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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EI Animation


<목차>



<서문>

번 시간은 판타지 연대기의 마지막인 동화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만화영화와 가장 훌륭한 궁합을 보여주었던 판타지는 사실 지금의 아니메에서는 과도한 변형과 일본식 재가공에 의해 그 본연의 맛을 살린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부터 4부까지 알아본 것처럼 수많은 판타지 장르의 작품들이 60년에 이르는 일본 아니메史의 한장을 당당히 장식할 정도로 음으로 양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지요. 한마디로 만화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하나의 배경으로서 비록 장르적 영향력은 감소했을지언정 꾸준히 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판타지 동화, 즉 동화라 일컫는 장르는 만화영화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가장 만화영화와 판타지에 잘 어울리는 소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의 만화영화는 (이전까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주었던, 물론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동화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들어내는데에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만화영화의 초창기는 동화가 소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만화영화에서는 판타지가 곧 동화이기도 했는데요. 이것은 디즈니 뿐만 아니라 일본 만화영화에서도 동일한 상황으로, 디즈니보다 후발주자였던 일본 만화영화는 초기에는 디즈니의 발자취를 쫓아 세계명작동화나 전설 등을 모티브로 한 전형적인 동화 판타지 형태의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60년대에 이르러 테즈카 오사무나 요코야마 미츠테루, 이시노모리 쇼타로 같은 인기 일본 만화가들의 등장으로 일대 전환점을 맡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까지의 세계명작동화와는 다른 자신만의 오리지널 스토리로 만화를 펴내어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결국 만화영화에까지 옮겨져 일본 만화영화가 디즈니의 스타일을 버리고 스스로의 색깔을 갖추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 시점부터 동화 판타지가 서서히 일본 만화영화계에서 힘을 잃기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 판타지는 여전히 판타지 세계를 대표하는, 그리고 만화영화를 대표하는 간판 장르이기도 합니다. 특히,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에 의해 동화 판타지는 자국 내에서의 이같은 트렌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 가장 큰 흥행기록을 세운 작품(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원령공주, 하울의 움직이는 성)들을 보유한 장르이기도 하지요. 뿐만 아니라 아니메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에서 상을 수상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아니메의 위상을 떨친 장르 역시 동화 판타지입니다. 60년이라는 일본 만화영화의 역사의 첫걸음부터 같이 걸어왔던 동화 판타지, 그 이야기를 끝으로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의 대단원을 내려보고자 합니다.


디즈니를 바라보았던 도에이의 꿈, 아니메로 바톤 터치되다.

본이 만화영화를 시작하던 1950년대 후반부의 세계 만화영화는 월트 디즈니가 석권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은 즉, 일본이 만화영화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기준점이자 레퍼런스로,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들이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인데요. 실제로 '일본 만화의 신'이자 '일본의 월트 디즈니'라는 칭송(물론,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을 듣게 되는 테즈카 오사무라든지, 일본 만화영화 감독으로 아카데미 상까지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한 당대의 일본 애니메이터들이 디즈니의 작품들을 흠모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결국, 초기 일본 만화영화의 스타일은 디즈니의 것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아직은 오리지널 창작 작품을 만들 여력이 없던 당시의 상황에서 만화영화는 자연스럽게 세계명작동화나 전래동화, 옛날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을 수 밖에 없었으며, 세분화된 만화영화 팬층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에 당연히 만화영화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전연령가 형태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동화 속의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동화 판타지들이 일본 만화영화의 서장을 수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2부 오리엔탈 판타지 아니메 이야기에서 소개된, 일본 최초의 상업용 극장 만화영화 '백사전(1958)'이라든지, 테즈카 오사무와 도에이 동화가 힘을 합친 '서유기(1960)', '신밧드의 모험(1962)', '개구쟁이 왕자의 왕뱀퇴치(1963)'와 같은 일련의 도에이 극장 만화영화는 모두 동화 판타지의 성격을 가진 작품입니다. 더군다나 신밧드의 모험과 같은 일부 작품들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는 등, 당시 일본 만화영화는 첫시작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저에는 자국의 제품이나 컨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려하는 일본인들의 민족주의적 태도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았나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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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동화 판타지의 약진은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자국의 오리지널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만화영화들이 인기를 끌면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즈음에 테즈카 오사무가 자신의 작품인 '철완 아톰(1963)'을 도에이 동화와 같은 거대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제작사를 차려 직접 제작하게 되는데요. 영세한 제작력과 부족한 인력을 가지고 있던 당시 테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은 이러한 인적자원으로 TV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리미티드 제작기법을 창안해내게 됩니다. 디즈니의 풀프레임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던 당시의 일본 아니메 업계에 편당 동화매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리미티드 아니메는 극장 아니메보다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TV 시장에서 큰 호평을 얻게 됩니다. 여러 면에서 디즈니에 비해 열악했던 당시의 일본 아니메 업계에 리미티드 기법은 분명 낮은 제작비로도 만화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죠.

