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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vel Comics

 
DC를 시샘한 마블의 영화 사랑

DC 코믹스의 대표 히어로 슈퍼맨과 배트맨이 실사영화를 통해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하는 동안, DC 코믹스와 함께 북미 코믹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마블 코믹스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스파이더맨과 엑스맨,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등, DC에 뒤지지 않는 매력적인 히어로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마블이었지만, 영화시장에서는 좀처럼 그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던 것입니다. TV 시리즈와 실사영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마블 스튜디오를 80년대에 설립했지만, 85년부터 거론되던 자사 최고의 히트 캐릭터 스파이더맨의 실사영화가 판권을 둘러싼 문제로 감독으로 선임되었던 제임스 카메론이 도중하차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블의 히어로들은 스크린에 입성하지 못한 체 21세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배트맨 시리즈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히어로 영화가 예전만큼의 임팩트를 갖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CG라는 신기술이 실사영화에 서서히 접목되면서 히어로 영화는 다시금 부활의 날개짓을 펼치기 시작했고, '블레이드(1998)'를 통해 그토록 염원하던 실사영화에의 진출을 성공한 마블은 그로부터 4년 뒤인 2002년 마침내 '스파이더맨(2002)'을 개봉하여 DC 코믹스의 히어로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빅히트 대작을 보유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실사영화에서는 마블의 일대 반격이 시작됩니다. 블레이드 시리즈는 이후에도 3편까지 제작되면서 대표적인 R 등급 뱀파이어 히어로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3편까지 연달아 빅히트하며 마블의 대표 히어로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되지요. 여기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연출한 엑스맨 3부작(3부는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하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이전과는 다른 고뇌하고 소외받는 히어로들을 묘사하면서 영화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실사영화의 DC 히어로들과 달리 마블의 21세기 히어로들은 보다 더 인간적이고 불완전했습니다.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불행했고, 그래서 연민이 느껴지기까지 했지요. 이제 영화의 히어로 월드는 마블의 히어로들이 지배할 것 만 같았습니다.

ⓒ 20th Century Fox


ⓒ Columbia Pictures



풍요 속의 빈곤,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하게 된 마블

21세기 초반 헐리우드는 심각한 소재고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실사영화로 만들 만한 소재들이 바닥이 나기 시작한 것이죠. 이즈음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해리 포터 시리즈가 어마어마한 흥행에 성공하자 헐리우드의 제작사들은 앞다투어 판타지 영화에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작품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안으로 풍부한 컨텐츠를 자랑하는 일본  아니메를 소재로 삼게 되지만, 원작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로컬라이징에 실패한 헐리우드식 아니메 해석은 이제까지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랜스포머의 경우는 실제 원작은 일본이지만, 완구와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이미 어느 정도 북미에서 로컬라이징이 된 소재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다가 사그러들었던 히어로물은 재활용 소재로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일구어내게 됩니다. 기존의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히어로물은 아직 그만큼 팬층이 형성되지 않는 일본산 애니메이션보다는 더 관객에게 어필하기가 쉬운 소재였고, CG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러한 트렌드를 타고 등장한 마블의 히어로들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실사영화에 들이닥치게 됩니다.

하지만 풍요 속에 빈곤은 존재하는 법, 우선 수많은 히어로 무비들의 양산으로 인해 일부 작품들은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으로 인해 기대치가 높아진 탓에 그 뒤에 등장한 '헐크(2003)'나 '데어데블(2003)', '일렉트라(2005)', '판타스틱 포(2005)' 등은 그 완성도가 앞선 히트작들과 비교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흥행 역시 앞선 작품들에 비해서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안았구요. 여기에 실사영화를 위해 캐릭터 사용료 만을 받고 판권을 영화사에 넘겨버린 마블로서는 자신의 히어로들이 등장한 영화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그저 손가락만 빨며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2003년 라이벌인 DC 코믹스가 워너브러더즈 계열사인 DC 엔터테인먼트로 편입되면서, 마침내 DC의 히어로들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이 새롭게 리부트시킨 배트맨 2부작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나이트(2008)'는 히어로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단의 극찬 속에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게 되며, 엑스맨 시리즈로 마블의 히어로들을 성공적으로 실사로 이식했던 브라이언 싱어가 슈퍼맨 리부트 프로젝트로 자리를 옮겨 '슈퍼맨 리턴즈(2006)'을 제작하는 등 DC의 공세는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블로서는 이제 결단의 시기를 내릴 때가 온 것이었습니다.

ⓒ Paramount Picture



어벤져스, 마침내 전모를 드러낸 마블의 히어로 월드

2008년 드디어 마블 자신이 독자적으로 제작한 '아이언맨(2008)'과 '인크레더블 헐크(2008)'가 스크린으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비록 같은 해에 개봉한 DC의 다크나이트에는 못미쳤지만, 아이언맨은 기록적인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내었으며, 인크레더블 헐크 역시 준수한 결과를 남기게 되었던 겁니다. 이에 자신을 얻은 마블은 원대한 계획을 꿈꾸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어벤져스'의 시동이었습니다.

아이언맨을 보시면 크레딧이 끝나고 영화 마지막에 비밀조직 쉴드의 국장 닉퓨리가 등장하여 토니 스타크에게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깁니다. '당신만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나?' 바로 이것이 어벤져스의 시동을 암시하는 대사였던 것입니다. 어벤져스는 마블의 대표 히어로들이 결성한 조직으로, 1963년 코믹스로 발표되기 시작한 작품인데요. 그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며 마블의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마블은 몇몇 대표 히어로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관 그 자체를 영화로 옮기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를 한 두편의 영화로 영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코믹스처럼 각각의 히어로들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차례로 선보인 다음, 이후에 그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별도의 영화로 공개한다는 것인데요. '아이언맨2(2010)'를 선보인 뒤 마블은 지속적으로 대표 히어로인 '토르(2011)'와 '캡틴 아메리카(2011)'를 자체 제작하여 개봉할 예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에는 이들 히어로 영화들을 한자리에 묶을 '어벤져스(2012)'가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딱히 마블의 팬이 아니지만 이러한 마블의 프로젝트는 몹시도 흥미롭고 기대된다 하겠습니다. 방대한 세계관을 하나의 작품에 무리하게 집어넣지 않고 독립적인 작품들로 그 단편들을 보여주어 종래에는 하나의 완성된 월드를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은 영화의 속편 제작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가 아닌가 싶군요. 특히, 마블 엔터테엔먼트가 2009년부로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이러한 마블의 장대한 프로젝트는 더더욱 무게가 실려 보입니다.

여기에 마블이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마블의 히어로들을 소재로 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 역시 개봉 예정에 있으며, 소니가 별도로 시동하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4번째 작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도 제작중이라고 합니다. 또한,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하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의 속편 '더 울버린(2012)' 역시 2011년 4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마블의 파상공세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되면 역시 DC의 반격 역시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 DC 쪽도 올해 '그린 랜턴(2011)'을 필두로, 놀란 감독이 다시 배트맨 속편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를 제작중에 있으며, 슈퍼맨의 속편인 '슈퍼맨: 맨 오브 스틸(2012)'은 '왓치맨(2009)'을 통해 R등급 성인 히어로물의 진수를 보여준 잭 스나이더 감독이 연출을 맡을 예정에 있죠. 거대한 베일을 벗은 마블의 어벤져스 프로젝트에 비견될 DC의 져스티스 리그가 과연 시동될지 역시 관심거리라 하겠습니다.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히어로들의 전쟁이 이제 스크린에까지 그 전장을 넓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 Paramount Pictures


ⓒ Paramount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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