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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이지만, 흥행 감독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항상 철학적인 사색, 그리고 관객들과의 고도의 지적인 대화를 즐겨하는 편인데요. 그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다준 95년도 작품 '공각기동대' 역시 난해하고 논술적인 대사들, 아름답고 세밀하지만 메마른 배경, 격한 액션장면에서조차 정적감을 느끼게 하는 기묘한 긴장감 등으로 사실 편하게 보기가 힘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속편격인 '이노센스(2004)'에 와서는 이러한 사색적 표현이 실험적인 영상미와 어우러져 한편의 추상화를 접하는 듯한 기묘한 불편함을 선사하기도 했죠. 그래도 전체적인 스토리가 가는 길을 놓치지 않는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여러모로 관객들에게는 어려움 역시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4년만에 새로운 작품을 들고 왔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스카이 크롤러(2008)'가 되겠습니다.

오시이 감독들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철학적이고 난해하다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한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표현이 있는데요, 그것은 '불안한 편안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편할 정도로 느릿느릿한 등장인물들의 반응과 하나하나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조용하면서도 확실한 몸짓들... 그것은 대부분 침묵 속에서, 또는 느릿한 테마와 어우러져 묘한 침묵을 관객들에게 안겨줍니다. 스카이 크롤러 역시 이런 기묘한 정적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작품입니다. 조용한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하는 편안함 속에서 밀려오는 왠지 모를 불안감 가득한 오후... 라면 좀 어울리는 표현일까요. 탁 트인 우리스 기지와 높고 푸른 하늘의 배경조차도 주인공들의 삶의 무게가 얹혀져 왠지 모를 슬픔을 안겨주는 듯 합니다.

 

스카이 크롤러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남녀 간의 감정선이 묘하게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전체적인 불안한 편안함 속에서 오시이 감독의 작품답게 격한 감정의 표현이 드러나지 않기에 수면에서 뜨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부표와 같은 희미한 느낌입니다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느낌이 십분 살아나기도 합니다. 물론, 메인 테마는 등장하는 피터팬과 같은 소년,소녀들인 킬드레의 자아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 MORI HIROSHI/SKY CRAWLERS Committee

                

비행전투씬은 3D 연출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하우를 자랑하는 Production I.G와, 역시 그 난해하고 복잡한 스토리만큼이나 영상미에 있어서도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오시이 마모루의 조합으로, 과연이라는 소리를 낼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오시이 마모루의 스승으로 일찌기 '에어리어 88(1985)'에서 희대의 비행전투씬을 연출해냈던 故 토리미우미 히사유키 감독의 편린이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그의 직계제자라 할 수 있는 오시이 감독이 처음으로 하늘을 무대로 한 작품을 통해 스승처럼 멋진 비행전투씬을 표현해냈다는 것도 스카이 크롤러의 하나의 의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음악들이 너무도 마음에 드는데요. 카와이 켄지의 메인 테마도 메인 테마지만, 엔딩에 흐르는 주제가, 아야카의 '오늘 밤도 별에 안겨서'는 본편 내내 막혀 있던 절제된 슬픔과 감정들이 마치 스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자막과 함께 흘러나와 개인적으로는 꽤나 감정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듣자 마자 홀딱 반해버렸네요.)

 

글쎄요, 오시이 감독이 말했듯이 이 작품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주는 소수의 관객들을 위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근래의 오시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는 꽤 대중적인 취향에 근접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작품에는 한가지 반전이 숨어 있는데요. 사실 작품 초반부에 이미 짐작을 해버린 터라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라는 점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군요.

 

기회가 되면 스카이 크롤러는 다시 한 번 자세한 리뷰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내 DVD 발매가 몹시 기대되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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