물론, 후일 이러한 리미티드 제작기법의 도입은 일본 애니메이터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이끌어내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만, 일본 만화영화가 디즈니에 비해 열악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많은 수의 작품을 제작하게 되는 환경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부정과 긍정의 두가지 측면을 보유하게 됩니다. 한편, 리미티드 기법을 이용해서도 경쟁력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달은 도에이 동화는 이로 인해 풀 애니메이션과 세계명작동화로 대표되는 자사의 A 스튜디오의 폐쇄를 결정하고, 리미티드 제작기법과 일본 오리지널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는 B 스튜디오 극장 아니메를 주력으로 선택하게 되는데요. 바로 이 시기, 도에이 동화의 노조를 이끌던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A 스튜디오 폐쇄에 맞서 노조만의 힘으로 대작 판타지 동화 애니메이션을 완성시키게 되니 이것이 바로 저주받은 걸작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1968)'인 것입니다.

A 스튜디오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될 이 작품은 작화 매수 150,000매(상영시간 82분으로, 분당 1,830매, 초당 30여장이 사용된 진정한 풀 애니메이션. 보통 풀 프레임이라하면 1초에 24~30장이 사용되는 것을 말함)에 달하는 대작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풀 애니메이션의 정수를 담아낸 애니메이터들의 긍지의 작품이기도 했지만, 당시 불안정한 일본 사회분위기 속에서 홀로 극장가에 등장한 무리한 개봉일정은 풀애니메이션의 퇴장을 알리는 전조와도 같은 것이었고, 당연한 듯 이어진 흥행 대참패는 이후 수많은 인재들이 도에이 동화를 떠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1] 참조) 창작의지만이 작품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 속에 등장했던 이 작품의 몰락은, 자연스럽게 일본 만화영화계에서 동화 판타지의 퇴장을 예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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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노코와 닛폰 애니메이션의 등장, 아직도 시들지 않은 동화 세상. 

