우주여행과 함께 인간의 또다른 로망으로 오랫동안 자리잡아 왔다. 헐리웃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의 영화들이 시간 여행을 테마로 삼아 만들어져왔지만, 아쉽게도 그 중에 우리의 뇌리에 남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새긴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은 시간 여행자가 과거에서 행한 어떤 행동이 현재의 시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제법 일리 있는 가정 덕택에 매력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험난한 창작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말 그대로 어려운 소재인 셈이다.

몇 년전부터 한국에서도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제법 등장하기 시작했다.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이들 모두 완성도를 떠나 시간 여행을 완벽하게 드라마 속에 녹여내지는 못했다. 대게의 작품들은 주인공이 과거로 혹은 현재로 넘어와 겪는 단선적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는 시간 여행이 그저 단순한 설정에만 그쳤을 뿐 시간을 거스르는 주인공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게 했다.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2013)'은 이런 시간 여행을 다룬 한국의 많은 드라마와 영화 중 가장 발군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작품이다.

나인이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세심한 설정에 있다. 20년 전으로 돌아간 선우가 바꾸어 버린 과거가 시간대에 영향을 미쳐 현재가 뒤바뀐다는 가정은 이 드라마의 예상치 못한 반전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포인트다. 이를 통해 나인은 빠른 극 전개와 맞물려 매회 시청자들에게 놀라운 반전의 묘미를 선사했는데, 덕택에 우리는 선우의 연인인 주민영이 그의 조카 박민영으로 뒤바뀌고,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마감하는 선우가 다음 순간 극적으로 부활하며, 악독한 사업가 최진철이 순식간에 비루한 의료기기 판매점 사장님으로 전락하는 것과 같은 짜릿한 반전을 여러차례 경험하게 된다.

향이 정확히 20년 전의 그 시간으로만 시간을 되돌리게 한다는 점, 그리고 과거에 머무는 시간 역시 30분으로 제한된다는 점은 나인에서 극적인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또하나의 매력적인 설정이다. 그 제한된 시간 안에서 선우는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최진철에게 복수하며, 형인 정우를 살리고, 연인인 민영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펼쳐지는 이 긴박한 스릴과 서스펜스는 시청자들에게 영화 이상의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이 탄탄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와 설정에 혼을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연기자들이다. 주연을 맡은 이진욱과 조윤희는 나인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캐릭터와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주었다. 만약, 이 드라마가 지상파를 통해 방영되었다면, 이진욱과 조윤희(특히 이진욱)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지금의 몇 배를 상회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특히, 절제된 감정 연기를 선보인 이진욱은 (최고는 아닐지라도) 이 드라마에 가장 잘 맞는 최선의 연기였다.

박선우와 대척점에 서있는 최진철 역의 정동환은 오랜 그의 연기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악역(정동환 씨는 점잖은 연기도 일품이지만, 악역에도 일가견이 있는 연기자이다)이었으며, 러블리한 캐릭터를 잘 표현하며 드라마의 마스코트가 되어버린 조윤희와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전노민, 이진욱의 아역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박형식 등 초호화 캐스팅은 아니었어도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인상적인 대본과 어울려 최상의 화학작용을 보여주었다.

물론, 나인에서 보여준 시간여행이 반드시 논리적으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연인에서 조카로 변해버린 박민영이 과거 주민영일 당시 선우에게 남겼던 레코드 판의 메시지가 뒤바뀐 현재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민영이 뒤바뀐 과거의 기억을 되찾기 위한 소재로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굳이 논리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 회에서 20년 넘게 보관되어온 선우의 스마트 폰이 배터리를 교체하자 바로 동작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 하지만, 이런 사소한 오류를 무시해버릴 만큼 나인의 극적 완성도와 몰입감은 뛰어나다.

나인은 근래 들어 만들어진 한국의 드라마 중 가장 인상적이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판타지와 서스펜스를 적절하게 잘 조화해낸 장르적 완성도도 그렇지만, 시간을 되돌리며 벌어지는 인과관계를 오락물로서는 제법 근사하게 표현한 부분도 뛰어나다. 엔딩이 이렇게 아쉬웠던 한국 드라마가 근래에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지난 10주간의 시간 여행은 시청자에게 매우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덧붙임1) 마지막 회의 과도한 PPL은 나인이니까 봐줄 수 있었다. 타임슬립이 소재이다보니 PPL 측면에서는 빈도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도 있었고.(VIPS는 아시다시피 CJ 계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이번 나인에서는 제작 지원을 겸했다) 극 중에서 CBM의 기자들과 선우와 정우가 입는 아웃도어 브랜드 EIDER 역시 제작 지원에 참여했다. 재미있는 건 선우의 스마트폰으로 주요 PPL 중 하나였던 갤럭시 노트 II는 삼성 전자의 제품. 그룹사 간의 앙금이 남아있지만, PPL은 통크게(?) 서로 상부상조하는 듯.

덧붙임2) 나는 19화에서 숨을 거둔 현재의 선우가 부활하기 위해서 과거의 어린 선우가 무언가의 역할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결과는 반은 맞고 반을 틀린 셈?

덧붙임3) 열린 결말을 예상했는데, 이건 열린 결말이라기보다는 뫼비우스의 띄와 같은 무한으로 반복되는 결말이 아닐까. 선우는 자신의 과거를 뒤바꿈으로 인해 현재의 무언가를 잃어버렸지만, 굴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과거로의 여행을 계속 택한 셈이다.

덧붙임4) 나인에서 살인청부업자 '박'으로 열연한 이는 연극배우 출신의 김원해씨. 김원해씨는 지난해 SNL 코리아에서 '여의도 텔레토비' MB와 진중건 캐릭터로 활약했다. 덕분에 초반에는 이미지가 겹치면서 몰입이 안되더라는.(물론, 그는 극중의 청부업자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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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엘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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