'징가 Z(1972)'라는 희대의 작품의 등장과 함께 70년대 일본 만화영화는 TV 시리즈의 전성기로 접어듭니다. TV 시리즈의 등장은 여러모로 명작동화들을 모티브로 했던 극장용 만화영화의 축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극장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봐야하는 장소적 제약을 가진 극장 만화영화에 비해 TV용 만화영화는 (시청료는 내지만) 영화보다는 금전적 부담이 없고, 게다가 집에서 볼 수 있는 편리함까지 갖췄던 것이죠. 마징가 Z를 필두로 한 오리지널 만화영화의 등장과 함께 극장용 만화영화 역시 오리지널 작품 외에도 TV 시리즈를 편집하여 방영하는 추세가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TV 시리즈를 통하여 안정적인 고객층을 확보한 후, 이를 총집편 형태나 일부 에피소드를 극장용으로 편집하는 형태로 방영하여 제작비용 대비 흥행성과를 올리게 되는 것인데요. 이로 인해 극장상영으로만 선보이던 판타지 만화영화들은 어쩔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동화 판타지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작품들을 내놓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원작의 '바다의 트리톤(1972)'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생존자인 트리톤이 돌고래를 타고 포세이돈 족과의 대결하는 판타지적 색체가 강한 모험극으로, 건담의 아버지인 토미노 요시유키의 감독 데뷔작으로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이보다 앞서서는 천사의 실수로 왕자로 태어나야할 아이가 공주로 태어나면서 벌어지는 중세왕국 시대의 모험이야기를 다룬 테즈카 오사무 원작의 '사파이어 왕자(1967)'가 등장하여 순정만화의 효시가 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동화 판타지로서도 손색없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었지요. SF와 판타지를 가리지 않으며 넘나들었던 테즈카 오사무의 폭넓은 작품세계 덕분에 오리지널 아니메로 일본 만화영화 트렌드가 바뀌었음에도 이런 동화 판타지 작품들이 계속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만, 이는 이전의 풀 애니메이션 동화 판타지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일본 오리지널 동화 판타지의 새로운 탄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요시다 타츠오, 요시다 켄지, 쿠리 잇페이 삼형제가 설립한 타츠노코 프로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지 않은 오리지널 TV 만화영화를 만들어내면서 70년대 들어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개구리들이 사는 연못세상의 이야기를 현대사회에 대한 비유와 풍자를 섞어 만들어낸 명작 '개구리 왕눈이(1973)'나 4차원 세계의 대마왕에게 사로잡힌 여자친구를 구하는 소년의 모험 이야기를 다룬 '폴의 미라클 대작전(1976)'과 같은 매력적인 동화 판타지들은 바로 이 타츠노코의 작품이기도 하지요. 타츠노코에서 스튜디오 피에로로 이적한 토리우미 히사유키 역시 '닐스의 대모험(1980)'이라는 동화 판타지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타츠노코와 스튜디오 피에로는 오늘날 각각 히어로물의 본가와 마법소녀물의 본가라는 칭호를 듣는 제작사들로서, 동화 판타지와는 대치되는 일본 오리지널 만화영화 장르를 발전시킨 이들이라는 점에서 앞선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들처럼 새로운 일본식 동화 판타지를 보여준 사례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일본 오리지널 스타일의 동화 판타지들과 달리 과거 도에이 동화에서 명작동화 스타일의 만화영화를 만들었던 모리 야스지, 타카하타 이사오, 오츠카 야스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인물들은 도에이를 떠나 A 프로덕션을 거쳐 닛폰 애니메이션에 안착, 과거 도에이 동화 시절의 세계명작동화의 스타일을 발전시킨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선보이게 됩니다. 세계적인 명작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동화적 감성과 서정적인 터치를 펼쳐낸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는 비록 판타지와는 거리가 있는 장르였으나 일본 만화영화에 무국적 세계관의 동화라는 친근하면서도 독자적인 장르를 구축하며,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동화 판타지의 토양과 양분이 되지요. 뿐만 아니라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는 비즈니스적 사정에 의해 세계명작 창작을 중지했던 도에이 동화에도 영향을 주어 세계명작동화라 불리는 일련의 극장 만화영화 시리즈를 전개하는데 있어서도 음으로 양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70년대 들어 그 주도권을 빼앗기긴 했지만 동화 판타지는 특유의 서정성과 친근함을 바탕으로 꾸준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80년대까지 흐름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 TEZUKA Production (좌) / ⓒ TATSUNOKO Production (중) / ⓒ STUDIO PIERROT (우)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비로운 세계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성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오리지널 아니메는 완벽한 장르적 완성을 가져오게 됩니다. 특히, '우주전함 야마토(1974)', '기동전사 건담(1979)'을 보며 자라온 일본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아니메의 주요 소비자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작품의 눈높이도 덩달아 고연령대의 높이로 뛰어오르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80년대는 조숙한 만화영화들이 많았다고 해야할 만큼 동심과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보다는 치밀한 설정과 인간 드라마가 녹아들어간 작품들이 대거 제작되기에 이르릅니다. 물론, 이는 만화영화의 다양화 측면에서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낸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니메의 장르적 편중화 속에 동심을 자극하는 서정적 감성의 동화들이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른 장르의 판타지 작품과 마찬가지로 동화 판타지도 이 시기에는 암울한 암흑기를 거치게 됩니다. 이즈음 일본 최대의 캐릭터 메이커 산리오와 테즈카 오사무의 후예들인 매드하우스 제작진이 힘을 합쳐 제작한 '유니코(1981)'는 기존의 동화 판타지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로, 테즈카 오사무의 스타일과 매드하우스만의 감성이 녹아든 독특한 형태의 동화 판타지를 선보이는데요. 특히, 산리오 그룹은 '별의 오르페우스(1979)'나 '시리우스의 전설(1981)'과 같은 초대작 스페이스 판타지를 선보이며, 일본 아니메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지만, 완성도와는 달리 흥행에 연이어 실패하며 일본의 디즈니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게 되지요. 

세계명작동화 시리즈로 동화 판타지의 마지막 끈을 놓치 않았던 도에이 동화는 '백조의 호수(1981)', '알라딘과 마법램프(1982)', '만화이솝 이야기(1983)'로 그 흐름을 계속 이어가지만, 결국 흥행 부재라는 숙제를 안고 시리즈의 대단원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듬해 TV 시리즈로 선보인 '고깔모자 메모루(1984)'는 그동안 인기 원작만화의 판권을 사들여 작품을 제작했던 도에이가 선보인 이례적인 오리지널 아니메로서, 동화적인 비주얼과 귀여우면서도 일본적이지 않은 이국적인 캐릭터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작품이로 회자되기도 하지요.

ⓒ MADHOUSE (좌) / ⓒ TOEI Animation (중,우)


한편,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선보이며 무국적 세계관과 이국적 스타일을 완성시킨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첫 극장연출작인 '루팡 3세 -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를 바탕으로 극장 만화영화의 연출 노하우를 습득한 뒤, 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통하여 스타 연출가로서의 인상적인 데뷔를 하기에 이르릅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미야자키가 보여준 놀라운 세계관, 서정적이고 세심한 작화, 역동적히고 박진감 넘치는 컷, 아름다운 음악, 환경 메시지 등은 스케일과 엔터테인먼트, 재미와 감동을 모두 담은 완성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요. 이것은 테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요코야마 미츠테루, 나가이 고, 마츠모토 레이지로 이어져온 일본 오리지널 코믹스 기반의 아니메들과는 달리, 명작동화를 근간으로 했던 과거 도에이 A형 극장판에서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거쳐 진화해온 미야자키식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미야자키의 이러한 스타일은 리미티드 아니메 기법의 여느 일본 만화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풀 애니메이션 기반의 유려한 움직임은 디즈니의 감성을 담고 있지만, 유럽식 풍취를 완벽하게 이식한 설정은 미국식 느낌과는 또다른 고전적 정취를 느끼게 해주지요. 여기에 미야자키만의 독특한 판타지가 가미되면서 서양도 아니고 동양도 아닌 무국적 세계관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굳이 비중으로 놓고 보면 서양적 감성에 가깝긴 하지만 미야자키의 이 무국적 세계관은 앞으로 그가 창작해내는 많은 이야기들의 하나의 공통적 스타일로 자리하게 됩니다.

나우시카를 기점으로 하여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이후 걸리버 여행기 3부를 테마로 한 '천공의 성 라퓨타(1986)'로 모험가득한 스팀펑크 스타일의 판타지를 선사하게 되구요. '이웃의 토토로(1988)'에 이르르면 서양적 스타일이 아닌 동양적 감성이 물씬 살아나는 이야기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1989)'에 이르기까지 미야자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동화 판타지는 SF와 장르물이 장악한 일본 아니메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냅니다. 80년대 후반들어 일본 만화영화가 침체를 거듭하며 쇠락기에 접어들고 데자키 오사무, 토미노 요시유키, 야스히코 요시카즈와 같은 거장들이 차례로 실패의 쓴잔을 마시는 와중에서도 미야자키와 미야자키의 동화 판타지는 변하지 않는 티켓 파워를 보여주며 미야자키는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거장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 NIBARIKI・TOKUMA Shoten (좌,중) / ⓒ EIKO KADONO・NIBARIKI・TOKUMA Shoten (우)



노쇠하는 거장, 후계자가 없는 동화 세상의 미래는?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아니메의 침체기는 일본 아니메의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SF 장르의 몰락과 함께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깊이의 로봇 아니메가 사라지고, 용자 시리즈와 같이 다시 저연령대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로봇 아니메가 부활하여 새로운 시청층을 공략했고, 이제 성인이 된 과거의 아니메 팬들을 위해서인지 복고주의가 아니메 업계에 불어오게 되지요. 이즈음에는 중세 판타지와 같이 판타지 계열의 아니메들이 좀 더 활발히 제작됩니다만, 결국 정통 드라마 형태로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하자 코믹 요소를 적극 도입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개그 바람을 타고 만들어진 '빨간망토 챠챠(1994)'나 '마법진 구루구루(1994)'와 같은 작품들은 중세 판타지의 설정에 동화적 스타일을 갖고 개그 코드를 적극 도입한 이색적인 작품들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되지요. (물론, 구루구루의 경우에는 동화라기보다는 엽기 컬트적인 작품이라고 보는편이 맞겠습니다만)

또한, 90년대 말에 등장한 '포켓몬(1997)' 시리즈나 '디지몬 어드벤쳐(1999)'는 판타지에서 볼법한 환상의 동물들을 게임 대전 방식의 이야기의 소환수로 등장시키면서 동화 판타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물론, 캐릭터적 매력은 커졌지만 예전의 드라마성이 상실된, 그저 동화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단조로운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이러한 작품은 서서히 아니메의 트렌드가 인스턴트 스타일로 변질됨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정통 동화 판타지의 마지막 보루 스튜디오 지브리의 선전은 계속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붉은 돼지(1992)'를 통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지브리의 또 한명의 거장 타카하타 이사오가 선보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는 너구리를 소재로 한 일본적 색체가 강한 판타지물을 선보이게 되구요. 여기에 오랜 기다림 끝에 복귀한 미야자키의 '원령공주(1997)'가 글로벌한 성공을 거두면서 여전히 거장의 건재함을 과시하게 되지요. 닛폰 애니메이션의 세계명작극장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물론, 2000년 대 후반에 들어 극적으로 다시 부활), 아니메 업계가 오리지널 아니메보다는 인기 원작을 바탕으로 한 비슷비슷한 작품들의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의 존재는 일본 아니메와 동화 판타지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등대라 아니할 수 없던 것입니다.

ⓒ 彩花みん・集英社・テレビ東京・NAS (좌) / ⓒ 畑事務所・TNHG (중) / ⓒ 猫乃手堂・TGNDHMT (우)


후계자로 낙점받았던 콘도 요시후미의 사망으로 은퇴 선언 후 극적으로 복귀하여 만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통해 자신의 신화에 방점을 찍은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시금 은퇴를 고려하게 됩니다만, 동화 판타지를 거의 혼자서 이끌다시피한 그의 퇴장은 극장 아니메의 막강한 티켓 파워를 지닌 인물의 퇴장이라는 상업적 고려 속에 차일피일 그 일정이 미루어지게 됩니다. '고양이의 보은(2002)'으로 미야자키 외에도 뛰어난 인재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 지브리이지만, 미야자키만큼의 파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우려 속에 이들은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지요.

포켓몬 극장판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준 호소다 마모루를 영입했다가 작품 제작도중 강판시켜 버린 지브리의 스폰서 도쿠마 서점은 미야자키로 하여금 호소다 마모루가 작업했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을 마저 마무리 짓게 합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미야자키의 작품치고는 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큰 히트를 치면서 이러한 스폰서의 결정은 옳았던 것으로 증명되는 듯 싶었지만, 이로 인해 지브리는 후계자를 만들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았으며, 이후 이야기는 아시다시피 호소다 마모루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4)'로 평단과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반면, 미야자키의 아들이자 첫번째 후계자 후보(?)였던 미야자키 고로는 '게드전기(2007)'를 통해 평단과 관객의 혹독한 비평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아직까지 지브리는 확정적인 후계자를 구하지 못한체 '벼랑 위의 포뇨(2008)'로 미야자키가 다시 일선에 복귀하고, '마루 밑 아리에티(2010)'를 통해 미완의 대기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를 감독으로 기용하지만, 미야자키가 온전히 손을 떼고 작품을 맡기기에는 여전히 경험이나 역량면에서 많은 것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오히려 스튜디오 지브리와 오랜 라이벌 관계라 할 수 있는 매드하우스가 호소다 마모루나 코사카 키타로 같은 지브리의 인재들을 데려와 만족할 만한 완성도의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죠. 아직까지 동화 판타지를 표방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얼마전 매드하우스의 정신적 지주 린타로 감독이 '요나 요나 펭귄(2009)'이라는 동화 판타지 작품을 내놓는 등 미야자키의 공백을 메울 작품과 감독의 발굴에 적극적입니다. 여기에 동화 판타지와 전혀 관계없었던 Production I.G까지 '망각의 섬: 하루카와 마법의 거울(2009)'로 CG 스타일의 동화 판타지를 선보이게 됩니다.

ⓒ FUJI TV・Production I.G・電通 (좌) / ⓒ RINTAROU・MADHOUSE・YONA YONA PENGUIN Film Partners (중) / ⓒ GNDHDDTW (우)


아니메의 출발점이기도 했지만, 오리지널 아니메로 그 힘을 대부분 상실했던 동화 판타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의해 아니메의 대표적 작품이 되었고, 다시 미야자키의 노쇄와 함께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차세대 주자가 그 바톤을 이어받을 차례이지만, 과거 도에이 A형 극장판부터 세계명작극장 시리즈,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로 이어져온 아니메만의 동화 판타지 계보가 이 와중에 부디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디즈니가 과거의 명작 극장 애니메이션의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픽사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에 밀려버린 전철을 지브리가 똑같이 밟게 된다면, 먼훗날 미야자키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그저 과거의 명작으로만 우리에게 남아있게 될테니까요.

(판타지 아니메 연대기 5부 끝)


<참고 사이트>

[1]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太陽の王子 ホルスの大冒険) 1968 by 캅셀, CAPSULE 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2] 유니코(ユニコ) 1981 1983 by 캅셀, CAPSULE 블로그:총천연색 리스트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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